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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color=#fff> 포화속으로 (2010) 71-Into the Fire | |
<colbgcolor=#453e34> 장르 | 전쟁, 드라마 |
감독 | 이재한 |
각본 | 이만희, 김동우, 이재한 |
각색 | 정태원 |
제작 | 정태원, 김종현, 최명기 |
촬영 | 최찬민 |
조명 | 유영종 |
편집 | 최민영, 김창주 |
동시녹음 | 박종근 |
미술 | 최기호 |
음악 | 이동준 |
출연 | 차승원, 권상우, 최승현, 김승우 外 |
제작사 | 태원엔터테인먼트, 롯데쇼핑, 롯데엔터테인먼트, 유비유 필름 |
배급사 | [[대한민국| ]][[틀:국기| ]][[틀:국기| ]] 롯데엔터테인먼트 |
촬영 기간 | 2009년 12월 1일 ~ 2010년 4월 13일 |
개봉일 | 2009년(서울국제청소년영화제) [[대한민국| ]][[틀:국기| ]][[틀:국기| ]] 2010년 6월 16일 |
상영 시간 | 120분 |
월드 박스오피스 | $20,967,660 |
대한민국 총 관객수 | 3,330,326명 (최종) |
스트리밍 | |
국내 등급 | 12세 이상 관람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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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010년 6월 16일에 개봉한 한국영화.6.25 전쟁 당시 조선인민군 육군의 포항 진입을 지연하게 만들었던 대한민국 육군 제3보병사단 소속 학도의용군들의 포항 전투에서의 실화를 소재로 제작된 영화이다. 2010년도 개봉 6.25 전쟁 영화이다.
그리고 인터넷 상에 검색 하면 보이는 실제 참전 하였던 학도병 이우근 학도병[1] 이 적은 학도병의 편지의 전투 상황 배경인 바로 그 전투이다.[2]
2. 예고편
3. 시놉시스
6월, 그들을 기억하라! 낙동강 사수를 위한 최후전선 이곳을 지키지 못하면 가족도, 고향도, 조국도 사라진다! 1950년 6월 25일 새벽 4시.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한국 전쟁이 시작된다. 압도적인 화력으로 무장한 북한군은 파죽지세로 남쪽으로 진격을 거듭하고, 남한군의 패색은 짙어져만 간다. 전 세계가 제 3차대전의 공포에 휩싸이자 UN은 엄청난 수의 연합군을 대한민국에 파병할 것을 결정한다. 이미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는 남측은 연합군의 도착을 기다리며 낙동강 사수에 모든 것을 내걸고 남은 전력을 그곳으로 총집결 시킨다. “지금부터 이곳은 학도병 제군이 맡는다. 우리 3사단은 낙동강전선에 투입된다.” “우리보고 여를 지키라는 겁니까? 우리끼리만요?” 포항을 지키던 강석대(김승우)의 부대도 낙동강을 사수하기 위해 집결하라는 명령을 받는다. 하지만 이제 전선의 최전방이 되어버린 포항을 비워둘 수는 없는 상황. 강석대는 어쩔 수 없이 총 한 번 제대로 잡아 본 적 없는 71명의 학도병을 그곳에 남겨두고 떠난다. 유일하게 전투에 따라가 본 적이 있다는 이유로 장범(최승현)이 중대장으로 임명되지만, 소년원에 끌려가는 대신 전쟁터에 자원한 갑조(권상우) 무리는 대놓고 장범을 무시한다. 총알 한 발씩을 쏴보는 것으로 사격 훈련을 마친 71명의 소년들은 군인들이 모두 떠난 포항에서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 지 모른 채 석대의 부대가 다시 돌아오기만을 기다린다. “부산은 이 박무랑이가 제일 먼저 접수합네다. 766 부대는 포항으로 진격한다!” 영덕 지역을 초토화 시킨 북한군 진격 대장 박무랑(차승원)이 이끄는 인민군 766 유격대는 낙동강으로 향하라는 당의 지시를 무시하고 비밀리에 포항으로 방향을 튼다. 영덕에서 포항을 거쳐 최단 시간 내에 최후의 목적지인 부산을 함락시키겠다는 전략. 박무랑의 부대는 삽시간에 포항에 입성하고, 국군사령부가 있던 포항여중에 남아있던 71명의 소년들은 한밤중 암흑 속을 뚫고 들려오는 소리에 잠을 깬다. 고요함이 감돌던 포항에는 이제 거대한 전운이 덮쳐 오고, 낙동강 전선에 투입된 강석대 대위는 학도병들을 걱정할 틈도 없이 시시각각 모여드는 인민군 부대와 맞서야 하는데… |
4. 등장인물
4.1. 주요 인물
박무랑 (차승원 扮) |
구갑조 (권상우 扮) |
오장범 (최승현 扮) |
강석대 (김승우 扮) |
4.2. 기타 인물
용만 (김혜성 扮) |
달영 (신현탁 扮) |
용배 (문재원 扮) |
재선 (김동범 扮) |
풍천 (김윤성 扮) |
왕표 (탁트인 扮) |
창우 (윤승훈 扮) |
병태 (김호원 扮) |
- 리안남 (라경덕 扮)[10]
박무랑이 소속된 766부대의 정치위원으로 계급은 대위. 영화 내내 박무랑과 대립하는 역할로 높으신 분들인 당의 지시를 어기고 자신의 고집대로 포항으로 진격해야 된다는 박무랑에게 큰 불만을 가지고 있으며 최종결전 당시 남조선 학생들이 어떻게 총폭탄을 쏘냐며 열폭하여 박무랑에게 크게 항의하는 등 으르렁대는 모습을 보였다. 결국 이것이 눈엣가시가 되어서 박무랑에게 사살 당해버린다.
