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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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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color=white>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Bundesarchiv_DVM_10_Bild-23-61-83%2C_Linienschiff_%22SMS_Kaiser%22.jpg
드레드노트급 전함독일 제국 해군카이저급 전함
<nopad>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Richelieu_1943.jpg
슈퍼 드레드노트급 전함프랑스 해군리슐리외급 전함

1. 개요2. 언어별 명칭3. 명칭의 역사4. 특징5. 구체적 사례6. 주요 개념
6.1. 거포와 중포6.2. 일제 사격과 협차사격6.3. 방뢰 체계6.4. 집중 방호와 대응방어6.5. 배수량과 동력기관
7. 위상과 실제
7.1. 전함의 위상7.2. 전함의 실제
8. 전함의 몰락
8.1. 항공모함의 대두8.2. 핵 만능주의8.3. 집중 방호 개념의 몰락8.4. 미사일의 발전8.5. 비용
9. 전함을 위한 변호10. 살아남은 전함
10.1. 전드레드노트급 전함10.2. 드레드노트급 전함10.3. 신전함
11. 현대전에서의 전함
11.1. 전함의 문제들11.2. 전함에 대한 비판이 불거진 역사적 맥락11.3. 함포의 단점
11.3.1. 교전 거리의 불리함11.3.2. 유지 비용11.3.3. 정치적 비용
11.4. 소결
12. 전함의 부활 가능성
12.1. 함포12.2. 미사일12.3. 대구경 레일건 주포
13. 전함의 배수량별 목록
13.1. 여러 전함
14. 분류15. 친척16. 관련 문서17. 창작물에서의 전함
17.1. 영상매체17.2. 게임17.3. 영화17.4. 2차 창작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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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전함은 대구경 함포주포로 사용하는 군함 중 가장 배수량이 큰 주력 전투함을 말한다.

2. 언어별 명칭

【언어별 명칭】
{{{#!folding 펼치기 · 접기<colbgcolor=#CCCCCC,#212121>한국어전함
한자戰艦
일본어戦艦(せんかん)
중국어战列舰(zhànlièjiàn)[1]
영어Battleship
러시아어Линейный корабль
линкор
ле́йнер
독일어Schlachtschiff
Kriegsschiff
Linienschiff
프랑스어Cuirassé
bâtiment de guerre
navire de guerre
bâtiment militaire
이탈리아어Nave da battaglia
corazzata
}}}||

3. 명칭의 역사

전함을 직역하면 싸움배가 되므로 넓은 의미에서는 군함을 통칭하는 단어로 쓰이기도 하나,[2] 좁은 의미로는 19세기부터 20세기 중반에 이르기까지 대양을 지배한 근대 해군의 함정체계 중 가장 강하고 크며 상위에 있는 군함을 말하며 전드레드노트급 전함부터 드레드노트급 전함을 거쳐서 슈퍼 드레드노트급 전함/고속전함까지 발전한 함종을 가리키는 말이기도 한다.

미합중국 해군에서의 코드는 BB. 1920년 7월 17일 이전에는 전함 분류용 코드는 그냥 B였으나, 그 이후 별 이유 없이 편의상 2글자로 하기 위해 BB가 된다. 순양함은 2글자 코드가 들어설 무렵 이미 중순양함경순양함으로 나뉘었기 때문에 CA와 CL로,[3] 구축함의 경우 DD, 호위함의 경우 FF의 코드를 사용하게 된다. 그러다가 각 함종에서 파생형이 발생하자 미해군은 함종을 분류할 때 첫 알파벳을 함선의 종류, 두 번째 알파벳을 함선의 특수한 기능을 넣어 분류하기 시작했다. 가령 항공모함을 뜻하는 CV의 경우 'Cruiser'의 C와 양력을 이용하여 운용되는 항공기의 코드인 V(Voler)를 합했기 때문이다. 미국은 자력으로 부양하는 비행선 같이 공기보다 가벼운 비행체에는 코드 Z를 붙였고, 양력으로 부양하는 공기보다 무거운 비행체에는 코드 V를 붙였었다. 여기서 V의 어원이 문제되는데 가장 유력한 설은 'Fly'의 프랑스어인 'Voler'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다가 점점 함선들의 기능의 분화가 심해지자 2자리 코드를 넘어 3자리 코드가 붙기 시작한다. 전형적인 누더기 군대행정 현대의 핵추진 함선의 경우 'Nuclear Propulsion'의 앞글자인 N이 세 번째 알파벳으로 붙는다. 따라서 니미츠급 항공모함의 경우 분류용 코드가 CVN으로 시작한다.

'Battleship'이라는 용어는 1790년대 후반쯤에 만들어져서 이른바 전열함(ship of the line)에 대해 쓰이다가 1800년대 후반기에는 장갑전함(ironclad warship)의 의미로 사용되었다. 이후 여러가지 시험함이 속출하다가 엔진은 왕복엔진을 채용하고 강철 장갑을 둘렀으며, 함의 앞뒤에 2연장 주포탑을 1기씩 장비하여 총 4문의 주포, 측면에 중간포와 부포와 속사포를 장비한 전함이 나오는데, 이런 형식의 전함은 드레드노트의 출현과 함께 전드레드노트급 전함이나 구식전함으로 불리게 된다.

4. 특징

<colcolor=white> 파일:US_warships_entering_Lingayen_Gulf_1945.jpg
레이테 만 해전에 참가한 미국 전함들의 항진

인류가 해상 이동이 가능한 이동요새를 최초로 전선에 투입할 수준으로 실용화에 성공한 군함이었다.

고대로부터 야전이나 회전에서 승리하더라도 적의 잔여세력들이 거점에서 농성을 하기 시작하면 공성전술을 사용해서 공성전을 하는 길고 고되며 비용까지 늘어나는 개고생을 해야 했다. 해전에서도 적 해군을 섬멸하더라도 기지 타격을 통해 확실하게 해군 기지까지 박멸하지 않으면 적의 항구를 봉쇄하는 등의 피곤한 작전을 해야 한다. 펠로폰네소스 전쟁에서도 스파르타가 이끄는 펠로폰네소스 동맹고대 아테네가 수장인 델로스 동맹에게 아이고스포타모이 해전을 승리하여 최종적인 승리를 거두었지만 해군력을 상실하고 식량보급선이 끊어진 상황에서도 고대 아테네는 6개월을 봉쇄상황에서도 버틴 끝에 결국 항복협상으로 패배를 인정할 때까지 버텼다. 아테네와 외항인 피라이오스를 연결하는 성벽과 요새를 정공법으로는 함락할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여기에 더해서 해군 기지는 보통 해안포와 요새로 방어되고 있기 때문에 정면에서 제대로 공략하려면 미리 근처에 상륙시켜놓은 육군과 합세한 후 해병대까지 동원한 입체적인 동시공격을 가해야 하며 그렇게 하더라도 해안포와 요새 시설 및 항구 내부에 잔존한 적의 해군 잔여 세력들 때문에 엄청난 희생만 나고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화공을 사용하는 경우도 있으나 적벽대전을 보면 알 수 있듯이 대성공을 위해서는 숙련된 아군 + 유리한 날씨와 풍향 + 미숙한 적군 + 화공선이 다수 명중해서 성공적인 발화 + 운빨이 모두 작용해야 하며 보통은 실패하는 경우가 압도적이다.

이런 이유로 인해 해군에서도 해전에서 승리할 목적 + 적의 해군 기지를 파괴할 목적을 위해 대형함을 중심으로 군함을 계속 강화시켜서 전열함을 적당하게 쓸만한 수준으로 만들었으나 전열함은 당대의 기술 수준을 감안하더라도 딱 벙커 수준의 소형 특화점 수준인지라 해전에서 승리하고 적의 항구를 봉쇄하는 것까지는 가능하지만 적의 항구를 직접 제압하려면 큰 희생을 치루어야 가능하므로 아직 모자랐다.

이러한 상황은 철갑선이 발전하면서 군함이 거포와 중포를 장비하고 강철로 된 장갑을 효과적으로 장착하기 시작하며 원양항해능력도 개선되고 동력기관도 장시간 가동이 가능해지면서 점점 나아진다. 초반에는 장갑의 강화를 함포가 따라잡지 못해서 충각공격이 부활하기도 했으나 곧 함포도 발전하면서 전열함이 지배하던 시기와는 달리 함포로 적 군함을 끝장낼 수 있는 시대가 도래하였다.

그래서 전드레드노트급 전함이 등장하기 시작하면서부터 그 동안 순양함이나 초계함등으로 불완전하게 진행했던 포함외교가 본격적으로 진행되었으며 상대방이 해안포와 해안요새를 충실하게 갖추어놓더라도 전함이라는 존재가 상당한 위협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우리가 전함으로 떠올리는 대표적인 함선의 모습을 갖추기 시작한 것은 영국 해군드레드노트급 전함의 등장부터다. 그리고 이 때부터 장거리 사격이 효과적인 명중률을 보이기 시작하면서 본격적인 해상 이동방식 이동요새로서 활동하기 시작했고 후대의 핵무기에 준하는 전략무기로도 활동하기 시작했다.

제2차 세계 대전은 전함의 황혼기였다. 국력의 상징이었던 거함거포주의를 내세운 전함이 해전에서 제 활약을 하지 못한 것에 비해 전장에서 항공모함이 맹활약을 하면서 현대 해전의 중심은 전함에서 항모로 넘어가게 된다. 그렇게 해전의 패러다임이 크게 격변하면서 결국 전함은 현대 전장에서 사라지게 되었다. 전후에도 아이오와급 전함이나 리슐리외급 전함이 현역으로 있었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퇴역 수순을 밟았다.

현재 기념함이나 퇴역함으로 남아있는 것까지 합칠 경우 일본에 있는 전드레드노트급 전함인 미카사를 제외하면 미국식 드레드노트급 전함인 뉴욕급 전함 텍사스와 미국의 슈퍼 드레드노트급 전함인 노스캐롤라이나급 전함 노스캐롤라이나, 사우스다코타급 전함 매사추세츠, 앨라배마, 아이오와급 전함 아이오와, 뉴저지, 미주리, 위스콘신들이 박물관함으로서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5. 구체적 사례

이탈리아 왕립 해군 리토리오급 전함의 실제 건조 모습 소비에츠키 소유즈급 전함의 건조 진행과정 설명

개요의 역사적 사실에서 알 수 있듯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전함의 시대가 막을 내림과 동시에 추가적인 전함의 건조가 중단되어버려 박물관함을 제외하고 함선 전체가 멀쩡하게 남아있는 군함을 찾아보기가 무척 어렵다. 따라서 전함에 대해 구체적으로 설명하기 위해 현재 퇴역함이지만 그나마 보존이 잘 되어있는 미국 해군의 아이오와급 전함을 예로 들어 설명한다. 우선 기준배수량 4만 5천 톤, 만재배수량[6] 5만 8천 톤, 전장 270.4m, 전폭 33m나[7] 된다. 여기에 21만 2천 마력(158088kW)에, 과부하 시 25만 4천 마력(189408kW)까지 낼 수 있는 엔진 출력, 최고속도 35노트(64.8km/h), 17노트(31.5km/h) 기준으로 1만 5천 해리(27780km), 30노트(55.6km/h) 기준으로 5천 해리(9260km)의 항속력을 지닌다.
Battleship Guns: "16 Inch Gun & Turret" 1955 US Navy Training Film for Iowa Class Battleships 1908년 영국 뉴캐슬의 암스트롱 위트워스사 공장에서 강선(鋼線式, gun wire)식 공정을 통해 12인치 함포를 제작하는 모습을 담은 영상. 모든 공정과 시험 발사까지 전부 담겨 있다.

무장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거대한 대구경 함포로, Mark 7 형식의 16인치(406mm) 50구경장 함포를 주포로 채택한 후 3연장 주포탑에 장착하여 3기를 탑재하므로 총 9문을 탑재하고 있으며 이 포는 무게 1.2톤의 철갑탄을 최대 39km까지 쏘아낼 수 있으며 그 파괴력은 두께 9m의 강화 콘크리트 벽을 관통할 수 있다. 연사속도는 1분에 2발. 그 외 부포로서 5인치(127mm) 38구경장 양용포를 Mark 28 형식으로 2연장 양용포탑 6기를 탑재하여 총 12문 탑재하며(원래 20문에서 축소) 나중에 설치된 하푼 함대함 미사일이나 토마호크 함대지 순항미사일을 사용한다. 또한 세계대전 당시에 대공용으로 탑재하던 보포스 40mm 포오리콘 20mm 기관포같은 유인대공기총을 철거하고 현대식 CIWS팰렁스 4문이 추가되었다. 방어대책으로서는 주포탑 전면에 432mm, 주포탑 바벳 439mm 등 방어장갑을 두텁게도 둘렀다. 물론 이 수치는 전면, 측면, 후면 혹은 해당구획의 중요도에 따라 편차가 심하긴 하다. 덕분에 실제 전함의 배수량은 상당부분이 주포탑과 방어장갑으로 돌려지는 편이다.

6. 주요 개념

6.1. 거포와 중포

전함은 주포를 당대의 거포중포급 함포를 사용하였으며 탑재수량도 많은 편이었고 탑재방식도 최대한 방어력이 높은 주포탑같은 형태로 장착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함포로 거포와 중포를 사용하게 되면 일단 포 자체가 크고 무거우며 포구를 빠르게 적이 있는 방향으로 돌리지 못하므로 민첩하지도 못하고 연사속도가 극단적으로 느려지며 발사시 반동도 심하기 때문에 일반적인 해전에서는 약점만 한가득인데 굳이 전함에 탑재할 사유가 별로 없어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포와 중포를 사용하는 이유가 있다. 바로 장갑관통력과 파괴력 때문이다. 원래 군함이라는 것이 만들어질 때부터 의외로 선박이라는 것 자체가 내구성이 좋아서 공격을 받아도 쉽게 무력화되지 않는다는 것을 다들 실감하였다. 특히 범선이 주력인 시대에 들어오면 함포 수십발 명중 정도로는 큰 타격을 입지 않는 경우까지 발생한다. 그래서 당대의 주력함인 전열함이 심하면 100문 이상의 함포를 탑재하고 일제사격함으로서 1회의 공격만으로도 적 군함에 많은 피탄을 발생시켜서 만신창이로 만드는 전투방식을 선택한 것이다.

이러한 상황은 철갑선이 등장하면서 더 악화된다. 기존의 함포로는 직격탄이 발생해도 장갑이 관통되지 않으므로 아무런 소용이 없던 것이었다. 남북 전쟁의 햄튼 수로 해전에서 북군의 모니터함인 모니터 (USS Monitor)와 남군의 버지니아 함(CSS Virginia)이 전투를 벌렸는데 몇 시간동안 포격전을 했으나 포탄이 장갑을 관통하지 못해서 서로 약간의 부상자만 발생할 뿐 군함 자체에 손상이 별로 일어나지 않았고 충각을 이용한 돌격까지 했으나 모두 빗나가서 결국 무승부가 난 사례가 대표적이다. 그래서 충각 돌격이라는 고대의 해전전술이 현대화하여 되살아날 정도였다.

따라서 전열함의 뒤를 이어줄 전함 입장에서는 거포와 중포를 함포로 채택하여 주포로 사용할 수밖에 없었다. 일단 포탄이 장갑을 관통한 후 내부 손상을 크게 주어야 적 군함을 무력화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장갑이 얇거나 없는 보조함들의 경우에는 중간구경이나 소구경 속사포를 부포로 채용해서 빠른 연사력으로 제압하는 방식을 선택한다.

여기서 중소구경 속사포만 가득 장착해서 적함을 제압해보겠다는 생각을 할 수도 있다. 하지만 포탄이 주장갑대를 관통하지 못하므로 최상의 경우라도 대파당해서 불타고 있지만 침몰은 못시키는 것이 정상적이며 보통은 속사포를 먼저 쏘고 명중탄 날린 쪽이 유리하므로 역관광 당하기 딱 좋다. 실제로도 청일전쟁 당시 북양해군 소속으로 황해 해전에 참전한 정원급 철갑함을 상대로 당시 일본의 연합함대가 순양함밖에 없어서 어쩔 수 없이 속사포로 대응했는데 해전은 승리하였으나 정원과 진원은 속사포 포탄을 엄청나게 맞고도 무사했고 전투력을 유지한 채 자력으로 탈출에 성공했다. 정원은 속사포탄 159발이 명중했으나 전사자가 고작 17명만 나왔으며 진원은 주포인 12인치 (305mm) 함포를 일본 제국 해군 함대 기함인 마츠시마에 1발 명중시켜서 좌현 포탑을 관통하고 내부 장약에 화재를 일으켜서 유폭이 발생하는 바람에 순식간에 28명을 전사시켰으며 함교 근처에 대규모 화재를 일으켜서 기함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게 만들어주었다.

그리고 중소구경 속사포만 가득 탑재하게 만들면 장갑이 튼튼한 대신 매우 무겁고 느린 장갑순양함이나 마찬가지라서 제대로 써먹기가 곤란한데다가 해안포를 상대할 수 없으므로 항구 주변에 얼씬도 못하는 약체 신세가 되므로 전함은 거포와 중포를 주포로 계속 유지할 수밖에 없었다.

덧붙여서 주포가 무력화되는 순간 상대방의 주력함에게 샌드백 신세로 털리게 되므로 주포 자체를 방어할 필요성도 점점 높아진다. 초기에는 주철등으로 무겁게 만든 치즈덩어리 형태의 포탑을 채택하였으나 너무 무거워서 탑재하기 힘들고 건현이 너무 낮아져서 원양항해가 어렵다는 단점이 나왔다. 그래서 머리를 굴린 끝에 당시의 함포의 명중률이 낮다는 이유로 포대나 포좌 수준의 허술한 방어를 했으나 앞서 이야기한 속사포 포탄이 날아드는 상황에서는 순식간에 주포가 손상되고 조작원이 전사하거나 부상당해서 주포 자체가 무력화되므로 점점 방어력을 늘린 끝에 강철이 대량생산되면서 장갑을 충분하게 갖춘 밀폐형 주포탑이 완성된다.

이런 방식으로 만들어진 것이 전드레드노트급 전함이다. 그러나 아직 기술적 문제로 인해 주포를 장거리에서 정확하게 명중시킬 기술이 없으므로 부포를 대량으로 장착한 후 적 군함에 근접해서 포탄의 비를 뿌림으로서 적 군함을 손상시키고 화재를 일으키게 만들어서 느려지게 만든 후에 더 근접해서 1,829m (2천야드) 이내라는 초근접 거리까지 진입하면 주포를 발사하여 마무리 타격을 가하는 방식으로 해전이 진행된다.

하지만 점점 군함이 대형화하면서 속사포 수준의 부포 정도로는 피탄을 당해도 별 피해없이 속도를 유지할 수 있으며 적 군함도 부포가 없는 것이 아니므로 반격타도 날아와서 오히려 아군이 피탄당해 속도가 느려지는 역관광을 당할 수 있기 때문에 부포보다는 원거리에서 좀 더 강력한 타격을 줄 수 있는 중간포가 등장하여 부포와 함께 적 군함에 타격을 주고 느려지게 할 목적으로 사용하게 되었다.

여기서 후기형 장갑순양함이 전드레드노트급 전함을 위협하게 된다. 후기형 장갑순양함은 전드레드노트급 전함과 비슷한 배수량을 가지며 장갑이 얇고 주포도 전드레드노트급 전함이 채택한 중간포 수준의 함포를 사용하는 대신 동력기관에 많은 투자를 해서 속도가 좀 더 빠르고 장시간 속력을 유지가능했다. 그래서 전드레드노트급 전함이 장갑순양함을 추격하기 힘들고 오히려 장갑순양함의 주포나 맞고 손상을 입고 화재가 발생해서 느려지는 역관광을 슬슬 당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어뢰가 발전해서 1,829m (2천야드) 정도의 거리라면 명중을 보장할 수 있게 되자 장갑순양함이 포격으로 전드레드노트급 전함을 느려지게 만들고 해당 전함의 중간포와 부포를 무력화시킨 후 근접해서 어뢰를 발사하고 후퇴하면 전드레드노트급 전함은 주포를 제대로 사용하지도 못한 채 어뢰 맞고 침몰할 가능성까지 발생하게 된다.

