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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10 14:37:44

김경옥

前 조선로동당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
김경옥
Kim Kyong Ok
파일:김경옥(북한).jpg
출생 1930년 12월 27일
사망 2024년 1월 11일 (향년 93세)
최종 계급 대장

1. 개요2. 생애
2.1. 초기 이력2.2.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 시절2.3. 은퇴와 말년
3. 경력4. 수훈5.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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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북한의 정치인.

2. 생애

2.1. 초기 이력

1930년 12월 27일에 태어났다. 김기남 장의식에서 처음 확인됐으나 북한에서 묘비 사진을 모자이크 처리해서 공개했기 때문에 확실하진 않았으나 이후 빛나는 삶의 품 33편에서 확인되었다. 빈농가에서 태어났으며, 소년노동을 하다가 해방 후 민청사업에 참여하였다. 초기 이력에 대해서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으나 6차 로병대회와 7차 로병대회에 초대받은 것을 보아서는 6.25 전쟁에 참전했던 것이 분명했으며 이후 부고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1211고지 전투에 참여했다.

장진성의 증언에 따르면 김정일과 함께 김일성종합대학 정치경제학부를 졸업한 김정일 동창으로 1970년대 3대혁명소조에 참가하면서 김정일 후계구도 확립에 공을 세운 측근이 되었다. 북한의 리즈 시절에 총정치국 과장, 부부장을 역임했으며, 인민군 내부에서 당적 지도를 확립하는 사업에 참여하여 당학습을 담당했다. 이후 1980년대 조직지도부로 옮겨 조직지도부 과장을 거쳐 조직지도부 검열담당 부부장을 지냈으며 1987년 4월 2일, 중앙인민위원회 정령에 따라 김일성 75세 생일 기념 김일성훈장을 받았다. 한국에선 1991년에 그가 중앙위원회 부부장으로 재직하는 것을 확인하였다. 1992년 4월 1일, 중앙인민위원회 정령에 따라 김일성 팔순기념 김일성훈장을 받아 이중수훈자가 되었다. 탈북자 강진의 증언에 따르면 90년대에는 소장 계급을 차고 김정일 경호를 담당하고 있었다. # 김정일도 김경옥을 자신의 호위전사라고 부르기도 했다.

2.2.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 시절

이후 한동안 안보였으나 부고를 보면 고난의 행군 시기에도 중요한 사업을 하며 공을 세웠다고 한다. 뭔일인지는 불분명하나 과로로 인해 중병을 얻어 쓰러진 적이 있으나 김정일이 모든 조치를 취해 살려냈다고 한다. 허나 과로가 문제인지 그 이후로도 자주 쓰러졌다고 한다.

2008년,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으로 승진, 2009년 3월 최고인민회의 12기 대의원에 선출되었으며 2010년 리용철이 사망한 이후 조직지도부 무력담당 제1부부장을 맡았다. 2010년 9월에 최고사령관 명령으로 대장으로 진급했으며 3차 당대표자회에서 중앙위원회 위원 및 중앙군사위원회 위원으로 선출되었다. 2010년 리제강이 사망한 이후 조직지도부 최고 실세 중 한 사람이 되었다고 한다. 2010년 11월, 조명록 장의위원, 2011년 12월, 김정일 장의위원을 지냈으며 2012년 2월, 김정일훈장의 1차 수훈자로 선정되었다. 2013년 12월, 김국태 장의위원을 지냈다. 2014년 3월, 13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에 재선되었으며 2014년 7월, 전병호 장의위원을 지냈다. 2014년 12월, 뜬금포로 처형설이 돌았으나 사실무근으로 드러났다. 오히려 부고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주체혁명위업계승의 중대한 력사적시기에 당중앙위원회 제1부부장, 고문으로서 경애하는 김정은동지의 령도를 충직하게 받들어나가는데서 당의 로간부답게 훌륭한 모범을 보였으며 고령의 몸에도 많은 위대성도서들을 집필하여 우리 혁명무력의 정치사상적순결성이 맥맥히 이어지도록 하는데 공헌하였다."라고 하였는데, 즉 김정은 권력세습에 혁혁한 공을 세운 공신 출신인 것이다.