4.3. 특별 출연
화란 (박진희 扮) |
5. 사운드트랙
2010년 5월 20일에 남성 듀오 보컬 그룹 디셈버가 노래 부른 ' 포화 속으로 ' 영화 OST ' Once Upon A Time ' 음원이 발표 되었다.6. 평가
★★ 뉴라이트 역사관에 빛나는 150억원짜리 반공영화 - 황진미 ★ 전쟁 장르의 진화와 시대정신에 모두 역행한다. - 이용철 ★☆ 갓 제대한 학도병들이 만든 영화 같다. - 이동진 ★★ 겉멋 속으로 - 박평식 ★★ 총 들고 탱크를 탄 감독의 심정 - 강병진 |
전투 장면이나 색감 등 영상미도 준수한 편이고, 일단 세트와 캐스팅, 전투 묘사 등은 나름대로 신경 쓴 티가 역력하고 소재 자체도 잘만 엮어낸다면 괜찮은 내용이었다. 다만 소재가 소재여서 신파물 혹은 반공물로 보일 여지가 많고, 소재에 비해 고증, 시나리오를 잘 엮지 못해서 적지 않게 지적을 받았다.
6.1. 연기력
일단 캐스팅은 절반의 성공이라고 할 수 있다. 유명 아이돌을 주연 배우로 출연 캐스팅 한 덕에 "전쟁 영화 = 군인들이 단체로 나와서 총 쏘는 영화" 라고 관심 없어 하는 개념없는 젊은 여성 관객층을 영화관으로 나오도록 하여 대거 끌어들일 수 있었다. 2012년에는 네이버 영화 평점이 8.22로 꽤 높은 상태였으며, 이 영화에 평을 매긴 네티즌들의 경우 전쟁 영화 장르 치고는 이례적으로 10대, 여성 관객의 비중이 가장 높았다. 이보다 더 전에 비슷한 수요층을 노렸던 꽃미남 연쇄 테러사건 영화 같은 경우 수요층 마저 외면 했으며 평점도 최악인 것과 비교한다면, 적어도 캐스팅 효과와 그 수요층을 만족 시킬 정도의 기본기는 제대로 잡았다고 할 수 있다. 같은 장르인 고지전 영화가 작품성 자체는 더 괜찮았는데도 이슈를 끌지 못해서 망한 것을 생각해보자.주연 배우 최승현도 기대치 보다 호연이었다는 평가. 비록 연기만 수십 년 해온 전문 배우들 만큼은 아니지만, 아이돌 치고는 준수했다는 평가가 많다. 이 영화로 대종상 영화제에서 한류인기상을, 백상예술대상과 청룡영화제[11]에서 모두 신인연기상과 인기상을 수상했다. 다만 너무 앳된 티가 나서 전쟁 영화의 주인공에 필요한 박력은 다소 부족한 편이었으며, 권상우의 고질적인 발음 문제, 차승원이 개그 전문 배우에서 악역으로 연기를 하며 보인 어색함도 지적 되었다. 특히 박무랑을 연기 한 배우 차승원의 대사 중에 "김일성 장군님에게 승리의 보고를 올리자 !" / "돌격 ~ 앞으로 !" 같은 대사를 들어보면 무자비 한 적군 부대의 대장 특유의 포스가 없고 부족함이 느껴진다.[12]
다만, 주연 배우들의 사투리 연기는 부족한 부분이 많다. 경우에 따라서는 전라도 사투리에 가깝게 들리는 부분도 존재했다.
