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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상호방위조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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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과 미합중국 간의 상호방위조약
大韓民國-美合衆國間-相互防衛條約
Mutual Defense Treaty Between
the United States and the Republic of Korea
파일:대한민국 국기(1949-1997).svg 파일:미국 국기(1912-1959).svg
파일:한미동맹 70주년 기념 로고.svg
<colbgcolor=#053864> 한미동맹 70주년 로고
<colcolor=white> 체결일 1953년 10월 1일
( 현재 [age(1953-10-01)]주년)
가맹국 [[틀:깃발|
기 명칭
대한민국
]][[틀:깃발|
깃발 명칭
대한민국
]][[대한민국 제1공화국|
대한민국 제1공화국
대한민국
]]
[[틀:깃발|
기 명칭
미국
]][[틀:깃발|
깃발 명칭
미국
]][[미국|]]
관할 기관 경기도 평택시 팽성읍 캠프 험프리스 한미연합군사령부
모토 '같이 갑시다!'
"We go together!"
병력 총상비군 2,120,000명(2015)
주한미군 37,000명
보유 전차 11,274대
보유 장갑차 44,032대
보유 전투기 8,480대
보유 군함 2,600척

1. 개요2. 체결 과정3. 조약 전문4. 의의
4.1. 한국의 국방 전략에 끼치는 영향
5. 논쟁
5.1. 미일동맹과의 관계5.2. 불평등 조약 논란
5.2.1. 문제 제기5.2.2. 반론
5.3. 조약 체결에서 이승만의 역할5.4. 방위 지역에 대한 해석 논란5.5. 제6조의 해석5.6. 자동 개입에 대한 여부 논란5.7. '태평양 지역'에 대한 해석
6. 조중 우호협력 및 상호원조조약과의 차이점7. 어록8. 관련 문서

[clearfix]

1. 개요

파일:1706_074.jpg
1953년 8월 8일 한미상호방위조약 가(假)조인식을 지켜보고 있는 이승만 대통령(뒷줄 가운데)
가조인식에 서명하는 변영태 대한민국 외무장관(왼쪽)존 포스터 덜레스 미국 국무장관(오른쪽)
대한민국과 미합중국간의 상호방위조약」, 약칭 한미상호방위조약()은 6.25 전쟁 직후인 1953년 10월 1일, 워싱턴 D.C.에서 변영태 당시 대한민국 외무장관존 포스터 덜레스 당시 미국 국무장관이 조인하여, 1954년 11월 18일 발효한 대한민국미국 사이의 군사동맹에 관한 조약이다. 한미동맹의 법적 기반이라 할 수 있다.

미국과 여러 국가의 동맹관계는 다양한 형태로 나뉘는데, 미국이 소속국으로서 다른 회원국의 전쟁에 자동으로 참전하는 조약기구 형태인 북대서양 조약 기구와 그 이외의 동맹 국가들로 나뉜다. 이 중 후자는 주요 비(非) 나토 동맹국(Major Non-NATO Ally)이라 하는데, 이 중 미국과 상호방위조약을 맺은 국가는 대한민국, 일본[1], 필리핀[2], 호주, 뉴질랜드[3], 브라질, 아르헨티나[4], 콜롬비아[5]가 있다.

'상호'라는 명칭이나 조약 2조 등을 보면 역으로 미국이 위기에 빠졌을 경우에는 대한민국 국군이 도와야 하는 것이 아닐까 싶을 수 있으나[6] 이를 부정하는 해석이 있었기에 명칭과 달리 실제로는 한국군이 미국 유사시에 동원될 수 없으며, 미국이 한국 유사시에만 병력을 동원할 권리가 있으므로[7] 한국 방위조약으로만 기능하고 있다.[8]

2. 체결 과정


6.25 전쟁이 발발 후 3년 정도 된 상황에서 북진통일을 주장하던 더글러스 맥아더가 경질되고 전쟁이 장기화되면서 미국 본토에서는 많은 미국 국민들이 시위를 했는데 무의미한 전쟁, 질질 끌지 말고 휴전협정 맺고 빨리 끝내자는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이승만 대한민국 대통령은 1953년 6월 17일 당시 미국 브릭스 대사와의 회동에서 휴전 후에도 상호방위조약을 맺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당시 해외에 간섭을 자제하는 고립주의 방향으로 흘러가던 미국은 이승만 대통령의 제안을 마음에 들어하지 않았다. 미국은 한반도에서 다시 전쟁이 발발한다면 제2의 필리핀이 될 거라며 상호방위조약을 거의 기피하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제대로 된 방위조약 등의 방어수단 없이 휴전이 이루어지면 언제든 다시 북한이 침략해올 것을 우려한 이승만은 6월 18일 약 25,000명의 반공포로 석방 사건을 독단적으로 일으키는 초강수를 두었다. 이 조치에 크게 놀란 미국은 이승만 대통령을 '약속 위반자'라고 비난했고 이승만을 제거해야 한다는 건의안이 나오기도 했고, 비밀리에 에버레디 계획을 구체화하여 실행 계획을 세우기도 하였다. 그러나 미국은 이미 이승만의 이러한 초강수에 휘둘리고 있었으며 어느새 이승만이 상황을 주도하고 있었다.[9][10]

1953년 7월 19일자 소련 뉴스는 당시 미국이 이승만 앞에서 제대로 된 대응도 하지 못하며 휘둘리던 상황을 이렇게 보도하였다.
한국전쟁이 일어나고서 지난 3년 동안은 도대체 이승만이란 이름을 별로 들어보지 못했다. 이 3년 동안 한국의 모든 문제는 미군 사령관에 의해서만 지시되고 이승만은 부산 한 모퉁이의 미군 뒤뜰 안에 안치되어 있었다. 그런데 이제 갑자기 이승만은 너무도 강대, 강력하기 때문에 유엔군 사령관이나 미국 대통령도, 그리고 미국 의회도 그와 겨룰 수 없다고 말하고 있다. 이런 꼴불견의 연극이 또 어디 있겠는가.

이승만 대통령은 상호방위조약 체결에 대한 약속을 해주지 않으면 휴전협상 주체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전작권을 환수하고 단독으로라도 북진을 하겠다고 선언하였다. 그러면서 동시에 한반도는 해양세력과 대륙세력의 교두보 역할을 수행한다는 한반도 교두보론을 내세우며 상호방위조약에 비관적이었던 미국 정가를 설득하였다. 결국 미국은 조약을 맺는 조건으로 휴전에 응할 것을 제시, 1953년 7월 휴전협상이 체결되었다.

이후 같은 해 8월 3일 미국과의 협상을 시작하였고 이승만은 이러한 과정에서도 정치회담이 결렬될 경우 무력통일을 추진하겠다고 협박하며 압박을 이어나갔다. 양국간의 협상 끝에 8월 8일 조약의 최종안이 서울에서 가조인되었다. 이승만 대통령은 이 조약으로 우리 후손들은 많은 혜택을 볼 것이라면서 크게 기뻐했고, 이는 현실이 되었다.

1953년 10월 1일, 미국 워싱턴에서 변영태 외무부 장관과 존 포스터 델레스 미국 국무부 장관이 조인하였으나, 이후 삽입조항에 대한 양국의 의견차가 심하여 시간을 끌다가 1년 후인 1954년 11월 18일에 정식으로 한미상호방위조약이 발효되었다.

3. 조약 전문

본 조약의 당사국은,
The Parties to this Treaty,

모든 국민과 모든 정부가 평화적으로 생활하고자 하는 희망을 재확인하며, 또한 태평양 지역에 있어서의 평화 기구를 공고히 할 것을 희망하고,
Reaffirming their desire to live in peace with all governments, and desiring to strengthen the fabric of peace in the Pacific area,

당사국 중 어느 1국이 태평양 지역에 있어서 고립하여 있다는 환각을 어떠한 잠재적 침략자가 갖지 않도록 외부로부터의 무력 공격에 대하여 자신을 방위하고자 하는 공동의 건의를 공공연히 또한 정식으로 선언할 것을 희망하고,
Desiring to declare publicly and formally their common determination to defend themselves against external armed attack so that no potential aggressor could be under the illusion that either of them stands alone in the Pacific area,

또한 태평양 지역에 있어서 더욱 포괄적이고 효과적인 지역적 안전보장 조직이 발달될 때까지 평화와 안전을 유지하고자 집단적 방위를 위한 노력을 공고히 할 것을 희망하여
Desiring further to strengthen their efforts for collective defense for the preservation of peace and security pending the development of a more comprehensive and effective system of regional security in the Pacific area,

다음과 같이 동의한다.
Have agreed as follows:

제1조 당사국은 관련될지도 모르는 어떠한 국제적 분쟁이라도 국제적평화와 안전과 정의를 위태롭게 하지 않는 방법으로 평화적 수단에 의하여 해결하고 또한 국제관계에 있어서 국제연합의 목적이나 당사국이 국제연합에 대하여 부담한 의무에 배치되는 방법으로 무력으로 위협하거나 무력을 행사함을 삼갈 것을 약속한다.
Article 1 The Parties undertake to settle any international disputes in which they may be involved by peaceful means in such a manner that international peace and security and justice are not endangered and to refrain in their international relations from the threat or use of force in any manner inconsistent with the purposes of the United Nations, or obligations assumed by any Party toward the United Nations.

제2조 당사국 중 어느 1국의 정치적 독립 또는 안전이 외부로부터의 무력 공격에 의하여 위협을 받고 있다고 어느 당사국이든지 인정할 때에는 언제든지 당사국은 서로 협의한다. 당사국은 단독적으로나 공동으로나 자조(自助)와 상호 원조에 의하여 무력 공격을 저지하기 위한 적절한 수단을 지속 강화시킬 것이며 본 조약을 이행하고 그 목적을 추진할 적절한 조치를 협의와 합의 하에 취할 것이다.
Article 2 The Parties will consult together whenever, in the opinion of either of them, the political independence or security of either of the Parties is threatened by external armed attack. Separately and jointly, by self-help and mutual aid, the Parties will maintain and develop appropriate means to deter armed attack and will take suitable measures in consultation and agreement to implement this Treaty and to further its purposes.

제3조 각 당사국은 타 당사국의 행정 지배하에 있는 영토와 각 당사국이 타 당사국의 행정 지배하에 합법적으로 들어갔다고 인정하는 금후의 영토에 있어서 타 당사국에 대한 태평양 지역에 있어서의 무력 공격을 자국의 평화와 안전을 위태롭게 하는 것이라 인정하고 공통한 위험에 대처하기 위하여 각자의 헌법상의 수속에 따라 행동할 것을 선언한다.
Article 3 Each Party recognizes that an armed attack in the Pacific area on either of the Parties in territories now under their respective administrative control, or hereafter recognized by one of the Parties as lawfully brought under the administrative control of the other, would be dangerous to its own peace and safety and declares that it would act to meet the common danger in accordance with its constitutional processes.

제4조 상호적 합의에 의하여 미합중국의 육군, 해군과 공군을 대한민국의 영토 내와 그 부근에 배치하는 권리를 대한민국은 이를 허여(許與, 허용)하고 미합중국은 이를 수락한다.[11]
Article 4 The Republic of Korea grants, and the United States of America accepts, the right to dispose United States land, air and sea forces in and about the territory of the Republic of Korea as determined by mutual agreement.

제5조 본 조약은 대한민국과 미합중국에 의하여 각자의 헌법상의 수속에 따라 비준되어야 하며 그 비준서가 양국에 의하여 워싱턴에서 교환되었을 때 효력을 발생한다.
Article 5 This Treaty shall be ratified by the United States of America and the Republic of Korea in accordance with their respective constitutional processes and will come into force when instruments of ratification thereof have been exchanged by them at Washington.

제6조 본 조약은 무기한으로 유효하다. 어느 당사국이든지 타 당사국에 통고한 후 1년 후에 본 조약을 종지(終止, 종료)시킬 수 있다.
Article 6 This Treaty shall remain in force indefinitely. Either party may terminate[12] it one year after notice has been given to the other Party.


