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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미국의 이라크·시리아 공습 ,2024 ~ 현재, | 이란 인민동원군 | }}}}}}}}} |
테러와의 전쟁 War on terror | ||||
<colbgcolor=#000><colcolor=#fff> 기간 | 주요 기간: 2001년 9월 14일, 부시의 전쟁 선포 - 2021년 8월 30일, 미군의 아프가니스탄 철수[1] | |||
원인 | 9.11 테러 등 | |||
경과 | ADF 반란 (1996-) 알카에다의 예멘 내란 (1998-) • 예멘 내전 (2014-) 아프가니스탄 전쟁 (2001-2021) • 항구적 자유 작전 (2001-2014) • 아프가니스탄 전쟁 발발 (2001-2021) • 미군의 아프가니스탄 철수 (2020-2021) • 2021년 탈레반 공세 (2021) ◦ 카불 함락 • 아프가니스탄 내란 (2021-) • 2021년 카불 공수 • 아이만 알자와히리 살해 잠무 카슈미르 내란 (1989[2]-) 이라크 분쟁 (2003-) • 이라크 전쟁 (2003-2011) ◦ 사담 후세인 처형 ◦ 아부 무사브 알자르카위 사망 • 제1차 이라크 내전 (2006-2008) • 제2차 이라크 내전 (2013-2017) • IS의 이라크 내란 (2017-) 카이베르파크툰크와 반란 (2004-) • 오사마 빈 라덴 사살 소말리아 내전 (2009-) 보코 하람 내란 (2009-) 시리아 내전의 여파 (2011-) 말리 내전 (2012-) 미국 주도의 시리아 내전 개입 (2014-) • 아부 바크르 알바그다디 사망 • 아부 이브라힘 알하셰미 알쿠라시 사망 대 IS 군사 개입 (2014-) IS의 튀니지 내란 (2015-) 카부델가두 분쟁 (2017-) | |||
교전세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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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별 명칭 | |
영어 | War on terror / Global War on Terrorism[3] |
한국어 | 테러와의 전쟁표 / 반테로전문 |
중국어 | 反恐战争간 / 反恐戰爭정 |
일본어 | 対テロ戦争 |
러시아어 | Война против терроризма |
히브리어 | המלחמה העולמית בטרור |
스페인어 | Guerra contra el terrorismo |
필리핀어 | Digmaang Pangterorismo |
인도네시아어 | Perang melawan terorisme |
노르웨이어 | Krigen mot terror |
폴란드어 | Wojna z terroryzmem |
태국어 | สงครามต่อต้านการก่อการร้าย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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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테러와의 전쟁중인 국가 |
2001년 9.11 테러 사건의 발생 이후, 2000년대부터 미국이 확립한 정치적 행동 개념과 군사 활동의 개념을 일컫는 말. 크게는 미국-아프가니스탄 전쟁, 이라크 전쟁 등을 일으키는 근거가 되었으며 미국 국민들의 자유를 제한하는 각종 악법들의 근원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그 의도와는 전혀 다르게, 아프가니스탄 전쟁과 이라크 전쟁의 실패는 오히려 이슬람 극단주의 테러리스트 세력의 힘을 키우는 결과를 낳게 되었고, 사실상 관망자 입장이었던 중국과 러시아도 테러와의 전쟁의 일원이 되었다. 이 전쟁과 아랍의 봄에서 시작된 이라크 내전, 시리아 내전, 리비아 내전, 예멘 내전으로 인한 엄청난 수의 난민, 그 난민과 섞여 들어가거나 유럽에서 자생적으로 발생한 테러리스트들 때문에 테러와의 전쟁에 반대해 미국에 등을 돌리고 있던 유럽 국가들에게 테러가 번져나가는 지경까지 이르렀다.
2. 배경
▲ 2001년 9월 20일,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하는 조지 W. 부시 대통령 |
미국의 적은 우리의 많은 무슬림 친구들이 아닙니다. 우리의 많은 아랍 친구들이 아닙니다. 우리의 적은 테러리스트들과 그들을 지원하는 모든 정부의 극단주의적 네트워크입니다.
우리의 테러와의 전쟁은 알카에다로 시작하지만 거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전 세계의 모든 테러리스트 집단이 발견되고 저지되어 패배할 때까지 끝나지 않을 것입니다.
