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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19-06-26 18:31:26

탈북



1. 개요2. 상세3. 북한이탈주민4. 탈북 경로
4.1. 해외 주재 중 탈북4.2. 중국 + 제3국 루트4.3. 휴전선 루트
4.3.1. 휴전선 루트 귀순 사례
4.4. 러시아 루트4.5. 기타
5. 가짜 탈북자
5.1. 진짜로 탈북5.2. 돌아갈 수가 없다
6. 관련 사건7. 탈북을 다룬 영상물

1. 개요

탈북(脫北)이란 북한 인민들이 보다 나은 삶을 위해 북한에서 남한이나 다른 제3국으로 도망치는 것을 말한다. 탈북은 북한이 윗들이 개념을 안드로메다로 내보내면 아랫사람들이 얼마나 고생하는지를 대변하는 척도다. 반대말은 월북.[1] 이 글에서는 탈북을 다루고 있으며 탈북자는 링크 참조.

이 문서는 북한에 거주중인 주민들의 탈북을 성공적으로 돕기 위해서도 작성되었다.

2. 상세

탈북자들은 입을 모아 철저히 세뇌당한 사람이 아닌 이상 대부분의 주민들은 도망치고 싶어한다고 말한다. 북한도 엄연히 사람이 사는 곳이다. 이제 만나러 갑니다의 한 에피소드에 따르면 북한 주민들 사이에 '가장 똑똑한 놈은 남한으로 가고, 그 다음 똑똑한 놈은 중국으로 가고 가장 바보같은 놈은 북한에 남는다'는 말이 성행했을 정도라고 한다. 다만, 탈북자들의 탈북경로를 들어봐도 알 수 있듯 탈북이란 것 자체가 엄청난 결단과 비용을 요구하는 일이다.

게다가 북한은 이동이나 여행의 자유가 없다. 북한 내의 한 지방에서 다른 지방으로 가는 것조차, 여행증이나 통행증이 없으면 불가능하다. 심지어 수도인 평양은 특별 허가증이 없으면 출입이 불가능한 데다가 출신 성분이 불분명한 이들은 아예 허락조차 되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실질적으로 탈북이 많이 일어나는 곳은 함경도, 양강도와 같은 국경 지역 출신들이 대부분이다. 즉 탈북하고 싶어도 지리적 여건이나 형편이 함경도민들 외에는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것. 평안도, 자강도압록강이 인력으로 도강을 할 정도가 되지 못하다 보니 이쪽 출신도 별로 없다는 점이 크다. 두만강은 압록강보다는 건너기가 수월한 듯하다. 해외여행은 꿈에서나 가능할 정도다. 설사 해외로 나왔다고 해도 정부에서 파견한 감시인의 감시 하에 일거수 일투족이 보고되는 것은 기본이고 그 감시 체계를 벗어난다는 것 역시 엄청난 모험이다. 그나마 뇌물이라도 상납하면 못 본 척 넘어가긴 하지만 일반 주민들이 그런 금액을 마련할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어렵다.

냉전 시기에는 탈북자들을 대대적으로 환영하고 기자회견 등을 통해 반공 태세를 강화하는 데 이용하였다. 이때는 보통 '탈북'이 아니라 '귀순'[2]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탈북'은 94년 고난의 행군 이후 급격히 탈북자가 늘어나면서 쓰게 된 명칭이다.

과거 냉전 붕괴 이전에 남한과 북한의 체제 경쟁이 심할 때에는 이들의 존재 자체가 아주 훌륭한 선전 효과를 가졌기 때문에 탈북자가 남한에 들어오면 대대적인 환영 행사와 언론 보도를 하는 것이 관행이었다. 하지만 1990년대 이후에는 북한 경제가 급격히 막장테크를 타면서 탈북자의 수가 매년 1~2만명으로 늘어나고, 체제 경쟁 구도도 약해지면서 이런 관행은 거의 사라졌다.

물론 탈북자들에게 전혀 신경쓰지 않는 것은 아니다. 현재 탈북자들은 경기도 안성시에 소재한 하나원에서 남한 사회에 대한 적응 교육을 받고, 공식적으로는 새터민이라는 명칭으로 불리게 된다. 하나원에서는 북파공작원 전역자들에 대한 적응교육도 담당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러한 교육에도 불구하고 새터민들이 하루아침에 복잡한 자본주의 사회에 적응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닌지라 사기 피해를 매우 많이 당하는 편이다. 또한 정부에서는 소정의 지원금을 주는데, 이것을 위해 탈북 전문 브로커들이 기승을 부리기도 한다. 심한 경우에는 정착금 300만원을 받았는데 이중에서 브로커 비용이 290만원인지라 딱 10만원 남았다는 후기도 있었다.

