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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명여자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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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sookmyunglogoclear.png 숙명여자대학교 관련 틀
서울의 대학 대한민국의 여자대학교

파일:sookmyung_sg.png
학과 캠퍼스 출신 인물

숙명여자대학교
淑明女子大學校
SOOKMYUNG WOMEN'S UNIVERSITY
파일:sookmyunglogoclear.png
교훈 정숙(貞淑)·현명(賢明)·정대(正大)
상징 교화 매화
교목 소나무
교조 백로
교색 숙명 BLUE
국가 파일:대한민국 국기.png 대한민국
분류 사립대학
개교 1906년 명신여학교
설립자 순헌황귀비 엄씨
총장 제19대 강정애
재단 학교법인 숙명학원
주소 서울특별시 용산구 청파로47길 100 (청파동2가)
재학생 학부생 10,492명(2016년)
대학원생 893명(2016년)
교직원 교원 1,417명(2016년)
직원 288명(2016년)
대학기본역량진단 자율개선대학(2018년)
링크 공식 홈페이지
노조 홈페이지
총동문회 홈페이지
1. 개요2. 연혁3. 재단4. 주변 교통편
4.1. 버스4.2. 지하철역
5. ROTC6. 현황7. 역대 총장
7.1. 제1대 임숙재 총장7.2. 제13~16대 이경숙 총장7.3. 제17대 한영실 총장7.4. 제18대 황선혜 총장
8. 상징9. 캠퍼스 및 건물10. 학과11. 사건사고
11.1. 음대 작곡과 교수들의 폭언11.2. 순헌관 화재11.3. 대학백과 남성혐오 실태 내부고발 11.4. 남성혐오 대자보 부착 사건11.5. 숙명여대 에브리타임 불법촬영 게시물 유포11.6. 김순례 규탄 성명 발표 철회 사건
11.6.1. 결과
11.7. 펜스룰 강사 강의 배제 사건
12. 이모저모
12.1. 숙제여대12.2. 스노로즈12.3. 리더십 그룹
13. 출신 인물

1. 개요

파일:숙대전경.jpg
숙명여자대학교 서울캠퍼스
숙명여자대학교 홍보영상

숙명여자대학교, 淑明女子大學校, SOOKMYUNG WOMEN'S UNIVERSITY

서울특별시 용산구 청파동에 있는 사립 종합 여자대학교. '정숙, 현명, 정대(貞淑·賢明·正大)'를 교훈으로 하고 있다.

한자어는 淑明女子大學校, 영문명은 SOOKMYUNG WOMEN'S UNIVERSITY, 약칭은 숙대(淑大)이며, 전진숙명이라는 별칭이 있다.

2. 연혁

1906년 용동궁[1]에 세운 '명신여학교(明新女學校)'를 모태로 삼는다.[2] 설립자는 순헌황귀비 엄씨라고 할 수 있는데, 그녀의 영향하에 있던 경선궁과 영친왕궁이 하사한 농경지 수익금을 재원으로 1912년 재단법인 숙명학원이 설립되었다. 1기는 단 5명의 여학생만으로 출발했다. 초대 교장 이정숙은 순헌황귀비가 총재를 맡았던 한일부인회에서 회장을 맡았던 인물이다[3]. 오늘날 숙명여자중학교, 숙명여자고등학교, 숙명여자대학교의 전신이 된다.

한편 순헌황귀비 엄씨와 그녀의 친정인 엄씨 가문은 교육사업에 관심이 많아, 진명여학교양정의숙도 세웠다. 후에 이같은 공로를 인정받아, 2018년 숙대입구역부터 숙명여대 정문까지의 길이 '순헌황귀비길'의 명칭을 부여받게 된다.

현재 쓰이는 '숙명(淑明)'이라는 명칭을 달고 본격적인 민립 여성교육기관으로 정립하게 된 것은 일제강점기 말기인 1938년, 지식층이 주도한 숙명여전 설립 모금 운동이었다. 그렇게 건립된 당시 명칭은 숙명여자전문학교였으며, 학교 부지는 구황실 소유지 가운데 용산 청파동 일대 2만여㎡(현재의 숙명여대 제1캠퍼스 부지)였다.[4] 초대 교장으로는 전직 경성제국대학 교수였으며 당시 숙명여자고등보통학교 교장이었던 오다 쇼고(小田省吾, 1871~1953)가 부임하였다.[5]

그로부터 10년이 지나 해방 후인 1945년 11월 숙명여자전문학교로 재개교하였다. 1948년 5월에는 미군 군정청에 의하여 대학 승격을 인가 받고 대학으로 승격되었다. 6.25 전쟁이 발발하자 1951년에 부산으로 피난하여 동대신동에서 가교사를 짓고 수업을 계속하였다. 그러다가 서울 지역이 다시 수복되자 1953년에 서울로 복귀하였다. 1955년 종합대학으로 승격되었고, 초대 총장으로는 숙명여전 교장이었던 임숙재가 취임하였다.

1964년~1966년에는 계속하여 학내분규가 발생하였다. 그 사유는 제4대 총장인 김순식에 의한 신입생 부정입학,[6] 제5대 윤태림 총장의 횡령, 영친왕이방자의 차남인 이구의 숙명학원 경영권 주장 등이었다.[7] 1968년[8] 6관구 사령관이 한강 이북 방위선을 구축한다는 명목으로 숙명여대가 소유한 관악구 남현동 토지를 강제 점유하자, 숙명여대는 1975년부터 1986년까지 4차례에 걸쳐 점유당한 토지를 전국에 산재한 국방부의 유휴지로 환지 받았다.