6.2. 각색 및 소품
일단 무기와 장비 면에서 '전쟁영화스러운' 소품들을 잔뜩 늘어놓긴 했지만 세세하다고 보긴 힘들다. 군데군데 눈에 보이는 허점들이 꽤 있다. 대표적으로 소위 '육공트럭'이라고 부르는 K-511 트럭이 계속 나온다든지, 국군 전차로 M48이 버젓이 등장하고 인민군은 M4 셔먼을 끌고 나오든지, 1970년대 후반에야 출시된 국산 K111 지프차를 국군이 몰고 다니고, 인민군인 박무랑은 미국의 윌리스 MB[13]를 타고 다니는 것이 대표적. "학도병이 M1 개런드를 실탄까지 두둑하게 챙기고 있다는 점도 어색하다. 실제 학도병은 일제가 남기고 간 아리사카 소총을 쓰는 게 일반적 이었기 때문"이라는 주장도 있었으나 실제 생존자의 증언에 따르면 전원 M1 소총을 지급 받고 실탄 250발을 지급받았다.[14] 좀 더 세부적으로 들어가서 보면 가령 북한 육군 보병군관인 박무랑이 전장에서 하얀 제복[15]을 입고 있고[16], 당시 기준에서 엘리트[17]인 |학도병들 사이에 문제아인 구갑조 패거리 3명을 설정한 것도 지적되었다.[18] 다만 맥락상 구갑조(권상우) 일행은 실제로는 학생이 아니었고 학생모만 착용한 학생을 사칭한 사람들이었다. 이는 실제로 우리나라 1970년대까지도 많이 있었던 풍습이다. 학교에서 공부하는 학생이 부러워 학생모나 교복 일부를 착용하고 다니던 청소년 노동자들이 많았다.영화가 '사실의 재현'보다는 단순히 포항에서 학도병들이 죽을 때까지 항전했다는 모티브만 참고하여 각색했다고 할 수도 있지만, 어쨌든 포항여자중학교 전투가 대대적으로 홍보되었고, 영상 크레딧에 실제 참전 생존자들이 나왔지만, 실제 포항여자중학교 전투와는 차이나는 점도 적지 않으며, 이 탓에 고증 오류라는 지적을 받기도 했다.
- 일단 소년원이 싫어서 지원한 학도병은 실제로는 없다. 학도병은 당시 기준으로 엘리트 자원[19]이었고 포항여중 전투에 참여한 71명은 김석원의 수도사단에 소속되어 안동지구 전투에 참전 한 수백 명의 학도병 중 일부로, 김석원이 3사단장으로 전임되며 자유롭게 행동해도 좋다는(집에 가도 좋다는) 지시를 내렸음에도 자신들을 처음 받아준 김석원 밑에서 싸우기 위해 포항까지 찾아갔다. 즉, 모두 실전 경험이 있었다.
- 영화에서는 고교생으로 묘사되었으나, 최승현이 연기 한 학도병 중대장 오장범의 모티브 모델은 김용섭으로 서울대학교 2학년이었고, 제2소대장 김일호는 중앙대학교 2학년, 신원이 확인된 대원(생존자 및 전사자 포함 36명) 중 서울대 2명, 중앙대 4명, 국민대 1명 교통학교 3명 등, 확인된 대학생 수만 10명이 넘었다.[20][21] 단, 1소대장 유명욱은 배재중학교 6학년으로(오늘날 고3) 대학생들이 포함된 소대원들을 지휘했다. 물론 당시엔 늦은 나이에 학업을 시작한 만학도가 많았으므로 나이가 많은 만학도일 가능성도 있다.
- 영화 속 학도병들은 모두 경상도 사투리로 말하며 포항 현지에서 모인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전국 각지에서 모인 대학생이 10명이고 성남중학교(서울), 태백중학교 2명(강원), 한양중학교(서울), 동성중학교(서울), 배재중학교 2명(서울), 청주중학교(충북), 신흥중학교(전북), 부평중학교(인천), 대구중학교(경북), 대구상업학교(경북), 성광중학교(경북), 영신중학교(경북) 등 전국에서 모인 학생들이었다. 특히, 학도병 중 성남중학교 학생이 있는데 성남중은 전쟁 직전까지 사단장 김석원이 교장으로 있던 학교로 교장 선생 지휘하에 싸우겠다고 찾아온 제자이기도 하다.
- 학도병들은 간부(중대장과 소대장, 연락병)를 투표로 선출했으며[22] 집총 훈련과 총기 수입까지 모두 자체적으로 수행했다. 즉, 이 영화는 집에 갈 기회가 있었음에도 조국을 위해 무기를 잡은 실존했었던 의로운 학도병들과 다르게 영화에서는 아무 전투 참전 경험이 없는 오합지졸 순진한 학생들, 영화 한정으로 탕아 캐릭터인 구갑조라는 가상의 인물 출현이 사실적으로 표현, 연출하지 못 했다는 것이다.
어째 실화가 더 감동적이냐 - 포항은 낙동강 방어선에 포함되기 때문에 3사단은 포항에 계속 주둔해 있었다. 즉, 3사단이 다른 방어선으로 떠나고 포항을 순전히 학도의용군만으로 지킨 것은 아니었다. 단지 포항여중 전투가 벌어지는 시점에서 3사단은 해안에 포위되어 기동할 수가 없었고 따라서 학도병들은 스스로의 힘으로 분투해야 했다. 실제로 3사단은 부산시에 창설되었으며, 전쟁 발발 당시에 3사단은 영남 지역에서 빨치산 토벌에 투입 되었다 6.25전쟁이 발발하자 영덕, 포항에 전투를 벌였다. 그 이후 알다시피 강원도 양양에서 38선을 UN군 최초로 돌파하게 된다.
- 포항여중 전투 당시 학도의용군들은 훈련과 총기 수입을 마치고 잠들었다가 새벽 4시 반쯤에 갑작스러운 총성을 듣고 급히 전투에 나섰다.
- 학도의용군 71명 외에 소수의 군악대원들이 남아서 함께 싸웠다. 일부가 생존한 학도병들과 달리 이들은 전멸한다.
