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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난지 얼마 안되는 시점에서 당대 강대국들과 세계 여러 국가들이 직간접적으로 얽혀서 벌어진 냉전 시대의 첫 분쟁인 탓인지, 세계대전 당시에 쓰고 남겨진 잉여장비들과 세계대전 직후에 신기술로 개발된 병기들이 혼재된 양상을 보인다.
그리고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난 후 급격한 군축을 하면서 군수산업과 관련시설이 개점휴업 직전까지 몰렸던 미국을 위시한 서방 연합국과 독소전쟁과 중일전쟁의 충격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한 소련과 중공이라는 양대 세력의 상황 덕분에 정규전이며 소모전인데도 불구하고 육상병기쪽에서 노획품도 알뜰하게 전장에서 끝까지 사용한 사례가 매우 많다.
그래서 상황이 여유롭지 않으면 서로 상대방의 무기로 무장하고 총격전을 벌이는 것은 기본이 될 지경이었으며 특히 공산측의 경우에는 전쟁에서의 소모량을 따라잡지 못해서 나중에는 군수창고의 구석에 박혀있던 골동품급 무기까지 끌어내서 사용할 지경까지 몰리게 된다.
굵게 표시된 장비는 1950년 6월 25일 개전 당시부터 사용된 무기이다.
2. 개인 화기
2.1. 국군 및 UN군
한반도에 남겨진 일본제 무기들은 미군이 미군정을 운용할 당시에 한국군/경찰 무장용으로 소수만 남겨놓고 전부 다 폐기처분했다. 그러나 개전 당시 한국이 소량이라도 양산 가능한 무기와 탄약이 일본제 무기 계열이었으며 공산당측이 휴대한 무기중에서도 특히 중공군 쪽에서 일본제 무기가 다수 존재하므로 전쟁이 끝날 때까지 2선급 무기로 종종 일본제 무기와 탄약이 사용되었다.
2.1.1. 권총/산탄총류
- M1911A1 - 초기형 1911도 포함.
- M1917 리볼버
- 콜트 뉴 서비스 - 후방 지원/보급부대만 소량 사용.
- S&W M10
- 웨블리 리볼버 Mk VI - 영연방군이 제식으로 사용하였다.
- 엔필드 No.2 Mk.I
- 브라우닝 하이파워 - 영국군/벨기에군이 사용.
산탄총들은 당시 미군 제식무기 가운데 하나였다. 하지만 소총이 주로 쓰였고 산탄총은 고참병들이 소량 사용했다. 전투용이 아닌 사냥용으로도 썼다.
- 더블 배럴 샷건 - 앤드류 새먼이 집필한 마지막 한발이란 책에서, 영국군 센추리온 전차대가 후퇴하는 와중에 큐폴라 위에서 전차장이 인해전술로 떼지어 오는 중공군을 향해 더블 배럴 샷건의 2연발로 2킬을 했다는 내용이 나온다. 한국으로 파병오기 전, 자신의 집에서 가져왔다고 언급되어 있다. 전차병들의 목격담과 그 전차장의 언급이 있어서 진위여부가 확실하다.
- 윈체스터 M1897, M1912
- 이사카 M37
- 레밍턴 11/레밍턴 11-48
- 스티븐스 M520, M620
2.1.2. 소총/자동화기류
한국전쟁 당시 M1 개런드 소총으로 훈련받는 한국군 |
일본 제국제 아리사카 소총들은, 한국군의 전신인 조선국방경비대가 사용하다가, 미군이 준 M1 개런드로 교체되었다. 한국전쟁 초기에 연이은 패전으로 인해 다수의 미국제 무기가 망실되자 잠시 한국군이 쓰기도 했다. 1951년이 되자 전원 미국제 무기로 무장하게 되었고, 아리사카 소총은 한국전쟁이 끝날 때까진 경찰과 후방부대에서 사용되었다.
미국제 소총들은 기본적인 수량은 일단 충족하였으나 전투에서의 망실이 많았고 세계대전 후에 급격한 군축으로 사망 직전 상태까지 간 군수산업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은 탓에 전쟁 초기의 급박한 상황에서는 구식 화기들도 일부 사용되었다.
- M1917 엔필드
- 스프링필드 M1903
- 유너틀 스코프 등의 저격용 스코프가 장착된 저격용 스프링필드 M1903도 사용됨.
- M1 개런드
- 저격용 M1C, M1D, MC1952도 사용됨.
- M1 카빈
- FN 모델 1949 - UN군 자격으로 참전한 벨기에군만 사용.
- 리-엔필드 - 영국군/캐나다군/호주군이 사용.
- No.4 계열
- 저격용 No.4 Mk I(T)
- 카빈형 No.5 Mk I
- 드 라일 카빈 - 영국군이 특수작전용으로 극소수로 사용.
- 마우저 M1903 - 튀르키예군이 파병 초기에 사용.
기관단총류는 개전 초반에 전선의 변동이 심할 때도 돌격용으로 유용했고 전쟁 후반의 고지전에서도 참호를 소탕할 때도 유용해서 의의로 많이 사용되었다.
- M3 기관단총 - 기본형 M3과 개량형 M3A1이 사용됨.
- 톰슨 M1A1/ M1928A1 - 비싼 생산비용 및 노후화로 인해 소량만 사용됨.
- 오웬 기관단총 - 호주군이 사용.
- 스텐 기관단총 - 영국군이 사용. Mk.2, Mk.3, Mk. 5가 사용됨.
- 스털링 기관단총 - 영국군이 사용.
2.1.3. 기관총류
M1917을 사격하는 한국군 |
일본제 기관총들은 아리사카보다 더 극소수로 한국전쟁 초반기에 사용되었으며, 금방 미국제 무기로 대체되었다.
미국제 기관총은 수량이 충분했으므로 개전부터 휴전까지 대량으로 사용되었다. 특히 방어전이나 고지전에서는 수랭식 중기관총이 지속적인 화력지원이 가능해서 많은 활약을 했다.
- M1918A2
- M1917A1
- M1919 브라우닝 - A4와 A6모델이 사용됨.
- M2 브라우닝 중기관총
- 브렌 경기관총
- 루이스 경기관총
- BESA - 영국군 전차에만 장착된 공축기관총.
- 빅커스 기관총
- MG34 - 중공군에게서 노획. 호환되는 탄약이 없거나 매우 부족해 실전엔 쓰이지 않은 것 같다.
- MG08 - 튀르키예군이 파병 초기에 사용.
