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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군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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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군정치
先軍政治 | Songun Politics(Military-first Politics)
파일:선군정치.jpg

1. 개요2. 형성3. 특성4. 선전5. 역사와 특징6. 비판
6.1. 마르크스-레닌주의와 선군사상
7. 종언8. 같이 보기

[clearfix]

1. 개요

고난의 행군 시기 김정일 시대의 무력 통치 방식으로 김정은의 시대 시기에는 폐기되었고 김정일 애국주의라고 애매하게 표현한다.

2. 형성

고난의 행군으로 북한 전역을 통제하던 조선로동당 조직이 무너지고[1] 보위부사회안전부까지 손을 놓고 통제가 불가능할 때 김일성 사후 자포자기한듯이 은둔해 있던 김정일이 별안간 들고 나온 것이 선군정치다. 당시 북한은 극심한 식량난과 체제이반 현상으로 사회 전반이 붕괴되어 협동농장, 기업소, 공장, 연구소 당위원회 할 것 없이 생산은커녕 출근조차 제대로 할 수 없을 정도였는데 김정일이 선택한 결론은 총대로 다스려야 한다였고 그러기 위해선 총소리가 나야 한다였다. 그래서 낱알이 선채로 배어가는 협동농장과 식량창고 공장이 약탈을 막기 위해 군대가 현장사살하고 공개총살이 빈번하게 일어났고[2] 간부들 대상으로는 사회안전부 정치위원 채문덕을 이용하여 심화조 사건을 일으켜 공포정치를 하고 주민들 상대로는 군대, 특히 보위국을 동원한 무단통치로 사회전반을 다스렸다.

김정일은 이를 김일성 사상의 진수를 계승, 발전한 것이라고 선전하면서 자신의 통치를 정당화하였고 자신의 통치의 핵심으로 내세웠다.

김정은 시대에 들어서면서 선군정치 대신 로동당 중심 국가 운영, 즉 김일성 시대의 선당정치(정확히는 '인민대중제일주의')로 노선을 바꾸면서 사실상 폐기되었다.

2021년 1월 조선로동당 제8차대회를 통해 당 규약에서 '선군'이라는 단어가 사라졌고 현재 북한에서는 '김정일 애국주의'라고 부른다.

3. 특성

오해와는 다르게 모든 자원을 군대에 집중하여 군사력에 올빵한다는 것이 아니다. 선군정치와 별개로 북한은 김정일 집권 이전부터 과도한 군사비 지출로 흔들렸으며 선군정치가 폐기된 김정은 시대에도 미사일 개발에 올인하고 있다.[3] 그러므로 단순히 국방비에 올인하는건 선군정치의 특징이 아니다.

군국주의군사독재도 아니다. 저 둘과 달리 선군정치에서 군은 통치 주체가 아닌 통치 수단일 뿐이였다. 당시 선군정치 와중에도 조선인민군은 총정치국장 조명록의 통솔아래 찍 소리도 못하고 끌려다녔다. 총정치국은 조선로동당의 일개 부서이지만 군 인사권과 검열권을 가진 막강한 당우위의 통제 조직이다. 그러므로 수령독재가 도구로서 군정을 쓴 것이지 수령독재가 군사독재로 변질됐다고 보기 힘든 부분이다. 어떻게 보면 매우 변질된 문민통제라고도 볼 수 있는 셈이다. 김정일 시대의 당의 위상도 분명히 김일성 시대보단 약해졌지만 그렇다고 해서 무시해도 될 정도는 아니었다.

