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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2-17 22:37:16

제75레인저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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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color=#fff><colbgcolor=#fff> 제75레인저연대
75th Ranger Regiment
파일:external/writingpromptsthoughtsideas.files.wordpress.com/75th-ranger-regiment2.jpg
창설일 1984년
소속 미합중국 육군
상급부대 미합중국 육군특수작전사령부
규모 연대
모토 Sua Sponte 자발적으로![1]
RANGERS LEAD THE WAY.
레인저가 앞장선다.
참전 파나마 침공
걸프 전쟁
소말리아 내전
코소보 전쟁
미국-아프가니스탄 전쟁
이라크 전쟁
위치 미국 조지아주 포트 무어
링크 파일:제75레인저연대 엠블럼.svg | 파일:유튜브 아이콘.svg
1. 개요2. (1986년 이전) 레인저 부대의 역사
2.1. '레인저'란 용어의 유래와 초창기 레인저 부대들2.2. 제2차 세계 대전 때 레인저 대대의 창설과 해체2.3. 한국전쟁 중 사단 직속 레인저 중대 창설 및 해체2.4. LRRP 창설2.5. 베트남 전쟁 시절의 레인저 부대
2.5.1. 옛 부대들의 이름을 따오다2.5.2. 베트남 파병 사단들 예하의 LRRP2.5.3. 레인저 중대로의 개칭2.5.4. 제75레인저연대의 탄생
2.6. 군단/사단 장거리 정찰대(LRS)
2.6.1. 장거리정찰대(LRSU)의 창설 (1980년대)2.6.2. 장거리정찰대(LRSU)의 훈련과 특징
3. (1986년 이후) 오늘날의 제75레인저연대
3.1. 제75레인저연대 소개
3.1.1. 편제3.1.2. 인적자원3.1.3. 장비3.1.4. 특수부대인가 경보병부대인가
3.2. 제75레인저연대 직할 수색중대
3.2.1. 소개 및 역사3.2.2. 지원자격 및 선발과정3.2.3. 기타 이야기3.2.4. 수행한 작전
4. 역대 제75레인저연대장5. 메달 오브 아너(명예 훈장) 수훈자6. 제75레인저연대 출신인물7. 미디어에서의 모습8.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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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제75레인저연대 홍보 영상
75th Ranger Regiment
제75레인저연대
The Army's Premier Raid Force
육군의 최상급 강습부대

미합중국 육군특수작전사령부 소속의 티어 2급 특수부대로 미국에서 가장 오래된 역사를 가진[2] 특수부대이다. 일반적으로 육군 레인저(Army Ranger)라는 호칭으로 불리며, 영화 라이언 일병 구하기(1998)와 블랙 호크 다운(2001)으로 일반 대중들에게도 널리 알려져있다.

미합중국 육군특수작전사령부 소속으로 직접타격(Direct Action), 특수정찰, 대테러 작전을 수행한다. 연대 산하에 JSOC의 지휘를 받는 티어 1급 부대인 연대 직할 수색중대(Regimental Reconnaissance Company: RRC)를 두고 있다. 자세한 내역은 아래 3번 현재의 레인저부대 문단 참조.

2. (1986년 이전) 레인저 부대의 역사

2.1. '레인저'란 용어의 유래와 초창기 레인저 부대들

원래 레인저라는 단어는 17세기에 북아메리카에서 국경선이나 인디언 접경지역 등 위험지대를 순찰하면서 위험한 조짐을 조기에 감지하여 본대에 알리는 역할을 하는 순찰대원을 Ranger라고 불렀던 게 군대와 관련된 최초의 사용 사례이다.

그 전에도 영국에서 한 곳에 머물러 있지 않고 넓은 범위(range)의 땅을 돌아다니는 사람, 즉 '방랑자' 등의 의미로 쓰이기도 했고, 역시 넓은 땅을 돌아다니며 관리한다는 느낌에서 '사냥터 관리인'(gamekeeper)이라는 의미로도 쓰이던 단어였다. 이후 이 단어가 북미 대륙으로 건너 온 뒤론 국경선/위험지역을 감시하는 기동 순찰 감시병(군대 용어)이나 삼림/공원 감시원(민간 용어)[3]이란 뜻으로 쓰이기 시작한 건데, 이렇게 의미가 점차 달라지고 다양화되기 시작했지만 이때까지만 해도 이런 용어들에도 역시 어떤 일을 할 때 한 곳에 머무르지 않고 뭔가 넓은 범위의 지역을 기동하면서 수행한다는 뉘앙스는 여전히 남아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심지어 요즘에도 서양의 판타지물, SF물이나 각종 게임, 영화, 소설 등에 나오는 세계관에서 'Ranger'라는 이름을 가진 가공의 조직이 자주 등장하곤 하는데, 위험한 지역을 순찰하는 병력 혹은 기동타격대의 역할을 하는 조직으로 주로 묘사되곤 한다. 이를 보면 현대에도 레인저라는 용어에서 그 단어가 가졌던 원래의 뉘앙스가 어느정도는 아직도 잔존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런 경우의 레인저를 한국어로 번역할 때는 '기동대'나 '순찰대' 라고 번역하기도 한다.[4]

어쨌든 시간이 갈수록 '넓은 지역을 돌아다니는 자'라는 원래의 뜻은 점점 약해졌고, 후술하듯 '정예'라는 의미가 더 부각된 단어로 점차 변하게 된다. 험악했던 개척기 북미 대륙의 위험 지역을 돌아다니려면 용감해야 하고 체력도 좋아야 하므로 이런 일을 수행하는 사람은 용맹한 정예 용사라는 생각에서 자연스레 그런 의미로 변하게 된 걸로 보인다.[5]

병사 개개인이 아닌 한 부대 전체에 레인저라는 단어가 처음 사용된 것은 1676년 신대륙 이주민들과 인디언 사이에 벌어진 필립왕 전쟁 (Philip's War) 당시 활약했던 '처치 레인저 부대(Church's Rangers)'라는 이름의 부대가 시초이다. 플리머스 식민지의 총독 조시아 윈슬로우의 군사 보좌관이었던 벤자민 처치는 필립왕 전쟁 때 대위 계급으로 식민지 영국인들 뿐 아니라 우호적인 인디언들을 모아서 지휘하여 뉴잉글랜드 국경지대에 있던 적대적인 인디언들을 급습해서 성공을 거두었다. 이 부대를 가리켜 지휘관 벤자민 처치 대위의 성을 따서 '처치의 용맹한 부대'이란 뜻으로 '처치 레인저 부대'라고 이름을 붙인 것이다.

이것이 시초가 되어 이후로도 북미대륙의 정예부대들에게 지휘관의 이름을 따서 '~레인저 부대'(~'s Rangers)이라는 명칭을 붙이는 것이 관행화되었다. 조지왕 전쟁, 프랑스-인디언 전쟁, 독립전쟁, 남북전쟁 등 북미에서 벌어진 모든 전쟁때마다 '~ 레인저 부대'라고 이름 붙여진 부대들이 여기저기서 계속 만들어지고 전쟁이 끝나면 없어졌다. 그런 부대들이 만들어진 배경과 상황이 다양했던만큼 레인저 부대의 성격도 다양해서, 빠르게 기동하며 기습공격하는 성격의 부대가 주류이긴 했지만, Danks' Rangers같이 요새 수비대도 있었고 심지어 기병대(cavalry)인 경우도 있었다.
그리고 이후로도 전쟁 때마다 이런 레인저라는 명칭의 부대가 만들어졌다가 전쟁이 끝나면 해체되는 게 베트남 전쟁 때까지 수백 년 동안 계속 반복되게 된다.

이렇게 '레인저'자가 들어간 여러 초창기 부대들이 있었지만, 현대의 75 레인저연대가 레인저 부대의 진정한 기원으로 삼고 있는 것은 1755년 프랑스-인디언 전쟁 당시 활약한 '로저스 레인저 부대(Rogers' Rangers)'이다. 북미대륙의 영국 식민지에서 활동한 영국 육군 장교인 로버트 로저스는 부하 레인저 대원들을 이끌고 멀리 떨어진 프랑스 진영을 신출귀몰하게 기습하여 큰 피해를 입혔다. 적의 예상을 벗어나기 위해 보트를 타고 강으로 이동하여 접근하기도 했고, 눈이 많이 내려 이동이 어려운 한겨울에도 대원들이 설피를 신고 먼 적진까지 가서 기습하기도 했다. 이 외에도 적의 이동을 노린 매복공격, 수색정찰 등에서도 큰 성과를 냈다. 이런 성공에 고무된 영국군은 로저스의 레인저 부대를 14개 중대까지 확대 편성했다. 그리고 로버트 로저스는 이런 작전 경험을 밑바탕 삼아서, '레인징 활동을 할 때 지켜야 할 28가지 규칙' (The 28 "Rules of Ranging")이라는 가이드라인 교범까지 만들었는데, 이 교리는 먼 훗날인 2차 세계대전 때 미 육군이 레인저 대대를 만들 때도 참고할 정도로 유용했다. 이렇게 초창기의 각종 레인저 부대 중에서 가장 유명했고 성공적이었으며 현대에 까지 내려오는 교리까지 정립했기에, 북미대륙 식민지에서 활약한 영국 육군 소속의 '로저스 레인저 부대'가 최초의 진정한 레인저 부대로 평가받고 있는 것이다.

파일:rr8r27.jpg

이런 과정을 거치며 '레인저'는 북미의 육군에서 수색정찰이나 선봉 공격, 기습 타격 등의 임무를 가진 정예 부대 내지 특수부대라는 의미의 용어로 자리 잡게 된다. 그리고 이런 군대 용어로서뿐 아니라 레인저 하면 보통인보다 용맹스럽고 강인한 존재라는 느낌을 주는 보편적인 용어가 되어서 '정예'라는 뉘앙스를 지닌 일반적인 의미로 워낙 널리 쓰이기 때문에, 뭐든 힘 께나 있는 것처럼 보이려는 대상에 죄다 갖다 붙이는 약방의 감초 같은 단어처럼 되어버린 지 오래다. 그래서 각종 군사 방면에서부터 게임, 만화, 액션/히어로물, 항공모함, 트럭을 비롯한 차량, 수사기관, 스포츠팀, 판타지물 등에 이르기까지 여기저기에 워낙 많이 쓰여서 혼란을 야기하는 단어이기도 하다.

