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카자흐스탄 시위 2022 jylğy Qazaqstandağy narazylyq şaralary 2022 Протесты в Казахстане 2022 Kazakh Protests | |||||||
날짜 | |||||||
2022년 1월 2일 ~ 1월 11일 | |||||||
장소 | |||||||
[[카자흐스탄| ]][[틀:국기| ]][[틀:국기| ]] 전역 | |||||||
원인 | |||||||
LPG 가격 급등 누르술탄 나자르바예프 前 대통령의 장기집권 잔재에 대한 민심 악화 | |||||||
대치 세력 | |||||||
[[카자흐스탄| ]][[틀:국기| ]][[틀:국기| ]] 정부 카자흐스탄 경찰 | 시위대 | ||||||
지휘관 | |||||||
카심조마르트 토카예프 | 불명 | ||||||
병력 | |||||||
카자흐스탄군 | 3,800명 | 시위대 | 알 수 없음 | ||||
경찰 | 알 수 없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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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상)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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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명 피해 | |||||||
보안군 18명 사망 경찰 8명 사망 경찰 317명 부상 | 164명 사망[4] 500여 명 부상 12,000명 구금[5] | ||||||
재산 피해 | |||||||
불명 | 불명 | ||||||
결과 | |||||||
시위 진압 성공 대통령 퇴임 및 정권 교체 실패 | |||||||
영향 | |||||||
누르술탄 나자르바예프 실각 카심조마르트 토카예프 대통령 취임 카자흐스탄 헌법 개정 및 제2공화국 출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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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022년 1월 2일부터 1월 11일까지 카자흐스탄 전역[6]에서 일어난 반정부 시위. 카자흐스탄 서부의 석유 산업이 발달한 도시 자나오젠에서 시작된 이 시위는 1991년 카자흐스탄 독립 이후 최대 규모의 시위다.2. 배경
직접적인 원인은 카자흐스탄 정부가 LPG 가격의 상한선을 올리고 정부 보조금을 폐지하여 가격이 폭등한 것이 발단이었지만[7]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가 악화시킨 사회·경제적 불평등이나 비민주·독재적인 정치 체제에 대한 불만이 누적되어 왔다. 카자흐스탄은 자원부국이고 이를 적절히 이용해 고속성장을 하였으나 그 혜택은 일부 부유층에게 돌아가 빈부 격차는 커졌으며 2010년대 들어서 경제가 강온탕을 오가면서 실질 임금은 오르지 않았고 2020년대 들어 코로나 19 사태로 인한 세계적인 공급대란의 여파로 생필품과 식료품의 가격이 급속히 오름에 따라 생활비가 급등하여 국민들의 불만이 가득하던 상황에서 값이 싼 연료였던 LPG의 가격마저 인상되었다.카자흐스탄의 국토가 넓어 인구 밀도가 낮다 보니 자동차를 이용할 일이 많은데 서민들의 자동차 연료인 LPG의 가격이 가격자유화 조치로 2배 이상 오르다보니 불만이 폭발할 수밖에 없었다. ##
3. 경과
3.1. 1월 2일
카자흐스탄 서부 자나오젠[8]의 주민들이 38텡게였다가 120텡게까지 급격히 인상된 LPG 가격에 항의하여 도로를 차단하고 시위를 벌였다. 이 지역에서 가스 가격에 항의하여 벌어진 시위는 2020년 1월에 이미 있었으나 가격 인상이 2년간 멈추지 않았다. #카자흐스탄 서부의 자나오젠이 속한 망기스타우 주의 중심도시인 악타우(Aqtau)에서도 같은 이유로 시민들이 길거리에 쏟아져 나와 시위를 벌였다.
