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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1-31 01:27:22

현정화

<colbgcolor=#131230><colcolor=#eee156> 현정화
玄靜和|Hyun Jung-hwa
파일:玄靜和.jpg
본관 연주 현씨 (延州 玄氏)[1]
출생 1969년 10월 6일 ([age(1969-10-06)]세)
(정부 직할) 부산시 동구 좌천동
(現 부산광역시 동구 좌천동)[2]
국적
[[대한민국|]][[틀:국기|]][[틀:국기|]]
학력 수정초등학교 (전학)
대신초등학교 (졸업)
계성여자중학교 (졸업)
계성여자상업고등학교 (졸업)
경성대학교 문과대학 (유아교육학 / 학사)
고려대학교 교육대학원 (체육교육학 / 석사[3])
경희대학교 체육대학원 (체육학 / 박사 수료)
직업 탁구 선수 (오른손 펜홀더 전진 속공 / 은퇴)
탁구 해설자
탁구 감독
신체 168cm, 240~245mm
종교 개신교
가족 아버지 현진호(1937년생-1983년 사망)[4]
어머니 김말순(1940년생)
배우자 김석만
아들 김원준
딸 김서연

1. 개요2. 선수 경력3. 은퇴 이후4. 논란 및 사건 사고5. 수상 기록6.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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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탁구 선수 출신 감독. 現 한국마사회 탁구단 감독.

2. 선수 경력

부산수정초등학교 3학년에 재학 중이던 1979년부터 탁구를 시작하여, 탁구부가 있던 계성여자중학교에 진학하기 위해 계성여자중학교와 같은 재단 소속이던 대신초등학교로 전학을 갔다. 이후 중학교 2학년 때부터 단식에서 1등을 놓치지 않는 등 국가대표를 목표로 하다 계성여자상업고등학교 1학년 재학 중이던 1985년 국가대표에 발탁되었다.

1986 서울 아시안 게임 단체전 금메달을 획득했으며, 이후 1987 세계 선수권 복식 금메달, 1988 서울 올림픽에서는 선배 양영자와 함께 복식 금메달[5] 등으로 화려한 전력을 남겼다. 1991 세계 선수권에서 남북한 단일팀에 참여하여 리분희, 유순복과 함께 단체전 금메달을 딴 걸로 유명해졌다. 이후 영화 코리아로 영화화됐다. 이후 1993 세계 선수권에서 단식 우승을 하면서 정점을 찍었다.

1987 세계 선수권에서 양영자와 함께 여자복식 정상에 오른 것을 시작으로 1989 세계 선수권에서 유남규와 혼합복식에서 우승했다. 1991년에 남북단일팀으로 출전하여 단체전에서 우승했고 1993 세계 선수권에서 단식까지 우승하며 세계 선수권 전 종목을 석권해 그랜드슬램을 달성했다. 이러한 업적 덕분에 한국 선수로는 최초이자 유일하게 2010년 국제탁구협회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1994년 3월에 현역 은퇴를 선언했다.

3. 은퇴 이후

한국마사회 탁구단 감독으로 활동 중이다. 현역 시절에는 날카로운 눈매와 굳게 다문 입이 트레이드 마크였으며 오똑한 코 덕택에 피노키오라는 별명도 있었다고 한다. 참고로 1994년 은퇴 이후 연예계에서도 러브콜을 받기도 했고, MBC 뽀뽀뽀의 뽀미 언니로 활동해 달라는 권유도 있었지만 거절했다고 한다. 그리고, 1996년에는 고려대학교 교육대학원에서 체육교육학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어째 씨름계의 슈퍼스타였다가 은퇴 이후 방송인으로 화려하게 전직한 강호동과 스캔들이 있었는데, 둘이 사귀거나 썸을 탔다는게 아니라 주변에서 "한 번 잘 어울릴 것 같으니까 만나보라"는 RPS성 오지랖이었다고 한다. 정작 1988년 이후 현정화와 스캔들이 났던 사람은 1988 서울 올림픽 탁구 남자 단식 금메달리스트인 유남규였다. 유남규와의 스캔들은 강호동보다 좀 더 유명해서 이 둘이 진짜 부부인줄 아는 사람이 아직까지도 있을 정도다. 게다가 이 둘은 각각 국가대표 남녀 대표팀의 감독을 역임했다.[6]

