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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2-18 14:27:29

대한민국 국방부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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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부장관 (1948~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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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국방부장관
大韓民國 國防部長官
The Minister of National Defense
of the Republic of Korea
현직 공석 (직무대행 김선호)
취임일 미정
정당

1. 개요2. 상세3. 위상4. 역대 장관5. 문민통제 문제6. 관련 틀7. 관련 문서

[clearfix]

1. 개요

• 정부조직법 제33조(국방부) ① 국방부장관은 국방에 관련된 군정 및 군령과 그 밖에 군사에 관한 사무를 관장한다.
• 국군조직법 제8조(국방부장관의 권한) 국방부장관은 대통령의 명을 받아 군사에 관한 사항을 관장하고 합동참모의장과 각군 참모총장을 지휘·감독한다.
대한민국 국방부의 장. 대한민국 국군 통수권자대통령의 명을 받아 국방에 관한 사무를 관장하고 군정권과 군령권을 통수하는 역할을 맡으며, 동시에 국무위원으로서 국무회의에 참석한다.

국무위원의 일원이기에 문민통제 원칙에 따라 현직 군인은 임명될 수 없지만, 보통 일반인(민간인)들이 아닌 예비역 대장 및 중장이 임명된다. 그래도 일단 명목상으로 국방부장관은 군인이 아니라, (일반적으로 군인 출신이 임명될 뿐인) 정무직공무원이다.

다만 현실적으로는 말만 문민통제이지 현직 군인이 국방부장관이 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이는 (육군) 4성 장군이 군복 벗자마자 바로 국방부장관으로 부임하는데에 기인한다.[2] 일부 중장 출신 국방부장관이 있기는 하나, 이들도 거의 육군 출신이라 크게 다르진 않다. 따라서 미국, 영국, 독일 등 타 선진국과는 다르게 대한민국 국방장관 직위는 제복군인 보직·계급의 연장선상이다.[3] 2공화국 때까지만해도 민간인 출신 장관들도 다수 임명되었고, 공군 및 해군 출신 장관들에 비해서 육군 출신이 압도적이지도 않았다.[4] 그러나 제3공화국 이후 일반인(민간인) 출신 국방부장관은 임명되지 않고 있으며 육군 대장 출신 30명, 해군 대장 3명, 공군 대장 4명으로 육군 대장 출신이 국방장관직을 거의 독점하고 있다.

한국의 특수한 사정으로서 합참의장보다 국방부장관의 힘이 강하다. 사실 평시라면 장성의 인사권을 가진 국방부장관이 가장 강한게 맞긴 하나, 전시에도 연합사의 존재로 인해 합참의장이 유명무실하기 때문이다. 각 군의 인사권은 다시 각 참모총장이 가지고 있으니 합참의장이 끼어들 여지가 없다.

2. 상세

기본적으로 대다수의 민주주의 정부에서 군부를 통제하는 국방장관은 대개 문민통제(Civilian Control)의 원칙에 따라 일반인이 군을 통제하는 원칙을 당연시하고 있다. 한국 역시 국군통수권자인 대통령부터가 군인이 아니며 헌법에서 현역 군인은 국무위원 뿐 아니라 일체의 정치권 진출을 금한다. 국방부장관 역시 국무위원이므로 현역 군인은 역임이 불가하다. 그러나 북한과 대치 중이라는 특수한 상황과 군사정권의 영향으로 인해, 한국에서 국방부장관은 주로 육군사관학교(가끔은 해사·공사)를 나온 엘리트 군인이 참모총장 또는 합참의장을 거쳐서 올라가는 최고위직이라는 인식이 있다. 주로 예비역 대장 혹은 최소한 중장이 보임된다.

문재인 정부에서는 공약으로 군의 문민통제 원칙을 더욱 강화한다고 밝힌 바 있다. 문재인 정부의 첫 번째 국방부장관으로 임명된 송영무 장관의 경우 전역한 지 10년이 넘은 인물로 군의 문민통제 원칙을 위해서 전역 후 일정기간이 지난 인물을 의도적으로 선임한 걸로 알려져 있다.[5]

국방부장관은 군령권군정권으로 합참의장과 각 군 참모총장을 지휘·감독하고 군 인사권을 행사할 수 있는 위치이기에 당연히 합참의장보다 높은 인물이다. 당연히 인사청문회도 거치나, 합참의장과 마찬가지로 준장 시절부터 엄청난 검증에 시달려 온 것에 대한 보상으로 도덕성 문제는 설렁설렁 넘기고 정책 위주의 간단한 질의응답 만으로 끝내는 훈훈한 분위기다. 전/현직 국회의원, 합참의장과 더불어 인사청문회 난이도가 낮은 3대 요소 중 하나라 보면 된다.

