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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0-08 03:07:03

김정일/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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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일 사망
金正日死亡

The Death of Kim Jong-il
파일:김정일 송장.jpg
▲ 김정일의 시체
(2011년 12월 20일 / 평양시 대성구역 금수산기념궁전)
파일:김정일 사망 - 김정은&장성택.jpg
▲ 김정일 장례식에서 영구차를 호위하는
김정은, 장성택[1], 김기남, 최태복
(앞에서부터)[2]

(2011년 12월 28일 / 평양시 중구역 김일성광장)
<colbgcolor=#bc002d,#222222><colcolor=white> 발생일자 2011년 12월 17일 08시 30분 (사망시점 / D-day)
2011년 12월 19일 12시 (사망사실 공표 / D+2)
2011년 12월 28일 (장례식 / D+11)
발생장소

(평양시 룡성구역 룡성1동 룡성역)
당사자 김정일
(1941년생 /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총비서국방위원장)
사인 심근경색, 심장성 쇼크 합병증
영향 - 삼남 김정은의 권력 승계[3]
- 매부 장성택의 처형
- 친중 성향의 가신단 대거 교체 및 제거
1. 개요2. 사망
2.1. 장의위원회 위원 목록2.2. 영구차 8인방의 근황
3. 사망 직후 영향 및 우상화

[clearfix]

1. 개요

리춘히 아나운서의 김정일 사망 발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방위원회 위원장이시며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이신 위대한 영도자 김정일동지께서 주체100, 2011년 12월 17일 8시 30분에 현지지도의 길에서 급병으로 서거하셨다는것을 가장 비통한 심정으로 알린다.[4]
- 조선중앙텔레비죤 긴급 보도 중 (2011년 12월 17일)
2011년 12월 17일 북한의 2대 최고지도자 김정일이 사망한 사건.

북한 정권의 공식 발표에 따르면 김정일2011년 12월 17일에 개인 전용 열차인 태양호를 타고 가다가 심근경색심장성 쇼크 합병증으로 사망했다고 하지만 대한민국의 정보에 따르면 태양호2011년 12월 15일부터 줄곧 룡성역에 정차해 있었으며 김정일 본인의 이동도 확인된 바가 없었다고 한다. 기사(연합뉴스 / 2011.12.20.) 기사(데일리NK / 2011.12.20.) 오피니언(데일리NK / 2020.3.12.) 즉, 우상화를 위해서 열차에서 순직한 것으로 날조했거나 '열차를 타고 이동하려다가 사망했을 가능성'이 있다.

아무튼 김정일의 사망으로 인해 북송 재일교포 출신 고용희[5]와의 슬하 자녀 김정은이 김씨 독재 정권의 최고 권력을 물려받게 되었다. 권력 승계에 대한 내용은 김정일/생애 문서 참조.

2. 사망

파일:김정일 초상화.jpg
파일:김정일 사망.jpg
<rowcolor=white> 사망 직후 공개된 초상화[6] 김정일 장례식 행렬
파일:kbsnews_new.jpg
<rowcolor=white> 김정일 사망, 북한 어디로?
(2011년 12월 20일 방송분 / KBS 특집 다큐멘터리)
원본 풀버전[7]

김일성&김정일 부자 사망 관련 영상 재생목록. 8~22번 영상이 김일성 사망 관련이다.

북한의 공식 발표에 따르면 2011년 12월 17일 08시 30분 사망했는데 전용 열차인 태양호를 타고 가다가 사망했다고 한다. 원인은 공식적으로는 '인민들을 위해 불철주야 업무를 하다가 과로로 인한 중증급성 심근경색과 심장쇼크'지만 건강에 치명적일 정도로 계속 여기 저기 시찰, 방문하는 등 상당히 무리한 것은 사실이다. 물론 '과로'는 아무래도 수식어구의 느낌이 강하며 김정은 후계 체제의 불안정으로 인한 본인의 불안감 탓에 나름대로 애를 쓴 것도 있겠지만 뒤의 두 병명은 성인병으로서 전형적인 질환이다. 조선중앙TV 보도[8] 이는 19일에 발표되었는데 정부에서 이를 사전에 파악하지 못한 점이 질타를 받기도 했다.

다만 북한이 발표한 사망 날짜와 사망 장소는 거짓일 가능성이 제기되었다. 12월 20일 국회 정보위원회에 출석한 원세훈 국가정보원장이 "김정일 전용 열차는 평양 룡성역지난 12월 15일부터 계속 멈춰서 있었다"고 진술했다. 이는 열차로 이동하는 중에 김정일이 사망했다는 북한의 공식 발표가 거짓말이라는 것이다.