그러나 전함은 거포와 중포의 강력한 위력이 필요했고, 해전 이외에도 해안포를 상대한다던지 상륙병력을 지원한다던지 하는 등의 다양한 용도로 거포와 중포가 필요했기에 후술하는 일제 사격과 협차사격 개념을 적용시키고 중간포와 부포를 폐지한 후 어뢰정 격퇴용의 속사포만 남기는 방식으로 배수량을 확보한 후 가능한한 많은 주포를 장비하는 방식으로 넘어가기 시작했다. 그 결과가 드레드노트급 전함이고 전함의 전성기가 시작된다.

이렇게 시작한 전함의 전성기는 해전 양상의 변화로 인해 해전에서 더 이상 거포와 중포가 필요없게 될 시기까지 유지되었으며 그 이후에도 살아남은 전함들은 상륙작전에서의 지원용으로 수명을 이어나갔고 결국 그 용도로도 가성비가 떨어지게 되자 완전하게 은퇴하게 된다.

6.2. 일제 사격과 협차사격

전함은 대구경의 주포를 선회가 가능한 주포탑에 장착한 후 발사한다. 그런데 함선은 항행성능을 위해 보통 길쭉한 동체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모든 주포를 목표에 조준 및 사격하기 위해 주포의 포구를 현측으로 돌리고 사격을 진행할 경우에는 현측으로 사격의 반동이 생기면서 롤링이 일어난다. 따라서 포의 사각을 고정하고 사격하게 되면 요동치는 배의 롤링이 포의 사격에 영향을 주기 때문에 명중하는 위치가 각 함포의 포문마다 약간씩 차이가 나게 된다. 또한 주포탑을 선체에 장착한 위치가 다르므로 별도의 보정이 없다면 주포탑의 위치만큼 좌우 착탄 위치가 달라진다. 그런데 함포의 사거리와 탄속이 늘어나면서, 날아가는 포탄을 일일이 눈으로 쫒기가 어려워졌다. 그런 상태에서 위의 이유로 제각각 날라가는 포탄이 어디에 떨어졌는지도 모르게 되었다. 이렇게 사격 제원 수정을 하지 못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일제 사격(salvo) 개념이 도입된다. 일제 사격을 하면 동일한 사양의 포를 동시에 발사하는데, 수면이나 적함에 착탄되는 것을 망원경이나 레이더로 관측하여 살포계(탄착군)를 얻고, 이를 이용해서 사격 제원 수정을 할 수 있었다.

기술이 발전하면서 주포탑의 위치도 보정할 수 있게 되었고, 다연장 포신의 포탄 발사압으로 포탄끼리 간섭하는 것도 어느 정도 해결했으나, 그 반대 급부로 각각의 포탄이 0.01초 정도의 약간의 시간차로 발사되게 되면서 함포 반동에 의한 순간적인 롤링은 보정하는 것이 불가능해졌다. 미국의 노스캐롤라이나급 전함과 그 이후의 전함은 포신 안정화 장치를 개발해서 장착했으나 이는 함의 기동이나 악천후에 대응하기 위한 것이지, 주포탄 발사로 인한 순간적인 롤링까지 반응할 수 있는 물건은 아니다. 따라서 전함의 주포 사격은 핀포인트로 정확하게 명중하는 건 꿈꾸지도 못하고 여전히 살포계로 제원 수정을 해야 했다. 그런데, 이 살포계가 확률적으로 결정된다고 본다면, 상대방을 살포계에 집어놓고 반복해서 일제 사격을 수행하면 언젠가는 명중할 것이다. 이 개념을 협차사격(straddle)라고 부르고, 전함의 주포 사격은 상대방을 먼저 협차한뒤, 빠른 재장전과 발사를 반복해서 명중을 달성하는 식으로 이루어진다.

협차사격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지려면 관측부터 사격까지의 지연 시간을 최대한 줄여야 했다. 그래서 기본적으로는 함교 꼭대기에 있는 장교들이 관측한 값을 함교로 내려보내서 사격 제원을 산출하고, 이를 주포탑에 보낸뒤, 사격한 주포의 착탄을 관측하는 로테이션이 확립된다. 이후 더 잘 관측하기 위한 광학식 레인지 파인더가 개발되고 다시 레이더로 개선된다. 사격 제원을 계산하기 위한 기계식 컴퓨터도 각국에서 제작되었고, 주포탑에서 제원을 받아서 세팅하는 것이 아니라 기계식 컴퓨터로 계산된 제원을 원격 조종으로 포탑을 움직여서 제원을 집어넣는 RPC가 등장한다. 그리고 장거리와 야간 착탄 관측을 위한 별도의 레이더도 개발된다.

반대로 공격받는 배는 상대방의 살포계에서 벗어나 협차 상태를 해소하는 기동을 반복해야 한다. 그런데 거리가 일정 이상 가까워지면, 살포계는 자연스럽게 좁아진다. 따라서 명중하지 않은 탄들은 함선 근처에서 터지게 되는데 이를 지근탄이라고 부른다. 지근탄은 수면에 착탄한 충격으로 격발되는데, 전함의 포탄은 적 장갑을 뚫고 격발되기 위해서 지연신관을 세팅하므로, 지근탄도 수면에 가까운 바닷속에서 폭발한다. 그 결과 지근탄은 수중으로 충격파를 전달하고 물밖으로 파편이 튀게 되는데, 배수량이 낮고 장갑이 얇은 구축함이나 경순양함은 지근탄의 충격파로 침수가 발생하거나 파편이 날아들어 함선이 손상되거나 갑판의 무기가 일부 손상될 수 있다. [8][9]

다만, 지근탄에 의한 피해의 정도는 여러 변수에 의해 달라지는데, 우선 착탄한 해수면 지점이 표적이 된 함선에 충분히 가까워야 하고, 또 해당 포탄 내지 폭탄은 충분한 양의 폭약을 지녀야만 한다. 주포탄은 대체로 철갑유탄인 경우가 많았고, 고폭탄의 경우에도 그 야마토의 18.1인치 정도는 되야지 1000lb급 항공폭탄과 작약량이 같아지게 된다. 실제로 지근탄에 의한 피해보고는 항공폭탄에서 두드러졌고, 전함에 의한 피해 사례는 사마르 해전 당시 야마토가 화이트 플레인즈에 낸 지근탄을 포함하여 몇 안된다.

전함이나 중순양함의 대구경 주포탄에 의한 지근탄 피해 보고가 적은 다른 이유로는 협차당하는 순간 모든 군함이 즉시 회피기동을 하기 시작하기 때문이다. 회피기동중인 군함은 거리와 방향이 모두 바뀌므로 재조준의 과정이 들어가야 하므로 지근탄이 나오기 힘들었다. 생각해보면 애초부터가 '협차'라는 확률에 의존하는 사격을 하는 전함과, 한 발을 떨궈 한 발을 맞히려고 드는 급강하 폭격기는 명중률에서 근본적인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그리고 협차당하는 순간 해당 군함은 적에게 거리, 속도, 위치가 모조리 포착당해서 정조준당했다는 것이 성립되버린다. 따라서 회피기동을 안하거나 하더라도 전투를 지속하면 구축함이라도 전함의 주포탄을 직격탄으로 맞을 수 있다. 실제로 사마르 해전에서도 일본 제국 해군 구리다 함대를 막기 위해 용전분투한 플레처급 구축함 존스턴도 전투를 진행하면서 동시에 회피기동을 반복했지만 결국 야마토급 전함 1번함 야마토의 46cm 주포탄 3발과 15.5cm 부포탄 3발을 직격탄으로 맞고 치명타를 먹었다. 사무엘 B. 로버츠(DE-413)도 같은 전투에서 공고급 순양전함 1번함 공고의 35.6cm 주포탄을 직격탄으로 맞고 치명타를 입었다. 서로 예상하지 못한 해전에서 혼란의 난타전이 벌어지고 일본 제국 해군이 여러가지 이유로 인해 졸전을 하는 상황에서도 전함과 소형 군함이 싸움을 하면 정상적인 경우라면 결국 소형함이 밀리게 되는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전함과 전투하면 수중탄 효과도 감안해야 한다. 수중탄 효과를 너무 중시한 91식 철갑탄 때문에 크게 저평가받고 있지만 수중탄 효과는 확실하게 있으며 보통 통상적인 전함 주포탄도 포탄 직경의 80배 정도는 수중에서 직진하며 91식 철갑탄은 포탄 직경의 200배를 직진한다. 야마토급 전함의 46cm 포탄이라면 46cm × 200 = 92m의 거리를 수중에서 직진하므로 지근탄이라고 보기에도 애매하게 먼 거리에 떨어진 포탄이 수중의 선체를 직격하는 개같은 상황이 충분히 벌어질 수 있다. 수중탄 현상은 중순양함급 군함의 주포인 8인치(203mm) 함포에서도 관측되었고 성공사례가 있으므로 협차가 발생하자마자 모든 군함이 긴급하게 회피기동하는 이유가 다 있는 것이다.

이런 이유 때문에 전함을 이론상 확실하게 처리 가능한 어뢰를 장비하고 있더라도 전함이 소형 군함을 협차하게 되면 사마르 해전같이 목숨걸고 아군 호위항공모함을 퇴피시킨다는 경우같은 상당한 사유가 없다면 구축함이고 경순양함이고 중순양함이고 간에 일단 회피기동하면서 전함이 정조준 가능한 유효사정거리를 벗어나도록 거리를 벌리게 된다. 마타판곶 해전에서도 영국의 경순양함 전대는 리토리오급 전함인 비토리오 베네토가 나타나자 즉시 교전을 중단하고 회피기동하며 긴급철수하면서 적을 유인해서 영국의 항공대가 비토리오 베네토를 상대하도록 했다.

심지어 위력이 강력한 산소어뢰를 장비한 일본 제국의 후부키급 구축함같은 경우에도 야전에서 아직 레이더 기술이 발달하지 못해서 전함의 주포가 제 성능을 못낸다는 것을 이용해서 경순양함이 기함이 되고 구축함들이 참가하는 수뢰전대로 전함에게 초근접해서 어뢰를 집중난사할 생각을 했지 주간전같이 전함의 광학식 사격통제장치가 정상적으로 작동하는 상황에서는 당연하게도 교전을 회피하였고 이건 일본군에서도 당연한 상식이었다. 전함은 동급의 전함이나 그 이상의 전함으로만 상대가능하다란 말이 나온 이유가 있는 것이다.

이리하여 드레드노트급 전함부터 일제 사격과 협차사격이 제대로 작동하기 시작하며 전함은 자신의 주포를 원거리에서 효과적으로 명중시킬 수 있는 능력을 보유하게 되었으며 거포와 중포가 보유한 스펙을 제대로 써먹게 된다.

이렇게 되자 중순양함 이하급의 군함은 전함에 접근할 때 전함의 주포탄을 고속으로 회피하면서 말 그대로 목숨을 걸어야 했고 정면승부로는 전함을 상대할 수 없었다. 물론 야간에 해전을 시행한다던지 해안선이나 섬의 그늘에 숨는 식으로 매복했다가 불시에 고속으로 초근접해서 어뢰를 난사한다던지 하는 방법이 있긴 했지만 날씨와 시간과 지형을 까다롭게 가리는데다가 적이 멍청하게 그렇게 불리한 때와 장소를 선택한다는 행운도 있어야 했다. 설상가상으로 만일 적이 그렇게 아군에게 유리한 선택을 하더라도 호위함을 다수 데리고 오거나 하면 습격이 실패하기 딱 좋고 기술의 발전으로 레이더같은 장비가 발전하면 야간이라고 해도 원거리에서 전함 주포탄이나 제대로 얻어맞기 딱 좋다는 문제점이 있다.

결국 항공모함함재기가 본격적으로 발전하기 전까지는 전함을 막을 수 있는 것은 동급의 전함이나 그 이상의 전함을 투입하는 것 뿐이었고 항공모함과 함재기가 발전한 후에도 6.25 전쟁 시기까지는 엄호 목적이나 최후의 방어선 목적이나 마무리 타격용이나 대공방어용이나 항공력을 사용할 수 없는 경우 등 다양한 용도로 전함이 꼭 필요하게 된다.

따라서 해전용으로 본격적으로 대함 미사일이 보편화된 후에나 일제 사격과 협차사격의 가치가 없어지게 되고 전함의 위협성도 사라지게 된다.

6.3. 방뢰 체계

전함은 강력한 공격력을 보유하지만 자신의 공격력을 전투가 진행되는 동안 최대한 유지하기 위해, 그리고 사소한 공격에 타격을 입고 전투력을 상실하는 것을 막기 위해 강력한 방어력을 요구받았다. 그래서 자신의 주포를 막아 내는 동시에, 해군 함선 및 항공기가 사용하는 어뢰공격인 뇌격을 버틸 수 있는 방어 구조를 목표로 했다.

어뢰는 19세기 중반에 발명되었고, 어뢰정, 구축함 부터 시작해서 순양함은 물론, 전함 그 자신들도 2차 대전 시기에 달고 다니는 함선이 있을 정도로 흔한 무기였다. 따라서 전함의 설계자들은 어뢰를 막기 위한 대책을 세워야 했다. 뇌격을 버티는 구조를 이른바 벌지와 방뢰 구조라고 한다. 벌지는 방뢰 벌지의 준말로 함선의 외부에 위치한 일종의 공간장갑의 효과를 노린 증가장갑으로, 그 역할은 뇌격의 효과를 함선 외부에 국한시켜 함체 자체에의 피해를 최소화하는 것이다. 방뢰 구조라는 단어는 상술했듯 단순히 함체 외부에 국한되지 않으며, 함선 내부에서 침수에 저항하고, 침수된 구획을 한정시켜 함선 전체에의 영향을 최소화 시키는 설계 전부를 말한다. 이들을 통합한 단어인 방뢰 체계(逮繫)는 어뢰에 대응하기 위한 일련의 시스템 전체를 이른다. 함선 내부 구조로는 수밀 격벽 및 구획화된 용골등, 함선 외부 구조로는 방뢰망과 방뢰벌지가, 현대에 이르러서는 어뢰 요격용 어뢰가 이에 포함된다.

결론만 이야기하면, 결국 전함의 방뢰 체계는 어뢰라는 창에 완벽하게 대응하는데는 부족한 수준의 약한 방패가 되었고 어뢰는 전함을 격침시키는 정공법으로 자리잡는다. 이렇게 된 이유는 장갑을 붙이기에도 배수량이 부족한 실정인데 충분한 방뢰 체계를 갖추기가 어려웠던 것에 있다. 여기에 더해서 어뢰가 급속하게 발달하면서 속도가 증가하고 탄두의 중량도 늘어나서 점점 막기가 버거워지는 수준에 이르렀던 것이다. 제1차 세계 대전때 사용하던 방뢰망(Anti-Torpedo Net)은 항행 중 사용이 어려워서 정박시에만 펼치는 방식으로 사용되었으나 어뢰가 발전하면서 그 정도로는 돌진하는 어뢰를 막을 수 없게 된다. 덕분에 방뢰망은 정박시에도 불필요한 물건이 되었으므로 군함에서 철거되고 만다.

이런 것을 극복하기 위해 제2차 세계 대전에 참전한 거의 모든 전함들은 나름의 연구를 통해 개발된 벌지를 포함한 방뢰 구조를 지니게 되었다. 일부 함선의 경우 되려 '그런걸 넣었기 때문에 어뢰에 더 취약해진거 아니냐?'는 의심이 있기도 했는데, 이러한 의문이 제기된 예는 리토리오급 전함뿐이며 그나마 이것도 이론적으로는 확실한 성능을 보장하나 당시의 제작기술이 이론을 실현하기에는 크게 부족했기 때문이라고 결론이 난 내용이다. 미 해군이 사우스다코타급 전함에서부터 채택한 방뢰구조가 효과적이지 못했다는 얘기도 있는데, 이는 어디까지나 이전에 채택한 구조에 비해 상대적으로 그러하지 못했다는 이야기일 뿐이며 그 차이 또한 아주 현격한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이러한 방어 구조 또한 어뢰의 발전속도를 따라잡지 못했고, 결국 전함의 어뢰에 대응하는 방식은 맞고 버티기에서 최대한 안 맞기로 옮겨왔다. 뇌격기에 대응하고자 전함을 포함한 대형함들은 장거리 방어용의 대구경 대공포, 중거리용의 소구경 대공포와 근접 방어용 20mm ~ 40mm기관포의 다층 방어 체계를 구축했고, 미국은 여기서 한 술 더 떠서 함대원형진을 도입했다. 원형진 최외각에 위치한 구축함은 대공방어와 대잠전을 수행했으며 더 안쪽에 위치한 순양함급 함선이 강력한 대공화력을 제공했다. 원형진 중심부에는 전함과 항공모함 등의 최중요 전력이 위치했는데, 호위 구축함이 이들 곁에서 최후의 방공망을 형성했다.[10][11]

다만 이 원형진도 문제가 있었다. 바로 아군 오사였다. 함선들 사이의 거리가 좁아 원형진 깊숙히 침입한 적 뇌격기를 격추하기위해 발사된 기관포가 아군 함선에 착탄하는 경우가 잦았고, 이로 인해 사상자가 다수 발생했다. 일부 공습 상황에서는 완벽히 요격했음에도 아군오사에 의한 사상자가 기록되기도 했다[12]. 방뢰 구조는 건재하여 한정된 어뢰의 위협에 대응했고, 이들의 목적은 1 ~ 2발 수준의 어뢰 피격을 견뎌내고 전투력을 유지하거나, 전장 이탈전을 뚫고 모항으로 귀환하기 위한 최소한의 항행성능을 유지하는 것이었다.

현대에 이르며 방뢰 벌지는 점차 얇아졌고 결국 완전히 사라졌다. 그 이유는 방뢰망과 같아서 방뢰 벌지도 더 이상은 진보된 어뢰의 위협에 대해 유효한 방호력을 제공하지 못했고, 함체 외부 구조임에서 기인하는 항행성능의 악영향만이 남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전기 때 연구되고 실증되었던 어뢰 방어 사상과 기술은 현대까지도 이어졌고, 항공모함등의 대형함은 여전히 이들의 설계를 계승, 발전시켜 적용하고 있다.

6.4. 집중 방호와 대응방어

전함을 설계할 때 가장 먼저 고려되는 것은 적 전함의 장갑을 뚫고 하위함들을 압도하는 주포를 장착하고, 반대로 적 함선의 포격을 버티는 장갑을 두르는 것이다. 이것은 전함의 존재 의의이자 설계자들의 개발 목표였다.

여기서 동급의 전함에서 발사되는 주포탄을 방어해야 했기에 방어 기준을 잡아야 했다. 그래서 대응방어 개념이 나왔다. 해당 개념을 좀 더 자세하게 설명하자면 자신의 주포에서 발사된 주포탄 1발이 명중했을 때 막을 수 있는 수준의 장갑을 말하는 것이다. 더 강한 포탄이 아니라 자신의 주포를 기준으로 삼은 이유는 일반적으로 주포 구경에 따라 배수량도 제한되며, 따라서 12인치 혹은 15인치 주포를 달고 있는 적 전함은 일반적으로 자신과 대등한 규모이기 때문이다. 물론 더 강한 전함이 나올 수도 있지 않냐는 반론이 있을 수도 있지만, 보통 해당 전함이 건조된 시대의 기술적 한계로 인하여 어느 정도 제한이 가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대응방어는 12 ~ 18인치 구경의 초대형 주포를 2 ~ 3연장으로 장비한 주포탑과 함께 전함의 상징이자 존재 의의로 여겨진다.

