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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0-02-24 11:35:26

대청해전

서해교전
제1연평해전 제2연평해전 대청해전
대청해전
시기 2009년 11월 10일
장소 대한민국 북방한계선
교전국 대한민국 제6공화국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지휘관 233 편대장 소령 연제영[1]
236 편대장 소령 고승범
참수리 325[2] 정장 대위 김상훈
참수리 328 정장 대위 김성완
참수리 336 정장 대위 강동완
참수리 338 정장 대위 김상욱
지휘관 불명
전력 울산급 호위함 1척
참수리급 고속정 4척
상해-I급 경비정 1척
피해 인명피해 없음
고속정 외부격벽 15발 탄흔
8명 전사(추정)
경비정 반파
결과 파일:대한민국 해군기.png 대한민국 해군 승리
파일:2009120980891_2009120951821.jpg[3]

1. 개요2. 교전 내용3. 교전 이후

1. 개요

2009년 11월 10일한반도 서해 북방한계선(NLL) 이남 대청도 인근 해상에서 대한민국 해군북한 해군 고속정 간에 벌어진 3번째 서해교전.

대한민국 국군 합동참모본부에서 11월 16일 대청해전이라 명명하였다. 그 이전에 일부 언론에서 제3연평해전 등의 명칭을 사용했는데, 연평도 인근에서 일어난 교전이 아니라서 부적합한 명칭이라고 볼 수 있다.

해군 교리 정의상 '교전'에 불과한 것을 해전으로 명명했다는 해군 내의 비판적 시각도 있다. 어쨌거나 정식 명칭은 대청해전이다.

2. 교전 내용

북한 경비정이 북방한계선을 침범한 것을 우리 해군이 수차례 경고통신을 보냈으나 이를 무시하고 경고 사격을 하겠다는 경고마저 수차례 무시하자 교전수칙에 따라 경고 사격을 한 아군 고속정을 향해, 오전 10시 27분에 조준사격을 가하며 들어와 교전이 벌어졌다.

다행히 우리 해군 측 사상자는 없으며, 북한 측 경비정에서는 8명 사망 3명 부상의 피해가 있다는 정보가 국방부에 들어왔다고 한다. 북한 측 경비정은 반파된 채 북한으로 돌아갔다. 이날 북한 해군 전사자가 발생했다는 사실은 2010년 10월 16일자 로동신문이 대청해전에서 전사한 해병[4] 김주혁의 출신 중학교인 평양 축전중학교를 10월 15일자로 김주혁중학교로 개칭했다고 보도함에 따라 공인되었다.

3. 교전 이후

제2연평해전이 벌어진 지 약 7년 만에 벌어진 교전으로서 북한이 이러한 도발을 또다시 자행한 이유에 대해서는 추측만 난무할 뿐 아직 확실하게 밝혀지지 않았다. 그래도 그중에 가장 힘을 얻고 있는 추측은 북미 대화를 앞두고 북한이 기선제압에 들어갔다는 것이다. 우발성 충돌이라는 설도 있으나, 5회에 걸친 경고방송에도 불구하고 넘어온 것으로 보아 가능성은 거의 없다.

북한은 당연히 '남한 선공'을 주장하며 음모론을 전개했지만, 북한이 이런 짓거리를 어디 한두 번 해왔던가?

어쨌든 2004년 참여정부 때 바뀐 교전수칙에 따라서 제2연평해전 때와는 달리 대응이 빨라져 우리 측의 경고 사격이 먼저 있었고, 그 이후에 북한의 조준사격으로 교전이 벌어졌다.

우리 측의 선제 경고사격에 대한 대체적인 여론은 이번에 우리 측의 사상자가 생기지 않았기에 다행이라는 분위기였으나, 한겨레에서는 선제 경고사격을 북측에선 조준사격으로 오인할 수 있는 것이라며 우리의 과잉 대응 문제를 제기하는 기사[5]를 올려서 욕을 먹었다. [6]

북한 함선이 85mm 함포 50발을 쏴서 15발을 맞혔다는 오보가 있었는데, 사실은 14.5mm 중기관총이다. 85mm 50발을 쏘려면 한참 걸리고 15발 맞으면 고속정이 멀쩡할 리가 없다. 상식적으로도 수동 사격의 명중률을 고려하면 기관총으로 한 수천 발 쏴야 15발 맞힐까 말까지, 85mm 함포로는 택도 없다. 그나마 북한 해군이 훈련을 제대로 했을지조차 의문이다. 1년에 1인당 자동소총 탄약 소모량이 평균 2발둔전병(...)들이 대포는 쏴 봤을 거 같은가? 사통장치에 연동된 자동 화기도 해상에선 명중률이 그리 높지 않은데 수동 사격이야 뭐... 그리고 맞힌 것도 배에 피해를 그리 주지 못했으니 의미 없다.

