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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세리

박세리 관련 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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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골프 명예의 전당 헌액자
박세리(Seri PAK)
2007년 헌액

역대 LPGA 신인상 수상자[1]
1997년
리사 해크니
1998년
박세리
1999년
김미현

역대 LPGA 베어트로피 수상자[2]
2002년
아니카 소렌스탐
2003년
박세리
2004년
박지은

역대 맥도날드 LPGA 챔피언십[3] 우승자
1997년 - 제43회
크리스타 존슨
1998년 - 제44회
박세리
1999년 - 제45회
줄리 잉스터
2001년 - 제47회
캐리 웹
2002년 - 제48회
박세리
2003년 - 제49회
아니카 소렌스탐
2005년 - 제51회
아니카 소렌스탐
2006년 - 제52회
박세리
2007년 - 제53회
수잔 페테르센

역대 LPGA U.S.여자오픈[4] 우승자
1997년 - 제51회
앨리슨 니콜라스
1998년 - 제53회
박세리
1999년 - 제53회
줄리 잉스터

역대 LPGA 위타빅스 위민스 브리티시 오픈[5] 우승자
2001년 - 제25회
박세리
2002년 - 제26회
캐리 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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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wcolor=#FFF> 연도 야구 축구 농구 배구 골프 일반체육
2018년 정운찬 정몽규 유재학 김연경 박세리 김연아
2020년 류현진 정몽규 유재학 김연경 박세리 이기흥, 유승민
스포츠동아에서 스포츠 전문가 100명을 대상으로 투표한 스포츠에서 가장 영향력이 큰 ‘파워피플’ 명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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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4년 한국갤럽이 창립 30주년을 맞이하여, 다양한 분야에서 한국인이 좋아하는 것들에 대해 알아보는 한국인이 좋아하는 조사 시리즈를 기획해 2004년부터 5년 주기로 발표하고 있다.
2004년
※ 2004년 한국갤럽한국인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를 바탕으로 '한국인이 좋아하는 스포츠 선수'를 선정.
1위 2위 3위 4위 5위
이승엽 박찬호 안정환 박세리 홍명보
6위 7위 8위 9위 10위
허재 박지성 차범근 이종범 선동열
2009년
※ 2009년 한국갤럽한국인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를 바탕으로 '한국인이 좋아하는 스포츠 선수'를 선정.
1위 2위 3위 4위 5위
박지성 김연아 이승엽 박태환 박찬호
6위 공동 7위 10위
김태균 이용대, 이종범, 박세리 안정환
2014년
※ 2014년 한국갤럽한국인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를 바탕으로 '한국인이 좋아하는 스포츠 선수'를 선정.
1위 2위 3위 4위 5위
김연아 박지성 류현진 손연재 박태환
6위 7위 8위 9위 10위
손흥민 이승엽 추신수 박찬호 기성용
2019년
※ 2019년 한국갤럽한국인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를 바탕으로 '한국인이 좋아하는 스포츠 선수'를 선정.
1위 2위 3위 4위 5위
손흥민 류현진 김연아 박지성 추신수
6위 7위 8위 9위 공동 10위
이대호 박찬호 기성용 차범근 이승엽, 이동국
같이 보기: 한국인이 존경하는 인물, 좋아하는 스포츠 선수, 좋아하는 소설가, 좋아하는 탤런트, 좋아하는 영화배우, 좋아하는 가수, 좋아하는 노래, 좋아하는 예능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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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멤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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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등재 기준
1. KLPGA 또는 LPGA/JLPGA/LET Tour 정규 투어 통산 20승 이상 선수 (2020 시즌 이전)
2. KLPGA 또는 LPGA/JLPGA/LET Tour 정규 투어 통산 30승 이상 선수 (2021 시즌 이후)
3. 명예의 전당 헌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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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50099><colcolor=#ffffff> 박세리
Pak Se-ri
파일:seriparkinsta.jpg
출생 1977년 9월 28일 ([age(1977-09-28)]세)
전라남도 광산군 송정읍 송정리[6]
(現 광주광역시 광산구 송정동)
국적
[[대한민국|]][[틀:국기|]][[틀:국기|]]
본관 경주 박씨 (慶州 朴氏)
신체 170cm, 67kg[7], O형
가족 아버지 박준철, 어머니 김정숙, 언니 박애리(1970년생), 여동생 박유리
반려견 천둥(진돗개)
반려견 모찌(2017년생, ♀, 보스턴 테리어)
반려견 찹쌀(2019년생, ♂, 블랙탄 포메라니안)[8]
반려견 시루(2020년생, ♂, 믹스견)
반려견 조이(♀, 진돗개)
반려견 부다(믹스견)
반려묘 대감
반려묘 오복
학력 유성초등학교 (졸업)
갈마중학교 (졸업)
금성여자고등학교 (졸업)
숙명여자대학교 (정치외교학 / 학사)
종목 골프
데뷔 1996년 KLPGA 입회
소속 SBS Golf 해설 위원 (2017~ )
종교 불교(법명: 묘법)
링크 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svg | 파일:유튜브 아이콘.svg | 파일:틱톡 아이콘.svg
1. 개요2. 생애3. 선수 경력
3.1. KLPGA 시절3.2. LPGA 시절
4. 기록
4.1. 대회 기록
4.1.1. 선수 시절4.1.2. 감독 시절
5. 은퇴 이후6. 출연
6.1. 드라마
7. 박세리 키즈8. 논란9.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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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파일:맨발의 투혼.jpg
미국 여자프로골프(LPGA)에서 활약한 대한민국골프 선수 출신 감독.