2.1.4. 중화기/폭발물류
한국전쟁 당시 미군이 M9와 M20을 들고 있다 |
- 바주카 - 60mm 구경의 M9, M9A1와 89mm 구경의 슈퍼 바주카인 M20를 사용함. 기존의 60mm 바주카는 관통력 부족 문제로 인해 북한군의 전차에 밀려서 벙커나 대보병용으로 전용되었으며 슈퍼 바주카가 본격적으로 투입된 후에나 대전차용으로 제대로 활약함
- PIAT - 영국군/캐나다군/호주군이 미국제 바주카와 혼용하여 사용.
- M18A1 57mm 무반동총 - 대전차 화력 부족으로 대벙커용, 대보병용으로 사용함.
- M20 75mm 무반동총 - 대전차 화력 부족으로 대벙커용, 대보병용으로 사용함.
- M1A1 화염방사기
- M2 화염방사기
- 2형 휴대용 화염방사기
수류탄은 소모량이 엄청났기 때문에 양측 모두가 노획품까지 서로에게 투척하면서 싸웠으며 종류도 다양해서 사실상 그 때까지 개발된 대부분의 수류탄이 전장에서 등장할 정도였다.
- Mk.2 수류탄
- 밀즈 수류탄
- No. 77 백린연막탄 - 영국군이 사용.
- M15 백린연막탄
- M16 백린연막탄 - M15의 개량형. 빨강, 주황, 노랑, 초록, 파랑, 보라색, 검은색이 존재했다.
- M18 연막탄
- AN/M8 연막탄
박격포는 전쟁 초반부터 필수품이었고 나중의 고지전에서는 말 그대로 없어서는 안될 정도로 비중이 높아졌다.
- M1 81mm 박격포
- M2 60mm 박격포
- M19 60mm 박격포
- M2 4.2인치 박격포
- M30 4.2인치 박격포
- 오드넌스 SBML 2인치 박격포 - 영국군/캐나다군/호주군이 사용.
- 오드넌스 ML 3인치 박격포 - 영국군/캐나다군/호주군이 사용.
- 오드넌스 ML 4.2인치 박격포 - 영국군/캐나다군/호주군이 사용.
2.1.5. 냉병기류
전쟁 중반 이후 인해전술을 펼치는 중공군을 상대해야 하고 그 이후의 고지전에서도 참호를 쟁탈하기 위한 육박전이 자주 벌어져서 냉병기류도 상당수가 사용되었다.2.2. 공산군
한국전쟁시기 북한군.[1] |
북한을 소련이 접수하고 소련군정을 운영할 때, 일본군이 두고 간 무기 중 일부는 폐기시켰으나 많은 수는 그대로 남겨뒀다. 그리고 소련제와 일본제 무기로 북한군을 무장시켰다.
그리고 중공군이 한국으로 들어왔을 때는 중공의 열악한 경제상황으로 인해 소련제보다 일본제, 국공내전에서 국민당군에게서 노획한 무기, 중국에서 불법 복제생산한 무기들로 무장했다.
소련의 경우에도 소련제 최신예 무기들은 소련 자체를 무장시키기도 곤란할 정도라서 북한군이나 중공군 지원용으로는 소련군의 구식 무기와 함께 독일 국방군같은 추축군에서 노획한 무기와 무기대여법으로 서방 연합군에게서 도입한 것중 구식 무기를 주었다.
2.2.1. 권총류
- 남부 권총
- TT-33
- 나강 M1895
- 루거 P08 - 독일 노획품 일부가 중국과 북한으로 흘러들어왔다. 영화 포화속으로에도 해당 권총을 든 인민군 장교가 나온다.
- 마우저 C96 - 국민당으로부터 노획하거나 소련으로부터 넘겨받은 것 또는 이전 중국제 생산품 등 출처가 다양했다.
- 발터 P38 - 외국의 군사 사이트에서 한국전 당시 중공군 장교가 발터 P38을 든 사진이 있다. 사진 설명에도 해당 권총이 발터라는 것이 표시되어 있다. 소련이 노획한 물품을 제공받은 것으로 추정.
2.2.2. 소총/자동화기류
모신나강 소총을 휴대한 북한군 |
북한군도 전쟁 초기에 아리사카 소총을 소량 사용했으며, 중공군이 참전했을 당시 소련제 모신나강보다 가장 많이 들고 왔던 소총이기도 하다.
중공군이 사용한 소총류는 매우 다양했다.
- 81식 카빈 - 중공군이 사용.
- 모신나강 - M1891/30, M38, M44가 쓰였다.
- 3.5배율 PU 스코프가 장착된 저격용 M1891/30도 사용되었다.
- Kar98k - 중공군이 사용. 중국 군벌이 국공내전 시기 자체 복제한 마우저 소총도 포함됨.
- 한양 88식 - 청나라가 독일제 게베어 1888 소총을 가지고 복제생산한 소총. 중공군이 들고 왔다.
- 중정식 소총 - 중국(국민당)이 Kar98k를 복제생산한 소총. 중공군이 들고 왔다.
- Vz.24 - 중공군이 사용
- 봉천 2형 기관단총 - 중공군이 사용.
- 100식 기관단총 - 중공군이 사용.
- PPSh-41 - 원본 소련제 외에 북한이 복제한 49식 기관단총, 중국이 복제한 50식 기관단총도 포함.
- PPS-43
- KP/-31 - 중공군이 소수 사용함.
- 톰슨 M1928/ M1928A1/ M1A1 - 국공내전 시기 국민당군에게서 노획한 것을 사용함.
- 36식 11mm 기관단총 - M3 기관단총. 국공내전 당시 노획함.
- MP18 계열
2.2.3. 기관총류
참호에서 DP-28을 사격하는 북한군 |
일본제 기관총들은 북한군보다는 중공군이 참전했을 당시 많은 수가 들고와서 사용했다. 전쟁이 장기화되자, 이들도 소련제로 무장하게 된다.
2.2.4. 중화기/폭발물류
전쟁 후반으로 갈수록 화력이 부족해진 공산당측 군대에게는 박격포의 중요성이 점점 높아졌다.- 120-PM-43 - 소련제 120mm 박격포
- 82-BM-37 - 소련제 82mm 박격포
- 82-PM-41 - BM-37의 개량형.
- 82-PM-43 - 41형의 개량형.
- 31식 60mm 박격포 - 미국제 M2의 중국 복제생산품.
- 민국 27년식 척탄통 - 중공군이 요긴하게 사용했다.
- PTRD-41
- PTRS-41
그나마 수류탄을 지급하는 종류가 통일된 UN군과는 달리 공산당측은 말 그대로 수류탄이라고 이름 붙은 모든 것을 전장에 투입했다. 이유는 수류탄 수량 부족이 주요 원인이었다.
