前 조선로동당 근로단체부장 리영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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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서훈 | 김일성훈장(198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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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북한의 정치인, 前 조선로동당 근로단체부장이다.2. 생애
1949년, 량강도에서 태어났다고 알려져있다.김일성종합대학을 졸업하고, 만경대혁명학원에서 수학했다고 전해진다. 1976년, 사회주의애국청년동맹 부위원장을 지냈으며 2년뒤인, 1978년 사회주의애국청년동맹 위원장을 8년간 지냈다. 1982년 2월, 7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으로 선출되었고 같은해 4월, 중앙위원회 위원으로 보선되었다. 1982년 3월, 전창철 장의위원을 지냈다. 1982년 4월, 최현 장의위원을 지냈고 1983년, 강량욱 장의위원을 지냈다. 1984년 3월, 조국통일민주주의전선 중앙위원회 위원으로 선출되었고 1984년 10월, 김만금 장의위원, 1985년 2월, 량광일 장의위원을 지냈다. 1985년 4월 13일, 광복 40주년과 당창건 40주년 중앙인민위원회 정령으로 김일성훈장을 수여받는다.
1985년 10월, 조선로동당 청년사업부 부부장으로 임명되었으며 1986년 4월, 천세봉 장의위원을 지냈다. 1986년 8월 13일, 사로청 10차 전원회의에서 최룡해에게 중앙위원장 자리를 물려주고 조동된 것으로 보인다. 1986년 11월, 8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으로 재선출되었다. 1987년 10월,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부부장으로 임명되었고 그러다가 1996년, 장성택의 연줄로 인하여 인민무력부 외사 부분 부부장으로 옮긴뒤 같은해 11월 평양서 열린 쿠바혁명 기념 군인집회에서 연설을 하는 등 군부 내에서도 보폭을 넓혀갔다고 전해진다.# 1997년 2월, 최광과 김광진 장의위원을 지냈다. 2004년에 장성택의 숙청 당시에 일시적으로 지방으로 밀려났다가 2007년, 장성택기 복권되어 행정부장에 임명되면서 행정부 부부장에 임명, 다시 중앙으로 돌아왔다고 전해진다.
2010년 6월, 근로단체부장으로 임명되었고 2010년 9월, 3차 당대표자회에서 서기부로 선출되었고 중앙위원회 위원과 근로단체부장에 재선출되었다. 2010년 11월, 조명록 장의위원을 지냈다. 2011년 1월, 박정순 장의위원을 지냈고 2011년 12월, 김정일 장의위원을 지냈다.
2012년 11월, 국가체육지도위원회 부위원장으로 선출되었다. 2013년 12월, 김국태 장의위원을 지냈다. 2014년 3월, 13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으로 재선출되었다. 그러나, 2014년 4월 3일 열린 만경대전국무도선수권대회 개막식에 근로단체부장으로 참석했지만 정작 4월 11일 폐막식에는 리일환이 후임 근로단체부장으로 갑작스럽게 교체된 것이 확인되었다. 근로단체부장 해임 이후, 동정보도는 없다. 해임 이유로는, 장성택 숙청의 여파로 해임되었다는 추측이 존재한다.# 시기상 2014년 4월 8일 정치국 회의에서 교체된 것으로 보인다. 북한전략센터에서는 리영수가 장성택 여독 청산 과정에서 처형당했다고 주장했다.
3. 여담
2012년 2월 9일, 김정일상을 받은 리영수가 있지만 이 사람은 조총련 금강산가극단 소속 인민배우 리영수로 보인다.4. 참고문헌
- 2017 북한 주요인사 인물정보(서울: 통일부, 20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