1981년에는 유신정우회 국회의원이었던 김옥렬 교수가 최초의 숙명여대 출신 총장으로서 부임하였다. 김옥렬 총장은 1991년 국방부가 소유한 B지구(현재의 제2 창학 캠퍼스)의 토지 일부를 취득하였다. 1994년에는 민주정의당 전국구 국회의원을 역임했던 이경숙 교수가 교수 직선으로 제13대 총장에 선출되었다. 이경숙 총장은 현재의 약학대학 뒤에 위치한 국유지의 공원부지 지정을 해제하고 매입하여 제2 창학캠퍼스를 조성하였다. 그 후 2008년까지 제2창학을 표방하며 재임한 이경숙 총장[9] 시절에 학교 인프라가 상당히 발전하였다.[10]

2012년에는 기부금 편법운용 등을 이유로 한영실 총장과 재단 사이에 분규가 일어났다. 이 분규는 2012년 9월에 황선혜 총장이 부임하면서 마무리되었다. 2013년에는 숙명여자중학교숙명여자고등학교가 숙명학원에서 분리되어, 명신여학원이라는 재단을 세웠다. 이에 따라 숙명학원은 숙명여대만을 운영하는 단독법인이 되었다. 한편 황선혜 총장은 2013년 공과대학 창설을 선언하였고, 2016년에는 이화여대에 이어 여자대학교에서 2번째로 숙명여대에 공과대학을 신설하였다.

3. 재단

파일:숙대재정.png

상위 15개 대학 중, 사립대학[11] 재단 수익용 기본 재산 확보율 14위
<2018년 기준 15개대 사립 대학법인 수익용 기본재산 평가액 중 / 재단 수익용 기본재산 확보율>
1위 건국대학교 8,145억 / 290.6%
2위 단국대학교 3,586억 / 146.7%
3위 연세대학교 6,692억 / 128.5%
4위 한양대학교 4,983억 / 108%
5위 한국외국어대학교 1,813억 / 97.7%
6위 홍익대학교 1,441억 / 58.4%
7위 인하대학교 1,659억 / 57%
8위 이화여자대학교 1,392억 / 48.2%
9위 중앙대학교 1,333억 / 43.9%
10위 동국대학교 1,076억 / 40.1%
11위 경희대학교 1,115억 / 32.2%
12위 고려대학교 1,328억 / 29.4%
13위 서강대학교 326억 / 26.3%
14위 숙명여자대학교 98억 / 8%
15위 성균관대학교 143억 / 4.5%
베리타스 알파
대학재정알리미

4. 주변 교통편

4.1. 버스

4.2. 지하철역


학생들에게 3개의 역 중에서 학교와 가장 가까이 있는 역을 고르라고 하면, 몇몇은 순간 멈칫할 만큼 애매하게 위치하고 있다. 역명에 속으면 안 된다 따라서 통학생들은 굳이 숙대입구역으로 오기보다는, 자기 집과 가까이 연계된 다른 역으로 오는 것이 좋다.

각 역에서 숙대로 걸어오는 건 오르막이 있긴 하지만 엄청 힘들지는 않으며, 또 세 역 모두 학교 정문-후문 앞까지 오는 버스가 잘 연계되어 있으므로 가능하면 환승을 하도록 하자.

5. ROTC



숙명여대 학군사관후보생들의 훈련 및 생활 모습

숙명여자대학교 학군단

국내 최초로 학생군사교육단(ROTC)이 생긴 여자대학교이다. 본래 남학생만 뽑던 학군단에서 여학생도 뽑게 됨에 따라 숙명여대도 학군단 설치를 신청했고, 2010년 말에 제217학군단이 창설되었다.

2012년 학군단 하계군사훈련에서는 숙명여대가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방학 중에는 여고생들을 대상으로 '주니어 ROTC 리더십 캠프'를 개최, 안보의식과 리더십 등을 교육한다. 현역 육군소장의 안보특강, 도라산전망대와 비무장지대(DMZ) 견학, 인근 군부대에서의 병영체험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6. 현황

2013년 8월 29일, 교육부에서 발표한 ‘2013년 고등교육기관 졸업자 건강보험 DB 연계 취업통계조사’에 따르면, 숙명여대 졸업자 취업률 54.8%를 기록하며 수도권 소재 4년제 여자대학 중 1위, 전국의 대학 및 산업대학 ‘나’그룹[12] 중에서는 14위에 올랐으나#, 2014년 대학알리미 사이트에 공시된 고등교육기관 취업률 통계 결과, 이화여대 61.9%, 숙명여대 60.8%, 성신여대 59.7%로 역전되었다. 졸업 후 우리, 취업할 수 있을까…[13]

7. 역대 총장

7.1. 제1대 임숙재 총장

"성공하기를 원하십니까? 환경을 다스리십시오."

임숙재 총장이 학생들에게 항상 했다는 말.

임숙재는 1891년 충청남도 예산군에서 태어났다. 17살에 연지곤지 찍고 시집을 갔는데, 시집간 지 2년 만에 신랑이 갑자기 죽어 19살 나이에 과부가 되어 버렸다. 죽은 신랑이 너무도 원망스럽고 서러워 울기도 많이 울던 어느날, 임숙재는 마음을 다잡아먹고 거울 앞에 앉아 긴 댕기머리를 사정없이 잘라 버리고, 자신의 기구한 운명을 헤쳐나갈 방도를 곰곰히 생각했다. 친정으로 돌아간들 뾰족한 수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래서 그녀는 무작정 서울행 열차에 몸을 실었다.