2015년 11월, 리을설 장의위원, 2015년 12월, 김양건 장의위원을 지냈으며 2016년 5월, 7차 당대회에서 중앙위원회 위원 및 중앙군사위원회 위원으로 재선되었다. 2016년 5월, 강석주 장의위원을 지냈다. 이후 한동안 조용하다가 2018년 8월, 김영춘 장의위원을 지냈다. 장의위원 서열을 보면 이 시점까지는 현직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2014년 이후 김정은 현지지도는 거의 동행하지 않았으며 2018년 4월 김정은의 지도자 추대 6주년 경축 중앙보고대회에 참석한 것이 한동안 마지막 행보였다. 김정은 집권기에도 중요활약을 했으나 건강문제가 도져 사무실에서 쓰러지기도 했고 김정은도 특명을 내려 그를 살려냈다. 김정은과는 개인적으로도 친밀하여 김정은은 그를 우리 아바이라고 불렀으며 6.25때의 공로로 공화국영웅 칭호도 주었다.

2.3. 은퇴와 말년

2019년 4월, 7기 4중전회에서 김조국에게 군사담당 제1부부장 자리를 물려주고 고령으로 은퇴한 것으로 보이는데, 부고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이후 고문으로 활동했다고 한다. 2020년 7월, 6차 전국로병대회에 참가했으며 2021년 1월, 8차 당대회 초대석에 초대를 받아서 등장했고 2021년 7월, 7차 전국로병대회, 2021년 9월, 정권수립 73주년 안전무력 열병식에 초대받는 등 원로로 대접받으면서 고운 말년을 보내는 것이 확인되었다.

2022년 4월 25일, 조선인민혁명군 창건 90주년 열병식에 초대받았다. 원로 대우를 받는다는건 더욱 확실해졌다. 2022년 7월, 8차 로병대회 주석단에 등장하였다. 2022년 정권수립 74주년 기념행사에 김영남, 최영림, 박봉주, 리명수, 최태복, 박재경, 황병서, 김정각과 함께 초대받았다. 9월 9일에 열린 경축연회에도 다른 노간부들과 함께 참석했다.

2024년 1월 11일 23시 5분에 암으로 인한 다발성 장기부전[1]으로 93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1월 12일, 김정은이 화환을 보냈으며 당중앙위원회의 명의로 매우 격식 있는 부고가 발표되었다. 최근 사망한 김영일 비서의 죽음은 대충 치운 것에 비해서 그가 높은 평가를 받고 있음이 확인된다. 부고는 "김경옥동지는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와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의 충직한 혁명전사이며 경애하는 김정은동지의 각별한 보살피심속에 우리 당의 강화발전과 혁명무력의 최정예화, 강군화를 위하여 적극 공헌한 로혁명가이다. 투철한 혁명적수령관과 강한 원칙성, 높은 정치실무적자질과 고상한 품성을 지니고 40여년간 당중앙위원회에서 사업하면서 우리 당의 주체적군건설사상과 로선을 관철하기 위해 모든것을 다 바쳐온 동지의 고결한 한생은 견실한 혁명가, 열렬한 애국자의 본보기로 우리 인민들과 인민군장병들의 존경속에 높이 떠받들리우고있다. 김경옥동지는 비록 서거하였으나 당과 혁명, 조국과 인민앞에 쌓아올린 그의 공적은 성스러운 우리 당의 력사, 공화국의 무력건설사에 길이 빛날것이다."라고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사실 부고에서 이 정도 평가를 받은 사람들은 대개 국장이 거행됐는데 국가장의법이 새로 제정되어서인지 국장 거행은 하지 않았다.

이후 애국렬사릉에 당중앙위원회 제1부부장 직함으로 안장되었다.

3. 경력

임기시작 임기종료 비고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
2008년? 2019년 4월 10일 3차 당대표자회에서 유임
7차 당대회에서 유임
7기 4중전회에서 은퇴
조선로동당 6,7기 중앙군사위원회 위원
2010년 9월 28일 2019년 4월 10일 3차 당대표자회에서 선거
7차 당대회에서 재선
7기 4중전회에서 은퇴

4. 수훈

5. 참고문헌


[1] 북한식 표현으로는 '암성중독에 의한 다장기기능부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