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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화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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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하십시오.
<colcolor=#fff> 포화속으로 (2010)
71-Into the Fire
파일:image_readtop_2010_244860_1273668421272613.jpg
<colbgcolor=#453e34> 장르 전쟁, 드라마
감독 이재한
각본 이만희, 김동우, 이재한
각색 정태원
제작 정태원, 김종현, 최명기
촬영 최찬민
조명 유영종
편집 최민영, 김창주
동시녹음 박종근
미술 최기호
음악 이동준
출연 차승원, 권상우, 최승현, 김승우
제작사 태원엔터테인먼트롯데쇼핑, 롯데엔터테인먼트, 유비유 필름
배급사
[[대한민국|]][[틀:국기|]][[틀:국기|]] 롯데엔터테인먼트
촬영 기간 2009년 12월 1일 ~ 2010년 4월 13일
개봉일 2009년(서울국제청소년영화제)

[[대한민국|]][[틀:국기|]][[틀:국기|]] 2010년 6월 16일
상영 시간 120분
월드 박스오피스 $20,967,660
대한민국 총 관객수 3,330,326명 (최종)
스트리밍 파일:TVING 로고.svg
파일:wavve 로고.svg
파일:왓챠 로고.svg
국내 등급 파일:영등위_12세이상_초기.svg 12세 이상 관람가

1. 개요2. 예고편3. 시놉시스4. 등장인물
4.1. 주요 인물4.2. 기타 인물4.3. 특별 출연
5. 사운드트랙6. 평가
6.1. 연기력6.2. 각색 및 소품6.3. 연출력
7. 흥행8. 논란
8.1. 진영 논리
9. 기타

[clearfix]

1. 개요

2010년 6월 16일에 개봉한 한국영화.

6.25 전쟁 당시 조선인민군 육군포항 진입을 지연하게 만들었던 대한민국 육군 제3보병사단 소속 학도의용군들의 포항 전투에서의 실화를 소재로 제작된 영화이다. 2010년도 개봉 6.25 전쟁 영화이다.

그리고 인터넷 상에 검색 하면 보이는 실제 참전 하였던 학도병 이우근 학도병[1] 이 적은 학도병의 편지의 전투 상황 배경인 바로 그 전투이다.[2]

2. 예고편

3. 시놉시스

6월, 그들을 기억하라!

낙동강 사수를 위한 최후전선
이곳을 지키지 못하면 가족도, 고향도, 조국도 사라진다!
1950년 6월 25일 새벽 4시.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한국 전쟁이 시작된다. 압도적인 화력으로 무장한 북한군은 파죽지세로 남쪽으로 진격을 거듭하고, 남한군의 패색은 짙어져만 간다. 전 세계가 제 3차대전의 공포에 휩싸이자 UN은 엄청난 수의 연합군을 대한민국에 파병할 것을 결정한다. 이미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는 남측은 연합군의 도착을 기다리며 낙동강 사수에 모든 것을 내걸고 남은 전력을 그곳으로 총집결 시킨다.

“지금부터 이곳은 학도병 제군이 맡는다. 우리 3사단은 낙동강전선에 투입된다.”
“우리보고 여를 지키라는 겁니까? 우리끼리만요?”
포항을 지키던 강석대(김승우)의 부대도 낙동강을 사수하기 위해 집결하라는 명령을 받는다. 하지만 이제 전선의 최전방이 되어버린 포항을 비워둘 수는 없는 상황. 강석대는 어쩔 수 없이 총 한 번 제대로 잡아 본 적 없는 71명의 학도병을 그곳에 남겨두고 떠난다. 유일하게 전투에 따라가 본 적이 있다는 이유로 장범(최승현)이 중대장으로 임명되지만, 소년원에 끌려가는 대신 전쟁터에 자원한 갑조(권상우) 무리는 대놓고 장범을 무시한다. 총알 한 발씩을 쏴보는 것으로 사격 훈련을 마친 71명의 소년들은 군인들이 모두 떠난 포항에서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 지 모른 채 석대의 부대가 다시 돌아오기만을 기다린다.

“부산은 이 박무랑이가 제일 먼저 접수합네다. 766 부대는 포항으로 진격한다!”
영덕 지역을 초토화 시킨 북한군 진격 대장 박무랑(차승원)이 이끄는 인민군 766 유격대는 낙동강으로 향하라는 당의 지시를 무시하고 비밀리에 포항으로 방향을 튼다. 영덕에서 포항을 거쳐 최단 시간 내에 최후의 목적지인 부산을 함락시키겠다는 전략. 박무랑의 부대는 삽시간에 포항에 입성하고, 국군사령부가 있던 포항여중에 남아있던 71명의 소년들은 한밤중 암흑 속을 뚫고 들려오는 소리에 잠을 깬다. 고요함이 감돌던 포항에는 이제 거대한 전운이 덮쳐 오고, 낙동강 전선에 투입된 강석대 대위는 학도병들을 걱정할 틈도 없이 시시각각 모여드는 인민군 부대와 맞서야 하는데…

4. 등장인물

이 문서에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 문서가 설명하는 작품이나 인물 등에 대한 줄거리, 결말, 반전 요소 등을 직·간접적으로 포함하고 있습니다.


