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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11 17:18:27

꽃제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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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어원
2.1. '꽂'제비
3. 현실4. 이슈화5. 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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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파일:external/blog.donga.com/0.jpg
북한에서 일정한 거주지 없이 먹을 것을 찾아 떠돌아다니는 가난한 북한인들을 지칭하는 말. 주로 부랑아들을 지칭하던 말이지만 이들이 성인이 되면서 성인들도 꽃제비라고 부르고 있다. 심지어는 군대를 제대한 뒤에 꽃제비가 된 사람들이나 가족 단위로도 존재하며 기준별로 따로 구분하는 명칭도 존재한다.

한국으로 치면 거지노숙자에 해당된다. 북한에서도 거지는 거지, 노숙자는 두음 법칙을 쓰면 안 되기 때문에 '로숙자'라고 부르는데 꽃제비라는 구분이 추가된다. 북한 표준어를 규정하는 조선말대사전은 "낡은 사회에서, 《류랑자》, 《방랑자》를 이르는 말."라고 규정하지만 북한에서는 꽃제비가 있어서는 안 된다는 방침에 따라 '낡은 사회'에서 있다고 규정한다.

제비족, 제비꽃과 혼동하지 않도록 조심하자.

2. 어원

위키백과에는 유랑, 유목, 떠돌이라는 뜻을 가진 러시아어 '꼬체비예'(кочевье) 또는 유목자, 방랑자를 뜻하는 러시아어 '꼬체브니크'(кочевник)라는 단어가 꽃제비로 오기(誤記)되어 정착했다고 서술되어 있으나 하나의 가설에 불과하다.[1] 중국의 조선족들은 이 단어의 '제비'를 '잽이', 즉 '잡이'를 속되게 일컫는 말로서 지갑이나 소지품 등을 낚아챈다는 의미 또는 제비가 따뜻한 곳으로만 찾아다니는 모습을 어린 거지들의 행위로서 비유해서 쓰고 있다고 하며 중국어로 '거지'를 의미하는 '花子'에서 '꽃'이라는 단어가 유래된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해방직후인 1949년 9월 27일 한성일보에 실린 '서울시 부시장과 거지대표, 거지의 생활현실과 대책을 논의' 기사에 '현재 있는 거지의 종류에는 앉아서 호령만 하고 얻어먹는 왕초, 밥을 얻어오는 똘마니, 절도하는 날치기, 쓰리[2]하는 꽃제비, 그 밖에 장타령·쓰레기·구경꾼 등이 있는데'라는 구절이 있다. 일제시대에 한반도 전역에서 쓰이다가 대한민국에서만 사어가 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2.1. '꽂'제비

고위급 탈북자인 김길선 기자에 따르면 북한에서는 ㅊ받침을 쓴 '꽃'제비가 아니라 ㅈ받침으로 '꽂'제비라고 부른다고 한다. 이 용어가 처음 북한에 등장한 1991년부터 문서상에서 ㅈ받침을 사용해 '꽂제비'라고 불렀는데 남한에는 탈북자들에 의해 와전되어 '꽃제비'라고 표기된다고 한다. 그러나 현재는 북한 조선말대사전에서도 ㅊ받침을 쓰고 있다.

3. 현실

남한에 최초로 이 단어가 전해진 것은 고난의 행군 이후 북한이탈주민들에 의해서였다. 즉, 이름의 유래가 어떠하든 간에 일단 꽃제비라는 말은 북한 내부에서부터 실제로 사용된 단어로 보인다. 탈북 귀순자들에 의하면 북한에서는 먹고 잘 곳이 없어 장마당 언저리 같은 데를 떼지어 떠돌아다니면서 구걸하거나 소매치기를 하는 20세 이하 청소년들을 '꽃제비'라고 지칭하며 다 자란 젊은 거지는 '청제비', 늙은 거지는 '노제비'라 부른다고 한다.