조지 W. 부시 대통령, 테러와의 전쟁 선포 연설의 마지막 부분[원문]
1991년 소련 붕괴로 냉전이 종료된 이후, 더이상 대립할 경쟁자가 없어진 미국은 전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의 위치에 올라서 군사 및 정치적으로 도전받지 않을 것으로 여겨졌다. 우리의 테러와의 전쟁은 알카에다로 시작하지만 거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전 세계의 모든 테러리스트 집단이 발견되고 저지되어 패배할 때까지 끝나지 않을 것입니다.
조지 W. 부시 대통령, 테러와의 전쟁 선포 연설의 마지막 부분[원문]
하지만 소련의 붕괴는 되려 테러리즘이 번성하는 계기가 됐다. 유라시아 중앙을 지배하던 소련이 붕괴하자 소련의 위성국가들이었던 발칸반도, 중앙아시아의 소국들이 소련의 비호가 사라지면서 독립하거나 자신이 살 길을 찾아야 했고, 냉전 시절에 공산주의와 자본주의 간의 이념 대립으로 묻혔던 민족 갈등과 종교 갈등들이 터져나왔다. 체첸, 보스니아 등에서 분쟁이 벌어졌고 그 곳은 전세계 테러리스트들의 새로운 일자리가 되었다. 그곳에서 발생한 극단주의는 이슬람 문화권에 세력을 확장하였고 테러리스트의 전선은 점점 중동과 아프리카까지 확대되었다. 미국은 그런 테러리스트 소굴에 있는 이권을 차지하기 위해 테러리스트를 이용하기도 했는데, 오사마 빈 라덴도 70년대 말까진 미국의 관리하에 무자헤딘으로 활동했던 전력이 있다.
그러나 그 오사마 빈라덴이 주동이 되어 일으킨 9.11 테러로 인해 미국 본토, 그것도 미국의 심장인 뉴욕과 펜타곤 등이 불타자 테러리스트는 미국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 새로운 적으로 떠올랐다. 테러를 생중계로 본 미국인들의 분노가 하늘을 찌르자 미국 정부는 전 세계의 테러리스트를 상대로 전쟁에 나설수 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다. 부시 행정부는 다시는 미국에 위험을 끼치지 못하도록 테러리스트들을 찾아내 제거하고 여기에 덤으로 미국 중심의 세계 질서를 공고히 한다는 원대한 계획을 세웠다. 9.11 테러 당시 펜타곤에 있던 국방부장관 도널드 럼즈펠드가 죽을 뻔했고 추락한 플라이트93도 백악관 아니면 미국 의회로 날아가서 부시 대통령 가족이나 상하원의원들도 죽을 수도 있었기 때문에 여야 할 것 없이 분노했기에 단호하게 전쟁을 개시할 수 있었다.
전쟁이 시작됐을 때 미국 국민들은 가족을 잃은 슬픔과 복수심, 자신이 다음 목표가 될 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을 지녔기에 부시 행정부에게 강한 지지를 보였다. 부시는 국민들의 불안요소를 엄중하게 처단 하겠다는 선언을 했고, 그 덕에 당시 부시의 지지율이 최대 92%까지 올라가 선언 후 네 달간 80~90% 선을 유지했다.
3. 미국이 지정한 대테러 비협조국
시리아, 이란, 북한, 쿠바와 베네수엘라는 미국이 대테러 비협조국으로 지정했다.4. 연표
4.1. 2001년
4.1.1. 9월
- 9일 - 미국에 대한 대규모 테러 정보를 제한적으로 알고 있었던, 아흐마드 샤 마수드가 자폭 테러로 살해되다. 모하마드 파힘이 북부 동맹의 새 지도자가 되다.
9.11 테러 |
- 11일 - 9.11 테러: 9월 11일에 오사마 빈 라덴이 이끄는 알카에다가 뉴욕시, 워싱턴 D.C., 및 펜실베이니아를 공격해 2996명이 사망하다.
- 12일 -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안 제1368호: 유엔의 모든 국가가 9.11 테러를 규탄하고 테러 행위로 인한 국제 평화와 안보에 대한 위협에 대처하고 개인 및 집단 자위권을 인정하겠다는 결의를 표명하다.
- 13일 - 나토가 북대서양 조약 제5조를 발동하다: 각 회원국이 한 회원국에 대한 무력 공격을 모든 회원국에 대한 무력 공격으로 간주하도록 하다.
