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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자 당사국 지도 |
<colcolor=black> 언어별 명칭 | |
한국어 | (대한민국 표준어) 6자회담 / (문화어) 륙자회담 |
한자 | 六者會談 |
영어 | Six-party Talks |
중국어 | 六方会谈 |
러시아어 | Шестисторонние переговоры |
일본어 | 六者会合, 六ヵ国協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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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좌측부터 일본의 사사에 겐이치로, 대한민국의 천영우, 북한의 김계관, 중국의 우다웨이, 미국의 크리스토퍼 힐, 러시아의 알렉산드르 알렉세예프 순이다.[1] |
북한의 핵무기 문제 해결을 위해 2003년 8월 27일에 처음 열린 한반도 주변 6개국의 회담. 참가국은 대한민국, 북한, 미국, 중국, 러시아, 일본이다. 북한의 핵 문제에 관련된 6개국이 모여 북한의 비핵화를 비롯 북한의 개방에 대하여 논의를 하게 되었다.
2. 배경
2.1. 6자회담 전 북한의 입장
냉전 이후, 대한민국은 러시아, 중국과 수교를 하였지만[2], 아직 북한은 미국, 일본과의 수교를 하지 못한 상태다. 북한 입장에서 더더욱 심각한 것은 남한과 미국의 동맹관계는 최소 현상유지 상태인 반면, 동구권이 무너지고 대한민국과 러시아, 중국이 수교를 하면서 이들과의 동맹관계에 많은 금이 간 게 사실이었다.6자회담의 배경으로 남한과 점점 더 벌어지는 경제적, 군사력 격차 및 한미동맹과 같은 즉각적인 공수동맹이 사라진 상태에서 더더욱 위기를 느낄 수밖에 없었고, 대포동으로 유명한 탄도탄과 핵 프로그램으로 비대칭전력에 힘을 쏟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미국은 우세한 정보능력으로 시시각각 북한을 관찰하면서 북한의 핵개발에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있었고 북한으로서는 어느정도 유화적인 제스처를 취하면서 핵개발까지 시간을 벌 필요가 있었다.북한의 핵개발은 남한/미국만의 문제가 아닌 중국과 러시아도 직접적인 당사자였으므로 북한을 포함한 모두의 이해관계가 성립되었다.
과거 북핵에 관련해 북한은 남한의 외교적 지위를 불인정, 미국과의 합의를 진행해왔었다. 북/미 양자 간 문제[3]로 과거부터 지속되어 왔으며 6자회담을 통해 비로소 남한을 회담의 파트너로 인정하였다.[4]
2.2. 2000년대 이전
1993년 북한의 중수로 문제로 시작된 핵 개발 문제가 당시 미국 클린턴/대한민국 김영삼 정부시기 경수로 자금지원으로 일단락이 되었지만 지속되는 북한의 핵 개발에 대한 의혹은 지울 수가 없었다. 1994년 북미 제네바 합의로 핵개발에 대한 우려가 완화되는듯 했으나 2002년 합의 파기되었다. 또한 2001년 미국의 9.11 테러 이후 북한을 테러지원국으로 지정하면서 북한의 고립이 심화되었다.그 가운데 1996년 미국은 기존의 북미 회담에 남한과 중국을 포함시킨 4자회담을 제안했었는데, 4자회담 제1차 예비회담이 1997년 8월 5일 미국 뉴욕 콜럼비아대학에서 열린 데 이어 1차 본회담이 1997년 12월 10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리고 제3차 회담이 1998년 10월에 개최되었지만 별다른 진전은 없었다. 북한은 정전 이후 협정의 상대는 남한이 아닌 미국임을 일관되게 주장하여 4자회담은 제안만 된 상태에서 별다른 진전을 보지 못했다.
2.3. 베이징 3자회담
[5]2003년 4월 23일, 베이징에서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해 미국, 중국, 북한이 모인 3자회담이 열렸다. 3자회담 이전 6개월간 긴 대치로 상황은 좋지 않았다. 2002년 2월 26일 북한은 5MWe 원자로를 재가동하였고, 미군의 정찰기에 북한의 전투기가 접근하는 사건까지 발생하였다. 이에 대해 미국의 부시 대통령은 "대북 군사적 옵션도 테이블에 있다"며 북한에 대한 적대감을 드러냈다. 이러한 배경에서, 베이징 3자회담은 무거운 분위기로 진행되었다. 북한 측의 리근 외무성 미주 부국장은 미국의 대북 적대정책 철회와 불가침 조약을 요구하였다. 미국의 제임스 켈리 국무부 차관보는 핵 개발 계획을 포기하라고 하며, 미국의 선택은 대화만이 아니라고 했다. 이렇듯 대화가 평행선을 달리는 상황에서 북한 측은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다. 핵무기를 해체하지 않겠다. 이를 고액과시할지, 아니면 이전할지, 숫자를 늘릴지는 미국 할 바에 달렸다. 지금 대답하지 말고 신중하고 조용하게 답을 달라"[6]고 했다. 이는 미국에 대한 중대한 도전이었다.
