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九四式山砲 (きゅうよんしきさんぽう)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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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일본 육군이 운용한 산포. 정식 명칭은 94식 산포(九四式山砲)다.2. 제원
3. 개발
원래 일본군에는 41식 산포라는 이름의 75mm급 산포가 있었다. 해당 산포는 그럭저럭 쓸만하다고 평가되었으나, 다른 야포에 비해 위력이 약간 열세였고 사격시 안정도가 양호하지 못하다는 결점이 수차 지적되었다. 이런 문제는 41식 산포를 개량하는 것 정도로는 해결이 불가능했기 때문에 때문에, 1920년에 제정된 방침인 "41식 산포에 비해 위력을 한층 강화하고 안정이 양호한 형식을 연구하라"에 따라 새로운 산포의 개발이 시작된 것이다.이로 인해 1931년에 개발을 시작하여 1932년에는 프로토타입인 시제 산포가 완성되었는데 1934년에는 시제품 4문을 생산한 후 몇번의 개량과 실험을 거쳐서 1935년에 정식으로 채택되었다. 94식이란 이름이 붙은 경위가 특이한데, 이는 1934년(황기 2594년)에 만든 최종 개량판의 형식을 딴 것이다.
기본적인 작동원리는 독일 국방군의 산악포와 프랑스군의 M1897 75mm 야포를 혼합해놓은 형태이며, 다만 산악지역에서의 사용을 위해 상하각도와 좌우각도를 최대한 크게 만들어놓은 것이 개량점이다.
4. 특징
일단 개량형이므로 아래와 같은 특징을 가진다.- 41식 산포보다도 야전에서 운반시 작은 크기로 분해가 가능하다. 좀 더 상세하게 설명하자면 운반시 6개로 분리해서 말로 운반이 가능하다. (포신, 포다리, 주퇴기, 폐쇄기, 차축과 바퀴, 포방패) 그리고 포탄도 5발씩 묶어서 말로 운반하거나 인력으로 1-2발씩 운반이 가능하다. 이는 험악한 산골짜기에서 편리한 이동과 분해결합이 가능하게 하는 요인이 되었다.
- 기존의 일본군 화포보다 근대적인 개각식 포가[1]를 채용하였으므로 발사시 운용요원들이 좀 더 빠르고 편하게 대포를 조작할 수 있다. 보통 13명을 한 개 산포에 할당된 구성으로 편제했지만 실전에서 더 적은 인원수로 조작할 수도 있었다.
- 41식 산포에 비해 최대사정거리에서의 사격안정성을 높이고 정밀도를 향상시켰다. 즉 원거리에서도 제대로 조준만 하면 정확하게 맞는다는 이야기다.
- 연사력이 괜찮고 방렬과 포격 후 회피를 위한 이동시간이 짧은 편이다. 일본인의 체형에 맞춰 크기도 작고, 전체 무게가 약 544kg 가량인지라, 매복해서 신속하게 포격하고 도주하는 히트 앤 런이 쉬워 생존성이 매우 뛰어났다. 순간적인 연사력만은 동시대 기준으로 나쁘지 않은 편이라 일단 쏘고 도망쳐서 다른 자리에서 또 쏘는 식으로 운용해 미군의 신경을 긁어놓은 적이 많았던 병기였다.
- 전형적인 일본 제국 육군 답지 않게 산포는 그 장점을 최대한 살려 최전선에서 잘 운용해 피해를 많이 입힌 병기였고, 연합군측 다수의 기록에서도 일본 육군의 산포에 대해 위협적이라 평가하고 있다. 정면 대결만 놓고 본다면 산포 자체의 화력은 연합군 장비에 비해 떨어지지만, 일본 육군이 매복과 지형을 이용해 그 특징을 굉장히 잘 활용한다고 평가하고 있다. 요약하자면 가성비가 굉장히 높은 병기를 상황에 맞춰 잘 운용했다고 생각하면 된다.
5. 한계점
당시의 일본 제국에서도 94식 산포의 성능 자체는 제2차 세계 대전에서 서유럽 방면에서 사용하는 열강들의 산포보다 떨어진다고 인정을 하고 있던 상황이었고 후계자로 105mm 구경을 가지는 99식 10cm 산포를 개발완료해서 양산까지 진행하였으나 태평양 전쟁이 터지면서 104문 정도로 생산을 중단한 사례가 존재한다.- 75mm 라는 상대적으로 작은 구경을 94식 산포가 유지함에 따라서 포탄들의 물리적 크기 증대가 어려워서 위력 강화에 한계가 발생했다. 이미 다른 열강들은 산포에도 105mm 이상의 구경을 도입하기 시작했고 미국은 M3 105mm 경곡사포를 공수부대용 야포를 겸해서 개발 및 양산을 완료했고 나치 독일도 15 cm sIG 33이라는 중(重)보병포를 개발해서 대량양산했고 산포로도 사용했다.