낯설고 물설은 서울 생활이 그리 녹녹한 것은 아니었지만, 임숙재는 이를 악물고 일했다. 식당에서 설거지도 하고, 남의 집 빨래도 했다. 그러다가 어느 부잣집 식모[14]로 들어가게 되었고, 그 집에서 밤낮으로 쉬지 않고 일했다. 다행히 집 주인은 마음씨 좋은 사람이었고, 임숙재를 인정해 주고 숙명여학교 야간부에 입학하도록 주선해 주었다. 임숙재는 낮에는 식모로 일하고 밤에는 학교에 가서 공부했는데, 최우수 학생이 되고 장학생이 되었을 정도로 성과를 올렸다.

1913년 숙명여자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일본으로 유학을 떠나 1917년 도쿄부립여자사범학교를 졸업하였으며, 1921년 도쿄여자고등사범학교[15] 가사과를 졸업한 후 귀국하여 1924년까지 숙명여고보에서 교직생활을 하였다. 1926년부터 1937년까지 대구여자고등보통학교[16] 교유(敎諭)로 활동한 뒤, 1939년 숙명여자전문학교 교수(敎授)가 되었다. 1939년 국민정신총동원연맹(國民精神總動員朝鮮聯盟) 주최의 국민정신 선양 순회강연회 연사로 활동하는 한편, 1941년부터 1942년까지 국민총력조선연맹(國民總力朝鮮聯盟) 부인부 지도위원을 지냈다. 또한 1941년 조선교화단체연합회 주최 시국대책 순회강연회 강사‧매일신보사 주최 부인시국대강연회 강사‧조선임전보국단(朝鮮臨戰報國團) 부인대 지도윈원, 1942년 대일본부인회(大日本婦人會) 조선본부 이사, 1943년 국민총력조선연맹 총무부 기획위원회 위원 등을 겸임하였다. 이와 함께 「대동아전쟁 완수는 주부의 철저한 각오에서」‧「이기기 위하여 어떠한 생활을 해야 할 것인가」 등을 기고하여 일제의 침략전쟁을 지지하고 선전하였다.(한국역대인물 종합정보시스템-한국학중앙연구원 참조)

1945년 해방과 함께 숙명여전은 숙명여자대학으로 개편되었고, 임숙재 교수는 초대 학장이 되었다. 10년 동안 학장을 지내면서 숙명여자대학을 종합대학으로 승격시키기 위해 노력하다가, 1955년 드디어 숙명여대가 종합대학으로 승격되자 숙명여자대학교 초대 총장이 되었다. 3년 동안 총장을 지낸 후 1958년 9월에 정년퇴임하였다.

7.2. 제13~16대 이경숙 총장

경기여자고등학교와 숙명여자대학교를 졸업했다.[17] 무려 14년 반 동안 재임했으며, 임기 동안 수많은 건물을 세우고 숙명여대의 공간을 크게 확장하였다. 대단히 많은 기부금을 모았는데, 임기 당시 대한민국의 경제사정이 좋았기 때문이라는 말도 있다.

알 사람들은 알겠지만, 2008년 이명박 정부 출범 당시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위원장을 지내면서 영어 몰입교육을 정책으로 수립하였는데, "'오렌지'가 아니라 어린쥐로 발음해야 한다"고 말해 조롱을 받았다. 후에 본인이 밝힌 바로는, 공청회 자리에서 학부모가 "'오렌지' 발음을 원어민과 가깝게 해 달라"는 요청을 했고 이에 '어린쥐'라고 발음해준 것이 왜곡된 것이라고 하였다. #

7.3. 제17대 한영실 총장

재임 당시 경상대학 구조조정을 무리하게 추진하다가 구성원들의 지탄을 받았다. 그 후 재단 전입금 위장 문제 때문에 교육과학기술부에 의해 이용태 숙명학원 이사장이 취임승인 취소 처분을 받고, 한영실 총장도 긴급이사회에서 해임되는 등, 학내분규의 원인을 제공하기도 하였다. 관련 기사 참고로 애칭(?)은 비타민 총장님. 이유? 정말 모르겠는가? #

7.4. 제18대 황선혜 총장

재임 당시 공과대학 신설을 주도하고, 임기 말에는 산업연계 교육활성화 선도대학(PRIME) 사업 대형유형에 숙명여대가 선정되도록 하는 등 나름의 성과를 올렸다.#

그러나 그만큼 학교의 재정적자를 심화시켰다는 비판 역시 함께 받았다. 또한 공대 신설을 위해 타 과의 입학정원을 갑자기 무리하게 축소하고 공대 자리를 위해 이전 과학관에 있던 몇몇 과를 강제 이주시키는 등 본인의 정책 추진을 위해 독단적인 행동을 많이 해 학생들과 교수들의 많은 지탄을 받았다. 또한 학생충원이라는 명목으로 대학원 남녀공학화를 무리하게 추진하다가 학생들과 동문들의 강력한 저항을 받기도 했다.#

어쨌든 존재감이 거의 없어서인지 외부인들과 학교에 크게 관심없는 재학생들은 황 총장의 존재를 잘 모른다. 결국 이경숙 총장과 한영실 총장에 비해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임기가 만료되었다.