2.4. 연쇄적 정상회담과 6자회담 도출
<keepall> {{{#!wiki style="padding: 5px 10px; border-left: 10px solid #FFD918; border-right: 10px solid #FFD918" {{{#!wiki style="margin: 0 -20px -5px; min-height:calc(1.5em +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5px -1px -11px" | <colcolor=#000,#FFD918><colbgcolor=#f5f5f5,#2d2f34> 구성 | 인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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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쇄적인 정상회담은 갈등하는 동맹(역사비평 편집위원회 엮음) - 전면적인 동맹 재조정을 위한 갈등과 협력(박선원)의 내용을 바탕으로 작성되었다. |
북핵문제의 평화적인 해결을 원했던 노무현 대통령은 이후 연쇄적인 정상회담을 실시했다. 2003년 5.14 한미정상회담도 그중 하나로, 이때의 화두는 "모든 선택지가 테이블 위에 있다(All options are on the table)"라는 미국의 문장을 어떻게 철회시키는지였다. 노무현 대통령은 부시 대통령에게 무력을 사용하지 않겠다는 대답을 듣기 위해 전력했다. 이후로도 미국이 군사력 사용가능성을 언급하면, 이때의 정상회담을 근거로 부인했다.
2003년 7월 7일에 진행된 한중정상회담에서는 중국측이 "북한의 안보우려가 해소되어야 한다"라는 문장을 중국 입장으로 공동성명 4조에 포함시켰다. 노무현 대통령은 이처럼 북한이 간접적으로 참여하는 것이 아니라, 다자대화에 응하여 직접 참여해야한다고 중국 대표들에게 강조하였다. 해당 한중정상회담에서 우리측은 "현 정세에서 양자회담보다는 관련국이 모두 참가하는 다자회담이 합의이행에 효과적이므로 조기에 6자회담에 참가해달라. 회담에서는 상호 관심사항과 우려사항이 균형있게 논의될 것이다"[7]라는 메시지를 중국 외교부 수석 다이빙궈를 통해 북한으로 전달했다. 다이빙궈는 북한의 대답을 가지고 워싱턴을 찾아 3자회담을 제의했다. 이에 미국의 파월장관은 북한 핵문제는 다자 대화 틀 속에서 외교적으로 해결해야한다는 기본입장을 밝히며, 남한과 일본의 역할이 중요한 만큼 3자회담 개최 여부와 관계없이 5자회담이 북핵문제 해결에 가장 유용한 수단이라는 점을 거듭 강조했다.#
이어 미국은 5자에 러시아를 포함한 '6자'회담을 제의했다. 부시 대통령은 푸틴에게 전화를 걸어 북한 핵문제는 다자 대화 틀 속에서 외교적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미국의 기본입장을 거듭 밝히고, 이에 대한 러시아의 협조를 촉구했으며, 러시아도 6자 회담에 참여하겠다고 밝혔다. ##
대한민국과 중국의 노력과, 미국 파월장관의 긍정적인 답변으로 북한은 6자회담 참가의사를 밝혔고,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3자회담 없이 직방으로 6자회담을 개최하자"고 주장했다. 6자회담을 향해 한걸음씩 나아가고 있었다.
3. 6자회담 수석대표 명칭
6자회담 당사국들은 각자의 수석대표를 가지고 회담에 응하였고 6자회담이 결렬되어 그 기능을 수행하지 못하게 전까지 각국은 대표를 갖고 있었다.현재는 각국마다 수석대표를 갖고 있지 않으나, 다른 명칭으로 사실상의 수석대표를 갖고 있는데 예시로, 남한은 한반도 평화교섭본부장, 미국의 북핵특별대표, 중국의 한반도사무특별대표, 일본의 북핵수석대표 등 다양하다. 러시아의 한반도 특임대사 및 북핵수석대표, 북한의 명칭은 북핵 6자회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수석대표이다.
참고로 6자회담 각국의 수석대표들은 대부분 외교부 출신에서 기용된다.