일본도 이걸 알고 있었기에 앞서 언급했듯이 99식 10cm 산포를 개발 및 양산까지 했다가 외부요인으로 인해 생산을 중단한 것이다.
- 75mm 구경을 가지는 동급 화포에 비해서도 94식 산포가 모자란 점이 있다. 독일의 7,5cm le.IG 18 다용도 보병포 겸 산포는 -10°에서 +75°라는 더 넓고 고각포격이 가능한 포신상하각도 조정이 가능했다. #1 미국의 M116 75mm 경야포는 공수부대용 야포 겸 산포였는데 공압식 고무타이어가 장착되어 이동이 쉬우며 쿡 오프 현상에 강하므로 지속적인 연사속도가 분당 6발이었다. 둘 다 94식 산포에 비해서 신뢰성도 높은 편이었다.
- 94식 산포의 탄약은 본질적으로는 75mm 구경의 38식 야포(三八式野砲)를 기반으로 한 것으로 장약을 38식 야포보다는 약하고 41식 산포보다는 강하게 해서 만든 것이다.
문제는 38식 야포는 1905년에 개발이 왼료된 구식 화포이므로 포탄의 탄도를 고각도로 조정하는 등의 다양한 탄종과 장약의 종류가 부족했기 때문에 94식 산포가 산악지대에서 사용될 때는 포탄의 탄도를 제대로 조정하지 못함에 따라서 사각(死角)이 늘어나는 부작용이 터지게 된다.
- 94식 산포의 주퇴복좌기는 포신을 +30°이상으로 올릴 경우에는 충격을 흡수하고 포미를 후퇴시키는 속도가 너무 느려져서 연사속도에 지장이 많이 오는 단점이 있다.그래서 연사속도의 급하락을 감수하고 유효사정거리를 유지하거나 연사속도를 정상화하기 위해 원래 스펙에 비해서 유효사정거리가 짧아지는 것을 선택하는 답없는 사태가 일어나게 된다.
그래서 실제 운용시에는 94식 산포를 목표에 좀 더 근접하도록 이동해서 저각으로 포격함으로서 연사속도의 하락을 막았으나 반대급부로 대포병 사격이나 적 보병의 습격을 당하기 딱 좋은 환경을 만들어냈다.#2
- 중량이 적고 덩치도 작은 편인데다가 포신도 얇고 가벼운 편이라 과열에 매우 취약했다. 스펙상으로는 분당 15발 연사가 가능했지만 이건 단 2분만 가능했고 그 후에는 분당 4발로 연사속도가 크게 하락하였으며 이것도 15분 정도만 유지 가능했다. 그 이후의 지속적인 연사속도는 고작 분당 2발이었다.
6. 탄종
주요한 탄종은 아래와 같다.탄종 | 명칭 | 중량 | 신관 | 내부작약 | 비고 |
고폭탄 | 94식 | 6kg | 88식 충격 및 지연신관 | TNT 0.6kg | |
고폭탄 | 갑(甲) | 6.46kg | 3년식 조합신관 | 피크르산과 DNT 혼합물 | 내부작약중량 불명 |
고폭탄 | 을(乙) | 6.6kg | 88식 충격 및 지연신관 | 피크르산과 DNT 혼합물 0.66kg | |
고폭탄 | 90식/97식 | 6.18kg | 88식 충격 및 지연신관 | TNT 0.42kg | |
고폭탄 | 90식 첨예탄(尖鋭弾) | 6.35kg | 88식 충격 및 지연신관 | TNT | 내부작약중량 불명 |
철갑유탄 | 95식 | 6.2kg | 95식 소형철갑탄용 탄저신관 | 피크르산과 DNT 혼합물 0.045kg | |
유산탄 | 90식 | 7kg | 5년식 조합신관 | 흑색화약 0.1kg | |
유산탄 | 38식 | 6.83kg | 3년식 조합신관 | 흑색화약 0.1kg | 38식 야포용 포탄 개조 |
조명탄 | 90식 | 5.65kg | 5년식 조합신관 | ||
소이탄 | 90식 | 6.93kg | 5년식 조합신관 | 발화용 흑색화약 포함 | |
연막탄 | 90식 | 5.73kg | 88식 충격 및 지연신관 | 피크르산과 DNT 혼합물 0.1kg |
임시적으로 대전차포로 사용할 경우에는 95식 철갑유탄을 사격할 때 +90°각도로 수직으로 세워진 균질압연장갑을 기준으로 할 때 274m의 거리에서 71mm를 관통하고 914m의 거리에서는 58mm를 관통하여 구경에 비해서는 상당히 관통력이 약했다. 철갑탄이 가장 관통력을 많이 발휘하는 수직장갑에 정타로 명중했을 때도 저렇게 위력이 낮으니 당시의 대부분의 전차들이 경사장갑을 기본으로 채용했다는 것을 생각한다면 전쟁 극초반의 37mm 구경의 전차포를 장착한 경전차급 전차가 아니면 94식 산포로는 상대하기가 힘들어진다.