미국의 경우에는 대장이라 하더라도 펜타곤 내 서열은 장관 - 부장관 - 차관 - 차관보보다 밑의 서열로 대장을 장관급으로 대우해주는 한국의 경우에는 장군을 지나치게 예우한다는 비판도 있기도 하다.

非군인 출신의 국방부장관은 정부수립 초창기에 2대 신성모가 반은 해군, 반은 민간인에 가까웠고, 완전한 민간인은 3대 이기붕, 6대 김용우, 9·11대 현석호, 10대 권중돈 장관뿐이었으며 제3공화국 이후에는 군 출신 인사가 국방부장관을 역임해오고 있다. 다만 어디까지나 군 출신 인사일 뿐이지 현역 군인은 국방부장관에 임명되지 못한다. 연평도 포격전 당시 국방부장관이 교체될 때 '이런 전시 사태에는 현역 군인을 국방부장관으로 앉혀야 하는 거 아니냐' 같은 개념 없는 발언을 한 사람들도 있었는데, '현역 군인은 국무위원이 되지 못한다'는 규정은 제헌 헌법 때부터 있었으며 단 한 번도 개정된 적이 없다.

국방부장관 자리를 거쳐 국회에 입문하는 경우도 많다. 전국구급 정당 정도되면 전문적으로 국방정책을 내놓을 수 있는 국회의원, 당내 위원도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이다. 때문에 국방정책을 시행하는 입장이었던 국방부장관 / 차관 출신은 매력적인 스카웃 대상이 된다. 군 장성 또는 국방부 출신 대한민국 국회의원들이 의외로 많은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국방부장관에게는 재임 기간 동안 거처할 수 있는 공관이 제공된다. 이를 국방부 장관 공관이라고 하며 별칭은 "국방부공관"이라고 부른다. 위치는 국회의장, 대법원장, 외교부장관 등의 공관과 함께 한남동 공관촌인 서울특별시 용산구 한남동에 위치해 있다.

군대에 관련된 모든 공무원 중 대통령과 국무총리에 다음가는 위치에 있고 사실상 최선임으로 보는 경우도 있다.

국방부장관이 부득이한 사유로 직무를 수행할 수 없을 때에는 국방부차관이 직무를 대행한다.

3. 위상

보통 4성장군이나 제독 출신이 장관이 되니, 그 앞에서 현직 4성장군이나 제독들은 그저 얌전해진다. 직책으로나 서열로나 국방부 장관보다 하급자인 것은 물론, 국방부 장관은 보통 군 출신 예비역 장군들이 임명되고, 그마저도 최소 중장 이상이라 현역 군인들보다 한참 선배가 되기도 한다.

파일:길안내네비게이션.jpg
김태영 前국방부 장관이 김성찬 前해군참모총장(해군 예비역대장)의 안내를 받으며 이동하고 있다.

파일:삼별.jpg
김태영 前국방부 장관이 설명할 때 황중선 前합참 작전본부장(육군 예비역중장)이 보조하고 있다. 눈을 감고 있는 군인은 김중련 前합동참모차장(해군 예비역중장)이다.

다만 이 부분은 설명이 필요한 게, 선출직이라는 정당성 때문에 대통령도 비판할 수 있고 국무위원에게는 면전에서 호통도 칠 수 있는 국회의원을 상대로 해명하러 나온 자리이기 때문에 저 뒤쪽에 있는 해군 대령은 저 안에 감히 들어갈 수도 없었고, 그래서 울타리 안으로 들어온 사람 중에 나다 싶었던 막내가[6] 칠판을 잡으러 나왔던 것이지 장관이 평소에도 중장을 칠판셔틀로 이용하지는 않는다.[7]

인사권 등에서 청와대와 갈등을 빚기도 했다. 합동참모의장 출신인 이상희 장관 재직 시절에 청와대에서 참모총장들에게 국방장관에게 보고하지 말고 서울특별시로 오라고 하자 참모총장들이 몰래 유선으로 국방장관에게 보고를 했고 이 일로 국방장관은 엄청 분개했다. 한미연합사 부사령관을 제외한 대장들은 근무지를 벗어나려면 국방장관에게 보고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관련기사

