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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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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의 시조 동명성왕의 무덤으로 추정되는 동명왕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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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류관평양랭면

1. 개요2. 특징3. 국민성·정서4. 세부 분야별 상황
4.1. 문학4.2. 미술4.3. 공연예술
4.3.1. 음악
4.4. 대중매체
4.4.1. 드라마4.4.2. 영화4.4.3. 애니메이션4.4.4. 예능
4.5. 만화4.6. 식문화4.7. 기타
5. 이름6. 문화재 관리7. 북한의 한류8. 문화 검열
8.1. 문화 검열의 역사
9. 지도자의 교시에 따른 신문화 창작10. 서브컬처11. 마약12. 교육
12.1. 초·중등 교육
12.1.1. 일반 학제
12.1.1.1. 관련 문서
12.1.2. 사교육
12.2. 고등교육
12.2.1. 대학 입학12.2.2. 북한 내 대학12.2.3. 사범 교육12.2.4. 대학 생활
12.3. 기타
13. 관련 문서14. 관련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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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북한문화에 대해 설명하는 문서.

2. 특징

사회주의문학예술의 전면적개화기를 열어나가야 하겠습니다. 사회주의문학예술은 사람들이 옳바른 혁명관과 인생관,고상하고 아름다운 정신도덕적풍모를 지니고 혁명과 건설에 적극 떨쳐나서도록 하며 사회의 문명을 선도해나가는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주체혁명위업수행의 력사적전환기에 들어선 오늘 우리 나라에서는 다계단으로 변이 나고 모든 부문이 만리마의 속도로 내달리고있지만 문학예술부문은 아직 온 사회를 혁명열, 투쟁열로 들끓게 하고 천만심장에 불을 다는 훌륭한 문학예술작품들을 많이 내놓지 못하고있습니다.

우리 문학예술의 근본사명은 전체 인민에게 당의 사상과 의도를 심어주고 대중을 불러일으켜 주체혁명위업을 추동해나가는것입니다. 문학예술부문 일군들과 창작가, 예술인들은 명작창작으로 수령을 옹위하고 혁명을 보위하며 당의 척후대, 나팔수로 복무해온 전세대 문예전사들의 투쟁전통을 이어받아 오늘도 래일도 영원히 우리 당을 앞장에서 받들어나가는 사상전선의 기수가 되여야 합니다.

문학예술부문에서는 위대한 수령님들의 영광찬란한 혁명력사와 불멸의 업적,고매한 풍모를 깊이있게 형상한 명작,력작들을 창작하여야 합니다. 군인들과 인민들에게 사상정신적량식을 주고 그들을 투쟁에로 힘있게 불러일으키는 훌륭한 소설과 시, 영화문학, 극문학작품들을 많이 내놓아야 합니다.

영화예술부문이 하루빨리 침체에서 벗어나[1] 새 세기 영화혁명의 불길을 일으킴으로써 문학예술의 전성기를 열어나가는데서 선도적역할을 하여야 합니다. 무대예술부문과 미술부문에서는 당의 문예사상과 리론,미학관이 구현되고 우리 인민의 미감에 맞으며 인민들이 좋아하는 명작들을 창작창조하여야 합니다.

군중문화예술활동을 활발히 벌려 예술의 대중화를 높은 수준에서 실현하며 사회주의건설의 들끓는 전투장마다에서 혁명의 노래,투쟁의 노래가 힘있게 울려퍼지도록 하여야 합니다.
2016년 5월 7일 김정은이 발표한 조선로동당 제7차대회 중앙위원회 사업총화보고 중 #[2] 이러니까 북한에서 한류가 인기를 끌지.

여타 공산주의 혹은 전체주의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북한의 문화예술도 개인의 창작 자유보다는 국가와 당의 주도에 훨씬 큰 비중이 쏠리는 집단적이고 총체적인 흐름을 띄고 있다. 그나마 현대예술에 대한 사조를 어느 정도는 용인해 줬던 소련이나 중국과 달리, 북한에서는 여전히 빗장을 꽉 걸어잠그고 있다.

사실 일제강점기 당시 예술가들이나 연예인들의 형편과 대우가 좋지 않아, 사회주의에 감화되는 경우가 많았고, 북한이 사회적으로 더 안정적이었기 때문에[3] 인재풀 자체는 북한이 더 풍부했다. 그러나 1950년대에 김일성이 권력을 강화하는 과정에서 문화통제를 단행하면서 자기한테 거슬리는 문화계 인사들을 차례차례 수용소나 지방으로 내쫓기게 만들었다. 최승희, 강홍식, 임화[4]가 대표적인 예이고, 백석처럼 험한 꼴은 안 당했지만 문단에 복귀하지 못하고 시골에서 농사나 지으면서 여생을 보내는 신세가 된 예도 있었다.

게다가 1950년 후반경 김일성이 북한의 학교를 시찰하던 도중, 교실에 소련 음악가, 문학가의 초상화나 작품은 많은데 우리 민족 예술가나 작품이 없다라고 말하면서 갑자기 문화부분에서의 주체를 강화하자는 운동과 더불어, 전통문화를 바탕으로 한 문화운동이 일어나게 된다.[5] 사실 전통적인 소재의 작품을 장려하는것이야 남한에서도 하던 일이니 이상할것은 없는데 김일성은 여기서 내용전개까지 간섭했다는것이 문제점이다. 결국 북한에서 좋은소리 듣는 예술작품은 모두 북한식으로 토착화 된 사회주의적 집단주의 예술만을 뜻하게 된다.

흔히 1960년대 북한이 남한보다 더 잘살았다고 하지만, 대중문화를 누릴 자유나 창작의 자유까지 앞서있다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동시기 남한도 문화 탄압을 했다지만, 북한 수준보다는 훨씬 나았다고 볼 수 있는데[6], 북한이 남한보다 문화적 역량이 꽤나 떨어졌다는 그 증거 중 하나가 최은희 신상옥 납치사건이라고 볼 수 있다. 북한의 문화예술가들이 몸보신과 출세에 급급하며 창의적인 작품보다는 그 나물에 그밥인 식상한 작품을 내놓는 경우가 많아 김정일도 이러면 안되겠다 싶어서 남한에서 감독을 순수 수급(?)해온 것이다.

그나마 '전통적인' 흐름에 몸을 맡긴 예술인들도 격변하는 내부 정세 속에서 자리를 잘못 잡거나 지도자들에 의해 안 좋게 찍혀서 탄광이나 수용소, 집단농장으로 보내진 경우도 꽤 된다. 특히 1960년대 후반 무렵부터 본격적인 정치 활동을 시작한 김정일이 문화예술 부문에서 직접 지도자로 나서기 시작하면서, 개인에 의한 창작활동 보다는 여러 창작가들이 집단으로 모여 창작하는 소위 '집체 창작'이 일반화 되었다.

다만 김정일은 평소에 외국영화를 즐겨보고 영화에 있어서 전문가인지라 문화적인 면에 있어서[7] 김일성보다는 꼰대 기질이 덜했던지라 1980년대 쯤에는 이런 집체 창작 열기가 잠시 수그러들고, 시집이나 소설, 음악작품, 미술작품 등에 창작가 개인의 이름을 붙여 내는 경우가 다시 많아졌고, 로맨스 영화와 특촬물도 제작되어 인기를 끄는 등 영화의 소재도 다양화되었지마 냉전이 끝나며 북한이 고립되었고, 고난의 행군이라는 경제난도 겹치며 이러한 기조는 사그라들었고 다시 '우리 식대로 살자'는 식의 내용의 문학작품이 대세를 이루게 된다.

2000년대 들어서는 다시 조금씩 외부 세계를 향한 개방의 움직임이 관측되고 있지만, 날로 악화되는 경제 사정과 주변국들의 이런저런 정치/경제 제재로 인해 앞으로 북한 문화예술계가 어떻게 흘러갈 지는 불투명한 상태다. 이전에도 자본주의를 경계하자는 주장은 남북관계가 좋을 때도 있었으나 2019년 하노이 회담 결렬 이후로 직접적으로 '비사회주의'에 대한 언급이 느는 등 문화 검열이 다시 심해지고 있고, 이제는 체제 위협이라고 여기는지 반동사상문화배격법, 청년교양보장법, 평양문화어보호법 제정 같은 아주 과격한 행태를 김정은이 보이고는 하였다. 김일성의 문화 검열보다 더 심한 면이 있다.

한국에서 북한 문화매체를 포함한 관련 자료들은 정부 내규인 '특수자료취급지침(구 불온간행물취급지침)'에 따라 지정된 취급기관에서 관리되고 있다. 1988년 노태우 정부가 '7.7 선언'에 따라 '북한 및 공산권 자료개방' 방침을 발표하면서 제한적으로나마 점차 개방되기 시작했고, 1990년 통일원이 서울 광화문우체국에 북한자료센터[8]를 개관한 후 북한의 교육자료, 영화자료 등을 합법적으로 찾아볼 수 있다.

3. 국민성·정서

북한의 문화는 북한학을 중심으로는 주로 공식적인 문화를 중심으로 다루어지고 있지만, 실제 주민의 가치관이나 생활에 대해서는 많이 알려진 바가 없다. 이런 생활은 차라리 유튜브에서 탈북민이 올리는 것이 접하기 쉬울 정도다. 군사, 정치에 가려져 알기 어려운 사항이지만 이런 것을 자세히 접하면 예상이 어려웠던 부분까지 한민족이라는 것으로 설명할 수 있다. 이런 것을 알아야 남북한이 실질적으로도 '한 나라'였다는 것이 이해가 된다.

즉, 한민족이 가지고 있다는 특성은 그대로 보이는 경우가 있으며, 굳이 긍정적인 의미는 아니고 단점까지 똑같이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단점을 예로 들자면 빨리빨리 문화로 부실시공의 원인이 평양 아파트 붕괴사고광주 화정 아이파크 붕괴 사고검단신도시 아파트 건설현장 붕괴사고처럼 매우 비슷한 경우[9]가 있다. 정치나 경제 상황 등으로 다르게 표출될 수밖에 없는 문화가 있지만 그런 것을 빼면 정서는 기본적으로 유사하다. 탈북민 중에는 한국의 사업 아이템이 북한에도 적용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는 경우도 있다. 심지어 결혼식 문화처럼 고향에서 있었다면 좋았을 것이라고 생각한 문화가 북한에 수출되기도 한다. 경제가 다르니 정서도 다르겠다는 생각이 있을 수 있으나 검열과 감시가 대단히 극심하며,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 갑질을 심하게 즐겨 경제가 망한 것이다. 권력을 휘두르면 김일성 일가가 집도 선물해주고 자식들의 출세길을 보장하니 저런 체제가 유지된 것이다. 모니카 마시아스[10]처럼 남북한을 동시에 다녀온 사람도 정서는 대체적으로 비슷하다고 하였다.

대체로 북한 사람들은 남한의 문화 컨텐츠를 접하며 실제 생활을 보기 때문에 정서가 비슷하다고 여기지만, 반대로는 북한의 핵이나 주목을 끄는 북한 매체에서 보도되는 세뇌되거나 그렇게 연출되는 사람을 보기 때문에 이질감이 심하다. 한국 공교육에서도 이런 주민의 정서는 많이 가르치지 않고 차이를 부각시켜 교육시켜[11] 이질감을 들게 하는 부분도 있다. 게다가 외부인에 대한 접촉을 북한이 심히 감시하여, 관광객 앞에서 북한 사람들이 주변에게 입조심시키려는 모습을 보이거나, 우연히 외부인이 북한 사람을 접하면 어떤 길고양이 같은 태도를 보이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사석에서 감시를 벗어날 환경에서 북한 사람을 만나면, 북한 사람이 반가워하기에 어떤 오해를 자신이 가졌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경험담이 있다. 이들은 정체성에 관련된 문제에서 중국이 '민족성'을 억압하는 태도를 보이면 대단히 싫어한다. 남한과 다른 점이라면 남북통일에 대한 '실현에 대한 기대감'이라면 몰라도 '필요성'에 대해서는 상당한 공감대가 있다는 것이다. 통일되면 중국에 밀렸던 분야 등에서 이길 수 있다는 등의 생각도 종종 나온다. 한반도에 두 '나라'가 있다는 생각도 남한에 비하면 거의 없다시피 하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은 '한민족'의 가치관이나 습관을 드러내는 경우가 있다. 최근에도 한류을 동경하는 풍조가 심하여 그렇게 문화가 이질화만 되는 것은 아니다. 2010년대 후반 기준 청소년 절반은 한류에 '감염'되어 수년 전과도 다르게 생활 양식을 모방하려는 풍조가 있다고 한다. # 말투를 따라하거나 자녀 이름도 한국 드라마식으로 짓고자 하였다가 단속을 당한다는 말도 있다.

4. 세부 분야별 상황

4.1. 문학

광복 후 대부분의 사회주의 리얼리즘 소설가들이 북으로 월북했으며, 황혼을 쓴 한설야의 경우는 북한의 소설학에 매우 큰 공헌을 했다 전해진다. 하지만 이후 북한은 도서정리사업을 단행해 철저하게 사상통제와 검열을 시행하여 체제 비판을 철저히 억제하고 있다.

북한의 문학은 보통 세 단계로 구분한다. 첫번째는 1945년에서 1958년까지의 시기로, 이 시기에는 통제가 크지 않았고 수많은 월북한 사회주의 리얼리즘 소설가들이 활동했다. 이때 이들의 활동하면서 남긴 문학적 유산들이 후에 북한 문학의 기반이 되었다. 그러나 김일성의 독재가 강화되고 문인들이 대거 지방 등지로 추방되는 일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나서 문학의 질이 쇠퇴하게 되고, 오로지 김일성만을 찬양하는 판에 박힌 형식의 문학 작품들이 대세를 이루게 된다. 김일성이 독서문화에 관심이 많았던 인물인지라 북한인민들이 책에 쉽게 접근할수있게끔 도서관을 많이 만들어놓았지만 막상 들여놓는 소설책의 질이 썩 좋지 못하게 만들어놓았던 것이었다. 이렇게 북한 문학은 오로지 김일성을 선전하기 위한 도구가 되어가다가 1966년 김정일이 부각되면서 김정일을 선전하기 시작함과 동시에, 김정일의 지시에 따라 북한 주민들이 문학에 쉽게 접촉하고 그를 통해 세뇌가 효율적으로 이뤄지게끔 다양한 정책이 실시된다.[18] 거기에 도서정리작업 같은 게 겹쳐 벽초 홍명희, 백석 같은 빼어난 문인들이 숙청당했다.

그래도 체제선전을 목적으로 한 문학작품만 있는것은 아니라서 역사를 다룬 대하소설이나 연애나 가정문제, 사회상등을 다룬 통속소설들도 출간되곤 하며, 검열삭제의 한계가 있기는 하지만 통속소설들은 북한의 사회상이 어떤지 알수있고, 북한사람들도 하도 질리게 많이 보는 체제선전 문학보다는 통속소설이나 대하소설을 심심풀이용으로 읽기도 한다.

북한 체제를 비판하는 자신의 작품을 밀반출해 한국에서 작품들을 출판한 반디라는 작가의 정체가 탈북하지 않고 여전히 북한에 거주중인 조선작가동맹 중앙위원회 소속의 작가인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던 중 2020년 미국의 라이브러리 저널이 선정한 '2020 올해의 책'에 백남룡의 '벗'이 선정되었다. 지난달 미국에 번역 출간되었으며, 북한 예술단에서 성악가로 활동 중인 젊은 여성이 남편을 상대로 이혼 소송을 제기하면서 벌어지는 다양한 사연과 그로 인해 판사가 자신의 결혼생활을 되돌아보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고 한다. 당시로써는 이혼문제를 북한에서 처음으로 다룬 것이기 때문에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하며, 2011년 프랑스에서 번역이 돼서 출간 됐다고 한다. 심지어 '가정'이라는 TV 연속극으로까지 방영되었다고 하니 북한에서 그 인기가 어느 정도일지 짐작되는 부분.

김정은이 집권한 이후 기존에 김일성과 김정일에 권위에 기대 무조건적인 업적 찬양만 남발했던 기조가 바뀌어 김정은이 권위 대신 인민에게 친근하게 다가가는 이미지를 구축해 이런 류의 찬양 작품이 늘고 있다. 선군정치로 지친 북한 인민들에게 신선하게 다가왔다나.

4.2. 미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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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공연예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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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공연예술은 대부분 성악, 기악, 무용, 연극 등 거의 모든 형태의 무대 예술을 한 예술단에서 모두 소화할 수 있도록 통합된 체제를 취하고 있으며, 이는 평양에 밀집되어 있는 대표적인 예술단 외에 각 시나 도 등에 속한 예술단도 규모나 편제의 세세한 차이를 제하면 대부분 마찬가지다. 만수대예술단피바다가극단, 조선인민군협주단, 국립민족예술단 등이 이러한 통합 공연예술 단체에 속한다.