한국에서는 과거 Ranger School 과정을 위탁교육 받고 온 대한민국 육군 장교들이 미국의 레인저스쿨 교육을 모방 및 축소해서 만든 훈련을 유격훈련이라고 이름 붙인 것을 계기로 그 후 'Ranger' 자가 들어가는 군대 용어들은 편의상 죄다 '유격'(遊擊)으로 번역하는 경향이 있다 (유격대 등). 그런데 이는 엄밀히 말하면 부정확한 번역이다. 유격대라는 건 외국어로 치면 레지스탕스, 게릴라, 파르티잔 등에 더 가까운 성격인데, 레인저부대를 유격대라고 번역해버리면 레지스탕스, 게릴라, 파르티잔 등과는 성격이 꽤 다른 미국의 제75레인저연대를 유격대라고 칭해야 하는 불합리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즉 '레인저 스쿨'과 '레인저 부대'는 엄연히 다른 것인데도 레인저란 말이 들어가는 용어들은 그냥 다 뭉뚱그려서 유격이라고 번역해버리는 편의적인 관행 때문에 개념상 잘 들어맞지 않는 부정확한 오류가 세월이 지나며 굳어져 버린 것이다.

2.2. 제2차 세계 대전 때 레인저 대대의 창설과 해체

20세기에 '레인저'라는 이름이 붙여진 최초의 부대는 제2차 세계 대전 중이었던 1942년부터 창설된 미 육군 레인저 대대들이다. 당시 유럽전선에서는 영국 육군 코만도 부대가 소규모 게릴라 특수작전을 펼치며 명성을 떨치고 있었는데, 이에 깊은 인상을 받은 미군 수뇌부 측에서도 이 영국 육군 코만도 부대와 흡사한 경보병 특수 작전부대의 창설을 육군과 해병대 내에 추진, 이로써 탄생한 것이 제2차 세계 대전시기의 미 육군의 레인저 대대들과 미 해병대의 레이더스 대대들이다.

파일:raw22202.jpg

제2차 세계 대전 때의 최초의 제1레인저 대대(1st Ranger Battalion)는 600여명의 규모로 북아일랜드에서 창설되었으며, 이들 중에서 80%는 미 육군 제34보병사단에서 선발되었다. 부대의 이름은 17~18세기부터 북미대륙에서 활동한 정예 부대들에게 붙였던 북미대륙 고유의 전통적이고 명예로운 명칭인 '레인저'를 채택했다. 특히 북미대륙 특수작전 부대의 효시격인 18세기의 '로저스 레인저 부대'(Rogers' Rangers)가 Ranger라는 명칭을 썼던 것이 '레인저'를 부대명으로 삼게 된 큰 이유였다. 심지어 현재의 75레인저연대도 부대의 정신적 뿌리이자 기원을 북미대륙에서 활동했던 영국 육군 소속의 '로저스 레인저 부대'로 정해놓고 있고, 그 부대 지휘관이었던 로버트 로저스(Robert Rogers) 중령이 만들었던 레인저 작전교리도 여전히 참고하고 있다.[6]

파일:rano57.jpg

제1레인저 대대는 북아프리카 전선(알제리, 튀니지), 남부 유럽(이탈리아) 전선에서 활약하였다. 이탈리아 전선부터는 제1, 제3, 제4레인저 대대가 '제6615 레인저연대(6615th Ranger Force)'를 이루어 함께 작전을 수행하였는데, 이는 현대 75레인저연대 모델의 선조격이라 할 수 있다.[7] 그리고 제2, 제5레인저 대대는 노르망디 상륙 작전을 포함한 유럽 본토지역(프랑스, 독일)에서 활약하였고, 제6레인저 대대는 필리핀을 비롯한 태평양 전쟁에서 활약하였다. 이들 레인저 대대들은 전장 깊숙히 들어가서 각종 야간 습격작전, 상륙 선견작전, 공항 점거작전, 인질(포로) 구출 작전[8] 뿐 아니라 정규부대들과의 대규모 전투에도 함께 참여하는 등 맹활약 하였다.

2.3. 한국전쟁 중 사단 직속 레인저 중대 창설 및 해체

1950년 6월 25일에 한국 전쟁이 발발하고 불과 2달만인 8월 경에 낙동강 전선까지 밀리게 되자 당시 미 육군 참모총장은 '적진 깊이 들어가서 사령부, 포병, 탱크, 통신시설을 파괴하는 게릴라전을 수행할 수 있는 엘리트 특수부대'의 창설을 지시하게 된다. 그리하여 한국 전쟁때 가장 최초로 창설된 레인저 중대가 바로 1950년 8월 24일에 일본 주둔 캠프 드레이크에서 창설된 미 육군 제8군 레인저 중대(The Eighth Army Ranger Company)이다.

이 '제8군 레인저 중대'는 창설 3일만에 부산에 상륙하여 기장군에 '제8군 레인저 훈련 센터'를 세우고 자체 훈련을 시작하였다. 중대 인원은 장교 3명과 73명의 레인저대원(그 중 10명은 한국군 카투사)로 이루어져 있었다. 같은 해 10월 1일에 레인저 훈련을 마치자, 당시에는 이미 인천 상륙 작전이 성공하여 전선이 북진하고 있었다. 10월 8일에 이들은 기존명칭인 '제8군 레인저 중대'에서 '미 육군 제8213 부대(8213th Army Unit)'로 부대 명칭을 변경하였고, 10월 14일에 대전에 위치한 미 제9군단 소속의 제25보병사단에 배속되었다. 이후 이들은 보병사단의 수색대(Recon) 역할을 하며 보은(충북), 개성(황해북도), 동두천, 의정부 등에서 고립된 북한군 게릴라들을 수색, 소탕하는 임무를 맡으며 활약하였다. 11월 청천강 전투에서는 미군 포로 30명을 구출하기도 하였고, 꽤많은 규모의 중공군과 전투를 벌이며 222고지(Hill 222)와 205고지(Hill 205)를 점령•사수하기도 하였다. 이후 1951년 2월까지는 한강 근처에서 중공군과 교전을 벌였다. 2월에 터키군 여단과 함께 강화도 탈환작전에 참가하기도 하였고, 주로 밤에 한강을 건너다니며 중공군을 상대로 크고 작은 기습작전들을 벌였다. 3월에는 작전명 'Ripper'[11]참가하였고 전선 최전방에서 10km나 더 깊은 곳까지 침투해서 각종 수색, 기습 작전을 벌였다. 1951년 3월 31일에 '제8군 레인저 중대'는 해체되고, 기존 대원들 중 많은 이들은 제25보병사단 휘하의 다른 부대로 옮겨가거나 육군 제11공수사단의 제187공수연대, 또는 나중에 생겨난 다른 사단 배속의 레인저 중대들로 옮겨가게 된다.[12] 짧은 시기 동안 존재했던 이 '제8군 레인저 중대'는 164일간의 전투를 경험하였고, 대한민국 대통령 부대 표창(Republic of Korea Presidential Unit Citation)을 받았다.

파일:riak329.jpg

한편, 1950년 9월 당시에 한국 기장군에서 자체 훈련중이었던 '제8군 레인저 중대'와는 별개로 미국 본토 조지아 주에 위치한 포트 베닝에서는 레인저 훈련 사령부(Ranger Training Command)가 설립되고 15개의 레인저(에어본) 중대를 창설시키기 위한 훈련을 시작한다. 훈련 프로그램을 담당한 레인저 훈련 A, B중대 2개를 바탕으로 '제1레인저 중대'부터 '제15레인저 중대'까지 15개의 레인저 중대(에어본)가 창설되게 된다. 이들은 레인저 과정을 포함한 각종 특수훈련과 전원이 에어본(공수)교육을 받았다. 이 레인저(에어본) 중대들은 이후 한국으로 파병되어 미 육군의 각 사단들에 배속되어 수색 작전 등 각종 특수작전들을 수행하였다. 이들은 한국 전쟁 중인 1951년 8월 1일자로 모두 해체되었지만, 미 본토 포트 베닝에 위치한 레인저 훈련 사령부는 육군을 중심으로 전 군 전투부대의 핵심 지휘관 양성을 위한 리더십 교육 과정인 레인저 스쿨로 개편되어 지금까지 존재하고 있다.

파일:ar8361.jpg

이하는 한국 전쟁 당시 존재했던 RANGER(Airborne) 중대들의 간략한 소개이다.

2.4. LRRP 창설

1956년 서독 주둔 주독미군 제11공수사단에서 동독 국경 지역을 순찰하기 위해 장거리 수색정찰(Long Range Reconnaissance Patrol: LRRP) 개념과 그 필요성을 처음 제시했고, 주독미군 제7군이 1961년 6월 9일 제3780(공수)LRRP 중대와 1961년 7월 15일 제3779(공수)LRRP 중대를 공식 창설하고 이들 2개 중대를 각각 7군단과 5군단에 배속하여 LRRP 개념을 구체화시켰다. 1961년 창설된 이 2개 LRRP 중대는 후일 제75레인저연대 1대대와 2대대가 되는 기념비적인 부대로 제75레인저연대의 뿌리에 해당한다.

제3780, 3779 중대는 1965년에 LRRP 임무에 맞는 부대 편성 및 장비표[15]를 처음으로 확립시켰고, 1965년 5월 15일 이 부대편성 조직표에 따라 각각 58(공수)보병 C중대(LRRP)와 17(공수)보병 D중대(LRRP)로 재편성되었다. 이 편성표에 따르면 LRRP 중대의 수색팀장과 3명의 소대장, 작전장교, 부중대장, 중대장, 중대행정관은 레인저 훈련 이수자 중에 선발하고, 중대원들은 모두 공수훈련 이수자 중에서만 선발하도록 했다.

후술하겠지만 이 LRRP 중대는 1969년 2월 1일 각각 75레인저 A중대와 B중대로 개편되었고, 1974년 각각 제1, 2레인저 대대로 확대 개편되었다.

2.5. 베트남 전쟁 시절의 레인저 부대

2.5.1. 옛 부대들의 이름을 따오다

오늘날의 75레인저연대(75th Ranger Regiment)라는 부대명칭은 1969년에 창설된 75보병연대(레인저)(75th Infantry Regiment (Ranger))를 1986년에 현재와 같이 바꾼 이름이다.[16] 그리고 75보병연대(레인저)예전에 있었던 '제75 보병연대'와 '레인저'라는 두 개의 옛 부대의 이름만 각각 따와서 합친 것이다.

