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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2-06 22:16:42

주성하

<colbgcolor=#008186><colcolor=#fff> 주성하
周成賀[1] | Zhou Seong-ha
파일:2020주성하기자.jpg
출생 1975년 ([age(1975-12-31)]~[age(1975-01-01)]세)[2]
국적
[[대한민국|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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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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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령
]]
학력 청진외국어학원 (졸업)
김일성종합대학 외문학부 (영문학 / 학사)
연세대학교 행정대학원 (정치학[3] / 석사)
인제대학교 일반대학원 (통일학 / 박사수료)
경력 동아일보 기자 (2003~)
월간하나 편집위원 (2012~)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상임위원 (2013~)
수상 제5회 노근리평화상 언론상
제20회 삼성언론상 전문기자상[4]
이메일 [email protected][5]
[email protected][6]
관련 링크
동아일보 파일:동아일보 아이콘.svg주성하 기자의 서울과 평양사이
파일:동아일보 아이콘.svg주성하의 북에서 온 이웃
유튜브 파일:유튜브 아이콘.svg주성하TV 구독자 33만명[기준]
파일:유튜브 아이콘.svgNKlogin[8]
커뮤니티 파일:페이스북 아이콘.svg주성하 페이스북
허브엔케이 - 북한을 알아가는 모든 길[9]
서울에서 쓰는 평양이야기[운영중단]
대북방송 주성하의 서울살이[11]

1. 개요2. 생애3. 블로그4. 유튜브 방송5. 논란 및 비판
5.1. 2018년 '봄이 온다' 공연 관련 논란5.2. '꼬북이' 비판글 논란5.3. 북한군 과대평가
6. 여담7. 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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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북한이탈주민 출신인 대한민국언론인, 작가이다.

동아일보 콘텐츠기획본부 기자로 재직하면서 북한중국 등의 정보통으로부터 대북정보를 입수하여 보도하고 있다. 이외에 미국 국제방송청의 대북방송인 자유아시아방송에도 논고를 쓰며,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상임위원, 남북하나재단에서 발행하는 '월간하나'[12] 편집위원 등을 겸하고 있다.

1998년부터 여러 차례 탈북과 북송을 반복하다가 2002년 3월 16일 탈북에 성공하여, 남한에 정착했으며 2003년 동아일보 국제부 기자로 입사했다. 2016년 7월 정치부 외교안보팀(통일부 담당) 기자로 발령되었다. 이후 다시 국제부를 거쳐 지금까지 콘텐츠기획본부에서 일하고 있다.

2. 생애

방송이나 인터뷰 등에서 자신이 1975년생임을 밝혔다. 함경북도 청진시 근방 동해안이 바로 보이는 어촌마을에서 농민의 자식으로 태어났다. 학생시절부터 오징어잡이를 했으며 김일성종합대 재학시절에도 생활비와 학비를 충당하기 위해 방학 때마다 배를 탔다고 한다. 경력으로 따지면 약 10년이라고 한다. 사회주의 국가답게 과거 북한의 대학 등록금은 무료였지만, 고난의 행군을 겪고 등록금이 생겼다고 한다. 배급도 형편없어서 오징어 잡이를 하면서 번 돈으로 장마당에서 음식을 사먹지 않으면 먹고 살기가 너무 힘들 정도였다고 증언한다.

집안의 출신성분이 좋지 않아서 핍박받기도 했지만 주성하 TV에서 본인 밝힌 바로는 청진외국어학원을 졸업했다. 김정일의 지시로 92~93년도까지 농민의 자식도 김일성대에 입학할 수 있게 되어 출신성분의 굴레에서 벗어나 1993년, 원래라면 출신성분 때문에 꿈도 못꿨을 김일성종합대학 외문학부에 입학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때 당시 학부 전체에서 농민의 자식은 주성하 혼자였다.[13] 이렇게 출신성분에 의해서 대학 입학이 좌지우지되는 북한에서 별볼일 없는 변두리 어촌에서 찢어지게 가난한 서민으로 태어났음에도 고위층 자제들이 대부분인 북한의 최고 대학 김일성대 출신이라는 점때문에 종종 같은 탈북자들 사이에서도 고위층 출신 탈북자로 오인받는 경우가 있었다고 한다.