하지만 어느 한 장르나 공연 형태에 특화된 활동을 보여주는 단체들도 있으며, 교예(서커스) 전문인 평양교예단이나 관현악 전문 연주 단체들인 조선국립교향악단, 윤이상관현악단, 은하수관현악단[19], 만수대예술단 하부 조직인 삼지연악단, 취주악 전문 연주 단체인 조선인민군군악단, 남성합창단인 조선인민군공훈국가합창단, 경음악 단체들인 보천보전자악단왕재산경음악단 등이 이 분야의 대표적인 단체들로 손꼽힌다.
2012년 7월 13일, 노컷뉴스가 공개한 북한 모란봉악단의 공연
김정은이 집권한 이후 문화적인 측면에서 이전보다 세련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의외로 외국 록 밴드나 뮤지션들에게 일종의 레어한 투어 장소 끝판왕같은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다. 가장 최근에는 록 밴드 라이바흐(록밴드)가 평양에서 콘서트를 연 바가 있다. 아직 북한이 구 공산권이나 제3세계권에서 방귀 좀 뀌던 시절에는 나름 진보적인 음악가들이나 동유럽 음악가들이 많이 공연을 하러 왔었다.그래서인지 생각보다 많은 뮤지션들이 북한에서 공연한 바 있다. 물론 대부분 평양에서만 공연을 했지만. 아주 드물지만 예전에도 록 밴드들의 공연은 간간히 있긴 했다. 일본의 헤비메탈 밴드 SHOW-YA는 1991년 6월 평양 만수대 극장에서 공연한 바 있고, 소울 플라워 유니온은 1993년 평양에서 공연을 한 바 있다.
위 영상은 2003년 베이비복스의 평이다. 이를 볼때 북한에서 자본주의적 음악에 위화감이 있어서 소리가 많이 나왔지만 사실 이 당시 북한에서 아이돌 음악이 별로 익숙지 않았던 시절이었고 이때까지는 남한노래는 트로트나 포크송 위주로 돌아다녔던지라 반응이 좋지 않았던 것이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유명한 조용필의 경우는 굉장히 반응이 좋았다.#

4.3.1. 음악

⋯혁명의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우리 음악예술의 성격문제를 음악에서 주체를 세울데 대한 요구의 견지에서 규정하심으로써 우리 시대에 있어서 사회주의 음악예술이 어떤 성격을 지녀야 하는 문제에 완전히 새로운 독창적인 해명을 주시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사회주의 음악예술의 기본성격을 인민성으로 규정하시고 인민적 음악이란 인민대중이 알아들을 수 있고 즐길 수 있는 통속적인 음악이며 이러한 통속적인 음악은 민족적 선률을 바탕으로 하여야만 창조될 수 있는 것만큼 그것은 반드시 민족적인 음악으로 되어야 한다는 것을 밝히시었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인민성을 기본 성격으로 하는 사회주의 음악예술은 사회주의하에서의 음악예술인만큼 마땅히 인민대중이 알 수 없는 이른바 음악을 위한 음악, 과거 착취계급들이 술이나 마시고 한가하게 부르던 타락한 음악, 제국주의자들이 퍼뜨리고 있는 온갖 반혁명적인 부르죠아음악을 견결히 배격하는 혁명적인 음악으로 되여야 한다고 규정하심으로써 사회주의 음악예술의 인민성이 그 당성, 로동계급성, 혁명성과의 불가분적인 통일속에서만 구현되며 또한 그의 전제로 된다는 근거를 해명하시었다. 다른 모든 예술과 마찬가지로 음악도 탁월한 수령의 혁명사상과 그 구현인 당의 로선과 정책에 철저히 의거하고 그를 실현키 위한 근로대중의 실천투쟁과 밀접히 결합될 때에만 참말로 당적이고 혁명적인 예술로 될 수 있다. ⋯따라서 음악에서 당성 · 혁명성 · 인민성의 원칙을 철저히 견지하려면 로동계급적 선을 날카롭게 세워 복고주의, 예술지상주의를 비롯한 온갖 낡고 반동적인 사상조류들과 비타협적인 투쟁을 벌리여 봉건적, 부르죠아적 음악이 되살아나지 않도록 하는 한편 사대주의, 민족허무주의, 교조주의를 철저히 배격하고 그것을 통하여 기회주의적, 반동적 음악조류들과 자기 인민이 알아들을 수 없는 음악을 위한 음악들이 밖으로부터 들어오는 것을 조금도 허용하지 말아야 한다. 이것은 사회주의 혁명과 건설이 심화 발전되고 제국주의자들이 사회주의 나라들의 내부에 반동적 음악을 침투시키려고 악랄하게 책동하고 있는 우리 시대에 있어서 특히 절박한 요구로 나선다.
"주체 음악"에 대한 북한의 공식적 견해.[20]

북한 음악의 특징은 일반적으로 당과 수령에 대한 충성심을 고양시키는 것이 주 목적이다. 민족음악을 위주로 서양음악을 동시에 발전시키고 민족적 선율을 바탕으로 현대적 미감에 맞는 선율을 창조하며 가악보다는 성악 중시. 곡조보다는 가사를 중점으로 두는게 특징이다. 당 칭송 노래 혁명 노래가 발달했지만 더욱 큰 비중이 있는건 김일성 일가를 위한 노래가 제일 많다.

또한 북한의 음악은 소련 민요와 중국풍의 양식과 혼합된 공산주의의 특징에 대한 선율을 띄고 화음과 리듬보다는 가사에 중심을 두고 있으며 정치적인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북한 노래 가사에도 베이베가 들어가는 경우가 많다. 베이베는 영어 단어이긴 하지만 워낙 유명한 만국공통어다 보니 북한 노래에도 쓰이는 것이다.

남북이 클래식 음악가를 길러내는 방법은 의외로 유사하다고 하는데, 탈북자 피아니스트인 김철웅 씨의 증언에 따르면, “북쪽도 남쪽과 같아요. 바이엘, 체르니, 쇼팽 에튀드는 똑같고, 동요를 편곡한 ‘아동단가’나 ‘혁명군놀이’를 친다는 게 좀 달라요."라고 한다. 러시아 출신 작곡가들의 음악이 즐겨 연주된다고 하는데, 다만 라흐마니노프는 미국으로 갔고[21], 바그너히틀러가 좋아했기 때문에 금지곡이라고 한다. 또한 미국인인 거슈윈의 음악 또한 금지라고 하며, 프랑스인인 라벨의 음악 역시 금지라고 한다.

그나마 이는 과거의 일로, 현 시점에서는 이들의 곡은 금지곡에서 해제된 상태이며다. 그리고 북한의 기독교 탄압을 고려하면 굉장히 의외인 부분인데, 독실한 가톨릭 신자였던 안톤 브루크너의 음악과[22] 마지막 악장 가사에 기독교적 요소가 대폭 반영된 구스타프 말러교향곡 2번[23]은 금지곡이 아니다. 참고로 도서정리사업 시기인 60년대 후반~70년대 초반에는 클래식 음악을 위시한 외국 음악 자체가 모두 금지곡이었다고 한다.

해외에서는 K-POP에 빗대어 NK-POP이라고 부르기도 하는 모앙인데, 실제로 한 외국 유튜버가 모란봉악단을 북한의 BLACKPINK(...)라고 평하며 둘을 비교하는 영상을 만들기도 했다.
삼지연관현악단의 서울 공연
북한에 방문한 노르웨이 사람들이 학생들과 교류하면서 A-ha의 Take on me를 가르쳐 주었고, 그로 인해 이들이 연주하는 영상을 담을 수 있었다.

북한에서도 자본주의 세계의 음악[24]과 영화를 볼 수는 있다고 한다. 평양 예술대학 도서관에 가면 각종 장르의 음악과 영화가 존재하는데, 오로지 연구 목적으로 열람하는 것만이 가능하다고 한다.[25] 물론 아직도 이런 영상물과 음악을 공개적으로 좋아한다고 말하는 것이나 그걸 연주하는 것은 금지되어 있는 조치라고 한다. 다만 탈북 시인 장진성에 따르면 실력수양의 목적으로는 가능하다고 한다.[26][27] 만일 이걸 걸리면 자아비판정도는 기본이며 운이 안 좋으면 감옥이나 정치범수용소에 갈 수도 있다.

하지만 여기서도 80년대부터 알음알음 남한 노래가 들어온데다가 90년대 이후로는 조선족들을 통해서 남한노래가 많이 전파되었다. 그래서 90년대 당시에는 남한노래를 연변가요라는 이름으로 불려지기도 했다. 의외로 북한에서 남한 노래가 많이 인기 있으며 김정일이 살아 생전에 최진희의 "사랑의 미로"를 좋아했다는 이야기도 있고,[28][29] 북한에서 의외로 윤수일아파트가 인기 있었다거나, 개성이나 황해도 지역은 남한 라디오가 잡히고 함경북도 일대에서도 연변TV방송을 통해서 남한에서 유행하는 대중음악을 대충은 알고 있다는 이야기가 있다. 그리고 조선족 상인들을 통해서도 남한노래나 중국노래가 많이 들어온다고 하며, 외국을 가끔 드나드는 사람들의 경우, 일반적인 젊은이들과 다를 바 없이 외국음악을 즐기고 있다. 마이클 잭슨을 좋아 하고 "나는 국내 음악은 안 들어요"라고 하는 북한 젊은이 이야기 다만 여기서도 취향차이가 있어서 2000년대 초중반까지는 트로트 가요가 인기가 많았고 아이돌 음악이나 록음악은 코드가 맞지 않아서 그렇게 큰 인기가 없었다고는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젊은층들 사이에서 아이돌 댄스음악이 크게 인기를 얻고 있다는 듯 한다. 아직도 지방에서는 트로트 음악이나 90년대 음악이 인기를 얻고있다는 얘기도 있어서 취향차이가 뚜렷한 것을 알 수 있다.

참고로 북한가요(북한식 표현은 '조선가요') 중 일부는 대한민국(남한) 내에서도 유통되는데, 하나는 중국 식품점에서 불법 거래되는 음반, 또 하나는 벅스나 네이버 VIBE 등 음악 사이트에서 합법적으로 유통되는 음원으로, 합법 유통 음원은 오리지널 곡을 편집한 것이다. 1988년 이후 <조선은 하나다>처럼 '북한 바로알기 운동'의 일환으로 남한 NL성향 민중가요 노래패들이 암암리에 들여와 부르기도 했고, 경기남부총련 노래단 '천리마'나 '희망새' 등 일부 노래패들은 절가형식과 주체창법을 도입하기도 했다. '대홍단 감자', '휘파람', '장군님 축지법 쓰신다'가 인터넷에서 유머 컨텐츠로 유명하지만 그나마 작품성이 있다고 평가 받는 음악인 '심장에 남는 사람', 임꺽정 주제가도 인터넷 검색을 하면 접해볼 수 있다.

노래들 대부분은 조선로동당 및 김씨 왕조를 찬양하는 노래들이다. 초반부의 구슬픈 멜로디와 그리움에 대한 가사만 듣고 사랑노래인 줄 알고 들었는데, 끝까지 들어보니 그 사랑의 대상이 김씨 3부자, 최고사령부 아니면 조선로동당이더라 하는 식이다.[30] 평양방송 등 북한 방송들을 시청해보면 이런 노래들을 수없이 들어볼 수 있고 다른 노래들은 나오지 않는다.[31] 자세한 목록은 북한/노래 참고. 북한의 찬양가요라고 하면 생각하는 이미지와는 다르게, 한 외신 기자는 북한 버스기사가 일할 때 듣는 노래라고 들려줬는데 가사는 김씨 일가를 찬양하는 내용이지만 멜로디는 뽕짝이였다고 한다. 외국인들이 듣기에는 특유의 신스음 때문에 1970~1980년대의 로봇 만화 주제가처럼 들린다는 평이 많다. 이 점을 살려서 소수의 베이퍼웨이브 창작자들이 북한 음악 소스를 이용해 Juchewave라는 것을 만들어서 놀기도 한다.

2010년도 들어서는 MP3 플레이어에 노래를 넣어다니는 사람도 많다고 한다. 대부분 한국 대중가요를 듣고, 미국 팝 음악을 듣는 사람도 꽤 많다고 한다. 물론 처벌을 받을 수도 있지만, 대부분은 단속에 걸려도 뇌물 몇푼이면 해결된다고 한다. 그런데 2020년대 들어 워낙 검열이 극심하다보니 현재는 그 상황을 짐작하기 어렵다. 그래도 유통이 되지 않는 것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참고로, 2001년에 김연자가 북한에서 공연을 한 뒤로 22곡의 대중가요가 해금되었다고 한다. #

북한에서는 독자적인 12율 반음 음계를 사용한다고 하고,[32] 평소보다 몇 옥타브 높여 부르는 특이한 가창법은 '주체창법'이라 부른다고 한다. 이 창법은 비음이 약간 낀 가성을 기반으로 하며, 평양권번 출신의 가수 왕수복이 황해도식 서도민요 발성과 서양 성악을 혼합하여 정립한 것이다. 주체창법은 가수의 개인적인 감정이나 개성이 들어가서는 안 되기 때문에, 누가 부르든 거의 다 똑같이 들린다는 점이 특징이다. 비음이 활용된다는 점에서 트로트와도 비슷하며, 그래서인지 앞서 언급했듯 북한 주민들 중에서는 남한 트로트 향유층이 많다.


재미있는 점은 구 공산권 국가들과 교류하던 시절이 있어서인지, 러시아나 동유럽 노래들은 제법 많이 알려져 있다. 실제로 평양에서 "외국 음악"을 이야기 하는 경우 주로 동유럽권의 음악들을 이야기 하는 경우가 많으며, 벨라 챠오같은 노래는 일종의 혁명 가요처럼 번안되어 알려져있기도 하다. 위의 여성은 '머나먼 길(Дорогой длинною)'을 부르는데, 특이하게도 주체창법이 아닌 슬라브식 민요 창법인 흰 목소리(білий голос) 창법[33]을 써서 부르고 있다.

한편 민족주의가 극심한 나라답게 국악은 '민족 음악의 현대화'라는 정부 정책으로 국악기 개량에 힘쓴다. 대한민국은 악기의 개량을 제한적으로 행하며 정악이든 민속악이든 원래 것을 보존하고 그것을 가지고 국악관현악 등 여러 편성으로 조합해 연주하는 창작 국악이 발달한 반면, 북한은 일단 악기를 자체적으로 개량한 후 그것을 자국의 음악 노선에 맞게 끼워넣었다. 소·중·대해금, 옥류금, 대피리, 저피리, 장새납 등 다양한 개량 악기가 만들어졌으며 이 중 일부는 대한민국에서도 종종 연주되곤 한다.

국악과 같은 전통 음악의 경우, 나름대로의 악기를 개량하는 등의 변화가 있다. 북한의 국악기에 대해선 북한의 악기 개량 문서 참조.

북한에서는 판소리가 소실되었다. 판소리를 '지주층이 민중을 노예처럼 부릴 때 생겨난 착취예술'[34]이라고 강하게 비판했고, 김일성이 개인적으로도 판소리를 싫어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정남희, 박동실 등 판소리 명창들이 월북했음에도 불구하고 연구자들에 대한 지원이 끊기고 판소리 인사들도 좌천되거나 지방으로 쫓겨나면서 소실되었다. 그래서 현재에는 당대에 찍었던 영상들을 통해 판소리에 대해 연구하는 수준이거나 간단하게 학습하는 수준이다.

여담으로 재즈에 대해서는 <력사의 법칙적인 전통>이라는 책에서 "어두운 나이트클럽 안에서 마약 중독자가 피우는 자욱한 담배연기처럼 강한 중독성을 가지고 사람들을 부패타락과 범죄의 길로 끌어들인다"고 언급했으며, 힙합 역시 '1980년대 미국에서 류행된 렵기적인 춤동작과 음악'으로 간주하고 있고, 에 대해서는 '광란적인 리듬은률'이라고 간주하고 있다.

4.4. 대중매체

만수대TV와 룡남산TV에서 간간히 서방영화나 서방애니메이션을 방영하기도 한다. 다만 만수대TV와 룡남산 TV는 2017년에 전국방송이 시작될때까지는 1991~1995년 초까지의 SBS처럼 평양과 그 인근지역에서만 송출되어왔다. 조선중앙TV를 통해서도 중국 드라마나 러시아 드라마가 수입되어서 방송되기도 한다.

4.4.1. 드라마


북한에도 드라마가 있는데 소설 등지를 원작으로 한 경우가 있지만, 대체로 프로파간다적이거나 체제 선전을 위한것이 많다. 대부분 항일 무장투쟁 시기를 다룬 내용이거나 지역 당비서들이 열심히 일해서 직장과 지역을 일으켜 세운다는 내용들이다. 심지어 굉장히 비정치적인 작품들 조차도 어쨌든 극중에 체제선전이나 김씨집안 찬양이 꼭 한번씩은 들어간다. 유튜브에 찾아보면 많이 업로드되어 있지만 함부로 올릴 시 코렁탕 문제가 생길 수 있으니 생략하며, 제목도 어지간하면 명시하지 않는다. 그래도 참신한 소재의 드라마도 방송될때도 있었다고는 하지만 이 드라마들도 계몽성 드라마 형태를 띄고있기 때문에 자극적인 소재를 덜 넣기 때문에 심심한 편이다. 그래도 북한사회가 안고 있는 고민이나 문제점을 우회적으로 다루는 경우가 종종있기 때문에 이쪽에 관심이 있으면 볼만하다.

