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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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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어형3. 일반적인 이미지4. 역사5. 정의
5.1. 무고한 민간인
6. 목적
6.1. 이데올로기와 테러
7. 왜 참여하는가?8. 국가권력에 의한 테러9. 행위별 유형10. 행동지침
10.1. 국가적 대처
10.1.1. 공권력 강화10.1.2. 정보기관의 정보교환
10.2. 개인적 대처
11. 처벌12. 한국의 테러 위험성
12.1. 이슬람 테러12.2. 북한12.3. 자국인의 묻지마 테러12.4. 일어난다면 장소는?
13. 논란
13.1. 테러와의 전쟁 이후 변화한 시각
13.1.1. 저항권의 상실13.1.2. 보복적 테러로 격화13.1.3. 자업자득이기도 하다
13.2. 한국의 독립운동가들은 테러리스트인가?
13.2.1. '테러리스트'라는 표현에 대한 오해
14. 통계15. 목록16. 관련 문서

1. 개요

파일:attachment/Terrorism-911_591.jpg
파일:_베슬란.jpg
파일:2015년 파리테러.jpg
2001년 9.11 테러 2004년 베슬란 학교 인질사건 2015년 11월 파리 테러
본래 '공포', 무서운 일', '두려운 일'이라는 뜻으로 쓰이는 말이지만, 정치적 반대파를 진압하기 위해 억압과 폭력을 사용하는 행동이라는 뜻으로 변형되어 프랑스 혁명 당시 자코뱅당의 공포 정치 때 처음 사용되었다.

오늘날에는 "사회, 정치적 이유로 폭력을 가해 사회에 대규모의 관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한 파괴 행위"라는 의미로 쓰인다.[1]

테러리즘(영어: terrorism, 문화어: 테로리즘) 또는 공포주의(恐怖主義), 테러는 일반적으로 정치와 종교, 사상적 목적을 위해 폭력적 방법의 수단을 통해 민간인이나 비무장의 개인, 단체, 국가를 상대로 사망 혹은 신체적 상해를 입히거나 공포심을 불러일으켜 어떤 행동을 강요하는 행위이다.

2. 어형

보통 테러라고 함은 일반적인 범주의 테러만을 말하고, 사이버상의 테러는 사이버 테러라고 칭한다.

영어로는 테러 행위나 개념을 terrorism(테러리즘)으로, 실제 테러 사건 등은 terror 등으로 구분한다.[2] 한국어에서는 일반적으로 둘 다 '테러'라고 부르고 '테러리즘'의 사용 빈도는 낮다.

테러를 행하는 사람을 테러리스트라고 부른다. 해방 직후에는 테러리스트를 테러분자라고 불렀다고 한다. 비슷한 의미로 사보타주가 있는데, 사보타주는 인명보다는 재산이나 건물, 특정 시설을 노린 행위고 테러는 인명 손실을 야기하는 행위를 가리키는 경우가 많다.

3. 일반적인 이미지

파일:external/manipuronline.com/terrorist.jpg

파일:external/newsimg.bbc.co.uk/_46535011_talib_soldier_466.jpg

위의 사진은 테러리스트 조직인 탈레반의 병사들이다. 일반적으로 테러리스트라면 까만 복면, AK-47, RPG-7이 생각나겠지만 모든 테러리스트가 이런 복장을 고수하는 것은 아니다. IS탈레반, 알 카에다 같은 대규모 테러조직은 요즘은 일반 대원들의 복장도 어느 정도 체계가 잡혀 있고, 정예 대원의 경우는 아예 정규군 특수부대로 착각할 정도의 모습을 갖추고 있다. 특히 캅카스에서 건너온 조직들은 그냥 용병들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잘 무장된 탈레반 대원들 시리아 알카에다 "알 누스라 전선" 방탄 플레이트 캐리어와 파우치, 헬멧 마운트를 갖춘 방탄모를 체계적으로 갖춘 대원들이 많이 보인다. 요즘은 지하디스트들도 택티컬 영상 보고 전술 사격 등등 할 거 다 하는 시대다. 영상을 보고 따라하는게 아닌, 전문 교관이 조언해주는 경우도 있다.[3] 특히 아프간을 장악한 탈레반은 미군이 철수하면서 버리고 간 장비와 장구, 광학장비, 전투복, 차량 심지어 헬기까지 운용하면서 이게 미군인지 테러단체인지 구분이 안 갈 정도. 그러나 항공기는 운용과 정비의 난이도가 차량과 비교하면 하늘과 땅인지라 항공기는 사고가 많이 나서 운용에 어려움을 겪고 있긴 하다. 영세집단이나 한 번 쓰고 버리는 총알받이들은 그런 거 없긴 하다.

흔히 아랍쪽 사람들이 테러리스트일 확률이 높다는 논리를 펼치기도 하는데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이다. 이에 대한 연구 결과를 보면 백인이 행한 총기난사는[4] 사고, 아랍인이 한 총기난사는 테러로 분류될 확률이 높다고 한다.# 테러리스트라고 생각할때 떠오르는 이미지는 미디어에서 많이 묘사되는 테러리스트라고 보아야 한다.

4. 역사

테러라는 말 자체에 대한 용어의 사용은 보통 프랑스 대혁명으로 구분한다. 로베스피에르의 공포정치로 일컬어지는 la Terreur(영어로는 Reign of Terror)가 그 어원으로 알려져있다.[5] 영국의 에드먼드 버크가 '테러리스트'라는 말을 처음 썼다고 하는 말도 있다. 하지만 당시에 사용된 "테러" 또는 "테러리스트"는 공포를 불러일으키는 행위, 공포를 불러일으키는 사람을 가리키는 용어로 사용되었다. 혹자는 1-2세기 이스라엘에서 있었던 열심당원을 테러리스트의 원형으로 보기도 하지만 19세기 중반 아나키스트 단체의 활동을 표현하는 용어로 테러가 사용되었으며 비정부조직에 의해 자행되는 폭력행위를 뜻하는 용어가 되었다. 이들에 의해 대표적으로 암살된 사람이 알렉산드르 2세. 하지만 이런 테러는 오히려 여러 나라가 연합해 아나키스트를 탄압할 명분만을 만들어줬고, 그걸 알게 된 아나키스트는 운동의 성격을 조금 더 평화롭게 바꾸게 된다.

테러리즘이라는 용어가 새로운 의미를 얻게 된 것은 1970년대의 일이다. 이스라엘팔레스타인의 갈등, 북아일랜드 독립운동, 바스크 독립운동에서 이들을 테러리스트라고 부르기 시작했으며, 이때부터 오늘날 사용하는 테러리즘의 정의에 부합하는 테러리스트가 등장하였다.

어원을 놓고 볼 때, 공포를 조장하여 목적을 달성하는 행위를 테러, 혹은 테러리즘이라고 폭넓게 해석할 수 있다. 때문에 단순히 급진적이고 폭력을 일삼는 이슬람 교도나 조직만 테러리스트로 국한할 수 없다. 단순한 폭력만으로 규정짓기에는 공포라는 것이 다양한 방법으로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기존 질서와 윤리를 무너뜨리는 행위도 충분히 공포로 발현될 수 있다. 어떤 사회의 안정성과 지속성을 해하고 반하는 모든 행위는 공포로 이어질 수 있다. 어쨌든 공포가 모종의 목적을 달성하는 수단일 때 이를 테러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테러리스트는 정치깡패들과도 많이 겹치는 경우가 많다. 자신의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는 데 갖은 폭력을 동원하는 것이 동일하기 때문이다.

다른 조직화된 범죄와 비교할 때 테러를 구분짓는 기준은 대체로 사상에 근거한 선동의 목적을 갖는다는 점이다.
9.11 테러 이후로 서구에서 테러를 학술적으로 연구하기 위한 관심이 대단히 높아졌으며, 이를 위해 사회학, 정치학, 사회심리학, 종교학 등에서 지대한 관심을 갖고 테러에 대하여 파헤치고 있는 중이다. 특히나 IS의 연속적인 유럽권 테러로 인해 이와 같은 연구의 사회적 가치는 더더욱 올라가고 있는 중이다. 2010년대 중반에 들어 가장 유망하게 떠오르고 있는 사회심리학 분야의 두 이론은 마이클 호그(M.A.Hogg)의 불확실성-정체성 이론,[6] 그리고 아리에 크루글란스키(A.W.Kruglanski) 등이 제안한 유의성 탐색 이론이 있다.

현대에 일어나는 테러는 주로 중동아프리카 지역에서 발생한다. 예전에는 뚜렷하게 미군을 공격 목표로 삼았지만 요즘은 대중을 무차별적으로 노리는 경향이 짙어지고 있다.[7]

5. 정의

국민보호와 공공안전을 위한 테러방지법 제2조(정의) 이 법에서 사용하는 용어의 뜻은 다음과 같다.
1. "테러"란 국가·지방자치단체 또는 외국 정부(외국 지방자치단체와 조약 또는 그 밖의 국제적인 협약에 따라 설립된 국제기구를 포함한다)의 권한행사를 방해하거나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할 목적 또는 공중을 협박할 목적으로 하는 다음 각 목의 행위를 말한다.
가. 사람을 살해하거나 사람의 신체를 상해하여 생명에 대한 위험을 발생하게 하는 행위 또는 사람을 체포·감금·약취·유인하거나 인질로 삼는 행위
나. 항공기(「항공법」 제2조제1호의 항공기를 말한다. 이하 이 목에서 같다)와 관련된 다음 각각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행위
1) 운항 중(「항공보안법」 제2조제1호의 운항 중을 말한다. 이하 이 목에서 같다)인 항공기를 추락시키거나 전복·파괴하는 행위, 그 밖에 운항 중인 항공기의 안전을 해칠 만한 손괴를 가하는 행위
2) 폭행이나 협박, 그 밖의 방법으로 운항 중인 항공기를 강탈하거나 항공기의 운항을 강제하는 행위
3) 항공기의 운항과 관련된 항공시설을 손괴하거나 조작을 방해하여 항공기의 안전운항에 위해를 가하는 행위
다. 선박(「선박 및 해상구조물에 대한 위해행위의 처벌 등에 관한 법률」 제2조제1호 본문의 선박을 말한다. 이하 이 목에서 같다) 또는 해상구조물(같은 법 제2조제5호의 해상구조물을 말한다. 이하 이 목에서 같다)과 관련된 다음 각각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행위
1) 운항(같은 법 제2조제2호의 운항을 말한다. 이하 이 목에서 같다) 중인 선박 또는 해상구조물을 파괴하거나, 그 안전을 위태롭게 할 만한 정도의 손상을 가하는 행위(운항 중인 선박이나 해상구조물에 실려 있는 화물에 손상을 가하는 행위를 포함한다)
2) 폭행이나 협박, 그 밖의 방법으로 운항 중인 선박 또는 해상구조물을 강탈하거나 선박의 운항을 강제하는 행위
3) 운항 중인 선박의 안전을 위태롭게 하기 위하여 그 선박 운항과 관련된 기기·시설을 파괴하거나 중대한 손상을 가하거나 기능장애 상태를 야기하는 행위
라. 사망·중상해 또는 중대한 물적 손상을 유발하도록 제작되거나 그러한 위력을 가진 생화학·폭발성·소이성(燒夷性) 무기나 장치를 다음 각각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차량 또는 시설에 배치하거나 폭발시키거나 그 밖의 방법으로 이를 사용하는 행위
1) 기차·전차·자동차 등 사람 또는 물건의 운송에 이용되는 차량으로서 공중이 이용하는 차량
2) 1)에 해당하는 차량의 운행을 위하여 이용되는 시설 또는 도로, 공원, 역, 그 밖에 공중이 이용하는 시설
3) 전기나 가스를 공급하기 위한 시설, 공중의 음용수를 공급하는 수도, 전기통신을 이용하기 위한 시설 및 그 밖의 시설로서 공용으로 제공되거나 공중이 이용하는 시설
4) 석유, 가연성 가스, 석탄, 그 밖의 연료 등의 원료가 되는 물질을 제조 또는 정제하거나 연료로 만들기 위하여 처리·수송 또는 저장하는 시설
5) 공중이 출입할 수 있는 건조물·항공기·선박으로서 1)부터 4)까지에 해당하는 것을 제외한 시설
마. 핵물질(「원자력시설 등의 방호 및 방사능 방재 대책법」 제2조제1호의 핵물질을 말한다. 이하 이 목에서 같다), 방사성물질(「원자력안전법」 제2조제5호의 방사성물질을 말한다. 이하 이 목에서 같다) 또는 원자력시설(「원자력시설 등의 방호 및 방사능 방재 대책법」 제2조제2호의 원자력시설을 말한다. 이하 이 목에서 같다)과 관련된 다음 각각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행위
1) 원자로를 파괴하여 사람의 생명·신체 또는 재산을 해하거나 그 밖에 공공의 안전을 위태롭게 하는 행위
2) 방사성물질 등과 원자로 및 관계 시설, 핵연료주기시설 또는 방사선발생장치를 부당하게 조작하여 사람의 생명이나 신체에 위험을 가하는 행위
3) 핵물질을 수수·소지·소유·보관·사용·운반·개조·처분 또는 분산하는 행위
4) 핵물질이나 원자력시설을 파괴·손상 또는 그 원인을 제공하거나 원자력시설의 정상적인 운전을 방해하여 방사성물질을 배출하거나 방사선을 노출하는 행위 (후략)

제17조(테러단체 구성죄 등) (전략) ⑥ 「형법」 등 국내법에 죄로 규정된 행위가 제2조의 테러에 해당하는 경우 해당 법률에서 정한 형에 따라 처벌한다.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테러리스트는 정치적인 목적을 위해 계획적으로 폭력을 쓰는 사람을 뜻한다. 인간 개인이나 단체 정도에 국한되지만 이를 극단적으로 생각하면 북한이 역사상 최대 규모의 테러 단체가 될 수도 있다.[8] 다만, 그들은 이미 국가 수준이라서 논외로 친다.

