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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2-16 21:36:39

조선인민군/열악한 현실/빈곤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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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식량 부족3. 물자 부족
3.1. 피복 부족3.2. 뒤떨어지는 정밀기술
3.2.1. 북한제 무기의 실상
3.3. 낙후한 무기 체계3.4. 군사정보 수집 수단의 부재3.5. 탄약사용량3.6. 함정, 항공기, 특수부대의 상황3.7. 보병 장비의 열악함3.8. 전차 가동률3.9. 연료 부족3.10. 의료 물자 부족
4. 식량난·물자난·저출산의 결과
4.1. 열악한 체격 및 지적 조건4.2. 전투력의 부재4.3. 해이한 기강4.4. 빈번한 비리 및 약탈
5. 관련 문서

1. 개요

현재의 조선인민군은 말이 좋아서 군대이지, 탄약이 모자라서 사격 훈련조차 모의로 할 지경이다. 심지어 김정은 앞에서도 모형 훈련을 하는 판국이다. 새터민의 말에 의하면 탄자가 아니라 바늘이 꽂혀 있는 총알을 쓰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1] 최전방 보병 등은 북한 기준으론 많이 쏘는데, 그게 5~10발 정도다. 즉 후방 보병 부대나 비보병 전투 부대, 비전투 부대 소속 인원들 대다수는 실탄 한 번도 못 쏴보고 전역한다는 소리다. 탄약 뿐 아니라, 생필품 보급이 모자라서 식량조차 배급 받지 못하는 총체적 난국이다.

이는 북한의 빈곤한 경제 사정 탓도 있지만, 여기에 정치 및 행정 체계의 부패, 체제 선전, 김씨 일가 우상화, 김씨 일가와 그 측근들의 사치도 있다. 2010년대 후반에는 사경제를 하면 군 입대를 하는 것보다 굶주리지 않고 잘 사는 현상이 만연해져 아예 충성심마저 사라져 간다는 주장도 나온다. 이에 2022년까지는 코로나를 막는다며 국경을 DMZ화 하고는 허용되지 않은 사경제, 무역을 금지했지만, 무역금지로 굶어 죽을 위기에 빠진 북한의 각계각층이 다시 당국의 단속을 피해 무역을 시도하기 시작했다.

2024년 6월 16일 한국일보에서 대북 소식통을 통해 압록강 인근 중대의 실태가 잡힌 4페이지 문건을 입수해 보도하기도 했다. #

추가로 말하면 북한 경제의 문제점 중 하나인 변동이 너무 심해서 예측 가능성이 너무 낮다는 점[2] 때문에 조선인민군의 사정이 이 문서의 내용보다 조금 나아지는 경우도 있고 더 나빠지는 경우도 허다하다는 점(즉, 병사들이 오늘 먹은 만큼 내일도 먹는다는 보장조차 없다.)을 꼭 고려하면서 읽자.

2. 식량 부족

"UN 세계식량계획, WFP의 지난해(2022년) 보고서는 북한 전체 인구 2,590만명 가운데에[4] 40%가 넘는 1,070만명이 영양실조 상태라고 밝혔습니다."
KBS의 다큐멘터리, 시사기획 창 2023년 5월 30일 북, 비바람 앞에 서다에서 언급된 내용이다. 정확히는 41.3%인데, 주성하 기자의 추정 인구인 약 2,000만명 기준으로는 53.5%"영양실조 상태의 인구가 북한 총 인구의 절반을 웃돈다" 라는 충격적인 결과가 나온다.

북한은 남한과의 평야 면적이 비슷하다. 그리고 평야 지역은 추워봤자 쌀로 유명한 남한의 강원도 철원군과 기후가 유사하다. 곡창지대인 황해도 재령군 재령평야는 철원보다 따뜻한 곳이다. 강수량이 적다고는 하나 서부 지역은 강수량이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흘러드는 강이 여럿이 있으며, 청천강 일대나 황해도 연백군 연백평야 일대는 강수량도 적지 않다. 평안도의 대표 소우지인 평양보다 강수량이 적은 백령도는 현재 3년간 자급자족 가능한 식량을 생산하고 있다. 게다가 먹여 살릴 인구 숫자도 한국보다 절반 이하로 적다. 그러나 해방 이후 1940년대1950년대에는 후진적인 농업 기술 때문에 한반도 전역이 식량난에 시달리던 시기었고, 이후에도 효율을 높이기 어려운 농업의 집단화, 주체농법 같은 삽질, 무리한 군 규모 증대[5][6] 등으로 군인에게 줄 식량은 적어지게 되었다.

김정일고난의 행군이 한창이던 1997년 "식량이 모자라도 일단 군량미를 걷는 게 더 중요하다"는 발언을 남긴 것, 해마다 10월이 되면 협동농장에서 생산한 현물알곡을 분배할 때 가장 먼저 군량미와 수도미[7]를 우선 공제하고 다음으로 '2호미'라고 불리는 전시식량을 공제한 후 나머지를 농민들에게 결산분배하는 것을 보면, 선군정치를 표방함에도 불구하고 조선인민군의 식량 사정은 매우 열악하다.

이미 1965년 귀순한 북한 군인이 일선전사들은 산나물을 뜯어먹어야 한다고 증언했고,[8] 1977년에도 배고픔을 견디지 못하고 귀순한 북한군[9]이 있을 정도로 북한군의 식량 사정은 오래 전부터 암울한 상황이었다. 다만 정찰총국 부대 소속의 김신조는 군 복무 기간 동안 공산당 중앙당 간부 수준의 풍족한 식사[10]를 먹었다고 증언했는데, 적어도 당시에는 특수부대에 식량을 공급할 여력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nopad> 파일:양식공급규정과 체계.jpg
북한군의 명목상 급양규정[11]

800g이면 0.5되(5홉)[12], 채소 1.5㎏이면 1봉지에 1,000원씩 파는 상추 10봉지, 육류 100g이면 마트에서 1,000원씩 파는 의성 마늘햄 1개, 생선 200g은 캔참치 가장 작은 걸로 2캔이며 담배의 경우 0.5갑(10개피)이다. 나머지는 숟가락 이하의 단위라서 생략한다.

북한 육군 특수부대 작전 장교 출신의 임천용은 남한에서는 남한이나 국제사회에서 지원하는 식량이 북한군에 많이 간다고 생각하지만 이것은 오해라고 증언했다. 북한의 특수부대도 하루 한 끼 을 먹고 고기 배급은 까마득한 옛말이며, 지휘관조차 군수물자를 보급 받고 있지 못한다고 한다. 다른 군 출신 탈북자들은 한국 등에서 온 들은 모조리 전시 예비 물자창고에 집어넣으려고 그동안 창고에 있던 묵은 쌀을 꺼내 먹었다고 증언했다.[13] 다만 이는 한국이 장기보관을 막고자 1년 이상 보관이 불가능하도록 쌀을 전부 도정했기에,[14] 사실이 아니거나 북한 측에서 정말로 장기보관했다가 전부 상실했거나 상한 쌀을 먹었을 가능성이 크다.

그나마 먹고 살 만했던 고난의 행군 이전에도 마른 옥수수 몇 알에 감자 하나로 연명하던 북한군들은 매일같이 굶다시피 했다는 주장도 있다. 다만 워낙 탈북자들마다 주장이 다르거니와, 적어도 군대만큼은 풍족하지는 못해도 배라도 채울 정도로 줬다는 탈북자 주장도 있으므로 부대마다 차이는 좀 있었던 듯하다.

강원도황해도 지역 2군단에 배치되는 것은 아예 '허약', 즉 영양실조에 걸리러 간다고 말하는 실정이다. 물론 부모들이 군대에 있는 자녀에게 돈과 음식 등을 보내는 경우도 있긴 하지만, 이는 일부 병사에 불과할 뿐, 일반 서민의 자녀는 꿈도 꾸지 못한다. 게다가 북한은 아직도 농사에 사용할 비료가 부족하여 인분을 거름으로 사용하는데, 이렇게 기른 채소를 제대로 씻지 않고 먹어서 기생충에 감염되기도 한다.[15]

김정은 시대에는 일정 규모의 부대마다 군부대에 농토를 주고 농사만 전문적으로 짓는 소대를 신설해서 정규편제에 넣어버렸을 정도다. 이로써 인민군은 21세기에 둔전소대가 군대의 정규편제에 포함되는 군대가 되었다. 하지만 이마저도 군인들이 본격적으로 농사를 짓기 시작하자 이제는 반대로 주민들이 군대의 농작물을 털러 오기 시작해서, 병사들이 농작물을 훔치려는 사람에게 실탄을 발사하는 것이 정식 대응 절차다. 곰팡이가 뜬 옥수수라도 제대로 공급이 되지 않아서 식사량을 올리기 위해 제대로 씻지도 않은 옥수수를 가마에 넣어 끓여 먹이고 있다. 또한 위의 채소도 그렇고 옥수수를 씻지도 않고 먹는다는 걸 계속 서술하는 이유는 씻을 물이 없기 때문이다. 물 공급 부족으로 인해 위생 상태 또한 갈수록 열악해지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가령 소독을 제대로 하지 않은 그릇에 밥을 담아 먹은 군인들이 결핵폐렴 등 각종 전염병[16]에 시달리고 있다. 무엇보다 북한군은 그동안 비누치약, 칫솔만은 정상 공급이 되었는데[17] 최근에는 이마저도 모자라서 제대로 공급되지 않아 소금으로 치아를 닦을 수밖에 없고, 비누도 없어 맹물 빨래를 하는 상황이다.




상황이 이렇게 열악하기에, 새터민들은 복무 기간 동안 먹은 식단을 재연해도 다 먹지 못한다. 바로 위 탈북장교 이철호가 한국의 마트에서 사온 재료들로 북한군의 명절 특식을 재연한 영상을 참고해보자. 이제 만나러 갑니다#(VPN 필요)북시탈tv#에서도 북한군 음식을 재현하여 교차검증이 되는데 이철호의 재현과 일치한다. 그런데 작정하고 하루 종일 굶었음에도 불구하고 북시탈의 두 사람은 결국 몇 숟갈 못 버티고, 결국 여기저기서 털어왔다는 명분으로 냉장고에서 미리 꺼내둔 마늘쌈장소금에 대놓고 페트병 물까지 갖춰서 메뉴만 빼면 누가 봐도 남한 식사인 밥상 탈북을 감행했다.[18] 물론 이것도 북한에서보다 훨씬 질 좋은 재료로 만들었는데도 이 모양이다.[19]

탈북 군관 김훈은 군인들의 영양실조가 너무 심한 나머지 영양실조 2도[20]가 되면 '보양중대'라는 이름의 영양실조 중대에 보내며, 이 중대에서도 살아나지 못하면 아예 제대를 시킨다고 증언했다. 이와 더불어 원래 군인 식량은 한 끼에 200g을 배급해야 하나 현재는 한 끼에 140g 정도 나온다고 증언했다. 말 그대로 세 끼 먹어야 할 게 두 끼 분량밖에 나오지 못한다는 것이다. 심지어 이것도 2016년 인터뷰니 현 시점에서는 이보다도 더 열악해졌을 가능성이 높다. #
<nopad> 파일:북한군_명절식단.webp
2023년 12월 1일 촬영된 북한군 국경경비27여단 소속 구분대의 동계훈련 첫날 특식
쌀밥, 돼지고기국, 콩나물볶음, 김치, 고사리볶음 등 6가지 반찬이 나왔으며, 병사들은 이를 보고 기존의 특식보다 잘 나와서 환성을 지르고 웃음꽃을 피웠다고 한다. 다시 말하지만 '2023년' 당시 사진이다. 좀 잘 나온 식단이 아니라 1년에 한 두번 먹을 수 있는 특식이다. 이것도 북한에서 형편이 좋은 부대[21]가 제공할 수 있는 최상급 식단인데도 한국 동네식당에서 파는 백반보다 질이 낮다.[출처]

때문에 북한 군인들은 부모들이 매달 북한 돈 10만 원(약 12달러) 정도를 내야 영양실조를 면할 수 있다. 코로나 이후 일반 주민들의 장마당 월수입이 8~12달러라는 것을 비교하면 잘 사는 집안의 군인이 아니면 굶을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다. 북한군 병사들의 후방 공급은 해당 부대에서 책임지는 것이 아니라 자식을 군대에 보낸 부모들이 책임을 지는데, 병사들은 몰래 부대를 벗어나 부모님들이 보낸 돈으로 하루 두부 한 모, 혹은 반 모씩 사서 먹어야 영양실조에서 벗어날 수 있다. 당연히 "자식이 입대하면 제대(전역)할 때까지 집에서 부모가 같이 군복무를 한다"는 말까지 나오는 지경이다, #

2.1. 원인

원인은 크게 세 가지가 있는데, 첫째 원인은 1974년부터 무세국가를 자칭하는 북한의 기형적인 세수구조다. 일반적인 국가에서는 농민들이 지은 농작물을 국가가 돈을 주고 사들여서 현물세를 따로 걷는다.[23] 즉 현물을 세금으로 내는 대신 돈을 낼 필요가 없어지는 것이다. 하지만 북한에서는 당국이 '군량미'[24]라는 명목으로 수확량의 상당수를 가져가고, 애국미라는 명목으로 또 가져간다. 무세국가라는 선전을 어기지는 못하기에, 저런 식으로 세금 아닌 세금을 걷는 것이다. 김정은 집권 이후에는 일정 부분 이상을 농민 몫으로 주는 조치인 분조관리제를 일부 농장에 한해 실시했으나, 생산성 향상을 위해 농장원들이 투자한 비용을 모두 갚으면 기존과 별반 다를 바 없다. 오죽하면 김정은 집권 초기에는 황해남도 같은 곡창지대보다 농사를 몰래 할 수 있는 가장 척박한 함경북도, 량강도 주민이 더 잘 먹었다는 주장이 있을 정도다.

둘째 원인은 바로 현대적인 비료농약의 부재다. 현대적 농업을 하려면 종자를 자라게 할 수분과 양분, 그리고 지력을 유지시킬 비료는 필수인데 북한은 비료를 생산하고 공급할 능력이 없다.[25][26] 1998년 김대중 정부 출범 직후 북한이 남북 대화에 응하면서 요구한 것 중 하나가 비료의 지원이었을 정도였다. 사실 북한은 8.15 해방 전부터 한반도 최대의 규모를 자랑하는 흥남 비료 공장을 가지고 있었지만, 해당 시설의 노후화, 과도한 군비 지출과 1980년대의 삽질, 미국의 경제제재 등의 원인으로 비료 공급 능력이 고갈되었다. 결국 비료 대신 주민들의 분토(糞土)에 의지하는 처지에 몰렸는데, 아무리 잘 먹어도 나오기 힘든 분토를 한 사람당 매년 1톤을 요구한다.[27] 농약 역시 인체에 최대한 해가 덜 가면서 구제 대상이 되는 세균, 바이러스, 해충, 잡초 등에 유효한 살상력을 갖게끔 독성을 조절해야 하기에, 제대로 된 농약을 만들려면 농화학, 농생물학 관련 지식과 기술이 필요하다. 기이한 것은 비료는 지원해주어도 안 받는 경우가 흔하다는 것이다.[28]

마지막 원인은 바로 주체농법이다. 북한 당국은 "김일성이 교시한 대로 농사를 지었더니 풍년을 맞았다"며 주체농법을 선전하고 보급했다. 문제는 김일성은 농학자농부가 아니었기에, 해당 농법은 단기적으로는 저렇게 풍년을 맞을 지는 몰라도 장기적으로는 파멸로 달려가는 지름길이라는 것이다.[29] 그러나 김일성에 대한 우상화에 따른 구실[30]은 주체농법을 불가침의 영역에 올려놓았고, 신기술 개발 및 신품종 도입의 발목을 잡았다. 그런 게 있어봤자 아무리 열심히 지어도 마구 빼앗아가고, 이상한 시간표에 맞추어 정신력으로 농사를 짓기를 강요하니 농민들이 제대로 농사를 지을리 만무했다. 텃밭에서나 오히려 농사를 제대로 지었다고 할 지경이다. 결국 북한의 농업은 1960년대, 심하면 일제강점기보다도 못한 생산성에 부딪히고 말았다. 이것을 버리고 농민에게 선택권을 주며 중국의 반 정도만 개방을 해도 위의 두 문제는 교역과 합리적인 과세를 통해 저절로 해결되는데, 저것마저 체제가 붕괴된다며 거부하고 있는 상황이다.[31]