먼저 75보병연대라는 이름을 가진 부대는 1918년에 처음 창설되었다가 해체와 재창설을 반복 후 다시 해체된 부대였다. 이 원래의 75보병연대는 레인저나 특수작전쪽과는 무관한 일반 보병연대였다. 그런데 1969년에 '75보병연대(레인저)'를 창설할 때 이 75보병연대라는 명칭을 따온 이유는 다음과 같다.

1943년 10월 3일 창설된 임시부대인 미 육군 제5307혼성부대(임시)는[17]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영국군의 친디트를 벤치마킹해 동남아시아 전역의 정글에서 특수작전을 수행한 부대로서 1944년 8월 10일 제475보병연대에 흡수 합병되었다. 이 475보병연대는 1954년 7월 21일에 제75보병연대로 개칭되었다. 이 부대는 이전에 두 차례 창설됐다 해체된 원조 제75보병연대와 무관하고 이름만 같다. 즉 이미 해체됐던 과거 75연대의 연대번호를 물려받은 것이다.
참고로, 미국은 역사가 짧은 나라라서 그런지, 옛 전통과 명칭을 사장시키지 않고 되도록 되살려서 이어가게 하여 새로 생긴 단체의 역사를 길게 확장시키려는 경향이 강하다. 새로 만든 부대의 이름과 번호, 마크 등을 새로 만들지 않고 예전에 있었다가 사라진 부대의 것들을 물려받아 쓰는 관행도 이런 취지에서인 것이다. 이 세 번째로 창설된 제75보병연대는 1956년 3월 21일 해체되었다.

그로부터 13년 뒤인 1969년 2월 1일에 미육군 역사상 네번째로 75보병연대라는 이름을 갖게된 '제75 보병연대 (레인저)'(75th Infantry Regiment (Ranger))가 창설된다. 그러나 이것은 같은 해인 1969년에 새로 창설된[18] 레인저 중대들을 명목상 소속시킬 연대를 만들려고 새 연대 이름을 정할 때 연대번호를 무의미하게 새로 정하기보다는 과거 실존했던 미육군 연대의 역사와 전통을 되살려 이어가자는 의미에서, 이미 해체되어 비어있는 번호의 연대들 중에서 레인저중대와 그나마 비슷한 특수부대적인 성격을 가졌던 5307혼성부대의 직계인 세번째 제75보병연대의 번호와 부대마크를 채택하게 된 것일 뿐, 실제로는 과거에 있있던 제75보병연대와는 아무런 연관성이 없다.

그리고 뒤에 붙는 '(레인저)'라는 이름도 제2차 세계 대전 때의 레인저 대대나 한국 전쟁 때의 레인저 중대에서 레인저라는 명칭을 따왔지만, 그 레인저 대대/중대와의 실질적인 연관성 역시 없다.[19] 같은 1969년에 창설된[20] 15개의 레인저 중대들도 마찬가지다.

즉 '제75 보병연대 (레인저)'라는 부대 이름을 구성하는 '75보병연대'나 '(레인저)'나, 그리고 동시에 만들어진 15개의 '레인저 중대'나 모두 한때 있었다가 사라진 과거 부대들의 '이름만' 따온 것이다.[21]

상술되었듯이 레인저 부대는 특정한 상설 부대가 아니라 전쟁 때마다 새로 생겼다가 다시 없어지곤 했던 부대였는데, 베트남 전쟁 당시인 1969년에 레인저라는 명칭을 가진 부대가 18년만에 다시 만들어졌다. 1969년 2월 1일 창설된 '미 육군 제75 보병연대 (레인저)'[22]와 형식적으로만 그 연대 소속이 된 15개의 레인저 중대들이 그것이다. 위에서 언급됐듯이, '제75 보병연대'는 1956년에 해체된 제75 보병연대의 연대번호를 그대로 따온 이름이고, 뒤에 붙는 '(레인저)'와 예하 '레인저 중대'들의 레인저는 2차 세계대전 때의 레인저 대대나 한국전쟁 때의 레인저 중대의 '레인저'에서 따온 것이다.[23]

그러나 1969년에 창설된 이 75연대는 미 육군 Combat Arms Regimental System에 따라 연대라는 이름만 형식적으로 부여된 껍데기에 불과했을 뿐 연대 본부나 예하 대대 등의 실체가 아예 없었고, 명목상으로만 75연대 소속인 15개의 독립 레인저 중대들이 실제로는 미 육군의 여러 군단 및 사단들에 직할중대로 배속되어서 활동했다. 게다가 레인저 중대들은 엄밀히 말하면 새로 창설된 게 아니라 서독에 주둔하던 주독미군 제5군단, 7군단, 그리고 주월미군의 각 사단들 및 여단들 예하마다 있던 '장거리 수색정찰 중대'(Long Range Reconnaissance Patrol: LRRP)들의 이름만 1969년에 레인저로 바꾼 것이다.

즉, 1969년에 창설된 '제75보병연대 (레인저)'는 하나의 연대로서의 실체가 있는 부대가 아니라, 기존에 미 육군의 각 군단/사단/여단 등에 있던 '장거리 수색정찰 중대(LRRP)'들을 1969년에 과거 미 육군의 정예부대들이 전통적으로 즐겨 사용해온 명칭인 레인저라는 이름을 따온 '레인저 중대'라고 명칭을 일괄적으로 변경한 뒤, 여러 사단들 소속으로 따로 떨어져 있는 이들 레인저 중대들을 관념적으로 한데 묶기 위해 제75보병연대라는 형식적인 타이틀을 부여한 것이다. 이렇게 단지 관념적인 개념의 '연대'가 아니라, 연대본부와 연대 편제, 그리고 예하 레인저 부대들에 대한 일원적인 지휘/통솔체계를 다 갖춘 실질적인 한 부대로서의 연대가 된 것은 후술하듯이 1984년이다.

이렇게 레인저라는 용어 자체에 여러 뜻이 있는데다가, 레인저나 75연대 등의 이름을 썼던 부대들도 여러가지이고 그러다보니 언뜻 봐서는 제75레인저연대라는 부대의 역사가 굉장히 복잡하게 느껴지고 헷갈리기 쉽다.

2.5.2. 베트남 파병 사단들 예하의 LRRP

다시 월남전 때의 레인저 얘기로 돌아가서, 1969년에 창설된 총 15개의 레인저 중대들은 대부분 월남전에 파병 중이던 각 미 육군 사단과 여단 예하로 1966년에 생겨난 장거리 수색정찰 중대(Long Range Reconnaissance Patrol : LRRP)가 그 전신이다.
LRRP는 그냥 일반 소총소대에 "너희는 오늘부터 수색대임" 이런 식으로 기존 일반 부대에 수색임무만 부여한 경우도 있었고, 그린베레 특수전학교 등에서 정예교육을 받은 간부들이 중심이 되어 부대 내에서 지원자를 받아 새로 편성한 경우도 있었다.

1966년 7월 8일 주월미군 사령관 웨스트모얼랜드 대장은 월남에 주둔하는 모든 사단과 독립여단마다 LRRP 중대를 창설할 것을 명령했다. 이로써, 그전까지는 미 육군을 전부 통틀어 단 두개 중대밖에 없었던 LRRP 중대가[24] 월남전에 참전한 모든 사단과 독립여단들마다 편성되게 되었다. 그러나 LRRP 중대들 중 일부는 갑자기 수색임무만 부여받았을 뿐 일반 보병 소총중대가 LRRP로 이름만 바꾼 것에 불과한 경우도 있었기 때문에 수색임무에 맞는 훈련이 부족했을 뿐 아니라, 베트남의 정글이라는 특정한 환경에 최적화된 맞춤형 특수훈련을 받는 것도 필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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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1공수사단 장거리 수색대(LRRP)
이에 웨스티 장군은 1966년 9월 미 육군 그린베레의 제5공수특전단[25]이 운영하는 수색/특공(Recondo)[26] 학교를 나트랑에 세우고, 최소한 LRRP 중대의 간부들은 이 Recondo 학교에 입교하여 3주 과정의 훈련을 이수하도록 했다. LRRP 간부들뿐 아니라 그린베레미 해병대 포스리컨, 네이비 씰 등 미 특수부대원들 중 일부 및 동맹국 특수부대원들 일부도 이 Recondo과정에 입교하여 정글 특수전 적응훈련을 받았다. 1971년 2월에 마지막 수료자들을 배출한 것을 끝으로 이 수색/특공학교(Recondo School)는없어졌다.
부대 형편에 따라 LRRP 중대원의 상당수가 입교한 경우도 있었지만, 대개는 각 LRRP 중대의 간부들 중에서 선발된 교관 요원이 교육을 수료한 후 부대로 복귀하여 교육내용을 LRRP 중대원들에게 전파하는 식으로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았다.[27] [28]

2.5.3. 레인저 중대로의 개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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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에어본 레인저) C중대
1968년 12월 5일 미 육군 참모총장은 LRRP 중대라는 명칭을, 지금은 없어졌지만 과거에 존재했던 레인저 부대들의 이름을 본떠서 '레인저 중대'로 바꾸도록 지시했다. 이듬해인 1969년 2월 1일부로 LRRP 중대에서 레인저 중대로 부대명이 바뀌면서 드디어 오늘날 75레인저연대의 직접적인 조상이 되는 레인저부대가 탄생하게 된다.