대한민국 국방부 장관은 위치가 위치다 보니 북한의 원색적인 비난을 개인 단위로 받을 수 있는 특권을 가지고 있다. 김관진 장관도 그랬고, 한민구 장관도 열심히 받았다. 그리고 송영무 장관도 열심히 받았다. 그리고 결국 정경두 장관 역시 비난의 특권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전직 국방부 장관들이 모두 행정가로서 무능한 모습을 보이다 보니, 아예 미국처럼 조지 C. 마셜 빼고 민간인이 된지 한참된 민간인을 기용하자는 모습도 보이고 있다. 특히, 12.3 사태 이후, 김용현의 행보 때문에 더더욱 힘이 실리고 있다.

4. 역대 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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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부장관 (1948~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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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부장관
정부 대수 이름 임기 출신 최종 계급[8] 비고
이승만 정부 초대 이범석 (李範奭) 1948년 8월 15일 ~ 1949년 3월 20일 광복군 육군 중장
2대 신성모 (申性模) 1949년 3월 20일 ~ 1951년 5월 5일 난징해군
군관학교
상선사관
해군 중장[9] [10]
3대 이기붕 (李起鵬) 1951년 5월 7일 ~ 1952년 3월 29일 민간 -
4대 신태영 (申泰英) 1952년 3월 29일 ~ 1953년 6월 30일 일본육사 육군 중장
5대 손원일 (孫元一) 1953년 6월 30일 ~ 1956년 5월 26일 상선사관 해군 중장 [11]
6대 김용우 (金用雨) 1956년 5월 26일 ~ 1957년 7월 6일 민간 -
7대 김정렬 (金貞烈) 1957년 7월 6일 ~ 1960년 5월 2일 육사 특3기 공군 중장 [12]
허정 내각 8대 이종찬 (李鐘贊) 1960년 5월 2일 ~ 1960년 8월 23일 육사 특7기 육군 중장
장면 내각 9대 현석호 (玄錫虎) 1960년 8월 23일 ~ 1960년 9월 12일 민간 - [13]
10대 권중돈 (權仲敦) 1960년 9월 12일 ~ 1961년 1월 30일 민간 -
11대 현석호 (玄錫虎) 1961년 1월 30일 ~ 1961년 5월 18일 민간 -
군정 내각 12대 장도영 (張都暎) 1961년 5월 20일 ~ 1961년 6월 6일 군영 1기 육군 중장 [14]
13대 송요찬 (宋堯讚) 1961년 6월 12일 ~ 1961년 7월 10일 군영 1기 육군 중장 [15]
14대 박병권 (朴炳權) 1961년 7월 10일 ~ 1963년 3월 16일 군영 1기 육군 중장
15대 김성은 (金聖恩) 1963년 3월 16일 ~ 1968년 2월 27일 해사 1기[16] 해병 중장 [17]
박정희 정부 (3공)
16대 최영희 (崔榮喜) 1968년 2월 28일 ~ 1968년 8월 5일 군영 1기 육군 중장
17대 임충식 (任忠植) 1968년 8월 5일 ~ 1970년 3월 10일 육사 1기 육군 대장
18대 정래혁 (丁來赫) 1970년 3월 10일 ~ 1971년 8월 25일 육사 7기 육군 중장
19대 유재흥 (劉載興) 1971년 8월 25일 ~ 1973년 12월 3일 군영 1기 육군 중장
박정희 정부(4공)
20대 서종철 (徐鐘喆) 1973년 12월 3일 ~ 1977년 12월 20일 육사 1기 육군 대장 [18]
21대 노재현 (盧載鉉) 1977년 12월 20일 ~ 1979년 12월 14일 육사 3기 육군 대장 [19]
최규하 정부 22대 주영복 (周永福) 1979년 12월 14일 ~ 1982년 5월 21일 공사 2기 공군 대장 [20]
전두환 정부
23대 윤성민 (尹誠敏) 1982년 5월 21일 ~ 1986년 1월 8일 육사 9기 육군 대장 [21]
24대 이기백 (李基百) 1986년 1월 8일 ~ 1987년 7월 14일 육사 11기 육군 대장 [22]
