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모에 미러 (일반/어두운 화면)
최근 수정 시각 : 2024-09-20 04:29:49

76mm ZiS-3 사단포

제2차 세계 대전기의 소련군 화포
파일:소련 국기(1936-1955).svg
{{{#!wiki style="margin: 0 -10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5px -0px -11px"
겨울전쟁제2차 세계 대전
곡사포 <colbgcolor=#fefefe,#191919>122mm M1909/37 곡사포, M-30, M-10, ML-20, D-1, B-4, Br-5
박격포 RM-38,RM-41, BM-37,BM-41, 152mm NM(M1931), 107mm M1938, 120mm M1938, 160mm M-1943
평사포 ZiS-3, F-22, M1927, M1943(OB-25), BS-3, A-19/19S, M1910, M1910/30, Br-2
대전차포 37mm 1-K, 53-K, M-42, ZiS-2, F-22, ZiS-3, D-10S, BS-3, M-60, M-75
전차포 ZiS-4, L-11, F-32, F-34, ZiS-5, D-5T, ZiS-S-53, D-10T, D-25T/25S
대공포 25mm 72-K, 37mm 61-K, 45mm 21-K, 76.2mm 3-K, 76.2mm 8-K, 76mm M1938, 52-K, KS-12
주요 화포 구경 76mm, 85mm, 100mm, 107mm, 122mm, 130mm, 152mm }}}
{{{#!wiki style="margin-top: -30px; margin-bottom: -10px; letter-spacing: -0.9px; font-size: 0.82em"
※둘러보기 : 파일:러시아 국기.svg 파일:소련 국기.svg 러시아·소련군의 운용장비 | 파일:cannon_icon__.png 화포 }}}
}}}}}}

파일:Nizhny_Novgorod_Kremlin_76-mm M1942_ZiS-3.jpg
76-мм дивизионная пушка образца 1942 года (ЗИС-3)
76mm M1942 divisional gun
76mm 1942년형 사단포 (ZiS-3)
GRAU 코드명: 52-P-354U(52-П-354У)
1. 개요2. 제원3. 개발4. 특징5. 여생6. 평가7. 매체에서8. 둘러보기

1. 개요


ZiS-3는 1942년 채택된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소련군의 주력 사단포(경야포)로 야포보다는 사실상 대전차포로 많이 쓰였다. ZiS-3 외에도 많은 소련제 야포들은 기본적으로 대전차전 능력을 가지고 있었으나 ZiS-3의 경우에는 발사 각도가 최대 37도인 평사포라서 일부러 흙을 쌓아서 둔덕을 만들고, 둔덕의 경사면 위에 대포를 끌어 놓는 등의 별도의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굴곡진 지형에서 후사면에 사각이 많이 생기고 파편의 비산 효과가 떨어지는 등 야포로서의 지원 능력은 상당히 떨어진다. 다만 당시 소련군은 관측, 통신 등을 수행할 유능한 하급 장교진과 무전기 부족에 시달려 보병 사단의 각 연대를 직접 지원하는 76mm 야포는 공격 준비 사격을 제외하면 곡사 사격보다 직사 사격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았고 82mm, 120mm 등의 박격포를 대량 양산해 후사면 등 평사포의 사각에 위치한 적을 타격하는 전술을 구사했다.

2. 제원

3. 개발

1940년 소련군은 당시 보유중이던 F-22 야포와 F-22 USV 야포보다도 경량에 제작단가가 싼 76mm 야포의 개발에 들어갔는데, 1941년에 독일군이 소련을 침공하면서 독소전쟁이 일어났다. 당시 독일군의 주력 전차이던 3호 전차4호 전차는 장갑이 얇아 F-22 및 F-22 USV의 철갑탄으로 대항이 가능했지만 갑자기 습격당한 초기의 전장에서 스탈린의 사수명령 남발, 대숙청으로 인한 지휘관의 부족 등으로 대다수의 F-22와 F-22 USV가 파괴되거나 독일군에게 포획되면서 망실되었다.

소련군은 부대 재편성을 위해 보충용 야포를 긴급히 도입할 필요가 생겼는데, T-34-76KV-1 전차에 버금가는 장갑을 가진 독일의 중전차가 전선에 투입되는 것도 시간문제였다. ZiS-3는 1941년에 완성했지만 T-34의 양산을 방해한 그리고리 쿨리크 원수의 방해 및 소련군의 F-22 USV의 증산을 우선시한 정책 덕분에 ZiS-3는 경쟁심사도 이루어지지 못한 채 공식적으로 제조가 중지되었다.