대응방어를 달성하기 위한 전함의 방호 구조를 크게 나누면 소위 말하는 터틀백 구조와 집중 방호 구조(All or Nothing)로 크게 나뉜다.
파일:British BattleShip Armor.jpg
영국 전함의 장갑 구조를 시계열 순으로 나열

드레드노트급 전함부터 후드까지는 제곱근([math(\sqrt x)]) 형태의 장갑 구조를 가진 것을 볼 수 있는데, 수직으로 세워진 현측 장갑이 특히 두껍고 갑판 장갑은 얇은 것을 볼 수 있다. 이 수직 장갑은 함선의 선체 외벽에 두르는 식으로 설치되었기 때문에, 밴드 장갑(banded armor)이나 벨트 장갑(belt armor)이라고 한다. 이 장갑 구조에서는 함선 외벽에 장갑을 두른 다음, 엔진실 천장이나 탄약고, 주포탑 같은 바이탈 파트에 따로 장갑을 두르는 식(Incremental Armor)으로 설계가 이루어졌다.

벨트 장갑 위주의 구조는 보통 세 가지 문제가 있었다. 모든 나라가 이러한 문제점을 공유하던 것은 아니었으나 1 ~ 2개는 공유했다.

첫번째는 일본과 영국에서 각각 쓰시마 해전유틀란트 해전의 전훈을 분석한 결과, 장거리 포격전으로 양상이 바뀌면서 주포탄이 대낙각으로 높은 곳에서 뚝 떨어지는 형태로 공격해온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지만, 이를 막기 위한 갑판 장갑이 너무 얇다는 문제가 있었다.

두번째로는 영국 해군의 경우, 대구경의 고폭탄을 함상 구조물에 작렬시키면 적 함선에 큰 데미지를 줄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이를 막기 위해 함선의 갑판마다 장갑을 달아서 최종적으로는 여러 겹으로 고폭탄을 막기 위한 장갑을 두르고 있었다. 그런데 유틀란트 해전의 전훈을 분석한 결과, 바이탈 파트 중에서도 탄약고에 직격해서 관통한 후 폭발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함선 자체는 어떻게든 살아돌아왔다. 그런데 기존 장갑 구조는 여러곳에 많은 장갑을 두르고 있었기 때문에 탄약고에 장갑을 집중하기 어려웠기에 탄약고 장갑이 필요에 비해서 부족하므로 탄약고에 직격탄을 맞으면 함선이 끝장나는 문제가 있었다. 물론 기존에도 탄약고에 추가 장갑을 배분하고는 있었으나, 그것으로는 모자랐던 것이다. 따라서 어정쩡하게 사방에 두르느니, 바이탈 파트를 한 곳에 모아서 장갑을 집중 투자하는 설계를 구상하게 된다.

마지막으로는 미국의 문제 의식이었다. 미 해군 제독들은 뉴욕급 전함의 제작 경험을 통해서 함선이 함수부터 함미까지 5개의 주포탑과 연돌, 2개의 마스트로 구성된 바이탈 파트가 끝없이 이어져서 사방에 증가 장갑을 쳐바른데다가 동선도 엉망이고 승조원 생활 시설을 둘 공간조차 부족한 엉터리 설계에 학을 떼었던 것이다. 이미 와이오밍급 전함에서 뉴욕급 전함으로 갈 때도 주포탑 1기를 제거해본 경험을 살리는 한편 위의 문제를 고치고자 네바다급 전함을 시작으로 표준형 전함을 만들었다. 즉 미국은 새로운 전장 상황에 대응하기 위해서 표준형 전함을 설계한 게 아니다. 그러나 건조 당시 미국 의회가 설정한 매우 적은 예산으로 최대한 효율적인 함선을 설계하기 위해 노력한 결과 우연의 산물 치고는 미래의 상황에 맞게 제대로 만들어서 집중 방어구조를 일부분이나마 제대로 도입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파일:800px-Nagatoarmor.svg.png
나가토급 전함의 장갑구조

그 결과 3대 해군 열강국에서 나가토급 전함, 넬슨급 전함, 네바다급 전함이 집중 방호 아이디어가 반영된 구조로 설계되어 진수된다. 나가토급 전함은 위에서 보듯이 기존의 구조에서 갑판 장갑을 다층구조긴 하지만 처음에는 총합 100mm까지, 나중에는 196mm까지 두텁게 늘렸다. 이렇게 현측장갑과 갑판장갑을 모두 강화하면서 기존의 벨트 장갑 형상을 유지한 장갑 구조를 개량된 터틀백 구조라고 부른다. 기존의 터틀백 구조는 현측에 착탄한 포탄에 대한 방어만 중시하지만 강화된 터틀백 구조는 갑판의 방어까지 중시하기 때문이다. 구분점은 터틀백 구조의 최대 특징이 남아있다는 것으로 함선 내부에 현측 장갑과는 분리되어 후면에 위치한 경사장갑 구조가 남아 있다.

하지만 본질적으로는 이렇게 강화를 할 경우에는 특히 갑판방어 측면에서 장갑을 투입한 것에 비해 실제 방어력이 부족해지며 특히 다층방어구조임에도 불구하고 내부로 침입한 포탄이 폭발시에 타격을 막아낼 내부탄편방어 장갑을 제대로 깔기도 어렵게 되므로 내상이 심해진다. 그래서 터틀백 구조를 포기하고 갑판장갑을 단일화해서 두껍게 만들고 위치도 올려서 내부 보호면적을 늘려서 승조원과 시설도 보호하고 내부탄편방어 장갑도 증가시켜서 최대한 외부에서 주포탄을 막아내고 만일 주포탄이 관통해도 폭발 피해를 줄이는 방향으로 개량이 된다. 바로 그 결과물이 야마토급 전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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넬슨급 전함의 장갑구조

넬슨급 전함은 위의 그림에서 보듯이 주포탑 세 개를 한 곳에 모두 모으고 3번 주포탑 바로 뒤에 있는 함교 전면부에 사격지휘실[13]을 두어서 이 네 개의 구조물을 가장 두터운 장갑으로 에워싼 성채(Citadel)를 형성했다. 그래서 넬슨급 전함은 됭케르크급 전함과 함께 둘 밖에 없는 집중 방호 개념을 온전히 구현한 전함으로 평가된다.

그러나 집중 방호를 타국이 개념까지 전혀 몰라서 넬슨급 전함처럼 극단적으로 반영하지 않은 게 아니다. 넬슨급 전함의 경우에는 딱 주포탑과 사격지휘실만 보호될 뿐 동력기관과 함교의 대부분의 방어가 상대적으로 약하거나 매우 약하다는 문제점이 존재한다. 이래서는 전투시에 동력기관에 1발 맞고 안그래도 배수량에 대비하여 출력이 약해서 과부하로 고통받는 넬슨급 전함의 동력기관이 파손되거나 충격으로 고장이 나서 멈춘 다음 함교에 1발 맞고 조준장비가 박살나는 일을 겪게 된다. 그러면 주포가 살아있어도 원거리 전투가 사실상 불가능해지므로 샌드백으로 전락하면서 전투력을 상실해버린다. 한마디로 말해서 탄약고 방어가 중요하지만 탄약고만 극단적으로 방어하는 것도 안좋다는 것이다.

이런 문제점 때문에 다른 국가의 집중 방호는 바이탈 및 중요구획을 문제가 안생길 정도로 집중시켜서 바이탈이 쓰는 장갑의 배수량을 줄이는 아이디어였지, 우리가 흔히 아는 것처럼 함의 격침을 막기 위한 바이탈의 요새화 개념이 아니었다. 그래서 영국의 집중 방호 개념도 어느 정도는 알고 있었고 유용하므로 설계에 반영은 하지만 온전히 구현하진 않은 것이다.

넬슨급 전함 역시 온전한 집중 방호를 구현하지 못했다는 일부 지적도 있다. 왜냐하면 N3급 전함에서는 탄약고와 주포같이 보호 받는 영역과 엔진실처럼 그 다음으로 보호받는 부분을 모두 합쳐서, 이들 영역이 모두 무사하다면 그 외의 선체는 완전히 침수되어도 무방하다는 개념이 함선의 설계에 존재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즉, 영국 해군성이 처음에 연구한 집중 방호 구조는 장갑 외에도 침수까지 고려한 구조였다. 하지만 워싱턴 해군 군축조약에 따라 넬슨급 전함을 만들게 되면서 엔진실을 대거 줄여버렸고, 침수 방호(?) 개념은 이후로 그 어떤 전함도 구현하지 않았다. 침수에도 완전 방호를 가진다는 개념이 도가 지나친 걱정으로 보이긴 하지만, 이후 제2차 세계 대전에서 야마토급 전함 무사시는 N3급 전함의 설계자들이 우려한 침수 시나리오대로 격침되고 만다. 심지어는 무사시는 선수부만 완전 침수된 상태였다.

미국의 표준형 전함들은 나가토급 전함과 비슷한 함교와 주포탑 배치를 했지만, 장갑의 구조는 넬슨급 전함과 비슷하되, 현측 장갑이 수직으로 제작되었다.
파일:35000Battleship Armor.png
기준배수량 3만5천롱톤급 고속전함의 방어구조

이후 군축 조약의 영향하에서, 각국의 방어 구조 설계가 갈린다. 영국의 경우 킹 조지 5세급 전함뱅가드급 전함에서 현측 장갑을 수직으로 바꾸고, 후드의 설계 결함을 의식해서 방뢰 벌지 위까지 현측 장갑을 덮는다. 이후 후드가 정말로 격침되면서, 뱅가드급 전함에도 이 구조가 유지된다. 현측 장갑을 경사 장갑에서 수직으로 바꾼 이유는 넬슨급 전함의 구조에서는 경사장갑으로 도탄이 나는 경우, 벌지쪽으로 들어가면서 수면 아래의 장갑이 얇은 영역을 관통할 수 있다는 우려가 있었기 때문으로 알려져 있다.

또한 전방에 밀집한 주포탑 배치 구조를 포기하였는데 이는 리슐리외급 전함처럼 4연장 주포탑 2기 정도의 경우가 아니라면 주포탑 3기 체제로는 적어도 1개 주포탑 이상이 사각의 제약을 받을 뿐더러 전면에 주포탑이 밀집했는데도 불구하고 함수방향으로 100% 화력을 발휘못하면서 함미방향으로는 주포탑이 없어서 적이 추격해올 경우 대응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주포탑 배치를 변경하면서 함미방향에도 주포탑을 배치함과 동시에 함교와 동력기관을 포함한 넓은 면적을 장갑으로 에워싸게 된다. 이를 통해서 넬슨급 전함의 완전한 집중 방호 개념을 포기하고 상대적으로 균형이 잡힌 방호방식으로 전환한다.

미국은 반대로 노스캐롤라이나급 전함에서 현측 장갑을 넬슨급 전함처럼 경사장갑으로 바꾸었으며, 사우스다코타급 전함아이오와급 전함에서는 아예 벌지 안쪽까지 연장된 현측 장갑으로 제작했다. 일본의 야마토급 전함 역시 측면 단면도 기준의 장갑 구조는 사우스다코타급 전함과 유사하다. 이 점 때문에 일본, 미국이 과거에 사용했던 수직 장갑으로 돌아간 영국 해군의 장갑 구조가 퇴보했다는 이야기가 돌게 되지만, 실제로는 공학자들이 다른 결론을 내린 것에 불과하다. 이들 전함들 역시 함교 전체와 동력기관을 방호 구역에 넣었기 때문에, 완전한 집중 방호와는 거리가 있다. 이를 위해 상부 구조물이 있는 영역에서는 이를 공간장갑으로 활용하기 위해 장갑을 줄이기도 하였다.

2차 세계 대전의 신형 전함 중 방어구조에서 가장 평가가 안좋은 독일의 비스마르크급 전함은 나가토급 전함과 거의 같은 구조의 개량된 터틀백을 구성하였는데, 이러면서도 집중 방호 구획으로 설계한다는 아이디어를 구상하질 못했고, 바이탈 파트에 추가 장갑을 두르는 1차 대전식 설계에 머무르게 된다. 미국이 표준형 전함을 설계한 계기에서 보듯이 이렇게 설계하면 장갑에 너무 많은 배수량을 투자하게 되는데, 독일 해군은 배수량을 아주 크게 더 늘린 다음 대외적으로는 축소 발표하는 것으로 대응한다.

그리고 이정도 수준에 도달하자 함선 설계 관계자들로부터 전투력을 유지하는 수준의 방어력이라는 수정된 개념이 나오게 된다. 이는 앞서 말했던 어뢰 방어체제인 방뢰체제에서도 나오는 것이지만 워낙 공격력이 강력하니 완전한 방호는 어렵고 피탄시 관통은 피할 수 없지만 내부 구조를 강화해서 적어도 럭키샷 1 ~ 2발에 함선이 유폭하면서 격침되는 것은 막고 피탄이 지속되어 피해가 누적되면 침몰하지만 그 때까지 상대방과 전투를 지속할 수 있는 능력으로서의 방어력만 추구하자는 것이다. 야마토급 전함 3번함인 시나노와 그 이후의 A-150 전함이 장갑을 오히려 대부분 10mm ~ 30mm 감소시키고 A-150 전함에 한해서 측면장갑만 460mm로 늘린 것이 460mm와 510mm 주포에 대응하는 대응방어가 사실상 어렵고 과잉방어라고 생각해서 16인치(406mm) 주포탄에 대한 대응방어 수준으로 낮춘 결과였다.

결국 전함의 장갑방어도 결론적으로는 방뢰 체제와 비슷한 경로를 걸어가게 된다.

제2차 세계 대전에서 각국의 장갑 구조는 시험에 들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실제 전투시 수십년 간의 기술 발전으로 집중 방호 구역 밖에 둔 전자 시설들과 광학 조준 장치 및 기타 시설들이 너무 귀중해진 문제가 생긴다. 즉, 시간이 흐르고 흘러서 영국 해군이 처음에 착각했던 '고폭탄으로 상부 구조물을 쓸어버리면 바이탈에 장갑을 둘러봤자 소용없는 거 아니냐'는 개념이 갑자기 실전성을 획득해 버린 것이다. 이 흐름은 현대까지 이어져서, 해군 군함에서 최고로 가치가 높은 시설물의 자리를 레이더가 꿰차게 되었다.

대표적인 사례가 과달카날 해전의 2차전에서 사우스다코타급 전함 1번함 사우스다코타가 겪은 일로 수리시 안전수칙 위반으로 전기시설이 고장나서 그냥 움직이는 표적 상태로 일본군에게 노출되어 집중사격을 맞는 일이 발생한다. 장갑구조는 튼튼하여 공고급 순양전함 4번함 키리시마가 5km 라는 초근접거리에서 쏜 91식 철갑탄은 충분하게 막아냈지만 3식 통상탄 및 키리시마의 호위 함선들이 쏜 중구경탄과 소구경탄이 상부구조물에 집중적으로 명중하여 레이더를 비롯한 전자장비의 손실이 막대했던 것이다. 해전은 노스캐롤라이나급 전함 2번함 워싱턴이 키리시마를 9km 거리에서 개박살냄으로서 종료되었지만 사우스다코타는 침몰 위험은 없고 자력항해는 가능하고 승조원 피해도 크지 않았지만 전투력을 상실하여 수리를 위해 전장을 이탈하게 된다.

이런 문제는 해결이 어려웠다. 목표의 탐지와 추적을 위해 함선 내부의 가장 높은 곳에 올라가야 하는 장비에 중장갑을 도입할 수가 없고 장갑을 둘러봤자 작은 구조물의 경우 전함급 주포탄이 명중하면 통째로 뜯겨져나가며 여러 단점을 무시하고 실제로 중장갑을 달아놓을 경우 무게중심이 급상승해서 함선이 급선회만 해도 배가 뒤집어질 수 있다. 덤으로 안테나 같은 돌출부는 아예 장갑을 달 수가 없다. 굳이 해결법이 있다면 우월한 레이더와 사격통제장치를 쓰고 호위함을 동원해서 적이 근접하기도 전에 집중타격해서 제거해버리는 방식이 유용하며 대공방어의 경우에는 양용포를 쓰고 VT신관을 동원하여 적 항공기를 일부는 격추하고 일부는 쫒아내는 방법 밖에는 없었다.

결국 레이더를 포함한 전자 기술의 발전은 주포 사격의 정밀도와 연사 속도를 크게 늘려주었지만, 반대로 전함의 장갑의 가치는 낮춰버렸고, 결국 전함의 몰락 원인중 하나가 된다.

6.5. 배수량과 동력기관

전함하면 흔히 연상되는 것이 거대한 크기와 배수량을 보유하고 강력한 동력기관으로 원양을 힘차게 항해하는 것인데 이런 것이 실제로 달성된 것은 2차대전 시기에 등장한 최후기형 고속전함에 도달해서야 가능해진 것이다. 그 전까지는 배수량 한계와 출력부족과 뭔가 모자란 항속거리에 시달린 것이 전함이다.

사람들이 흔히 생각하는 것처럼 전함을 무작정 크고 무겁게 만들 수는 없다. 자재와 비용과 인력과 시간문제가 터지는 것은 둘째치고라도 전함을 건조할 도크와 조선소도 거대하게 만들고 전함이 정박할 항구도 크게 만들고 항구 주변 바다도 전함이 지나갈 수 있도록 바닥을 준설해서 깊게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전함이 항구 1곳에만 계속 정박하는 것이 아니므로 이런 작업을 주요 항구 및 해외의 주요 거점에도 어느 정도 수준으로는 완료해놓아야 전함을 제대로 운용할 수 있다. 물론 전함과 관련된 산업도 크게 육성해야 하고 충분한 기술력도 보유해야 한다.

따라서 전함은 배수량의 제한을 받기 때문에 한정된 배수량에서 주포와 장갑에 투자를 많이 하면 동력기관에 배분할 수 있는 배수량이 크게 줄어들고 동력기관을 탑재할 공간도 크게 줄어든다. 이렇게 되면 전함이 느려터지고 항속거리가 줄어들며 원양항해가 힘들게 되므로 실전에서 써먹기가 매우 곤란해진다.

당장 전함이라는 이름이 처음으로 붙은 전드레드노트급 전함부터 배수량과 동력기관 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한다. 후대의 중순양함급 배수량에다가 12인치 (305mm) 2연장 주포탑 2기를 탑재하고 중간포, 부포, 속사포를 다량 탑재한 후 전함에 걸맞은 두꺼운 장갑까지 달아놓으니까 동력기관에 배분할 배수량과 공간이 크게 부족해서 기본적인 출력이 모자라므로 속도가 크게 느려진 것이다.

여기에 더해서 당대의 동력기관은 3단 팽창식 피스톤 왕복 증기기관이라서 출력도 부족한데 정비소요는 높은 기관이었다. 덤으로 작동시에 엄청난 진동과 소음이 발생했으며 당시의 기술력 부족과 동력기관을 구성하는 재질의 불량으로 인해 수시로 부품파손과 증기누출이 발생했다. 그래서 전드레드노트급 전함은 잘 해봐야 18노트가 한계였고 최고속력을 유지하는 기준도 신품 엔진 + 정비 완료 상태에서도 2시간이 한계며 보통은 1시간 정도 전력으로 작동한 후에는 긴급점검이 반드시 필요했다. 그래서 후기형 장갑순양함이 더 속도가 높고 속도유지시간도 길다는 점을 이용해서 전드레드노트급 전함을 농락하기도 하는 것이다.

이런 문제는 드레드노트급 전함에서 증기 터빈을 적용하면서 1차적인 개선이 이루어졌으나 아직 함체를 확장하고 배수량을 증가시키는 일이 기존 도크를 사용해야 하는 관계로 인해 미흡해서 속력이 21 ~ 22노트 수준에 그쳤으며 슈퍼 드레드노트급 전함에 들어가면서 주포를 확대하는 김에 함체를 늘리고 배수량을 증가시키면서 계속 동력기관을 증설 및 강화하여 속력을 25노트대까지 늘린 최초의 고속전함이 나타나게 된다.

그러나 여전히 속도는 부족하였고 30노트대 속도까지 올라간 순양함을 추적하기도 곤란한 것은 물론이거니와 1차대전에서 벌어진 함대결전급 해전에서도 전함의 속도가 느려서 신속대응전력으로 함께 투입된 순양전함을 따라잡지 못하므로 결국 순양전함이 각개격파당하는 등의 사태가 터지게 된다.