이상의 증거로서 하기 전권위원은 본 조약에 서명한다.
IN WITNESS WHEREOF the undersigned plenipotentiaries have signed this Treaty.

본 조약은 1953년 10월 1일 워싱턴에서 한국문과 영문 두벌로 작성되었다.
Done in duplicate at Washington, in the Korean and English languages, this first day of October 1953.

대한민국을 위하여 변 영 태
FOR THE REPUBLIC OF KOREA: Y. T. Pyun
미합중국을 위하여 존 포스터 덜레스
FOR THE UNITED STATES OF AMERICA: John Foster Dulles
미합중국의 양해사항[13]
어떤 체약국도 이 조약의 제3조 아래서는 타방국에 대한 외부로부터의 무력 공격을 제외하고는 그를 원조할 의무를 지는 것이 아니다.
또 이 조약의 어떤 경우도 대한민국의 행정적 관리하에 합법적으로 존치하기로 된 것과 미합중국에 의해 결정된 영역에 대한 무력 공격의 경우를 제외하고는 미합중국이 대한민국에 대하여 원조를 제공할 의무를 지우는 것으로 해석되어서는 안 된다.
국가법령정보센터

4. 의의

우리의 후손들이 앞으로 여러 세대에 걸쳐 이 조약으로 인해 많은 혜택을 받게 될 것이며, 이 조약은 앞으로 우리를 번영케 할 것입니다.
이승만 대통령이 1953년 8월 8일 조약 최종안이 서울에서 가조인된 후 한 발언.
현대에도 한미상호방위조약은 한국 역사상 가장 성공한 조약으로 평가받는다. 한미상호방위조약은 한국뿐만 아니라 동북아 지역의 평화안정에 큰 기여를 하고 있다. 우선 북한은 휴전 이후 다시는 남한 침공을 시도하지 않았다. 즉 조약의 가장 큰 목적인 '전쟁 방지'를 이뤄냈다. 무엇보다, 전쟁을 겪은 한국은 산업을 유지하기 위해 타국에서 투자를 받아 나라를 키워야 했는데, 전쟁 당시 멸망 직전까지 갔고 위태롭던 한국은 언제 큰 일이 터질지 모르는 휴전국이라는 막대한 리스크 탓에 세계 각국들의 투자나 지원을 받기가 어려웠다. 그러나 주한미군이 있다는 사실은 곧 미국이 한국이라는 국가에 대해 연대보증을 서준 것이라고 인식되었고 대외 신용도나 리스크 평가에 엄청난 이득을 가져다주었다.

거기다 국방력에 쏠릴 예산 및 역량을 미군과 같이 부담하는 효과를 통해 한국은 경제개발에 그만큼 힘을 집중할 수 있게 되었다. 즉, 한강의 기적을 가능케 하여 이후 북한과의 체제경쟁에서 승리를 하게 만든 보이지 않는 일등공신이라고 볼 수 있다.[14] 세계의 다른 나라들과 비교했을 때, 한국은 안보적 위기가 높은 국가들에 속함에도 불구하고 GDP 대비 국방비 지출은 3% 미만으로[15] 세계 평균과 그리 차이나지 않으며, 경제적으로 매년 수백억 달러에 이르는 예산절감 효과를 내고 있다. 국방비는 국가의 안전을 보장하기 위해 당연히 투사되어야만 하는 비용이지만, 투여된 돈이 상환되지 않는 소위 말해 '죽은 돈'이다. 돈은 돌고 돈다는 말이 있듯이, 국가가 집행하는 SOC나 복지비 등은 장기적으로 그 비용에 대한 수혜자로 하여금 사회로 환원됨이 기대되지만, 국방비는 '군수 장비 수출'이라는 흔치 않은 케이스를 제외하고 다시 사회로 환원되는 구조가 아닌, 말 그대로 들어가는데로 고여있게되고, 썩어버리게 되는 돈이라는 것이다. 대부분의 국방비는 고정적으로 꾸준하게 들어가는 비용이기 때문에 경제 발전에서 국방비가 얼마나 투사가 되어야만 하는가에 따라 예산의 분배와 가중치이 달라지게 되는 것이다. 또한 항시 전쟁 재발의 위험이 존재하는 한반도에 '미국이 전쟁을 막아준다'라는 안정감을 제공하여 해외 투자자금의 안정적 유치에 크게 기여해 왔다.

미국 입장에서는 초기에는 극동의 일개 소국의 지도자에 불과한 이승만의 승부수에 심히 불쾌함을 내비치면서 마지못해 허락해 준 것이었으나 시간이 흐르자 한국이 최빈국에서 선진국으로 도약하는 엄청난 성공을 거두면서 이를 "우리 노선에 참여한 나라는 성공할 수 있다" 라는 모범 사례로서 톡톡히 선전에 써먹을 수 있게 되었다.[16] 또한 이 조약은 동북아에서 미국의 영향력을 일본에서 한반도까지 확대하는 데에도 큰 도움이 되었는데, 이는 중국이 G2로 부상한 2010년대에 들어 더욱 큰 도움이 되고 있다. 일례로 서해에 항공모함을 파견해 한미합동훈련을 할 때마다 중국과 북한의 속은 타들어가지만, 수십년간 맺어온 돈독한 한미관계 + 조약에 명시된 권리[17]라는 명분이 있어 함부로 항의하기 힘든 상황인 것이다. 미국의 지원으로 키운 일본, 한국, 대만의 대공산권 포위망은 미국의 동북아 외교의 큰 성공사례다. 미국은 한미동맹 당시엔 내켜하지 않았으나 한국이 선진 강국이 된 이후로는 태도를 180도 바꾸어 성공 사례로서 계속 언급하고 있다.[18] 그 후에 한국을 모범 사례로 들며 중동에 개입하던 당시 중동 국가에도 민주주의를 수출해보려 했으나 미국의 자신감은 이후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서 크게 손해를 보면서 꺼지게 된다. 비록 한국에서 처음부터 민주주의가 잘 자리잡았던 건 아니지만 어쨌든 한국, 일본, 대만 모두 민족주의와 냉전체제를 바탕으로 강력한 단일 민주정부가 구성된 반면 중동은 민족이나 이념보다 종파가 우선이라 세속적인 정체인 민주정으로 국민들을 통합하기 어려웠다.[19][20]

2017년, 24년 만에 대한민국 국회에서 연설한 미국 대통령인 도널드 트럼프 역시 반세기 넘게 이어온 혈맹관계와 자유진영의 일원으로서 성장한 한국의 발전 사례를 강조했다. (트럼프 대통령 대한민국 국회 연설 - 풀영상)

물론 역으로 북한 입장에서는 '적화통일을 완전봉쇄, 좌절당하고 어렵게 만드는 만악의 근원'이라 볼 수 있다. 휴전 당시 그리고 지금까지도 명실상부한 세계 최강국의 군사적 보호를 담보하여 북한 수뇌부의 침략 의지를 무력화시켰다. 그래서 북한 정권이 빼놓지 않고 외치는 요구사항 중에 '한미상호방위조약의 폐기'가 있는 것이다. 예 1234

조약의 내용상 '상호' 방위조약이므로 한국이 침략을 당했을 때 미국이 도와주는 것뿐 아니라 미국이 침략 받았을 때 한국이 도와주는 것도 포함되긴 한다. 일단 조문상 '태평양 지역'으로 활동범위가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유럽 지역이나 대서양 지역에서의 사태에는 자동참전의 의무가 없다. 가령 러시아군이 유럽 지역을 침공해서 NATO미군이 방어전을 치러야 할 때, 한국군이 자동으로 유럽 지역에 파병해야 할 의무는 없다는 뜻이다. 조문상 '태평양 지역'으로 활동범위가 한정되어 있기는 하나 일본 내 미군기지, 미국령 괌이나 하와이 등이 해당되며 사실 조문에 해당되지 않더라도 전통적 한미관계를 고려하면 한국이 자발적으로 미국을 도와준다는 추측을 할 수는 있다. 다만 태평양 지역이 아니더라도 미국이 총력전 단위로 침략받을 사태가 될 정도면 이미 한국도 휩쓸렸을 전쟁일 제3차 세계대전급일 가능성이 크므로 사실상 이 조약의 일방적인 수혜자는 가시적으로 유형의 군사혜택을 받고 있는 한국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때문에 미국은 어떻게든 조약의 상호방위에 대한 한국의 기여도를 높이려고 미국의 해외작전도 방위조약에 들어간다는 주장을 해 한국의 지원을 요구하고는 한다. 베트남 전쟁 때 주한미군의 재배치 및 한국군 파병 문제를 두고 갈등을 빚은 것도 이와 조금 연관된다. 자세한 내용은 베트남 전쟁/한국군 문서 참조.

그리고 제4조의 내용에 의거해서 미군이 한국에 주둔하는 반면, 한국군 병력이 미국 영토에 배치될 권리와 의무의 근거는 일단 조문 상으로는 명시되지 않는다.

다만 미국의 전쟁선포권은 의회에 있으므로 실제 전쟁이 일어났다고 하더라도 미국 의회에서 거부한다면 미국이 해당 조약을 무시할 수 있다.[출처1][22] 다만 미 의회는 지금까지 정부의 요청이 심각하게 부당하지 않으면 어지간해서는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었으며, 또한 한국이 미국을 배신하거나 남베트남이나 아프가니스탄 이슬람 공화국 수준으로 답이 없는 게 아니라는 전제하에 한국이 침략당했는데 파병을 거부하면 이후 미국의 동맹국들이 신뢰를 저버린 미국을 어떻게 볼지는 뻔한 이야기라서[23] 미국이 정말 막장까지 치닫지 않는 한 가능성은 낮다.

4.1. 한국의 국방 전략에 끼치는 영향

한미상호방위조약은 한미군사동맹의 가장 핵심이다. 그리고 국방개혁 2020에서 가장 최우선 과제로 삼는 것들은 이런 맥락을 전제로 이해해야 한다.

한국이 인구 5천만에[26] 작은 국토를 가졌지만 전체적인 군사력 면에서는 세계 5위[27]에 해당하는 기염을 토하기도 하는데 #, 이번 국방개혁은 앞으로 국제정세가 어떻게 변하든지 국가의 안보는 스스로 지킬수 있을 정도로 성장하겠다는 데 큰 의의가 있다.

또한 이를 오늘날 한미연합사령부의 전시작전권 전환과 연관해서 생각하면 의외로 쉽게 답이 나온다. 만약 중국(+북한) vs 미국(+일본, 한국) 구도의 전쟁이 발발한다면 규모가 국지전이건, 전면전이건 간에 한반도에서 발생할 가능성이 가장 높다는 것은 모두가 아는 사실이다. 혹여 미국이나 중국의 영토에서 전쟁이 벌어지고, 양국의 영토에 직접적인 피해가 간다면 이는 핵전쟁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에는 남오세티야 전쟁이나 6.25 전쟁과 같은 대리전의 양상이 재현될 것이며, 이는 즉 한반도가 다시 초토화될 수도 있다는 것을 뜻한다.

물론 대한민국 국군에 대한 통수권대한민국 헌법에 의거하여 대한민국 대통령이 가지게 되지만, 전시작전권이 미국에 있는 이상 위와 같은 분쟁이 발생하였을 때 자동적으로 한국이 끌려들어갈 수밖에 없다. 다만 미중 양국은 쿠바 미사일 위기 때와 마찬가지로 확전을 원하지 않을 것이므로, 적당한 선에서 전쟁을 마무리하고 협정을 통해 북한의 영토를 분할하려는 시도를 할 가능성이 가장 높다.[28] 북한분할 문서를 참고할 것.