- 14일 -
- 2001년 군사력 사용 승인: 바버라 리 의원을 제외한 미국 의회의 모든 의원들이 테러리즘에 대한 미군의 무력 사용을 승인하다.
- 노블 이글 작전: 국토 안보 및 연방, 주, 그리고 지역 기관의 보안을 위한 미국과 캐나다의 군사 작전이 시작되다.
- 18일 - 2001년 탄저 공격: 브루스 에드워즈 아이빈즈 박사에 의해 탄저병이 들어간 다섯 통의 편지가 ABC, CBS, NBC, 뉴욕 포스트, 및 내셔널 인콰이어러에 전달되다.
- 20일 -
-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연설에서 오사마 빈 라덴이 9.11 테러의 배후라고 밝히다. 여기에서 "테러와의 전쟁"이 처음 사용되다.
- 아프가니스탄의 무슬림 성직자 몇백명은 빈 라덴에게 국가를 떠나라고 권고하다.
- 21일 - 탈레반은 빈 라덴이 9.11 테러와 관련이 없다고 주장하다. 미국은 물라 오마르에게 빈 라덴을 넘겨달라고 요구하다.
- 22일 - 사우디아라비아와 아랍에미리트는 탈레반을 합법 정부로 인정하는 것에 철회하다.
- 26일 - 게리 슈론이 이끄는 10명의 CIA 대원들이 몰래 판지시르 계곡으로 투입되다. 그들은 이후에 있을 침공을 위해 통신 장비, 활주로 개조 등의 준비를 하고 전략을 평가하다.
- 28일 - 잭 스트로가 MI6 장교들의 아프가니스탄 상륙을 승인하다. 일부 MI6 장교들이 북부 동맹의 사령관인 모하메드 파힘과 접촉하다.
4.1.2. 10월
- 1일 - 2001년 잠무 카슈미르 의회 차량 폭격: 인도의 잠무 카슈미르 의회에서 자이셰 모함메드 테러리스트 한 명이 정문을 폭파시켜 다른 테러리스트들과 함께 건물 안으로 들어와 장악하고, 몇 시간 동안 총격전이 이루어져 38명이 살해되고 60명이 다치다.
- 4일 -
- 액티브 엔데버 작전: 9.11 테러에 대한 나토의 대응 작전으로 시작하다.
- 탈레반이 국제 재판소에서 샤리아 법으로 빈 라덴을 처벌하는 대신, 그를 파키스탄으로 데려가겠다고 제안하다.
- 5일 - 2001년 탄저 공격: 로버트 스티븐스가 가장 먼저 탄저병 테러로 사망하다.
- 7일 -
- 미국-아프가니스탄 전쟁 발발:
-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침공: 미군과 CIA가 공습으로 아프가니스탄 침공을 시작하다. CIA는 칸다하르의 한 학교에 들어간 물라 오마르를 공격하기 위해 학교 밖의 트럭에 AGM-114 헬파이어를 발사하다. 오마르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 탈출하다.
- 항구적 자유 작전
- 탈레반이 아프가니스탄의 이슬람 법정에서 빈 라덴을 재판할 것을 제안하고, 미국에 의해 거부되다.
- 9일 -
- 2001년 탄저 공격: 톰 대슐과 패트릭 레이히 의원들에게 탄저병 편지가 발송되다. 레이히의 편지는 버지니아 국무부 우체부에 잘못 배송되었고, 그곳의 직원 데이비드 호스가 탄저균에 감염되다. 탄저균으로 최소 5명이 사망하고, 최소 17명이 피해를 입었다.
- 이글 어시스트 작전 개시
- 14일 - 탈레반이 재판을 위해 빈 라덴을 제3국에 넘길 것을 제안하다.
- 16일 - 액티브 엔데버 작전: 작전이 공식적으로 시작되다. 상륙 나토 해상 그룹 1 및 2를 포함한 다수의 나토 군사가 지중해에 재배치되다.
