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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19-07-15 19:42:36

2002년

연도구분
2001년 2002년 2003년
연대구분
1990년대 2000년대 2010년대
세기구분
20세기 21세기 22세기
밀레니엄구분
제2천년기 제3천년기 제4천년기
세계 각 지역의 표기
서기 2002년
대한민국 84년
단기 4335년
불기 2546년
황기 2662년
이슬람력 1423년 ~ 1424년
간지 신사년 ~ 임오
주체 91년
민국 91년
일본 헤이세이 14년
히브리력 5762년 ~ 5763년
에티오피아 1994년 ~ 1995년

1. 개요
1.1. 20세기, 1990년대 문화와 세기말 분위기의 마지막 해1.2. 한일 월드컵과 축구의 한 해
1.2.1. 구세대들의 은퇴
2. 사건
2.1. 실제
2.1.1. 1월2.1.2. 2월2.1.3. 3월2.1.4. 4월2.1.5. 5월2.1.6. 6월2.1.7. 7월2.1.8. 8월2.1.9. 9월2.1.10. 10월2.1.11. 11월2.1.12. 12월
2.2. 가상
3. 탄생
3.1. 실존 인물3.2. 가상 인물
4. 사망
4.1. 실존 인물
4.1.1. 1월4.1.2. 2월4.1.3. 3월4.1.4. 4월4.1.5. 5월4.1.6. 6월4.1.7. 7월4.1.8. 8월4.1.9. 9월4.1.10. 10월4.1.11. 11월4.1.12. 12월
4.2. 가상 인물
5. 데뷔
5.1. 가수5.2. 스포츠5.3. 만화계5.4. 예능인5.5. 프로레슬링5.6. 아나운서5.7. 인터넷방송
6. 은퇴
6.1. 스포츠
7. 히트작
7.1. 영화7.2. 드라마7.3. 가요7.4. 개그 코너7.5. 애니메이션
8. 유행어9. 최초
9.1. 방영 프로그램 및 코너9.2. 인터넷 웹사이트
10. 관련 문헌11. 달력

1. 개요

2002년은, 모든게 잘 풀리던 해였어요.
마치 마법처럼..
- 만화가 신규용
연합뉴스 선정 2002년 10대 뉴스: 국내 해외

2002년은 화요일로 시작하는 평년이다. 한국에서는 한일월드컵부산 아시안 게임이 개최되었고, 지방 선거[1]제16대 대통령 선거가 열렸으며,[2] 지방선거는 한나라당, 대선은 새천년민주당이 각각 반씩 승리했다.

호사다마랄까, 정치적으론 이용호 게이트에 이어 김대중 대통령 아들 비리사건(홍삼게이트)이 터져 김대중 정부를 레임덕 상태로 몰아넣었고, 사회적으론 월드컵 열기로 인해 젊은 남녀들이 불을 지르는 경우가 잦아 10대 성폭행 비율도 가장 높았던 해이며(...), 월드컵 기간으로부터 약 10개월 뒤인 2003년 3~4월에 우리나라의 출산율이 일시적으로 급상승하기도 했다.[3] 10월에는 서울지검에서 범죄 혐의자가 물고문으로 숨져 현직 검사가 구속되고 법무장관과 검찰총장이 옷을 벗었는데[4], 그것도 군사독재가 아닌 민주국가에서 벌어진 터라 충격을 주었다.

한국 축구대표팀은 사상 처음으로 월드컵 4강 신화를 이룩하는 등 최고의 업적을 쌓는데 성공한다. 대표팀 감독이던 히딩크 감독 신드롬이 한국 전체에 퍼졌으며, 당시 대표팀 선수였던 홍명보, 박지성, 김남일, 송종국, 안정환 등등은 엄청난 인기를 누리기도 했다. 붉은 악마로부터 시작된 응원은 가히 전 국민적이어서, 한국 팀 경기가 있을 때마다 광화문 앞 사거리와, 서울 시청 앞을 가득 메웠다. <오 필승 코리아>, <대~한.민.국> 응원은 전국민이 알고있던 응원가. 당시 대학들은 월드컵 기간에 수업이 있으면 월드컵 관람에 방해가 된다며 종강을 예년에 비해 일찍 한 경우가 상당히 많았다. 덕분에 2001, 02학번의 상당수는 여름방학을 빨리 했다고 한다. 그리고 겨울방학이 늦춰졌지