2.2. 상세

2.2.1. 곡류

북한이탈주민 출신의 유투버 북시탈tv 에서 조선인민군이 먹는 식사를 재현한 영상이다.[32]
고난의 행군이 닥쳐올 때, 난 군복무 중이었다. 당시 한자투성이 중국산 쌀푸대가 식량으로 군부대에 보급되었는데 정말이지, 그 쌀은 찐내가 엄청나는 밥이지만 굶주리느니 이거라도 먹는 게 어디냐며 고마워해야 했다. 그래도, 당시에도 먹으면서도 같은 북한 군장병들은 이리도 냄새난다고 중국놈들 안 팔리는 쌀을 버리려다가 우리에게 나눠주고 생색내는 거라느니 가축용 사료쌀이라느니 젠장 가축신세라고 투덜거리며 온갖 수다를 떨었다. 그런데, 남한 와서 느낀 게, 내가 북한에서 먹은 쌀은 남한 어디서도 구할 수 없었다. 남한에서 가장 오래된 싸구려 쌀도 사 먹어 봤는데, 북한에서 먹어본 중국산 쌀보다 압도적으로 맛이 좋고 질도 좋았다. 이젠, 다시는 남한에서 그 찐내나는 쌀은 구경도 못할 것이다.
중국 벌목공으로 일하던 도중 탈북했고, 중국에서 숨어 살다가 라오스를 거쳐 2000년 초반에 대한민국으로 귀순한 북한이탈주민 배 아무개 씨의 증언이다.
"1년 사계절이 다 보릿고개라 북한에서는 보릿고개라는 말이 사실상 의미가 없어졌다. 가을에 (식량난이) 조금 낫다곤 하지만 그건 농촌에서이고, 도시 주민들에겐 시장 곡물 가격이 약간 떨어지는 정도 영향이 있을 뿐, 배고픔은 면하지 못한다."
북한이탈주민 도명학 작가의 증언이다.#

주식인 의 경우, 몇 년째 창고에서 묵힌 중국산 [33]옥수수[34]를 섞은 '옥수수쌀', 즉 옥수수밥을 배식하는데, 밥 주걱을 쓰면 주걱에 밥이 눌려 상대적으로 찰기 없는 밥을 많이 퍼낸 것처럼 보이도록 쇠숟가락 2개로 밥을 먼저 살짝살짝 퍼낸다. 이렇게 숟가락으로 집어낸 밥은 얼핏 많아 보이나 부피에 비해서 밀도가 작아 꾹꾹 누르면 부피가 절반으로 줄어든다. 물론 남한 쌀로 만든 밥으로는 이런 방식이 통하지 않는다.

북한군 규정상으로는 1년에 9번 군인들에게 이밥을 주라고 하고 있으며,[35] 그 외엔 모두 강냉이에 겨우 보일 정도로 입쌀을 섞은 밥이다. 덤으로 초봄엔 병사들에게 반찬도 차려지지 않으며, 국도 건더기가 없는 멀건 된장물에 불과한 판이다. 김정은이 2023년 풍작이라며 휴일과 평일에는 병사들에게 이밥만 먹이고 금요일과 토요일에만 강냉이를 섞어서 먹이도록 지시했으나 군부대 지휘관들이 병사들에게 차례지는 입쌀을 강냉이로 맞바꾸며 얻은 차익으로 군대를 운영해야 하기 때문에 이조차 제대로 안 되고 있다.[36][37][38]

2.2.2. 육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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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불고기!!!
뜨거운 그 사랑에 목메여…
이 선전물은 조선인민군 측에서 실제로 만들어 쓴 것으로, 2011년 7월 13일 희천 2호 발전소 건설 현장에 동원한 인민군 육군 건설 공병들이 김정일이 보내준 불고기에 감사의 눈물을 흘리고 저런 포스터를 만들어 붙였다.[39] 이렇게 학교, 한국군에서조차 1주에 몇 번 정도 배식으로 나올 정도로 흔히 먹이는 불고기 한 번 먹는 게 프로파간다가 될 정도이니, 당연히 저 사진이 국내에 공개되었을 때는 엄청난 조롱을 받았다.

북한군의 보급 상태의 부실함을 단적으로 드러내는 것이 바로 육류 보급 현황이다. 보급 상태가 좀 낫던 시절에도 북한군은 1년에 4번 식단에 고기가 올라갔다. 김정일 생일(2월 16일), 김일성 생일(4월 15일), 조선로동당 창건일(10월 10일), 그리고 한국군혹한기 훈련에 해당하는 동계 훈련 기간 개시일(12월 1일)이다. 그마저도 1990년대 들어 경제난으로 보급 상태가 급격히 악화되면서 1년은 고사하고 10년의 복무 기간을 통틀어 식단에 고기가 올라가는 횟수가 손에 꼽을 정도가 되었다. 심지어 나오는 것도 고기가 아닌 고기'국', 그것도 고기는 없고 돼지가 장화 신고 건너간 듯한 물이 조금 나온다.[40]

북한은 축산업으로 육류를 공급하지 못한다. 어떤 동물이든 먹이를 주어야 하는데, 사람이 먹을 것도 없는데 동물에게 줄 먹이가 있을 리가 없다. 양식으로 고기를 얻으려면 아무리 사정이 좋더라도 얻으려는 고기 열량의 최소 2배가 넘는 먹이를 먹여줘야 한다. 설령 사료 등의 먹이가 있어도 수송 능력이 너무나 낙후되어서 제대로 공급하지도 못한다. 사료 대신 풀을 먹으려고 해도, 북한의 낙후된 난방 시스템은 땔감과 풀을 요구한다. 결국 북한의 가축들은 제대로 먹지도 못해서, 오영진의 만화 <남쪽손님>에 의하면 북한 소는 죄다 빼빼 말랐고, 걸을 힘도 없어 매를 맞아도 드러눕기 일쑤였으며, 물똥만 눌 지경이다.[41] 그나마 작은 가축인 토끼, 오리, 거위는 그나마 낫지만, 김정일김정은이 좋아하는 메기는 그놈의 전력, 물자난으로 온수 공급이 안 돼서 대량으로 키울 수도 없다.[42] 고난의 행군 이전에도 군대에서 자체로 가축을 키워 고기 문제를 해결하게 했지만, 사람 먹을 것도 없는 판에 동물 먹일 게 있을 리가 없다.

2017년 4월 23일에는 북한군 공군부대용 돼지공장[43]인 북한군 항공 및 반항공군 4월22일태천돼지공장을 현지지도하며 비행사에게 선도가 좋은 돼지고기를 풍족하게 공급해줄 수 있는 확고한 담보가 마련됐다며 만족감을 표했다고 하는데, 이를 역으로 보자면 공군 비행사 같은 고급 인력도 신선한 돼지고기를 제대로 공급받지 못한다는 것만 역으로 드러난다.

그나마 후술하듯 2019년부터 '병사의 날'[44]을 제정해 한 달에 두 번은 고기를 먹이고 있어 북한군의 고기 부족은 과거에 비해 엄청나게 나아졌다고 할 수 있지만, 북한 정부가 돈이 없어서 고기 같은 음식을 살 돈은 항상 장교들 주머니에서 알아서 부담해야 한다.(...)

때문에 가축화된 고기보다는 토끼, 고라니, 노루 같은 야생동물의 고기가 많고, 심지어 폐사한 동물의 고기도 그냥 먹인다. 물론 그마저도 고기 구경도 못 해본 북한 장병은 아주 기뻐하겠으나, 폐사한 동물은 죽은 후부터 부패가 진행되고 있어 세균곰팡이, 구더기파리가 득실대며 무슨 이유로 죽었을지 모르기 때문에 매우 위험하다. 광우병인지, 콜레라인지, 기타 인체에 치명적인 병인지도 모르면서 먹는 것이다.

백두산 청년 발전소 건설 현장에 보낸 돌격대의 식량 사정이 매우 안 좋아서 효율이 안 난다고 생각했는지 WFP(세계 식량 계획)에서 북한 임산부아동들 먹이라고 준 분유와 영양 쿠키까지 빼돌려서 군인들에게 배급하라는 김정은명령이 내려올 정도였다. 2016년 함경북도 청진시 애육원에서 UN 등으로부터 지원 물자를 받아서 그걸 아이들한테 안 주고 윗선에서 착복해서 외화벌이용으로 전용(轉用)했다는 보도 등이 있고, 오래 전부터 UN에서 보낸 각종 지원 물자들, 특히 식품이나 약품들이 장마당 등지로 대량으로 유출되고 있다.

2015년부터 김정은북한의 상황상 대량 생산이 어려운 육류의 대체 수단으로 바다의 물고기를 잡아서 군의 생선 배급량을 늘리라고 독려한 것 때문에 군인들까지 총 동원해서 물고기잡이에 나서고 있다. 사실 애초부터 북한 어선 대다수는 북한 해군의 통제 하에 있었으므로 새로운 조치가 아니긴 하지만 그 허가 수량을 더 늘린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무리한 출어로 인하여 어선이 중간에 연료가 떨어져서 오도 가도 못하고 망망대해에 표류를 하다가,[45] 운이 좋으면 죽기 전에 남한 땅이나 남한 군함에 발견되기라도 하지만 운이 나쁘면 선원들이 모두 굶어죽은 채로 해류를 타고 썩어가는 시체들을 실은 유령선이 되어서 일본 당국에 발견되는 사례가 속출한다.[46] 덕분에 일본에서도 배 잔해와 시체들 처리 문제가 있다. 바다 날씨가 잠잠하지 않다면 일본까지 닿지도 못하고 바다 한가운데에 가라앉아 사라져버리는 난파선도 있을 것임을 생각하면 희생자 수는 엄청나게 많을 듯하다. 이 난파선들의 숫자는 갈수록 늘고 있는데, 2015년 45건, 2016년 66건, 2017년 104건으로 급증한 데 이어 2018년 225건으로 역대 최고를 기록했다. 2019년에는 조금 줄어든 게 무려 156척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은 해상에서 특별한 기술이 없어도 그물을 건져 올리기만 하면 되는 수산업을 식량과 외화를 충당하기 위한 주요 국책 산업으로 밀어붙이고 있다. 김정일 시대까지만 해도 그렇지 않았는데 특히 2010년대 이후 김정은 시대로 바뀌면서 해가 지날수록 수산업에 비중을 두고 있다는 것이다. 김정은전국의 수산 사업소를 현지 시찰하는 일이 늘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평양 특권층 시민들에게 민심 얻기 일환으로 생선을 대량 공급하면서 지방에 굶고 있는 민심은 뒷전으로 하는 막장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수산업의 비중이 늘어나는 반면에, 정작 북한에는 큰 배가 없어서 조막만한 통통배 위주로 수산업을 진행하다 보니 성과를 올리기는 커녕 주민의 죽음을 초래하는 경우가 매우 많다.[47]

2.2.3. 채소

채소는 육류와는 달리 부족하게나마 보급이라는게 되고는 있는데, 그나마도 대부분이 염장이 되어 나온다. 특히 무짠지가 대부분인데, 얼마나 자주 보는지 북한 군인들은 대놓고 "염장무 삼형제"라고 부를 정도. 이 구성은 바로 염장무를 납작하게 썬 것, 길쭉하게 썬 것, 동그랗게 썬 것을 각각 다른 반찬으로 취급하는 것이다.[48] 짠지라고 해서 백김치나 장아찌 같은 것이 아니라, 무에 소금만 치고 절인 걸 썬 것이다. 이 무짠지는 북한의 최전성기였던 1960년대부터 볼 수 있던 유구한 반찬이다. 명절에는 이 무짠지를 삼각형으로 썰고 고춧가루를 추가한 깍두기, 배추와 무로 만든 백김치, 된장이 나오며, 그나마 된장과 백김치마저 일반 하전사들에겐 돌아가지 않는다.

이러한 격차는 김치로도 드러난다. 이북 지역 김치는 제대로 만든다면 남한의 김치와는 다른 별미가 되는데, 문제는 바로 그 조리법에 쓰일 재료가 북한에는 굉장히 희귀하다는 점이다. 조선 로동자의 하루라는 홍보성 영화의 1분 50초경에는 북한 중산층 가정의 김치가 나오는데, 그나마도 한국의 백김치처럼 하얗다. 중산층의 김치도 저런데 군대의 김치 상태가 어떨지는 안 봐도 뻔하다.

김정은이 방문하면 다른 채소들도 나올 수도 있지만, 사정이 안 좋은 부대는 가짜 음식을 내보이거나, 김정은이 지나가면 바로 먹고 치운다고.

부족한 야채를 보충하기 위해서 '호미병', 즉 호미를 들고 산에서 약초를 캐는 보직도 있다. 간부들이 특별히 산 잘 타고 감 좋은 하전사들에게 중국에 팔 수 있는 약초를 캐게 만드는 보직인데, 약초를 캐려면 훈련 면제 같은 혜택이 있어야 하니 사실상 편제나 다름없다.

한국에서는 저질 중국산 쌀을 찾을 수 없다고 증언한 어느 탈북자는 한국에 와서야 비로소 빨간 김치를 가득 먹어봤고, 김치가 이리도 다양한 음식이라는 것을 실감했다고 말했다.

과일은 말할 것도 없다. 북한에서 과일은 백두혈통이나 평양 시민, 돈주 같은 핵심계층만이 누릴 수 있다. 심지어 평양 시민에게 설익은 사과와 복숭아를 보급해준 것을 김정은의 '위민헌신'의 일환으로까지 홍보하고 있을 정도로 과일 부족 문제가 심각한 것으로 보인다.[49] 후진국이더라도 농업이 살아있는 국가는 최소한 과일 정도는 자급자족할 수 있는 경우가 많으므로, 과일이 부족한 사회상은 Warhammer 40,000인류제국에서나 볼 수 있는 지옥도라고 할 수 있다.이쪽은 쎄기라도 하지

2.2.4. 소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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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은 돌소금 혹은 바돌소금이라 불리는 암염을 주로 쓴다. 원래는 한국처럼 천일염을 썼지만, 1996~97년 홍수 때 북한 서해안의 염전이 전멸하는 바람에 중국에서 암염을 수입하기 시작했다.

물론 암염을 쓰는게 북한만은 아니고 국제적으로 소금을 얻는 주요 수단이긴 하다만 이 암염에는 최소 두 가지 문제점이 있다. 첫째로 불순물이 많다. 북한에서 쓰는 암염은 사진처럼 탁한 색을 띄는데, 저런 암염은 불순물 함량이 상당한 저급품이다. 즉, 일반적인 상황에선 저 상태 그대로 넣으면 안되고 정제해서 정제염을 만들어 써야된다. 그러나 북한은 정제염을 만들 사정이 못되기 때문에 물에 녹여 소금물을 만들어서 쓴다. 물론 이래도 정제염보다는 불순물이 많지만 이것 외에는 방법이 없다.[50]

더욱 심각한 두 번째 문제는 바로 암염에는 필수 영양소인 아이오딘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그래서 암염으로 소금을 만들 때는 반드시 소량의 아이오딘을 첨가해야 하고, 그렇게 하는 곳이 많은데 북한에 들어오는 중국산 암염은 가공 과정에서 아이오딘을 첨가하지 않는다. 그래서 현재 북한 청년들의 발육 부진 및 지능 저하는 아이오딘이 부족하여 갑상샘 기능 저하증이 발병했기 때문이라는 주장이 있을 정도. 아이오딘은 소금뿐만 아니라 미역, 생선 같은 해산물을 먹어도 보충할 수 있지만, 북한 내륙 사람들은 물량과 시설 때문에 해산물을 먹을 기회가 사실상 없기 때문에 더욱 문제가 심각해진다.

2.2.5. 유지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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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처럼 척박하고 겨울에 기온이 낮은 나라에서는 음식의 풍미를 크게 증가시키고 무엇보다 열량이 높은 지방이 중요하지만, 이마저도 부족하다. 애초에 기근에 시달리기 전부터 식용유같은 유지류가 부족해서, 에조차 기름이 들어가지 않았다. 심지어 공업용 폐기름을 급식한다는 증언도 있다.[51] 이런 기름조차 아낀다고 군관이나 사관장스포이트나 숟가락 등으로 밥그릇에 직접 몇 방울씩 떠준다.