2식 철갑유탄이라고 불리며 보통 타탄(タ弾)이라고 별칭이 붙여진 성형작약탄을 사용하면 +90°각도로 수직으로 세워진 균질압연장갑을 기준으로 89mm의 관통성능을 보이지만 88mm라는 더 큰 구경을 가지는 나치 독일의 8,8cm FlaK의 대전차고폭탄인 Gr. 39가 고작 90mm의 관통력을 보이며 그 사유가 강선으로 발생하는 포탄의 회전 때문에 메탈제트가 흩어지는 것이라고 밝혀진지 오래이므로 75mm라는 소구경을 가진데다가 그 당시 나치 독일에 비해서 대전차고폭탄 기술이 부족했던 일본 제국이라는 제반 사항을 생각한다면 신빙성이 상당히 떨어진다. 그리고 94식 산포용 대전차고폭탄은 일본 제국 패전 직전인 1945년에 들어와서야 고작 44,000발이라는 극소량만 생산되었으므로 대부분은 일본 본토의 탄약고에 쌓여있는채로 남았고 일선에 배치된 수량은 극히 적어서 의미가 없다.
7. 배치
94식 산포는 채용된 이후 육군의 1개 보병연대에 4문씩 배치하는 것을 목표로 했으며, 동시에 산포가 편성되는 사단의 포병연대가 보유하는 주화기로 사용함과 동시에 기존에 배치된 41식 산포를 대체할 병기로 보급되었으나 생산량 부족으로 혼용되어 사용됐다.여기에 더해서 태평양 전쟁때는 작전지역의 지형과 도로상황 등을 따져서 일반 야포가 편성되는 사단의 연대에도 배치된 사례가 많았다. 한마디로 말해서 꼭 산악전에서만 사용했다는 것이 아니며, 여러 전선에서 널리 사용된 화포라는 이야기다.
8. 실전
8.1. 일본군
1943년의 영국 육군의 노획 후 조사에 의하면 94식 산포는 41식 산포에 비해 분해가 손쉽게 이루어지며, 크게 잡아서 11개의 부품으로 대포의 기본 기능을 살리면서 정밀하고 위력있는 무기라 평가하고 있다.- 간단한 구조로 분해가 쉬워 운반이 용이하며 명중률도 정밀하였다. 미합중국 육군의 실험 기록에 따르면 3,200야드(약 2.9km) 거리에서 75%의 정확도로 한 변의 길이 20~30야드(18.2m~27.4m) 크기 사각형 형태의 오차로 포탄이 박혔다고 한다. 최대 사정거리인 7,800야드(약 7.1km)에서도 75% 정확도로 최대 200야드(180m) 이내 오차로 떨어질 정도였다. 요약하면 숙련된 포병의 공격은 4발 중 3발이 유효거리 내에 거의 오차없이 명중하며, 7km 정도 떨어진 곳도 어느 정도 위협적인 공격을 가할 수 있었다는 것.
- 크기가 작고, 이동이 간편하다. 이런 점이 위에 언급한 몇 발 쏘고 튀기와 결합하면 당하는 쪽 입장에서는 매우 피곤한 상황이 닥친다. 일단 이 녀석도 대포며, 75mm란 화력을 절대로 무시할 수 없는데다가, 잡으려고 하면 이미 도망친 상태니 작정하고 대량의 대포를 총동원해서 근처를 쑥밭으로 만들지 않으면 계속 당하기만 하는 사태가 일어난다. 특히 산악이나 정글 등 은엄폐가 쉽고 관측이 힘든 지형일수록 미 육군과 해병대가 산포에 골탕을 먹었다. 평지라도 대피호 형식으로 땅굴을 파거나 단단한 벙커 등을 지어놓고 나와서 몇 번 쏜 후 들어가 다시 숨는 것을 반복하는 경우엔 공략이 쉽지 않았다. 심지어 태평양 전쟁사를 보면 산악지역의 동굴들에 철문을 달아놓고 거기서 쏘고 들어가 철문을 닫고 숨는 형태를 반복하는 통에 애를 먹었다는 기록까지 있다.