북한의 공식발표 이전에는 미국, 일본, 러시아 등 여타 국가도 사망 사실을 몰랐으며 북한의 유일한 동맹국인 중국은 물론이거니와 북한 정권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재일본조선인총련합회[9], 금강산 관광 등 대북사업을 하고 있는 현대그룹도 사전에 인지하지 못했다고 한다. 국가정보원을 비롯한 대한민국의 외교안보 부처도 북의 공식발표를 통해서 알았다고 한다.

한편 삼성그룹이 김정일의 사망 정보를 미리 입수했다는 주장이 제기된 적이 있다. 북한의 공식발표 2시간 뒤에 나온 통신사 뉴시스의 보도에 따르면 삼성의 한 고위 임원이 18일 저녁 몇몇 언론에 전화를 걸어와 “김정일 국방위원장 사망설이 있다. 그쪽 분위기는 어떠냐?”고 문의했다고 한다. 뉴시스의 기사가 파문을 일으키자 삼성은 "우리가 (삼성내부 고위층을) 아무리 조사해 봐도 그런 사실이 없다"면서 부인하였다. 뉴시스의 기사는 얼마 안 가 인터넷에서 삭제되었다.

뉴시스의 기사를 사실이라고 가정해도 삼성그룹이 명확한 사망 정보를 입수했다는 주장은 사실이 아닌 것으로 보인다. 기사에 따르면 삼성 고위 임원의 태도는 '이런저런 카더라가 돌고 있는데...' 수준으로, 이런 것을 명확한 정보를 입수했다고 보긴 힘들다. 아주 사소한 동정도 비밀로 감추는 독재국가에선 고위층의 신변에 관해서 언제나 이런 저런 추측과 확인되지 않은 소문들이 떠돌아다니기 마련이다. 며칠만 언론보도에서 사라져도 사고설, 중병설, 체포설, 숙청설, 식물인간설, 암살설, 사망설, 대역설 등 온갖 카더라가 쏟아진다. 이런 모습은 소련중국은 물론이거니와 북한도 마찬가지여서[10] 수십 년 동안 김일성, 김정일 사망설이 불거진 게 한두 번이 아니었기 때문이다.[11]

그렇기 때문에 정보기관의 임무에는 어떤 소문(첩보)이 퍼지면 그 사실을 검증하는 것(정보)도 포함된다. 당시 기준으로 삼성 직원들이 들었던 것이 설사 사후에 보았을 때 정확도가 높았다고 하더라도 그건 정보는 아니다. 삼성은 일개 기업에 불과하고 전문 정보기관이 아니므로 첩보를 가공하고 분석할 능력은 없으며 그에 따른 책임도 지지 않지만 국가정보원과 정보당국은 대한민국 국가와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책임지기 위한 국가지도부의 정보판단을 책임지는 막중한 임무를 지닌 곳들이므로 그 판단과 분석에 있어 일개 기업보다 훨씬 신중하고 전문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정보기관이 어떤 식으로 정보를 습득하고 분석, 가공하는가를 생각해 보면 이상한 게 아니라 당연지사다. 일부에선 이 사건을 대한민국 사회에 팽배해 있는 삼성만능주의, 삼성전지전능론이 불러온 해프닝으로 보기도 한다.

여담이지만 김정일이 죽은 실제 날짜가 공식 날짜와 다르다는 설도 있다. 2014년 12월 17일 산케이 신문이 보도한 바에 따르면 일본 류코쿠(龍谷) 대학 사회학부 이상철 교수는 탈북한 북한 전직 관료들의 증언을 분석하여 김정일이 실제로는 2011년 12월 16일 평양 근교의 별장에서 사망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봤는데 이 교수의 주장에 따르면 김 위원장은 2011년 12월 16일 저녁 지방 시찰을 취소한 뒤 평양 시내에 위치한 장녀 설송(39)의 집을 방문해 딸과 술을 마신 뒤 침실에서 쉬다 오후 8시를 조금 넘긴 시각에 졸도했으며 졸도 직전에는 자신의 후계자인 김정은에게서 온 것으로 보이는 전화를 받은 뒤 격앙했다고 한다. 졸도 후 응급처치를 받은 김정일은 평양 교외 강동군에 있는 별장 '32호 초대소'로 이송됐으나 의식을 회복하지 못한 채 오후 11시에 사망했다고 한다. 김정일의 실제 사인은 과로와 스트레스가 유발한 심장 쇼크에 의한 심근경색이며 전날 시찰의 피로, 평소 복용하는 약을 먹지 않은 채 음주를 한 것 등이 사인과 관련 있을 것으로 이 교수는 추정했다. 다만 이를 교차검증할 만한 증거는 전혀 없으며 김정일의 죽음의 정확한 진상은 남북통일 뒤에야 밝혀질 것으로 보인다. #

2022년 12월 12일 북한 측에서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12월 25일까지 건강에 유의해야 한다는 주치의의 권고를 어기고 추위 속에서 무리하게 현지지도를 하다가 건강이 악화되어 달리는 열차 안에서 사망한 거라고 한다. # 다만 이러면 전용 열차가 12월 15일부터 계속 멈춰 있었다는 위성사진과 앞뒤가 맞지 않는다.

