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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4-20 01:00:02

6.25 전쟁/사용 장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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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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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개인 화기
2.1. 국군 및 UN
2.1.1. 권총/산탄총류2.1.2. 소총/자동화기류2.1.3. 기관총류2.1.4. 중화기/폭발물류2.1.5. 냉병기류
2.2. 공산군
2.2.1. 권총류2.2.2. 소총/자동화기류2.2.3. 기관총류2.2.4. 중화기/폭발물류
3. 지상병기
3.1. 국군 및 UN
3.1.1. 기갑 종류3.1.2. 화포 종류3.1.3. 자주포 종류3.1.4. 장갑차 계열3.1.5. 자주대공포3.1.6. 수송차량
3.2. 공산군
3.2.1. 기갑 종류3.2.2. 화포3.2.3. 차량류
4. 해상병기
4.1. 국군 및 UN
4.1.1. 대한민국4.1.2. 미국4.1.3. 영국4.1.4. 캐나다4.1.5. 오스트레일리아4.1.6. 뉴질랜드4.1.7. 네덜란드4.1.8. 프랑스 제4공화국4.1.9. 태국4.1.10. 콜롬비아4.1.11. 일본 (비공식)4.1.12. 기타 지원
4.2. 공산군
4.2.1. 북한4.2.2. 중국과 소련
5. 항공병기
5.1. 국군 및 UN5.2. 공산군
5.2.1. 전투기5.2.2. 공격기5.2.3. 폭격기5.2.4. 기타

6.25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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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난지 얼마 안되는 시점에서 당대 강대국들과 세계 여러 국가들이 직간접적으로 얽혀서 벌어진 냉전 시대의 첫 분쟁인 탓인지, 세계대전 당시에 쓰고 남겨진 잉여장비들과 세계대전 직후에 신기술로 개발된 병기들이 혼재된 양상을 보인다.

그리고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난 후 급격한 군축을 하면서 군수산업과 관련시설이 개점휴업 직전까지 몰렸던 미국을 위시한 서방 연합국과 독소전쟁중일전쟁의 충격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한 소련과 중공이라는 양대 세력의 상황 덕분에 정규전이며 소모전인데도 불구하고 육상병기쪽에서 노획품도 알뜰하게 전장에서 끝까지 사용한 사례가 매우 많다.

그래서 상황이 여유롭지 않으면 서로 상대방의 무기로 무장하고 총격전을 벌이는 것은 기본이 될 지경이었으며 특히 공산측의 경우에는 전쟁에서의 소모량을 따라잡지 못해서 나중에는 군수창고의 구석에 박혀있던 골동품급 무기까지 끌어내서 사용할 지경까지 몰리게 된다.

굵게 표시된 장비는 1950년 6월 25일 개전 당시부터 사용된 무기이다.

2. 개인 화기

2.1. 국군 및 UN

파일:hbt3.jpg

한반도에 남겨진 일본제 무기들은 미군이 미군정을 운용할 당시에 한국군/경찰 무장용으로 소수만 남겨놓고 전부 다 폐기처분했다. 그러나 개전 당시 한국이 소량이라도 양산 가능한 무기와 탄약이 일본제 무기 계열이었으며 공산당측이 휴대한 무기중에서도 특히 중공군 쪽에서 일본제 무기가 다수 존재하므로 전쟁이 끝날 때까지 2선급 무기로 종종 일본제 무기와 탄약이 사용되었다.

2.1.1. 권총/산탄총류


산탄총들은 당시 미군 제식무기 가운데 하나였다. 하지만 소총이 주로 쓰였고 산탄총은 고참병들이 소량 사용했다. 전투용이 아닌 사냥용으로도 썼다.

2.1.2. 소총/자동화기류

파일:koreanm1.jpg
한국전쟁 당시 M1 개런드 소총으로 훈련받는 한국군

일본 제국제 아리사카 소총들은, 한국군의 전신인 조선국방경비대가 사용하다가, 미군이 준 M1 개런드로 교체되었다. 한국전쟁 초기에 연이은 패전으로 인해 다수의 미국제 무기가 망실되자 잠시 한국군이 쓰기도 했다. 1951년이 되자 전원 미국제 무기로 무장하게 되었고, 아리사카 소총은 한국전쟁이 끝날 때까진 경찰과 후방부대에서 사용되었다.