- 19일 - 미국-아프가니스탄 전쟁:
4.1.3. 11월
- 중반에서 후반까지 - 트렌트 작전
- 9일 - 미국-아프가니스탄 전쟁:
- 마자르이샤리프 함락 발발
- 10일 - 미국-아프가니스탄 전쟁:
- 마자르이샤리프 함락 종결
- 11일 - 미국-아프가니스탄 전쟁:
- 쿤두즈 공방전 발발
- 23일 - 미국-아프가니스탄 전쟁:
- 쿤두즈 공방전 종결
- 25일 - 미국-아프가니스탄 전쟁:
- 칼라이장이 전투 발발
- 30일 -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침공:
- 토라 보라 전투 발발
4.1.4. 12월
- 1일 - 미국-아프가니스탄 전쟁:
- 칼라이장이 전투 종결
- 17일 -
- 미국-아프가니스탄 전쟁:
-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침공 종전
- 토라 보라 전투 종결
- 아프가니스탄 분쟁 및 미국-아프가니스탄 전쟁:
- 탈레반 내란 발발
4.2. 2002년
4.2.1. 1월
- 16일 -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만장일치로 빈 라덴, 알카에다, 탈레반의 무기 금수 조치 및 동결을 결정하다.
5. 평가
개 = 미국 손 = 테러 "물기 전에 생각 좀 해." |
미국-아프가니스탄 전쟁의 성공적인 초기 성과로 시작은 좋게 한 듯 보였으나 자제력이 부족한 조지 워커 부시 대통령이 이라크 전쟁으로 전선을 늘리는 치명적인 오판을 했다. 그로인해 국제적인 공조는커녕 아랍권은 물론 전통적 동맹이었던 유럽까지도 미국에 등을 돌려 독립노선을 추구하기 시작하였다. 의도는 훌륭했으나 그 결과로 여러 나라들을 파탄에 빠뜨리고, 팍스 아메리카나에 큰 손상을 준 최악의 선택이라고 할 수 있다.
전쟁의 결과도 개판이다. 테러리스트들을 개박살 내기는 했으나 여전히 테러는 일어나고 있고[5] 이라크와 아프간에서 경제적 이익이라도 나오면 좋겠지만 워낙에 말아먹은 게 많아서 손익분기점을 넘기려면 얼마나 지나야 할지 아무도 모른다.[6] 과거 대공황 이후 대호황을 탄 전간기 미국 정도의 행운을 다시 맞지 않는 이상 이전의 군세를 갖추기는 어렵다고 보면 된다.
문제는 그뿐만이 아니었다. 무한 치트키인 줄 알았던 미국의 국력 역시 2008년 월가의 도덕적 타락과 정경유착이 불러낸 희대의 막장 사태로 바닥으로 추락했고 중동권에 대한 몰이해 속에서 전략적으로 오판이 계속된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전쟁은 소강 상태에 들어가기는 커녕 미국의 국방력을 소모시키는 진창이 된 것. 거기에 미국이 중동에서 열심히 삽질하느라 중국과 러시아가 견제 없이 꾸준히 경제 성장하여 기세를 떨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었다. 또한 90년대부터 꾸준히 지적되어 왔던 낙후된 인프라 문제, 공교육 문제, 빈부격차, 인종차별, 총기, 마약 문제 해결에 투입되어서 미국 사회의 내실을 다져야 했던 돈을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 무의미하게 쏟아부었고, 엄청난 부채가 쌓인 지금은 이제는 더 이상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망가졌다.
그런가 하면 테러리스트를 잡겠다며 인권을 무시하고 미국 국민들의 기본권을 침해했는데, 대표적으로 해외 각 지역에 비밀 감옥을 지어놓고 테러리스트 용의자들을 체포하여 고문하고 테러 용의자에 대하여 영장 없이 도청과 각종 수사가 가능해졌다.
또한 미군이 보병 중심의 게릴라전과 대테러전을 수행하다 보니 게릴라전에 써먹기 힘든 전면전용의 각종 전투기와 대형 군사장비 사업의 예산이 테러와의 전쟁 때문에 줄줄이 갈려나갔다. 이후 미국은 한국 등 세계 각국에 무기 팜플렛을 들고 돌아다니는 한편 우방국의 국방비 증강을 계속 요구하는 중이다.
결국 오바마 행정부에서 2013년 공식적으로 테러와의 전쟁을 폐기하고 '해외 비상작전'으로 그 자리를 대처하겠다 했으나, 말과 달리 아프가니스탄에서 전쟁이 계속 이어갔다.