월남전 당시 미 육군 레인저 중대들의 역사와 기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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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인저 중대 창설일 해체일 기존 부대명 배속부대 LRRP 중대 창설일
75(에어본 레인저) A중대 1969년 2월 1일 1974년 12월 19일 17(공수)보병 D중대(LRRP) 5군단 1965년 5월 15일
75(에어본 레인저) B중대 1969년 2월 1일 1974년 11월 1일 58(공수)보병 C중대(LRRP) 7군단 1965년 5월 15일
75(에어본 레인저) C중대 1969년 2월 1일 1971년 10월 25일 20(공수)보병 E중대(LRRP) I FFV[29] 1967년 9월 25일
151(공수)보병 D중대(LRRP)
(인디애나 주방위군)
75(에어본 레인저) D중대
1969년 2월 1일
1969년 11월 20일
1969년 11월 20일
1970년 4월 10일
51(공수)보병 F중대(LRRP) II FFV 1967년 9월 25일
75(에어본 레인저) E중대 1969년 2월 1일 1969년 8월 23일 50(공수)보병 E중대(LRRP) 9보병사단 1967년 12월 20일
75(에어본 레인저) F중대 1969년 2월 1일 1971년 3월 15일 50(공수)보병 F중대(LRRP) 25보병사단 1967년 12월 20일
75(에어본 레인저) G중대 1969년 2월 1일 1971년 10월 1일 51(공수)보병 E중대(LRRP) 23보병사단 1967년 12월 20일
75(에어본 레인저) H중대 1969년 2월 1일 1972년 8월 15일 52(공수)보병 E중대(LRRP) 1기병사단 1967년 12월 20일
75(에어본 레인저) I중대 1969년 2월 1일 1970년 4월 7일 52(공수)보병 F중대(LRRP) 1보병사단 1967년 12월 20일
75(에어본 레인저) K중대 1969년 2월 1일 1970년 12월 10일 58(공수)보병 E중대(LRRP) 4보병사단 1967년 12월 20일
75(에어본 레인저) L중대 1969년 2월 1일 1971년 12월 25일 58(공수)보병 F중대(LRRP) 101공수사단 1968년 1월 10일
75(에어본 레인저) M중대 1969년 2월 1일 1970년 10월 12일 71(공수)보병(LRRP)파견대 199경보병여단 1967년 12월 20일
75(에어본 레인저) N중대 1969년 2월 1일 1971년 8월 25일 74(공수)보병(LRRP)파견대 173공수여단 1967년 12월 20일
75(에어본 레인저) O중대 1969년 2월 1일 1969년 11월 20일 78(공수)보병(LRRP)파견대 82공수사단 3여단 1968년 12월 15일
75(에어본 레인저) P중대 1969년 2월 1일 1971년 8월 31일 79(공수)보병(LRRP)파견대 5보병사단 1여단 1968년 12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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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 제173공수여단의 장거리수색대(LRRP) 대원

2.5.4. 제75레인저연대의 탄생

베트남 전쟁의 막바지에 미군이 단계적 철수를 시작할 무렵 각 사단 휘하의 레인저 중대들도 차례로 해체되기 시작했다. 미군이 완전히 철수한 1973년엔 총 15개 레인저 중대 중에서 월남전에 참전한 13개의 중대가 모두 해체되어서, 유럽에 있다가 본토로 이동한 최초의 LRRP 중대 단 2개만 레인저 중대로 존재하는 상태였다.

하지만 전쟁때마다 새로 창설했다가 전쟁 끝나면 바로 폐지하는 걸 매번 반복하기보단, 이제는 평시에도 항상 준비되고 체계화된 상비 레인저 부대가 지속적으로 필요하다는 의견이 대두되어 1974년에 그때까지 남아 있던 2개의 레인저 중대를 각각 제1, 2레인저 대대로 확대 개편했다.

1984년 7월 1일에 3번째 레인저 대대가 창설되었고, 이 세개의 레인저 대대를 일원적으로 통솔하는 연대 본부가 만들어졌다. 그 전인 1969년부터 1984년까지도 15개의 레인저 중대(베트남전쟁 시기)와 제1,2 레인저 대대(1974~1984)가 제75 보병연대(레인저)라는 연대에 소속되어 있었지만, 위에 설명되어 있듯이 이는 명목상으로 껍데기만 존재하는 이름만 연대였을 뿐 실질적인 실체가 있는 연대가 아니었는데, 1984년에 비로소 예하 레인저 대대를 직접 지휘 통솔하는 실질적인 레인저 연대가 처음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그리고 드디어 1986년에 기존의 '제75 보병연대 (레인저)'(75th Infantry Regiment (Ranger))에서 '제75 레인저 연대'(75th Ranger Regiment)로 이름을 바꾸고 재탄생 했다.

이상의 역사를 보면 알 수 있듯이, 레인저 부대의 역사가 수백 년이라는 것은 과거 전쟁 때마다 미 육군의 여러 선봉 정예 부대들이 사용하던 '레인저'라는 영광스러운 이름을 승계받아 계승해온다는 정신적/상징적인 의미이지, 실제 조직과 구성원이 과거부터 일관되게 쭉 이어져 온 것은 전혀 아니다.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통일된 단일부대로서 쭉 이어져오는 레인저 연대의 역사는 1984년부터라고 할 수 있다. 부대 이름까지 현재와 똑같아진 것은 부대명을 75보병연대(레인저)에서 75레인저연대로 바꾼 1986년부터이다. 그리고 현재의 제75레인저연대는 1961년 창설된 2개 LRRP 중대로부터 일관되게 쭉 이어져 온 LRRP 중대의 직계 후손이다.

하지만 정통성과 역사를 최대한 늘려잡으려 하기 때문에, 75레인저연대 역시 제2차 세계대전 및 한국전쟁 때 있었던 레인저 대대/중대들을 자기 부대의 역사에 포함시키고 있고, 더 나아가 수백년 전에 출몰했던 각종 레인저 부대들 역시 자신들의 역사로 치고 있다.

사실, 이렇게 한참 전에 없어졌고 실질적인 관련도 없는 과거 부대를 가지고 그 부대 이름이나 상징, 의미 등을 따와서 새 부대의 뿌리로 삼는 사례는 이외에도 여럿 있다. 2006년에 창설된 미 해병대의 특수작전연대도 무려 70년 전에 없어진 경보병부대인 미해병대 레이더스(2차대전)를 자기 부대의 정신적 뿌리로 삼기로 2014년도에 결정했고 이에 따라 부대이름도 그 부대의 '레이더(Raider)' 자를 따와서 레이더연대(해병특전단)로 바꿨다.[30]

2.6. 군단/사단 장거리 정찰대(LRS)

2.6.1. 장거리정찰대(LRSU)의 창설 (1980년대)

베트남 전쟁 시기에 미 육군 각 군단/사단 예하의 장거리수색정찰대(LRRP)(레인저)가 창설과 해체를 거듭하다가 1974년에 마지막으로 남아있던 LRRP(레인저) 중대 2개가 각각 레인저 1, 2대대로 확대 개편되어 독립했기 때문에, 이후 미 육군에는 각 군단/사단의 수색대 역할을 하는 부대가 아예 존재하지 않게 된다.

그러다가 1984년에 미 육군 수뇌부에서는 각 군단과 사단 예하에 장거리정찰대(LRSU: Long Range Surveillance Unit)를 창설함으로써 과거 LRRP의 역할을 계승하게 하였다. 이를 위해 각 육군 군단(Coprs)에는 군단 직할 군사정보여단 소속으로 장거리정찰중대(LRSC)[31]가, 각 육군 사단에는 사단 직할 군사정보대대 소속으로 장거리정찰분견대(LRSD)[32]가 창설되었다. 냉전시대였던 80년대 당시 유럽 주둔 미 육군(USAREUR)을 시작으로해서 이후에는 전체 미 육군 5개 군단(제1, 3, 5, 7군단, 제18공수군단)에는 군단 직할 장거리정찰중대(LRSC)가, 각 군단 휘하의 약 20여개 현역 사단과 이외 독립 사단에는 사단 직할 장거리정찰분견대(LRSD)가 창설된다. 그리고 주방위군 사단 10개에도 장거리정찰분견대(LRSD)가 창설된다.[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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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2공수사단 장거리정찰분견대(LRSD)의 90년대 모습
장거리정찰대(LRSU)가 처음 창설될 때인 1980년대 중반에 포트 베닝의 육군 75레인저연대 본부에서 회의가 열렸는데 참석자들은 영국 SAS, 호주 SASR, 그리고 프랑스, 이탈리아, 독일의 수색대(Recon) 등의 부대들이 참석하였고 미 육군 측에선 75레인저연대와 육군 특전단(그린베레) 측 인원들이 참가하였다. 특히 미 유럽 주둔 육군 사령부(USAREUR) 소속 군단/사단의 장거리정찰중대(LRSC)장거리정찰분견대(LRSD)영국 SAS와 자주 교류하였고, 합동훈련도 주기적으로 함께하는 사이였다. 또한 이 장거리정찰대(LRSU)의 교육을 위해 레인저 훈련단 소속으로 4주간의 정찰 감시 리더 과정(RSLC: Reconnaissance and Surveillance Leader Course)을 만들게 된다. 이것은 위에서 언급했던 베트남 전쟁 시절의 '리콘도 스쿨(Recondo School)'을 계승한 것으로, 육군 이외에도 해군 네이비 씰이나 해병대의 리콘마린도 위탁교육을 들어왔으며 오늘날에도 존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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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대 중반 제18공수군단(XVIII Airborne Corps) 휘하 LRSU 부대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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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방위군 소속의 LRSU 부대 목록(2000년대 중반).

2.6.2. 장거리정찰대(LRSU)의 훈련과 특징

사단 소속의 장거리정찰분견대(LRSD)는 사단 지휘부에서 최대 90km 이상의 정찰작전과 휴민트 작전을 담당하였다.[34] 군단 소속의 장거리정찰중대(LRSC)는 군단 지휘부에서 최대 150km 이상의 정찰작전과 휴민트를 담당하였다.[35]

최소 작전 단위인 팀(Team)은 6인으로 구성되어 있었으며, 이는 베트남 전쟁 시기 장거리수색대(LRRP)와 동일했다. 각각 본부병력과 통신&지원병력을 따로 포함하고 있었고 장거리정찰분견대(LRSD)에는 총 6개의 정찰팀이, 장거리정찰중대(LRSC)에는 총 18개의 팀이 존재하였다. 그리고 그 정찰팀들이 다시 기동(모바일)팀, 고공팀, 해상팀 3개 분야로 나뉘어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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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사진은 2015년 당시 제18공수군단 휘하 제525군사정보여단 소속의 장거리정찰중대(LRSC)제51보병 F중대(공수)[36]의 선발 공고문이다.