국은 대부분 멀건 미역국 같은 것만 나온다. 1980년대에 귀순한 군관 출신 탈북자는 군관과 하전사들의 식사의 다른 점 중 하나는 기름기가 있는 국이었다고 적었다.

2.3. 한국군과의 비교

북한의 입장에서 그나마 사정이 좋았던 시기는 1970년대1980년대였지만, 이 때도 북한 병사들은 무조건 싹싹 긁어서 다 먹었고, 염장무와 밥으로만 끼니를 해결했으며, 고깃국이라도 배급되는 명절을 군인들이 손꼽아 기다렸다. <인민이 사는 모습>에는 갓 수확한 이 여러 '비리'단계를 거쳐 인민군 장병의 식탁에 오르는 과정과, 취사장을 직접 감독했던 (참군인) 간부의 부대는 식량 사정이 그나마 나았다는 서술이 있다. 이 책이 출간된 시기가 1990년대 초중반이었으니, 고난의 행군 이전에는 관리만 잘하면 식량 공급에 큰 차질은 없었다고 보면 된다. 물론 고난의 행군 시기 이후, 즉 1990년대부터는 상술했듯이 처참한 상황이다.

반면 남한은 1970년대부터 북한과의 보급 격차를 기하급수적으로 벌리고 있다. 1960년대 말까지는 한국이 매우 가난한 나라였던 만큼 군대에서 식량이 모자라서 다소 부족하게 배식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1970년대부터는 반찬이 부실해도 밥을 굶는 일은 없어졌다. 70년대 중반까지 1식 2찬이었던 것을 1976년부터 1식 3찬[52]으로 바꿔 줬고, 1980년대 초반부터는 특식도 계란에서 고기 배식으로 바뀌는 것도 모자라 자율 배식까지 조금씩 허용했다. 때문에 남한 병사들은 정량 배급을 받으면 배고프지 않게 먹을 수 있었고, 식단이 맛이 없으면 간혹 밥을 남기기까지 했다. 오히려 부대에 갓 배치되어 입맛없는 신병에게 산더미 같은 밥을 남기지 않고 다 먹이게 하는게 일종의 병영부조리로 여겨질 때도 있었다.

1980년대의 기록 영상 등을 보면, 반찬이 김치, 콩나물 무침, 된장국 등으로 부실하긴 하지만[53] 은 식판의 깊이가 두 배 정도 되는데도 고봉밥으로 넉넉하게 줬다. 점심에 푸짐하게 먹이는 군대의 특성을 감안하면, 점심에는 고기가 나왔을 것으로 추정된다. 1979년에서 1981년까지 최전방에서 복무한 사람의 증언에 따르면, 가끔 북한에서 대남방송이랍시고 확성기로 돼지를 잡을 때마다 잡는 과정을 다 들으라고 시끄럽게 틀었지만, 남한 측은 "북한 돼지들은 죽어도 편히 못 죽는다"며 비웃었다고 한다. 또한 북한이 고난의 행군을 겪는 동안 한국에서는 1식 4찬[54]으로 늘어났고, 우유 같은 음료나 아이스크림 등의 후식 및 부식도 늘었다.[55] 현재진행형으로 창고에는 항시 나라미가 적재되어 있고,[56] 밥과 김치를 많이 먹으면 칭찬하거나 체한다고 걱정하는 사람은 있어도 비난하는 사람은 없다. 오히려 대체 무슨 삶을 살았길래 짬밥을 저리 맛있게 먹냐며 경악하거나 덩치가 좋다면 그러려니 한다. 건빵[57]이나 전투식량, 2020년대에 들어서는 컵라면과자 같은 부식 또한 문자 그대로 뿌린다.

육류로 말하자면, 국군에서는 최소한 일일 단백질 섭취 기준에 미달하는 일은 절대로 발생하지 않는다. 과거와 달리 2000년대 이후 한국군 병영식에는 매 끼니마다 동물성 단백질은 무조건 식단에 포함된다. 쇠고기 같은 비싼 고기는 몰라도 최소한 생선, 닭고기, 돼지고기 같은 저렴한 고기는 매끼 나온다. 식단으로 섭취하는 고기 뿐만 아니라, 외박이나 휴가를 나갔을 때 민간에서 더 맛있는 고기를 먹든지, PX/BX에서 햄과 소시지 같은 냉동 육류 제품을 종류별로 골라 먹거나, 부대 내 식당에서 주문하거나, 배달음식을 주문할 수 있다. 부대에 따라서는 대원이 월급이나 지원비를 써서 회식을 하기도 한다. 해군 함정이나 도서지역 및 격오지 근무자들의 식단은 문자 그대로 밥상에 고기가 넘치는 것도 모자라 핫도그잔치국수같은 야식까지 따로 나오며, 가끔 현지 음식도 맛볼 수 있다. 이는 특수한 근무 조건도 있지만,[58] 장기간 냉동 보존 시 육류가 채소보다 관리가 쉽기 때문이기도 하다.

국군의 상대적 부유함을 보여 주는 척도는 바로 삼계탕인데, 복날에는 대추인삼까지 알뜰하게 들어간 삼계탕이 메뉴로 나와 한 명이 닭 한 마리씩은 먹을 수 있다. 반찬으로 쌈장에 무친 풋고추, 쪽마늘, 양파까지 나온다. 육군은 복날에는 초복, 중복, 말복마다 닭이 1마리씩 통째로 나오고, 크기는 좀 작긴 해도 오분자기전복도 넣는다. 해군에서는 학교 급식 삼계탕처럼 식수 인원 수에 맞게 지급된 닭고기를 가지고 일괄적으로 삼계탕으로 끓인 뒤, 닭고기를 건져서 국물 및 소금, 후추 등과 따로 배식대에 놓고 자율적으로 집어다 국물과 재결합(?)해 먹게 한다. 공군은 비행단 기준으로 전복삼계탕이 나오거나, 닭과 죽을 따로 조리한 뒤 배식 때 같이 주기도 한다. 부대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이런 삼계탕은 작은 닭 1마리가 통째로 들어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며, 못해도 11호 정도의 대형 닭 반 마리는 들어가 있다. 거기에 결식이나 과보급으로 닭이 남는 경우가 보통이고[59], 조류독감이 발생해 닭 값이 많이 떨어진 시기이거나 자율배식이라도 하면 혼자서 2~3마리도 먹을 수 있다. 가끔 조리원의 재량으로 삼계탕 대신 통닭이 나올 때도 있다. 반면 북한군에서는 위에서 말했듯 삼복 대신 '병사의 날'이란걸 지정하는데, 특식이랍시고 재일 신경쓴게 단고기국(보신탕)이다. 한심하게도 개고기 구하는 것도 간부들에게 비용을 전가하고 있고, 그렇게 유난을 떨어도 병사 한명에게 돌아가는 고기의 양은 얼마 안된다.

사실 대한민국 국군해군, 그것도 식비 배정이 1급인 군함 및 잠수함 승조원[60]을 제외하면 급식의 질이 그렇게 좋다고 말할 수 있는 단계는 아니다.[61] 중요한 것은, 분명 국군 입장에서는 당연하게 지적받고 개선해야 할 점이 조선인민군에게는 사치로 들릴만큼 사정이 매우 안 좋다는 것이다. 한국군 내에서 2000년대 초중반 안보 강연 등에 자주 나온 탈북자들의 주요 레퍼토리는 바로 한국군 장병들의 고기 잔반이었다.

북한의 대흉년으로 무수하게 사람이 굶어 죽던 1996년에는 북한군 사관 2명이 제5보병사단을 통해 귀순한 적이 있었는데, 둘 다 키가 160cm도 안 되었던 데다가 몸도 삐쩍 마른 상태였다. 며칠 동안 숨으며 천천히 와서 그런지 배가 고파서 먹을 것 좀 달라고 부탁하자 병사들이 먹던 짬밥을 제공했는데, 두 사람은 허겁지겁 먹으며 '이게 정말 남조선의 하전사들이 먹는 밥이냐'며 놀라워하던 일도 있었다. 부대원들이 북한의 사정이 그렇게 열악하냐고 묻자, 탈북한 북한군 사관은 '이만하면 고급 군관[62]이 먹는 수준'이라고 대답했다. 심지어 한 사람은 '이렇게 잘 먹는 군대를 무슨 수로 이기겠냐'며 한숨까지 쉬었다. 당시의 메뉴는 잡곡밥, 똥국, 생선 조림, 소시지 야채 볶음, 두부, 배추김치였는데, 메뉴가 지금 그대로 나오면 식당이 텅텅 빌 수준이고 당시 기준으로도 특출난 구성이 아니었는데도 저런 경악할 반응이 나온 것이다.[63] 이 일화가 지금보다도 군인 처우가 열악하던 시절인 1990년대의 이야기였으니, 현재 한국군에서는 병영식으로 늘상 먹고 있는 맛없어서 PX를 찾게 만드는 짬밥이 북한에서는 사령부 간부 식당에서나 먹는 수준의 식단일지도 모른다.

3. 물자 부족

1983년, 남한의 국방비가 44억 달러로 19억 달러의 북한 국방비를 훨씬 앞섰다.(중략) 1999년 기준으로 남한은 북한 대비 203~331%의 전쟁수행 능력 우위를 보이고 있다.
영국 IISS(국제전략문제연구소)의 분석

1980년대 및 1990년대 대한민국 국군이 이미 조선인민군의 전투력을 상회할 수준이면, 훨씬 많은 예산이 투입되고 무기체계도 첨단화된 2020년대는 말할 것도 없다.[64] 물론 북한이라고 가만히 있을 리가 전혀 없었고, 당연히 신형 무기들을 내놓고 있긴 하지만 고난의 행군으로 인한 경제 붕괴 여파와 대북제재로 인해 제대로 된 전력 증강과 운용이 불가능해 만성적인 물자 부족에 시달리고 있다. 애초 식량이 부족한 상황에서 군대를 유지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지만 거기서 그치지 않고 전반적인 무기체계와 장비들이 노후화되고 보급품도 크게 부족해지는 사태도 맞이하게 되었다.
남조선하고 똑같이 (군사훈련) 하면 우리만 녹아난다.
2022년 가을 대북소식통이 밝힌 실제 조선인민군 내부 여론

북한의 경제난은 1990년대 이후 경제난을 겪자 군대에도 지원과 배급이 줄어들지만 훈련 강도는 여전히 높아, 빈약한 영양 상태에서 사기 저하로 신음이 나온다고 한다. 게다가 경제난으로 그 훈련이란 것들 중에서 대규모 전술 훈련은 꿈도 못 꾼다는 점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북한이 키 리졸브독수리 훈련과 같은 한미연합훈련에 과민반응하는 이유 중 하나다. 사기진작 겸 대외적인 대응을 위해 북한 내부에서도 비슷한 규모의 훈련을 해야 하는데, 이러한 훈련을 수행할 물자가 없기 때문이다. 그 이전에 군대에서 인민군 병사들이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영양실조에 걸린 경우도 있을테니 아마도 훈련을 수행할 체력이 없을 듯하다.

이는 2010년의 연평도 포격전, 천안함 피격 사건 등으로 북한군의 경계령이 강화하고 김정일 이후 선군정치가 강화한 이후엔 더욱 심해졌다. 코로나 19 창궐 이후에는 국경도 봉쇄했으니 밀수도 중단되었고, 따라서 상황은 더욱 악화되었을 것이다.

북한은 1970년대부터 한국과 미국이 합동군사훈련을 할 때마다 아주 히스테릭한 반응을 보여왔으며, 항상 훈련 중단을 남북협상, 북미협상의 중요한 선결조건으로 요구해왔다. 실제 팀스피리트 훈련, 키 리졸브 훈련, 을지프리덤가디언 연습 등이 외교 협상 와중에 북의 요구에 따라서 연기되거나 규모가 축소된 사례가 있다. 북한이 이렇게 대규모 합동군사훈련에 격렬하게 반발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로 꼽히는 게 바로 물자 부족이다. 남쪽에서 대규모 훈련을 하니 이에 대응하려면 자기들도 비슷한 규모의 훈련을 해야 하는데, 물자가 부족하니 자신들은 불가능하다. 결국 군사적으로는 마땅한 대응이 안 되니, 훈련 중단을 요구하면서 대화 분위기를 띄우며 최후의 발악을 해대는 것이다.

2023년에 들어서면서 북중 국경지대에 투입되고 있는 특수부대인 폭풍군단을 돌연 철수시켰는데, 주민에게는 오히려 전쟁이 일어나지 않는다고 설명하고 있다. 이는 두 가지 해석이 가능하다. 첫 번째는 잃을 게 전혀 없는 북한 주민들이 전쟁을 바란다면 총구가 북한 정권으로 향할 가능성이 높다는 의미이며, 두 번째는 한미합동훈련에 대응할 물자나 전투력이 없다는 걸 거꾸로 보여주고 있다는 뜻이다.

3.1. 피복 부족

가장 기본적인 보급 물자인 피복 사정조차 좋지 않다. 탈북 조선인민군 육군 하전사 출신 2명이 진행하는 유튜브 채널 북시탈tv에 따르면, 육군 군복을 신병 때 단 1벌만 지급하고 있다. 그리고 1년마다 1벌씩만 추가로 줬는데, 최근엔 보급 사정이 더 악화돼 2년마다 1벌씩 추가 보급되는 것으로 개악됐다.[65] 탈북 군관 김훈 역시 하복은 2년에 한 번, 동복은 3년에 한 번, 겨울 신발은 2년에 한 번, 여름 신발은 1년에 한 번 준다고 증언했다. #

대한민국 국군처럼 활동복 등 근무 외 시간에 부대 안에서 따로 입을 피복을 주질 않음에도 전투복 1벌만 주기 때문에, 신병이나 보충받은 여벌 피복이 적은 이들은 1벌 하나로 1년 넘게 버텨야 한다. 게다가 세탁도 거의 못해서 비위생적인 데다, 어쩌다 하더라도 마를 때까지 속옷 바람으로 있으면 또 처벌을 받으므로, 빨자마자 최대한 짠 뒤 젖은 옷을 그대로 입고 마를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조금 머리를 쓴다면 취침 직전에 빨래한 뒤 점호 때만 잠깐 입었다가 벗어서 말리는 방법이 있다. 여름에는 그나마 옷이 빨리 말라서 다행인데 겨울에는 이런 순간이 지옥이다. 특히 신병들은 대개 내무부조리로 선임 하전사들에게 새 피복을 빼앗기고 낡은 중고 피복을 입게 되므로 그 고충은 더욱 크다.

전투화 역시 1켤레만 지급되고 매년 1켤레가 추가로 주어지는데, 북한군 전투화는 지하족이라고 부르는데 고무신에 캔버스 천으로 된 몸체를 본드로 붙인 형편없는 신발이라 금방 접착이 떨어져 못 쓰게 되는 일이 잦다. 이 때문에, 경계 근무를 나가거나 할 때 상태가 좀 나은 신발을 서로 돌려 가며 신는 일도 흔하다. 군관들은 검은색 가죽 전투화를 지급받는다. 그리고 군관들은 양말이 지급되는데 하전사들은 양말조차 지급되지 않아 발싸개[66]를 양말대용으로 사용하는 정도다. 북한군에서는 소련 군에서 전해진 전통으로 발싸개가 양말보다 보온에 좋고 장거리 행군에 유리한 것으로 인식하고있다. 북시탈TV에서도 발싸개를 감싸는 게 4분 10초부터 나온다.

그나마 계절별로 옷도 다르고 지급량도 넉넉한 해군이나, 군종 불문 별도의 피복이 나오는 군관 혹은 특수 피복 지급 부대 등은 여벌이 나올 수 있고, 그 외 부대라도 의무 복무기간이 8년에 달하기 때문에 선임 하전사들의 피복을 후임에게 직접 혹은 부대에서 회수해 재지급하는 식으로 버티는 등으로 여벌을 가지는 곳도 있긴 하다.

2024년 3월 기준, 북한에서 최전방 부대로 분류돼 나름대로 보급 우선 순위가 높은 함경북도 주둔 육군 2군단 일부 구분대에선 군인들에게 새 군복을 4년에 한 번 공급할까 말까할 상황이라, 군인들이 군복을 기워 입어야 한다는 정보가 있다. 뿐만 아니라 신발 발싸개도 부족해 주민들에게 천을 갖다바치라고 하는 이다.