미국제 소총들은 기본적인 수량은 일단 충족하였으나 전투에서의 망실이 많았고 세계대전 후에 급격한 군축으로 사망 직전 상태까지 간 군수산업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은 탓에 전쟁 초기의 급박한 상황에서는 구식 화기들도 일부 사용되었다.

기관단총류는 개전 초반에 전선의 변동이 심할 때도 돌격용으로 유용했고 전쟁 후반의 고지전에서도 참호를 소탕할 때도 유용해서 의의로 많이 사용되었다.

2.1.3. 기관총류

파일:g19.jpg
M1917을 사격하는 한국군

일본제 기관총들은 아리사카보다 더 극소수로 한국전쟁 초반기에 사용되었으며, 금방 미국제 무기로 대체되었다.

미국제 기관총은 수량이 충분했으므로 개전부터 휴전까지 대량으로 사용되었다. 특히 방어전이나 고지전에서는 수랭식 중기관총이 지속적인 화력지원이 가능해서 많은 활약을 했다.

2.1.4. 중화기/폭발물류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300px-Bazookas_Korea.jpg
한국전쟁 당시 미군이 M9와 M20을 들고 있다

수류탄은 소모량이 엄청났기 때문에 양측 모두가 노획품까지 서로에게 투척하면서 싸웠으며 종류도 다양해서 사실상 그 때까지 개발된 대부분의 수류탄이 전장에서 등장할 정도였다.

박격포는 전쟁 초반부터 필수품이었고 나중의 고지전에서는 말 그대로 없어서는 안될 정도로 비중이 높아졌다.

2.1.5. 냉병기류

전쟁 중반 이후 인해전술을 펼치는 중공군을 상대해야 하고 그 이후의 고지전에서도 참호를 쟁탈하기 위한 육박전이 자주 벌어져서 냉병기류도 상당수가 사용되었다.

2.2. 공산군

파일:external/www.warmemo.or.kr/0004.jpg
한국전쟁시기 북한군.[1]

북한을 소련이 접수하고 소련군정을 운영할 때, 일본군이 두고 간 무기 중 일부는 폐기시켰으나 많은 수는 그대로 남겨뒀다. 그리고 소련제와 일본제 무기로 북한군을 무장시켰다.

그리고 중공군이 한국으로 들어왔을 때는 중공의 열악한 경제상황으로 인해 소련제보다 일본제, 국공내전에서 국민당군에게서 노획한 무기, 중국에서 불법 복제생산한 무기들로 무장했다.

소련의 경우에도 소련제 최신예 무기들은 소련 자체를 무장시키기도 곤란할 정도라서 북한군이나 중공군 지원용으로는 소련군의 구식 무기와 함께 독일 국방군같은 추축군에서 노획한 무기와 무기대여법으로 서방 연합군에게서 도입한 것중 구식 무기를 주었다.

2.2.1. 권총류

2.2.2. 소총/자동화기류

파일:북한군모신나강.jpg
모신나강 소총을 휴대한 북한군

북한군도 전쟁 초기에 아리사카 소총을 소량 사용했으며, 중공군이 참전했을 당시 소련제 모신나강보다 가장 많이 들고 왔던 소총이기도 하다.

중공군이 사용한 소총류는 매우 다양했다.

2.2.3. 기관총류

파일:북한군 dp.jpg
참호에서 DP-28을 사격하는 북한군

일본제 기관총들은 북한군보다는 중공군이 참전했을 당시 많은 수가 들고와서 사용했다. 전쟁이 장기화되자, 이들도 소련제로 무장하게 된다.

2.2.4. 중화기/폭발물류

전쟁 후반으로 갈수록 화력이 부족해진 공산당측 군대에게는 박격포의 중요성이 점점 높아졌다.

그나마 수류탄을 지급하는 종류가 통일된 UN군과는 달리 공산당측은 말 그대로 수류탄이라고 이름 붙은 모든 것을 전장에 투입했다. 이유는 수류탄 수량 부족이 주요 원인이었다.