25대 정호용 (鄭鎬溶) 1987년 7월 14일 ~ 1988년 2월 25일 육사 11기 육군 대장 [23]
노태우 정부 26대 오자복 (吳滋福) 1988년 2월 25일 ~ 1988년 12월 4일 갑종 3기 육군 대장 [24]
27대 이상훈 (李相薰) 1988년 12월 5일 ~ 1990년 10월 8일 육사 11기 육군 대장
28대 이종구 (李鍾九) 1990년 10월 8일 ~ 1991년 12월 20일 육사 14기 육군 대장 [25]
29대 최세창 (崔世昌) 1991년 12월 20일 ~ 1993년 2월 26일 육사 13기 육군 대장 [26]
문민정부 30대 권영해 (權寧海) 1993년 2월 26일 ~ 1993년 12월 22일 육사 15기 육군 소장
31대 이병태 (李炳台) 1993년 12월 22일 ~ 1994년 12월 24일 육사 17기 육군 중장
32대 이양호 (李養鎬) 1994년 12월 24일 ~ 1996년 10월 18일 공사 8기 공군 대장 [27]
33대 김동진 (金東鎭) 1996년 10월 18일 ~ 1998년 3월 3일 육사 17기 육군 대장
국민의 정부 34대 천용택 (千容宅) 1998년 3월 3일 ~ 1999년 5월 24일 육사 16기 육군 중장 [28]
35대 조성태 (趙成台) 1999년 5월 24일 ~ 2001년 3월 26일 육사 20기 육군 대장
36대 김동신 (金東信) 2001년 3월 26일 ~ 2002년 7월 12일 육사 21기 육군 대장
37대 이준 (李俊) 2002년 7월 12일 ~ 2003년 2월 27일 육사 19기 육군 대장 [29]
참여정부 38대 조영길 (曺永吉) 2003년 2월 27일 ~ 2004년 7월 29일 갑종 172기 육군 대장
39대 윤광웅 (尹光雄) 2004년 7월 29일 ~ 2006년 11월 24일 해사 20기 해군 중장 [30]
40대 김장수 (金章洙) 2006년 11월 24일 ~ 2008년 2월 29일 육사 27기 육군 대장 [31]
이명박 정부 41대 이상희 (李相憙) 2008년 2월 29일 ~ 2009년 9월 22일 육사 26기 육군 대장 [32]
42대 김태영 (金泰榮) 2009년 9월 23일 ~ 2010년 12월 3일 육사 29기 육군 대장 [33]
43대 김관진 (金寬鎭) 2010년 12월 4일 ~ 2014년 6월 29일 육사 28기 육군 대장 [34]
박근혜 정부
44대 한민구 (韓民求) 2014년 6월 30일 ~ 2017년 7월 13일 육사 31기 육군 대장 [35]
문재인 정부 45대 송영무 (宋永武) 2017년 7월 14일 ~ 2018년 9월 20일 해사 27기 해군 대장 [36]
46대 정경두 (鄭景斗) 2018년 9월 21일 ~ 2020년 9월 17일 공사 30기 공군 대장 [37]
47대 서욱 (徐旭) 2020년 9월 18일 ~ 2022년 5월 10일 육사 41기 육군 대장 [38]
윤석열 정부 48대 이종섭 (李鐘燮) 2022년 5월 10일 ~ 2023년 10월 7일 육사 40기 육군 중장
49대 신원식 (申源湜) 2023년 10월 7일 ~ 2024년 9월 5일 육사 37기 육군 중장
50대 김용현 (金龍顯) 2024년 9월 6일 ~ 2024년 12월 5일 육사 38기 육군 중장 [39]

5. 문민통제 문제


한국의 국방부장관은 문민통제가 잘 이뤄지지 않아 대개 전역한 대장이 취임한다. 원칙은 대장이지만 해군, 해병대, 공군중장도 취임이 가능하다.[40] 실제로 윤광웅예비역 해군 중장 신분으로 국방부장관에 취임했고 이것이 2004년 일이다. 물론 문민통제가 강력한 미국에서도 군인 출신이 국방장관이 되는 경우는 흔한 편이나 한국의 경우 그러한 경향이 너무 심해 민간인은 커녕 군 출신이라도 부사관 출신이거나[41] 장교 출신이더라도 위관이나 영관급에서 군 생활을 마친 사람이면 국방장관을 하는건 불가능할 정도로, 여타 선진국과는 괴리가 심하다.[42] 심지어 장성급도 육군4성장군이 아니면 꿈도 못 꾸고, 아예 장관을 4성 장군 출신으로 차관을 3성 장군 출신으로 임명하는 관례가 있다.[43] 다만 윤석열 정부의 경우 국방부 장관 3명(이종섭, 신원식, 김용현) 모두 육군 중장 출신으로, 이 원칙을 아예 깼다. 특히 신원식의 경우 민주화 이후 처음으로 현직 여당 국회의원을 임명한 사례이다.[44]