그러나 F-22 USV는 제작단가가 비싸고 포가구조가 복잡해 공정이 오래 걸려 그 숫자가 많지 않았다. 이에 스탈린은 독일 전차에 대항가능한 화포생산을 허가하는 지령을 내렸으며, 그 때까지 몰래 1,000문 정도를 생산하던 ZiS-3는 그제서야 빛을 보게 되었다.

1942년 2월에 5일간에 걸쳐 실시된 재심사 결과, 모든 시험을 완벽하게 통과한 ZiS-3는 1942년형 76mm 사단포로 공식채용되었다. 그리고 대전중에는 45,000여문이 양산되었으며, 총 생산량은 103,000문 이상으로 파악될 정도로 대량 양산되었다.

4. 특징

ZiS-3는 ZiS-2 57mm 대전차포의 포가에 F-22 USV 야포의 포신과 주퇴복좌기를 탑재한 형태로 개발되었다. 포가의 경량에 의해 주퇴기와 복좌기가 견디지 못하며, 발포시 전복될 위험성이 있었기에 포구에는 76mm급 사단용 야포로는 처음으로 머즐 브레이크가 장착되었다. 그리고 주퇴기와 복좌기는 유압식으로 만들고, 덤으로 폐쇄기도 반자동으로 만들어서 자동으로 탄피가 배출되도록 하였다. 또 ZiS-2 대전차포의 포가는 각도조절 핸들이 포 좌측에 집중되어 있어 조준조정은 1명으로도 충분했다.

발사각은 F-22 및 F-22 USV와 비교시 약간 떨어졌지만 야포 및 대전차포로의 운용에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못했다. 또 제작단가도 포가의 간략화로 인해 F-22 USV의 3분의 2 정도 비용이면 충분했다. 당시의 소련군 곡사포 및 야포는 각도조절장치가 모두 우측에 있었기에 조준에는 두 사람이 필요했다. 때문에 독일군이 노획한 F-22 사단포는 7.62cm Pak 36(r)로 개조시 각도조절 핸들을 좌측으로 옮겼다.

ZiS-3는 1개 사단에서 1개 대대당 12문으로 배치되거나 6개 중대 24문으로 편성된 독립전차연대에서 사용했다. ZiS-3는 주로 직접화력 지원용으로 투입되었지만 대전차 전투에도 사용되었다. 또 차량탑재형의 ZiS-3Sh는 SU-76M대전차 자주포의 주포로도 이용되었다. 포탄의 발사속도가 매우 고속이라 착탄 후 발사음이 날 지경이었기 독일군에게 이 포는 Ratsch-Bumm(라치-붐, 찍-쾅)[1]으로 불릴 정도로 공포의 대상이었다.

5. 여생

전후 ZiS-3는 예비화포로 퇴역했지만 대다수는 바르샤바 조약 기구 가맹국과 중동, 아프리카, 북한을 포함한 아시아의 친소국가에게 제공되어 현재도 일부의 개발도상국에서는 현역으로 이용하고 있으며, 북한군은 해안경비부대와 보병연대 직할 포병대에서 해안포, 대전차포 등 다목적으로 사용한다. 또 현재 러시아나 동구권 국가에서 전승기념일 행사에 ZiS-3를 예포 사용하기 때문에 보관 중이다.

6.25 전쟁 당시 북한군 주력 야포로 활약하였다. 북한군 개전 시 ZiS-3 보유량은 45mm 53-K 대전차포 다음으로 많은 수량을 차지했으며 인민군 보병사단 1개 포병연대에는 ZiS 야포 2대대꼴로 편성되었고, 보병사단 예하 각 보병연대에도 76mm가 편성되었다. 단순하고 조작이 쉬워 모든 전선에서 모습을 드러냈으며, 소련제 트레일러 + 군마를 이용해 종종 유엔군과 국군이 예상하지 못한 지점에 등장하여 당황케 했다.