3. 지상병기

3.1. 국군 및 UN

한국전쟁기 국군 및 유엔군의 기갑차량
파일:대한민국 국기(1949-1997).svg
파일:UN기.sv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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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 시기
파일:대한민국 국기(1949-1997).svg 대한민국 국군 / 파일:UN기.svg 유엔군기갑차량
전차 경전차 <colbgcolor=#fff,#1c1d1f>M24 채피, M41 워커 불독
중형전차 M4A1, M4 컴포지트 헐, M4A3 (76) W VVSS, M4A3 (76) W HVSS, A27M 크롬웰, A34 코멧, M26 퍼싱, T-34-85C
돌격전차 M4 (105), M4A3 (105), M4 (105) HVSS, M4A3 (105) HVSS, M4 (105) 셔먼 도저, POA-CWS-H5, M4A3 (105) "포큐파인", M45 중형전차
주력전차 센추리온 Mk.3, M46 패튼, M47 패튼
중전차 A22 처칠 크로커다일, A22 처칠
구난전차 M32 TRV
장갑차 차륜장갑차 M8 그레이하운드, BA-64AC
반궤도 장갑차 M3A1 하프트랙
궤도 장갑차 M39 AUV, M44, M75, 유니버설 캐리어 Mk.I/II
상륙장갑차 LVT-3, LVT(A)-4
구난 및 견인차량 92식 8톤 견인차 니쿠?/IJA/R, M32B1A1, M32B1A2
대전차 자주포 M18 헬캣, M36 GMC, M36B2, M10 GMC, M10 아킬레스, SU-76MC
자주포 M7B1/B2 프리스트, M37 자주곡사포, M40 GMC, M41 고릴라
차량 차량 윌리스 MB, 닷지 M37
트럭 CCKW, 닛산 180IJA, 토요타 BM, GAZ-51C, GAZ-63C, ZIS-150C
자주대공포 M16 MGMC, M19 더스터
※ 윗첨자C: 노획 차량
※ 윗첨자?: 전시 중 사용 여부가 불확실하고 일부 자료에만 등장하는 차량이거나 사용 기록 실증이 되지 않은 차량.
※ 윗첨자IJA: 일제 패망 후 남겨진 차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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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러보기: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한국군 운용무기 · 파일:미국 국기.svg 미군 운용무기· 파일:영국 국기.svg 영국군 운용무기 · 파일:캐나다 자치령 국기(1921-1957).svg 캐나다군 운용무기 · 파일:호주 국기.svg 호주군 운용무기 · 파일:뉴질랜드 국기.svg 뉴질랜드군 운용무기 | 파일:tank_icon__.png 냉전기 기갑차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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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1. 기갑 종류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Sherman-korea.jpg
고지에 마련된 전차호에서 포격지원중인 M4A3E8 전차

전쟁 초반에는 한국군에는 기갑이 없고 미군도 경전차인 M24 채피 정도만 투입 가능해서 북한군의 전차에게 밀렸으나 낙동강 방어선 전투부터는 미군의 중형전차나 중전차도 투입되기 시작하면서 기갑의 열세를 우세로 바꾸게 된다.
파일:external/the.shadock.free.fr/e9suspension27.jpg
6.25 전쟁 시기의 대한민국 국군의 제 51전차대대 소속 미국제 M36B2 GMC 대전차 자주포

3.1.2. 화포 종류

파일:attachment/M101A1_105mm.jpg
전시품이 된 M2A1 105mm 견인곡사포

전쟁 극초반에는 한국군에 M3 105mm 경곡사포가 소량만 있어서 북한군의 포병 화력에게 큰 열세를 맞이하였으나 미군이 자국의 화포들을 많이 가져오기 시작하면서 점점 포병 화력에서도 우세로 바뀌었다. 다만 초기에는 미군에게 지급하기도 모자라서 한국군은 미군의 포병화력 지원을 많이 받아야 했다.

대전차포는 57mm M1 대전차포가 이미 그 당시에는 퇴물로 전락한 것을 모르고 한국군에게 공여하는 바람에 전쟁 극초반에 북한군의 전차에게 밀려버렸다. 그 후에는 육상 대전차 화력의 주력이 슈퍼 바주카나 대전차 자주포나 전차로 이동하면서 견인식 대전차포는 UN군 산하의 영연방군같은 군대가 운영하는 것을 빼고는 전장의 주역에서 물러난다.

3.1.3. 자주포 종류

기존의 견인식 야포 뿐 아니라 자주포도 많이 도입되었다. 사유는 포병 진지가 의외로 습격을 많이 받은 것과 함께 지형 특성상 포병진지가 될 곳이 뻔해서 대포병사격이나 게릴라 공격을 자주 당했던 이유 때문이었다.