다만 해군공군의 경우는 4성 장군의 숫자가 지극히 제한되어 있고 해병대의 경우는 사령관이 중장이라 4성 장군이 아예 없어서 비육군의 경우는 중장 출신까지는 장관 후보 명단에 올라가 있다. 때문에 말이 문민통제이지 사실상 대한민국 국방장관 직위는 제복군인 보직·계급의 연장선상에 불과하다.

게다가 한국의 국방부장관은 다른 나라들에 비하면 전역한 뒤 국방부장관에 임명되는 시기가 너무 빠르다. 합동참모의장을 맡다가 예편하고 한 시간 만에 장관에 임명된 42대 김태영 장관이 좋은 예이다. 이것은 약과로 육군참모총장 임기를 1년이나 남겨두고 임의로 예편한 뒤 바로 장관에 임명된 40대 김장수 장관도 있다. 김태영은 그나마 합참의장 임기라도 다 채웠지만 김장수는 중간에 그만두고 국방장관이 된 것이고, 정경두 전 장관도 당시 상황으로 인해[45] 국방부장관 할 사람이 없어 대통령의 부름을 받고 국방부장관이 되었다. 어찌 보면 영전이지만 당연히 본인은 생각도 안 한탓에[46]청문회부터 인수인계까지 급하게 진행했다고 한다.

군대에 대한 문민통제가 잘 되는 나라일수록 국방장관은 군 출신자더라도 군에서 전역한 기간이 적지 않아 사실상 민간인화(化) 된 사람을 임명하려 한다는 것을 감안할 때 한국은 현행 국방부장관의 임명 방식이 큰 문제인데, 특히 김장수의 사례처럼 군복무 하고 있는 상태의 현역 군인을 바로 국방부장관에 임명한 것은 매우 부적절하다고 볼 수 있다.

이런 인사체계는 북한군과의 대치하는 상황상 어쩔 수 없다는 반응이 있다고 하지만 이러한 의식은 그만큼 한국 사회의 대중 국방에 대한 사회적 무지와 비관심으로 인한 잘못된 의식일 뿐이다. 냉전시대에 개전시작과 동시에 전술핵 수백 발과 전략핵 수십 발이 난무하는 유럽의 최전선인 독일만 하더라도 독일연방군 자체가 철저한 문민통제 우위를 기반으로 국방전략과 정책을 수행하였고 그러한 문민통제 때문에 동독군과 소련군 등과 같은 공산권 군대들에 비해서 오히려 전략적 열세나 대치중의 전력열세에 처하는 형국은 없었다. 더욱이 그로 인한 제복 입은 국민의 개념과 의식이 군대에 확실하게 적용되어서 국가 속의 국가를 만드는 일도 없었기에 냉전종식 후 공산권 군대들이 서방 군대의 복지수준이나 의식수준에 대단히 찬사와 부러움을 나타내야 했고 특히 독일의 경우에는 동독군이 자발적으로 독일연방군에 편입을 자처할 정도였다. 한마디로 문민통제를 받지 않으려는 군부의 핑계와 일반적으로 전쟁과 군대에 관심이 적고 이해가 부족한 대중이 만들어 낸 병폐라고 보면 된다. 더욱 중요한것은 한국과 같은 제1세계 국가들 중에는 한국과 같은 군 출신 4성 장군이 전역한 지 1시간도 안 되어서 보직연장하는 형태의 장차관을 하는 경우는 대만밖에 없기에 문제가 되는것이다.

이때문에 한국이 국방개혁을 하는데 있어서 바로 잡아야할 문제 중 하나가 바로 이러한 기본적인 문민통제 원칙이 제대로 준수되는가 아닌가의 문제이다. 당장 잊을만하면 터지는 병영부조리와 가혹행위로 인한 병영문화 개선이나 국방개혁이다 할 때마다 한국군이 군부의 외부개입 간섭이나 사회적 영향을 배제하려는 모습을 종종 보거나 봐주기식 혹은 매우 소극적 인식의 행보가 바로 이러한 문민통제가 안 되는 한국의 국방부장관 존재 때문이라 할수 있다.

