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Ordnance QF 13-pounder (출처: 위키백과) | 3식 중전차 치누 (출처: 위키백과) |
아래부분이 포신, 윗부분이 주퇴복좌기. | 윗부분이 포신, 아래부분이 주퇴복좌기. |
영국 영어: Recuperator
미국 영어: Run-out cylinder
화포의 부속장치로, 화포가 탄을 쏠 때 포의 일부분만 뒤로 후퇴시켜 충격을 흡수한 후, 원래대로 되돌리는 장치. 단어의 뜻을 풀어보자면, 주퇴(駐退)란 대포의 반동을 의미하는 것으로 영어로는 대포의 주퇴나 총기의 반동이나 똑같이 'recoil'이라고 한다. 복좌란 말그대로 원래 위치(座)를 복구(復)시켜준다는 뜻으로 쉽게 말하자면 '주퇴에 의한 대포의 위치 변화를 되돌려주는 장치'란 뜻이다. 즉, 대포판 반동제어장치.
전장식에서 후미장전식으로 포탄의 장전방식의 변화와 함께, 대포의 연사속도를 극적으로 늘린 기구이기도 하다.
2. 특징
기본적으로 총포를 발사할 때는 약실 내에서 화약/장약이 연소되면서 뿜어지는 고압 가스의 반작용으로 반동이 생기기 마련이다. 소구경의 보병용 소총 같은 경우는 격발 시의 반동을 견착하는 것으로 커버가 가능한 수준이었고 반동으로 조준이 엇나가더라도 재빨리 다시 조준할 수 있었지만, 소총보다 구경이 훨씬 큰 대포는 그렇지 않았다. 보통 구경이 클수록 탄환을 날리는 데 필요한 장약도 많아져서 반동이 기하급수적으로 커지고, 대포 자체가 무겁기 때문에 엇나간 조준을 다시 맞추는 데 필요한 노력도 커지기 때문이었다.포탄을 발사할 때 대포를 제대로 고정하지 않았을 경우 심하면 반동으로 포 자체가 뒤집어질 수도 있었으며, 대포를 잘 고정하더라도 반동을 완전히 상쇄하지 못했기에 다음 탄을 쏘려면 다시 조준해야 할 정도로 밀리는 경우가 흔했다.[1] 게다가 크고 무거운 대포는 다루기가 어려우므로 재방렬과 재조준을 위한 일련의 과정은 매우 오랜 시간이 소요되었다.
이러한 점 때문에 탄착점을 토대로 조준을 수정할 수 없는 전장식 대포들의 명중율은 대단히 떨어졌다. 설상가상으로 흐트러진 조준을 다시 맞추고, 포탄을 장전하고, 포를 고정하는 일련의 과정에는 오랜 시간이 필요해서 구식 대포들의 연사속도는 절망적이었다. 심지어 이렇게 시간을 들여 쏜다 하더라도, 사용하는 탄이 그냥 좀 큰 쇠구슬에 불과했으니, 직접 맞히지 못하면 피해를 주지 못해 위력에는 절대적인 한계가 있었고, 결국 시간당 화력은 한없이 떨어졌다.
게다가 해군의 경우는 더 문제였는데, 육군의 야포는 그냥 운용원들이 멀리 있다가 장전할 때만 달라붙으면 됐지만, 해군의 함포는 안 그래도 비좁은 배에다가 수십 문의 함포를 도배한지라 각 포마다 배정된 용적이 너무 좁아서 안전거리를 두지도 못했다. 때문에 속사하다가 삐끗하면 포가에서 함포가 이탈하는 일이 비일비재했고, 많은 수병들이 포에 깔려 부상당하거나 사망하고는 했다. 범선시대 항해 소설을 보면 포가에서 이탈한 함포를 제자리로 돌려서 사격을 재개하려는 포반원과 다리가 함포에 깔려 짓뭉개져 비명을 지르다 어느 순간 비명도 멎어버린 불운한 수병이 꼭 나올 정도. 그나마 대포를 고정하는 밧줄인 포삭을 이용해서 함포의 반동을 받아보려고 했고 제법 효과적이었지만 전투가 시작되면 그깟 밧줄 얼마나 가겠는가.