3.1.4. 장갑차 계열

파일:M8greyhoundAWM (1).jpg
미군이 운영중인 M8 그레이하운드

장갑차도 상당량이 사용되었다. 특히 M8 그레이하운드는 한국군의 개전 극초반의 기갑전력으로도 활약했다. 그 이후의 장갑차들은 견인, 수송, 정찰, 무전연락등의 다용도로 사용되었다. 그러나 장갑이 얇아서 북한군의 대전차 소총과 소구경 대전차포의 매복에 취약했다.

3.1.5. 자주대공포

자주대공포는 본업인 방공보다는 밀려오는 공산당측 군대를 상대로 대지상 사격을 하는 것이 주요 임무였으며 성과도 많아서 공산당측에서 우선파괴목표로 설정할 정도였다.

3.1.6. 수송차량

6.25 전쟁의 소모전 특성상 많은 양의 물자를 육로로 수송해야 하며 철도 시설도 부족한 관계로 인해 트럭을 포함함 수송차량의 수요가 매우 높았다.

3.2. 공산군

한국전의 북한군 및 인민지원군 기갑차량
파일:북한 국기.svg
파일:중국 국기.sv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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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
조선인민군, 인민지원군기갑차량
전차 경전차 <colbgcolor=#fefefe,#191919>공신호 전차CN, M5A1CN/?
중형전차 T-34-76X, T-34-85, M4A2 (76) WX
중전차 IS-2CN
화염방사전차 OT-34CN
장갑차 BA-64, BTR-40
자주포 SU-76M, LVT(A)-4 (ZiS-2)CN
다연장로켓 카츄샤 다연장로켓
차량 GAZ-51, GAZ-63, GAZ-64, GAZ-AA, ZiS-5, ZiS-6, ZiS-150
모터사이클 M-72
노획 차량 M24 채피, M4A3 (76) W HVSS, A27M 크롬웰NONE, M26 퍼싱, M19 더스터, M41 고릴라, 센추리온, M36 GMC, 옥스포드 캐리어, 와스프 IIC, M46 패튼, M18 헬캣
※ 윗첨자?: 사용 여부가 불확실하고 일부 자료(사진 등)에만 등장하는 차량이거나 증명이 되질 않은 차량
※ 윗첨자CN: 인민지원군이 사용
※ 윗첨자X: 소련에게 공여받은 차량이나 소수 만을 운용
※ 윗첨자NONE 전시 중 전량 유실
}}}}}}}}}


3.2.1. 기갑 종류

파일:external/41.media.tumblr.com/tumblr_nb6the7Qdt1rcoy9ro1_1280.jpg
남침의 선봉에 선 T-34-85
파일:수풀위장SU-76M.png
수풀로 위장을 하고 전진중인 SU-76M
파일:Chinese General He Long passed near a north_korean_T-34-76 model 1942.jpg
중공군이 운용하는 T-34-76
파일:중공군IS-2.jpg
중공군의 IS-2

3.2.2. 화포

파일:attachment/ZiS-3_76mm_ATGun_M1942_0001.png
박물관에 전시된 76mm ZiS-3 사단포

개전 이전에 소련이 북한에게 공여한 화포는 122mm 견인곡사포를 초과하는 중야포는 공여하지 않았지만 그것만으로도 사정거리와 위력에서 한국군의 화포를 압도했고 개전 초반에 북한군의 화력이 더 강했다.

그 이후에 미군의 화포가 대량으로 투입되면서 북한군이 화력에서 밀리기 시작하고 중공군은 중화포를 보유한 것이 거의 없다보니 소구경의 산포나 사단포같은 인력으로 쉽게 운용가능하며 은엄폐가 용이해서 기습적인 사격이 가능한 화포 위주로 포병 화력이 재편된다.

대전차포는 소구경이었지만 UN군 전차와 장갑차의 취약부위를 공격하는 방식으로 나름 유용하게 사용했고 대공포는 대공방어를 위주로 했지만 일부는 지상포격에도 사용했다. 그 대신 반대급부로 UN군의 반격에 많은 희생자가 나기도 했다.