4.1. 주요 인물

파일:147FEB284C0DA54044.jpg
박무랑 (차승원 扮)
영화 초반에 부대를 이끌고 강석대의 부대와 교전을 벌여 이기고 영덕을 점령하면서 무시무시한 카리스마를 풍긴다. 그 후 상부의 명령을 어기고 포항으로 부대를 끌고 진격했지만 학교를 지키고 있는 군인들이 국군이 아니라 어린 학생들이라는 것을 알고 항복하면 다 살려주겠다며 기회를 준다. 그러나 학도병들이 그를 받아들이지 않고 오히려 선제공격을 해오자 분노하여 직접 기관단총을 들고 부대와 함께 공격을 개시해서 학도병들과 전투를 벌여 양쪽 모두 다수의 사상자가 나온다. 학교에 직접 들어가 기관단총으로 학도병들을 확인사살하는 방식으로 들어갔고 영화 후반에 구갑조와 오장범을 권총으로 쏴 죽이나 오장범을 죽일 때 본인도 심장에 총탄을 맞고, 결국 강석대가 쏜 소총을 맞고 죽는다.
파일:117FEB284C0DA52E42.jpg
구갑조 (권상우 扮)
영화 초반에는 민폐, 불량 캐릭터 이지만 친구 왕표가 북한 인민군 총에 맞아 사망 하고 후반으로 전개 될수록 북한 인민군 부대와의 전투에 진지하게 임한다. 본래 자신의 패거리와 함께 살인 미수 죄목으로 철창 신세를 질 뻔했으나 학생인 척 속여 학도병이 된다. 초반에는 다소 서툴러 보이는 오장범을 중대장으로 인정 하지 못 하고 마구 칼부림을 하며 텃세를 남발 하지만, 전투를 거듭할수록 철이 들어간다. 후에 구갑조는 오장범과 주먹질을 해대며 피튀기는 육탄전을 벌이다가 포항이 아닌 낙동강 최전선에서 싸울 것이라며 구갑조는 친구 풍천과 같이 포항여중학교를 떠나지만, 가는 길에 지나가던 북한 인민군 트럭을 보게 되었는데 마침 북한 인민군 트럭이 진흙 속으로 트럭 바퀴가 끼어 빠져서 트럭 바퀴를 빼내려고 북한 인민군이 트럭 뒤를 밀고 있는 모습을 보고 생각을 바꾸고 트럭 뒤를 밀고 있는 북한 인민군에게 다가가 같이 북한군 트럭 뒤를 밀어 진흙 속에 빠진 트럭 바퀴를 빼내고 북한 인민군이 자신들과 같이 트럭 뒤를 밀어 도와준 구갑조에게 경계를 않자 그 후로 무기가 가득 실린 북한군 트럭을 탈취 하고 학도병들이 한창 전투를 벌이고 있는 포항여중학교에 북한군 무기가 실린 운송 트럭에 탑승 하고 돌아와서 북한 인민군에게 기관총으로 연속 쏘며 학도병들의 상황을 유리하게 한다. 그리고 북한 인민군들과의 전투 중에 다리에 총을 맞고도 계속 항전하다 장범과 화해하고 학교 건물 옥상에 오장범과 함께 올라가 인민군과 싸우는데 이때 박무랑이 학교 건물 옥상에 올라와 총을 수십 발을 구갑조에게 쏘았고 구갑조는 쓰러진다. 그 와중에 죽어가면서도 마지막 남은 힘을 다해 가지고 있던 주머니 칼을 꺼내서 박무랑을 어떻게든 제압 하려는 시도를 하지만 박무랑은 권총으로 구갑조의 머리를 쐈고 구갑조는 그대로 죽고 만다.[3]
파일:117FEB284C0DA54645.jpg
오장범 (최승현 扮)
영화 상황 전개 상 학도병으로 징집되었다. 전쟁에 투입된 학도병의 심정[4]을 보여준다. 눈앞에서 아군이 적병의 대검에 찔려 아둥바둥하는 와중에 총알을 꺼내면서 벌벌 떠는 장면을 보아도 알 수 있다.[5] 이후 포항에서는 전투 경험이 있다는 이유로 71명의 학도병들을 지휘 하는 중대장직을 맡게 되는데[6] 어떻게 리더십을 발휘하는지, 어떻게 인정받는 중대장이 되는지 보여준다. 마지막 최후 전투에서 "학도병군인이다!"를 복창하며 중대원들을 의기투합시키는 중대장에 걸맞은 면모를 보여준다. 처음 학도병들을 이끌 때는 선생님이 학생들 다루는 듯한 힘이 덜 들어간 말투였다는 것과 비교한다면 제대로 된 지휘관으로 거듭난 것이다. 풋풋한 모습의 어린 병사에서 군인이자 리더로 거듭나는 학도병 그 자체를 대변하는 인물이다. 최후반부에서 학교 건물 옥상으로 올라가 구갑조와 같이 경기관총중기관총으로 북한군들을 몰살하고, 후에 옥상에 올라 온 박무랑이 쏜 총탄에 맞으면서 오장범도 박무랑에게 소총을 쏘고 쓰러졌다. 뒤늦게 학교 건물 옥상으로 올라와 죽지 않은 박무랑을 총으로 쏴 죽이고 온 강석대 대위의 품에서 숨을 거둔다.[7]
파일:117FEB284C0DA53943.jpg
강석대 (김승우 扮)