하지만 포신만을 후퇴(주퇴)시켜서 충격을 흡수하고, 그것을 다시 원래 위치로 되돌려(복좌)다음 발사를 준비하게 하는 주퇴복좌기가 개발됨으로서 대구경 대포를 안정적으로 발사하는 것이 가능하게 되었다. 여기에 후장식 장전기술과 강선이 조합됨으로서 전시대의 대포들은 엄두도 못 낼 화력과 명중율, 속사성을 손에 넣을 수 있게 되었다.
조준난이도 뿐만 아니라 포와 포좌의 내구성에도 문제가 있었는데, 주퇴복좌기 도입 이후에는 포열 후퇴로 반동을 길게 나누어 받을 수 있었지만 그 이전엔 짧고 순간적인 충격을 그대로 포가 받아내야만 했기 때문에(조준이 틀어지는 것을 최대한 막기 위해 튼튼하게 고정했으므로 더 심했다.) 포를 얹는 좌대는 거의 소모품이라 할 정도로 심하게 갈려나갔다. 그렇지 않으면 아예 인력운반이 불가능할 정도로 무겁고 튼튼하거나.
이 '주퇴복좌'하여 충격을 흡수한다는 개념은 보병화기에도 적용된다. 발명가 하이럼 맥심은 총알이 발사되면서 발생하는 반동을 역이용하여 반동을 받아내는 구동부의 움직임을 통해 총알을 자동으로 장전한다는 발상을 떠올렸는데, 이 발상을 현실화한 무기가 바로 맥심 기관총이다. 맥심 기관총 이후 개발된 기계식으로 격발하는 자동/반자동 화기는 주퇴복좌의 원리로 반동을 흡수하는 동시에 구동부(노리쇠뭉치)의 움직임으로 총알을 자동으로 장전하는 기본적인 설계 사상을 따른다.[2] M16A3 이후의 아말라이트-15 계열 총기에서는 단순히 노리쇠만 뒤로 밀리는 것이 아니라 개머리판 내부의 스프링이 노리쇠의 반동을 잡아준다. 실제 주퇴복좌기에 훨씬 가까워진 것.
전차에 장착되는 전차포의 경우 주퇴복좌기로 인한 반동제어 덕분에 제한된 포탑 실내 안에서 고압력 장약을 사용하는 대구경 포탄을 사용하면서도 조준점을 유지할 수 있게 되었다.
전함 주포의 경우 일제사격을 할 경우 주퇴복좌기에 많은 압력이 들어가기 때문에 복원 과정에서 시간을 잡아먹곤 했다. 때문에 속사가 요구될 경우 주포탑당 1~2개의 포신을 쉬게 하며 번갈아 발사했다. 실제 사진이나 각종 매체에서 볼 수 있는 위아래로 엇갈린 전함 포신은 속사 포격 상황이라 보면 된다.
포병의 혁신이나 마찬가지인지라 현대의 거의 대부분의 대포는 직사포건 곡사포건 주퇴복좌기를 탑재한다. '모든'이 아니라 '대부분'인 이유는 주퇴복좌기 자체가 무게가 나가기 때문에 그 무게에조차 민감해 질 수 있는 체계, 예를 들면 보병이 들고다녀야 하는 스토크식 박격포에는 그런 거 없다.
포신이 뒤로 밀린다는 점에서 '바닥에 단단히 고정되어야 할 포신이 뒤로 밀리면 위력이 약해지는 거 아니야'라는 의문을 가질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은 사실이다. 또한 주퇴복좌기도 공간을 차지하기 때문에 주퇴복좌기가 붙는 포미 부근이 커지기에 전차포나 자주포같이 실내에 설치되는 경우 공간 문제가 생길 수 있어서 무기 설계 중 고려해야하는 사항이 늘어나고, 주퇴복좌기 자체가 충격을 받아주는 부품이다보니 실린더의 수명이 영구적이지는 않아서 부품 관리가 필요하고 정비요소가 늘어나는 단점도 있다. 주퇴복좌기 자체의 가격도 나간다. 이러한 이유로 2차대전기 후반부터 냉전 초에 독일과 영국, 미국에서는 아예 전차포의 주퇴복좌기를 없애고 고정하는 연구도 진행했다.[3]
그러나 포탄과 포신의 무게 차이가 매우 심하기 때문에 에너지의 손실이 그리 크지도 않으며, 조준이 흐트러지지 않고 연사가 가능해지고, 주퇴복좌기 없이는 대포와 연결된 포대나 차체, 혹은 주변의 부속품들이 직접 충격을 받으면서 파손될 수 있어서[4] 단점보다도 이점이 훨씬 크기 때문에 주퇴복좌기 사용은 유효하다. 어차피 포신이 밀리나 포대 자체가 밀리나 그게 그거다. 야전에서 이상적인 상황처럼 지면에 단단하게 고정하기란 힘들다.