탈북자를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4%가 KBS를 수신한 적이 있고, 응답자 전원이 정기적으로 KBS를 시청했다고 답했는데,[35] 설문조사 대상 대부분이 함경도 출신인 것을 감안하면 강원도나 황해도 출신의 꽤 많은 수가 남한 방송을 수신했음을 나타낸다. 심지어 중국에서 조선족을 대상으로 방송되는 연길TV의 정기적 시청자는 15%였는데, 북한 국영방송을 일주일에 한번이라도 봤다는 응답자는 14%에 불과했고, 응답자의 절반이 국영 방송을 한번도 본 적 없다고 답했다. 그 이유는 공통적으로 심각하게 재미가 없어서 라고 대답했는데,[36] 이미 많은 북한 주민들이 DVD나 USB 메모리로 한국 드라마나 영화를 보고 있지만 그건 북한 방송이 재미없기 때문이지 그걸 본다고 탈북하려 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2010년대 이후로는 조선중앙텔레비죤에서 6시 내고향 등 여러 KBS 프로그램들을 벤치마킹하는 등의 모습을 보여 남한매체에서도 주목받기도 했다.

북한에서 주로 방영되는 드라마가 계몽적인 주제가 대부분이라서 북한내에서도 따오판-USB칩을 통해 남한이나 중국드라마가 널리 퍼지면서 별로 인기가 없어졌는데 2011년쯤 한번은 영화광으로 유명한 김정일이 "우리도 웰메이드 드라마 한번 만들어 봐라." 라고 해서 계월향이라는 역사드라마를 만들었는데, 10화쯤 방영되던 중에 김정일이 드럽게 재미 없다며 분노하는 바람에 방영되던 드라마가 중간에 종영되었다고 한다.[37]

그래도 외국드라마를 수입해서 방송해주기는 하고, 외국영화도 틀어주기는하는데 주로 러시아나 중국쪽 작품을 수입해서 틀어준다. 1980년대까지는 동독, 소련, 폴란드 등지의 드라마를 수입해서 방영해 주던 시절도 있었다. # 중국 드라마도 수입해서 방영했다고 한다. # 마치 7,80년대 한국인들이 미드나 영드를 보며 외국의 분위기를 미루어 짐작하듯, 북한 사람들도 이러한 드라마를 보면서 외국의 분위기를 어림짐작 한다고 한다.

4.4.2.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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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3. 애니메이션


북한 내의 용어로는 애니메이션이 아니라, 아동영화의 하위개념인 만화영화로 불리고 있다. 문화어에서의 아동영화는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하고 그들의 교양을 목적으로 하여 만들어진 영화’라 정의되고 있다.

즉, 북한애니메이션을 전연령을 대상으로 한 매체로 여기는 다른 국가들과는 달리 어린이만을 대상으로 하는 것으로 보고 있으며, 그 목적 또한 재미보다는 교육을 위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한마디로 어린이들을 체제에 순응시키기 위한 목적을 갖고 있는 셈인데 이렇다보니 아동용임에도 불구하고 프로파간다성이 상당하다. 그러니까 호기심에 찾아보는 것까지는 좋지만 이런 프로파간다적인 요소가 숨어있다는걸 기억해두자. 프로파간다의 목적 말고 진지하게 작품으로서 내는게 있는지는 불명.

다만 대놓고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을 찬양하는 내용이 나오지는 않는데 이는 김정일이 만화영화가 지도부 찬양에 활용하기 부적합하여 넣지 말라고 지시했기 때문.[38] 그래서인지 북한에서 제작되는 TV 프로그램 가운데서 상대적으로 막장성이 적은 편인데 어디까지나 상대적인 기준이다. 실제로 북한 애니메이션을 보면 대한민국 군인이 가시에 관통당하거나 포로에게 마구 채찍질하고, 군인들이 민간인에게 마구 총을 난사하는, 한마디로 어린이 만화에 절대로 넣어서는 안 되는 묘사까지 있다.[39]

가난해서 밥 굶는 북한에서 만들어졌다고 하기에는 상당히 높은 퀄리티로 처음 접한 사람들을 놀라게 하는데, 이는 북한에서 국가적으로 밀어주고 있어서 그렇다는 얘기가 있다. 잘못 만들면 무조건 정치범 수용소행이라는 농담까지 있을 정도다.

이 애니메이션이 고퀼리티로 느껴지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풀 프레임' 애니메이션이라는 점이다. 북한 애니들은 규격적으로 초당 프레임수가 많다. 때문에 리미티드 애니메이션을 쓰는 일본 애니 제작을 하청받을 때 마찰을 빚기도 했었다고 한다. 사실 북한의 정규 풀프레임이 정석에 가깝고 일본은 데즈카 오사무의 꼼수로 리미티드 애니메이션을 만들면서 프레임수가 기존보다 훨씬 적어진 것이다. 일본식 리미티드 애니메이션을 주로 보는 사람들의 경우, 프레임이 많은 다람이와 고슴도치가 상당히 부드럽게 느껴질텐데 사실 이런 건 오래 전부터 디즈니톰과 제리 등의 미국 애니메이션에서 이미 해오던 것일 뿐이다.

북한에서 '꿈의 직장'이라고 불릴 정도로 지원이 잘 되는 편이라고 한다.[40]

또한 김일성이 만화 영화를 비롯한 아동 영화가 ‘매우 감화력이 크고 인식 교양적 지위가 큰 위력한 수단의 하나’라고 교시를 내린 적이 있는데, 애초부터 만화영화가 애들이 주로 보는것이다보니 애들 교육용으로 쓰기 딱 좋다는 판단을 했고 하청으로 외화도 벌수있으니 나름대로 국가적으로 육성했다. 그리고 북한내 주민들에게도 만화영화에 대해 인식이 우리와는 다른편에 속한다. 아예 교육목적인 '지식 공고화 주제 작품’이란 장르가 따로 있을 정도이다. 그 예시로 각도기로 미군 때려잡는 연필포탄 같은 것이 있다.[41]이 그 예다. 거기에다가 북한에서 따로 상업방송국이나 상업영화회사도 없고 무조건 조선중앙TV를 통해서 방영되기 때문에 일거리도 안정적이다. 즉, 애니 제작이 일종의 국책사업인 셈이니(교육방송+유튜브에 업로드해 대외선전까지 해야 한다.) 크게 신경써주고 있는 셈. 그런 면에서 남한에서 1980년대에 KBS와 MBC가 국영방송국이었음에도 비용핑계 대면서 어린이 시간대를 수입애니로 때우는 경우가 태반이었던 것과 대조된다. 대신 이 만화의 제작속도가 그때 그때 달라서 빠르면 한주 만에 나올 때도 있었지만 느리면 몇 년 정도 걸릴 때도 있다고한다. 물론 해외 하청 쪽에 사업이 많이 집중되어서 그렇기도 하다. 물리적으로는 국산 만화영화를 크게 늘리는게 불가능한 건 아니지만 북한의 쪼들리는 경제 상황상 해외 하청 쪽에 집중할 수 밖에 없다보니 국내 만화영화 제작은 상대적으로 적다.

주로 아동용으로 사업이 획일화 되어있는 편. 하지만 선전물에 관련해선 과격하고 잔혹한 묘사까지 허용한다. 주로 우화물이 자주 제작된다. 다만 2010년 이후부터 우화물이 줄어들고 대신 역사물이 늘어났는데, 김정은의 지시라고 한다. 애니메이션의 질이 높은 비결은 사실 미술대학 졸업생들 중에 많은 숫자가 애니메이터로 유입되고 있기 때문이다. 북한은 어디까지나 인민대중의 위로를 위해 예술이 존재하는 국가이기 때문에, 다른 나라처럼 순수미술로 먹고 살거나 아니면 개인 작업물을 시장에 거래할 수 있는 시스템이 없다. 그래서 많은 미술 전공자들이 자연스럽게 사회주의 집체창작 제작소에 "취직"하는데, 애니메이션 프로덕션이 해외 하청을 많이 받기 때문에 일거리가 많고 급여도 좋아서 꽤 선호도가 높다고 한다.

프랑스 르네 라뤼 감독의 애니메이션 일부가 북한에 하청을 준 것으로 유명했다. 사실 남한에서 방영되는 애니메이션 뽀롱뽀롱 뽀로로 1기도 남북합작으로 제작됐는데, 그림은 대부분 북한에서 그렸다. 하지만 남북관계가 악화되면서 3기부터는 순수 남한 제작으로 바뀌었다.

중국 애니메이션 하청을 물려받기도 한다.

2020년대 들어선 무슨 일인지 신년 기념으로 외국 만화영화를 '세계만화영화 선작'이라는 이름으로 방영하고 있다. 2020년에는 쿵푸팬더 시리즈(북한명 '무술가 참대곰')를, 2021년에는 드래곤 길들이기 시리즈(북한명 '룡을 길들인 소년')를 2022년엔 라이온 킹(북한명 사자왕)을 방영했다. 쿵푸팬더 시리즈와 드래곤 길들이기 시리즈는 모두 1-3편을 통합 편집하여 70분 내외로 방영했다. 2010년대 후반에도 인도 영화 바후발리 등 역사나 우화 등 체제 위협도가 떨어지는 외국 영상물을 간헐적으로 방영하기도 했으며, # 2023년에는 평양 중학교에서 겨울왕국을 영어 학습 교재로서 쓰는 모습이 포착되어 남한에서도 화제가 되었다. #[42] 한류 문화 노출도를 높이느니 차라리 통제 가능한 방식으로 외국 문화 노출도를 높이는 게 좋다는 판단에서 이뤄진 조치일 수 있다.

4.4.4. 예능

북한에서는 개그를 '화술소품무대'라 하여 조선중앙TV에서 방송중인데, 크게는 재담, 촌극, 희극교예(슬랩스틱 코미디) 3종류로 나뉜다. 개그맨이란 직업은 따로 없어서 화술조에서 양성된 배우들이 직접 코미디를 하는데, 체제 특성상 최고 권력자와 당을 비꼬는 정치풍자는 불가능하고 주로 사회계몽 등을 목적으로 한 사상무장 수단으로 쓰인다.(참고)

4.5. 만화

북한의 만화는 대개 "그림책" 내지는 "동화 만화"같은 이름으로 불린다. # 이 쪽도 주로 체제선전 목적으로 발간되는 작품들이 많다. 항일혁명 회상기라는 제목으로 김일성의 만주 게릴라 시절 이야기를 다룬 작품이 나오거나, 미군과 전투를 벌여서 쳐부수는 이야기, 남한이나 미국의 간첩을 잡아내는 첩보물을 다룬 작품들이 많다. 반공만화의 북한버전 그 외에는 남한의 사회를 비판하는 작품도 있다.(1990년 작. "썩고 병든 세상"[43])

4.6. 식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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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토착 음식 외에도 외국 음식들이 약간 들어와 있다. 평양에는 피자나 스파게티, 햄버거 등 서양 음식을 파는 식당들이 들어서 있다. 2010년대 들어서는 주요 지방도시에도 양꼬치같은 외국음식점들이 꽤 생겨난 모양. 다만 밀쌈같은 일부 길거리 간식류를 제외하면 대개 가격대가 비싸기 때문에 돈주나 당간부 정도급의 상류층이 아니면 아무 때나 먹을 수 있는 음식은 아니고, 나름대로 고급 요리 취급받는다.

북한 내에서 자체적으로 맥주를 제조하고 있다. 유럽식 맥주가 대세로 특히 러시아, 영국식 맥주가 주류를 이룬다. 대동강 맥주는 남한에서도 이름이 잘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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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 기타

북한 정부는 포르노 비디오나 영화를 '부르주아 사상이 가득찬 것'이라 하여 금지하고 있는데, 대표적인 예로 1990년 3월에 당간부와 혁명유자녀 출신 미망인들이 해당 매체를 몰래 보다가 함북 무산광산으로 추방됐고, 1993~1994년경 즈음에 평양외국어대학에서 총장을 비롯해 교직원, 학생들이 비슷한 행위를 하다 30~40여명이 지방으로 쫓겨났다. 은하수관현악단의 해체에도 이 포르노 비디오 촬영이 원인이었다는 설이 있다.

평양에도 오락실이 존재한다. 물론 수입산 게임이 절대다수이지만, 사격놀이등 북한식으로 개명해서 디스플레이하는 게임들이 몇몇 있다고 한다. 2010년대 이후로는 중국에서 제조된 각종 아류작 오락기도 들어오는 듯하다.[44]

2012년 노소텍이 제작한 평양 레이서(링크는 영어권 리뷰)라는 충격과 공포의 북한산 게임이 존재한다. 영상. 퍼블리셔는 고려투어인데, 실존하는 북한의 여행사[45]라고 한다. 플래시 게임이긴 하지만 게임 언어가 영어로 된걸로 봐서 해외에 대한 북한 체제 선전용으로 제작된듯 하다. 해당 링크에서는 쓰레기 게임으로 분류해서 리뷰했다. 구 페이지 시절 하단의 관련 기사 링크는 더 가관이다. 메가드라이브판 액션 52의 레이싱 게임과 DRIV3R, 빅릭스를 추천한다. 선술했듯이 2012년 제작인데도 불구하고 1990년대 게임처럼 보일 정도로 그래픽이 구린데다가 북한 특유의 도시 모양을 재현해서 그런지 외국에서는 리미널 스페이스요소로 여기기도 한다. 이제 만나러 갑니다에서 대도서관이 이 게임을 북한산 게임 중 하나로 플레이해본 적이 있는데 대놓고 망겜이라는 을 했다.

그러나 스마트폰 게임의 경우에는 그래픽이 구릴때가 많다는 점을 제외하면, 남한과 사정이 비슷하다. 다만 영어로 된 게임명이 익숙한 남한사람 기준에서 보았을때 게임 명이나 용어들이 웃겨보일때가 많다. 그리고 구글 플레이에 있는 거 불법복제해서 문화어로 바꾸고 넣기도 하지만, 게임이 돈되는 사업이라는 인식이 강하다보니, 북한의 IT기술자들이 따로 게임회사를 차려서 자체개발을 하는 경우도 많다. 다만 북한내에서도 스마트폰 게임에 대한 인식은 엇갈리는 편으로 학생들이나 직장인들이 학업이나 일보다는 온라인 유희에 집중하다보니 학업이나 업무 성적과 실적이 떨어진다거나, 지능형 손전화기 유희나 하느냐고 인사나 이야기도 잘 안한다는 식의 인식들도 적잖이 있는 편이다.

게임을 좋아하는 한민족 답게 이러한 전자 오락은 북한에서 경쟁적인 심리와 더불어 여건이 갖추어지자마자 큰 인기를 끌고 있다. 평양, 원산, 청진 같은 '대도시'에는 있는 PC방에서는 잘하는 사람 뒤에서 구경을 하는 경우도 존재하고, 못하면 욕을 먹기도 한다. 담배 연기가 자욱한 남성들이 모이는 공간이라는 인식이 있으며, 평양에서는 심지어 한국 PC방과 유사하게 전화를 걸면 김밥을 배달해주기도 한다고 한다. 인터넷이 금지되어 있어 인트라넷으로 경기를 하는 경우가 많다.[46] 가장 충격적인 것은 게임을 대단히 잘하는 사람의 경기는 인터넷이 없는 환경인데도 이것이 녹화되어 유통되는 사례도 있다는 것이다.

5. 이름

이름은 남한과 비슷한 편이다. 북한에서는 남자 이름에 ‘철’자를, 여자 이름에는 ‘옥’, ‘향’, ‘순', '금' 등을 선호한다. 21세기 들어서는 북한 여자 이름의 뒷자리에 ‘이’자가 들어가는 것[47]을 선호하는 경향이 크다. 문화적 변화가 느리니 일제의 잔재인 여자 이름에 ‘자()’를 붙이는 것이 지양되는 것을 빼면 한국의 중노년층에서 많이 보이고 젊은 층에서는 촌스러울 법한 이름이 북한에게는 유소년, 청년층이 가지는 경우가 많은 편이다. 하지만 이건 북한의 이름이 남한과 다른 측면이 무엇인가를 찾은 것일 따름이지, 남한과 비슷한 이름도 많다. 당장 지도자 김정은부터 남한에도 많은 이름이다. 여자 이름이 차이가 나는 편이긴 한데, 그래도 '옥', '금' 같은 구식의 한자보다도 젊은 세대도 '진', '미', '정' 같은 한자가 가장 흔한 편이다.

강릉 무장공비 사건의 전사자 이름 중에도 남한식 이름인 '영길', '영호', '승호', '동원' 같은 무난한 이름도 있었고 심지어 귀순자는 이광수라는 남한 개그맨과 같은 이름이다. 노동신문에서도 여자 이름 중 '용심', '복실', '일심' 같은 촌스러운 어감의 이름도 있지만 '윤경', '현정', '진아', '유정', '수정' 같은 무난한 이름도 있다. 1980년대 후반~2000년대 초반생이 주축인 북한 축구 국가대표팀 중에서 남자 23명의 구성원은 모두 남한에서 성을 빼면 한자는 불명확하지만 발음이 같은 사람이 있는 이름을 쓰고 있다. 예컨대 남한에는 88년생 김명성 선수가 있는데 박명성 선수는 북한에 있는 것이다. '영' 같은 경우 시대를 타지 않는 글자라서 남한에서 성별, 연령을 불문하고 흔히 쓰인다.[48] 후술할 해괴한 체제 선전용 작명을 제외하면 세대차를 배제하면 남한과 그냥 비슷한 이름을 쓴다.