3.2. 뒤떨어지는 정밀기술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북한/산업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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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악한 현실 부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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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1. 북한제 무기의 실상

파일:AKR20231212160100108_02_i_P4.jpg
러시아군이 북한제 152mm 포탄을 해체한 뒤 촬영한 사진을 친우크라이나 SNS 매체가 소개한 내용.
포탄 충전재가 포탄마다 다 다를 정도로 불규칙적이었고 심지어 있어야 할 구리선이 없는 포탄도 있었다.

우크라이나침공중인 러시아군에 북한이 대규모 군사 지원을 단행하면서 북한제 군사 장비들의 실상이 밝혀지고 있다. 특히 북한제 포탄의 품질 불량으로 위력이 미달하였으며 심지어 동일한 로트 넘버 단위에서조차 충전재 구성과 화약 분말의 편차가 보일 정도이다.

장약 역시 러시아제 장약보다 저질이었으며 이 때문에 포탄의 사거리가 카탈로그 스펙의 절반밖에 되지 않았다.

주성하 기자는 구조적으로도 북한제 군사장비의 품질은 결코 나아질 수 없는 환경이라고 지적했다. 북한은 철저한 계획경제 국가이고 무조건 당에서 결정한 생산 수량만 맞춰야하기 때문에 질을 신경 쓸 수 없다. 거기에다가 고난의 행군으로 경제가 붕괴되면서 군수공장 노동자들은 생존을 위해 무기 생산에 필요한 물자와 장비들을 횡령했다. 또한 이를 감독할 간부들 사이에서도 무기체계의 질적 문제는 은폐해야 하기 때문에 서로 뇌물을 주고받을 수 밖에 없고 사실상 무기의 하자는 개선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거래하자는 나라가 이딴 저질 포탄을 공급한 것에 열받은 건지 러시아가 북한에 소비기한이 1년 이상 지난 밀가루를 지급한 걸로 확인됐다.#그래도 소비기한 지난 밀가루도 북한에서는 없어서 못먹는다

3.3. 낙후한 무기 체계

저가 북에서 대학을 다니던 1990년대 교도에 나가니 저희 고사포는 1942년에 제작돼 6.25 전쟁 때 쓰던 무기였습니다. 수동으로 열심히 포신을 돌려도 비행기 속도도 못 따라가는 이런 반세기 전의 고물로 전쟁을 할 수 있을까 의문이었습니다.[67][68]
- 주성하 기자
북한의 전투체계 대부분은 골동품화되었다.
-제15대 주한미군 사령관 빈센트 브룩스분석

북한의 낙후된 무기 체계에 대한 예시를 들면 다음과 같다.
파일:북한포병.jpg
파일:북한76mm.jpg* 제2차 세계 대전 때 운용되던 소련제 곡사포들과 대전차포들이 현역인데, ML-20 곡사포는 2020년 김정은앞에서 화력 시범에 동원되었다. ZiS-3 대전차포도 보병연대 포병중대 예하에서 1선급 장비로 운용되고 있으며, 서부전선 포격 사건 때 동원되어 처참한 명중률을 보였다.[71] 저 ZiS-3 대전차포는 고속철갑탄의 100m 관통력이 KE 119mm 정도이므로, K-2는 커녕 K-1의 차체측면도 영거리에서 못 뚫는다!
파일:mig-21 .nk.4.jpg
파일:/news/201507/31/sbsi/20150731090610141.jpg* 북한 공군기 대다수는 1950~60년대에 개발된 1~3세대 제트 전투기[72]들이다. 이중 그나마 최신형인 MiG-29 전투기조차 한국 공군의 KF-16에게 밀리고, 경공격기인 FA-50에게마저 부분적으로 열세이다. 한국 공군은 KF-16보다 고성능의 F-15K 전투기와 최신형 스텔스 전투기 F-35도 운용하고 있다. 한국 공군도 3세대 기종을 보유하고 있지만, 전부 순차적으로 퇴역 수순을 밟고 있다.

김정은도 이를 잘 알고 있어 그의 집권 이후 신형 재래식, 비대칭 전력들이 속속 실전배치되고 있는 중이다. 특히 2020년 열병식에서 M-2020, M-2018 자주곡사포, M2020 차륜형 장갑차, 번개-7 대공미사일과 같은 신형 재래식 무기들을 적극적으로 공개하기도 했다. 그러나 경제난으로 인해 그 양산 대수가 적어 정면으로 남한의 군사력에 도전할 수 없다는 것을 알 수 있기 때문에 핵무기의 한계에도 불구하고 이를 결코 포기하지 않는 것이다.

3.4. 군사정보 수집 수단의 부재

북한은 첨단 감시 자산을 마련하고 유지할 비용이 없어서 감시 정찰 전력이 전무하다. 즉 북한군은 야전의 상황을 파악하기 어렵고 적의 기습에 취약하다. 그래서 북한은 2023년 4월을 목표로 군사 정찰 위성 만리경-1 발사에 도전해 3번째만인 12월에 겨우 성공했으나, 해상도는 10m 이상으로 상업 위성으로 사용하기에도 부적절한 수준이라고 평가되었다. 구글 어스 등에 제공되는 미국 민간 업체의 위성 사진이 해상도 1m대이다. 2023년 12월에 발사한 위성을 보면 북한 측 주장을 빌어 괌 미군기지를 촬영했다는 부분도 의심스러운데, 위성을 발사해서 촬영했다는 부분을 공개하지 않는 걸 보면 해상도 수준이 조잡하다는 말이 있어서 자신들이 공개하기에 민망하다는 건 아니냐고 추정해볼 수 있다. 더불어 러시아의 기술을 들여왔다는 점을 감안해서 보면, 이게 러시아의 기술이 노출되는 걸 통제하는 것도 봐야 한다.
파일:북한 군사정찰위성 발사체.jpg
2022.12.18 발사 군사정찰위성 발사체

대잠 전력 역시 마찬가지다. 한국 해군은 MH-60 시호크 대잠헬기와 P-8 포세이돈 대잠초계기를 도입해서 대잠 전력을 강화하고 있지만, 북한은 대잠 항공기가 사실상 전혀 없다.

3.5. 탄약사용량

다음날부터 우리는 오전 내내 200~300발을 쏘았다. 새로운 총으로 시험 사격을 함으로써 방아쇠를 길들이는 것이었다. 팔이 몹시 아팠지만, 실탄을 사용한 사격 연습은 매우 재미있었다.

우리가 이렇게 하루에 수백 발이나 되는 실탄을 사용하는데 비해, 북조선 군대에서는 1년에 1인당 세 발의 실탄밖에 사용하지 못한다. 하기야 수십만 명이나 되는 군인들의 실탄을 충당하려면 실로 엄청난 실탄이 필요할 것이니 그럴 수밖에 없을지도 모른다. 브라우닝 45구경으로 3~4개월 정도 연습하자 다시 새 총이 도착했다. 이번에는 체코슬로비키아 제품으로 210형이었다.
후지모토 겐지. <김정일의 요리사>[74]

연간 1인 당 평균 교탄사용량은 3발 이하다. 호위부대나 특수부대는 제대로 사격 훈련을 하겠지만, 3발이라는 수치가 평균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후방 및 건설 부대는 사실상 제대 기간 내내 실탄을 한 발도 못 쏘고 제대할 것이다.[75] 심하면 개인화기조차 지급이 안 된다. 또한 북한군은 경계근무시 실탄을 고작 3발 내준다고 한다. 실제로 경계 근무를 서는 북한군 사진을 보면, 소총만 둘러메지 국군의 탄입대에 해당하는 탄창 가방은 없는 경우가 압도적으로 많다. 이것으로는 영점 사격조차도 못한다고 보면 된다. 영점조차 못 맞춘 총으로는 목표물을 맞출 수 없다.

참고로 대한민국 국군 전군 1인 당 평균 교탄 사용량이 600발,[76] 미군은 1,100발, 중국군은 1,000발이다. 특히 대한민국은 보충역들도 3주 기초군사훈련 동안 9발은 쏘며, 기준 미달로 재훈련을 거치거나 사격 통제관의 재량으로 이보다 많이 쏠 수도 있다. 또한 모의용이긴 하지만 수류탄공포탄까지 사용한다. 예비군조차 1년에 1인당 최대 50발씩 실탄 사격을 한다. 대한민국 육군 예비역 병장 기준으로 동원 훈련 가서 쏘는 탄약 총합이 최소 40발 이상이다. 동미참이라 할지라도 최소 5~6발은 무조건 사격한다. 수류탄은 훈련 시 연습용 수류탄은 수도 없이 던지며, 신병 훈련 기간 동안 진짜 수류탄 또한 특별한 사정이 있지 않다면 1발을 의무적으로 던진다. 육군 장교의 경우 신임장교 지휘참모과정의 훈련 중에서 편제화기 사격 시범을 위해 K4 고속유탄기관총을 난사하기까지 한다. 해군, 공군도 1년에 2~4회 정도는 개인화기 실사격훈련을 한다. 헌병은 육군과 같은 강도의 실사격 훈련을 하는 곳도 있다.

이러한 상황이니 북한군에선 대규모 전술 훈련도 하기 힘들다. 이래선 북한군의 10년 근무한 병사와 부사관이 한국군 사회복무요원보다 훈련의 강도 면에서 동등하다고 보장하기 힘든 상황이다.[77] 훈련 강도로 따지면, 유사시 제대로 싸우는 시늉이라도 낼 수 있는 병력은 오히려 남한군보다 훨씬 적을 확률이 높다.

포 전력으로 말하자면, 75%나 되는 전력들이 사용불능이거나 작동이 안된다는 사실도 드러났다. 2015년 서부전선 포격 사건 당시 준전시상태를 발령했음에도 북한군 전력의 50%가 노후화로 가동 불가능이어서, 북한 당국의 대대적인 검열이 진행되었다.

3.6. 함정, 항공기, 특수부대의 상황

북한 해군의 경우 만성적인 기름부족으로 전투훈련, 경비활동 등에 상당한 지장을 받고 있다.
국가정보원분석
1990년대 들어와서 한 달에 하루 정도 훈련을 하는데, 비행사 1인당 월 평균 비행 시간은 30~40분밖에 안 됩니다. 연유(기름)가 모자라 제대로 훈련할 수 없습니다. 1년에 비행기를 한 번도 못 타는 비행사가 10% 정도 돼요. 「회복훈련(이착륙 복행운동)」도 겨우 하고 있습니다. 회복훈련이란, 훈련하지 않으면 감각을 잃어버리는데 이를 회복한다는 말입니다.
2006년 5월, 귀순한 북한 공군 대위 박명호증언.
교탄을 소비할 수라도 있는 육군과는 달리 북한 해군, 북한 공군의 사정은 더욱 열악하다.[78] 함정의 경우, 이미 90년대 말부터 유류가 부족해 나진급이 상시 초계 항해하지 못하고 적당한 해상에 투묘[79]하고 특이사항 없으면 며칠간 세워 놓다 돌아가는 지경이었고, 이것도 북한 해군의 최신예함이랍시고 기름을 100% 채워 준 결과였다. 경비정이나 어뢰정 등은 반도 못 채우고 나가서 역시 일년 중 대부분을 기지에 머물거나 해상에 대충 떠 있다 돌아오기[80] 일쑤로, 이들 소형 함정에 기름을 만재한다는 건 승조원들에게 대남 도발을 하려는 징조라 여겨질 정도다. 거기에 해군 군관들이 기름을 팔아먹는 부정도 흔하게 저지른다.

그나마 잠수함은 보급 상태가 우선 순위가 높아서 약간이나마 사정이 낫고, 일반 함 승조원들도 피복과 급식 수준이 일반 육군들처럼 헐벗고 굶다시피하진 않는 편이다. 북한에서 해군이 부모가 돈 좀 써야 갈 수 있는 군종인 이유 중 하나다.

2013년에는 구잠함과 경비정이 침몰해 수십명의 북한 해군 승조원이 사망한 일이 있었다. 이는 연료 부족 뿐만 아니라 관리 부실로 인한 선체 노후화 문제까지 겹친 일로, 김정은이 이를 참배하면서 북한 당국도 공식적으로 인정했다. 이전에도 경비정이 침몰해 수십명의 사망자가 발생하는 사고가 있었다.

전투기의 경우 북한 전투기 조종사들은 실제 비행 훈련 시간이 연간 2시간에 불과하다. 그것도 1달에 날씨 좋은 날을 택해서 10~20분씩만 뜬다. 참고로 대한민국 공군의 정예 파일럿들은 연료 아낀다고 연간 130시간만 훈련하고, 나머지는 전부 시뮬레이션 훈련으로 때운다.

다른 항공기 역시 마찬가지이므로 뜨지 못하는 실정. 한국에서는 특전사의 경우 헬기 띄울 연료 아껴야 한다며 기구 강하로 때우는 일도 있는데, 북한군 공수 부대는 그 기구 강하를 할 연료조차 없어서 그냥 공수탑을 만든 뒤 거기까지 기어 올라가서 강하 훈련을 한다. 물론 높이는 얼마 안 된다. 류경호텔 조차 330m에 불과한데 강하 훈련 높이는 훨씬 더 높은 고도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구조물로 구현해낼 수 있는 수준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건 한국에서도 인간이 가장 큰 공포를 느낀다는 11m짜리 모형탑으로 유명하니 그나마 양반이고, 엉성한 모형 헬리콥터를 가져다가 리프트처럼 줄에 매달아서 쓰기도 한다.


항공 및 반항공군은 아예 땅바닥에 지도 그려서 항공기 모형과 판떼기 계기판으로 훈련한다. 해당 상황은 2014년 12월 9일에 '오중흡[81]7련대칭호를 수여받은 조선인민군 항공 및 반항공군 제458군부대'를 시찰한 것으로, 최정예 부대가 국가 원수의 면전에서 이런 행위를 했다는 말이다. 다음 장면에서는 실내 시뮬레이션 영상이 나오는데, 아무리 해도 군용 시뮬레이터라고는 불러주기 힘들고 사실상 구글 어스 수준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북한이 에어쇼를 할 때마다 외국에서 감탄을 한다. 옛날 비행기가 어떻게 날아다니는지 직접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김정은이 판문점을 시찰하러 왔을 때, 그당시 한미연합훈련 중이었는데 조선인민군 공군의 조종사들을 평양으로 불려들어서 영공을 비우게 했다. 이는 조선인민군 공군의 방공능력이 없다는 걸 반증하는 것이다.

3.7. 보병 장비의 열악함

귀순자들이 재현한 북한군 보병 군장의 열악함


2013년 대외 공개한 노농적위대[82] 선전 동영상. 사격 훈련 중 총기 고장으로 사수가 쏘는 시늉만 하는 장면이나 총탄이 걸려서 방아쇠가 딸깍대는 소리가 그대로 나왔다. 멀쩡한 군대라면 저런 선전물을 찍던 중 문제가 생기면 재촬영을 했을 것이다. 저런 방송사고급의 장면을 그대로 보낼 정도면 제대로 된 격발은 포기했을 것이라는 말이다. 애초에 전간기 시절에 만들어져 적어도 70~80년 된 DP-28을 쓰면 문제가 없을 리가 없다. 또한 기관총에 탄창이 없다는 점, 대량의 탄을 난사하는 것이 생명인 기관총에 탄을 고작 5발 물린다는 점, 위장망이 플라스틱이나 비닐이라는 점, 대전차 화기를 몸과 같은 방향으로 두고 엎드린다는 점,[83] 사용하는 국가도 별로 남지 않은 RPG-2DP-28을 아직도 쓰고 있다는 점, 환갑이 넘어 보이는 노인이 소총수라는 점 등 문제가 많다.

비슷한 문제점이 많았던 남한의 예비군은 이제 M16A1K2 소총을 개인화기로까지 지급하며 중화기도 K15 경기관총K16 기관총, K4 고속유탄발사기, M60 기관총과 같은 준수한 장비들을 지니고 있다.

