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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테베 작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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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납치됐던 비행기인 에어 프랑스 F-BVGG기의 모습. 사건으로부터 한 달 전인 1976년 5월 15일런던 히스로 공항에서 찍힌 사진이다.[1]

Operation Entebbe (Operation Thunderbolt, Operation Jonathan)
(Air France Flight 139)
מבצע אנטבה ,מבצע יונתן
Le raid d'Entente, Opération Entebbe, Opération Thunderbolt, Opération Jonathan
(Le vol Air France 139)

1. 개요2. 전개
2.1. 피랍2.2. 엔테베 작전
3. 기타4. 미디어
4.1. 엔테베 특공작전(1976)4.2. 그 외
5. 관련 문서

1. 개요

1976년 서독팔레스타인 테러범들에 의해 하이재킹당해 우간다 엔테베에 위치한 엔테베 국제공항에 억류된 에어 프랑스 139편 승객들을 구출하기 위해 이스라엘 정부가 펼친 대테러작전.

2. 전개

2.1. 피랍

1976년 6월 27일 12시 30분경 이스라엘로드 공항을 떠나 파리 샤를 드 골 국제공항으로 향하던 에어 프랑스 소속 에어버스 A300 여객기 AF139편이 중간 기착지인 아테네에 내렸다. 아테네 공항의 보안은 허술한 편이어서 금속탐지기에 모니터링 요원도 배치되어있지 않았다. 아테네에서 56명의 승객을 태운 AF-139편은 이륙 3분 만에 피랍되었는데 승객들 가운데 테러범들이 섞여 있었다.

이 여객기에는 승객 254명이 탑승하고 있었는데 그 중 3분의 1이 이스라엘 국민이었으며 한국인도 1명 탑승해 있었다. 여객기를 납치한 테러범은 모두 4명으로, 2명은 혁명분파(RZ (Die Revolutionären Zellen)) 소속[2] 독일인 테러범이었고 2명은 팔레스타인 해방인민전선(PFLP) 소속의 아랍 테러범이었다. 특히 독일인은 남녀 커플로, 남자는 빌프리트 뵈제(Ernst Wilfried „Boni“ Böse)라는 유명한 청부 테러범이었고 여자는 브리기테 쿨만(Brigitte Kuhlmann)이었다. 아랍 테러범은 자엘 나지 알 아잠(Jael Naji Al Azam)와 파예즈 압둘라힘 자베르(Fayez Abdul-Rahim Jaber)였다.

이스라엘 정부는 여객기 피랍을 예상하고 최정예 특수전 부대인 사예렛 마트칼(Sayeret Matkal)에 출동대기를 명령했다. 이스라엘의 특수부대에는 사예렛이라는 명칭이 붙는데 사예렛은 히브리어로 정찰대라는 뜻이다. 사예렛 마트칼은 부대 명칭 그대로 말하면 합동참모본부 직할 ‘정찰부대’지만 실제로는 대테러부대로, 1958년 영국의 SAS를 본따 창설되었으며 전략정찰, 직접타격, 대테러 등의 임무를 수행하는 이스라엘 최고의 특수부대다. 사예렛 마트칼이 가장 많이 수행하는 임무는 전략정보의 수집으로, 조직 편성상으로도 사예렛 마트칼은 군 정보부의 통제를 받도록 되어 있다.

테러범들은 종종 이스라엘로 여객기를 몰고 와서 정치적인 요구를 하는 습성이 있었다. 1972년에 아랍 테러범들이 벨기에의 사베나(Sabena) 항공 여객기를 납치하여 로드 공항으로 몰고 와서는 국제 언론 앞에서 요구사항을 열거한 사베나 571편 납치 사건이 일어난 적이 있었다. 똑같은 상황을 예상한 이스라엘은 사예렛 마트칼을 로드 공항에 대기시키고 인질 구출 작전을 계획했지만 피랍기는 이스라엘로 향하지 않고 기수를 남쪽으로 돌려 리비아벵가지에 기착했다. 사예렛 마트칼은 다시 기지로 돌아가 추후 명령을 기다렸다.

파일:map-entebbe.jpg

벵가지에서 7시간 반을 대기하던 피랍기는 재급유를 받고 이륙하여 동쪽으로 향했다. 사예렛 마트칼은 다시 출동대기 상태에 들어갔으며 피랍기가 로드 공항에 내리는 즉시 구출작전을 실행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그러나 자정이 되자 놀랍게도 피랍기가 아프리카로 향하고 있다는 사실이 확인되었으며 다음날 새벽 3시 피랍기는 우간다의 엔테베(Entebbe) 공항에 내렸다. 여기서 팔레스타인 인민해방전선 테러범 3명이 납치범들에 합류했다.