1994년, 대학교 2학년 때 북한군 교도대에서 복무했는데 평양고사포병사령부 57mm 대공포 부대 소속이었다고 한다(2분 23초에 나옴).# 여담이지만 지휘소대 벽에는 적기 식별용이라며 F-4F-16 전투기 사진이 붙어 있었다고 한다. 이 둘은 대한민국 공군의 주력 전투기이다. 주성하는 속으로 수동으로 조작하는 고물 대공포로 초음속 제트기를 어떻게 격추할 수 있겠냐고 어이가 없었다고 한다.

이 시절 선군정치의 시작을 알린 김정일의 다박솔초소 방문 직전에 주성하의 부대가 다박솔초소로 파견나가서 부대를 번지르르하게 꾸미는데 동원되었다고 한다. 자신은 고사포 군관 자격증까지 지급되었지만 교도대 특성상 전시였다면 바로 전방부대 정치장교로 동원되었을 거라고 한다. 김정일의 다박솔 초소 시찰은 1995년 1월 1일에 이루어졌다. 이를 미루어 본다면 주성하는 2학년 후반기에 교도대에서 복무했을 것으로 보인다.
파일:external/blog.donga.com/20090211015848.gif

본인이 블로그에 공개한 김일성종합대학 졸업장. 잘 보면 표지와 내부 모두 유독 김일성의 이름 부분만 다른 글자들보다 조금 더 크게 적혀있는걸 볼 수 있는데 실제로 북한에서는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의 이름은 이런식으로 강조해야 하기 때문. 북한에 남아있는 지인들을 보호하기 위해서 이름·학부·졸업시기 등 신변이 노출되는 부분은 지웠다. 주성하라는 이름이 북한 시절부터 쓴 본명이 아니었을 수도 있음을 짐작케 하는 부분이다. 본인의 유튜브 방송에서 중국 외교부의 초청을 받았던 경험을 회상하며 ’(자신의) 이름과 여권이 불일치했다‘고 발언했던 것을 볼 때 본명이 아닐 가능성이 더 높다.

그러다가 이후 2018년 3월 31일 '주성하의 서울살이'란 대북 주간방송에서 외문학부 영문과를 나왔다고 본인이 직접 밝혔다. 학부를 밝히지 않은 이유는 역시 "지인들이 피해를 볼지 몰라서"였지만 지금은 북에서도 자신이 누군지 다 알고 있는 것 같아서 감출 필요가 없어졌다고 한다.#

김일성종합대학을 졸업하고 3개월 뒤, 1998년에 처음 탈북하여 여러번 북송과 재탈북을 경험하면서 보위부 감옥에 끌려가기도 했다고 한다. 자세한 내막은 본인이 밝히지 않았다가 나중에 지식 인사이드라는 유튜브 채널에서 밝혔다. 김일성종합대학 엘리트 출신의 주성하가 졸업 3달만에 탈북을 선택한 이유는, 고난의 행군을 겪는 북한의 암울한 현실이 너무 기가 막혀서 "이건 존재하지 말아야 할 나라다. 내가 반드시 부숴버리겠다" 라면서 동지들을 모아 지하조직을 만들고 반체제 운동을 하다가 적발되었기 때문이었다.##

감옥에서 보위부의 취조를 받는 동안 거짓 시나리오를 1달 내내 계속 외우고 그대로만 말했다고 하는데, 본인은 처음에 이게 먹혀서 놓아준 것이라 생각했지만 주성하TV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북송 후 재탈북을 할 수 있었던 이유는 당시 보위부가 주성하를 대한민국 안기부 휘하의 지하조직인 '진달래회'[14] 소속인 것으로 착각하고 조직 일망타진을 위해 주성하의 재탈북을 눈감아주고 스파이를 붙였다고 한다. 그런데 주성하는 그런 지하조직의 존재조차 알지도 못했다고 한다. 본인은 그 내막을 한국 입국 이후에야 알게 되었다고 한다.

최종적으로 2002년에 한국에 입국한 뒤 인력시장을 통해 군포화물터미널 포도주 하역 작업, 카드판촉, 홈쇼핑 등 각종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다가 2개월 만에 무역회사에 입사해 무역담당 대리로 일했다.