3.2. 1월 3일
자나오젠의 시위대는 밤을 샌 뒤 시위를 이어나갔으며 가스 가격 인하 요구뿐 아니라 정치적 요구도 서슴치 않았다. 시위에 결집한 인원은 약 1천명에 달한 것으로 추정되었으나 당시에 경찰이 시위에 개입하지는 않았다고 한다. # 시위대는 카자흐스탄 대통령인 카심조마르트 토카예프가 지방 정부의 수장은 국민이 선출해야 한다고 공약했던 것을 언급하면서 정치 체제의 개혁을 요구하였다.3.3. 1월 4일
전날까지 일부 도시에 국한되었던 시위는 이날을 기점으로 하여 전국적 확산에 접어드는 모양새였다. 우랄스크에서는 새벽부터 80여 명의 차주들이 중앙 광장에 모여 가스 가격 인하를 요구하였는데 당국은 이를 불법 집회로 규정하였다. # 그러나 같은 날 정오에 약 500명의 시위대가 쏟아져 나와 고속도로의 통행을 막으려고 시도하였다. # 알마티에서는 반체제 시인인 아론 아타벡(Aron Qabyşūly Edıgeev)의 40일 추도식이 끝나 가던 상황 속에서 자나오젠의 시위를 지지하려던 여러 활동가들이 체포, 구금되었다. #타라즈에서는 망기스타우주 지역의 시위대와 연대하기 위해 모인 주민 및 언론인들이 구금되는 일이 발생하였다. 일부 수감자들은 경찰에게 석방을 요구했다. # 악퇴베에서는 시위대가 경찰이 정한 경계선을 돌파하고 지역 행정부 건물을 향해 행진했으며 약 50명이 구금되었다. 아티라우 지역의 유전 노동자들은 파업을 선언하고 망기스타우의 시위대를 지지하는 집회를 열었다. #
악타우에서는 6천명에 달하는 시위대가 광장을 메우고 가스 가격 반값 인하와 당시 정부 퇴진, 누르술탄 나자르바예프 전 대통령의 정계 은퇴[9] 등을 요구하였다. 시위대는 다음날까지 시위를 계속 이어가기 위해 텐트와 유르트까지 가져와 설치하였다고 한다. 주변의 다른 지역에서도 악타우의 시위에 참석하기 위한 방문객들이 속출하였다.
각지의 시위는 늦은 밤까지도 이어졌으며 특히 카라간다에서는 경찰은 물론 군인까지 배치되던 상황 속에서도 수백 명의 시위대가 해산을 거부하고 밤을 지새웠다. #
이 와중에 정부는 가스 가격을 50텡게로 인하하는 방침을 발표하였다. 그러나 정치 개혁과 정부 퇴진 등이 점차 시위대의 요구사항에 포함돼 가던 상황 속에서 사태가 가라앉을 조짐은 보이지 않았다.
악타우 광장을 중심으로 반경 2km의 무선 인터넷 연결이 한때 차단되었으며 SNS 상에는 군인이 탑승한 항공기 2기가 악타우로 보내졌다는 이야기가 나돌았다. # 다른 여러 도시에서도 시위가 일어나는 족족 주변 지역 무선 인터넷 연결 속도가 느려지거나 아예 끊어지는 현상이 목격되었다. 안 그래도 카자흐의 인터넷 검열이 타 국가에 대비해 심하다고 알려졌는데[10] 더 강경한 조치를 취한 것으로 보인다. 시위와 관련된 정보를 자주 다루던 웹사이트인 Orda.kz와 KazTAG는 카자흐스탄 영내에서 아예 접속이 차단되고 말았다. # 텔레그램, WhatsApp, Signal 등의 보안 메신저도 차단되어 VPN 없이는 카자흐스탄에서 접속이 불가한 것으로 알려졌다. #
카심조마르트 토카예프 대통령은 트위터를 통해 시위대 측에 대화와 교섭을 강조하였다. #
3.4. 1월 5일
알마티에서 새벽부터 대규모 집회가 열렸으며 규모는 1천명~1만명 정도로 추정된다. 당국은 이를 폭동으로 규정하고 진압에 나섰으나 아침까지도 알틴 오르다 지역의 시위대가 해산하지 않자 경찰 특수부대가 최루탄 등을 사용하여 시위대를 해산시켰다. ### 알마티의 시위 및 소요사태가 점점 확대되면서 버스 등 대중교통의 운영이 전면 중단되었으며 무선 인터넷 연결도 중단되었다. 새벽 1시 30분을 기해서 알마티 전역과 망기스타우주에 비상사태가 발령되었다.악타우의 인티막 광장에는 약 6천명의 인파가 몰렸다. 사태가 시작된 곳인 자나우젠의 시위대는 요구 사항으로 정부의 총사퇴, 독립적인 자가 지명 후보자의 선거권을 허용하는 선거법 개정, 대통령 권한 제한, 의회 권한 확대, 1993년 헌정 체제로의 복귀 등을 주장하였다.