2. 생애

1977년 9월, 전라남도 광산군 송정읍 송정리(現 광주광역시 광산구 송정동)에서 아버지 박준철의 3녀 중 둘째로 출생했고, 생후 열흘 만에 대전광역시 유성구로 이주해 자라 고향은 대전이다.

어렸을 때 육상을 시작으로 스포츠에 입문했다. 1989년, 초등학교 6학년 때 싱글 핸디캐퍼였던 골프광 아버지 박준철 씨에 이끌려 골프를 시작했다. 어린 나이에 훈련장에서 새벽 2시까지 혼자 남아 훈련을 하는 등 쉬는 날 없이 엄격한 훈련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1998년 US Women`s Open에서 우승하며 국민적 스타 반열에 올랐으며 2000년대 중반까지 아니카 소렌스탐 - 캐리 웹과 함께 여자 골프 시장을 삼등분 하는 최고의 선수 중 하나였다. 현재 세계를 누비는 한국의 여성 골퍼들에게 영감을 준 선수이며, '상징적'인 면에서 앞으론 어떤 선수가 등장해도 넘어서기 어려울 것이다.

2016년을 끝으로 프로 생활을 마무리했으며 현재는 SBS Golf 해설 위원이다.[9] 2016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여자 골프 국가대표팀 감독을 수행하였으며, 2020 도쿄 올림픽에서 여자 골프 국가대표팀 감독 또한 수행하였다.

3. 선수 경력

3.1. KLPGA 시절

1996년에 프로로 전향했고, 당시 언론에서는 박세리를 "무서운 10대"로 불렀다.

이미 어렸을 때부터 천재성을 보인 박세리는, 1992년 중3 시절 초청 받은 KLPGA 대회 '라일앤스콧 여자오픈'에서 원재숙을 연장 전 끝에 꺾고 우승을 차지했다. 아무리 LPGA - JLPGA 대비, 한 수 아래의 투어라고 해도 중 3이라는 나이에, 프로 선수와 연장에서 승리한 것 자체는 그야말로 쇼킹한 사건이다. 이듬해 1승을 추가한 뒤, 고3이었던 1995년에는 아마추어 신분으로 시즌 4승을 거두는 놀라운 성적을 보였다.

이게 얼마나 놀라운 일이냐면, 당시의 KLPGA는 KPGA보다도 주목도가 떨어져[10] 연간 10개 대회 좀 넘게 운영되고 있었는데 아마추어가 1/3 이상을 우승으로 해 버렸으니 '프로 잡는 아마추어' 수준을 훨씬 뛰어 넘어 버린 것이기 때문이다. 이후 골프 팬들의 주목을 받으며 정식 프로로 데뷔한 박세리는 확실히 달랐다.

총 11경기 출전, 4승 - 2위 5회 - 6위 1회를 기록하였다. 출전 전 경기 TOP 10에 가장 부진했던 것이 6위다. 1997년에 2승을 기록한 박세리는 더 큰 꿈을 위해 미국행을 결정했다.

