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한국의 봄철 기근을 가리키는 말. 춘궁기(春窮期)·맥령기(麥嶺期)라고도 한다. 기근 시기를 보내는 것이 고개를 힘겹게 넘어가는 것과 같다고 하여 보릿고개라고 부른 것이 어원이다.2. 실태
대한민국의 대부분의 지역에서는 가을인 9월 아니면 10월에 벼를 추수한 뒤 보리를 심는 이모작을 할 수 있다.[1] 그런데 문제는 보리는 제대로 맺힐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 시간이 좀 긴 작물이라는 것인데 이로 인해 추수한 쌀이 다 바닥나는 5월과 6월에는 아직 보리가 제대로 여물지 않아 보리를 수확할 수 없었다. 해안 지역이야 생선이 1년 내내 잡히고 굳이 생선이 아니더라도 조개나 문어, 오징어, 새우 같은 다른 해산물들도 잡아서 먹을 수 있으니까 내륙에 비하면 굶을 일은 덜했지만 근현대 이전까지는 유통망이 상당히 부실해서 전국 대부분 지역은 감당이 제대로 안 되었다. 쌀도 보리도 없다 보니 사람들은 자연히 허기를 채울 작물을 찾기 위해 노력했다. 그 내용은 구황작물 문서 참고.물론 구황작물도 어디선가 뿅하고 나타나는게 아닌, 흉년이 예측될 때 본작물 대신 심는 작물이며 보관이 어려웠기에 보릿고개에는 큰 도움이 되질 않았고, 결국 칡뿌리나 풀뿌리를 캐서 죽을 쒀서 먹거나 나무 껍질 가운데에서도 주로 소나무 껍질(송피)을 많이 먹었다. 게다가 진흙까지도 보릿고개의 먹거리 중 하나였다.[2] 나무 껍질은 주로 소나무의 연한 속껍질을 벗겨 삶거나 하여 부드럽게 만들어 먹었고 진흙은 백토라고 하는 입자가 매우 고운 흙을 물에 개어 가라앉은 부분을 쪄 먹는데 문제는 나무 껍질이나 흙 모두 인간은 소화할 수 없는 성분이 대부분이라 먹을 땐 어떻게 먹더라도 당연히 탈이 나고 나중에 심각한 변비를 일으켰다는 것이다. "똥구멍이 찢어지게 가난하다."라는 말은 심한 변비로 보릿고개 때 항문이 찢어지던 것에서 유래한 말이다. 죽도 특성상 배가 금방 꺼져서 먹어도 먹은 것 같지 않은 기분이 드는 식품이다.
그 외에 나무 껍질을 너무 과하게 벗기는 바람에 수많은 나무들이 고사하는 등의 부작용도 많았다. 그래서 보릿고개 걱정을 굳이 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식량을 넉넉하게 비축할 능력이 있는 사람은 상당한 부유층 및 중산층으로 인정받았다.
오로지 하늘에 맡겨 농사를 짓던 고대부터 조선 시대까지의 역사를 보면 보릿고개로 인해 제대로 먹지 못하면서 기아와 역병이 겹쳐 전염병과 아사로 죽는 백성들이 수두룩했다고 전해진다. 그렇다고 가만히 앉아서 손 놓고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라 나라에서는 보릿고개를 대비하는 수단을 마련하였다.
조선 시대에도 의창, 사창 등을 설치했는데 이 시기에 나라에서 쌀을 빌려주고 추수 때 갚게 하는 환곡이라는 시스템을 구축했다. 문제는 기근이 너무 오래 지속되면 나라에서도 버틸 수가 없었다는 것이고 조선 후기에는 이와 관련된 비리가 끊이지 않았다. 일제강점기에도 보릿고개는 있었다. 당시 신문에서도 보릿고개로 인해 굶주리는 지역 주민들 이야기가 심심찮게 등장했다.
보릿고개는 1970년대까지 존재했다. 그나마 한국 전쟁 전후로 계속 원조로 받은 밀가루 덕에 서울에서는 1950년대 후반, 지방에서는 1960년대 중반 이후에는 기근이라고 해도 칡뿌리나 풀뿌리를 캐서 죽을 끓여 먹거나 나무 껍질에 흙을 먹을 정도로 굶거나 불편하게 사는 사람은 크게 줄었으며[3] 1970년대 새마을운동과 녹색 혁명을 거쳐서야 농업 생산량의 증가와 화학비료의 본격적 보급, 교통망 발달로 사라졌다.