4.2. 기타 인물

파일:143B5E1E4BF4CEC39A.jpg
용만 (김혜성 扮)
사실상 영화의 가장 불쌍한 캐릭터. 형을 따라 전쟁터에 와서 제일 먼저 피해를 입어 큰 부상으로 과다출혈로 죽기 직전의 상태에서 너무 고통스러워하다가 결국 형 용배에게 그냥 죽여달라고 부탁해서 결국 사망하고 한다.
파일:1636F6214C18D37816.jpg
달영 (신현탁 扮)
작중 다른 동기들과 같이 야간에 놀기나 하면서 해이한 태도를 보인다. 중간에 북한군의 공격을 실감하자 무서운 마음에 동기들과 싸우지 않고 혼자 도망쳤고 길을 헤메다가 북한군에게 생포 되어 포로가 된다. 이후 박무랑의 측근 부하인 리안남에게 얻어맞으며 국군의 정보를 취조당하고 학도병들만이 포항여중학교에서 남아 포항을 지키고 있다는 사실마저 털어놓게 된다. 그 후 박무랑에게 끌려가서 포항여중에 돌아가게 되었고박무랑은 학도병들을 자신의 부대로 끌어들이기 위해 달영을 학도병 부대에게 풀어주었고 내일 낮 12시까지 투항하지 않으면 모두 죽게 될 거라는 선전포고를 받게되는 원흉이 된다. 이후 분노한 갑조에게 학교 운동장 단상에서 동기를 팔아먹었다는 이유로 먼지나도록 맞아 얻어터졌다. 결국 마지막 교전을 앞두고 초반에 장난기 넘치는 태도와 상반되게 교실 구석에서 공포에 떨면서 울음을 터뜨리고 교전 중 복도에서 갑조를 향해 쏘는 북한군의 기관단총을 자신이 나와서 대신 맞고 갑조에게 자신은 틀렸으니 빨리 가라며 소리를 지른다. 자신을 두들겨 팼던 갑조는 미안함이 배가 되어서 울먹이며 뛰어가 떠나버리는데 이후에 죽어가는 와중에도 복도로 진입하던 박무랑의 왼팔에 소총을 맞춘다. 그러나 비록 적이지만 자신을 풀어줬던 박무랑에게 더이상 총을 쏘지는 않았고 박무랑은 뒤돌아서 총을 쏜 자가 자신이 풀어줬던 학도병 포로인 달영임을 알아보고는 완전히 꼭지가 돌아서 기관단총을 수십발 쏴서 완전히 달영을 죽여버린다.
파일:1136F6214C18D38117.jpg
용배 (문재원 扮)
두번째 전투에서 동생이 총에 맞았고 과다출혈로 빈사상태가 되며 괴로워하자 강석대 대위가 오고 있으니 조금만 참으면 치료받을 수 있다며 용만을 위로하지만 결국 오열하며 그냥 죽여달라는 동생의 부탁을 들어주고는 허공에 총을 조준하며 울음을 터뜨린다. 그 후 마지막 전투에서 파죽지세로 진격하는 북한군의 측면에서 은폐하여 자신이 가지고 있던 모든 수류탄의 안전핀을 뽑아 폭탄을 온몸에 두르고 북한군이 타고 있던 차륜형 장갑차에 뛰어들어 자폭을 시도한다. 용배의 희생으로 북한군의 차륜형 장갑차가 폭발하며 주변에 있던 북한군들에게 피해를 입혔다.[8]
파일:136E48144C2EE0AD42.jpg
재선 (김동범 扮)
학도병 중 강석대의 부대원 국군에게 무전 통신기 사용법을 인수인계 받아서 학도병 내에서 통신병 역할을 하였다. 북한군과 중간 교전 이후 강석대 대위에게 연락해서 상황을 보고하기도 했고 마지막 교전 상황에서 선제공격으로 쓸 박격포가 낡아서 작동하지 않자 보고해서 걷어차라는 해법을 듣고(...) 옆에 있던 소대장 학도병에게 알려주기도 했다. 그러나 마지막 전투에선 북한군의 파죽지세로 아수라장이 되자 국군의 무전 통신 요청을 받지 못했고 마지막에 용배와 같이 박격포의 포탄을 잡아 들고 자살공격을 시도하나 돌진하는 도중 탱크 근처에서 북한군에게 발견되어 총에 맞아 쓰러지지만 재선이 죽는 순간 떨어뜨린 포탄이 바닥에 굴러서 진격하던 북한군 탱크가 밟게 되며 폭발하였고 탱크에 장착 되어있는 무한궤도에 피해를 입혀 진격을 못하게 하는 의미있는 희생을 할 수 있었다.
파일:196E48144C2EE09640.jpg
풍천 (김윤성 扮)
구갑조와 같이 어울려 다니는 친구. 마지막에 갑조가 장범과 싸우고서 떠날 때 같이 떠나서 탈취한 북한군 트럭을 운전하고 교전 중 돌아와 총알이 떨어진 학도병 부대에게 탈취 총기를 보급해준다. 그리고선 함께 북한군과 교전하였고 옥상에 탈취한 무기 대다수를 배치해놔줘서 갑조와 장범이 장시간 교전할 수 있는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고 옥상 입구에서 갑조에게 "총 옥상위에다 올려놨다! 내도 금방 올라갈게!!"라고 말하며 있다보자는 약속을 하지만 북한군에게 사살되면서 약속을 지킬 수 없었다. 죽어가는 순간에도 자신이 가져왔던 수류탄들과 기틈통에 불을 붙여서 추격해오는 북한군에게 피해를 입히는 희생을 하고 장렬히 사망하였다.[9]
파일:1136F6214C18D36713.jpg
왕표 (탁트인 扮)
구갑조, 풍천과 같이 어울려 다니는 친구. 구갑조, 풍천과는 달리 전쟁 시 사용 되는 살상용 수류탄도 아예 모르고 위험한 전투 상황 관련 하여 무지하다. 이 때문에 영화 초중반에 숲 속에서 숲 주변에 있었던 북한 인민군의 기습으로 다른 학도병들과 구갑조, 풍천은 재빠르게 바닥에 몸을 누위어 북한 인민군이 을 쏘는 총격을 피하였지만, 왕표는 얼떨떨하게 가만히 서 있다가 갑조의 엎드리라는 말에 반응도 못하고 결국 북한 인민군이 쏜 총탄이 왕표 이마에 사격되어 그대로 즉사하고 만다. 갑조와 풍천은 왕표의 시체를 포항여중 운동장에 묻어주며 슬퍼하였다.
파일:1536F6214C18D36D14.jpg
창우 (윤승훈 扮)
학도병 1소대장. 징집된 학도병들이 정신 못 차리고 야간에 잠도 안 자고 놀기나 하자 따끔하게 "우린 지금 전쟁중이다"고 충고하며 소대장 답게 진지한 태도를 보인다. 마지막 교전에서 학도병 동기들을 챙겨주며 싸웠고 어린 나이에 동기들이 옆에서 죽어나가는 전쟁의 공포를 직접 실감하며 전의를 상실해서 선 채로 울음을 터뜨리고 북한군 탱크의 발포에 조용히 눈을 감고 사망하고 만다.
파일:2036F6214C18D38918.jpg
병태 (김호원 扮)
학도병 2소대장. 동기들의 사격 훈련에서 총알을 장전시 손가락이 총에 끼어 다치지 않게 조언도 해준다. 초반에 철이 들지 않은 갑조와 마찰을 빚기도 했다. 마지막에 교전에서 창우와 마찬가지로 동기들을 챙겨주며 싸우지만 결국 동기들이 죽어나가고 혼자 남은 교실에서 쳐들어오는 북한군에게 대항하다가 초반에 자신이 동기들에게 가르쳐줬던 장전 중 손가락이 총에 끼이는 실수를 하게되어 매우 고통스러워 하고 북한군에게 모신나강 소총 개머리판을 맞고 살해되고 만다.