2020년 9월 17일, 미국의 마크 에스퍼 국방부 장관이 중국을 견제하는 Quad에 한국의 동참을 요구했는데 # 한국 정부는 이에 대해 고심중이다. 중국과 해상 국경을 맞대고 있으며, 미국의 영향국가 중 가장 중국의 수도와 가깝고, 실질적인 군사적 위협을 온몸으로 받고 있는 한국 입장에서는 이러한 집단 안보체제에 들어간 이후의 일을 생각했을 때 섣불리 행동할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와 비슷한 상황의 국가로는 유럽에서 독일, 폴란드가 있는데, 이들 역시 러시아와 매우 가까워 독일과 폴란드 정부는 이런 일에 다소 신중하고 민감하다.

중국이나 러시아는 미국이 특정 신설 안보기구에 영국, 일본, 호주를 참여시키는 것은 싫어도 넘어가주는 경향이 강하나, 한국, 독일, 폴란드를 참여시키는 것에는 민감함을 떠나 실제 대응이나 행동을 보여주는 편인데, 삼국은 중국이나 러시아와 거리가 멀지 않은 육지국가인데다 군사력의 기본인 보병들이 바탕인 육군력이 주력이어서 위협적이다. 이들의 무장은 중러에게는 모스크바 혹은 베이징 입장에서 거리상 체감이 확고하게 다르기 때문이다. 미국이 섬나라이며 거리가 좀 있는 영국이나 일본에 무기를 제공하는 것보다 한국이나 폴란드에 무기를 제공하는 것에 중러 양국은 훨씬 민감하다.

5. 논쟁

5.1. 미일동맹과의 관계

문재인 대통령: 미국은 한국의 동맹국가입니다. 일본은 한국의 동맹국가가 아닙니다. (트럼프, 아베와의 정상 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 이해합니다.

미국은 한미상호방위조약과 미일안보조약을 분리할 수 없는 것으로 보고 한미상호방위조약과 미일안보조약이 한국-일본-미국 삼각동맹으로 기능하기를 바라고 있다. 그런데 미국 입장에서 미국의 국익만 가지고 판단하자면, 극단적으로 애치슨 라인처럼 한미동맹을 버리고 미일동맹만 맺을 수는 있어도, 미국이 일본을 버리고 한미동맹만 남기는 것은 불가능하다. 닉슨이 말하는 미 국무부의 국익분류법에 따르면, 일본은 반드시 지켜야 하는 '사활적 동맹'으로 분류되고, 한국의 안전보장은 미국의 사활적 이해관계로 분류된 일본의 안전보장에 직결되므로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주한미군주일미군을 지키기 위해 있다'는 말이 나온 것이다.

이런 식으로 보면 한미동맹은 미일동맹에 종속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마냥 나쁜 이야기는 아닌데, 일본은 미국이 한국을 버릴 수 없는 안전장치 역할을 톡톡히 해 주기 때문이다. 남베트남처럼 '버리면 그만'이라며 쉽게 손절하기가 어렵다는 얘기다. 한국이 무너질 경우 동해를 경계로 일본이 직접 공산주의와 맞닥뜨리게 되기 때문에 어지간하면 미국은 한국을 버릴 수 없다. 간혹 한국도 남베트남처럼 미국이 손절하고 발빼면 어쩌냐며 걱정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일본이 위협받기 때문에 쉽지 않은 것이다.[29]

미국이 한국과 일본 중 양자택일해야 한다면 일본을 선택할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이는 일본이 한국보다 큰 국가 경제력을 가지고 있으며, 지정학적으로 섬나라이므로 방어하기도 쉬워 하와이, 괌과 함께 미국의 태평양 패권을 지키기 위한 핵심 안보지역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미국 입장에서 한국과 일본 중 양자택일해야 할 상황이 흔하지 않다. 어차피 부정적인 것들밖에 가정할 수가 없는 전시상황[30][31] 아니면 한국이 일본에 먼저 무력도발이나 전쟁을 거는 상황이 그 상황일텐데 그런 일은 이승만 정부평화선 이후로는 없었다. 평화선 선포 이후에 한미상호방위조약이 체결되었으므로 사실상 한미상호방위조약 체결 이후로는 전혀 없는 것이다. 미국이 필연적으로 양자택일을 해야 하면 일본을 선택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힘주어 말하는 자들은 갓끈전술 이론에 입각해 반일(반일 감정, 활동, 정부정책 등 모두) 전체를 한미동맹의 위협요소로 간주하는 경향이 있는데, 한국이 일본에 무력도발이나 전쟁을 저지르지 않는 한 미국에게 한국과의 동맹이 파기당하리라는 보장이 없다.

한미상호방위조약은 일본도 찬성하고 지지하는 것이다. 한미상호방위조약이 기본적으로는 일본의 안보 구상의 핵심적 요소에도 있기 때문이다. 다만 일부 우익은 이 조약으로 인해 일본이 미국과 함께 한국을 압박할 수 없다는 점에서는 다소 부정적으로 보는 경향이 있고,[32] 극우 쪽에서는 아예 한미일 삼각동맹 그만하고 미일동맹 합시다를 내비친다.

'미국이 함부로 동맹을 끊을 수 있는지'의 여부로써 종속성을 따지자면 위와 같은 사항 때문에 한국이 역외 동맹 취급을 받는 것은 아니기에 한미동맹도 미국이 함부로 끊어버리기 힘들다. 전세계에서 북한을 제외하고 중국의 수도인 베이징과 가장 가까운 나라는 한국이며, 과거와 달리 현재 한국의 군사력은 미국이 결코 버릴 수 없을 정도의 핵심 전력이 되었다. 이러한 특징은 극한의 실리를 추구할 때 큰 이익을 얻을 수 있는 장점이 된다. 과거 중국은 한반도를 대륙의 심장을 찌르는 단검이라 평하였으며, 이는 중국 입장에서도 결코 쉽게 넘길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33]

쉽게 말해서 미국이 미일동맹을 중시한다는 이유로 한미동맹을 끊어버리기는 쉽지 않으며, 그 이유는 미국에게 한미동맹의 이득도 거대하기 때문이다. 이는 미일안보조약과 한미상호방위조약이 기능성 측면에서는 개별운전인 상태에서, 미일안보조약은 일본이 미국의 일방적인 보호를 받는데 그 반대급부로 일본에는 국방군이 없는 반면에 한미상호방위조약은 한국의 군대 보유에 제약이 없이-다시 말해 한국이 제대로 된 국방군을 가지고 있는 상태로 한미 양국이 서로를 지키는 양상이기에, 동맹의 계약상 한미상호방위조약이 미일안전보장조약보다 앞선다고 볼 수 있는 것으로도 증명할 수 있다.

일각에서는 GSOMIA 때문에 한미동맹이 미일동맹에 진짜로 종속되게 되었다고 잘못 알려졌는데, 양국의 정보 공유에 대한 지침, 쉽게 말해서 공동인증서 같은 개념이고, 일본이 정보를 요구했을 때 한국이 거부할 수도 있기에[34] 말 그대로 잘못 알려진 것이다.

동맹이 작동하는 시스템적인 측면에서 - 다시 말해 "일본이 한국을 침략했을 때 한미동맹이 자의적으로 절전 모드에 돌입할 것이냐(...)"를 따지자면 그렇지가 않으므로,[35] 그와 같은 관점에서 보면 "한미동맹이 미일동맹에 종속되지 않았다"고 볼 수 있는데[36], 이 부분은 한미동맹의 미국 입장에서의 중요성과 무관하다고 볼 수 없다.

두 동맹조약의 규정을 살펴보면[37] 미일안보조약에서 한국에게 직접적으로 불이익으로 작용할 수 있는 조항은 "일본국의 시정 지대에서 미일 양국이 외침에 공동으로 대처한다"는-한국이 일본을 침략했을 때 적용될 수 있는 대목 뿐이고[38], 한미상호방위조약에는 적국의 침략에 서로 공조해서 대응하는 내용과 주한미군을 배치하는 내용만 있지, 적국에서 미국의 동맹국가를 열외시킨다느니 하는 내용은 없다. 더욱이 이 두 상호방위조약에는 애꿎은 타국에게 선빵 날리는 것을 금하는 내용이 있는데, 즉 타국에게 선빵 날리는 것은 동맹조약 위반인 것이다. 즉 미국은 일본이 한국을 침략(미일동맹 위반에 해당)하면 한미동맹에 따라 한국 편에 서고, 한국이 일본을 침략(한미동맹 위반에 해당)하면 미일동맹에 따라 일본 편에 설 것이 예측되지만, 일본이 한국을 침략했을 때 미일동맹에 따라 일본 편에 서리라고 예측할 수는 없다.[39]

한반도는 해양세력과 대륙세력의 교두보 역할을 하는 지정학적 위치를 가지고 있다. 대륙에서 해양으로 진출하거나, 역으로 해양에서 대륙으로 진출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거쳐가야 하는 지점이라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봐도 원나라는 고려를 통해 일본 원정을 감행했고, 일제는 대륙 침탈에 앞서 한반도를 식민지로 삼았다. 이처럼 교두보라는 위치는 다른 세력의 공격을 당하기도 쉽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접근성이 좋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만약 남한이 중국이나 러시아 같은 대륙세력에 넘어간다면, 일본은 그 대륙 세력이 태평양으로 진출하는 것을 저지하는 최후의 관문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미국 같은 해양세력의 관점에서 보면 대륙으로 향한 발판을 잃어버렸으니 사실상 대륙에 대한 진출을 포기하고 방어전에만 집중해야 되는 상황이 될 것이다. 즉, 동아시아의 지정학적 구도를 구성하는 6개 국가(한국, 일본, 미국 vs 북한, 중국, 러시아)에서 한국이 미국과 일본 쪽에 서게 되면 잘 해도 균형을 이루는 것에 그치지만, 만약 어떠한 이유로 수틀린 한국이 중국이나 러시아 쪽에 서게 되면 그 순간 균형이 완전히 무너져 일방적 우세로 넘어가버린다.

이런 지정학적인 요소를 고려하지 않더라도, 미국에게 있어서 한국은 북핵문제 해결을 위해 필요한 카드이자 직접적인 당사자이기 때문에 단지 '일본에 대한 위협' 문제가 아니더라도 미국의 국익과 직결되어 있다.

사실 “한미동맹은 미일동맹에 종속되었다”라는 어젠다를 주로 꺼내는 부류는 좌파 민족주의 진영에 있는데, 우파 쪽에서는 “종속”이라는 말을 꺼내는 걸 하지 않거나 자제하면서, 그래도 한미동맹과 미일동맹이 연결되었다는, 다시 말해 일본을 한국의 동맹국가라고 간주하는 어젠다를 써먹는다. 즉 좌파 쪽에서는 “한미동맹이 미일동맹에 종속되었다”라는 어젠다를 자주 쓰고 우파 쪽에서는 “한미동맹이 미일동맹과 일심동체라는” 어젠다를 자주 쓴다는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동맹이 어찌 작동하는지에 대한 시스템적인 측면에서 보면 사실이 아니다.

미국 입장에서 미국의 국익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한국과 일본이 둘 다 미국의 동맹국가이기에 한미동맹과 미일동맹이 일심동체라고 볼 수도 있다. 또한 주일미군과 주한미군이 둘 다 미국의 인도태평양 사령부 예하에 있으므로 미국 관점에서 보면 한미동맹과 미일동맹이 일심동체라는 말이 사실 완벽하게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한국의 입장에서 보면 대립할 일 없이 곧잘 발맞춰 가는 미국에 비해 일본은 영토 분쟁과 과거사 문제 등으로 갈등을 빚고 있다. 한미동맹/미일동맹과 달리 한일간에는 동맹의 계약이 없으므로 이와 같은 시스템적인 관점에서는 한미동맹과 미일동맹이 일심동체가 아니라고 볼 수 있다.

그렇다고 한국과 일본이 동맹관계가 아니라고 해서 한국에게 심각한 불이익이 주어지고 있는 것도 아니다. 한국은 한미상호방위조약 체결 이후로 일본에게 그 어떤 무력도발 등 위협을 가하지 않았으므로 미국에게 있어 “일본과의 동맹을 유지하는 것”과 “한국과의 동맹을 유지하는 것”은 모순이 아니다.