그러나 2010년대 중반부터 외부 문물이 주민들의 정신에까지 영향을 미쳐 한국, 중국[49], 일본의 한자를 따서 이름을 짓는 경우가 생겼다. '아리', '소라' 정도면 세련되었다고 하는데 2020년대 들어 문화 탄압이 심해서 '혁명적'으로 개명하라고 한다고 한다. 이 취재에서는 "한때 우리나라에서는 ‘충성’과 ‘일심단결’의 의미를 담아 ‘일심’ ‘충심’, ‘충성’과 ‘총폭탄’과 ‘결사 옹위’의 내용을 담은 ‘총일’ ‘폭일’ ‘탄일', 그 외에도 '선군' 등 해괴망측한 이름들이 대세였다" 는데 이런식으로 이름을 바꾸라는 거냐며 비아냥거리는 반응이 담겼다. ‘영철’, ‘만복’, ‘순희’도 2010년대 중반 이후에 태어나면 촌스러운 이름이라고 한다. # 저런 이름이 괴뢰식이니 '효성' 따위로 여자 이름을 바꾸라고 하는데 전효성이라는 여자 이름의 연예인이 한국에서 활동한 것을 감안하면 북한 수뇌부에서도 남한과 북한 이름이 비슷한 것이 많음을 잘 모르는 것이다. 그 김정은조차 자기 딸 이름을 '주애'라는 남한에 있는 이름으로 지었다. 심지어 '주애'라는 남한 사람이 김정은이 싫어하는 엔터테인먼트 업계에서 활동하는 경우까지 있다.

김정일 시대에 태어난 두 명 이상의 쌍둥이들은 이런 이름을 부여받아 박광국-박명국-박성절(광명성절), 최강국-최성국-최대국(강성대국), 백조성-백국성-백보성-백위성(조국보위)와 같은 이름을 가진 경우가 있었다. 10명의 아이를 가져 북한 당국이 선전한 집에는 '윤경', '윤향', '윤범', '윤금', '윤련', '윤룡', '윤림', '윤복', '윤성', '윤성'이라는 이름이 자식들에게 붙여졌다고 한다. # 그나마 '리경덕, 리경복, 리경흥'같이 무난한 경우도 있다고 한다. #

독특하지만 어감이 괜찮은 이름 중엔 '소금이', '꽃니' 같은 이름도 존재한다.

6. 문화재 관리

남북통일/행정 및 사법에 나오듯 유적, 유물로 나누고 다시 국보, 준국보 등으로 나누어져 등록되어 있다. 문화재를 보존·관리하는 기관은 중앙의 문화성 문화보존관리국, 각 도의 문화유적관리소를 두고 있다. 문화재 전문기관은 행정기관과 공동 조사·연구를 전담하는 사회과학원 산하에 고고학연구소와 민속학연구소, 시·도에는 문화유물보존사업소와 문화재 관련 연구소가 있다. 이밖에 각종 박물관 등이 있다. 그러나 이러한 관리에도 불구하고 고난의 행군으로 가난이 극심했던 때 개성, 비무장지대 등의 고분들이 도굴당해 해외로 유출된 문화재가 많다고 한다. #

7. 북한의 한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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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문화 검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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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문화예술은 철저히 국가와 당, 수령의 뜻에 종속되어 있고, 어떠한 변화의 낌새가 있다고 하더라도 반드시 높으신 분들의 철저한 검열과 통제가 반드시 수반된다. 설령 그 변화가 부정적인 쪽으로 가더라도 그 분들이 자신의 잘못을 시인하는 경우는 없다. 자기들 밑의 몇 명만 시범 케이스 삼아 어디 무시무시한 곳으로 보내버리면 되니까. 가장 알려진 검열기구로는 2004년에 보위성, 안전성[50] 등으로 구성된 비상설기구 '109상무'가 있다. 또 외국소설과 외국노래 역시 금지돼 있으며 외국소설 역시 검열된 것만 읽어야 한다. 보위성 및 안전성은 한국 노래나 영상물, 책 등을 찾아내기 위해 불시에 가택수색을 실시하여 적발 후 정치범수용소로 보내기도 한다.

북한 정권 초기의 예술가, 문인들은 오로지 김일성과 당의 입맛에 맞춘 작품만 생산할 것을 강요받았고 이는 소련이나 다른 동구권 공산주의 국가에선 유례를 찾아볼 수도 없을 정도의 가혹한 통제였다. 예컨대 북한 작가 이기용의 농지개혁을 다룬 은 김일성에게 혹독한 비판을 받았고 이기용은 몇차례나 자아비판을 하고 소설을 다시 써야 했다. 특히 김일성이 마음에 안 들어한 것은 주인공 곽바위의 아내가 곽바위가 감옥에 간 사이 달아나버린 점이라던가 곽바위의 두번째 아내가 지주에게 첩으로 팔려가 남의 씨를 배어 낳았던 여자인 순옥이란 것. 결국 곽바위의 아내는 남편을 버린게 아니라 남편을 기다리다 굶어 죽은 것으로 바뀌었고 전체적으로 수정이 가해졌다. 이기용은 1974년 곽바위같은 혁명영웅에게 순옥같은 첩 출신의 중고품을 주다니 이 얼마나 혁명에 대한 모욕인가? 곽바위는 젊고 예쁜 처녀와 결혼해 마땅하다. 나의 오류를 지적하신 위대한 지도자 동지에게 감사드린다는 자아비판을 했고 소만일 등의 작가들도 동참했다. 이후 재혼, 조혼같은 주제들은 북한에서 한동안 터부시되었다.

하지만 이렇게 엄한 통제와 채찍질만 가해지는 것은 물론 아니고, 적어도 주류에 편입되어 활동하는 예술인들의 경우 특정 창작 집단 혹은 공연 집단에 배속되어 거의 평생 동안 일자리가 보장된다. 쉽게 말해 예술가들이 모두 국가에 전속 예술가로 소속되어서 일정 기간동안 작품 몇개를 만들어 내면 대가를 받는 형식이라고 보면 된다.[51] 몇몇 예술적으로 (그리고 정치적으로) 재능있는 이들은 공훈배우/공훈예술가, 인민배우/인민예술가, 김일성상 계관인, 김일성훈장 수훈자 같은 굉장히 끗빨있는 호칭을 수여받기도 한다.

물론 이들 집단과 예술인들 또한 모두 국가와 당 등에 예속되어 있고, 항상 당 지도위원(군대정치장교와 비슷함)에 의해 모든 제반 사항이 세세하게 통제되고 있다. 이 때문에 예술인 대부분의 충성도는 대단히 높은 편이며, 공연 예술의 경우 일단 '기교'는 꽤 먹어주고 들어간다. 1980~90년대 동안 북한에서 내려와 공연한 예술단이나 교예단(서커스단)의 공연은 꽤 화제가 된 바 있으며, 그 동안 대중들은 접할 수 없었던 북한 문화예술의 일부분이나마 체험하고 평가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다.

8.1. 문화 검열의 역사

9. 지도자의 교시에 따른 신문화 창작

북한은 최고 지도자의 교시에 따라 새로운 문화가 창작되거나 바뀌기도 한다. 북한의 악기 개량, 윷놀이 규칙 변경, 김정일이 창작한 카드놀이 보급[52]등이 있다.[53]

10. 서브컬처

전술했듯이 엄청난 가격이지만 1990년대에도 외국산 음란 비디오를 암시장을 거쳐 들여온 적이 있는 만큼 간부와 가족들을 중심으로 '외부 문화 콘텐츠'들을 소비하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 시청 시 옥살이는 기본이요 지방으로 추방된다고 하지만 당장 김정은을 포함한 김씨 일가부터 해외의 명품 브랜드들과 스포츠카들을 보유하고 있는 만큼 백두혈통을 포함한 최상류층들은 아무런 제재를 받지 않고 해외 서브컬쳐를 즐길 수 있을 것이다.

능력이 어느 정도 되는 이들은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에도 접속한다는 루머도 있다.[54] 2000년대 후반을 기점으로 북한에서도 프록시를 거쳐 몰래 인터넷 서핑을 한다는 보도가 있으나 아직까지 정확한 사실인지는 불명이다.

이미 1990년대에 한국 대중가요가 '연변노래'라는 호칭으로 퍼졌고, 2000년대 이래 한국 드라마와 영화는 크게 퍼져 있어서 중국 국경 인접지대에서는 아예 조선족 상인들을 통해서 직접 공수하거나 연변TV를 통해서 남한(남조선)산 영상물을 직접 접하는 경우도 있다. 다만 드라마와 영화에 너무 심취한 나머지 탈북하면 자신도 그런 생활을 할 수도 있다는 착각을 하게 되고 한국에 오게 됐을때 현실과 창작물의 괴리감에 적응을 쉽게 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는 듯 하다.

북한에서 중고 컴퓨터 부품들을 사서 조립하여 팔던 한 탈북자는 중국에서 들여온 컴퓨터 하드 디스크안에 한국 영화, 드라마가 엄청나게 많아서 그 안에 있던 한국 영화나 드라마를 팔아서 상당히 돈을 많이 벌었었다고.6분 15초부터 물론 잡힌다면 정치범 수용소에 갈지도 모르지만 돈만 있으면 조선인민군도 구워 삶아서 탈북도 하게되는 북한 특성상 뇌물로 어느정도 커버를 칠 수 있는 모양이다.

중국 거주 탈북자의 증언에 따르면, 한국 영화가 담긴 VCD는 국경을 드나드는 조선족 상인들이 종종 전파하는 모양이다. 학교에서 자연학습 나갔더니 남녀 중고등학생이 수풀로 들어가 잉야잉야해서 임신했다가 걸린다거나 음란하고 폭력적인 한국 영화가 학생들에게 악영향을 끼친다나 뭐라나. 이런 영상물들의 가격대가 비싸기 때문에 일반주민들은 쉽게 접하지 못할것같이 보이지만 어차피 일반인들도 장마당에서 벌어들인 부수입으로 생계를 꾸려나가는 판인데다가 청소년층도 장마당에서 용돈벌이를 하기 때문에 가끔씩 남한 영상물을 찾아서 친구들이랑 같이 돌려서 보는 경우는 많다고 한다.

여담인데 플레이스테이션3의 성능을 써 사용자들이 그리드 컴퓨팅으로 단백질 연구에 도움을 주는 기능[55]을 켜면 현재의 위치에 빛이 반짝여 다른 유저들도 볼 수 있게 했는데 북한에서 빛 하나가 반짝였다고 한다(뉴스 기사에 김정철로 추정 중). 근데 잘 보면 북쪽에도 불빛 2개가 있다!! 청진혜산 쪽인데 여기는 그나마 외부 문물을 접할 수 있긴 하지만, 당시 기준 플레이스테이션3을 일반 시민이 가지려면 엄청나게 어려우니 최상급 돈주 일가에서 하고 있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56] 그리고 잘 눈여겨보면 남포시에도 불빛이 미세하게 있다! 평양에서의 불빛은 그래도 김정철이 그나마 백두혈통이어서 플3 정도야 구하기가 쉬웠겠지만 일반 시민이 그러려면 정말로 어려웠을 것이다. 구한건 그렇다 치고 인터넷은 어떻게 한거지?[57] 하지만 중국 쪽 무역상이나 외국인일 가능성도 있다.

당연하게도 애니나 만화, 게임 등을 덕질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 중국이나 러시아에서는 정부에 대들지 않는 이상 검열된 선 내에서라도 덕질은 가능한데, 북한에서는 아예 그러지도 못한다. 혹시라도 걸렸다하면 수용소행은 불 보듯 뻔하다. 특히 반동사상문화배격법이 생기고 나서부터 북한은 사실상 오타쿠들의 불모지나 다름없게 됐다. 그 뿐만이 아니라 북한은 특권층이 지내는 평양 정도를 빼면 극도로 가난한 편이고, 인트라넷인 광명망을 이용하기 때문에 애니나 만화, 게임 등을 수입해오기가 굉장히 어려운 환경이기도 하다.

11. 마약

매우 유명한 문제다. 다만 북한에 대한 혐오와 결합한 과장된 소문도 많아[58] 반북 정치인 태영호처럼 이를 지적하는 경우도 있다. 약이 없어서 중독은 막기 위해 치료용이나 졸음 방지용으로 필로폰 연기를 마시고[59] 아편을 민간요법으로 처방하는 것이 문제된다. 자세한 사항은 마약 문서의 북한 문단 참조. 마약을 살 돈도 없어서 중독이 안 된다는 얘기가 있을 정도니... 함흥 같이 마약이 많은 지역 출신은 고향 사람들이 너무 불쌍하다고 여겨 이런 세태를 좋아하지 않고 정권을 저주하는 한 근거로 생각한다. 지역별로 차이도 있기 때문에 함경도 권역이 마약 문제가 심한 편이고, 남한에 가까운 지역은 이것이 덜한데 하필 탈북이 심한 함경도 권역이 마약 문제가 있어 북한의 마약 문제가 과장되어 알려지기도 한다. 평양도 마약 문제가 있고, 평안도 지방의 경우 몇 개 도시가 마약이 심한 경우는 있으나 함경도 권역마냥 평안도 권역 전반이 이런 경향이 심하지는 않다.

12. 교육

현재 북한은 초·중등교육에 명목상 12년제 무상교육제도를 편다. 이 무상교육제도는 원래는 학비 뿐만 아니라 학용품, 교복과 같은 소비품, 식료품, 교재, 교통비 등등을 모두 주는 식이었고, 195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 초반까지는 시스템이 그럭저럭 굴러갔다. 또한 북한 당국에서는 정부수립 초기때부터 교육에 대단히 많은 투자를 했었기 때문에 중학교는 1958년, 고등학교 교육과정은 1967년에 의무화되면서 보편화되었기에[60] 개발도상국답지 않게 교육수준이 매우 높은 나라라는 타이틀을 달았을 정도였지만, 1990년대 고난의 행군으로 배급제와 사회복지제도들도 일시에 무너지고, 물가폭등까지 겹치면서 무상교육제도의 체계도 많이 허물어졌다. 고난의 행군 시기에 많은 학교에서 운영자금과 가지재 비용 상당수를 학부모한테 떠넘기고, 교과서나 학용품 지급도 개인이 알아서 마련하도록 하면서 유상화 되었고,[61] 많은 교사들도 촌지나 과외활동을 통해 부업을 하다보니 각종 부정부패도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되었으며, 교복지급도 어려워져서 몇년에 한번씩 이벤트식으로 주는 식으로 변경되었다가 김정은 집권기가 되어서야 정상화되었다. 고난의 행군이 끝나고 경제가 어느정도 회복되고나서도 이는 회복되지 않고 있다. 이 무상교육연한은 원래 11년이었다가 12년제로 개편되었다.

북한의 교육수준은 세계적 추세에서 뒤떨어진 것으로 보인다. 김정은 본인이 2022년 9월 8일 최고인민회의 제14기 제7차 회의 시정연설에서 "지금 나라의 교육사업이 질적수준에 있어서 발전하는 세계적추세와 시대적요구에 따라서지 못하고있습니다."고 언급할 정도다. 연설 전문

심지어 2023년 기준 북한 측에서도 무상교육은 말로만 표방할 뿐 실질적으로는 사실상 포기한 것으로 보인다. 2023년 12월 21일 채택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교육후원법'에서 모든 기관, 기업소, 단체와 개인이 담당한 교육기관에 대한 후원을 책임적으로 할 것을 강조하며 처벌규정[62]을 명시했는데, 과거에는 무상교육을 한다며 국가(교육성)에서 교육기관을 담당했지만 필요한 재원을 확보하지 못하게 되면서 당국이 생산단위에, 또 개인에게 학교지원 담당제를 정해주고 강제적인 방법으로 교육후원금을 거두겠다는 취지이다. #

2024년 9월 새학기를 맞아 교육제도를 개정했다. 대학은 학년제에서 완전학점제[63]로 바꾸어 조기 졸업을 가능하게 하고 고급중학교는 이과, 문과, 예체능을 선택한다는 내용이다. 주민들의 반응에서 영재들을 위한 각 지역의 제1 고급중학교를 제외하면 일반 학교의 학생들은 교과서도 제대로 없고 사회 동원에만 다니면서 배우지 못하고 어려운 생활환경 속에서 학교에 나오지 못하는 학생들도 점점 많아진다는 내용도 언급된다. #

12.1. 초·중등 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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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1. 일반 학제

올해 20[age(2000-01-01)]학년도 기준 대부분[64]
북한은 4월신학기가 시작되며, 의무교육 과정은 유치원 높은 반[81] 1년, 소학교 5년, 초급중학교 3년, 고급중학교 3년이다.[82] 그런데 북한의 교육은 '교육'도 있지만 사상적 주입식 교육도 있다. 북한도 처음에는 소련의 학제를 따라서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분리햇다가 1968년에는 중학교와 고등학교 과정을 합쳤고, 그래서 1968년부터 2013년에 이르는 기간 동안에는 고등중학교->중학교라는 명칭으로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합쳐서 다녔다. 그러다가 김정은 정권대에는 교육개혁으로 교육연한을 늘리고 중학교를 초급중학교와 고급중학교[83]로 분리시키며 남한과 비슷한 체계로 교육제도를 완전히 뜯어고친 바 있다.

북한의 초·중등학교의 특징은 한 사람이 한 학교입학해서 만난 담임졸업할 때까지 간다는 것이다. 또한 담임을 고정한 만큼 교사의 전근 제도가 없다. 즉 한 교사가 한 학교에 발령을 받으면 은퇴할 때까지 그 학교에 근무한다는 뜻이다. 한편으로 촌지 문제가 심각한데 북한의 타 직종이 그렇듯이 교사월급으로 밥 벌어먹기 힘들기때문에 부수입으로 먹고사는 경우가 태반이라서 그렇다. 이러한 촌지에 대한 문제점이 제기 된것은 오래전의 일이라서 교사들이 앵벌이짓이나 한다며 개탄하는 목소리는 높지만, 교육예산 자체가 위낙 빠득한 현실속에서 집안이 부유한 경우가 아니라면 대다수 교사들이 부수입으로 먹고사는것이 현실이다보니, 노골적으로 문제를 일으킨 교사 정도나 정직시키고, 나머지는 자아비판하는 선에서 넘어가는 수준이다. 잣대를 엄격하게 대면 교사들의 대다수를 해직시켜야될 판이기 때문이다.