3. 지상병기
3.1. 국군 및 UN군
3.1.1. 기갑 종류
고지에 마련된 전차호에서 포격지원중인 M4A3E8 전차 |
전쟁 초반에는 한국군에는 기갑이 없고 미군도 경전차인 M24 채피 정도만 투입 가능해서 북한군의 전차에게 밀렸으나 낙동강 방어선 전투부터는 미군의 중형전차나 중전차도 투입되기 시작하면서 기갑의 열세를 우세로 바꾸게 된다.
- M4A3E8 - 미군 외에 콜롬비아군, 영연방군의 일부(호주군, 캐나다군)도 운용했다.
- M4A1 - 75mm 사양이 필리핀군 제10전차대대 소속으로 파견됨.
- M4 컴포지트 헐 - 필리핀군 제10전차대대 소속으로 파견됨.
- M24 채피 - 미군 외에 필리핀군도 운용했다.
- M26 퍼싱
- M42B5 셔먼 - M4A3E8의 차체 사양에 105mm 주포와 화염방사기를 장착한 버전. 미 해병대가 소수 운용했다.#
- M4A3(105) HVSS POA-CWS-H5 - HVSS 현가장치 탑재형 M4A3 셔먼에 105mm 주포와 화염방사기를 부포로 탑재한 버전. 역시나 미 해병대가 운용했으며 위의 M42B5와는 다르게 사실상 주력이었다.
- M45 - M26 퍼싱의 보병지원형 105mm 직사포 탑재형. (T26E2)
- M46 패튼
- M47 패튼 - 1952년 12월 5대를 철의 3각지대에 투입하여 실전 테스트를 하고 다음해 4월에 부산에서 미국으로 돌아갔다. 당시엔 공산군 기갑 전력이 씨가 말라서 보병을 지원했다고 하며 일부는 18인치 서치라이트를 장착했다.
6.25 전쟁 시기의 대한민국 국군의 제 51전차대대 소속 미국제 M36B2 GMC 대전차 자주포 |
- M36 GMC - 전쟁 중 국군에게 공여되었다.
- M18 헬캣 - 1량이 필리핀군 제10전차대대 소속으로 파견되었음이 확인되었다.
- M41 워커 불독 - 필드 테스트 형식으로 제한적 운용. 당시엔 T41로 불렸다.
- A27M 크롬웰 (영연방군) - 그러나 대한민국 해병대 소유라고 쓰여 있는 크롬웰의 사진도 남아 있는데, 이는 북한이 운용하던 걸 한국군이 노획하고 찍은 사진이라고 한다. 참고로 해당 크롬웰은 나중에 영국군이 발견하고서는 소유권을 주장하며 다시 가져갔다고 한다.
- A34 코멧 (영연방군)
- 센추리온 Mk.2, Mk.3 (영연방군)
- A22 처칠 크로커다일 (영연방군) - 화염방사기를 기관총으로 교체한 Mk.VII 사양으로 실전에서 운용
- M10C 아킬레스 (영연방군) - 캐나다군 소속으로 참전했다. 하지만 중공군 개입 후 대보병 화력이 필요해지자 M4A3E8을 미군으로부터 공여받아 사용했다.
- M32 ARV - 구난전차
- 처칠 ARV - 구난전차
3.1.2. 화포 종류
전시품이 된 M2A1 105mm 견인곡사포 |
전쟁 극초반에는 한국군에 M3 105mm 경곡사포가 소량만 있어서 북한군의 포병 화력에게 큰 열세를 맞이하였으나 미군이 자국의 화포들을 많이 가져오기 시작하면서 점점 포병 화력에서도 우세로 바뀌었다. 다만 초기에는 미군에게 지급하기도 모자라서 한국군은 미군의 포병화력 지원을 많이 받아야 했다.
대전차포는 57mm M1 대전차포가 이미 그 당시에는 퇴물로 전락한 것을 모르고 한국군에게 공여하는 바람에 전쟁 극초반에 북한군의 전차에게 밀려버렸다. 그 후에는 육상 대전차 화력의 주력이 슈퍼 바주카나 대전차 자주포나 전차로 이동하면서 견인식 대전차포는 UN군 산하의 영연방군같은 군대가 운영하는 것을 빼고는 전장의 주역에서 물러난다.
- 40mm M1 기관포
- 57mm M1 대전차포 - 개전 당시 한국군의 유일한 대전차포. 이미 관통력 자체가 부족한데다가 철갑탄도 모자라고 운용인원의 훈련도도 미약해서 북한군의 전차를 막지 못했다.
- 90mm 대공포/대전차포
- M1A1 75mm 경야포 - 전쟁 중 국군에게 공여되었다.
- M3 105mm 경곡사포 - 개전 당시 한국군의 유일한 야포. 원래 공수부대용 경야포인지라 사정거리가 매우 짧았다.
- M2A1 105mm 견인곡사포 - 전쟁 중 국군에게 공여되었다.
- M1 155mm 견인곡사포 - 전쟁 중 국군에게 공여되었다. 최초로 공여된 것은 1951년 5월.
- M1 8인치 곡사포
- M1 "블랙 드래곤" 곡사포
- M45 쿼드마운트 "미트 쵸퍼"
- BL 5.5인치 중포 (영연방군) - 캐나다군이 사용.
- 17파운더 (영연방군)
- 25파운더 (영연방군) - 영국군과 뉴질랜드군이 썼다.
3.1.3. 자주포 종류
기존의 견인식 야포 뿐 아니라 자주포도 많이 도입되었다. 사유는 포병 진지가 의외로 습격을 많이 받은 것과 함께 지형 특성상 포병진지가 될 곳이 뻔해서 대포병사격이나 게릴라 공격을 자주 당했던 이유 때문이었다.- M7B1/B2 프리스트 - 처음 투입된 B1의 낮은 포각이 한국의 산악지형에서 문제가 되자 포각을 높인 B2로 개량.
- M37 HMC - M24 채피의 차체를 기반으로 한 105mm 자주포다.
- M40/M43 GMC - M4A3 이지에잇의 차체를 기반으로 한 155mm, 203mm 자주포다.
- M41 HMC - M37과 마찬가지로 M24 채피의 차체를 기반으로 한 자주포. 155mm 견인곡사포 장착.
3.1.4. 장갑차 계열
미군이 운영중인 M8 그레이하운드 |
장갑차도 상당량이 사용되었다. 특히 M8 그레이하운드는 한국군의 개전 극초반의 기갑전력으로도 활약했다. 그 이후의 장갑차들은 견인, 수송, 정찰, 무전연락 등의 다용도로 사용되었다. 그러나 장갑이 얇아서 북한군의 대전차 소총과 소구경 대전차포의 매복에 취약했다.
