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로버츠 고지 전투는 2002년 3월, 아프가니스탄 아르마 산맥의 Takur Ghar 산에서 일어난 전투로, 미국-아프가니스탄 전쟁 초기 아나콘다 작전 중 벌어진 전투이다. 구조 대상이었던 닐 C. 로버츠(Neil C. Roberts)의 이름을 따서 로버츠 고지 전투라고도 하고, 전투가 벌어진 지명을 따서 타쿠르가르 전투라고도 한다.이 전투로 2명에게 명예 훈장이 주어졌는데, 단일 전투에서 2개 이상의 명예훈장이 나온 것은 미국 역사상 세번째이다.
2. 요약
DEVGRU가 헬리콥터를 정상에 착륙시킨다는 무리한 작전을 강행하는 바람에 데브그루 대원 닐 C. 로버츠가 추락하여 혼자 산 정상에 고립되었고, 이를 구조하기 위해 출동한 데브그루 팀 MAKO 30도 착륙하자마자 사방에서 총격을 받으며 고전한다. 공군 CCT 존 A. 채프먼이 단신으로 돌격하여 벙커를 처리하면서 숨이 트였지만 뒤이어 총격을 맞고 쓰러졌으며, 씰 대원 2명이 추가로 부상을 입었다. 전황이 좋지 않자 데브그루 팀은 채프먼의 생사를 확인하지 않고 퇴각해버렸다.이에 레인저를 중심으로 구성된 신속대응군이 출동하였는데 일이 또 꼬여버린다. 지원병력이 탑승한 2대의 MH-47 헬기는 본래 산 중턱의 착륙지점으로 향했어야 하지만, 그 중 하나가 산 정상으로 직행해버린 것이다. 혼자 남겨진 채프먼은 치누크를 엄호하기 위해 벙커를 나와 교전하던 중에 전사하였다. 치누크는 RPG와 중기관총에 피격되었음에도 불시착에 성공하였고 전멸을 피할 수 있었다. 하지만 3명의 레인저 대원과 치누크 미니건 사수가 전사하였고, 파일럿 2명을 포함하여 다수가 부상을 입었으며, 압도적인 적 병력에 의해 고립되었다.
계획대로 산 중턱에 착륙한 지원병력은 2시간동안 눈 덮인 산악지대를 등반하면서 기관총 사수와 교전하고 박격포 포격을 뚫어낸 끝에 정상에 도달하여 아군과 합류할 수 있었다. 지원병력이 정상에 도착하여 적을 몰아냈지만 파라레스큐 대원 제이슨 커닝엄이 중상을 입었다. 주간에 헬리콥터를 띄우는 것이 위험했기에 남은 병력은 해가 진 후에야 퇴출할 수 있었고, 커닝엄은 결국 부상 6시간 후에 사망했다.
3. 전개
2002년 3월, AFO 작전에 막 투입된[1] DEVGRU 팀 MAKO 30과 MAKO 21은 Takur Ghar 산 정상에 관측지점을 전개하려는 계획을 세웠다.본래 계획은 헬리콥터를 통해 산 정상으로부터 약 1.4km가량 떨어진 지점에 투입되어 도보를 통해 정상으로 향하는 것이었는데, 공군의 폭격 스케줄과 관련하여 작전이 2차례 지연되었다. 이에 SEAL팀은 헬기를 통해 산 정상에 직접 착륙하는 것으로 계획을 변경하였다. 목표지점에 직접 착륙하는 것은 굉장히 위험하지만[2], 시간이 너무 지체되면 야간 작전이 어려워질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데브그루 소속 MAKO 30과 MAKO 21 팀은 오후 11시 23분경 제160특수작전항공연대 소속 MH-47 헬기 2대(Razor 03, Razor 04)에 나누어 탑승하여 산 정상으로 향할 예정이었으나 엔진 고장으로 인해 작전이 또다시 지연되었다. 동이 틀 때까지 시간이 촉박한 상황이었음에도 데브그루는 작전을 강행하기로 결정하였다.
착륙 이전에 AC-130이 산 정상을 정찰비행하여 적 병력이 없다고 보고하였으나, 사실 산 정상에는 2개의 벙커를 포함한 적의 강화진지가 구축되어있었으며, 중기관총과 RPG로 중무장한 적이 대기하고 있었다. 오전 2시 45분 경, MAKO 21팀을 태운 Razor 03은 착륙 중에 기습을 당했다. 기관총과 RPG에 피격당하여 화재가 발생, 전력 공급이 끊겨 미니건과 항법장치가 작동불능이 되는 피해를 입었다. 파일럿은 회피기동을 하며 고도를 올렸는데 이 때 데브그루 대원 닐 C. 로버츠가 램프 밖으로 추락하는 사고가 일어났다. Razor 03은 여러발의 RPG에 피격당하고도 10킬로미터가량 떨어진 협곡 지대에 비상착륙하는데 성공했다. 닐 로버츠의 사망시점은 불명확하다.