4.3. 특별 출연

파일:203B5E1E4BF4CEB097.jpg
화란 (박진희 扮)

5. 사운드트랙

2010년 5월 20일에 남성 듀오 보컬 그룹 디셈버가 노래 부른 ' 포화 속으로 ' 영화 OST ' Once Upon A Time ' 음원이 발표 되었다.

6. 평가

★★
뉴라이트 역사관에 빛나는 150억원짜리 반공영화
- 황진미


전쟁 장르의 진화와 시대정신에 모두 역행한다.
- 이용철

★☆
갓 제대한 학도병들이 만든 영화 같다.
- 이동진

★★
겉멋 속으로
- 박평식

★★
총 들고 탱크를 탄 감독의 심정
- 강병진
안시환 평론

전투 장면이나 색감 등 영상미도 준수한 편이고, 일단 세트와 캐스팅, 전투 묘사 등은 나름대로 신경 쓴 티가 역력하고 소재 자체도 잘만 엮어낸다면 괜찮은 내용이었다. 다만 소재가 소재여서 신파물 혹은 반공물로 보일 여지가 많고, 소재에 비해 고증, 시나리오를 잘 엮지 못해서 적지 않게 지적을 받았다.

6.1. 연기력

일단 캐스팅은 절반의 성공이라고 할 수 있다. 유명 아이돌을 주연 배우로 출연 캐스팅 한 덕에 "전쟁 영화 = 군인들이 단체로 나와서 총 쏘는 영화" 라고 관심 없어 하는 개념없는 젊은 여성 관객층을 영화관으로 나오도록 하여 대거 끌어들일 수 있었다. 2012년에는 네이버 영화 평점이 8.22로 꽤 높은 상태였으며, 이 영화에 평을 매긴 네티즌들의 경우 전쟁 영화 장르 치고는 이례적으로 10대, 여성 관객의 비중이 가장 높았다. 이보다 더 전에 비슷한 수요층을 노렸던 꽃미남 연쇄 테러사건 영화 같은 경우 수요층 마저 외면 했으며 평점도 최악인 것과 비교한다면, 적어도 캐스팅 효과와 그 수요층을 만족 시킬 정도의 기본기는 제대로 잡았다고 할 수 있다. 같은 장르인 고지전 영화가 작품성 자체는 더 괜찮았는데도 이슈를 끌지 못해서 망한 것을 생각해보자.

주연 배우 최승현도 기대치 보다 호연이었다는 평가. 비록 연기만 수십 년 해온 전문 배우들 만큼은 아니지만, 아이돌 치고는 준수했다는 평가가 많다. 이 영화로 대종상 영화제에서 한류인기상을, 백상예술대상과 청룡영화제[11]에서 모두 신인연기상과 인기상을 수상했다. 다만 너무 앳된 티가 나서 전쟁 영화의 주인공에 필요한 박력은 다소 부족한 편이었으며, 권상우의 고질적인 발음 문제, 차승원이 개그 전문 배우에서 악역으로 연기를 하며 보인 어색함도 지적 되었다. 특히 박무랑을 연기 한 배우 차승원의 대사 중에 "김일성 장군님에게 승리의 보고를 올리자 !" / "돌격 ~ 앞으로 !" 같은 대사를 들어보면 무자비 한 적군 부대의 대장 특유의 포스가 없고 부족함이 느껴진다.[12]

다만, 주연 배우들의 사투리 연기는 부족한 부분이 많다. 경우에 따라서는 전라도 사투리에 가깝게 들리는 부분도 존재했다.

