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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2-08 12:29:13

김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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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옥
金玉
파일:external/photo-media.daum-img.net/20110526221720522.jpg
출생 1964년 8월 28일 ([age(1964-08-28)]세)
국적
[[북한|]][[틀:국기|]][[틀:국기|
속령
북한
]]
가족 아버지 김효, 남동생 김균, 여동생 김옥경
남편 김정일, 딸 1명[1]
의붓아들 김정은
학력 파일:Kim Won Gyun University of Music logo.jpg 평양무용대학 음악대학(학사)
종교 무종교
정당

파일:조선로동당 로고타입.svg


1. 개요2. 생애3. 한자 관련 여담

[clearfix]

1. 개요

고용희 이후 4번째로 김정일의 부인이 된 여성.

1964년생으로, 평양음악무용대학(현 김원균명칭 음악종합대학)을 졸업했다.

2. 생애

1985년부터 왕재산경음악단에서 활동하다 김정일의 눈에 들어, 1980년대 초반부터 서기실(비서실) 과장으로 근무하며 가까운 거리에서 그를 보좌해 왔다. 서방 언론에 존재가 알려진 것도 김정일의 중국, 러시아 방문시에 지근거리에서 따라다니는 모습이 여러 차례 사진에 찍혔기 때문. 후지모토 겐지는 그녀를 1987년부터 봤다고 증언했으며, 고용희가 있을 때는 비서처럼 대기하고 있었지만, 고용희가 없으면 김정일 옆에 착석하여 김정일과 고용희만 쓰는 최고급 프랑스제 식기로 식사했다고 한다. 키는 158센티미터 정도에 고른 치열에 웃는 모습이 매력적이었고, 처음엔 당시 엄정녀랑 결혼하기 전이었던 후지모토가 반해서 김창선에게 저 사람이 누구냐고 물었는데, 김창선이 장군님의 제1비서라고 정체를 알려주고 기겁했다고. 그리고 김정일은 '옥이', 다른 사람들은 '옥이 동지'라고 불러서 자신은 김옥의 성이 김씨라는 것도 탈북 후에 알았다고 했다.

고용희와 마찬가지로 김정일의 비밀 파티 등에도 참석했고, 수행 비서에서 간호사 역할까지 맡아 최측근으로 보좌하다가 1990년대 말부터는 3번째 부인 고용희가 낳은 아이들 김정철, 김정은, 김여정을 대신 맡아주는 역할을 해왔다고 한다. 고용희는 이 시기에 중병으로 몸이 온전하지 않은 상태였고, 자신이 직접 김옥에게 '내 뒤를 이어 김정일과 자식들을 보필해달라'라고 부탁했을 정도로 거의 친자매처럼 지냈다.

2000년 10월 조명록 총정치국장과 함께 미국을 방문하였다. 2004년, 고용희가 사망한 이후에는 사실상 김정일의 부인으로 퍼스트레이디의 역할을 하면서, 김정일이 뇌졸중으로 쓰러진뒤 장성택, 김경희와 함께 안정적으로 체제를 관리하고 이후 김정은을 후계자로 만드는데도 관여했다는 주장이 있다. 2011년에는 김정일을 따라 중국을 방문하였다. 당시 중국 외교부에 김옥이 김정일의 부인이니 이에 걸맞는 대우를 해달라는 귀뜸이 갔다는 것이 나중에 관계자 인터뷰를 통해서 밝혀졌다.

다만 김옥이 김정일 사이에 자식을 만들었다는 설도 있고,김정은이 집권 직후 김옥을 숙청했다는 설도 나도는 등 엇갈리는 추측이 난무하고 있다. 하지만 숙청설의 경우 일단 표면상으로는 사실이 아닌 것으로 보이는데 김정일 사후에 제정된 김정일훈장의 수상자 중에 김옥이 포함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2012년 7월 릉라인민유원지 준공식 참여와 2012년 9월에 독일에서 병 치료를 받았다는 소식 이후로는 북한 언론에 모습이 전혀 나타나지 않고 있다. 2013년에는 김옥의 동생인 김균이 김일성종합대학 1부총장직에서 물러났다는 소식이 전해졌는데, 김옥의 신변에 딱히 좋은 소식은 아닌 듯하다.

이후 2013년 7월, 김옥 일가가 모두 해임당했다는 소식이 들려오면서 숙청 가능성이 높아졌다. 김옥의 아버지 김효 노동당 재정경리부 부부장도 2014년 3월에 제13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선거에서 대의원에서 제외되었고, 김옥 본인도 정치범 수용소에 수감되었다는 소문이 있다고 한다. 북한전략센터에서는 발간한 보고서를 통해 김옥이 2014년에 처형당했다고 주장했다.

운이 좋다면 김정은 우상화에 걸리적 거리는 존재일 뿐이므로 어디 특각같은데서 물러나서 조용히 사는 것일 수도 있다. 김옥이 두문불출한 이후로 정성장 교수는 어차피 김옥의 임무가 김정일의 스케줄 관리였는데 김정일이 죽었으니 할일이 없어진게 당연할 수 있다고 보았다며 숙청설에 신중론을 보였다. 하지만 동생 김균이 오만방자하게 굴다가 김옥을 포함해서 온 식구가 다 끌려갔다는 소문이 돌기도 했는데 뭐 소문이란게 그렇듯이 검증할 길은 없다. 김정은의 친모가 아닌 이상 김정은이 원한이 있는게 아니더라도 공개활동을 다시 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3. 한자 관련 여담

'김옥'이라는 이름은 한국에도 많고, '김옥균(金玉均)'처럼 '김옥~' 꼴로 지어진 이름도 있다.

한자 '金玉'은 일본어로 '킨교쿠(きんぎょく)', '킨타마(きんたま)'(…) 등으로 읽을 수 있는데, '김옥'을 굳이 일본식으로 읽으면 '킨교쿠(きんぎょく)'로 읽지만, '킨타마'의 뜻이 불알이라 일본에서는 농담거리이기도 하다. 다만, 일본에서는 전두환 대통령 방일 이후로 한국어계 고유명사 표기에는 한국 한자음을 차용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キムオク(키무오쿠)'로도 읽을 수 있다. 참고로, 북한의 철도 이름이면 '금옥'으로 읽고, '교쿠'는 음독이고, '타마'는 훈독이다. 여기여기도 참고.
[1] 신원 미상, 2008년생 추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