학교체벌 사정은 남한과 비슷하다. 남한에서 학교체벌 금지가 법제회된것이 2011년이 되어서인 반면, 북한에서는 체벌금지 자체는 일찍부터 법제화되었다. 하지만 실제 교육현장에서는 학생을 통제하는데 용이하다는 편의주의적인 이유로 인해서[84] 체벌이 공공연하게 이루어졌고,[85] 특히 학생들도 생활총화에 의무적으로 참석하도록 되다보니, 생활총화를 빌미로 사소한 잘못을 한 학생이나 잘못하지 않은 학생이라도 사소한 꼬투리를 잡아서 자아비판을 강요하는 경우가 많았다. 또한 1990년대에 경제난으로 인해서 인해 교사들도 월급만으로 못살게 되다보니 촌지와 사교육, 부업으로 먹고 살기 시작했는데 이 때문에 촌지액수에 따라서 학생들을 노골적으로 차별하는 경우가 많아졌는데, 생활총화에서 촌지를 주지못하는 학생들을 의도적으로 먼저 자아비판 대상에 올려서 학부모에 대한 압력수단으로 써먹기도 했다.. 그러나 이런 행태가 오랜기간 지속되다보니 교사의 권위가 실추되는 상황이 벌어졌고, 또한 체벌에 원한을 가진 세대들이 학부모가 되면서 자녀에 대한 체벌에 항의를 하다보니 2010년대 중반을 기점으로 해서, 대다수 학교에서 체벌금지가 정착된것이다. 다만 학교와 지역에 따른 차이는 북한에서도 존재하기때문에 대도시학교보다는 지방도시/농촌 학교에서는 체벌이 잔존한 경우가 제법 있으며, 남한과 비슷하되 남한보다 조금 센 수준으로 보면된다.

탁아소 제도가 잘 갖추어져있으며 특히 주간 탁아소의 경우에는 직장인 여성의 부담을 크게 줄이고 보육에 크게 도움이 되고 있지만 고난의 행군을 거치면서 탁아소 대부분이 돈을 받게 되면서 부담이 커지게 되었다. 당연히 유치원도 잘 갖추어져있지만 사진 역시 부담이 가는 편이다. 한편으로는 유치원에 입학하자마자 김일성과 김정일 부자를 찬양하는 세뇌 교육을 시작한다. 이는 실제로, 유치원 교사 출신의 어느 북한이탈주민이 증언한 내용도 있다.# 북한의 모든 유치원에는 북한에서 김정일이 태어났다고 주장하는[86] 백두산 밀영 모형이 있어서 유치원때부터 이 모형을 활용한 김일성과 김정일의 탄생에 대한 우상화 교육을 받는다.

소학교에 입학하면 '위대한 수령 김일성 대원수님의 어린 시절', '경애하는 령도자 김정일 장군님의 어린 시절', '공산주의 도덕', '국어', '수학', '사회', '자연', '음악', '체육', '미술', '로작'[87] 등 총 12과목을 공부한다. 이 중에서 중요한 과목은 단연 김일성과 김정일 부자(父子) 관련 과목이다. 최근에는 일반 중학교와는 다른 특수 중학교를 부각하면서 이러한 중학교에 입학하기 위해 예술, 외국어, 과학 등의 과목도 점점 중요시한다. 수학 문제도 남한과 확연히 다른데 8-5=3을 남한에서는 ‘팔 빼기 오는 삼’이라고 하지만 북한에서는 ‘여덟 덜기 다섯은 셋’이라고 한다,

초급중학교에 입학하면 소학교의 과목에서 더 확장해 총 23개 과목을 공부한다. 이 시기 때는 소학교에서 배운 김일성, 김정일 부자 관련 과목뿐만 아니라 '현행 당 정책' 등과 같은 북한의 정책에 관한 것들도 배운다. 초급중학교를 졸업하면 고급중학교에 입학한다. 그런데 이 초급중학교와 고급중학교는 학교급제는 다르지만 보통 같은 건물 안에 함께 있다. 원래는 이 초급중학교와 고급중학교가 고등중학교로 묶여 있다가 나뉜 것이기 때문이다. 북한에는 한국, 일본, 대만과 달리 과학 과목 중 지구과학이 없는데, 지리 과목에서 여기에 해당하는 내용을 배운다.[88]

이 고급중학교에 입학하면 학교를 졸업하고 군대에 갈지, 전문학교에서 기술이나 실무적인 기능을 배울지, 대학에 입학할지를 결정한 뒤 공부한다. 외국어의 경우 중국어, 러시아어, 영어의 비중이 높은데 소련이 건재했던 당시에는 러시아어가 제 1 외국어의 지위를 가졌지만 이미 1964년부터 영어와 러시아어의 지위가 비슷했으며 현재는 영어로 완전히 옮겨진 상태이다. 국제 사회에서 목소리를 내야 하고 원수의 언어도 알 필요가 있다며 영어 자체를 무시하는 건 아니다. 탈북민이 남한에서 영어를 많이 쓴다고 하는 건 영어로 표현되는 특이한 문물을 두고 하는 것이다. 대한민국과 달리 미국식 영어가 아닌 영국식 영어를 가르치고 배운다. 당연히 교재에서는 남한에 대해 부정적인 내용으로 묘사하고 있다.

북한에서는 고급중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대학에 들어가기가 어려우며, 이런 방식으로 입학한 학생을 직통생이라고 한다. 직통생이 되면 합법적인 군면제가 가능하고.[89] 다른 학생들은 남자든 여자든간에 상관없이 몇년간 군대에 있어야되는데 반해 직통생들은 대학교 2학년에 6개월만 군사훈련을 받으면 되기때문에 타 학생들이나 동급생들로부터 시샘의 대상이 된다.[90] 물론 직통생의 비율은 대학 입학자의 15~30% 정도라서 단순계산으로도 성적이 3~6% 안에 들어야 되는것은 물론 출신성분도 좋아야되며, 물론 출신성분이 좋다해도 합격선이 조금 낮을뿐이지 성적 상위권안에 들어야된다는것은 변함이 없다. 이렇게 직통생으로서 대학을 못 가면 자의반 타의반으로 군대를 가야 하니 북한에 재수생이라는 개념은 없다.[91] 당 간부 자녀라도 대학입시에 실패하면 군대를 간다.[92] 다만 북한에서 군복무를 기피하기보다는 군입대를 하려는 사람들이 뤌씬 많은데 군대에 장기간 복무하면 공부를 못하고 돈이 없다해도 조선로동당 입당할 기회를 잡거나 좋은 직장에 배정되는 등 출세할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물론 돈 있거나 연줄있는 사람들은 최대한 보급사정이 좋은 곳을 알아봐서 보낸다.

북한의 경제사정이 워낙 열악하기에 교사들이 생활난에 허덕여 학부모들의 도움으로 연명하는 것은 기본에(#) 자습 시간을 명목으로 나가서 돈벌이를 해야 하기에 학생들을 가르칠 여력이 없는 상황이고, 때문에 초등학교 학생들 중 한글도 못 읽는 학생들이 많아질 정도라고 한다. 공교육의 질이 너무 낮은 나머지 사교육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구조인데, 문제는 잘 사는 집안이 아니면 사교육조차 엄두도 내지 못한다는 것이다. #

생활고 때문에 자식들의 유치원 진학을 포기하는 경우도 늘어나고 있다. #

북한에서는 새학기마다 무상으로 학생들에게 교과서를 나눠준다고 홍보하고 있지만,[93] 실제로는 훼손되지 않은 도서나 로동신문 같은 상파지 2kg[94]을 바쳐야 교과서를 받을 수 있으며, 상파지를 내지 못한 학생에게는 '기본 과목'으로 간주되는 '혁명활동' 교과서만 주면서 상파지를 바치면 나머지 교과서를 받을 수 있다고 말한 것을 넘어 상파지를 제대로 받지 못한 학교에는 교과서도 제대로 주지 않았다. 한마디로 말만 교과서 무상공급이지 실제로는 유상공급이랑 다를 바 없는 셈이다. #
12.1.1.1. 관련 문서

12.1.2. 사교육

북한학교에서는 정규수업시간 이외에도 보충수업과 자습 시간이 길게 주어진다. 다만 남한의 야간자율학습처럼 밤시간에 수업을 진행하지는 않는 편인데 1980년대 이래로 잘사는 집안에서는 사교육을 하는 경우가 많고, 돈이 궁한 교원들도 부업벌이로 과외를 하기도 한다. 수재교육의 폭을 넓히기 위한 조치로 각 도에 있는 제1고급 중학교를 확장하고 있는데, 학년말 시험 성적에 따라 학급을 편성해 성적이 나쁜 학생들에게 수치심을 주며 차별하기도 했고, 2010년대에는 체벌금지가 확대되면서 많이 사라졌지만 2010년대 중반 이전에는 시험성적이 나쁘면 단체로 체벌을 하는 경우도 빈번했다. 반배치고사에 따라 학급을 편성하다보니 교육계는 실력 위주가 아닌 성적 조작 위주로 흘러가고 있다. 교육자들은 이해관계가 있는 힘 있는 학부모들에게 돈을 받고 시험문제를 미리 알려주거나 학생들의 시험지를 바꿔치는 일도 있었다고 한다.(북한의 사교육)
북한도 1980년대 이래로 잘사는 집안에서는 사교육을 하는 경우가 많고, 돈이 궁한 교원들도 부업으로 과외를 하기도 한다. 수재교육의 폭을 넓히기 위한 조치로 각 도에 있는 제1고급 중학교를 확장하고 있는데, 학년말 시험 성적에 따라 학급을 편성해 성적이 나쁜 학생들에게 수치심을 주며 차별하기도 했고, 2010년대에는 체벌금지가 확대되면서 많이 사라졌지만 2010년대 중반 이전에는 시험성적이 나쁘면 단체로 체벌을 하는 경우도 빈번했다. 반배치고사에 따라 학급을 편성하다보니 교육계는 실력 위주가 아닌 성적 조작 위주로 흘러가고 있다. 교육자들은 이해관계가 있는 힘 있는 학부모들에게 돈을 받고 시험문제를 미리 알려주거나 학생들의 시험지를 바꿔치는 일도 있었다고 한다.(북한의 사교육)

좋은 대학에 가기 위해서 한국수능기출 문제집이 거래되고 있다고 한다. 북한의 돈 꽤나 있다는 중산층 이상 주민들 사이에서 자녀교육을 위해 한국의 수능기출 문제집이 큰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한국의 수능기출 문제집 수학과 영어 과목은 2016년 초 만해도 장마당에서 중국인민폐로 300위안이었는데 그 이후에는 120위안 정도로 값이 떨어졌다. 중국인민폐 120위안은 북한의 보통 가정들에서는 매우 큰 돈이다. 수능기출 문제집 중 사회탐구 사회문화동아시아사, 세계사,(통칭 역사) 과목은 2016년 기준 장마당에서 중국인민폐 80위안으로 거래되고 있고, 수학과 영어 과목은 수재양성 학교인 각 도의 제1고등학교와 고급중학교 학생들 사이에서 인기라고 한다.(한국의 수능기출 문제집이 인기)

다만 웬만한 가정에서 사교육을 시키는 남한과 달리 북한에서는 사교육을 받지 않는 가정이 많고, 빈곤층은 자녀가 특출나게 공부를 잘하는것이 아니면, 그냥 사교육이곤 뭐건 상관없이 사는 경우가 많다. 이는 북한에서는 최상위급 엘리트가 아니면, 사짜직업을 가져봐야 번듯하게 먹고살기 위해서는 따로 부업벌이를 해야되는것은 마찬가지인지라, 연줄이 없을 경우에는 잘먹고 잘사기 위해서는 공부를 잘하는것보다는 장사를 잘하거나, 먹고살수있는 기술을 가지는것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12.2. 고등교육

12.2.1. 대학 입학

북한의 대학 입학은 크게 고급중학교를 졸업하고 시험 성적으로 진학하는 경로와 고급중학교를 졸업하고 군대나 직장에가서 일정 기간 근무하고 진학하는 경로, 당의 방침에 따라 진학하게 되는 세 경로로 나뉜다.

먼저, 시험 성적으로 진학하는 경로는 '예비시험 - 추천 - 본고사'의 단계를 거친다.

고급중학교 2학년 말이 되면, 학교에서는 공부를 잘하는 학생들을 모아서 별도의 학급을 구성해 3학년으로 진학시킨다. 이 학급은 대학이나 고등전문학교[95] 진학을 준비하는 학급이다. 이 학급의 학생들은 대한민국의 수능과 비슷한 '대학추천을 위한 예비시험'에 응시한다. 이 시험은 1983년부터 실시되었는데, 혁명역사, 문학, 수학, 화학, 물리, 영어 교과[96] 로 구성되어 있고, 전부 객관식 시험이다. 도입 초기에는 대한민국의 예비고사처럼 암기 위주의 시험이었지만, 1996년 대한민국의 수능 시험에 대응하라는 김정일의 지시에 따라 수능과 같은 형식으로 마개조되었다. 이에 따라 북한의 교육과정 역시 암기 위주의 교육에서 논리력, 사고력, 이해 중심으로 마개조되었다.

이 예비시험은 10월에 실시되며, 그 결과에 따라 어떤 대학에 갈 수 있을지(추천 받을지) 대충 윤곽이 드러난다.

예비시험 문항의 형식은 대한민국의 수능과 비슷하나 난이도는 훨씬 어렵다. 1996년 교육과정이 개정되면서 북한은 주입식, 암기식 교육의 기본 토대 위에서 논리력, 사고력, 이해중심 영역을 강화시켰다. 실제로 예비시험 문항에는 다양한 개념을 복합해야 하거나, 고도의 형식논리를 알고 있어야 수월하게 풀 수 있는 문제가 상당수 출제된다. 쉽게 이야기해서 암기와 논리적 사고력 이 둘을 모두 갖춰야 좋은 성적을 받을 수 있다는 이야기다.

예비시험의 성적이 나오면 교사학생이 의견을 모아 진학할 대학, 전문학교를 3개 정도를 지망 순위를 정한다. 흔히, 북한에서 대학 진학 시 학생의 의견은 완전히 무시된다고 알려져 있으나, 이는 사실이 아니다. 북한에서 학력은 직업, 사회생활, 당 생활과 직결되어 있는 만큼, 대학 진학 결정 시 오히려 학생이나 학부모의 의견이 최대한 수렴되는 구조이다. 이렇게 지망 순위가 정해지면 학교에서는 학생의 출신성분이 포함된 인적사항, 고급중학교의 성적, 예비시험 성적 등을 기입한 추천 조서를 도 교육국에 내신한다. 도 교육국은 각 도에 할당된 대학, 전문학교 정원에 따라 내신 받은 추천 조서를 보고 가추천을 한다. 이 가추천은 예비의 성격으로, 교사와 학생의 의견에 따라 조율, 수정을 거칠 수 있다. 조율과 수정을 거치면 도 교육국에서는 확정 추천을 공고한다.

이러한 추천 과정은 대학, 전문학교의 본고사 응시에 대한 추천으로, 실질적으론 원서 지원과 같다. 대한민국식으로 따지자면 원서 지원을 할 때 교사나 교육청의 제한을 받고, 대학과 전문학교 각각 한 곳에만 지원할 수 있는 셈이라 보면 될 것이다. 다만, 이러한 추천 과정에서 당연히 지원자의 출신 성분이 고려되며, 출신 성분이 매우 좋지 않은 학생을 교사와 학교가 억지로 대학 추천 조서를 밀어 넣어도 교육국에선 반려할 권한이 있다. 다만, 출신 성분이 좋지 않다고 무조건 대학, 전문학교 진학이 제한되는 것은 아니다. 출신 성분이 나쁘다면 그것을 만회할만큼의 성적을 얻으면 된다. 탈북자 가족이 있는 가정과 같이 출신 성분이 최하위 급인 가정에서 자란 학생이 만점에 가까운 예비시험 성적을 얻어 중앙대학에 추천되어 합격한 사례도 상당 수 있다. 실제로 북한 중등교사 출신 탈북자들은, 출신 성분이라는 것이 점수화되어 있으며, 대학 추천 조서 내신 시 점수화된 출신 성분을 고려한다고 한다. 쉽게 이야기해서 출신 성분이 우수하면 시험 성적이 약간 낮아도 추천을 받을 수 있고, 출신 성분이 나쁘다면 그만큼 만회할 성적을 받아야 하는 것이다.

이렇게 추천을 받으면, 제로 베이스에서 본고사를 보게 된다. 추천을 받았다는 것은 교육당국에서 어느 정도 사상, 당성, 출신 성분을 보증한다는 의미이기 때문에, 추가적인 신원 조사는 거의 이루어지지 않는다. 본고사의 형태는 대학마다 다르며, 보통 혁명역사, 수학, 외국어(영어, 러시아어, 중국어, 독일어)는 공통적으로 포함된다. 대학이나 선발단위에 따라 자연과학이나 사회과학에 해당하는 교과들이 포함되기도 한다고 한다. 본고사는 과목 당 2~3문항의 논서술형이고, 일부 대학은 면접 고사도 있다.