<꽃제비>라는 책에서도 이와 같은 내용이 나온다.
사회주의 나라인 조선(북한)에서 빌어먹는 거지가 있다면 말이 안 되었다. 다 같이 잘 먹고 잘 산다는 선전을 했는데 거지가 있다면 나라의 위신이 뭐가 되겠는가? 그래서 그들은 거지를 '꽃제비'라고 부른다.
북한의 경제가 날로 어려워지면서 북한의 접견자[3] 계층 중에서도 꽃제비가 나오고 있다고 한다. 예를 들어 1991년 김정일이 방문한 후 특별 대우를 받던 '김정숙 요양소'의 접견자 5명도 지금은 꽃제비가 되었다고...[4]

실제 이들이 사는 모습을 보면 끔찍하기 이를 데 없다고 한다. 이제 만나러 갑니다에 출연한 꽃제비 출신 탈북자인 이순실의 말에 의하면 꽃제비 시절 낳은 자식을 업고 다니다가 농약을 먹고 죽은 병아리까지 끓여먹었다고 한다. 그 썩은 병아리마저 아이가 먹겠다고 보채어 할 수 없이 아이에게 그거라도 먹여야 했다고 한다. 하지만 결국 그 아이는 인신매매단에 의해 잃어버렸다. 다른 꽃제비는 "아무리 쉬거나 상한 음식이라도 지금 당장 배고픔을 해결하는 게 중요했지, 다음날 죽는건 신경도 쓰지 않았다"고 증언했다. 시장에서 떨어진 옥수수 알갱이를 집어먹는 건 기본에 오물에 있는 먹거리도 찾아서 먹는다. 어쩌다 구걸로 돈이 생기면 뺏기지 않기 위해서 그걸 비닐로 꽁꽁 싸서 꼭 쥐고 다닌다.

당연히 옷이나 신발은 물론이요 양말조차 제대로 있을 리가 없다. 많은 꽃제비들은 한겨울에조차 맨발로 다니며 동상으로 인해 발가락이 하나도 없는 꽃제비 사진도 검색하면 나온다. 신발은 도둑맞든가 팔아치우기 때문에 없는 경우가 많고 신발이 있는 꽃제비들도 대부분이 양말 없이 맨발에 바로 신발을 신으며, 그나마도 다 해져 구멍이 난 것을 신고 다닌다. 옷차림도 마찬가지로 누더기가 된 옷이나 몇 달을 빨지 않아 걸레가 된 옷을 입고 다니는 꽃제비들이 많다. 당연히 제대로 씻을 수 있을 리가 없으니 가까이 가면 악취가 진동하고 온 몸에 이나 벼룩이 들끓는다고 한다.

꽃제비들은 중국에까지 수출(?)되고 있는데 동북 3성 주변에서는 탈북 꽃제비들이 큰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다고 한다. 특히 장백현의 탑산 아래에 있는 큰 쓰레기처리장 인근에서는 꽃제비들이 은둔하는 천막들을 쉽게 볼 수 있다. 그들의 말에 따르면 북한에서 하도 못 먹어서 생긴 병들이 여기 있는 쓰레기들 주워먹고 사니까 거의 다 나았다(?!)[5]고 한다.
나는
부모도 없고
형제도 없는
불쌍한 고아랍니다

내 죽어
산천에 간대도
그 누가 나의 시체를
묻어주리요
덮어주리요
술 석 잔 부어주리요
2019년 이제 만나러 갑니다에 출연했던 꽃제비 출신 김대룡이 꽃제비들이 구걸할 때 불렀던 노래가 있다고 밝혔다. 꽃제비의 현실을 제대로 반영한 처참한 노래인데 "부모도 형제도 아무것도 없는 자신들이 죽었을 때 그걸 기억해주거나, 울어주거나, 시신을 덮어주고, 술 한 잔이라도 부어줄 사람이 과연 있기나 할까?"라는 내용이다. 농담이 아니라 저런 암울한 노래를 어린 나이에 불러야 했다는 것이다.

고아원 출신이었던 이위력은 쉬어버린 밥을 먹을 때 치약도 같이 먹는다는 등 배탈이 나지 않는 게 이상한 수준의 말을 한 다음 그러고 배탈이 난다면 진정한 꽃제비가 아니라는 등 얼마나 처참한지를 알려주었다. 동물 사료로나 쓰는 옥수수대를 간 송치가루를 식사로 주는 고아원까지 있다는 증언도 했는데 이 증언들은 듣기 괴로울 수준으로 참혹하기 그지없다.[6] 고난의 행군 당시 매스컴을 통해 공개된 어린이들의 모습은 그나마 공개할 수 있을 정도로 상태가 좋은 편이라고 한다. #

전국적으로 심각한 식량난에 시달리고 있어 전국적으로 꽃제비들이 있으며 각 지역별로 꽃제비들의 텃세가 존재하며 외지에서 다른 꽃제비들이 온다면 배척은 기본이며 집단폭행도 서슴치 않는다. 자기들도 먹고살기 급급한데 다른 경쟁자가 늘어나는 걸 달가워할 리가 없기 때문이다.