1997년 1년간 세계 최고의 교습가 중 하나인 데이비드 레드베터[11]로부터 철저한 레슨을 받으며 훈련했다. 그리고 같은 해 10월 열린 퀄리파잉스쿨에서 현재도 정상급 선수로 활동 중인 크리스티 커(미국)와 함께 공동 1위로 Q스쿨을 통과하며 화려하게 LPGA 무대에 데뷔했다.

3.2. LPGA 시절

1998년부터 LPGA 투어에 참가하여 투어 참가 첫 해에 맥도널드 메이저 대회인 LPGA 챔피언십 우승으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맥도널드 LPGA 챔피언십에서 우승하기 전까지 그야말로 온갖 대회에 참가를 신청했고, 맥도널드 LPGA 챔피언십도 당시 박세리가 알고 있던 유일한 메이저 대회인 U.S. 여자 오픈의 예선전 면제를 따내기 위한 대회로 생각했을 정도다.[12] 맥도널드 LPGA 챔피언십에서 첫 우승은 신인으로써는 역대 2번째에 해당하는 와이어 투 와이어[13]로 달성이라고 한다.

이후 다시 메이저 대회인 U.S. 여자 오픈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당시를 살아간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절대 잊히지 않을, 전설은 아니고 레전드급인 위의 사진의 그 경기가 바로 이 장면이다. 양말을 벗고 연못에 들어갔을 때 까맣게 탄 종아리와 대비되는 하얀 발 역시 레전드급 장면으로 화제가 되었다.[14] 게다가 이 장면에 나온 샷은 당시 상황에서도 절묘했는데, 당시 우승을 두고 선두와 단 1타 차로 뒤지는 상황이었다. 이 상태에서 안정적으로 드롭을 하여 벌타를 받고 칠 경우 준우승으로 끝날 가능성이 높았지만 이를 포기하지 않고 드롭을 하지 않은 채 맨발로 연못에 들어가 샷을 날린 것이다. 이후 다시 동점이 되어 재연장을 한 끝에 우승을 차지할 수 있었다. 결국 저 맨발 샷을 하지 않고 준우승으로 끝나느냐 아니면 맨발 투혼까지 벌이며 끝까지 우승을 노리느냐의 전환점이었던 것이며, 이는 당시 IMF로 절망하던 국민들에게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게 중요하다는 하나의 상징으로 자리잡았다. 특히 1997년 12월에 대한민국을 어둠으로 몰아넣은 IMF 사건으로 절망의 구렁텅이에 빠져있던 대한민국의 온 국민들에게 악전고투 끝에 우승하는 모습이 생중계되면서, 박찬호와 함께 국민적인 영웅으로 떠올랐다. 그리고 당시 대한민국 50주년 기념으로 만들어진 공익광고[15]에 이 장면이 들어갔고, 상록수와 함께 엄청난 시너지를 냈다. 워낙 전설적인 장면인지라 퀴즈 프로그램에서 박세리가 어느 쪽 양말을 먼저 벗었는지에 대한 퀴즈가 나올 정도였고, 예능 등지에서 골프가 소재일 때 기본적으로 양말을 벗으면서 그 장면을 패러디 하는 걸 간간이 볼 수 있었다. 더불어 그해에만 4승을 거두면서 LPGA '올해의 신인왕'을 수상했다.

USGA에서 "Leader of the Pak"라는 제목으로 재조명한 1998 여자오픈에서 우승했다.[16]

2001년 브리티시 여자 오픈 우승, 2002년 'LPGA 챔피언십'에서 우승함으로써 최연소 메이저 4승을 기록했다. 2006년 맥도널드 LPGA 챔피언십에서도 우승했다.

2007년 6월에는 꿈에도 그리던 LPGA 명예의 전당에 입회했다. 명예의 전당 입회를 위한 다른 자격은 2004년 미켈롭 울트라 오픈 우승으로 만족했는데, 자신의 투어 생활 7년 반 만에 조건을 구비했다. 22승으로 22점, 이 중 5차례의 메이저 우승으로 추가 5점, 그리고 2003년 베어 트로피 수상으로 1점 등 27점을 모두 충족했다. 그러나 입회 조건에는 'LPGA 에서 선수로 보낸 시간'이 규정되어 있다보니, 실제 입회에는 3년이 더 필요했던 것이다. 그리고, 이해 7월에는 KLPGA 명예의 전당에도 입회하였다.