3.8. 전차 가동률

연간 전차 실운전 시간이 3시간 미만이다. 그것도 훈련한다고 갱도로 전차를 숨기거나 중간 중간 점검하기 위해 시동 돌리는 시간 포함해서다. 10년의 군생활 사이 1번도 기동 훈련에 참가 못한 운전수가 수두룩하며 모형 계기판으로 운전하는 시늉을 내는 것으로 훈련한다는 증언이 있다. 예를 들어 장교는 15년의 복무 기간 동안 겨우 3회 밖에 기동 훈련을 하지 못 한다.

게다가 하도 전차가 습한 갱도 속에 오래 있어서 녹이 슬거나 잔고장이 많이 난다고 하며, 서류상으로는 작동되는 것으로 되었으나 실제로는 고장이 자주 난다. 여기서 공산주의 국가 특유의 시스템적 문제가 발생하는데, 전차를 타고 10,000㎞를 달리면 의무적으로 중수리 공장에 보내야 하지만 그 10,000㎞를 운용할 수 없다. 하지만 단지 중수리 공장 노동자 동무들을 놀릴 수 없다는 이유로, 거의 움직인 적도 없고 고장도 없는 전차들을 교대로 중수리 공장으로 보낸다.

포탄 또한 없어서 포사격 훈련은 동축기관총 사격으로 대체했다. 그것도 조준수가 딱 3발 발사한다. 여기에 더하여 전차에서 쓰는 연료와 전차 배터리까지 다 가져다 팔기 때문에,[84] 전쟁 나면 전투 불능에 빠질 가능성이 높다. 북한이 쳐들어와도 서울까지 올 수는 있을지 모르겠다는 말은 농담이 아니다. 북한이탈주민 출신의 동아일보 주성하 기자도 이렇게 주장할 정도다. 어떻게든 철책을 뚫고 내려와 전차전이 일어나도, 현 국군 제식전차인 K-1 전차와의 격차와 공격헬기 때문에 궤멸될 것이다.

이런 사정 때문에 북한군 기갑부대 작계는 어떻게든 경기도 연천군이나 파주시까지 도착한 후, 해당 지역의 주유소를 털어 얻은 기름으로 서울까지 진격하는 것을 정식 작전으로 채용했다. 그러나 이 작전 자체가 말도 안되는 것이 국군은 퇴각시 청야전술을 할 것인지라 대부분의 주유소는 기름을 전부 빼냈거나 최소 파괴되었을 것이고, 설령 멀쩡한 주유소가 있어서 급유를 해도 보유 차량들의 필요 연료량을 충족시키지 못할 확률이 높고,[85] 주유하는 동안 공격 당할 가능성도 상당히 높기 때문이다. 즉, 국군이 연천과 파주의 주유소만 파괴해도 아예 작동이 될 수 없는 작전을 정식 작전이랍시고 채용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도 북한에서는 자신들의 전력을 인정하기는커녕 전차의 위력은 소리와 진동에 있다는 괴상한 명제에 입각하여 북한 전차 소리가 더 크니 북한 전차가 한국 전차보다 더 강하다는 기적의 논리를 펼치기도 했으며, 심지어 전차포로 원자탄을 쏠 수 있다는 주장까지도 했다.[86]

심지어 전력난이 너무 심각한 나머지 군 간부들은 탱크 배터리를 TV를 보거나 조명을 켜는 데 사용하고 있다. #

3.9. 연료 부족

미군은 90년대부터 북한군은 연료가 부족하여 공군 및 전차 훈련 수요가 극도로 적다고 평가했다. 이 문제 또한 개선될 날이 요원하다. 2016년 1월에 북한이 대대적으로 선전한 대연합부대(군단)간 야전훈련 영상에는 하천에 교량전차나 중장비 대신 공병들이 자재를 날라 교량을 부설하는 모습이 나왔다. 분명 북한은 MT-55와 MTU-20, BLG-60 등의 소련제 교량전차를 다수 보유하고 있는데 굳이 왜 인력으로 했는지는 불명인데, 가장 유력한 추측은 바로 연료 부족이다. 그럴 수 밖에 없는게 2020년에도 전연군단의 연료가 거의 바닥났으며, 조선인민군 전체의 전시비축용 연료는 사흘치 뿐이라는 정보가 있다.

반면 대한민국의 경우 2023년 9월 기준으로 최대 200일이 넘는 양의 석유를 비축하고 있는데, 정부에서 사용할 분량은 119일 어치고 민간에서 사용할 분량은 113일어치다. 이것도 어디까지나 비축분에 한하며, 한국의 높은 신용도 덕분에 수틀리면 기름을 계속 사와 후방에서 정유해서 쓰면 그만이다.

3.10. 의료 물자 부족

말라리아가 창궐해서, 북한과 접경하고 있는 남한 지역에서는 전방 지역 복무자, 거주자, 방문자의 헌혈이 일부 제한[87]될 지경이고, 2017년 판문점 귀순 북한군 총격 사건 이후에는 탈북 병사를 수술하는 동안 엄청나게 많은 기생충이 발견되었다. 체내에 있던 수만 마리 이상의 기생충 중에는 27㎝ 가량 되는 회충까지 발견되었으며, 총격의 여파로 분변까지 뒤섞인 상태에서 체내의 기생충을 제거하기 위하여 의료진들이 상당히 고생했다고 한다. 이후 환자의 상태가 회복되면서 구충제를 투여해 잘 해결되었다고. 체내에 기생충이 있다는 건 몸을 씻을 그 싸구려 비누조차 구하기 힘들다는 얘기이며, 국군이든 인민군이든 공통적으로 가장 보급이 제대로 이루어져야 할 판문점에서 그런 병력이 나왔다는 건 심각한 문제다. 게다가 치료 과정에서 항생제가 아무 내성 없이 너무나도 잘 들었다고 하는데, 이는 판문점에배치된 엘리트조차도 항생제를 써본 적이 없다는 뜻이 된다.

혹한기에 겨울철 공사를 장갑도 장비도 없이 맨손으로 한다는 기사가 올라왔다. 북한군의 실정이 얼마나 열악해졌는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부분이다. 거기에 조선 중앙 TV에서는 개울가에 놓을 다리도 못 만들어서 사람이 물 속에 들어가서 수작업으로 다리를 놓은 걸 자랑삼아 선전했다.

4. 식량난·물자난·저출산의 결과

앞서 언급한 식량, 물자난도 심각하지만 선진국에서 흔하다는 저출산도 기이할 정도로 만연하다. 통계 조작으로 출산율이 좀 높아보여도 빈국치고는 기괴하게 출산율이 낮을 지경이었는데, 주변에서 지인과 자신이 몇 명을 낳았냐는 탈북민 설문조사[88]로 실제 출산율을 조사해보면 그보다도 낮다는 것이다. 둘도 드물 지경이며, 2010년대 기준 일본보다 출산율이 낮다. 얼마나 북한 사람들이 안 낳는가를 확인하려면 이 문단을 참고할 수 있다. 고난의 행군으로 트라우마를 겪은 사람들이 많고, 시장화는 진행되었지만 사회주의의 지향과 달리 일과 가정의 양립이라는 개념도 꽤 적기 때문이다. 장사를 하는 여성은 자식을 잘 가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게다가 당 간부 같은 특권계층에게 자원을 몰아주고, 이에 지지 않으려는 자본가 계층인 돈주도 자식에게 돈을 많이 쓰다보니 일반적인 사람들은 자식을 키울 때 상당한 박탈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징병 기준을 낮추고, 여군도 징집하는 것은 이 문제가 더 크다.

4.1. 열악한 체격 및 지적 조건

북한에서 항상 하던 이야기가 있거든요. 훈련할 때나 일과, 집회할 때나 항상 일당백 군인이 되자고 했었거든요. 한 명이 백을 당하는 군인이 된다고. 근데 한국 군인들 보니까 그런 생각이 싹 사라지더라고요. 한국 군인들이 몸 상태가 너무 좋고. 솔직히 첫 인상으로서는 그걸로 다 판단했죠. "아, 한국 군인들 몸 상태가 좋구나. 싸우면 지겠구나." 이런 생각이 든거죠.
김강유, 조선인민군 민경대 출신 탈북자의 증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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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에서 오른쪽 순으로 비무장지대미합중국 육군 군사경찰 대대장(중령),[89] 북한 육군 장병, 그리고 대한민국 육군 군사경찰 소대장(중위). 사진 중앙에 있는 북한 육군은 2006년 물고기를 잡으러 바다로 나왔다가 폭풍에 휘말려 남한까지 떠밀려 와서 대한민국 해군에 구조되었지만, 귀순 의사가 없음을 밝혀 판문점을 통해 다시 북한으로 돌아갔다. 보면 알 수 있듯 한국군 군사경찰보다 키가 머리 하나 반 가까이 작다.

북한의 저출산과 빈곤함은 병사들의 신체적인 조건을 비참하리만큼 약화시켰다. 김일성 시대에는 배급으로 사람들을 굶겨서 해방 직후부터 평균 신장이 고난의 행군 때까지 자라지 않았다. 그래도 출산율이 높아 키가 큰 사람들이 나왔기에 징집 기준은 마련할 수 있었다. 하지만 고난의 행군을 맞아서 더 이상 이렇게 병력을 유지할 수 없어, 북한에는 한동안 징집 기준 신장이 없었다[90]. 그나마 2020년에 시장화[91]로 인한 주민 신장 증대로, 148cm까지 올리려고도 했다고 한다. 또한 남자를 사실상 죄다 징집해도 부족한지, 2015년 4월에 여성징병제를 실시했다. 오죽하면 북한 주민들마저 '군인이 총을 멘 건지, 총이 군인을 멘 건지 모르겠다'며 암암리에 놀리고 있다.

입영 자격을 완화하는 것도 모자란지, 제대한 사람들까지 재입대시키고 있다. 2016년 3월에는 40대 미만 포병 출신을 다시 재입대시키기 시작했는데, 이는 신병들이 작은 체구 때문에 포를 제대로 못 다뤘기 때문이었다.

2017 세계 식량 안보와 영양 백서라는 UN 인도주의 지원 부서의 보고서에서는 "10년 전인 2007년 경에 비하여 북한 내부의 영양실조 환자가 대폭 늘어났다"고 밝히며, 이러한 장기 영양실조는 가임기 여성의 빈혈 증가,[92] 아동의 성장 발육 저하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확인했다. 즉 미래에 입대할 인원들이라고 건강 상태가 좋아질 리가 없다는 말. 다만 북한의 영양실조에 대한 주장은 발언자마다 다르다는 점은 감안해야 한다. UN만 하더라도 2019년에는 북한 영유아 사망률이 감소세이며, 세계 평균보다도 북한의 영유아 사망률이 낮다는 모순된 주장을 했다. 이는 NGO의 존립 근거가 대북 지원이기에, 식량난을 과장한다는 시각도 있다. 일반적으로는 고난의 행군 이후 각종 뇌물 등으로 사회 통제를 무마시켜 주민들이 코로나19까지는 예전보다는 잘 살았다고 여겨진다. 남한 사람에게 '일공'이라는 아르바이트 같은 일상을 이야기하면 안 믿는 경우가 있을 정도였다. 그것을 2020년대 들어 심하게 때려잡기 시작해서 문제이긴 하지만 말이다.

북한 병사들의 열악한 체격은 괴담처럼 들리기까지 하는 수많은 일화를 낳았다. 2017년 판문점 귀순 북한군 총격 사건에서 귀순한 병사 오청성의 사례를 보면, 키는 182cm로 컸지만[93] 그의 뱃속에는 소화가 덜 된 옥수수가 대부분이었고 내장도 남한인보다 짧았다. JSA처럼 국가적으로 중요한 시설에서 근무하고 있었기에, 계급을 막론하고 그래도 엘리트 계층 혹은 그에 가까운 계층에서 태어나서 자라났을 가능성이 높은 병사조차도 옥수수로 끼니를 해결해야 했다는 것. 이를 통해 북한 군부대 내 식량난이 얼마나 심각한지 알 수 있다.[94]

같은 해에 DMZ을 넘어 연천군 방향으로 탈북한 민경부대 출신의 노철민은 군생활 동안 가혹행위를 심하게 당한데다 제대로 먹지도 못해서 탈북했다. 국정원에서 조사를 받을 때 체중이 겨우 39㎏로 영양실조에 시달리고 있었는데, 따뜻한 독방에서 쌀밥에다 여러 반찬이 풍족하게 나오는 식사를 받자 반찬이 있었는지도 모르고 먹었다. 혹시나 식사에 독이 들어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는 했지만, 배가 고파서 망설임도 없이 그 자리에서 다 먹었다한다. 당시 19세라서 성장기의 끝물이기는 했지만 뒤늦은 영양 섭취 덕에 키도 자랐는데, 하나원에 퇴소했을 때에는 8㎝가 자라서 키가 178㎝가 되었고, 이후에는 꾸준한 운동 덕에 근육까지 생겼다.

2023년 9월 중순 아시아프레스가 북한 북부 지역 군인들을 조사한 바에 따르면, 영양실조 때문에 일시적으로 '감정제대'당하는 군인들도 있는 데다가 식사는 한 끼 수준인 음식을 세 끼 분량으로 나누는 수준이며,[95] 점심이 안 나오는 날에는 오후 훈련을 없애고 병사들을 낮잠 재우는 지경이다.

실제 북한군 병사들의 상태를 보고 싶으면 아시아프레스북한군 특집 기사영상 들을 참고하자.

4.2. 전투력의 부재

북한군의 이러한 열악한 신체 조건은 전투력의 부재로 이어진다. 군인은 군장, 포탄 등 무거운 물건을 많이 들고 다녀야 하는데, 이를 뒷받침할 체격과 지구력의 부재는 사실상 없느니만 못한 병력을 의미한다.

2014년 12월 6일 추적 60분에서 공개한 북한군 내부 자료를 보면, 북한의 허약증, 즉 중증 영양실조의 기준은 바로 소총을 들고 10m를 3분 안에 걸어 들어가지 못 하는 것인데, 10m는 대형 버스 한 대 정도밖에 안 되는 거리이다. 웬만한 나라에서는 성인 남성이 소총 한 자루 들고 10m를 3분 내에 걸어가지 못하면 중환자 취급을 받으니,[96] 사실상 움직일 수 있는 성인 남성은 무조건 복무시키라는 것이다. 이런 체력으로는 전장에서 화기를 능숙하게 다루는 것도 기대할 수 없다. 심지어 기준을 저 따위로 잡았는데도 허약증 병사가 속출한다.

결국 북한 당국은 보병장구류를 경량화하기로 했는데[97], 타국처럼 신소재나 최신 기술을 적용한 가벼운 장비를 지급하는 대신, 전투식량과 구급약을 줄이고 담요와 천막을 위장 우의와 방한 내피로 대체했다. 식량은 물론이고 방한 장비는 시베리아 기단 때문에 '동장군'이라고 불리는[98] 혹독한 추위가 겨울마다 찾아오는 한반도에서는 특히 중요한 장비이다. 빈곤함으로 인해 방한에 필요한 병사들의 피하지방[99][100]이 없다시피한 북한군의 사정을 감안하면, 북한은 사실상 겨울마다 병사들을 동사하도록 방치하고 있는 셈인 것이다.