8. 상징

파일:attachment/숙명여자대학교/sig01_l.gif 파일:attachment/숙명여자대학교/cha01_1.gif파일:attachment/숙명여자대학교/noon.jpg
파일:눈송이이모티콘.jpg
창학 111주년을 맞이해 카카오톡 이모티콘이 출시되었다. 숙명여자대학교 공식 플러스 아이디를 친구추가하면 30일 한정이지만 무료로 받을 수 있다. 카카오톡 정책상, 학교 이모티콘은 돈 주고 사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한다.
파일:눈송이굿즈.png인형, 스티커, 파일, 노트, 뱃지 등 온갖 눈송이 캐릭터 상품이 만들어지고 있다. 교내 커뮤니티에서 다양한 공구가 이루어지고 있으며 그 종류와 개수가 셀 수 없을 정도로 많다. 굿즈를 전문적으로 디자인하고 만드는 그룹들이 생길 정도. 학교가 안 만들어 주니까
파일:눈송이짤.jpg학생들이 눈송이를 활용한 수많은 짤들을 방출하고 있다. 특히 시험기간이 되면 녹초가 된 눈송이 짤 등을 카카오톡 프로필사진으로 지정해둔 숙대생들을 발견할 수 있다.

9. 캠퍼스 및 건물

숙명여자대학교/캠퍼스 참조.

10. 학과

숙명여자대학교/학과 참조.

11. 사건사고

11.1. 음대 작곡과 교수들의 폭언

2014년 9월, 음대 작곡과 학생들이 등교를 거부하며 같은 과의 홍모 교수와 윤모 교수의 해임을 요구하고 있어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학생들의 증언에 의하면, 홍 교수와 윤 교수는 " 왜 곡을 못쓰냐, 밤일 나가냐??" 등의 성희롱 발언과 '인간 쓰레기' 등의 폭언을 일삼았고, 졸업 작품집과 오선지를 강매했다고 한다. 문제의 두 교수는 "학생들의 뒤에 배후가 있다"며 본인들의 혐의를 부인하는 상황. 작곡과 학생들은 홍 교수와 윤 교수의 이런 주장에 대해 반발하며, 두 교수의 주장을 재반박했다. 참고기사

결국 위 사안으로 인해 홍 교수와 윤 교수는 현재 수업에서 배제되었으며, 교수 직위도 해제된 상태이다. 홍 교수와 윤 교수는 법원에 가처분 소송을 냈으나 기각되었다. 기사

11.2. 순헌관 화재

2015년 6월 3일 오후 3시 경에 순헌관 8층 옥상정원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화재 원인은, 흡연자가 버린 덜 꺼진 담배꽁초가 정원의 죽은 나무에 불을 붙인 것이었다.

작은 규모의 화재라 금방 진압되어 큰 피해는 없었다. 하지만 연기가 건물 안에 가득 찼는데도 건물 내의 경보기가 전혀 울리지 않아, 일부 교수들은 수업을 계속 진행하였고, 화재를 인지한 미화원들과 일부 학생들이 자체적으로 학생들을 대피시켰다고 한다. 이에 숙대 커뮤니티에서 논란이 되었다. 시설관리팀은 "화재가 난 옥상정원이 건물 외부라 건물 안의 화재 경보기가 울리지 않았다"고 해명했지만, 분명히 연기가 건물 안으로 들어왔는데 감지기가 울리지 않은 것은 관리가 부실했다고 볼 수밖에 없다.

11.3. 대학백과 남성혐오 실태 내부고발

대학백과는 외부인이 특정 대학교에 대해 질문을 하면 에브리타임에서 재학생 인증이 된 해당 대학교 재학생들이 답변을 해주는 사이트 및 어플이다.

2018년 10월 20일 이곳에 "학교비추천" 이라는 제목으로 한 게시글이 올라왔고 각종 커뮤니티에 '숙명여대 내부고발' 이라는 글 제목으로 퍼졌다. 글쓴이는 자신이 재학생이라고 밝혔으며, 학교를 비추천하는 이유는 학교 전반에 찌든 페미니즘남성혐오 분위기 때문으로, 1년 전 이 학교를 지망한 자신이 원망스러울 수준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글쓴이는 얼마전 한 pc방에서 정신병자 형제에 의해 남자 알바생이 끔찍하게 살해된 서울 강서구 PC방 살인사건를 언급했다. 아무 죄없는 알바생이 억울하게 죽은 사건이지만, 숙명여대의 에브리타임에서는 "잠재적 가해자인 한남 한 명 잘 죽었고 하늘에서 실컷 런웨이 하면된다 이기야"가 일반적인 반응이라며, 도저히 정상인이 공감할 수 없는 사상에 찌들어있는 상태라고 폭로하였다. 링크

글을 접한 각 사이트들의 여론은 여대들 대부분이 원래 저런 분위기였다며 크게 놀라지도 않는 분위기이다. 사실 숙명여대도 이런 분위기라는 사실은 어느정도 알려져 있었는데, 2018년 7월 숙명여대 대학백과 게시판에 올라온 글들에 숙명여대 학생들이 남긴 댓글들을 살펴보면, 남성혐오 댓글이 많아 제3자가 봐도 민망한 수준이었다. 해당 댓글들은 아래 링크에서 확인 가능하다.

개그집합소
디시
워마드@(워마드는 해당 글쓴이가 숙대에 학점교류 간 적이 없다고 밝힌 사실을 고의적으로 누락하였다)
포모스@
쭉빵
여성시대

폭로 사건 이후, 숙명여대 건의게시판에는 학교에 대한 악성루머(…)를 대처해달라는 게시글이 빗발쳤고, 숙대 커뮤니케이션팀에서는 게시글 삭제요청과 더불어 법률팀의 자문을 구하여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링크 어떻게 대처해 나갈지는 지켜봐야 할 부분… 이었으나, 2019년 2월 기준으로 반달이고 뭐고 묻힌 듯.