6.2. 각색 및 소품

일단 무기와 장비 면에서 '전쟁영화스러운' 소품들을 잔뜩 늘어놓긴 했지만 세세하다고 보긴 힘들다. 군데군데 눈에 보이는 허점들이 꽤 있다. 대표적으로 소위 '육공트럭'이라고 부르는 K-511 트럭이 계속 나온다든지, 국군 전차로 M48이 버젓이 등장하고 인민군은 M4 셔먼을 끌고 나오든지, 1970년대 후반에야 출시된 국산 K111 지프차를 국군이 몰고 다니고, 인민군인 박무랑은 미국윌리스 MB[13]를 타고 다니는 것이 대표적. "학도병M1 개런드를 실탄까지 두둑하게 챙기고 있다는 점도 어색하다. 실제 학도병은 일제가 남기고 간 아리사카 소총을 쓰는 게 일반적 이었기 때문"이라는 주장도 있었으나 실제 생존자의 증언에 따르면 전원 M1 소총을 지급 받고 실탄 250발을 지급받았다.[14] 좀 더 세부적으로 들어가서 보면 가령 북한 육군 보병군관인 박무랑이 전장에서 하얀 제복[15]을 입고 있고[16], 당시 기준에서 엘리트[17]|학도병들 사이에 문제아인 구갑조 패거리 3명을 설정한 것도 지적되었다.[18] 다만 맥락상 구갑조(권상우) 일행은 실제로는 학생이 아니었고 학생모만 착용한 학생을 사칭한 사람들이었다. 이는 실제로 우리나라 1970년대까지도 많이 있었던 풍습이다. 학교에서 공부하는 학생이 부러워 학생모나 교복 일부를 착용하고 다니던 청소년 노동자들이 많았다.

영화가 '사실의 재현'보다는 단순히 포항에서 학도병들이 죽을 때까지 항전했다는 모티브만 참고하여 각색했다고 할 수도 있지만, 어쨌든 포항여자중학교 전투가 대대적으로 홍보되었고, 영상 크레딧에 실제 참전 생존자들이 나왔지만, 실제 포항여자중학교 전투와는 차이나는 점도 적지 않으며, 이 탓에 고증 오류라는 지적을 받기도 했다.

6.3. 연출력

가장 크게 지적 받은 것은 사실 다른 요소보다도 감독의 전작 내 머리속의 지우개에서도 엿보인 고질적인 최루성 전개다. 심지어 1970년대 반공 영화에서도 보기 어려울 정도의 신파성이 문제인데, 그 결과 배우들의 역할은 스테레오 타입으로 너무 뻔해졌고[26], 각각의 캐릭터에 감정 이입할 틈을 주지 않고 픽픽 죽어나가게 만들어 비극성을 너무 강조했다. 이런 요소는 일부 관객들에게는 의외로 감동 깊게 받아 들여진 듯하나[27] 이런 연출의 진부함은 아주 닳고 닳은 뻔한 클리셰라 할 수 있는 겉멋만 잔뜩 들어있는 사고뭉치 주인공이 온갖 민폐를 일으키다가, 어떠한 계기로 각성하게 되며 혼자 무쌍을 찍는 구갑조가 절정에 달했고, 클라이맥스인 학교 건물 옥상에서 오장범과 구갑조 둘이서 총을 마구 쏘아 죽인 북한 인민군들의 시체가 줄줄이 쌓이는 장면에서는 다른 학도병들은 허무 하게 다 전사 한 상황에서 비현실적으로 느끼게 하기도 한다. 상대적으로 군대를 경험한 남성 관객들에게서는 가뜩이나 총 든 남성 학도병들이 출현 하는 영화가 시종 뻔하고 신파적인 전개로 일관하는 탓에 그다지 좋은 평가를 받지 못 했다. 즉 작품의 전개를 감동으로 받아들이느냐, 억지감동으로 받아들이느냐 따라서 작품의 평이 극과 극을 오간다.

초반에 총도 벌벌거리면서 들던 주인공 오장범이 마지막의 학교 옥상 전투에서는 총을 마구 쏘아 죽인 북한 인민군들의 시체가 줄줄이 쌓일 정도로 무쌍을 찍었다. 이건 영화가 진행 될수록 오장범의 실력이 점차 성장 했다고 넘길 수도 있지만 북한 인민군도 남한에 내려오면서 수십 번 전투를 하면서 내려온 군대이다. 이러한 점들을 보면 알 듯이 감독과 제작자들이 전쟁에 대해서 얼마나 만만하고 쉽게 보는지 알 수 있다.

특히나 후반부에서 다른 학도병들은 전원 다 사망하고 오장범과 구갑조는 총을 마구 쏘아 죽은 북한 인민군들의 시체가 줄줄이 쌓일 정도의 주인공 버프인 듯 한 장면은 영화의 분위기나 주제 의식이나 아무런 도움이 안 된다. 이 영화가 반공물로서의 가치도 없다는 것을 증명 하는 부분인데, 조국을 위해 총을 든 학생들의 숭고한 희생과 비장함, 장렬한 죽음과 그런 희생을 만들고, 순진한 미성년 학생들에게 살인을 강요 하는 전쟁의 참혹함[28] 같은 누구나 생각 할 법한 주제 의식보다 주인공 둘이 비현실적으로 활약하는 장면 연출이 지적된다.

비유를 하자면 5.18 민주화운동을 주제로 화려한 휴가 같은 영화를 만들었는데, 마지막 장면에서 주연 둘이서 기관총을 들고 계엄군의 시체를 쌓으며 무쌍을 찍는 영화를 만들었다고 치자. 과연 이 영화가 좋은 소리를 듣겠는가? 예시로 든 영화 화려한 휴가도 실제 역사보다 시민군이 지나치게 공격적으로 나온다는 비판을 들었는데, 이 영화 또한 학도병들을 지나치게 공격적으로 묘사하여 역사를 왜곡하고 실존했던 학도병들의 희생을 격하 하는 꼴이다.