4. 선전

"인민군대 강화에 최대의 힘을 넣고 인민군대의 위력에 의거하여 혁명과 건설의 전반 사업을 힘있게 밀고 나가는 특유의 정치"
1998년 10월 9일자 로동신문
선군정치는 '군사선행의 원칙에서 혁명과 건설에서 나서는 모든 문제를 해결하고 군대를 혁명의 기둥으로 내세워 사회주의 위업 전반을 밀고 나가는 정치방식'이다.
김정일
헌법 제61조
국가는 군대안에서 혁명적령군체계와 군풍을 확립하고 군사규률과 군중규률을 강화하며 관병일치, 군정배합, 군민일치의 고상한 전통적미풍을 높이 발양하도록 한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사회주의헌법
사탕알보다 총알을 더 중시해야 한다.
김정일
선군정치는 인민에 대한 사랑으로 일관된 가장 인민적인 정치방식이며 우리 인민의 운명과 미래,행복과 번영을 담보하는 생명선이다. 경애하는 장군님의 선군정치가 있었기에 우리 인민은 력사의 준엄한 시련속에서도 우리가 잘 살 날이 반드시 온다는 락관을 깊이 간직하고 앞날을 내다보며 억세게 싸워올수 있었다.
사회주의정치는 인민에 대한 사랑으로 일관된 군사중시정치로 되여야 한다. 우리 당의 선군정치는 인민에 대한 사랑이 철저히 구현된 가장 우월한 사회주의정치방식이다.
군사를 제일국사로 내세우고 무적의 총대로 인민의 운명을 믿음직하게 수호하는 선군정치는 인류정치사에서 최고봉을 이루는 애국애민의 자주정치로 찬연한 빛을 뿌리고있다.
가장 전투적이고 건전한 혁명군대의 사상과 정신으로 인민들을 정화시키는 선군정치야말로 제국주의의 사상문화적침투를 철저히 짓부실수 있게 하는 필승의 무기이며 인민에 대한 최대의 사랑의 정치이다.
2006년 6월 8일 로동신문 기사 《인민에 대한 사랑은 우리 당 선군정치의 핵이다》에서 인용 동어반복

5. 역사와 특징

북한은 공식적으로 선군정치의 기원은 1930년 6월 카륜회의에서 김일성이 무장노선 발표에 있다고 주장하지만 이는 거짓이며 60년 동안 단 한 번도 북한은 선군이라는 용어를 입밖에도 내지 않았다.

선군정치라는 용어가 처음 사용된 것은 김일성 사후인 1997년 12월이었는데 그나마도 어쩌다 한 번 선군정치라는 용어가 언급된 것이지 이후처럼 선군이라는 용어가 도배된 것은 1999년부터였다. 정확히는 1999년 6월 15일 로동신문, 근로자 공동논설 '우리 당의 선군정치는 필승불패이다'가 실리면서 선군정치가 구체화되었다. 선군정치를 사상적으로 뒷받침할 선군사상이라는 용어는 2001년 4월 25일 로동신문 사설이 시초였다.

이미 1960년대부터 북한은 주체사상을 지도적 이념으로 내세우면서 주체사상이 마르크스-레닌주의보다도 우월하다는 주장을 은근슬쩍 하기 시작했다. 이것은 1970년대 김정일의 주도로 김일성주의라는 이름으로 정립되었으며 1990년대 고난의 행군으로 북한이 엄청난 위기에 처하자 사회주의 체제를 고수하기 위한 명분을 확보하기 위해 대대적으로 선전되었다. 김정일은 제국주의자들이 사회주의 혁명을 말살하려고 하니 북한만이라도 '우리식 사회주의'를 유지하여 혁명을 계속해야 한다고 주장하였고 위기 극복의 대체제로 당이 아니라 군대를 내세웠는데 이것이 바로 선군정치다. 김정일은 조선로동당의 무능을 비판하는 한편 마르크스-레닌주의는 혁명의 주력군 이론을 너무 얄팍하게 이해했다면서 혁명의 역량은 로동계급에서만 나오는 것이 아니라 군대에서도 나올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리고 군대이자 당, 당이자 군대라는 군 중시 철학을 내놓았다. 이러한 북한의 군 중시 철학은 1995년 다복솔 중대 시찰 이후 본격화되어 총대철학이라는 이름으로 정립되었는데 북한은 이 역시 김정일이 1960년 8월 25일 김일성과 함께 류경수 땅크 사단을 시찰한 후 룡남산 마루에서 맹세한 것이 선군정치 시초라고 주장했다.[4]