탈북은 최소한 목숨을 걸 각오가 필요한 행위이다. 직접적인 탈북, 탈북 음모는 물론 탈북 방조까지도 북한에서는 목숨을 걸어야 한다. 북한에서 탈북자들은 아오지 탄광이나 요덕 수용소를 비롯한 정치범수용소에서 여생을 보내기도 하며 가족이나 친척들 중에도 이러한 보복을 받는 경우가 대다수다. 북한은 연좌제가 버젓이 살아있다는 점을 기억하고 있어야 한다.

하지만 급증하는 탈북자를 두고 탈북자들 사이에서도 말이 갈린다. 실제로 어느 탈북자는 몇번이나 탈북 기도하다가 걸렸음에도 운 좋게 구타 및 욕설과 수용소 생활 끝에 나왔다고 한다. 심지어 자신을 취조하던 군 간부가 "탈북하려는 거 보니 돈 좀 있는 모양이지? 그거 좀 주면 내가 봐주겠네."라는 말까지 들었다고 한다. 사실 북한도 고위간부급이 되지 않는 이상 당원이라도 월급이 좀 박하기 때문에 이런 식으로 돈을 벌려고 하는 당원들이 많다고 한다. 물론 썩어도 준치라고 서민층들보다는 돈을 모으기 상대적으로 수월하기는 하다. 운 나쁘게 걸려들지만 않는다면... 실제로 중국에서 탈북자들이 잡혀 북송되면 그들이 중국에서 모은 돈은 보위부에서 전부 다 뺏는다. 그리고 이 탈북자는 돈을 바쳐서 나와 이전처럼 아무렇지 않게 일하다가 결국 중국을 거쳐 동남아시아를 통해 10여명의 탈북자 동료와 같이 남한으로 오는데 성공했다. 그 중에는 절반이 같이 수용소에서 탈북기도하다가 걸려 수감된 이들이었다고 한다.

최근에는 북한의 경제가 더욱 악화되어 감시자들이 탈북을 눈감아주는 대가로 받는 돈의 금액이 정해져 있을 정도라고 한다. 심지어 지방에서는 '기획탈북'이라는 것까지 생겼는데, 지역의 정치지도원이나 경찰간부가 탈북을 시켜준 후 탈북자에게 북한에 남아 있는 가족들에게 돈을 송금하도록 브로커 역할을 하는 것. 돈을 받았다는 인증사진까지 찍어서, 탈북자에게 보내준다고 한다. 더욱이 더욱 기가 막힌 것은 아예 이를 위해 간부가 오히려 탈북하라고 부추긴 경우까지 있었다고 한다.

한겨레중고등학교 재학생들과 인터뷰를 한 것 중에는 탈북 도중에 혼자 잡혀서 북한으로 돌아갔는데(즉, 뇌물을 마련하기가 불가능에 가까운 상황인데) 3달 가량 감옥에 갇혔다가 고아원으로 보내졌다는 이야기도 있다. 그러고는 고아원에서 도망쳐나와 친척집에 머물다가, 남한에 있는 가족과 연락이 닿아 재차 탈북을 시도해 성공했다고. 탈북자에 대한 처우도 때에 따라 달라진다고 볼 수 있을 듯하다.

어떻게 보면 당연하기도 한데, 탈북자들이라고 하여 다 같은 탈북자가 아니다. 대한민국 국민이 연상하는 탈북은 북한을 탈출하여 남한에 들어오는 것을 패키지로 의미하는 경우가 많은데, 탈북자들이 흔히 "탈북했다가 잡혔다"는 말을 할 때 의미하는 탈북은 북한을 탈출하는 행위까지인 것. 묘하게도 탈북하기 전 한국으로 가겠다고 미리 결심한 후 탈북한 사례는 그리 많지 않다. 대부분이 북한이 당면하고 있는 경제실정과 이로 인해 발생하는 여러가지 문제를 벗어나기 위해 일단 북한을 뜨자는 일이 대부분이고, 한국행을 결정하는 것은 중국이나 러시아로 나왔다가 거기에서 대한민국과 관련된 매체나 정보를 접한 뒤 가겠다고 결정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실제로 북한 탈출 후 중국 등지에서 유랑 생활을 오래 하다가 들어온 탈북자들이 많다. 이 역시 중국에서 생활을 하다가 한국과 관련된 뉴스나 한국 드라마를 시청하고 나서야 한국의 실상을 알고 남한으로 오는 경우가 많다. 국경지역이나 한국 드라마를 비밀리에 접할 수 있는 사람들 빼고는 남한에 대한 실상을 모르는 이들이 대부분이다. 곧바로 남한으로 직통으로 들어오는 경우는 흔하지 않은데, 이와 같이 직통으로 들어오는 탈북자들은 처음부터 남한까지 오는 것을 계획하고 북한을 탈출한 고위층이거나 이미 남한에 정착한 탈북자가 기획하여 가족을 데려오는 경우 등이다. 북한에서도 탈북해서 중국으로 가는 것 자체로는 그다지 처벌이 중하지 않아서 노동교화형이나 노동단련형정도로 처벌 받고 석방되는 경우가 많지만, 남쪽으로 오는 순간 엄청난 중죄가 된다.