반면 프로야구는 사상 최저 관중을 기록하여[5] 엄청난 불황을 겪어야 했다. 그렇지만 김성근 감독이 이끄는 LG 트윈스가 준PO를 시작으로 한국시리즈까지 올라가는 돌풍을 일으켰고, 21시즌 간 KBO 한국시리즈 한정 콩라인(...)에 묶여 있었던 삼성 라이온즈가 9회 말 이승엽, 마해영의 드라마틱한 끝내기 백투백 홈런으로 극적으로 콩라인에 탈출함과 동시에 염원이던 창단 첫 KBO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하여 화제가 됐다. LG의 암흑기가 시작된 것은 덤 그 전에 대구 오리온스서울 SK 나이츠를 꺾고 프로농구 우승을 차지하면서, 2002년은 대한민국 프로 스포츠 역사상 최초로 대구광역시를 연고지로 하는 프로 스포츠 팀 2개가 우승한 해이기도 하다.[6]

그리고 월드컵이 끝나가나 싶더니 제2연평해전으로 남북관계가 순식간에 경직되었으며, 2~3년 전 노근리 학살사건, 매향리 사격장 파동에 이어 2002 솔트레이크시티 동계올림픽 당시 아폴로 안톤 오노김동성 선수 간 논란과 여중생 장갑차 압사사건으로 반미 감정이 또다시 폭발했다. 그리고 이 반미 정서는 2003년 봄까지 계속된다.

국제적으로는 일단 작년그 사건으로 인하여 전세계가 계속 테러의 위협에 떨어야 했다. 아프가니스탄을 공격한 부시가 이 해 발표한 연두교서에서 이란, 이라크, 그리고 여기악의 축으로 규정하여 무자비한 테러와 싸우겠다는 의지를 다시금 전세계에 표명하였다. 그리고 북핵 위협의 본격적인 시작을 알리기도 한 해였다. 북한IAEA 사찰단 전원 추방을 결정하고 핵시설 재가동화를 공식화하는 등 일촉즉발의 상황이었다. 늘 언제나 그래왔잖아?

대 테러 위협과 북핵 등으로 인하여 증시, 유가, 달러에 금값까지 떨어지는 그 경제 불황 속에서도 전세계 주택시장은 유례없는 호황은 구가했다. 증시 침체 여파로 주식을 버린 투자자들이 주택 시장으로 이동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세계 각국의 주택 가격은 가파르게 상승했다. 이건 한국도 마찬가지로 대치동 등을 위시한 강남지역을 비롯한 수도권 주요 지역들의 아파트 가치가 본격적으로 오르기 시작했다.

2001년부터 지상파 4사에서 시작된 HD 방송은 2002년부터 본방송 단계로 나아가기 시작했는데,[7] 가요순위 등 일부 프로그램이 HD로 제작된다.[8] 특히 SBS의 경우 2002 한일월드컵 주요 경기를 HD 방송으로 생중계해주는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전략을 구사하였고, 화면 품질에 대한 시청자들의 호응도가 매우 좋아서 월드컵 이후 한국 대표팀의 HD 방송 중계영상을 DVD판으로 발매하기도 했다.

그러나 HD 방송은 시작됐어도 정작 HD 방송을 볼 수 있는 HDTV 보급율은 단 2%에 불과해 HD 방송의 의미가 많이 없었다.[9] 홍보하려는 노력이 적었고 이 당시까지만 해도 디지털 TV의 가격이 상당히 비싼데다가[10][11] 1980년대 초반처럼 아예 흑백에서 컬러로 볼 수 있는 식이 아니고 채널도 더 많이 나오는 것도 아닐 뿐더러 화질이 좋다는 점 정도라서 메리트가 적었기 때문(...)[12]

지금도 전설로 회자되는 투명드래곤이 연재되고 긴급조치 19호, 아유레디?,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 등 충무로의 재앙급 영화가 나타나는 등 문화계에 있어서 아주 풍성한(…) 한 해이기도 하다.