지원 자격에 E4(상병) 이하의 경우에는 공수교육은 수료/레인저 스쿨은 지원자일 것을 요구하고, E5(병장) 이상은 공수교육과 레인저 스쿨 졸업자일 것을 요구한다. 정찰중대 내에서 각각 기동(모바일)팀, 고공팀, 해상팀 소대로 나뉘어져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받는 훈련에는 기본적으로이라고 나와있는데, 이외에도 스나이퍼 교육 등 많은 교육을 추가로 받았다. 타군과의 상호 교환 교육 차원에서 육군 교육이 아닌 미 해병 수색교육(BRC)을 받은 대원들도 있었다.[37]

장거리정찰대(LRSU) 부대들은 엄연히 베트남전쟁 시절의 군단/사단의 장거리수색대(LRRP)(레인저)를 계승한 것이며, 이곳 장거리정찰대(LRSU)에서 복무한 사람들도 현재 미국의 레인저부대 전우회에서 똑같은 레인저 대원으로 인정해주고 있다. 레인저부대 전우회 사이트에서 장거리정찰대(LRSU) 출신자들의 이야기를 보면 현역시절 육군 특전단(그린베레), 네이비 씰, 해병대 수색대(리콘마린)뿐만 아니라 영국 SAS같은 외국부대와도 함께 훈련했다고 한다. 이 장거리정찰대(LRSU) 대원들 중 상당수가 일정기간 복무 후에 육군 특전단(그린베레)으로 지원해서 옮겨가거나 몇몇 소수인원은 바로 델타 포스로 지원한 사례도 있다. 이외에도 주방위군 소속 장거리정찰대(LRSU)의 경우에는 사실상 '레인저 전우회'라고 불렸다고 하는데, 그 이유가 부대 구성원들 대부분이 75레인저연대에서 현역으로 복무한 뒤 주방위군으로 전환한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리고 특이하게도 해병 수색대(리콘 마린) 전역 후 주방위군 장거리정찰대(LRSU)로 재입대 한 사람들도 많았다고 한다.

1991년 냉전이 끝나고 미 육군이 대대적인 감축을 실시하여 군단/사단들이 해체 또는 주방위군으로 전환되었고, 이때 많은 장거리정찰대(LRSU) 부대들도 함께 해체된다. 남은 장거리정찰대(LRSU) 부대들은 2000년대로 넘어와 아프가니스탄 전쟁이라크 전쟁에서 몇 차례 파병되어 활약하다가 2000년대 중반에 또 대대적으로 해체된다. 2010년대 까지도 남아있었던 몇몇 현역, 주방위군 소속 장거리정찰대(LRSU) 부대들도 2017년에 결국 모두 해체되어 사라졌다.[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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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2공수사단 장거리정찰분견대(LRSD) (199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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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3공수여단 소속 74th LRSD.(장거리정찰분견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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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HALO 점프 훈련을 실시하는 제82공수사단 장거리정찰분견대(LRS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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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아프간에서 그린베레 제10특전단 소속팀과 함께 작전 중인 제82공수사단 LRS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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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2공수사단 패스파인더(RANGER) 플래툰(2016년 해체)

3. (1986년 이후) 오늘날의 제75레인저연대

3.1. 제75레인저연대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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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의 제75레인저연대는 1986년에 창설되었으며, 신속한 기습 공격으로 적의 공항 등 중요 목표지점을 점령한 후 아군 증원군이 도착할 때까지 사수하는 임무, 고가치 표적 생포, 목표 및 테러리스트 강습과 같은 직접타격(Direct Action) 임무, 그리고 델타포스나 그린베레, 해군의 데브그루나 네이비 씰 같이 화력이 부족한 소규모 특수부대에게 화력지원 등으로 서포트해주는 임무 등을 수행한다.

1974년 현재의 제1, 제2레인저 대대가 창설된 이후,

3.1.1. 편제

75레인저연대의 본부(중대)와 특수 대대(Special Troop Battlion), 그리고 제3 레인저 대대는 미 육군 군사 기지인 조지아주 포트 베닝에 위치해있다. 제1 레인저 대대는 조지아주 헌터 육군 비행장에, 제2 레인저 대대는 워싱턴주 루이스 맥코드 합동 기지에 위치해있다.

이전에는 레인저대대마다 레인저 중대(라이플)가 Alpha, Bravo, Charlie 이렇게 3개씩 존재하였으나, 중동지역에서의 전쟁이 장기화되면서 2007년에 부대 확대 개편으로 각 레인저대대마다 4번째 Delta중대(라이플)가 새롭게 신설되었다.

1개의 레인저 중대(라이플)의 구성은 다음과 같다.

75레인저연대는 소수의 고급인력으로 임무를 수행하는 타 특수부대와는 달리 약 37명 규모의 소총수 소대(rifle platoon) + 지원병력 단위로 고가치 타격물(HVT)에 대한 직접타격작전(Direct Action)을 수행한다. 2000년대 이후로는 80, 90년대와 달리 중대 단위의 대규모 작전을 거의 수행하지 않는다. 레인저 연대의 역사와 편제는 이 영상을 통해 볼 수 있다.#

3.1.2. 인적자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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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5레인저연대에 들어가기 위해선 지원하여 75 레인저 연대원 선발 과정인 RASP(Ranger Assessment and Selection Program)를 통과해야 한다.[42] 참고로, 75레인저연대 선발 프로그램인 RASP는, 전군에게 개방되어 있는 유명한 교육 과정인 레인저 스쿨과는 다른 전혀 별개의 과정이다. 제75레인저연대나 레인저 스쿨이나 둘 다 미국의 군사 교육기관 밀집 기지인 조지아포트 베닝에 주둔하고 있지만 레인저 스쿨은 제75레인저연대와는 별개의 존재다. 레인저 스쿨은 미 육군 교육사령부[43] 예하의 공수/레인저훈련여단[44] 소속이고, 제75 레인저 연대는 미국 특수작전사령부[45] 예하의 육군 특수작전사령부[46] 소속으로서, 이 둘은 별개의 조직이다. 이후에 RASP를 통과하면 전투훈련과정에 본격적으로 들어가는데 매우 긴 과정으로 RASP까지 합친다면 실전 투입 가능한 레인저 대원 하나를 양성하는데 통상 30주가량이 소모되며 양성비로만 2010년대 기준 인당 4~5억 가량이 소모된다.[47]

하지만 75 연대에서 계속 장기 복무하려면 원칙적으로 레인저 스쿨을 수료해야 한다. 그리고 75레인저연대원들은 정말 빨라야 하사 때 레인저 스쿨에 입교하는 타부대들과는 다르게 대개 75레인저연대원이 된 지 1년 이내에 레인저 스쿨에 입학하며 보통 첫 파병을 마치고 바로 레인저 스쿨에 입교하는 경우가 많다.[48] 레인저 스쿨 수료 경력이 없으면 결국 75 연대 장기복무 심사에서도 탈락하고 다른 부대로 전출 당하게 된다.

제75레인저연대는 그린베레델타 포스에 우수한 인적 자원을 배출하고 있으며 영국 SAS와도 교류를 하고 있다. 이 외에도 각종 베스트 레인저 경연대회나, 저격수 대회, 박격포 대회 등 온갖 군 대회에서 상위권 성적을 쓸어담고 있다.

3.1.3. 장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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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대우를 받는 부대답게 전투 군장도 일반 미 육군 보병과는 다른 장비를 사용하는데, 소말리아 작전 등 1990년대에는 일반 보병의 방탄복보다 성능이 좋은 RBA(Ranger Body Armor) 방탄조끼를 지급받았고, 2000년대에는 전투 군장에 RG(Ranger Green)이라는 독특한 녹색 원단을 사용했다. 2012년경부터는 미군 특수부대의 상징처럼 된 옵스코어 FAST 방탄모, FN SCAR 소총과 M4A1 SOPMOD I/II 소총이[49] 지급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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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레인저연대의 모래색 베레모(Tan beret).

1975년에 검은색 베레가 레인저 대대의 공식 군모로 채택되었으나, 2001년 에릭 신세키 미합중국 육군참모총장의 지시에 검은색 베레가 미 육군의 공식 군모로 정해졌고, 차별화를 원한 75 레인저 연대의 베레모는 SAS와 흡사한 모래색 베레로 바뀌었다. 처음엔 레인저 예비역들의 반발이 좀 있었으나, 신세키 대장 본인도 레인저 부대 복무 경력이 있는 레인저 출신이었기 때문에 큰 반발은 못하고 결국 받아들였다. 그런데 일반 육군 병사들 사이에서 베레모의 불편함에 대한 불만이 많아서 육군 군인들이 전투복 착용시에는 일부 행사 등의 경우에만 베레모를 쓰고 그 외엔 항상 전투모를 쓰도록 육군 규정이 바뀌었다.

3.1.4. 특수부대인가 경보병부대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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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5374a1614327a.jpg 파일:5448bd58b7413a3ee66b3d268a89d7f6.jpg
SOCOM 소속이지만 다른 특수부대들과는 구별되는 상당히 이질적인 부대다. 다른 특수부대들은 팀 단위 편제인데 비해 제75레인저연대는 일반 보병부대와 같은 편제를 하고 있으며, 다른 특수부대들에 비해 보유 화력도 강하고 작전 시 같이 움직이는 단위 병력도 많은데다가, 치고 빠지는 게릴라전이 아니라 상당한 병력과 화력으로 목표를 공격하여 아예 점령해버리는데 주안점을 두는 등, 여타 특수부대들의 성격과는 다른 점이 많다. 그래서 특수부대라기보단 경보병부대라고 보는 시선도 있다. -한 연대의 병사들이 모두 특수부대 급 전투력을 가지면 벌어지는 일-

육군 특전단 등의 특수부대들에 비하면 75레인저연대원들은 순수하게 다양한 상황에서의 '전투'를 상정한 훈련만을 주로 받는다는 것도 차이점이다.[50] 사실 특수부대들의 훈련 기간 중에서 전투에 직접적으로 관계된 훈련의 비중은 생각만큼 크지는 않다. 특수부대의 훈련 기간이 긴 이유는 직접적인 전투상황 뿐 아니라 더욱 다양한 상황들을 상정한 각종 민사 작전, 적 지역에서 첩보의 수집 및 거짓 정보의 유포를 통한 교란, 적국의 국방시설이나 기간시설물들에 대한 폭파 등 사보타주, 게릴라 작전 등 다양한 임무와 상황들에 대비하는 여러가지 가상 훈련과 교범/교리 습득, 오랜 주특기 교육 등 다양한 교육/훈련들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일단 75레인저연대는 공식적으로 특수작전사령부 소속의 특수부대인 건 맞다. 물론 미국 특수작전사령부(SOCOM)엔 전투부대가 아닌 지원부대도 많기 때문에, SOCOM 소속 부대들 전부가 특수부대의 성격을 띠는 것은 아니다. 예를들어 제160특수작전항공연대 ”SOAR”도 SOCOM 소속이지만 사실상 항공기를 통한 특수부대를 지원하는 지원부대이고 직접 전투, 정찰, 수색, 첩보 수집 등의 임무를 하지는 않는다. SWCC도 마찬가지로, 네이비 씰이 곤경에 처했거나 작전 지역을 이탈해야 할 때, 특수작전보트를 타고 재빨리 들어가서 화끈한 화력으로 적들을 제압하고 씰을 구출하는 지원부대다. 그러므로 SOCOM 소속이라고 모든 소속 부대들이 우리가 생각하는 "특수전 부대"라는 생각은 버려야 한다. 어쨌든 지원부대가 아니라 특수작전과 관련된 전투부대인 75레인저연대는 SOCOM 소속의 특수부대인 것이다.