2004년 미켈롭 울트라 오픈 우승 후부터 2006년 맥도널드 LPGA 챔피언십을 우승할 때까지 약 2년간 입스 증상을 겪었다. 연습 강박이 생겨 같이 생활하던 여동생이 미친 사람이다, 이대로면 죽겠다 했을 정도로 생활시간을 줄이고 연습에 매진했는데 그 기간동안 손가락 부상까지 당해 정말 힘들었다고 한다.

2011년 6월 스태이트 팜 클래식 오픈에서 5위에 오르며 아직 박세리는 죽지 않았음을 알렸다.

2012년 9월 23일 끝난 한국여자프로골프 2012 KDB대우증권 클래식에서 우승하면서 9년 만에 국내 대회에서 우승하는 쾌거를 이룩했다. 참고로 이때는 너무 위상이 높은 대 선배의 우승이라 일반적으로 우승자에게 펼쳐지는 세리머니인 동료들의 물 뿌리기가 어설퍼서 갤러리들의 장난 어린 비난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본인이 유튜브 호연지기 방송에서 밝힌 당시 상황은 달랐다. 원래 승리를 하면 샴페인이나 물을 선수들이 뿌리는데, 그때 하필 병이 따지지 않아서 미처 못 뿌려서 주춤주춤했다는 것이다. 후배들이 병을 못 따서 주춤하는 모습을 보고 박세리가 어려워서 후배들이 눈치를 본 것이라는 오해를 샀는데, 그 점이 바로 오해였다.

어깨 부상의 여파로 2015년에는 거의 플레이하지 못하였고, 2016년 미국 애리조나 주 피닉스에서 열린 LPGA JTBC 파운더스컵에 출전, 모처럼 만의 출전임에도 불구하고 12언더파 공동 42위로 대회를 마무리했다. 무엇보다 의미있는 것은, '은퇴'라는 단어를 직접적으로 언급하지 않았으나 '실질적인 은퇴 기자회견'을 가지며 그간의 파란 만장했던 선수 생활의 종지부를 선언했다.

선수로서는 은퇴하였지만, 이미 2016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여자 골프 대표팀의 감독으로 선임되는 등 은퇴 후의 활약이 더 주목받게 되었다. 부상 등의 이유로 계속 결과를 내기 쉽지 않음을 알았기에 아쉽지만 은퇴를 선언할 수밖에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일단, 명예의 전당 멤버이므로 자기가 원하면 은퇴를 번복하고 원하는 대회에 다 출전할 수 있다. 하지만, 메이저 대회는 '전년도에 10경기 이상 출전'이라는 조건이 달려 있기에 기준 달성 전에는 출전이 불가능하다. 이 때문에 ANA 인스퍼레이션(前 나비스코 챔피언십)에서의 우승하여, 커리어 그랜드슬램을 달성하고자 하는 꿈은 이룰 수 없게 되었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많은 우승에도 불구하고 여자 골프의 먼치킨급 레전드인 아니카 소렌스탐, 캐리 웹과 전성기를 같이하는 바람에 자신의 전성기에도 LPGA 공식 세계 랭킹 1위에 올라본 적이 없다. 특히 역대 최고의 여성골퍼라는 평을 듣는 소렌스탐이 결정적. 박세리는 2001-03 3년 연속 상금랭킹 2위였는데 세번 모두 1위가 소렌스탐이었다. 참고로 한국인 골퍼로서 최초의 세계 랭킹 1위는 신지애이며, 박인비, 유소연, 고진영, 박성현도 세계랭킹 1위에 올랐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우 훌륭했던 커리어였음은 누구나 인정할 수 밖에 없다. 2018년 About.com 선정 역대 최고의 여자골퍼 50인에서 18위에 올랐다. 참고로 박인비는 28위, 신지애는 41위다. 한국계까지 포함하면 리디아 고가 45위다.

4. 기록

4.1. 대회 기록

4.1.1. 선수 시절

4.1.2. 감독 시절

5. 은퇴 이후

파일:external/sccdn.chosun.com/2016082201002207100171051.jpg
2016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국가대표팀의 여성 팀 감독으로서 새로운 길을 가게 되었다. 참고로 남성 팀 감독은 최경주가 선임되었다. 올림픽을 앞두고 한 기자회견에서 골프 국가대표팀의 목표는 포디움을 휩쓰는 것이라며 자신감을 표명하였다.