영화계 뿐만 아니라 가요계 역시 이 해에 있어서 거의 흑역사를 남겨놓았는데 밀크, 신비, 블랙비트, SWI-T, LUV, QOQ 등 혜성(?) 같이 데뷔했던 댄스그룹들이 하나 같이 딱 이 해에 앨범만 내고 소리소문없이 해체 내지는 개인활동을 하는 수순을 밟았다.[13] 그러나 현재 힙합계의 레전드라 불리는 리쌍, MC스나이퍼, R&B가수로 손꼽히는 휘성, 현재 아시아스타라 불리는 가 데뷔한 해라는 것을 곱씹으면 꼭 그렇지도 않은 듯. 이 해 지상파 방송 3사 가요대상은 일본에서 예상치 못한 엄청난 인기를 끌고 이미 엠넷 뮤직비디오 페스티벌에서 최고 인기 뮤직비디오상과 서울가요대상 대상을 수상한 보아와 전국적으로 '장나라 신드롬'을 일으키며 전국민적으로 사랑을 받고 KMTV 코리안 뮤직 어워드 대상을 받은 장나라의 여인천하 대결이었는데, 결국 장나라는 KBS와 MBC에서 대상을 차지하고, 보아는 SBS 한 곳만 가져가게 되면서 최종적으로는 장나라의 승리로 끝났다. 참고로 골든디스크 시상식 대상은 이 차지하였다.

영화 부문에서는 전세계적으로 호황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스파이더맨, 스타워즈 에피소드2 클론의 습격, 맨 인 블랙, 해리포터반지의 제왕 등 초대형 블록버스터의 속편 등이 이 해에 몰아서 나왔다(...) 덕분에 전세계 영화 관련 매출은 2001년 643억 달러에서 11.8% 증가한 719억 달러로 당시 역대 최대 수치를 기록하기도 했다.[14]

드라마 부문에서는 배우 장서희의 출세작인 인어 아가씨가 6월 24일부터 방영되었고, 김두한의 일대기를 그린 야인시대가 7월 29일 부터 SBS에서 방영이 시작되었다. 2002년 상반기가 월드컵 열풍이라면 하반기는 인어 아가씨야인시대 열풍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장서희는 2002년 인어 아가씨를 통해서 엄청난 연기력으로 열연을 펼치면서 시청자들이 복수극에 몰입도를 높이게 만들면서 스타덤에 오르게 되었고, 여기서 장서희가 열연을 한 역할인 주인공 '은아리영'의 각종 대사들도 이해에 여러차례 화제가 되었을 정도였으며, 그 해에 MBC 연기대상에서 대상까지 수상하고 이 시기를 기점으로 하여 그녀는 복수극의 달인이 되어버린다. 야인시대는 드라마의 주 배경이 바로 청년 김두한 일제강점기 시절 모습이다. 당시 2002년도는 월드컵 여파로 인해 국민들이 나라를 위하는 애국심으로 똘똘 뭉쳐 있었는데, 바로 드라마 야인시대가 이러한 애국심을 그대로 유지하는데 결정적 역할을 하기도 했다. 그리고 야인시대 에서 유행하는 패션또한 화재였다. 중절모와 트랜치코트 등등 모든 백화점이나 매장에 가면 손쉽게 볼수가 있었다. 그리고 학생들 사이에서는 야인시대 놀이가 유행되어 많은 우려도 남기기도 하였고, "긴또깡" "오야붕" 등등 많은 유행어 또한 화재였다. 또한 이 드라마의 주인공인 청년 김두한 역을 맡아 열연을 하였던 안재모는 2002년 하반기에 최고의 스타로 떠올라 2002년 SBS 연기대상에서 대상을 받는 쾌거를 누리기도 하였다. 그리고 이 두 배우보다는 잘 부각이 되지는 않았지만 유동근이미연에서 최명길로 극 도중에 배우가 교체되면서 큰 좌초를 겪고 있었던 명성황후에서 정말 열연을 보여주면서 그 해 KBS 연기대상 대상을 수상한다. 문제는 명성황후 작품 자체가 SBS에서 동시기에 방영하고 장나라 신드롬의 중심에 있었던 드라마인 명랑소녀 성공기에 밀려서 시청률이 한 자리수까지 떨어진 것은 안 자랑

음반 시장이 마지막 불꽃을 피웠던 시기였다. 비록 밀리언셀러는 나오지 않았지만 2001년 밀리언셀러를 기록한 이미연 베스트셀러와 god 4집, 김건모 7집의 판매량을 제외하면 2001년과 비슷했다. 이 후 음반시장은 그 다음해인 2003년부터 기하급수적으로 몰락하기 시작한다.