폭력의 범위가 어디까지인지에 따라서 많은 관점이 생기게 된다. 그린피스가 한 일들을 보면 당하는 입장에서는 충분히 폭력적인 일을 많이 당했다.[9] 포경방해는 유명하고, 아기 바다표범을 보호한다고 상품 가치가 없어지게 녹색칠을 한다거나.[10] 비슷한 사례로 환경단체라 자칭하고 있는 씨 셰퍼드의 예도 있지만 얘들은 워낙 삽질을 많이 해대는 애들[11]이라 그린피스보다도 테러리스트, 해적 취급을 더 많이 받는 편이다. 요새는 Just Stop Oil과 같은 무차별 문화파괴 단체들도 이들의 아성에 도전하고 있다.

헤이그 육전조약은 교전권을 갖기 위한 요건을 명시하고 있다.(자세한 내용은 교전권 문서로.) 이 조약대로라면 무기를 숨기고 있다가 암살이나 폭탄 투척을 하면 테러리스트다. 하지만 제네바 협약에 관한 제1의정서는 "국제적 무력충돌(의 희생자)"의 개념에 "식민지배(colonial domination), 외세의 점령(alien occupation), 인종차별 정권(racist regimes)에 맞서 자결권을 행사하기 위해 싸우는 사람"(# Part I, Article 1, Phrase 4)도 포함함으로써, 독립운동가나 레지스탕스가 테러리스트로 분류되는지 국제적 무력충돌의 희생자로 분류되는지는 매우 핫한 이슈가 되었다. 영문판 위키백과는 Gardam과 Khan의 문서를 인용한 끝에 "(레지스탕스가 합법적 교전권을 지녔는지, 그렇지 않은지) 구분하는 것은 정치적 문제"# 라고 결론지었다.

"누군가의 테러리스트는 누군가에게 있어 자유의 투사이다."라는 말은 테러리스트와 자유의 투사가 상대적인 개념임을 보여준다. 하지만 테러리스트라는 말이 갈수록 영 좋지 않은 뜻으로 쓰이면서 더 이상 가치중립적이지 않게 됨에 따라, BBC는 정권에 대항하는 세력을 "테러리스트"나 "자유의 투사"로 부르는 대신 좀 더 중립적인 무장단체(millitant), 게릴라(guerrilla), 암살자(assassin), 반군(insurgent), 준군사조직(paramilitary), 민병대(militia) 같은 표현을 사용하게 되었다고 한다. #

이제 전문적으로 들어가 보자. 일반인이 그냥 생활에서 쓰는 국어사전이라면 저 정도 정의로 충분하겠지만, 학술적이나 실무에서도 저렇게 두루뭉술하게 넘어갈 수는 없는 일. 국어사전에 나와있는 정의에 의하면 국가는 당연히 테러리스트이고(폭력적이지 않고, 정치적이지 않은 전쟁이 있던가?), 국회에서의 몸싸움이나 점거 같은 일도 테러이며(정치적이고 계획적이다), 쿠데타도 테러다... 따라서 국어사전의 정의에 따라 역사적 인물이나 단체가 테러리스트인지 아닌지 따지는 것은 대체적으로 적절하지 않다.

보다시피 세계 여러 기관이나 단체에서는 기본적으로 민간인 이라는 단어가 포함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며, 그 밖에 Walter Laqueur, James M. Poland는 표적이 목적과 무관할 때, David Rodin, Boaz Ganor, Daniel D. Novotny, Carsten Bockstette, Tamar Meisels는 목표가 민간인일 것을 조건으로 하고 있으나 실행 주체에 국가를 넣느냐 마느냐는 이견이 있다. 대부분의 정의에서 동의하는 것은, 정치적 목적이 있을 것, 의도성이 있을 것, 민간인을 표적으로 할 것, 국가 혹은 대중의 행동에 영향을 줄 목적으로 할 것, 폭력 정도 되겠다. 따라서 요인의 제거 자체가 목적인 암살과는 다르다. 물론 암살을 통해 상대에게 자신의 정치적 목적을 관철시키는 것이 목표이며, 암살표적과 정치적 목적이 일치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테러의 범주에 들어갈 수 있다.

예를 들어 B라는 인물이 자신 혹은 자신이 속한 단체의 목적이나 활동에 장애를 가져오는 것을 막거나 혹은 반대로 그것들을 이루기위해서 혹은, 적국의 주요인사를 제거하여 전쟁수행능력을 약화시키키 위해 A를 살해하는 것은 암살이다. 그러나 살인 등의 충격적 방법을 사용하여 정부 정책 여론에 영향을 주기 위한 목적으로 자신혹은 자신이 속한 단체의 목적과 활동과 전혀 무관하고 무고한 A라는 인물을 살해했다면 그것은 테러의 범주에 들어갈 수 있는 것이다. 달성하려는 목적과 무관한 무고한 사람이다. 테러리스트의 입장에서 정치적 공포를 심어주기 위해서는 무고한 사람 만한 표적이 없다. 정치인이나 군인을 상대로 한 공격은 '저런 일을 당할 수도 있는 위치'이기 때문에 수긍을 할 수 있지만 아무런 상관이 없는 사람을 희생시킨다면 자신들이 표적이 될 수 있기 때문에 공포의 효과가 더 크게 나타나기 때문이다.

통상적으로 국가의 폭력 행위는 전쟁으로 분류되며, 테러로 보지 않는다. 국가는 군대를 조직하고 군사력을 행사할 수 있는 주체로 인정받고 있기 때문이다.

5.1. 무고한 민간인

이와 관련한 윤리적 논란은 "자신을 억압한 주체가 아니라 무관한 민간인 또는 단체를 공격해도 되는가?"이다. 독립투쟁의 대부분은 억압하는 주체에게 행해졌다. 그러나 오늘날 보복성 테러의 경우 목적 달성을 위해 무관한 대상을 공격하기도 한다. 이것이 과연 정당한 수단이라고 볼 수 있는가하는 질문은 대답하기 어렵다. 위에서 설명한 대로, 민간인을 공격하는 것이 보복적인 성격도 있으며 무고한 민간인을 공격해 공포에 휩싸이게 하여 정치적 이득을 볼 수도 있다.[17] 동시에 군부대나 정부 주요 건물을 습격하는 정도로는 애초에 압도적인 지배 세력에게 피해를 주기 힘들다.

즉, "무관계한 대상을 공격하지 않고서는 목적을 달성할 수 없을 정도로 압도적인 차이로 불합리한 폭력에 노출되어 있을 때, 무관계한[18]비교적 무관계한 거다. 자기들을 공격하고 있는 군대에 돈을 대주는 건 결국 적국 시민들과 관료들인거고 애초에 아랍이 미국에 테러한답시고 아무 관계 없는 한국 서울 명동에다가 테러를 저지르진 않는다.] 대상을 공격하는 수단은 정당한가?"라는 딜레마 상황이다. 당하는 무관계한 대상 입장에선 정말로 억울하기 짝이 없겠지만, 테러를 감행하는 입장에선 자신들이 1차적으로 불합리한 폭력에 노출되어 있는 상황으로 불합리한 폭력 이외에는 도저히 방법을 찾을 수 없는 것이다. 이 문제는 현재 윤리학계에서도 상당한 논란 거리가 되고 있으며, 각 학자마다 견해가 확연히 다르다. 아직까진 확실한 합의가 나오지 않고 있으니 섣불리 단정하지 말도록 하자.

정규전으로는 승산도 없고 멀리에서 보호받고 있는 대통령이나 요인들을 암살하는 건 사실상 불가능한 입장에서야 괜히 바위에 계란 꼬라박다가 찢길 바에야 시간 질질 끌면서 반전 여론이라도 이끌어 낼 가능성이라도 있는 민간인에 대한 테러밖에 할 수 없는 상황인 게 현실이다.

그런데 사실 민간인이라 할지라도 국가로서의 정체성이 침탈받는 상황에서는 '별 상관없는 민간인'이라고 보기 어렵다. 특히나 테러단체가 주장하는 '가져야 마땅한 영토'에 끊임없이 유입되는 민간인들이 그 예이다. 식민지에 자국민을 식민통치적 목적으로 끊임없이 이주시켜서 현지인을 몰아내고 소수민족으로 전락시켜 버리는 서양의 제국주의 식민주의 열강들이나 티베트, 위구르에 한족들을 이주시키는 중국 및 한반도, 만주, 중국에 일제가 거류민들을 보내서 식민화하려 했다. 독립운동가 안규홍신돌석날려버린 '민간인'은 이런 사람들이었다.[19] '이주를 기반으로 한 식민 정책'은 미국, 중국, 러시아, 프랑스, 인도네시아 등이 전통적으로 써 왔던 정책 중의 하나이다. 심지어 오늘날 이루어지는 이스라엘의 서안지구 정착촌은 아예 국제법 상으로 합법조차 아니다. 이런 민간인들을 '완전히 무고하다'라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6. 목적

대부분의 테러는 정치, 종교, 사상적 목적으로 공포감과 불안감을 조성하기 위해 폭력을 행사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군인, 정치인 등 특정 인사만 노리기도 하고 민간인에게 무차별적으로 해를 가하기도 하는데, 일단은 둘 다 테러라고 부른다. 군인(주로 특수전 부대)이 전선 후방에서 기반시설을 파괴하고, 민간인들에 대한 폭력을 행사하는 것도 테러로 분류된다. 대부분의 경우 불특정 다수를 희생자로 삼기 때문에 효과적으로 대중의 관심을 끌고 심리적 영향을 크게 끼칠 수 있어 작은 힘으로도 충분히 위협을 가할 수가 있다. 그렇기 때문에 힘없고 가난한 자들이 강자에게 대항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 된다.

9.11 테러 이후 미국이 한동안 우경화된 것을 봐도 알 수 있듯 테러는 사람의 원초적인 공포심을 자극하기에 굉장히 많은 것을 바꾼다. 그리고 표면적으로는 테러리스트의 요구가 아니지만 은연중에 테러리스트들이 기대하는 효과이기도 하다. 국가간, 이념간, 종교간의 대립이 강해질수록 강경주의자, 근본주의자들이 지지를 얻기 때문. 또한 엄청난 경제적 손해도 동반하는데, 9.11 이후 강화된 안전조항 때문에 추가로 고용한 인력과 공항에 일찍 가서 대기해야 하는 사람들의 시간낭비를 생각해본다면 간단하다.

과거에는 민족주의자, 분리주의자 등에 의해 일어나는 경우가 많았지만, 2010년대 들어선 종교 극단주의자에 의한 테러가 더 많아졌다고 한다. # 물론 학계에서는 종교만이 유일한 원인은 아니고, 종교를 포함해서 다양한 원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고 보는 시각이 주류다. 분리주의자들이 주로 내세우는 민족주의나 일부 극단주의자들이 내세우는 종교나 결국 크게 보면 사상, 이념 문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들이 워낙 테러로 악명이 높다 보니 '모든 무슬림이 테러리스트는 아니지만 테러리스트는 모두 무슬림이다' 라는 오해의 통념이 퍼져 있기도 한데, 이슬람교도들 입장에서는 당연히 무척 불쾌한 말이고 상식적으로도 좀 과하게 표현한다면 매우 무식하고 교양 없는 지식이다. 본 항목에도 상술 되어 있듯이 꼭 과격한 이슬람교도 집단이 아닌 테러리즘도 많이 있으며 콜롬비아 무장혁명군과 같이 이슬람 단체가 아님에도 상당히 큰 테러 역사를 가진 집단도 있으며 북아일랜드 독립군 IRA스페인 바스크 지역의 에테아(ETA)도 상당히 강력한 테러 단체로 분류되기도 했었다.[20] 그 때문에 무슬림은 테러리즘이 아니라는 주장으로 평화적 주장을 하는 이슬람교도가 포착되기도 했다.