2024년 4월 월간조선에서 요덕 수용소 수감자 출신인 강철환은 김정일 급사의 배후가 김정은이라는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다. 사실이라면 김일성 암살설이 대를 이어 똑같이 제기된 셈이다. 강철환은 "(김정일은) 급사하기 힘든 상황이었고, 24시간 응급처치가 풀가동되는 시스템하에서 후속 조치가 늦었다는 점도 의문이 남는다"면서 "묘향산에서 김일성이 사망했을 때와 상황이 비슷하다"고 했다. 아들이 아버지의 죽음을 의도적으로 방치했다는 뜻이다. #[12] 물론 당시 김정일의 건강상태로 보면 제대로 치료를 받았어도 얼마 못 버텼을 가능성이 높았기에 말 그대로 허무맹랑한 뇌피셜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2.1. 장의위원회 위원 목록

위원: 김정은, 김영남, 최영림, 리영호, 김영춘, 전병호, 김국태, 김기남, 최태복, 양형섭, 강석주, 변영립, 리용무, 김경희, 김양건, 김영일, 박도춘, 최룡해, 장성택, 주규창, 김락희, 태종수, 김평해, 김정각, 우동측, 김창섭, 문경덕, 리태남, 오극렬, 김철만, 리을설, 전하철, 강능수, 로두철, 조병주, 한광복, 백세봉, 리영수, 최희정, 오일정, 김정임, 채희정, 김기룡, 장병규, 김병률, 홍인범, 김태훈, 서관우, 윤다연, 리만건, 주영식, 곽범기, 오수용, 로배권, 박태덕, 김히택, 강양모, 림경만, 김경옥, 김명국, 김원홍, 현철해, 한동근, 조경철, 박재경, 변인선, 윤정린, 정명도, 리병철, 최상려, 김영철, 강표영, 김형룡, 리용환, 김춘삼, 최경성, 리명수, 전희정, 리영길, 현영철, 최부일, 양동훈, 리봉죽, 김송철, 박광철, 리병삼, 전창복, 오금철, 김인식, 김성덕, 려춘석, 박승원, 리용철[13], 박의춘, 김형식, 김태봉, 전길수, 리무영, 안정수, 리룡남, 류영섭, 박명철, 김용진, 장철, 성자립, 김정숙, 강동윤, 김병호, 차승수, 량만길, 윤동현, 고병현, 리봉덕, 박종근, 최영덕, 정인국, 전룡국, 리형근, 황순희, 백계룡, 김동일, 김동이, 리재일, 박봉주, 정명학, 강관일, 황병서, 권혁봉, 홍승무, 김우호, 한창순, 리춘일, 리태섭, 조성환, 동영일, 리창한, 고수일, 리국준, 신승훈, 리태철, 양인국, 리히수, 리 철, 현상주, 리명길, 로성실, 동정호, 강민철, 김희영, 조영철, 황학원, 안동춘, 백룡천, 홍광순, 리수용, 김영호, 방리순, 최춘식, 리제선, 리상근, 리홍섭, 차용명, 강관주, 태형철, 김병훈, 김계관, 한창남, 김창명, 전창림, 오철산, 손청남, 정운학, 차경일, 강기섭, 최대일, 최영도, 리용주, 전광록, 리찬화, 서동명, 전성웅, 지재룡, 김영재, 리용호, 홍서헌, 김동일, 김동은, 김봉룡, 조재영, 최찬건, 렴인윤, 김천호, 장호찬, 송광철, 리기수, 리종식, 최 현, 장명학, 강형봉, 김충걸, 김용광, 최관준, 장영걸, 김명식, 허성길, 노광철, 정봉근, 박창범, 최봉호, 정몽필, 전경선, 리성권, 최 용, 김태문, 김영숙, 차진순, 리민철, 리일남, 김창수, 박명순, 최배진, 김 철, 심철호, 오룡일, 계영삼, 류현식, 고명희, 방용욱, 장정주, 허광욱, 지동식, 정봉석, 최권수, 김영대, 류미영

2.2. 영구차 8인방의 근황

김일성 사망 때와는 달리, 김정일 사망 때는 김정은을 비롯한 8명이 영구차를 호위하는 퍼포먼스를 벌였다.