이러한 선군정치는 어디까지나 고난의 행군을 돌파하기 위한 일시적인 비정상적 정치행태에 가까웠으나 90년대 중후반의 최악의 위기를 넘긴 후에도 김정일은 선군정치를 유지하기로 하였고 선군정치를 뒷받침할 이론을 준비하라고 지시하였다. 선군정치를 뒷받침하기 위한 사상적 체계화는 2000년대부터 본격화되었다. 선군정치의 경험을 이론화한 것이 바로 선군사상이었고 2001~2003년에 걸쳐 선군사상의 정립이 시도되었다. 북한 정권은 이것이 김일성의 사상을 발전시킨 것이라 주장하며 김일성주의의 일환으로 주장하였는데 한동안 선군사상의 창시자를 김정일이라고 서술하기도 하는 등 북한 스스로도 급조한 사상에 설정놀음을 하다가 많이 헷갈린 흔적이 보이지만 결국 김일성을 창시자로 설정정리를 완료했다. 북한은 2004년 <선군정치에 대한 리해>를 출간하여 선군사상을 김정일이 북한의 혁명유산을 지켜내기 위해 기울인 지적 노력의 산물로 선전했다. 또한 2009년 헌법을 통해서 주체사상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북한의 지도적 이념으로 내세웠고 2010년 출간한 <우리 당의 선군사상>으로 주체사상과 비슷한 체계의 전일적 사상체계를 완성하였다.

선군사상은 크게 군사선행의 원칙, 국방위주의 국가기구 체계, 혁명 주력군 사상으로 이루어져 있다. 선군이라는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일단 모든 분야에 군대가 혁명의 주력군으로 나서며 국가 운영 역시 국방 관련 기구를 중심으로 하고 자원의 투입도 군 분야를 우선으로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맥락으로 김정일은 국방위원회 위원장으로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렀고 한동안 조선로동당은 군대에 밀려서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단적으로 정치국 위원들은 한 번 뽑히면 몇 명이나 결원이 발생하던 충원되지 않았으며 정치국 상무위원회는 상무위원들이 차례로 늙어죽어 마지막에는 김정일 혼자만 남을 정도였지만 그럼에도 국가 운영에 지장이 없었을 정도로 정치국과 비서실은 유명무실했다. 내각도 군부에 밀려서 기를 펴지 못했다.

김일성 시대부터 외국에 대한 편집증적인 공포와 주체에 대한 집착으로 북한은 4대 군사주의 노선을 발표하는 등 국가의 지나친 군사화, 중공업 올인 정책을 추구해 왔고 결과적으로 비정상적일 정도로 군대가 국가에서 높은 비중을 차지하는 결과를 낳았다. 이는 북한 경제의 침체와 비효율화를 가져왔고 이를 자각한 북한 정부도 1990년대에 남한에 상호 군축을 제안하면서 일방적으로 10만명의 군인을 제대시키는 등 한동안 군사 분야의 비중을 줄이려고 하였지만 김일성 사망, 고난의 행군, 북핵위기가 연달아 터지면서 김정일은 정권의 안위를 위해선 예전처럼 군사 분야를 중시하는 것이 옳다고(혹은 그럴 수밖에 없다고) 여겼고 그 결과는 선군정치였다.

전술한 것처럼 군국주의로 오해하는 경우가 많은데 군국주의가 아니다. 북한에서 군사적 가치를 대단히 중시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다른 거 다 깽판치고 군대가 모든 것의 최우선이라고 주장했다간 당장 군벌관료주의로 몰려서 숙청감이며 당과 군의 분리, 군에 대한 당의 영도는 북한에서 지금은 말할 것도 없고 김정일 시대에도 계속 강조된 명제이다.

6. 비판

공자의 제자 자공이 스승에게 정치에 대해 묻자 공자가 이렇게 답했다. "먹을 것을 풍족하게 하고, 군사력을 풍족하게 하고, 백성이 믿게 하는 것이다(足食, 足兵, 民信之矣)." 그러자 자공이 다시 물었다. "어쩔 수 없이 반드시 한 가지를 버려야 한다면 이 셋 중 어느 것을 먼저 버려야 합니까?" 공자가 말했다. "병()을 버려라." 자공이 또 물었다. "어쩔 수 없이 또 한 가지를 꼭 버려야 한다면 나머지 둘 중 어느 것을 먼저 버려야 합니까?" 공자가 답했다. "식()을 버려라. 예로부터 사람은 다 죽게 마련이지만 백성이 신뢰하지 않으면 존립할 수 없다."
논어
'정치'라고 자칭하지만 실상은 정책이라고 불러주기도 뭐한 급한 불 끄는 돌려막기일 뿐이다. 카드깡도 아니고 이런 식의 대응으로는 지금 당장은 버틸지 몰라도 점차 앞으로의 상황이 점점 악화할 테니 말 그대로 언 발에 오줌누기일 뿐이다.