결국 그냥 배수량을 최대한 늘리고 함체도 최대한 확장해서 동력기관을 순양전함급으로 엄청나게 박아넣는 것이 해결책으로 나왔으나 이미 시대가 변해서 전간기로 접어들고 각종 군축조약이 등장하면서 전함의 배수량이 3만5천롱톤으로 제한당하는 바람에 동력기관의 기술력을 집중해서 최대한 작고 가벼우면서도 출력이 높도록 만들게 된다. 이런 우여곡절 끝에 2차대전에서는 대개장한 전함은 특별한 사유가 없다면 보통 25노트 이상의 속력을 가지게 되고 신형 전함들은 30노트에 근접하거나 30노트를 달성하게 된다.

그러나 군축조약의 유지기간이 의외로 길었고 군축조약을 탈퇴한 국가들도 경제력등의 문제로 인해 배수량 확대가 잘 이루어지지 않거나 강력한 신형 거포를 탑재하기 위해 배수량 증대분을 대부분 사용하는 통에 시원할 수준의 속도 개선은 어려웠고 결국 제2차 런던 해군 군축조약의 에스컬레이터 규정인 기준배수량 4만5천롱톤 안에서 파나마 운하를 통과 가능하다는 2중 한도 안에서 동력기관을 최대한 박아넣은 아이오와급 전함이 가장 빠른 전함이 되고 만다. 파나마 운하 통과 가능조건만 있다면 최대 전함의 기준인 전장 304,3m, 전폭 32,9m, 흘수선 10m 안에서 5만3천롱톤 수준의 배수량을 확보해서 좀 더 나은 성능과 구조를 가질 수 있었고 설계안도 이미 존재했지만 그 놈의 군축조약 때문에 더 힘들어지게 된 것이다.

따라서 전함의 속도는 계속 향상되었으나 결국 여러가지 굴레로 인해 100% 만족스러운 수준까지는 오르지 못하고 끝난다.

7. 위상과 실제

7.1. 전함의 위상

파일:테케토프급_드레드노트.jpg
1917년, 풀라 항에 정박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해군의 주력함대인 제1전함전단 제1중전대의 모습.
3척 모두 테게토프급 전함이다.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BB61_USS_Iowa_BB61_broadside_USN.jpg
주포 9문을 동시 발사하는 미 해군의 아이오와급 전함.
충격파 때문에 바다가 움푹 패이고 반동으로 58,000톤의 선체가 뒤로 밀린다.

전함과 전함이 교전하는 해전은 매우 웅장한 모습을 보인다. 과달카날 해전 당시 해안에서 전투를 목격했던 미 해병대원들은, 미국과 일본의 거대하고 둔중한 전함전단들이 가공할 포격을 근거리에서 주고받는 모습이 마치 거인들의 싸움 같았다고 회고했다.[14] 그들의 증언처럼, 당시 전함이란 단순히 강할 뿐인 해군 함선이 아니라 재래식 해군 군사력의 총아이자 궁극적인 결정체였다.

동시에 이들은 국력과 공업력의 상징이기도 했다. 누구나 만들 수 있는 군함이 절대 아니었으며 운용하기도 어려운 병기인지라, 건조비도 매우 비싸게 먹혀 거대 전함을 여러 척 건조한다는 것은 국가 경제에 큰 부담으로 작용할 정도였다. 물론 그 위상도 막강해서 핵 등장 이전의 최상위 전략병기였으나 위력으로 따지면 핵무기가 일단 압도적이지만 운용비용이나 제작비로 보나 전함이 훨씬 비싸다. 핵무기는 재정부담으로 감축이 된 적은 없지만, 전함은 건조비용 부담으로 군축조약까지 체결하게 되었다. 심할 때는 전함 한 척이 국가예산의 5%를 잡아먹는 경우도 있었는데, 이게 경쟁국의 보유량에 따라 가변적이고 궁극적으로는 재귀적(상대방도 이쪽 보유량에 따라 목표를 높인다!)인 보유량 목표를 갖게 되니... 국 예산도 아니고 국 예산의 5%였다. 보통의 전함은 1척으로는 이렇게까지 비싸지는 않지만 88함대에서 보듯이 전함이 1척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서 해군이 요구하는 수준으로 건함을 하다보면 답이 안나왔다. 오죽하면 88함대계획에 대해 집중적으로 연구한 88함대물어(物語)에 따르면 그 예산은 88함대를 만드는 것만으로 끝없이 총력전이라고 할 수준이었다. 실제로 1921년 수준에서 일본 제국 국가 예산의 30% 이상이 일본 제국 해군 건함 비용이었다.

이렇게 전함 건조와 유지에 들어가는 재원이 어마어마하니, 전함은 국가의 자랑이자 국력과 자부심을 보여줄 수 있는 척도였다. 그래서 함명 역시 별 볼 일이 없는 흔한 단어가 아니라 뜻 깊은 이름을 받는 경우가 많았다. 20세기 초까지 전함을 너무 많이 뽑아내서 붙일 이름이 없어 형용사를 주는 게 일반적이었던 영국 해군을 제외하면, 대부분 자국의 위대한 인물이나 최상위 행정구역을 함명으로 붙였다. 일본 제국 해군은 오기칠도에 따른 봉국명을 붙였으며 물량으로 유명한 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군에게도 전함은 귀중한 존재라서 미국의 최고 행정구역인 주 이름들을 주었다. 그것도 그냥 상징일 뿐만 아니라 그 국가의 자존심이자 꿈이기도 했다. 비스마르크 추격전만 봐도 영국 해군의 상징이자 자존심인 후드가 격침되자 모든 영국 해군 군함들이 명령을 받지 않았음에도 군무이탈해버릴 정도로 자발적으로 그 추적전에 참전했다. 특히 해군 장관 역임했던 처칠과 그 당시의 제독까지도 어떠한 대가를 치르든 비스마르크를 잡는 것이 최우선 순위로 오를 정도였으니 말 다한 셈이다.

그리고 21세기 들어서도 각 해군의 중요한 함선들에는 옛날 전함의 이름이 붙기도 한다. 해군 특성상 병기들의 이름을 돌려쓰는 경우가 잦고, 웬만큼 중요한 이름들은 20세기에 전함이 다 선점했기 때문에, 미국처럼 중요 함선들의 명명방식이 크게 바뀌지 않는 이상에야[15] 전함의 이름을 쓸 수밖에 없다. 예를 들자면 컨스텔레이션급 호위함,[16] 인빈시블급 항공모함, 퀸 엘리자베스급 항공모함, 휴우가급 헬기구축함, 공고급 구축함,[17] 이즈모급 다용도 운용모함[18] 등등...

전함의 전성기 시절에는 전함을 정면에서의 전투로 잡을 수 있는 건 본질적으로 전함 뿐이었다. 그나마 어뢰가 등장한 이래 소형함이 전함에 대항할 수 있는 가능성이 생겼지만, 전함을 호위할 목적으로 구축함을 도입하면서 결국은 전함의 무적성(정확히는 '전함이 포함된 함대'의 무적성)이 재증명되었다. 이러한 전함의 무적성이 붕괴한 것은 진주만 공습 이래 항공모함이 적극적으로 운용되고 핵무기가 개발된 이후다.

다시 이야기를 2차대전 직전까지의 전함 전성기로 되돌리면, 전함은 전함 단독으로 활동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전략의 단말로서 무수한 호위, 지원함을 동반하는 것을 전제로 한다. 전함을 둘러싼 함대는 현대의 항모전단과 같은 역할을 한 것이다. 따라서 통상로 한가운데 적 전함을 중심으로 한 함대가 자리잡으면 아군 역시 전함을 포함한 함대를 내보내 퇴치하지 않는 이상 그 항로는 끊어진 것이나 다름없었다. 2차 대전기에조차도 독일이 눈에 걸리는 건 다 죽이겠다고 바락바락 악을 쓰며 무제한 잠수함 작전을 펼쳐도 근성으로 호송선단을 투입하고 호위함을 똘똘 뭉쳐 선단호위 전술을 완성했지만, 티르피츠가 출격하자 전함을 저지하기 위해 호위함대가 분리, 결국 호송선단이 U보트에게 난자당하고 한동안 수송작전 자체가 중지된 사례까지 있다.

당시 열강들은 해외에 있는 식민지를 바탕으로 강한 국력을 확보했고 본국과 식민지를 연결하는 건 바다이므로 그 바다를 잃어버린다는 것은 국력의 급격한 쇠퇴와 같은 말이며 열강으로서의 자격을 잃고 지역강국으로 전락해버리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 전함은 그 바다를 절대적으로 지배하니, 전함의 보유량은 곧 국력과 기술력의 상징이었다. 전함을 건조할 수 있었던 국가는 영국, 독일, 프랑스, 미국, 러시아, 이탈리아, 오스트리아, 일본 정도였고, 외국에 발주를 해서 전함을 구입할 수 있던 곳은 그리스, 터키, 아르헨티나, 브라질, 칠레 정도였다.

덧붙여서 중국은 수입한 군함만으로 그럭저럭 당시의 열강 말석급의 해군력을 갖추기도 했고, 보유 함대의 일부만을 아시아에 보낼 수 있는 유럽 열강과 달리 본토에 모조리 모아둘 수 있다는 장점으로 한동안 유럽을 긴장시키기도 했다. 원래 유럽 국가들이 아시아 지역에 해군력의 100%를 투사하는 건 상대하는 국가가 청나라냐 일본이냐에 따라 갈리는 게 아니라 그냥 물리적, 지리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다. 그런 상황 속에서 청나라 해군이 본인들의 홈그라운드인 동중국해, 남중국해에서 유럽 국가들의 해군에 한 방 먹일 가능성이 꽤 높은 건 사실이다. 다만 운용력이 딸려서 청일전쟁에서 일본에게 갈리고 그 후에는 개털로 전락한다.

그리고 일본 해군은 이러한 지리적인 이점을 이용해서 중국과 같은 동북아시아 국가라는 점을 이용해서 청일전쟁에서 청나라 해군을 잡았고 러일전쟁의 쓰시마 해전과 태평양 전쟁의 말레이 해전에서 유럽의 해군을 때려잡으면서 위의 이론을 직접 실천하기도 했다.

20세기 초의 한때는, 열강들이 자꾸만 늘어나는 전함 건조 지출비와 상대국의 전함 증강을 동시에 억제할 묘수을 고민했다. 그리고 1차대전이 끝난 후 그 동안 지출한 전쟁비용을 해결하기도 곤란한데 새로운 건함 경쟁이 붙게 되니 이런 문제를 해결할 필요성이 높아졌다.

결국 서로 각국의 '군함 보유 총 톤수'를 제한하는 워싱턴 해군 군축조약런던 해군 군축조약, 제2차 런던 해군 군축조약을 맺기도 했다. 이 조약은 각국의 군함보유 총 톤수뿐만 아니라 1척당 배수량의 크기를 35,000롱톤으로 제한하였다. 이 워싱턴 조약의 제한에 맞춰서 제작된 2차 세계대전 이전까지의 전함을 흔히 '조약형 전함'이라 말하고 일본의 야마토는 조약 탈퇴 이후, 미국의 아이오와는 조약의 제한이 45,000롱톤으로 완화된 이후 제작된 전함이다. 따라서 둘 다 조약 위반은 아니다. 이 두 전함과 조약형 전함과는 크기뿐만 아니라 그동안의 기술발전으로 인한 차이가 추가되어 큰 차이가 난다.

7.2. 전함의 실제

파일:attachment/야마토급 전함/Yamato_explosion_00001.jpg 파일:attachment/image_217.jpg
거함거포주의의 종말
오키나와 전투에서 미합중국 해군 항공대의 공격에 대폭발한 전함 야마토
전쟁이 끝나 포격전은 없고 훈련함으로 활동한 전함 세바스토폴

그러나 제2차 세계 대전 후반 ~ 종전 후, '전함'이란 함종 자체가 크게 쇠퇴하게 된다. 그 이유는 당연하게도 강력해진 공군력과 이를 운용할 현 시대의 전함 항공모함, 그리고 미사일의 출현이었다. 전함의 유용성은 시대가 갈수록 공군과 발전한 엔진 기술 등에 밀려나기 시작했고, 종전 후 그 위상은 항공모함에 넘어가며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이하 항목들은 자국에서 전함을 건조하거나 타국에서 도입하는 식으로 보유했던 모든 국가들에 대해 서술한다. 전함이라는 함종 전체에 대한 통사(通史)전함/역사에서 다루며 전함을 국가 및 완성여부에 관계없이 시대에 따라서 만재배수량 기준으로 목록을 만든 것은 전함/배수량별 목록에서 다루고 있다.

7.2.1. 영국

영국은 HMS 드레드노트(Dreadnought)를 건조함으로서 현대식 전함의 기초를 확립하였으며, 인빈시블급 순양전함을 건조함으로서 순양전함이라는 새로운 함종을 만들어냈다. 그러나 이걸 본 다른 나라들도 드레드노트급 전함을 잇달아 건조하며 건함 경쟁을 벌였다.

제1차 세계 대전에서 영국 전함들의 실제 전과는 매우 초라했다. 해군 강국인 영국의 압도적인 우세 때문에 초기 몇 차례의 전투 이후 적수인 독일 해군이 히키코모리가 되어 버렸으므로 전과를 세울 여지도 없었다. 물론 독일 해군도 수십척의 전함들을 보유하고 있었지만 숫적으로도, 질적으로도 영국 해군이 더 우세했기 때문에 독일 해군은 주력함대간 결전은 피했다. 그래서 유틀란트 해전 이전에 벌어진 소규모의 해전에서는 순양전함들이 주축이 되었다.

영국과 독일의 함대가 정면으로 부딪친 것은 유틀란트 해전이다. 독일은 순양전함들로 구성된 전위함대가 영국 순양전함 함대를 유인해 오면, 주력 전함들로 구성된 본대가 영국 순양전함들을 작살낼 의도를 갖고 있었다. 그러나 암호해독 등을 통해 독일 주력 전함들이 대거 바다로 나온걸 알아낸 영국 해군도 독일 함대를 잡기 위해 주력 전함들을 몽땅 내보냈고 결국 이를 발견한 독일 함대는 재빨리 변침해서 도망쳤다. 결국 순양전함 간 전투가 대부분이었고 여기서 침몰한 순양전함 숫자는 영국이 더 많았지만 독일의 순양전함들도 대파를 당하는 바람에 몇 달씩 수리해야 했다. 결국 독일 해군은 영국 해군을 돌파할 수 없었고, 제1차 세계 대전에서 패배한 후 스케퍼플로우에서 자침함으로서 소멸했다.

워싱턴 해군 군축조약으로 영국 해군의 전함은 상당수가 퇴역하게 되지만, 살아남은 전함들은 여전히 해군의 주축이었다. 특히 영국의 순양전함 후드는 세계 최대의 전함으로 군림하며 전간기의 해군을 대표하는 존재였다. 그러나 항공모함과 잠수함 같은 다른 배들도 착실하게 발전하고 있었고, 일본이 군축조약을 탈퇴하면서 다시금 전쟁의 기운이 다가온다. 영국은 급히 군비를 증강하기 시작했으나, 시간이 모자랐으므로 14인치 주포를 탑재한 킹 조지 5세급 전함을 양산해서 전력공백을 메운다.

제2차 세계 대전에서 영국 전함 HMS 워스파이트노르웨이 전역에서 독일해군 수상함대의 절반 가까이를 박살내며 전함의 위력을 보여주었지만 추축국 전함들과의 정면대결은 비스마르크 추격전을 제외하면 드물었다. 독일 해군은 영국 해군의 전함들을 상대로 수적 열세에 몰렸기에, 유럽 최대의 전함인 티르피츠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함부로 출전할 수가 없었고, 이탈리아 해군 역시 영국 해군 상대로는 열세였던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도 영국 전함들은 다양한 임무를 수행하며 조국의 승리에 기여했다.

그러나 말레이 해전에서 일본군의 공습으로 전함 프린스 오브 웨일즈와 순양전함 리펄스를 상실함으로서, 전함의 시대가 막을 내리고 있음을 보여주는 치욕을 당하기도 했다. 영국 해군도 복수를 하고 싶었지만 대서양쪽에 집중하느라 바빠서 태평양으로 갈 수가 없었고, 막상 태평양에 돌아왔을 때에는 일본 해군이 이미 무너지고 있었다.

이 와중에 아이오와급에 준하는 크고 강력한 전함인 라이온급 전함이 개발 중이었지만 건조가 취소되었고, 전후에는 영국 전함 대부분이 해체되었으며 예비부품을 모아서 만든 전함 뱅가드가 영국 최후의 전함이 된다. 그러나 뱅가드는 실전에 참가할 일이 없기에 제대로 된 전과를 남기지 못하고 해체됨으로서, 영국 전함의 역사는 막을 내렸다.

영국 전함의 기술적인 특징은 다음과 같다.

우선 수직 장갑에서 경사 장갑으로 넘어가는 타국의 추세와는 달리, 영국 전함은 수면 방향 경사장갑의 도탄이 벌지와 수면 아래의 선체에 타격을 줄 것을 우려하여 수직 떡장갑으로 넘어가는 정 반대의 흐름을 보였다.

그 다음으로 들 수 있는 특징은 고도로 발전한 기계식 컴퓨터 체계이다. 드레이어 테이블에서 A.F.C.T mk.10 까지 이어지는 일련의 사격지휘용 기계식 컴퓨터는 정밀도와 연산 속도의 두 측면 모두에서 일본과 미국을 포함한 전세계 모든 국가의 사격지휘 시스템을 압살하는 성능을 보여주었으며, 이 장비들을 전함만이 아닌 경순양함까지 보급할 정도로 충분한 물량을 확보한 것은 물론, 구축함 이하에 제공할 보급형 기계식 컴퓨터까지 도입해서 사용하였다.

기술적인 면은 아니지만, 영국 해군은 승조원의 숙련도도 가장 높은 해군 부대였다. 신형 함선을 건조하기보다는 탄약을 사용하는 실사격 훈련을 매년 여러차례 진행하는 게 더 가치있다 생각해서 예산을 꾸준히 써가며 훈련을 했고, 경험있는 수병들을 쉽게 버리지 않고 체계적인 예비역 행정 체계를 구성해서 꾸준히 관리하며 관계를 유지했다.

영국 전함 역시 부정적인 면을 보였는데, 우선 본국의 경제적/외교적 어려움 때문에 퓨리어스를 통해 확보한 18인치 주포는 물론 통짜 주물 함포 개발에도 성공해 놓고도 군축조약을 통해 해군력 1위국을 계속 유지하려고 시도한 결과 능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대구경 함포의 도입에 어려움을 겪게 되었다. 설상가상으로 군축조약이 전쟁 터지기 직전 상태라 자동적으로 붕괴되는 상황에서는 그 전에 군축조약에 따라서 만들어놓은 14인치 주포와 1차대전의 유물인 15인치 주포밖에 급하게 조달할 주포가 없어서 만성적인 화력 부족에 시달렸다.[19]

경제 문제는 전함의 자동화에도 영향을 주어서, 제2차 세계 대전의 전운이 감도는 와중에도 전자장비와 전선에 필요한 구리 재고를 미리 확보할 정부 예산이 없어서 전간기에 건조한 타운급 경순양함에도 적용한 RPC를 KGV급에서 제거한다던가 하는 웃지 못할 해프닝이 있었다. 전쟁 터지기 직전에 구리같은 전쟁물자를 확보할 예산도 영국이 마련하지 못했다는 게 거짓말같지만 실제로 영국인들이 없으면 못산다는 홍차조차도 미리 준비하지 못해서 전쟁이 벌어지고 나서야 재고 확보에 나서야 할 정도였다.

그래서 RPC를 도입하지 못한 것은 영국 해군의 기술력이 완전 자동화된 사격 제어 시스템을 구성하는데는 미치지 못하는 것이 아니냐는 후대의 의심을 받을 정도였는데, 뱅가드급 전함에서 보포스 40mm 포 STAAG를 도입하고[20] Type 274 사격지휘 레이더와 A.F.C.T mk.10 기계식 컴퓨터를 거쳐 RPC로 포탑까지 이어지는 완전 자동화 사격지휘 체계를 구성하면서, 해당 기술을 개발해서 운용할 역량이 있음을 증명했다. 특히 STAAG는 VT신관을 쓸 수 없는 대신 예측 사격 알고리즘이 추가되어 있으므로 당대 1급 성능이고 약간의 설정 변경만으로 5인치 38구경장 양용포에도 쉽게 대응가능할 정도의 범용성까지 갖춘 미국의 40mm 보포스 기관포용 사격 통제 레이더인 Mark 51 FCS와 총합적으로는 비슷한 수준까지 올라갔다.