9.11 테러에 의해 가족을 잃은 사람, 세계무역센터와 그 건물 쌍둥이 빌딩과 관련되어 막대한 손실을 입은 사람들에게는 가해국에 합당한 배상을 요구하지 못하는 마당에, 그 사람들의 심정을 이해시키는 작업으로 "테러와의 전쟁"을 인정하는 국가 운영상 어쩔 수 없는 행동이라고 인정하는 부분도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중의 하나인 아프가니스탄과 도덕성을 이유로 전쟁을 일으켜 정작 그 도덕적 성취나 정치적 결과물도 얻지 못 하는데 무슨 소용이었냐는, 국가 운영상의 관점에서라도 무의미했다는 회의론도 있다.
무엇보다 테러와의 전쟁이 인류에 남긴 가장 큰 손실은 저항권의 개념이 무색해졌다는 것일 것이다. 세계각지의 서로 다른 상황에 놓인 모든 무장투쟁, 무장독립운동은 다 같이 도매금으로 "단순한 범죄행위"로 낙인 찍히게 되었다. 세계 각지의 독재자나, 강대국들의 패권주의적 행각에 대한 저항조차 '테러리스트를 소탕하겠다', '테러와는 협상하지 않는다'는 한 마디로 부정되고 만 것이다. 게다가 정부군이 극단적으로 나서니 반군들 역시 극단적으로 변하는 바람에 피를 피로 씻는 막장 상황이 전 세계에서 여전히 벌어지고 있다.
6. 끝나지 않는 원인
학계에서는 이 테러와의 전쟁을 끝이 없는 전쟁이라고 표현을 하기도 하는데 그 이유는 "테러" 자체가 한 개념이지 어떤 확실하게 정의된 집단이 아니기 때문이다. 한 개념과 전쟁을 해서 승리하는 것은 어차피 불가능하다. 그 아이디어 자체를 지구상에서 없애버린다는 게 가능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테러와의 전쟁이란 말이 처음 나왔을 때도 학자들은 깊은 회의감을 보였다.이러한 특성 때문에 미국이 전쟁을 아프가니스탄에서 이라크로 옮겨 탈 수 있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미국이 원하는 대로 적이 누군지 정의할 수 있으니까. 이 때문에 미국의 인권도 추락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다. 9.11 테러를 근거로 만들어진 애국자법이 그 예시이다.
알다시피 이렇게 확실하지 않은 적을 공격했고, 사후관리도 엉망으로 한 결과 초유의 테러단체를 하나 더 만들어버리는 치명적인 실책을 벌였다. 그리고 테러와의 전쟁이 실패할수 밖에 없는게 테러를 지원하는 곳들이 하나같이 막장테크를 타는 국가들이라 정치적, 경제적 안정이 보장되지 않으면 밑빠진 독에 물붓기식으로 계속 악순환이 되기 때문이다.
7. 새로운 국면
2014년 8월 미국이 이슬람 국가에 대한 공습을 개시하자 영미권 학자들과 언론은 테러와의 전쟁 연장전으로 봤다. 물론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을 비롯한 네오콘들의 의도와는 수만광년 떨어진 상태로 테러와의 전쟁이 진행되고 있는 게 현실이고 그렇게 되도록 만든 것도 그들이라는 점에서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다른 한편으로는 러시아와 중국에게 테러와의 전쟁 레토릭은 미국을 비롯한 서방 세계의 외교적 압력을 막는 카드로도 쓰이고 있다. 예를 들어 자국 내 소수민족에게 강도 높은 탄압을 벌이거나 주변국들에게 정치 군사적 영향력을 높일 때 그에 대한 명분으로 테러리스트와의 전쟁이라는 명분을 들이대는 것이다. 터키와 이스라엘도 쿠르드족과 팔레스타인을 탄압하는 명분으로 내세우는 등 잘 써먹고 있다.[8]
알 자지라에서 2004년 생전의 빈 라덴 비디오에 적혀있는 대본을 공개하였다. 영어 사이트. 최근 들어 이 대본이 전문가들로부터 주목을 받고 있다. 그리고 이 각본을 읽어보면 이라크 레반트 이슬람 국가가 미국을 도발하는 의도를 알 수 있다.