테러범이 테러를 저지르다 사망한 경우 테러 단체가 유가족에게 보상금을 지불해 주기도 한다. 가난한 테러범 중에는 분명 이러한 유인책이 상당한 인센티브로 다가온 경우도 있을 것이다. 나심 니콜라스 탈레브처럼 테러를 막기 위해서는 테러범이 저지른 피해의 배상 책임을 유가족에게 물려야 한다는 극단적인 주장을 펼치는 사람도 있다.

6.1. 이데올로기와 테러

7. 왜 참여하는가?

모든 집단과 같이 테러 단체들도 새로운 구성원의 유입이 없으면 씨가 마르고 만다. 흔히 "자신의 (정치적, 종교적, 사상적) 신념을 위해 참여한다."라는 단순한 논리로만 보기도 하는데, 이는 말이 되지 않는다. 실제 테러에선 그 집단의 10명 이내의 사람이 행동에 옳기는 것으로 나오지만, 그 뒤에 있는 자금줄, 연락책등등 보이지 않는 사람들은 엄청나게 많다. 대테러 활동으로 검거되는 양이 얼마나 많은데 저 한가지 이유로만 유입되는 인력은 턱없이 부족하다. 실제로 아무리 신념이 강하다고 해도, 사람을 죽이라고 하면 나설 사람이 많을지 생각해보자.

위에 기술한 대표적인 이유 외 테러 단체에 지원하게 되는 경로는 다음과 같다.
  1. 테러 단체인지 모르고 지원함.
    실제로 테러 단체가 인지도가 없거나 단순히 "비슷한 사상을 가진 사람의 모임"이라는 말에 속았거나, 기부를 요청하는 경우도 많다. 실제로 테러 단체의 자금줄을 역추적해보면 구호 단체이나 딱히 관련 없어보이는 단체를 통해 돈과 인력을 모으고 있었다는게 나타나기도 한다. # 기부금품의 모집 및 사용에 관한 법률이 존재하는 이유가 기부금의 투명성을 위해서이기도 하나, 이렇게 이상하게 흘러가는 자원을 막기 위해서 있는것이기도 하다. 호주 정부는 대놓고 이것 때문이라고 적어놓았다
2. 생존을 위해서 선택.
욕구계층이론의 하위 단계, 즉 생존을 위해 들어갔다는 진술도 많이 나온다. 적어도 테러 단체에 들어가면 먹을거는 주니깐. 실제로 전 FARC 맴버들 중 11~15살 사이에 지원한 사람이 많은데, 내용을 들어보면 FARC가 훨씬 더 나은 삶을 보장해 줄 것이며, 빈곤에서 벗어나게 도와준다는 말에 넘어가 지원했다는 진술이 많다. #
3. 가족의 권유.
가족 중 테러 단체에 가입한 사람이 있으면 가족의 단체 가입 확률이 올라간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테러 단체들이 최근 여성을 집중적으로 겨냥해서 모집하는데, 이를 통해서 더 많은 사람들이 지원하는걸 노리는 것이라는 분석이 있어 이쪽으로 대응을 늘려야 한다는 권고도 대두되고 있다.#

8. 국가권력에 의한 테러

소위 국가 테러[리즘](state terror[ism])이라고 한다. 보통 테러를 일으키는 것은 무장 반군, 범죄 조직, 정당, 사이비 종교, 하다못해 소규모 클랜 등 조직인 경우가 많지만 한 국가의 정부가 국익을 위해 테러를 일으키거나 테러 집단을 의도적으로 지원하는 경우(State-Sponsored Terror)도 굉장히 많다. 프랑스 혁명 당시 혁명파와 왕당파가 정권을 잡을 때마다 자행하던 것을 시작으로 크나큰 국가 권력이 일개 민간인을, 그것도 자국민을 대상으로 온갖 비공식적이고 초법적인 테러를 자행하던 나치 독일, 일본 제국, 이탈리아 왕국, 헝가리 왕국, 루마니아 왕국, 크로아티아 독립국, 스페인국 등등 추축국[23]들은 물론이요 미국만 해도 제2차 세계 대전 때부터 나치에 상대한다는 이유로 이탈리아 마피아들에게 폭탄을 쥐어주며 집중 육성한 것을 시작으로 CIA 등의 국가기관을 동원해 냉전 당시 반공을 내걸은 수많은 백색테러 집단이나 정치깡패, 반군쿠데타 세력들을 지원했다. 가장 대표적인 사건으로는 쿠바 실향민들과 극우 라티노들에게 총, 폭탄을 쥐어주고는 엄연한 국가를 상대로 테러를 벌이게 한 피그스만 침공과 민간인들을 상대로 한 쿠바나 항공 455편 폭파 사건이 있다. 중국은 물론이오 클란 델 골포와 같은 마약 카르텔, 크메르 루주와 같은 골수 공산주의 단체나 당시 공식적으로는 적대했던 스페인국남아공이나 이란 신정주의 정부, 동맹국에 테러를 가하는 IRA에 심지어 나치, 일제 전범 출신일지라도 소련 세력만 상대한다면 방향에 상관없이 물심양면으로 지원했다. 이런 흑백논리적 상황에서 공산당과 별 상관도 없는 흑인 민권 운동가들을 빨갱이로 몰아 공격하기도 했고[24] 공산정권만 뒤엎을 수 있다면 자국민을 상대로 자작극 테러를 일으키겠다는 어이없는 계획이 나오기도 했다.

존 에드거 후버 시절의 FBI 역시 이런 막나가는 테러 수준의 과잉진압으로 유명했다. 특히 흑표당 중역 프레드 햄프턴[25]을 체포할 때 90회 이상 총격을 발사한 사건은 진압이 아니라 총기난사갱스터들이 흔히 쓰는 드라이브 바이에 가까웠다. 비록 음모론에 가까운 이야기지만 아직까지도 존 F. 케네디 암살 사건이나 마틴 루터 킹, 리 하비 오스왈드의 암살에 관여했다는 이야기까지 공공연하게 도는 판이다.

소련, 쿠바, 동독, 남예멘, 루마니아 사회주의 공화국, 북한, 불가리아 인민공화국, 폴란드 인민공화국과 같은 동구권 국가들도 마찬가지로 자생적 공산혁명과 포코 이론을 내세우면서 반미, 반서방 및 공산혁명을 표방한 테러 조직들은 물론이요, 순수하게 서구권 사회의 혼란을 불러일으키기 위하여 에코파시즘 단체나 이란의 혁명 세력, 적대적으로 나오던 이슬람 극단주의 단체들을 지원하기도 했으며 특히 소련과 동독의 KGB, 슈타지는 평생의 숙적과도 같이 여기던 네오나치 집단들을 의도적으로 지원하여 냉전 이후 서구권 국가들에 극단주의가 퍼지는 토양을 만들어 놓기도 했다. 이 방향성은 소련 붕괴 이후 현대의 러시아 연방이 그대로 가져가서 세계 곳곳에 극좌/극우 성향 단체들을 지원하며 선거에 개입하는 식으로 써먹고 있다. 지원하는 단체가 좌익 성향 단체에서 스킨헤드, 대안 우파, 돈바스 분리 세력 등 네오 파시스트적 성향을 띄는 우익 성향 단체들 및 자생적 극우주의 테러리스트들로 대거 변경된 것 및 지원국도 가차없이 공격하는 이슬람 극단주의 단체들이 그나마 피아구별은 하는 헤즈볼라이란을 제외하고 철저히 배제된 것 정도가 차이점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광범위한 공작은 NATO 회원국들은 물론 알바니아북마케도니아, 불가리아, 그리스, 필리핀 등 러시아와 척질 이유가 딱히 없던 국가들에게까지 이루어졌고, 이는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외교적 역효과를 낳게 되었다.

쿠바는 이런 소련의 의중을 정확히 파악하고 자국의 성공적인 혁명 모델을 전 세계에 퍼트릴 겸 해서 에르네스토 게바라, 아르날도 오초아 등을 주축으로 쿠바 내무부 정보관리국 제5과 등의 사실상 비밀 용병 집단들과 카를로스 더 자칼, 아부 니달 등의 아웃소싱 전문 인력을 이용하여 가까운 남미의 M-19, 파라분도 마르티 민족해방전선, 푸에르토리코 국가해방군, 산디니스타 민족해방전선 등을 지원했으며 자국과 아무 상관도 없는 에티오피아, 콩고, 앙골라, 볼리비아, 나미비아 등지의 해외 분쟁에 적극 개입하고 테러 조직을 지원하며 직접 테러를 일으키기도 했다.

루마니아 인민공화국세쿠리타테는 아부 니달, 북한, 바더 마인호프 잔당, 슈타지와 협동하여 김포국제공항 폭탄 테러를 일으킨 배후 세력 중 하나로 유명하다.

중국도 이에 질세라 미국과 손잡고 크메르 루주UNITA, 초창기 무자헤딘 시절 알 카에다와 같은 테러 단체들을 지원하여 소련 세력을 몰아내고자 하였다. 마오쩌둥의 중앙 권력에서 홍위병들을 대거 후원한 것은 너무 유명한 사실이고, 아프리카에서는 유대인, 인도인 자본을 몰아내고 그 자리에 친대륙 화교들을 끼워넣어서 아프리카를 주무르기 위해 MSS를 투입하거나 아랍 테러리스트들을 사주하는 등의 방법으로 유대계, 인도계 현지인들을 공격하여 모사드와 드잡이질을 벌이기도 했다. 물론 이스라엘중국은 대놓고 서로 적대하는 관계는 아니었고 KGB에 의도치 않게 공동대응을 하고 있었으므로 공식적으로 서로 인정하는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 외에도 탈북자 후원자들을 납치하거나 홍콩에서는 무차별적으로 반중 성향의 민간인들을 공격하고 2009년 우루무치 유혈사태 등 민족 폭동을 선동하기도 했다. 또한 낙살라이트, 신인민군, 흑표당, 빛나는 길, 바더 마인호프 등 세계 각지의 마오주의자들을 선동하여 농촌 혁명을 일으킬 수 있도록 지원하기도 했다. 로버트 무가베가 이끌던 짐바브웨 아프리카 국민연합 - 애국전선[26]이 바로 이렇게 큰 단체였다.

에티오피아 인민민주공화국은 그 시초부터 거대한 적색 테러 속에 세워진 정권이었으며 멩기스투 하일레 마리암이 지도하는 군내 사조직이자 테러집단이었던 '더르그'가 에티오피아를 지배하던 시절은 간략하게 '적색 테러(Red Terror)'라고 묘사되기도 한다. 그만큼 집권 기간 내내 정적에 대한 집요하고 잔혹한 적색테러가 쭉 이어졌다. 에티오피아 인민정부는 이후 자국의 티그라이인소말리족의 반란을 막기 위해 민간인들에게 갖은 테러를 저질렀고 베타 이스라엘인들을 인질로 이스라엘에게 몸값을 뜯어내 국고를 충원하기도 했다.
냉전의 주축들 뿐만 아니라 그 외에도 리비아 아랍 자마히리야, 프랑스, 영국, 이란, 이스라엘, 자이르, 수단, 인도네시아, 이라크사담 후세인 정권, 네덜란드, 그리고 우간다 등이 자국의 이익을 위해 상대 진영에 테러를 가하는 조직에 자금 및 무기를 조달하고 테러를 직접 지시하는 등 열심히 지원해 주었다.

영국아일랜드 식민지 초창기부터 블랙 앤 탠즈(Black and Tans)와 같은 백색테러 단체들을 이용하여 경찰 폭동에 가까운 태도로 아일랜드를 대했고 북아일랜드 분쟁에서는 얼스터 방위대(UDA) 등의 잉글랜드/스코틀랜드 신교도 어용 단체들을 만들어 IRA에 맞서도록 했다.