하지만 "목숨을 걸고 탈북했는데, 단순히 돈을 버는 것보다는 통일문제와 북한동포를 위해 이바지하는 것이 낫다"고 판단해 "북한의 실정을 알리고 싶다"는 생각으로 이북오도신문에 기자로 입사하였다고 한다. 이후 동아일보에 정식 공채 과정을 밟아 입사하게 된다. 동아일보 입사 후 북한은 물론이고 여러 국제 기사들을 쓰고 있다. 그 외에도 자유아시아방송[15]에서 매주 금요일마다 '주성하의 서울살이'라는 대북주간방송을 진행 중이다.

3. 블로그

언론인이라는 직함 이외에도 파워블로거로도 유명하다. '서울에서 쓰는 평양이야기 - 북한RT'라는 블로그를 운영 중이다. 영양가 있는 글들이 많기에 매월 100만 이상의 조회수를 찍을 정도로 거대한 블로그지만, 방문자들의 구성이 극좌~극우들의 놀이터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정상인의 정신을 피폐하게 한다... 웬만하면 주성하 기자 본인의 글만 잘 읽고 나머지 글이나 댓글들은 건너뛰는 것이 정신건강에 이롭다.

주성하 본인도 자신의 블로그들의 각종 악플러들에 시달리는 스트레스를 받았었다. 그리고 블로그 새단장 이후에는 방문자들의 스펙트럼이 극우, 친박-반문, 국까, 친일로 사상의 단일화가 좀 이루어진 편이다.

그의 블로그에 올라오는 그와 탈북자들의 수기들을 읽으면 북한사회에서 자행되는 인권 유린과 참혹한 실상들을 매우 생생하게 간접경험할 수 있다. 글의 문체가 북한에서 나고 자란 사람이 쓴 글이라고 보기 힘들 정도로 남한 표준어 구사를 잘 한다. 본인 말로는 성공적으로 적응하기는 했지만 2010년대까지만 해도 탈북자들 등과 이야기하다 보면 북쪽 말씨가 나온다고 하였다. 아주 드물게 말할 때 '들어 못 보다'라는 식의 함경도 사투리를 쓰는 경우가 있다. 평양에서도 오래 살았기에 북한 식당에서는 평양 말씨가 나온적이 있다고 한다. 또한 필력이 좋으며, 이야기도 기승전결이 있어서 재미있는 편이다.

천안함 사태 당시 인간어뢰 피격 가능성을 언급한 적이 있다. 하지만 일부(나는 꼼수다, 경향신문 등)가 이를 왜곡해 "주성하 기자가 천안함 침몰은 북한의 인간어뢰 공격'이라 주장했다." 라는 식으로 선동하는 바람에 이 문서에조차 잘못된 정보가 적혀 있었다. 북한이 실제로 운용하는 무기체계 중 하나였기에 그냥 가능성만 언급한 것이지, "북한이 천안함을 인간어뢰로 격침시켰다." 라는 주장을 한 적은 전혀 없다.

당시에는 비상식적인 무기라고 생각되어 말도 안 되는 궤변이라며 욕을 대차게 먹었으나 2021년 현재 인간어뢰는 국방부도 그 존재를 인정했으며출처 강릉 무장공비 침투사건 당시 생포된 이광수도 그 존재를 언급한 적이 있다. 그리고 2021년 12월 2일, 주성하 기자는 개인 유튜브 채널을 통해 인간어뢰부대의 정보를 공개했다. 공개한 정보에 따르면 동해에는 강원도 문천시에 위치한 64해상저격여단 소속 1개 대대, 서해에는 황해남도 과일군에 위치한 29해상저격여단 소속 1개 대대가 주둔하고 있음을 폭로했다.영상 링크 해상저격여단은 국군으로 따지면 해병대 같은 부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수 편향 논란이 일던 초창기 탈북민들과 달리 진영논리에 편향되지 않은 모습을 보인다. 여담 문단의 "얼룩개구리" 부분을 참조. 광우병 논란이나 천안함 음모론에 대한 강도높고 거침없는 비판으로 인해 NL 계열 인사들로부터 비난을 받고 있지만, 동시에 햇볕정책을 지지하는 인물이기 때문에 보수 성향의 사람들에게도 비난받고 있다. 그러면서도 이전 정권의 6.15 남북 공동 선언을 무의미하게 여기며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의 일방적인 대북지원은 과오가 있었다면서, "좀 더 합리적인 햇볕정책이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리고 간첩 5만 명설과[16] 북한군 위협론에 대해서도 지극히 회의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예를 들어 북한에 산업기반을 구축해서 일자리를 창출하고 실제 제품을 생산해서 수출하는 개성공단은 전폭적으로 지지하지만, 일방적으로 현금이 흘러들어가기만 하는 금강산 관광은 부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이런 견해의 연장선상에서 2016년 박근혜 정부개성공단 폐쇄 때도 "저간의 사정은 이해하지만, 북의 핵개발과는 무관한 실효성이 없는 조치"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햇볕정책에 대한 견해는 러시아 출신의 북한전문가 안드레이 란코프 국민대 교수하고도 유사하다. 란코프 교수도 김대중 정부/노무현 정부 시기의 햇볕정책에 대해서 "총론은 맞았지만, 각론에선 상당한 문제점이 있었다"고 평가한다.