간단히 정리하면 이렇다. 중국에서 잡힌 경우는 북한에서도 생계형 탈북으로 봐서 길게는 5년 정도 수용소에 갔다가 풀려나지만, 중국과 3국의 국경 지대, 제 3국, 중국의 공항이나 항구, 중국 영해 등에서 잡히게 되면 다른 나라, 특히 한국으로 가려는 의도로 봐서 그 처벌 수위가 기본 10년형의 중형으로 늘어난다. 심하면 사형도 당한다.

그래서 탈북자 가족들은 현지에서 대부분 탈북자에 대해 행방불명이나 가족들 몰래 중국으로 간 것으로 해놓고 확인이 안된다는 것을 이용하여 보위부에 뇌물 먹이고 눈 감아달라고 하는 경우가 많다. 먹고 살기 힘들어서 탈북했는데 가족들에게 뭔 돈이 있냐 싶지만, 놀랍게도 남한에서 번 돈을 북한에 송금하는 것이 가능하다. 생각해 보면 간단하지만, 남한에서 중국에 송금하는 것은 그렇게 어렵지 않고, 중국에서 북한으로 송금하는 것도 마찬가지이니 2단계만 거치면 돈이 넘어갈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중간에 브로커 여러 명이 끼기 때문에 30% 정도가 수수료로 들지만, 그 돈이 가족들에게 전달되면 그 가족들은 동네 안에서는 꽤 부자가 된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중국 가서 돈을 번 가족이 보냈다"고 거짓말하겠지만.

하지만 재입북자가 하나원 동기들을 기억해 내서 신상을 발설하는 순간 탈북자 한 기수 가족들이 줄줄이 수용소행이 된다. 이에 대해서는 본 문서의 '돌아갈 수가 없다' 문단 참조.

3. 북한이탈주민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북한이탈주민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4. 탈북 경로

4.1. 해외 주재 중 탈북

대만, 싱가포르, 쿠웨이트, 이집트, 러시아, 잠비아, 홍콩, 영국, 오스트리아, 체코 등 다양한 국가에서 이런 사례가 있다. 중국-러시아를 통해 다른 나라로 밀입국해서 하는 탈북과는 난이도가 다르다.

중국령이지만 1국가 2체제인 홍콩에서는 1996년 이후 탈북이 거의 없으며, 2016년 최초로 탈북이 발생했다. 치안이 좋아서 홍콩 경찰을 뚫고 밀입국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홍콩소재의 홍콩과기대에서 열리는 국제수학올림피아드에 참석한 북한 고등학생이 한국 총영사관을 통해 탈북한 것이다. 대만이나 싱가포르 역시 중국 본토와 떨어져 있고 치안이 좋아서 밀입국할 방법이 없다. 탈북작가 림일은 1997년 쿠웨이트로 해외노동자로 파견되었다가, 그곳에서 한국 대사관을 통해 귀순했다.

해외를 통한 탈북도 어느 정도 막기 위해 북한에서는 11살 미만의 어린이를 제외하면 해외 출장 등이 있다 해도 가족 전원이 해외로 나갈 수 없도록 만들었다. 북한에 남은 가족을 인질로 삼아 탈북하면 수용소행 내지는 사형이라는 압박을 하는 것이며, 집단 탈북이 발생했을 시에는 그들의 가족을 매체에 출연 시키며 "남한에서 이들을 납치했다"는 식의 여론전을 펼치는 경우도 많다.

드물게 납북되었다가 탈북한 경우도 있는데, 영화배우 최은희와 영화감독 신상옥 부부는 1978년 홍콩에서 납북되었다가 납북 8년만인 1986년에 오스트리아 에서 미국 대사관으로 도망쳐 탈출하는 데 성공한 바가 있다. 당시 최은희, 신상옥 부부는 때마침 알고 지내던 일본 교도통신 순회 특파원이 빈에 머물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그에게 연락을 취해 다음날 만나자는 약속을 받았다. 다음날 그가 숙소로 찾아오자 이들 부부는 식사하러 가는 척 하며 북한 감시원들을 따돌렸고, 이들이 탄 택시가 타고 숙소를 벗어나자 택시 기사에게 차를 돌려 미국 대사관으로 가 줄 것을 요청했다. 그리고 미국 대사관 앞에 이르렀을 때, 이들은 택시 요금을 낼 겨를도 없이 곧장 택시에서 내려 황급히 미국 대사관으로 뛰어들어갔다.

김정은 정권이 들어서 외교관 탈북자들이 늘어나고 있다. 특히 UN의 대북제재가 시작되면서, 본국으로 송금해야 할 김씨 일가의 자금을 마련하지 못한 외교관들이 본국의 압력을 견디다 못해 탈북을 결심한다고 한다. 일반 탈북자와 다르게 탈북할 수 있는 환경이 용이하다.