- 영화에서는 차승원이 연기한 북한군 장교 박무랑이 부대의 통솔권을 틀어 쥔 것으로 묘사되지만 실제로는 그보다 더 높으신 분들 지시에 따라야 했다. 박무랑의 설정 계급은 소좌, 직책은 대대장이다. 대대장정도면 부하가 500명뿐으로, 당시 북한군 기준으로는 중급 지휘관에 속한다.
- 포항전투 시점은 낮이 아니라 새벽이었다.
- 작중 묘사 되는 북한군의 화력이 너무 우월하다.[23]
- 실제 포항전투는 탄약도 수류탄도 다 떨어진 학도병들이 날아오는 북한 인민군이 던진 수류탄을 도로 집어던지고 총검으로 총알을 상대하는 혈전으로 치달았으나, 영화에서는 끝까지 실탄이 남아돌았다.
- 영화에서는 전멸한 것으로 나오지만 실제로는 전사 48명, 부상 6명, 실종 4명, 포로 13명, 생존 10명이었다. 영화에서는 스탭 롤이 올라갈 때 생존자 인터뷰가 나온다. 48명의 전사자들 중 10명의 신원만이 확인되었고 이들은 포항여중 앞에 임시로 가매장되었다 1963년 국무회의에서 국립묘지 이장이 결의되었으며 1968년 국립현충원의 학도의용군 무명용사탑의 석함에 안치되었다.
- 전투에서 패하고 포로로 잡힌 학도병 13명은 미군 항공기의 공습을 틈타 근처 콩밭으로 달아나 빠져나왔으나 이들 중 2명은 끝내 돌아오지 못했다.
- 참고로 북한 766유격대는 실제론 시체로 산을 쌓을 정도로 전멸하지 않은 채 물러나 영천·신녕전투 보현산에서 유격전을 벌였다.
- 영화에서 나오는 북한군 전차가 전부 M4 셔먼, 즉, 미국 전차다. 그런데 6.25전쟁 당시의 북한군 전차는 소련제 T-34, 또는 T-34-85 전차였다. 파죽지세로 내려오며 노획한 물건으로 생각할 수도 있지만 실제 포항여중 전투는 유엔군이 참전하기 이전이었다. 다만 전부 셔먼은 아니고 시가전에서 유심히 보면 M48 패튼 전차도 나온다. 셔먼은 중국 국민당군에게 렌드리스로 보내줬으니 고증에는 부합하지 않으나 설정상 끼어넣기로 가능은 하다.
- 극중 자신의 신장 보다 길고 큰 파파샤 기관단총을 들고 주인공 2명과 대치하는 북한군 소속의 소년병[24]이 출연 하는데 실제로 포항여중 전투 중 북한군 소속의 소년병이 참전했는지 알 수 없지만 이는 전쟁 중 양쪽의 군대에서 한 명의 인원이라도 더 필요해서 소년병까지 동원해야 했던[사실] 절박한 양측의 상황과 전쟁에 놓여진 어린이와 청소년, 한 사상에 대한 맹목적인 충성의 광기를 여과없이 보여주기 위함으로 보인다. #
6.3. 연출력
가장 크게 지적 받은 것은 사실 다른 요소보다도 감독의 전작 내 머리속의 지우개에서도 엿보인 고질적인 최루성 전개다. 심지어 1970년대 반공 영화에서도 보기 어려울 정도의 신파성이 문제인데, 그 결과 배우들의 역할은 스테레오 타입으로 너무 뻔해졌고[26], 각각의 캐릭터에 감정 이입할 틈을 주지 않고 픽픽 죽어나가게 만들어 비극성을 너무 강조했다. 이런 요소는 일부 관객들에게는 의외로 감동 깊게 받아 들여진 듯하나[27] 이런 연출의 진부함은 아주 닳고 닳은 뻔한 클리셰라 할 수 있는 겉멋만 잔뜩 들어있는 사고뭉치 주인공이 온갖 민폐를 일으키다가, 어떠한 계기로 각성하게 되며 혼자 무쌍을 찍는 구갑조가 절정에 달했고, 클라이맥스인 학교 건물 옥상에서 오장범과 구갑조 둘이서 총을 마구 쏘아 죽인 북한 인민군들의 시체가 줄줄이 쌓이는 장면에서는 다른 학도병들은 허무 하게 다 전사 한 상황에서 비현실적으로 느끼게 하기도 한다. 상대적으로 군대를 경험한 남성 관객들에게서는 가뜩이나 총 든 남성 학도병들이 출현 하는 영화가 시종 뻔하고 신파적인 전개로 일관하는 탓에 그다지 좋은 평가를 받지 못 했다. 즉 작품의 전개를 감동으로 받아들이느냐, 억지감동으로 받아들이느냐 따라서 작품의 평이 극과 극을 오간다.초반에 총도 벌벌거리면서 들던 주인공 오장범이 마지막의 학교 옥상 전투에서는 총을 마구 쏘아 죽인 북한 인민군들의 시체가 줄줄이 쌓일 정도로 무쌍을 찍었다. 이건 영화가 진행 될수록 오장범의 실력이 점차 성장 했다고 넘길 수도 있지만 북한 인민군도 남한에 내려오면서 수십 번 전투를 하면서 내려온 군대이다. 이러한 점들을 보면 알 듯이 감독과 제작자들이 전쟁에 대해서 얼마나 만만하고 쉽게 보는지 알 수 있다.