1시간 가량 지난 후, Razor 04에 탑승한 MAKO 30 팀은 추락한 닐 로버츠를 구조하기 위해서 산 정상으로 돌아갔다. 무사히 착륙하였으나 착륙 직후부터 사방에서 집중포화를 맞았다. 모두가 적의 포화를 맞으며 옴싹달싹 못하는 와중에 제24특수전술대대 CCT 요원 존 A. 채프먼 상사[3]가 홀로 교전하며 첫번째 벙커로 전진하기 시작했다. MAKO 30팀의 리더였던 브릿 슬라빈스키가 뒤를 따르자 채프먼이 단신으로 돌격하여 첫번째 벙커의 적 3명을 근거리에서 모두 사살하였다. 채프먼은 2번 벙커를 제압하기 위해 또다시 전진하였는데, 이 때 상체에 2번의 총상을 입고 쓰러졌다.
뒤이어 M60 기관총 사수였던 브렛 모건이 엄폐를 벗어나 2번 벙커를 향해 선 채로 기관총 세례를 퍼부었다. 하지만 곧 양 다리에 총상과 파편상을 입고 쓰러졌고, 팀 리더 슬라빈스키는 퇴각을 결정한다. 네이비 씰 대원들은 AC-130에게 산 정상을 폭격해달라고 요청하며 퇴각하기 시작했다. 씰 팀의 지원 요청에 QRF 병력 22명[4]이 2대의 MH-47에 나누어 탑승하여 긴급출동하였다. 이때 씰 대원들은 2명의 부상당한 동료[5]는 수습하여 데려갔지만 채프먼의 생사는 확인하지 않고 내버려뒀다.[6]
쓰러졌던 존 채프먼은 사망한 것이 아니었고, 대략 1시간 정도가 지난 뒤 무전으로 지원을 요청하며 적과 교전하기 시작했다. 채프먼은 부상당한 상태로 최소 2명의 적을 사살하였는데, 이 중 한 명을 근접격투로 처치하기도 했다. 치누크 헬기가 정상에 접근하자, 채프먼은 헬기에 탑승한 아군이 공격받는 것을 막기 위해서 벙커에서 뛰쳐나와 엄호사격을 하며 적의 주의를 돌려놓았다. 이 때 채프먼은 16번의 총상과 파편상을 입은 끝에 전사하였다. 심장에 입은 총상이 결정적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사실 신속대응군이 정상으로 바로 향한 것도 원래 계획과 어긋나는 것이었다. 본래 계획대로라면 두 대의 치누크 모두 산 중턱[7]의 강하지점에 착륙하여 지원병력을 내리고, 정상까지 도보로 이동했어야했다. 이미 두 번의 직접 투입 시도가 처참하게 실패했고, 날이 밝기까지 한지라 정상에 직접 착륙하는 것은 자살행위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커뮤니케이션 과정에 오류가 생기면서 일이 틀어졌다. 병력 절반은 작전대로 착륙지점으로 향했으나 다른 절반이 정상으로 직행한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MAKO 30팀을 지원하던 AC-130을 비롯한 공군측도 신속대응군이 정상으로 바로 온다는 사실을 모르고 철수해버린 상황이었다.[8]
정상에 바로 도착한 치누크는 기관총과 RPG에 피격되었으나 기적적으로 불시착했다. 채프먼의 희생 덕에 화력이 분산되었음에도 미니건 사수 필립 스비탁과 레인저 대원 마크 앤더슨 상병이 기관총에 맞아 전사하였고 조종사 2명도 RPG 파편과 중기관총에 피격되어 중상을 입었다. 후방 램프를 통해 빠져나오는 와중에 일병 맷 커먼스, 하사 브래드 크로즈가 전사하기도 했다. 공군 파라레스큐와 켄터키주 주방위군 CSAR 대원이 불타는 치누크와 엄폐물을 오가며 부상자를 처치, 호송한 덕분에 부상자들의 생명을 구할 수 있었다. 무사히 빠져나온 승무원들과 공군 요원들, 레인저 대원들은 약 20m 가량을 전진하여 엄폐물을 확보하였으나 적의 압도적인 화력에 의해 고립되었다. 이와중에 CSAR 대원은 아군의 탄약이 떨어지자 위험을 감수하고 추락한 헬기로 뛰어가 전사자들의 탄약과 유탄발사기를 회수해오기도 하였다. TACP 요원은 현장의 레인저 지휘관 네이트 셀프 대위의 결단에 따라 데인저 클로즈를 감수하며 공중지원을 요청하였다. 이들은 압도적 전력 열세에도 불구하고 2시간 후 지원 병력이 합류할 때 까지 추가 사망자 없이 버텨낼 수 있었다.