2.2. 엔테베 작전

승객들은 피랍된 에어 프랑스 여객기가 엔테베 공항에 착륙하고도 무려 9시간이나 더 기내에 억류되었다. 그리고 6월 28일 월요일 정오가 되자 테러범들은 승객들을 공항 구청사의 승객 로비에 감금했는데 그날 늦은 오후 이디 아민 우간다 대통령은 승객들에게 자신이 직접 테러범들과 인질협상을 하고 있으며 우간다 공군이 승객의 안전을 보호할 것이며 이스라엘 정부가 테러범과 협상하는 것을 원치 않는다고 말했다.

다음날인 29일 15시 30분경 ‘페루인’이라고 불리는 팔레스타인계 아랍인의 지휘하에 움직이는 테러범들은 자신들의 요구사항을 발표했는데 서독, 프랑스, 스위스, 케냐, 그리고 이스라엘에 투옥된 테러범 53명의 석방을 요구했고 만약 이들이 석방되지 않는다면 이스라엘 시각으로 7월 1일 14시에 피랍 승객들을 살해하겠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이스라엘 군당국은 재빨리 대응책을 계획하였다. 일단 협상을 통해 데드라인을 7월 4일로 연기시킨 이스라엘군은 사예렛 마트칼을 우간다로 출동시켰다. 우간다와 적대관계인 케냐 정부와의 협상을 통해 케냐 나이로비 공항에 의료지원팀을 태운 보잉 707 한 대를 대기시키고 특공대가 탄 이스라엘 공군 수송기의 케냐 영공 통과를 허락받았다.

7월 3일 밤 11시경 사예렛 마트칼 대원 100명은 3대의 이스라엘 공군 C-130 허큘리스 수송기[3]에 분승하고 전자전기로 개조된 공군 소속 보잉 707 한 대를 동반하여 엔테베 공항을 급습했다. 엔테베 공항 관제탑에는 투옥된 테러범들을 석방해 오는 것이라고 속여 C-130의 착륙 허가를 받았다. 첫 번째 C-130이 착륙하자 화물칸에서 본래 흰색이었으나 이디 아민의 전용차와 동일한 검정색으로 재도색된 메르세데스 벤츠 220D(W115)[4] 1대가 나와 우간다 공군부대 쪽으로 향했는데 여기에는 우간다 대통령 경호대로 위장한 아프리카계 유대인 특공대원들이 타고 있었으며 이들 중 1명은 아예 이디 아민의 정복을 입고 아민으로 위장(...)했다. 우간다 공군 군사경찰이 대통령의 방문으로 알고 부대 게이트를 열어주자 뒤따라온 트럭에 탄 이스라엘 특공대원들이 우간다 공군 군사경찰들을 사살하고 추격을 막기 위해 MiG-17 전투기 11기 및 관제시설을 파괴하였다. 한편 인질 구출조는 한 순간도 낭비하지 않고 곧장 공항 건물로 밀고 들어가 납치범 전원과 20여 명의 우간다 공군 장병들을 사살하였다. 이스라엘 측의 인명 피해는 단 1명으로, 작전을 진두지휘한 요나탄 네타냐후 중령이 전사했다.[5]

인질도 3명이 사망했는데 죄다 이스라엘군의 오인사격으로 사망하였다. 구체적인 오인사격 상황은 조금 불분명하다. 사예렛 마트칼 대원들이 인질이 잡혀 있는 공항 건물에 진입하면서 히브리어로 "엎드려!"라고 외쳤고 이스라엘인 인질들의 행동에 덩달아 다른 인질들도 엎드렸는데 이들이 유럽 출신이라 히브리어를 몰라서인지 벌떡 일어났고 적으로 오인받아 사살당했다는 썰이 있다. 국방TV에서 방영했던 프로에 따르면 당시 희생자 중 한 명의 지인이 인터뷰를 한 내용이 나오는데 총성을 듣고선 자신들을 구하러온 걸 안 친구가 이스라엘군이 진입할 때 기뻐하며 일어나다가 테러범으로 의심받아 오인사격을 받았다고 하며 한 명이 당황해 일어서자 사살당했고 이를 보고 도우려고 일어선 인질도 같이 사살당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다만 정확한 상황이 불분명하긴 하지만 한 순간에 생사가 갈리는 교전 중에 지시에 따르지 않는 인물은 일단 쏘고 보는게 당연하므로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 테러범이 옷을 갈아입고 인질인 척 위장하고 숨는 경우는 흔하고 이렇게 위장한 테러범이 대테러부대가 안심한 틈을 타 뒤에서 총을 겨누거나 수류탄 하나만 던져도 대참사가 터지게 된다. 때문에 실제 진압부대의 진입 상황에서는 무조건적으로 경찰, 군의 지시에 따르고 외국에서는 무조건 손을 머리에 얹는 등 몸에서 멀리 떼고 앉거나 엎드려서 민간인으로 구분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아무튼 사상자가 다소 발생하긴 했지만 전체적으로 보았을 때는 과격한 방식에도 매우 성공적으로 마무리된 작전으로서 대원들은 인질들과 함께 C-130에 타고 이륙해 의료지원팀이 있는 나이로비에 들러 일부 부상자들을 치료한 뒤 이스라엘로 귀환했다.