선군정치는 김정일 시대의 '비상 시국'에 대응하기 위해 그 역량을 군대로 집중한 체제인데 그 비상 시국이 언제 끝날지 도대체 기약이 없으니 문제다.

권력이 비정규화하면 당연히 권력을 얻는 방법도 마찬가지이기 마련이다. 천안함 피격 사건연평도 포격전도 군부에서 상당히 돌발적으로 일으켰다는 분석이 많이 나온다. 즉 기껏 군대 밀어줬더니, 권력을 더 잡으려고 나댄다.[5] 게다가 이래서야 대외 신뢰도도 바닥으로 떨어진다. 북한은 '우리식 사회주의' 등의 폐쇄적인 구호로 대외 문호를 스스로 좁히고 있는데 권력을 위해 계속해서 돌발적인 행위로 북한 전체의 외교를 망가뜨리고 국가를 멸망의 위기까지 몰아넣고 있다.[6][7]

선군후로의 구호인 군대가 앞서 나가고 노동 계급이 뒤따라 나간다는 말이 군대가 앞서서 다해먹고 노동 계급은 다 굶어죽는다로 변질되었다. 즉, 국가 경제를 다 투자해서 군대를 먹일 때 노동 계급은 말 그대로 군대의 뒷바라지나 하다가 말라죽는다. 미국 국무부의 2021년 보고서에 따르면 비록 굉장히 부정확한 추측이긴 하지만 2009년부터 2019년까지 북한의 GDP 대비 국방예산은 무려 23.5%에 달했다. 즉, 나라 전체에서 창출된 부의 1/4 수준을 온전히 군에 썼다는 것이다.[8]

군대는 순수한 소비 집단이라 평소에는 생산적인 일을 할 수 없으므로 군에 투자한 돈은 100% 아무 이윤 없이 사라져 경제성장에 도움이 안 된다. 현대 국제 관계의 힘의 논리에서 경제력, 기술력이 강한 국가가 고급 인력과 좋은 무장의 군사력을 유지할 수 있다고 보고 군사력은 경제력에 비례하는 추세다. 그러나 기반 능력(경제력, 기술력이나 자원 등)이 없으면서 30%를 쏟아붓지만 정작 결과물은 남한의 1%에도 못 미치는데 한탕으로 부국강병을 이루겠다면 그것은 모순이다. 특히 자본주의 세계에서는 최소한 이를 통해 중공업이 활성화하면서 투자라도 활발하지만[9] 사회주의 세계에서는 그런 거 없다. 이렇게 뜻없게 군이 소비하는 엄청난 자원에 비하면 대민지원 같은 건 사소한 수준이다. 거기에 미사일과 각종 무기 수출로 나름 달러를 벌어들이고 있다지만 이게 오히려 국제 사회에서 더 큰 고립을 불러오고 있다.

이렇게 군사력에 몰빵하는 전략은 RTS의 전략 가운데 '뒤가 없는 올인러쉬' 같은 것으로 단시간에 승부를 내지 못 하면 무조건 진다. 일꾼(경제력)을 희생해서 병력을 짜낸 것이라 경제력이 풍족한 상대방에게 시간을 주면 결국 병력의 양이나 질에서도 밀리기 때문이다. 유지비 개념이 희박한 게임에서조차 이런데 병력 규모가 늘어날 수록 유지비의 압박이 장난이 아닌 현실에서는 더욱 참혹하다.

이렇게 노동 계급이 붕괴하자 북한은 정작 중요시하던 군대조차 제대로 먹여살리지 못하게 된다. 그 결과 군대가 약탈 집단으로 전락했다는 사실은 여러 북한이탈주민의 증언 등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으며 2010년 이후의 북한 군인들의 사진을 보면 심히 처참하기 그지없는 모습이다. 거기에 2017년에는 판문점 귀순 사건까지 터졌다. 이래서야 국민들이 군대를 믿고 따를래야 그럴 수가 없다. 즉, 선군정치 자체의 신뢰도가 날이 갈수록 떨어진다.