그리스 군사정권튀르키예키프로스 전쟁 발발 전까지 각 민족 진영의 극우 조직인 EOKA와 그레이 울프를 지원하며 분쟁을 격화시켜 전쟁의 당위성을 얻으려 하기도 했다. 정확히는 극단분자들이 자기 민족에 대한 가혹행위를 일으키도록 의도하여 전쟁을 선동하기 위함이었다. 그리스의 EOKA는 중역 니코스 삼프손을 대통령으로 앉히는 등 발악했지만 결국 최종 승자는 튀르키예였고 그레이 울프는 큰 힘을 얻어 현재까지도 활동할 수 있게 되었다. 이스라엘, 이란, 그리고 사담 후세인바트주의 이라크는 셋 사이의 전쟁에 자신들이 후원하는 여러 테러 단체들을 잘 활용했다. 이란 인민전사기구, PKK 등의 단체가 대표적이었다.

개중 이란의 신정주의 정부는 시작부터 주 이란 미국 대사관 인질 사건이라는 화려한 테러로 집권한 집단인 만큼 세계 곳곳의 시아파들을 잠재적인 비정규전 테러 단체로 키우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고, 이렇게 키운 시아파 세포 조직을 이용해 후세인 사후 이라크의 공백을 쉽게 집어삼켰고 예멘에도 성공적으로 이식시켰으며 후티를 이용해 예멘 내전에 개입한 수니파의 맹주 사우디아라비아의 발목을 잡고 사우디 국내에서도 억눌려 있던 시아파들을 이용해 지속적인 소요를 일으키고 있다. 이들의 사병 조직인 이슬람 혁명 수비대는 분명 한 국가의 군대에 가까운 집단임에도 현재까지도 지나가는 민간 상선을 피랍하거나 민항기를 격추하는 등 막나가는 행보를 보이고 있다. 신정 정부 이전 이란 제국 팔레비 왕조의 비밀경찰 샤바크(SAVAK)도 백색테러 면에서 뒤쳐지지 않는 잔혹성을 가지고 활동했었다.

파키스탄은 테러리스트를 막으라고 세워 놓은 첩보기관 ISI가 독자적으로 탈레반파키스탄 탈레반을 의도적으로 만든 후 밀어주기 시작한 것을 시초로 현재까지 국가권력 그 자체가 테러를 교묘하게 이용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는다. 그나마 미국아프간에 주둔할 때는 라쉬카르 에 타이바같은 소규모로 꾸린 유격조직이나 뭄바이의 D-컴퍼니를 비롯한 인도 마피아를 통해서 은밀한 테러를 수행했지만 미국아프간을 나간 이후에는 눈치조차 보지 않고 대놓고 대형단체인 탈레반을 지원하고 있다. 2021년 아프가니스탄 내전에서는 생뚱맞은 파키스탄군 헬리콥터아흐마드 마수드에 맞서 탈레반 토후국 정권을 지원하러 나섰다가 격추되는 추태를 보이기도 했다. 탈레반 부지도자쯤 되는 압둘 가니 바라다르가 조직 내분으로 부상당하자 자국 병원으로 후송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무아마르 카다피리비아 아랍 자마히리야미국에게 받은 테러지원국이라는 타이틀이 아깝지 않게 70~90년대 자국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좌익이든 우익이든 중립국이든 민족주의 조직이든 이슬람 극단주의든 사상 없는 도적떼든 간에 가리지 않고 무조건 지원하거나 선제공격하여 세계 각지의 분쟁들을 심화시킨 것으로 악명 높았다. 이는 카다피의 사상에 기반했는데, 카다피는 테러가 단순 공포 수단이 아닌 약자가 강자를 상대로 대항하는 무기라고 주장하며 테러 행위 그 자체에 호의를 표하였기 때문이다. 카다피는 테러를 자신의 권력 수단 및 국가적인 권위를 높이는 수단으로 적극 이용하였고 캐나다에서부터 영국, 이집트, 이스라엘, 인도네시아를 거쳐 필리핀을 찍고 누벨칼레도니에 이르기까지 자기 마음에 안 드는 세력들을 견제하기 위해 세계 각지의 테러리스트 단체와 무장단체, 반군들을 지원하는 한편 리비아 항공이나 리비아 정보부 등 자국 권력을 이용해 UTA 772편 폭파 사건팬 아메리칸 항공 103편 폭파 사건같은 직접 테러를 일으키기도 하였다. 그래서 카다피가 사망했을 때 이들 테러 사건의 피해자 유족들은 카다피의 죽음을 천벌이라며 축하하기도 했다.

이러한 국제 테러 면에서 카다피는 자신의 사상 설파와는 반대로 소위 '제국주의적 행보'를 일으키는 서구 권력층 중심 인물들 대신 불특정 다수 민간인을 더 많이 노리는 비열한 모습을 보였고 정작 자신 역시 석유패권에 눈이 멀어 한 때 혁명 동지였던 이집트에 테러를 하고 국경에서 시비를 걸었다가 깨지거나, 리비아 외교관들이 런던 한복판에서 망명자들을 향해 총기난사를 벌인 끝에 애꿎은 영국 경찰 한 명을 죽이거나, 서독 나이트클럽을 폭파시켜 참다 못한 미국에게 리비아 공습을 당하거나[27], 찰스 테일러혁명연합전선을 선동하여 시에라리온 내전라이베리아 내전을 부추겼고, 자국보다도 한참 약한 차드를 상대로 리비아-차드 전쟁을 벌였다가 또 된통 깨지는 등 예상만큼 테러로 세계에 큰 설득력을 주진 못했다. 심지어는 자국과 별 관계도 없는 뉴질랜드마오리족 사람들을 선동하려다 실패로 돌아가거나 호주에서 외교관들이 뇌물 공세를 하다가 걸려 쫓겨나고 외교 관계가 단절되기도 했다. 유고슬라비아 내전에서는 슬로보단 밀로셰비치의 인종 학살을 지지하여 이슬람 국가들에게 원성을 샀다. 또한 테러 정책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적이라고 선포한 동구권이나 프랑스 등과 얼마든지 손을 잡았다가 모른체 하고를 반복하여 불신을 자초하기도 했다. 이 때문에 카다피는 80년대 내내 온갖 국가들에게 단단히 찍혀 있었고 2000년대 들어서는 서방, 이집트 등 이슬람권과의 관계 개선을 겸해서 테러 노선을 사실상 포기하게 되었다. 상술한 영국 경찰 살해 사건에 대한 보상이나 로커비 테러 용의자들을 넘겨준 것 역시 이 때 이루어진 것이다. 서방 국가들과 이집트는 이에 대한 보상으로 리비아와의 외교 관계를 다시 복원해주었고, 넬슨 만델라코피 아난 등이 서방, 이집트와 리비아의 화해를 도왔다. 물론 겉으로는 그랬다는 거고 속으로는 다시 PKK, FARC, 자유 파푸아 운동과 오마르 알바시르, 무사 다디스 카마라 등을 물밑에서 안 들키게 지원했다.

어찌됐던 카다피의 이런 태도 덕분에 진영논리에 의해 영국, 캐나다, 이스라엘, 프랑스, 인도네시아 등 마음에 안 들었던 친서방 반공진영에 엿을 먹이겠다는 일념 하나로 IRAPFLP, ETA, PLO, 모로 이슬람 해방 전선, 페루투팍 아마루 해방운동, ANC의 국가의 창, 남 말루쿠 공화국, 퀘벡의 FLQ, 자유 파푸아 운동, 자유 아체 운동, 혁명연합전선, 찰스 테일러의 사병 세력인 NPFL, 필리핀 신인민군, 필리핀 공산당, 빛나는 길, 후티, 산디니스타 민족해방전선, 프랑스 극좌단체 악시옹 디렉테, 붉은 여단, PKK, FARC, 마누엘 로드리게스 애국 전선, 바더 마인호프, 오스트리아네오나치투아레그 반군 등 세계 각지의 수많은 단체들이 생각지도 못한 지원을 얻었고 FRETILIN이나 자유 카낙 인민해방전선, 남서아프리카 인민기구, 투파라모스, 폴리사리오 전선, 흑표당 등 여타 흑인 민권 운동 단체들처럼 딱히 테러 단체도 아닌 세력까지 진영논리의 수혜를 받아 얼떨결에 도움을 받기도 했다. 자국의 반대파들을 향한 테러 역시 성행했으며 반카다피 인사들은 카다피의 시절을 녹색서에서 따와 녹색 테러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러한 카다피의 테러 노선은 이웃 수단오마르 알바시르가 그대로 배워서 써먹었다.

수단오마르 알바시르도 비슷한 목적으로 카다피를 보고 배워다가 소말리아 모하메드 파라 아이디드의 군벌, 하마스, 에티오피아의 지하디스트들, 그리고 무엇보다도 아직 초짜 시절 알 카에다까지 이슬람 극단주의 단체 위주로 테러단체들을 후원했고 나중에는 권력 강화를 위해 바까라족 등이 주축이 된 잔자위드, 젤라바 등의 부족 우월주의 단체들을 지원하여 다르푸르 학살을 일으키는 한편 신의 저항군같은 해외 이교도 군벌들도 지원했다. 오사마 빈 라덴카를로스 더 자칼 등의 유명 테러리스트들이 그의 보호를 거쳐 가기도 했다. 이렇게 키워낸 테러리스트들은 나중에 신속지원군으로 변모하여 2023년 수단 내전의 원인으로 역사에 남게 된다.

자이르모부투 세세 세코 역시 권력과시를 위해 중앙아프리카 제국에 자기 군대를 파견해 보카사 1세를 도와서 미성년자 학생들을 상대로 테러를 저질렀다.

우간다이디 아민 시절부터 테러리즘을 이용하였다. 정신 상태가 좋지 않아 막 나가는 정책을 핀 이디 아민답게 철저하게 계획되지 않은 막가파식 테러를 주로 벌였는데, 아민이 반유대주의에 푹 빠져 있던 시절의 엔테베 사건이 그 예라고 할 수 있다. 결국 어설픈 계획과 시도로 이스라엘 특수부대에게 진작에 진압당하고 애꿎은 노약자나 쏴 죽이며 분풀이를 해야 했다. 반면 후임 요웨리 무세베니는 아주 치밀하게 옆 나라 르완다에서 벌어진 르완다 내전을 십분 이용하여 의도적으로 폴 카가메를 비롯한 고향 잃은 투치족들에게 접근해서 투치족 반군을 집중육성해서 르완다 진군을 돕고, 후투족 잔당을 뒤쫓아햐 한다며 카가메를 부추겨 콩고민주공화국을 침공하게 만들었다. 그러고는 우간다군을 콩고민주공화국에 보내어 무주공산이 된 콩고의 온갖 자원을 찬탈하고는 친우간다 반군 및 테러리스트 단체를 곳곳에 심어 놓아 현재까지도 콩고민주공화국에 영향력을 끼칠 수 있게 만들어 놓았다. 이 때문에 우간다는 르완다와 묶여서 '아프리카의 프로이센'이라고도 불린다. 무세베니는 이 공작으로 아프리카 정치계에서 절대 무시할 수 없는 중요 인사가 되었다. 콩고에 묶인 우간다군으로 인한 권력 공백 때문에 자국에도 ADF신의 저항군같은 테러 단체가 활동하게 되었긴 하지만 말이다.

일명 불량 국가(Rogue State)라고 불렸던 북한이나 아파르트헤이트 시절 남아공, 로디지아, 루마니아 인민 공화국, 미얀마처럼 남의 눈치 볼 것 없이 국가 이미지가 굉장히 나빴던 국가들이나 강성 군사정권이 집권하던 칠레, 아르헨티나, 대만, 그리고 프랑스리비아, 이란, 이스라엘, 인도네시아와 같은 일부 국가에서는 누구를 시킬 것도 없이 직접 정부 기관이 나서서 테러를 저지르고 경고 목적 등을 위해 이를 딱히 숨기지 않기도 했다.

