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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7-21 13:46:29

지재룡

前 주중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특명전권대사
지재룡
池在龍 | Ji Jae Ryong
파일:2017091101000971400048671.jpg
출생 1942년 5월 10일 ([age(1942-05-10)]세)
북한 함경남도
국적
[[북한|]][[틀:국기|]][[틀:국기|]]
학력 김일성종합대학 외국어문학부 (학사)
직업 외교관
정당

파일:조선로동당 로고타입.svg
지역구 함경북도 경원군 룡북선거구(제63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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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생애3. 참고문헌

1. 개요

북한의 외교관 겸 정치인. 전 주 중국 북한대사였다.

2. 생애

1942년 5월 10일, 함경남도에서 출생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일성종합대학에서 외국어문학부를 졸업한 것으로 확인되며 1974년 2월, 사로청 부위원장에 임명되면서 처음에는 청년사업을 맡았다. 1976년 6월, 사로청 위원장으로 승진했으며 이때 장성택과 친분을 쌓은 것으로 알려졌다. 1976년 9월. 최용건 장의위원, 1977년 6월, 강장수 장의위원을 맡았다. 1977년 12월, 6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및 상설회의 대의원에 선출되었다. 1978년 9월 북한-적도기니 친선협회 위원장을 맡으면서 외교업무도 보기 시작했으며 1979년 7월, 중앙위원회 후보위원에 보선되었다. 하지만 1980년 6차 당대회 때는 탈락했고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에도 재선되지 않았다.

1981년 1월, 사로청 위원장에서 해임된 것이 확인되었으며 1981년 5월, 외교부 순회대사를 맡으면서 본격적으로 외교업무에 동원되었다. 1982년 10월, 류호준의 뒤를 이어 체코슬로바키아 대사로 부임하였으며 1985년 2월 20일, 김광섭이 후임 대사로 임명되면서 귀국하여, 1985년 9월 대외문화련락위원회 부위원장을 맡았다. 1986년 9월, 리인규의 뒤를 이어 주 유고슬라비아 대사로 부임하였으며 1991년 1월까지 5년 가까이 재임하다가 1월 24일 작별방문을 마치고 귀국하였다. 후임 유고슬라비아 대사로는 1992년 2월 25일, 류세웅이 임명되었다.[1] 귀국 후 1993년 1월, 국제부 부부장을 맡았다. 이때 장성택의 비자금을 관리해주었다는 말이 있다.

1998년 9월, 10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에 선출, 2002년 3월 27일, 김일성 탄생 90주년 기념 김일성훈장을 받았다. 2003년 8월, 11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에 재선되었으나 2004년 장성택의 숙청에 휘말려 지방 노동자로 좌천당하는 등 혁명화를 당하며 고생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2010년 9월, 3차 당대표자회 때 중앙위원회 후보위원에 선출되면서 복귀했고 2010년 10월, 최병관의 뒤를 이어 주중 북한 대사로 부임하였다. 2011년 12월, 김정일 장의위원을 지냈으며 2014년 3월, 13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에 재선되었다. 2016년 5월, 7차 당대회에서 중앙위원회 후보위원에 재선되었다.

2013년 장성택이 처형될 때는 이미 장성택 라인이 아니라고 판단되었는지 무사했으나 이후 북중관계가 최악으로 치달으면서 대사관에 칩거하면서 잘 나오지 않았고 중국 공산당의 행사에도 잘 참여하지 않았다. 2019년 3월, 14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에 재선되었다. 이후 북중관계가 개선되면서 할일이 좀 많아지나 했으나 2021년 2월, 전 부총리 리룡남이 신임 주중대사로 임명되면서 해임되었다. 하지만 코로나로 인한 북한의 국경봉쇄 때문에 아직 북한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고 밝혀졌다.즉 전·현직 대사가 한 대사관 안에서 지내는 기묘한 상황이 된 것이다. 이유는 다름 아닌 코로나 19 때문. 북한이 해외에 있는 자국민의 귀국을 지위불문 불허하면서 발이 묶인 것이다. 참고로 주중 대사관에는 지재룡 이외에도 김유성 전 주말레이시아 대사관 대사대리와 주말레이시아 대사관 직원들 및 그 가족들이 거주하고 있다고 한다. 이들은 2021년 3월 19일 북한과 말레이시아가 단교하면서 지낼 곳이 없어지자 주중 대사관으로 이동했다고 한다.#

2023년 8월 22일, 고려항공이 운항을 재개함에 따라 김유성 前 말레이시아 대사와 함께 북한으로 귀국한걸로 보인다. 고려항공 이륙 1시간 반 전에 외교번호판을 탄 북한 대사관 벤츠차량이 공항에 도착했고 휠체어를 타고 내린 북한 간부급 인사가 한명 있었는데 이 사람이 지재룡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3. 참고문헌



[1] 이후 송일호로 교체되었지만 북한의 1차 핵실험으로 세르비아-몬테네그로에서 축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