- 남한: 한반도 평화교섭본부장
- 북한: 북핵 6자회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수석대표
- 미국: 북핵특별대표
- 중국: 한반도 사무특별대표
- 일본: 북핵수석대표
- 러시아: 한반도 특임대사 및 북핵수석대표
4. 역대 회담 각국 수석대표
4.1. 제1차 회담
일정 : 2003년 8월 27일 ~ 29일.장소 : 베이징 댜오위타이 국빈관(중국어 정체자: 釣魚台國賓館, 간체자: 钓鱼台国宾馆, 병음: Diàoyútái Guó Bīnguǎn, 영어: Diaoyutai State Guesthouse, 일본어: ちょうぎょだい-こくひんかん)
- 각국 수석대표
- 대한민국: 이수혁(李秀赫), 외교통상부 차관보
-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김영일(金永日) 외무성 부상 (=차관)
- 미국: 제임스 켈리(James Kelly),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담당 차관보
- 중화인민공화국: 왕이(王毅), 외교부 부부장 (=차관)
- 일본: 야부나카 미토리(藪中 三十二), 외무성 아시아대양주 국장 (=차관보)
- 러시아: 알렉산드르 로슈코프(Алекса́ндр Лосюко́в), 외무부 차관
4.2. 제2차 회담
일정 : 2004년 2월 25일 ~ 28일.장소 : 베이징 조어대 국빈관
- 각국 수석대표
- 대한민국: 이수혁(李秀赫), 외교통상부 차관보
-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김계관 (金桂寬) 외무성 부상
- 미국: 제임스 켈리(James Kelly),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담당 차관보
- 중화인민공화국: 왕이(王毅), 외교부 부부장
- 일본: 야부나카 미토리(藪中 三十二), 외무성 아시아대양주 국장
- 러시아: 알렉산드르 로슈코프(Алекса́ндр Про́хорович Лосюко́в ), 외무부 차관
4.3. 제3차 회담
일정 : 2004년 6월 23일 ~ 26일.장소 : 베이징 조어대 국빈관
- 각국 수석대표
- 대한민국: 이수혁(李秀赫), 외교통상부 차관보
-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김계관 (金桂寬) 외무성 부상
- 미국: 제임스 켈리(James Kelly),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담당 차관보
- 중화인민공화국: 왕이(王毅), 외교부 부부장
- 일본: 야부나카 미토리(藪中 三十二), 외무성 아시아대양주 국장
- 러시아: 알렉산드르 로슈코프(Алекса́ндр Про́хорович Лосюко́в ), 외무부 차관
4.4. 제4차 회담
4.4.1. 제1단계 회담
일정 : 2005년 7월 26일 ~ 8월 7일.장소 : 베이징 조어대 국빈관
- 각국 수석대표
- 대한민국: 송민순 (宋旻淳), 외교통상부 차관보
-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김계관 (金桂寬) 외무성 부상
- 미국: 크리스토퍼 힐 (Christopher Hill),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담당 차관보
- 중화인민공화국: 우다웨이 (武大偉), 외교부 부부장
- 일본: 사사에 겐이치(佐佐江賢一郞), 외무성 아시아대양주 국장
- 러시아: 알렉산드르 알렉세예프(Александр Алексеев), 외무부 차관
8월 7일 제1단계 회담 휴회.
9월 13일 베이징에서 제2단계 회담 재개.
9월 19일 공동성명 발표 및 회담 종료.
4.4.2. 제2단계 회담
일정 : 2005년 9월 13일 ~ 9월 19일.장소 : 베이징 조어대 국빈관.
- 각국 수석대표
- 대한민국: 송민순 (宋旻淳), 외교통상부 차관보
-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김계관 (金桂寬) 외무성 부상
- 미국: 크리스토퍼 힐 (Christopher Hill),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담당 차관보
- 중화인민공화국: 우다웨이 (武大偉), 외교부 부부장
- 일본: 사사에 겐이치(佐佐江賢一郞), 외무성 아시아대양주 국장
- 러시아: 알렉산드르 알렉세예프(Александр Алексеев), 외무부 차관
4.5. 제5차 회담
4.5.1. 1단계 회담
일정 : 2005년 11월 9일 ~ 11월 11일장소 : 베이징 조어대 국빈관.
