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군 한국전 참전용사 '윌리엄 스피크먼 빅토리아 훈장자(William Speakman Vc)' 안장식
안장자 모두가 6.25 전쟁 당시의 전사자나 순직자인 것은 아니며 참전용사가 아닌 사람도 있다. 전사자나 참전용사의 배우자가 원한다면 합장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또한 일부는 1953년 7월 27일 이후에 사망한 군인이다. 이것은 각국 군대가 휴전 즉시 철수한 것이 아니라 한국에 더 머물러 있었으며 그 시기에 순직한 군인들로 보인다.
잘 보면 알겠지만 영국 비중이 높은데, 영국에서는 태어난 고향뿐만 아니라 죽은 장소에도 의미를 부여하는 전통이 있기 때문에 전사자를 고향이 아닌 전사한 땅에 안장하는 경우가 많다.
인원의 차이는 실종자의 집계 여부, 기타 다른 이유로 송환되지 못한 경우, 위에서 언급한 휴전 후 사망한 경우의 집계 여부가 원인일 것이다. 군인이 아니라 취재차 한국에 왔다 순직한 기자를 안장시킨 사례도 있어 차이가 있다.
미국은 제일 많은 전투병을 파병한 국가인데도 이 곳에 유해가 안장된 경우는 흔치 않다. 기본적으로 전사자의 시신을 전부 본국으로 보내서 장사지내는 문화[4]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절대적인 수가 많아서 주 단위로 희생자가 참배의 벽에 기록된 곳은 미국이 유일하다. 그래서 한국전쟁 전사자들은 대부분 알링턴 국립묘지[5]에 안장되었다. 대신에 미군 희망자[6]에 한하여 이곳에 모셔졌으나 이제는 6.25 전쟁에 참전했던 참전용사만 안장될 수 있다.
한국군 전몰자 가운데 국립현충원이 아닌 이곳에 묻힌 경우는 주로 미군에 배속된카투사, 주한영연방군에 배속된 KATCOM 소속으로 참전했던 이들이다. 이외에도 비전투원의 유해 11구와 무명용사(유엔군은 확실하지만, 소속 국가와 개인 신상을 알 수 없는 전사자)의 유해 4구가 안장되어 있다.
부산 도시철도 2호선대연역에서 가깝다. 부산박물관과 부산문화회관과 옹기종기 모여 있기 때문에 부산시민에게 문의할 때 모르면 박물관이나 문화회관의 위치를 물어보면 된다. 원도심에서 출발하는 경우 134번을 타고 서면이나 하단에서 출발한다면 68번을 타고 UN기념공원에서 하차하면 된다.
묘지인 만큼, 복장 제한이 존재한다. 여름철 슬리퍼를 신고는 출입이 불가하니 참조할 것. 무작정 출입을 시도하게 된다면 공원 경비중인 국군장병들에 의해 제지당하니 참조할 것.
1952년 12월 전쟁이 한창일 때, 당시 드와이트 D. 아이젠하워 미국 대통령당선인이 방한하여 부산 UN묘지를 방문할 예정이었다. 당시 민둥산이 일반적이라 UN군 묘지 또한 황량한 흙밭이었으나 아이젠하워가 국빈 중의 국빈이었기에 한겨울임에도 이 묘지를 어떻게든 푸르게 꾸며야 했다.
이 공사를 미 육군 공병 장교들과 친분이 있던 정주영 당시 현대건설 사장이 발주[9]받았는데 성공 시 공사비 총액의 3배를 지급, 실패시 반대로 공사비의 3배를 배상한다는 조건이었다. 그리고 한 가지 묘안을 떠올랐는데 바로 보리싹을 잔디 대용으로 옮겨심는 것이었다.[10]
정주영은 당시 이 건과 동시에 아이젠하워 대통령의 숙소를 서구식 변기 설치 등 리모델링하는 의뢰도 받았는데, 이것도 서울 시내를 싸그리 뒤져 변기를 구해 시공을 완료, 약속대로 공사비의 3배를 지급받고 이후 이 때 얻은 신뢰로 꽤 오랫동안 미 육군의 발주를 받았다. 그리고 현대건설은 눈부신 성장을 거듭하며 대한민국 최대의 건설회사로 자리매김했고 이 공사를 맡았던 정주영도 현대그룹의 회장으로 한국 경제사에 영원히 남았다.
뉴스에 일일이 나오지는 않지만, 대한민국, 특히 부산을 방문하는 6.25 전쟁 참전 당사국 고위직들이 참배를 꼭 하고 간다고 봐도 무방하다.