특히나 후반부에서 다른 학도병들은 전원 다 사망하고 오장범과 구갑조는 총을 마구 쏘아 죽은 북한 인민군들의 시체가 줄줄이 쌓일 정도의 주인공 버프인 듯 한 장면은 영화의 분위기나 주제 의식이나 아무런 도움이 안 된다. 이 영화가 반공물로서의 가치도 없다는 것을 증명 하는 부분인데, 조국을 위해 총을 든 학생들의 숭고한 희생과 비장함, 장렬한 죽음과 그런 희생을 만들고, 순진한 미성년 학생들에게 살인을 강요 하는 전쟁의 참혹함[28] 같은 누구나 생각 할 법한 주제 의식보다 주인공 둘이 비현실적으로 활약하는 장면 연출이 지적된다.
비유를 하자면 5.18 민주화운동을 주제로 화려한 휴가 같은 영화를 만들었는데, 마지막 장면에서 주연 둘이서 기관총을 들고 계엄군의 시체를 쌓으며 무쌍을 찍는 영화를 만들었다고 치자. 과연 이 영화가 좋은 소리를 듣겠는가? 예시로 든 영화 화려한 휴가도 실제 역사보다 시민군이 지나치게 공격적으로 나온다는 비판을 들었는데, 이 영화 또한 학도병들을 지나치게 공격적으로 묘사하여 역사를 왜곡하고 실존했던 학도병들의 희생을 격하 하는 꼴이다.
7. 흥행
제작비가 113억 정도인데, 333만 명의 관객을 모아 평타 이상은 쳤다. 관객 동원 속도를 보면 개봉 첫 주 만에 100만을 찍고 20일 만에 250만을 찍는 등 초반부터 관객 동원이 좋았고 실제로 관객 300만 돌파는 개봉 1개월도 안된 7월 12일에 이뤄졌으니 일단 첫 한 달 사이에는 분명히 흥행을 했다. 다만 그 해 여름에 딱히 강력한 경쟁작이 없었고 거대 배급사인 롯데엔터테인먼트의 막강한 입김 덕에 무려 3개월이나 개봉을 끌었는데[29], 초반 이슈성에 비해 지속적인 관객 동원력이 못 따라준 탓인지 뒤로 가면서 첫 한 달 간의 기세에 비해 큰 흥행력을 보여주지 못했다. 그래도 초반의 기세 덕택에 최소한 손익 분기점은 넘긴 것으로 확인되었다.관련 기사미국에서는 의외로 꽤 호평을 받았다.시사회 분위기맥스무비 기사 워싱턴 포스트 30주년을 맞는 하와이 국제영화제에서 폐막작으로 선정되기도. 관련 기사
미국 수익은 17만 6,638달러. 할리우드 특성 상 해외 영화의 상영관 자체가 적었던 것을 감안하면 나쁘진 않았으나 태극기 휘날리며 영화가 미국에서 개봉하여 111만 달러를 벌어 들인 것에 견주면 아무래도 상당히 아쉬운 편.
일본에서는 전화 속으로(戦火の中へ)라는 타이틀로 상영 되었으며, 방영 전 6.25 전쟁의 학도병을 주제로 특집 방송을 방영 하기도 했다.
8. 논란
8.1. 진영 논리
개봉 도중에는 좌우 진영 간에 음모론이 난무하며 병림픽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는 영화의 소재 자체가 좌파 쪽에서는 까고 우파 쪽에서는 마음에 들어할 수밖에 없는 아주 민감한 성격인 탓도 컸다. 일례로 진보 측 영화 평론가 황진미의 경우 뜬금 없이 북한의 남침 사실까지 애써 희석 시키며 남침유도설이 유력하다는 심히 괴이한 논지의 평론[30]을 썼으며, 한편으로는 우파들이 표를 강매해서 억지로 관객 수를 늘렸다는 주장도 제기되었다. 반면 우파 쪽에서는 오히려 좌파 쪽에서 관람을 방해하고 악의적인 소문을 낸다며 역으로 항의했다. 이런 종류의 논란은 소재가 소재인 이상 작품성과 상관없이 벌어질 수밖에 없다고 할 수 있다.또 한편으로 좌파측에서는 이 영화가 뉴라이트 사관, 심지어 MB국책 영화라는 평가까지 얹으며 수꼴이라고 욕하는 반응도 나왔고, 반대로 우파측에서는 영화의 묘사가 국군의 치부를 드러내고 북한군을 미화한 느낌이 든다고 좌빨이라면서 욕하는 반응도 있었다.
사실 따지고 보면 이 영화가 국군이라고 긍정적인 모습만 보여주는 것은 아니고 오히려 한심한 지휘 체계나[31] 학도병들을 총알받이로 내모는 등의 흑역사도 꽤 묘사하는 편이며, 마찬가지로 북한 인민군 쪽도 배우 차승원이 연기한 악역인 북한 인민군 대장 박무랑이 너무 멋지게 묘사 되기는 하지만 그에 대응 하는 상찌질이 정치장교가 출현하고 결국 프래깅 당하는 등 이런 쪽으로도 고증에 충실한 편이다.