그리고 우리 해군에 대해서도 언론이 비슷하게 깠다. 4천 발 쏴서 겨우 그거냐고. 대소 구경 다 합쳐서 그 정도였던 모양인데, 20mm 이하 구경은 아무리 많이 쏴도 격침은 힘들다.

그 이후에도 서해상에는 북한 군함들과 우리 군함들이 대치하며 15일에는 북한이 실크웜 기반의 대함 미사일 레이더를 가동시켜 아군 구축함이 긴급 회항하는 일이 벌어지는 등 상당히 긴박하게 돌아갔다. 아무튼 손도 못쓰고 진 게 분하긴 분했던 모양이다.

이 전투에서 '파열탄'이 일부 사용되었다 한다. 쉽게 말해서 일종의 수류탄이나 유탄과 비슷한 무기로, 판옥선처럼 타고 있으면 북한의 고속정 갑판에 정렬한 해병들은 그저 밥이다. 그래서인지 이후 갑판의 화기 마운트에 장갑과 덮개를 붙이고 로켓과 중소형 보병용 대전차 미사일을 추가한 함정이 늘었다. 제1, 2연평해전 때에도 구 소련제 중소형 고속정들의 특유의 수동조작식 함포로 인하여 함미 부근 주갑판에 해병들의 외부 정렬이 잦은 북한 해군에겐 우박 수준인 파열탄에 피해를 봤다 대청해전 때 3차적으로 더 봤으니 그럴 만도 하다. 본격적으로 해상저격여단 병력을 옮겨 태워가는 추세인 모양.

참고로 국제법에서 금지하는 비인도적 무기의 골자는 맞은 사람이 어떻게 인수 분해되는가가 아닌 [7] 무기가 조준한 것 이외에 피해를 줄 가능성이 있는가에 의해 정해진다. 대표적인 예로는 눈에 보이지 않아 많은 민간인들에게 피해를 입히는 지뢰라든가, 오랫동안 잔류하거나 넓은 지역에 퍼지면서 제3자에게 피해를 입히거나 전쟁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문제를 일으키는 화생방 무기, 그리고 수많은 자탄으로 인해 불발탄 문제가 심각한 [8] 클러스터탄 등이 있다. 결론은 이 경우에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교전 뒤 긴박한 분위기에도 큰 일은 벌어지지 않았지만, 2010년 3월 26일 오후 9시 30분쯤 백령도대청도 사이에서 포항급 초계함 PCC-772 천안함북한의 어뢰공격으로 침몰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그리고 2010년 막바지에는 연평도에 포격을 가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1] 현재 중령. 제1연평해전 당시 참수리 357 정장이었다.[2] 1차 연평해전에서 북측과 교전하여 전과를 올린 그 고속정이다. 북한 해군 입장에선 우리 해군이 자신들의 684를 바라보는 심정과 비슷한 함정이다.[3] 전군지휘관회의 대청해전 포상[4] 조선인민군 해군은 수병을 이렇게 부른다.[5] 참고로 1차 연평해전 때 이러면서 당시 김대중 정권을 깠던 만화를 관련지 한겨레 21에서 그리기도 했다. 북한 해군은 노로 젓는 통나무배이고 한국 해군은 첨단 장비로 거뜬히 이기곤 이겼다고 자화자찬하고 김대중도 잘했다 이런 내용이니까 과잉 대응이라고 깐 거다. 멀쩡한 군함 두고 어선에 기관총 올려 싸우라는 이야기인가...[6] 실제 2함대 참수리에서 근무했던 위키러에 의하면 참수리에서 북한의 경비정을 만나면 정말 소름 끼치게 무섭다는 것이다. 상대가 언제 우리를 피격할지 모르는 데다가 이미 2번의 해전에서도 상대가 먼저 공격했기에 정말 아찔한 상황이 아닐 수 없다...[7] 맞은 사람이 박살 난다고(...) 해서 비인도적 무기로 간주된다면 중기관총과 같은 대구경 총기나 각종 화포, 폭발물들은 모두 비인도적 무기가 된다.[8] 한마디로 한 10년 지난 뒤에 민간인 거주지가 되면 굴러다니던 돌멩이가 폭발한다는 소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