러시아에 벌목공으로 파견된 북한 사람들이 탈북하는 사례는 늘고 있다. 2016년 8월 블라디보스토크에 파견된 북한 외교관 2명이 탈북하였다. 2016년 10월 상트페테르부르크에 파견된 북한 노동자 10명이 총영사관에 자발적으로 망명 의사를 밝혔다.

그런 만큼 일반인보다 고위층들은 가족들과 있으면 탈북이 더욱 쉬어지며, 최근 들어서는 위험성이 있는 한국으로 가는 탈북은 안가는 경우가 있다. 2018년 11월에 주이탈리아 북한대사관의 조성길 대사대리가 미국으로 망명을 신청한 것으로 확인되기도 한다.#

4.2. 중국 + 제3국 루트

일반 북한 주민이 선택할 수 있는 가장 가능성 높은 방법이자 가장 하이 리스크 로우 리턴인 방법이다. 압록강두만강을 야간[3]에 넘어 중국으로 이동 후 중국 본토 혹은 제3국[4]을 거쳐 [[한국으로 입국하는 경우가 있다. 대부분은 두만강을 통해 탈북한다. 중국 정부는 탈북자 단속에 열을 올리는데, 이는 북한과 맺은 협정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이를 방치하면 중국(정권)에는 도움이 될 것이 없기 때문에 단속을 하는 것이다.

그리고 북한에서는 돈이 많은 계층이나 여권을 발급받고, 돈 없는 사람들은 외국으로 갈 때 여권이 따로 필요하다는 개념 자체를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더더욱 걸려들 수밖에 없는 것. 중국 루트로 가기 위해서는 주로 양강도에 위치한 위연역을 이용한다. 위연역은 압록강과 별로 멀지 않아서 걸어서 갈 수 있다. 그리고 그 곳의 정치장교들에게 뇌물을 주고 강을 건넌다. 탈북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간부들이 어슬렁거리다가 한 눈에 봐도 탈북할 것 같은 사람들이 보이면 접근하고 꼬드껴서 꽤 많은 양의 뇌물을 받아챙긴다고 한다. 아마 거기 간부들의 주 수입원일 것이라고 한다.

한편, 중국으로 건너가는 것 자체는 그리 큰 처벌과 어려움이 없다는 주장도 있는데 그 이유는 중국과의 밀무역이다. 현재 북한의 장마당에는 상당량의 중국 물품이 들어와 있는데, 이 말인 즉슨 중국과 북한 간의 밀무역이 활발하다는 증거이다. 밀무역 과정에서 북중국경을 넘는 일은 필연적으로 발생하고, 때문에 탈북 목적이 아닌 단순 밀무역을 위해 국경을 넘는 경우도 상당하다. 북한 보위부 입장에서도 이거 막을 만한 인력이나 자원도 없고 함부로 막았다가는 굶거나 폭동(!)이 일어날 판이니 탈북정황이 확실하지 않으면 적당히 삥을 뜯거나 협박하는 선에서 끝난다는 주장도 있다. 단, 잡히는 위치가 랴오닝성, 지린성, 헤이룽장성, 내몽골 자치구 일부 등 북한과 가깝다면 상관없지만, 광둥성 등의 남부지역이거나, 신장 위구르 등의 서부지역이면 그대로 끝이다. 여기까지 와서 밀무역을 한다는 핑계는 통하지 않는다고 한다.

사회주의 국가인 라오스베트남이나 독재 국가로서 친중파가 많은 캄보디아도 탈북자 단속이 상당히 되는 편이며 잡히면 북송되어서 중형을 선고받게 된다. 라오스는 한국 정부가 직접 손 겉어붙이고 나서자 갈등하다가 북송을 취소한 적이 있는데, 중국보다야 대화의 여지가 더 있다지만, 이 정도의 외압이 없으면 라오스에서도 북송된다는 얘기다. 지난 2013년 라오스 탈북 청소년 사건이 있었는데, 현지 한국대사관은 탈북자들의 신병이 억류돼 있던 18일 동안 단 한 차례도 영사면담을 하지 않았다. 결국 청소년 9명이 북쪽으로 압송되어, 이 루트는 현재 사실상 붕괴된 상태다.

태국을 탈북 루트로 사용하는 경우 태국에 도착한다면 밀입국 벌금을 내고 한국을 포함한 원하는 나라로 추방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탈북자들은 태국까지만 도착하면 매우 기뻐하며 안도의 한숨을 쉰다고 한다. 태국과 함께 몽골도 탈북자를 인도적으로 대우하는 나라이기 때문에 이 쪽으로도 많이 간다. 다만 중국 국경에서 태국이나 몽골까지 가는 경로는 밀림과 사막으로 이루어져 있어 매우 혹독하기 때문에 여기서 변을 당하는 경우가 많다. 한 탈북자는 태국으로 가기 위해 밤에 다른 탈북자들과 몰래 동남아시아 국경지대의 강을 건너다가 같이 건너던 여성 한 명이 월경 중이었는지라 피 냄새를 맡고 몰려든 악어한테 물어뜯기는 것을 목격했다고 한다. 모래사막을 건너야 하는 몽골 루트의 위험성은 영화 크로싱경계에서도 묘사된다. 이쪽은 북송 걱정은 없어도 목숨이 간당간당하다.