사실 한국에서도 민간 출신 국방부장관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일단 2대 국방부장관이었던 신성모부터가 상선사관 출신이라 사실상 민간인 출신이라고 보아야한다. 그리고 본 문서 하단에 첨부된 역대 국방부장관 목록에서도 대한민국 초기에 민간인 출신 국방부장관의 존재가 다수 확인된다. 하지만 한국에서 민간인 국방부장관이 금기시된 것은 2대 신성모 전 국방부장관의 6.25 전쟁 당시에 일으킨 흑역사들의 교훈 문제와 함께 제2공화국 시절 민간인 출신 국방부장관으로 문민통제를 시도했다가 결국 5.16 군사정변을 막지 못하여 정권이 붕괴된 탓도 크다. 민간인 출신이 국방부장관을 맡아 군대 내부사정에 어두워서 변고를 당했다는 인식이 있다보니 되려 이후의 정권들에선 문민통제를 위해 민간인 출신 국방부장관을 기피하게 되는 경향이 생긴 것과 동시에 쿠데타로 인한 군 장성 출신 대통령들의 인사에 있어서도 군 출신을 뽑는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었다. 특히 12.12때는 하나회와 같은 사조직 형태로까지 국방부장관-차관-장성단이 구성되는 현실까지 볼 수밖에 없었던 것도 이러한 이유이다.

제6공화국 출범 이후 각 정권에서는 군부 개혁 의지를 드러내더라도 국방부장관 인선을 비교적 정치력이 약한 해군이나 공군, 또는 육군이지만 힘이 약한 기수에서 뽑는 정도에서 그치는 정도에 불과하다. 결국 문민통제의 실현 가능 여부는 단지 민간인을 국방부장관으로 임명하는 데 달린 게 아니라[47], 국방부장관의 요원이 될 민간 출신의 국방 전문가 육성이 얼마나 제대로 이루어지는가에 달려있다.

6. 관련 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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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관련 문서