악퇴베에서는 시위대가 지방 정부 건물의 유리창을 깨고 내부에 진입하려고 시도하자 경찰이 최루탄을 발사하였다. 알마티와 마찬가지로 대중교통의 운영 및 인터넷 연결이 중단되었으며 약국 등을 제외한 상점 및 슈퍼마켓도 휴업에 들어갔다. #
알마티 중앙광장에 집결한 수천 명의 시위대가 경찰 경계선을 돌파한 뒤 지방 정부 건물을 점거하여 시설물을 파괴하고 방화하는 일이 발생하였으며 검은 연기가 발생하고 수 차례의 폭발음도 들렸다. # 또 오후 3시경 카자흐스탄의 집권당인 누르 오탄(Nur Otan)의 당사에서 화재가 발생하였으나 소방관을 포함한 그 누구도 진화에 나서지 않았다고 한다. #
오후 4시부터는 수도 누르술탄에도 비상사태가 선포되었다. #
상황이 걷잡을 수 없게 되자 아스카르 마민 총리와 그가 이끄는 내각이 시위에 대한 책임을 지고 총사퇴했다. # 카자흐스탄은 강력한 대통령 중심제를 운영하는 국가이므로 토카예프 대통령이 이들의 사임을 수리하고 아리한 스마일로프 부총리를 총리대행으로 임명하는 식으로 사퇴가 이루어졌다. # 그러나 동시에 토카예프 대통령은 '국가 권력의 추락은 없을 것'임을 선언하고 내부와 외부의 도발, 집회와 방임의 행복감에 굴복하지 말라는 것을 골자로 한 연설문을 발표하였다.
누르술탄 나자르바예프 카자흐스탄 안전보장회의 의장이 모든 공직에서 사퇴하였다.
당초 최대 도시 알마티, 수도 누르술탄 등의 일부 지역에 발령하려던 비상사태는 시위가 수그러들지 않자 전국으로 범위가 확대되어 발령되었다. 수천 명이 벌인 유혈 시위 사태로 최소 1000여명이 다치고 수십명이 숨졌다고 러시아 타스통신 등이 밝혔고 시위를 진압하는 과정에서 보안요원 2명은 참수(斬首)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알마티의 대통령 관저와 시장 집무실은 시위대가 점거하였고 불을 질렀다. #
카자흐스탄 제3도시인 쉼켄트의 중앙 광장에서 평화 시위가 일어났다.
3.5. 1월 6일
타스 통신에 의하면 사태는 점점 막장이 되어 가서 악타우 주둔군 및 경찰이 시위대에 합세해 카자흐스탄 정부군과 대치 중이던 상태로 전해졌다. 자칫하면 내전으로 치달을 가능성도 있었으나 하술할 러시아군의 개입으로 인해 가능성은 낮아졌다.결국 러시아에 도움을 요청했는지 러시아 공수군이 CSTO 평화유지군으로서 카자흐스탄에 파견되었다고 한다.[11] 벨라루스군, 타지키스탄군, 아르메니아군도 투입될 예정이라고 전해졌으며 CSTO 파견 규모는 2,500명인 것으로 전해졌다.
우즈베키스탄 자원부가 자국 에너지 필요성을 이유로 들어 2022년까지 일시적으로 천연 가스 수출을 중단하겠다고 발표했다.
알마티에서 흰색 렉서스 GS차량이 도시 여러 곳을 돌아다니면서 시위대들에게 총기를 나눠주는 영상이 공개됐다. #
알마티 전역에서 폭도들에 의한 약탈이 일어났다.