아파르트헤이트 독재 정권 시절 남아공경찰은 말이 경찰이지 국민당 정부의 수족 역할을 하며 온갖 대내/대외 테러 행위를 수행했다. 디르크 쿠치(Dirk Coetzee)유진 드 콕(Eugene De Kock)이 이끌던 남아공 경찰 소속 대분란전 담당부서 'C10', 혹은 위치한 부지 이름을 딴 '블락플라스(Vlakplaas)'는 노쿠툴라 시멜레인(Nokuthula Simelane), 루스 퍼스트(Ruth First)와 같은 반아파르트헤이트 인사들에 대한 끊임없는 암살과 우편폭탄 테러로 악명이 높았다. 특히 피터르 빌럼 보타 독재정부 당시 드 콕의 치세에는 그 잔혹성이 극에 달해 서구권에서 '악의 화신(Prime Evil)'이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였다. 블락플라스는 올로프 팔메 총리 암살사건의 배후로 의심되는 곳이기도 하다. 드 콕은 블락플라스에 오기 이전 남서아프리카에서 나미비아 독립 전쟁이 한창일 시 남서아프리카 인민기구에 맞서 싸울 대분란전 담당 경찰부대이자 무자비한 인권 탄압으로 유명했던 '쿠푸트(Koevoet)'[28]에서 활동하기도 했다. 히틀러조주빈, 스녜츠쿠스, 혹은 데니스 레이더가 그랬듯이, 드 콕은 사석에서는 한없이 친절하고 가정에 충실한 사람이었으며 책임감 있는 가장으로 활동했다고 한다. 품라 마디키켈라의 '그날 밤 한 인간이 죽었다'의 내용에 따르면 드 콕의 가족들은 그가 기소되기 전까지 경찰도 아니고 해외 출장이 잦은 사업가인줄로만 알고 있었다고 한다. 드 콕은 아파르트헤이트 붕괴 이후 1996년 6건의 살인을 포함하여 총 89건의 혐의로 기소되었고 212년의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진심인지 아니면 가석방을 노리고 한 행동인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드 콕은 자신의 피해자들에게 용서를 구하는 편지를 여러 차례 쓰는 한편 프레데리크 빌럼 데 클레르크 역시 아파르트헤이트 원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고 발언하기도 했다. 드 콕은 2015년 가석방되었다.

이외에도 크레이그 윌리엄슨이 유명하다. 크레이그 윌리엄슨은 남아공 경찰 보안국 소속이었고, 마찬가지로 반아파르트헤이트 인사 마리우스 슈훈(Marius Schoon)의 일가족을 앙골라에서 우편폭탄으로 암살하거나 해외에서의 불법 무기 거래, 모잠비크 정부 전복 기도 등의 온갖 불법 행위로 악명이 높았다. 윌리엄슨 역시 올로프 팔메 암살의 배후로 의심받는 사람 중 한 명이다.

비슷한 처지였던 로디지아 역시도 모잠비크 민족저항운동 등의 어용 테러조직을 만들어 심어서 주위에 널린 국가 위협을 최대한 억제하고자 했다.

프랑스인도네시아의 경우에는 민간인을 상대로 각각 특수부대 세르비스 악시옹과 코파수스를 투입해서 위장 테러조직을 만들어 사실상 직접 테러를 일으키기도 했다.[29] 프랑스나 인도네시아는 레인보우 워리어 호 격침 사건이나 1975년 호주 기자 총살 사건에서 보듯 민간인에 대한 공격에 특히 거리낌이 없었기 때문에 국제적으로도 많은 비난을 받았다. 인도네시아는 여러 어용 민병대들을 만들어 자국 내 인도네시아 공산당원으로 의심되는 인원들을 숙청하는 데 썼고 동티모르서뉴기니에서도 똑같이 잘 써먹었다.[30] 특히 동티모르에서는 베시 메라 푸티, 아이타락, 락사우르, 마히디 등 악명높은 친인도네시아 테러리스트 집단들이 온갖 패악질을 부리고 다녔다. 네덜란드 역시 인도네시아 독립 전쟁 당시 레이몬드 베스테를링(Raymond Westerling)이 심어놓은 공의의 군주 부대(Angkatan Perang Ratu Adil)를 비롯한 수십개의 어용 친란() 테러 집단들을 동원하였다.

대한민국 역시 예외는 아니어서 서북청년회, 대한청년단, 대한민청 등의 하부 테러 조직들을 지원하거나, 니가타 일본 적십자 센터 폭파 미수 사건, 김대중 납치 사건, 오홍근 테러사건중앙정보부, 안기부, 보안사를 비롯한 국가기관에서 주도하여 일으킨 테러 사건도 상당하다. 특히 치안본부 산하 백골단의 숱한 만행들은 대중에게도 잘 알려져 있다. 일본은 비록 중앙정부 차원은 아니지만 사실상 중앙정부를 장악하고 있는 자민당 내부 일부 극우 인사들을 중심으로 재특회와 같은 증오단체[31], 흑룡회같은 극우 단체, 우요쿠단타이들을 지원하기도 한다.

9. 행위별 유형

테러에는 다양한 유형, 전술이 있다. 과거와 다르게 현대의 테러는 주로 이하의 유형을 복합적으로 취하고 있다. 이는 보다 거대한 스케일의 테러를 꾸민다는 점, 그리고 대테러 수준이 발달함에 따라서 더욱 치밀하게 준비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버스기차 등을 납치하는 행위도 하이재킹의 범주 안에 들어간다.
화학무기는 몰라도 생물무기는 통제하려면 확실한 기술력이 보장돼야 하기 때문에 빈도수가 적은 편이다. 탄저균을 제외하면 아직까지 적절한 파괴력을 보이는 세균이 없어서 비용 대비 효과가 적다는 것도 이유다. 그 탄저균조차도 가끔씩 특수목적으로 쓰이는 것 이외에는 거의 쓰이지 않는다. 취급 자체가 굉장히 까다롭고 위험한 데다 효율도 잘 안나오기 때문.
생소하게 들릴 지 몰라도 이미 일본에서 옴진리교가 벌린 1995년 도쿄 지하철 사린 사건이라는 유명한 사례가 있다. 가스의 유출량에 비해 사망자가 많지는 않았지만, 독가스인 사린가스를 민간에서 연구하여 일으킨 최악의 생화학 테러이다.
음식물이나 의약품에 독극물을 주입하거나 고의적으로 오염시켜 다수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는 음식물 테러 행위도 대부분 생화학 테러의 범주에 들어간다. 주로 음식을 오염시키는 데 화학 물질이나 생물학적 오염물을 사용하기 때문.

10. 행동지침

10.1. 국가적 대처

테러의 기술은 날이 갈수록 위협적으로 변하기 때문에 대테러 관련 정보, 전문 기술이나 인재가 필요한 것은 당연한 말. 대 테러 역량이 부족한 국가는 테러집단에게 동네북쯤으로 찍힐수도 있는데, 이러면 그 국가는 국제관계에서의 신뢰나 경제 등에 악영향이 미칠 수 있다. 동시에 국민의 불안감, 범죄와 연관될수도 있다는 측면에서 대테러 전략의 구비는 필수적이다.

대테러전략에는 대테러와 반테러가 있다.#

대테러(Counter-terrorism): 현재 진행중이거나 발생된 테러에 대한 응징 차원의 대응활동 또는 발생 가능한 테러를 방지하기 위한 전술적ㆍ방어적ㆍ현장중심의 대응을 의미

반테러(Anti-terrorism): 테러에 반대한다는 입장하에서 테러 행위를 미연에 방지하고 원천적으로 근절하기 위한 국가차원의 전략적ㆍ공격적ㆍ예방적인 의미로 사용.

UN이 권장하는 테러 방지책은 크게 4가지로 나뉘는데, 이는
  1. 테러를 확산시키는 조건을 막을 것.
  2. 테러를 방지하고 대응할 조치를 취할 것.
  3. 국가는 테러를 방지하고 대응할 힘을 기르고, 그 분야에서 UN의 영향력을 강화시킬 것.
  4. 인권법치주의를 대테러 전략의 기본으로 취할 것.

이 4가지 원칙을 직접적으로 적용하면 공권력 강화, 정보기관의 정보교환, 국민 삶의 질 향상이 있다.

10.1.1. 공권력 강화

테러가 일어나기 전에 막는게 가장 좋은 방법인데, 이를 행하기 가장 쉬운 방법은 자금줄을 끊는 것이다. 현시대의 테러 단체들은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범죄 조직과 비슷한 행위를 저지르거나 아에 비슷한 단체들끼리 결탁하기도 한다. 납치, 마약, 탈취, 강도 등등 다양한 방법을 사용하지만 이 모든건 공권력 강화를 통해 정말 까다롭게 만들 수 있다.

카슈미르 지역의 사례를 예시로 들자면 경찰서가 반군한테 털리는일이 일어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은행 여러 지점이 연속적으로 털리는 일이 발생 하는 등 불안한 공권력은 테러단체에게 계속 자금을 지원해 주는 길이 될 수 있다.#

반대의 사례를 예시로 들자면, 9.11 테러 이후 창설된 미국 교통안전청 및 전세계적으로 항공 보안심사가 강화됨에 따라 하이재킹이 급감하는등 공권력의 강화는 테러 활동을 매우 어렵게 만들 수 있다.

10.1.2. 정보기관의 정보교환

각 나라에는 국가의 안보를 위협할 상황을 미리 알 수 있게 정보기관이 설립된 경우가 많다.[34] 이 정보기관의 주 임무중 하나는 대테러 활동인데, 정보기관의 특성상 정보력이 얼마나 되는지, 무슨 내용을 주고받는지는 공개되지 않는다.

하지만 적어도 동맹 관계나 친밀한 관계일 경우 정보기관들끼리 정보를 주고받거나 협조하는 경우가 많다고 알려져 있고, 중대한 상황인 경우 별로 친하지 않은 국가 사이에서도 정보교환이 이루어진다. 예를 들어 2024년 모스크바 공연장 테러 사건이 일어나기 몇 주전, 미국이 먼저 러시아에게 테러위협이 있음을 먼저 알렸다.#

10.2. 개인적 대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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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처벌

테러는 사상 최악의 중범죄이며 국가에서 내릴 수 있는 한 가장 무거운 처벌이 내려진다. 대부분의 국가들은 거의 1급 중범죄로 다루고 테러리스트에 대한 여론이 끓어오르기 때문에 사형, 무기징역을 선고하며 애초에 대부분은 재판도 받기 전에 대테러부대에 의해 현장에서 사살된다.

테러단체를 구성하거나 가입 또는 지원하기만 해도 처벌 대상이다.
국민보호와 공공안전을 위한 테러방지법 제17조(테러단체 구성죄 등) ① 테러단체를 구성하거나 구성원으로 가입한 사람은 다음 각 호의 구분에 따라 처벌한다.
1. 수괴(首魁)는 사형·무기 또는 10년 이상의 징역
2. 테러를 기획 또는 지휘하는 등 중요한 역할을 맡은 사람은 무기 또는 7년 이상의 징역
3. 타국의 외국인테러전투원으로 가입한 사람은 5년 이상의 징역
4. 그 밖의 사람은 3년 이상의 징역
② 테러자금임을 알면서도 자금을 조달·알선·보관하거나 그 취득 및 발생원인에 관한 사실을 가장하는 등 테러단체를 지원한 사람은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억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③ 테러단체 가입을 지원하거나 타인에게 가입을 권유 또는 선동한 사람은 5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
④ 제1항 및 제2항의 미수범은 처벌한다.
⑤ 제1항 및 제2항에서 정한 죄를 저지를 목적으로 예비 또는 음모한 사람은 3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
⑥ 「형법」 등 국내법에 죄로 규정된 행위가 제2조의 테러에 해당하는 경우 해당 법률에서 정한 형에 따라 처벌한다.

12. 한국의 테러 위험성

한국 역시 테러의 위험성이 없지는 않다. 물론 애초부터 테러에 안전한 나라라는 건 없긴 하지만, 정치색을 빼더라도 애초에 묻지마 테러사이버 테러는 이미 한국에서도 벌어지고 있다. 논란이 많았던 테러방지법이 어느 정도 먹혀들어간 이유도 테러의 위협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사실 때문이다.

한국은 입국심사시 사전 여권 확인을 통해 테러 위협 분자의 출발지로부터의 비행기탑승을 아예 차단하고 체류자에 대한 모니터링을 통해 테러위협정보를 수집하고 있다. 가끔씩 테러모의세력을 적발해 추방했다는 뉴스가 보도되는데, 테러리스트는 다 잡아낸다는 것이다. 바로 북쪽에 국가전복을 노리고 테러하는 북한이 존재하니 당연한 일이기도 하다. 일례로 9.11 테러 이전부터 한국에서는 KAL기 폭파 사건 등의 일을 겪었기에 조종실문을 잠그는 규정이 있었을 정도이다.

대한민국은 이미 세계적 테러 안전권인 동아시아권에서도 중국이나 일본에 비해서 특히 테러가 덜 창궐하며 "세계에서 테러의 영향이 가장 적은 그룹"에 속한다.(Global Terrorism Index 2022에 나온다.)

12.1. 이슬람 테러

과거에는 중동이슬람 세력에 의한 테러가 우리와는 먼 만리의 소식으로 생각해오곤 했다. 동북아시아 지역은 지리적으로 중동으로부터 매우 멀기 때문에 테러의 손길이 잘 닿지 않았다. 오늘날에는 항공교통의 발달과 테러의 세계화로 가능성은 상존하게 되었다. 특히 2015년 11월 파리 테러 이후 이슬람 테러에 대한 경각심이 증폭되었다.