3. 원리
주퇴복좌기는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뉜다.- 주퇴기: 화포가 발사될 때 반동 때문에 포신이 뒤로 밀리는데 이를 방지하기 위한 부분이다.
- 복좌기: 포신이 뒤로 밀린 이후에 원래 위치로 앞으로 가게하는 부분이다.
- 완충기: 뉴턴의 운동법칙 중 제3법칙에 의하면 반동 때문에 포신이 뒤로 밀리면 그 힘만큼 앞으로 당겨진다. 그러나 같은 힘으로 앞으로 당기면 화포가 앞으로 넘어질 수 있기 때문에 복좌속도를 늦추는 역할을 하는 부분이다.
4. 방식
4.1. 유압-스프링
BL 60파운더 야포에 사용된 주퇴복좌기 상세도
20세기 초까지 사용된 방식으로 유압유가 든 실린더가 완충역을 맡고, 포신 주변에 설치해둔 스프링이 주퇴의 충격을 흡수하고 복좌를 위한 힘을 제공해주는 구조. 스프링이 쉬이 마모되기에 스프링을 자주 교체해주어야하는 문제점이 있다.
4.2. 유기압식
Canon de 75 modèle 1897에 사용된 주퇴복좌기 상세도
현재까지 사용되고 있는 방식으로, 유압유가 담긴 실린더가 주퇴 역할을 하고 질소 기체로 가득찬 실린더가 복좌 역할을 한다. 이 방식에도 완충역할하는 실린더가 있는데 현재는 유압유를 사용하는 습식과 가스를 사용하는 건식으로 나뉜다.
유기압 현가장치와 유사하게 작동하며, 유압-스프링 방식보다 신뢰성과 내구도가 높지만 복좌역할하는 가스실린더가 주변 온도의 영향을 받아 성질이 변한다는 단점이 있다. 국군의 KH179 155mm 견인곡사포 또한 이 방식을 사용하므로 포반원들은 기온 변화에 따라 온도조절 나사를 돌려 평형기 내부의 기압을 조절해주어야 한다.
5. 기타
몇몇 1/35 스케일 AFV, 화포 등의 모형은 작은 스프링을 사용해서 포신을 안으로 밀면 다시 튀어나오게 하여 주퇴복좌기 가동을 간단히 구현하기도 한다. 보통 약실과 포신이 연동되므로, 약실이 구현된 경우가 많고, 약실이 구현되어 있으니 종종 내부 재현형인 경우가 많다. 당연히 내구도 문제로 메탈포신도 필수이므로, 가격은 좀 붙는다. 주로 AFV 모형이 자주 이 기능을 구현한다1/16 스케일의 몇몇 RC 탱크들도 구현한다. 이쪽은 모터를 이용해서 작동.
6. 관련 문서
[1] 나폴레옹 시기를 다룬 영화를 보면 야포를 쏠 때마다 뒤로 밀려나고, 포반원들이 달라붙어 포를 다시 앞으로 밀고 장전하는 장면을 볼 수 있는데 이 때문이다.[2] 맥심 기관총의 파생형인 독일의 MG08은 반동을 강화하기 위해 총구조퇴기를 총구 앞 부분에 장착했다.[3] 사실 영국과 미국은 주퇴복좌기를 달기 힘든 액체 장약식 화포를 개발하면서 주퇴복좌기 없는 고정형 포가를 연구하게 된 것이다.[4] 영국에서 주퇴복좌기 없는 전차를 연구한 결과 사격 시 충격으로 관측창 유리가 깨지는 현상도 발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