4.3. 해이한 기강

군단장데군데 떼어먹고,
사단장정 없이 떼어먹고,
려단장지 없이 떼어먹고,
련대장달아 떼어먹고,
대대장놓고 떼어먹고,
중대장간에서 떼어먹고,
소대장리 없이 떼어먹는다.
인민군 관련 농담.
대대장대대정치지도원이 돈에 환장이 되여 대대안의 기관총고, 무기고, 장비고의 철문 32 개 을 뜯어내여 팔아먹는 엄중한 범죄행위...
군인들이 갱도 철문을 뜰어(뜯어) 팔아먹는 현상...
올해 군단적으로 제기된 군종규률위반현상은 총 127 건, 강도행위 11건, 인민들을 때리거나 재산을 절취한 것이 88건, 각종 불량행위한 것이 11건이나 됩니다.
군대도 이제는 돈만 있으면 못하는 일이 없다. 정치대학은 200 딸라, 보위대학은 300 딸라, 후방군관학교는 400~500 딸라.
실제 조선인민군 내부 문건
사회가 발전하듯이 인간도 부단히 노력해 변화 발전해야 하지 않겠어요? 그런데 북한 군대는 사람을 아주 못 쓸 방향으로 변화시킵니다. 학창 시절에 순하고 선생님 말씀 잘 듣던 학생도 군대에만 다녀오면 도적놈이 돼 돌아옵니다. 체격은 많이 변하지 않아요. 군대 들어올 때와 나갈 때 몸무게가 거의 비슷하죠. 변하는 건 성격입니다. 온순하던 사람이 폭력배가 돼 돌아오는 것입니다. 군대 가서 배우는 것이라곤 도적질과 ‘악’ 뿐입니다. 그것들이 사회 나가서 발현이 되는 것이고요. 그래서 제대 군인들이 물의를 일으키는 경우가 많아요. 열차 칸에서 사람들을 마구 때리거나 시장에서도 장사꾼들을 폭행하기 일쑤죠. 그래서 사회적으로 그런 제대 군인, 영예 군인이라고 하면 슬슬 피하거나 장사꾼들은 아예 눈치를 보며 짐을 꾸릴 정도입니다.
탈북 군관 김훈의 증언
우리는 낮에는 공산군이고 밤에는 토벌대다.
낮에는 총을 잡고 인민을 지키는 척 하다가 밤만 되면 인민을 상대로 약탈과 수탈을 거리낌 없이 자행한다는 인민군들의 자조. #

헤이한 군기는 정예 병력에게도 적용되는 문제다. 북한에서는 틈만 나면 정신력을 만능 보검처럼 강조하나, 실제로 북한의 군인들은 강한 정신력은 커녕 정녕 군인인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을 정도로 군기가 개판이다. 소위 꼰대들이 "한국군은 군기가 빠졌고, 북한군은 군기가 잡혀있다."라는 식의 말을 늘어놓지만,[101] 실제로는 근거없는 허상에 불과하다.

판문점, 비무장지대 근처의 부대는 보통 둔전이나 계절별 작업 때문에 초소를 자주 비워 놓는다. 보급을 그나마 잘 받는 평양과 평안도를 방어하는 최정예부대마저 자체적으로 농사를 짓고 목장이나 양어장을 운영해야 한다. 예비군과 달리 상비군은 둔전과 상성이 가장 안 좋은 조직인데,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군기마저 내팽개치는 것이다. 북한 당국도 이를 아는지 면회 제한을 풀기도 했지만, 속출하는 탈영병은 처벌조차 곤란할 지경에 이를 정도다. 경무관[102]은 탈영병 사건을 경찰의 조력을 받아서 처리하고 있다는 증언도 있다. 다른 나라라면 경찰력을 동원해서 탈영병을 처리하는 일은 있을 수 없는 일인데, 해당 증언을 보면 경무관의 업무 한계치를 넘었다고 추측할 수 있다.

2006년의 북한은 준전시상태였는데, 병사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시장에서 상품을 팔고 있었다. 2020년에는 휴가 나온 병사들이 단체로 카드 게임을 즐기는 영상도 공개되었다.
"성추행, 성희롱이라는 단어 자체를 한국와서 배웠어요."
북한군 군관 출신 탈북민 김정아의 발언.
이 실습정치지도원이 혁철동지라고 있는데 너무 당황스러웠다고…밤에 엉덩이 만지고... 그래가지고 이상하다고 그러는거에요.
북시탈tv 김강유의 증언.

성폭행 문제도 심각하다. 여군은 남자 병사들에게 성희롱, 성추행은 이제 문제조차 되지 않으며, 상급자에게 강간당해 원하지 않는 임신을 하더라도 제대로 된 처벌도 이루어지지 않는다. 성상납의 도구로 이용당하기까지 한다. 임신한 당사자는 임신해버리면 얄짤없이 임신을 시킨 남자와 생활제대되기에 낙태를 하거나, 낙태를 못하면 출산한다. 이성 뿐만 아니라 동성 또한 안전하지 않다.

4.4. 빈번한 비리 및 약탈

북한 군인들이 배우는 건 도적질뿐이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우리 아들에게 '군에 가서 배운 게 뭐냐'고 물었더니 도적질만 배웠다고 하더군요. 양심이 있어서 도적질을 하지 못하는 군인들은 결국 굶어죽게 되는 것입니다.
탈북 군관 김훈의 증언

북한군은 가난을 해결하기 위해 군 내부뿐만 아니라 주민들에게도 총부리를 돌리며 약탈하는데, 너무나 빈번하게 벌어지는 일이라 간부들도 제대로 처벌하지 못하고 있다. 전부 처벌하면 군대를 제대로 운용할 수 없기 때문이다. 탈영이나 도둑질을 안 하는 하전사들도 있는데, 이들은 대부분 장마당의 큰 상인이나 외화 벌이 일꾼 등 어느 정도 먹고 사는 집안 자식들이기에 집에서 송금받아 버티는 것이다.

북한 군인은 군은 지급하지 않는 것을 잘 알기에 틈만 나면 비리를 저지른다. '북한군 지휘관들에게서 자력갱생이 병사들의 식량을 빼돌리는 것이라면 북한군 병사들에게서 자력갱생은 도둑질이다'라는 말까지 있다. 단락 상단에 나온 농담대로 수준 이하인 보급망을 타고 받는 지원은 모든 계급이 순서대로 떼먹는다고 보면 되고, 말단 병사들은 받는 게 사실상 없다시피 하기에 창고는 물론이고 지휘관까지 털 때도 있다. 또한 이는 식량 뿐만 아니라 조금이라도 돈이 될 법한 물건, 심지어는 창고의 문까지 적용된다. 연료를 빼돌리고 물로 채우는 것은 애교다. 추적 60분 2014년 12월 6일 방영에 의하면 갱도 포병이 갱도 문까지 팔았는데, 이를 본 북한 육군 군관 출신이자 자유 북한 방송 북한인민해방전선 대표인 김성민이 정신이 나갔다며 혀를 내둘렀다. 김성민은 북한군의 위협을 과장하는 성향이 있는데도 저런 반응을 보인 이유는 바로 철문이 없는 땅굴 근처에서 포탄이 떨어지면 그 안의 병력은 산 채로 구워지기 때문이다. 저런 심각한 약탈마저 며칠을 영창에서 보내는 것으로 그치고 있다.

이는 민간인을 상대로도 마찬가지다. 유명한 사기 수법으로 삽이나 통나무를 하나 들고 민간인의 집에 들어가서 밥 한 끼와 교환하자 하고는, 밥만 먹고 물건은 도로 들고 가는 것이 있다. 또한 가축을 기르면 군인들이 전부 빼앗기에, 머리라도 집 주인 몫으로 남기는 도적은 '예쁜 도둑 놈', 꼬리도 남기지 않으면 '지독한 도둑 놈'이라는 표현까지 있을 정도이다. 2011년 이후에는 군인들은 약탈하고 싸우는 것도 모자라 민간인을 상대로 각종 범죄를 저지르며, 탈영민가에 침입해 강도살인까지 저지르고 있다. 주민들이 군인들의 약탈을 막기 위해 자경단을 조직하여 총격전을 벌일 지경이다.

심지어 자국 국민들만 대상으로 약탈하는 게 아니라서, 중국과 인접한 지역에서는 월경하고 중국 주민들을 약탈하는 것을 넘어 살인까지 저지르는데, 2000년부터 2015년까지 이런 살인 사건이 수십 건이나 있었다.

김정은도 2019년 10월부터 매주 일요일마다 '병사의 날'을 정해 병사들에게 좋은 음식을 먹이고자 했으나,[103] 병사의 날 운영에 따른 지휘관들의 부담이 감당할 수 없을 지경에 이르자 2022년부터 한 달에 두 번으로 운영 횟수를 줄였다. 사실 지휘관들의 부담이 매우 심할 수밖에 없는 게, 병사의 날 운영을 위해 각 부대에서 매달 지휘관들로부터 거두는 자금은 북한 돈 5만 원(5.95달러)에서 6만 원(7.14달러)인 것과 달리 2024년 1월 인상된[104] 소대장[105] 한 달 월급은 3만 원(3.57달러)[106]에 불과하기 때문이다.[107] 사정이 이러니 군 지휘관들은 병사들에게 휴가를 주면서 돈을 받거나, 평소 병사들의 식량이나 군수품을 떼어내거나, 심지어 지휘관들이 밀수까지 해야 한다.

철원군의 군부대 정치부가 가짜 사민들을 동원해 군관들의 경제적 사정, 정치적 동향을 확인하라 했는데, 조사 결과 "집이 궁전 같다, 일반 주민들의 집 같지 않고 외국 드라마나 영화에서 본 것과 같이 외국 냄새가 나게 집을 잘 꾸려놓고 산다, 먹다 남은 밥과 찬을 주었는데 일반 주민들은 상상하지 못하는 진수성찬이었다, 군관 가족들이 입고 있는 옷도 외제가 많고 화장품 냄새와 향수 냄새도 유달랐다"는 등 북한 기준으로는 상상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호화판으로 살고 있다. 원 목적은 비사회주의·반사회주의 행위 사상투쟁 분위기 조성이었으나 오히려 군관들의 비리가 제대로 드러난 셈이다.

지방발전 20×10 정책을 위해 양강도 김형직군 공사장에 파견된 124연대[108] 소속 군인들이 8일 만에 20건의 절도 행각을 벌였는데,[109] 무리를 지어 가축들을 훔쳐가거나, 칼과 몽둥이를 들고 가전제품을 훔쳐가는 강도까지 나타났다.

군대 운영자금이 부족해 군부대들이 병사들에게 배정된 입쌀과 강냉이를 맞바꾼 차액[110]으로 군대를 운영해야 하고, 따라서 입쌀:강냉이를 8:2로 배정받아야 하는 병사들이 강냉이만 든 강냉이밥만 먹고 있다.[111] 즉, 북한 주민들이 강냉이밥만 먹는 이유는 쌀의 절대적 수량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군대 상부에서 만연한 비리 때문에 쌀을 제대로 분배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북한의 국방성 산하에 후방총국이 있다고 하나 후방총국은 기껏해야 군인들의 식량과 군복을 공급해주는 것이 전부인지라 그 외 부대꾸리기나 겨울철 병사들의 난방에 쓰일 땔감 같은 건 모두 부대에서 자력갱생으로 해결해야 하는데, 이 모든 것에 상부의 비리와 병사들의 약탈을 조장한다.

평안북도 일대에서는 국경경비대 군인들이 올감자나 옥수수가 여물기 시작하면 민가로 내려와 텃밭에서 기른 올감자와 옥수수를 몰래 도둑질하는 것이 일상사이나 2024년에는 아예 무리지어 공개적으로 강도질까지 했다고 한다. 심지어 어린 꽃제비까지 손에 흉기를 들고 무리 지어 달려들어 강도질을 한다고... # 또 생계를 위해 상이군인들이 대금업자들의 미수금 회수 용역으로 활동하면서 민가의 가산을 파괴하는 등 행패를 부리지만 국가적 배려 대상이라는 이유로 무마되는 일이 많다. #