행동이 빨라서 음식을 바로 옆에서 채가는 건 기본이고 지갑 등의 소매치기도 상당할 뿐만 아니라 뚝바이[7] 등 그야말로 생존에 있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으며 집단으로 행동할 경우 서로에게 던져줌으로서 도둑맞은 사람은 알고도 뺏기는 수준이다. 한 명을 잡아도 다른 애들이 모르는 일이라고 잡아떼면 알 길이 없기 때문이지만 이럴 경우에 분풀이로 엄청 두들겨 맞아 이나 턱이 부러져버린 아이도 있다고 한다. 열차 등에 치여서 다리 한 쪽이나 팔 한 쪽 등 신체 부위를 잃어버린 아이들도 있으며 목숨을 잃는 아이들은 말할 것도 없다.

4. 이슈화

파일:attachment/North_K_W.jpg
고난의 행군 이후 급격히 늘어난 꽃제비들은 북한 르포 다큐멘터리에서도 자주 취재의 대상이 되기 시작하였다. 1997년 6월 22일 <KBS 일요스페셜> '지금 북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 편에 처음 소개돼 화제가 됐고 1998년 12월 20일에 동일 프로그램에서 '안철'이란 가명을 지닌 탈북자가 두 달 전에 꽃제비의 참상을 잠입 촬영한 영상이 공개되었다. 사진들 2010년 12월 10일에는 두 달 전 <KBS 스페셜>에서 등장했던 북한의 20대 꽃제비 여성(위 사진)[8]이 결국 굶어 죽은 것으로 밝혀져 한국 사회에 큰 충격을 주기도 했다. 영상을 촬영한 것은 일본 언론사인 '아시아프레스'의 북한 내부 기자인 김동철이며 2010년 6월 평안남도[9]에서 촬영했다. 기사 원본 영상 2011년 아시아프레스 잠입취재에서는 평양에 사는 꽃제비도 나온다. #

꽃제비들의 얼굴과 손은 항상 시꺼먼데 이는 씻지 않아서가 아니다. 북한의 사정상 추운 겨울을 보낼 연료가 부족하다 보니 훔친 폐타이어나 신발에 불을 붙여 연료를 대신하기 때문에 그 그을음에 더럽혀진 경우가 많다고 한다. 꽃제비들도 얼굴이 더러울수록 동정을 받는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에 씻지 않거나 일부러라도 묻히는 꽃제비도 있다고 한다. 기사

탈북 미녀로 알려진 김하나가 자신이 꽃제비 출신이었음을 고백하며 그들의 생활상에 대해 얘기했는데 주식은 주로 콩비지, 개구리, 이라는 듯하다. #

5. 이후

김정은 집권 이후인 2013~2014년 초반에는 북한 정권에서 고아원과 유아 복지 시설을 대폭 늘리고 특별히 신경을 써서 운영하도록 별도로 명령을 내리는 등 빈민층 아이도 신경 쓰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의도가 어쨌든간에 탈북자를 지원하던 주성하 기자가 "꽃제비 수가 줄었다"고 말할 정도로 성공적이며 꽃제비 지원을 할 필요성도 없어졌다고 할 정도다. 다만 2020년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와 이로 인한 봉쇄 조치로 북한 경제가 급격히 어려워지면서 김정은이 '제2의 고난의 행군'을 선포할 지경에 이르자 꽃제비가 부활했는지 일가족이 꽃제비가 된 사례가 보고되기도 했다. #

2020년에는 대한민국 21대 총선에서 북한이탈주민 출신 국회의원 2명이 탄생했는데 그 중 한 명이 바로 꽃제비 출신이자 탈북 후 북한 인권 운동가로 활동해 온 지성호[10] 국민의힘 국회의원이다.[11]

2022년 기준으로 북부 지역에서는 고난의 행군 시기 널리 알려진 어린이 꽃제비보다 노인 꽃제비가 더 많아졌다고 한다. #

코로나 이전인 2019년부터 꽃제비가 다시 많아졌다는 증언도 있다. # 동시기 기준으로 혜산시에 꽃제비들이 있었다는 증언도 있다. #[12] 2015년에도 초등학생 정도 나이밖에 안 된 어린아이들이 제대로 된 신발도 신지 못한 채 북중국경을 넘나들며 구걸하여 가족들에게 먹을 것을 건네주다가 그만 지독한 추위에 동상을 입어 발을 절단해야 하는 비극이 있었다. 열람 주의

"경제가 어려워져 꽃제비는 많아졌는데" 김정은이 러시아에서 식량을 받아내지 못할망정 최고급 자동차를 받아낸 것에 분노하는 주민들도 많다. #

혜산시에서는 가족 단위 꽃제비들을 보위부에서 대놓고 납치해 집단농장으로 보냈다고 한다. # 기사에 따르면 코로나 이전에는 단속된 꽃제비들을 우선적으로 (꽃제비) 구제소로 보낸 후 어른들은 로동단련대, 아이들은 보육원이나 중등학원 등으로 보내는 등 나름대로 꽃제비 처우를 위해 힘을 썼지만 코로나 이후로는 식량난을 이유로 이 같은 구제소 운영도 중단되었다고 언급되었다.