8. 결과
8.1. 미국-아프가니스탄 전쟁
처음에 탈레반 정부를 전복시켜 쉽게 끝날 줄 알았지만, 탈레반은 끈질기게 게릴라전을 펼쳐 미군을 비롯한 국제안보지원군 연합군에 막대한 출혈을 강요하였다. 뿐만 아니라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전비에도 불구하고 끝이 안 보이기 때문에 미국은 2014년 작전을 종료한다고 발표할 수 밖에 없었다. 3-4만명으로 추정되는 미군 대부분은 철군하고, 9,800여명은 남았다가 2016년에 철군한다고 했는데, 탈레반이 너무 날뛰자 보류했다. 베트남 전쟁에서 평화 협정을 한 것과 달리 협상 없이 깨끗이 물러나려 하는 것이기 때문에 완패한 것이다. 탈레반을 무너뜨리고 새 정권을 세웠으니 패전은 아니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소련도 말 안듣는 기존 정부를 무너뜨리고 새로운 정부를 세워놓고 나왔으나 6년 끝에 무너져 버렸다. 미국-아프가니스탄 전쟁의 의의는 이 친미 정권이 얼마나 오래 가느냐에 달려 있었는데, 문제는 그 친미정권이 아프간인 수천만을 먹여살릴수 있을정도의 거액을 원조받았고 국가를 재건할수 있음에도 부정부패로 원조금과 민심을 제대로 날려버렸다는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탈레반에게 멸망하고 말았다. 심지어 미군이 다 철수하기도 전에 정권이 무너지는 바람에 엄청난 혼란이 일어났다.친미 정권이 무너졌더라도 오사마 빈 라덴을 사살했다는 점 하나는 건진 거 아니냐고 주장하기엔, 오사마 빈 라덴은 아프가니스탄 전쟁 과정에서 죽은 게 아니라 파키스탄에서 은신한 게 발각되어 아프간 전쟁과 연관이 없이 사망한 것이라 오히려 아프간 전쟁의 정당성과 거리가 멀다.8.2. 2차, 3차 걸프 전쟁
이라크에선 마찬가지로 사담 후세인 제거로 일시적인 승리를 거두었고, 반군도 아프간에 비하면 덜 심해서 성공한 듯 보였다. 그러나 후세인의 독재-권위주의 아래서 봉합되었던 1400년의 슬람 교파 갈등이 불거져 나온데다가 폴 브리머가 제대로 트롤링을 하면서 내전 상태가 되었고, 미군이 세웠던 이라크 시아파 정부는 미국이 아닌 같은 시아파인 이란에게 구원을 청했다. 이란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파병했고, 미군은 이라크 신정부가 악의 축의 하나라고 했던 이란의 영향권에 흘러들어가는 것을 강 건너 불구경하고 있었다. 또한 이란 내에서 보수파의 입지가 굳건해졌기에 이것은 죽 쒀 개 준 꼴로 (미국의 입장에선) 아프간보다 더 결과가 나빴다. 시아파 정권이야 유대감도 있으니 지원을 받아챙겼다.다만 2010년대에 미국과 이란이 IS 문제 때문에 서로 협력하면서 관계가 개선되어 이란-미국 핵협상이 표면적으로 타결될 정도로 전망이 좋아보였다. 하지만 오마바가 임기를 끝낸 뒤 트럼프가 이란을 불신하며 협상을 뒤엎어버리고, 드론으로 이란의 군부 인사를 암살하는 등의 갈등을 일으키면서 상황은 다시 원점으로 회귀했다. 특히 트럼프 정부가 이란에 그전보다 더욱 강화된 경제제재를 부과해서 미국과 이란의 관계가 더욱 나빠졌다. 그 직후에 터진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가 미국과 이란을 동시에 초토화시키면서 진정되긴 했지만 이란은 여전히 양보하려들지 않고 오히려 보수파가 국민을 심하게 탄압하고 핵 개발을 하려들어 극단적으로 나오는데다 미국은 이란을 불신하며 이란에 대한 경제제재를 풀지 않고 더욱 강화하여 이란 신정이 망하지 않는한 답이 없는 상황이다.