[1] 중앙은 육해공의 국방부 휘장을, 4축의 4성은 대장을 포함한 모든 군인에 대한 상급자임을, 배경의 홍색은 장관을 상징한다. 차관의 경우 청색.[2] 민주화 이후 윤석열 정부 이전까지 4성 장군 출신 이외의 국방부 장관은 문민정부권영해, 이병태 전 장관(각각 육군 소장, 육군 중장 출신), 국민의 정부천용택 전 장관(육군 중장 출신), 참여정부윤광웅 전 장관(해군 중장 출신) 총 4명이다.[3] 미국을 예시로 들자면 국방부 장관은 민간인 원칙을 고수하고 있으며, 군 출신은 전역 7년 후 부임 가능하다. 그러나 조지 C. 마셜제임스 매티스처럼 모두가 인정할 정도로 뛰어난 능력과 존경을 가진 인물은 전역 7년 이전에도 상원의 특별 허가 과정을 거쳐서 임명 가능하다.[4] 5.16 군사정변 전까지는 육군 3명, 해군 2명, 공군 1명, 민간 5명으로 민간의 비중이 높았다.[5] 참고로 미국의 국방장관 임명 시에는 적어도 군에서 전역 후 7년이 넘어야 한다. 만약 전역한 지 7년이 넘지않은 인사를 임명할 시에는 상원의 특별 허가를 거쳐야 하는데, 조 바이든 정부의 로이드 오스틴 장관이 여기에 해당된다.[6] 이 막내도 당연히 아무나 하는게 아니다![7] 이 사진의 축소판으로 "만일 대대장이 사단장한테 뭔가 설명하는 자리가 있다면 보조로 중대장을 부를까, 분대장을 부를까?" 하는 농담도 있는데 실제 상황이면 중대장들은 전원 대대장 뒤에 각 잡고 전방 15도를 보고 있으면서 불시 질의에 대비하고, 단기장교와 부사관은 숨소리도 못내는 병풍이 되며, 분대장을 비롯한 병사들은 별도로 부르지 않는 이상 근처에 접근도 하기는 커녕 생활관 내에서 무한 대기다. 그리고 칠판셔틀은 2차 보직 대위 이상 대대 참모중 한 명이 맡는게 맞다.[8] 대한민국 국군에서의 계급 기준.[9] 계급은 존재하지만 현역으로 복무해서 보직을 담당한 적은 없다.[10] 군인으로서의 실무 경험이 거의 없기 때문에 사실상 민간인 출신으로 취급되지만, 중화민국 난징해군군관학교 출신으로 해군 소위에 임관되었다. 다만 전술했듯이 이후 영국 해양대학으로 유학해 영국령 인도의 상선회사에서 상선사관으로 일했다. 이 때문에 민간 출신으로 오인받기도 하지만, 상선사관 문서에 서술되어있듯이 현재 대한민국에서도 승선근무예비역으로 취급하며 결정적으로 대한민국 해군 자체가 상선사관을 주축으로 창군되었고, 그 손원일 제독도 상선사관 출신으로 신성모도 창군 이후 해군 중장으로 임관되었다.[11] 1952년에 해군 중장으로 예편.[12] 미국식 훈련을 다시 받고 육군 참위로 시작하라는 미 군정의 홀대[48]로 인하여 육군 항공대에 창설에 투신하여, 1948년 5월 14일 육군항공사관 후보 1기생으로 입교하여 교육 수료 후 대한민국 육군 소위로 임관했다. 이후 국군조직법에 의해 대한민국 공군이 육군으로부터 독립한 1949년 10월 1일에 초대 공군참모총장에 임명되었으며, 이듬해 5월 공군 준장으로 진급했다.[13] 군인 출신을 임명하면 정권에 위협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 장면 총리는 민간 출신을 고집했다고 전해진다.[14] 육군참모총장.[15] 육군참모총장.[16] 당시에는 조선해안경비대 사관학교라는 이름이었다.[17] 현재까지 유일한 해병대 출신 국방장관.[18] 훗날 KBO 초대 총재로 서승환 前 국토교통부 장관의 아버지이자 가수 서지영의 할아버지. 서승환 전 장관과 서지영은 삼촌-조카 관계다.[19] 국방부 장관 3년차인 1979년 12월 12일에 전두환이 일으킨 12.12 군사반란이 일어났을 때 국방장관 공관에 있던 그는 인근의 육군참모총장 공관에서 총소리가 나자 기겁하여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지 제대로 확인조차 하지 않은 채 즉시 가족과 함께 공관에서 빠져나와 단국대학교로(당시 단국대는 용산구 한남동에 있었다) 허겁지겁 도망쳤다. 부하의 집에 가족을 맡긴 후 육본 B-2 벙커로 가서 상황을 보고받은 뒤 미 육군 제8군 영내에 있는 한미연합군사령부로 도망갔다 이후 국방부로 다시 도망갔다가 마침 국방부로 쳐들어온 반란군 제1공수특전여단에게 붙잡혔다.[20] 전두환이 세운 바지사장이었기 때문에 사실상 전두환의 꼭두각시 라고 보는것이 옳다.[21] 12.12.사태당시 육참차장으로 전두환에게 맞섰으나 패배했다. 얼마지나지 않아 전두환에 의해 합참의장으로 영전했다.(사실상 바지사장)[22] 1983년 10월 전두환과 함께 버마(現 미얀마)에 수행원으로 갔다가, 아웅산 묘소 폭탄 테러로 인해 생명에 지장이 갈 정도로 큰 부상을 당하였으나, 다행히 아웅산 묘소 폭탄테러 당시 입고 있던 장군정복과 정복에 달린 약장과 훈장이 방탄복 역할을 하여 살아남았다. 