이미 체제가 맛이 간 북한이 남은 역량을 동원한 정책이었을지 몰라도 하필이면 소모적인 군대가 그 중심이면서 스스로의 역량을 더 갉아먹는 결과를 낳았고 최우선 순위로 외치던 군대도 이제는 제대로 유지하기도 힘들어졌다

6.1. 마르크스-레닌주의와 선군사상

프롤레타리아독재 개념은 국가 개념이다. 프롤레타리아독재는 필연적으로 폭력의 개념을 포함하고 있다. 만약 독재를 엄격한 의미에서 이해한다면 폭력을 사용하지 않는 독재란 존재하지 않는다. 레닌은 프롤레타리아독재를 "직접적 폭력의 사용에 토대를 둔 권력"(제19권, 315쪽)이라고 정의한다. 따라서 프롤레타리아 계급과 관련하여 당의 독재에 관해 떠드는 것이나, 그것을 프롤레타리아 독재와 동일시하는 것은 당이 그 계급과 관련하여 안내자이자 지도자요 교사일 뿐 아니라 프롤레타리아에 대해 폭력을 사용하는 일종의 독재자이기도 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 그러나 그것은 물론 아주 그릇된 것이다. 따라서 '당의 독재'를 프롤레타리아독재와 동일시하는 사람은 누구나 암묵적으로 당의 권위는 노동계급에게 사용하는 폭력 위에서 확립될 수 있다는 터무니 없고도 레닌주의와는 결코 양립될 수 없는 가정으로부터 생겨난다. 당의 전위는 노동계급의 신뢰로서 확보된다. 그리고 노동계급의 신뢰는 폭력에 의해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폭력은 오직 신뢰를 파괴할 뿐이다- 당의 올바른 정책, 당의 노동계급에 대한 헌신, 노동계급 대중과의 결합, 대중들에게 슬로건의 정당성을 확신시켜 줄 준비와 능력으로 획득된다(197페이지)..... 계급에 대한 당의 지도를 폭력으로 강요할 수 있는가? 어떤 경우라도 그러한 지도는 결코 오래갈 수 없다. 만약 당이 프롤레타리아의 당으로 남기를 바란다면 당이 일차적으로 노동계급의 인도자이자 지도자, 교사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205페이지)
레닌주의의 기초 레닌주의의 제문제, 요제프 스탈린, 두레문고, 197페이지와 205페이지

마르크스-레닌주의는 선군정치와 결부될 수 없으며 마르크스-레닌주의 관점에서 선군사상은 비판의 대상이다. 마르크스레-닌주의에서는 프롤레타리아 독재는 국가의 개념이지, 당의 독재가 아니라고 스탈린이 레닌을 인용하면서 언명함으로써 당이 폭력, 무력을 사용해 인민대중에게 정책 등을 강요할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명시하였다.

그런데도 북한의 주체사상에서는 당의 군대, 수령의 군대라고 하면서 군민일치를 주장하고 수령이 인민의 이익을 대변하고 인민이 곧 수령이라는 식의 형이상학적 권력에 기하여 여기에 군대를 대입시켜 군대가 수령을 결사옹위하고 인민 역시 군대로 일치되어 수령을 위해 결사옹위해야 하며 결국 수령과 당이 군대를 빙자하여 인민을 희생시키고 통제하는 식으로 전락하게 된다.

심지어 당 내부에 군 장성과 군사전력가들이 대거 참여하여 문민주의를 후퇴시키고 조선로동당에 국방위원회라는 사실 상 입법, 사법, 행정의 무소불위 권한을 행사하는 기구를 국가와 동일시하여, 즉 국가와 당을 동일시하여 인민을 향해 폭력을 사용한 것은 마르크스-레닌주의에서 절대 용납될 수 없는 정치형태다.

레닌에 의하면 사회주의에서의 군대는 인민대중, 노동대중의 민병대이다. 반면 주체사상은 군대 자체가 수령의 군대라고 하면서 수령을 결사옹위해야 한다고 주장하는데 이는 레닌의 민병대의 견해와 정면 배치되는 결과가 초래된다.