태국,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등 북송을 시키지 않는 국가에서는 현지 이민국에 불법입국으로 자수하는 방법을 택하고, 중국이나 러시아 등 북송을 시키는 국가에서는 우리가 뉴스에서 한번쯤은 봤던 현지의 대한민국 대사관에 현지 경비를 뚫고 들어가 신변보장을 받는 방법을 썼었다. 이 때문에 대한민국 대사관이 중국 공안들의 감시가 심해지자, 제3국의 대사관으로 집단 돌진하는 것이 한때 유행했다.

하지만 이마저도 공안들이 모든 대사관 정문의 경비를 강화하면서 점점 힘들어지고 있으며, 특히 막무가내로 뚫고 들어가는 건 이젠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한다. 담을 넘어 들어가는 것도 전기철조망이 담에 쳐져 있어서 불가능하다. 주중 일본 대사관은 아예 중국 공안이 대사관 안에 걸어들어와 탈북자를 체포하는 것을 방기하다 걸려 국제적으로 욕을 바가지로 먹은 바가 있다.

이외에 신분증을 만드는 브로커를 통해 여권을 위조하거나 죽은 사람의 호적을 사서 위명여권을 발급받은 뒤 무비자로 입국 가능한 제주특별자치도로 비행기를 타고 와 제주공항 출입국사무소나 제주경찰서 등지에서 자수하는 방식으로 입국하기도 한다. 타 루트에 비하면 거리가 짧고 일단 비행기가 뜨면 안심할 수 있지만, 출국심사 중에 걸리면 도망칠 길도 없기 때문에 위험성이 큰 루트다.

여성들의 경우 조선족들에 의해 인신매매의 대상이 되는 경우가 굉장히 많다. 중국의 시골 노총각들이 한족 여성과 결혼하기가 힘들어지면서 돈 몇 푼을 주고 북한 여성을 아내로 사오려고 하기 때문이다. 매매혼 말고도 유흥업소 등에 감금 상태로 혹사당하기도 한다. 너무 늙지만 않으면 이런 식으로 인신매매를 당해서 온갖 고생을 다 겪다가 겨우 남한으로 탈출하는 여성들이 대부분이다. 그런 사연 때문인지 이러한 경로로 남한에 온 탈북자들은 중국에 대한 반감이 상당하다.

2004년 베트남은 체류 중이던 468명을 이틀에 걸쳐 2차례 전세기편에 태워서 한국에 도착시킨 다음 정부가 해당국가와 직접 교섭하여 대거 입국을 성사시킨 적이 있다. 당시 탈북자 대부분 식량난, 생계문제로 국경을 넘었는데 여성 70%, 어린이 20%였다.[5] 그 이후 베트남 지역을 경유하는 탈북루트는 현재 사실상 봉쇄된 상태다.

그래도 제일 짧은 거리의 탈북 루트이기 때문에 중국을 통하는 것이 여전히 제일 보편적인 루트다. 제일 많은 탈북자들이 중국루트를 통하여 들어왔으며 중국정부는 탈북자들의 1차 목적지인 주중대사관, 주선양대한민국총영사관에 대한 경계를 대폭 강화했다. 어느 정도냐면 시위를 막을 때 버스를 붙여서 방벽을 만들어 아예 건물 자체가 보이지 않을 정도다.

4.3. 휴전선 루트

파일:귀순표지판.jpg
백령도에 설치된 탈북 유도 표지판

휴전선을 뚫고 비무장지대를 통과하여 남한으로 진입하는 경우가 있다. 지도상으로는 가까운 탈북경로고 동사나 아사의 위험도 적고, 북송될 위험도 없는 경로지만, 휴전선을 통한 탈북자는 극소수며 중국 - 북한 간 국경을 이용하는 경우가 훨씬 많다. 그 이유는 휴전선이 몹시 위험한 탈출경로이기 때문이다.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 일단 탈북을 방해하는 요소들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중앙분계선을 넘어가면 대한민국 국군 GP가 보이는데, 이때도 재수가 없어 대남 도발로 오인받으면 대한민국 국군에 의해 사살될 수 있다. 현재 휴전선에는 그나마 여기까지 천우신조로 온 탈북자들을 안내하기 위해 푯말과 전화기를 두긴 했는데, 관리는 영 부실하다. 이 모든 역경을 이겨내고 무사히 한국군에게 발견된다면 안보지원사에서 조사를 받고 하나원으로 가게 된다.