또한, 2000년 5월 젝스키스의 해체를 기점으로 최상위권 1세대 아이돌의 영향력이 약해지는가 싶더니 2001년 2월 H.O.T.의 해체, 1세대 걸그룹으로 불리는 핑클의 활동 중단, 그리고 2002년 12월 19일 S.E.S의 해체로 인해 1세대 아이돌 시대는 2002년을 끝으로 막을 내리게 되었으며, 2007년 원더걸스, 소녀시대가 데뷔하고, 걸그룹 전성기가 시작된 2009년 이전까지 대한민국 걸그룹 시장은 침체를 맞는다. 하지만 두 그룹이 해체한 사이 남은 1세대 아이돌 출신 그룹인 베이비복스는 '우연' 으로 제2의 전성기를 맞는다.[15]

게임계에서는 시장 전체적으로 희비가 엇갈린 모습, 세부적으로는 다양한 이슈들이 있었다.

먼저, 1980~90년대에 흥했던 오락실 게임 시장에서는 2000년을 정점[16]으로 규모가 감소되어 왔는데 이 해부터는 아예 사양 산업으로 전락됨으로써 일부 오락실들만 살아남고 나머지 수많은 동네 오락실들이 문을 닫기 시작했다. 다만, 소형 기체 형태의 문방구 게임기 덕분에 장소는 달라도 동전 넣고 조이스틱과 버튼으로 게임을 즐기면서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했던 문화만큼은 바다이야기 사태가 발생했던 2006년까지 지속되었다.

2000년부터 국산 게임 시장의 주도권을 잡은 온라인 기반의 PC 게임 시장은 더욱 성장하는 시기였으며, 수많은 게임 개발 업체들이 너도 나도 온라인 기반 PC 게임에 도전하는 경향은 여전했다. 악튜러스를 개발했던 그라비티라그나로크 온라인, 2002년 대한민국 게임 대상을 수상받은 SD EnterNET의 네이비필드, 드래곤플라이카르마 온라인, 임진록 온라인 거상, 아스가르드 등이 정식서비스에 돌입했으며 테일즈위버의 오픈 베타 서비스도 실시했다. 그 해 연말에는 마비노기의 제작 발표가 공개되어 많은 사용자들에게 주목을 받기도 했다. 반면에 패키지 기반의 PC 게임은 2002년 7월 3일에 출시된 블리자드 엔터테인먼트워크래프트 3가 화제가 되었지만 이 해를 기점으로 국산 패키지 PC 게임 시장은 뚜렷한 명작을 내놓지 못 하고 서서히 가라앉기 시작했다.

1990년대 중반부터 침체기를 겪었던 가정용 콘솔 게임 시장에서는 각별한 의미가 있었던 해였는데 2002년 2월 22일에 CDDVD를 매체로 하는 플레이스테이션 2가 국내에 정식 발매됨으로써 8년에 가까운 침체기에 벗어나기 시작했다. 동년 12월에는 게임큐브, 엑스박스도 정식 발매되었고, 특히 PS2 타이틀들은 액션, RPG, 레이싱 등 다양한 타이틀들이 선보이면서 철권 4, 메탈기어 솔리드 2, 귀무자 2, 진삼국무쌍 2 같은 인기 타이틀의 자막 한국어화 혹은 한국어 음성 더빙 혹은 파이널 판타지 10과 같은 대작 타이틀에 당시 최고 인기가수 중 한 명이었던 이수영얼마나 좋을까의 한국어 번안 버전 발표 등 로컬라이징 작업이 비교적 활발히 이루어졌다. 그리고 블리자드 엔터테인먼트는 그 해 도쿄 게임쇼에서 스타크래프트 고스트를 3대 콘솔 타이틀로 만들 것을 발표해 화제가 되었지만 정작 개발은 중단된 상태(...)