IS 따위와 같은 극우/근본주의 이슬람 세력의 주적은 한국보다는 아무래도 서방국인 유럽과 미국이기 때문에, 테러의 타겟으로서의 우선순위는 낮다. 그래도 일단 한국도 서방 세계의 일원이고, 비전투전력이긴 했지만서도 엄연히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 파병했던 국가이며 이스라엘과 우호적으로 지내기에 극우 이슬람 세력이 생각하는 '적국'에 대한민국이 분명히 포함되어 있으니 가능성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또한 기독교 인구 비율도 높은 편이라서 이들이 타겟이 될 가능성이 분명히 존재하는 편이다. 실제로 국가정보원2010년 이후로 이슬람 극단주의 테러 용의자 48명을 국외추방했다고 밝힌바 있고, 2004년에도 이슬람 극단주의 단체가 한국에 지부를 마련하려다 실패한 일이 있다. 물론 영국이나 프랑스, 이탈리아처럼 과거 제국주의 시절에 이슬람권에서 착취를 했다거나, 소련처럼 전쟁을 벌였다던가, 미국처럼 독재정권 및 왕가와 쿠데타를 지원하는 등 구미권 국가들과 달리 한국은 이슬람 문화권과 역사적 악연이 없었기 때문에[35] 테러를 주도하는 지도부에게 강한 동기가 없으며 우선 순위로 두지 않을 뿐이다.

12.2. 북한

한국의 가장 주요한 테러 유발 대상은 바로 북한이다. 이미 북한은 소위 말하는 무장공비, 정찰총국 등을 이용해 아웅 산 묘소 폭탄 테러 사건, 김포국제공항 폭탄 테러, 이한영 암살 사건 등 한국에 대한 테러를 자행한 사례가 여러 번 있다.

현재는 눈에 띄는 테러는 없는 모양이지만 앞으로 북한의 입장이 더욱 난처해지고 협상의 가능성이 낮아진다면 최후의 발악으로 테러를 다시 일으킬 수[36]도 있다. 더군다나 대한민국 헌법상 북한이탈주민들은 대한민국 국민으로 간주하여 받아주도록 되어 있기 때문에 탈북자로 위장하고 테러를 일으킬 가능성[37]이 존재한다. 이들을 걸러내는 것이 국가정보원, 통일부, 대한민국 검찰청, 대한민국 경찰청, 이북 5도 위원회정보기관, 방첩기관이다.

12.3. 자국인의 묻지마 테러

대한민국에서 가장 위험한 사례는 바로 한국인에 의한 묻지마 테러[38]이다. 이미 2003년대구 지하철 참사라는 역대 최악의 묻지마 테러가 발생한 바 있다. 테러의 목적, 수단은 불분명했고 오로지 불특정 다수의 공포 그 자체만을 노리는 행위였다.

다만, 한국의 법령상 자국인에 의해 총기(특히 자동화기)나 폭발물을 이용한 테러는 불가능하다고 봐도 무방하기 때문에 지금도 이따금 발생하는 불특정 다수를 향한 칼부림 사건이나 방화, 차량 돌진 등의 규모에 그치는 경우가 많아 예의주시한다고 나쁠 것은 없으나 위험도[39]는 상대적으로 낮다. 물론 고도의 기술력으로 제작한 사제총기나 사제 폭발물에 의한 테러도 가능성은 낮지만 발생 가능성이 있으니 주의해서 나쁠 건 없다.

12.4. 일어난다면 장소는?

만일 테러가 일어난다면, 테러의 목적상 불특정 다수에게 최대한의 피해를 입혀 공포심을 유발하기에 좋은 장소에서 발생할 것이다. 최근의 테러들이 대부분 그 나라의 수도에서 일어났음을 생각해 보면 위험 1순위는 단연 서울이다. 그 중에서도 유동인구가 많은 지역인 광화문, 서울역, 명동, 강남대로 등이 주요 타깃이 될 가능성이 높다. 많은 인파가 모여드는 콘서트나 스포츠 이벤트, 문화 축제 등도 가능성이 높다.

국가나 사회의 중요한 장소나 랜드마크, 문화재에 대한 테러도 국내는 물론 국제적으로도 주목을 끌 수 있기 때문에 당연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광화문 광장, 서울시청 광장, 방송국[예시1], 남산서울타워, 고궁[예시2], 명동성당, 조계사, 대사관, 제2롯데월드 등이 이에 해당할 것이다.

부산 기준으로는 부산역, 부전역, 남포동 지역, 국제시장, 자갈치시장, 용두산공원, 해운대, 광안리, 재한유엔기념공원, 광안대교 등 주요 랜드마크나 상업 지역, 부산 주재 총영사관, 대구 기준으로는 83타워, 동성로, 대구근대문화골목, 계산성당, 동대구역, 대구역, 중앙로역, 반월당역, 서문시장, 칠성시장, 두류공원 등이 주요 타깃이 될 수 있다.

그리고 명동, 여의도동[42], 부산문현혁신도시, 서면, 부산 원도심, 대구삼성창조캠퍼스, 반월당, 범어동 등 주요 금융 중심지도 테러 타깃이 될 수 있다. 금융 중심지는 도심이나 부도심에 있고, 정보 교류도 활발하며, 주변에 관공서, 전문 서비스 업종이 밀집되어 있기 때문이다.

혹은 주요 시설이 있는 곳을 공격하여 사회 및 안보 기능을 마비시키는 것이 목적일 수도 있다. 원자력 발전소, 상수도 - 하수도 시설, 공동구, 소방서, 경찰서, 학교, 병원, 다리, 교도소 등의 사회기반시설, 비교적 민간인의 출입이 자유로운 정부 기관 건물들도 위험성이 있다. 다만 이런 행위는 일반적인 테러라기보다는 전쟁 도발이나 목표 시설물 파괴행위에 더 가깝지, 테러 집단의 정치적 사상을 홍보하거나 대중들에게 공포감을 일으키기 위한 것이라고 보기는 힘들다. 이런 곳에 테러를 저지를 의도가 있는 세력은 지금으로썬 사실상 북한뿐이다.

또한 지하철역, 철도역, 버스 터미널 같은 대중교통 시설에서도 테러가 발생할 가능성도 있다. 특히 환승역이나 수요가 많은 역, 환승센터들은 환승 노선이나 수요가 많으면 많을수록 피해가 클 가능성이 높다. 인천국제공항, 김해국제공항과 같이 장거리 국제 노선이 많아 외국인 교류가 많은 공항이거나 김포국제공항, 제주국제공항처럼 국내선 수요가 많은 공항, 부산항국제여객터미널, 인천항국제여객터미널 등 국제선 선박이 많은 항만 역시 테러 대상이 될 수 있다.

청와대, 총리 공관을 포함한 주요 요인들의 관저는 테러의 목적이 될 가능성이 높으나 그만큼 대비[43]가 잘 되어 있으므로 비국가 테러 조직이 노리기에는 좀 벅찬 시설이다. 청와대, 총리 공관을 테러하려면 미사일이나 장거리 타격무기를 동원해야 할 텐데, 그 정도 되면 테러라기보다는 사실상 선전포고에 가까운 전쟁 행위이다. 이러한 행위를 저지르기 위해서는 테러 집단보다는 규모가 커야 한다.

13. 논란

"As many critics have pointed out, terrorism is not an enemy. It is a tactic. The United States has a long record of supporting terrorists using terrorist tactics. The slogans of the war on terrorism today make the United States look hypocritical to the rest of the world."
"많은 논평가들이 지적해 왔듯이, 테러리즘은 실존하는 적이 아니다. 테러리즘은 전술이다. 미합중국은 역사적으로 오랜 시간동안 테러리스트 전술을 사용하는 테러리스트들을 지원해온 바가 있다. 작금의 테러와의 전쟁에서 사용되는 수사법은 나머지 세계의 눈에서 미합중국을 위선적으로 보이게 한다."
미합중국 육군 중장이며 레이건 대통령 재임기 NSA 국장 윌리엄 엘드릿지 오돔, 말년에 테러와의 전쟁과 당시 네오콘 부시 정권의 테러리즘 개념 오용을 비판하며.[44]

20세기 중반이 지나기 이전에도 테러는 다방면으로 비판을 받아왔으며, 프랑스 혁명이 발발하기 전후 상황인 18세기 말에서 19세기 사이에는 정치적 투쟁의 수단으로 널리 활용되며 각계 인사들의 다양한 비판을 받아왔다. 예컨대, 부르주아 타도의 기치를 내건 카를 마르크스조차도 혁명투쟁의 수단으로서 테러는 지나치게 과격한 수단이며 오히려 혁명적 대의명분을 해친다는 견해를 피력한 바 있다.

그러나 격렬한 비판과 비난의 대상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통상적인 저항의 수단을 빼앗긴 특수한 정황에서는 압제에 대항하기 위한 최고조의 무력투쟁 수단의 하나로 인정을 받아온 것이 테러에 대한 전통적인 견해라고 할 수 있다. 민족주의가 본격적으로 개화한 19세기 동안 세계의 무수한 민족독립투쟁의 투사들이 압제자들과 그 동조자들에 대한 암살, 주요장소와 물자에 대한 폭탄공격 등 테러를 수단으로 삼아 저항하였으며 이는 조선의 독립투사들도 마찬가지다.

폭력은 어떠한 식으로도 정당화 될 수 없다면 정당방위라는 개념은 존재할 수 없다. 반대로, 정당방위의 개념이 존재한다는 것은, 실제로는 경우에 따라 폭력이 정당화되거나, 최소한 일방적으로 비난만 할 수는 없는 상황이 존재 한다는 것을 증명한다.

13.1. 테러와의 전쟁 이후 변화한 시각

이러한 시각이 변한 것은 1980년대에 들어와, 2001년 9.11 테러 이후 미국에서 주장한 테러와의 전쟁을 전후로 한다. 대대적인 캠페인 및 미디어전을 통해 테러는 명분이 무엇이든간에 어떠한 상황에서도 용서할 수 없는 악행으로 규정되었는데, 이는 미국의 패권적 확장정책에 줄기차게 저항하고 있는 세계 각지의(특히 남미와 중동) 모든 무장투쟁 세력으로부터 명분을 빼앗기 위한 미국의 강경책이었고, "테러리스트와는 협상하지 않는다"는 원칙도 이 시절에 와서야 비로서 완성된다. 대테러작전의 급속한 발전, 미국이 주도한 "테러의 악마화 전략"이 등장하기 이전까지는 비록 테러리스트라고 할지라도 일단은 협상의 주체로 인정하고 사건의 평화적 해결을 도모한다가 기본 정책이었다. 테러와의 전쟁 등장 이후, 방침이 변하여 테러리스트들은 협상을 할 수 있는 주체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자세의 변화가 일어났으며, 이는 역으로 테러의 과격화 및 무차별화라는 상승작용을 일으키게 된다.

테러와의 전쟁은 언뜻 부조리한 폭력과 강압을 매개로 벌어지는 강제적 협상에 더는 나서지 않겠다는, 매우 의연하고 용감한 선언처럼 들린다. 어느 면에서는 사실이기도 하다. 그러나 문제는 이것이 어느 한 정권의 개별적 신념에 머문 게 아니라, 초강대국 미국이 세계경찰 노릇을 하며 모든 우방국에 강권하여 아예 세계적으로 테러라는 개념을 악마적 행동으로 재규정해버렸다는데 있다. 이로 인해 발생한 결과는 다음과 같다.

세계각지의 서로 다른 상황에 놓인 모든 무장투쟁, 무장독립운동은 다같이 도매금으로 "범죄행위"로 낙인 찍히게 되었다. "미국은 더이상 알제리에서의 프랑스의 행위를 비난하지 않을 테니, 프랑스는 미국이 남미 및 중동에서 벌인 행위에 대해 함구하며, 세계 열강이 중동에 집적거리는 것에 터키는 별 소리 안 하는 대신에, 세계 열강도 터키가 아르메니아에서 하는 짓에 대해 모르는 척 한다"... 라는 식의 '강대국의 침묵의 카르텔'이 형성된 것은 이 시기이다.

13.1.1. 저항권의 상실

무차별적인 테러의 결과로, 인질의 희생을 감수해서라도 테러리스트와는 절대 협상하지 않는다는 일방통행주의가 강력한 명분을 얻게 되어 국제 상식으로 자리잡았다.[45] 그 결과 세계 각국에서 테러리스트는 그 목적과 무관하게 법정 최고형에 가까운 처벌을 받게 되었으며, 테러로는 메시지 어필이라는 본래의 목적을 달성할 수 없게 되었다.