5.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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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당시 훈련 받을 때 나이가 15세 정도였으니 나이가 어려 실탄 지급을 안 한 것일수 도 있다. 다만 그 훈련엔 어른들도 참가했다고 한데다 북한은 선전 영상에서도 탄띠는 물려놓고 탄은 탄띠에 듬성듬성 물릴 정도로 탄이 많이 부족하기 때문에 실제로 탄이 부족해 지급을 못해준 것일 가능성이 높다. 이 새터민이 훈련 도중 들은 말에 따르면 바늘의 경우 한 쪽으로 치우치는 경향이 있어 바늘이 꽂히는 장소에 따라 실탄은 다르게 날아가니, 실탄을 쏠 때는 기울여 겨냥하라고 충고한다고 하는데, 이걸 보면 실총도 아니고 공기총으로 군사 훈련을 하는 걸지도 모른다.[2] 특히 식량의 경우가 심하다. 23년 10월 초 23년 12월 말을 비교해보면 단 3개월 만에 식량가격이 요동치는 상황이다. 이건 고난의 행군 이후에는 일상이라고 한다.[3]주한미군 사령관. 1984년 6월 1일부터 1987년 6월 25일까지 재임했다. 즉 1980년대에 북한군을 본 셈인데, 당시는 고난의 행군으로부터 10여 년 전이었고 최전성기에 비해 상당히 쇠퇴하긴 했지만 소련의 원조가 비교적 정상적으로 이루어지던 시대였다. 이 때조차 북한은 군인들에게 충분한 식량을 제공해주지 못한 것이다.[4] 하지만, 북한이탈주민 출신의 동아일보 기자 주성하의 증언에 의하면 북한의 전체 인구는 2,500만보다 훨씬 부족한 2,000만명 정도로 추정된다고 한다. 이것은 김정은에게 올라가는 비밀자료를 입수하여 직접 확인한 것을 근거로 주장을 하는 것인데, 한국에서 흔히 알려져 있는 2500만명보다 500만 정도 적은 수치다. 그리고, 북한군의 실제 병력 수는 아무리 많아도 80만밖에 안될 것이라고 한다.[5] 북한은 인구의 4%가 군인인데, 이는 전례를 찾아볼 수 없는 수준의 군인 밀도다. 대한민국은 2000년대 이전까지 군인 밀도가 1.33% (75명 당 1명) 정도였고 2020년대에는 1%까지 줄였는데, 이것도 결코 적은 수치는 아니다. 참고로 가장 표준이 되는 미국의 군인 비율은 0.5%이다. 북한보다 군사 비중이 높은 국가는 현대에는 전시 총력전 체제가 아니면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고, 성인 남성 = 전투병이던 고대 갈리아 및 게르마니아나 스파르타 정돈 되어야 이 비율을 넘을 수 있을 것이다.[6] 스파르타의 병력 비율은 약 50% 내외 정도로 높으나, 스파르타는 인구의 10% 내외인 완전시민만 전력으로 봤기에 반 시민 계급이나 노예까지 합쳐 평균을 내면 의외로 얼마 차이가 나지 않는다. 나머지는 전시 긴급 징병에 해당하기 때문.[7] 평양 시민에게 공급되는 식량.[8] 다만 당시 남한도 군 식량 사정이 열악한 것은 북한이랑 다를 바가 없었다.[9] 그 주인공은 이석모(李錫毛, 1959~) 이등병으로, 1977년 1월 16일 너무 배고픈 나머지 분대장의 점심을 타먹은 뒤 가혹한 처벌과 기합이 두려워 귀순했다고 한다.[10] 쌀 750g, 보리 200g, 식빵 150g, 과자 50g, 마른국수 10g, 돼지고기 350g, 거기다가 닭을 1마리씩 튀겼다고 한다.[11] 6·25 전쟁 이전인 1940년대 후반이나, 북한이 남한보다 잘 살았던 1960년대나, 넓게 봐 줘서 1970년대 말까지는 이를 지켰던 일선 부대가 적어도 하나는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때까지만 해도 북한은 일반적인 사회주의 국가 정도였기 때문. 그러나 그 이후는 도서정리 사업을 시작으로 비참하게 몰락했다. 참고로 조선인민군이 모든 부대에서 저걸 철저하게 지켰던 유일한 시기가 6·25 전쟁 이전인 1940년대 중후반과 6·25 전쟁 중인 1950년대 초반(1945 ~ 1953)일 뿐이다. 6·25 전쟁 당시 미군의 폭격을 워낙 많이 맞아버린 북한인지라 (원산은 도시 전역이 완전히 초토화됐다) 6·25 전쟁이 끝난 이후에는 이것대로 급양을 하기가 점점 힘들어졌다.[12] 조금 더 보편적인 햇반 기준 200g짜리 4개.[13] 이런 정보의 차이는 북한이 지역별로 차별 대우를 하기 때문에 벌어지는 현상이다. 북한은 지역감정을 국가 통제에 사용한다. 평양 같이 중요한 지역일수록 특권층이 밀집되고, 반대로 중요 지역에서 멀어질수록 점점 대우가 시궁창으로 변한다. 이렇듯 북한이 워낙 정보 통제를 철저히 하고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는 것도 허락을 받아야만 가능할 정도로 통제하다 보니, 같은 북한 주민이라고 해도 지역에 따라 사실상 서로 다른 나라의 국민이나 다름없을 정도로 지역별 주민들의 삶, 지식, 경험이 완전히 다르다.[14] 쌀은 도정하고 시간이 지나면 산화되어 맛이 없어지고 종국에는 못 먹을 물건이 된다. 초창기 햇반의 여름 생산분 품질이 떨어졌던 것도 같은 이유.[15] 이는 수도 시설이 좋지 못해 식수가 모자라기 때문이다. 한국의 경우 수도 및 관개 사업에 무지막지한 돈을 투자하기에 가끔 일부 지역에서 가뭄 탓에 수돗물 제한 급수를 실시할지언정, 그러한 지역들도 마트만 가도 생수가 널려있기에 식수가 부족한 경우는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16] 군대는 사회보다 훨씬 폐쇄적이고 격리된 공간이다. 그래서 군대에서 전염병이 커지면 걷잡을 수 없을 정도의 규모가 된다. (군부대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 집단 감염 사건 참조) 국군이 왜 그렇게 예방접종과 전염병 방지에 민감한지에 대해 생각해보자.[17] 이것들은 중국에서 들여오면 군대로 공급하기 용이해서이다. 식량은 가다가 오래 걸리면 상하지만 비누는 아니니까.[18] 영상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북한군은 실제로 민가로 가서 몇몇 식재료를 훔쳐와서 반찬으로 먹는다고 하니, 현대 북한군의 약탈경제까지 저런 방법으로 재현한 셈이다. 북한군에서 식사 시간마다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항상 났는데, 보면 다 마늘이나 파 같은 훔쳐온 것들을 꺼내는 소리였다고 한다.[19] 유튜버 이철호도 그렇고 북시탈 tv에서도 남한에선 북한 수준의 식량을 구할 수 없다고 했는데, 애초에 북한에서 나오는 수준의 식량을 팔았다간 그 상인이 식품위생법 위반으로 처벌받으며(...), 현지에서도 그 정도로 농사를 망치면 차라리 구제 지원금이라도 노리고 밭을 갈아엎는다.[20] 영양실조 3도가 되면 사실상 죽는다고 한다.[21] 국경경비대는 보급이 잘 나오고 밀수를 통해 부수입을 얻을 수 있어 대우가 괜찮은 부대이다.[출처] 엔케이타임즈[23] 정부에서 수매를 진행하면서 세금으로 정해진 양은 그냥 가져가고, 그 이상의 잉여생산물에 대해서 구입하는 식인데 대개는 농민들에게 징수한 농산물이 정부 수매량엔 못미치고, 농가들이 생산하는 잉여생산물이 많다보니 돈 주고 사는 느낌이 강하다.[24] 고난의 행군 이후에는 북한 측이 그동안 평양 공급미 등 다양한 명칭으로 뜯어가던 걸 그냥 간편하게 군량미라는 이름으로 통합했다고 한다.[25] 비료는 현대 화학으로도 만들기 쉽지 않은 품목이다. 화학비료는 BASF 등 유력 독일 화학회사에서 세계 최고의 화학자인 프리츠 하버(Fritz Haber)와 이를 기계로 실현한 카를 보슈(Carl Bosch)가 수 년의 개발과정, 엄청난 연구비, 그리고 맨해튼 프로젝트에 필적하는 인원을 투자해서 만든 것이다. 1차 대전 이후 하버와 보슈는 합성 방법과 대량생산이라는 별건의 업적으로 제각기 다른 년도에 노벨상을 받았고, 독일 못지않은 선진국이었던 프랑스는 바스프의 공장 시설을 손에 넣어도 운영할 방법을 몰라서 방치시켰다. 이렇듯 화학비료는 당시에는 그야말로 최첨단 기술이었고, 21세기에도 화학비료를 대량으로 만들기는 쉽지 않다.[26] 더 웃긴 것은, 북한은 1940년대 아시아 최대의 비료공장인 흥남비료연합기업소가 위치했으며, 비록 한국전쟁 때 파괴되었다 해도 이후 공산권의 집중 지원으로 재건되었다. 즉, 현재의 북한은 194~50년대 보다 오히려 퇴보한 것이다.[27] 그러다 보니 인분 쟁탈전(!)이 벌어지고, 인분을 지키려고 공동화장실에서 야간경비까지 선다고 한다. 2022년도 기사지만 해마다 벌어지는 일이다.[28] 이는 북한 측이 똥이 아니라 돈으로 달라며 지원을 거절한 것인데, 사실 남한 측은 그냥 똥이 아니라 비료화된 제품을 주려고 했던 것이다. 북한에서는 그냥 빈말만 했을 뿐이지 사실 우수한 농법을 거부하며 주민들을 연명할 정도로만 먹이려고 의도해서 비료를 안 받은 것으로 보인다.[29] 주체농법은 옥수수를 많이 심고 산을 깎아 다락밭을 만드는 데 중점을 둔다. 문제는 옥수수는 지력을 들이마시는 괴물인데, 이 때문에 옥수수만 심는다면 정기적으로 휴경을 해야 한다. 옥수수를 주식으로 삼았던 아메리카 원주민들이 콩이나 호박을 옥수수와 같이 재배한 게 옥수수가 퍼먹는 지력을 효율적으로 보충하기 위한 것이었다. 다락밭 또한 효율이 좋은 것도 아니며, 다락밭 때문에 깎인 산은 비가 오면 산사태와 홍수에 취약해진다. 결국 주체농법도 장기적으로는 대량의 비료와 종자개량, 자연재해 예방을 위한 시설확충없이는 절대로 성공불가능한, 지금 북한의 현실처럼 말만 좋은 농법일 뿐이다.[30] 북한도 정책을 바꿀 필요가 있으면 잘 바꾸고는 한다. 핵개발만 해도 주민들에게 보이는 정책을 심하게 바꾼 것이다. 그러니까 지도부 입장에서 주체농법이 생산량은 안 나와도 '김일성의 교시'대로 농사를 짓는다는 명목으로 통제를 할 수 있으니까 독재를 유지하는 데는 너무나도 좋았다는 것이다.[31] 2012년 4월 20일 이명박 대통령이 통일교육원 강연에서 "이북주민들의 삶을 개선하려면 협동농장들을 해체하고 농지개혁을 실시하게 만들어야 한다"고 말한 것에 3일 후 <조선인민군 최고사령부 특별작전행동소조 혁명무력의 특별행동이 곧 개시된다>라는 통고에서 '주제넘는 소리를 또다시 줴쳐댔다.'고 험담했을 정도. 전문[32] 북한의 음식을 재현한 것이지만, 남한의 농산물과 조리 환경은 북한보다는 질이 월등히 좋기 때문에 영상 속 재현품이 형편없어 보이는 음식이라도 북한이 실제로 먹는 그것보다는 낫다. 북시탈tv 측에서도 북한에서 먹던 질나쁜 옥수수는 남한에서 도저히 구할 길이 없었다고 밝혔다.[33] 이조차 중국에서도 가축 사료로나 쓰는 저질품이다.[34] 이조차 몇 년 묵혀놓으니 찰기가 없는 등 상태가 좋지 않으며 심지어 도정도 제대로 안 되어있어서 옥수수 수염이나 껍질이 섞여서 나오는 게 다반사이다. 당연히 한국에서는 가축 사료로도 안 쓰는 저질품이다. 대략적으로 이런 모습이라고 보면 된다. 참고로 해당 사진은 2011년 9월 30일, 얼마 전에 있던 홍수와 태풍으로 집을 잃은 한 황해남도 거주 여성이 천막에서 먹고 있던 식사라고 한다.[35] 신정과 구정,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의 생일, 인민군창건일인 2월 8일, 무력절인 4월 25일과 8.15 광복절, 노동당창건일인 10월 10일. 참고로 김씨 3인방의 생일이 모두 상반기에 몰려있는 탓(김일성 4월 15일, 김정일 2월 16일, 김정은 1월 8일.)에 하반기에는 광복절과 노동당창건일, 단 두 번 뿐이다.[36] 대부분의 북한 군대는 부대 운영에 필요한 자금이나 물자를 제대로 지급받지 못하고 있다. 장교들의 월급도 나오지 않는 마당이니 군부대가 농업이니 어업에 매달리고 주민 약탈까지 벌이고 다니는데, 어쩌다가 쌀 같은게 보급되면 일단 팔아서 돈으로 바꾸고 싸구려 옥수수를 사들여서 부대 식량으로 쓰고, 차액은 부대 운영비나 장교들의 호주머니로 들어가고 있다. 이게 단순히 장교 한 두 명의 비리가 아닌 것이, 장교들이 먹고살 돈도 없고 북한 내부의 만연한 부정부패로 이들도 이런저런 이유로 여기저기 바쳐야 하는 돈까지 필요하다![37] 북한 당국은 군부대의 처참한 현실을 잘 알고 있지만, 이를 해결하기는 커녕 자력갱생 운운하면서 상부 지원없이 알아서 먹고사는 부대에 '붉은기' 칭호를 하사하며 이따위 행위를 적극적으로 권장하고 있다.[38] 당연하지만 보통의 군대가 저러지 않는 이유는 저럴 시간에 군사 훈련을 해야하기 때문이다. 저렇게 운영할거면 굳이 상비군을 둘 이유 자체가 없기 때문.[39] 7월에 만든 포스터의 그림 배경이 설산이고 병사는 동복방한모 차림인 이유는, 저 발전소 공사가 2010년 12월~2011년 3월 사이, 겨울에 있었기 때문이다. 김정일이 촬영되지 않았기에 사진은 흑백인데, 한국군이 최소 대대급 이상부터는 공보정훈장교에게 DSLR 카메라 하나씩은 불출해주는 걸 생각하면 21세기에 필름카메라도 아닌 흑백사진을 쓴다는 것도 코미디이다.[40] 북한군이 키우는 돼지는 사료가 없어 군인들이 먹다 남긴 음식 찌꺼기로 키우는데 남는 음식이 없으니 돼지도 늘 배고픈 상황이라 볼 수 있고, 이렇게 제대로 먹지 못하고 자란 돼지라 그런지 북한군의 돼지고기 국물에는 기름이 별로 뜨지 않는다. #[41]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보낸 소떼들이 북측에서 관리를 제대로 못 하는 바람에 다 죽었다는 말이 있는데, 탈북자들의 증언에 의하면 품종 개량을 위해 정 명예회장이 보낸 남측 수소를 북측 암소와 교배하려는 시도를 했다가 실패했다고 한다.[42] 메기는 추워지면 겨울잠을 자기에 빠르게 성장시키려면 온수 공급이 필수이다.[43] 2016년 8월 준공되었다.[44] 그나마 이것도 부대마다 각각 다른것인지 어디는 한달에 두번 정하고, 어디는 동계 혹은 하계훈련, 삼복더위때나 정해진다. 게다가 이때 고기가 항상 나오는것도 아니라고...[45] 북한의 기본 어선은 전마선이라고 부르는 통통배인데, 북한의 연근해는 이미 있는 고기 없는 고기 다 잡아들여서 명태 같은 어족자원이 고갈된 상태에 NLL 근방 수자원은 중국에게 이권을 팔아버려서 이 쪽배로 먼 바다에 나가야 한다. 아무리 식량을 챙겨가더라도 배 크기 등을 감안할 때는 양이 얼마 되지 않을 수밖에 없어서 표류하면 얼마 못 가서 식량이 떨어진다.[46] 동해의 해수흐름은 일본을 타고 내려가는 흐름의 형식인지라 99.9% 이상은 조난당하면 해류에 의해 일본으로 간다. 당연히 해수가 빠르지는 않기 때문에 전마선이 일본 해안에 도착하면 백골이 되는 경우가 거의 대부분이다.[47] 배는 클수록 부력이 커지고 파도에 버틸 수 있고, 더 많은 식량과 연료를 선적할 수 있으며, 어업의 효율도 증가한다. 또한 이런 배들은 위기 상황에 대비하여 구명정, 식량, 장비, 기름 등을 준비할 수도 있다. 달리 말하면 북한에서 쓰는 나룻배는 이런 안전 장치가 없다는 말이다.[48] # 영상에서는 길게썬 것, 가늘게 썬 것, 넓게 썬 것이어서 삼형제라고 언급한다.[49] 평양 시민이면 그래도 북한 내에서는 잘사는 축에 속한다. 그런 사람에게도 설익은 과일이 간다는 건 그만큼 과일부족 문제가 심각하다는 뜻이다. 아니면 북한의 형편없는 수송 능력 때문에 잘 익은 사과와 복숭아를 보급하려 했다가는 평양까지 가다가 모조리 상해버리니 설익은 상태로 준걸로 보이는데 어느 쪽이든 한심한 상황이다.[50] 저 정도의 불순물은 가축이 핥는 암염 덩어리만도 못할 정도로 정제가 안된 거다.[51] 공업용 기름이라니까 석유화학 제품이라 생각하는 사람도 있는데, 이것의 정체는 강철 같은 것을 열처리할 때 쓰는 식물성 유지다. 중국에서 산업용으로 사용하고 폐기처분하는 기름을 싸게 사다가 군인들에게 주는 거다. 물론 비위생적인 철강공장에서 열처리해 철강 불순물이 들어가 있을 기름이 단순히 성분이 식물성이라고 해서 사람이 먹을 수 있는 물건인 건 절대 아니다.[52] 밥, 국, 김치에 반찬 1가지.[53] 당시의 한국은 지금보다 경제력이 낮았고(1인당 GDP가 세계 평균을 넘긴 것도 1987년이었다) 밥, 국에 반찬이 2종류, 그나마 그 중 하나는 김치에다 나머지 하나는 콩나물 같은 나물 반찬이 전부였던 때라는 점은 감안해야 한다. 