부산 시민이라면 한번쯤 방문해보는 것도 좋다. 묘지라는 키워드가 있어 다소 불편할 수 있지만 죽음의 상징인 무덤을 사람 사는 곳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을 선호했던 우리나라와는 달리 사람들의 거주지와 가까운 곳에 조경을 꾸미는 서양식 묘지로 조성되어 정비가 상당히 잘 되어 있어 한 번쯤 둘러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실제로 묘지라는 곳이 정비만 잘 되면 공원처럼 사람들이 자주 들르는 곳이기도 하다. 곳곳에 정숙 표지판이 세워져 있어 조용히 산책하기[11]에는 좋다. 인근에 부산박물관, 부산문화회관, 평화공원, 대연고등학교가 있다.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지만 이곳은 일종의 불가침 지역이다. 즉 대한민국 정부의 행정력이나 공권력이 함부로 침범할 수 없는 공간이며, 이 묘지를 관리하고 있는 '재한유엔기념공원 국제관리위원회'는 공원 내 추모 분위기를 해치는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일체의 활동을 금지시킬 수 있다. 추가로, 유엔기념공원에 공용 목적으로 공급되는 재화 또는 용역은 면세 혜택을 받을 수 있다. 이는 1959년 유엔과 대한민국이 맺은 <재한유엔기념묘지 설치 및 유지에 관한 유엔과 대한민국 간의 협정>에 명시되어 있다. 그렇다고 치외법권 지역은 결코 아니니 이곳에서 범죄를 저지르면 국제관리위원회의 허가를 받고 경찰이 바로 출동된다.
대연4동우체국의 기념통신일부인 도안이 UN기념공원이다.
현대자동차 캐나다 지사 딜러 신상묵씨가 차량을 구매하러 온 참전용사의 동생인 '도널드 엘리엇'씨가 형편으로 인해 한국에 묻혀있는 그의 형 '로이 더글러스 엘리엇 (R.D. Elliott)'의 묘소에 한번도 방문하지 못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유엔기념공원 사이트에서 형의 묘비 사진을 찍어 인화해주었던 미담이 소개되었다.# 그리고 이 미담이 국가보훈처에도 전해져 도널드 엘리엇 씨가 초청되어 방한하기도 하였다.
포켓몬 GO가 한창 유행할 당시였던 2017년 전반기에는 이 공원 내에도 포켓스탑들이 있었다. 이 때문에 포켓스탑이 목적인 사람들이 많이 방문했다. 기념공원의 성격을 해치는 것을 보다 못한 유엔기념공원관리처가 기념공원 내의 포켓스탑을 모두 삭제해달라 요청했다.
공원 내에 들판이 많다보니 까치와 까마귀들이 들끓어서 가는 길 마다 땅에 부리를 박아 벌레를 먹고, 서로 영역다툼하는 풍경이 많다. 공원 내 연못에는 거북과 오리가 살고 있으며 간혹 족제비도 보인다.
한국 방문이 어렵더라도 안장용사 찾기 기능을 제공하고 있어, 묘비 사진과 안장자 기록 파일을 모두 인터넷을 통해 받아볼 수 있게 되어 있다.
[1] 정식 명칭은 “재한 국제연합기념묘지의 설치 및 유지에 관한 대한민국과 국제연합간의 협정”이다#. 유엔과 국제연합 용어 사용에 대하여는 유엔 항목 참조.[2] James Patrick Daunt, 1936~1953, 당시 나이 17세[3] 필리핀, 태국, 벨기에, 그리스, 룩셈부르크, 에티오피아, 콜롬비아[4]이라크 전쟁이나 미국-아프가니스탄 전쟁에서도 미군들은 전우가 전사할 경우 자신의 죽음을 무릅쓰고서라도 전우의 시신을 수습한다. 전쟁이 끝난 뒤에도 유해발굴단을 계속 보내 유해를 수습한다. 이러한 노력은 당시 전쟁터가 적들의 영토가 되어도 계속된다. 미국이 계속 북한 지역에서 전사한 미군 유해를 수습하려고 유해 발굴단을 보내고 싶다고 북한에 요구하는 것은 이러한 신념 때문이다.[5] 참고로 가장 높은 계급의 한국전쟁 중 미군 전사자는 월튼 워커 당시 중장(사후 1계급 특진으로 대장 직위 수여)이며 미국 알링턴에 안장되었다.[6] 6.25 전쟁의 전사자 및 참전용사가 아니라, 한국전에 참전했거나 한국에서 복무했던 유엔군 출신 미국인이 사망한 케이스[A] 대연역 연계[B] 못골역 연계[9] 정주영의 친동생이자 훗날 현대자동차 사장이 되는 정세영이 육군 통역장교로 미군과 가깝게 지낸 영향도 있었다.[10] 한겨울에 자라기 어려운 잔디와 달리, 보리는 겨울에 씨를 뿌려서 다음 해 여름에 수확한다. 그래서 12월 쯤에는 보리의 싹이나 다 자란 잔디나 그 모습이 비슷하다. 정주영 회장의 회고록에 따르면 '보리로 덮으면 되겠다!!'라는 생각으로 공사를 발주받은 게 아니라, 금액을 보고 일단 발주부터 받은 후 '근데 이제 어쩌지?'하고 머리를 쥐어뜯다가(...) 이 아이디어를 짜냈다고 한다. 여담으로 해당 일화는 드라마 영웅시대에도 일부 반영되었다.[11] 다만 공원의 성격이 성격인 만큼 피크닉 등 일반적인 공원처럼 이용하는 것은 불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