5.2. 불평등 조약 논란

5.2.1. 문제 제기

한미동맹, 일본과 필리핀의 경우와 어떻게 다른가

2021년 1월 25일, 고승우 언론사회학 박사는 미디어오늘에 기고한 칼럼에서 한미상호방위조약은 미국이 슈퍼 갑인 불평등 조약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미일안전보장조약과 미국-필리핀 상호방위조약을 비교하며 이를 비판했는데, 먼저 그가 지적한 것은 미국의 군사적 권리가 보장되면서 조약의 시한이 없다는 점이다. 특히 제4조는 미국의 이익만 일방적으로 극대화시킨 것이라고 비판했다.

또한 그는 제6조가 '어느 한 당사국이 상대 당사국에게 1년 전에 미리 폐기 통고하기 이전까지 무기한 유효하다'는 내용으로 미국의 우월적 지위를 항구적으로 보장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반면 미국이 필리핀, 일본과 맺은 군사동맹서는 미국의 권리를 인정한다는 조항은 없으며 조약의 시한을 10년으로 하고 조약의 시효가 만료되는 시점에 미군주둔의 필요성 여부를 재검토하게 되어 있다고 밝혔고, 이에 따라 상황 변화에 따라 필리핀, 일본이 주도권을 잡고 조약개정을 논의할 수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즉, 미국과 필리핀, 일본의 군사동맹에서 미군의 이들 국가의 관계는 모두 유엔 회원국답게 상호 대등한 주권국가의 위상을 서로 유지한다는 공통점이 있는데, 한미상호방위조약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결국 그는 한미상호방위조약과 필리핀, 일본의 관련 군사동맹을 비교할 때 한미상호방위조약은 한미간의 군사적 주종관계를 고착화시키는 것으로 국가간 불평등 조약이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고 비판했다. 한중 경제관계가 한미간의 그것의 두 배 가까이 되었고 한반도 비핵화 문제 해결 방식도 매우 복잡해지고 있어 한국의 자주적 역할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면서, 미국의 일방적 동북아 및 한반도 정책으로 한반도가 자칫 강대국의 패권주의적 대립 속에 희생양이 될 위험성이 고조되고 있다는 점도 유의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가 정리한 한미상호방위조약의 문제점은 다음과 같다.

5.2.2. 반론

그러나 실체는 좀 다르다. 좀 더 진지하게 한미상호방위조약을 살펴보면 꼭 미국이 절대적인 갑의 위치에 있는 것도 아니고, 오히려 한국에게 더 유리하다고 볼 수 있다. 고승우 박사의 칼럼이 미일안보조약/미국-필리핀 상호방위조약과 한미상호방위조약을 비교하는 식으로 전개되었으므로 여기서도 미일안보조약/미국-필리핀 상호방위조약과 비교해 보겠다.

다시 말해서 한미상호방위조약이라고 일본/필리핀과 미국의 조약보다 특출하게 뒤떨어진다고 볼 수가 없다.

헌데 미군 주둔에 대한 4조만 빼놓고 나머지는 한국과 미국을 동등하게 당사국으로 간주한 규정뿐이고, 근간 자체가 한국과 미국이 서로를 지키는 내용이기 때문에, 오히려 한국을 미국과 동등하다고 관계설정한 평등조약이라고 볼 수 있다. 이 조약을 맺을 당시의 양국의 국력 차이를 고려해 봤을 때 초강대국과 약소국을 상호 동등하게 설정한 것이기 때문에 미국 입장에서 오히려 한국을 치켜세우는 조약이었다. 또한 북한의 핵도발을 억제하기 위해 그에 필요한 전략무기와 탄약비축, 30~40만 명에 달하는 미군사력, 공군력, 해군력의 배치와 그 발진기지 등이 필요한데 한미상호방위조약에 의해 이런 것들이 보장된다.

실제로 미국 정계(예: 트루먼 전 대통령)에서 한미상호방위조약을 밀어붙인 이승만과 그 조약을 받아들인 아이젠하워에 대한 비판을 나타낸 이유가 바로 한미상호방위조약상 - 여러모로 미국보다 체급이 한참은 딸리는 당시의 한국이 미국과 서로가 서로를 지키는 동등한 관계여서 그랬다고 한다. 이는 앞서 언급했듯이 미국의 국익상 일본이 당연 앞서는 것과도 무관치 않은데, 미국의 모 관료가 이승만의 집요한 요구에 대해 한국은 일본권이라는 말을 내뱉은 것은 적어도 당시에는 미국은 일본에 아시아 관리를 일임할 생각이었다는 뜻으로, 결과적으로 한미를 동등 협력 파트너십으로 관계설정한 한미상호방위조약 때문으로 해서 그 동선이 꼬였다(...).

5.3. 조약 체결에서 이승만의 역할

파일:John Poster Dulles Wrestling with Syngman Rhee.png
미 국무장관 덜레스이승만휴전 협상을 앞두고 서로 한치도 양보할 수 없는 치열한 대치 속에서 고뇌하는 표정을 짓고 있다.

오늘날 미국의 국익에서 한반도가 중요하다는 것을 부정하는 사람은 흔하지 않다. 그러나 한미상호방위조약 체결 당시에도 미국이 그렇게 생각했는지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이승만 대통령이 미국에 상호방위조약 체결을 강력하게 주장한 것은 사실이다. 여기에 대해 '미국은 어차피 당시에 한반도를 중요하게 생각했으니까 상호방위조약을 체결했다'라고 평가하면 조약 체결에 있어 이승만의 역할은 미미했다고 할 수 있고, '미국은 당시에 한반도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는데 이승만의 노력으로 상호방위조약을 체결했다'라고 평가하면 이승만의 역할이 컸다고 할 수 있다.

당시 (1945-1950) 미국이 한반도에 무리하게 주둔하는 건 무리였고, 전략적으로 한반도의 중요성을 간과하고 있던 점도 사실이다. 이하의 내용은 냉전 초기, 즉 대략 애치슨 라인이 제기되기 전후의 미국이 한반도의 중요성을 어떻게 판단한 것인지를 서술한 것으로, 수십년째 이 조약으로 한미일 전체가-이 조약이 없었으면 누리지 못했을 안보적 이익을 누리고 있는 것으로 증명할 수 있듯이 장기적인 관점에서는 틀린 판단이었다.

미국에서 냉전 당시 전면전을 대비함에 있어 한반도의 중요성은 그렇게 크지 않았다. M48 전차로 베이징을 밀어보고 싶던 말던 일단 조약체결이 거론되던 시점에는 한반도 분단이 기정사실화 되어 있던 시점이었다. 전쟁수행시 미국이 기갑 전력으로 38선에 돌파구를 뚫어도 적군 보병이 도보로 금방 다시 몰려와서 메워버리는 수준이었다. 냉전 당시 서유럽 평원에서도 기동을 위해 적어도 100km 이상은 보장되었는데 이보다도 좁은 한반도에서 전면전을 벌이게 되면 갈려나가는건 보병이며, 이런 최악의 상황에서 중국 육군과 북한군, 그리고 북중소의 방공군 + 공군을 상대로 참호전을 이어나가는 건 미국 입장에서도 정말 피하고 싶은 전투다.

심지어 6.25 전쟁 발발 직전에는 한국에서 전쟁 발발 가능성이 높음을 미국도 인지는 하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방부는 남한에 미군 지상군을 주둔시키는 선택지를 극력 반대했다. 만약 중국과 소련이 함께 개입하는 수준의 전면전 발생시 3차세계대전이 일어나는 거다. 대륙으로의 진격은 커녕 미군의 생존 자체가 위태로워지는 상황이다. 합동참모본부에서는 한반도 정세를 논의할때 3차대전 발발시 한반도가 제2의 필리핀 바탄반도[42]가 될 것이라는 경고까지 했다.

따라서 "미국의 입장에서 한반도가 중요한 이유는 한반도에 영향력을 행사할 때 중국의 정치/경제의 중심지역을 가장 빠르게 육로로 공격할 수 있기 때문이다."같은 대명제가 성립하지 않는다. 한반도는 애초에 소련 극동군구 방공군의 작전반경내라 오히려 한반도에서 애먼 병력만 축내느니 중국부터 처리해 나가고 소련 극동군구를 알래스카 쪽에서 묶어둠 으로서 소련이 서유럽에만 병력을 집중하지 못하고 방대한 소-중 국경에 병력과 정보자산을 분산하여 배치하는게 미국으로서는 가장 좋은 시나리오이기 때문이다.

이승만이 냉전 초기부터 역설한 한반도 교두보론은 진주만 폭격 전부터인 1940년대부터 미국으로 하여금 상호방위조약을 체결하도록 강요하기 위해, 일본의 야욕 그리고 미국에게 있어 한반도의 중요성을 꾸준히 역설해온 이론이다. 미국의 군사전문가들은 상술한 이유로 이승만이 내세운 한반도 교두보론에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으며,[43] 한미상호방위조약은 실제 방위가 필요한 서유럽과 패전후 미국의 영향력 고정을 위한 일본의 경우와는 달리 휴전으로 인해 지속될 불안정한 정세와 한국이 지출할 국방에 대한 천문학적 예산 낭비에 대해 차관공급과 병행한 외교적인 달래기였기 때문에 미국의 일방적인 파기가 가능한 조항이 존재하는 등 여러가지 제약이 많이 걸려있다.

이승만이 1948년 8월에 미국에게 상호방위조약의 체결 가능성을 물었을 때 미대사였던 무초는 "미국은 토머스 제퍼슨 대통령 이래 어느 국가와도 상호방위조약을 체결한 일이 없다"고 답하며 거절했다.[44] 이승만은 1949년 6월에 주한미군이 철수한 후에도 상호방위조약을 요청했지만 미국은 '상호방위원조협정', '주한미군사고문단설치협정'같은 큰 실익 없는 협정을 맺어주는게 다였다.

그러나 이승만은 미국영국 및 영연방, 그리고 UN 참전국 전체를 상대로 보란듯이 반공포로 석방 사건같은 초강수로 미국과 제 1세계로 하여금 일본이 아닌 한국이야말로 진정한 제 1세계의 최전방임을 각인시켜 지금껏 지속되어온 한미동맹의 주춧돌을 때려박아 넣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며, 이는 이승만의 영향이 컸음을 부정할 수 없다는 결론으로 이어진다.

미국 입장에서 한국을 최빈국에서 건실한 국가로 만들어 중국에 외교적인 압력을 가하거나 중국을 공격할 때 지원해줄 수 있게 하기 위해 들여야 할 비용은 애치슨 라인만을 방어하는 비용보다 천문학적으로 높았다. 한국은 국토가 작고 산악지형이 국토의 태반인 반면, 일본은 미국과 전쟁을 해볼정도의 해군력을 지닐 기술과 공업능력이 존재했었으며 한국에 군수물자를 수출하며 재건의 발판을 밟아가고 있었다. 미국이 한국보다 일본에 투자하고 싶어하는건 상식적인 판단이었다. 이승만이 주한미군과 상호방위조약을 못박음으로 산업경제의 패러다임을 변경하지 않았다면, 한국에게 결과는 처참했을 것이다.