심지어 선군정치는 인민군대는 혁명의 기둥이며 주체혁명위업 완성의 주력군이라는 관점을 취하여 군대 자체에 목적성을 부여하지만 정작 마르크스-레닌주의는 군대와 폭력은 혁명의 수단이지 목적이 아니라고 한다. 간단하게 비유하면 도덕적으로 인간을 수단이 아닌 목적으로 대우해야 하지만 북한은 인간 자체를 목적이 아닌 수단으로 대우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스탈린은 당이 인민대중에게 폭력으로 강요하는 정치행태는 결코 오래갈 수 없다고 언명하였다. 김정일 사후 선군정치가 폐기되고 조선노동당 내에 국무위원회에 군 장성, 군사전략가가 아닌 민간인이 요직으로 임명된 것을 보면 선군정치 자체가 폭력으로 인민에게 당의 정책을 강요하는 것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7. 종언

그러나 2009년 헌법을 통해서 북한의 지도 이념으로 굳혀져가는 듯했던 선군정치는 2011년 12월 17일 김정일사망하면서 사실상 그와 운명을 함께했다.

김정일의 뒤를 이어 북한의 새로운 최고존엄이 된 김정은은 마치 아버지의 선군정치 노선을 이어갈 생각이 처음부터 없었다는 듯 김정일이 죽자 선군정치 노선을 갈아 엎어버리고 그 땅에 '선당정치'라고 불러야 할 새로운 씨앗을 뿌렸다.

김정일 생전에 2010년 로동당 규약 개정을 통해 당 중앙위원회 직속 조선인민군 당위원회가 구성되는 등 조선로동당과 조선인민군의 대등한 지위를 규정했던 과거와 달리 김정은 시대에는 조선인민군에 대한 조선로동당의 통제력이 차차 강해지기 시작했다.

이어 김정은은 2016년 조선로동당 제7차대회를 소집해서, 선군정치의 종말을 확실히 선언해버렸다. 특히 김정은은 자신의 '조선로동당 제1비서' 직위를 '조선로동당 위원장'이라는 이름으로 바꾸고 이 자리를 '당의 최고수위'로 선언했다. 그리고 당연히 자신이 그 자리에 앉았다. 그다음엔 한동안 유명무실했던 로동당 비서국을 로동당 정무국으로 개편해서, 비서의 직함을 부위원장으로 고치고 로동당 정치국원 수를 기존의 21명에서 28명으로 충원했다.

조선로동당의 수뇌부라고 할 수 있는 정치국 상무위원회 위원들도 3명에서 5명으로 충원되었다. 이 과정에서 국방위원회 부위원장 리용무, 오극렬 등 군부의 주요 인사들이 대거 정치국에서 축출되었고 당 중앙군사위원회의 규모도 감축되었으며 심지어 내각 수상인 박봉주가 군사 위원으로 들어와 내각이 군을 통제한다는 것을 선언해버렸다. 여기에 살아남은 군부 출신 정치국 위원들도 의전서열에서 내각 각료들과 외교관들에 밀려 하위로 떨어졌다.

결정타는 이어서 개최된 최고인민회의 13기 4차 회의였는데 김정은은 헌법을 개정하여 기존의 국방위원회를 폐지하고 국무위원회로 개편함으로 수령이 군 뿐만 아니라 국가 영역 전반에 대한 직할통치를 실시함을 분명히 하였으며 김정일이 일생 동안 가꾸어 온 선군사상 역시 김정은이 내세운 '김일성-김정일주의'의 하위요소에 포함되었다.

게다가 2019년 4월 11일 최고인민회의 제14기 제1차 회의에서 수정보충한 사회주의헌법에서는 '선군'이라는 단어가 서문의 김정일 치적 단 한 줄을 빼고 모조리 삭제되면서 선군정치는 공식적으로도 구시대의 유물이 되었다.[11]

2021년 1월 조선로동당 제8차대회에서 개정된 조선로동당 규약에서도 '선군'이라는 단어가 모조리 삭제되었다.

다만 선군정치가 공식적으로는 소멸했는데도 선군정치의 잔재는 아직도 북한에 남아 있다. 북한에서 일상화된 군인들에 대한 강제노동이 바로 그것으로, 이는 다음과 같은 선군정치 논리에 입각한다.
진정으로 인민을 위하는 혁명군대는 결코 비생산적 소비자로 될 수 없다.
선군정치는 군대가 사회생활의 모든 면에서 모범을 창조하고 그를 본보기로 하여 온 사회를 이끌어나갈 것을 요구한다. 인민경제를 발전시키는데서도 군대가 주공전선을 맡아 돌파구를 열어나가는 창조의 기수가 되도록 하는 것이 선군정치이다.
군대를 조국보위의 기본역량으로만이 아니라 인민의 행복의 창조자로 내세우며, 군대가 사회생활의 모든 면에서 모범을 창조하고 그를 본보기로 하여 온 사회를 이끌어나가 (인민의 행복을 위한 거창한 기념비적창조물들을 일떠세우고 강성대국건설을 힘있게 추동하며)인민경제를 발전시키는데서도 군대가 주공전선을 맡아 돌파구를 열어나가는 창조의 기수가 되도록 하는 것이다.
[이하]