프랑스로 망명한 카자흐스탄 출신의 반정부 인사가 민중혁명으로 정권이 종말을 맞이하고 있다고 밝혔다. #
3.6. 1월 7일
토카예프 카자흐스탄 대통령이 TV 연설에서 범죄자, 살인자와 협상에 나설 수 없다며 "시위를 진압하는 군 등이 경고 없이 발포하는 것을 승인했다"고 말했다. #카자흐스탄 내무부 발표에 따르면 체포된 인원은 3000명, 진압 과정에서 26명이 사살되었으며 부상자는 18명이고 "모든 도시의 시정부 청사가 재탈환돼 사법기관의 통제하로 들어왔다"고 밝혔다. #
3.7. 1월 8일
국가반역 혐의에 대한 자체 조사를 통해 나자르바예프 전 대통령 밑에서 2번씩이나 총리로 재임한 카림 마시모프 전 카자흐스탄 국가보안위원회(KGB) 위원장과 다른 인사들을 체포하였다. # 현지에선 나자르바예프 전 대통령의 측근들인 이들이 카심-조마르트 토카예프 대통령 정권을 몰아내기 위해 이 시위 사태를 기획했을 수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현지 매체에 따르면 누르술탄 나자르바예프 전 대통령은 이미 딸 3명을 데리고 해외로 도피했다는 설이 나왔지만 부인했다.3.8. 1월 9일
- 반정부 시위대에게 점거되었던 알마티 공항이 카자흐스탄 당국이 통제권을 되찾았지만 공항의 재개장은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한다. #
- 카심조마르트 토카예프 대통령은 시위대와의 충돌에서 '승리'를 선언했다. 카자흐스탄 정부는 시위에 관여한 5,800명을 구금했으며 사망자는 어린이 2명을 포함해 총 164명으로 최대 도시 알마티에서만 103명이 사망했다. #
3.9. 1월 10일
카심조마르트 토카예프 카자흐스탄 대통령이 쿠데타 시도는 실패했다고 선언했다. 아울러 토카예프 대통령은 지난 며칠간 소요사태가 진정된 것으로 보인다며 조속한 정상화를 약속했다.#CSTO 평화유지군의 주요 임무가 끝났으며 반정부 시위 진압을 위해 카자흐스탄으로 파견됐던 러시아군 주도의 CSTO 평화유지군이 열흘 안으로 철수할 예정(러시아군은 이틀 안)이라고 밝혔다.#
3.10. 1월 11일
시위가 완전 종료되었다고 선언했고 항공편도 정상화되었다.3.11. 1월 19일
0시를 기해 수도 누르술탄과 최대 도시 알마티 등 주요 도시에 발령했던 비상사태를 해제했다.#4. 피해
4.1. 교민 피해
- 아시아나항공 OZ577편(서울→알마티)을 운항하던 HL8364가 알마티 국제공항 도착 이후 해당 시위로 인해 승객 70여 명[12]과 승무원이 서울(인천)로 돌아가는 복편을 이용하지 못해 공항에서 발이 묶였다. HL8364도 나머지 일정을 소화하지 못하는 등 향후 항공기의 비행일정도 무더기로 차질이 빚어졌으며 HL8364는 알마티 국제공항에 계속 발이 묶이고 있었으나 전술한 대로 시위가 종료되어 8일 만에 1월 13일에 서울로 복귀할 수 있었다.