3. 사망 직후 영향 및 우상화

사망 발표 직전 북한 매체에서 정오에 '특별방송'을 한다고 알렸고 이 소식은 남한에도 알려졌다. 문제는 이때까지 북한에서 큰 사건을 발표할 때마다 '중대방송'이라고 알렸는데 이번에는 '특별방송'이라고 언급했다는 것이다. 이 '특별방송' 언급이 김일성 사후 처음이었기 때문에 몇몇 인터넷 뉴스에서 이를 언급했고 이에 따라 특별방송이 김정일의 사망이 아닐까 추측하는 말도 돌았다. 특히 북한이탈주민및 북한 인민들은 '특별방송' 언급에 김정일의 사망 소식임을 짐작했다는 전언이 돌기도 했다.

김정일의 사망이 발표될 때 이명박 대통령은 공식 일정상으로는 한일협상 중이었으나 일정을 모두 취소했다. 참고로 이 한일협상 중에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언급되었으며 김정일의 사망 소식이 공식적으로 알려진 12월 19일은 이명박 대통령의 71번째 생일이기도 했다. 청와대에서는 불과 오전까지만 해도 이명박 대통령의 생일을 축하하는 훈훈한 분위기였으나 오후에는 완전히 혼비백산이었다고 한다.

인터넷"천벌을 받았다, 잘 죽었다"며 기뻐하는 분위기가 대세였다. 간간이 고인의 죽음을 슬프게 애도한다는 어그로성 발언들도 나왔지만 누리꾼들의 거센 반발에 부딪쳐 곧 침묵했다.

확실히 애도 발언을 하기에는 그 사이에 너무 비극적인 사건들이 많았고 북한이 보여준 행보들도 지나치게 적대적이었다. 그나마 김정일이 뒤늦게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최소한의 반성을 표하기라도 했으면 또 모르지만 그렇지도 않으며 죽음도 동정의 여지가 있는 참혹한 죽음이 아니라[14] 일반적인 자연사이기 때문에[15] 더욱 그렇다. 이 와중에 탐앤탐스의 공식 트위터에서 해당 트위터 담당자가 김정일의 명복을 빌어준다는 트윗을 올렸다가 회사 전체가 뒤집어져 사과 성명을 발표하는 일이 빚어지기도 했다.

그래서 갈 짓해서 갔다, 잘 죽었다는 식의 여론이 절대다수였다. 사실 이 인간이 한 전체적 악행들은 둘째 치더라도 2010년에만 해도 상반기에는 천안함 피격 사건을, 하반기에는 연평도 포격전이라는 미친 짓들을 두 번이나 저질렀으니 결코 좋게 봐 줄 수 없었다. 정치 성향을 다 떠나서 흥겨운 한민족의 판을 벌였다. 그리고 모처럼 양심에 거리낄 것 없이 신명나는 고인드립이 난무했다.[16] 특히 탈북자 커뮤니티의 게시판은 그야말로 축제 분위기였다.

이 와중에 서울대학교 농생명과학대학에 재학하던 한 여학생은 학생회관 1층에 김정일 분향소를 설치하는 개념없는 짓거리를 저질러서 학내외에서 큰 논란이 됐다. 본래 이 학생은 대학 본부에 분향소 설치 허가를 받고자 했으나 학교 측에서 허가하지 아니하여 분향소 설치를 강행했다.

한편으로는 근데 이제 어떻게 됨이라며 불안해하는 의견이 나왔고 혹시 강경파가 내부 결집 차원에서 전쟁을 일으키지 않을까 하는 위기감에 불안해하기도 했으나 다음 해인 2012년은 크게 위협적인 도발 없이 무난히 넘어갔으며 그 다음 해인 2013년 북한의 전쟁 위협도 엄포만 신나게 쳐댔을 뿐 기어이 미 공군의 B-1이 자기네 영공을 활강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도 손 놓고 있었을 뿐이었다.

김정일 사망 직후 군에서도 전군 비상경계태세, 경찰의 갑호 비상 발령 및 공무원 비상근무 제4호 발령 등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갔다. 대북정보감시태세인 워치콘을 3단계에서 2단계로, 대북방어준비태세인 데프콘을 4단계에서 전투 준비 태세인 3단계로 격상을 검토하였으나 실제 북한이 과격 행동을 일으킬 동기가 적음, 그리고 북한군에 이상 동향이 없음으로 인해 실제 격상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대신 북한의 국지도발에 대비하여 경계대기태세를 격상시켰으며 이로 인해 5분대기조 및 초소 등의 인원들이 추가적으로 근무에 투입되었고 대북정찰기 횟수를 늘려서 지속적으로 감시했다. 경찰 역시 갑호비상이며 그와 함께 이명박 대통령은 공무원 비상근무령을 지시하였다.

남북 정세 불안을 우려하는 여파인지 코스피개박살났다.

한편 다음 만화속세상의 웹툰인 스틸레인은 김정일이 죽기 전부터 '김정일의 갑작스런 죽음 이후 일어난 북한 내 쿠데타로 한반도가 전쟁 위기로 치닫는다'는 시나리오로 연재 중이었는데 연재 중에 실제로 김정일이 숨지면서 갑자기 성지가 되었다.