- 각국 수석대표
- 대한민국: 송민순 (宋旻淳), 외교통상부 차관보
-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김계관 (金桂寬) 외무성 부상
- 미국: 크리스토퍼 힐 (Christopher Hill),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담당 차관보
- 중화인민공화국: 우다웨이 (武大偉), 외교부 부부장
- 일본: 사사에 겐이치(佐佐江賢一郞), 외무성 아시아대양주 국장
- 러시아: 알렉산드르 알렉세예프(Александр Алексеев), 외무부 차관
4.5.2. 2단계 회담
일정 : 2006년 12월 18일 ~ 12월 22일장소 : 베이징 조어대 국빈관.
- 각국 수석대표
- 대한민국: 천영우 (千英宇), 외교통상부 차관보
-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김계관 (金桂寬) 외무성 부상
- 미국: 크리스토퍼 힐 (Christopher Hill),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담당 차관보
- 중화인민공화국: 우다웨이 (武大偉), 외교부 부부장
- 일본: 사사에 겐이치(佐佐江賢一郞), 외무성 아시아대양주 국장
- 러시아: 세르게이 라조프(Сергей Разов), 주중 러시아 대사
4.5.3. 3단계 회담
일정 : 2007년 2월 8일 ~ 2월 13일장소 : 베이징 조어대 국빈관.
- 각국 수석대표
- 대한민국: 천영우 (千英宇), 외교통상부 차관보
-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김계관 (金桂寬) 외무성 부상
- 미국: 크리스토퍼 힐 (Christopher Hill),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담당 차관보
- 중화인민공화국: 우다웨이 (武大偉), 외교부 부부장
- 일본: 사사에 겐이치(佐佐江賢一郞), 외무성 아시아대양주 국장
- 러시아: 알렉산드르 알렉세예프(Александр Алексеев), 외무부 차관
2월 8일 9.19 공동성명』이행을 위한『2.13 합의』 (초기조치)발표.
4.6. 제6차 회담
4.6.1. 1단계 회담
일정 : 2007년 3월 19일 ~ 3월 22일장소 : 베이징 조어대 국빈관.
- 각국 수석대표
- 대한민국: 천영우 (千英宇), 외교통상부 차관보
-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김계관 (金桂寬) 외무성 부상
- 미국: 크리스토퍼 힐 (Christopher Hill),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담당 차관보
- 중화인민공화국: 우다웨이 (武大偉), 외교부 부부장
- 일본: 사사에 겐이치(佐佐江賢一郞), 외무성 아시아대양주 국장
- 러시아: 알렉산드르 알렉세예프(Александр Алексеев), 외무부 차관
4.6.2. 2단계 회담
일정 : 2007년 9월 27일 ~ 10월 3일장소 : 베이징 조어대 국빈관.
- 각국 수석대표
- 대한민국: 천영우 (千英宇), 외교통상부 차관보
-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김계관 (金桂寬) 외무성 부상
- 미국: 크리스토퍼 힐 (Christopher Hill),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담당 차관보
- 중화인민공화국: 우다웨이 (武大偉), 외교부 부부장
- 일본: 사사에 겐이치(佐佐江賢一郞), 외무성 아시아대양주 국장
- 러시아: 알렉산드르 알렉세예프(Александр Алексеев), 외무부 차관
5. 역대 회담별 결과
5.1. 1차회담 ~ 3차회담
아래 1, 2, 3차 회담의 내용은 갈등하는 동맹(역사비평 편집위원회 엮음) - 전면적인 동맹 재조정을 위한 갈등과 협력(박선원) / KBS WORLD Radio 한반도 A to Z - 6자회담의 내용을 바탕으로 작성되었다.5.1.1. 1차회담
1. 배경한미일 3자협의
제1차 6자회담을 위한 준비로, 2003년 8월 경 워싱턴에서 남한, 미국, 일본 3개국이 모인 3자협의가 열렸다. '북핵 문제의 단계적 해결방안'이라는 잠정안이 도출되었다. 해당 초안은 본질적으로 2005년의 9.19 공동성명과 거의 비슷했다.
2. 진행
2003년 8월 27일, 베이징 댜오위타이국빈관에서 6자 대표들이 모여 역사적인 만남이 시작하게 된다. 이후 4~6개월의 간격을 거치며 2007년 10월까지 총 6차회담을 거치게 된다. 한반도 평화구축을 국정과제로 세웠던 노대통령은 긴장을 늦출 수 없는 한반도의 분위기에서 북한과 남한이 모두 참여하는 6자회담이 열린다는 사실에 크게 안도했다. 그러나 기대와는 달리, 회담은 실망스러웠다. 미국이 2주전에 진행된 한미일 3자협의의 잠정안과는 달리 강경한 입장을 주장하였기 때문이다. 북한의 입장 또한 베이징 3자회담 때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3. 주요 쟁점[참고]
- 미국: 북한의 우선적인 핵포기 및 양자회담 불가라는 입장을 내놓았다. 북한이 핵무기 개발 계획을 불가역적으로 완전히 먼저 포기해야 안전보장 및 정치경제적 혜택에 대해 논의할 수 있다는 강경한 입장이었다.