예비시험이 도입된 1983년 이전에는 위와 같은 성적 위주의 대학 진학 방법이 없었다. 즉, 추천이나 당의 방침에 의해서만 신입생을 선발했던 것이다. 물론 이런 과정에서 성적 요소가 아예 배제되는 것은 아니었지만, 정무적 판단이 결부되기에 대학 입학 자격은 북한의 기득권층 위주로 분배될 수밖에 없었다. 북한 성립 초기부터 이러한 제도가 지속되자 1970년대 초반 대학 교육의 질이 급격히 저하되는 현상이 나타났으며, 대학 강단 내에서 학업 성적 위주로 신입생을 선발해야 대학이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는 이야기가 커졌다. 이러한 여론을 잘 정리하고 적절한 대책을 마련해 김일성, 김정일 부자에게 보고한 이가 바로 황장엽이다. 당시 황장엽은 김일성종합대학 총장이었는데, 학업을 멀리했던 제대군인이나 직장인들이 출신성분이 좋다는 이유로 입학생의 다수를 차지하고, 학업 성적은 좋지 못한데도 강의실에서 군림하는 모습을 매우 좋지 않게 봤다고 한다.

위와 같이 시험 성적으로 대학을 가는 것은, 전체 대학, 전문학교 입학자의 30% 정도에 해당한다. 다만, 북한의 교육제도 특성 상 전체 중등학교 졸업자의 20%정도만이[97] 대학과 전문학교에 진학할 수 있고, 그 중에서도 30%만이 성적 위주로 대학에 간다는 것을 고려한다면, 전체에서 최소 상위 7~8% 이내에는 들어야 대학이나 전문학교 진학을 꿈꿔볼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단 한 대학의 본고사에만 응시할 수 있기 때문에, 진학의 난이도는 더욱 상승한다. 다만, 북한 학제 상 '종합대학'인 대학[98]은 일반 단과대학에 비해 본고사를 2주 일찍 시작하는데, 이러한 종합대학의 본고사에 불합격한 경우 다른 대학이나 전문학교에 시험 응시 여석이 있는 경우 추천을 더 받을 수 있다.

하지만 김일성종합대학은 고사하고 중앙대학에 입학하기 위해선 웬만큼 공부를 잘하는 것으로는 턱없이 부족하고, 도 내에서 순위권 안에 들어야 하는 것이다. 실제로 지방의 군 단위에서는 10년에 한 번 꼴로 김일성종합대학 합격자가 1명 나올 정도로 입학이 어렵다[99]. 이처럼 성적 위주로 단 한 번에 대학, 전문학교 입시를 통과한 이들을 직통생이라 부르고, 수재로 여겨지며, 집안의 자랑거리로 여겨진다. 오죽하면, 뜬금 없이 2018년 남북 고위급 회담에서 리선권이 자신의 자녀도 아니고 조카가 직통생으로 대학에 진학했다고 자랑을 했겠는가. 이는 북한에서 성적 위주로 직통생이 되어 대학에 간다는 것은 출신성분이나 사회적 계층과 무관하게 대단히 어려운 것임을 의미하는 것이다.

위와 같이 직통생으로 대학에 진학하지 못하면, 2003년 이래로 출신 성분이나 부모의 사회적 지위 따위와는 관계 없이 짤 없이 군대에서 장시간 복무하게 된다. 하지만 군복무기간에도 사회의 직장 추천이나 대학 추천을 받으면, 이후의 군 복무는 직장과 대학에서 하는 걸로 간주한다. 즉, 의무 복무 기간 중 추천 여하에 따라 직장에도 갈 수 있고 대학에도 갈 수 있는 것이다. 보통 이러한 추천은 군 복무 기간 3년 이후 복무 평정에 따라 이루어진다고 알려져 있는데, 말이 평정이지, 북한 내부 사정 상 이 게 공정하게 이루어질리가 없다. 부모의 영향력이나 금전적 대가를 통해 추천이 이루어진다는 증언이 주를 이룬다. 군에서의 대학 추천은 위 성적 위주의 추천과 달리 확정된 입학 정원만큼을 할당해 추천 받기 때문에 별도의 시험 절차를 거치지 않고 입학할 수 있다. 이런 식의 추천은 군에서만 있는 것이 아니고 직장에서도 있으며, 군-직장-대학 테크를 밟는 경우도 상당하고 한다. 이러한 추천 입학생은 전체의 40%가량에 육박한다.

위의 추천 입학과 비슷한 맥락에선 방침 입학도 있다. 즉, 조선로동당의 방침에 의해 입학하는 것이다. 북한의 대학 역시 당의 통제 아래 있으며, 다른 사회 조직과 마찬가지로 대학내에 당 조직이 구성되어 있다. 이 방침 입학은 본래, 북한 내의 사회적 소수자(동요계층, 적대계층)을 대학에 보내 북한의 주류 사회로 편입시키기 위한 선의의 제도로 시작된 것인데, 90년대 중반 고난의 행군을 거치며 부정부패의 온상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대한민국의 일부 언론에서 '1000달러를 주면 김일성종합대학에 입학할 수 있다'라는 식이 바로 방침 입학이다. 그러면 이렇게 돈을 주고 대학에 들어가는 것이 북한 제도 내에서 불법이냐? 그것도 아니다. 아예 '누군가 외화난을 겪는 당에 외화를 충성으로 기탁하고, 당이 그것에 대한 사의의 표시로 대학 입학을 시켜주었다'라고 공식 발표해버린다. 즉, 대학 입학마저도 북한에선 당에 대한 충성심의 표현 수단으로 이용하는 것이다.

그리고 방침 입학이 변질되기 전까진, 방침 입학으로 대학에 진학하는 인원이 매해 많아야 100명 내외였으나, 지금은 전체 대학 입학생의 30%가량을 차지할 정도로 비율이 늘어났다. 여하튼, 이유가 어찌되었건 당에서 방침을 주면 대학은 정원 사정과 관계 없이 무조건 입학생을 받아야하기 때문에 요새는 아예 대학에서 방침 입학생을 받기 위한 정원을 비워놓는다고 한다.

위의 내용을 정리하자면, 성적 위주로 대학에 진학하는 직통생은 전체의 30%, 군이나 사회에서 추천으로 입학하는 인원은 40%, 방침 입학이 30%가랑이 된다.

북한에서 출신성분이 좋은 가정의 학생들은 직통생으로 대학에 가면 큰 영예이긴 하나, 출신성분을 활용한 추천이나 방침 입학의 경로가 훨씬 넓기에 학습에 큰 부담을 느끼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실제로 죽도록 공부하기 보단, 고급중학교 졸업 직후 군에 입대해 부모의 사회적 후광을 이용해 근무 여건이 좋은 부대에서 편한 보직에 있다 대학에 들어가는 편이 훨씬 편하다. 또, 사회적 지위는 그리 높지 않으나 대외 무역이나 장사를 통해 외화를 많이 벌었다면 그 경제력을 이용해 방침 입학을 하는 길도 있다. 결국 출신 성분도 나쁘고 돈도 없다면 공부밖엔 없는 것인데, 생계 유지가 어려운 가정이라면 부모님 일을 돕거나 자체적으로 용돈벌이를 하기 때문에 공부에 전념하기 힘들어, 도리어 성적으로 대학을 가는 학생들도 대부분 기득권 가정 출신인 것이다.

최근 들어서 북한은 대학입시의 완전 전산화를 추진하고 있다. 2019년부터는 예비시험을 지방의 원격지 시군부터 인트라넷을 이용한 컴퓨터 기반 시험으로 전환했고, 2021년에는 코로나를 계기로 거의 대부분의 학교에서 예비시험을 컴퓨터로 실시한다. 이와 함께 예비시험 성적 통보와 보고사 추천 결정도 모두 전산화되어 이뤄지고 있다. 예비시험은 학생이 재학하는 학교 내의 컴퓨터 시설에서 실시한다.

대학별 본고사도 역시 컴퓨터 시험을 추진하는데, 이는 강제사항은 아니고 각 대학의 선택사항이다. 김책공업종합대학, 평양기계공업대학, 김형직사범대학 등이 본고사를 컴퓨터 시험으로 진행한다. 대학 본고사 컴퓨터 시험은 각 도 교육위원회 청사 내에 마련된 컴퓨터 시험장에서 실시한다.

북한 교육 당국은 대학입시의 전산화를 통해 시험 과정에서의 비리와 부정을 없애고 전형 진행 기간을 절약할 수 있다고 홍보 중이다.

2024년 기준 신의주시에서는 대학교 진학을 위한 뇌물 비용이 최소 3000위안(약 57만 원)이라[100] 대학교 진학을 포기하는 청년들이 늘고 있다고 한다. #

12.2.2. 북한 내 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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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대학 중 김일성종합대학은 대한민국에도 잘 알려진 대학으로 대학 명칭에 김일성의 이름이 돋보인다. 그 밖에도 김책공업종합대학이나 김형직사범대학[101] 정도는 북한에 교양이 있으면 알 만한 대학이다. 실제로 김일성종합대학의 인지도는 대한민국 안에서도 상당히 높은데 북한 관련 교육을 전혀 안 받은 사람들도 '북한의 대표적인 대학은?'하고 물으면 대개 '김일성대학'이라고 빠지지 않고 대답한다.

이처럼 김일성종합대학이 대한민국에까지 잘 알려진 것은 김일성이라는 이름을 달아서라는 이유가 가장 크지만, 북한 내 최고 유력 대학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흔히 대한민국에선 '김일성종합대학을 졸업하면 미래가 보장된다', '북한 안에도 학벌이 있다'라는 인식이 퍼져 있지만 탈북자들 중 고등교육을 거친 이들은 이를 부정한다.

일단 북한에는 대학 동창, 동문 개념이 없다[102]. 북한에서는 사전에 허가를 안 받은 모든 모임, 결사체를 불허하며 이러한 조직을 만들면 보통 종파로 간주한다. 그래서 ○○대학 동문회를 열었다간 강제수용소행을 각오해야 하는 것이다. 따라서 대한민국과 같은 학벌 풍조가 거의 없으며 누가 무슨 대학 후배니까 끌어준다는 식의 문화도 실제로는 찾아보기 힘들다. 김정일이 후계자 시절에 학벌 풍속을 박멸시키라고 교시한 바가 있어, 학맥으로 밀고 당기기를 했다간 큰 화를 겪는다고 한다. 김정일은 자신이 정권을 잡자 자신과의 친소관계를 쓸 수 있다면서, 오히려 자신의 대학 동문들을 다 퇴직시키거나 한직으로 전보도 시켰다.

그러나 김정은 정권 시기 들어 정권이 안정되자, 김정일 집권의 정당성을 강조하기 위해 김정일의 대학 시절 이야기나, 대학 동창들을 출현시켜 김정일의 위대성을 알리는 식의 정치 선전이 점증하고 있다. 동문 개념이 전무한 북한 사회에서 이러한 정치 선전은 특기할 만한 것으로, 김정일이 명문 대학을 졸업했고, 대학을 다닐 때도 비범한 인재였다는 것을 더욱 강조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대한민국의 국립대 개념과 비슷하게 중앙대학이 있다. 이 중앙대학은 중앙(평양)에 있는 대학이 아니라 중앙(교육성)에서 관할하는 대학이라는 뜻이다. 중앙대학은 국가적인 관리와 투자가 따르니 지방에 있더라도 상당한 명문 대학으로 손꼽힌다.

지방 소재의 유명한 중앙대학으로는 정준택 경제대학[103], 원산농업대학[104], 희천공업대학, 평성리과대학[105], 함흥(흥남)화학공업대학[106], 함흥수리 동력대학[107], 함흥의학대학[108], 청진광산금속대학 등이 있다. 이들 지방 소재 중앙대학의 입학 성적은 평양 소재의 대학들과 대동소이하며 이러한 대학을 졸업하면 중앙 기관이나 최소한 도급 기관에 배치를 받는다.

평양 소재의 대학의 상당수가 중앙대학이며 평양시 교육국의 감독을 받는 지방대학도 있다. 김일성종합대학, 김책공업종합대학이 대표적인 평양의 중앙대학이며 평양외국어대학, 김형직 사범대학, 평양철도대학, 평양기계대학, 평양건축대학, 조선미술대학, 평양음악무용대학, 조선체육대학 등이 중앙대학이다. 평양시 소재의 지방대학에는 김철주 사범대학, 평양교원대학, 평양경공업대학, 장철구 평양상업대학 등이 있다.

많은 탈북자들에 따르면 한국에서 알려진 소위 '김일성종합대학 지상주의'는 북한의 대학 시스템을 곡해한 데서 나온 것이라고 한다. 북한에서는 대학의 입학도 중요하지만 대학 졸업 뒤 배치 받는 직장이 입학보다 더더욱 중요하니 자신의 출신 성분이나 집안 배경을 고려해 대학에 진학할 수밖에 없다고. 즉, 그러한 자신의 배경을 무시하고 무리하게 좋은 대학에 가면 졸업 이후의 진로가 문제라 오히려 인생이 꼬인다는 뜻이다. 그러니 북한에서는 대학 입학 이전에 지원 단계부터 자신의 진로를 고려한다.

예를 들어서 자신의 부모가 고위 간부인 사람과 부모가 지방의 농부인 사람이 간부 양성 자체가 궁극적 목적인 김일성종합대학을 입학해 향후 직장 배치를 받을 때 엄청난 차이가 난다. 부모가 고위 간부인 사람은 부모의 도움으로 정부 기관이나 좋은 기업소에 직장 배치를 받겠지만 부모가 지방의 농부인 사람은 직장 배치 시에 부모의 힘을 전혀 못 빌리니 최악의 상황에선 직장 배치를 못 받을 수도 있다. 공식적으로 실업자가 없어야 하는 사회주의 국가의 특성상 이러면 인간의 대접을 못 받는다는 뜻이다. 더욱이 북한에서 대학씩이나 졸업한 사람이 직장 배치를 못 받는다면, 인간다운 삶을 못 산다라 볼 수 있다. 부모가 농부인 사람은 오히려 현실적으로 북한 안에서 공부로 승부할 이공계통[109]으로 진학해야 오히려 미래를 위해 좋다.[110]

한때 북한의 대학 시스템은 구 사회주의권의 것을 그대로 따랐기 때문에 국가적으로 중요하고 많은 투자가 이루어지는 대학을 '종합대학'이라 칭하고, 나머지 대학은 (단과) 대학 형식으로 운영했다. 이 시기 공식적인 종합대학 명칭을 가진 곳은 김일성종합대학, 김책공업종합대학, 개성성균관경공업종합대학 뿐이었다. 하지만 이들 대학 중 '종합대학'이라고 하면 단연 김일성종합대학을 지칭하는 것이었고, 실제로도 김일성종합대학만이 인문사회계 및 자연공학계열에 걸친 여러 학문단위를 가진 대학이기도 하다.

하지만 2015년 말부터 위와 같은 명칭 시스템은 완화되었고, 2016년부터는 영문 상 University로 표기할 수 있는 대학은 모조리 종합대학으로 칭하고 있다. 기존의 평양건설건재대학이 평양건축종합대학으로 바뀌었고, 김원균명칭평양음악대학도 김원균명칭 음악종합대학으로 바뀌었다. 아마도 서양식 대학 체계를 보고 배운 김정은이 기존의 사회주의권 대학 체계는 부자연스랍다고 느껴 이처럼 시스템을 갈아치운 것과 같이 보인다.

하지만 이름을 종합대학이라 쓴다해서 그 학교들이 기존의 김일성종합대학과 김책공업종합대학과 같은 조직과 규모를 갖추는 것은 아니다. 특히, 김일성종합대학의 총장은 북한의 모든 고등교육을 관장하는 고등교육성[111]의 고등교육상을 겸직하므로 그 위상 자체가 다른 대학과 넘사벽이다제국대학.

2019년 들어서는 위와 같은 변화의 움직임이 더욱 빨라지고 있다. 많은 고등전문학교가 대학으로 승격되고 기존의 대학은 종합대학화하고 있다. 이러한 승격 개편 과정에서, 고등교육기관이 도시에 집중된 현상을 완화하기 위해 시 단위에 소재한 학교를 군 단위로 이전하는 사례도 나타나고 있다. 또한, 각 고등교육기관의 규모를 늘리고 정원도 대폭 확대하여 대학 진학률을 높이는 것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더욱이 8월에는 각 도에 종합대학 하나씩을 설립하는 계획이 발표되었는데, 이 종합대학은 기존의 김일성종합대학의 규모에 준하는 것이어서 북한의 교육 지형에 큰 변화가 예상된다. 이처럼 고등교육기관의 확대를 위해 박사원 정원도 확대하여 대학 교원 수급 역시 안정화하겠단 계획도 발표했다.

이는 기존의 경직된 고등교육체제에서 탈피하고, 고등교육 수학 인구를 늘려 국가 경쟁력을 높여 보겠단 시도로 보인다. 이는 70년대 후반부터 80년대 초반 대한민국에서 대학 정원이 급속도로 확대된 것되 비슷한 현상이라 볼 수 있다.