7. 흥행

제작비가 113억 정도인데, 333만 명의 관객을 모아 평타 이상은 쳤다. 관객 동원 속도를 보면 개봉 첫 주 만에 100만을 찍고 20일 만에 250만을 찍는 등 초반부터 관객 동원이 좋았고 실제로 관객 300만 돌파는 개봉 1개월도 안된 7월 12일에 이뤄졌으니 일단 첫 한 달 사이에는 분명히 흥행을 했다. 다만 그 해 여름에 딱히 강력한 경쟁작이 없었고 거대 배급사인 롯데엔터테인먼트의 막강한 입김 덕에 무려 3개월이나 개봉을 끌었는데[29], 초반 이슈성에 비해 지속적인 관객 동원력이 못 따라준 탓인지 뒤로 가면서 첫 한 달 간의 기세에 비해 큰 흥행력을 보여주지 못했다. 그래도 초반의 기세 덕택에 최소한 손익 분기점은 넘긴 것으로 확인되었다.관련 기사

미국에서는 의외로 꽤 호평을 받았다.시사회 분위기맥스무비 기사 워싱턴 포스트 30주년을 맞는 하와이 국제영화제에서 폐막작으로 선정되기도. 관련 기사

미국 수익은 17만 6,638달러. 할리우드 특성 상 해외 영화의 상영관 자체가 적었던 것을 감안하면 나쁘진 않았으나 태극기 휘날리며 영화가 미국에서 개봉하여 111만 달러를 벌어 들인 것에 견주면 아무래도 상당히 아쉬운 편.

일본에서는 전화 속으로(戦火の中へ)라는 타이틀로 상영 되었으며, 방영 전 6.25 전쟁학도병을 주제로 특집 방송을 방영 하기도 했다.

8. 논란

8.1. 진영 논리

개봉 도중에는 좌우 진영 간에 음모론이 난무하며 병림픽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는 영화의 소재 자체가 좌파 쪽에서는 까고 우파 쪽에서는 마음에 들어할 수밖에 없는 아주 민감한 성격인 탓도 컸다. 일례로 진보 측 영화 평론가 황진미의 경우 뜬금 없이 북한의 남침 사실까지 애써 희석 시키며 남침유도설이 유력하다는 심히 괴이한 논지의 평론[30]을 썼으며, 한편으로는 우파들이 표를 강매해서 억지로 관객 수를 늘렸다는 주장도 제기되었다. 반면 우파 쪽에서는 오히려 좌파 쪽에서 관람을 방해하고 악의적인 소문을 낸다며 역으로 항의했다. 이런 종류의 논란은 소재가 소재인 이상 작품성과 상관없이 벌어질 수밖에 없다고 할 수 있다.

또 한편으로 좌파측에서는 이 영화가 뉴라이트 사관, 심지어 MB국책 영화라는 평가까지 얹으며 수꼴이라고 욕하는 반응도 나왔고, 반대로 우파측에서는 영화의 묘사가 국군의 치부를 드러내고 북한군을 미화한 느낌이 든다고 좌빨이라면서 욕하는 반응도 있었다.

사실 따지고 보면 이 영화가 국군이라고 긍정적인 모습만 보여주는 것은 아니고 오히려 한심한 지휘 체계나[31] 학도병들을 총알받이로 내모는 등의 흑역사도 꽤 묘사하는 편이며, 마찬가지로 북한 인민군 쪽도 배우 차승원이 연기한 악역인 북한 인민군 대장 박무랑이 너무 멋지게 묘사 되기는 하지만 그에 대응 하는 상찌질이 정치장교가 출현하고 결국 프래깅 당하는 등 이런 쪽으로도 고증에 충실한 편이다.

그리고 진영 논리에 매몰되어 뒷전으로 밀려난 본질이 있는데, 바로 이 영화의 주제인 학도병은 21세기 시점에서 냉정하게 보면 전쟁 범죄의 폐해 중 하나인 소년병이다. 그런데 좌우를 가리는 이념 논쟁 때문에 결과적으로는 소년병을 미화한다는 비판이 안 나왔다. 이러한 이념 음모론을 걷어내고 생각해 보면 흥행에 가장 중요한 공을 세운 것은 단연 주연 배우들의 팬인 10-20대 여성들이다. 실제로 네이버 영화에 가보면 높은 평점을 매긴 상당수가 그쪽 관객들[32]이며, 지금까지도 꾸준히 평이 올라오고 평점이 오르고 있다는 것을 생각 한다면 단순히 노이즈 마케팅이나 인위적인 압력만 갖고 관객이 들었던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그리고 영화 외적으로 해외 시사회에서 빚어진 일본해 논란이나 권상우의 사고와 같은 악재까지 있었던 것을 감안하면 외적인 조건은 호재보다 악재가 더 컸고, 그에 비해서는 확실히 선전한 셈이다. 일본해 논란의 경우 청연의 쪽박을 봐도 알 수 있듯이 매우 민감한 사안이며[33] 권상우와 관련 해서도 흥행에 치명적 타격이 될 만큼 매우 불미한 사건이었다. 한마디로 메가톤급 악재였다는 것. 그럼에도 개봉 1개월이 못되어 300만 이상이라는 성적을 거뒀다는 것을 보면 이것이 그렇게 치명적인 타격은 아니었다고 할 수 있다. 물론 그것과는 별개로 영화에 대한 비호의적인 여론에 적잖이 영향을 끼쳤고 제작사 측에서도 고생이 심했겠지만.