그러나 유사시에 중국과 소련에게 역공을 가하려면 '한반도 장악이 필수다'는 점은 사실이다. 분명히 미군 지휘부가 간과하고 있거나 소극적으로 생각하고 있던 부분이다. 남한이 함락당하는걸 원치 않고 일본이 위협받는게 싫어서 6.25 전쟁에 참전 해놓고, 그 이후에 한반도를 미군이 없는 완충지대로만 남겼다면, 한반도는 수시로 전쟁 위협이 시달려야 했거나, 전쟁에 돌입해야 했을 것이다. 세상에 이상적인 완충지대라는 것은 없기 때문이다.[45]

추가적으로 6.25 전쟁 당시 미국 국내 여론은 매우 안좋았다. 해리 S. 트루먼 대통령은 1950년 6월 30일 미군 지상군을 한국에 파병했다. 당시 미국인의 78%는 트루먼의 군사 지원 결정에 찬성했고 15%는 반대했다. 이듬해에는 대중의 지지가 줄어들었고 전쟁의 사건에 따라 변동했다. 미국의 외교사를 봐도 알겠지만, 동맹국들의 지원에 대해 여론/국내정치에 따라 급변하는 경향이 심했다. 아이젠하워가 1953년 대통령이 될 당시 주요공약이 '한국전쟁 중단'이었다. 그당시 미국 입장에서 어떤 모양이든 휴전이 절박했고, 이를 위해서 주한미군 철수도 생각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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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더해 미국 국민은 대체로 6.25 전쟁을 3차세계대전의 시작으로 보고 있었다. 한국이 아니라 미국의 존립을 위해서 휴전이 최대한 빨리 와야하는 거였다. 미국 입장에서 휴전이 얼마나 절박한지 보여주는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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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젠하워는 구체적으로 한미상호방위조약을 체결하고 싶어하지 않았다. 이승만 대통령이 상호방위조약을 이용해 미국을 또다른 전쟁으로 끌고 가려는 꼼수가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추가적으로 한국의 불안정한 국내정치상황은 동맹 파트너로 큰 하자였다. 아이젠하워는 또한 상호방위조약이 한반도에 대한 기존의 유엔 노력을 약화시키고 유엔사령부의 권한을 약화시킬 수 있다고 우려했다.[46]

이러한 미국의 마음을 돌린건 크게 두가지였다. 첫째, 이승만 대통령은 줄곧 아시아 국가들의 반공연맹을 주창해왔는데, 아이젠하워는 이를 아시아판 나토로 변화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둘째로 이승만 대통령은 원래 휴전협정 서명일인 1953년 6월 18일 반공포로를 석방시켰다. 이에 미국은 한국이 다시는 휴전회담을 흔들지 않는 조건으로 상호방위조약에 동의했다.[47] 미국의 휴전에 대한 절박함을 역으로 이용한 결과다.

냉전, 그리고 냉전 이후에도 미국은 전쟁에서 승리했든 패배했든 군대를 철수하는 양상을 보여줬다. 군사파견은 운영비가 엄청나기 때문이다. 그리고 미군의 철수 후 동맹국들은 대체로 살아남지 못했다. 1961년 피그만 침공의 처참한 실패, 1975년 남베트남과 라오스의 몰락, 그리고 최근 이라크/아프간 철군 등에서 미국이 처음 군사지원을 하면서 만든 약속을 지키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을 보여준다.[48]

한반도는 일본의 최인접국이다. 최악의 경우 이러한 최인접국이 적화통일 된 뒤에 일본을 겨누고 있을 가능성도 있는데, 그랬다면 일본은 지금의 남한 못지 않은 안보위협이 시달려야 했음은 물론, 북한이 통일한 한반도 영해와 중국 영해, 그리고 소련의 영해까지 삼면으로 대치해야 했을 것이다. 즉, 애치슨 라인은 단기적인 가성비 측면에 좀 더 의미를 둔 것이고, 장기적인 군사적 측면에서는 미국, 일본, 한국 그 어느쪽에도 이렇다할 유리한 환경을 주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는 명백한 실책이자 실패한 수 라고 볼 수 있다. 이승만이 초강수를 둔 것이 한반도는 물론이고 일본에게도 이득이 된 점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다. 이미 수십년째 증명이 된 부분들이기 때문이다.

5.4. 방위 지역에 대한 해석 논란

제3조 각 당사국은 타 당사국의 행정 지배하에 있는 영토와 각 당사국이 타 당사국의 행정 지배하에 합법적으로 들어갔다고 인정하는 금후[49]의 영토에 있어서 타 당사국에 대한 태평양 지역에 있어서의 무력 공격을 자국의 평화와 안전을 위태롭게 하는 것이라 인정하고 공통한 위험에 대처하기 위하여 각자의 헌법상의 수속에 따라 행동할 것을 선언한다.
미국 영토에 대해서는 별 논란이 없지만 한국 영토에 대한 해석이 논란이 된다. 우선 MDL(군사분계선) 이남 지역에 대해서는 한국 영토라는 데 이견이 전혀 없지만 그 이북 지역에 대해서는 양측의 의견이 상당히 갈린다. 한국은 MDL 이북 지역에 대해서도 한국 영토라고 주장하지만 미국은 북한이라는 독립국가가 점유한 영토이므로 한국과는 별개의 지역이라는 입장을 밝히고 있으며, 같은 이유로 북한에 대한 미수교와는 별도로 북한 자체는 국가로 인정하고 있다.

이 때문에 실제 한반도에서 전쟁이 벌어질 경우 미국은 DMZ 이남 지역에 대한 방위 의무는 제대로 이행하겠지만 MDL을 넘어갈 경우 전시작전통제권을 근거로 한국군의 북진을 막거나[50] 아니면 한국군의 북진은 용인하되 미군은 직접적인 군사적 개입을 하지 않고 남한군만 북한군과 맞서게 할 가능성이 높다.[51]

다만 미국은 최근 중국과의 대결을 피할 수 없는 쪽으로 가면서 북한의 친중정권 수립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으며 따라서 한국 주도 하의 통일이 합리적인 해결책이라고 평가하기 시작하는 추세이다. 최근의 작계에서도 이런 점이 반영되어 미군 역시 북한에 개입하도록 되어 있는데 자세한 내용은 한국군 vs 북한군 문서 참고. 아울러 조약 제3조를 다시 읽어보면 "타 당사국의 행정 지배하에 합법적으로 들어갔다고 인정하는 금후의 영토"는 북한 지역을 염두에 두고 작성한 것이다.

5.5. 제6조의 해석

한미상호방위조약은 1953년 10월 1일 조인하였으나 즉각 발효되지 않았는데 미국측에서 제6조에 이 조약의 파기요건인 '두 나라 중 한 쪽이 통고하면 1년 후 효력이 상실 가능하다'를 명기하였고 여기에 한국 국회가 불만을 표시하면서 발효가 지연되었다. 이는 한국이든 미국이든 만약 상대방이 동맹으로서의 가치가 없다고 생각하면 일방적으로 조약을 폐기할 수 있다는 뜻이다. '통고하면'(notify) 1년 후 폐기의 조건이 구축된다. 조약체결 후 60년간 별 시끄러운 얘기 없이 지내왔기에 두 나라가 멸망하지 않는 이상 동맹이 영속하리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이 조약은 이 구절 때문에 안정성을 담보할 수 없다. 즉 끊고 싶어도 못 끊는 장치를 해 놓은 그런 상황이 절대 아니다. 어디까지나 양국의 의지가 이 조약을 유지시키는 근본적 힘이다.

다만 '통고하면'(notify) 상대방의 의견을 묻는 협의고 뭐고 없이 1년 후 자동 폐기라고 잘못 알려져 있는데, 원문을 보면 may terminate라고 되어 있다. 이는 문법적으로 '필요조건'인데, 간단히 말하면 1년이 되기 전에 폐기 의사가 거역될 수 있는, 즉 폐기를 하지 않고 그대로 유지되는 경우의 수가 존재한다. 다시 말하면, 통고한다고 해서 토사구팽마냥 무작정 동맹을 깨버릴 수는 없다는 거다.

다른 미국과의 안보조약과 비교하면, 미일안보조약은 '통고 시 1년 후 폐기'가 shall terminate로 '필요충분조건'이어서, 폐기되지 않고 그대로 유지되는 경우의 수가 존재하지 않는다. 즉 한미상호방위조약이나 미일안보조약이나 폐기 의사를 통고하지 않으면 절대 안전하다는 점에서는 동일하지만 미일안보조약과 달리 한미상호방위조약은 폐기 의사가 통고되고도 조약 유지가 되는 경우의 수가 존재한다.[52][53]

물론 한국은 이 파기조건 부분의 삭제를 요구했으나 미국은 끝내 들어주지 않았고 현시각까지 해당 문구는 유효하다. 이러한 취약성 때문에 과거 지미 카터 치세처럼 한국과 미국 사이에 갈등관계가 형성되었을 때 조약의 파기 가능성이 언급되었던 것이다.

한국의 정치인들 중 이 조약의 수정을 원하는 사람들이 존재하고 일부는 아예 폐기까지 주장하며, 미국측에서도 일부 싱크탱크들이나 2016년 대선 이슈인물로 떠오른 도널드 트럼프처럼 현 한미동맹 관련 조약 내용을 수정 또는 폐기해야 한다는 세력이 있기 때문에 이 조약은 어느 한쪽이 만약에 마음을 먹고 실행에 옮기게 되면 허무하게 실효될 수 있는 위태로운 상황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다만 파기조건 문구를 넣은 것은 미국의 외교정책의 기본 방향이 '영원한 적도, 영원한 아군도 없다.'이기 때문이다. 예외는 오직 5개의 눈이라고 불리는 영국,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의 4개국 밖에 없다. 이스라엘의 경우 다른 영연방권 4개국처럼 미국과 특별히 연결된 게 아니라 미국 유대인들의 지원과 대중동 정책의 첨병으로써의 가치 때문에 유지하는 거라 한국이나 일본과 극단적으로 다른 것도 아니다. 이는 일본이 맺은 신 미일안전보장조약이라 불리는《일본과 미국 간의 상호 협력 및 안전 보장 조약》의 제10조와 동일한 문구라서 한국만 해당되는 문제는 아니다. 만약 파기조건을 삭제하면 한국과 미국은 '영원한 동맹'이라는 뜻인데 미국의 방향과 정면 배치되기 때문에 한국의 요구를 관철시킬 수는 없었다. 협상 당시에도 미국은 '일본, 영국, 필리핀과의 조문에도 1년 기한 원칙이 똑같이 명시되어 있어 한국에만 특별대우를 할 수는 없다.'라는 논리로 한국의 요구를 거부했다.

5.6. 자동 개입에 대한 여부 논란

한미상호방위조약에는 자동개입에 관련되어 있는 문항이 없다. 미일관계에 근간이 되는 미일안전보장조약도 얼핏보면 한미관계보다 높지만. 사실은 자동개입이 아니다. 이 조약에 5조항인 "미일 양국은 일본의 영역 및 재일 미군기지의 어느 한 쪽에 대한 무력공격’이 있는 경우 자국의 헌법상의 규정 및 절차에 따라 공통의 위험에 대처하도록 행동할 것을 선언한다"고 명시되어 있다. 헌법상이란 미국 의회를 말하는건데, 즉, '미국 의회에 승인이 되어야만 개입이 가능'하다는 소리다. 한미상호조약 3조항인 이 문구도 헌법이라는 문구가 들어가있어서 미국 의회에서 승인 되어야 개입한다는 이야기다.

다른 나라들의 예시를 보면, 북대서양 조약기구 NATO는 1949년에 체결된 나토 협약 제5항에는 동맹국이 공격을 당하면 다른 동맹국에 대한 공격으로 간주해 즉각 개입한다고 명시되어있다. 북한과 중국의 근간되는 조중 우호 및 상호원조조약또한 2조항에 "지체 없이 기타 및 원조 제공"이라는 문구가 있어 자동개입이다.

미국 의회에서는 1973년에 제정된 "미국의 전쟁권한법(War Powers Act)"을 발효했는데, 이 법에 따라 미군의 해외 무력 행동은 ▲미 의회의 ‘전쟁 선언’ ▲미국 영토와 소유물, 미군에 가해진 국가 긴급상황으로 제한된다.