이 사건이 터지고 얼마 되지 않아 동덕여자대학교, 성신여자대학교에도 비슷한 사건이 터졌다.

11.4. 남성혐오 대자보 부착 사건

숙명여대의 대표적인 흑역사 중 하나다.
파일:숙대 사건 3.jpg
문제의 대자보
숙명여대생: 한국남자를 죽인다
숙명여대생: 정답
숙명여대생: ㅇㅈ
숙명여대생들: ㄴ22 ㄴ33 ㄴ死死 ㄴ55 ㄴ66 ㄴ77 ㄴ6969[20]
남중생: 지랄
숙명여대생: 노브라라고 (지랄)하는 한남을 죽인다

숙명여대생: 관음하는 그 성별의 눈을 찌른다
숙명여대생: ㄴ 성님 최고 ♡
숙명여대생: ㄴ ♡ 띵언[21]ㅇㅈ
남중생: (ㅇㅈ)ㄹ[22]
숙명여대생: ()ㅣㄴ정 // = 린정

숙명여대생: 한국남자 못생겼다
남중생: 니도 못생김
숙명여대생: 양()ㅡㅁ(도 못생김) // = 양남도 못생김
숙명여대생: 마! 우나!

숙명여대생: 관심갖는 사람은 가랑이를 쭈차삐세요
남중생: 응 A[23]
숙명여대생: (응 A)+는 내 성적이다

숙명여대생: 1일 1살남

숙명여대생: 누가 가슴 쳐다보면 실명시킨다

파일:숙대 사건 4.jpg

이에 관해 자세한 내용은 숙명여대 남성혐오 대자보 사건 문서 참조.

11.5. 숙명여대 에브리타임 불법촬영 게시물 유포

온라인 커뮤니티들에서 숙명여대 에브리타임 캡처본이 돌았다. 그 내용은 일부 숙대생들이 지하철 임산부 배려석에 앉은 남성들을 불법촬영하여 모자이크도 없이 숙대 에타에 유포한 것이다. 캡처본으로 확인된 글만 5개다. 만약 반대가 훨씬 많았거나 욕을 먹었다면 상관없겠지만[24], 문제는 추천자는 수십여건에 이르지만, 아무도 반발을 하지 않았던 것이다. 결국 여기저기에서 신나게 욕을 먹고 여대 = 꼴페미, 남성혐오 대학교로 증명되는 또 하나의 사건이 된 것이다.

에펨코리아#
루리웹#
인벤#
인벤#
보배드림#
쓰레빠#
이토랜드#
클리앙#
MLBPARK#
와이고수#

더욱 충격적인 사실엔 숙대 에타 내에, 페미니스트가 아닌 숙대생을 조롱하는 게시판(비흉자 반흉자 탈흉자, 비흉자 수용소)과 워마드 계열 유저들이 있는 게시판(극성꼴페미쿵쾅쿵쾅메퇘지페미나치웜년[25])이 있는 걸로 확인되었다.

11.6. 김순례 규탄 성명 발표 철회 사건

숙명여대 총학생회가, 동문인 자유한국당 김순례 의원이 세월호 유가족에 대해 '시체장사'라며 폄훼하는 발언으로 물의를 빚고 2019년 자유한국당 공청회 5.18 망언 논란에 관련하여 망언에 참여하자, 김순례 의원을 규탄하는 성명서를 냈다가 4월 4일 약 40일 만에 철회했던 사건.

김순례 의원의 막말이 매우 심각해서 여론도 심각하게 악화되어 있었고, 이에 대해 총학생회가 규탄 및 자랑스러운 숙명인 상을 철회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수순이었다.[26] 해당 성명은 각 학부별 설문조사 등 의견수렴과 중앙위 의결을 거쳤다. 그러나 615명의 학생이 "규탄에 반대한다"는 또 다른 설문조사 결과를 총학생회에 제시했는데, 다음은 14차 중앙운영위원회 정기회의 회의록(네이버블로그)에 나온 의견이다. 실제 중앙운영위 테이블에서까지 논의된 말이다. 회의록은 참석자의 동의하에 공개된 것이다. 이는 회의 참가자 다수가 이런 발언이 사회에서 어떻게 받아들여질 것인지에 대해, 전혀 문제의식이 없었다는 뜻이다.

중앙운영위원회에서 나온 단위별 입장을 살펴보자.

결국 해당 규탄 성명은 유지 2인, 철회 8인, 기권 4인으로 철회가 결정되고야 말았다. 이에 대해 현 학생회장은 “개인 이름이 아닌 총학생회장으로 중앙위 의결을 거쳐 (규탄)성명을 발표한 이유는, 숙명여대 학생들이 사회적 소수자와 연대하고 있음을 당당히 드러내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여성을 비판하는 것이 여성혐오가 아니라, 그(김순례 의원)의 망언을 통해 다른 여성들이 아파하는 것이 여성혐오이며, 여성을 단일범주에 욱여넣는 것이 여성혐오”라고 견해를 밝혔다.황지수 숙명여대 총학생회장 페이스북

11.6.1. 결과

이 사건이 뉴스화되고 당연히 숙명여대에 대한 여론은 크게 악화되었으며, .@@ 숙대 총학생회 페이스북 숙명여대에서 인지도 있기로 유명했던 홍성수 교수는 "충격을 받았다"는 내용의 글을 페이스북에 올렸다. 홍성수/비판 및 논란 항목을 보면 알 수 있듯, 홍성수 교수는 메갈리아, 워마드를 두둔하는 것을 넘어서 적극적으로 지지해왔다는 걸 감안하면 이러한 비판은 이번 사태의 심각성을 보여주는 반증이라고 볼 수 있다.