9. 기타



[1] 당시 서울 동성중학교 3학년. 천주교 서울대교구 이문근 사도 요한 신부의 동생.[2] 1970년대 동일한 소재로 영화가 만들어졌는데 이 작품 같은 신파적인 내용보다는 마초적 느낌이 물씬 풍겨오는 영화였다. 당시 한국 육군 장교 역은 신성일. 그리고 실제 전투 기록은 제3보병사단에서 보관 중이다.[3] 옥상에서 최후의 항전을 할 때 원래는 DP-28 기관총을 어깨에 둘러메고 쐈으나, 장전이 어려운지라 "장범아, 탄좀 끼도!" 라고 간청한 후에 맥심 기관총이 설치된 곳으로 뛰어가서 북한군들에게 난사하며 몰살시킨다.[4] 학생들이 필기구가 아닌 총을 쥐고 전투를 벌이는 사태에 대한 심정.[5] 심지어 격발하지도 못한다. 지나가던 다른 아군이 인민군을 쏘아 죽이고 얼빠져 있는 오장범을 보고 총을 겨눴다가 아군인 것을 확인하고 지나쳐 간다.[6] 함께 참전했던 학도병 두 명이 작중에서는 오장범보다 더 강해보이는데 왜 오장범에게 중대장을 맡기고 그들에게는 소대장을 맡겼는지는 의문이다. 그냥 주인공 보정일 수도 있고 강석대 입장에서는 오장범에게 부드러운 카리스마와 차분함이 있어 보여서 오히려 더 리더로 적합하다고 느꼈을 수도 있다. 강석대가 학도병들에게 학교를 맡기고 떠날 때에도 오장범이 자신은 골목대장 한 번도 못해봤으니 중대장은 못하겠다고 하지만 강석대가 마음으로 이끌고 진심이 우러나오면 다들 널 따를 거라고 내면적 부분을 고려한 듯한 독려를 한다. 그리고 작중 앞부분에 나온 전투신은 워낙 짧은 데다가 특별히 설정이 나오지 않아서 알 수 없지만 오장범이 더 약해보여도 전투 경험은 더 많을 수도 있다. 앞의 전투신에서도 강석대가 오장범에게 옥상에서 기관총을 맡은 군인들에게 많은 탄약들을 갖다주라는 중요한 일을 맡기기도 했다.[7] 장전이 어렵기로 유명한 DP-28 기관총을 쉽게 장전을 마친 후 바로 들고 쏘는 무쌍을 선보였다.[8] 동생을 자신의 손으로 죽일 수 밖에 없었던 잔혹한 현실과 절망적인 상황에서 동생을 죽인 시점부터 이미 동생을 따라가려고 희생을 결심한 듯 하다.[9] 옥상 위로 올라가는 데 성공했더라면 이 3명의 학도병들은 강석대 대위가 올 때까지 생존할 확률이 조금 더 높았다. 당장 구갑조와 오장범이 옥상에서 기관총으로 북한군을 대다수 몰살시킨 것을 감안하면 말이다.[10] 1990년부터 영화배우로 활동하기 시작하였고 1999년에 쉬리에서 폭발물 해체반 특공대원 역을 맡기도 했다.[11] 청룡영화제는 후원사 중 조선일보가 있어서 주최 측 구미에 맞는 선정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됐다. 하지만 국내 빅3 영화제 모두 노미네이트되고 수상 이력까지 얻었다는 것을 보면 청룡영화제만 유독 선정 기준이 특별하다고 보기는 어렵다. 청룡영화제가 의혹처럼 진짜로 이 영화를 편애 했다면 다른 상도 왕창 안겨줬어야 하지만 실제로는 이 외에 감독상이나 기술상과 같은 다른 부문의 상은 일절 주지 않았다.[12] 차승원은 이전에 영화 리베라 메에서 한번 악역을 한 적이 있다. 이 때는 어렸을 때 중범죄를 저질러서 징역 12년을 살았기 때문에 세상에 대한 불만으로 연쇄 방화를 저지르는 방화범 역할로 등장해서 어느 정도 성공 했지만 이 영화에서는 아니었다. 영화 도입부의 국군 부대를 이기고 도시를 점령하는 부분에서는 나름 카리스마가 넘치지만 그 후에는 포스보다는 오버하는 듯한 느낌이 좀 더 난다.[13] 태극기 휘날리며 영화 제작진이 제작한 영화용 장비로 보인다.[14] 실탄 250발은 자동소총이 일반화된 오늘날에도 상당히 많은 휴대량이다. 오늘날 국군도 140발 + 280발로 보급 받는다.[15] 해군외의 군종에선 예복이다. 즉, 전쟁터 한복판이 아닌 비전투시의 행사나 열병식에서 입을 수 있는 옷이라는 것. 그나마 상의는 영화에서의 용도가 고증과 다를지언정 형태는 고증에 맞으나, 흰색 일자 바지는 아예 존재하지도 않았던 복식이다. 영화상에서 박무랑은 부츠를 착용하고 흰색 일자 바지를 입고 있는데, 6.25전쟁 당시 좌관급 군관은 부츠를 착용했을 때, 하의로는 군청색 승마 바지나 황색 승마 바지만을 착의했었다. 그냥 메인빌런이니만큼 차별을 둔 것으로 보인다.[16] 영화에서 차승원이 연기한 박무랑의 모티브가 된 실제 인물은 실제 김일성이 항일운동할 때부터 따라다닌 오른팔 오진우이다.[17] 대학은 고사하고 중고등학교 진학률조차 매우 낮았던 시절로 고등학생만 되어도 그 당시에는 지식인정도가 아니라 굉장한 인텔리들이었다. 작중 배경이 되는 6.25전쟁 이후 세대만 해도 대학은 물론 고등학교 진학률도 낮았으며, 요즘처럼 청소년들이 고등학교에 진학하는 것이 당연해진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정규 장교 양성 기관인 육군사관학교는 아직 4년제 학제조차 자리잡기 전이었다. 