한편 착륙 지점에 정상적으로 투입된 신속대응군 대원들은 산 정상에 고립된 아군과 합류하기 위해 약 2시간동안 하드코어 산악등반을 해야했다. 최대 70도 경사의 눈 덮인 고산지대를 등반하는 것 만으로도 상당한 난이도인데, 그 와중에 적 기관총 사수에게 발각되어 교전을 벌이고, 빗발치는 박격포 포격을 뚫어내야했다. 고생 끝에 정상의 아군과 합류하는데 성공하여 적을 몰아낼 수 있었지만 적 지원병력과 교전하던 중에 파라레스큐 대원 제이슨 D. 커닝엄이 치명상을 입었다.
최초 투입된 씰 팀과 신속대응군, 전사자와 부상자를 포함한 모두가 퇴출에 성공한 것은 해가 지고 난 후였다. 주간에 헬리콥터를 통해 이동하는 것은 위험했기 때문인데, 제이슨 커닝엄을 비롯한 부상자들 역시 아군의 추가 피해를 우려하여 긴급 의료 호송(MedVac)을 거부하였다. 결국 제이슨 D. 커닝엄은 부상 6시간 후에 사망한다.
한편 근방에서 정찰임무를 수행중이던 다국적 연합군 소속 SASR 대원들과 미국 공군 CCT대원은 신속대응군이 교전중일 때 근처의 감시초소에 잠입하는데 성공하였다. 이들은 연합군 공군의 폭격을 유도하며 알카에다 병력이 전투 지점에 집결하는 것을 막는데 기여하였다.
이 전투로 미군 7명이 전사하고, 12명이 부상당했으며, RPG에 피격된 2대의 MH-47이 파괴되었다. 탈레반과 알카에다 등 반군 병력은 최소 25명에서 최대 200명 가량이 전사한 것으로 추정된다.
4. 수훈
본래 4명에게 십자장이 수여되었으나, 2017년에 키어리 밀러의 은성훈장이 공군십자장으로 승격됐다. 존 채프먼과 브릿 슬라빈스키의 메달은 2018년에 명예 훈장으로 승격되었다.- 존 A. 채프먼(John A. Champman) 명예 훈장[9]
제24특수전술대대 소속 CCT 요원으로 DEVGRU 팀 MAKO 30에 파견되었다. 적의 집중 사격을 받는 와중에 단신으로 벙커에 돌격, 3명을 사살하고 엄폐물을 확보했다. DEVGRU 팀이 부상을 입은 채프먼을 두고 퇴각하여 낙오되었으며, 낙오되고 나서도 근접격투를 통해 1명을 사살하는 등 최소 2명의 적을 추가로 사살하였다. 이후 접근하는 아군 헬리콥터를 엄호하기 위해 엄폐를 벗어나 제압사격을 하던 중 전사하였다. 공군 측에서는 부상당해서 쓰러지기 전의 공적만 가지고도 명예훈장을 받기에 충분하다고 결론을 냈었고, 일각에서는 신속대응군 헬기를 엄호하다 전사한 공로로 명예훈장을 하나 더 줘야한다는 말까지 나온다. 베트남 전쟁 이후 최초이자 유일한 공군 소속 수훈자이다. 공적이 영상증거로 남아있는 최초의 수훈자이기도 하다. - 브릿 슬라빈스키(Britt Slabinski) 명예 훈장[10]
첫번째 벙커 클리어링[11]과 팀 리더로서의 부상자 수습 및 퇴각에서의 공로로 수훈했으나 수훈 자격과 관련된 논란이 있다. - 제이슨 D. 커닝엄(Jason D. Cunningham) 공군십자장
공군 파라레스큐 대원으로, 불시착 직후에 불타는 헬리콥터에 남아 조종사를 응급처치하였고, 화망을 여러차례 뚫어가며 안전지대로 이송하였다. 교전이 지속되면서 조종사를 다른 지점으로 이송하던 와중에 치명상을 입었다. 즉각 호송되어야 했지만 아군의 추가 피해를 우려하여 긴급의료호송을 거부하였고 6시간 후 사망하였다. - 키어리 J. 밀러(Keary J. Miller) 공군십자장[12]
켄터키 주방위군 CSAR 대원으로, 헬리콥터 조종사 등 여러명의 중상자를 이송, 진단하고 응급처치하여 목숨을 살렸으며, 여러차례 화망에 노출되는 것을 감수하면서 전사자의 탄약과 화기를 회수해와 아군에게 분배하였다. - 브렛 모르간티(Brett Morganti) 해군십자장
엄호를 벗어나 M60 기관총을 들고 사격하던 중 유탄을 맞고 쓰러진 미국 해군특수전개발단 대원 - 네이트 셀프(Nate Self) 대위 은성훈장
신속대응군으로 출동한 제75레인저연대 소속 지휘관으로, 전투중 다리에 총상을 입었다. - 케빈 D. 밴스(Kevin D. Vance) 은성훈장
제75레인저연대에 파견된 공군 TACP 대원으로, 신속대응군으로 출동하여 여러차례 근접항공지원을 요청하는 등 활약하였다. 전투중 파편상을 입기도 했다.