이 해에 태어난 사람들은 월드컵둥이로 부르게 됨과 동시에 2000년대에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마지막 세대가되고[17], 빠른 년생 체재가 진행된 마지막 세대이다. 그리고 대중들은 2002년생들을 대부분 세기말 분위기 속에서 태어난 마지막 세대로 평가한다. 또한 2002년 1월 1일생 ~ 2002년 5월 31일생은 월드컵 직전에 태어난 세대이고, 2002년 5월 31일생 ~ 2002년 6월 30일생은 월드컵 도중 출생 세대, 2002년 7월 1일생 ~ 2002년 12월 31일생은 월드컵 폐막 이후에 태어난 세대인지라 같은 2002년생 인데도 세대차이가 나게된다. 또한 이들은 7차 교육과정은 경험하지는 못했으나, 유치원 및 어린이집 시기(2005년 ~ 2008년)에 제6차 교육과정, 초등학교(1~6학년, 2009년 ~ 2014년) 때 2009 개정 총론, 2007 개정 각론, 중학교 (1~3학년, 2015년 ~ 2017년)때 2009 개정, 고등학교(1~3학년, 2018년 ~ 2021년 2월)때 2011 개정과 2015 개정을 배운다. 이들이 학교를 다니는 시기에 시대가 많이 급변했고, 특히 초등학교 재학시기에는 컴퓨터 중독, TV중독 세대였다가, 이후 2010년대 초 중반 이후 스마트폰 중독 세대로 뒤 바뀌게 되었다. 유치원 시기부터 고등학교 시기에 2000년대2010년대, 2020년대를 모두 경험한 세대이다 보니, 이전 세대들의 문화와 이후 세대들의 문화를 동시에 아는 마지막 세대이다. 여담으로, 1995년 3월 1일 ~ 1996년 2월 29일생은 이 해에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한펀 이 해에 대학에 입학한 20'02'학번 새내기들을 산소(O2) 학번이라 부르기도 했다. 해당 학번들은 운동권 경력자에 한해 한총련 10기생으로서 효순-미선이 반미투쟁, 16대 대선투쟁, 2003년 한총련 합법화 투쟁에 참여하였다.

이 해의 고등학교 신입생부터[18] 제7차 교육과정 고등학교 과정이 적용되었다.

아폴로눈병이 초중고교생들 사이에 대유행한 해이기도 했다.

교수신문이 선정한 2002년 올해의 사자성어는 '이합집산(離合集散)'이었으며, 일본한자능력검정협회가 선정한 2002년 올해의 한자는 '帰 (돌아갈 귀)'였다.

국제연합에서는 이 해를 '세계 생태관광의 해'와 '세계 산의 해', '문화유산의 해'로 지정했다.

마지막으로 5월 공휴일이 없었던 해이다. 어린이날(5월 5일)과 석가탄신일(5월 19일)이 모두 일요일이었으며 그 영향으로 4월 5일 식목일 이후 6월 6일 현충일까지 휴일이 없었다.

1.1. 20세기, 1990년대 문화와 세기말 분위기의 마지막 해

2002년은 1990년대 문화와 세기말 분위기의 마지막 해였다. 1세대 아이돌들은 대부분 이 해를 마지막으로 해체 후 사라졌고, 젝스키스H.O.T.는 각각 2000년 5월, 2001년 2월 해체되었고, 끝까지 남아있던 1세대 걸그룹 S.E.S., 핑클 역시 2002년을 끝으로 해체하거나 활동을 중단했다.[19]

방송 역시 1990년대 특유의 자막이나 제도 등이 마지막으로 존재했던 시대이기도 했다. SBS 인기가요는 이 해까지만 순위제를 유지한 뒤 2003년 2월부터 폐지하였다. 또한 1980년부터 시작한 장수드라마 전원일기 역시 2002년 12월 29일을 끝으로 종영하였다. HD 방송이 시작되면서 지금하고 크게 다르지 않은 것처럼 보이기도 하나, 2002년은 HD였어도 자막이나 로고, 특유의 느낌은 90년대 후반기와 큰 차이가 없었다. 의심이 간다면, 그 해 HD로 방송된 KBS 가요대상MBC 10대 가수 가요제만 봐도 알 수 있다. KBS 가요대상의 경우 화질만 HD이고 로고 등과 자막, 또 순서 등은 모두 똑같은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음반 판매량 역시 밀리언셀러는 없었으나 밀리언셀러 앨범을 제외하고는 2001년의 음반 시장과 비슷했으며, 음반 시장의 마지막 불꽃을 태우던 시기였다.

다른 기술들이나 인터넷 등은 1990년대와 달리 많이 발전하여 무선호출기피처폰으로, PC통신 - 인터넷 전환기로, Windows 98 SE - Windows XP Service Pack 1 전환기[20]로 진입하면서 바뀌었지만, 대중화가 되지않았던 시기라 방송가나 문화의 경우 2002년이 1990년대 문화의 마지막 이자 세기말 분위기의 마지막 해라고 평가한다.

그래서인지, 응답하라 시리즈가 다음 후속작이 나올 때 '응답하라 2002'는 후보로 꾸준히 언급되지만 2003년 이후 현재까지의 연도는 언급이 안 되는 이유 중 대표적인 이유가 2002년이 1990년대 문화와 세기말 분위기의 마지막 시기였다는 것을 대중들은 대다수가 공감하기 때문이다.