<우리 동네 예체능>에 나온 현정화의 발언에 의하면 유남규는 "전혀 내 이상형이 아니다" 라며 학을 뗐다. 사실 실제로 현정화와 유남규는 오랜 친구 사이라고 하며, 남편보다도 더 많은 시간을 보낸 사람이 유남규였다고 한다. 사실 유남규와 현정화는 둘 다 부산 출신에 나이 차이도 1살 차이이기 때문에, 탁구 대표팀과 관련해서 둘은 10세 전후부터 오랫동안 알고 지내던 사이었다. 게다가 탁구는 원래 남녀 혼합복식의 문제도 있어서 남녀 대표팀이 같이 훈련을 하기 때문에 대표팀 소집되면 매일 얼굴을 보게 된다. 또한, 평소 글 쓰는 것도 좋아해서 <여왕이기보다는 여자이고 싶다>라는 제목의 에세이를 냈다.

후술할 음주운전 교통사고 사건 이후 약 1년여 만인 2015년 11월에 복귀했다. 다문화가정 어린이를 돕기 위한 생활인 탁구대회에 참석하였고, 향후 소속팀(한국마사회) 감독 이외 재능기부 등 사회공헌 활동을 통해 국민에 봉사하겠다고 한다.

2018년 9월 18일에 3차 남북정상회담문화체육계 사절단으로 합류해서 평양에 방문했는데, 1991년 지바에서 남북 단일팀으로 같이 금메달을 딴 리분희 조선장애자체육협회 서기장과 재회를 기대했지만 성사되지는 않았다.

4. 논란 및 사건 사고


주의. 사건·사고 관련 내용을 설명합니다.

이 문서는 실제로 일어난 사건·사고의 자세한 내용과 설명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2014년 10월 1일 오전 12시 50분에 만취한 상태로 택시를 들이받아 비난을 피하기 힘들게 되었다. 혈중알코올농도가 면허취소 수치인 0.201% 상태로 택시를 들이받았다. 혈중 알코올 농도 0.201%면 작정하고 퍼먹은 수준이다.[7] 술을 마신 이유는 전날 오후에 수원체육관에서 열린 2014 인천 아시안 게임 탁구 남자 단체전 결승에서 중국에 패해 은메달을 걸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아시안 게임 동안 MBC의 탁구 해설 위원으로 내정되어 있었고 사고 당일 오후에는 당장 MBC에서 혼합 복식 8강전 생중계가 잡혀 있었다.[8] 발등에 불이 떨어진 MBC는 부랴부랴 대한탁구협회에 해설 위원 대타를 뛸 사람을 찾았고 1994 히로시마 아시안 게임 동메달리스트인 김분식을 대타로 다급히 영입했다.[9]

이 때문에 2014 인천 장애인 아시안 게임 선수촌장직을 자진 사퇴했다. 사실 현정화가 장애인 아시안 게임 선수촌장을 맡는 데에는 사연이 있었는데 남북 단일팀으로 뛰었던 지난 1991 세계 선수권에서 복식 파트너였던 리분희와 만날 가능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리분희가 당시 조선장애인체육협회 서기장으로 재직하고 있었고, 2014 인천 장애인 아시안 게임 동안 선수단과 함께 인천을 찾을 예정이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21년 만의 재회가 가능하나 싶었지만, 이번 음주운전 사고로 사실상 무산되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사건 다음날에 리분희가 이미 8월에 교통사고를 당해 목뼈가 부러져 병원치료를 받는다는 사실이 알려졌다.[10] 이후 2016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2020 도쿄 올림픽에서 SBS 해설을 맡았다.