윗동네에선 인천 상륙 작전북 해군의 월미도 수비대가 이 포 4문으로 미국 해군 구축함 수 척을 격침시키며 3일을 버텨냈다고 하는데 당연히 개뻥. 북한 해군이 상륙작전 당일에 월미도에 수비대를 배치해 둔 것은 사실이나, 이들은 한미 해병대의 공격에 두 시간도 못 버티고 반수가 불도저에 의해 진지에 생매장당하는 등으로 죽고 나머지가 항복하면서 제대로 된 저항도 못하고 전멸했다.[2] 이 때 북 해군측 전과는 달랑 아군 사살 1명(...) 북에서는 이를 대대적으로 선전하는 영화도 만들었는데, 속지 말자.영화 보러가기 체제 찬양할 목적이 아닌 단순 시청이라면 위법이 아니니 안심하고 보자. 근데 인천상륙작전(영화)에서는 진짜 이 포 몇 문이 나와서 맥아더의 함대를 막으려 하나... 한국 특수부대가 노획한 SU-76의 포격에 203mm 포들과 함께 안드로메다로...

파일:북한76mm.jpg
아직도 굴리는 중이다...

그런데, 이것이 2015년 들어 밀리터리 동호인들의 재평가를 받기 시작했다. 이유인 즉슨, 2015년 8월 20일에 발생한 서부전선 포격 사건에서 조선인민군이 고사총 사격후 2차 도발로 이 포를 사격하였는데, 탄 궤적이 직사에 가깝고 구경이 작은 탓에 탐지와 발사 원점 추적이 어려웠기 때문이다.[3] 부차적으로, 이론 상 최대 사거리[4]가 개편된 국군 보병 여단의 자체 보유 화력인 K105A1 자주포보다 길어 곤란한 상황이 생길 수 있다는 점도 이때 같이 논의되었다. 포탄의 탄착은 장병들의 육안으로 확인이 되었다. 당연하지만, 위력이나 명중률은 연평도 포격전에서도 드러났듯 참혹했다. 게다가, 북한군이 소유한 이 포들은 상당수가 고장나서 쓰이지도 못한다고 한다. 조선인민군/열악한 현실/빈곤함에서도 나오지만 무기를 꾸준히 쓰자면 엄청나게 돈 들여가며 관리해야 하는데 북한군 사정으로 보면 당연할 듯.

6. 평가

전문적인 대전차포로 개발된 것이 아닌 사단용 경야포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소련군 최고의 대전차포라고 볼 수 있다. 일단 저렴한 생산 비용을 가지고 빠르게 양산이 가능하며, 운용하기 편하고, 발사 속도도 빠르며, 보병을 지원하는데도 문제가 없었기 때문에 소련군이 여러가지 용도로 다양하게 사용했다.

하지만 원래 야포로 개발되었기 때문에 실질적인 관통력은 500m에서 90도 각도의 장갑판에 명중했을 때 75mm 정도만 관통이 가능하므로 3호 전차 및 4호 전차조차 장갑이 개량되면서 정면에서는 격파하기 힘들어졌고 5호 전차 판터6호 전차 티거를 상대로는 고전을 면치 못했다. 그나마 판터를 상대로 할 땐 장갑이 얇은 측면을 노리거나, 주포 방패를 근거리에서 노리면 도탄 효과로 인해 포탄이 얇은 상부 장갑을 관통하므로 파괴가 가능했지만 티거에겐 이빨이 먹히지 않았다. 일단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티거 1대를 상대로 최대 12문의 ZiS-3이 일제사격하기도 했지만 잘 해봐야 일시적인 전투불능 상태에 몰아넣는 것이 고작이었다. 이 때문에 소련군은 1944년에 보다 대구경인 D-44 85mm 야포와 BS-3 100mm 야포를 개발하게 되었으나 실질적으로 2차 세계대전 내내 주력으로 사용되었다. 또한 이전 모델인 57mm ZiS-2보다도 대전차 관통력이 부족하여 1943년에 ZiS-2가 판터와 티거의 측면을 상대하기 위해 재투입되었다.[5]

이후 6.25 전쟁 때도 등장하여 한국군을 괴롭혔다. 이미 구식인 소형 화포지만 근성으로 도수 운반을 하여 산악 지대에서 굴리는 이른바 산악포로 운영했는데 대전차포로 사용 가능한 명중률을 가진 만큼 아군의 방어 진지에 명중률 높은 직사 공격을 해서 무척 괴로웠다는 참전 용사들의 증언이 있다. 위력이야 곡사포나 구경이 더 큰 박격포에 비할 바가 아니지만 이들은 비교적 정확도가 떨어지고 산비탈을 파서 만든 방어 진지에는 큰 피해를 주기 힘들었는데 이 ZiS-3이나 가벼운 SU-76M 같은 게 기어 올라와서 직사 포격을 가하는 건 초기 한국군에게 공포였다고 한다.

