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ype 49 49식 기관단총 | |
종류 | 기관단총 |
급탄 | 71발 드럼 탄창 35발 바나나 탄창 |
탄약 | 7.62×25mm 토카레프 |
원산지 | [[북한| ]][[틀:국기| ]][[틀:국기| ]] |
작동방식 | 블로우백 오픈 볼트 |
개발사 | 전천 2.8 기계공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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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북한이 개발한 최초로 개발해 배치한 북한의 국산 기관단총이다.2. 설명
1947~49년동안 소련이 북한에 준 PPSh-41 기관단총을 소련 정부로부터 라이센스 허가권을 받고 1949년 자강도 전천의 65호 총기공장에서 49식 기관단총(Type 49)이라는 이름으로 면허생산했다. 처음 라이센스로 제작해보는 총기였기 때문에, 품질은 조악했다는 설이 있다.[1][2] 이후 소련군이 2차대전 시기 양산했던 무기들을 공산권 국가들에게 공여하는 과정에서 북한군에게도 PPSh-41가 넘어왔다. 49식 기관단총은 1949년부터 1955년까지 생산했다. 49식 기관단총 제식채택 이전 김일성이 시험사격을 하는 사진. 탄창 모양새가 독일이 쓰던 9mm PPSh와 동일한데, 이 때 시절 북한은 소련에게서 원조받은 소수의 MP40을 갖고 있었기에 참고한것으로 보이지만 북한이 자체 제작한 실험용 탄창이거나 생산할 때 북한의 기술력이 낮아서 저렇게 만든 것일 수도 있다. |
김일성이 북한군 인사들에게 49식 기관단총을 하사하며 찍은 사진.[3][4] 49식 기관단총 생산을 기념하여 김일성이 각료, 군지휘관들과 찍었다. 왼쪽부터 최용건 민족보위상, 김책 부수상, 김일 문화부상, 김일성, 박일우 내무상, 강건 총참모장, 무정 포병부상. | 사진 맨 왼 쪽과 맨 오른쪽 인물이 들고 있는 총이 바로 따발총 PPSh-41이다. 오른쪽의 인물은 북한군에서 많이 사용한 드럼탄창이 아니고 바나나식 탄창을 꽂고 있다.[5] 가운데 여성으로 보이는 인물이 들고 있는 총은 PPSh-41이 아니고, PPS-43이다. |
북한은 PPSh-41을 소련군에서 원조받았을 뿐만 아니라, 자체적으로도 생산하기 시작했다. 49식 기관단총은 한반도에서 처음으로 자체 제작된 연발총기였다.
Forgotten Weapons의 49식 리뷰 영상 |
3. 48식 기관단총
위의 박스 탄창을 쓰고 있는 49식 기관단총의 프로토타입이다.4. 실전
한국전쟁 초기 자동화기가 거의 없었던 한국군 입장에서는 '인민군의 따발총'은 매우 무서운 무기였다. 이후 모신나강과 함께 6.25 남침의 상징이 되었다.5. 현황
김일성이 시범해본 시제탄창이 장착된 48식은 따로 전시되어있다.전투용으론 대부분 퇴역해서 시골 같은 곳의 2단급 부대들이나 6.25 재현부대들에게 사용되고 있다.
6. 기타
북한군은 드럼 탄창보다는 바나나 탄창을 더 애용 했다고 한다.[7]당시 한국은 러시아어는 물론이고 영어도 거의 교육되지 않던 시대여서, 대부분의 군용 장비들을 일본식 영어발음을 섞어 한국말로 적당히 불러댔다. PPSh-41은 따발총, 모신나강은 따꿍총(총성이 '따꿍'거린다고 남북이 공히 부른 속칭. 북한군에서 부른 정식 명칭은 '아라사(러시아의 한자발음)식 보병총'을 뜻하는 아식 보총이다), M1 개런드는 애무왕, M1 카빈은 칼빈, 혹은 씨-에이아르(M1 Carbine)이라고 불렀다. 적성장비들은 대충 소리나 생김새로 부르지만, 아군 측 장비들은 그래도 이름을 대충 들리는 대로 편하게 부른 것을 보면, 적성장비에 대한 정보나 교육이 거의 없었던 듯.
7. 매체
당시 사람들의 북한군에 대한 인식은 그 따발총 자체 였어서 북한군이 나올 법 한 매체에는 거의 다 나온다고 보면 된다.8. 둘러보기
보병장비 둘러보기 | |||
근대 (~1914) | 대전기 (1914~1945) | 냉전기 (1945~1991) | 현대전 (199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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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다만 북한은 당시 일본이 중공업 지대를 건설해 놓아서 그나마 조악한 품질이라도 이런 총기를 제작할 수 있었지만 남한은 아예 중공업 기반이 없었기 때문에 총기 제작은 일부 미군무기부속을 생산하고 말았으며 1960년대까지 가야 가능해졌다.[2] 49식을 노획해서 사용한 한국군들의 증언에 의하면 드럼 탄창 1개를 연발로 쉬지않고 사격할 시, 마지막 몇 발은 코 앞에 떨어질 정도의 퀄리티였다고 한다. 소설 남부군에서는 한국 전투경찰에게서 노획한 99식 소총과 함께 조악하기 이를 데 없는 총기로 묘사된다.[3] 이 사진은 북한 내에서 선전화로도 그려졌다.[4] 이 사진은 한동안 아래와 같은 사진처럼 박일우, 무정 등 일부 인물들이 삭제된 상태로 알려졌으나, 최근 재공개된 사진은 위의 사진처럼 삭제된 인물들이 다시 나타났다. [5] 북한에서는 드럼탄창만 생산하고, 바나나식 탄창은 생산하지 않았다. 북한에서 생산된 물량을 대부분 소진하자, 이후에 소련으로부터 추가로 지원받은 물건인 듯하다.[6] 1991년 NHK에서 제작한 '다큐먼트 태평양전쟁' 시리즈에서 과달카날의 반자이돌격 생존자가 미군의 기관총 사격을 "따바따바따바"라고 말하는 것을 볼 수 있다.[7] 소련군도 드럼 탄창의 스프링 불량등의 이유로 탄을 65발미만으로 채운 채 사용하기도 했었던 것으로 보아 급탄 문제가 제법 있었거나 북한에서도 생산해서 신뢰성이 들쭉날쭉한 드럼보다는 전량 소련에서 받아온 바나나 탄창을 더 좋게 본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