여기에 더해서 예산 부족이 심해서 구식 전함들을 제대로 대개장하지 못하고 대개장한 전함들도 예산 부족에 따라서 개장 정도가 천차만별이라는 문제도 작렬했다. 퀸 엘리자베스급 전함은 자매함마다 개장 정도가 다르거나 아예 대개장을 못받은 경우가 존재하며 후드(순양전함)은 대개장이 취소되었고 넬슨급 전함은 의미있는 개장도 못받아서 심한 노후화로 인해 제 성능을 못냈다. 리벤지급 전함은 아예 개장도 힘든 함형이었는지라 관리도 상대적으로 소홀하여 전드레드노트급 전함의 속도인 18노트 수준으로 속력이 하락하는 등 완전히 퇴물급으로 전락했다. 그래서 전함에 어울리지 않는 1차대전식 어뢰무장같은 위험천만한 장비를 철거하지 않고 다니기도 했고 독일군이나 일본군의 폭격에 매우 취약한 면모를 보이기도 했다.

또한 전 세계를 무대로 삼는 대영제국 답지 않게 무기 체계가 북대서양에 최적화된 면모를 보였고, 태평양으로 가져오면 문제가 터지기 일쑤였다. 가장 유명한 사례는 폼폼 포의 장약이 태평양의 고온 다습에 약하다든가, KGV급 전함에 에어컨이 없었던 문제가 있다. 이는 전함만 그런게 아니라서, 슈퍼마린 스핏파이어 역시 호주 지역에 배치된 직후에 제 성능을 내지 못하는 이슈에 시달렸다.
전드레드노트급 드레드노트급
명칭 건조 명칭 건조
트라팔가급 1886~1887 드레드노트 1905~1906
로열 소버린급 1889~1891 벨레로폰급 1906~1909
센추리온급 1890~1894 세인트 빈센트급 1907~1910
리나운 1893~1897 넵튠 1909
마제스틱급 1893~1898 콜로서스급 1909~1911
카노푸스급 1896~1902 오라이언급 1909~1912
포미더블급 1898~1901 킹 조지 5세급 1911
런던급 1898~1904 아이언 듀크급 1912
던컨급 1900~1903 퀸 엘리자베스급 1912~1914
킹 에드워드 7세급 1902~1906 리벤지급 1913~1917
스위프트셔급 1902~1904 N3급 취소
로드 넬슨급 1905~1908 넬슨급 1922~1927
킹 조지 5세급 1936~1937
라이온급 1939
뱅가드 1940~1946
7.2.1.1. 영국의 자치령
영국은 자치령에도 전함을 배분하였고 자치령 군대에서 운용하였다. 그러나 이들 역시 결국 워싱턴 해군 군축조약의 규정에 따라서 모두 현지에서 폐함 처리되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순양전함이지만 군축조약에서는 전함과 같이 묶어서 주력함 (Capital Ship)으로 분류해서 똑같이 규제하였다.

7.2.2. 독일

건함 경쟁에 뛰어든 독일은 영국에 맞서 많은 전함들을 건조하여 1차대전이 터지기 직전에는 세계 제2위의 해군을 건설하는 데 성공했다. 이렇게 되기까지는 빌헬름 2세의 강력한 의지와 지원 및 알프레트 폰 티르피츠같은 제독들의 강력한 보호 및 실행력으로 제국 해군청(Reichsmarineamt)의 주도 하에 군함들을 설계하고 건조하고 수정하는 과정이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독일 제국 국가예산의 거의 40%를 사용하는 등 엄청난 돈을 투자한 끝에 영국과 해전이 이루어질 수준의 전력을 확보했다.

하지만 원래 육군국인 독일에서 황제의 해군으로 분류될 정도로 단시일내에 집중적인 투자를 한 결과 외형은 충족되었고 그럭저럭 쓸만한 성능도 얻었으나 내부적으로는 아직 다듬어지지 않은 부분도 있어서 실수가 좀 있긴 했다. 대표적인 것이 영국의 드레드노트급 전함이 등장했음에도 불구하고 도이칠란트급 전함같은 전드레드노트급 최후기형 전함 건조같은 불필요한 일을 중단하지 못한 점, 나사우급 전함에서 나타난 것처럼 드레드노트급 전함이라는 구조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중간포 탑재공간을 주포 탑재공간으로 증강시켜서 대응하며 증기 터빈을 적용하지 못한 결과 비효율성이 발생한 점, 11인치급 (280mm) 주포가 12인치 (305mm) 주포와 비슷한 성능을 가진 점을 너무 중시하다보니 영국의 전함 주포 구경 확대로 슈퍼 드레드노트급 전함의 시대가 열린 것을 뒤늦게야 심각성을 눈치채고 바이에른급 전함에 들어와서야 화급하게 주포 구경을 15인치급 (380mm)로 늘려서 대응했다는 점 등 뭔가 삐걱거리는 면이 어느 정도 있었다.

그리고 아무리 전력을 증강시켰다고 해도 영국 해군에 비하면 수적으로 열세였기에 제1차 세계 대전에서는 수세에 몰릴 수밖에 없었고 U보트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독일의 순양전함들은 치고 빠지는 전법으로 영국 해군을 괴롭혔으며, 영국 순양전함들을 유인한 후 쳐부수기 위해 독일 주력 전함들이 출동하기도 했다.

하지만 본질적으로 원양이나 원격지에서 함대를 운용해본 경험이 없다시피했고 그런 경험을 가진 독일 제국 태평앙전대와 막시밀리안 폰 슈페 제독도 전쟁이 터진 후 사방이 적으로 둘러싸인 가운에 본국으로 장거리 항해를 통해 귀환하다가 영국의 매복을 연속적으로 겪은 끝에 코로넬 해전에서는 대승했으나 포클랜드 해전에서 결국 압도적인 전력차를 이기지 못하고 함대는 전멸하고 제독도 전사하여 제대로 된 경험을 독일 본토에 있는 주력함대인 대양함대에게 전수해주지 못했다.

결국 독일 제국의 주력함대가 봉쇄망을 돌파하고 영국 함대의 일부라도 섬멸해서 전황을 유리하게 하려고 수행한 유틀란트 해전에서 영국 해군은 대함대를 출동시켜 독일 해군을 통째로 섬멸하려고 했고, 독일 전함들은 일이 어그러진 것을 파악한 후 어쩔 수 없이 후퇴할 수밖에 없었다. 이후 독일 해군은 영국 해군을 끝내 돌파하지 못했고, 패전 이후 스캐퍼플로 독일 대양함대 자침 사건으로 소멸된다.

독일 전함들이 자침하자, 영국과 프랑스는 독일에 남아있던 전함 대부분을 몰수했다. 이후 독일 해군은 전드레드노트급 전함 몇 척만 보유한 소규모의 해군으로 쪼그라들었다. 히틀러 집권 이후 유럽 최대의 전함인 비스마르크급 전함 2척이 건조되었으나, 건함기술과 인프라의 상실을 극복하지 못한 탓에 장갑이나 설계 등 여러 면에서 사실상 1차 대전식 전함이 되고 말았다. 그래도 크기만큼은 유럽 최대였으므로 전쟁 당시 비스마르크급 전함의 상세한 정보를 알 수 없었던 영국은 비스마르크급 전함을 크게 경계했다.

제2차 세계 대전이 벌어진 후 독일 해군은 U보트를 중심으로 한 통상파괴전을 벌이게 된다. 나름대로 재건되긴 했으나 영국 해군에 비하면 함대 규모가 매우 작았던 데다, 그나마도 노르웨이 침공 중에 큰 피해를 입었으므로 전함 vs 전함이라는 전형적인 해전을 벌일 수가 없었던 탓이다.

그래서 독일 해군의 간판인 비스마르크급 전함 1번함 비스마르크가 통상파괴전에 투입되었다. 수송함을 호위하는 함대에 영국이 전함들까지 배치해서 호위함대를 강화했으므로 일반적인 순양함같은 수상함대로 습격하는 대응이 곤란해지자 호송선단에 1척 정도 있는 영국 전함을 화력으로 개박살내고 호송선단까지 세트로 개박살낸다는 것을 노린 것이지만, 영국은 비스마르크가 출항하자마자 세계 최대의 순양전함 후드와 신형 전함 프린스 오브 웨일즈를 투입했고 여기서 전함 간의 포격전이 벌어졌다. 그러나 후드는 허무하게 당했고, 프린스 오브 웨일즈는 걸레짝이 되어 돌아왔다. 이에 분노한 영국 해군은 전함과 항공모함을 대거 동원해서 비스마르크 추격전을 벌였으며, 비스마르크는 영국 해군 항공모함 아크로열의 구닥다리 복엽기인 페어리 소드피시에게 키를 얻어맞고 조타불능이 된 후, 영국 전함 킹 조지 5세와 로드니와의 포격전에서 패배하고 침몰했다.

당시만 해도 세계 최대의 전함이었던 비스마르크의 침몰에 충격을 받은 독일은 자매함인 티르피츠를 조심스럽게 굴리면서 영국 해군을 견제했다. 게다가 이 과정에서 영국은 티르피츠가 단지 다른 항구로 이동하는 것에 과민반응, 공격 신호로 오해하고 산개하다가 이후 잠수함과 항공기의 공습을 받아서 수송선단을 통째로 날려먹기도 했다. 자세한 것은 PQ-17 문서 참조. 결국 북극 수송선단에게 심대한 위협이 되는 티르피츠 때문에 영국은 몇 번이나 해군과 공군을 동원해서 티르피츠를 공격한 끝에 5.4톤짜리 지진폭탄톨보이까지 동원해서 티르피츠를 박살냈다. 전함 하나가 얼마나 상대의 신경을 긁을 수 있는지 보여준 사례였다.

이 중 샤른호르스트급 전함 1번함 샤른호르스트와 2번함 그나이제나우도 용감하게 싸웠지만, 2차대전기 주력 전함치고는 주포의 구경이 11인치급으로 작았던 탓에 주포탄이 명중해서 관통해도 적 주력함 내부에 치명타를 입히기가 힘들어서 순양전함으로 분류되는 수모(?)를 당하기도 했다. 그래도 이들은 영국 해군의 커레이저스급 항공모함 2번함 글로리어스를 격침시키는 등 나름대로 전공을 세웠으나, 노스케이프 해전에서 샤른호르스트가 영국 해군의 킹 조지 5세급 전함 2번함 듀크 오브 요크와의 포격전에서 패배하고 침몰했다. 두 전함의 체급과 주포 차이를 생각하면 어쩔 수 없는 결과였지만, 샤른호르스트는 독일 해군 사령부에게 "마지막 한 발을 발사할 수 있을 때까지 싸우겠다."고 마지막 무전을 보낸 뒤 침몰 직전까지 싸우다가 가라앉았다. 영국의 프레이저 제독이 휘하 장병들에게 "제군. 이 해전은 우리의 승리로 끝났다. 만약 제군이 압도적으로 우세한 적을 상대로 배를 지휘해야 할 때가 온다면, 오늘의 샤른호르스트와 같이 용맹하게 싸워주기를 바란다." 라고 말할 정도였다. 자매함인 그나이제나우는 샤른호르스트와 달리 폭격으로 대파되었고, 이후 수리를 위해 대기중이었으나 히틀러의 대형함 폐기 명령으로 인해 방치되다가 결국 폐기, 종전에는 항구 봉쇄를 위해 자침했다.

패전 이후 독일은 분단되었고, 해군 역시 연안해군으로 쪼그라들었으며, 독일은 다시는 전함을 건조하지 못했다. 냉전 이후 독일은 통일되었지만, 전함의 시대가 끝났으므로 독일이 다시 전함을 건조할 일은 없을 것이다.
전드레드노트급 드레드노트급
명칭 건조 명칭 건조
브란덴부르크급 1890~1894 나사우급 1907~1910
카이저 프리드리히 3세급 1895~1902 헬골란트급 1908~1910
비텔스바흐급 1899~1903 카이저급 1909~1913
브라운슈바이크급 1901~1906 쾨니히급 1911~1914
도이칠란트급 1903~1908 바이에른급 1913~1917
L 20 α급 취소
샤른호르스트급 1935~1939
비스마르크급 1936~1941
H급 전함 취소

7.2.3. 프랑스

프랑스는 보유하였던 전함과 활약 모두 다양했다 보기 어려운데 해군 군축조약의 준수, 청년학파의 영향, 해군 대비 육군의 강세, 불리한 전황이 겹쳐져서 나타난 결과였다.

청년학파의 영향에서 벗어나긴 했으나 당장 설계도와 건조 실적 및 운용 경험이 없는 상태에서 처음부터 슈퍼 드레드노트급 전함을 건조할 수 있는 게 아니라서 당통급 전함같은 전드레드노트급 전함에 속하는 준드레드노트급 전함을 시작으로 쿠르베급 전함으로 드레드노트급 전함을 만들고 브르타뉴급 전함으로 슈퍼 드레드노트급 전함까지 건조했다. 그러나 시간의 부족 및 당통급 전함같은 답없는 물건을 미래를 예상하지 못하고 6척이나 뽑아대는 실수를 한 끝에 예산과 자재와 인력도 부족하여 제1차 세계 대전에서는 해군의 전함 전력이 미약했다.

프랑스도 이걸 모르는 것은 아니라서 1차대전 직전에 노르망디급 전함리옹급 전함 등 신형 전함을 기획하였으나 세계대전으로 중지했다가 전간기에 다시 추진했지만 군축조약에 따라 취소하였다. 그나마 노르망디급 전함부터 4연장 주포탑을 설계 및 제조, 장착하려고 하였고 후속함에 좋은 영향을 준다.

1930년대에는 주변국의 상황이 악화되고 전쟁이 터질 위험성이 높아지면서 해군 전력 강화에 힘을 불어넣었고 도이칠란트급 장갑함에 대응하기 위해 주포는 13인치지만 기존의 프랑스 전함과 비교하면 머리부터 발끝까지 달라진 최신 전함 됭케르크급 전함을 건조했다. 그 이후에는 15인치 주포를 장착해서 유럽에서의 1선급 전함으로 충분한 신형 전함 리슐리외급 전함을 건조하되 발전형 알자스급 전함을 계획하는 등 전력화에 큰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하였다.

하지만 고질적인 프랑스 제3공화국의 정치적 불안 및 이웃나라인 영국이 프랑스의 해군증강에 간섭질을 하기 시작하면서 전간기때 쓸모없다고 생각하여 해군 조선소의 도크 크기를 늘리지 않는 등의 삽질이 작렬하면서 신형 전함들의 건함이 크게 늦어지다가 나치 독일이 프랑스 침공을 시작하며 건조가 중단되었고 순식간에 독일에게 털리는 바람에 기존의 여러 수상함은 활약할 여지가 없었다. 브르타뉴급 전함들은 영국 해군의 통수치기에 당해 전멸했으며, 설상가상으로 대부분의 군함들이 비시 프랑스에게 넘어가면서 건함 당시에는 생각하지도 못했던 미국과 영국의 군함들과 교전한다는 악조건까지 만들어졌다.

물론 처참한 상황 속에서 전함 "리슐리외"는 프랑스의 북아프리카 식민지로 탈출한 후 비시 프랑스 소속으로 다카르 해전 등에서 영국과 싸우다가 자유 프랑스 소속이 된 후에는 미국으로 이동한 후 최종 완성 및 대규모 대공무기 증설 및 손상 수리후 자유 프랑스 해군의 기함이 되었고 전함 "장 바르"는 건조 중인 상태였지만 비시 프랑스 해군에서 연합국과 교전하였다. 이후 자유 프랑스 소속이 된 장 바르는 주포를 리슐리외의 손상된 주포 교체용으로 빼앗긴 후 연습함 수준으로 전락하여 제대로 수리도 못받고 전쟁 끝날 때까지 사실상 방치된다. 게다가 됭케르크급 전함 2척은 툴롱 프랑스 함대 자침으로 모두 잃고 말았다.

이후 전쟁이 끝나고 여유가 생기자 피해를 입고 건조가 중단된 리슐리외급 전함의 전력화가 본격화 되었고 프랑스 해군의 마지막 전함으로서 함생을 살게 된다. 장 바르는 가장 최후로 완공된 전함이라는 타이틀을 가지기도 하였고 제2차 중동전쟁에 참여하는 등 여러 활동을 하기도 하였다.
전드레드노트급 준드레드노트급/드레드노트급
명칭 건조 명칭 건조
브렌누스 1889~1891 당통급 1907~1911
샤를 마르텔 1891~1893 드레드노트급
카르노 1891~1894 쿠르베급 1910~1914
죠르귀베리(전함) 1891~1893 브르타뉴급 1912~1916
마세나 1892~1894 노르망디급 1914~1920
보우벳 1893~189? 리옹급 계획
샤를마뉴급 1894~1899 됭케르크급 1932~1938
예나 1898~1902 리슐리외급 1935~1955
쉬프랑 1898~1904 알자스급 계획
리퍼블리크급 1901~1907
리베흐테급 1902~1908

7.2.4. 오스트리아-헝가리

내륙국인가 하는 세간의 인식과는 달리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해군은 1914년 제1차 세계 대전 개전 당시 세계 7위의 해군이었다. 그렇게 크지는 않지만 모든 종류의 함선과 장비를 충실하게 갖춘데다, 최소 60년간의 운용 노하우를 가진 견실한 지역해군 함대였다.

1797년에 흡수한 베네치아 공화국의 함대를 기반으로 시작한 오스트리아-헝가리 해군은 전드레드노트급인 합스부르크급 전함, 에르츠헤르초크 카를급 전함 6척과 준드레드노트급인 라데츠키급 전함 3척을 보유했다. 드레드노트급으로는 테게토프급 전함 4척을 건조했다. 테게토프급은 건함사의 한 획을 그은 전함으로, 세계 최초로 3연장 주포탑을 장착했으며, 또한 이를 격층식(Superfiring)으로 배치한 전함이다.

다만 그 다음 함급이자 14인치 주포를 장비한 슈퍼 드레드노트급 전함인 에르자츠 모나르히급 전함은 경제력 문제와 주포 조달 문제로 건조기간이 5년에 도달할 정도라 1차대전이 터지자 건조가 연기되다가 사실상 취소되었다. 테게토프급 전함도 실험적인 요소를 다수 도입한 것과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함선 관련 기술력 부족으로 무게 중심 상승 및 기관부 출력 문제 등의 문제점이 많았다. 특히 4번함 센트 이슈트반은 헝가리의 지원을 받았기에 건조 경험이 부족한 헝가리 피우메의 건즈 사 조선소에서 건조되어 동형함들보다 문제가 많았다. 선행함들은 전부 이미 다수의 전함 건조 경험이 있던 트리에스테의 STT사에서 제작한 것을 생각한다면 정치적 문제가 얼마나 큰 악영향을 주는 지 알 수 있다. 거기다 예산 부족까지 겹쳤기에 기관부가 부실해졌고, 리벳 결합은 헐거웠다. 방뢰망도 장착하지 않았다.

게다가 지형적인 특성상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은 오트란토 해협을 통해 아드리아 해가 봉쇄된다면 지중해로 나가지 못하고 그대로 갇히게 된다는 문제를 가지고 있었다.[21] 그리고 해당 해협을 빠져나와도 지중해에서 영국과 프랑스 함대를 상대해야 할 상황이라서 현존함대 전략을 사용할 수밖에 없었다. 대신 오헝 제국 해군은 이 해협의 특징을 이용해 아드리아해 내부의 제해권은 전쟁 초기부터 확실하게 장악했다. 이로써 오스트리아는 협상국 해군이 갈리폴리 전투처럼 자국 해안선을 유린하는 것을 막아내면서도 주적인 이탈리아 왕국의 해안선을 마음대로 휘저을 수 있었다.