다만 특수부대이긴 특수부대인데, 다른 특수부대들과는 이질적인 요소가 꽤 있다는 것이다. 예를들어, 상병(Specialist) 부터 지원을 받는 그린베레와는 다르게 제75레인저연대의 경우는 민간에서 바로 지원할 수도 있어 대다수의 미군 특수부대들과는 달리 사병 계급들도 전투병으로 많이 존재한다. 다만 최근 들어 그린베레도 민간모집을 실시 할 수 있도록 규정이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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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공개된 작전을 보면, 2000년대 초반까지는 본격적인 특수부대의 작전시 위급 상황 대비 및 주변에 배치되어 화력 투사 지원을 하거나, 특수부대가 수월하게 작전할 수 있도록 근처 거점 지역을 기습 공격으로 제압, 확보 혹은 점령하는 임무를 맡는 경우들이 많았다. 하지만 2000년대 중반 이후부터는 부대의 성격이 많이 바뀌어서 레인저부대 단독으로 적군 수뇌부를 체포, 사살하는 직접타격작전을 주로 담당하게 되어 일종의 특수전사령부(SOCOM) 내의 'SWAT팀' 개념의 부대로 완전히 바뀌었다.

75레인저연대는 1개 레인저대대 단위로 로테이션 전투 파병되며 한 번의 전투 파병 기간이 약 90일~120일(3개월~4개월)이라고 한다. 1개 소대(platoon) 단위로 파병지역 각지에 분산 배치되어 타격작전을 수행하며, 작전 템포는 매우 바쁘게 돌아간다고 한다. 2015년에 나온 기사(링크)에는 제1 레인저 대대(1st Ranger Battalion)가 단 한 번의 전투 파병 기간 동안 900회 이상의 작전을 수행하였으며, 386명의 고가치목표물(HVT)을 포함한 1,700명이 넘는 적군을 생포하였고, 400명 이상의 적군을 사살했다고 한다. 또 다른 뉴스 기사(링크)에는 제1 레인저 대대가 2018년에 있었던 22번째 전투 파병에서 198회의 작전을 수행하였고 1,900명 이상의 적군을 사살하거나 생포하였다고 한다. 2001년부터 2015년까지만 해도 3개 레인저대대가 아프가니스탄 전쟁이라크 전쟁에 '각각' 20회씩 로테이션 전투 파병을 다녀왔다고 하며, 75레인저연대는 오늘 날 미 통합특수전사령부(SOCOM) 소속 특수작전부대들 중에서 가장 많은 HVT를 생포, 사살한 부대라고 한다.

이렇게 레인저부대는 신속대응 보병부대적인 성격, 경보병 부대적인 성격, 특수부대적인 성격들을 모두 가지고 있는 독특한 특성을 가진 부대이다.

그래서 여러 군사 전문가들이나 군사 매체들의 견해를 보면, 제75레인저연대를 특수부대(special operations forces)라고 정의하는 의견들이 있는 반면, 그냥 경보병부대(Light infantry)라고 칭하는 경우들도 있다. 그리고 특수부대적인 성격과 경보병적인 성격을 동시에 가지고 있는, 미군만이 보유한 독특한 정예 부대라는 의미에서 "미국의 정예 경보병 특수부대"(Elite American light infantry special operations unit)라고 표현하는 경우도 있다.

즉 제75레인저연대가 특수부대냐 경보병부대냐는 논란엔 뚜렷한 정답이 있다기 보다는 특수부대의 범위에 대한 견해의 차이에 따라서 다양한 시각이 존재하는 것이다. '특수부대'라는 용어의 정의 자체가 견해와 기준에 따라 달라질 수 있기 때문에 100% 절대적인 정답은 없는 문제이기도 하다. 위의 사례에서 본 제160특수작전항공연대 역시 야간 비행이나 초저공 비행, 사막지형이나 해상에서의 비행, 기습공격등에 특화되어 있어 특수부대의 작전수행에 결정적인 역할을 담당하며 조종사들 역시 혹독한 훈련을 받지만 단순히 '지원부대'로만 보는 시선도 있다. 항공기나 선박등은 단순한 이동수단이 아니며 정찰, 수색, 첩보활동은 특수부대 임무 중에 일부일 뿐이다. 제75레인저연대가 직접전투(Direct Action)에 전문성이 있다는 것이 해당부대가 특수부대가 아니라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무엇보다 해당부대를 직접 운용하는 미 육군의 홈페이지도 제75레인저연대를 특수부대(special operations forces)로 분류한다. 더 궁금한 점은 75레인저연대 전역자가 말하는 레인저연대 생활(링크)을 꼭 읽어보도록 하자. 읽고 나면 레인저가 특수부대가 아니라는 생각은 사라지게 될것이다. 또한 엄밀히 말해도 레인저의 경우는 고전적인 의미에서의 특수부대에 부합한다.[51]
사실 특수부대라는게 처음부터 지금과 같이 전문적으로 발달한 형태였던 건 아니었다. 현재처럼 복잡한 롤까지 수행할 수 있게 다양하고 전문적인 훈련을 받게된 것은 엄밀히 말하면 1970년대 뮌헨 참사 이후부터이며, 그 이전만 해도 특수부대라고 하는 것은 사실상 현대의 수색대에 약간의 특수전에 관한 추가적인 훈련을 받은 형태라고 보면 된다. 레인저들도 애초에 사단 내 우수인력들을 뽑아둔 사단 수색대에서 출발한 것이기도 하고... 그리고 2000년대 테러와의 전쟁 이후로 특수부대의 중요성과 필요성이 이전보다 훨씬 높아지면서 특수부대에 대한 지원도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만큼 늘어나고 미 특수부대들의 수준과 전문성이 크게 발달하게 됐다. 이에 따라 미 특수부대들의 교육훈련들이 더욱 다양화, 전문화되었고 고급훈련 이수 비율도 높아졌으며, 전술, 장비, 예산지원 등 여러 면에서 훨씬 더 일취월장 발전하게 된 것이다.

3.2. 제75레인저연대 직할 수색중대

3.2.1. 소개 및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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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인저연대 직할 수색분견대(Regimental Reconnaissance Detachment: RRD) 시절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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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레인저연대 직할 수색중대(Regimental Reconnaissance Company: RRC) 시절의 모습
1984년에 75레인저연대의 본부 중대(HHC)[52] 소속으로 연대 직할 수색분견대(RRD: Regimental Reconnaissance Detachment)라는 이름으로 창설되었으며, 75레인저연대의 연대장(대령)을 위한 직할 수색분견대였다. 수색분견대장은 대위 계급이었으며, 분견대장을 포함하여 6명의 레인저 대원들이 본부인원을 구성하였다. 그리고 휘하에 각각 6명으로 이루어진 수색팀 3개가 존재하였는데, 1팀은 제1레인저대대, 2팀은 제2레인저대대, 3팀은 제3레인저대대를 지원하였다. 따라서 연대 직할 수색분견대(RRD)의 총 인원은 본부와 수색팀 3개를 합쳐서 총 24명으로 구성된 매우 소규모 인원이었다. 6명으로 구성된 수색팀의 리더는 보통 중사(E7)였지만, 종종 하사(E6)였다. 또한 이들은 다른 지역에 별개의 부대로써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기존 75레인저연대의 본부중대(HHC)와 제3레인저대대가 위치한 조지아주 포트베닝에 있었다. 건물도 기존 레인저연대가 쓰는 건물을 썼으며, 기타 필요한 서포트 병력들도 전부 기존 75레인저연대의 서포트 병력들이 담당했다.

RRD 시절의 임무는 주로 고공강하(HALO)로 침투하여 75레인저연대 병력들을 위한 정찰(Recon)작전을 수행하는 것이었다. 다만 테러와의 전쟁 이후로 그러한 전통적인 임무보다 JSOC이나 75레인저연대 테스크포스 사령관을 위해 정보를 수집하는 임무를 맡게 된다. 이로 인해 생긴 공백을 메꾸기 위해 75레인저 연대에는 RRD와는 별개로 정찰 소대가 창설되었다. 이때까지는 같은 75레인저연대 소속으로 티어 2인 육군특수작전사령부(USASOC)에 소속되어 있었다. 그런데 2007년에 75레인저연대에서 특수대대(Special Troop Battalion)를 따로 창설하면서 여기에 연대본부중대(HHC), 통신중대, 군사정보중대, 선발&훈련 중대를 휘하에 두게되었고, 이때 연대 직할 수색분견대(RRD)에서 연대 직할 수색중대(RRC: Regimental Reconnaissance Company)로 확장하여 특수대대 휘하에 들어가게 되었다. 그리고 이때(2007년)부터 연대 직할 수색중대(RRC)의 소속은 티어 1합동특수작전사령부(JSOC)로 바뀌게 된다. 물론 부대 위치는 당연히 조지아주 포트베닝의 75레인저연대 특수대대와 제3레인저대대와 함께 그대로 있다. 현재 정확한 부대 규모는 기밀이라 알려져있지 않지만 수색중대(RRC)로 확장되면서 휘하에 6개의 수색팀을 두었다고 알려진 걸로 보아 대략 50~60 명 규모로 추측된다.