평양에도 꽃제비가 아직도 있다는 것이 확인되었다. 사회안전성 측에서 2024년 북러정상회담을 위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방북에 대비해 역전, 시장, 골목 등에서 보이는 꽃제비와 거동 수상자 등을 발견하면 강제 연행해 감금하고 있다는 증언이 나왔다. #[13]

평안북도 일대에서는 배가 고픈 국경경비대 군인뿐만 아니라 어린 꽃제비들이 올감자나 옥수수가 여물기 시작하면 민가로 내려와 텃밭에서 기른 올감자와 옥수수를 몰래 도둑질하는 것을 넘어 무리지어 공개적으로 강도질을 한다고 한다. #

쿠바 전 북한 대사였던 리일규 씨가 탈북한 후에 가진 인터뷰에서, 외교관은 보통 세계 어딜가나 엘리트 대접 받지만, 북한 외교관의 경우 국가의 위상 때문에 현지에서 천덕꾸러기 대접 받거나, 대우도 좋지 않은 상황에서 외화벌이에 동원되는 사정(그것도 북한 또는 북한 인민을 위한 것이 아닌, 김정은 개인의 욕망을 위한 외화벌이)을 들어, 북한 외교관을 넥타이 맨 꽃제비로 비유하기도 하였다.


[1] 사실 러시아어에서는 거지를 Нищий(니쒸)라는 단어로 훨씬 더 자주 지칭한다.[2] すり. 소매치기[3] 김일성이나 김정일과 직접 만난 사람들을 말한다. 김정일을 직접 만나는 것은 북한 주민들에게 꿈과 같은 일이기 때문에 그와 면담한 사람은 특별 대우를 받게 된다고 한다.[4] 2024년 기준으로 근황은 확인 불가능하다.[5] 실은 이런 게 세계 곳곳에 많다. 브라질의 빈민가인 파벨라에 사는 이들은 적어도 겉으로는 빈민가 사람이 아닌 외모와 몸집을 가지고 있다. 세계는 지금에서 취재할 당시에도 쓰레기 가운데 폐기되어 버려진 과일이나 고기를 조리하여 맛있게 잘만 먹었는데 위생 문제에 대해 이야기하자 배고파 죽는 것보단 낫다며 되려 파벨라에 오기 전에 못 먹어서 병을 앓았던 가족이 파벨라로 와서 저렇게 푸짐하게 먹으니 병이 나았다고 인터뷰할 정도였다![6] 그나마 수위가 낮은 증언을 하나만 언급하자면 남한인 패널이 송치가루를 재현한 것을 먹고 톱밥, 모래 같다고 했는데 이게 북한 고아원에서 먹은 송치가루보다 압도적으로 질이 좋은 거라고 한다. 북한식 송치가루는 거친 맷돌로 간 거라 부드러운 남한 가루에 비해 꺼슬꺼슬할 수밖에 없고, 당연히 이 정도 품질은 남한에서는 재현할 수 없는 수준이다.(...)[7] 가방의 끈을 잘라서 그대로 가지고 도망치는 것. 소매치기 레벨이 아니라 그냥 절도다.[8] 1987~1988년생[9] 대한민국으로 치면 수도권이다.[10] 꽃제비 시절 열차에 치어 한쪽 팔과 한쪽 다리를 잃었다.[11] 다른 한 명은 외교관 출신의 태영호 국민의힘 국회의원.[12] 기사에 따르면 김정숙군에서는 세대 절반이 제대로 먹지 못했으며 남한에서 식량 지원을 해도 식량 지원이 이뤄졌다는 사실도 모를 정도로 식량이 주민들에게 전해지는 일도 없었다고 한다. 북한에서 서민들이 가장 살기 좋았다고 알려진 2010년대 후반에도 굶는 사람이 있었다는 말이다.[13] 푸틴의 방북에 대비해 2024년 6월 13일 저녁 7시부터 1주일 동안 평양과 국경에 특별경비주간을 선포하고 주민 통제를 강화했다는 내용의 기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