그러나 이건 구축함대와 해군 항공대의 성과였고, 전함들은 1915년의 대습격 이후로는 이스트리아 반도의 항구에 대부분 조용히 머물렀다. 합스부르크급 전함 같은 전드레드노트급들의 경우 간간히 예비대로 모습을 비추기라도 했으나, 핵심인 테게토프급 전함들은 전혀 활동이 없었다. 심지어 1917년 카포레토 전투에서 동맹국에 대패한 이탈리아가 수십 킬로미터를 후퇴할 때, 이탈리아군을 추격하며 베네치아를 포격하는 임무에 동원된 함선 중에서도 주력함대에 속하는 함선은 단 한 척도 없었다. 이때 투입된 것은 구식 해방전함인 모나르크급들이었다. 그리고 완전히 분쇄된 세르비아군 잔존세력이 알바니아에 집결하여 협상국으로부터 해상 보급을 받으며 재정비하는 것을 저지하는 데에도 이들은 나서지 않았다. 소형 함정들의 화력으로는 알바니아 해안선에 대한 타격 효과가 적었음에도 그랬다.

이는 오헝 제국의 경제 사정 상 주력함 손실분의 보충이 극도로 어려워, 전함을 상실했을 때의 부담을 감당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전쟁 도중 추가된 전함은 한 척도 없으며 차기 슈퍼드레드노트급 전함인 에르자츠 모나르히급 전함은 아예 취소되었다. 거기다 부차적이지만 주요 연료인 고품질 석탄의 산지인 영국과 적이 된 것도 가동률을 급락시키는 데 한몫했다. 그러나 그런 경제 상황과 제국 해군의 현존함대 전략을 감안해도 전함의 운용이 지나치게 소극적이었던 것은 사실이다. 특히 테게토프급들은 함생의 90% 이상을 항구에서 보냈다. 때문에 미 해군연구소는 1차 대전 당시 오스트리아 해군의 전반적인 운용과 성과에 상당히 좋은 평가를 내리면서도 전함에 대해서는 그렇지 않았다. 필요성과 국가 체급에 비해 전함이 과하게 많았고, 구축함들과 달리 너무 졸렬하게 운용하여 있는 전력을 제대로 활용하지도 못했다는 게 미 해군연구소의 냉정한 평가다.#

결국 1918년 6월 10일 테게토프급 전함 4번함 센트 이슈트반이 아드리아해에서 작전 도중 이탈리아 해군의 M,A,S 어뢰정에게 격침되었다. 그리고 멸망 직전 오스트리아는 전쟁의 패배와 함께 제국이 해체되면서 해안선과 항구를 전부 잃어버리는 상황에 놓이게 된다. 그래서 남아있는 수상함대의 대부분을 배상함으로 숙적 이탈리아에 넘기느니 차라리 유고슬라비아에 넘기는 것을 선택했고, 이때 남은 전함들 전체가 유고 해군에 넘어갔다. 하지만 양도 사실을 몰랐던 이탈리아가 특수부대를 수중 침투시켜 1번함 비리부스 우니티스를 그대로 폭파시켜 버리고 말았다. 나머지 함선들도, 협상국이 유고슬라비아의 소유권을 부정하면서 테게토프급 2번과 3번함은 다시 이탈리아와 프랑스로 넘어갔고, 각각 전승 전리품과 표적함으로 사용되다 1920년대에 해체되며 함생을 끝냈다. 나머지 전드레드노트급 전함들 역시 이탈리아로 넘어가 스크랩되면서 오스트리아 전함전단의 역사는 끝났다.
전드레드노트급 드레드노트급
명칭 건조 명칭 건조
합스부르크급 1899~1904 테게토프급 1910~1915
에르츠헤르초크 카를급 1902~1907 에르자츠 모나르히급 취소
라데츠키급 1907~1911
7.2.4.1. 헝가리
의외로 헝가리 또한 전함을 건조할 수 있었다. 1867년의 대타협을 계기로 부활한 헝가리 왕국은 독자적인 정부와 의회, 그리고 육군을 가지고 오스트리아와 동등한 제국의 공동 지배자로 등극했다. 그리고 자국령 항구인 피우메와 19세기 이후 급속도로 발전한 중공업 산업 기반을 바탕으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해양 진출에 서서히 지분을 늘려나갔다.

원래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해군은 오스트리아가 주도하였다. 대부분의 수병과 사관들은 오스트리아령 지역에서 충원되었고 주요 인프라 역시 오스트리아령에 기반하였다. 때문에 20세기 초까지만 하더라도 헝가리가 제국 해군에 기여하는 지분은 약 30%의 예산과 고작 12%의 사관, 그리고 12%의 헝가리제 군납 제품들 뿐이었다. 헝가리에 기반한 주요 해군 관련 기업은 어뢰를 납품하는 화이트헤드 사 뿐이었다. 주력함들은 전부 오스트리아령 지역의 이탈리아계 민간회사나 해군공창에서 건조되었고 강재와 주요 무장들은 오스트리아 일대와 체코 일대에서 제작했다.

20세기 초 해군이 급격하게 확장하는데도, 그리고 자국 산업이 발전했음에도 불구하고 들어가는 예산에 비해 헝가리의 참여율이 저조한 상황에 불만을 품은 티서 이슈트반 총리의 헝가리 정부는 해군과 협상하여 주력함 건조와 각종 군수품 납품에 헝가리 업체들을 참여시킬 것을 약속받았다.

이로써 헝가리의 조선업체인 간츠-다누비우스(Ganz-Danubius)는 드레드노트급인 테게토프급 전함 건조에 참여할 수 있었다. 1912년, 다누비우스 사의 조선소에서 테게토프급의 4번함 '센트 이슈트반'의 건조가 시작되었고, 3년 후인 1915년에 진수되었다. 센트 이슈트반은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마지막 전함이자 헝가리가 건조한 유일한 전함으로 역사에 남았다. 그러나 헝가리의 건함 역사와 인프라가 미숙하였던 고로, 센트 이슈트반은 자매함들과는 설계가 조금 달랐으며 잔고장도 상대적으로 심했다.

1918년, 제1차 세계대전 패전으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멸망하고 헝가리 왕국내륙국이 되어버림에 따라, 이제 막 탄생했던 헝가리 전함의 역사도 끝났다.

7.2.5. 러시아 제국소련

러시아 제국 시기의 러시아 해군은 전드레드노트급 전함을 국력의 향상을 이용해서 대량건조하여 일시적으로 해양 강대국 위치에 올라가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내실은 영 아니었다. 이상하게 함급들이 많은 것이 보일텐데 외국의 군함을 수입해오거나 라이선스 계약을 맺고 자국의 조선소에서 건조하거나 무단으로 불법복제 및 자신이 생각한 개량점을 추가해서 건조하거나 한 것들이 모두 합쳐져 있는 상태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기술력 복제와 발전을 제대로 한 것도 아니라서 보로디노급 전함처럼 허우대는 멀쩡한데 과무장과 상부구조물 확대로 인해 흘수선이 너무 많이 내려가는 사태가 터져서 주장갑대가 모조리 수면 아래로 내려가는 통에 적이 발사하는 포탄이 모두 얇은 철판을 관통하고 내부에서 작렬하면서 침수현상이 더 심해지는 망작이 탄생하였다. 애초부터 러시아 제국의 기술력 수준이 열강 수준보다 한참 아래였기 때문에 벌어진 사태였다.

결국 러일전쟁쓰시마 해전에서 대참패를 하고 해전에서 살아남은 전함도 상당수가 나포당해서 일본에게 넘어간 상태에서 뒤늦게나마 전훈을 반영하여 안드레이 페르보즈반니급 전함을 만들었으나 이미 시대는 드레드노트급 전함으로 넘어간 상태였다. 그래서 강구트급 전함을 영국의 군함건조회사의 도움을 받아서 만들었으나 재정 부족으로 건함이 너무 느려져서 포탑과 사격통제장치 부분의 마무리도 덜 된 상태에서 간신히 취역했고 개량형으로 볼 수 있는 임페라트리차 마리야급 전함까지 완성했다.

하지만 1차대전이 터진 후 러시아군이 밀리기 시작하면서 그나마 있는 금쪽같은 드레드노트급 전함을 보호하기 위해 아직 남아있던 전드레드노트급 전함인 보로디노급 전함 5번함 슬라바가 억지로 독일 해군의 바이에른급 전함같은 강력한 상대와 싸우다가 개박살나기도 하는 등 험난한 나날을 보내게 된다.

이러다가 러시아 혁명이 발생하면서 이후의 건함계획은 취소되고 해군도 해체상태에 가깝게 변모하였으며 기본적인 정비는커녕 기술력 유지도 제대로 못할 정도로 해군의 전반적인 능력이 쇠퇴하였다. 심지어 러시아 내전에서는 그나마 남은 드레드노트급 전함에 대한 공격 및 나포가 이어져서 이제 막 창설된 소련 해군에게 남은 실전 투입 가능한 전함은 강구트급 전함 3척밖에 남지 않게 된다.

러시아가 격동의 역사를 겪는 바람에 초창기 소련 해군은 상당히 어려웠다. 러시아 혁명러시아 내전을 거쳐 탄생한 신생국가 소련은 정국이 매우 혼란한 데다 일정 시간 기술 단절이 발생하였기에 조선 기술의 선두주자인 이탈리아 왕립 해군영국 해군의 도움을 받아 자체적인 개발보다는 기술이전에 노력을 기울여 극복하고자 하였다.

제2차 세계 대전 시기 러시아 제국 해군을 계승한 소련 해군은 기존 제국 해군의 "강구트급 전함" 4척을 근대화 대개장을 거쳐 재취역한 "옥차브리스카야 레볼루치야급 전함(Октябрьская Революция)" 4척을 기함으로 함대를 운영하여야 하였고, 주변국들의 해군에 대응할 수 있는 수준으로 설계된 소비에츠키 소유즈급 전함의 건조가 시작되어 레닌그라드에서 16인치 주포를 성공적으로 완성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나치 독일과의 독소전쟁이 발발하자 소비에츠키 소유즈급 전함을 비롯한 스탈린그라드급 순양전함크론슈타트급 순양전함의 건조는 중단되었기에 기존의 구식 전함만으로 조국을 지키기 위해 사력을 다했다. 특히 옥차브리스카야 레볼루치야급 전함 2번함 '마라'가 유명한데 두 번이나 격침되었지만 수심이 얕았기에 착저로 끝났고 함교를 포함한 함체 전반부가 날아간 상태에서도 주포탑을 수리 후 포탄을 쏴대며 레닌그라드의 수호신이 되었다.

이후 승리의 날을 지나며 전쟁은 끝났으나 앞선 전함의 역사와 같이 거함거포주의 전함은 몰락한 데다 해군 항공대와 초기 미사일 해군의 개념이 등장하기 시작하였고 전후 배상함까지 여럿 얻게 된 소련 해군은 더 이상 포격 중심의 대형함을 건조할 이유가 사라지게 된다. 전쟁으로 건조가 중단된 대형함은 모두 스크랩 수순을 밟았으며 프로젝트 66형 순양함, 프로젝트 24형 전함을 비롯한 포격 중심 대형함은 모두 취소되었던 것이다.

이렇게 전함의 시대가 막을 내림과 동시에 소련 해군이 최종적으로 보유한 전함은 자국의 옥차브리스카야 레볼루치야급 전함, 영국 해군 대여함 아르한겔스크, 이탈리아 왕국의 전후 배상함 노보로시스크, 나치 독일의 전후 배상함 슐레스비히-홀슈타인, 핀란드 공화국의 전후 배상함 비보르크였다. [22]하지만 이들도 미국 슈퍼캐리어를 상대할 수 없게 되자 얼마 안 가 퇴역하고, 소련 해군은 잠수함과 초대형 대함 미사일 중심으로 재편제되어 오늘날에 이른다.
전드레드노트급 드레드노트급
명칭 건조 명칭 건조
예카테리나 2세급 1883~1894 프로젝트 스크벗소바 1907년형 계획
임페라토르 알렉산드르 2세급 1885~1891 강구트급 1909~1914
드베나드삿 아포스톨로브급 1888~1892 임페라트리차 마리야급 1912~1917
나바린 1890~1896 임페라토르 니콜라이 1세급 1916~1917
트리 스비아티테리아 1891~1896 프로젝트 21형 계획
시소이 벨리키 프로젝트 A형
페트로파블로프스크급 1892~1898 프로젝트 1058형 전함
로스티슬라브급 1894~1900 프로젝트 23형 1938~1941
페레스베트급 1898~1903
포템킨 1897~1900
레트비잔 1899~1902
체사레비치 1899~1903
보로디노급 1899~1905
에프스타피급 1903~1910
안드레이 페르보즈반니급 1904~1911

7.2.6. 이탈리아

전통적인 해군 기술의 강자였던 이탈리아 왕립 해군은 19세기 중반 이탈리아 통일 전쟁을 계기로 급격하게 성장하였다. 아드리아 해에서 오스트리아 제국 해군과 맞붙어야 했던 이탈리아는 철갑함 및 전함 전력 역시 착실하게 확충해야 했다. 이 중 이탈리아 최초의 드레드노트급 전함은 바로 단테 알리기에리로, 세계 최초로 3연장 주포탑을 장착한 함선이기도 했다.

제1차 세계대전 승리 이후 파시즘 국가로 나아가자 지중해를 장악하고 식민지를 건설하는 공격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하였다. 일본 제국, 나치 독일, 이탈리아 왕국의 세 국가로 대표되는 추축국에서 일본 제국과 함께 육군의 기술 보다는 해군의 기술의 선두주자였고 연합국의 심기를 긁어 영국 지중해 함대와 아프리카 수송선단의 중요 경계대상이었다.

지중해를 중심으로 활동하는 모습은 지리상의 이점을 사용한 고유의 건함 사상으로 발전하였는데 바로 소구경 대화력 주포이다. 이탈리아의 마지막 주력 전함인 리토리오급 전함에서 확인해볼 수 있듯 이탈리아는 지중해라는 육지에서 보급이 용이한 활동 범위를 가지고 있었다. 이로 인해 타국의 16인치급 혹은 일본 제국의 18인치급 대비 15인치라는 소구경의 주포를 주력으로 하였지만 포신의 수명을 희생하고 엄청난 화력을 얻었으며, 짧은 포신 수명은 육상의 보급으로 쉽게 해결한다는 개념이었기에 탈 15인치급 화력을 달성하였던 것이다.

특히 제2차 세계 대전 부근으로 소련 해군에 끼친 영향이 막대하였고 사실상 소련 해군의 기술 원천이라 불릴 만큼 기술 수출/이전에 큰 역사를 남기기도 하였다. 콘도티에리급 경순양함차파예프급 순양함, 키로프급 순양함의 무장, 프로젝트 UP.41형 전함소비에츠키 소유즈급 전함의 관계 등 소련 해군의 주요 수상함 건조의 기술적 배경은 모두 이탈리아 왕립 해군에 있었다.

그러나 잘못된 해군 정책으로 큰 문제점을 가지게 된다. 이탈리아령 동아프리카같이 원거리에 각고의 노력을 기울여서 만든 식민지가 있고 20여만명의 대군이 주둔까지 했는데도 불구하고 해군의 군함들은 지중해의 이탈리아반도를 중심으로 단거리만 출격하고 다시 모항으로 되돌아오는 식의 운영을 하려고 했기에 항속거리가 심각하게 짧았다. 덕분에 이탈리아령 동아프리카에 있던 구축함 5척은 항속거리가 너무 짧아서 탈출도 못하고 현지에서 자침했으며 이탈리아령 동아프리카도 본국의 지원을 못받아서 순식간에 함락되었고 리토리오급 전함도 그냥 지중해에서 활동하다가 끝난다. 프랑스가 프랑스 남부 및 알제리에 엄청난 규모의 시가지와 해군시설을 갖추어놓고도 군함들은 대서양이나 프랑스 식민지에서도 활동가능하도록 항속거리는 어느 정도 길게 잡아늘린 것을 생각하면 이탈리아 위정자들의 생각이 매우 짧았다.

기존의 구식 전함이었던 콘테 디 카보우르급 전함을 막대한 자금을 들여 새로 건조한 함급으로 만들어 버렸는데다 앞선 리토리오급 전함을 위시한 수상함대가 있었지만 전황을 뒤집지는 못하였다. 다른 육군과 공군에 비교해 보더라도 전력을 쥐어 짜내서 아프리카 물자 수송과 영국 해군과의 견제 등 나름대로 자기 역할을 하기는 했으나 눈에 띄는 대전과를 세우지는 못했고 결국 연합국에 항복하고 탈출중에 나치 독일의 유도폭탄인 프리츠 X 공격을 받아 리토리오급 전함 3번함 로마가 격침당하며 이탈리아 전함의 역사는 막을 내리게 된다.

전후에는 배상함 문제가 복잡하게 얽히며 특히 소련이 리토리오급 전함을 지속적으로 내놓으라고 요구하는 바람에 나치 독일의 프리츠 X 공격에서 살아남은 리토리오급 전함 2척은 모조리 이탈리아 자국에서 완전히 해체당했고 카이오 두일리오급 전함 2척만 남아서 기함이나 훈련함으로 쓰다가 1956년에 퇴역하고 1961년까지 해체된다.
전드레드노트급 드레드노트급
명칭 건조 명칭 건조
세인트 본 제독급 1893~1902 쿠니베르티 17,000톤 노급 계획
레지나 마르게리타급 1898~1905 단테 알리기에리 1909~1913
레지나 엘레나급 1901~1908 콘테 디 카보우르급 1910~1915
카이오 두일리오급 1912~1916
프란체스코 카라치올로급 1914~1920
프로젝트 UP.41형 계획
프로젝트 페라티 계획
리토리오급 1934~1942

7.2.7. 미국

제1차 세계 대전 무렵에는 미국 전함이 크게 활약하지 못했지만, 떠오르는 신흥강국답게 미국의 전함 세력은 이미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워싱턴 해군 군축조약으로 어느 정도 제약을 받기는 했지만, 영국과 비교해도 뒤쳐지지 않는 강대한 해군 전력을 구축했고 전함도 예외가 아니었다.

모니터함의 강화판으로 점점 발전한 미국의 전함은 USS 텍사스부터 미시시피급 전함까지 전드레드노트급 전함을 건조하면서 차츰 발전해나가면서 미국-스페인 전쟁에서 승리하고 백색함대로 원양을 순시하면서 먼로 독트린을 제대로 정립시키는 데 큰 역할을 담당했다.

전함의 발전속도도 빠른 편이라 사우스캐롤라이나급 전함부터 독자적으로 드레드노트급 전함을 건조하기 시작했고 선체 중심선에 계단식 주포탑 배치를 처음으로 도입하는 등의 발전이 있었다. 동력기관에 증기 터빈을 도입하는 것도 와이오밍급 전함부터 시행되었고 뉴욕급 전함부터는 주포를 14인치(356mm)로 강화하는 대신 주포 숫자를 12문에서 10문으로 줄이고 중앙부 주포탑 1기를 제거하는 등 점점 효율적인 설계로 나아가고 있었다.

미국의 표준형 전함은 느리지만 공격력과 방어력이 우수하다는 특성을 지녔으며, 군축조약이 체결되기 직전까지 사우스다코타급 전함(1920) 6척과 렉싱턴급 순양전함 6척을 동시건조할 정도로 건함능력도 높은 편이었다. 비록 이들 신규건조함은 렉싱턴급 항공모함으로 변경된 2척을 제외하면 모조리 스크랩되었지만 당대 미국 전함의 능력을 그대로 보여주었다.

일본이 군축조약을 탈퇴한 후에는 16인치 주포를 탑재한 노스캐롤라이나급 전함 2척과 사우스다코타급 전함 4척을 건조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일본군이 선전포고도 없이 진주만 공습을 감행하는 바람에 미 해군은 큰 타격을 입었다.