"5.18 유공자는 세금을 축내는 괴물 집단"이라는 도저히 변론이 불가능할 정도로 심각한 김순례의 망언[28]을 비판하는 게 '지나친 도덕적 검열'이라는 의견이 제지나 거센 반발과 비판 없이 공적 논의석상에 오를 수 있었다는 건, 기본 상식과 윤리의식이 크게 결여된 숙명여대 재학생들이 무시할 수 없는 수에 이른 것을 말해준다.

다만 숙명여대 재학생들 내에서도 이런 조치에 비판하며, 5.18 망언에 대한 규탄 철회에 적잖은 충격을 받아 "이게 우리들이 다니는 학교 수준"이라는 울분을 토로하거나 "5.18 폄훼에 대하여 제대로 이야기도 못하면서 동문 여성의원의 망언을 무조건적으로 옹호하는 것은 여성주의일 수 있겠냐", "오히려 학교의 명예를 더욱 실추시키는 것일 뿐이다"라는 의견이 상당했다.

이번 사례는 자기들이 속했다고 착각하는 '상위 클래스'의 이익을 옹호하며, 소위 '여성주의'를 도덕보다 우선시하면 어떻게 되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준 중요 사례가 되었다.[29]

이러한 퇴행적인 행보를 보인 숙명여대의 움직임에 대해, 숙대 동문들이 나서서 총학의 규탄 성명 철회에 대한 비판 연서명 문서를 공개하면서 비판 대열에 가세했다.기사연서명 본문

참고로 그 동아리회장은 4월 12일 당선 공고를 걸지 않았다는 이유로 당선이 취소되었고, 한겨레신문은 이 사건을 비판했다. #, 그 메갈리아워마드 옹호로 욕을 먹은 한겨레마져도 숙명여대의 도를 넘은 짓거리에 치를 떨며 거리를 둔 것이다.[30]

1999년에 김활란 옹호로 신나게 욕을 먹었던 이화여자대학교 재학생들과 졸업생들은 2005년부터 김활란 동상 철거 운동을 했고, 2008년엔 동문 김윤옥(당시 영부인, 보건관리학과 졸업)의 '자랑스러운 이화인 상' 수상에 반대[31]했고, 2015년에는 박근혜 당시 대통령의 학교 방문에 반대했다. (이 과정에서 폭력적인 진압이 잇따랐지만, 많은 학생들이 강력하게 반대하며 맞서 시위했다.) 심지어 약사협회에서도 약사 출신인 김순례의 망언에 대해 거세게 반발했는데 2015년 세월호 참사 희생자 유가족을 가리켜 ‘시체장사’한다고 모욕하고, 국가 유공자 연금액의 240배 보상금을 요구한다면서 ‘거지 근성’이라고 비난하는 등 근거 없는 유언비어를 퍼뜨려 세월호 유가족과 약사단체, 성남 시민의 격렬한 항의를 받은데다 대한약사회는 김순례의 여약사회 부회장 직무를 3개월간 정지하는 징계를 내렸다. 해당 사례들은 같은 소속, 자교 출신 동문, (생물학적) 여성이라고 해서 무조건적으로 감싸고 옹호하는 것이 올바른 처사가 아님을, 아주 잘 보여주는 사례다.

11.7. 펜스룰 강사 강의 배제 사건

"여대 가면 바닥만 보고 걸어"... 펜스룰 논란 강사 강의배제
2019년 7월 15일 숙명여대 측에 따르면 A강사는 지난달 9일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짧은 치마를 입은 여성 사진과 함께 "짧은 치마나 노출이 심한 의상을 입은 사람이 지나가면 고개를 돌려 다른 데를 본다. 괜한 오해를 사고 싶지 않기 때문"이라는 글을 올렸다. "여대에 가면 바닥만 보고 걷는 편"이라며 "죄를 지은 건 아니지만 그게 안전하다고 생각한다"고 썼다. 그러면서 "내가 인사 못 하면 바닥 보느라 그런 거야. 오해하지 마. 얘들아"라는 메시지를 남겼다. 이에 대해 해당 학부 학생회는 A씨의 글이 '펜스룰'에 해당해 문제가 있다고 보고 이씨에게 입장문을 요구했다. 학부장 등 교수들에게도 관련 내용을 전달했다. A씨는 학생회 요구에 따라 입장문을 내 "글을 보고 불편함을 느꼈다면 무조건적인 사과가 필요하다고 보고 죄송하다. 불필요한 오해를 안 사게 주의하는 행동으로 바닥을 보고 다닌다는 내용인데 오해를 사서 안타깝다"며 "(여대생을) 예민한 여성 집단으로 생각한 적도 없으며 그러한 의도도 없다. 바닥만 보다가 학생 인사를 못 받아준 적이 있어서 글을 올린 것뿐"이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해당 학부는 최근 교수회의를 열어 2학기부터 이씨에게 강의를 맡기지 않기로 결정했다.
숙명여대 관계자는 "소통 방식이 적절하지 못해 이씨가 자숙하고 도의적으로 책임을 지도록 2학기 강의에서 배제하기로 했다"