유명 탈북자 출신 중 처음으로 민주화운동을 공개적으로 지지한 사람 중 하나였다. 탈북자 중 서민들은 그냥 주변에 따라 정치성향이 결정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주변에 보수가 많아서 처음에는 보수 탈북자가 많았다. 그래서 광주 사는 탈북자는 민주당을 주로 지지한다는 말도 있다. 그러다가 2010년대 초반부터 스스로 정치 성향을 결정하는 젊은 탈북자, 그 후 태영호의 공개적 민주화운동 지지로 이런 성향은 많이 줄었다.

주성하는 특히 5.18 민주화운동의 '북한군 개입설'에 대해 조목조목 반박하고 그런 주장을 쏟아내는 세력들에게 날카롭게 일침을 가하기도 했다. 또한 신은미에 대한 비난을 마녀사냥이라고 비판하거나, 통합진보당의 해산에 반대하는 장문의 글을 블로그에 연재해 # ## ### 정치평론가 박상병과 미디어오늘, 오마이뉴스 등의 언론으로부터 칭찬을 받기도 했다.

2017년 블로그 플랫폼인 저널로그의 서비스 축소가 이루어짐에 따라, 현재 쓰고 있는 블로그도 존속여부가 불투명해졌다. 그럼에도 남북통일되는 날까지 블로그를 옮겨서라도 논평을 쓸 것이라 한다. 다행히 2018년 2월부터 블로그를 재개장했으나 2019년 말부터 대부분의 활동을 유튜브 채널인 주성하TV로 옮겨가면서 완전히 방치 상태가 되었고 2020년 1월, 2019년 활동 결산을 올리면서 방기 선언을 했다.

4. 유튜브 방송

2019년 말, 유튜브에 주성하TV를 개설하여 방송 활동을 시작하였다. 주 2~3회 정도 북한 내부의 소식과 북한 관련 정세 분석, 그리고 한국 내 탈북자들의 생활 등에 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2022년 8월 이후 밀리터리 분야의 주제에 관심을 보였다. 코로나19 이전에는 북한 내부 소식도 많이 전했으나 북한 당국의 코로나19 구실의 대대적 단속으로 소식통이 많이 끊겼다고 한다. 댓글에는 상대적으로 반북이 많으나, 다른 북한 관련 유튜브와 다르게 감정적이지 않다고 선호하는 경우도 있다. 탈북자, 조선족[17]도 댓글을 다는 모습도 있고, 심지어 자신을 북한 사람이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주성하가 맞았다"고 댓글을 단 적도 있다. 탈북자를 초청하여 증언을 듣기도 한다. 정치 세력에 휩쓸린 주장이 아니라 소신대로 보도를 하기에 보수는 물론 민주당 성향의 시청자도 있다.
파일:주성하1.jpg파일:주성하22.jpg파일:주성하3.png

5. 논란 및 비판

5.1. 2018년 '봄이 온다' 공연 관련 논란

2018년 4월 6일 한국 가수들이 북한에서 진행한 '봄이 온다' 평양 공연에 대해 자신의 페이스북에 후기를 남겼는데 이 내용이 다소 논란이 되고 있다.#아카이브
좋은 소린 아래 썼으니 됐고, 아쉬운 것만 한번 정리해봤다.