8.2. 중국군
중국에서는 전작인 41식 산포와 함께 국민혁명군과 인민해방군에서 널리 사용되었다.그리고 일본이 패망한 후에 중국에 남겨진 94식 산포는 모두 중국측에 압수되었으며, 약 230문 정도 되었다고 한다. 국공내전 당시에도 공산당과 국민당 모두 이 산포를 애용했다. 당시 중국은 도로 및 차량 사정이 좋지 못하여 중포는 쓰기 힘들었지만, 이런 산포는 말 몇필이 간단히 끌고 다닐 수 있었기 때문에 널리 애용했다. 중일전쟁 종전 직후부터 산서 군벌 옌시산 휘하의 타이위안 병공창 주도로 복제 생산이 시작되었다. 이렇게 생산된 94식 산포들은 민국 36년식 산포라는 명칭을 부여받으며 국민정부군의 사실상의 제식 화포로 자리매김한다.
국부천대 이후 대륙에 남은 94식과 41식 산포들은 전부 중국 인민해방군에 노획되어 공산군의 주력 화포가 된다. 중공은 아직 기술이 없어서 중포를 만들지 못했기 때문에 부족한 화력을 보충하기 위해 94식 산포를 대거 카피생산했다. 그리고 중공군이 이 산포들을 6.25 전쟁에 투입하는 바람에 UN군은 매우 피곤한 상황을 겪었다. 물론 전체적인 화력이야 당연히 사단 포병들마저도 105mm, 155mm 화포로 무장한 유엔군이 압도적인 우세에 있었다. 하지만 중공군은 94식의 높은 운용탄력성을 살려 곳곳에서 포격을 가하고 빠지는 식으로 유엔군을 괴롭혔다.
당장 장진호 전투당시 하갈우리 진지를 밤마다 정확하게 사격하는 통에 골치덩어리가 된 75mm 포가 바로 94식 산포였다. 이 녀석을 잡기 위해 일부러 야포 중 1문을 150m 이상 떨어진 다른 곳으로 이동한 후에, 이동한 화포가 혼자서 먼저 발포하면 이걸 잡으려고 94식 산포가 발포하는 것을 노려서 다른 야포들이 일제히 대포병사격을 하는 낚시까지 쓴 끝에 간신히 2문을 파괴했을 정도니 파괴의 난이도가 상당히 높음을 알 수 있다. 산악 지형에서의 운용에 적합한 산포가 산악전에 쓰였으니, 그야말로 고기가 물을 만난 격이었다.
전쟁기념관 야외전시장에 건물 정면 쪽으로 1문이 전시되어 있었는데 담장 철거 및 이에 따른 리뉴얼이 이루어지면서 위치가 옮겨졌다. 6.25 전쟁 때 노획한 물건이라서 그런지, T-34 같은 다른 노획장비와 똑같이 시퍼런 녹색 페인트로 떡칠을 해놓았다.
중화인민공화국에서는 94식 산포를 현역에서 은퇴한 다음에도 한동안 예포로 활용하였다.
9. 미디어
9.1.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의 94식 산포 |
일본 육군 관동군 보병들이 중국 마적들을 향해 발포하는 장면으로만 나온다.
9.2. 집결호
처음에는 국민당군이 사용하여 주인공 구지디의 부대를 맹폭해서 정치장교를 폭사시킨다. 이에 빡친 구지디는 포로는 필요없다는 명령을 내려서 이후 포로사살 혐의로 영창에 간다. 이후 진지를 사수하라는 명령을 받은 구지디는 이 산포를 이용해 한방에 중국국민당 육군의 스튜어트 전차를 관광보내는 위엄을 보여주고 퇴장한다.9.3. 봉오동 전투
월강 추격대가 94식 산포를 동원하여 독립군을 토벌한다. 물론 봉오동 전투 당시 일본군 편제에는 포병이 없었기 때문에 고증오류이다.[1] 開脚式砲架. 오늘날 대부분의 야포 포대가 사용중인 방식으로, 이동 중에는 접고 방렬시 V자 모양으로 전개할 수 있는 포가를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