그리고 진영 논리에 매몰되어 뒷전으로 밀려난 본질이 있는데, 바로 이 영화의 주제인 학도병은 21세기 시점에서 냉정하게 보면 전쟁 범죄의 폐해 중 하나인 소년병이다. 그런데 좌우를 가리는 이념 논쟁 때문에 결과적으로는 소년병을 미화한다는 비판이 안 나왔다. 이러한 이념 음모론을 걷어내고 생각해 보면 흥행에 가장 중요한 공을 세운 것은 단연 주연 배우들의 팬인 10-20대 여성들이다. 실제로 네이버 영화에 가보면 높은 평점을 매긴 상당수가 그쪽 관객들[32]이며, 지금까지도 꾸준히 평이 올라오고 평점이 오르고 있다는 것을 생각 한다면 단순히 노이즈 마케팅이나 인위적인 압력만 갖고 관객이 들었던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그리고 영화 외적으로 해외 시사회에서 빚어진 일본해 논란이나 권상우의 사고와 같은 악재까지 있었던 것을 감안하면 외적인 조건은 호재보다 악재가 더 컸고, 그에 비해서는 확실히 선전한 셈이다. 일본해 논란의 경우 청연의 쪽박을 봐도 알 수 있듯이 매우 민감한 사안이며[33] 권상우와 관련 해서도 흥행에 치명적 타격이 될 만큼 매우 불미한 사건이었다. 한마디로 메가톤급 악재였다는 것. 그럼에도 개봉 1개월이 못되어 300만 이상이라는 성적을 거뒀다는 것을 보면 이것이 그렇게 치명적인 타격은 아니었다고 할 수 있다. 물론 그것과는 별개로 영화에 대한 비호의적인 여론에 적잖이 영향을 끼쳤고 제작사 측에서도 고생이 심했겠지만.
9. 기타
- 전쟁 영화인지라 군부대에서도 종종 시청하게 한다.[34]
- 본 영화와 고지전 영화 이후 애국 색채가 강했던 영화의 제작이 시들해졌고, 제2연평해전을 다룬 영화도 기획에 들어갔으나 흥행 여부가 불확실해서 무산될 뻔하다가도 배급사와 투자사를 여러 번 교체하며 실제로 제작에 들어간 경우가 있을만큼 현재 대세인 장르는 아니다. 물론 2012년 비슷한 장르의 R2B: 리턴 투 베이스가 개봉하였지만 진일보한 볼거리에 비해 개연성의 부실함으로 인해 참패하면서 현재 애국 색채의 밀리터리 영화가 탄력을 잃은 면이 없지않아 있다.
- 영화 음악은 은행나무 침대, 유령, 퇴마록, 지구를 지켜라!, 쉬리, 7번방의 선물, 태극기 휘날리며 영화 등으로 알려진 이동준이 작곡 하였지만, 포화속으로 영화 음악은 그다지 알려지지 못 했다.
- 박무랑을 연기한 주연 배우 차승원은 포화속으로 영화 출연 때문에 KBS 2TV 공부의 신 캐스팅 제의를 거절했다.
- 성우 신경선이 학도병 단역으로 나왔다고 한다.
- 강석대가 폭발 속에서 유유히 걸어나오는 모습이 '쿨가이는 폭발을 보지 않는다' 라는 밈으로 널리퍼졌다.
- 이 영화에서 3사단장으로 출연 한 배우 조원희는 그 이전에 태극기 휘날리며 영화에서 주인공 형제 이진태, 이진석이 소속된 대대의 대대장으로 출연 했고, 인천 상륙 작전 영화에서는 서울지역사령관으로 출연하였다.
- 차승원이 김승우한테 두번째로 당했는데 첫번째는 라이터를 켜라에서 기차를 전복시키고 다같이 죽으려고 했는데 김승우의 박치기로 저지당했다.