또한 PC통신이 마지막으로 사람들에게 사용되었던 시기이기도 했다.[21]

야간/할인시간(종일[22]) 정액제도 이때부터 가입자가 급속도로 떨어지기 시작하였다. 1999년에 정식 상용화된 ADSL이 전국적으로 완전히 깔려서 더 이상 쓸필요가 없어졌기 때문.

1.2. 한일 월드컵과 축구의 한 해




2002년하면 대한민국 국민들이 가장 많이 떠올리는 기억은 바로 한일 월드컵의 4강 신화였을 것이다. 2001년까지만 해도 사실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에 대한 국민들의 기대는 크지 않았다. 2000년 말 허정무가 경질되고 외국인 감독을 찾던 대한축구협회거스 히딩크와 높은 계약금으로 계약했지만, 히딩크호는 국민들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프랑스, 체코전에서 두 번의 5:0 패배를 만들면서 국민들에게 신임을 잃는다.[23] 2002년 1월 골드컵까지 위태위태하던 그들은 2002년 5월 스코틀랜드전 4:1 대승, 잉글랜드와의 평가전 1:1 무승부, 프랑스와의 평가전에서 2:3으로 석패하며 달라진 모습을 보여주었고,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할 것이다' 라는 히딩크 감독의 비장한 발표와 함께 월드컵이 시작되었다.

그 후 대한민국은 폴란드, 미국, 포르투갈을 상태로 2승 1무 1위로 조별리그를 통과했고 16강 이탈리아전에서는 연장까지 가는 접전 끝에 안정환의 골든골로 2:1 승리를 거두고, 8강 스페인전에서는 이운재의 선방으로 승부차기에서 5:3 승리를 거두며 대한민국 축구 사상 첫 4강 진출이라는 쾌거를 얻는다. 이 시기 4강 진출보다도 더 세계를 놀라게 했던 것은 바로 대한민국의 응원문화로 서울특별시청광화문, 고수부지 등을 가득 채우고 응원하는 국민들과 붉은 악마의 모습은 외신들에게도 엄청난 놀라움으로 다가왔다. 월드컵 기간동안 대한민국의 경기가 열리는 날이면 서울시청과 광화문을 비롯한 대한민국의 모든 거리와 술집, 공공장소는 붉은색으로 물들었고, 축구 대표팀의 인기는 하늘을 찔렀다.[24] 히딩크는 대회 종료 후 명예국민 자격을 받았고 대표팀 선수들은 김대중 전 대통령의 특별 허가로 전원 군면제를 받았다. 또한 월드컵 폐막 다음 날인 7월 1일은 임시공휴일로 지정되었다. 포르투갈전에서는 현재의 대표팀 감독인 파울루 벤투가 선수로 뛰었다.

월드컵의 인기는 폐막 이후 10월까지 계속되었다. 월드컵 이 후 월드컵 기념우표와 기념 책자, 선수들의 화보집 등은 서점에서 불티나게 팔려나갔고, 남북축구경기와 2002 부산 아시안게임에서도 홍명보가 성화를 들었고, 히딩크가 참석했을 정도였다. 이런 월드컵 열기는 2002년 11월 20일 브라질 전을 끝으로 황선홍, 홍명보의 은퇴식과 히딩크호가 공식적으로 해체되면서 막을 내렸다.

K리그의 인기 역시 K리그 역사에 손꼽히는 시즌으로 남을 정도로 올라갔다. 1999년 이후 2000~2001년 동안 잠시 내리막길을 탔던 K리그는 2002년 월드컵 폐막 후 개막한 뒤 275만 관중을 동원하면서 역대 K리그 관중 수 2위를 달성했다. 월드컵 스타들이 포진해있던 안양 LG 치타스, 포항 스틸러스, 전남 드래곤즈, 부천 SK 등은 특히 더욱 인기가 많았다. K리그 소식이 뉴스에도 보도됐을 정도였으니, 당시 국민들이 축구에 대해 가지는 관심이 얼마나 높았는지는 알 수 있다.

또한 축구 관련 자선 사업, 후원 방송 등도 많이 공중파에서 방송되었다. 말 그대로 2002년 한 해가 그냥 축구로 미친 한 해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1.2.1. 구세대들의 은퇴

또한 한일 월드컵과 2002년은 축구 노장들의 마지막 전성기이자 은퇴 시기였다. 당시 대표팀에서 노장이던 황선홍, 홍명보가 선수로 뛰었던 마지막 해이며, 황선홍은 월드컵이 끝난 뒤 열린 친선경기에서 대표팀을 은퇴하고 3달 후 아예 선수 생활을 접었으며, 홍명보 역시 2002년 이후 국내 활동을 접고 미국에서 활동하다 2004년에 은퇴했다.