한편 인질 중 도라 블로흐(Dora Bloch)라는 75세 할머니가 건강 상태가 나빠지자 아민이 선심을 써 시내 병원에 입원시켰기 때문에 구출되지 못했는데 이 구출 작전으로 우간다 공군이 큰 피해를 입은 것을 알게 된 아민은 병원에서 이 할머니를 끌어내 살해했다. 그리하여 총 인질 사망자는 4명이 되었다.

아민 대통령은 화풀이로 아무 죄도 없는 할머니 인질 1명을 살해하는 미치광이 행위를 했으나 그 외엔 크게 이스라엘을 비난하거나 보복 혹은 테러리스트를 지원하거나 하진 않았고 시신도 이스라엘로 돌려보내 주었다. 원래 아민은 이스라엘과 친하던 시절에 사귀어 둔 이스라엘인 지인들과 정치인들과는 국가간 관계가 틀어진 이후에도 비공식적으로는 친교를 유지했는데 이들 비선을 통해서 우간다측의 피해에 대해 비밀계좌를 통한 매수나 뒷거래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3. 기타

4. 미디어

1976년판과 1977년판 이후의 작품들은 영화화든 다큐멘터리든 완성도 측면에서 평가가 좋지 않다.

4.1. 엔테베 특공작전(19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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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6년작 엔테베 특공작전(Victory at Entebbe)은 ABC 방송국에서 방영한 TV 영화임에도 호화캐스팅을 자랑한다. 각본상 등 에미상 4개 부문 후보에 올랐다.

젊은 시절의 앤터니 홉킨즈가 총리였던 이츠하크 라빈을, 버트 랜캐스터가 당시 국방부장관이었던 시몬 페레스를, 리처드 드라이퍼스요나탄 네타냐후(Yonatan Netanyahu) 당시 중령을 맡았다. <엑소시스트>로 유명해진 린다 블레어가 주요 승객 중 하나로 나오는데 이 딸을 구하기 위해 총리 라빈에게 테러리스트들과 협상해 달라고 호소하는 부모 역이 커크 더글러스엘리자베스 테일러다. 커크 더글러스엘리자베스 테일러는 영화 속 비중이 매우 낮지만 인지도는 배우진 중 가장 높았던 관계로 영화 홍보 포스터 일부는 이 둘을 크게 강조했다.

감독인 마빈 J. 촘스키[8]놈 촘스키의 사촌동생으로, 같은 유대인이다.

미국과 달리 유럽과 한국에서는 극장 개봉을 했지만 한국 흥행은 그다지 성공하지 못했다.

SKC에서 1989년 2월에 비디오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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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을 영웅화하는 프로파간다 성격이 있다. 실제로 친팔레스타인 단체들이 독일이탈리아에서 테러 활동을 벌이는 데 영향을 주기도 했다.

4.2. 그 외

5. 관련 문서



[1] 해당 비행기는 사건 이후에도 에어 프랑스에서 1990년대까지 운용하다가 1996년에 베트남항공에 팔려갔고 얼마 안 가서 다시 다른 항공사에게 팔려 화물기로 개조된 뒤 2009년까지 현역으로 활동했으며 2010년 스크랩 처리되었다.[2] 바더 마인호프와 달리 이 단체는 점조직인 데다 적군파(바더 마인호프)처럼 대놓고 활동하지 않고 지하활동을 많이 해서 독일 연방헌법수호청과 독일(서독) 경찰은 이들에 대한 수사 및 색출, 검거에 애를 먹은 적도 있었다.[3] 특수전용으로 개조된 기체[4] 본래 이디 아민의 전용차는 메르세데스-벤츠 600이었다. 먼 거리에서 볼 때 외형이 비슷해 식별이 어려우므로 충분히 속일 수 있다고 판단해 준비한 것으로 추정된다.[5] 후일 이스라엘 총리가 되는 베냐민 네타냐후의 친형이다. 관제탑의 우간다군과 총격전을 벌이다가 피탄되어 과다출혈로 사망했다. 이는 동생 베냐민 네타냐후가 형의 사후 완전 극우 강경파가 된 계기이기도 하다.[6] 당시까지 군사 관련 작전 전문가들은 이런 대형 인질극에서 인질 1/3은 희생된다고 가정했고 대부분 구하기는 말 그대로 '이론'일 뿐이라 여겼다고 한다.[7] 친 아랍적 입장을 보였던 그는 뮌헨 올림픽 참사 당시 공식으로 이를 칭송하는 전보를 보낸 이디 아민을 비난하지도 않은 데다 1975년에 시오니즘을 인종주의로 규정한 적이 있었다.[8] Marvin J. Chomsky. 1929 - 2022.[9] Yaphet Kotto. 1939 - 2021.[10] 한국에서 스페인어 이름으로 오해한 모양인데 브라질 출신으로 포르투갈어 이름이다.[11] 대사에선 엔테베'스' 작전으로 언급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