이 시점 이전까지 테러는 일련의 정치적 목적을 이루기 위해 전략적/전술적 목표들을 선택하여 공격하였다.[46] 그러한 공격을 통하여 강대국들의 협상을 이끌어 내고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켜 자신의 주의주장을 하는 정치적 투쟁의 일환이었다. 그러한 정치적 목적성을 지닌 만큼 이 시점까지의 테러는 자행하는 파괴의 잔혹성/규모와 주장하고자 하는 대의의 설득력 사이의 미묘한 균형을 유지하려는 경향이 있었다. 그러나, "사람들 마구잡이로 죽이고 다니는 네놈들과는 이제 대화 안 한다. 그냥 없애 버리겠다"라는 식으로 방침이 정해진 이후의 결과는 파괴만을 목적으로 한 테러나 자폭 테러, 테러리스트의 자살로 인한 공소권 소멸 등의 방식으로 돌아왔다.

일부 연구자들은 이것이야말로 '테러와의 전쟁의 가장 큰 패악'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언뜻 듣기에는, 테러와의 전쟁은 "불법적폭력을 행사하며 강짜부리지 말고 제대로 절차를 거치며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원칙주의 같다. 하지만 애초에 정상적인 채널, 합법적 창구를 통해 문제를 해결할 수 없기 때문에 발생하는게 무장투쟁이라는 현실에 많이 동떨어져있기도 하다. 이 논리를 일제강점기에 그대로 적용하면 독립운동가들은 무장저항 같은 것을 하지 말고 조선총독부 등을 통해 일본에 항의서한 및 독립요구라도 전달을 했어야 한다. 이상적인 사회에서야 그 의견의 타당성을 고려해 심사숙고한 끝에 조선을 독립시켜주겠지만 제암리 학살 사건이 발생한 것과 같다.

민주주의 사상의 본연은 근대 시민혁명의 목적인 압제자의 타도로부터 출발했기에, 이미 주류 사상이 되어 세계에 보편화 된 이후에도 이 '저항'의 개념은 권력자들이 그것을 제거하기 위한 수 많은 시도에도 불구하고 원론적이나마 남아 있다. 그렇기 때문에 종종 폭력사태로 귀결되는 집회와 시위 같은 '실력행사'에 대해 제대로 된 민주주의 국가들은 "그래도 수용해야 한다"라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이 저항권을 적극적으로 해석하는 경우, 조국이 식민지로 전락했거나 하여 정상적이고 절차적인 방법으로는 그 부조리를 탈출할 수 없는 사람들에게는 그 현실에 저항할 권리를 인정해야 한다. 실제로 80년대 이전에는 그렇게 테러를 바라보았고, 무아마르 알 카다피를 비롯한 이들 역시 테러를 강자에 대한 약자의 적법한 저항 수단으로 옹호하였다. 예를 들어 격화되고 잔혹화되는 경향 속에서도 아일랜드 독립투쟁의 선봉에 서있던 IRA신 페인은 영국 내에서도 지지 여론이 있었을 정도이다. 평화와 인권의 업적에 대해 찬양받는 남아프리카의 넬슨 만델라ANC 또한 초반에는 마하트마 간디의 영향을 받은 비폭력 평화운동을 진행했지만, 이에 아파르트헤이트 독재정부가 무차별 총격 및 우편폭탄 태러로 대응하자 이에 맞서 남아프리카 공산당과 협력하여 자체 무장조직 민족의 창을 설립해 폭력투쟁과 테러를 시작했고, 미국 민권운동에 있어 마틴 루터 킹 목사와 쌍벽을 이루고 있던 말콤 엑스 또한 각종시위 등에 있어서 '적극적 저항' 및 '전투적 저항'을 극도로 옹호하였다.

바꿔 말하면, 강압적이고 권위주의적인 방식으로 권력을 유지하려는 세력에 있어서 저항권의 개념은 눈의 가시와도 같은 존재이다. 그리고, 당시 상황에서 내부적으로는 선진적이고 민주적인 국가라고 할지라도 국제적인 관계에서는 폭력적인 행위를 일삼는 이중적인 태도는 비단 미국만의 문제는 아니었다. 그러나 칠레의 아옌데 정권을 전복시킨 추악한 CIA 공작, 쿠바에 대한 끝없는 개입, 친미정권 유지를 위한 중남미 각국에 대한 끝없는 내정간섭, 아우구스토 피노체트와 같은 독재정권 옹호, 파나마 침공, 중동에서의 일방적인 이스라엘 편들기식 개입, 적국 견제를 위한 아파르트헤이트 남아공 정부와 크메르 루주에 대한 비밀 지원, 이란-콘트라 사건 등 당시 미국의 행보는 심각했다.

이는 수많은 지역에서 반미 무장투쟁을 불러 일으켰으며, 미국과 같은 초강대국과 대적할 수 있는 세력은 아무도 없는 이상 결국 무장저항은 미국에 대한 테러 투쟁의 형태를 취할 수 밖에 없다. 그와 함께 미국에 대한 여론 또한 악화되면서 당시 레이건 행정부가 낸 회심의 한 수가 바로 테러와의 전쟁이었던 것. 결국 테러와의 전쟁은 테러의 주동세력에 대한 군사적 공격이었을 뿐만이 아니라 저항권의 정당성을 주장하던 측에서 명분을 빼았고 "테러는 무조건 다 나쁜 것. 어떤 예외도 없음"이라는 일방적 규정을 세계화 하는 여론전, 미디어전의 특성도 지니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저항권 자체에 대한 부정적 모습을 보이는 것은 이후 미국뿐만이 아니라 타국들에서도 자신들의 억압, 탄압 행위를 정당화 하는 수단으로 테러 척결, 테러와의 전쟁을 명분을 삼기 시작한 것. 그 예로 중국에서 홍콩이나 위구르 족에게 일삼는 압제에 대해 '테러리즘 척결'을 빌미로 삼는가 하면, 터키에서 쿠르드족 탄압에서 테러 단체 진압을 명분으로 거론하고 있으며 이스라엘에서 팔레스타인을 테러 원천 차단의 명분으로 탄압하고 있다. 시리아의 독재자 바샤르 알아사드는 테러와의 전쟁을 거론하며 자신에 대해 반대하는 세력들을 전부 싸잡아 공격하였다.

13.1.2. 보복적 테러로 격화

정상적으로 저항할 수 없는 상황에서 자신들의 처지를 알리고자 행한 것이 전통적인 테러였는데, 명분을 잃은 만큼 누구도 테러리스트들의 말에 귀기울이지 않게 되었다. 결국 테러리스트들은 메시지를 더 강렬하게 어필하고자 테러의 규모와 흉악도를 높히게 되었고, 방식도 묻지마 테러, 자폭 돌격 등 극단적이고 비윤리적인 것으로 변화하게 되었다. 자폭테러와 같은 파괴적인 테러방식이 전례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오늘날 '테러' 하면 아예 이것을 떠올리게 된 것은 테러와의 전쟁 이후다.

그 이전까지 테러리스트들은 파괴 및 암살 등 치명적 무력의 사용이 지나치게 도를 넘어서는 경우 자신들의 본래 목적의 대의가 훼손당하는 것을 분명 경계해왔다. 그렇기 때문에 2차 피해가 발생한다 할지라도 어쨌든 그것을 딱히 즐기거나 자랑하는 것도 아니었으며, 가급적이면 본래 목적 대상에 한정한 정밀한 테러를 기획하고 실행해 왔다. 조선독립을 위해 투장한 안중근, 김구, 김원봉, 신채호 등이 옹호한 무력투쟁, 테러 투쟁 또한 이런 종류에 속한다.

그러나, 테러와의 전쟁 이후 테러는 중대한 변화를 맞이한다. 이 변화를 일컬어 뉴테러리즘(New Terrorism)이라 하는데 일련의 목적을 이루는 것이 처음부터 불가능에 가깝게 되었기 때문에, 이제 테러리스트들은 더 이상 정치적 목적의 성취를 위해 싸우는 게 아니라 단순히 울분을 풀기 위해 테러를 한다. 수행 방식이 정밀타격에서 무차별 학살로 바뀐 이유가 여기에 있다. 즉, 테러가 더 이상 무엇인가의 수단이 아니라 그 자체로 '목적'이 되어버렸다는 것이다. 테러에 대한 무관용 원칙은 테러를 줄이는 데에 크게 기여하기는 했지만, 어느 측면에서는 오늘날 초과격 테러를 낳은 한 원인으로 작용하기도 했다.

13.1.3. 자업자득이기도 하다

테러의 악마화는 비단 강대국의 제국주의나 테러와의 전쟁에만 책임이 있는 건 아니고 테러리스트들의 자업자득적인 측면도 있다. 테러와의 전쟁 이전에는 테러리스트들이 적성국의 관공서나 군대를 공격하거나, 인질을 붙잡되 노약자와 아이들은 풀어주고 협상을 하는 등 최소한의 원칙과 협상하겠다는 입장 정도는 있었다.

이것이 바뀐 것은 베슬란 학교 인질사건9.11 테러이다. 9.11 테러는 위에서 언급한, 테러리스트 자신들이 내걸었던 전제들을 모두 무시하고 세계무역센터가 미 제국주의의 상징이라는 이유만으로 일절 협상도 없이 수천 명의 민간인을 학살한 악행이었을 뿐이다. 자국의 심장에서 군인이나 공무원도 아니고 민간인이 수천 명이나 학살당한 상황이었고, 전 미국이 격렬한 분노로 들끓었다. 테러리스트와 협상을 하겠다는 정치인이 나타났다면, 정치 생명은커녕 실제 생명도 위협받을 수 있는 상황이었으며, 테러에 온정적으로 대응할 명분이 완전히 증발해 버린 것이다. 미국을 비롯한 제1세계 국가와 국민들은 물론 리비아 자마히리야, 북한과 같은 원조 테러지원국들과 실제로 알카에다와 탈레반을 뒤에서 지원하고 있던 수단 공화국, 파키스탄까지 전부 겁에 질려 괜히 테러와의 전쟁을 적극적으로 지지한 게 아니다. 베슬란 테러 역시 러시아 제국주의만을 상대하겠다던 샤밀 바사예프와 자칭 체첸 독립운동가들이 엄한 와하비즘에 물들어 이성이 마비되어 애먼 오세트 초등학생들을 쏴 죽인 악행에 불과했다.

물론 9.11테러를 일으킨 알 카에다나 베슬란 테러를 일으킨 이치케리야 체첸이 아닌 타 단체에게까지 이러한 프레임을 적용하는게 부적절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테러를 당하는 쪽에서 수많은 테러단체들의 개별적인 성향과 과거 행적까지 일일이 알아낸 뒤 그에 맞춰 점잖게 신사적으로 협상에 응해줘야 할 의무가 있다고는 볼 수 없다. 예를 들어 범죄자가 총을 쏴서 경찰이 죽었다면, 경찰들에게 총 든 범죄자에게는 강경대응하도록 지침이 내려지는게 당연한 일이다. 범죄자가 어떤 사람인지, 과거의 범죄에서 어떠한 행동을 했는지까지 일일이 알아내고 분석해서 대응할 수는 없다.

13.2. 한국의 독립운동가들은 테러리스트인가?

사전적 의미로 보건, 목적과 방식으로 보건 한국의 독립운동가들은 테러리스트가 맞으며, 독립운동가들의 여러 의거는 아주 정석적인 테러 행위에 속한다. 다만 강력한 명분을 갖추고 있었고, 방식도 현재의 묻지마 테러에 비해서는 매우 온건하고 정교한 것이었기에 같은 잣대로 평가할 수 없을 뿐이다. 안중근 의사의 이토 히로부미 암살, 백범 김구[47]나 약산 김원봉 등의 활동, 무정부주의 계통 독립운동가들의 활동 등은 한국에선 독립운동으로 볼 수 있겠지만 보통 그런 것이 사전적 의미로서의 테러로 볼 수 있으며, 자신들의 활동에 대해 스스로도 각종 활동선언 등에서 '테로(テロ)'[48]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의열단 역시 테러 행위로 독립을 수행한다고 밝혔다.

13.2.1. '테러리스트'라는 표현에 대한 오해

나는 북간도에서부터 동경하던 바와는 달리 민족 진영에 대한 실망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조국 광복이라는 대전제 밑에 모여든 인사들인 만큼 항일 의식은 욱일승천의 세를 이루고 있었으나 행동은 제각기였고 이율배반적인 모순들을 안고 있었다.