7. 매체에서

8. 둘러보기

냉전기의 소련군 화포
{{{#!wiki style="margin: 0 -10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bottom: -15px"
곡사포 <colbgcolor=#ffffff,#191919>M-30, D-30, M-10, ML-20, D-1, 2A65
박격포 PM-36/37/41/43, 2B9 바실료크, 2B14 포드노스, 107mm M1938, 120mm M1938, M160, M240, 2B11, 2B16
평사포 ZiS-2S, ZiS-3S, D-20, D-44, D-74, M-46, 2A36, S-23
대전차화기 대전차포 BS-3, D-48, 2A19, 2A29, 2A45
무반동포 B-10, B-11, SPG-9
전차포 강선포 D-56T, D-5T, ZiS-S-53, 2A15, D-10T, 2A24, D-25T, 2A16, 2A17, M-65
활강포 2A19, 2A20, 2A21, 2A26, 2A28, 2A29, 2A45, 2A46, 2A66, 2A82
대공포 KS-12S, KS-19, KS-30, ZU-23, ZPU-4, S-60
주요 화포 구경 76mm, 85mm, 100mm, 107mm, 115mm, 122mm, 125mm, 130mm, 152mm
※ 윗첨자S: 비축 또는 예포, 불꽃놀이용 포로 운용
취소선: 개발되었으나, 제식 채용되지 않음
}}}
{{{#!wiki style="margin-top: -30px; margin-bottom: -10px; letter-spacing: -0.9px; font-size: 0.82em"
※둘러보기 : 파일:러시아 국기.svg 파일:소련 국기.svg 러시아·소련군의 운용장비 | 파일:cannon_icon__.png 화포 }}}
}}}}}}


화포 둘러보기
{{{#!wiki style="margin:0 -10px -5px; min-height:calc(1.5em + 5px); word-break: keep-all"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5px -1px -11px"
<colbgcolor=#34292d> 제2차 세계 대전 연합군 파일:미국 국기(1912-1959).svg 미국 | 파일:영국 국기.svg 영국 | 파일:소련 국기.svg 소련 | 파일:프랑스 국기(1794-1815, 1830-1958).svg 프랑스
추축군 파일:나치 독일 국기.svg 나치 독일 | 파일:일본 제국 국기.svg 일본 제국 | 파일:이탈리아 왕국 국기.svg 이탈리아 왕국
냉전 파일:소련 국기.svg 소련
현대전 파일:미국 국기.svg 미국 }}}}}}}}}



[1] 찢어지고(착탄 후의 상황) 폭발하는 소리(포성)의 독일어 의성어.[2] 애시당초 한국전쟁이면 플레처나 기어링이 돌아다니던 시기다. 그리고 플레처급은 2차대전 당시 14인치 주포를 맞고도 잠시 내리는 스콜에 긴급복구한것만으로도 전선에 복귀한 기록이 있는 구축함이다. 그런 배가 고작 76mm포에 맞았다고 격침되겠는가? 거기다 76mm포 4문으로 쐈다는데 플레처급은 5인치(127mm)주포를 5문을 장착하는데 심지어 속사포다. 76mm 포가 아무리 빨라봐야 수동장전인데 컴퓨터 좌표계산으로 쏴대는 5인치 속사포 5문이 대응사격을 나서는 순간 바로 증발해버릴것이다.[3] 물론 가장 큰 원인은 직접적인 피격이 아니어서 그런 것이긴 하지만, 위의 원인도 무시할 수 없다.[4] 포와 탄약의 상태가 기본은 해야 하는데 북한 형편 상 이것이 보장되지 않고, 우리나라의 산악 지형에선 포가의 앙각이 낮고 장약 조절도 안 되는 평사포가 후사면의 표적을 상대하기 어려워 긴 사거리를 온전히 살리기 어려운 점은 있다.[5] https://en.wikipedia.org/wiki/57_mm_anti-tank_gun_M1943_(ZiS-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