매우 장황해 보이지만 쉽게 말하자면 군대는 '조국보위의 기본역량'으로만이 아니라 '인민의 행복의 창조자'로 내세워져야 하니 인민의 부강번영을 위한 투쟁에서도 선도적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실 서해갑문만 봐도 알 수 있듯 북한에서 군인의 건설장 투입은 선군정치 이전에도 있어왔기에 정확히는 군인의 건설장 투입을 타당화한 논리를 마련했다고 보는 게 맞지만.

8. 같이 보기



[1] 김정일은 집권 기간에 단 한 차례도 조선로동당 대회는커녕 중앙위원회도 제대로 열지 않았고 정치국 위원 충원도 제대로 하지 않았을 정도였다.[2] 대표적인 예시가 송림사건이다. 비단 송림뿐만 아니라 평양에서도 주민들을 탱크를 동원해 위협을 가했다.[3] 2017년 추산에 따르면 GDP의 23%를 군사비에 지출하는 걸로 추정하는데 전문가에 따라 30프로 후반까지 보는 견해도 있다.[4] 물론 이는 북한의 주장상 신뢰성이 없으며 무엇보다 이때 김정일은 공식 나이로 만 18세였다. 이는 60년대에 황장엽이 정립한 주체사상을 김일성이 만 18세였던 1930년 카륜회의에서 창안했다고 날조한 것과 판박이다.[5] 이러한 방식이 야기한 문제점은 역사적 선례가 없는 것도 아니었다. 고려의 도평의사사와 조선의 비변사가 아주 똑같은 폐단을 보여줬다.[6] 이는 군국주의로 미쳐돌아가던 일본군과 유사하다. 무리한 전쟁과 도발을 일삼으며 기득권을 강화하려고 한 이들은 정부의 동의 없이 철도를 폭파시키고 멋대로 만주를 침략했다.[7] 한국 측에서 북한의 도발을 빌미 삼아 전면적인 보복에 착수하면 북한 정권의 존속이 어떠한 형태로든 불투명해진다. 북한이 연평도 포격전 이후 더 이상의 도발을 자제하는 것도 이런 점을 잘 알아서라는 분석이 많다.[8] 이는 실로 경이로운 수준인데 소련이 1970년대에 군사비를 GDP의 12% 수준으로 올리자 경제가 곧바로 망가지기 시작했고 냉전 시대 내내 미국과 한국도 GDP 대비 6~6.5% 수준만을 군사비에 지출했다. 국방에 한 순간이라도 빈틈이 생기면 나라가 망해 버릴 수 있는 21세기이스라엘군마저 자국 GDP 대비 평균 6% 정도만을 사용한다.[9] 신무기 개발 과정에서 고용을 창출하고 부수적으로 신기술을 얻는다지만 그러려면 군수산업이 아니라 곧바로 기초과학이나 다른 산업에 투자해야 훨씬 효율적이다. 결국 군대에 들어가는 돈은 사실상 허공에 사라진다.[10] 이 말을 풀이하자면 선군정치의 이념인 군대 > 당이 아니라 당 > 군대라는 것이다. 2013년 8월이면 김정일이 죽고 1년 반 가까이의 대규모 숙청이 막 끝나갈 때였으니 김정은이 본인의 정치 기반이 안정되자마자 김정일의 노선 폐기를 선언한 것이다.[11]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세계사회주의체계의 붕괴와 제국주의련합세력의 악랄한 반공화국압살공세속에서 선군정치로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고귀한 유산인 사회주의전취물을 영예롭게 수호하시고 우리 조국을 불패의 정치사상강국, 핵보유국, 무적의 군사강국으로 전변시키시였으며 사회주의강국건설의 휘황한 대통로를 열어놓으시였다."[이하] 2006년 6월 8일 로동신문 기사에서 인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