3. 원인
보릿고개까지 쌀을 비축하지 못하는 이유가 한국인들이 밥을 워낙 많이 먹기 때문이라는 농담 같지만 나름 일리 있는 주장도 있다. 하지만 의외로 꽤나 설득력을 얻고 있는 주장인데 현대의 공기밥 한 그릇의 밥량이 200g 정도인 것에 비해 조선시대의 한끼 식사량은 대략 700g 정도로, 현대인의 3배가 넘는 수준이었다. 그나마 이것도 고려 시대의 900g에서 양이 준 것이다. 옛날 밥상을 보면 밥그릇이 지금의 국그릇보다도 크다.물론 당시의 식사량을 현대의 기준에 마냥 똑같이 맞출 수는 없는데 기본적으로 농사일은 엄청난 노동력을 필요로 하는데 이 때의 농업 기술은 현재의 농업 기술과 비교해도 훨씬 비효율적이고 많은 노동력을 필요로 했으니 그것을 감안하면 그렇게 이상한 것은 아니다. 현대에도 공사장 인부나 운동선수처럼 육체 노동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식사량이 일반인과는 비교할 수 없이 매우 많다.[4] 더불어 당시의 쌀은 현재의 쌀과는 영양소와 성분도 다른데 우리가 현재 먹고 있는 쌀은 개량에 개량을 거친 품종이고 쌀뿐만 아니라 평소 우리가 먹고 있는 식자재중 개량종이 꽤나 많다. 조선 시대에는 단백질 섭취량도 현저히 낮았기 때문에 노동력에 들어가는 에너지의 대부분을 탄수화물에서 얻었다는 것도 잊어선 안 된다.
사실 제일 큰 원인은 운송망의 부재다. 조선 시대는 물론이고 그 이전에도 식량 생산량 자체는 이미 전국민을 먹이고도 남을 정도였으나 조선왕조가 멸망할 때까지 포장도로를 확보할 수 없어서 식량 공급의 불균형이 심했다. 지금도 북한이 허구한날 식량난으로 고생하는 이유가 절대적인 식량 생산량도 문제지만 운송망이 빈약해서 그나마 식량이 남는 곳에서 식량이 부족한 곳으로 제대로 분배되지 못해서이기도 하다.
물론 조선도 영남대로 등 주요 간선도로를 확충함으로써 어느 정도 노력을 기울였다. 문제는 연교차가 크고 강수량이 여름에 집중되는 한반도의 변덕스러운 기후인데 이런 기후에서 전근대 기술력으로 포장도로는 언감생심이었다. 현대에 와서도 한국 도로들은 몇 년만 지나도 아스팔트들이 견디지 못하고 부서지는 것이 일상인 기후 때문에 매년 보수공사를 한다.
거기에다 한반도의 기후 문제 때문에 다른 교통 수단들은 안정적인 빠른 수송이 어려웠다. 운송비를 보면 알 수 있는데 선박을 이용하는 수운은 대량 수송에는 적합하지만 이건 거리가 멀어질수록 저렴한 편이지만 거리가 멀지 않고 배가 다닐 만큼 큰 강도 없고 만일 소량이라면 운송비용은 제일 비싸서 되려 식량 수송에 방해된다. 더구나 날씨의 영향과 해류의 영향에 취약한 문제가 있는데다 한반도의 경우 겨울에는 강이나 호수가 꽁꽁 얼 정도의 엄청난 혹한을 자랑한다.[5] 철도는 조선 말기에나 도입된 데다 특성상 공사비와 운영비 문제로 대도시권만 연결해서 수출입품 등의 대량 운송에나 더 적합한 운송 체계다.
물품과 식품들이 풍족한 지역에서 부족한 지역들로 제대로 유통이 잘 되어야 적어도 식량난을 겪지는 않는데 보릿고개가 사라진 시기는 경인고속도로(1969년), 경부고속도로(1970년), 호남고속도로(1973년), 영동고속도로(1975년)가 연달아 개통되고 유통망이 갖춰지던 시기, 즉 1960년대 후반 ~ 1970년대 중반이다.