2024년 4월에는 청진교원대학에서 학생들에게 세외부담으로 북한 돈으로 20만 원(약 25달러)를 요구했는데, 25달러는 장마당에서 2~3개월 정도 일해야 겨우 얻을 수 있는 수준이다. 그나마 이 세외부담은 북한 내 다른 학교들의 세외부담과 비교해도 '월등히 많은' 수준이었다는 것도 감안해야 한다. #

열악한 교육 수준과 막대한 세외부담 때문에 사교육을 택하는 부모들이 늘고 있는데, 북한 측에서는 이를 단속하기 위해 사교육 교사들에게 노동단련대 6개월형을 내리고 있다. # 링크를 보면 청진시 초등학교에서 한 달에 걷어가는 세외부담이 70만 원(미화 약 87달러)[112]라고 나온다.

12.2.3. 사범 교육

북한에서 교원 양성 교육인 사범교육은 고등교육 단위에서 실시된다. 크게 김형직사범대학, 사범대학, 교원대학으로 이뤄져 있다. 사범대학과 교원대학은 모두 지방대학으로, 각 시/도의 교육위원회 산하에 있다.

중등교원은 사범대학에서, 유치원 및 초등교원은 교원대학에서 양성한다.

김형직사범대학은 일반적인 사범대학과 다른 대학으로, 내각 교육성 직할의 중앙대학이다. 이 대학은 전국의 사범대학과 교원대학의 대학교원을 양성하는 것이 주 목적으로, 대학교원 임용을 받지 못한 학생들은 북한 전역에 소재한 특수목적교인 제1중학교 교원으로 임용된다. 이 대학 졸업만으로도 대학교원이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김형직사범대학과 평성사범대학과 같은 일반 사범대학과는 위상에 엄청난 차이가 있다.

참고로, 북한에서는 석사 이상의 학위를 갖고 있지 않아도 대학교원이 될 수 있다. 이는 북한 대학 제도의 특수성 때문이다. 북한의 대학은 21세기에도 여전히 연구보다는 교육에 중심을 두고 있으며, 대학교원들에게도 교수법, 강의안 등을 강조하고 있다. 이 때문에 북한의 대학교원은 '학자'라기보다는 '교원'의 성격이 짙어서, 가르칠 능력이 있다고 판단되면 학위나 특별한 학문적 성과가 없어도 대학교원 임용이 가능하다. 이 때문에 대한민국으로 치면 24살의 나이에도 대학의 전임 교원이 되는 일이 얼마든지 가능하다. 물론, 대학 내에서 특정 직위 이상으로 승진하거나 자신의 명예를 높이기 위해선 학위가 반드시 필요하므로, 대학교원 임용 이후에 학위 취득을 위한 공부를 지속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북한은 여전히 구 소련을 위시한 사회주의권 학위 제도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에 '교수'는 '박사' 학위 취득 이후 얻는 '칭호'로 여겨진다. 그래서 북한의 문헌을 보면, '박사이자 교수인 OOO 선생'같은 표현을 볼 수 있다. 그러므로 북한에서 대학 교원을 부를 때는 교수님이라 부르지 않고, 평소엔 '선생님', 공식 석상에선 '교원동지'라고 부른다.

12.2.4. 대학 생활

북한의 대학생활은 남한과 다른 양상을 보인다. 먼저 한국 대학마다 흔한 분야별 동아리는 북한 지도층 입장에서 '반당 종파모임'이라 하여 금지돼 있고 신입생 환영회도 없다. 축제라고는 김부자 생일이나 로동당 창건일 등 정치적 기념일마다 하는 '충성의 편지 이어달리기'나 '충성의 시낭송 대회' 같은 관제 축제밖에 없으며 의무적으로 동원된다. MT 역시 북한 사회에선 '부르주아식 풍기문란 행위' 취급된다. 이는 북한의 대학생들은 김일성이 대학생이 술을 마시지 말아야된다는 지시에 따라 원칙적으로 술을 마시지 못하기 때문인데, 만약 술을 마시는것을 걸리게 되면 징계대상이 되며, 반복적으로 걸리면 강제 퇴학하게 된다. 이 때문에 북한 대학생들은 징계를 피하려고 자기 집이나 친척집에서 마시거나 대학생이 아닌 척하면서 몰래 사 마셔야 했지만, 2010년대 이후로는 규제가 풀렸는지 근처 술집에서 술을 마시는것 정도는 봐주는 편이라고 한다. 조직 구조도 학급조직과 군사조직 방식이 이원화돼 있는데, 대체로 후자가 더 강하다. 북한의 대학들은 연대, 중대, 소대 등으로 이뤄져 있으며 각 부대장은 군복무 경력이 있는 학생들이 맡는다. 식사라든가 대열연습도 전공이고 뭐고 상관없이 부대별로 열맞춰 움직이며 식사할 때도 1인당 한달치 분량의 식권이 있어야 한다. 보통 식권은 우표 크기라 어떻게든 더 먹겠다고 10전짜리 우표를 식권통에 몰래 내는데, 이게 발각될 시 사상투쟁 무대에 세워져 곤혹을 치르게 된다.

한국 대학생들과 달리 미팅은 애정~부부관계로 발전되는 예가 흔하다. 그러나 북한의 사회적 분위기가 많이 보수적이기 때문에 원칙적으로 남녀간에 이성교제 및 결혼이 금지돼 있고, 하면 징계를 내린다. 다만 이성교제를 아예 철저하게 금지했다는것은 김일성때의 일이고 이렇게 징계를 내려도 할사람은 다 하는데다가, 이미 성인이 다 되어서 법적인 결혼도 가능한데 이성교제 금지를 뭐하러 하냐는 학생들의 불만이 커지면서 1990년대 이래로 학교내에서 애정행각을 하지 않으면 봐주는 편이다. 물론 공개적인 데이트 등 애정행각을 벌인다면, 사상투쟁에서 자아비판 대상에 오르지만, 그러가나 말거나 할사람은 한다. 남학생들은 빨리 결혼하기 위해 직장 처녀와 애정을 나누는 반면, 여학생들은 대학생들과 결혼을 하는데 특히 평양외대 학생들이 인기가 많다. 그래서인지 당 간부집이나 특권계층, 부유층 딸들이 경제적 안정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결혼하는 데 혈안이 돼 있고, 남학생 역시 경제적 지원을 위해 사귈 때 계층을 따지기도 한다. 여가생활 면에서 카페나 볼링장 같은 여가시설이 없어 대동강 같은 데서 뱃놀이를 하거나, 몰래 카드놀이를 하기도 한다.(참고 자료)

12.3. 기타

수학여행지로는 백두산에 가서 백두산 천지에서 발을 담그고 놀기도 한다고 한다. 실제 사진

12.3.1. 기초과학 중시

의외로 수학, 물리 등 기초과학 분야를 중요하게 여기고 투자한다. 소련이 과학기술을 중요하게 여겨 미국보다 먼저 위성을 쏘아올린 만큼 미신을 경시하고 물질을 중시하는 공산주의의 영향을 받았다. # 실패해도 시행착오를 인정하고 용서하는 풍조가 있다고 한다. # 김정은이 집권하고 국가차원에서 과학을 장려하며 과학기술전당 이라는 곳을 세워 과학연구를 축적하고 데이터베이스화했으며 일반 시민에게 공개했다. #, 또한 2019년 4월 북한 헌법에 과학기술의 중요성을 명시할 만큼 과학 기술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 또한 북한이 국제적 고립 속에서도 기초과학을 중시한 덕에 핵개발을 할 수 있었다는 전문가들의 의견도 있다. 핵보유국의 지위를 가진 파키스탄 과학자는 북한 과학자들이 뛰어나다고 평가했다. 여담으로 군사 갤러리 모 유저가 구글링 중 북한의 중학교 5학년 화학 교과서를 우연찮게 발견했는데, 북한 교과서라는 것을 순간 못 알아차릴 정도로 내용이 잘 짜여져 있어 화제가 된 적이 있다.

12.3.2. 성교육 부재

북한은 성교육을 거의 하지 않는다. 성에 대해 호기심은 많지만 교육을 하지 않고 쉬쉬하고 부끄럽게 여겨 덮기만 하는 폐쇄적인 문화이기 때문에 필수적인 성에 대한 지식이나 피임, 성병예방에 대한 지식이 거의 전무한 수준이다. 중국을 통해서 성문화나 성교육 교재가 간간히 들어오지만 의미 있는 변화를 주긴 힘든 수준이며 그저 입에서 입으로 전한 방법만이 주민들에게 알려지고 있다. 기사. 사실 남한도 최초의 성교육 만화라는 귀여운 쪼꼬미가 나온것이 1989년도의 일이니, 북한의 성교육에 대한 관념도 남한의 1980년대 수준이라고 보면 된다. 물론 북한도 사람사는곳이니 만큼 중국과 러시아를 통해서 빨간비디오가 도입되기도 하며, 종종 공유되기도 한다. 물론 들키면 쪽팔림을 당하는것은 둘째치더라도, 운 안좋으면 노동단련대형에 처할수도 있다.

12.3.3. 교복

북한의 학교는 소학교시절부터 교복을 입으며, 각 학교마다 교복이 다른 대한민국의 교복과는 달리, 북한은 학교별 차이는 없고, 대신 교육단계별로 교복을 차별화한다.[113]

다만 김정일 집권기에는 교복지급도 정상적으로 단행되지 않아서 선배나 가족들한테 물려받아 입는 경우가 많았고, 당연히 교복 디자인 따위는 신경쓸 여력조차 없었지만, 김정은대 들어서는 교복지급이 정상화되었고, 평양미술대와 디자인 담당부처에서 공모를 받아 디자인 개정을 수시로 단행하고 있기 때문에 김정일 집권기때보다 교복이 다양해졌다는 평이다. 다만 학생이나 학부모들 사이에서는 암만 교복 지급을 정상화하고 디자인이 다양해졌다한들 예산 절감하겠다고 옷감을 싼 재질의 저급 옷감을 써서 입기 불편하다고 불평하는 경우가 많고, 개정을 단행한 교복도 남한이나 중국, 로씨아의 정장형 교복보다 낡아보인다고 불평해하기도 하며, 멋을 뽐내려는 학생들은 웃돈을 들여서 시장이나 옷가게로 가서 바지와 치마를 짧게 줄여입거나, 좋은 품질의 옷감으로 만들어진 교복을 따로 주문제작해 입기도 하며, 이러한 변형교복을 학교에서 단속하기도 하는것은 남한과 다를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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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관련 문서