- 북한: 핵문제 해결 조치는 동시행동으로 이루어져야한다고 주장했다. 미국의 적대적인 대북정책을 철회하는 것이 북핵문제 해결의 열쇠라고 주장하였다. 이에 더불어 불가침조약 체결, 조미 외교관계 수립, 경제봉쇄 해제를 요구하였다. 정리하자면, 북한의 핵 동결과 미국의 보상은 동시행동으로 이루어져야한다고 말했다.
- 중국: 북한 요구의 합리성을 인정하고, 북미 간 양자대화를 주장하였다. 북한이 제기한 불가침조약 체결, 조미 외교관계 수립, 경제봉쇄 해제는 정당한 요구이며, 불가침 조약은 북미 간 대회로 성립되여야한다고 말했다. 중국 또한 한반도 비핵화와 북한의 안보우려는 동시에 해결되어야한다는 입장이다.
- 남한: 북한이 주장한 동시행동에 대한 순서를 제시하였다. 또한, 북한에 대한 인도적인 지원을 지속하겠다는 의사를 내비쳤다.
4. 결과
미국과 북한의 강경한 입장으로 인해 합의문은 내지 못하고, '의장요약 발표문'을 통해 차기 회담을 개최할 것에 뜻을 모았다고 발표하였다.
5.1.2. 2차회담
1. 배경제1차 6자회담 이후 북한의 도전은 재개되었다.[예] 미국 부시 대통령은 대북 안전보장을 문서로 제공할 용의가 있다고 밝혔고, 북한이 이에 환영하며 6자회담을 개최하자고 응해왔다. 중국 측은 1차 6자회담에서 중지된 공동성명 초안을 보완하였고, 한미일이 다시 한 번 공동으로 제2차 6자회담 성명의 초안을 합의하였다. 이는 중국을 통해 북한으로 전달되었고, 북한도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이렇게 제2차 6자회담이 잘 풀릴려는 듯이 보였으나, 분위기가 경직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영국의 협상으로 리비아가 핵계획을 거의 포기하는 단계까지 왔기 때문이다. 미국과 영국은 리비아가 초기 단계의 우라늄 계획을 포기하면 영국의 대규모 동격자산을 사용할 수 있고, 미국과 관계개선도 속히 진행될 것이라는 공약을 내놓았다. 그렇기에 미국은 이러한 분위기가 끊어지고 주고 받기 식의 협상을 통한 핵 포기를 원치 않았다.
2. 진행
2004년 2월, 제2차 6자회담이 열렸지만, 1차회담과 마찬가지로 성과가 없었다. 파키스탄에서 북한으로 우라늄 계획 설계가 전달되었다는 정보가 외부로 흘러나와 미국 정부는 더욱 강경해진 것이다.
3. 주요 쟁점[*참고 KBS 한반도 정세 - 6자회담의 내용을 다수 참고하였다.
- 미국: 고농축우라늄(HEU) 프로그램, 평화적 핵이용 CVID 요구라는 입장을 내놓았다. 북핵의 개념 및 범위에 있어 기존의 플루토늄 방식의 핵무기 프로그램에 더해 HEU 프로그램과 핵의 평화적 이용을 포함한 CVID를 요구하였다.
- 북한: 미국의 대북적대정책 포기 를 강조하였다. 1차회담 때의 주장을 지속하였다. 대북적대시정책 전환의 증거로 불가침조약/북한의 자주권 존중 및 북미관계 정상화/대북 경제봉쇄 해제를 다시 한 번 주장하였다. 추가적으로, 북한은 핵무기 프로그램 동결 및 CVID 공약에 대한 미국의 보상에 대해 구체적으로 확인하였다. 즉, 핵무기 폐기 용의를 간접적으로 밝혀 북한으로서는 타협적인 자세를 취했다고 볼 수 있다.
- 미국과 북한의 이견 조정 실패: 북한은 고농축우라늄(HEU)의 존재에 대해서는 부인하였고, 경제난 극복을 위해 핵의 평화적 이용(원자력)까지 포기할 수 없는 상황이다. 결국 북핵의 CVID 범위를 두고 미국과 북한은 이견 차이를 좁히지 못하였다.