미국 대통령은 '무력 행동 개시 48시간 내에 이를 미 의회에 통보'해야 하며, 미 의회의 ‘무력 행동’ 승인이 없을 경우 '최대 90일 내에 미군을 해외 분쟁지역에서 철수'해야 한다. 한반도 무력 충돌 발생시, 미 대통령은 ‘긴급상황’ 판단에 따라 미 의회의 사전 승인 없이 무력을 사용할 수 있다. 그러나 미군의 해외 전쟁 수행은 어느 경우든 '90일을 넘어 지속되려면' 미 의회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2017년 10월 국회 국방위 국정감사에서 정경두 합참의장에게 무소속 이정현 의원이 “미군이 자동 개입하게 되어 있느냐”고 물었고, 이에 정 의장은 “자동 개입하게 되어 있다”고 답변했다. 그러자 자유한국당 백승주 의원(구미갑)도 “미군이 자동개입한다고 했는데, 그렇게 보느냐”고 질의했고, 정 의장은 “현재 한미 간에는…”이라며 자동개입이 가능하다는 식으로 답변했다. 그러자 백승주 의원은 “냉정하게 말하면 자동개입이 아니라 양국 국가가 가진 법 절차에 따라 한다”면서 “자동개입으로 해석할 수 없다는 것이 법학자들의 논리”라고 주장했다. 이후 정 의장은 추가로 발언기회를 얻어 “1953년 체결한 한미상호방위조약과 미국이 다른 국가와 체결한 조약 등에도 자동개입 조항은 없다”며 말을 바꿨다.기사

그러나 예외적으로 미군 병사나, 기지가 공격받았을 경우 미국 대통령은 즉시 전쟁을 시작할 수 있는데, 이른바 인계철선이다.#[54] 예를 들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크림반도 침공이 있고 나서, 작년 6월 북대서양 조약기구(NATO)군은 미국·캐나다·독일·영국군으로 구성된 NATO군 4개 대대를 러시아와 인접한 폴란드·리투아니아·라트비아·에스토니아에 배치했다. 러시아의 향후 침공 시, 이들 부대가 NATO군이 자동개입을 보장하는 인계철선으로 작용하는 것이다. 물론 이 역시 3개월 안에 의회의 승인을 받아야 하며 아프가니스탄과 시리아의 사례처럼 많은 미군이 희생을 치를지라도 이해가 맞지 않으면 일정 이상 개입은 불가하다.

5.7. '태평양 지역'에 대한 해석

조약체결 당시 한국은 북한을 침략국으로 설정하였으나 조약 본문에는 북한을 특정하지 않고 태평양 지역으로 대응 범위를 추상적으로 잡아 놓았다. 이는 미국의 입장에서 한미동맹을 통해 북한 뒤에 버티고 있던 소련 및 중국 등 공산주의 세력을 막아내겠다는 의도가 있는 것이다. 대다수의 국민 그리고 정부 고위급 인사들 중 상당수가 한미동맹의 목적을 북한을 막기 위한 것만으로 생각하고 있는데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또한 맞서 싸울 특정 이념을 명시하지 않았기에 냉전 체제가 끝난 후, 더 나아가 한국 주도로 통일이 이루어진 후에도 중국과 러시아같은 반서방 세력을 한미동맹으로 수호하여 견제하겠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다만, 한국 역시 북한과 통일 후에 북한이란 주적이 사라진 상태에서 한미상호방위조약이 필요하다면 그것은 바로 중국과 러시아를 미국을 이용하여 견제하겠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한미동맹의 근본적인 목적은 한국을 지키기 위한 것이므로 대부분의 한국인들은 국가에 상관없이 어떤 나라라도 한국을 공격하면 미군이 개입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으며 실제로도 그렇다. 허접한 북한군이 침략할때만 도와주고, 정작 중국군이나 러시아군이 침략했을 때는 주한미군이 팔짱만 끼고 방관한다면 의미가 없다.

물론 현실적으로 잃을 것이 많은 중국이나 러시아가 미국을 적으로 돌리며 한국을 상대로 무력 도발을 감행할 확률은 낮기에 한미동맹은 실질적으로 북한의 무력 침공을 억제하는 역할이 가장 크다. 그러나 21세기 이후로는 미군에 의지하지 않은 한국군 단독의 전력만으로 북한군의 전력을 월등히 앞지르게 되었고, 자연스럽게 한미동맹의 성격도 북한군만을 대비하는 것이 아니라 중국과 러시아가 가지는 잠재적 위협 요소까지도 대비하는 포괄적인 성격으로 인식이 변화하고 있다.

실제 노무현 정권 시절 한국의 국방백서에도 북한이 주적이라는 규정을 삭제했으며 대응 범위를 추상적으로 잡아 놓았는데, 이 역시 북한 뿐만 아니라 어느 나라든 한국의 안보를 위협하는 적이 될 수 있음을 고려한 것이다. 다만 당시에 이로 인해 논란이 좀 있었다. 왜냐하면 당시 육군사관학교에 합격한 25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우리의 주적(主敵)은 누구냐'는 질문에 무려 34%가 "미국"이라고 답하는 등(북한은 33%) 반미감정이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친북적인 분위기가 형성되는 상황에서 북한 주적 표현이 슬그머니 사라져 버렸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당시 미국 하원의 헨리 하이드 국제관계위원장은 한국이 안보에 대해 혼란스러운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며 "한국은 누가 적인가를 분명히 말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주적 개념이 없는 상황에서의 미군 투입을 문제 삼겠다는 뜻을 내비쳤을 정도로# 한미관계가 삐걱대기도 했었다. 참고로 이 때 당시에는 미군 여중생 압사 사고를 기점으로 반미 감정이 폭발했던 시기였다.

2016년 4월 국제정치 전문가인 이춘근 박사의 강의 셰일가스 혁명과 미국의 외교정책 변화 편을 보자. 영상을 보면 알겠지만, 오바마조차도 미국이 사활을 걸었던 중동은 물론 전 세계에서 슬슬 발을 빼는 듯한 모습을 보이고 있었음을 알 수 있는데 이게 다 셰일가스 혁명에 기반한 무브였다. 그리고 트럼프 정부가 들어서면서 이런 미국의 고립주의는 더욱 심화되었다.

실제 과거 냉전시대에는 절대 미국에서 나오지 않았던 주한미군, 주일미군 철수 발언이 나오고 사우디, 독일의 미군도 철수시키자는 학자들도 점차 늘어나고 있다. 다만 저런 발언들은 실제로 해외 주둔 미군을 철수시키려는 것이라 보기에는 무리가 있고, 방위비 분담금 인상에 대한 압박 카드로 해석할 수도 있다.

하지만 2020년 들어 남중국해 일대에서 군사분쟁이 심화되면서, 미국은 기존의 고립주의 기조를 버리고 일명 인도-태평양 전략이라는 새로운 안보전략을 구상한다. 이에 따르면 우선 일본, 호주, 인도와 일명 쿼드라는 안보 협력 체제를 구축한 뒤에, 추가로 동아시아와 동남아 국가들의 참가를 유도하여 장기적으로 태평양 지역에서 중국을 포위하는 집단 안보 기구를 창설하는 안이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다. 이 구상이 현실화되면 일본과 한국이 중국에서 가장 가까운 위치에 있는 국가들인 만큼, 이 두 국가의 비중이 매우 중요해질 것이며, 반대로 주일미군과 주한미군의 철수 가능성은 그만큼 낮아지게 될 것이다.

6. 조중 우호협력 및 상호원조조약과의 차이점

북한중국 역시 한미상호조약처럼 조중동맹조약을 맺었다. 조약은 모두 7조로 되어 있는데 이 중 핵심은 북중 양국 간 상호 자동군사개입을 규정한 제2조다. 여기에는 “일방이 무력침공을 당해 전쟁상태에 처할 경우 상대방은 모든 힘을 다해 지체 없이 군사 및 기타 원조를 제공한다”고 규정돼 있다. 이런 개입과 달리 한미상호조약에는 자동개입 문항이 없다.

한미상호방위조약 제3조에는 외부세력에 의한 무력공격 발생 시 행동방식과 상호의무에 대해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조중우호조약의 자동개입 조항과 달리 “유사시 공통의 위협에 대처하기 위해 각자의 헌법상의 수속에 따라 행동할 것을 선언한다”고 명시돼 있다. 제2조에도 외부 침략에 대한 대응양식을 규정하고 있는데 “상호협의”를 주장한다는 점에서 즉각적이고 의무적인 대응은 성립하지 않는다. 다만 휴전선 인근에 배치된 주한미군이 ‘인계철선(引繼鐵線)’ 역할을 수행해왔기 때문에 사실상의 자동개입이 보장돼 왔다. 이는 주한미군이 북한의 공격을 받으면 미국 본토 병력이 자동으로 개입하게 된다는 의미다.[55] 두 조약 간 동맹의 영속성 역시 대조적이다. 조중동맹조약 제7조에는 쌍방 간 수정 혹은 폐지에 대한 합의가 없을 경우 영원히 지속되도록 규정하고 있다.[56] 반면 한미동맹은 제6조에 따라 조약 기간이 무기한이지만 일방의 통고가 있으면 1년 후에 종지(終止)시킬 수 있다.

제3조를 보면, 체약 쌍방은 체약 상대방을 반대하는 어떠한 동맹도 체결하지 않으며 체약 상대방을 반대하는 어떠한 집단과 어떠한 행동 또는 조치에도 참가하지 않는다. 명시되어 있는데, 현실의 북중관계는 경제적으로는 북한이 중국의 식량을 구입할 정도로 예속되어있지만, 자신들 주권을 넘보거나, 강압적으로 요구하는 상황에서 정치, 군사적 대립관계에 놓여있고, 러시아 역시 과거 조소우호협력및상호원조조약 조약을 맺었지만 냉전종식과 핵개발로 인해 이 조약을 폐기하고 대신 자동개입 문구가 없는 선린 우호조약으로 대체하였다. 군사훈련 역시 거의 없는 편이라, 중,러훈련은 있지만, 북-중, 북=러 연합훈련은 한번도 해본적이 없다.[57] 유엔 제재로 무기판매도 금지되어있다.[58]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가 2017년 대선후보 당시, 미일안전보장조약은 자동개입이 명시되어 있고, 한미상호조약은 자동개입 조항이 없다고 말한 바 있다.기사 그러나 미일안전보장조약도 사실 자동개입은 아니다. 미일안전조약 5조를 보면, 미일 양국은 일본의 영역 및 재일 미군기지의 '어느 한 쪽에 대한 무력공격’이 있는 경우 '자국의 헌법상의 규정 및 절차에 따라 공통의 위험에 대처하도록 행동할 것을 선언한다’고 서술되어 있다. 한미상호조약 3조에도 각 헌법에 대처에 맞게 대응한다 명시되어 있는데, 미국에는 미 의회의 승인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예외가 되는 것이 전술한 인계철선 관련 조항이다.

박정희 정부 시절 1963년 한미상호조약 자동개입 조항을 넣자고 했는데, 즉 2조 조항에 현재 한미상호방위조약 2조인 ‘적절한 조치를 협의와 합의하에 취한다’를 ‘즉시 취한다’로 바꾸자고 했지만 미국이 거절했다.

한미상호조약과 조중우호조약의 차이점
비교조항 조중우호조약 한미상호방위조약
자동개입 2조 조항인 중화인민공화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양국은 모든 조치를 공동으로 맡으면서 체결국에 대한 특정 국가의 침략을 방지한다. 체결국 가운데 한 쪽이 몇몇 동맹국의 침략을 받을 경우 전쟁 상태로 바뀌는 즉시 군사적 원조를 제공해야 한다. 3조 조항인 각 당사국은 타 당사국의 행정 지배하에 있는 영토와 각 당사국이 타 당사국의 행정 지배하에 합법적으로 들어갔다고 인정하는 금후의 영토에 있어서 타 당사국에 대한 태평양 지역에 있어서의 무력 공격을 자국의 평화와 안전을 위태롭게 하는 것이라 인정하고 공통한 위험에 대처하기 위하여 각자의 헌법상의 수속에 따라 행동할 것을 선언한다.
유효기간 이 조약은 양국 의회가 비준하지 않으면 효력이 생기지 않으며 양국이 비준서를 교환한 날부터 효력이 발생한다. 비준서는 평양에서 교환하며 양국이 조약의 개정 또는 효력의 상실에 대해 합의하지 않는 이상 효력이 유지된다. 본 조약은 무기한으로 유효하다. 어느 당사국이든지 타 당사국에 통고한 후 1년 후에 본 조약을 종지(終止)시킬 수 있다.