사실 북한이 전쟁을 일으킨다고 하더라도 전쟁에서 승리할 역량 따위는 없다는 것은 북한 수뇌부가 다 아는 일이고 권력이 커지는 추세이기는 해도 군은 어찌 되었건 당의 휘하에 장악된 상태이기 때문에 돌발 상황은 당의 동의를 이끌어내야 하는 전쟁보다는 차라리 쿠데타일 확률이 더 높다.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선군정치는 북한에서 돌아가는 체계라곤 오로지 군대 뿐인 탓에 '군대를 모범으로 혁명을 달성하겠다', 즉 군대 총동원해서 나라꼴 다 잡는 데나 올인하겠다는 선언이기 때문이다. -괜히 둔전 굴리는 꼴이 나오는 게 아니다!- 물론 전면적 전쟁은 말도 안 되는 도박수지만 국지적인 무력 도발의 가능성은 충분하기 때문에 지금의 긴장 태세도 당연한 것이기도 하다.

열차에서 급사했다는 점과 자리에 누워 편하게 못 죽고 객사했다는 점이 17년 전 부친 김일성 사망 당시와 같다. 확실히 타살이 아니더라도 세계구급 독재자들의 최후는 자리에서 조용히 눈을 감는 경우가 드문 듯하다. 권력을 자기 앞으로 유지하기 위해 상상을 초월하는 중노동을 남의 손에 맡기지 못한 채 오직 자기 앞으로만 하고 죽는 그 순간까지 계속 몰두하며 한 순간도 긴장을 늦출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당장 진시황만 봐도 하루 업무량이 상상을 초월해서 본인이 직접 처리 기준을 정해 놓았을 정도다.
김정일의 장례식(2011년 12월 28일)

장례식은 2011년 12월 28일 평양에서 열렸고 29일까지는 애도기간이었으며 김정은이 진행하였다. 묫자리는 다름 아닌 '금수산기념궁전'.

이때 북한 국민들이 대성통곡하는 모습이 해외와 한국 언론에 보도되면서 전세계 네티즌들의 조롱거리가 되었다. 김정일 사망 소식에 통곡하는 북한 주민들 풀버전(?)[17][18] 이 영상을 가지고 북한 주민들이 슬퍼하는 원인을 다른 걸로 바꾸는 패러디 동영상이 유행했다.[19] 다른 버전[20] 또 다른 버전[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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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20일 로동신문.[22] 잘 보면 얼굴 구도가 최대한 김일성의 사진과 똑같이 맞추어져 있다. 흔히 사용되는 김일성의 사진도 정면에서 고개를 오른쪽 위로 올려 미소 지은 채 찍은 사진이다.[23] 김일성과 김정일의 웃는 모습을 북한에선 모두 '태양상'이라고 부른다. 정확히는 두 '태양상' 다 사진이 아니라 그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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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식 사망 선언문[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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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모 만평

김정일 사후 영국 주재 북한대사관에선 탈북자들이 '김정일 국방위원장 사망을 축하드리며'라는 고인드립성 유인물과 김정일의 영정사진을 대사관 건물에 붙이고 만세를 부르는 행사를 벌이기도 했다. # 이들은 결국 경찰에 연행되었는데 이 과정에서 분명 '대사관 직원'으로 보이는 한 남자가 유인물을 떼어내면서 하필 김정일의 사진을 찢고 구겨 처리하는 장면[25]이 포착되기도 했다. 링크

2008년 김정일이 뇌졸중으로 쓰러졌을 때 한미 정보당국이 CT스캔을 입수해 여생이 3~5년이라는 것을 미리 예측한 바 있다고 한다. # 실제로 김정일은 3년 후에 사망하였으며 이 CT영상 때문에 이명박 대통령이 '북한 붕괴론'을 내세우면서 전략적 오판을 범했다는 분석도 있다. 이명박 대통령이 임기 중 “통일은 도둑같이 올 것”이라며 통일이 임박했다는 뉘앙스를 보인 것과 달리 북한 체제는 김정일 사후에도 김정은이 무난하게 권력을 승계하면서 체제를 유지했다는 것이다. #

자기가 아버지 김일성에게 했던 짓과 똑같이 러시아에서 거금을 들여 사체 보존 전문가들을 데려와서 자신을 미라로 만들었다고 한다.[26] 단, 엠버밍이지만 절대 농담이 아니라 김일성, 김정일의 사체 보존 비용을 다 합치면 북한의 국가 예산의 1% 정도에 달할 것으로 추측된다.

2012년 2월 3일에는 최고인민위원회 상임위원회의 정령으로 김정일훈장, 김정일상, 김정일청년영예상과 김정일소년영예상을 새로 제정한다고 발표했다. 다만 이미 제정되어 있는 김일성 이름의 상과 훈장[27]보다는 한 단계 아래의 급수를 가질 것으로 예상되었다.