3.2.3. 차량류

파일:e6c2aa22b126f6a5_large.jpg
국군에게 노획된 BA-64 장갑차
이 사진은 확대된 것이다. 헌병 아래에 소련제 M-72 오토바이가 있는데 사진이 잘렸다

개전 초반에 북한군 장갑차와 모터사이클이 투입되었으나 성과가 별로 없었다. 이들은 정찰과 전선 우회 및 급속 전진을 목표로 했지만 한국군과 미군의 방어체제가 빠르게 갖추어져서 도로에서만 활동이 가능하다는 약점 때문에 오히려 보병보다도 돌파력이나 우회력이 떨어진 것이 원인이었다.

공산당측에도 수송차량은 존재했으나 주로 전선에서 먼 곳에서 사용되었다. UN군의 공습에서 살아남기도 어려웠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전선 근방에서의 보급은 인력으로 주로 수행되었다.

4. 해상병기

4.1. 국군 및 UN

파일:아이오와_625전쟁.png
1952년 10월 17일, 전함 BB-61 USS 아이오와가 함포 사격을 하고 있다

4.1.1. 대한민국

개전 당시에는 전력이 매우 부족해서 취약한 상태였으나 미군의 공여가 개시되면서 전력이 확충된다.

4.1.2. 미국

미합중국 해군도 전후 군축의 타격을 받았으나 당장 투입할 수 있는 전력이 많았고 공산당측 해군 전력이 미약해서 제해권을 바로 확립한 후 지상전 지원에 큰 도움을 줄 수 있었다.

4.1.3. 영국

영국과 영연방 및 기타 국가들은 미 해군을 보조하는 역할로 참전했다.

4.1.4. 캐나다

4.1.5. 오스트레일리아

4.1.6. 뉴질랜드

4.1.7. 네덜란드

4.1.8. 프랑스 제4공화국

4.1.9. 태국

4.1.10. 콜롬비아

4.1.11. 일본 (비공식)

미국과 UN군 사령부의 요청에 따라 일본 해상보안청 소속 소해부대가 원산만 일대와 인천항, 청진항 등 한반도 동해/서해 지역의 주요 해역과 항만에서 소해 작전에 참가하였다. 일본의 소해정은 대부분 구일본군의 JMS형 목조 소해정으로 구성되었으며, 54척의 선박에 1200여명의 인원이 동원됐다. 작전 중 19명의 전사자가 발생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다만 일본의 6.25 참전 관련 사안은 물자 지원을 제외하면 한미일 삼국 모두에 의해 철저히 함구됐으며, 이에 따라 물자 지원을 제외한 분야에서 일본의 지원은 비공식 지원으로 취급한다.

4.1.12. 기타 지원

덴마크: 병원선 유틀란디아 호를 의료 지원 목적으로 파견하였다.

4.2. 공산군

파일:external/www.modelarstwookretowe.pl/G-5.jpg
북한군의 G-5급 어뢰정

4.2.1. 북한

기본적으로 해군 전력이 매우 빈약해서 동해안의 북한군 육상전력 상륙작전 같은 지원작전 외에는 제대로 활약하지 못했다. 개전 초반 이후에는 미 해군의 투입으로 인해 해전 분야에서는 밀려버린다. 그 후에는 기뢰 설치나 게릴라 상륙 같은 분야에 주로 종사한다.

4.2.2. 중국과 소련

중국은 기존의 해상 전력 자체가 빈약하고 중화민국도 견제해야 하므로 해군전력을 거의 파견하지 못했고 소련도 해군 전력이 좋은 상태가 아닌데다가 소련 태평양함대의 전력은 더 적어서 전력을 투입할 상황이 아니었다.

그래서 북한에게 어뢰정같은 소형 선박을 공여하거나 기뢰를 보급하거나 기뢰설치 전문가를 투입하는 등의 간접적인 지원을 주로 했다. 그 외에 소련군 잠수함이 몰래 정찰활동을 했다는 이야기도 존재한다.