- M8 그레이하운드- 전쟁 초기 국군의 몇 안되는 기갑전력으로서 활약했다.
- M20 정찰장갑차 - M8 그레이하운드의 파생형.
- M29C 위즐
- M39 AUV - M18 헬캣의 포탑을 제거하고 차체를 견인 및 수송용으로 활용.
- M5A3 트랙터 - M5 스튜어트의 차체를 기반으로 한 비무장 견인차.
- M3A1 하프트랙
- LVT-3 상륙장갑차 A4 로즈마블
- 유니버셜 캐리어 Mk.I/II (영연방군)
- AEC 장갑차 (영연방군)
- 다임러 장갑차 (영연방군)
- 다임러 딩고 정찰 장갑차 (영연방군) - 기존 다임러 장갑차에서 2파운더 대전차포를 제거한 정찰용 파생형.
3.1.5. 자주대공포
자주대공포는 본업인 방공보다는 밀려오는 공산당측 군대를 상대로 대지상 사격을 하는 것이 주요 임무였으며 성과도 많아서 공산당측에서 우선파괴목표로 설정할 정도였다.- M16 MGMC - M3A1 하프트랙의 파생형 대공 자주포
- M19 GMC - 채피의 차체를 활용한 대공전차.
3.1.6. 수송차량
6.25 전쟁의 소모전 특성상 많은 양의 물자를 육로로 수송해야 하며 철도 시설도 부족한 관계로 인해 트럭을 포함한 수송차량의 수요가 매우 높았다.- GMC의 CCKW 2의 1/2톤 트럭, DUKW, 스튜드베이커 트럭
- 닷지 WC 계열 3/4톤 트럭
- 토요타 BM
- 모리스 C8 FAT 포병 트랙터 - 영국군과 호주군이 사용.
- 쉐보레 CMP FAT 포병 트랙터 - 캐나다군이 사용.
- 윌리스 오버랜드 MB 지프 - 한국군과 UN군이 사용.
3.2. 공산군
한국전의 북한군 및 인민지원군 기갑차량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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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차 | 경전차 | <colbgcolor=#fefefe,#191919>공신호 전차CN, M5A1CN/? | |
중형전차 | T-34-76X, T-34-85, M4A2 (76) WX | ||
중전차 | IS-2CN | ||
화염방사전차 | OT-34CN | ||
장갑차 | BA-64, BTR-40 | ||
자주포 | SU-76M, LVT(A)-4 (ZiS-2)CN | ||
다연장로켓 | 카츄샤 다연장로켓 | ||
차량 | GAZ-51, GAZ-63, GAZ-64, GAZ-AA, ZiS-5, ZiS-6, ZiS-150 | ||
모터사이클 | M-72 | ||
노획 차량 | M24 채피, M4A3 (76) W HVSS, A27M 크롬웰NONE, M26 퍼싱, M19 더스터, M41 고릴라, 센추리온, M36 GMC, 옥스포드 캐리어, 와스프 IIC, M46 패튼, M18 헬캣 | ||
※ 윗첨자?: 사용 여부가 불확실하고 일부 자료(사진 등)에만 등장하는 차량이거나 증명이 되지 않은 차량 ※ 윗첨자CN: 인민지원군이 사용 ※ 윗첨자X: 소련에게 공여받은 차량이나 소수 만을 운용 ※ 윗첨자NONE 전시 중 전량 유실 | |||
}}}}}}}}} |
3.2.1. 기갑 종류
남침의 선봉에 선 T-34-85 |
- T-34-85 - 전쟁 이전 소련이 242대 공여. 6.25 전쟁 초반에 엄청난 위력을 발휘해서 한국군과 미군이 당시 보유했고 투입했던 대부분의 대전차화기를 무력화했기에 슈퍼 바주카 도입 및 M26 퍼싱 전차 투입같은 결정이 내려지게 만들었다.
수풀로 위장을 하고 전진중인 SU-76M |
- SU-76M - 전쟁 이전 소련이 150대 공여. 화력 지원용으로도 쓸만했고 전차 대용으로도 사용되었다. 그 대신 장갑이 얇은 자주포라 한국군의 육탄공격에 자주 파괴되었다.
중공군이 운용하는 T-34-76 |
- T-34-76 1942년형, 1943년형 - 영국의 한국전 다큐멘터리에 조선인민군 소속의 T-34-76이 등장한다. 학계에선 T-34-76의 화염방사전차들만 몇대 보내준 것으로 추정되었는데 그냥 T-34-76도 상당수 보내졌다는 학설이 힘을 얻고 있다. 그리고 T-34-76 모델들이 전차대 전차 전투가 많았던 한국전쟁 초반기보다는 고지에서 간이 자주포로 포격지원을 많이 했던 한국전쟁 후반기에 소련이 공여해줬거나, 전쟁 휴전 후에 줬을 수도 있다는 이야기도 존재한다.
- OT-34-76 - 화염방사전차
중공군의 IS-2 |
- IS-2 초기형과 1944년식 - 중공군이 60대 가져왔고, 고지전에서 싸우는 보병 지원용 자주포 용도로 쓰였다. 전차전에 투입되었는지에 대해선 논란이 많다. 후대 연구에 따르면 없는 것으로 기정사실화되었다.
- M4A3E8 셔먼 - 1951년 1.4 후퇴 당시 미군이 유기한 차량을 노획해서 운용했다.
- M5A1 스튜어트 - 국공내전 시기 국민혁명군에게서 노획한 병기. 한국전에 참전했는지 여부는 불확실함.
- 크롬웰 전차 - 중공군이 경기도 고양시에 있었던 해피 밸리 전투 때 영국군에게서 알 수 없는 수량을 노획. 나중에는 다시 한국군에게 노획되거나 영국군이 다시 수복했다. 그 중 하나는 1951년 2월 11일, 서울 한강 철교 아래에 숨어있던 중공군 전차병이 타고 있는 크롬웰 전차를 2.7km 거리에서 영국군 센추리온 전차가 장거리 저격을 시도, 격파했다. 북한군도 운용한 적이 있다.
- 97식 "공신호" 전차 - 중공군 제식 장비였으며, 한국전쟁에도 참전했으나 얼마 안가 T-34-85로 대체되며 전량 본국으로 송환되었다. 이후 훈련용으로 사용.
- LVT(A)-4 (ZiS-2) - 최소 8문 이상이 중국인민해방군 제26전차사단 소속으로 투입되었다. 다만 공신호 전차처럼 실전 기록은 전무하며, 1952년 4월 제26전차사단이 철수하며 같이 본토로 송환되었다고 한다.