2월 9일에 첫 김정일훈장~김정일소년영예상 수상자가 발표되었는데 김정일훈장 수상자에는 김정일의 여동생과 매제이자 김정은의 고모와 고모부인 김경희-장성택, 최고인민위원회 상임위원장 김영남, 내각 총리 최영림, 조선인민군 총참모장 리영호, 인민무력부장 김영춘 등 기존의 핵심 권력층 외에 김정일 사후 숙청된 것으로 알려졌던 김옥과 오극렬이 들어가 숙청설이 사실이 아님이 밝혀졌다.

생일 전날인 2월 15일에는 아버지 김일성에 이어 북한에서 2번째로 공화국 대원수 칭호를 받았고 생일을 '광명성절' 이라고 부르기 시작하면서 김일성 생일인 '태양절' 과 동급의 국경일로 만들었다. 김일성과 함께 나란히 말을 타고 있는 김정일의 동상도 만수대창작사에서 제작/공개되었고 북한 각지에 김정일 동상이 계속 세워질 예정이라고 전해졌다. 김정일의 시신이 놓인 금수산기념궁전금수산태양궁전으로 명칭이 바뀌면서 우상화 작업에 박차를 가했다.

3월 29일에는 최고인민위원회 상임위원회 정령으로 김정일에게 김일성훈장과 김일성상이 수여되었으며 4월 11일에 소집된 조선로동당 제4차 대표자회의에서는 김정일을 '영원한 조선로동당 총비서' 로 추대해 당 총비서 자리를 사실상 영구 공석으로 만들었다. 김일성이 사후 '영원한 공화국의 주석' 으로 추대된 것과 비슷한 모양새인데 물론 후계자인 김정은도 총비서 대신 조선로동당 제1비서 자리로 추대되어 군권에 이어 당권도 공식적으로 승계했음을 선전했다.

한편 4월 13일 김정일이 사망으로부터 2달여 전 남긴 유언인 이른바 10.8 유훈의 일부가 북한전략정보서비스센터에 의해 공개되었다.

공개된 내용은 다음과 같다.
대내 분야
- 유언 집행은 김경희(김정은의 고모)가 한다.
- 1년 내에 김정은을 최고 직책에 올려 세운다.
- 김정은을 당에선 김경희·장성택·최용해·김경옥, 군에선 김정각·이영호·김격식·김명국·현철해, 경제는 최영림과 김창룡·서원철·김영호가 책임 보좌한다.
- 김정남(김정일의 장남)을 많이 배려해라.[28] 그 애는 나쁜 애가 아니다. 그의 애로를 덜어줄 것.
- 국내 삼천리금고와 2·16호 자금을 김정은에게 이관. 해외 자금은 김정, 이철호와 합의해 정은에게 이관.
핵, 미사일 등 대외정책
- 선군사상을 끝까지 고수할 것. 국방에 소홀하면 대국의 노예가 된다.
- 핵, 장거리 미사일, 생화학무기를 끊임없이 발전시키고 충분히 보유하는 게 조선 반도의 평화를 유지하는 길.
- 미국과의 심리적 대결에서 반드시 이겨야. 합법적인 핵 보유국으로 당당히 올라 미국의 영향력 약화해야.
- 국제 제재 풀어 경제 발전을 위한 대외적 조건을 마련해야. 6자회담을 잘 이용해야.
- 중국은 현재 우리와 가장 가깝지만 앞으로 가장 경계해야 할 국가.
- 김씨 가문에 의한 조국 통일이 종국적 목표.

상기의 대외정책분야 중 마지막 항목인 "김씨 가문에 의한 조국 통일이 종국적 목표"에서 김씨 가문에 의한 북한의 사유화를 인증했다.[29]

김일성 동상만 세워져 있던 곳에 김일성과 김정일이 나란히 선 모습의 동상이 새로 만들어졌다. 2012년 한 해 북한 언론에 보도된 것만 봐도 평양 만수대언덕(4.13), 인민무력부(8.24), 강계(10.11), 김일성군사종합대학(10.29), 함흥(12.21)에 김일성과 김정일의 동상이 세워졌고 10월 2일에는 국가안전보위부에서 김정일 단독 동상의 제막식도 거행되었다. 북한 언론이 공개한 동상 사진들을 보면 사후 나온 공식 초상을 바탕으로 소위 '야전 솜옷' 차림으로 디자인한 형태이며 그동안 중년 이미지로 만들었던 김일성 동상도 사후 발표된 노년기의 공식 초상을 참고해 새로 제작했다.