3.2.2. 지원자격 및 선발과정

연대 직할 수색분견대(RRD)는 1984년에 창설당시에는 당연히 75레인저연대 소속 레인저 대원만 지원이 가능했다. 하지만 2007년에 연대 직할 수색중대(RRC)로 확대 개편되어 합동특수작전사령부(JSOC) 소속으로 바뀐 뒤에는 기존 75레인저연대 소속의 레인저 대원 이외에도, 미 육군 정규 사단/군단의 '레인저' 유닛에 해당하는 장거리정찰대(LRSU) 대원들도 지원이 가능해졌다. 사단/군단 장거리정찰대(LRSU) 대원들의 경우에는 75레인저연대를 거치지 않고도 바로 연대 직할 수색중대(RRC)의 선발과정에 지원이 가능하다. 위의 레인저 부대 역사 항목에서도 이미 설명했지만, '레인저'라는 부대 자체가 원래 베트남 전쟁 시절에 미 육군 사단/군단의 장거리 수색대(LRRP) 역할을 하던 부대였었고, 70년대에 각 사단 레인저중대들의 해체와 2개 레인저대대로의 개편을 거쳐서 80년대에 이 레인저 대대들을 한 군데에 모아서 75레인저연대를 창설한 것이기 때문이다. 다만 2010년대로 넘어와서 육군의 사단/군단 장거리정찰대(LRSU)가 모두 해체된 뒤에는 육군 전체에서 공수교육과 레인저 스쿨, 정찰 감시 리더 과정(RSLC: Reconnaissance and Surveillance Leader Course) 교육을 수료한 병사들은 누구나 지원이 가능하다.

그러니까 현재 지원 자격은 다음과 같다.
지원자들은 먼저 웨스트 버지니아의 산악지대에서 실시되는 3주간의 셀렉션 코스(선발과정)를 통과하여야 한다. 여기에는 처음에 스트레스 위크(Stress Week)로 불리는 주간이 있는데, 주로 걷기(Walk) 구간이다. 약 34kg(75lbs)의 군장을 메고 일주일 동안 매일 12마일(19km)에서 20마일(32km)을 걷게(Walk) 된다고 한다. 마지막 날에는 40마일(64km)을 걸어야(Walk) 한다.

매번 셀렉션 코스(선발과정)의 지원자들의 숫자는 약 5명~20명 사이라고 한다. 여기서 약 5~7명 정도가 셀렉션 코스를 통과하게 되고, 이들 중에서도 면접 등을 거쳐서 실제로는 2~3명 정도의 인원만이 최종적으로 선발되어 이후 34주간 진행되는 '수색 훈련 과정'(Recon Training Course: RTC)을 받게 된다. RTC 과정의 훈련내용은 알려져 있지 않지만 일단 육군 특전단(그린베레)의 JFK육군특수전학교에서 모두가 고공강하교육(HALO)을 배우게 되고, 기본적으로 헬기레펠 훈련, 고정익 항공기, 스몰보트 훈련 등 수색정찰(Recon)작전에 초첨이 맞춰져 있다고 한다.

3.2.3. 기타 이야기

75레인저연대에서 많은 레인저 대원들의 궁극적인 목표는 레인저 중대(라이플)에서 부소대장(Platoon Sergeant)이 되는 것이었다. 그것이 핵심이었고 그 당시에는 당연히 그랬다. 그러나 이러한 이유 때문에 많은 레인저 대원들이 연대 직할 수색분견대(RRD)로 가는 것이 자신들의 커리어와 진급 할 기회를 망치고, 잠재적으로는 레인저 라이플 소대를 지휘할 기회를 잃는 것으로 여겼다. 1990년대에 연대 직할 수색분견대(RRD)가 수행했던 작전들은 좀 시원찮은 것들이었고, 90년대 중반에는 연대 직할 수색분견대(RRD)에 대한 부정적인 소문이 많았는데, 정찰 훈련 도중 적발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었다. 다만 후에 이것은 고의적으로 레인저 연대 차원에서 RRD의 능력 개선을 위해 강요한 시나리오 때문으로 알려졌다. 이때 6명에 불과한 RRD 팀이 타겟을 공격하도록 명령했다고 한다. 1990년대 후반에 들어와서 연대 직할 수색분견대(RRD)는 선발 및 훈련과정을 많이 개선하고, 엄격했던 용모 규정을 폐지하는 등 전반적으로 긍정적 변화를 겪게 된다. 이 시기에 보소니아에서 다른 JSOC 소속 부대와 합동 작전에 참여했다.

3.2.4. 수행한 작전

4. 역대 제75레인저연대장

# 이름 기간 비고
3대 웨인 다우닝(Wayne A. Downing) 1984년 5월 ~ 1985년 7월 [53]
4대 조지프 스트링햄(Joseph S. Stringham) 1985년 7월 ~ 1987년 6월 [54]
5대 웨슬리 테일러(Wesley B. Taylor, Jr.) 1987년 6월 ~ 1989년 6월 [55]
6대 윌리엄 커넌(William F. Kernan) 1989년 6월 ~ 1991년 6월 [56]
7대 데이비드 그레인지(David L. Grange) 1991년 6월 ~ 1993년 7월 [57]
8대 제임스 잭슨(James T. Jackson) 1993년 7월 ~ 1995년 7월 [58]
9대 윌리엄 레슈친스키(William J. Leszczynski) 1995년 7월 ~ 1997년 6월 [59]
10대 스탠리 매크리스털(Stanley A. McChrystal) 1997년 6월 ~ 1999년 7월 [60]
11대 펄 킨(Purl K. Keen) 1999년 7월 ~ 2001년 10월 [61]
12대 조지프 보텔(Joseph L. Votel) 2001년 10월 ~ 2003년 6월 [62]
13대 제임스 닉슨(James C. Nixon) 2003년 6월 ~ 2005년 7월 [63]
14대 폴 라카메라(Paul J. LaCamera) 2005년 7월 ~ 2007년 8월 [64]
15대 리처드 클라크(Richard D. Clarke, Jr.) 2007년 8월 ~ 2009년 8월 [65]
16대 마이클 쿠릴라(Michael E. Kurilla) 2009년 8월 ~ 2011년 7월 [66]
17대 마크 오돔(Mark W. Odom) 2011년 7월 ~ 2013년 7월 [67]
18대 크리스토퍼 바넥(Christopher S. Vanek) 2013년 7월 ~ 2015년 6월 [68]
19대 마커스 에반스(Marcus S. Evans) 2015년 6월 ~ 2017년 6월 [69]
20대 브랜든 테그마이어(Brandon R. Tegtmeier) 2017년 6월 ~ 2019년 7월 [70]
21대 토드 브라운(Todd S. Brown) 2019년 7월 ~ 2021년 7월
22대 짐 커시(Jim Kiersey) 2021년 7월 ~ 현임

5. 메달 오브 아너(명예 훈장) 수훈자

현역 레인저 부대 소속으로 무공을 인정받아 명예 훈장을 받은 사람[71]들의 명단으로, 명예 훈장을 받게된 전투가 일어난 당시의 계급과 날짜, 지역임.

6. 제75레인저연대 출신인물

여기서는 최근 2000년대 이후의 75레인저연대 출신자들만 언급한다. 또한 75레인저연대에서만 복무한 사람들만 다루도록 한다. 75레인저연대에서 복무하다가 이후 그린베레(육군 특전단)델타 포스로 넘어간 사람들은 각 문서에서 다루기로 함.
}}}||
마이크 에드워즈의 팟캐스트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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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콜라스 무어의 팟캐스트 인터뷰

7. 미디어에서의 모습

멀티 플레이에서는 몇 가지 맵에서 플레이 가능한 진영으로 나오며 맵 시작시 레인저들의 구호인 "Rangers Lead the way!!"[74]라는 말을 들을 수 있다. 캠페인에서 플레이어가 조작하는 레인저는 아프간에선 조셉 앨런 일병, 미국 본토에선 제임스 라미레즈 이병이며 이들의 동료로 폴리 하사, 던 상병같은 레인저도 등장한다.