5. 반응
5.1. 집단안보 조약기구(CSTO)
- 카자흐스탄 정부의 요청에 따라 러시아 연방군 등이 포함된 집단안보조약기구(CSTO) 소속 평화유지군이 카자흐스탄으로 파견될 것이라고 아르메니아의 니콜 파시냔 총리가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밝혔는데 "카심조마르트 토카예프 카자흐스탄 대통령의 요청과 특히 외부의 간섭으로 인한 카자흐스탄 국가 안보·주권의 위협을 고려해 CSTO는 집단안전보장조약에 의거, 카자흐스탄의 안정과 정상화를 위해 집단평화유지군을 임시 파병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
5.1.1. 러시아
- 러시아는 CSTO군 파병 결정을 주도했고 러시아 외교부는 '최근 카자흐스탄 사태는 훈련되고 조직화된 무장단체를 이용해 국가의 안보와 통합성을 무력으로 훼손하려는 외부의 시도'라고 주장하면서[13] 공수부대 파견의 정당성을 설명했다. # 일부 러시아 매체들은 미국이 우크라이나에서 러시아의 관심을 돌리기 위해 카자흐스탄에서 시위를 선동했다는 미국 배후설을 제기했다. #
- 카자흐스탄에 발이 묶인 자국민 여행객 1,500명 정도를 군용수송기를 동원해 자국으로 귀국시켰다. #
5.1.2. 아르메니아
- 아르메니아의 니콜 파시냔 총리의 평화유지군 파견 발표는 CSTO 의장 자격으로 발표한 것이지만 일단 파시냔도 민주화 시위의 결과로 독재자를 몰아내고 집권한 인물이며 CSTO가 아제르바이잔과의 전쟁 때 아르메니아를 지원하지 않았기 때문에 아르메니아 국내에서 평화유지군 파견 발표는 쓰라린 아이러니로 받아들여졌다. 일각에서는 만약 아르메니아에서도 시위가 일어나면 파시냔이 CSTO에 도움을 요청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도 있었다. ##
5.1.3. 키르기스스탄
- 키르기스스탄에서는 국회 투표에서 재적 76명 중 69명의 찬성으로 파병이 승인되었지만 일부 의원은 이에 반대했고 수십여 명의 시위대가 국회 앞에서 반대 시위를 열기도 하였다. 파병을 반대한 다스탄 베케셰프 의원은 카자흐스탄 정부가 시위대를 '테러리스트'라고 언급한 데 있어 이 용어가 2020년 시위를 통해 집권한 자파로프 대통령의 지지자들에게도 적용될 수 있음을 지적했다. #
5.2. 대한민국
- 외교부는 홈페이지를 통해 비상사태 발령 관련 안전 공지를 전파하고 알마티 시내의 도심 출입 자제를 요청했다. 이후에도 현지 공관과 함께 비상 연락체계를 강화하고 재외국민 안전 확보를 위해 필요한 조처를 할 예정이며 알마티 국제공항에 발이 묶였던 아시아나항공 승객들과 승무원들은 호텔과 자택으로 귀가조치되었다고 밝혔다.
5.3. 미국
- 1월 5일 젠 사키 백악관 대변인은 '미국이 이 시위에 배후에 있다'는 주장에 대해 '러시아의 미친 주장(crazy Russian claims)'이라는 표현을 써가며 극렬히 반박했다. #
- 1월 6일에 카자흐스탄에 파견된 러시아군과 관련해 카자흐스탄의 주요 기관들을 장악할 것을 우려하고 있다고 밝혔다. #
- 1월 7일 국무부는 알마티 주재 총영사관 직원과 가족들이 자발적으로 철수할 수 있도록 했다. #
5.4. 중국
- 중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으며 일대일로 계획 추진에 직결되어 있는 국가이기 때문에 중국에서도 이 사건을 예의주시했다. 이미 중국은 이 시위를 외부의 사주를 받은 국가 전복 미수로 간주하고 언론에서도 그렇게 보고했다. 시진핑 국가주석은 카심-조마르트 토카예프 카자흐스탄 대통령에게 보낸 구두 메시지에서 이 사태와 관련해 위로를 표명했고 이어 "중요한 시기에 단호하게 강력한 조치를 취해 사태를 신속히 수습한 것은 정치인으로서의 책임과 임무, 국가와 인민에 대해 고도의 책임감 있는 입장"이라고 평가하며 카자흐스탄 정부의 조치에 대한 지지 입장을 표명했다. 또 어떤 세력이든 카자흐 안정을 파괴하고 안보를 위협하는 것과 카자흐 국민의 평온한 생활을 파괴하는 것, 외부 세력이 카자흐의 동요를 조장하고 '색깔혁명'을 책동하는 것, 중국-카자흐의 우호를 파괴하고 양국 협력을 방해하려는 기도에 결연히 반대한다고 부연했다. #