태평양 전쟁항공모함이 주역으로 떠올랐기 때문에 전함을 비롯한 포술함이 주력으로 사용되기 힘들었다. 게다가 진주만 공습으로 큰 타격을 입은 미국 전함들은 대부분 수리중이었고, 움직일 수 있는 전함들도 너무 느렸기에 해전에 투입될 수 없었다. 그래도 전쟁이 터진 후 취역한 노스캐롤라이나급 전함과 사우스다코타급 전함은 항공모함 호위임무를 수행하며 최전선을 달렸고, 전쟁 초기의 어려운 상황에서 미 해군을 받쳐줬다. 특히 태평양 전쟁의 분기점인 과달카날 전역에서는 노스캐롤라이나급 전함 워싱턴이 일본 전함 키리시마를 격침시키고, 일본 순양함과 구축함들을 모조리 물리침으로서 전함의 무적성을 증명하기도 했다.

전쟁이 계속되면서 표준형 전함들도 수리를 끝마치고 전열에 복귀했지만, 그들은 너무 느렸기에 상륙작전 지원임무에 동원되었고 나름대로 성과를 올렸다. 그러나 이들은 레이테 만 해전에서 후소급 전함들과 맞붙었고, 이때 벌어진 최후의 전함간 포격전에서 미국 전함들이 완승을 거두었다.

아이오와급 전함은 16인치 포를 탑재한 고속전함이었으나, 막상 완성되었을 때에는 미국의 승리가 거의 결정된 후여서 큰 전과를 올리지는 못했다. 그러나 태평양 전쟁이 종결된 후, 일본이 무조건 항복한 곳은 아이오와급 전함 미주리의 함상이었다. 이후 아이오와급 전함들은 퇴역과 재취역을 반복하면서 지상군의 화력지원임무를 수행하다가 퇴역하고 박물관이 됨으로서 미국 전함의 역사가 막을 내렸다.

그 이후에는 상륙 시 화력 지원이라는 전함의 이점을 포기할 수 없다는 미 해병대와의 타협안인 연안전투함줌왈트가 화력지원 임무를 이어받았다. 그러나 연안전투함은 시원하게 망했고(...) 줌왈트는 한때 함포를 레일건으로 교체하는 방안이 논의되기도 했으나 레일건 장착은 취소되었고, 원래 함포마저 엄청난 비용을 감당하지 못하고 철거를 검토 중이다.

미국 전함의 기술적 특징은 다음과 같다.

파나마 운하를 통과해야 했기 때문에, 함선의 폭이 좁은 태생적 한계를 가지고 있었다. 이는 주포 사격에 매우 불리한 특징이었기 때문에, 자이로를 이용한 포신 안정화 장비를 도입해서 사용하였다. 결국 파나마 운하에 폭 43m의 새 갑문을 설치하는 것을 골자로 한 운하확장계획안이 나온 후 설계한 몬태나급 전함에서 함폭을 늘려서 해결을 보았고 기존의 표준형 전함들도 상당한 숫자가 수리 겸 대규모 개장을 받으면서 벌지를 추가 장착하고 함폭을 늘려서 양용포를 장착하면서 파나마 운하 통과를 사실상 포기했다.

다른 국가에는 없는 초중량탄(SHS)를 도입했는데, 군축조약의 구경 제약 내에서 최대한의 화력을 뽑기 위한 시도였다. 탄이 무거워졌으므로 관통력이 늘어나고 대낙각탄의 각도가 올라갔기 때문에 현측장갑을 관통할 때나 갑판장갑을 관통할 때나 모두 유용했지만 그 반대 급부로 탄속과 사거리가 줄어들었다. 그리고 초중량탄이라고 해서 다른 재질로 만든 것도 아니고 탄자의 길이가 더 길어진 것이기 때문에 다른 국가보다 더 대형화된 주포탑을 사용하게 된다.

미 해군의 함선은 전자 장비에 대한 투자가 많았으며, 사우스다코타급 전함에 이르러서는 발전기가 꺼지면 1940년대의 전함이 아예 먹통이 될 정도로 전기와 전자 장비에 절대적으로 의존하는 무기 체계가 되었다. 그 대신 미 해군 전함은 전자 장비의 혜택을 가장 크게 누렸는데, 개전 시점에서 이미 '레이더를 사용하는 레인지 파인더 → 사격지휘용 기계식 컴퓨터 → RPC를 이용한 포탑 제원 자동 장입 → 사격 후 평가를 레이더로 진행'하는 완전 자동화된 사격 지휘 체계를 사용하고 있었다.

다른 국가의 전함보다 대공 방어에 더 많은 투자를 했는데, 영국처럼 마구 지어올린 것이 아니라 5인치 38구경장 양용포로 말할 수 있는 훌륭한 양용포 및 VT신관을 도입하였으며 장거리는 5인치 38구경장 양용포가 담당하고 중거리는 보포스 40mm 포가 담당하고 단거리는 오리콘 20mm 기관포가 담당하고 통합적인 사격지휘를 대공관제센터에서 담당하면서도 양용포에도 독자적인 사격통제시스템을 갖추는 등 체계적으로 대공포 증설을 대량으로 한 것도 특이한 점이다. 그래서 대공방어면에서는 2차대전중의 전함중에서 가장 나은 성능을 보여주었다.

미국 전함도 단점이 아주 없지는 않았는데, 대표적으로 드는 것이 사격지휘 컴퓨터의 열악한 성능이다. 미 해군 전함은 Rangekeeper라는 기계식 컴퓨터를 사용하였는데 노스캐롤라이나급 전함부터 몬태나급 전함까지 사용될 예정이었던 Mk.8 버전이 최종 버전이었다. 이 컴퓨터는 평면 상의 X, Y 좌표만 입력할 수 있었고, Z축 고도 좌표를 입력받을 수 없었다. 따라서 함선이 너울을 올라타며 피칭하는 상황이 되면 제원 오차가 생겼다.
또한 타켓이 직선으로 등속도 운동한다는 가정으로 제원을 산출했기 때문에, 적이 회피 기동을 시작하면 잘 맞지 않는 문제가 있었다. 그나마 전함들은 단종진으로 현측 전개를 하고 전함끼리 주포 사격을 시작하면, 제원 산출을 위해 상대 속도를 유지하려고 해서 회피 기동을 거의 하지 않았기 때문에, 전함끼리의 전투에선 문제가 되지 않았다. 실제로도 등속도 직선으로 기동한 야마시로, 키리시마는 순식간에 걸레짝이 되어 격침당했지만, 정작 야마시로 바로 옆에서 지그재그 기동을 한 모가미는 쏟아지는 강철비 안에서도 바로 격침당하지 않고 도망가게 된다.

덧붙여서, 이렇게 된 원인은 Rangekeeper가 영국의 기계식 컴퓨터 기술을 훔친 산업 스파이의 산물이기 때문이 아니냐는 의혹이 있다. 영국 정부는 결국 저작권 소송을 취하시켰지만, 이후로 영국과 (영국에서 배워온 일본)의 기계식 컴퓨터는 계속 발전한 반면, 미국의 레인지 키퍼는 삼각함수 장입용 캠을 추가해서 3차원으로 확장하는데 실패했기 때문이다. 미국은 결국 5인치 38구경장 양용포에 사용한 MK37 GFC를 이용해서 3차원 사격 지휘 컴퓨터를 완성하지만, 이 알고리즘을 수행하는 Ford Mark 1A는 자이로를 이용해서 함선의 움직임을 걸러낸 다음 사표에서 근사값을 찾는 알고리즘이어서 삼각함수 그래프가 새겨진 캠 3개로 3차원 삼각함수 연산을 하는 영국의 기계식 컴퓨터와는 거리가 멀다. 하지만 그 성능만큼은 진짜여서, VT신관과 합쳐진 결과 2차 대전 미국의 함대 방공의 주축이 되었고, 자국에 일부 도입된 물량에 깊은 인상을 받은 영국 역시 5인치 양용포와 함께 정식 수입 허가를 요청했지만 재고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미국 정부에게 거절당하기도 했다.

그래서 미국의 전함들은 주로 원거리에서 단종진을 형성하면서 교전한 후 적이 근접하면 호위함에게 뒷 일을 담당하게 하고 후퇴하거나 레이더의 능력을 최대한으로 살릴 수 있는 야간이나 안개를 잘 이용하게 된다. 중순양함이나 경순양함은 원거리에서 연사를 지속하면서 포탄의 비를 상대방에게 쏟아붙는 동시에 고속기동하면서 적의 근접 및 적이 발사한 어뢰를 피하는 방식을 채택했으며 구축함은 근접하면서 포탄의 비를 날리면서 어뢰도 쏘게 된다. 이는 포격전 문제 해결은 물론이거니와 일본군의 산소어뢰의 긴 유효사정거리를 피하기 위함이기도 했다. 일본의 산소어뢰는 숙련된 승조원이 운용할 경우 10km 이내까지 근접하면 명중할 위험성이 높기 때문이었다.

물론 이게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일본군과 야간전을 하면서 포탄의 명중률 향상을 위해 무리하게 근접하다가 산소어뢰를 신나게 얻어맞으면서 미군의 피해만 엄청나게 늘어난 것에서 배운 것이다.

원래 5인치 38구경장 양용포는 양용포지만 당시의 기술력으로는 대공과 대수상을 모두 만족스럽게 달성할 수 없어서 대공성능을 더 중시하여 38구경장이라는 상대적으로 짧은 포신을 사용하는 바람에 대수상능력 중에서 1발당 타격능력을 희생한 것이다. 물론 연사력이 좋고 사격통제장치도 대공사격능력등을 고려해서 좋은 것을 탑재했으므로 아주 밀리는 편은 아니었지만 일반적인 5인치 장포신 함포보다는 명중탄이 더 많이 나와야 적 군함에 동등한 타격이 가능했다. 그래서 5"/38 양용포가 단시간안에 일본군 구축함을 제압하지 못하고 미국 중순양함의 8인치 주포는 연사성능이 상당히 느리고 미국 경순양함의 6인치 주포도 연사성능이 살짝 모자라서 적 구축함의 접근과 뇌격을 허용하고 만 것이다.

그래서 앞서 언급한대로 무리한 명중률 향상 따위는 포기하고 원거리에서 포탄의 비를 뿌리는 방식으로 전환한 것이며 레이더와 사통장치가 발전하면서 포탄의 비의 정확성도 높아져서 충분히 목적을 달성할 수 있었다. 그리고 순양함의 연사능력 향상을 위해 디모인급 중순양함우스터급 경순양함이 등장하게 되며 전쟁 후에는 5"/54 양용포를 채택하여 대공 성능과 대수상 성능을 모두 잡았다.

2차대전 후에는 구식 전함들은 대부분 퇴역 후 스크랩되거나 핵실험 표적용으로 사용되었으며 테네시급 전함 이후의 전함들은 멀쩡하고 상태 좋은 군함들을 골라서 유사시를 대비해서 모스볼 처리했다가 1960년대가 되자 더 이상 전함들간의 해전이 벌어질 수 없다고 생각되어 해체당했으며 미국의 신전함 중 절반 정도가 기념함이 되었고 최후로 남은 아이오와급 전함은 재취역과 재퇴역을 반복하다가 결국 4척 모두 완전퇴역후 기념함이 되면서 전함의 시대가 마무리된다.
전드레드노트급 드레드노트급
명칭 건조 명칭 건조
인디아나급 1891~1893 사우스캐롤라이나급 1906~1908
아이오와 1893~1896 델라웨어급 1907~1909
키어사지급 1896~1898 플로리다급 1909~1910
일리노이급 1897~1898 와이오밍급 1910~1912
메인급 1899~1904 뉴욕급 1911~1914
버지니아급 1902~1907 네바다급 1912~1916
코네티컷급 1903~1908 펜실베이니아급
미시시피급 1904~1905 뉴멕시코급 1915~1919
테네시급 1916~1921
콜로라도급 1917~1923
사우스다코타급 1920
노스캐롤라이나급 1937~1941
사우스다코타급 1939~1942
아이오와급 1940~1944
몬태나급 1941 ~ 건조 취소

7.2.8. 일본

일본의 전함 운용사는 189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청나라와의 전운이 감도는 와중에 일본 제국 해군은 청나라 해군에 외형상 열세였다. 청나라는 양무운동을 통해 세계적으로 보아도 상당히 강력한 해군력을 보유했고, 그 선두에는 북양해군이 보유한 아시아 최대의 전력인 정원급 철갑함들이 있었다. 해당 함급은 약 7000톤의 크기에 12인치급 연장포 2기 총 4문으로 무장했던 반면, 일본 제국 해군의 최대 전력인 마츠시마급 방호순양함들은 함미에 12인치 단장포를 달고 있을 뿐이었다. 심지어 이 무장은 정원급에 대응하기 위해 무리해서 달아 올린 것으로, 4000톤급의 함체로는 운용하기가 매우 어려웠다. 하지만 한 문의 거포가 아쉬웠던 일본은 이를 울며 겨자 먹기로 사용할 수밖에 없었다.

위협을 느낀 일본 해군은 영국으로부터 본격적인 전함을 도입했다. 이것이 바로 후지급 전함으로, 일본이 보유한 최초의 전함이었다. 하지만 후지급은 청일전쟁 당시에는 참여하지 못했고, 전쟁이 끝난 후에야 인도되었다. 그리고 청일전쟁 종전 직후부터 러시아 제국과의 경쟁이 본격화됨에 따라 일본은 의회를 속여서 예산을 유용하면서까지 전함을 더 발주하였다. 이때 건조된 시키시마급 전함들과 카토리급 전함들 역시 영국에서 건조되었다. 시키시마급은 러일전쟁 직전에 인도가 완료되나 카토리급은 1906년에야 일본에 도착해 러일전에 참여하지는 않았다.

이로써 개전 시점에 6척의 전함을 보유하게 된 일본은 이 전함 전력을 바탕으로 러일전쟁에서 러시아 제국 해군을 각개 격파하며 전쟁의 승기를 굳히게 된다. 각 함급별로 한 척씩 총 2척의 전함을 손실하였으나, 일본 해군은 우선 뤼순항과 블라디보스토크에 분산 배치된 러시아 태평양 함대를 반신불수로 만든 뒤 지구를 반 바퀴 건너 온 발트함대마저도 쓰시마 해전에서 격멸했다. 이 승리를 통해 일본은 러시아를 협상장으로 끌어내고 대한제국을 식민화하며 본격적인 제국의 길로 나아갈 수 있었다. 그리고 이 성공의 주역은 바로 일본의 전함들이었으므로 일본인들에게 있어 제국 해군의 전함들은 단순한 무기가 아닌, 나라의 상징으로 등극하게 된다. 군사적으로도, 쓰시마의 대승은 후대에 이어질 일본 해군의 함대결전사상에 지대한 영향력을 미쳤다. 동시에 노획한 러시아 제국 해군의 전함들 역시 편입하여 일본 해군 전함전대는 한층 더 강력해졌다.

비슷한 시기에 일본은 전함 국산화에도 박차를 가했다. 1904년 요코스카 해군공창과 구레 해군공창에서 사쓰마급 전함의 건조가 시작되었다. 이 함급은 일본 최초의 국산 전함이기도 했고, 설계상으로도 전드레드노트급 전함의 잡다한 중간포들을 폐지하고 주포의 화력을 최대한 집중할 수 있도록 하는 등 드레드노트급 전함의 선진적인 면모가 돋보였다. 하지만 당시까지만 해도 빈약했던 일본의 경제와 해군 내외의 어깃장으로 인해 이 설계는 실제로는 반영되지 못하였고, 대신 총 4문의 12인치 2연장포와 현측의 10인치 2연장포 12문으로 구성된 과도기적인 형태로 완성되었다. 그 사이에 영국이 드레드노트급 전함을 내놓으면서 전함의 패러다임을 바꾸었다.

따라서 일본 최초의 드레드노트급 전함은 1909년에 건조가 시작된 카와치급 전함이었다. 하지만 이마저도 도고 헤이하치로등의 간섭으로 인해 주포 구경은 12인치로 통일하였으나 선미/선수 주포는 50구경장을 사용하고 측면 주포는 45구경장을 사용하는 등 주포 포신의 구경장이 다른 등 완벽하지는 않았다. 때문에 일본은 벌어진 격차를 따라잡기 위해 다시 영국에 함선의 건조를 요청하는데 이로써 탄생한 것이 바로 공고급 순양전함이다. 공고급은 비록 순양전함이긴 하였으나 화력은 당대 최대였던 14인치급으로 무장했고, 순양전함이었던 만큼 속도도 매우 빨랐다. 1번함 공고만이 영국에서 건조되었고, 후계함 3척은 기술 이전을 받아 일본에서 건조함으로써 일본은 비로소 드레드노트급 전함 건조 기술을 확보하게 된다. 이렇게 구성된 일본의 전함전대는 제1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자 독일령 칭다오를 강습하였고, 다른 협상국 해군과 함께 칭다오에서 탈출한 독일 제국 해군 아시아 전단의 탈출을 추격하며 태평양과 인도양의 항로를 보호하는 데 일익을 담당했다.

이후 일본은 최초의 완전한 국산 설계 전함인 후소급 전함과 그 후계함인 이세급 전함을 건조했다. 다만 이 함급들의 설계는 여전히 타국에 비해 몇 년 뒤져 있었다. 14인치 함포의 화력을 극대화하기 위해 총 6기의 2연장 주포탑을 함체에 일렬로 늘어놓은 형태였는데, 동시대의 영국과 독일, 그리고 미국과 같은 해군 선진국들은 방어력 증대를 위해 함체 중앙의 주포탑을 점차 폐지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줄어든 화력은 3연장 포탑이나 보다 큰 구경의 2연장포로 보강하였다. 물론 타국 해군들 역시 함체 중간에 주포탑이 달린 기존의 전함들을 대량으로 운용하고 있었으므로 후소급과 이세급은 30년 뒤인 2차 대전 때와는 달리 당시까지만 하더라도 쓸 만했다. 다만 퀸 엘리자베스급 전함표준형 전함으로 대체되던 타국의 비슷한 함선들과 달리, 일본의 후소는 미래를 대비한 차기 전함이었으므로 시간이 지날수록 문제가 되었던 것이다. 14인치 12문에서 나오는 그 강력한 화력 때문에라도 일본은 함부로 후소급과 이세급을 버릴 수 없었다.

그래도 이렇게 거친 시행착오와 노하우들을 바탕으로 일본은 '일본의 자랑' 나가토급 전함을 완성해 내기에 이른다. 나가토급은 세계 최초로 16인치 주포를 가진 함선이었고, 선행함들과 달리 설계나 속도, 방어 능력에 있어서도 동시대 타국 함선들에 전혀 꿇리지 않는 좋은 전함이었다. 그리고 일본은 여기서 더 나아가 88함대 계획을 발동하여 카가급 전함 2척과 키이급 전함 4척, 그리고 8척의 순양전함들을 건조함으로써 총 8척의 전함과 8척의 순양전함으로 구성된 대함대를 완성하고 기존의 노후함들은 예비함으로 밀어내고자 했다. 그러나 일본 제국의 상대적으로 빈약한 경제력으로 이 거대한 함대를 보유하는 것은 무리였다. 제국 예산의 30퍼센트 가량이 군비로 지출되었으며 이는 분명 비정상적인 수치였다. 곧이어 체결된 워싱턴 해군 군축조약으로 인해 각국에 건함 제한과 쿼터가 부과되면서 88함대 계획은 중단되었다. 이후 일본은 약 15년간 신전함을 건조하지 않고 원래 대체하고자 했던 기존의 전함들을 재건조라고 타국에서 부를 정도의 대규모 대개장을 통해 유지보수하였다.

그러나 대공황 이후 폭주하던 일본 군부는 기어이 만주사변을 일으키며 국제사회에서의 고립을 자초했고, 조약 시스템을 박차고 나와 해군 전력 강화 계획을 밀어붙혔다. 이때 건조가 시작된 것이 바로 야마토급 전함이었다. 총 9문의 18.1인치 포와 7만톤에 육박하는 거체는 전례가 없는 것이었고, 설계상으로도 기존 나가토급 전함의 설계를 발전 계승하였다. 기존의 파고다형 마스트를 탈피했고, 3연장 함포를 사용함으로써 중요구획의 면적을 줄였다. 기존의 광학식 조준장치도 최고급 최신형으로 최대의 성능급으로 장비하였고 레이더등의 전자장비도 처음부터 탑재하고 지속적으로 개량하는 등 야마토급은 일본 전함의 가장 발전된 형태였다.