5. 수상 기록

대회 <colbgcolor=#ffd700,#554600> <colbgcolor=#9a9a9a,#444><colcolor=#fff> <colbgcolor=#cd7f32,#442910><colcolor=#fff>
올림픽 1 0 2
세계 선수권 4 3 2
아시안 게임 2 2 2
아시아 선수권 5 1 2
월드컵(복식) 1 1 0
월드컵(단체전) 0 1 0
주니어 아시아 선수권 1 0 2
합계 14 8 10
<colcolor=#000> 올림픽
금메달 1988 서울 여자 복식
동메달 1992 바르셀로나 여자 복식
동메달 1992 바르셀로나 단식
세계 선수권
금메달 1987 뉴델리 여자 복식
금메달 1989 도르트문트 혼합 복식
금메달 1991 치바 단체전
금메달 1993 예테보리 단식
은메달 1987 뉴델리 단체전
은메달 1989 도르트문트 단체전
은메달 1993 예테보리 혼합 복식
동메달 1989 도르트문트 단식
동메달 1993 예테보리 단체전
아시안 게임
금메달 1986 서울 단체전
금메달 1990 베이징 여자 복식
은메달 1990 베이징 단체전
은메달 1990 베이징 혼합 복식
동메달 1986 서울 혼합 복식
동메달 1986 서울 여자 복식
아시아 선수권
금메달 1988 니가타 단체전
금메달 1988 니가타 혼합 복식
금메달 1988 니가타 여자 복식
금메달 1990 콸라룸푸르 단체전
금메달 1990 콸라룸푸르 혼합 복식
은메달 1986 선전 혼합 복식
동메달 1988 니가타 단식
동메달 1990 콸라룸푸르 여자 복식
월드컵(복식)
금메달 1990 서울 여자 복식
은메달 1992 라스베가스 여자 복식
월드컵(단체전)
은메달 1991 바르셀로나 단체전
주니어 아시아 선수권
금메달 1986 나고야 단식
은메달 1986 나고야 단체전
은메달 1986 나고야 여자 복식

6. 여담


[1] 판관공파 28세 병(柄) 항렬이나 항렬자를 사용하지 않았다.[2] 참조. #[3] 석사 학위 논문: 漸增負荷 最大運動이 女子 卓球 選手의 心肺持久力 및 運動前後 血中脂質에 미치는 影響(점증부하 최대운동이 여자 탁구 선수의 심폐지구력 및 운동전후 혈중지질에 미치는 영향)[4] 부산상업고등학교 탁구 선수 출신이다. 1955년 7월 30일 제1회 전국 남자 중·고등학교 학생 선수권 대회 남자고등부에서 박현준과 함께 조를 이뤄 출전했다. 준결승전에서 서울상업고등학교, 결승전에서 용산고등학교를 모두 2대 0으로 물리쳐 우승기록이 있다.[5] 올림픽 여자탁구 역사상 유일무이하게 중국 이외의 국가가 따낸 금메달이다. 남자탁구는 1988 서울 올림픽에서 유남규(대한민국)가, 1992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 얀오베 발드네르(스웨덴)가, 2004 아테네 올림픽에서 유승민(대한민국)이 모두 남자단식에서 금메달을 획득한 바 있다. 많은 사람들이 현정화를 올림픽 단식 금메달리스트로 오해하는 경우가 있는데, 1993 세계 선수권을 제외하곤, 단식 금메달을 따본 적이 없다. 국제대회 은퇴전이었던 1993 세계 선수권 단식 우승으로 인한 오해인 것으로 보인다.[6] '유남규-현정화' 부부설은 '최불암-김혜자', '김한국-김미화', '유동근-최명길'만큼이나 유명하다.[7] 일반 성인 남성이 소주 2병을 마시고 음주측정을 해도 0.1이다. 물론 혈중알코올농도는 절대적인 것이 아닌 개인 차가 존재하지만 본인이 술을 한 방울이라도 먹었다 싶으면 그냥 대리를 부르는 것이 좋다.[8] 사건의 근원이 된 남자 단체전 결승은 KBS만 생중계했고 MBC는 하이라이트 시간에 방송하기 위해 녹화 중계를 했다.[9] 이후 김분식은 2016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에서도 MBC 해설을 담당했다.[10] 그리고 2018년 현정화가 남북정상회담 특별 사절단으로 북한에 파견되어 리분희와 재회할 기회가 생겼지만 마지막 날 갑작스럽게 백두산을 방문하는 일정이 추가되면서 이번에도 재회하지 못했다.[11] 영화 작품성과 별개로 현정화에 대한 싱크로율은 최고였다는 평가가 많다.[12] 삽입곡이 트랜스포머 더 무비의 오프닝이었다.[13] 서효원은 대표적인 수비전형 선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