3.2.2. 화포류
박물관에 전시된 76mm ZiS-3 사단포 |
개전 이전에 소련은 북한에게 122mm 견인곡사포를 초과하는 중야포는 공여하지 않았지만 그것만으로도 사정거리와 위력에서 한국군의 화포를 압도했고 개전 초반에 북한군의 화력이 더 강했다.
그 이후에 미군의 화포가 대량으로 투입되면서 북한군이 화력에서 밀리기 시작하고 중공군은 중화포를 보유한 것이 거의 없다보니 소구경의 산포나 사단포같은 인력으로 쉽게 운용가능하며 은엄폐가 용이해서 기습적인 사격이 가능한 화포 위주로 포병 화력이 재편된다.
대전차포는 소구경이었지만 UN군 전차와 장갑차의 취약부위를 공격하는 방식으로 나름 유용하게 사용했고 대공포는 대공방어를 위주로 했지만 일부는 지상포격에도 사용했다. 그 대신 반대급부로 UN군의 반격에 많은 희생자가 나기도 했다.
- 45mm 대전차포 - 53-K 버전과, 1942년에 개량한 M-42도 함께 사용됨.
- 92식 70mm 보병포 (중공군, 중일전쟁 노획병기)
- 38식 75mm 야포 (중공군, 중일전쟁 노획병기)
- 94식 75mm 산포 (중공군, 중일전쟁 노획병기)
- 76mm M1927 보병포
- 76mm ZiS-3 야포
- 122mm M-30 견인곡사포
- 122mm A-19 평사포
- 37mm 61-K 대공포
- 85mm KS-12 대공포
- 100mm KS-19 대공포
3.2.3. 차량류
국군에게 노획된 BA-64 장갑차 이 사진은 확대된 것이다. 헌병 아래에 소련제 M-72 오토바이가 있는데 사진이 잘렸다 |
개전 초반에 북한군 장갑차와 모터사이클이 투입되었으나 성과가 별로 없었다. 이들은 정찰과 전선 우회 및 급속 전진을 목표로 했지만 한국군과 미군의 방어체제가 빠르게 갖추어져서 도로에서만 활동이 가능하다는 약점 때문에 오히려 보병보다도 돌파력이나 우회력이 떨어졌다.
공산당측에도 수송차량은 존재했으나 주로 전선에서 먼 곳에서 사용되었다. UN군의 공습에서 살아남기도 어려웠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전선 근방에서의 보급은 인력으로 주로 수행되었다.
- BA-64B 장갑차 - 전쟁 전에 소련이 54대 공여해줌.
- GAZ-67
- M-72 모터사이클
- BM-13 카츄샤 로켓 트럭[2]
- BM-8-36 (82mm 로켓, 36개 포신 / ZiS-5, ZiS-6 트럭 장착형)
- BM-8-40 (82mm 로켓, 40개 포신 / GAZ-AA 트럭 장착형)
- BM-8-48 (82mm 로켓, 48개 포신 / ZiS-6, 미국제 스튜드베이커 US6 트럭 장착형)
- BM-13-24 (132mm 로켓, 24개 포신 / ZiS-6 트럭 장착형)
- ZiS-5, ZiS-6 GAZ-AA, GAZ-AAA, 소련이 준 미국제 스튜드베이커 US6[3]
4. 해상병기
4.1. 국군 및 UN군
1952년 10월 17일, 전함 BB-61 USS 아이오와가 함포 사격을 하고 있다 |
4.1.1. 대한민국
개전 당시에는 전력이 매우 부족해서 취약한 상태였으나 미군의 공여가 개시되면서 전력이 확충된다.- 충무공급 초계정 - 일본 해군이 남기고 간 함정을 개수
- PC-461(백두산)급 구잠함
- PCS-1376(수성)급 구잠정 - 전쟁 중 미 해군에게서 인수
- 엘코 80'(갈매기)급 어뢰정 - 전쟁 중 미 해군에게서 인수
- 타코마(두만)급 호위함 - 전쟁 중 미 해군에게서 인수
- LST-542(천안)급 전차상륙함
- LCI(L)-351(서울)급 보병상륙정
- LSSL-1(영흥만)급 상륙지원함 - 전쟁 중 미 해군에게서 인수
- JMS 1식(대전급) 소해정 - 일본 해군 함정
- YMS-1(강진)급 소해정
- 카마노(부산)급 경량수송함
- 소토요모(인왕)급 예인함 - 전쟁 중 미 해군에게서 인수
- YO-65(구룡)급 연료운반정
- 천지급 보급함 - 노르웨이 건조 선박 하셀(Hassel) 호를 1953년 6월 30일 네덜란드 로테르담에서 인수하고 보급함으로 개수
- 폭뢰급 항만정 - 구일본군의 100톤급 항만 예인선을 해군이 사용한 것으로 GB-21 폭뢰와 GB-22 흑조환 2척이 개전 당시 해군 편제에 소속되어 있었다. 이중 폭뢰 21호는 1945년 창설된 해방병단이 미 군정에게서 최초로 인수받은 함정으로서 해군의 제1호정으로 등록되었다.