정리하면, 자동개입과 유효기간은 북중조약이 다소 유리하고 반에 한미조약은 직접적인 자동개입이 없고, 유효기간은 무기한이지만 어느쪽이든 상관없이 통보하면 1년 종지(終止)시킬수 있다. 자동개입을 보면 한미조약은 헌법상에 따라 대처를 선언한다. 즉 전쟁선포권을 갖고 있는 미국 의회에서 승인을 내려야만 개입이 가능하는 반에 북중조약은 어느쪽이든 상관없이 직접개입이 가능하다. 지뢰로 표현하면 한미조약은 별도로 작동시켜 터져야하는 원격지뢰, 북중조약은 밟히면 터지는 지뢰라고 표현하면 된다.

7. 어록

한미상호방위조약이 없는 것은 일본인이 다시 한국을 병합해도 좋다는 신호로 알기 쉽다.
1952년 10월 17일 애치슨 미국 국무부 장관을 만난 변영태 외무부장관이 한미상호방위조약 체결의 필요성을 주장하면서 꺼낸 이야기.
미국에 대한 우리(한국)의 확고부동한 신뢰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1910년 일본의 한국병합과 1945년 한반도의 양분(bisection)에서 볼 수 있듯이, 과거 두 번씩이나 미국에 의하여 배신당했습니다. 공산주의자들에 의한 전쟁재개에 대한 아무런 방지책이 없는 정전협정문이란 '한국에 대한 사형집행영장'에 불과합니다.
이승만 대통령이 1953년 7월 로버트슨 미국 특사를 만난 자리에서