- 남한: 3단계 북핵 해결 방안[* 대한민국의 3단계 북핵해결방안을 제시하여 해당 안건이 6자회담 협상의 틀로 자리잡았다.
4. 결과
6자회담 참가국 간 최초의 합의문건이라 할 수 있는 '의장성명(Chairman's statement)를 발표하였다. 의장성명에는 '한반도 비핵화'와 '참가국의 평화적 공존'에 반드시 '상호 조율된 조치에 취할 것'에 합의하였다. 그러나 북핵 CVID의 범위에 대한 북미 간 이견을 좁히지 못해 공동성명을 제출하지 못하였다.
5.1.3. 3차회담
1. 배경1, 2차회담을 진행하며 노 대통령의 입장은 분명해졌다. '진지한 한미(일) 실무협의 -> 지지부진한 미국의 실무협의 승인 과정 -> 한미(일) 협의 변경'의 고리를 끊어야 했다. 남한 정부는 여기서 벗어나서 납북협의를 통한 북핵 문제 해결을 추진해야했다.
2. 진행
대한민국의 이러한 입장을 NSC는 미 차석대표인 조 데트라니(Joe DeTrani) 대사에게 전달했다. 미국은 반응을 보였고, 대한민국의 권진호 국가안보보좌관과 미국의 라이스(Condoleezza Rice)보좌관은 제3차 6자회담에서 대한민국과 미국이 공동으로 제출할 제안서를 준비하자고 합의하였다. 해당 제안서는 미국이 처음으로 제시한 체계적인 방안이었다. 이번에는 회담이 무난하게 진행되었으나, 8개항의 의장성명만 채택되고 공동성명은 끝내 채택되지 않았다.
3. 주요 쟁점[참고]
- 미국: 6자회담 시작 후 처음으로 구체적인 안을 제시하였다. 이 안은 2차회담에서 대한민국이 내놓은 '3단계 해결방안'[* 미국의 제안과 유사하다. 특히나, 북한이 핵동결을 실행하면 미국이 에너지 지원과 대북 안전보장 조치를 취하는 것에 동의하며 북한의 요구를 포함하였음을 알 수 있다.
- 북한: 핵동결 및 핵폐기에 대한 전향적인 입장을 드러냈다. 일정 조건만 갖추어지면 핵무기와 관련된 모든 시설에 대한 핵동결에 들어갈 용의가 있으며, 여건만 되면 더 나아가 핵 폐기도 가능하다는 입장이었다.
4. 결과
미국과 북한은 이전과 달리 합리적이고 건설적인 안을 제시했으나, 북-미간 뿌리 깊은 불신 때문에 상대의 행동을 확인해야만 행동하겠다는 입장을 굽히진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 대선이 다가왔고, 미국은 대선에서 북핵문제가 쟁점으로 부각되는 것을 원치 않았다. 그래서 드러나지 않는 선에서 국가안보좌관-NSC 사무차장-NSC행정관 등 직급별로 활발히 활동했다. 소위 '물밑 정책 조율'시간었다. 이때 북한은 실질적인 핵 개발 능력이 높지 않았기 때문에, 전술적으로는 강하나 실제로는 약세였다. 이때 만약 미국이 적극적으로 움직였다면 북핵문제는 현재 완전히 다른 국면을 맞이하였지도 모른다.