- 기타 보조용 소형정 - 각종 소형 보조경비정 및 항만보조선, 그 외 민간 수송선
4.1.2. 미국
미합중국 해군도 전후 군축의 타격을 받았으나 당장 투입할 수 있는 전력이 많았고 공산당측 해군 전력이 미약해서 제해권을 바로 확립한 후 지상전 지원에 큰 도움을 줄 수 있었다.- 아이오와급 전함 4척 - USS 아이오와 (BB-61), USS 뉴 저지 (BB-62), USS 미주리 (BB-63), USS 위스콘신 (BB-64)
- 에식스급 항공모함 11척 - USS 에식스 (CV-9), USS 복서 (CV-21), USS 본 홈 리처드 (CV-31), USS 레이테 (CV-32), USS 키어사지 (CV-33), USS 오리스카니 (CV-34), USS 앤티텀 (CV-36), USS 프린스턴 (CV-37), USS 레이크 챔플레인 (CV-39), USS 밸리 포지 (CV-45), USS 필리핀 시 (CV-47)
- 카사블랑카급 호위항공모함 2척 - USS 코레히도르 (CVE-58), USS 싯코 베이 (CVE-86)
- 커먼스먼트 베이급 호위항공모함 3척 - USS 렌도버 (CVE-114), USS 시실리 (CVE-118), USS 포인트 크루즈 (CVE-119)
- 인디펜던스급 경항공모함 1척 - USS 바탄 (CVL-29)
- 볼티모어급 중순양함
- 오리건시티급 중순양함
- 주노급 경순양함[4]
- 클리블랜드급 경순양함
- 우스터급 경순양함
- 기어링급 구축함
- 알렌 M. 섬너급 구축함
- 플레처급 구축함
- 글리브스급 구축함
- 버클리급 호위구축함
- 존 C. 버틀러급 호위구축함
- 타코마급 호위함
- 텐치급 잠수함
- 발라오급 잠수함
- 바렛급 수송함
- 크로슬리급 고속수송함
- 안드로메다급 공격수송함
- 하스켈급 공격수송함
- 카사 그란데급 도크상륙함
- LSM(R)-401급 중형상륙함
- LSM(R)-501급 중형상륙함
- LST-491급 전차상륙함
- LST-542급 전차상륙함
- LCI(L)-351급 보병상륙정
- 마운트 매킨리급 상륙지휘함[5]
- YMS-1급 소해정 (YMS-135아급)
- YMS-1급 소해정 (YMS-446아급)
- 오크급 소해정
- 애드미러블급 소해정
- 볼스터급 구난함
- 소토요모급 예인함
- 마리코파급 예인함
- YO-65급 연료운반정
4.1.3. 영국
영국과 영연방 및 기타 국가들은 미 해군을 보조하는 역할로 참전했다.- 유니콘급 경항공모함 1척 - HMS 유니콘 (I72)
- 콜로서스급 경항공모함 5척 - HMS 트라이엄프 (R16), HMS 워리어 (R31), HMS 글로리 (R62), HMS 테세우스 (R64), HMS 오션 (R68)
- 타운급 경순양함 - HMS 벨파스트 (C35), HMS 뉴캐슬 (C76), HMS 버밍엄 (C19) 참전.[6]
- 크라운 콜로니급 경순양함
- 셀리온급 경순양함
- C급 구축함
- 베이급 방공호위함
- 블랙 스완급 초계함
- 헤클라급 보급함
- 그 외 병원선(Maine 호), HQ함(Ladybird 호) 등 지원함정
4.1.4. 캐나다
- C급 구축함
- V급 구축함
- 트라이벌급 구축함
4.1.5. 오스트레일리아
- 마제스틱급 경항공모함 1척 - HMAS 시드니 (R17)
- 배틀급 구축함
- 트라이벌급 구축함
- 리버급 호위함
- 베이급 방공호위함
4.1.6. 뉴질랜드
- 로크급 호위함
4.1.7. 네덜란드
- S급 구축함
- N급 구축함
- 리버급 호위함
- 수송함 (Zuiderkruis 호)
4.1.8. 프랑스 제4공화국
4.1.9. 태국
4.1.10. 콜롬비아
- 타코마급 호위함 - 2차대전 종전후 미 해군으로부터 구입
4.1.11. 일본 (비공식)
미국과 UN군 사령부의 요청에 따라 일본 해상보안청 소속 소해부대가 원산만 일대와 인천항, 청진항 등 한반도 동해/서해 지역의 주요 해역과 항만에서 소해 작전에 참가하였다. 일본의 소해정은 대부분 구일본군의 JMS형 목조 소해정으로 구성되었으며, 54척의 선박에 1200여명의 인원이 동원됐다. 작전 중 19명의 전사자가 발생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다만 일본의 6.25 참전 관련 사안은 물자 지원을 제외하면 한미일 삼국 모두에 의해 철저히 함구됐으며, 이에 따라 물자 지원을 제외한 분야에서 일본의 지원은 비공식 지원으로 취급한다.4.1.12. 기타 지원
덴마크: 병원선 유틀란디아 호를 의료 지원 목적으로 파견하였다.4.2. 공산군
북한군의 G-5급 어뢰정 |
4.2.1. 북한
기본적으로 해군 전력이 매우 빈약해서 동해안의 북한군 육상전력 상륙작전 같은 지원작전 외에는 제대로 활약하지 못했다. 개전 초반 이후에는 미 해군의 투입으로 인해 해전 분야에서는 밀려버린다. 그 후에는 기뢰 설치나 게릴라 상륙 같은 분야에 주로 종사한다.- OD-200급 구잠정 (소련 원조)
- G-5급 어뢰정 (소련 원조)
- P-4급 어뢰정 (소련 원조)
- 250-280톤급 경비정/상륙정 - 자료마다 편제나 척수가 들쭉날쭉하고 정확한 모델명이 확인되지 않고 있다. 일단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의 6.25전쟁사 자료에는 250-280톤급 어뢰정 14척이 4개의 어뢰정대로 편성배치되었다고 언급.
- 발틱 코스터급 수송함 (월북)
- 남포호 - 월북화물선 킴블 R. 스미스 호(SS Kimball R. Smith)를 병력수송용으로 개조하고 해군에 편입한 것으로 당시 북한 해군의 최대 무장수송함(배수량 1780톤)
- 800-1000톤급 수송함 - 옛 미국제 상선(남포호의 경우처럼 주로 남한에서 월북 또는 납북하여 입수한 선박)을 수송용으로 개수하고 무장을 장착하는 형태가 일반적이었다. 그 외 소련에게 제공받은 화물선을 개조하여 사용했다는 얘기도 있다.
- 로동자급 경비정 - 1949년 5월 원산에 위치한 조선소에서 자체건조된 북한제 경비정으로, 총 2척이 건조되어 제2 위수사령부 4경비정대 소속으로 동해에 배치되었다.
- YMS-1급 소해정 - 전쟁전 월북 및 납북된 미국 GM제 소해정(YMS-508 강화, YMS-517 고원).[8] 북한에서는 선체 앞부분의 37mm 포를 다른 무장으로 교체하여 운용하였다.
- JMS 1식 소해정 - 구일본군 유기 함정, 전쟁전 납북(JMS-311 통천)[9]
- 기타 보조용 소형정 - 어업용 발동선 및 목선을 개수한 것이며 대부분 35-45톤급 선박으로 구성.
- 기뢰 매설용 바지선 - 목조 바지선에 목제나 철제 선로를 설치하고 기뢰 매설작업에 활용.
- 견인발동선 - 소형 보트 크기의 견인발동선.
- 배떼 - 소형 보트를 2개 이상씩 가로로 연결하고 선체 윗부분에 널빤지를 얹어 보병용 배다리로 운용하기도 하였다.
4.2.2. 중국과 소련
중국은 기존의 해상 전력 자체가 빈약하고 중화민국도 견제해야 하므로 해군전력을 거의 파견하지 못했고 소련도 해군 전력이 좋은 상태가 아닌데다가 소련 태평양함대의 전력은 더 적어서 전력을 투입할 상황이 아니었다.그래서 북한에게 어뢰정같은 소형 선박을 공여하거나 기뢰를 보급하거나 기뢰설치 전문가를 투입하는 등의 간접적인 지원을 주로 했다. 그 외에 소련군 잠수함이 몰래 정찰활동을 했다는 이야기도 존재한다.