박세리의 지도의 덕분인지, 박인비가 금메달을 획득했다. 그리고, 박인비의 금메달이 확정되자 기쁨의 눈물을 흘리는 박세리의 모습이 카메라에 잡히기도 했다. 박인비의 금메달을 이끌어내면서, 지도자로서 성공적인 첫발을 내딛게 되었다.

2016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대표팀 감독 당시[18]
파일:external/news.kbs.co.kr/3330326_53K.jpg
2016년 10월 13일, 인천 영종도 스카이72 오션코스에서 열린 'LPGA KEB하나은행 챔피언십' 대회에서 공식 은퇴식을 가졌다. 이 자리에는 역시 1990년대 말~2000년대 한국 스포츠의 개척자로서 함께 국민적 성원을 받았던 전(前) 메이저리거 야구선수 박찬호도 참석하여 자리를 빛내 주었다.
파일:external/pds.joins.com/htm_20161013191119427856.jpg파일:external/cdn2.diodeo.com/1855994-01.jpg

6. 출연

6.1. 드라마

7. 박세리 키즈

1998년 박세리가 LPGA에 도전하며 상당한 성과를 내자, 이를 보고 골프에 입문했던 꼬마들에게 붙어 있는 이름이다. 줄여서 '세리키즈'라고도 부른다.

박세리는 동시기에 메이저리그에서 활약한 투수 박찬호와 함께, 1997년 외환 위기라는 초유의 국가적 재난 속에서 단순한 스포츠 스타를 넘어, 국민들에게 힘과 희망을 심어준 국가대표급 영웅으로 남았다. 이 점에서 그녀가 가진 위상은 매우 특별하며 피겨 스케이팅에 김연아와 연아 키즈가 있듯, 한국 여성골프엔 박세리와 세리 키즈라는 말이 생겨났다.

일단, 박세리가 성공적으로 LPGA에 데뷔하자, 라이벌 김미현을 비롯하여, 박지은, 한희원 등도 LPGA 에 도전하였고, 대회에서 우승을 따내는 등 활약을 하였다. 박세리로 시작된 여러 한국인 여자 골퍼들의 활약은 골프가 무엇인지도 몰랐던 어린 아이들에게 영향을 주었고, 골프의 인기가 크게 올랐다.

박세리 키즈에 대한 정확한 정의를 내리기 어렵지만, 대략 박세리가 데뷔했을때 10살 정도의 나이였던 1988년생 근방에 태어난 여자 골프 선수들을 지칭한다. 박세리는 그런 후배들을 이끌고 2016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얻은 것이기에, 그 의미는 더욱 더 크다고 할 수 있다.

8.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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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여담