그의 뒤에 도열해 있던 최재욱 당시 공보비서관과 더불어 단 둘 뿐인 생존자로 아웅산 테러사건당시 수행했던 합참의장 전속부관 전인범 중위(육군 예비역중장)에 의해 구조되었다. 귀국 후 그 정복을 육군사관학교에 기증하여, 육군사관학교 내 박물관(육군박물관)에 고스란히 전시되어 있다.[23] 신군부의 구성원(하나회)으로 5.18.광주민주화운동 진압작전에 가담했다.[24] 퇴역 직후인 1988년 2월부터 12월까지 노태우 정부의 첫 국방부 장관을 역임했다. 1988년 8월 육군정보사령부가 현직 기자를 피습하는 오홍근 테러사건이 일어나자 도의적 차원에서 사의를 표명했으나 반려되었다. 2005년 성우회장 재임 당시 손자가 한국국적을 포기하고 미국 국적을 선택해 병역을 면제받은 사실이 드러나 논란이 되자 자진사퇴했다.[25] 하나회[26] 역대 최악의 국방부장관. 신군부의 구성원으로 특전사3공수여단장(준장) 시절 12.12 군사반란에 가담하여 12.12.당일날 육군특수전사령부에 부하(당시 박종규 중령,2010년 사망)들을 보내 정병주 당시 사령관(소장)을 체포하고(이과정에서 故김오랑 중령이 정병주사령관을 지키다가 전사) 광주 민주화 운동 당시 현역 준장 신분으로 광주 시민들에게 발포한 인물이다.[27] 창군이래 최초의 비육군출신 합동참모의장이자 최초의 공군출신 합동참모의장을 지냈다[28] 2군단장[29] 전역 7년 후 임명이라 문민으로 본다.(제1야전군사령관)[30] 해군참모차장, 참여정부시절 2005년 육군503GP 총기난사 살인사건이 일어나자 창군 최초로 이때부터 합동분향소를 설치 운영.[31] 육군참모총장, 박근혜정부 청와대 안보실장과 주중대사를 지냄.[32] 합동참모의장[33] 합동참모의장[34] 합동참모의장, 박근혜정부 청와대 안보실장[35] 문재인 대통령이 당선자 인수인계기간이 없이 5월 10일 바로 취임했기 때문에 한민구 장관은 송영무 장관이 청문회를 거쳐 임명되기 전까지 자리를 지켰다. 육참총장과 합참의장을 지냈다.[36] 전역 9년 후 임명이라 문민으로 본다.(노무현정부 말렵부터 이명박정부 초기까지 해군참모총장을 지냈다.)[37] 박근혜 정부시절 공군참모총장과 (문재인정부 초기까지)합동참모의장을 지냈다.[38] 육군참모총장[39] 통상 국방부장관에 임명되지 않는 것이 관례였던 육군 중장을 세 명이나 임명했다.[40] 문민정부 권영해 장관의 경우 소장 출신.[41] 한국은 징병제의 특성상 병 출신으로 하면 남성 전체가 되므로 제외. 미국의 경우 병 출신이 국방장관이 된 경우도 있다.[42] 군국주의 국가로 유명한 이스라엘도 전역한 지 수 년이 지나야 국방장관이 될 수 있다.[43] 그래도 대한민국 국방부차관은 참여정부 이후 대체로 민간인을 임명하고 있다. 국방부의 하위 기관인 병무청의 장도 군인이 여럿인데, 지방청이 아닌 중앙청장이 그렇다. 기찬수병무청장이 소장 출신이고, 박창명 전 청장과 모종화 전 청장은 각각 중장으로 예편했다.[44] 다만 국방부 장관에 임명된 사유가 '신 의원에 대한 대통령의 신뢰가 깊다'였는데, 이게 홍범도 흉상 철거 논란, 채상병 사건 수사 외압 논란 등에서 대통령을 각별히 옹호했기 때문에 보은인사라는 비난이 있다.[45] 송영무 전 장관이 여기저기 구설에 올랐고, 이후 이순진 전 합참의장을 임명하려 했으나 고사하는 바람에 정경두로 넘어가게 된 것이다.[46] 정경두 자체는 장성 시절부터 군무원 임용 같은 다른 진로를 준비하는 등 대장 진급을 생각 안 하던 사람이었고 진급도 운이 따라서(공군을 밀어주는 정부와 인원 결원 등)했다는 평이 있다.[47] 국방과 군무에 대해 너무 '무지'하면 당연히 안 되고, 또한 병역을 강제로 부과하는 대한민국에서 최소한 관계기관의 수장들인 국방부 장관과 병무청장은 앞장서서 군복무에 심신을 바친 사람을 보해야 명분이 선다. 직업 군인으로 복무하지 않은 여성이나 병장도 만기 전역하지 않은 남성을 무작정 올려놓으면 징병 대상자들은 '자기는 군대도 제대로 안 다녀온 주제에 우리더러는 억지로 갇혀서 봉사하라고 시키다니.'라는 비판 가능성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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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 비슷한 시기에 미 육군 항공대 역시 미 육군에서 독립하여 미 공군이 되었는데, 신생국이 공군을 창설한다는 것은 말도 안되는 것이라고 생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