12. 이모저모

12.1. 숙제여대

학교에서 워낙 공부를 많이 시키고, 과제를 자주 내줘서 붙은 별명이다. 외국인 유학생들도 어쩐지 모르게 알고 있는(…) 별명. 사실 이는 다른 학교보다 학사과정이 1주 짧은 데에서 기인한다. 보통 다른 대학교의 학사과정이 16주인데 비해 숙대의 경우 15주이기 때문이다. 다른 대학교 학생들이 16주에 할 것을 15주에 하려니 당연히 벅찬 것. 2012년부터는 16주 학사과정으로 돌아간다는 이야기가 있었고, 실제로 그렇게 되었다. 하지만 숙제는 줄어들지 않는다

12.2. 스노로즈

2007년 8월 15일에 개설된 제39대 총학생회 '트로이카'가 만든 커뮤니티. 공식 커뮤니티는 스노로즈가 아니고 학교 홈페이지 내의 SnoWe다.

글 리젠은 빠른 편. 숙대생만을 위한 수업정보, 강의 평가를 비롯해 선후배간 훈훈한 교류가 이어지는 밝고 건전한(?) 사이트. 또한 졸업생들도 다수 서식하고 있어 사회에 나온 선배와의 교류가 가능하고 화장품, 맛집 정보 등 실용적인 정보들도 다수 있다.

능력자 학우들 덕분에 숙명여대 공식 캐릭터 '눈송이'를 활용한 거울, 보틀, 스티커, 전자파스티커 등 다양한 물품들이 활발하게 공구되는 중이다. 눈송템뿐만 아니라 과잠, 후드 등 활발한 공구가 진행되기도 한다.

정회원 등업이 복잡하고 스노로즈 내 규칙(아이디 공유 금지 등)을 어긴다면 엄격한 강등제도가 적용된다. 이는 외부인의 출입을 막기 위한 조치다. 축제 기간에 스노로즈 부스에서 현장 등업이 가능하니 그 시기를 노려보자.

12.3. 리더십 그룹

일반적인 동아리와는 다른 개념으로, 학교에서 운영하고 관리하는 학생 그룹이다. 그래서 소속도 대개 대외협력처 홍보팀, 영상미디어센터, 학사지원팀, 중앙도서관, 입학팀, 취업경력개발원 등 학교의 부속 기관. 그 종류는 실로 다양해서 2012년 현재 학교 홈페이지에 등록된 것만 40개. 하는 일도 그 종류만큼 다양하다. 다양한 봉사활동부터 시작해서 교내의 학우들을 돕는 일, 대외적으로 학교를 홍보하는 일 등등.

대표적으로 캠퍼스 투어 및 의전을 진행하는 숙명여대 공식 홍보대사 '숙명앰배서더'와, 교내외에서 영어, 중국어, 일본어, 프랑스어, 독일어 등 다양한 언어로 통번역활동을 하는 '숙명통역봉사단', 외국 학생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는 봉사활동을 하는 '숙명한국어교육봉사단', 숙명여대 학보사인 '숙대신보', 교내 방송 제작을 담당하는 교육방송국 'SBS', 도서관 업무 지원과 도서관 투어를 담당하는 'SMARTeer', 외국인 교환학생의 한국 생활을 돕는 'Global Buddy Group U.R.I' 등이 있다.

13. 출신 인물

숙명여자대학교/출신 인물 참조.