2. 사건

2.1. 실제

2.1.1. 1월

2.1.2. 2월

2.1.3. 3월

2.1.4. 4월

2.1.5. 5월

2.1.6. 6월

2.1.7. 7월

2.1.8. 8월

2.1.9. 9월

2.1.10. 10월

2.1.11. 11월

2.1.12. 12월

2.2. 가상

3. 탄생


2002년생들이 처참한 인물 수 하지만 아직 어떻게 될지 모른다

3.1. 실존 인물

3.2. 가상 인물

4. 사망

4.1. 실존 인물

4.1.1. 1월

4.1.2. 2월

4.1.3. 3월

4.1.4. 4월

4.1.5. 5월

4.1.6. 6월

4.1.7. 7월

4.1.8. 8월

4.1.9. 9월

4.1.10. 10월

4.1.11. 11월

4.1.12. 12월

4.2. 가상 인물

5. 데뷔

5.1. 가수

5.2. 스포츠

5.3. 만화계

5.4. 예능인

5.5. 프로레슬링

5.6. 아나운서

5.7. 인터넷방송

6. 은퇴

6.1. 스포츠

7. 히트작

7.1. 영화

7.2. 드라마

7.3. 가요

7.4. 개그 코너

7.5. 애니메이션

8. 유행어

9. 최초

9.1. 방영 프로그램 및 코너

9.2. 인터넷 웹사이트

10. 관련 문헌

11. 달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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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투표율은 월드컵 때문에 역대 최저였다. 물론 그 다음 지방 선거도..[2] 참고로 이땐 노무현 열풍과 대선 후보 단일화 문제로 2002년 내내 화젯거리였다. 자세한 것은 항목 참조.[3] 하지만 하반기에 카드대란이 닥쳐오자 후반기 출산율이 감소했고, 결국 소폭 상승에 그쳤다. 결과적으로는 2003년 전체 출생아 수는 오히려 줄어들었다.[4] 물고문을 실행한 검사는 홍경령 검사(연수원 21기)였고, 지휘계통에서 홍 검사의 상관이었던 서울지검 3차장인 정현태(연수원 10기) 검사는 법무장관과 검찰총장까지 사표를 쓴 마당인지라 검사장 승진은 완전히 물 건너갔다. 정 차장검사는 알짜보직에서 해임되고, 고검으로 내쫓겼으며 사실상 권고사직 수준이다. 이후 15년을 더 고검에서 재직하다가 2017년에 정년퇴직했다.[5] 경기 당 최저 관중도 이 때 깨졌다. 꼴데의 위엄. 이게 다 백골프 때문이다![6] 준우승한 팀은 모두 서울 연고 팀이었다.[7] 이때부터 HD 드라마 방송이 도입되었다. 첫 스타트는 SBS에서 방영된 대망부터, MBC는 2003년 다모부터, KBS2는 2004년 해신부터 도입되었다.[8] 2002년 당시 HD로 방송되던 프로그램은 <SBS 인기가요>, <생방송 음악캠프>, <열린음악회>, <도전 1000곡>, <생방송 행복찾기>.[9] 현재 선명한 화질로 나오는 유튜브에 인기가요나 예능 프로그램은 모두 보정하거나 방송국에서 구해왔거나 개인이 DVR로 녹화한 자료로, 화질이 별로 좋지 않은 파일들은 방송을 녹화한 것이다.[10] 그래서 당시까지만 해도 미국식 방식 대신에 유럽식 방식으로 쓰자고 제안하는 일이 심심치 않게 있었다. 일단 당시 기준으로는 유럽식 디지털 TV의 가격이 미국식 디지털 TV에 비해 가격이 싼 데다 화질이 상당히 떨어지기는 했어도 다채널 구현이 안정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었고 이동방식도 미국식에 비해 우월했기에 그랬던 것.[11] 당시 TV가격은 아날로그<HD Ready(분리형)<내장형 순으로 비쌌다.[12] 그당시 유일한 다채널 방송은 디지털 위성방송인 스카이라이프 뿐이였다.[13] 어디 인지도가 낮은 회사를 대표했던 그룹들도 아니고 현재 3대 기획사라 불리는 SM, YG에서 실력을 다졌던 그룹들이었다......