5. 항공병기

5.1. 국군 및 UN

파일:external/img.donga.com/-1000032483_0.48290500.jpg
한국군의 F-51 머스탱

한국군은 개전 초반에 전투기가 없고 연습기와 연락기 정도만 있어서 북한군의 공습에 대항하지 못했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서 미군에게 프로펠러 전투기를 지원받고 전력을 확충하기 시작한다.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640px-North_American_F86-01.jpg
미군의 F-86 세이버

미합중국 공군은 개전 당시 가장 전력상태가 좋은 편이었고 최신예 전투기도 갖추고 있어서 제공권을 쉽게 잡았다. 나중에 소련제 MiG-15로 인해 북한의 일부 국경지역 공역에 대한 제공권을 일시적으로 상실하기도 했으나 그 이상은 밀리지 않았고 제공권을 다시 확보하기 위한 전투가 계속 진행되었다. 해당 지역 외의 한반도의 대부분의 지역은 미 공군이 제공권을 개전 직후부터 휴전때까지 제대로 잡고 있었다.

5.1.1. 전투기

5.1.2. 폭격기

5.1.3. 공격기

5.1.4. 수송기

5.1.5. 초계기

5.1.6. 관측기

5.1.7. 헬리콥터

파일:1280px-Sikorsky_UH-19B_Chickasaw_USAF.jpg
시코르스키 H-19

헬리콥터가 대량 사용된 전쟁이기도 하다.

5.1.8. 훈련기

5.1.9. 연락기

5.1.10. 기타

5.2. 공산군

파일:external/www.goaviator.com/Yak-91.jpg
남침 극초기 북한군 주력 전투기인 Yak-9

북한군은 개전 극초반에 전투기가 없던 한국군을 압도하고 제공권을 잠깐 잡았지만 곧 미 공군의 철퇴를 맞고 제공권을 상실한 후 사실상 개점휴업 상태에 돌입한다.
파일:MiG-15-Fagot.jpg
전쟁기간 공산군 최신예 전투기인 MiG-15

전쟁 중반 이후에 투입된 MiG-15는 한반도의 중국 국경과 소련 국경 근방의 제공권을 탈환하고 미 공군의 중폭격기를 위협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하지만 수량 부족과 경제적 상황 및 제한전쟁의 특성상 그 정도가 끝이었고 지속적인 미 공군과 미 해군의 제공권 재탈취 시도와 맞서야 했으며 한반도의 대부분 지역에서 미 공군의 제공권이 유지되는 것을 해결하지는 못했다.

5.2.1. 전투기

5.2.2. 공격기

개전 극초반을 빼고는 공격기와 폭격기는 제대로 활약을 못했다. 하지만 Po-2 같은 복엽기가 야간 저고도 폭격을 기습적으로 하면서 미 공군의 신경을 제대로 건드리기도 했다.

5.2.3. 폭격기

5.2.4.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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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우측 관측경을 보고 있는 병사와 좌측 통신병의 경우 소련군 헬멧을 착용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2] 여기에 있는 영상 제 1부의 1분 48초 부분엔 북한군 카츄샤 로켓의 공격장면이 나오고, 2분 48초 부분엔 북한군 모터사이클 부대 옆을 지나가는 카츄샤 로켓포의 모습이 나온다. 중공군과 북한군 모두 이 무기를 운용했다.[3] 미국제 트럭은 2차대전중에 미국이 소련에게 렌드리스로 준 것이다.[4] 애틀랜타급 경순양함 2번함인 CL-52 주노가 아니라 그 후대의 CL-119 주노이다.[5] 인천 상륙작전이 개시되던 날, 더글러스 맥아더 유엔군 사령관이 이 배의 갑판에 머물면서 상륙작전을 총지휘했다.[6] HMS 벨파스트는 1952년 9월 27일 HMS 뉴캐슬과 HMS 버밍엄과 교대하고 영국으로 귀환했다.[7] Aviso. 프랑스 해군의 함급 분류로 슬루프나 콜벳에 대응한다.[8] 납북된 이후에는 각각 31호정(승리호), 32호정(민주호)으로 개명당한 다음 북한 해군 제2위수사령부 관하 3소해정대에 배치되었다.[9] 이 함선도 납북된 이후에는 33호정(해방호)으로 개명당한 다음 북한 해군 제2위수사령부 관하 3소해정대에 배치되었다.[10]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미 육군 중형폭격기였던 B-26 머로더와는 다른 기체이다. 상세는 해당 항목 참고.[11] 남아있는 사진자료 등으로 미루어 1951년 이후 모두 제적된 것으로 추정.[12] 월북자 백흠룡 중사.[13] 월북자 이명호 소위. 조종사였던 박용오 이등상사를 권총으로 협박해 비행기를 북쪽으로 몰고 가 월북했다.[14] 월북자 국영암 소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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