‘썩어빠진 퇴폐 자본주의 문화’를 평양에 보여준 Red Velvet의 공연이 관심사였는데, 모두 무표정인 듯^^.
그래, 나도 실망이었다.
오히려 분위기 깬 듯. 객석에 남자는 50~60대가 가득 앉아있던데..
하긴 나도 20대에 중국에서 아이돌 그룹 공연 처음 봤을 때 “저건 뭐지?” 싶었다.
노래를 잘하는 것도 아니고, 동작 좀 맞춘다는 정도는 북한에 전혀 자랑거리 아니다.
북한은 무려 10만 명이 일사불란하게 율동 맞추는 나라다.
10만 명!! 10만 명!!! 헐~이게 무서운 거다.
고작 넷이 저 정도 산만한 율동으론 명함도 갖다 대지 못한다.^^
어느 포인트에서 감동하란 말인가.ㅜㅜ

윤도현은 왜 노래 선곡 저걸 했지?
‘너를 보내고’로 북한 국민 가수 반열에 오른 밴드인데...
‘나비’를 불렀던데, 이왕 나비 부를거면 ‘불나비’ 이거 부르면 딱인데... 다시 북한 국민 노래 만들 수 있을 것 같은 예감인데..

최진희 나오니 모두 반갑다는 표정이다.
북한에서 ‘사랑의 미로’ 모르는 사람 없을 것이다.
오리지널이 나오니 황홀하단 표정..
그런데 ‘뒤늦은 후회’는 역시 장덕의 애절한 버전이 최고다.

강산에는 북에 갈 때 함경도 사투리 탈북자들에게 배우고 갔어야...
그건 경상도 사투리지, 함경도 사투리 아입니다~.
내가 좋아하는 이선희, 역시 시원하게 멋졌다.

조용필의 노래 그 겨울의 찻집은 북한 요청에 따른 것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번에 이설주가 조용필을 좋아했다니, 이설주 요청곡 아닐까 싶은데..
근데 김정은의 요청곡 뒤늦은 후회는 ‘외롭다..슬프다’...이런 가사 이어지고, 김정은인지 이설주인진 모르겠지만, 이것 역시 요청곡이 눈물이 난다. 뭐 이런 노래다.
정은이 관심 가졌다는 가수도 애절한 백지영.
정은이, 설주 너흰 맨날 마주 앉아 눈물만 짜니?

그리고 유일한 북한 노래 ‘푸른 버드나무’를 왜 하필 서현에게 부르라고 한건지.
저건 북한 최고 가수의 노래다.
장담컨대 북한 여자 절반이 서현이보다 저 노래 더 잘 부른다. ㅜㅜ
그리고 그 객석에 앉아있는 미모의 여자들 다 북한 최정예 가수들이여...
자기를 가수라고 소개했음 어느 정도 퍼포먼스는 나와야지, 가창력이 안습.
내가 불러도 서현이보다 나을 듯~.

끝으로,
먼저 북한 노래 몇 개로 관객 분위기 풀어주고 몰입하게 하고, 그담에 한국 노래 부르게 했더라면 훨씬 반응이 좋았을 건데, 뻣뻣한 얼굴들을 향해 생소한 한국노래 연속 따따따~퍼부으니 오랫동안 무표정 이어진다.
총괄자라는 탁현민 행정관의 기획력, 상상력의 한계.

-더 나은 발전을 위하여!! 관평 끝-

기사로 이 소식을 접한 사람들의 반응은 대체적으로 북한 부심 부릴 거면 평양으로 돌아가세요. 각 가수들에 대한 비판 때문에 (특히 Red Velvet서현) 팬덤이 분노하고 있는 것은 덤. 사실 이는 북한 가수들이 호소력있는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는 장면이 많이 나오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일이긴 하다. 북한의 가수들이 체제 찬양과 김씨 일가에 대한 충성을 주제로 한 노래들을 많이 부르기 때문이고 이는 곧 북한 주민들의 충성심을 고양하는 차원에서도 중요한 일이라 호소력이 짙은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기 때문. 그런 까닭에 북한의 이런 가수들을 보고 자라왔던 주성하에게 남한의 걸그룹이 부르게 한 것은 조금 어이 없는 일일 수도 있을 것이다.