라고 하지만 당시 YG는 규모가 지금과 비교하면 훨씬 작은 소속사라는 것을 고려해야 한다. 그리고 빅뱅이 데뷔하기 이전 YG의 이름을 널리 알린 휘성은 이 2002년에는 신인이었고, SE7EN, 거미, 빅 마마 등의 또 다른 가수들은 2003년에 데뷔하였다. 그 이전에 지누션1TYM으로도 성공을 거두었지만 엄연히 이들만으로는 1990년대 후반과 2000년대 초반의 SM엔터테인먼트DSP 미디어와 같은 위치에 있게 만들지는 못했다. 하지만 2007년 빅뱅거짓말의 대히트와 2009년 2NE1의 센세이셔널한 등장, 그리고 2012년 싸이강남스타일의 글로벌적인 인기로 YG는 현재 우리들이 잘 아는 대규모의 회사로 성장하였다. 즉 YG는 2007년 전까지만 보면 이름이 잘 알려진 중소기획사에 해당하는 시기로도 볼 수 있다. 그리고 현재는 보이그룹의 현재진행형 레전드인 빅뱅도 2007년 거짓말이 히트곡으로 등장하기 전까지는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14] 영화진흥위원회(세계 영화시장규모, 2006)[15] 참고로 2003년엔 1세대 아이돌 출신 그룹인 NRG도 '히트송'으로 제2의 전성기를 맞았다.[16] 비트매니아의 국내판인 비트스테이지, 댄스 댄스 레볼루션, 펌프 잇 업, EZ2DJ같은 리듬 게임 열풍의 공이 컸다. 특히 펌프 잇 업이 가장 흥행해서 펌프 잇 업으로만 구성된 오락실인 펌프방이 성행했을 정도.[17] 2009년 입학, 빠른년생은 2008년 입학.[18] 일반적으로 1986년 3월 1일 ~ 1987년 2월 28일생. 이들의 1년 선배이자 2002년 당시 고2였던 2001년 3월 고교 신입생들은 2003년 11월, 진퇴양난에 빠지게 된다.[19] S.E.S.는 2002년 12월 19일 해체했고, 핑클은 공식적으로는 해체하지 않았지만 정규 4집과 마티즈 2 광고모델 계약 해지 이후에는 완전체로서의 활동이 전무해 사실상 해체나 다름 없는 상태가 되었다.[20] 서비스 팩 1으로 Windows XP의 호환성, 안정성이 개선되었지만 아직 출시 초기라서 XP의 점유율이 전성기만큼 높진 않았으며, 98 SE가 일반 가정용으로써는 여전히 주류 OS였다.[21] 물론 사용만 되었다는 것이지 전성기는 훌쩍 지난 상태였으며, 2004년에 들어서야 천리안부터 PC 통신 서비스가 종료되었고 가장 마지막에 종료된 사이트는 2013년에 종료된 나우누리였다.[22] 2001년부터 할인시간이 종일로 개편[23] 당시 히딩크에 대한 비판 여론은 어마무지하게 높았다. 대부분 "외국인 감독 하나가 들어와서 개최국 망신 시킨다" 가 비판의 내용이었다.[24] 서세원쇼에서 서세원은 김남일의 가난했던 어린 시절을 희화화하다가 거의 핵폭탄급 비난을 받고 프로그램을 급히 종영시켰을 만큼, 그들에 대한 국민들의 사랑은 대단했다.[25] 해양사고 전반으로 따지면 도나 파즈호(여객선), 강아(江亞)호(증기선), 몽블랑호(화물선, 핼리팩스 폭발사고)에 이은 4번째로 많은 사망자를 낸 사고이다.[26] 게다가 2002년 한국시리즈 3차전이 잠실구장에서 열렸다. 수능 시험 도중인데도...[27] 원래는 11월 27일 발매예정이었지만, 본격적으로 공장에서 생산하기 위해 제작된 마스터 디스크가 파손되는 바람에 일주일 연기되었다.[28] 실제 사용되는 글자는 신자체인 이다.[29] 2000년대 들어 선보인 3대 콘솔 게임기가 이 해에 모두 국내 출시되었다.[30] 작품 속 십투사들 각자 출생연도와 나이에서 밝혀졌다.[31] 원래는 1998년 팬클럽으로 데뷔했음. 2002년 데뷔는 솔로 데뷔이므로 취소선을 침.[32] 지난 2000년 SBS 7기 아나운서 윤현진, 박찬민, 이혜승과 같이 시험 본 이력이 있었는데, 혼자 떨어졌다는 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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