8.3. 리비아 내전
리비아 역시 미국과 나토는 카다피를 몰아내기 위해 반카다피 세력에 대한 지원을 아끼지 않았으나 카다피가 처형된 이후 미국과 나토의 예상과는 다르게 내전으로 커졌고 현재는 리비아를 튀르키예와 러시아에 의해서 통제되고 있다.8.4. 시리아 내전
2011년 시리아 내전 발발 이후 미국이 시리아에 개입했고 이라크 전쟁으로 미국에게 등을 돌린 유럽도 IS의 막장 행위에 질린데다, IS가 유럽 내부에서 테러는 물론 난민 사태까지 일으켰기 때문에 IS 소탕에는 적극적이어서 비교적 수월하게 흘러갔다. 그러나 도널드 트럼프가 소극적인 자세를 보였고, 튀르키예의 삽질 탓에 죽 쒀서 러시아 준 꼴이 되고 만다.
8.5. 예멘 내전
8.6. 카이베르파크툰크와 반란
자세한 내용은 카이베르파크툰크와 반란 문서 참고하십시오.9. 종결?
2021년 아프가니스탄 철수와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테러와의 전쟁은 사실상 끝났다고 보는 견해도 있다.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우선 2010년대 후반 들어서 알카에다와 이라크 레반트 이슬람 국가 등 이슬람 극단주의 테러 단체들이 많이 와해되어 더 이상 큰 위협이라고 보기 어려울 정도로 약화되었다. 그리고 테러와의 전쟁이 20년 넘게 진행되며 9.11 테러의 아픔과 분노가 사그라들었고, 오사마 빈 라덴도 죽었으니 미국인들 사이에서도 이제 신경 끄자는 고립주의적 여론이 늘어났다. 미국 정부 또한 신냉전이 고조되면서 동력을 상실한 테러 단체들에 신경쓰기보다는 중국이나 러시아와의 패권 경쟁에 집중하는 모양새를 보이고 있다.하지만 테러와의 전쟁이 끝났다고 미국 대통령이나 정부 인사 중 누구도 공식적으로 선언한 적이 없고, 국제 정세의 변화로 흐지부지된 것에 가깝기에 정확히 언제 테러와의 전쟁이 끝났다고 딱 잘라 말할 수는 없으며 소강 상태라고 보는 것이 더 맞다. 애초에 테러와의 전쟁은 문자 그대로의 전쟁이 아닌 여러 별개의 전쟁과 군사작전들을 묶어서 칭하는 개념이기에 정전 협정을 통해 종결되었다고 선언할 수 있는 성격의 것이 아니다.
[1] 오바마 대통령이 2013년 테러와의 전쟁을 폐기하겠다고 선언했으나 말뿐일 뿐 이 시기에도 테러와의 전쟁이 지속되고 있었다고 봐야한다. 2022년 12월 31일에는 미국 정부에서 참전자 수훈장 지급을 공식적으로 종료했는데, 이를 미국 정부 차원에서 테러와의 전쟁을 종식시키겠다는 의지로 해석하는 견해도 있으나, 이슬람 테러리즘 자체는 아직 지속되고 있고, 테러에 대응한 미국과 미국의 지원을 받는 동맹국, 협력국들의 군사적 대응이 사라진 것은 아니므로 끝난 건 아니라는 의견도 있다. 자세한 내용은 아래의 '종결?' 문단 참고.[2] IS의 개입은 2002년부터이다.[3] 미국 측의 정식 명칭. 줄여서 GWOT이라 표기하기도 한다.[원문] The enemy of America is not our many Muslim friends. It is not our many Arab friends. Our enemy is a radical network of terrorists and every government that supports them.