8.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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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라틴어이다.[2] 엄밀히 말하면 75레인저연대가 창설되기 이전에 레인저라는 이름을 썼던 여러 과거 부대들(한국전쟁 때의 사단 레인저 중대, 2차 세계대전 때의 레인저 대대, 그리고 그 전인 17~19세기에 존재했던 수많은 레인저 부대들)은 현 75레인저연대와 직접 연관은 없고 레인저라는 이름만 따온 것이지만, 어쨌든 75레인저연대는 과거에 있었던 모든 레인저 부대들을 모두 자기의 조상으로 부대 역사에 채택하고 있다.[3] 현대엔 Forest ranger와 Park ranger로 불린다.[4] 굳이 자국어로 번역 안 하고 그냥 원어 그대로 레인저라고 쓰는 경우도 많긴 하다.[5] 이런 의미 변화의 유사한 예로 유럽의 '척탄병'이 있다. 척탄병이란건 원래는 적 가까이 다가가 폭탄을 투척하는 임무의 병사라는 뜻이었으나, 멀리 잘 던지려면 건장하고 신체 능력이 좋아야 하고, 적 가까이까지 다가가면서 폭발물을 다루려면 용맹해야 하므로 이런 강인하고 용감함 쪽의 특성이 더 강조되어서 나중엔 원래의 단어뜻이 지녔던 폭탄 투척이라는 임무와 무관하게 그냥 용맹한 정예병을 두루 가리키는 단어로 널리 쓰이게 된 바 있다.[6] 재미있는 사실은 2000년대로 넘어와 아프간, 이라크 전쟁이 한창이던 2006년에 영국 육군 측에서 미군의 75레인저연대를 본떠서 만든 경보병 스타일의 특수작전 부대인 특수작전 지원단(SFSG)의 초기 명칭은 영국판 레인저(Ranger) 부대로 명명하려 했다는 점.[7] 제6615 레인저연대(6615th Ranger Force)는 3개의 레인저대대(제1, 제3, 제4) 이외에도 미 육군 제509공수대대(509th Parachute Infantry Battalion)를 비롯한 기타 부대들도 함께 포함되어 있었다. 1대대와 3대대는 1944년 1월 시스테르나 전투 중 헤르만 괴링 기갑사단에게 포위당해 767명의 레인저 중 단 6명만이 죽거나 포로로 잡히지 않고 탈출했을 정도로 치명적인 피해를 입었고 4대대도 이들을 구하려다 큰 피해를 입으면서 이탈리아의 레인저는 같은 해 8월에 모두 공식적으로 해체되었다.[8] 라이언 일병 구하기에 등장해서 라이언 일병을 구해오는 부대도 제2레인저대대이다.[9] 이후 제3, 제4레인저 대대도 총괄 지휘했다.[10] 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1942년 미국 콜로라도주 캠프 카슨에서 창설된 제98 포병대대(98th Field Artillery Battalion)가 하와이에서 1년이 넘는 레인저 훈련(Ranger Training)을 거쳐서 1944년 7월에 제6레인저 대대(6th Ranger Battalion)로 변경되었다. 레인저 대대로 변경되면서 기존 포병대원들의 방출과 신규 대원 유입을 통해 이전의 1,000명 규모에서 500명 규모로 줄어들며 정예 레인저 대원들만 남게 되었다.[11] 1951년 3월 7일~4월 4일 동안 이루어진 작전으로 당시 중공군에 의해 빼앗긴 상태였던 서울의 재탈환 작전.[12] 이후 제25보병사단에는 미국 본토에서 훈련을 마치고 한국에 첫 파병된 '제5레인저 중대(5th Ranger Company)'가 새롭게 배속된다. 밑에서 설명.[13] 3번째로 높은 훈장[14] 복무 중 전사하거나 부상을 입은 군인에게 수여. 제2레인저 중대에서는 레인저 대원 1명이 혼자서 2개나 3개의 퍼플하트를 받은 경우도 많았음.[15] Table of Organization and Equipment: TOE[16] '보병' 자를 빼고, 이름 맨 뒤에 괄호 안에 있던 Ranger를 앞으로 당겨서 원래 '보병'이 있던 위치에 넣었다.[17] '메릴의 약탈자들(Merrill's Marauders)'이라는 애칭으로도 불렸으며 그 유명한 무타구치 렌야가 지휘하던 인도-버마 전선에서 활동했던 부대다. 자세한 내용은 임팔 작전 참조. 또한 1962년 동명의 영화로도 제작이 된 바 있다.[18] 더 정확히 말하면 후술하듯이 장거리수색대에서 레인저로 이름이 바뀐[19] 2차 세계대전 때나 한국전쟁 때에 만들어졌다가 해체됐던 그 레인저 대대/중대들도 그보다 훨씬 전에 존재했었던 각종 레인저 부대들에서 레인저라는 이름을 따왔지만 실질적인 관련성은 없다는 점에서 마찬가지다.[20] 정확히 말하면 수색중대에서 레인저중대로 이름이 바뀐[21] 미국은 역사가 짧은 국가여서 그런지 오래된 전통을 무척 소중히 여겨서, 새로 생긴 것도 어떻게든 과거에 존재했던 것과 연결지으며 역사를 최대한 옛날로 넓히려는 경향이 있다. 미해병대가 2006년에 만든 MARSOC 특수작전연대도 역사가 짧은 신생부대라는 인식이 마음에 걸렸는지, 2014년도에 무려 2차 세계대전 때 해체된 부대인 해병대 레이더스의 이름을 따와서 부대명을 레이더연대로 개칭했고 심지어 부대마크도 거의 비슷하게 부활시켰다.[22] US Army 75th Infantry Regiment (Ranger)[23] 그리고 그 2차 세계대전 때의 레인저 대대는 1600~1700년대부터 있었던 각종 레인저 부대에서 이름을 따온 것이다.[24] 월남전 이전에 존재했던 LRRP 중대는 오직 동서독 국경지대를 순찰하기 위해 존재했었다. 그 시절엔 동서독 국경 경비가 허술해서 간첩도 많이 넘어오고 지뢰, 도발 등 각종 위험요소가 많았었다.[25] 5th Special Forces Group (Airborne)[26] RECONnaissance and commanDO에서 대문자 부분을 딴 약칭[27] 한국의 파월 맹호/백마 수색대도 이런 방식으로 운영되었다.[28] 참고로 당시 베트남에 파병되었던 대한민국 특전사 부사관과 장교들 중 일부도 이 교육을 수료한 후 파월 맹호/백마 수색중대에 간부가 되어 교육내용을 전수하고 수색/정찰 작전을 주도하였다. 링크 사진 속 가장 왼쪽에 있는 사람의 가슴을 보면 역삼각형 마크가 있는데 미군 Recondo 과정 수료자임을 인증하는 흉장이다.[29] FFV(Field Force Vietnam)는 주월미군의 군단급 사령부이다.[30] 노르웨이판 ARSOCFSK는 2차대전 당시 활약하고 사라진 레지스탕스 특수부대 Norwegian Independent Company 1를 시조로 간주 중이다. 한국도 태권도의 뿌리가 삼국시대 벽화에 나오는 무술이라고 선전하기도 했었는데, 이것도 다 위와 일맥상통한 취지의 사례이다.[31] Long Range Surveillance Company[32] Long Range Surveillance Detachment[33] 육군 기갑사단에는 없었던 것 같다. 검색해봐도 존재가 확인되지 않는다.[34] 쉽게 말해서 미 해병대의 각 사단마다 존재하는 사단 수색대대(디비젼리콘)과 흡사하다.[35] 미 해병대 각 함대(FMF)에 소속되어 함대사령관 및 해병대(Corps) 사령관의 지휘를 받는 함대수색대(포스리콘)과 흡사하다고 하겠다.[36] 제51보병 F중대(공수)는 (1917년에 최초로 창설되어 몇번 해체와 재창설을 거듭하다가) 1967년 9월에 재창설되어 베트남 전쟁 당시 육군 제23보병사단 소속 장거리수색중대(LRRP)였다. 1968년 12월에는 75(에어본 레인저)G중대로 바뀌었고, 1971년 10월경에 해체. 1986년 12월 독일에서 재창설되어 당시 유럽에 주둔하고 있던 미 육군 제7군단 장거리정찰중대(LRSC)가 되었고, 냉전이 끝나고 1991년 11월에 제7군단 해체와 함께 사라졌다. 1995년 4월에 재창설되어 제18공수군단 휘하 제525군사정보여단 소속의 군단 장거리정찰중대(LRSC)가 되었고, 2009년 3월에 또 해체 된다. 2014년 11월에 다시 재창설되어 제18공수군단 장거리정찰중대(LRSC)가 되었다가 2017년경 해체되었다.[37] 베트남계 미국인이자 유명한 전술사격 강사인 '투람'이 그 예이다. 투람은 제82공수사단장거리정찰분견대(LRSD)를 거쳐서 그린베레 제1특전단 CIF특임대, 그리고 델타 포스에서 서포트로 복무하였는데 투람이 처음에 제82공수사단장거리정찰분견대(LRSD) 해상팀에서 복무하던 시절에 미 해병 수색교육을 위탁 수료한 사진이 그의 인스타그램에 있다.[38] 제82공수사단 장거리정찰분견대(LRSD)의 경우는 패스파인더 소대(레인저)(Pathfinder Platoon(Ranger))로 명칭을 변경하여 존속.[39] 보통 화력조 차선임이 이 역할을 맡는다.[Cpl] [41] Ranger Antitank Weapons System(RAWS)[42] 본래는 RIP(Ranger Indoctrination Program)였으나 2009년부터 RASP로 교체되었다.[43] United States Army Training and Doctrine Command[44] Airborne and Ranger Training Brigade[45] USSOCOM[46] USASOC[47] 참고로 미 레인저의 경우 순수히 전투만 상정한 훈련을 받기에 타 미 특수부대원들에 비해선 양성비용이 굉장히 싼 편이다. 대표적으로 각각 2017년, 2023년 기준 그린베레는 Q코스 이수에만 '20억원'(실작전 투입을 위해 더 많은 교육 필요), 네이비씰은 실작전 투입 기준으로 '약 27억원(200만 달러)가 소진된다.[48] 훈련을 완전히 마치고 배치받는 네이비 씰이나 그린베레 등에 비해 좀 이질적으로 느껴질 수 있지만, 미국은 돈도 많고 실전 투입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저렇게 하는 거고 세계적으로 보면 이런 시스템이 보편적이다. 한국은 물론 타국의 특수부대들 역시 기초적인 특수전 훈련과 선발만 마치고 부대에서 복무 중에 따로 추가적인 훈련을 받는다.[49] 다니엘 디펜스사의 RIS II/RIS II FSP 쿼드레일 총열덮개가 장착된 M4A1이다.[50] 물론 헬리본, 공수 교육, 해상 침투 훈련 등 육, 해, 공의 침투 훈련은 기본적으로 받는다.[51] 레인저들은 RASP 때부터 소규모 분대 단위의 임무수행에 대한 훈련을 시작하여 독도법 등지의 생존술도 익힌다.[52] Regimental Headquarters and Headquarters Company.[53] 최종 계급 대장. 최종 보직 특수작전사령관[54] 최종 계급 준장. 최종 보직 멕시코 선임 국방 대표.[55] 최종 계급 준장. 최종 보직 불명.[56] 최종 계급 대장. 최종 보직 합동전력사령관.[57] 최종 계급 소장. 최종 보직 제1보병사단장.[58] 최종 계급 소장. 최종 보직 육군 워싱턴 D.C. 군관구사령관.[59] 최종 계급 준장. 최종 보직 제82공수사단 부사단장.[60] 최종 계급 대장. 최종 보직 국제안보지원군사령관.[61] 최종 계급 중장. 최종 보직 주파키스탄미국대사관 국방대표.[62] 최종 계급 대장. 최종 보직 중부사령관.[63] 최종 계급 준장. 최종 보직 불명.[64] 현 계급 대장. 현 보직 한미연합군사령관.[65] 최종 계급 대장. 최종 보직 특수작전사령관.[66] 현 계급 대장. 현 보직 중부사령관.[67] 최종 계급 준장. 최종 보직 불명.[68] 최종 계급 대령. 최종 보직 아프리카사령부 참모장 보좌관.[69] 현 계급 소장. 현 보직 특수작전사령부 참모장.[70] 현 계급 준장. 현 보직 제82공수사단 작전부사단장.[71] 타부대에서의 무공으로 명예 훈장을 받고 나중에 레인저부대에 지원해서 레인저 대원이 된 경우, 또는 다른부대에서 명예 훈장을 받은 대원이 과거 레인저 부대에서 복무한 경험이 있는 경우는 제외[72] 업햄 상병은 원래 29사단 소속 측량병으로, 독일어프랑스어 통역을 위해 차출되었다. 차출 당시 프랑스어는 억양이 서툴지만 독일어는 아주 유창하다고 말했다. 물론 그 전에 대대 내부에서 독일어와 프랑스어를 할 줄 아는 병력을 찾으려 했지만 모두 전사해서 밀러 대위가 인접부대를 찾은 것이다.[73] 지구 반대편에서 아군인 프라이스 대위가 쏜 러시아 핵미사일이었다. 다른게 아니라 중과부적으로 밀리는 상황을 뒤집기 위해 처음부터 전자기 펄스를 노리고 발사한 것.[74] Team Player 미션에서 셰퍼드 중장이 주인공을 일으켜 세우면서 외치기도 한다.[75] 작중 러시아 대통령의 영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