이 때문에 전쟁 중에 급히 간부후보생을 징발 했는데 고교생 이상은 갑종간부후보생, 장교 자원으로 분류했고 중학교 졸업 까지는 을종으로 하사관 자원으로 분류했다.[18] 다만 당시 고등학생들이 대단한 엘리트들이었음에도 상당수가 소박하고 털털해보이는 시골 소년들처럼 묘사한 측면이 너무 강하다는 것도 다소 어색할 수 있다.[19] 해방 직후 기준으로 한국의 문맹률이 무려 70%에 달했으며, 이는 실제 전국민 70%가 문맹이었다는 점보단, 일제강점기 때 한글 교육을 불법화하고 일본어를 가르쳤는데, 8.15 광복 후 한국어와 한글이 공용어로 지정되어 문맹률이 높게 잡힌 이유도 된다. 전후에도 고등학교 진학률이 현재처럼 상승하는 데에는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이렇다보니 고등학교 졸업생은 현재의 대학교 졸업 이상에 해당하는 인텔리였다.[20] 이 당시 대학생은 그 자체가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지위였다. 당시 일반적인 경우라면 중대 내에 대학생 한 두 명이 있을까 말까인데 36명 중 10명이 대학생이라면 엄청난 엘리트 집단이다.[21] 사실 고등학교만 졸업했어도 갑종장교로 소위 임관이 가능했다.[22] 남북 전쟁 무렵의 미군도 간부를 투표로 선출 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고, 17~18세기 카리브해해적들도 선장을 투표로 뽑았다. 이는 제대로 조직화 되지 않은 의용군의 경우 흔히 볼 수 있었다.[23] 사실 이건 영화의 효과상 그런 것도 있다. 새벽 시간의 전투를 촬영하기에는 화면상으로 너무 어둡게 나오고, 1970년대 영화도 대낮 전투에 우월한 화력의 북한군이 나왔다. 화력과는 별개로 김일성의 오른팔인 오진우가 연대장을 맡았고 남침 당시 2개 독립여단 중 하나로(105전차여단, 766여단) 운영되었던 점을 보면 단순히 오합지졸의 북한군이 아님을 알 수 있다.[24] 그냥 소년병도 아니고 고등학생인 주인공 두 명 보다 더 어린 소학교 저학년 소년병이다.[사실] 실제로도 당시 북한은 남한의 절반도 안 되는 인구로 인한 만성적인 병력 재원 부족에 시달렸다. 남침했을 당시 20만도 소련의 반대를 무릅쓰며 청년층 징집 및 국경경비대 등 비정규군을 규합했던 숫자였으며[35], 실제로도 병력 소모를 견디지 못해 낙동강 전선에서 상당수가 남한에서 강제징용된 의용군이었다가 인천 상륙 작전 이후 완전히 붕괴되었다.[26] 예외적으로 차승원이 연기 한 박무랑이 꽤 입체적인 모습을 보여주었지만.[27] 배우들의 열혈 팬들이 분포한 젊은 팬덤층에서는 꽤 고평가되는 듯.[28] 내지는 북한의 기습 남침의 부당함.[29] 물론 상영 기간과 별개로 상영관 수는 차츰 줄었다.[30] 그렇다고 소위 진보 쪽이 이 평론을 좋아했느냐, 그건 또 아니다. 전제가 된 남침 유도설이 개드립이기도 하고, 황진미의 영화 평이나 평론은 굳이 좌우를 가릴 필요 없이 영화 팬들에게 전방위적으로 까이는 편이다. 좋게 말하면 자기 주관이 매우 뚜렷하고, 나쁘게 얘기하면 영화와 관련 없는 괴이한 개드립(이를테면 라스트 갓파더의 평에 북한과 재벌의 세습을 운운하든지), 과도한 정치 드립과 페미니즘식 해석 등이 심하기 때문. 이 평론은 황진미 개인과 더불어 검토에 소홀했던 한겨레21의 문제도 크다.[31] 이 탓에 지원군이 제때 증원되지 않아 주인공들을 죽음으로 몰아넣는다.[32] 게다가 이들은 자연히 자신의 커플이나 지인인 남성 관객들이 동행하게 하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매표력(티켓 파워)이 높다. 프로 스포츠 팬의 경우도 마찬가지. 남친을 데려오거나, 좀더 나이가 들면 자기 아이를 데려오거나.[33] 다만 청연의 경우 일본해보다는 주인공의 친일 행적 논란이 결정적이었다.[34] 2010년 여름 육군3사관학교 후보생 과정 예비장교들은 단체 관람을 했고, 2010년 추석 때는 모 사단 포병대대에서는 정훈장교가 애들이 심심할 거 같아서 보여준 적도 있었다. 2012년경에는 논산 육군훈련소에서는 훈련병 상대로 단체 관람을 시켜줬다. 물론 이때도 학생 무쌍 장면과, 수많은 정규 국군을 상대로 승리한 정예병이라던 북한 인민군이 자살에 가까운 전방 주시도 안 하는 돌격으로 학교 건물 옥상에 돌입에 총을 맞고 죽는 장면 때문에 훈련병들 사이에서 평가가 좋지 못했다. 포화속으로 영화 최후반부에서의 연출 장면에 죽은 북한 인민군들의 줄줄이 쌓여진 시체를 보고 어이가 없어 웃어도 조교가 제지를 안 할 정도. 이제 와서 금지되었다면 하극상보다는 이런 비현실적 면모 때문일 가능성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