[1] 당시 서울 동성중학교 3학년. 천주교 서울대교구 이문근 사도 요한 신부의 동생.[2] 1970년대 동일한 소재로 영화가 만들어졌는데 이 작품 같은 신파적인 내용보다는 마초적 느낌이 물씬 풍겨오는 영화였다. 당시 한국 육군 장교 역은 신성일. 그리고 실제 전투 기록은 제3보병사단에서 보관 중이다.[3] 옥상에서 최후의 항전을 할 때 원래는 DP-28 기관총을 어깨에 둘러메고 쐈으나, 장전이 어려운지라 "장범아, 탄좀 끼도!" 라고 간청한 후에 맥심 기관총이 설치된 곳으로 뛰어가서 북한군들에게 난사하며 몰살시킨다.[4] 학생들이 필기구가 아닌 총을 쥐고 전투를 벌이는 사태에 대한 심정.[5] 심지어 격발하지도 못한다. 지나가던 다른 아군이 인민군을 쏘아 죽이고 얼빠져 있는 오장범을 보고 총을 겨눴다가 아군인 것을 확인하고 지나쳐 간다.[6] 함께 참전했던 학도병 두 명이 작중에서는 오장범보다 더 강해보이는데 왜 오장범에게 중대장을 맡기고 그들에게는 소대장을 맡겼는지는 의문이다. 그냥 주인공 보정일 수도 있고 강석대 입장에서는 오장범에게 부드러운 카리스마와 차분함이 있어 보여서 오히려 더 리더로 적합하다고 느꼈을 수도 있다. 강석대가 학도병들에게 학교를 맡기고 떠날 때에도 오장범이 자신은 골목대장 한 번도 못해봤으니 중대장은 못하겠다고 하지만 강석대가 마음으로 이끌고 진심이 우러나오면 다들 널 따를 거라고 내면적 부분을 고려한 듯한 독려를 한다. 그리고 작중 앞부분에 나온 전투신은 워낙 짧은 데다가 특별히 설정이 나오지 않아서 알 수 없지만 오장범이 더 약해보여도 전투 경험은 더 많을 수도 있다. 앞의 전투신에서도 강석대가 오장범에게 옥상에서 기관총을 맡은 군인들에게 많은 탄약들을 갖다주라는 중요한 일을 맡기기도 했다.[7] 장전이 어렵기로 유명한 DP-28 기관총을 쉽게 장전을 마친 후 바로 들고 쏘는 무쌍을 선보였다.[8] 동생을 자신의 손으로 죽일 수 밖에 없었던 잔혹한 현실과 절망적인 상황에서 동생을 죽인 시점부터 이미 동생을 따라가려고 희생을 결심한 듯 하다.[9] 옥상 위로 올라가는 데 성공했더라면 이 3명의 학도병들은 강석대 대위가 올 때까지 생존할 확률이 조금 더 높았다. 당장 구갑조와 오장범이 옥상에서 기관총으로 북한군을 대다수 몰살시킨 것을 감안하면 말이다.[10] 1990년부터 영화배우로 활동하기 시작하였고 1999년에 쉬리에서 폭발물 해체반 특공대원 역을 맡기도 했다.[11] 청룡영화제는 후원사 중 조선일보가 있어서 주최 측 구미에 맞는 선정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됐다. 하지만 국내 빅3 영화제 모두 노미네이트되고 수상 이력까지 얻었다는 것을 보면 청룡영화제만 유독 선정 기준이 특별하다고 보기는 어렵다. 청룡영화제가 의혹처럼 진짜로 이 영화를 편애 했다면 다른 상도 왕창 안겨줬어야 하지만 실제로는 이 외에 감독상이나 기술상과 같은 다른 부문의 상은 일절 주지 않았다.[12] 차승원은 이전에 영화 리베라 메에서 한번 악역을 한 적이 있다. 이 때는 어렸을 때 중범죄를 저질러서 징역 12년을 살았기 때문에 세상에 대한 불만으로 연쇄 방화를 저지르는 방화범 역할로 등장해서 어느 정도 성공 했지만 이 영화에서는 아니었다. 영화 도입부의 국군 부대를 이기고 도시를 점령하는 부분에서는 나름 카리스마가 넘치지만 그 후에는 포스보다는 오버하는 듯한 느낌이 좀 더 난다.[13] 태극기 휘날리며 영화 제작진이 제작한 영화용 장비로 보인다.[14] 실탄 250발은 자동소총이 일반화된 오늘날에도 상당히 많은 휴대량이다. 오늘날 국군도 140발 + 280발로 보급 받는다.[15] 해군외의 군종에선 예복이다. 즉, 전쟁터 한복판이 아닌 비전투시의 행사나 열병식에서 입을 수 있는 옷이라는 것. 그나마 상의는 영화에서의 용도가 고증과 다를지언정 형태는 고증에 맞으나, 흰색 일자 바지는 아예 존재하지도 않았던 복식이다. 영화상에서 박무랑은 부츠를 착용하고 흰색 일자 바지를 입고 있는데, 6.25전쟁 당시 좌관급 군관은 부츠를 착용했을 때, 하의로는 군청색 승마 바지나 황색 승마 바지만을 착의했었다. 그냥 메인빌런이니만큼 차별을 둔 것으로 보인다.[16] 영화에서 차승원이 연기한 박무랑의 모티브가 된 실제 인물은 실제 김일성이 항일운동할 때부터 따라다닌 오른팔 오진우이다.[17] 대학은 고사하고 중고등학교 진학률조차 매우 낮았던 시절로 고등학생만 되어도 그 당시에는 지식인정도가 아니라 굉장한 인텔리들이었다. 작중 배경이 되는 6.25전쟁 이후 세대만 해도 대학은 물론 고등학교 진학률도 낮았으며, 요즘처럼 청소년들이 고등학교에 진학하는 것이 당연해진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정규 장교 양성 기관인 육군사관학교는 아직 4년제 학제조차 자리잡기 전이었다. 