금수산태양궁전에서 김정일 시신의 엠버밍 작업과 관련 시설의 확보를 위한 개축 작업이 사망 1주기를 맞아 완료되자 그동안 일부 고위층의 조문 때만 공개했던 김정일의 시신도 국내외 조문객들과 관광객들에게 공개할 예정이라고 했다.#

태영호가 2018년 <3층 서기실의 암호>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원래 김정일의 사망은 사망한 당일에 발표하려고 했지만 사망한 날이 토요일이라 주민들이 주말에 편하게 쉴 수 있도록 김정은이 발표를 지연시켰다고 하며, 외무성 직원들이 모여서 리춘히의 방송을 들은 후 김일성 사망 당시와는 정반대로 어느 누구도 흐느끼거나 통곡하지 않았다고 한다.


[1] 2년 뒤 장성택은 김정은에게 처형당한다.[2] 좌우에서 총 여덟 명이 호위했다. 전체 명단은 여기를 참고.[3] 근현대 이후 니카라과소모사 가문에 이어 2번째로 공화제 표방 국가에서 3대 세습을 했다.[4] 이때 리춘희는 사망한 날짜와 사인, 그리고 마지막 전문을 다소 천천히 말하는데 해당 부분을 주민들에게 정확하게 인식시키고자 속도 조절한 것으로 추정된다. 김일성 사망 때는 전형규 아나운서가 이런 식으로 발표했다. 사실 이런 식으로 지도자 사망 소식을 방송에서 알린 것은 이오시프 스탈린마오쩌둥이 먼저였다.[5] 고용희는 부친이 제주도 출신이며 자신의 본관도 제주다. 김씨 일가는 자신들이 '순수한 백두혈통'이라고 주장하지만 사실 북한 사회에서 차별받는 '째포(재일교포)'에 '공화국 남반부' 혈통이 뒤범벅된 경우이며 자신들이 줄곧 내세운 논리와는 상충되게 혈통부터 정통성 문제를 안고 있다. 이 때문에 고용희는 김정은이 갓 수령이 된 초창기에만 잠깐 우상화가 되고 이런 점이 지적된 바람에 우상화를 못 하고 다시 꽁꽁 숨겨야만 했다.[6] 1997년 정식 집권 시부터 2011년 사망 전까지는 아버지 김일성처럼 안경을 안 쓰고 입을 굳게 닫은 초상화를 썼다.(동아일보 기사) 초상화 그림은 김정일이 사망한 2011년 찍힌 이 사진을 보고 그린 것으로 추정된다.[7] 김일성 사망 당시와는 달리 리춘히 아나운서가 울먹거렸으며 김정일 시신을 사열하는 북한군 의장대도 울먹거리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추도사는 김영남 당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이 낭독했다. 2011년 당시의 영상을 그대로 가져온 것이라 기록말살형을 당하기 전의 장성택의 모습도 멀쩡히 나온다.[8] 밑의 로동신문 사진에서 해당 보도의 전문을 볼 수 있다.[9] 심지어 조총련은 당시 중앙간부들이 평양을 방문하고 있었다.[10] 2016년 들어서도 국정원이 숙청됐다고 확인해 줬던 리영길 전 총참모장이 건재한 게 확인되었다.[11] 김일성 사망 오보 사건처럼 이런 설에 휩쓸려서 전세계 언론사들이 오보를 숱하게 터트렸고 CIA, SIS 같은 유수의 정보기관이 개망신당한 사례도 무수하다. 객관적으로 봤을 때 60대 남성이 배불뚝이라는 것에서 누구나 성인병을 의심할 것이며 고도비만 체형이던 사람이 몇 달 동안 종적을 감췄다가 완전히 반송장 같은 홀쭉이로 나타나서 팔도 제대로 못 움직이는데 굳이 의사가 아니더라도 김정일이 오늘 내일 하는 상태라는 건 쉽게 추측할 수 있었다. 즉, 누가 봐도 김정일의 건강이 심각하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는 상황에서 사망설이 불거지는 것은 당연하다. 정보기관에선 증권가 찌라시처럼 이렇게 수시로 나오는 카더라에 일일이 반응할 수도 없거니와 설사 이런 첩보를 입수했다고 하더라도 그 첩보를 곧이곧대로 믿을 수도 없고 그래서도 안 된다. 국가정보학에서도 가르치지만 정보기관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역량은 단순한 정보(첩보)의 획득이 아닌 수집된 첩보의 가공과 분석이다. 가공되기 전의 정보는 첩보이며 이 첩보를 다양한 방법을 통해 분석하고 그것이 실제 사실인지 검증하여 정보로 가공하는 것이 훨씬 중요하단 것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수많은 진위확인이 되지 않는 첩보가 사방에서 쏟아지고 있는데 여기엔 적국의 정보기관이 이쪽의 정보 획득 및 수집가공 역량을 분석 평가하기 위한 가짜 첩보, 블러핑도 포함된다.[12] 김정은의 자식들에 대한 여러 상반되는 주장들을 다루고 있는 기사다.