한편 이 발언은 "결국 주성하 본인이 여전히 예술은 체제 선전을 위한 것이다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어서 나온 발언이 아니냐"는 의견이 있다. 북한에서는 사실이다. 북한의 모든 예술은 오로지 조선로동당김씨 일가에 대한 충성, 그리고 체제사상 유지를 위한 인민들에 대한 세뇌의 차원에서 이뤄지기 때문이다. 당장 비체제 선전으로 유명한 곡이라고야 '반갑습니다'와 '휘파람' 외에는 남한에 알려진 노래도 별로 없고, 북한의 선전물에서 등장하는 매스게임이나 웅장한 공연 상당수를 보더라도 김씨 일가의 만수무강, 그리고 당과 체제의 영원한 존속이 주를 이룬다.

그래서 한국 가수들이 아름다운 미녀 가수들이나 가창력, 퍼포먼스 같은 것들을 '총집결해서' 북한 인민들에게 '자본주의 맛을 보여주었어야' 하는 공연이었어야 하는데, 공연을 총괄한 탁현민 행정관은 거기에 못미쳤고 결국 '기획력과 상상력의 한계'를 가진 사람이라고 비판한 것 아니냐는 의견이다. 이런 관점에서 ''예술의 목적은 선동이 아니고, 각자 다른 예술성을 지닌 가수들(그것도 한국 탑티어들)이 왜 체제선전이라는 목적을 위해 자신의 역량을 펼쳐야 하는가? 자신의 예술 세계가 있고 자신의 노래를 가진 가수들이 왜 북한 관객들을 위해 북한 노래를 선곡해야 한다는 말인가?" 라는게 비판자들의 의견이다.

반면 주성하의 이 글이 지적하는 것은 단순하게 "이번 남쪽 가수들의 공연이 북쪽 관객들의 입장에선 별 감흥이 없을 수 있다는 것을 지적한거뿐"이라는 의견도 있다. 남쪽에서도 공연을 기획할때는 항상 주관객층을 염두에 두고 프로그램을 짜는데, 이번 공연은 준비기간이 짦아서 그런건지 그런 부분이 부족했다는 지적이라는 것이다.

5.2. '꼬북이' 비판글 논란

이른바 '꼬북이'('꼬우면 북한으로 넘어가라 이기야'[18]라는 조롱성 표현)이란 표현을 풍자하는 겸 분석한 글을 올린 적이 있다. 원문 링크 다만 이 글은 '헬조선'으로 표현하는 청년세대의 한국 사회의 현실 비판을 오히려 '꼬북이'로 치부하는 것으로 오해할 여지가 있었다. 이런 비판이 나오자 주성하도 이를 수용하고 '그런 오해를 받을 여지가 큰 글이었음을 인정한다'라고 사과하였다.

5.3. 북한군 과대평가

그의 글들을 보다보면 북한군은 과대평가하는 논조의 글이 자주보인다. 예를 들어 북한 정권 붕괴 시나리오에서# "북한이 붕괴되면 수백만 명의 난민이 중국으로 넘어갈 수 있다. 이들은 세계에서 전투력이 가장 강한 난민일 가능성이 높다. 남성은 10년 동안, 여성의 절반도 6년 이상 군사 훈련을 받았기 때문이다." 라는 주장을 하였는데 현재 북한군의 열악한 실상을 보면 과연 북한 난민들이 강한 난민일지 의심스럽다.