5.5. 유럽연합
-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집행위원장이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과 함께 개최한 기자회견에서 "카자흐스탄의 상황이 매우 우려스럽다"며 이같이 밝혔다. #
5.6. 바티칸
5.7. 튀르크어권 국가 기구
유혈사태 희생자를 추모하기 위해 조기를 게양했다.#6. 결과
비록 대통령 퇴임, 정권 교체 등 가시적 성과를 내지는 못했으나 카자흐스탄 정치에 끼친 변화는 대단했다.- 이 시위로 전임자 누르술탄 나자르바예프는 누르 오탄에서 영향력을 잃었고 카심조마르트 토카예프 대통령은 개헌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
- 이 사태 이후 카자흐스탄은 시위의 시발점이었던 서부 일대 개발에 나섰다. #
- 시위대의 방화로 불에 탄 초대 대통령 관저가 철거되고 공원으로 바뀌었다. #
- 2022년 3월 16일 발표된 개헌 추진 방향은 다소 파격적인데 카자흐스탄 제2공화국 선포, 대통령 권한 축소, 헌법재판소 신설, 전현직 대통령의 집권여당 당직 겸직 금지, 하원 권한 강화 및 상원 권한 축소, 야당의 정치 참여 확대를 위한 선거 제도 개혁 등이다. 이 시위를 계기로 적어도 공식적 제도상으로는 본격적인 민주화의 길로 들어서게 되는 것으로 보인다.
- 러시아는 이 사태를 통해 잘못된 교훈을 얻었는데 공수군 대량 투입으로 위압감을 준 것이 사태의 조속한 해결에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한 것이다.[14] 이 방법을 우크라이나에 전쟁을 일으키면서 그대로 써먹었는데 우크라이나의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이 도망치기는커녕 키이우에 그대로 남아 항전을 독려하고 이에 대통령 경호실이 악착같이 맞서 싸워 격퇴하고 연설에 호응한 우크라이나 시민들과 군대가 합심해서 맞서자 공수부대의 약점인 낮은 공방, 전투 지속력이 그대로 드러나 적의 수도에 꼼짝없이 갇힌 러시아 공수군은 전열을 가다듬은 우크라이나군의 반격에 포위당해 전멸 수준의 막대한 피해를 입고, 북부에서 내려오던 군대는 보급망이 약화된 상태에서 라스푸티차와 우크라이나군의 결사항전에 키이우 공략마저 실패하면서 전쟁이 장기화되었다.
- 7월 시위 가담자 545명이 유죄 판결을 받았다. #
- 9월 1일 카심조마르트 토카예프 대통령은 시위 참가자 전원 사면과 석방을 발표했다. # ##
- 9월 17일 토카예프 대통령이 대통령 7년 단임제(연임 금지) 등을 골자로 하는 개헌안에 최종 서명했다.[15] 누르술탄 나자르바예프 전 대통령의 이름을 따서 '누르술탄'으로 바뀌었던 수도 명칭도 '아스타나'로 원상 복귀한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다만 연임 금지 규정이 토카예프 대통령부터 적용될지는 불투명하다는 관측이 나왔는데 그가 이미 차기 대선 출마 의사를 표명한 데다 벨라루스, 러시아 등에서도 과거 유사한 법 개정이 이뤄진 적이 있지만 현직 대통령은 적용 대상에서 제외됐기 때문이다. #
- 11월 반정부 시위에 참여했던 가담자 등 다수를 사면했다.#
- 2024년. 전 내무장관이 경찰 유혈 진압에 관여한 혐의로 체포됐다.#
7. 기타
- 카자흐스탄에서 대한민국으로 귀화 과정을 진행하는# 압사득 오네게[16]는 해당 시위에 대한 내용과 그 원인을 본인의 인스타그램 스토리에 공유했으며 카자흐스탄의 인터넷 및 전화가 차단되어 가족이랑 연락마저 안 된다고 걱정을 토로했다.