이 점에 대해서는 내가 경애하던 김좌진 장군도 예외는 아니었는데 사람을 선택하는 면에 있어서 부족한 점이 있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모름지기 적을 없애는 데는 용기와 예지, 기술 모두 필요하지만 특별히 없어서는 안될 것이 참된 휴머니즘이다. 참된 테러리스트는 최고의 휴머니스트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이백호라는, 총을 잘 쏘는 자가 있었다. 그는 어떤 인연에서인지는 몰라도 신민부에 참여하게 되었고 그러다가 지방 출장까지 가게 되었다. 그런데 동빈 지방에 가서 거류 동포들이 말을 잘 안 듣는다고 총을 난사하여 여러 사람을 사살한 일이 있었다. 이 때문에 최고 책임자인 김좌진 장군에게 갖은 악평이 퍼부어졌고 크게는 신민부 해체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나중에는 김좌진 장군의 족제 되는 시야 김종진과 이준근 및 김야운 등도 이백호 무리에게 학살을 당해 민족적 손실을 보게 되었다. 그 밖에 이백호는 경박호에 살던 김만산이라는 중국 통역도 살해해 그가 입었던 옷까지 입고 다니는 행패를 부렸는데 결국 누군가의 손에 의해서 타살되었다.
이강훈, 『민족해방운동과 나』, 서울:제삼기획, 1994, 97~98쪽

김좌진/비판/지역주민에 대한 폭력 문서에서 인용된 글인데, 해당 증언을 한 사람은 이강훈이란 독립운동가이다. 글을 보면 나와있지만 "참된 테러리스트는 최고의 휴머니스트가 되어야 한다"고 "테러리스트"란 단어 자체를 현대인들은 '의사, 지사, 투사'란 다른 단어로 쓸법한, 긍정적인 단어로 쓰고 있다. 이 당시만 하더라도 '테러리스트'가 단어 자체로 지금처럼 악마화된 개념이 아니었고, 독립운동가들 스스로 당당하게 '테러리스트'를 자처했다는걸 방증한다.

테러에 대한 정의는 다양하지만, 현대 국제기구의 대부분의 정의에서는 정치적 목적이 있을 것, 의도성이 있을 것, 민간인을 표적으로 할 것, 국가 혹은 대중의 행동에 영향을 줄 목적으로 할 것, 폭력이 사용되었을 것을 요건으로 한다. 하지만 이는 정치적 올바름 운동의 영향을 받은 일부 서방 국가에서만 현대에 제칭한 것으로 대한민국에서는 이러한 정의가 항상 부합하는 것은 아닌데, 대표적인 예시로는 아웅산 묘소 폭탄 테러 사건 등이 있다.

무장독립운동가의 활동은 안중근, 이봉창, 윤봉길 등의 경우를 보더라도 목표는 정부의 요인, 일본 황실의 인물 등을 대상으로 하였지만 단지 해당 정부 요인을 죽이는 것으로 전쟁을 이기겠다는 목표로 하지 않았고, 좀 더 넓은 스케일에서 일본 제국의 행동과 일본 사람들과 국제적의 인식에 영향을 줄 목적을 가졌고 이는 성공하기에 이른다. 이외에도 김상옥의 종로경찰서 폭탄투척 사건와 같은 의거들도 현대적 의미의 테러에 부합하다.

테러는 전쟁와 같이 무고한 사람을 해할 수 있다는 부정적인 면이 존재한다. 그리하여 무장독립운동가는 묻지마 테러를 일으키는 테러리스트라는 오해가 생길 수도 있다.

이런 오해들에서 벗어나서 테러 활동을 할 수 밖에 없었던 시대적 이유를 생각하며 일제 치하에서 독립운동가들이 어떠한 노력을 하였는지를 생각하는 태도가 오히려 바람직하다고 볼 수 있다.

14. 통계

연도 사망자 발생 건수
1995년 165명 440건
1996년 311명 296건
1997년 221명 304건
1998년 741명 273건
1999년 233명 392건
2000년 405명 423건
2001년 3,547명 346건
2002년 725명 199건
2003년 625명 208건
2007년 약 1만 2,800명
2011년 5,000건
2012년 약 1만 5,500명 8,500건
2019년 2만 309명 8,473건

15.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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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관련 문서


[1] terrorism[2] 비슷한 구별 방식이 'tour'와 'tourism'에서도 나타난다. 여행 문서로.[3] 대표적인 예로 IRA 소속으로 FARC를 자문하기위해 파견되었다는 이유로 영장이 나왔던 Colombia three. 다만 실제 IRA소속이였는지, FARC와 접촉했는지는 밝혀지지 않았다.[4] 백인 우월주의라는 혐오에 의한 범행인 것이 밝혀진 후에도[5] 한국어로 비슷하게 '대공포'(大恐怖)라고 번역하는 대혁명 직후 농민들의 집단적 공포는 프랑스어로 'la Grande Peur'라고 한다.[6] 본래는 정치극단주의를 심리적으로 설명하기 위해 등장한 이론이다.[7] 초기에 미군을 노리고 행했던 테러는 미국 정부가 군사작전으로 응징했고, 9.11 테러 이후, 미국이 주동자들을 찾아내 그들을 하나하나씩 제거해나가자 더 이상 미국을 대상으로 테러가 곤란해진 이유도 있다.[8] 인류의 무기 중 가장 위험한 핵무기까지 보유한 것까지 감안하면 상상 이상으로 위험한 단체가 된다.[9] 심지어 1985년에는 그린피스 소속 레인보우 워리어 호가 DGSE의 특수작전부대인 세르비스 악시옹한테 털린 적도 있었다.[10] 캐나다 정부가 테러 행위라고 비난성명을 냈다.[11] 환경단체 주제에 바다를 오염시키는 화학물질을 던져대질 않나, 대표라는 놈(전 그린피스 멤버 폴 왓슨)이 포경선 스크류에 배를 박는 짓도 불사하겠다고 진상을 부리질 않나, 일본 해상 보안관이 투척식 음파 경고탄을 터트리자 숨겨뒀던 총알을 몰래 꺼내서는 "일본놈들이 쐈다"이라며 방송국 카메라 앞에서 거짓말을 하지 않나. 무엇보다도 제일 용서가 되지 않는 건 저런 사기 선전 수법으로 사람들을 낚아서(배우 우마 서먼이나 피어스 브로스넌 등도 후원자다!) 기부금을 엄청나게 많이 받아 처먹고 있다는 점. 이놈들은 그 돈으로 "해신의 군대"라는 사설부대까지 만들어서 보유하고 있다.[12] 미 국무성이 의회에 1년 단위로 보고.[13] Title 22 of the United States Code section 2656f(d)[14] 미국이 공식적으로 정의한 테러리즘 중 가장 넓은 범위의 정의[15] UN 안보위원회 결의 1373호[16] 한국 정치학 교과서에서 가장 빈번히 인용됨. Joshua Goldstein, International Relations, 3ed ed, N.Y.: Longman 1999, p230[17] 예를 들어 스페인의 이라크 파병군을 전군 철수하게 만든 마드리드 열차 테러가 있다.[18] 다만[19] 일본인 어부들은 최신 장비를 이용하여 조선인 어부들보다 10배나 많은 양의 수산물을 싹쓸이 하면서 어장을 빼앗아갔기 때문에 조선인 어부들의 증오가 엄청났다.[20] 다만 본 항목에도 서술 되어 있듯이 독립운동의 경우 애매할 수 있는데 IRA와 ETA의 경우 말 그대로 독립운동가들이라고 보는 시각들도 많이 있다.[21] 대표적인 것이 야인시대 64화에 나오는 김두한중앙극장 습격 사건이다. 자세한 건 해당 문서로.[22] 러시아 내전에서 녹군은 좌파 사회혁명당을 의미했다는 것을 고려하면 시간이 흐르면서 이념적으로 극좌로 이동한 형태다.[23] 같은 추축국인 불가리아 왕국은 제1,2차 발칸 전쟁제1차 세계 대전에 빼앗긴 땅들을 수복하기 위해 추축국에 가입했지만 저 나라들만큼 테러를 하지는 않았다. 대신 내부적으로 친독파와 즈베노 등 군내 사조직 등에 의한 테러가 이어졌다.[24] 이에 반발하여 흑표당같은 경우 진짜로 마오이즘맑시즘을 주창하며 나오기도 했다. 물론 진지한 접근이라고 보기엔 살짝 어려웠다.[25] 테러나 이적행위는커녕 시카고에서 갱 전쟁을 중재하고 무료 급식소를 여는 등 봉사활동에 전념 중이었다.[26] 정확히는 무가베의 마오이즘 정당 ZANLA와 소련이 지원하던 마르크스주의 정당 ZIPRA가 합당하여 세워진 것이 바로 ZANU-PF지만 이 때는 이미 '구쿠라훈디'라고 불리는 대학살 끝에 둘의 권력투쟁이 마무리되고 성공적으로 무가베가 이끄는 마오이즘 세력의 영향력에 완전히 들어온 이후였다.[27] 이 사건은 탑건의 모티브가 되기도 했다.[28] 아프리칸스어크로우바라는 뜻이다.[29] 세르비스 악시옹은 심지어 대테러부대였다.[30] 다큐멘터리 영화 액트 오브 킬링을 보면 해당 학살이 어떻게 진행되었는지 알 수 있다.[31]재특회는 자민당 극우 인사들 기준으로도 너무 막나가서 일본제일당으로 따로 독립한 상태이다.[32] 공식 기록 상에는 1987년 외에 제대로 된 더티 밤 실험이 없었고 '실용성 문제 때문에 사용하지 않는다'지만, 핵무기 급의 파괴력을 굳이 낼 필요가 없다면 한 구역에 방사능을 들이붓는다는 건 상당히 위험할 수 밖에 없다. 여러모로 국가나 대형 테러단체보단 적은 인원이 사용하기 좋은 무기.[33] 모사드는 특히 적성국에서는 무조건 사용한다.[34] 대한민국의 국정원, 미국의 CIAFBI, 러시아의 FSB등등[35] 신라 시대부터 이슬람이 한반도에 들어온 이후 조선시대 세종대왕 때까지 공존하였다가 (왕실 생일잔치 때에도 불려갔다는 이야기가 있다) 이후 조선 왕조들의 숭유 정책에 의해 없어졌다. 이슬람을 믿는 사람들이 워낙 적었기 때문에 자연히 조선 사회와 동화되었다.[36] 광장, 백화점, 역, 공항 등 유동 인구가 많은 장소에서 일어날 가능성이 매우 크다.[37] 자살 폭탄 테러, 독가스 테러 등[38] 세계적으로 테러를 가장 많이 당한다는 미국도 미국인이 미국 내에서 저지른 테러가 그 외의 미국 대상 테러공격보다 건수는 훨씬 많다. 흔한 방식은 총기난사 혹은 차량 돌진.[39] 방화의 경우도 대구 지하철 참사 이후로 전철이나 신축 건물을 중심으로 화재 대책을 세우는 추세로 돌아선 지 오래라 방화뿐 아니라 다른 화재 역시 피해 규모가 확연히 줄었다.[예시1] KBS, MBC, SBS[예시2] 경복궁, 창덕궁, 창경궁, 경희궁, 덕수궁[42] 국회의사당이 있다.[43] 우선 보안이 철저하며 아예 물리적으로 격리되어 있다. 민간인의 출입도 극도로 통제되어 있다.[44] Odom, William E. “American Hegemony: How to Use It, How to Lose It.” Proceedings of the American Philosophical Society, vol. 151, no. 4, 2007, pp. 404–11. JSTOR, http://www.jstor.org/stable/25478452.[45] 그 예시로 러시아는 체첸클리어를 자행한 체첸 반군들을 푸틴의 지시를 받은 스페츠나츠가 싸그리 찾아 죽이며 반군의 사기를 팍 꺾어놓았고, 미국의 경우 알 카에다에게 9.11 테러를 당하자 미국과 사이가 좋지 않던 나라들도 벌벌 떨었을 정도로 분노했고, 이후 데브그루를 보내서 알 카에다의 수장 오사마 빈 라덴의 머리통을 날려버렸다. 두 국가 전부 테러에 겁먹긴 커녕 테러리스트에게 총알구멍을 내줬다는 것이 공통점.[46] 물론 묻지마 테러는 이 시점에도 존재하기는 했으나 테러의 주류는 아니었다. 묻지마 테러 및 학살 행각을 주로 일삼았던 것은 당시 주류 테러리스트들이 아니라 팔레스타인 지윽 이스라엘 시온주의 계열 테러범들이었다.[47] 백범일지에도 '암살과 파괴의 테러 운동을 계획'이라고 서술할 정도로 명확히 인식하였으며 수 차례 암살, 파괴에 대해 계획했다.[48] '테러'를 일본식으로 발음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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