5.2. 4차회담 ~ 6차회담
5.2.1. 4차회담
2005년 9월 19일, 4차 회담에서 6개국은 회담의 목표가 한반도의 비핵화를 이루는 것임을 재확인하고 북한의 IAEA 안전조치 복귀 및 핵 확산 금지 조약에 가입 할 것을 주된 목적으로 하였다. 한편, 미국/일본은 북한과의 관계를 회복하기로 약속하고 북한의 문제인 전력/경제적 문제를 지원하기로 하였다. 남한은 북한에 200만kW 전력을 제공하는 것을 재확인하면서 북한의 핵 문제에 대하여 진일보 발전하게 되었다.(9.19 공동성명)5.2.2. 5차회담
2006년 북한의 1차 핵 실험으로 인해 신뢰가 깨진 상황에서도 5차 회담에서는 '2.13 합의'로 영변 핵시설의 연료봉을 봉인하는 등의 소기의 성과를 이끌어 내었으며 북한의 핵 개발 위험이 있을 때마다 주변 5국이 모여 한 뜻으로 북한을 압박하면서 비핵화와 경제 개방을 이끌어내고 있었다.- 2·13 합의의 내용 : 북한의 핵시설 폐쇄와 불능화, 북한의 핵 프로그램 신고와 이에 상응하는 5개국의 에너지 100만t 지원, 북한의 테러지원국 지정 해제 과정 개시 등
5.2.3. 6차회담
2007년 9월 6일 이스라엘이 시리아 핵시설을 폭격했다. 폭격 전에 미국이 명확한 증거를 요청했고 이스라엘 특수부대가 해당시설에서 핵시료를 채취해 원산지가 북한임을 확인한 후 폭격승인했다. 이로써 북한은 2005년 6자회담 제4차 회의의 9.19공동성명의 약속인 NPT(핵확산방지조약)에 복귀할 뜻이 없음이 명백해졌다. (북한의 시리아 핵확산으로 6자회담 제6차 2단계 회의 결과인 10.3합의의 승인 여부를 두고 찬성파인 라이스 국무장관과 반대파인 체니 부통령의 의견이 갈렸으나, 부시 대통령은 합의안을 승인했다.)2007년 10월에는 소위 '10.3 합의'로 유명한 북한의 비핵화를 이끌어 내었다. 주요 내용으로 북한의 영변 핵 시설에 IAEA와 미국/러시아의 핵전문가의 사찰을 받고 단계적으로 폐기하는 절차를 밟기로 했다. 한면, 미국은 북한을 테러지원국에서 해제-북한의 금융자산 동결을 해결하기로 하였다. 이후 2007년 연말 북한은 사찰을 받아들였고 다음해 8월 냉각탑을 폭파하는 등의 비핵화 순서를 밟고 있었다. 2008년 검증의정서에 작성에서 1차적으로 북한이 시료채취 등 검증의 핵심사항에 대한 기존의 입장을 굽히지 않았기 때문이다. 북한은 나무의 나이테처럼 북한의 핵 능력을 속속들이 보여줄 수 있는 시료 채취 등 핵심 검증방법을 현 단계에서는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을 완강하게 견지했다. 북한은 10일 전체회의에서도 "시료 채취는 우리 핵 능력을 까발리는 것"이라며 강하게 반발했었다. 한마디로 자기무덤을 판 셈이고 지금까지도 열리지도 못하고 있다.
- 10·3 합의의 내용 : 2007년 말까지 북한이 핵시설을 불능화하고 핵 프로그램을 신고하는 대신 미국 측은 북한에 대한 테러지원국 명단 삭제와 적성국무역법에 따른 제재 해제, 5개국의 중유 100만t에 해당하는 경제적 보상 완료 등이 골자이다.
6. 결과 정리
6자회담 결과로 북에 제공된 물자(2008년 8월 기준) 중 대한민국분담분, 중유 수만t에 해당하는 철강재 5천t. 환강 600t. 박강판 80t. 그 외 중유는 약 20만t 정도이다.2005년에 9.19공동성명을 채택했다.
2006년 북한이 1차 핵실험을 감행했다.
2007년에는 2.13합의(9.19공동성명의 초기조치) 이스라엘-시리아 핵시설 폭격과정에서 밝혀진 사실로는 북한의 NPT 복귀의지가 없음을 확인했다. 10월 3일에는 10.3합의(9.19공동성명의 2단계조치)를 채택했다.
2008년에는 8월 26일에 북한 영변 핵시설 불능화 중단 성명을 발표했으나 북한은 9월 3일에 영변 핵시설 복구에 착수했다. 10월 11일 미국은 북한을 테러지원국 해제 공식발표했다. 3일 뒤 10월 14일에는 북한이 영변 핵시설 불능화 작업을 재개했다.
2009년 1월 20일에 미국 부시 대통령의 임기가 종료되자 북한은 2.13 및 10.3 합의 등 과거 6자회담 합의를 사실상 파기하고, 불능화중이던 영변 핵시설을 복구했다. 5월 25일에는 2차 핵실험을(1차 핵실험 후 3년) 강행함으로써 북핵문제는 2005년의 4차 6자회담의 의장국으로서 중국이 북한을 압박하여 이끌어낸 9.19공동성명하의 해결방식이 완전 파기되었다.