4.1. 명예훈장과 관련된 논란
2018년에 슬라빈스키의 해군십자장이 명예 훈장으로 승격되면서 큰 논란이 일었다. 첫번째는 슬라빈스키와 SEAL팀이 부상당한 공군 CCT 요원 존 채프먼을 내버려두고 퇴각했기 때문이고, 두번째는 채프먼이 아니라 슬라빈스키가 명예 훈장을 수훈했기 때문이며[13], 세번째는 미 해군 특수전 지휘부가 존 A. 채프먼의 명예훈장 추서를 막기 위해 전사자의 명예를 훼손하려 시도했다는 것 때문이다.이 논란은 드론 영상이 공개된 후, 2016년에 미국 공군이 존 A. 채프먼의 명예훈장 추서를 추진하면서 시작되었다. 존 A. 채프먼이 명예훈장을 받게 되면 데브그루가 채프먼을 죽게 놔두고 퇴각한 것이 주목받을 것이기에, 해군 지휘부는 존 A. 채프먼이 명예훈장을 받지 못하게 끈질기게 방해하였다. 해군은 채프먼이 팀 리더의 명령을 무시하고 독단적으로 뛰쳐나가서 죽은 것이라거나, 채프먼이 직무를 유기해서 위기에 처했다는 주장을 하기도 했다. 채프먼은 죽은 것이 맞고 드론에 찍힌 영상은 알카에다가 자기들끼리 싸우는 모습이라며[14] 영상증거를 부정하기도 하였다. 현장에 있었던 해군 관련자들의 목격자 증언과 서명을 막아 절차를 지연시키기도 하였다.
이에 공군은 채프먼의 훈장 추서 사유를 부상당해 쓰러지기 전까지의 공적으로만 한정하는 합의안을 제시하는 등 채프먼의 명예훈장 추서를 위해 힘을 썼으나, 해군은 거부하면서 버텼고 결국 오바마 행정부의 임기가 끝나버려 처음부터 다시 추진해야할 상황에 놓였다. 정권이 교체된 후에도 공군과 해군이 대립하자[15], 국방장관은 채프먼과 슬라빈스키 모두 명예훈장으로 승격시킨다는 일종의 탕평책을 제시하였고 2017년 가을에 백악관으로 승격안이 넘어갔다. 슬라빈스키의 승격안이 먼저 승인되어 2018년 5월 25일에 명예훈장이 수여되었고, 큰 논란이 일었다. 3달 가량이 지난 2018년 8월 22일에야 존 채프먼의 명예훈장이 추서되었다.[16]
한편 브릿 슬라빈스키는 타쿠르가르 전투 이후에 미국 해군특수전개발단 소속으로 활동하면서 전쟁범죄를 저지르거나 조장한 것으로 문제를 일으킨 전적이 있다. 부하들에게 적의 수급을 잘라오라고 명령하고 진짜 가져오자 이를 은폐한 것이 대표적이다. 이러한 문제로 인해 진급 심사에서 만장일치로 배제되는 등 쫓겨나듯 전역해야했다. 이는 명예훈장의 대표적인 결격사유임에도 불구하고 해군의 정치질 덕분에 명예훈장을, 그것도 존 A. 채프먼보다 3달가량 먼저 받게된 것이다.