[1] LPGA 1부 투어를 뛰는 1년차 선수들 중 가장 실적이 높은 선수에게 수여하는 상이다.[2] LPGA의 최저타수상이라고 보면 편하다.[3] LPGA 5대 메이저 중 하나며, 2015년부터 KPMG 위민스 챔피언십으로 불리고 있다.[4] LPGA 5대 메이저 중 하나다.[5] LPGA 5대 메이저 중 하나이며 2001년부터 메이저 대회로 승격되었다. 2020년에 AIG 브리티시 오픈으로 명칭이 바뀌었다.[6] 이후 대전광역시 유성구에서 거주하다가 2020년, 감독 생활을 위해 서울특별시 용산구 한강로에 추가로 집을 구했다. 다만 박세리 본인은 생후 열흘 만에 와서 계속 거주한 대전 유성이 고향이라 말한다. 배우 윤시윤이 실제 태어난 곳은 전남 순천이 아니지만 생후 100일도 안 돼서 온 전남 순천을 태어난 고향이라고 말하는 것과 비슷하다.[7] 2020년 2월 19일 나 혼자 산다에서 밝히기로는 다이어트를 했다고 한다. 현재는 이보다 더 빠졌을 것이다.[8] 뒷발 중 한 쪽 발에 장애가 있어 걷기에 불편함이 있다고 했다.[9] 자주 나오지는 않고 KLPGA 메이저대회 중계 혹은 본인의 이름을 걸고 개최하는 OK저축은행 박세리 인비테이셔널 중계에 나온다.[10] 반면 현재는 KLPGA의 인기가 KPGA를 아득히 뛰어넘으며, 여자 프로 대회가 남자 프로 대회보다 상금이 더 높은 이례적인 상황이다. 이렇게 된 것은 박세리를 보고 동경하며 자란 여자 선수들이 너무나도 많고, 이들이 세계 대회에서도 좋은 성적을 낸 덕인데, 걸출한 선수 하나가 혼자 종목 하나의 판도를 완전히 뒤엎어버린 예시다. 남자 골프에서는 최경주가 있지만 메이저 대회 우승은 없는데다가(2011년 우승한 플레이어스 챔피언십은 메이저 대회만큼의 규모와 상금을 갖춘 대회이기는 하다.) 박세리만큼의 스타가 되지는 못했다.[11] 타이거 우즈의 스윙코치였던 부치 하먼과 함께 가장 유명한 스윙코치 중 한 명이며 박세리 이전에 닉 팔도의 스윙코치도 맡았었고 현재는 리디아 고의 스윙코치를 맡고 있다.[12] 우승자 인터뷰에서 '이 대회가 메이저?' 라는 반문에 기자들이 폭소했다고 한다.[13] 1라운드부터 최종 라운드까지 1위로 마무리 짓는 것이다. 하루 하루 샷 감이 다른 골프의 특성상 연간 이를 달성하는 선수는 그리 많지 않다.[14] 그만큼 박세리가 여름에 강렬한 땡볕이 내리쬐는 날에도 열심히 연습과 훈련에 매진해 왔다는 것이다. 박인비는 이 발을 보고 본격적으로 골프 클럽을 잡았다고 한다.[15] 국정홍보처의 전신이었던 공보실에서 만든 공익광고다.[16] 본 경기 72홀 연장전 18홀 서든데스2홀 도합 92홀로 US여자오픈 역사상 최장경기로 기록되었다. 월요일 18홀 연장전은 없어졌으므로 앞으로도 없을 최장 기록경기이다. 당시 이 연장 라운드까지 갔던 상대는 아마추어 선수 신분으로 출전했던 제니 추아시리폰이라는 태국계 미국인의 무명 골퍼였는데, 박세리를 상대로 서든데스까지 간 것부터 당시에 엄청난 이슈를 몰고 왔었던 업셋에 해당되는 사항이였다. 이후 추아시리폰은 대학 졸업 후 2000년에 프로 데뷔까지 했지만 집안 사정으로 인해 2005년에 골프 선수를 은퇴했고, 은퇴 후 버지니아 커먼웰스 대학교에서 간호학 석사를 받은 이후 현재의 남편 로버츠 베츠와 결혼하고 남편의 성을 따른 현재는 와날리 베츠라는 이름으로 개명한 뒤에 간호사로 활동하고 있다. 골프선수를 은퇴한 이유는 그 동안 아버지가 볼티모어에서 식당을 운영하면서 골프선수 활동비를 지원해줬는데, 당시 LPGA투어 퀄리파잉 스쿨에 등록하는 데에 드는 비용이었던 4,000달러까지 지원을 해 줬음에도 본인이 이 돈을 쓰는 것을 거부하고 은퇴를 결정했다고 한다. 그 때문에 LPGA를 그만둔 것 자체는 2001년이지만 이후에 버지니아대학 골프 팀의 코치로 활동하면서 아시아 투어도 뛰고 했었다 보니 공식적인 은퇴는 2005년으로 기록되었던 것이다. 이 업셋을 인정받아서 2011년에 듀크대학교 스포츠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17] 공주문예회관 앞(박세리의 모교인 금성여자고등학교 근처)에는 이 모습으로 박세리의 동상이 세워져 있다.[18] 왼쪽부터 김세영, 박인비, 박세리, 양희영, 전인지[인스타] [20] 또 다른 요소는 종목 자체의 인기가 있다. 