이 때문에 전쟁 중에 급히 간부후보생을 징발 했는데 고교생 이상은 갑종간부후보생, 장교 자원으로 분류했고 중학교 졸업 까지는 을종으로 하사관 자원으로 분류했다.[18] 다만 당시 고등학생들이 대단한 엘리트들이었음에도 상당수가 소박하고 털털해보이는 시골 소년들처럼 묘사한 측면이 너무 강하다는 것도 다소 어색할 수 있다.[19] 해방 직후 기준으로 한국의 문맹률이 무려 70%에 달했으며, 이는 실제 전국민 70%가 문맹이었다는 점보단, 일제강점기 때 한글 교육을 불법화하고 일본어를 가르쳤는데, 8.15 광복 후 한국어와 한글이 공용어로 지정되어 문맹률이 높게 잡힌 이유도 된다. 전후에도 고등학교 진학률이 현재처럼 상승하는 데에는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이렇다보니 고등학교 졸업생은 현재의 대학교 졸업 이상에 해당하는 인텔리였다.[20] 이 당시 대학생은 그 자체가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지위였다. 당시 일반적인 경우라면 중대 내에 대학생 한 두 명이 있을까 말까인데 36명 중 10명이 대학생이라면 엄청난 엘리트 집단이다.[21] 사실 고등학교만 졸업했어도 갑종장교로 소위 임관이 가능했다.[22] 남북 전쟁 무렵의 미군도 간부를 투표로 선출 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고, 17~18세기 카리브해의 해적들도 선장을 투표로 뽑았다. 이는 제대로 조직화 되지 않은 의용군의 경우 흔히 볼 수 있었다.[23] 사실 이건 영화의 효과상 그런 것도 있다. 새벽 시간의 전투를 촬영하기에는 화면상으로 너무 어둡게 나오고, 1970년대 영화도 대낮 전투에 우월한 화력의 북한군이 나왔다. 화력과는 별개로 김일성의 오른팔인 오진우가 연대장을 맡았고 남침 당시 2개 독립여단 중 하나로(105전차여단, 766여단) 운영되었던 점을 보면 단순히 오합지졸의 북한군이 아님을 알 수 있다.[24] 그냥 소년병도 아니고 고등학생인 주인공 두 명 보다 더 어린 소학교 저학년 소년병이다.[사실] 실제로도 당시 북한은 남한의 절반도 안 되는 인구로 인한 만성적인 병력 재원 부족에 시달렸다. 남침했을 당시 20만도 소련의 반대를 무릅쓰며 청년층 징집 및 국경경비대 등 비정규군을 규합했던 숫자였으며[35], 실제로도 병력 소모를 견디지 못해 낙동강 전선에서 상당수가 남한에서 강제징용된 의용군이었다가 인천 상륙 작전 이후 완전히 붕괴되었다.[26] 예외적으로 차승원이 연기 한 박무랑이 꽤 입체적인 모습을 보여주었지만.[27] 배우들의 열혈 팬들이 분포한 젊은 팬덤층에서는 꽤 고평가되는 듯.[28] 내지는 북한의 기습 남침의 부당함.[29] 물론 상영 기간과 별개로 상영관 수는 차츰 줄었다.[30] 그렇다고 소위 진보 쪽이 이 평론을 좋아했느냐, 그건 또 아니다. 전제가 된 남침 유도설이 개드립이기도 하고, 황진미의 영화 평이나 평론은 굳이 좌우를 가릴 필요 없이 영화 팬들에게 전방위적으로 까이는 편이다. 좋게 말하면 자기 주관이 매우 뚜렷하고, 나쁘게 얘기하면 영화와 관련 없는 괴이한 개드립(이를테면 라스트 갓파더의 평에 북한과 재벌의 세습을 운운하든지), 과도한 정치 드립과 페미니즘식 해석 등이 심하기 때문. 이 평론은 황진미 개인과 더불어 검토에 소홀했던 한겨레21의 문제도 크다.[31] 이 탓에 지원군이 제때 증원되지 않아 주인공들을 죽음으로 몰아넣는다.[32] 게다가 이들은 자연히 자신의 커플이나 지인인 남성 관객들이 동행하게 하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매표력(티켓 파워)이 높다. 프로 스포츠 팬의 경우도 마찬가지. 남친을 데려오거나, 좀더 나이가 들면 자기 아이를 데려오거나.[33] 다만 청연의 경우 일본해보다는 주인공의 친일 행적 논란이 결정적이었다.[34] 2010년 여름 육군3사관학교 후보생 과정 예비장교들은 단체 관람을 했고, 2010년 추석 때는 모 사단 포병대대에서는 정훈장교가 애들이 심심할 거 같아서 보여준 적도 있었다. 2012년경에는 논산 육군훈련소에서는 훈련병 상대로 단체 관람을 시켜줬다. 물론 이때도 학생 무쌍 장면과, 수많은 정규 국군을 상대로 승리한 정예병이라던 북한 인민군이 자살에 가까운 전방 주시도 안 하는 돌격으로 학교 건물 옥상에 돌입에 총을 맞고 죽는 장면 때문에 훈련병들 사이에서 평가가 좋지 못했다. 포화속으로 영화 최후반부에서의 연출 장면에 죽은 북한 인민군들의 줄줄이 쌓여진 시체를 보고 어이가 없어 웃어도 조교가 제지를 안 할 정도. 이제 와서 금지되었다면 하극상보다는 이런 비현실적 면모 때문일 가능성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