8. 관련 문서


[1] 미일안전보장조약.[2] 미국-필리핀 상호방위조약.[3] 태평양상호안전방호조약을 통한 미-호-뉴 3자 동맹. 그러나 80년대에 뉴질랜드가 뉴질랜드 비핵지대법 발효 및 미국 구축함 기항 거부, 미국의 NCND정책에 대한 반발 등을 연쇄적으로 시행, 사실상 뉴질랜드는 태평양상호안전방호조약에서 축출되었다. 이로 인해 ANZUS 조약 상에서 뉴질랜드는 더 이상 동맹이 아니게 되었다.[4] 아르헨티나를 달래기 위해서다. 포클랜드 제도가 영국이 소유하고 있는 상황에서 아르헨티나는 영국이 딴 마음을 품고 아르헨티나 본토로 건너올까봐 매우 걱정하는 나라인데 그런 걱정을 미국이 덜어주기 위해서 아르헨티나와 상호방위조약을 맺었다.[5] 미주상호원조조약.[6] 정확히는 태평양 지역에서 미국이 공격받을 경우. 조약에 보면 "태평양 지역"이라고 명시되어 있다.[7] 강제적 자동 개입이 아니다. 즉, 이론상으로는 중국이 한국을 침략했음에도 미국이 중국을 제재하고 한국에 무기만 대 주면서 개입하지 않고 한국이 점령되도록 놔둬도 조약위반이 아니다. 물론 이렇게 할 정도면 미국의 상황이 베트남 철군 직후 상황이 아무것도 아닐 정도로 망가졌다는 소리겠지만. 다만 미군 기지가 공격받았을 경우 이야기가 달라진다. NATO 조약과 달리 미일안보조약 및 한미상호방위조약은 자동적 개입이 아닌 각 국가의 헌법적 절차를 밟아 집단적 자위권을 발동하도록 규정되어 있다.[8] 물론 양국이 원한다면 한국이 유사시의 미국을 자발적으로 돕는 것 자체는 가능하지만 그런다 쳐도 의무는 아니고 이 조약과 별개라는 것이다. 실제로 미국이 전쟁에서 파병 요청을 할 때도 공식적으로는 지원 요청이거나, 아니면 실질적으로는 미국의 요구라 해도 현지 정부의 요청을 받아들이는 방식을 취했다.[9] 이승만은 대한민국 임시정부 시절 너무 독단적이라는 이유로 탄핵을 당하기도 했지만, 어찌되었건 외교판에서 오랜 세월 동안 독립운동을 하며 기른 정치적 내공은 무시무시했다. 프린스턴 대학교에서 정치학 전공으로 박사학위까지 받았던 만큼,(한국인 1호 박사) 이론적 역량도 상당했다.[10] 뒤에서도 언급하겠지만, 한미상호조약은 과장을 조금 보태면 워싱턴 조야에 대한 이승만의 쇼당 덕에 체결될 수 있었다.[11] 참고로, 제4조의 실제적 내용 실현을 위해서 후에 한미행정협정이 체결되었다.[12] '무조건적인 자동 종료' 라는 식으로 잘못 알려진 것과 달리 문법상 필요조건(may terminate)이므로 취소할 수 있는 조항이다. 이와 달리 미일안전보장조약은 'shall terminate'로 되어 있어서 한번 통고하면 조약을 다시 체결하는 것 외에 취소할 수 없다.[13] 미 상원 비준간 추가한 조문에 대한 해석으로, 1954.2.1부 대한민국의 동의 하에 반영되었다. 12[14] 북한과의 체제경쟁에서 승리와 동구권의 몰락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사건들 중 하나가 바로 1988 서울 올림픽이다.[15] 사실 한국군은 국방비 투자 대비 전력유지 비율이 우수한 편이다. 징병제의 특성 상 인건비가 적기 때문이다. 이와는 정 반대의 입장에 있는 케이스가 독일 연방군이다. 이쪽 동네는 한국보다 국방비 액수가 많지만 모병제 특성상 상대적으로 높은 인건비, 그리고 지나치게 높은 가격과 낮은 가성비를 자랑하는 장비를 소수만 보유하고 있는 탓에 전력은 형편 없어서 주독미군이 없으면 자국 방어조차 불가능한 지경까지 가버렸다. 독일도 이러한 문제점을 인지하고 있으며 2022년 이후 러시아의 위협으로 재무장에 나섰다.[16] 앞서 언급했듯이 미국은 원래 2차대전 후에는 미국과 일본 사이의 넓은 태평양을 세력권에 두기 위해 일본의 안전보장을 최우선시했다. 당시 미국은 공산권을 겨누는 최전방 단검으로서의 한국의 가치보다는 '일본을 지킬 전방' 이라는 인식이 강했다. 냉전이 계속되고 한국이 급성장하며 그 중요도가 치솟고 신냉전이 온 21세기까지 이어지며 미국의 태도와 인식이 달라진 것이다.[17] 한미연합훈련도 그냥 하는 게 아니라, 무력 공격 발생 이전에는 양국이 발생 시 어떻게 할 것인지를 상호 합의하고, 실제 발생 시 이를 위한 필요한 적절한 조치를 취한다고 규정한다는 조약 내용에 따른 대처 내용이다.[18] 2차대전 후 미국이 직접 관여하여 공들여 밀어준 나라 중에서 제일 성공작품이라는 평가도 있다. 독일, 일본, 이탈리아는 미국이 점령국으로서 관여한 케이스고 이들은 세계대전을 일으킬 정도로 국력이 강한 열강들이었다. 그리고 미국이 관여한 남베트남,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등은 모두 멸망하거나 수렁에 빠졌다.[19] 당장 알제리부터 오만까지 4억 2천만 아랍인들의 국가만 15개정도 되는데 이들 국가들이 채택하고 있는 이념은 제각각으로, 사우디아라비아는 사우드 가문이 와하비즘을 밀어주며 건국한 국가로 '근본주의와 함께 시작한 왕국'인데 반해, 옆에 붙어있는 바레인은 아예 국가에다 "샤리아 엿 먹어라" 급의 가사(헌법과 헌장은 샤리아와 맞먹는 가치를 지닌다)를 붙이고 술을 버젓이 팔고 있다. 둘은 국가 체제 자체가 전제군주정에 가까운데도 종교에 대한 해석이 갈리기에 이런 극명한 차이를 보이고 있는데, 국가 간의 차이 뿐만이 아니라 국경 내 사회상에서도 극명한 차이를 보인다는 것이 문제다.[20] 비슷한 예시로 종전 직후 독립한 파키스탄 자치령이 있다. 파키스탄은 독립 이후 56년도까지 '이슬람과 영국식 민주주의, 세속주의를 어떻게 융화하느냐'를 놓고 오랜 기간 거센 논쟁을 이어갔다. 어떠한 개입 없이 스스로 정부를 꾸리고 융화 논의를 하는데만 해도 10년 넘게 걸리는데 외부에서 주입한다고 될 일이 아니라는 소리다.[출처1] 반미주의의 구조적 근간, Bruce Cummings[22] 미국은 한국과 다르게 대통령은 전쟁수행권(행정)만을 가지며, 전쟁선포권(의결) 자체는 의회에게 있다.[23] 트럼프가 해외 주둔 미군을 철수시키려고 했을 때 반대했던 국가가 놀랍게도 한국과 당시 척지고 있던 일본이었다는 점을 생각할 필요가 있다.[24] 한때 수십만에 달했던 아프가니스탄 주둔 미군도 2021년 9월을 기해 철수하면서, 주한미군이 영원히 주둔할 수 있다는 생각은 장담할 수 없게 되었다. 단, 이쪽은 미국-아프가니스탄 전쟁과 관련된 주둔으로 성질이 다르다.[25] 더군다나 한반도의 경우 아프간과는 전혀 다른 상황이며 중요성 차이도 크다. 아프가니스탄의 경우 미국의 전통적 우방이나 동맹국이 아니다. 9.11테러 이후 촉발된 미국-아프간 전쟁은 미국이 탈레반을 몰아내고, 친미 정부를 세우고 안정화시키는 게 목적이었으나 안정화가 장기화되고 아프가니스탄 정부와 군의 무능함 등에 대한 미국의 오판, 미국내 철수 여론, 장기화로 인한 비용 문제가 얻을 수 있는 이익보다 기하급수적으로 커져 철수하는 것이다. 그에 반해 한반도는 경쟁자인 중국과 러시아를 견제하기 위한 최적의 루트이자 최적의 장소이기도 하다. 만약 철군을 할 경우, 중국은 남중국해보다 더 빠르게 태평양을 진격할 수 있는 구실을 내주는 격이다. 제 아무리 해자대가 해상전력이 뛰어나다 해도 중국과 러시아를 막는데 역부족이며 한국 역시 미국에게 버림받았다는 여론이 커진다면 정치권도 그에 호응해 친중·친러국으로 급속도로 방향이 틀어질 수도 있고, 아니면 안보위협을 느끼고 심각한 경제제재를 감수하더라도 핵무장에 나설 수도 있다. 이는 태평양 파워 밸런스의 판도를 충분히 바꿀 수 있는 정도가 될 수 있다. 애당초 주요 경제력이 되는 한국을 버린다면 미국 경제까지 큰 영향에 끼친다. 당연히 상호방위조약은 한국이나 미국의 이익에 따라 얼마든지 철회될 수 있는 조약이지만, 미국 입장에서도 잘라낼지 말지 고민하는 이익의 정도가 베트남이나 아프가니스탄은 한국이나 일본과 다르다는 것이다.[26] 사실 선진국 치고 인구가 적은 건 아니다. '선진국'이라는 범주에 해당되는 국가의 대부분은 인구가 영세한 국가들이다. 다만 우리를 감싸고 있는 중국, 러시아, 일본, 미국이 다 인구가 억대인데다가 우리가 자주 비교하는 유럽의 강대국 영국,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등에 비해 인구가 적어서 그렇다. 단지 그 규모를 어느 정도로 유지할가에 대한 결정이 아직 내려지지 않았을 뿐이다. 일단은 인구가 최소 2~3천만 명 이상이며 어느 정도 국력도 갖추고 선진국이기까지 한 나라는 G7과 한국, 호주, 스페인 외에는 없기 때문이다.[27] 다만 세계 군사력 순위에 나와 있다시피 공신력 있는 수치는 아니다.[28] 그러나 당연히 한국의 반발이 매우 심할 것이다. 애초에 북한을 분할 시키는게 헌법 정신에 전면으로 부딪히는 것이기 때문이다. 헌법상 북한은 한국의 영토를 침범하여 지배하고 있는 반국가단체이며 따라서 북한의 영토는 한국의 미수복지역이기 때문에 한국의 영토이며, 북한 주민들도 한국의 국민이다.[29] 일본인들도 북한의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에 한국인들 만큼이나 민감하게 반응한다. 왜냐하면, 북한에서 발사한 미사일이 언제든 자국인 일본에 떨어질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오히려 최근에는 너무 많은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로 인해 미사일 발사하면 뉴스 지면 1면에 걸려도 다행일 정도로 둔감해진 한국과 다르게 일본은 관련 문제에 대해 더욱 민감하게 반응한다.[30] 참고가 될 만한 픽션에서의 상황은 강철비 말엽에 나오는 - 이의성 대통령의 2차 핵폭 요청에 미국이 - 모종의 사유로 일본이 핵폭을 중단할 것을 요청했다는 이유로 거절하는 상황인데, 해당 문서 및 실제 영화를 보면 알겠지만 (일본이 진짜로 위협을 받아서 그럴 수밖에 없었음은 둘째 문제라 치고) 엄근진하게 따지면 사실 미국이 한국에게 이 조약으로 약속한 - 공격당했을 때 나서서 같이 싸워주기를 어겼다고 볼 수는 없다.(북핵이 한국에 닿지 않아서 핵우산 작동 조건이 충족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법리적으로는 이의성 대통령의 "한미상호방위조약이 거지같냐"는 말은 성립이 불가하다.) 그런데 사실 영화 자막에 참을 땐 참으란 겁니다라고 나온-미국 국무장관의 대사 원문은 Let's just wait it out인데, 영어 원문 그대로 해석하면 사실 북한이 남한이나 미국을 공격하는지 아닌지 지켜보자는 것으로, 한국 피격시 미국이 다시 나설 가능성을 배제한 게 아니라는 점에서 오역으로 비쳐질 수도 있겠는데 다만 이의성 대통령이 - 사실 북한이 겉으로나마 선전포고를 취하했다는 점에서 일견 타당한 미국 국무장관의 설득에 대해 나는 반드시 핵폭을 해야겠다 하는 모습을 보이니까 그 상황에서는 "참으라"는 해석이 맞다고 볼 수 있다. 헌데 해당 영화는 그 이상으로 (근미래라고 설정된) 극중 시점에서의 일본을 악마화하지 않는다.[31] 오히려 (개봉년도와 얼추 비슷한) 극중 시점에서의 일본을 진지하게 악마화한 강철비 2에서는 미국이 일본을 만족시키기 위해 한국을 지켜주기로 한 (이 조약을 위시한) 약속을 깨려는 묘사가 강철비처럼 애매한 정도로 조차도 나오지 않는다.[32] 아베 독트린에서 한국과 중국을 지역적 반발로 무시한 바 있다. 일본 우익의 정통파는 한국을 미일의 가상적국인 중국과 싸잡아서 지역적 반발로 무시한 것에 대해 미국이 함부로 한국과의 동맹을 팽할 것 같지가 않다는 이유로 반대를 나타냈지만, 역설적으로 아베 독트린을 일본 우익~극우의 희망사항에 대한 다소 거친 표출이라고 볼 수도 있다.[33] 한국이 강대국 사이에 껴서 시달린 역사를 가져서 그렇지, 자체 체급은 무시할 수준이 아니라 임진왜란, 병자호란에서 둘다 침략당하는 입장이었음에도, 두 전쟁 다 죽어라 버티며 일본과 청나라에 극심한 출혈을 안겼다. 심지어 근대화를 실패한 후 청일 양국에게 휘둘리던 근현대 시기에도 양국이 싸우는 동안 양국의 실효지배 영토를 빼앗아 건드려볼 생각을 할 정도였다. 중일 양국 입장에서 한국은 자신들보단 약하지만 언제나 칼을 갈고 있는 위험한 국가이기도 했으니 찍어누르거나 지배해야 할 우선순위가 높았다. 근대의 경험을 바탕삼아 현대에는 일본보다 군사력(육군)도 강하고, 중국에게는 그들의 정치적인 적인 대만보다 위험한 국가로, 수도 베이징을 크게 타격을 입힐 직접적인 위협이 되는 나라이다. 국군의 화력은 차치하더라도, 서울에서 탱크를 몰고 가면 24시간 안에 베이징 침공이 가능하기 때문에 그렇다.[34] "GSOMIA로 한미동맹이 미일동맹에 종속"이 사실이려면 일본이 정보를 요구했을 때 한국이 거부할 수 없어야 하는데, 자동으로 일본에게 한국의 정보가 새나간다는 가짜뉴스가 많이 퍼졌다.[35] 어떤 반미주의자는 미국의 해양봉쇄법에 - 미국의 동맹국끼리 전쟁이 나면 "개전시 양측 동맹국 이외의 외부 세력의 침입을 배제하며 양측 동맹국 중 한 동맹국을 지지하지 아니한다"고, 전쟁을 말리는 게 아니라 주변국이 끼어들지 못하게 하도록 되어 있어서, 한미동맹으로 한일전쟁을 방지할 수 없다고 선동하는데, 해당 법의 해당 규정은 중립의 의무를 지키라는 것이지 팔짱끼고 방관하라는 의미가 아니고, 한미동맹조약도 의회의 인준을 받았으므로 법적 효력이 있다.[36] 국내외 주요 국제정치학자들이 십중팔구 동의하는 부분이 "한국은 한국이 미국의 동맹국가인 다음에는 일본의 위협을 우려하지 않아도 좋다"라는 것. 그래서 일본의 일부 우익이나 극우 세력들은 한국을 친중-반서방 국가로 호도하는 경향이 있다. 한국이 친서방 국가로 남아 있는다면, 일본의 한국 공격이 일본에게 자살행위가 되기 때문이다.[37] 둘 다 한미/미일 양국의 비준 절차를 거쳤는데, 비준을 거치면 해당 국가의 법처럼 해당 국가 내에서 효력, 즉 강제성이 발생하므로 조약 규정을 통해 조약의 효력 등을 측정하는 것에는 무리가 없다.[38] 한일 간 영토 분쟁이 있는 독도와 관련해 문제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일본에서는 2020년에 독도가 쿠릴열도 4개 섬(북방영토)과 더불어 미일안보조약의 해당 규정 적용 대상이 아니라는 견해를 내비쳤다.# 비교하자면 미국은 중국과 일본 간 영토 분쟁 지역인 센카쿠 열도에 대해서는 미일안보조약 범위 안에 있다고 대놓고 선언한 바 있다.[39] 이승만이 한미상호방위조약에 열성을 낸 이유도 지금까지 설명한 부분과 무관치 않다. # 당시 미국은-모 관료가 이승만의 집요한 요구에 대해 한국은 일본권이라고 역정을 낸 것으로 보아 아시아를 전적으로 일본에게 일임할 생각이었는데, 결국 한미상호방위조약이 체결된 현실과 달리, 만약 미국의 그 구상대로 되었다면 일본이 한국을 침략할 경우 한국이 어떠한 보호도 받지 못하게 된다는 문제점이 있다.[40] 한미행정협정은 이것을 뒷받침하는 하부 협정이다.[41] 물론 그 부분이 문제가 없다는 것은 아니다. 당초에는 한미상호방위조약에 수시 협의 조항이 없어서 문제였는데 1970년대에 한미연합군사령부를 구축해서 결과적으로 이 문제가 해결된 것이다.[42] 태평양 전쟁 당시 미군이 좁은 회랑에서 포위 섬멸전을 당한 악몽이 되었던 곳이다.[43] 시대가 지날수록 그 시큰둥한 반응이 오히려 힘을 잃었다. 당시 미국은 일본을 이용한 태평양지역 방위에만 신경을 썼지 제2세계 상대로 확실히 승리할 수 있는 교두보 확보에는 무성의했다는 이야기다.[44] 이 발언 이후 미국은 1949년 4월 나토조약, 1951년 8월 미-필리핀 상호방위조약, 동년 9월 미국-호주-뉴질랜드 안보조약 등을 체결했다.#[45] 자신들의 외교를 대나무 외교(대나무처럼 이리저리 휘되 꺾이지 않는다는 뜻)로 칭하며 완충지대 외교를 펼쳤던 태국조차도, 냉전이 표면화된 이후부터는 (주변국들이 공산화되었기 때문에) 자유진영에 가담해야만 했다.[46] 실제로 그렇게 됐다.[47] Despite Rhee’s open hostility against a cease-fire, the US successfully came to terms with the PRC and DPRK on an Armistice agreement that would end the war in 1953. As a means to disrupt this agreement, Rhee ordered the release of anti-communist North Korean POWs on June 18, 1953, the same day that North Korean, Chinese, and UN forces planned on signing the Armistice. In response, the US offered Rhee treaty negotiations if he agreed to no longer disturb cease-fire negotiations.[48] 물론 엄밀히 말하면 남베트남과 라오스는 사실상 유기한 것에 가깝긴 하고, 이라크/아프간 같은 경우는 미국 내에서의 여론이 파탄나기도 하였고, 또한 명분 및 실익마저 사라졌기에 철수한 것이다.[49] 今後. 지금으로부터 뒤. 이 뒤. 순화어는 `앞으로'.[50] 물론 이럴땐 대통령이 직접 국군통수권으로 전시작전통제권을 씹어 버리고 직접 북진을 명령하면 된다. 군통수권보다 상위권한은 없다.[51] 6.25 전쟁 당시 중국의 입장도 이랬다. 표면적으로는 6.25가 조선반도(한반도) 내전이므로 한국군 북진만 받아들일 수 있으며 미군의 북진은 중국의 안보를 크게 위협하므로 묵과할 수 없다는 명분을 내세웠고, 실제로는 한국군이 워낙 형편없다고 보아 북진을 하더라도 재조직된 북한군의 저항 때문에 별다른 전과를 내지 못할 것으로 본 것이다.[52] 그러나 미국-중화민국 상호방위조약은, 원문이 'may terminate'로 되어 있음에도 미국의 일방적인 파기 통보 이후 이를 무르지 않아서 최종적으로 완전히 파기되었다.[53] 왜 미국이 한일 각국과 이러한 조약을 체결했을 때 단어를 달리 했는지는 알 길이 없으나, 굳이 추론하자면 역사적으로 서로를 패퇴시키기 위해 싸웠던 미일관계보다는 한쪽의 피침략에 대해 원조하기 위해 손잡고 싸운 한미관계가 미국에게 있어 관계설정이 더 유리하다고, 그래서 "영원한 적도 영원한 아군도 없다"는 미국 외교 방침에 따라 파기조건을 설정하더라도 한국에게는 조금이나마 편의를 봐 주었다고 추론할 수가 있다.[54] 사실 주한미군의 입장에선 심히 불쾌한 이름이다. 이는 주일미군을 비롯해 해외 주둔 미군들도 해당된다. 문서 참고.[55] 한국을 공격시엔 개입이 아닌 미군 내 기지, 즉 세계 주둔 미군 기지를 공격시 자동개입 한다는 의미.[56] 다만 조중동맹조약은 1961년부터 20년 단위로 자동갱신되는 방식이라 완전하게 유효기간이 없다고 할 수는 없다.[57] 2011년 북-러간의 수색구조훈련은 한적은 있다, 그러나 미국과 동맹국들처럼 정규적인 훈련은 하지 않는다.[58] 4차 핵실험으로 인해 소화기, 권총, 중화기, 군용트럭, 수류탄 등 다수 품목이 포함되어 있다. 물론 실제로는 중국이 반은 대놓고 무시하고 있기 때문에 전략무기를 제외한 나머지는 잘만 들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