4. 여담
야사에 의하면 정순왕후가 영조의 눈에 들게 된 계기라고 한다. 영조가 간택령에 뽑혀 모여진 여러 규수들에게 "이 세상에서 제일 높은 고개가 무엇인가?"라고 묻자 규수들이 저마다 높은 고개 이름을 댈 때 정순왕후 김씨는 "보릿고개야 말로 제일 높은 고개인 줄로 아뢰옵니다."라고 대답하였다고 한다. 그 외에도 부친의 이름이 적힌 방석 위에 여식의 몸으로 앉을 수 없다고 하고 가장 좋은 꽃은 백성들의 옷이 되는 목화라고 대답했다고 한다.보릿고개 현상이 없어진 지금은 다른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고 한다. 가령 월급 3일 전이라거나... 여기서 아예 '월급고개'라는 신조어까지도 파생되었다. 만화에서는 가끔 우스갯소리의 소재로 쓰이기도 하는데 가령 "보릿고개는 어디에 있는 고개예요?"라고 묻는 식이다.
보릿고개를 경험하지 못한 지금 세대들 중에서는 보릿고개라는 말의 뜻은 대충 알지만 그 어원을 먹을 게 없어서 쌀 대신 보리로 끼니를 떼울 정도로 힘든 시기라고 잘못 알고 있는 경우도 많은데 부모 세대가 쌀에 잡곡을 섞어서 먹던 것을 혼동하는 경우다.
검정고무신 3기 에피소드 중 막판에 보릿고개 시련기라는 3부작으로 제작된 에피소드가 있다. 다만 진짜 의미의 보릿고개를 겪은 게 아니라 배경은 추운 겨울이었고 아버지가 실직해서 발생한 일이었다. 어머니가 이기철/이기영 형제에게 아버지가 다니던 회사가 망해서 실직했다고 말하는 것에서 다니던 회사가 경영난으로 부도가 난 것임을 유추할 수 있다. 때문에 학교에 육성회비(2021년까지 학교운영지원비)도 못 가져다 줄 정도로 한순간에 가세가 기울면서 온 가족이 힘들던 시기를 할머니가 보릿고개에 빗대어 표현했다. 아버지는 길바닥 양말 장사[6], 영화나 드라마 엑스트라 단역 아르바이트 등으로 기영이와 기철이의 육성회비를 납부하였고 기철이도 신문배달로 본인의 돈은 물론 가족들의 돈도 벌어 주었다. 마지막에 아버지는 기철이가 신문배달하면서 알게 되었고 어떤 아저씨를 도와주다가 개에게 물려 기철이와 같이 입원하였는데 어떤 아저씨가 기철이에게 아버지의 이력서를 주면 재취업 자리를 알아봐 주겠다고 도와주면서 드디어 재취업에 성공하게 되었다.
5. 유사 사례
- 순무의 겨울: 독일판 보릿고개. 물론 해당 사례는 제1차 세계 대전 당시 전쟁을 단기전으로 끝내는 것에 실패해 참호전의 수렁에 빠진 독일 제국이 전쟁 중 겪은 고작 3번의 겨울에 발생한 기근을 일컫는 말이라 수천 년간 존재한 자연재해인 보릿고개와는 본질적으로 전혀 다르다.
[1] 중부 이북에서는 2년3작[2] 지금도 아이티의 진흙쿠키가 유명하다. 물론 아무 흙으로 만들지는 않고 불순물이 덜한 흙을 모아 만들어 먹는다.[3] 일단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에 따르면 늦어도 1967년부터는 초근목피로 연명하는 농민은 사라졌다.[4] 애초에 삼시세끼 식사법 자체가 이러한 활동량이 많은 사람들에게 맞춰진 것이다.[5] 이것도 남한 기준이지, 평양정도 위도부터 겨울 바다에 유빙이 관측되기 시작하며, 부동항이라고 알려진 블라디보스토크도 겨울에 약하게나마 바다가 언다.[6] 다만 이 양말들은 한 양아치들에 의해 다 뺏기고 말았고 폭행당하다 다리에서 추락해(!) 허리를 다쳐 며칠을 누워 있어야 했다. 깡패들은 삥 뜯다가 사람 죽여서 쇠고랑 찰까봐 그대로 튀었다. 이렇게 되었다가 잡히면 못해도 강도죄(징역 3년 이상) 확정이고 두 명 이상이서 뜯어냈으므로 특수강도죄(징역 5년 이상)가 적용되며, 기철이 아버지가 죽기라도 했다면 강도살인치사죄로 강도치사가 확정이며(징역 10년 이상) 그 양아치들에게 살인의 고의가 있었음이 입증되면 강도살인죄(무기징역~사형)까지 혐의가 올라갈 수 있다. 이전에도 기철이 아버지에게 삥을 뜯은 상습범이라 가중처벌을 당하면 당했겠지 감형받기도 힘들 것이기에 그대로 튄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