[13] 사로청 제1비서 리용철.[14] 실제로 어지간히 잔혹한 악인이라도 그가 죽어가는 과정이 상상 이상으로 비참하면 동정론이 나오게 마련이다. 대표적인 예시로 반군들한테 붙잡혀서 비참하게 살해당하고 심지어 그 시체도 고깃집에 걸려 조리돌림당한 리비아무아마르 카다피가 있다.[15] 좁은 의미에서 따지면 당뇨, 뇌졸중 등의 여러 합병증을 앓으면서 고통받다가 사망했다는 점에서 병이나 사고 없이 쇠약해져 편안히 죽는다는 의미의 자연사에는 속하지 않지만 사살, 처형된 제3세계 독재자들과 비교하면 훨씬 편안한 죽음을 맞이한 건 사실이다.[16] 1994년에 김일성이 죽었을 때도 길거리에서 만세를 부르는 사람들이 있었다고 한다.[17] 앞의 영상은 오늘날에도 매일매일 조롱하는 댓글들이 올라오고 있으며 뒤의 영상은 조회수가 2023년 12월 17일 기준으로 871만 회를 넘었다.[18] 잘 들으면 영상 속에서 땅을 치면서 통곡하는 군인들이 김정일을 아버지라고 부르는데 물론 이는 탁아소에서부터 엄마와 아빠의 이름보다 김일성, 김정일 부자의 이름을 먼저 외우게 할 정도로 북한 주민들을 철저히 가스라이팅시킨 결과물이다.[19] 김정일이 죽은 게 기뻐서 우는 거라던가, 김정일이 죽었을 때 울지 않으면 죽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우는 거라던가 등등. 덤으로 북한 주민들의 통곡에 대해서는 "가족이 죽어도 저렇게는 안 울겠다", "오스카상 수상감"이라는 비야냥도 많이 쏟아졌다.[20] 금수산기념궁전에 안치된 김정일의 미라를 본 북한 주민들의 반응이다.[21] 김정일이 생전 마지막으로 현지지도를 한 광복지구상업중심에서 김정일이 탄 에스컬레이터를 붙들고 통곡하는 북한 주민들의 모습이다.[22] 로동신문은 2015년에야 풀컬러 인쇄를 시작했고 이전에는 특별한 날에야 컬러로 인쇄했다.[23] 김일성 사망 당시에는 사망한 지 며칠 지난 영결식 때에야 웃는 얼굴의 영정 사진을 선보였던 것과 달리 김정일 사망 당시에는 사망 발표와 동시에 이 사진이 등장했던 정황으로 보아 영정을 사전 제작했을 듯하다는 이야기가 있다. # 사진 속 김정일의 모습은 지병을 앓고 나서 살이 빠진 모습이 아닌 전성기의 모습인 점도 이 이야기에 힘을 실어준다.[24] 조선중앙TV리춘히가 등장하여 사망소식을 알린 것이 바로 이 글을 읽은 것이다. 보면 알겠지만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에 이어 조선로동당 중앙군사위원회가 먼저 오고 그 다음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방위원회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그리고 내각 순으로 되어 있는데 당이 우선이고 국가에서도 국방위가 먼저였던 김정일식 선군정치의 단면을 보여주는 모습이나. 이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방위원회는 폐지되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무위원회가 그 자리를 차지하게 된다.[25] 이 인물은 문명신 2등 서기관이었다고 한다. 이 사건이 문제가 되어 북한 대사관 내에서 연일 심각한 회의가 있었는데 태영호 공사의 강력한 선처 주장으로 살아났다는 증언이 있다. #[26] 레닌, 스탈린, 마오쩌둥, 김일성 등 다른 사회주의, 공산주의 국가들의 통치자들은 원하지도 않았는데 미라가 된 것과는 다르게 김정일은 유훈대로 미라가 되었다고 한다.[27] 김일성훈장, 김일성상, 김일성청년영예상, 김일성소년영예상[28] 김정일은 어렸을 때부터 김정남을 예뻐했고 2001년 그가 후계자로서 눈 밖에 나는 짓을 했음에도 최대한 그를 감싸려고 했다. 결국엔 김정은은 선택하게 됐지만... 김정일 본인이 그토록 미워하던 이복동생 김평일을 죽이지는 않고 해외 대사관으로 유배보냈듯이 김정은이 최소한 김정남을 죽이지는 않을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김정일 사후 김정은은 이복형인 김정남을 대놓고 죽여 버렸고 김정남의 아들인 김한솔을 죽이려고 쫓고 있다.[29] 그러나 2023년 말 권력을 물려받은 아들 김정은남북관계를 '적대적인 두 국가 관계'로 선언하며 통일이라는 단어를 지워버리는 행각을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