비인기 종목은 연봉이 매우 적거나 아예 프로 리그가 없는 경우도 많다. NBA는 현재 세계에서 가장 연봉이 높은 프로 리그이지만 과거에는 선수들이 생계를 못 꾸려 부업을 뛰어야 할 정도였다. "돈을 많이 벌면 그만큼 많이 배분된다"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장 기본적인 요소이다. LPGA 선수들은 수많은 비인기 종목 선수들에 비해 월등히 돈을 많이 받지만, 이건 문제가 전혀 되지 않는다. LPGA는 그만큼 돈을 많이 벌고, 많이 배분되는 것이기 때문. 그런데 인기종목인 골프 선수란 이유로 다른 비인기 종목 선수들보다 월등하게 많이 버는 것은 당연시여기면서, PGA선수들보다 적게 받는 것은 문제삼을 수가 없다. 애초에 LPGA나 PGA의 상금은 리그가 버는 돈에서 나오는 것이다. LPGA가 PGA만큼 못 버는데 동일한 상금을 받는다면, 그만큼 PGA가 자신이 번 돈의 일부를 무상으로 LPGA에 나눠줘야한다는 소리인데 당연히 이는 공평하지 못하다. 이들은 '남자라서' 돈을 더 많이 번게 아니라 그만큼 더 실력수준이 높아서 인기가 많고, 이 때문에 돈을 더 많이 버는 것이기 때문이다.[21] 그 예로, 공동묘지에서 연습을 시켰다.[22] 단, 박세리의 부친이 직접 공동묘지에 대해 언급한 걸로 봐선 아버지를 감싸기 위해 거짓말을 한 것일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23] 그나마 근접한 신지애가 투어 10승, 메이저 2승, 연장전 2전 2승이다. 하지만 박인비가 이후 무섭게 치고 오면서 2015년 8월 기준 LPGA 16승, 메이저 7승을 달성했다.[24] 최정상급 프로 선수라도 메이저 대회 코스 중 자기에게 안 맞는 성향의 코스가 하나 정도는 나오게 마련이다. 남자 대회로 예를 들자면, 벙커 샷에 약점이 있는 선수는 항아리 벙커에 빠지면 답도 없는 브리티시 오픈의 우승이 힘들고, 장타자인데 상대적으로 퍼팅이 약하면 공이 멈추지 않는 유리알 그린으로 악명높은 마스터스에서 고배를 마시기 마련이다. 그래서 커리어 그랜드 슬램은 골프에서는 이룬 선수가 거의 없다. 모든 방면에서 완벽한 기량을 뽐내야 하기 때문이다.[25] 그런데 네이버 매거진 S에서의 대담에서는 딸을 공동묘지에 던져놓고 혼자 왔다는 얘기를 한다. 양자가 다른 말을 하고 있어서 확인이 필요하다. 1998년 즈음 방영했던 다큐멘터리에서도 관련 내용이 나왔었다. 박세리 아버지가 실제로 조폭 출신이었다는 점, 해당 내용을 자랑스럽게 떠벌린 건 아직 아동 학대에 대한 경각심이 낮은 90년대였다는 점(실제로 당시까진 학교에서 흔하게 구타가 이뤄졌다), 박세리가 이 루머를 부인한 건 2000년대 후반 (무릎팍도사)이었다는 걸 생각하면 아버지가 욕 먹을 걸 우려해 쉴드쳤을 가능성도 있다. 실제로 구세대나 그런 식의 교육을 받은 아버지가 아동학대란 걸 모르고 거칠게 훈육하는 경우는 잦다. 농구선수 샤킬 오닐은 양아버지 필 해리슨을 언급할때마다 "내 아버지 위대한 필 해리슨"이라고 할 정도로 부자 사이가 좋지만 (해리슨이 아들 경기 보러오겠다고 몇 시간을 운전해 오기도 했다), 군 출신 해리슨은 오닐을 키울때 주먹으로 때리는 등 엄청나게 거칠게 다뤘다. 드와이트 하워드는 마찬가지로 군인 출신 아버지 밑에서 커서, 아들을 훈육하겠답시고 혁대를 끌렀다가 (미국에서는 부모가 아이를 때릴 때 혁대를 끌러 사용하는 경우가 과거엔 종종 있었다. 물론 과거에도 좋게 보지는 않았느며, 현재는 빼박 아동학대다. 체벌이 당연시되던 시기에도 회초리를 사용하라고 추천했다.) 신고당하기도 했다.[26] 당시 이호연 사장과 핑클을 좋아하는 걸그룹이라고 하고 짰다고 하고 이후에 몇 번 만났다고 한다.[27] 박세리 말로는 그냥 친한 언니동생이라고 한다.[28] 박세리 오른쪽에서 함께 사진을 찍은 선수는 자이언츠의 짝수해 우승에 기여한 서지오 로모다.[29] 원래 3인분을 시켰는데 모자라다고 2인분을 더 시켰다.[30] 이다영과 이재영이 시즌 준비로 인해 2화까지만 나왔고, 3화부터 출연중이다.[31] 아버지와 관련된 일 및 삼성 스폰과 관련된 일 등이 포함된다.[32] 개는 훌륭하다 169회에서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