[1] 오늘날의 종로구청 동쪽 건너편 자리[2] 물론 당시에는 대부분의 당시 사학들이 그렇듯, '있는 집 자녀들을 가르치는 학원' 정도의 개념이었다.[3] 이정숙이 실제 설립자라는 말도 있으나, 일반적으로는 순헌황귀비 엄씨가 설립한 걸로 알려져 있다.[4] 일제강점기 대한제국 황실의 재산과 사무를 담당하던 한시적 기구인 이왕직(李王職) 장관이 1938년 5월 20일 현 숙명여대 본관 일대 2만여㎡를 학교 부지로 사용할 수 있도록 승낙하였다. "용도는 학교 부지이고 임대료는 무료다. 학교 부지 이외의 목적으로 사용할 경우에는 승인을 받아야 한다."는 조건.#[5] 일본의 역사학자로서 1899년 도쿄제국대학 사학과를 졸업했다. 그 후 한국에 파견되어 조선총독부 학무국 근무를 거쳐 경성제국대학 예과부장/법문학부 조선사학 강좌 교수를 역임했다가 경성제대 정년퇴임 이후 숙명여전 교장으로 부임했다. 숙명여전 교장으로 있으면서도 계속해서 이왕직의 촉탁으로 조선역사에 관한 교과서 편찬, 수사사업, 고적조사 등의 사업을 지휘했다. 특히 조선왕조실록 가운데 고종실록순종실록을 완성한 것으로 유명한 인물이다.[6] 1964년 10월 21일 32명의 교수가 김순식 총장이 부정하게 신입생 입학과 건물 신축을 결정했다며 총장 사임과 이사진 퇴진을 요구하고 총장실을 점거하여 농성하였다. 그 후 11월 19일 32명의 교수 중 5명의 해면이 결정되자 일부 학생들이 가담하여 농성을 계속하였고, 11월 23일 김순식 총장은 학교가 정상화될 때까지 무기한 휴교한다고 발표하였다. 결국 1965년 1월 21일 김순식 총장이 사임하였다.[7] 일본에 머물다 1963년 부모인 영친왕·이방자 여사와 함께 귀국한 이구는 본인이 숙명학원 설립자(순헌황귀비)의 직계 손자이며 황귀비의 재산으로 설립된 재단인 만큼 본인에게 재산권이 있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그는 "현 숙명학원 운영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하며 "현재 이사진을 교체하고 내가 선임하는 인사에 학교 경영권을 주어야 한다"고 문교부와 국회 문공위에 청원했다. 문교부는 이에 행정권을 발동해, 숙명학원 일부 이사진으로부터 사표를 받아내고 이구가 지목하는 인물로 이사를 임명하는 등 직접 개입했다. 숙명학원의 기존 이사진과 이구 측 이사들, 국회 문공위와 문교부 관계자들은 1년 이상 서로 책임을 물으며 분규를 계속했고, 숙대의 준국립대학화 등 논의가 이어지다 결국 1967년 제3의 인물들로 이사회를 구성하는 것으로 분규가 마무리됐다.#[8] 이때 김신조 등이 청와대를 습격하려다 미수에 그친 사건이 발생했다.[9] 퇴임 직전에 제17대 대통령 인수위원장을 역임했다.[10] 한편 그 기간 동안 재학생들은 심유니버시티를 체험해야 했다. 한 학기에 도서관을 포함해 주요 건물 3군데가 공사한다든가.[11] 국공립인 서울대학교, 서울시립대학교 제외[12] 졸업자 2,000명 이상 3,000명 미만 그룹[13] 숙명여대 르꼬르동블루외식경영학과가 본교에서 취업률이 가장 높은데, 무려 80%.[14] 임숙재 총장이 본래 '식모' 출신이었다는 이유로, 1950년대 당시 수많은 사람들이 장난삼아 숙대를 '식모 숙대'라 부르기도 했다고.[15]오차노미즈여자대학[16]경북여자고등학교[17] 참고로 경기여자고등학교-숙명여자대학교 동문회의 별칭이 '경숙회'라고 한다.[18] 몰랑이의 캐릭터 디자이너로 유명하고 본교 미대 시각디자인과 재학생이기도 한 윤혜지 씨가 디자인했다.[19] 파란색 중에서도 로열 블루에 가까운 듯.[20] 한국 남성 성기는 6.9cm 라고 조롱하는 의미[21] 명언의 야민정음[22] 설명 사진을 보면 알겠지만, 숙명여대생이 ㅇㅈ이라고 쓴 부분 옆에 남중생이 ㄹ을 추가한 것이다. ㅇㅈ은 인정(認定)의 초성체인데, 여기에 ㄹ을 붙여 ㅇㅈㄹ(이 지랄)의 초성체로 바꾼 것이다. 즉, 숙명여대생은 남성의 눈을 찌르는 행위를 탈브라 꿀팁이자 명언이라고 인정한 것이며, 남중생은 이에 '이딴 게 명언이냐, 명언 이 지랄 하고 앉아있네'라고 바꾼 것이다.[23] '응 니 가슴 크기는 A컵 수준'이라는 의미다.[24] 참고로 남녀공학 대학교에서 안티페미니즘 글은 물론 심지어 성폭력에 대한 2차 가해나 김치X 패죽이겠다는 글에도 추천수가 붙는 경우가 간혹 있다, 하지만 이에 압도적인 반대수가 붙기에 해당 유저만 욕 먹지, 학교 전체가 욕을 먹지 않은 것이다.[25] 게시판 이름이 진짜 이렇다(…)[26] 성균관대학교만 해도 2018년 '자랑스러운 성균관인'에 황교안이 선정되자 "국정농단 부역자에게 무슨 상을 수여하냐"며 거세게 반발하며 "성균관대학교의 이름에 먹칠을 했다"며 성토하며 재논의를 주장했었다. 이에 대해 성균관대에서는 "잘나가는 동문인데 경사스러운 날 무슨 훼방이냐"고 하는 의견도 있었지만, "괜찮다. 신사적으로 항의하고 있는데 무슨 문제라도 되냐?"고 이들의 반대 행위에 대해 동의하거나 묵인하는 의견도 있었다. 이처럼 황교안의 행보는 찬반이 있을 수 있는 논란임에도 "수상 자격이 없다"는 반발자들이 적잖게 나올 지경이었는데, 자랑스러운 숙명인 상에 오른 김순례의 망언은 상식적으로 옹호할래야 도저히 옹호할 수 없는 언행이었고, 이런 인물에 대해 동문 자랑이라고 표방하는 것은 정상적인 행보가 아니다.[27] 허무맹랑한 북한개입설, 무장폭동설이 민주항쟁과 동등히 설득력 있다고 보는 것이다. 그것도 경상대학 학생회의 대표자가!!![28] 이것만이 아니다. 예전에도 세월호 참사 유가족에 대해 "시체장사한다"며 "거지근성"이라는 망언을 퍼붓은 인물이다.[29] 참고로 트위터에도 박근혜에 대해 무조건적인 옹호를 하는 래디컬 페미니즘 계열 유저가 늘어가고 있다. 공교롭게도 얘네들은 트랜스젠더를 배척하는 TERF이기도 하다. 물론 트위터가 래디컬 계열이 많지만, 대체로 진보 성향이 많기에 오히려 욕만 먹고 까이는 일이 십중팔구지만, 갈수록 비율이 높아져 가고 있다. 아예 워마드박사모에게 점령까지 당했다. 참고로 박사모는 극심한 여성혐오 + 남성우월주의란 걸 생각하면 엄청난 아이러니인 것이다.[30] 여기에 나온 '급진 페미니스트'는 사실상 얘네들일 확률이 높다.[31] 2008년 6월 5일자 한겨레신문 1면에 광고까지 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