5. 항공병기
5.1. 국군 및 UN군
한국군의 F-51 머스탱 |
한국군은 개전 초반에 전투기가 없고 연습기와 연락기 정도만 있어서 북한군의 공습에 대항하지 못했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서 미군에게 프로펠러 전투기를 지원받고 전력을 확충하기 시작한다.
미군의 F-86 세이버 |
미합중국 공군은 개전 당시 가장 전력상태가 좋은 편이었고 최신예 전투기도 갖추고 있어서 제공권을 쉽게 잡았다. 나중에 소련제 MiG-15로 인해 북한의 일부 국경지역 공역에 대한 제공권을 일시적으로 상실하기도 했으나 그 이상은 밀리지 않았고 제공권을 다시 확보하기 위한 전투가 계속 진행되었다. 해당 지역 외의 한반도의 대부분의 지역은 미 공군이 제공권을 개전 직후부터 휴전때까지 제대로 잡고 있었다.
5.1.1. 전투기
- 호커 시 퓨리 FB (영국 해군)
- 글로스터 미티어 (오스트레일리아)
- 노스 아메리칸 F-51D/K 머스탱 (미국, 대한민국, 오스트레일리아, 남아프리카 연방) - 한국 공군에는 1950년 7월 2일에 F-51D 10기가 최초로 공여되었다. 휴전 시점에서 한국 공군이 보유한 수량은 총 78기.
- 노스 아메리칸 F-82 트윈 머스탱 (미국 공군)
- 노스 아메리칸 F-86 세이버 (미국 공군, 남아프리카공화국)
- 보우트 F4U 콜세어 (미국 해군)
- 그루먼 F6F 헬캣 (미국 해군) - 극소수가 무인 유도 폭탄으로 쓰였다.
- 그루먼 F9F 팬서 (미국 해군)
- 맥도넬 F2H 밴시 (미국 해군)
- 더글러스 F3D 스카이나이트 (미국 해군)
- 리퍼블릭 F-84 썬더젯 (미국 공군)
- 록히드 F-80 슈팅 스타 (미국 공군)
- 록히드 F-94 스타파이어 (미국 공군)
- 슈퍼마린 시파이어 FR 46/47 (영국 해군 항공대)
- 페어리 파이어플라이 (영국, 오스트레일리아 해군 항공대)
- 드 해빌랜드 시 호넷 FB/NF (영국) - 참전을 위해 수송하던 중에 전쟁이 끝나서 인도네시아에서 사용되었다.
5.1.2. 폭격기
- 더글러스 B-26(A-26A) 인베이더[10]
- 보잉 B-29 슈퍼포트리스
- 콘솔리데이트 PB4Y-2 프라이버티어 - 미 해군이 운용.
- 록히드 P2V 넵튠 - 미 해군이 운용.
- 그루먼 AF-2 가디언 - 미 해군이 운용.
- 쇼트 선덜랜드 - 영국 공군이 사용했다.
5.1.3. 공격기
- 더글러스 A-1/AD 스카이레이더
- 보우트 AU-1 콜세어 - F4U의 공격기 버전.
- 그루먼 F7F 타이거캣 - 원래는 함재 다목적 중전투기지만, 미 해병대에 의해 공격기로 쓰였다.
5.1.4. 수송기
- 더글러스 C-47 스카이트레인 - 한국군에는 1기가 제공되어 대통령 전용기 및 수송기로 사용되었다.
- 더글러스 C-54 스카이마스터
- 커티스 C-46 코만도
- 페어차일드 C-119 플라잉 박스카
- 더글러스 C-124A 글로브마스터 II
- 비치크래프트 C-45 익스페디터
5.1.5. 초계기
- 보잉 RB-17 플라잉 포트리스
- 보잉 RB-29/50 슈퍼포트리스
- 노스 아메리칸 RB-45 토네이도
- 컨베이어 RB-36 피스메이커
5.1.6. 관측기
- 에어론카 L-16 - 한국군에는 1950년 10월에 1기가 처음 공여되어 당해 11월까지 운용, 이후 1952년 1월과 4월에 각각 5기와 1기가 추가로 공여되어 정찰 및 관측임무에 활용되었다.
- 라이언 L-17 네이비언 - 한국군에는 1기가 공여되어 1951년 2월부터 당해 12월까지 정찰 및 조종사 훈련용도로 사용되었다.
- 파이퍼 L-18B - 튀르키예군이 사용했다.
- 세스나 L-19 버드 독 - 한국군에는 1951년 4월과 5월, 11월과 12월에 각각 1기씩 도입되어 정찰 및 관측, 연락임무 등에 활용되었다.
- 드 해빌랜드 L-20 비버
- 오스터 AOP 6 - 영국 공군이 사용했다.
5.1.7. 헬리콥터
시코르스키 H-19 |
헬리콥터가 대량 사용된 전쟁이기도 하다.
- 벨 H-13 수우
- 시코르스키 H-5
- 시코르스키 H-19 치카소
- 시코르스키 S-52 - 미 해병대가 운용했다.
- 힐러 H-23 레이븐
5.1.8. 훈련기
- 타치카와 Ki-9 "스프루스" - 구일본군 유기 장비로 일본군 시절 제식 명칭은 95식 1형 연습기. 한국 공군의 공식 기록에는 포함되어있지 않으나 전쟁 당시 태극마크 도장을 한 기체의 사진이 존재한다.사진출처1 사진출처2 도입 및 퇴역시점[11]이나 운용수량 등의 정보는 정확히 알려져있지 않다. 추후 새로 밝혀진 바에 따르면 공군이 아니라 대한민국 교통부 전용기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 노스 아메리칸 T-6 텍산 (개전초기 제한적 전투 참여) - AT-6 형식의 모델로 도입 당시 한국에선 '건국기'라는 명칭으로 불렸으며 국민 성금으로 해당 항공기들을 캐나다에서 구입하여 들여온 후 1950년 5월 14일 명명식을 거쳐 정식으로 공군에 편입하였다. 개전 시점에는 모두 10기가 한국 공군에 소속되어 있었다. 개전 직후 한국 공군이 북한군의 공세에 맞서 지상공격용으로 활용했으며, 전투 임무에서 물러난 이후에도 한국 공군과 미 공군에 의해 정찰이나 표적 관측 및 조종사 양성용 기체로 계속 활용되었다. 전쟁 중 14기가 미군으로부터 추가로 공여되었다. 휴전 시점에서 한국 공군이 보유한 수량은 총 17기.
- 록히드 T-33 - 일부가 정찰 및 표적 관측용으로 활용되었다고 한다.