Our War on Terror begins with Al-Qaeda, but it does not end there. It will not end until every terrorist group of global reach has been found, stopped, and defeated.[5] 물론 미국을 향한 테러는 눈에 띄게 줄었긴 하다. 하지만 그건 미국이 대테러 시스템을 강화한 덕분이지 이 전쟁 덕분은 아니다.[6] 미국 정부가 들인 전쟁 비용에 비해 민영 석유 기업이 얻은 이득은 현지 치안 문제로 인해 예상했던 것보다 이익이 나오지 않아 발 끝에도 미치지 못할 정도로 미미하다고 한다. 이 때문에 이라크 전쟁 초기 나온 석유 음모론은 현재는 쏙 들어간 상황. 물론 당시 9.11 테러 직후 성명으로 미국의 어그로를 끌었던 이라크가 박살났으니 그 자체로 영향력이 강화된 게 아니냐고 하지만 이라크는 반서방 진영 내에서도 실제로는 어느 정도 거리를 두는 막장 독재 정권의 지배하에 있었던 데다가 이란과의 전쟁 및 걸프전쟁의 여파로 국력도 크게 약화되어 있었다.[7] 러시아는 체첸 등 북캅카스, 중국은 신장 위구르 자치구가 알카에다, IS를 비롯한 국제적 극단주의 테러조직의 목표가 될 것을 우려하고 있다. 특히 러시아는 옛날부터 중앙아시아의 소수민족과의 분쟁으로 테러를 당하거나 전쟁을 치르고 있고 중국도 신장에서 테러가 빈번하게 벌어지면서 경계심이 커지고 있다. 중국 역시 이슬람 국가가 이 일대에 칼리프를 지지하는 이슬람 국가를 세울 것이라는 선포에 경계를 높였다. 게다가 애당초 냉전이 종결되기 전부터 이슬람 극단주의 세력들은 지리적 위치 때문에 구소련을 비롯한 동구권 국가와도 적대하는 관계였다.[8] 다만 탄압당하는 소수민족들이 비폭력 방침을 시도해보기도 하였고 말로 세계에 호소해보기도 하였지만 무시당하고 무관심 속에 묻혀버리는 등 도저히 답이 안 나오자 극단적으로 변해 무고한 민간인을 마구 공격해대기 시작한 것도 사실이다. 대표적인 것이 러시아에서 벌어진 베슬란 학교 인질사건이나 중국 위구르 지역의 묻지마 칼부림 사건. 물론 정부도 가만있지 않고 폭격, 암살 등으로 백배 천배로 갚아주고, 그러면 반군들 역시 더욱 칼을 가는 만큼 결국은 막장으로 치닫는다.
Our War on Terror begins with Al-Qaeda, but it does not end there. It will not end until every terrorist group of global reach has been found, stopped, and defeated.[5] 물론 미국을 향한 테러는 눈에 띄게 줄었긴 하다. 하지만 그건 미국이 대테러 시스템을 강화한 덕분이지 이 전쟁 덕분은 아니다.[6] 미국 정부가 들인 전쟁 비용에 비해 민영 석유 기업이 얻은 이득은 현지 치안 문제로 인해 예상했던 것보다 이익이 나오지 않아 발 끝에도 미치지 못할 정도로 미미하다고 한다. 이 때문에 이라크 전쟁 초기 나온 석유 음모론은 현재는 쏙 들어간 상황. 물론 당시 9.11 테러 직후 성명으로 미국의 어그로를 끌었던 이라크가 박살났으니 그 자체로 영향력이 강화된 게 아니냐고 하지만 이라크는 반서방 진영 내에서도 실제로는 어느 정도 거리를 두는 막장 독재 정권의 지배하에 있었던 데다가 이란과의 전쟁 및 걸프전쟁의 여파로 국력도 크게 약화되어 있었다.[7] 러시아는 체첸 등 북캅카스, 중국은 신장 위구르 자치구가 알카에다, IS를 비롯한 국제적 극단주의 테러조직의 목표가 될 것을 우려하고 있다. 특히 러시아는 옛날부터 중앙아시아의 소수민족과의 분쟁으로 테러를 당하거나 전쟁을 치르고 있고 중국도 신장에서 테러가 빈번하게 벌어지면서 경계심이 커지고 있다. 중국 역시 이슬람 국가가 이 일대에 칼리프를 지지하는 이슬람 국가를 세울 것이라는 선포에 경계를 높였다. 게다가 애당초 냉전이 종결되기 전부터 이슬람 극단주의 세력들은 지리적 위치 때문에 구소련을 비롯한 동구권 국가와도 적대하는 관계였다.[8] 다만 탄압당하는 소수민족들이 비폭력 방침을 시도해보기도 하였고 말로 세계에 호소해보기도 하였지만 무시당하고 무관심 속에 묻혀버리는 등 도저히 답이 안 나오자 극단적으로 변해 무고한 민간인을 마구 공격해대기 시작한 것도 사실이다. 대표적인 것이 러시아에서 벌어진 베슬란 학교 인질사건이나 중국 위구르 지역의 묻지마 칼부림 사건. 물론 정부도 가만있지 않고 폭격, 암살 등으로 백배 천배로 갚아주고, 그러면 반군들 역시 더욱 칼을 가는 만큼 결국은 막장으로 치닫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