14. 관련 자료



[1] 사실 북한의 영화와 드라마는 김정일&김정은 부자조차 견디지 못할 정도로 지독하게 재미가 없다고 한다.(...)[2] 그 뒤는 '제국주의' 국가들의 '사상문화적침투책동'을 막아야 한다는 이야기다.[3] 사실 이건 존 하지 미군청장의 삽질 때문이었다.[4]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가동맹의 대표작가였고, 해방정국 때 월북한 뒤 한국전쟁 내내 조선인민군에 종군했지만, 임화 자체가 워낙 다다이즘부터 맑시즘까지 다양한 영향을 받은 "자유로운 영혼"이었기 때문에 북한의 문화 통제정책을 공개적으로 비판했다. 그리고 결과는 안 봐도 비디오로, 박헌영-리승엽 간첩사건에 휘말려 사형당한다.[5] 이 운동의 여파는 도서정리사업의 전조가 된다.[6] 'XX를 하지 말라!''XX만 하라!'의 차이는 엄청나다.[7] 심지어 자기를 왜곡하면서 비하하는 드라마인 지금 평양에선을 가끔씩 시청하며 연기력을 비평하기도 했다.[8] 2009년 국립중앙도서관으로 이전.[9] 콘크리트에 들어갈 재료가 부실하다든가, 철근을 빼돌리는 정황이나 돈이 이상한 곳으로 빠지는 모습이 유사하다.[10] 프란시스코 마시아스 응게마적도 기니 대통령의 막내딸이다.[11] 북한 정권에 강경한 태도를 유지하자면 '적'의 위험성에 대한 교육을, 유화적인 태도를 유지하자면 차이가 생기는 것을 조심하여 용인하자는 생각이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주민의 생활이나 가치관은 알기도 어려우니 자연스레 교육이 되지 않게 되었다.[12] 변화가 상당히 빨라서 세대갈등이 있다.[13] 이 분야는 여성 인권 조사과정에서 철저하게 조사되고 있기에 지역별로도 증언이 비교적 풍부하다.[14] 남자가 바깥일을 해야한다며 부담을 주거나, '바깥일'을 하는 것 같은 엄마를 매정하게 보는 식으로 남북한이 공유하는 봉건적인 문제점이 있는데, 북한만 저러는 것으로 퍼지는 경우도 있다. 여성의원 비율도 2015년과 2019년 최고인민회의 대의원(17.6~20.2%)과 2016년과 2020년 한국 국회의원의 여성비율(17~19%)이 거의 비슷하다. 이와 비슷한 문제가 서양에서 보면 너무 봉건적이라며 인권 문제로 거론되기도 한다.[15] 치맛바람이 세다고 한다. 북한에서도 '치맛바람'이란 말을 쓰며 경쟁적 양육의 양상을 설명하는 것이다. 더불어 '상류층'이 아니면 애를 낳을 수 없다는 인식이 소득이 적으면 많이 낳는 미국 같은 나라에 비해 아주 강하다. 출산율 문서를 참조할 수 있다.[16] 북한도 비슷한 경제력의 국가에 비해서는 출산율이 상당히 낮다.[17] 결혼을 하면 여성은 노동에서 면제시키던 것이, 실질적으로는 사경제에 여성이 참여하는 경향을 유도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 이것도 원래는 바깥일을 하는 사람은 남성이라는 봉건 사상의 잔재로 직장에 남성을 주로 보낸 구석이 있다.[18] 이상우, '북한 40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특성과 변천', 을유문화사, 1990, pp284-285[19] 북한 최초의 팝스 오케스트라다![20] 한상우, 『북한문화예술 40년 (6) - 북한 음악의 실상과 허상』 (신원문화사, 1989), 19-20[21] 좀 더 정확하게는 후에 미국 시민권을 따서 미국으로 귀화했다. 이와 비슷한 사례의 작곡가로 스트라빈스키가 있는데, 스트라빈스키 역시 미국으로 귀화했기 때문에 북한 내에서 금지곡일이었을 가능성이 높다.[22] 2002년 4월 18일 알렉산더 리브라이히와 융에 도이치 필하모닉이 평양에서 브루크너의 교향곡 8번을 연주한 바가 있다. 참고로 리브라이히는 이 연주 1주일 뒤에 남한의 서울에서도 브루크너 8번을 연주했는데, 리브라이히의 남북 양국에서의 브루크너 8번 연주는 독일문화원과 독일 학술교류처가 마련한 '코리아 프로젝트'의 일종이었다. 다만 이 연주회 이후로 북한에서 브루크너 교향곡이 연주된 적은 없다.[23] 지금은 폐쇄된 조선의 오늘에 올라온 곡 해설에서도 대놓고 '영웅의 죽음과 부활을 주제로 한 철학적 내용을 담고있으며 성악을 붙인 마지막 악장은 최후의 심판과 부활을 그린 일대 서사시이다.'라고 기재되어 있었다. 북한에서 '미신적' 요소와 특히 기독교적 요소를 극도로 배격한다는 것을 감안하면 매우 특이한 부분.[24] 물론(?) 클래식 음악은 논외이다.[25] 한 평양예술대학 출신 탈북자는 섹스 피스톨즈를 평양에서 들었다고 이야기 했다.[26] 장진성의 탈북수기 '경애하는 지도자에게'에서 따옴.[27] 실제로 문화 검열이 과거 대비 대폭 강화된 2024년 기준으로도 영화 제작 참고용으로 예술인들이 외국의 영화, 드라마를 보는 것은 당국에서 허용하는 모양이다. #[28] 참고로 김정일은 살아 생전에 남한TV방송도 종종 봤던것으로 알려져있다, 심지어 지금 평양에선이라는 반공드라마도 가끔씩 시청해서 연기를 호평했다는 후문도 들려온다. 애초에 김정일은 늦어도 2002년부터 남한 사이트 검색을 즐겼던 인물이었다.[29] 참고로 이 노래는 인민들 사이에서도 유행했다고 한다.출처 심지어 이 노래는 북한에서 체제 선전 노래로 가사를 바꿔서 불리기도 한다.# 아니면 노래를 부르다 잡혀가지 않으려고 의도적으로 가사를 바꾼 것일 수도 있다. 일단 좋은 노래라서 부르고는 싶은데 체제 찬양 가사로 바꿔버리면 딱히 트집 잡을게 없으니까. 80년대 후반~90년대 초반 한국의 운동권 학생들이 노래를 개사하여 체제 비판을 했던것과 정 반대의 상황인 셈이다.[30] 드물게는 일을 열심히 하고 차별화된 성과를 거두는 남성이나 여성에게 마음이 끌린다는 내용의 노래도 있다. 휘파람이 대표적인 예. 그런데 그 일조차 정권에서 시키는 일을 달성했다는 것이니 충성을 요구하는 것과 마찬가지다.[31] 탈북민 출신 인권운동가 박연미는 이를 두고 '북한에서 사랑은 정권을 위해 존재할 뿐이다'라고 표현한 바 있다.[32] 이상우,' 북한 40년: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특성과 변천'. 을유문화사. 1990. p286.[33] 이 창법은 흉성의 비중을 높인 두성, 즉 벨팅의 일종인데, 목을 넓게 열어서 밝은 음색으로 부른다는 점이 특징이다. #[34] 웃긴 건 그 판소리 가운데 가장 유명한 춘향전(춘향가)는 봉건 지배층에 대한 인민의 저항의식을 담고 있다고 호평을 받아 가극으로도 몇 번이나 각색되었다.[35] 심지어 김정일도 KBS를 자주 봤다고 하는데, 왜 KBS를 좋아하냐고 물었더니 "국영방송이 익숙해서"라고 했다고 한다. 처음에는 남한 동향파악을 위해 KBS를 시청했지만 드라마와 예능프로그램까지도 같이 시청하면서 애청자(?)가 된듯하며 심지어 자기를 비하하는 지금 평양에선이라는 드라마를 보기도 했다.[36] 캐나다의 만화가 기 들릴이 북한 여행 중 만난 한 북한 사람의 발언에서도 이러한 인식을 엿볼 수 있다. 그 사람은 '우리나라 영화는 재미가 없다'며 공짜로 평양 시민에게 제공되는 영화 상영회에 가지 않았다고 한다. 그 사람은 조선4.26만화영화촬영소의 직원이었는데, 발언 자체의 내용도 대담하지만 심지어 처음 만난 외국인에게 이렇게 말했다! 이에 들릴 본인도 굉장히 놀랐던 듯하다.[37] 실제로 재미가 없었는지 탈북기자 주성하는 그 얘기를 듣고 이 드라마를 유튜브에서 찾아봤는데 1편을 보다가 때려쳤다고 한다.[38] 일단 북한의 수령과 그 족속들을 다루는 예술은 처음부터 끝까지 근엄, 위엄, 엄숙으로 장식해야 한다. 그런데 김정일 눈에는 애니메이션은 상대적으로 근엄함과 거리가 있어 우상화에 적합하지 않다고 결론을 내린것으로 보인다. 애니 산업이 전연령이 아닌 어린이만을 대상으로 하는 것도 그렇고...[39] 비슷하게 1950~80년대 남한이나 대만에서도 유독 반공물에선 심의가 심하게 관대했던 시절이 있었다. 똘이장군, 해돌이 대모험 같은 반공 애니메이션이나 실화극장이나 지금 평양에선라는 드라마도 당대 심의에 걸맞지 않게 폭력성이 상당했다. 여타 반공 영화나 애니메이션들도 당연히 수위가 상당했다. 대만에서도 장제스 집권 시절에는 아무리 SM적인 내용이라도 반공관련 내용만 넣으면 통과시켜줬다. 다만 남한과 대만은 시간이 흐르고 민주화가 되면서 반공물들이 한물가고 인기를 잃어서 더이상 제작되지 않는 것에 비해 북한은 아직도 독재체제이기 때문에 저러한 (북한 입장에서) '적군'의 악랄함을 강조하는 선전물을 제작할 필요가 있고, 이러한 선전물 제작은 시장성을 따지지않기 때문에 수위같은건 크게 따지지 않는 거라고 보면 된다.[40] 종사자들에겐 쌀, 소고기 등의 포상을 주기도 하며 군대도 면제시켜준다고 한다.[41] 『북한 애니메이션』, 이대연·김경임, 살림[42] 링크에는 쿵푸팬더와 라이온 킹 외에도 인어공주, 곰돌이 푸, 미키 마우스, 미니 마우스도 나온다.[43] 이 작품은 통일부 북한자료센터와 일본 국립국회도서관에 소장중이다.[44] 북한의 선전용 오락실에서 댄스게임을 플레이하는 기사가 올라온적이 있는데, 중국에서 제조된 게임으로 추정됨.[45] 단 실제 소재지는 중국.[46] 주로 LAN을 쓸 수 있는 도타를 많이한다.[47] 예를 들면 '○봄이'.[48] '철' 같은 경우는 중년 이상 남성에게 많이 쓰이지만 젊은 남성에게도 가끔 쓰인다.[49] 북한 일반 주민들은 중국 당국이 한민족을 대상으로 문화적 갈등을 일으킨다는 것을 전해듣기 어렵다.[50] 당시 국가안전보위부, 인민보안성.[51] 김정일은 그래서 남조선의 예술가들은 알바를 하지 않으면 먹고살 수 없는데 우리는 국가의 영도 하에 먹고 살만한 환경에서 창작을 하니 우리가 더 최고다라고 주장한다. 물론 먹고살만한 환경을 보장한다고 했지 창작의 자유는 보장한다고 말 안했다. 완전 팥 없는 팥빙수.[52] 재미가 없어 보급이 취소되었다고 한다.[53] 사실 봉건사회였던 일본에서도 쇼기의 규칙이 덴노의 명령에 따라 바뀐 적이 있었긴 했다.[54] 미국의 경제 및 무역 제재를 받는 국가의 접속을 허용하면 법 위반으로 벌금이 나올 수 있으니 블리자드에서는 몇몇 국가의 IP를 막아 자사 게임 접속을 못하게 한다지만 바로 다음 문장에 적힌 VPN 등의 방법을 쓰면 IP를 속일 수 있다.[55] 이 애플리케이션의 명칭은 Folding@home이라고 한다.[56] 혜산은 국경 도시라 중국 장백현의 불빛일 가능성도 있다. 장마당에서도 구하기는 불가능할 것이다. 애초에 혜산은 통계에 따라서는 강계시를 제외하면 가장 가난한 북한 주요 도시로 꼽히는 곳이다.[57] 애초에 북한에서도 김씨 일가와 외국인들은 허가를 받지 않아도 인터넷을 할 수 있다.[58] 대표적인 게 북한 주민 30%가 마약을 복용한다는 것. 실제로 북한에서 마약을 하는 방식은 주사가 아니라 코로 연기를 흡입하는 방식이라 담배보다도 훨씬 끊기 쉽다. #[59] 선진국 마냥 주사를 맞으면 중독에서 헤어나기 매우 어려워 정말로 북한 같은 의료 여건에서는 목숨이 위험해질 수 있다.[60] 비교하자면 남한에서는 중학교는 1970년대 초반, 고등학교는 1970년대 후반이 되어서야 보편화되었으니, 북한보다 약 10년 정도 늦다.[61] 일례로 양강도 도시 지역에서는 학비로 한 달에 70~100위안(북한 돈으로 약 13~19만 원, 미화로 약 16~23달러)를 걷어간다는 증언이 있다. 북한의 한 달 월급이 10달러 안팎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수탈에 가까운 수준인 셈. #[62] 그러니까 교육기관에 교육비를 후원하지 않으면 처벌하겠다는 뜻이다.[63] 탄성학점제와 선택과목제, 지도교원제가 결합되어 있다.[64] 공식적으로는 만 5세에 유치원 높은반 입학, 만 6세에 소학교 1학년 입학이지만, ##, 만 6세에 유치원 높은반 입학, 만 7세에 소학교 1학년 입학하는 학생들도 있다. #[a] 의무교육 아님[66] 올해 20[age(2000-01-01)]학년도 기준으로 탁아소 원생 중에서 20[age(2005-01-01)]년 4월생~20[age(2004-01-01)]년 3월생도 있다.[a] [68] 올해 20[age(2000-01-01)]학년도 기준으로 유치원 낮은반 원생 중에서 20[age(2006-01-01)]년 4월생~20[age(2005-01-01)]년 3월생도 있다.[69] 올해 20[age(2000-01-01)]학년도 기준으로 유치원 높은반 원생 중에서 20[age(2007-01-01)]년 4월생~20[age(2006-01-01)]년 3월생도 있다.[70] 올해 20[age(2000-01-01)]학년도 기준으로 소학교 1학년 학생 중에서 20[age(2008-01-01)]년 4월생~20[age(2007-01-01)]년 3월생도 있다.[71] 올해 20[age(2000-01-01)]학년도 기준으로 소학교 2학년 학생 중에서 20[age(2009-01-01)]년 4월생~20[age(2008-01-01)]년 3월생도 있다.[72] 올해 20[age(2000-01-01)]학년도 기준으로 소학교 3학년 학생 중에서 20[age(2010-01-01)]년 4월생~20[age(2009-01-01)]년 3월생도 있다.[73] 올해 20[age(2000-01-01)]학년도 기준으로 소학교 4학년 학생 중에서 20[age(2011-01-01)]년 4월생~20[age(2010-01-01)]년 3월생도 있다.[74] 올해 20[age(2000-01-01)]학년도 기준으로 소학교 5학년 학생 중에서 20[age(2012-01-01)]년 4월생~20[age(2011-01-01)]년 3월생도 있다.[75] 올해 20[age(2000-01-01)]학년도 기준으로 초급중학교 1학년 학생 중에서 20[age(2013-01-01)]년 4월생~20[age(2012-01-01)]년 3월생도 있다.[76] 올해 20[age(2000-01-01)]학년도 기준으로 초급중학교 2학년 학생 중에서 20[age(2014-01-01)]년 4월생~20[age(2013-01-01)]년 3월생도 있다.[77] 올해 20[age(2000-01-01)]학년도 기준으로 초급중학교 3학년 학생 중에서 200[age(2015-01-01)]년 4월생~20[age(2014-01-01)]년 3월생도 있다.[78] 올해 20[age(2000-01-01)]학년도 기준으로 고급중학교 1학년 학생 중에서 200[age(2016-01-01)]년 4월생~200[age(2015-01-01)]년 3월생도 있다.[79] 올해 20[age(2000-01-01)]학년도 기준으로 고급중학교 2학년 학생 중에서 200[age(2017-01-01)]년 4월생~200[age(2016-01-01)]년 3월생도 있다.[80] 올해 20[age(2000-01-01)]학년도 기준으로 고급중학교 3학년 학생 중에서 200[age(2018-01-01)]년 4월생~200[age(2017-01-01)]년 3월생도 있다.[81] 북한 유치원은 낮은 반 1년, 높은 반 1년 과정이나, 낮은반은 의무교육이 아니다.[82] 개정 전에는 유치원 높은반 1년 (낮은반 1년은 의무교육 범위가 아니다.), 인민학교(소학교) 4년, 고등중학교 6년(중등학교 4년 + 고등학교 2년) 체계였다.[83] 이는 중국중등교육기관(初中,高中)의 명칭과 동일하며, 1946년 이후 군정기 남한도 미국식 학제에 맞추어 6년제 중학교로 개편하고, 1951년 9월 3년제 중학교와 3년제 고등학교로 분리되기 전에는 이렇게 불렀다.[84] 특히 북한 자체가 국가적인 차원에서 성인들 대상으로도 머리길이와 옷차림, 이동을 통제하는 등 사소한 생활규범까지 통제하는 경향이 있다보니, 더더욱 통제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교원들의 목소리가 클수밖에 없다.[85] 사실 일본이나 중국도 체벌 금지 자체는 1940년대 후반 ~ 1950년대에 법제화되었지만, 편의주의적인 이유로 오랜기간 동안 체벌금지가 무시되었다. 일본에서 대다수 학교에서 체벌금지가 정착된것이 1990년대 중후반 와서였고, 중국도 지역에 따라 사정이 다르지만, 2010년대에 체벌사건사고가 터지고 나서야 대다수 학교에서 체벌금지가 정착되었다.[86] 실제 김정일의 출생지는 소련 우수리스크다.[87] 勞作. 사회주의 노동자들에게 특화된 도덕(혹은 일반사회)과목이라 보면 된다.[88] 사실 대부분의 국가에서는 초중등교육 수준에서 지구과학을 별개의 교과로 가르치지 않고, 지리학 혹은 환경과학 과목의 일부로 가르친다. 과학과 지구과학 문서 참고.[89] 모병제 시절에는 굳이 뇌물을 안써도 군대를 가기 싫으면 안가는것이 가능하기는 했지만, 공부를 특출나게 잘해서 대학에 진학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안 좋은 집안이라는 의심을 받거나, 안 좋은 직장에 배정되는 등 십중팔구는 출세길에서 배제되기 때문에 몸이 안 좋은 경우가 아니라면 대부분이 출세와 사회적 인정을 받기 위해서라도 군말없이 군대를 가는 편이었다.[90] 소련과 현 러시아도 대학생들은 군사훈련만 받으면 징집에서 열외이며, 북한의 징병제도도 여기에서 따왔다.[91] 소학교를 만 7세에 입학한 200[age(2019-01-01)]년 4월생~200[age(2018-01-01)]년 3월생+ 소학교를 만 6세에 입학한 200[age(2018-01-01)]년 4월생~200[age(2017-01-01)]년 3월생은 20[age(2000-01-01)]년 3월에 고급중학교를 졸업하게 되는데 이들 중에서 20[age(2000-01-01)]년 3~4월에 조선인민군으로 군입대하는 사람들이 많다.###[92] 당 간부 자녀의 입장에서는 오히려 이래야 대학 진학에 유리하다. 죽어라고 공부하는 대신 좋은 부대에서 좋은 보직으로 3년의 군 생활을 하면 대학 입학 추천을 받을 수 있어서다.[93] 북한의 선전 중에 '교과서에 깃든 친어버이사랑'이라며 학생들이 교과서를 '국가로부터 거저나 다름없이 보장받게 된다'는 내용이 있다. #[94] 참고로 상파지는 1kg당 5000원(0.58달러)로 일반 폐지의 2배 이상 비싸다.[95] 대한민국의 전문대학으로 보면 된다.[96] 수능과 비교하면 저기서 국어 영역이 문학, 수학 영어는 그대로 수학/영어 영역이고, 혁명역사는 한국사 영역(비록 내용의 질이나 난이도 차이가 크지만 포지션이 그렇다는 이야기이다), 물리/화학은 과학탐구이다.[97] 사실 1990년대 중반 이전의 남한의 대학진학률도 정원제한을 걸어놓았기 때문에 이 정도 수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하지만 1980년대 후반 이후에도 정원제한을 걸어났음에도 대학에서 알음알음 정원을 늘린데다가 대학 입학을 위한 사교육 문제는 더욱 심각해지자 문민정부 들어 대학설립 자율화와 정원제한을 완전히 없애버린덕에 대학진학자수가 급속히 불어나면서 대학진학률이 북한과 천지차이로 차이가 나게 되었고 이는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는 중이다.[98] 김일성종합대학, 김책공업종합대학, 고려성균관[99] 북한은 도농 간 교육 격차가 극심해서, 지방의 큰 도시와 군 단위의 농촌과 대학 진학자 차이가 엄청나게 벌어진다. 함흥, 청진과 같은 대도시 지역에선 매년 수 천 명의 대학, 전문학교 진학자를 배출하지만, 낙후된 군 단위에서는 대학, 전문학교 진학자가 한 자리수에 그친다.[100] 과거에는 2000위안(약 38만 원)이었다고 한다.[101] 탈북시인 최진이가 나왔던 대학.[102] 그래도 그 말 자체가 없는 건 아니어서 누구를 만났을 때 동창이나 동문이면 반가워하는 것 정도까진 용인된다. 후술되다시피 대신 그걸 대놓고 하거나 동창, 동문이라고 모임을 갖거나 끌어줬다간 수용소 직행이다.[103] 북한 유일의 MBA 과정을 운영하는 대학이다. 유학파 교수진 비율이 높으며, 경영, 금융에 특화하고 있다.[104] 원래는 김일성종합대학 농학부였다. 한국 전쟁 중 대학이 공중분해하자 원산으로 내려갔었는데 휴전 뒤에도 그냥 원산에 눌러앉아 독립했다.[105] 북한에서 자연과학 분야의 최고 수재들이 가는 학교이다. 학생 선발 과정에서 성적뿐만 아니라 실제 지능 지수도 고려할 만큼 고르고 골라서 인재를 선발한다.[106] 이승기 박사가 설립한 대학[107] 이 대학은 한때 관개농업으로 아시아 전체에서 유명한 대학이었다.[108] 북한 최고의 의과대학 중 하나이다. 흔히들 북한 최고의 의과대학 하면 김일성종합대학 부속 의학대학(평양의학대학)을 생각하지만 만수무강연구소의 연구원을 다량 배출한 대학이 함흥의대이고, 북한 내 1급 의사들의 출신학교 중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학교가 함흥의대이다. (북한에서는 의사들의 실력을 정기적으로 검정하여 1~5급까지 등급을 부여한다.)[109] 북한 안에서 그나마 사상 측면에서 자유롭고 해외 유학의 길이 열리는 분야이다.[110] 탈북자들이 등장하는 매체에선 아무리 그래도 '김일성종합대학'이 제일이라는 식으로 북한의 대학 시스템을 도식화시키는 경향이 강하다. 김일성종합대학 출신이면 출신 성분이 북한 내에서 최소 중상위권 이상이고 어느 정도 공부도 잘했고, 조직 생활도 잘했으니 이상적인 배우자감이라 할 수 있다. 즉, 이러한 기준을 대학 진학을 고민하는 수험생이나 출신 성분이 좋지 못한 이들에게 강제할 수 없다는 것이다. 북한은 학력, 학벌, 능력만으로 출세하는 사회가 아니라, 출신 성분이라는 선천적 배경이 그보다 더 중요할 수 있는 사회이기 때문이다.[111] 대한민국으로 치면 교육부와 같다.[112] 한국으로 치면 초등학교에서 한 달에 2000만 원 넘게 걷어가는 것과 같다.[113] 사실 남한도 1970년대 중학교 교복이 동일할때가 있었다. 1960년대 말에 교복값 절감을 명목으로 중학교 교복디자인을 통일시킨것이지만, 교복 디자인이 여전히 일본 가쿠란 교복의 형태에서 벗어나지 않았다보니 이 당시에도 논란은 많았고, 1980년대에 잠깐 교복자율화를 단행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