5.1.9. 연락기
- 파이퍼 L-4 커브 "그래스하퍼" (개전초기 제한적 전투 참여) - 1948년 9월 4일 미군으로부터 조립부품 형태로 10기를 인수하였으며 개전 시점에는 8기가 한국군에 남아있었다. 전쟁 중 20기를 미군으로부터 추가로 공여받았으며 휴전 시점까지 연락 및 정찰임무에 계속 사용되었다.
- 스틴슨 L-5 센티넬 (개전초기 제한적 전투 참여) - 1949년 10월 여순사건 발발 이후 미군으로부터 10기를 인수하였으며 개전 시점에는 4기가 한국군에 남아있었다. 전쟁 중 10기를 미군으로부터 추가로 공여받았으며 휴전 시점까지 연락 및 정찰임무에 계속 사용되었다.
5.1.10. 기타
- 제너럴 모터스 TBM-3 어벤저 (다목적기) - 미 해병대와 미 해군이 요인이나 부상자 후송, 표적 관측 등의 용도로 사용했다.
- 보잉 SB-17 플라잉 포트리스 (해상 구난기)
- 그루먼 SA-16 알바트로스 (해상 구난기)
- 콘솔리데이트 OA-10 카탈리나 (해상 구난기)
- 마틴 PBM-5 매리너 (해상 구난기)
- 해취호 (수상기) - 1951년 4월 폐기처리될 예정이던 미 공군의 T-6F 1기를 한국 해군이 인수하여 일제 A6M2-N(2식 수상전투기)의 잔해 부품인 수상용 플로트를 부착하고 당해 8월에 개조를 완료하여 수상기로 활용. KN-1이라는 명칭으로 불리기도 한다.
5.2. 공산군
남침 극초기 북한군 주력 전투기인 Yak-9 |
북한군은 개전 극초반에 전투기가 없던 한국군을 압도하고 제공권을 잠깐 잡았지만 곧 미 공군의 철퇴를 맞고 제공권을 상실한 후 사실상 개점휴업 상태에 돌입한다.
전쟁기간 공산군 최신예 전투기인 MiG-15 |
전쟁 중반 이후에 투입된 MiG-15는 한반도의 중국 국경과 소련 국경 근방의 제공권을 탈환하고 미 공군의 중폭격기를 위협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하지만 수량 부족과 경제적 상황 및 제한전쟁의 특성상 그 정도가 끝이었고 지속적인 미 공군과 미 해군의 제공권 재탈취 시도와 맞서야 했으며 한반도의 대부분 지역에서 미 공군의 제공권이 유지되는 것을 해결하지는 못했다.
5.2.1. 전투기
- 야코블레프 Yak-9M, Yak-9P
- 야코블레프 Yak-11
- 라보츠킨 La-11
- 미코얀-구레비치 MiG-15
- 미코얀-구레비치 MiG-15bis
- 나카지마 Ki-43 하야부사 - 북한이 잠깐 사용하다 Yak-9이 오자마자 전량 교체됐다.
- 나카지마 Ki-84 하야테 - 위의 하야부사와 마찬가지로 잠시 사용되다가 소련제 전투기들로 전량 교체.
5.2.2. 공격기
개전 극초반을 빼고는 공격기와 폭격기는 제대로 활약을 못했다. 하지만 Po-2 같은 복엽기가 야간 저고도 폭격을 기습적으로 하면서 미 공군의 신경을 제대로 건드리기도 했다.5.2.3. 폭격기
- 폴리카르포프 Po-2 (야간 저고도 폭격용)
- 야코블레프 Yak-18 (야간 저고도 폭격용)
- 투폴레프 Tu-2S (중공군)
5.2.4. 기타
- 타치카와 Ki-9 - 전쟁 극초반 주간 정찰용으로 잠시 쓰였다고 한다.
- 파이퍼 L-4 커브 - 1기가 전쟁전(1948년 11월 18일) 월북[12]
- 스틴슨 L-5 센티넬 - 1기가 전쟁전(1949년 11월 23일) 월북[13]
- 세스나 L-19 버드 독 - 1기가 전쟁중(195?년 12월 3일) 월북[14]
- 야코블레프 Yak-17UTI (중공군)
- 일류신 Il-12 - 소련제 수송기. 북한이나 중국에게 공여하거나 소련이 직접 참전한건 아니었고, 억울하게도 격추당했다. 1953년 7월 27일, 아침에 소련 해군기지에서 출격하여, 우연히 북한 영공을 통과하다가 미군의 F-86 전투기에게 발각당하여 북한제 수송기로 오인돼서 격추되었다. 실상은 블라디보스토크로 가던 중인 텅빈 수송기였다. 승무원 모두 사망.
[1] 우측 관측경을 보고 있는 병사와 좌측 통신병의 경우 소련군 헬멧을 착용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2] 여기에 있는 영상 제 1부의 1분 48초 부분엔 북한군 카츄샤 로켓의 공격장면이 나오고, 2분 48초 부분엔 북한군 모터사이클 부대 옆을 지나가는 카츄샤 로켓포의 모습이 나온다. 중공군과 북한군 모두 이 무기를 운용했다.[3] 미국제 트럭은 2차대전중에 미국이 소련에게 렌드리스로 준 것이다.[4] 애틀랜타급 경순양함 2번함인 CL-52 주노가 아니라 그 후대의 CL-119 주노이다.[5] 인천 상륙 작전이 개시되던 날, 더글러스 맥아더 유엔군 사령관이 이 배의 갑판에 머물면서 상륙작전을 총지휘했다.[6] HMS 벨파스트는 1952년 9월 27일 HMS 뉴캐슬과 HMS 버밍엄과 교대하고 영국으로 귀환했다.[7] Aviso. 프랑스 해군의 함급 분류로 슬루프나 콜벳에 대응한다.[8] 납북된 이후에는 각각 31호정(승리호), 32호정(민주호)으로 개명당한 다음 북한 해군 제2위수사령부 관하 3소해정대에 배치되었다.[9] 이 함선도 납북된 이후에는 33호정(해방호)으로 개명당한 다음 북한 해군 제2위수사령부 관하 3소해정대에 배치되었다.[10]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미 육군 중형폭격기였던 B-26 머로더와는 다른 기체이다. 상세는 해당 항목 참고.[11] 남아있는 사진자료 등으로 미루어 1951년 이후 모두 제적된 것으로 추정.[12] 월북자 백흠룡 중사.[13] 월북자 이명호 소위. 조종사였던 박용오 이등상사를 권총으로 협박해 비행기를 북쪽으로 몰고 가 월북했다.[14] 월북자 국영암 소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