- 2021년 미얀마 민주화 운동과 비슷하지만 다른데 미얀마 쪽은 중국과 국경지대지만 중국이 적극적으로 군대를 파병하는 식으로 미얀마를 도우려고 하진 않은 반면 이쪽은 외교적으로 러시아와 관계가 가장 좋은 편이고 국경지대여서 카자흐스탄에서 폭력시위가 벌어지면 러시아 측에선 바로 파병해 버린다. 여기에 결과적으로도 차이가 있는데, 미얀마는 민 아웅 흘라잉이 쿠데타를 통해 불법적으로 정권을 찬탈한 반면, 카자흐스탄은 9일간의 반정부 시위 이후 그럭저럭 정치적 개혁이 원만하게 이어지고 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다만, 이 정치적 개혁이 카자흐스탄에서 30년 가까이 이어진 독재를 종식시키고 민주주의를 정착시키게 될 지는 미지수다.
- 42년 전 한국에서 발생한 발생한 5.18 민주화운동과의 평행이론이 있다. 시위 진행 기간이 9일이었고, 민간인 사망자가 5.18은 165명[17], 카자흐스탄 시위는 164명으로 단 1명밖에 차이가 없다.
[평화유지군] 평화유지군 파병[평화유지군] [3] 키르기스스탄 제외[4] 아동 2명 포함[5] 외국인 포함[6] liveuamap 참조.[7] 기존에 50텡게이던 LPG 가격이 120텡게까지 2배 넘게 올랐다.[8] 한국 언론은 러시아어식, 영어식 표기인 자나오젠이라는 표기를 주로 쓰지만 카자흐어 표기로는 장아외젠(Jañaözen)에 가깝다.[9] 나자르바예프는 이미 30여 년에 달하는 독재를 끝내고 퇴임하였으나 퇴임 후에도 안보회의 의장 등의 직함을 가지고 카자흐스탄 정치 전반에 상왕처럼 군림하고 있다는 의혹을 받았다.[10] 구글 검색하다 보면 kzclip이라는 정체불명의 카자흐어로 된 유튜브를 미러한 듯한 웹사이트가 잡히는데 이는 카자흐스탄에서 차단된 유튜브를 우회하기 위해 만든 미러 사이트라는 이야기가 있다. #[11] 러시아는 우크라이나를 두고 서방과 대치 중인데 아랫동네인 카자흐스탄까지 시끄러워지면 골치 아파지니 빨리 정리해 버릴 목적으로 서둘러 개입한 듯하다.[12] 한국인과 외국인 승객의 비율이 거의 절반이며 알마티 국제공항에서 서울행 복편을 이용하려고 대기중 이었다.[13] 이전부터 색깔 혁명을 의심했지만 카자흐 군경 2명의 참수 소식을 듣자 시위를 넘은 정부 전복 시도임을 확신했다.[14] 실제로는 나자르바예프의 그림자에서 벗어나 독자적 행보를 걷고 싶던 토카예프 대통령과 개혁을 원하던 시위대의 아귀가 맞아떨어져서 토카예프가 대통령직을 유지하는 대신 시위대의 요구를 일부 받아주는 딜이 성립된 것에 가깝다.[15] 기존에는 5년 중임제였으며 전임자 나자르바예프는 소련 붕괴 직후부터 무려 28년간 독재했다.[16] MBC every1의 대한외국인에 출연했으며, 이외에 유튜브에도 많이 출연할 정도로 유명하다. 그녀의 한국어 구사 능력도 주목을 받았는데 한국인 원어민과 구분이 힘들 정도로 상당히 월등하며 심지어 한국어 유행어도 알 정도다. 유명한 별명으로는 '한반도의 흔한 외국인' 및 이름이 오네게여서 5555로 불리고 있다.[17] 공식 사망자. 사망자 수치를 축소하는 독재정권의 특성상 실제로는 이보다 훨씬 많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