그런고로 휴전선 경로를 이용하는 탈북자들은 북한군 민경부대 출신이 대부분이다. 이들은 휴전선 인근에서 복무하면서 비무장지대의 지형 조건과 북한군과 한국군의 경계상황을 파악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이라고 해도, 아주 급박한 상황(다음 날 체포된다든가)이 아닌 이상 중국을 이용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북한의 보위부 군관이였던 이철호 씨의 경우도, 권총 1자루만 들고 혈혈단신 휴전선을 넘은 경우다.

4.3.1. 휴전선 루트 귀순 사례


GP 귀순 시 보통 귀순자에게 라면을 끓여준다고 한다. 식사시간이 아니면 급식용 대형 조리기구를 사용하기 어려운 점과 탈출로 부족해진 염분 보충을 위해 끓여주는 것으로 추정된다. 한편 2000년대 중반 중부전선을 통해 발생한 귀순사례에 따르면 그냥 교대근무자들 먹는 밥을 퍼다 줬다는 얘기도 있다. 노크귀순의 원조 아닌가 인민이 용서치 않을겁네다[7]

4.4. 러시아 루트

의외로 러시아로 직접 탈출하는 경우는 별로 없다. 특이할 수밖에 없는 게 북한에서 제일 가까운 대한민국 외교공관은 주블라디보스토크 대한민국총영사관이다. 하지만 북한도 바보는 아니므로 그만큼 더욱 경계를 철저히 하는 건 당연지사.

그 이유는 북한과 러시아가 국경을 맞댄 곳은 나선직할시 하나뿐인데, 이곳은 경제특구 지역으로 북한 내에서도 접근이 곤란한데다 나선직할시 일대가 두만강 하류인지라 강폭이 워낙 크고 아름다워서 탈북이 어렵기 때문이다. 그리고 러시아 내 특무들이 엄청나게 많아 어차피 걸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탈북에 성공한 사례가 존재하며 사실 이 사람은 일반 탈북자(?)가 아닌 무역대표부 소속 외교관이라고. 몇 안 되는 고위급 간부가 탈북한 사례 중 하나다.

직접 도강하는 경우도 발견되었다.

2005년에 러시아-카자흐스탄 루트로 탈북한 사람의 증언에 따르면 하나원에서 교육하는 탈북자 중 5~10%은 러시아를 거쳐 온다고 한다. 다만, 곧바로 러시아로 탈출하는 경우는 거의 없고, 대개는 중국 또는 중국-몽골을 거쳐서 가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중국과 동남아시아로 가는 것도 엄청나게 먼 길이지만, 중국은 최소한 버스를 타고 이동할 수라도 있지, 러시아나 중앙아시아의 교통 사정을 생각해 보자. 엄청난 대장정이 아닐 수 없다.

4.5. 기타

어선, 무동력선 등을 타고 서해안 혹은 동해안으로 빠져나와 남한 영해로 진입하는 경우가 간혹 있다. 1987년 '따뜻한 남쪽 나라'[8]를 찾아간다며 전가족을 이끌고 귀순한 김만철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동해안으로 빠져나올 경우 해류에 따라 일본으로 들어가는 경우도 있다.

바다를 통해 남한에 들어온 탈북자들을 탈북자 사회에서는 직통생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중국이나 러시아에 가기 위해 기름칠 하는 비용이 급등해서 바다를 통해 넘어오는 것은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이라고, 리스크는 크지만, 2016년 탈북자 강연에 따르면 비용은 중러를 통해 오는 일반생들에 비해 상당히 싸다고 한다. 말보로 한 보루면 북한 해군이 넘겨준다고 한다. 접경 관리하는 장병들한테 뇌물을 줬지만 북한 경비정에 걸리면 끔살 당하는데, 북한 경비정에 안 걸리게 조심해서 내려오다가 태극기가 보이는 남한 해경/해군 함정을 보면 라이트를 깜빡깜빡해서 구조신호를 보내고 탈북 의사를 밝히면 인천항을 통해 입국한다고 한다.

상당히 이례적인 사례로 MiG-19를 몰고 탈북한 이웅평 대위(1983년)와 이철수 대위(1995년)가 있다. 특히 이웅평 대위 탈북 당시에는 실제로 공습경보가 울려서 당시 국민들이 혼란에 빠진 적이 있다. 그 외에도 1950년대에 MiG-15를 몰고 탈북한 노금석 상위도 있다.

또한, 낙후된 북한 강원도에서 배를 타고 탈북하여 속초시양양군으로 들어와서 귀순하는 탈북자도 있다. 상당수는 이 과정에서 한국 해군이나 해경, 일본으로 떠내려갈 경우 해상보안청에게 걸려 구조된다.

최근 들어 바다를 통한 탈북이 늘자, 북한도 2007년부터 발급이 어려운 바다 출입증을 만들거나, 형제나 친척 등 가족이 한 배에 탈 수 없도록 하는 법, 그리고 자신의 거주지 이외의 지역에서 배를 탈 수 없다는 규정을 신설하는 등, 바다를 통한 탈북을 막으려는 움직임을 본격화하고 있다. 그래도 헤엄쳐서 탈북하는 놈들은 답이 없다.