결론적으로 북핵문제는 미ㆍ중ㆍ러ㆍ한ㆍ일이 참가한 6자회담 구도의 외교적 노력과 북한의 외교적 신뢰를 소진하고 UN제재라는 새로운 외교적 구도로 넘어갔다.[11]
2009년 조지 W. 부시 행정부는 6자회담을 부시 대통령의 대표적인 외교 성과로 홍보하였다.#
6자회담 미국측 수석대표를 역임한 크리스토퍼 힐은 헨리 키신저가 대통령에게 직접 연락해 설득하는 등 6자회담에 적극적이었다고 전했다.#
6.1. 회담 이후
현재 북한과 제일 가까운 중국의 협조와 역할이 가장 중요하지만... 현실은 시궁창.2016년 북한의 4차핵실험 이후 박근혜 대통령이 6자회담 무용론을 내세우면서 북한을 뺀 5자회담을 제안했다.
2017년 3월 중국은 현재까지도 6자회담이 북핵문제에 효과적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2017년 4월 북한 신홍철 외무성 부상은 "우리(북한)의 핵무기 보유는 허구가 아니다. 이건 미국의 달러와 교환하거나 팔 수 있는 상품도 아니다. 따라서 이를 없애기 위한 협상 테이블에 올릴 수 있는 것도 아니다."라면서 "한반도의 비핵화를 목표로 한 6자 회담은 태어났을 때 목이 졸려버렸다"고 비난했다. #
2017년 10월 JTBC 보도를 보면 최선희 북 외무성 국장 인터뷰에서 대화를 통한 외교적 해결을 원하지만, 비핵화를 강요하는 대화엔 응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즉 기존회담인 6자회담에도 부정적이라는 입장도 밝혔다. 기사
2018년에는 일본의 닛케이신문이 김정은이 시진핑을 만났을 때 6자회담의 재건을 바란다는 취지의 말을 전달했다고 보도했다. 만약 이게 사실이라면 11년 만에 6자회담이 다시 이루어질 수 있었다. 그리고 이 당시 남북한관계가 호전되면서 러시아의 푸틴이 6자회담의 재개 필요성을 피력하기도 했다.
사실상 2008년 이후로 폐기처분된 6자회담의 재개를 한미일은 별로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반면 북중러는 재개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입장이다. 그러나 2009년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도 "6자회담은 영원히 끝난 회담"이라고 밝혀 의미가 없어지고 있다. #
7. 창작물에서
대놓고 묘사되진 않지만 북한 강경파를 비롯한 한반도 주변에서 음모를 꾸미는 악역들과 많이 엮인다.8. 같이 보기
- 북핵 HEU 관련 주요 일지 (2010-11-21)
- 김정일 극비 문건 "6자회담 이용해 핵 개발" / YTN
9. 관련 문서
10.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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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장관이나 차관 혹은 대사 등 고위직 외교관 출신이다[2] 대한민국은 냉전 막바지에 소련과 수교한 적이 있긴 하다.[3] 언뜻 남북문제가 아니냐라고 할 수도 있지만 북한은 정전협정 당사국에 남한이 없다는 이유로, 공식적으로는 미국만 상대했었다. 이를 통미봉남이라 한다.[4] 하지만, 이는 북한의 핵개발을 위한 시간벌기용에 지나지 않았고 남한은 여기에 이용당하게 된다. 북한의 6자회담 목적은 미국과 남한을 상대로 유화적인 제스처를 취하면서 자신들의 핵개발 진행에 대한 관심을 돌리기 위함이었다.[5] 베이징 3자회담의 내용은 갈등하는 동맹(역사비평 편집위원회 엮음) - 전면적인 동맹 재조정을 위한 갈등과 협력(박선원)의 내용을 바탕으로 작성되었다.[6] 출처: 갈등하는 동맹 (역사비평 편집위원회 엮음), 208p에서 인용.[7] 출처: 갈등하는 동맹 (역사비평 편집위원회 엮음), 209p에서 인용.[참고] KBS 한반도 정세 - 6자회담의 내용을 다수 참고하였다. https://world.kbs.co.kr/special/northkorea/contents/archives/six-party/1st_round.htm?lang=k[예] 2003년 10월 2일 폐연료봉 8000여대 재처리 완료, "핵 억제력을 물리적으로 공개할 것"이라는 발표 등이 있다.[참고] KBS 한반도 정세 - 6자회담의 내용을 다수 참고하였다. https://world.kbs.co.kr/special/northkorea/contents/archives/six-party/3rd_round.htm?lang=k[11] 2000년 8월 22일 현대아산(주)와 북한과의 합의로 시작되고, 2003년 6자회담의 외교적 구도에서 탄력을 받아 추진되어 본격적으로 운영된 ㅣ(2007년에는 1단계 분양 및 1단계 1차 기반시설이 준공) 개성공단사업도 암울한 미래를 예고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