슬라빈스키는 채프먼이 죽었다는 것을 확인한 후에 철수했다고 주장하였지만 드론 영상엔 그런 모습이 찍히지 않았던 점이나, 채프먼이 헬기에서 내리자마자 죽었다고 증언한 적이 있다는 점 때문에 슬라빈스키가 채프먼의 공을 가로채서 상을 받았다는 비판이 나오기도 한다.
게다가 2025년에는 명예훈장 박물관(National Medal of Honor Museum)에서 존 A. 채프먼 대신 브릿 슬라빈스키를 전시회에 포함시켜서 논란이 되었는데, 알고보니 이사회에서 브릿 슬라빈스키가 한 자리를 하고 있었다는 것이 알려지면서 또 공분을 샀다.
5. 여담
- 로버츠 고지 전투와 관련하여 커뮤니케이션 오류가 상당히 많이 발생하였다. 앞서 언급했듯 공군 AC-130측이 QRF가 온다는 것을 모르고 돌아가버린 것이 대표적이다. 신속대응군 절반이 커뮤니케이션 오류로 인해서 산 정상에 내려버리는 바람에 4명의 전사자와 다수의 부상자가 발생했다. 데브그루 팀이 신속대응군에 구조요청을 했을 때 구조 대상이 네이비씰 저격수 팀이라고 잘못 전달되는 등의 문제도 있었다.
- 무리한 헬기 투입으로 큰 피해를 입었음에도 네이비 씰은 2005년에 레드 윙스 작전에서 유사한 실책을 또 저질렀다. 통신오류로 일이 커진 것, 무모한 작전 계획으로 발생한 인재를 영웅담으로 꾸며내어 실책을 은폐하려고 든 것이나 씰 대원이 부상당한 전우를 두고 퇴각한 것도 유사하다.
[1] Advanced Force Operations, 주로 본격적인 전면전 전력 투입에 앞서 적진에 침투하여 벌이는 정찰 및 정보 수집 작전이다. 델타 포스 쪽에서 주도하던 것을 넘겨받은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이다.[2] 착륙 중에 공격을 받으면 대응하기 어렵고, 헬기의 소음 때문에 발각되기 쉽기 때문에 특수작전은 일반적으로 착륙지점과 거리가 떨어진 지점에 투입되어 도보로 이동하는 식으로 이루어진다.[3] 공군 소속이지만 MAKO 30팀에 파견되었다.[4] 레인저 19명과 공군 TACP, 파라레스큐, 주방위군 공군 CSAR 대원 각각 1명. 자료에 따라서 레인저 병력이 총 20명이라고 되어있기도 한데, 레인저연대에 파견된(attached) 공군 TACP 대원을 포함한 것으로 보인다.[5] 브릿 슬라빈스키가 총상을 입었다고 잘못 알려졌지만 슬라빈스키는 이 전투에서 총상을 입지 않았고, 다른 씰에 의해 업혀 나가지도 않았다. 브렛 모건은 다리에 부상을 입었음에도 산악지대를 1km가량 스스로 걸어서 움직였다.[6] 슬라빈스키의 증언과 다르게 드론 영상에선 생사를 확인하는 모습이 나타나지 않았다.[7] 정상에서 동쪽으로 800미터, 고도상으로는 600미터 아래쯤이다.[8] AC-130은 날이 밝을 때가 되자 주간 작전을 금지하는 공군 규정에 따라 기지로 바로 복귀해버렸다. 걸프 전쟁 중 주간 작전을 수행하던 AC-130이 격추된 후로 공군은 주간작전을 금지하였다.[9] 2018년 8월 22일에 공군십자장에서 한 단계 승격되었다.[10] 2018년 5월 25일에 해군십자장에서 한 단계 승격되었다.[11] 첫 벙커는 사실상 채프먼의 단독 전과에 가깝다.[12] 2017년 1월 17일에 은성훈장에서 한 단계 승격되었다.[13] 여론이 험악해진 탓인지 3달 후에는 채프먼도 명예훈장이 추서되었다.[14] 해가 뜬 시점이었으며 거리가 매우 가까웠기에 피아를 혼동했을 가능성은 없다.[15] 해군측은 슬라빈스키의 명예훈장 승격에 대한 국방부 고위 관료 브리핑에서 채프먼이 명예훈장을 받으면 안 되는 이유를 열변하였다. 다른 군종에서 명예훈장 수훈을 반대하면서 싸운것은 역사상 최초라고 한다.[16] 같은 전투에서 2개의 명예훈장이 수여된건 미국 역사상 3번째이며, 영상증거가 남아 명예훈장이 추서된 것은 역사상 최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