가끔 TV조선 등에 얼굴을 비추고 있는 가수 출신 방송인 한옥정 씨도, 1998년에 중국으로 건너간 후 2003년 한국으로 탈북한 경우다.

당연히 기사 중에서 탈북민에 대한 기사 또한 보이는데, 간혹 상세하게 알려주면 '기자가 아니라 스파이', 김씨왕조에게 탈북 경로를 발설하는 거냐?'는 빈축을 사기도 한다.

5. 가짜 탈북자

북한도 탈북자의 현황을 어느 정도 파악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며 그래서 일부 엄선된 인원에게 고의로 탈북시킨다. 비슷한 내용으로 만들어진 영화 동창생이 있다. 그렇게 남한에 정착시킨 뒤 지령을 내려 다시 재월북을 지시한다. 이때 꼭 선전멘트를 날리게 되는데, "남한이 좋은 줄 알고 탈북해서 생활해 봤더니 오히려 살기 더 힘들다. 수령님의 품이 그리워서 다시 월북했다."는 식으로 선전한다. 여기에는 2가지 목적이 있다. 하나는 "탈북해 봐야 별 거 없다"고 선전하는 것이며 또 하나는 이미 탈북한 사람들 중 적응을 못하고 있는 탈북자들에게 월북하면 김정은이 다 용서해준다는 식으로 선전하기 위함이다.[9] 용서는 개뿔 잘도 월북하겠다 병신아

하지만 현실은 시궁창으로, 탈북자가 여기에 낚여 재월북을 하면 100% 정치범수용소행일 뿐이다. 재월북한 탈북자에게 1년 동안 남한을 비방하라고 시킨 뒤 정치범수용소로 잡아넣은 사례도 있다. 이러한 낚시가 통하지 않을 경우, 북한 당국이 탈북자의 전화번호를 알아네 전화걸고 협박을 하기도 한다. 물론 이 과정에서 공작원들이 나름대로 정보 수집 등의 간첩 활동을 벌이는 부수 효과도 있다.

국가정보원도 이를 이미 간파하고 있다. 저 문제가 불거지기 한참 전에 이미 중앙합동신문센터에서 가짜 탈북자와 진짜 탈북자를 가려낸다. 여기서 가짜 탈북자로 찐하게 의심이 드는 사람은 대성공사라는 한국판 관타나모 수용소 같은 곳에서 강도 높은 물은 답을 알고 있다든가, 전기는 훌륭한 대화 수단이라든가 심문을 받게 된다.

5.1. 진짜로 탈북

진짜로 더 코믹한 건, 고의로 탈북시킨 일부 엄선된 인원 중에서 아예 진짜 탈북해버리는 경우도 있다. 공화국 X까, 내래 남조선에 왔다우!

사실 로동당원이라고 모두가 잘 사는 건 절대로 아니라서, 가짜 탈북했는데 남한의 생활이 좋아서 진짜로 탈북해버리는 경우가 있다. 아무도 날 막지 못해 그야말로 죽쒀서 개준 꼴. 사실 고난의 행군 때 노동당원들도 많이 굶어죽었다. 북한이란 곳은 노동당원들 간에도 생존과 연계되는 계급이나 지위, 위치가 있을 것이 당연하고, 고난의 행군 때도 김씨 부자와 그 최측근들은 배불리 먹고 잘 살았었다. 김일성김정일 시대만 하더라도, 권력의 핵심간부들은 "매우 심각한 체제도전이 아닌" 한 어지간해선 숙청은 당하지 않는 편이었고, 김씨 부자(父子)들 역시 이들에 대한 대우는 아쉽지 않게 잘해주는 편이었다. 그러던 것이 김정은 시대가 열리면서 통치기반 강화를 목적으로 고위 간부층까지 무차별 숙청이 되면서 간부층이 흔들리는 상황으로 변했다.

탈북한 건 아니지만 '무하마드 깐수'로 알려졌던 정수일도 원래는 공작원 출신으로, 간첩인 것이 들통나 옥살이를 마치고 지금은 남한에서 멀쩡히 교수로 살고 있다. 정수일 교수는 간첩이 맞긴 했지만 이 사람은 딱히 이렇다 할 이적 활동을 한 것도 아니었고, 결정적으로 옥중에서 전향했다. 현재는 지금까지의 행적을 반성하고 아랍어 관련 연구를 하는 중. 사실 정수일의 경우는 남한에서 간첩활동은 제껴놓고 표면적인 연구활동을 하다 보니 진짜로 그 분야의 권위자가 되어버린 케이스다.