6. 여담

7. 저서



[1] 한자 표기는 저서 《평양 자본주의 백과전서》의 일본판 《平壌資本主義百科全書 -周成賀記者が伝える本当の北朝鮮の話》를 참조.[2] 탈북 당시 20대였음을 밝혔으며, 2023년 5월 13일 유튜브 라이브에서 1975년생임을 스스로 밝혔다.[3] 국제관계안보학 전공[4] 본인의 유튜브 자기소개 등 이력에는 '제1회'라고 적혀 있으나, 제20회이다. 삼성언론재단 홈페이지에서 명단과 일자를 찾을 수 있다. #[5] 동아일보 이메일. 그러나 북한 동포가 연락할 때는 다른 수단을 쓸 것을 권유하고 있다.[6] 해외 북한 동포를 위한 연락망. 서울에서 쓰는 평양이야기 블로그에서 연락방법을 찾을 수 있다.[기준] 2024년 3월 31일[8] 외국인을 대상으로한 영어 채널. 현재는 업로드 중단[9] 북한 콘텐츠 아카이브[운영중단] 2020년 이후로 유튜브로 플랫폼이 옮겨지면서 운영 중단[11] 매주 금요일 송출되는 대북 라디오 방송[12] 前 동포사랑[13] 교수들도 신기해서 계속 물어봤을 정도였다고 한다.[14] 한국 국적을 주는 대가로 탈북자들을 중국에서 재교육시켜서 북한으로 보내 공작을 수행하려는 목적으로 안기부가 만든 조직이라고 한다.[15] 미국 국영 라디오 방송국인데, 미국과 사이가 좋지 않은 아시아 나라들을 대상으로 해당 나라의 언어로 방송하는 방송국이다. 이 방송국의 한국어 방송은 당연히 대북방송이다. 자체적인 북한 내부 소식통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한국의 언론에서 전하는 북한 내부 소식의 상당수는 이 방송국의 보도가 출처이다.[16] 일단 황장엽은 간첩이 5만 명있다고 주장한 적이 없다. 즉 한국 언론의 전형적인 오보.[17] 한어 병음으로 자신의 이름을 표기하는 한국어를 쓰는 네티즌이나, 탈북민을 잘 대해주는 양심 있는 조선족을 언급하는 부분에 환호하는 네티즌이 있다.[18] 어원은 노무현 전(前) 대통령의 민주평통 연설에서 따온 조롱성 표현인 이기야를 붙인 것이지만, 고인 드립, 특히 일베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매우 나쁘다보니 '이'를 '이민 가라', 아니면 '이거야'라고 순화하여 표현하고 있다.[19] 2012년 10월 9일 리모델링이 완료되었다.[20] 참고로 북한은 일반인의 인터넷 사용 자체를 금지하는 나라다.[21] 북한에서는 탈북자를 '인간쓰레기'라고 부른다.[22] 1979년에 삼촌 프란시스코 마시아스 응게마를 축출하고 처형한 후 2023년 현재까지도 집권하고 있으며, 무자비한 정적 탄압과 사치, 특히 산유국인 적도 기니를 1인당 GDP만 중진국 수준인 최빈국으로 만들 정도의 부정부패로 악명이 높은 인물이다. 얼마나 악명이 높은지 무려 21세기에 이디 아민마냥 식인설까지 돌 정도라고 하면 말 다한 셈. 물론 주성하는 그런 응게마에 대해 '천륜까지 버린 독재자'라고 혹독하게 비판했다. 참고로 마시아스 응게마는 김일성과 친하게 지내 축출 직전에 자식 3명을 북한에 보냈으며, 이들 중 막내딸 모니카(Monica, 1972~)는 만경대혁명학원에서 교육을 받은 후 해외를 전전하다가 2007년대한민국에 이주하고는 2013년에 '나는 평양의 모니카입니다'라는 회고록을 출판하여 국내에서 상당히 인지도를 쌓았다.[23] 2012년 12월 24일에 김정일의 군 최고사령관 추대 21주년을 기념하여 만든 상이다. 참고로 응게마 외에 국제김정일상을 수여받은 사람은 "조국통일과 국제정의를 위한 조선인민의 투쟁을 전폭적으로 지지하면서 수십년간 주체사상을 연구보급하는데 힘써왔다."는 이유로 2017년 2월 15일에 제2회 수상자로 선정된 오가미 겐이치 주체사상국제 연구소 사무총장밖에 없다.[24] 대략적으로 '김정은이 3살 때에 총을 쏘고 운전을 했다'는 등의 황당한 내용들로 가득 찼기에 남한은 물론이고 북한에서도 욕을 먹었다.[25] 자신도 이런 전근대적인 계급을 가르는 것은 싫어하지만, 김일성이 권력 기반을 강화하기 위해 자신보다도 못 배우며 천대받는 사람들에게 갖은 특혜를 베풀며 충성하게 하면서, 자질이 떨어지는 사람들을 출세시킨 역사를 두고 하는 말이다. 최현을 비롯한 북한군 최고 지휘관 대다수가 문맹이었으며 6.25전쟁 당시는 서울이 점령당했을 때 문맹이 재판관을 할 정도였다. #[26] 4.19 혁명, 부마민주항쟁(정확히는 간접적으로 끌어냈다), 6월 항쟁, 박근혜 탄핵 집회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