지금처럼 PX에서 햄이나 김을 쉽사리 사다 먹을 수 있던 시대는 아니었다.[54] 밥, 국, 김치를 포함한 반찬 3가지. 예컨데 쌀밥, 미역국, 소시지 케첩볶음, 깍두기, 김이 나온다.[55] 다만 1997년에 IMF 사태가 발생하자, 일부 부대에서는 1998년 중후반까지 우유 급식 및 햄버거 공급이 중단되었다.[56] 규정에 따르면 항시 최소 15일 치의 군량미는 보관해 놓아야 하고, 폭설이나 태풍 등으로 길이 막히기 쉬운 전방 부대의 경우 아예 한 달 치의 군량미에 추가로 곰탕/카레/짜장 등도 비축해 두는 경우가 많다.[57] 쌀건빵이 보급되던 시절에는 인기가 없어서 버리는 일이 다반사였고 그만 보급하라는 문의까지 있었지만, 2019년부터는 야채건빵, 참깨건빵으로 대체되고 인기가 상당히 높아졌다. 이는 국군이 보급의 양과 질을 동시에 신경 쓴다는 증거이다.[58] 특히 잠수함의 경우는 근무지의 특수성을 고려하여 군의 정식 구매 라인을 거치지 않고 민간에서 직구입이 가능하다.[59] 같이 딸려 나오는 전복이 비려서 맛이 없다는 이유로, 혹은 백숙은 맛이 없다며 일부러 건너뛰는 북한군 입장에서는 눈이 뒤집어질 경우가 나올 지경.[60] 잠수함의 경우 부사관 이상의 간부들만 탑승하기에 징집병들은 수상함에서만 근무한다. 잠수함에 비하면 아니지만 수상함도 전군 기준으로 보면 식사는 확실히 좋게 나오는 편.[61] 애당초 대한민국 국군 자가격리 장병 부실 식사 제공 논란에서 국방부가 '양질의 급식'이라고 보여준 자료조차도 민간인들은 학교 급식보다 나쁘다고 비판을 했을 정도로 장병 급식이 부실하다는 건 잘 알려진 사실이다.[62] 북한의 좌관급 군관들(대한민국의 영관급에 해당) 혹은 장령급 군관(대한민국의 장성과 원수를 포함)를 뜻한다. 즉 1990년대에 이미 북한 좌관급, 장령급 고급 군관의 식단이 남한 병사들의 짬밥과 비슷했다는 말이다.[63] 참고로 이때는 자율 배식을 하기 전이라 어느 정도 절제한 양으로 줘서 다행이었지, 만일 자율 배식으로 줬다면 정말 큰일날 수도 있었다. 오랫동안 굶주린 상태에서는 일반 음식을 바로 먹으면 몸이 대량의 식사를 감당하지 못하여 급체, 심하면 사망할 수도 있다. 이런 이유로 현재는 귀순자에게는 정보 부대에 인계되기 전까지, 귀순자가 요청하더라도 사정을 설명하고 물을 제외한 일체의 음식을 제공하지 못하도록 되어 있다.[64] 99년도와 2020년대를 비교하면, 육군은 자주포 1200+문, 장갑차 700+대, 전차 700+대, 공격헬기 130+대를 추가 도입했고, 해군은 방공구축함 10+대에 3천톤급 호위함 14+대, 잠수함 15+대를 추가했으며, 공군은 KF16 20대, F15K 60대와 F35A 40대를 추가했다. 심지어 이는 순수히 전투력에 관한 것이며 각종 보급체계 및 지원전력, 생활시설 등은 아예 계산에조차 넣지 않은 것이다! 같은 사단이어도 기계화사단이 보병사단에 비해 소모하는 물자 및 유지비용은 거의 5배 이상 차이나며, 같은 함대여도 고속정 및 초계함보다 대형 구축함들의 기동함대가 소모하는 유류비 및 무기의 가격은 수십 배 단위로 차이난다.[65] 과거에는 근무, 행사, 외출시 입는 합성 섬유인 테트론으로 되어 깔끔하나 착용감은 좀 별로인 전투복 1벌과, 주로 작업, 훈련시 막 입는데 쓰는 후줄근하지만 착용감이 나은 면으로 된 전투복 1벌, 다해서 총 2벌이 기본적으로 주어지고 보충 보급시에도 2벌씩 주었는데, 위장무늬 전투복으로 바뀐 이후부턴 1벌만 주는 것으로 바뀐 것으로 보인다.[66] 양말 발명 이전의 발 보호용 의복으로, 간단히 말하면 그냥 천조각이다. 사각형, 혹은 제각각의 천조각을 적당히 발에 감는 것이다. 기껏 힘들게 묶어놓아도 오랫동안 걸어다니면 어느새 풀려 있고 두께가 원체 얇다 보니 잘 뜯어지며 겨울에는 맨발과 거의 차이가 없다. 이런 단점 때문에 20세기 전후로 역사 속으로 사라진 물건인데 북한에서는 현역이다.[67] 바뀌지 않기로 악명 높은 대한민국 군대도 저것과 똑같은 연도를 가진 물건은 수통, 극소수 반합 같은 예외 뿐이었으며 그마저도 전량 교체되었다. 화기나 차량 등은 최소 한 번씩은 바뀌었다. 과거에 제3보병사단 포병에 1942년에 도입된 105㎜ 곡사포도 있었지만 진즉에 K-55A1 자주곡사포와 K-9 자주곡사포로 교체된 상태로 3사단에서 운용한 기존의 105㎜ 곡사포의 경우 운용 기간이 길었던 관계로 포신 상태가 안 좋았을 것이고 그만큼 K105A1 자주포로 개조도 못하고 폐기되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68] 국군은 해당 체계의 서방 버전인 승공포를 2010년대 초반까지 운용했다. 다만, 국군은 이미 북한의 구형 전투기는 수백번은 작살낼 다른 대공 무기가 널려있어 육군 주력 방공포 역할로는 예저녁에 퇴역했다. 다만, 북한 무기가 상상 이상으로 구려서 역으로 승공포가 효율이 나쁜 것도 아닌지라(...) 여차하면 써먹으려고 아직 현역으로 굴릴 뿐이다.[69] 사실 이것도 말도 안 되는 것이, 6해병여단의 포병대대, 연평부대의 포병대대는 2010년 연평도 포격전과 국방개혁 2.0에 따른 현대화 정책으로 서해5도에서 직접 운용하는 대포병레이더, 다연장로켓, 지대공미사일을 배치 받았다. TOD로 24시간 해안포대를 감시하는 것은 물론 적포병의 동향 파악 역시 실시간으로 하고 있다. 만약 김여정 말대로 진짜 폭약으로 쇼만 했다면 대포병레이더에 발사한 탄 궤적이 잡히지를 않으므로 대응할 이유도 없었다. 해안포의 문이 열리고 탄 발사 궤적이 잡혔으므로 대응사격을 한 것이다.[70] 어차피 탄약은 사용기한이 정해져 있기 때문에 언젠가는 반드시 쓰게 되어 있다. 물론 전략적으로 보면 마냥 좋은 일은 아니긴 한데, 주둔지가 섬이라 추가 탄약을 받으려면 배에 실어 가져오는 길밖에 없어서 절차가 많고 시간이 오래 걸려서 그동안 탄약 비축분이 줄어들기 때문. 만약에 비축분이 줄어든 틈에 북한이 본격적으로 서해5도를 공격한다면 반격할 여력이 줄어드는 것이니. 물론 국군도 바보가 아닌 이상 그렇게 사격하고 나면 바로 채운다. 연평도 포격전 이후로 국방부는 도서지역 주둔 포병의 작전능력에 신경을 쓰고 있어서 탄약 보급과 장비 보충은 빨리 해주는 편이다.[71] 이런걸 보면 노후화된 포신을 교체도 안하고 포를 굴렸을 수도 있다.[72] MiG-15, MiG-17, MiG-19, MiG-21, MiG-23 등.[73] 반면 대한민국 국군의 경우 3세대~3.5세대 전차의 K-1, K-1A1, K-2 흑표 등의 K계열 전차를 종합하여 1,700대 이상을 보유 중인 다수의 전차로 정밀한 탄도계산컴퓨터들이 초 단위로 자동으로 갖가지 변수를 계산해주고, 장거리의 표적 격파는 물론이고 주포 고정 장치도 매우 견고하고 튼실해서 이동간 사격 정밀도 또한 매우 높다. 그나마 대한민국 국군이 운용하는 전차 중에는 1960년대부터 도입한 1세대 전차 M48 패튼 계열도 있는데, 이미 대한민국 국군은 1970년대 후반부터 1989년까지 군 전력 증강 사업을 통해 M48A3K / A5K으로 개량하여 전자식 사격통제장치로 교체하면서 2세대 전차 성능 수준으로 성능이 향상되었다. 이렇게 개량된 M48 패튼 계열은 보병 화력지원을 목적으로 운용하고 있고, 그마저도 노후화로 인해 순차적으로 퇴역을 앞두고 있는 2선 수준의 기갑장비이다. 거기에 대한민국 국군은 불곰사업으로 북한군의 대부분의 전차들보다 고성능의 3세대 전차 T-80U 전차를 약 35대를 보유하고 있어서 T-80U 계열을 통해 러시아의 군사 기술과, 전술 및 작전교리와 교범을 일부라도 파악하여 중국과 북한의 전차 운용 방식을 간접적으로라도 정립 습득할 수 있었으며 이는 한국군의 독자적인 무기 개발에 큰 도움이 되었다. 그래서 북한군이 M48 패튼 계열을 상대로 싸운다면 먼저 보고 맞추는 전차병이 이길 가능성이 높겠지만 국군의 K계열 전차와 T-80U 계열을 상대로 싸운다면 오히려 학살 당할 가능성이 높다.[74] 참고로 저 시점은 고난의 행군이 오기 전이라 상황이 어느 정도 괜찮았던 1990년대 초반이다. 최소한 90년대 초반부터 탄약 부족이 심각했다는 것.[75] 참고로 주성하는 북한 군인 중 절반 이상이 1년 동안 총을 3발 이상 쏘지 못한다고 추측했다.[76] 연말에 교탄소모량을 채우려고 대부분의 훈련을 실탄사격으로 채우는 부대가 많다.[77] 사회복무요원조차도 기초군사훈련+예비군 훈련이 겸해지기에 실제로 사격훈련은 생각보다 꽤 많이 하는 셈이다. 물론 사회복무요원은 신체상태가 일반인보다 좋지 못해 가는 것이므로, 현역에 비해 합격점을 비롯해 여러 방면에서 커트라인이 낮고, 보충훈련도 대체로 주말에 간단한 시청각자료 등으로 대체하는 경우도 많은데다 결정적으로 기초군사훈련 3~4주+동미참 연당 3~4일 내외가 훈련의 전부이니 단순 교탄량만으로 전투력을 측정하기엔 힘든 부분도 있다.[78] 본래 해, 공군은 육군보다 훨씬 많은 도입, 유지비용과 자원이 투입된다. 경제력이 빈약한 국가도 육군은 제법 규모와 전력을 갖춘 국가들이 있지만 해군이나 공군이 강한 국가는 손에 꼽을 정도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79] 投錨, 배를 정박하고자 닻을 내림.[80] 소위 "표류경비"라고 하여, 기름을 아끼기 위해 경비구역까지 나온 뒤에 시동을 끄고 그냥 떠있다가 들어갈 때가 돼야 다시 시동켜서 입항하는 것.[81] 오중흡은 김일성의 동북항일연군 시절 동료로, 김일성 부대가 일본 육군에게 포위되었을 때 자신이 지휘하는 7연대가 김일성부대인 척하고 일본군 병사들을 유인해 김일성을 피신시키고 최후를 맞았다. 이 오중흡은 형제 4명 모두 빨치산으로 유명했는데, 형 오중성의 아들이 바로 오극렬이다.[82] 대한민국 예비군 정도의 부대[83] 일반 총기 쓰듯이 몸과 같은 방향으로 엎드려서 격발하면, 발사하는 순간 후폭풍이 사용자의 몸을 강타해서 죽인다. 따라서 대전차화기를 몸과 같은 방향으로 쏘려면, 무조건 서서 혹은 앉아서 사격을 하거나 엎드려서 사격할 때는 발사기 방향과 몸이 직각이 되도록 엎드려야 한다. 실제 미 육군 기초군사훈련 중 대전차화기 발사 훈련에는 발사 전에 반드시 후방을 확인해 아무도 없다는 걸 확인하고 "Backblast area clear!"라고 외쳐야 한다.[84] 고위 간부가 온다고 다급히 가동 준비를 했는데, 누가 기름을 빼돌리고 물을 채워놔서 전차를 한 대도 못 세우고 맞이하는 일도 종종 있다는 탈북 군인의 증언이 있다.[85] 법 때문에 아무리 연료탱크가 크더라도 하나에 5만 리터 이하이고, 이런 연료탱크가 둘 이상 설치된 대형 주유소는 많지 않다. 애초에 연료탱크가 꽉 차 있을 확률도 높지 않다.[86] 핵 만능주의의 광풍 속에서 중량 23kg의 데이비 크로켓 같은 것도 나왔으니 가능은 하다. 그 정도로 핵폭탄을 소형화할 수 있는 기술이 북한에 있는지는 둘째치고.[87] 전혈만 제한되고 혈장은 가능하다. 전국 헌혈의 집에 안내문이 항시 비치되어있으니 참고. 김포시가 헌혈이 안되는 곳으로 유명했었는데 2018년에 고위험지역에서 해제되고 2020년에 헌혈의 집이 개업한 것이 큰 화제가 되었었다.[88] 2023년 한국은행에서는 탈북민은 함경도 북부 지방으로 출신 지역이 편중되었음을 감안하여 최대한 북한 전역의 출산율을 조사했다. 특히 평양은 한국의 도 지방보다도 출산율이 낮으며, 부산급으로 저출산이 극심하다.[89] 미군 대대장(중령)은 한국군과 원활한 소통을 위해서 왼쪽 가슴에 자신의 계급에 대응하는 한국군 계급장을 단다.[90] 원래는 137㎝ 이상이면 현역 판정을 받았지만, 어느 순간부터 135cm 이상이면 현역으로 바뀌었다. 북한에서는 중학생 나이에 신검을 받는 것을 감안해도, 한국에서 130cm 중후반은 초등학생의 평균 수치다. 인구절벽이라는 한국도 신장만으로 면제급인 5~6급이 규정되어 있는데, 이 최소 커트가 146cm 이하이며, 설령 키는 현역급이라도 BMI가 14.9 미만이거나 40 초과면 4급으로 사회복무요원으로 전환된다.[91] 일반 국가에 대입하여, 국가 차원에서 시장경제를 도입한 것이 아니라, 주민들이 굶어죽을 위기를 벗어나려고 장사를 하면서 비사회주의라는 명분의 단속이나 화폐개혁 같은 난장판에도 버텨낸 것에 가까웠다. 게다가 국가가 합법적으로 자원을 관리하지 못한 시장화로 키가 자란다는 것은, 시장경제의 이익을 군에다가 쓰기 힘들다는 것으로 군의 식량난 해결에는 큰 도움이 못된다. 거기에 2020년대 들어 다시 시장에 대한 단속이 심해지고 있어서 저 신장 증대도 위기에 직면하고 있다.[92] 이러한 상태로 임신을 하면 태아의 발육 등에 심각한 위해를 끼칠 수 있다.[93] 고난의 행군 이미지로 인한 편견이 너무 심해서 처음에는 170cm의 키로 잘못 알려지기도 했다. 극빈국으로 유명한 남수단도 평균 키가 일반 한국인보다 큰 것을 감안하면 유전적으로 큰 사람은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94] 국군 전진부대 JSA대대 소속 근무헌병은 국군에서 가장 많은 사격훈련을 소화하는 부대 중 하나이며, 특히 권총사격은 특전사보다 많이 한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이다. 부대 평균 신장이 170대 중후반으로 1군단 산하 사단 신병교육대에서 최정예 병력들을 골라서 입영시키며, 근무정복 및 부대 규정 또한 매우 빡빡하다. 즉, 이를 상대하는 북한 측 판문점 민경대대 또한 그에 못지 않은 특별 선발이 있다고 보는 것이 상식적이다.[95] 하루에 소금과 옥수수 400g밖에 못 먹는다고 한다.[96] 참고로 같은 시간이라면 한국군 보병은 40kg에 달하는 완전군장 상태로 200~300m를 가고, 급속 행군 명령이 떨어지면 훨씬 빠르게 이동한다.[97] 정확히는 기존 장구류 무게 총합이 25㎏인데 이를 17~18㎏ 수준으로 줄이는 것이라고 한다.[98] 국내에서 가장 유명한 동장군이 바로 북한 땅에서 일어난 장진호 전투다.[99] 이 때문에 러시아군 전투식량에는 피하지방을 최대화시키기 위해 돼지 비계가 많이 들어있다. 세계에서 가장 추운 마을인 오이먀콘 사람들도 식사마다 튀기고 기름과 마가린 범벅으로 고기 위주로 엄청나게 기름진 음식을 가득 먹는 이유가 바로 이런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먹어도 체온 유지에 엄청난 열량을 소모하기 때문에 비만인 사람이 매우 적다. 마이클 펠프스만 봐도 이해하기 쉬운 내용이다.[100] 도톰한 피하지방층이 보온재 역할을 할 뿐만 아니라, 같은 양의 탄수화물과 단백질의 2.25배인 9㎉/g의 열량이 비상식량 역할을 톡톡히 해준다.[101] 다만 이들이 말하는 '군기'가 위에서 강요하는 병영부조리에 아래에서 얄짤없이 굴복하는 거라고 보면 거짓말은 하지 않은 셈이다.[102] 대한민국에서 군사경찰, 즉 구 헌병에 해당함.[103] 참고자료 기사에서는 2019년 12월부터 병사의 날이 시작되었다고 밝혔는데, 아마 부대별로 시행 날짜가 달랐던 것으로 보인다.[104] 이 때 노동자 월급도 함께 대폭 인상했다. 그것도 2002년 이래 22년 만에.[105] 소위~중위가 맡는다.[106] 북한 노동자들의 월급이 6~12달러 남짓이다.[107] 인상 전에는 환율을 감안해도 개판 그 자체였다. 2019년 통일부 조사에 따르면 상급병사 150원, 중사 110원, 초급병사 90원, 하사 70원이었는데, 심지어 이 월급도 사문화된 판이라 북한에서 군복무를 마친 탈북자 10명 중 9명은 군인이 월급을 받는다는 것조차 모를 정도였다고 한다. #[108] 해당 사업을 위해 조선인민군 육군의 각 군단들마다 따로 만든 연대이다. 농촌, 지방 살림집 건설에도 동원된다.[109] 어림잡아 하루 만에 두세 건의 절도 행각을 벌였다는 것이다![110] 입쌀을 강냉이와 맞바꾸면 kg당 3천 원(미화 0.3달러)의 차익이 생긴다.[111] 참고로 2023년 가을 김정은이 병사들의 식생활 환경을 개선할 데 대해 지시하면서 기존에 5:5이던 입쌀과 강냉이의 비율을 현행으로 높이도록 명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