북한 쪽에서도 이걸 알고 있어 가족을 인질 삼아서 "귀순하면 가족을 죽이거나 수용소로 보낸다"고 협박하는 식으로 막는다고 한다. 그럼에도 가족을 아예 버리고 혼자서 진짜 탈북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5.2. 돌아갈 수가 없다

대한민국북한을 국가로 인정하지 않고 해당 국가가 점유한 영토를 불법점유지로 보며, 대한민국의 남측 주민이 북한이 실효지배하는 지역으로 이주하는 것을 국가안보에 심각한 위해를 초래하는 행위로 보는데, 모든 국민은 거주·이전의 자유의 국내거주이전의 자유와 출국의 자유를 가지지만, 월북을 금지하는 것은 공익적 필요에 의한 합당한 제한으로 해석되고 있다. 다만 북한 주민이 대한민국에 귀순하고자 탈북하는 것은 입국의 자유와 국내거주이전의 자유에 의해 보장된다.

그러므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주민은 탈북 후 대한민국 국적을 얻게 되면 공식적으로는 영원히 돌아갈 수 없다. 위장탈북, 기획탈북등의 경로로 본인의 의사와는 상관 없이 대한민국으로 이주해 온 경우라도 북으로 돌아갈 수는 없으며, 본인이 탈북의사가 없음을 국가정보원 정부합동신문센터에서의 조사에서 이를 밝힌다 해도 공식적으로 탈북자가 돌아갈 수 있는 방법은 없다.

북한 사람이 다시 북한으로 보낼 수 있는 경우는 북한에 있다가 실수로 남한으로 내려온 경우에 그것도 완강하게 자신은 북한으로 돌아가야한다고 주장하며 북한 측에서도 월북을 허용하라고 한 지시가 내려졌고, UN군이나 중립국에서도 실수로 넘어온 거라고 간주되었을 때만 가능하다. 간첩은 간첩죄로 처벌 받게 되어 있기 때문에 어떻게든 북한에는 월북할 수 없다.

현행법상 대한민국 국적 포기는 타 국가의 국적의 취득이 선행되어야 하는데, 북한의 국적은 대한민국에서 국적으로 인정되지 않기 때문에 벌어지는 법률적인 문제다.

또한 이러한 조치는 탈북자와 그 가족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다. 북에 남겨진 가족들을 볼모로 재입국을 강요하는 경우라고 해도, 공식적으로 대한민국 정부가 송환에 응하지 않음으로서 이러한 협박이 매우 불합리한 조치고, 또한 협박에 굴복할 수 있는 여지를 차단하는 것이다. 하지만 논란의 여지는 분명히 존재한다.

이러한 경우의 가장 대표적인 예는 2011년 탈북한 김련희의 경우로, 자세한 내용은 해당 문서를 참조하기 바란다.

6. 관련 사건

7. 탈북을 다룬 영상물


[1] 한국 내 자국 혐오자들 한정으로 '탈남'이라는 표현이 가끔씩 나오는데 북한의 이념의 현실을 생각해 본다면 터무니없는 표현이다. 한국에서 북한이 아니라 일본이나 서구 선진국으로 떠나는 것도 탈남이라고 하는 경우도 있지만 탈조선이라는 말이 더 많이 쓰인다.[2] 적이었던 사람이 반항심을 버리고 스스로 돌아서서 복종하거나 순종함(출처: 표준국어대사전). 그래서인지 민간인이 아닌 군인의 탈북은 여전히 귀순이라고 쓰는 언론이 많다.[3] 보통 인적이 적은 새벽 2~5시 사이에 도강을 많이 한다.[4] 베트남, 캄보디아, 태국, 라오스, 몽골, 러시아, 말레이시아[5] 이때 이만갑 출연진 중 한 명인 유현주 씨가 탈북했다. 입국일이 7월 27일이었는데, 같이 온 사람들과 함께 탈북의 7.27~이라고 노래를 부르기도 한다고 한다.[6] 전기철조망 앞에 있어서 감전될 확률을 높이고, 넘어가는 순간에 잠복호의 사격 대상이 된다.[7] 해당 링크 읽어보면 알겠지만 근무병력들이 밥먹기 귀찮다고 대충 퍼먹고 짬처리하는 걸 본 탈북병사의 한마디라고 한다....[8] 이 남쪽 나라라는 의견이 매우 분분한데, 이는 당사자가 자주 번복하기 때문이다.[9] 다만 이것도 요새는 말이 다르다곤 한다. 남한에 있다 가족들이 보고 싶어 다시 월북했는데, 보위부 애들에게 뇌물을 많이 건네자 눈 감아준다고 말하는 이야기도 있다.[10] 귀순 병사의 증언에서 시작된 논란이다.[11] 탈북의 전 과정을 PD가 따라다니며 직접 녹화했다. 그리고 휴스턴 국제영화제 방송다큐멘터리 부문에서 대상을 수상했다.[12] 여기에서 나온 꽃제비 출신의 김신혁 군(방송 당시에는 김혁이라는 가명을 쓰고 있었다. 당연히 그 아이의 일행들도 다 가명을 쓰고 있었다) 7살 어린 나이로 탈북하는 모습이 화제가 되었다. "한국에 가서 무엇을 하고 싶냐"는 질문에 '오토바이를 타고, 오이를 먹고, 고기도 먹고 도 하고 싶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