이렇게 발전해 온 일본 제국 해군의 전함들은 단순히 머릿수만 보면 미국에 크게 뒤지지 않았다. 전성기인 1942년 시점에 일본의 주력 전함 전력은 공고급 순양전함 4척, 후소급 전함 2척, 이세급 전함 2척, 나가토급 전함 2척, 그리고 야마토급 전함 2척[23]으로, 진주만 공습 직전 미국 태평양 함대가 보유한 9척을 훨씬 상회했다. 물론 미국은 대서양 함대까지 합치면 17척으로 일본보다 훨씬 우위이긴 했으며 전쟁 이전에도 이미 15척의 전함이 건조 중이었다.

그렇다고 해도 태평양 함대만 놓고 보면 일본이 분명히 우세했고, 실제로 일본은 진주만 공습을 통해 이 9척의 미국 전함들을 한번에 전열에서 이탈시켜 버림으로써 우위를 확고하게 굳혔다. 미 대서양 함대가 남아 있다 한들, 태평양 함대의 등뼈가 전쟁 첫날에 거의 완전히 부러져 버린 이상 일본이 여세를 몰아 제대로 전력을 운영했다면 미 해군은 40년 전 러시아 제국 해군 발트함대의 전철을 밟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미국은 러시아 제국이 아니었고, 반대로 한때 전함 운용의 선구자였던 일본은 2차 대전이 되어서는 전함을 이렇게 쓰면 안 된다는 반면교사로 굴러떨어지고 말았다.

상술한 바와 같이 일본의 전함의 기술적 측면은 세계적 기준에서 보았을 경우에는 상당히 양호했다. 화력을 중시하기도 했고 대개장을 실시하여 어떻게든 2차대전에서도 쓸 만한 성능을 확보했으며, 야마토급 전함같은 최대의 전함을 만들기도 했던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미흡한 부분이 많았다. 우선 대개장을 하면서 이탈리아 해군처럼 과감하게 중앙부 주포탑을 제거하고 제대로 속도를 올려서 고속전함으로 써먹는다는 선택을 하지 않고 문제가 되는 중앙부 주포탑을 그대로 두고 개조하는 바람에 돈과 시간과 자재를 낭비한 것에 비해 성과가 영 좋지 않았다. 후소급 전함과 이세급 전함이 대표적인 사례로, 공고급 순양전함의 뒤를 든든히 받쳐주는 고속전함으로 써먹을 수도 있었으나 이 때문에 사실상 시대에 뒤떨어진 폐물로 전락한다. 이세급 전함은 한 술 더 떠서 항공전함이라는 쓸데없는 개조까지 하면서 돈을 더 낭비한다.

이건 부포곽같은 장비도 마찬가지였다. 부포곽을 유지하는 바람에 대공포의 숫자가 줄어들어 공습에 제대로 대비할 수 없을 뿐더러, 부포곽은 방어 구획에 뚫린 구멍과 같은 존재였으므로 적의 포탄이 우회해서 관통한 후 함내로 들어와서 중요시설을 박살내는 상황이 연출되었다. 이 현상은 실제로 과달카날 해전에서 벌어졌다.

다음으로 견시의 육안과 광학식 조준장치가 문제였다. 물론 일본의 숙련된 견시와 광학식 조준장치 자체는 매우 좋은 능력과 성능을 가지고 있었다. 특히 일본의 견시들은 야간전에서조차 능력을 발휘했고 이에 힘입은 일본 함대는 전쟁 초반 미 해군에 여러 차례 야습을 걸어 대승을 거두기도 했다. 대표적인 게 바로 사보섬 해전이었다. 그러나 반대로 레이더 자체의 개발이 제대로 안 된데다가 전파관련기술개발을 금지한 기간까지 있다보니 일본의 레이더 성능은 세계적 기준으로도 매우 뒤떨어졌다.

그리고 이런 장비는 주간에 맑고 시야가 확실하게 보이는 상황에서는 제 능력을 발휘하지만 적이 연막이라도 뿌리거나 안개가 끼면 성능이 극단적으로 떨어졌다. 실제로 레이테 만 해전의 사마르 해전에서 미국 태피 3의 호위항공모함을 야마토가 광학조준하고 사격한 결과 원거리에서도 협차 달성 및 지근탄 발생의 성과를 거두었으나 곧 미군이 호위구축함으로 연막을 뿌리자마자 명중률은 급감했다. 야마토는 어쩔 수 없이 레이더로 관제사격을 실시했으나 일본군 레이더가 워낙 성능이 안좋으니 착탄을 확인할 수 없었고 결국 목표를 놓치게 된다. 미국의 기록에서도 연막을 뿌린 후에 야마토의 포탄이 엉뚱한 곳으로 날아가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한다.

덤으로 야간에는 광량부족으로 인해 아예 광학조준장치가 작동하지 않는다. 야간에는 탐조등조명탄을 모두 사용하더라도 견시가 쌍안경을 쓰거나 육안으로 대강 목표의 위치를 지시하는 게 유일한 방법이다. 그래서 견시를 이용해서 어뢰를 명중시킬수는 있어도 함포사격은 명중이 매우 어렵기 때문에 일본의 수뢰전대 야간전술에도 몸빵을 하는 함선이 탐조등과 조명탄을 쓰면서 미끼가 되는 사이에 부대의 다른 함선들이 산소어뢰를 날리는 방식으로 교전하기로 한 것이다. 이렇게 하더라도 몸빵을 담당하는 함선만 손해를 입고 끝나며 경우에 따라서는 워낙 야간의 함포사격 명중률이 떨어지니까 모두 무사한 상태에서 전투가 일본의 승리로 끝날 것이라고 일본은 생각했다. 실제로 일본의 야전이 성공한 경우의 대다수가 산소어뢰의 공적이었다.

실제로도 사보섬 해전에서 일본 해군은 야전에서 별 피해없이 대승을 거두었는데 이는 미군이 연속된 비상경계로 탈진한 상황에서 총지휘관이 회의차 빠져나간 상황이었다는 일본에게는 행운인 상황을 이용한 것이었다. 여기에 더해서 일본군 수상기가 미군인척 하고 등화를 다 켜고 상세하게 미군 함선의 위치를 아군에게 알려준데다가 일본군 중순양함들이 고속으로 항해하면서 순찰코스를 따라서 저속으로 항진하면서 방심상태에 놓여있던 미군에게 탐조등을 비추고 조명탄을 날린 후에 미리 얻은 사격제원을 가지고 3km 이내의 거리에서 사격을 실시하여 2km 이내 거리에서 집중포화를 날리고 어뢰를 명중시킨 후에 고속으로 후퇴했기 때문이었다. 그 정도의 초근접거리라면 산소어뢰는 말할 것도 없이 100% 적중하며 함포도 육안으로 대강 감으로 조준해도 충분하게 명중탄을 날릴 수 있다. 덤으로 중순양함 이하의 보조함들은 함포의 연사속도가 빨라서 저렇게 적과 근접한 상황이라면 굳이 협차사격 할 필요가 없이 함포 발사 후 착탄하는 해면의 물기둥 보고 조준을 재수정하는 전통적인 함포사격을 해도 명중률이 좋다.

하지만 실전이 거듭되면서 이야기가 달라졌다. 그래서 5km 거리라는 전함 입장에서는 초근접거리에서 공고급 순양전함 키리시마가 사우스다코타급 전함 사우스다코타가 전기고장이 난 사이에 일방적으로 난타했음에도 불구하고 2발 명중이라는 참담한 성적을 거두는 데 반해서 노스캐롤라이나급 전함 워싱턴이 키리시마를 사격할 때는 9km 거리에서 9발을 명중시켜서 침몰시키는 성적을 거둔다. 미군의 견시가 일본군보다 능력이 크게 떨어지며 야간에는 자신에게 다가오는 어뢰도 제대로 관측 못하는 등 사실상 있으나마나 한 상황에서 같은 영거리 사격임에도 불구하고 이런 결과가 나오는 것은 미국의 초기형 레이더 덕분이었다. 그나마 이것도 개전 초기 상황이었고 1944년의 레이테 만 해전의 시점에 가면 수리가오 해전에서 콜로라도급 전함 웨스트버지니아가 후소급 전함 야마시로를 상대로 해서 야간에 레이더만으로 41,000야드(37.4904km)부터 목표를 추적하기 시작해서 레이더 관제사격으로 22,400야드(20.48256km) 거리에서 사격을 시작하자마자 명중탄을 낼 정도로 일본과의 차이가 벌어진다.

마지막으로 대공화기의 부족 및 승조원 관련 시설의 부족이다. 진주만 공습으로 성과를 거둔 자국 항공세력의 절반쯤 되는 세력이 아군 함대를 공습하면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생각도 못해서 대공화기는 약방의 감초식으로 달아주었고 나가토급 전함의 변기 숫자에서 알 수 있듯이 승조원 관련 시설도 매우 부족하여 승조원 컨디션 유지도 매우 곤란했다. 덕분에 미국의 공습이 날아오면 지친 승조원이 몇 안되는 대공화기를 운영해야 했고 대공화기의 능력도 부족하여 공습을 제대로 막지 못해서 사상자가 늘고 함선이 파괴되었다. 나중에서야 대공화기의 숫자가 늘었지만 체계적인 대공방어체제를 갖춘것도 아니고 그냥 대공화기만 마구잡이로 증설했다. 그래서 전투 초반에도 허공에 포탄을 난사하는 격이나 다름이 없었고 조금만 전투가 지속되면 조작인원의 사상자 발생과 탄약 부족등으로 대공화기의 상당수가 작동을 중지하게 된다.

그러나 일본의 전함의 가장 큰 문제점은 운용 측면이었다. 그래서 가진 능력치를 절반도 발휘하지 못하고 망친 것이다. 함대결전에 투입해야 한다며 전함을 너무 아낀 데다가, 전함을 운용할 연료와 예비부품이 모자랐다. 특히 주요 보급 기지였던 트럭 제도는 환초라는 특성 상 가용 면적이 부족했다. 점감요격작전에 대비해서 비행장을 4곳이나 건설하고 수상기 기지도 만들고 해안포를 증설한 후에는 연료탱크를 설치할 남은 공간이 없었던 것이다. 게다가 이렇게 된 것도 일본 제국의 판단 실수 때문인데 최전방이므로 전투시설은 무리수를 쓰더라도 갖추어야 하지만 수리시설, 보급시설 같은 것은 적의 공격에 쉽게 박살난다는 이유로 일부러 설치하지 않은 것이다. 그래서 전투시설은 없는 공간을 바다를 매립해서라도 설치했지만 수리시설과 보급시설은 공간 없다고 그냥 방치한 것이다. 따라서 일본의 전함들은 트럭 제도에서 보급을 받는 것이 아니라 보급을 해주는 역할을 수행해야 했다.

때문에 함대결전을 위해 대기하는 전함들 대신 항공모함공고급 순양전함, 그리고 중순양함들이 나서야 했다. 그나마 다행스럽게도 진주만 공습으로 미국의 구식 전함들이 거덜났기에 미국도 항공모함과 중순양함 위주의 함대 운용을 할 수밖에 없었다. 미국은 신형 전함들을 최대한 빨리 태평양에 배치했지만, 운용 미숙으로 인해 사보섬 해전에서 굴욕적인 패배를 당했다. 이때 미 전함 노스캐롤라이나는 전투 해역 근방에도 도달하지 못해서 아무 것도 못했고, 일본 제8 함대 중순양함들이 과달카날의 제해권과 제공권을 장악했다.

일본 전함들도 과달카날로 향했지만, 동부 솔로몬 해전에서 위풍당당하게 출전한 전함 무츠가 너무 느려서 함대에서 낙오되고 말았으며, 이후 일본 전함들은 과달카날 근처에도 안 왔다. 제8 함대의 중순양함들은 미군과 싸우다가 큰 피해를 입었고, 그제서야 공고급 순양전함이 핸더슨 비행장 포격임무에 가담했다. 이에 미군 역시 전함 워싱턴과 사우스다코타를 과달카날 해전에 투입했으나 일본은 공고급 외에는 그 어떤 전함도 보내지 않았다. 미 해군이 연합함대에 비해 아직 압도적인 우위를 확보하지 못했으니 이때 싸웠다면 과달카날을 장악하고 미국과 호주의 연결을 끊는 성과를 거둘 수 있었는데도 말이다. 결국 공고급 순양전함과 중순양함들이 미군의 최신예 전함들을 상대해야 했고, 당연히 패배했다.

그러나 일본은 과달카날 전역에서 패배한 후에도 주력 전함들은 여전히 후방에서 대기했다. 이 와중에 전함 무츠가 구레 군항에서 원인 미상의 사고로 폭침하면서 전력이 줄어버리고 말았다. 일본이 전함들을 내보낸 건 필리핀 해 해전이 되어서였으나, 이미 일본 항모전단의 항공대는 마리아나의 칠면조 사냥을 당하며 괴멸당한 이후였다. 이후 레이테 만 해전에서는 항공대가 부족해진 일본 항공모함들이 미끼 신세가 되어 미 항모전단을 꾀어냈고, 전함들은 레이테 섬을 향해 돌격해 들어갔다. 일본 항공대가 죄다 전멸하여 미국의 항공대가 전함을 사냥하기에 딱 좋은 조건을 갖추었을 때에 이런 작전을 세운 것이다.

그러나 항공 엄호 없이 전함들이 최전선에 나선 결과는 너무나도 처참했다. 훈련함 수준인 후소급 전함은 용맹하게 돌격했지만 수적, 질적으로 압도적 우세를 점한 미국 구식 전함들의 레이더 관제 집중포화와 미국 구축함들의 원거리 레이더 관제 어뢰공격을 함께 얻어맞고 2척 모두 침몰했다. 그래도 후소급 전함은 전함 대 전함의 포격전으로 침몰했으니 그나마 나은 셈이다. 이세급 전함은 미끼 역할을 한 일본 항모전단과 같이 있었고 미국의 공습을 피하면서 미국 공습의 상당부분을 끌여들인 것 외에는 딱히 한 역할이 없었다. 이후에는 북호작전이라는 물자 수송에 수송선으로 참여했다.

한편 최정예 함선이었던 야마토급 전함 무사시는 함대의 전면에 나섰다가 자기 주포로 자기 대공포좌를 박살내는 추태를 보이면서 결국 침몰한다. 주포로 대공사격 한 번 하면 엄청난 폭압과 후폭풍으로 인해 개방된 대공포좌가 대피하지 못한 조작인원과 함께 줄줄이 박살나고 말았던 것. 거기다 주포의 대공사격시 발포규칙도 비현실적이라서 대공화기 조작원이 충격에 취약한 조준기를 분해해서 휴대한 후 함선 내부로 대피한 후에나 주포로 대공사격이 가능했다는 문제가 있었다. 이러면 벌써 목표는 조준기를 벗어난 후였고, 주포로 대공사격 후에 적기가 근접해오면 함선내로 피난갔던 조작원들이 되돌아와서 조준기를 재결합하고 사격하기까지 긴 시간이 걸리므로 공습에 무방비가 된다는 사태가 발생한다. 이러니 실전에서는 규칙을 무시하고 주포가 대공사격한답시고 발포해서 일이 터지고 만 것이다.

또다른 주력함들인 야마토나가토는 미군 구축함 히어만의 어뢰에 격퇴당했다. 그동안 일본의 중순양함들은 미군과 맞서 싸우다가 침몰하거나 대파되었고, 과달카날 전역의 수훈함인 중순양함 초카이는 전함 공고에게 팀킬을 당했다. 이로써 일본 전함전대는 레이테 섬의 일본 병사들, 증원병력을 데리고 레이테 섬에 돌입한 16전대의 군함들을 팽개치고 말았다. 최후의 생존함 중 하나였던 공고급 순양전함 하루나는 일본 본토에서 대공포대로 사용되다 구레 군항 공습에서 격침되었다.

결국 대전기 내내 일본 연합함대에서 제대로 전공을 새운 수훈함들은 민간에선 노래까지 지어서 퍼뜨려가며 애지중지했던 전함이 아니라, 성적 미달자들의 집합소라는 항공모함들, 그리고 전함 대신 사력을 다해 싸운 중순양함들이었다. 적으로부터 제해권을 탈취하고, 바다를 지키는 역할을 맡는 게 주력함이라면 일본의 주력함은 전함이 아니라 항공모함중순양함이다. 그들이 전쟁 내내 최전선에서 싸웠기 때문이다.

미드웨이 해전 이후 기울어지는 전황에서도 항공전력이 소진될 때까지, 심지어 소진된 후에도 몸을 던져가면서 싸운 것이 일본의 항공모함들이었다. 레이테 만 해전에서 함재기가 없다는 이유로 미끼역을 맡아 죄다 격침당했지만 임무 자체는 성공시켰을 정도. 전함들의 삽질 때문에 구리다 턴을 하면서 모두 수포로 돌아갔지만. 그리고 전함의 빈 자리를 대신하고, 성능과 수량에서 수준 미달인 경순양함들의 빈틈을 메우며, 항공모함을 호위하며 혈투를 벌인 게 일본의 중순양함들이었다.[24]

전후까지 살아남은 유일한 전함 나가토는 미군에 인계되었고, 핵실험에 사용되어 비참한 최후를 맞았다. 나머지 함선들의 잔해는 해체되거나, 오늘날까지 바다 속에 잠들어 있다.

유일하게 남은 것은 쓰시마 해전 승전 기념용으로 군축조약에 따라 기념함이 된 후 콘크리트로 주변을 굳혀서 육상의 구조물이 된 미카사 뿐인데 이것도 패전 후 혼란중에 주포를 비롯한 주요 부속이 몰래 고철로 팔리고 군함 자체도 미군용 수족관과 연회장으로 개조되었다가 긴급복원된 관계로 원형은 퇴역한 칠레의 전함에서 해체한 부속까지 동원해서 외형만 간신히 유지하는 상태다.
전드레드노트급 드레드노트급
명칭 건조 명칭 건조
후지급 1894~1897 카와치급 1909~1912
시키시마급 1898~1901 후소급 1912~1917
아사히 1897~1900 이세급 1915~1918
미카사 1899~1900 나가토급 1917~1921
카토리급 1904~1906 카가급 1920~1922
준드레드노트급 야마토급 1937~1942
사쓰마급 1905~1911 A-150 취소

7.2.9. 그 외 국가들

7.2.10. 전함이 없으나 도입을 시도한 국가

8. 전함의 몰락

8.1. 항공모함의 대두

제2차 세계 대전, 특히 태평양 전쟁에서 전함의 활약이 줄어든 것은 그만큼 항공모함 전력이 발전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제2차 세계 대전 해전을 통틀어 항공기의 공습과 하위 함급의 뇌격 없이 함포 포격전으로 전함이 격침된 것은 순양전함 후드과달카날 해전순양전함 기리시마, 레이테 만 해전의 전함 야마시로 정도이고 피아간에 항공모함이 아예 없었던 경우였다.

반면 반대의 경우로 항공모함이 전함에게 격침된 경우는 샤른호르스트의 글로리어스 격침 한 번뿐이다. 그나마 이것도 항공모함 글로리어스의 함장인 가이 도일리휴즈(Guy D'Oyly-Hughes)가 증인으로서 군사재판에 참석하기 위해 무리에 무리를 거듭했기 때문이었다. 귀국을 서두른 것은 다름이 아니라 자신의 부당한 명령을 거부했던 부하에게 불리한 증언을 하기 위함이었다. 개인적인 원한으로 인해 귀국을 서두른 결과 구축함 2척이라는 빈약한 호위함만 데리고, 정찰기도 날리지 않았으며, 유사시 출격준비도 제대로 하지 않은 채 본국을 향해 고속으로 항진했다. 결국 독일 전함이 먼저 영국 항공모함을 발견 하고 선제사격을 가했다. 일방적으로 두들겨 맞았기에 정상적인 교전에 속하기에는 조금 거리가 있으나 항공모함이 전함에게 격침된 최초의 사례로 남았다. 그 외에 레이테 만 해전에서 호위 항공모함인 갬비어 베이가 전함에게 격침된거 아니냐는 설이 있으나 가능성은 낮다. 미국에서는 일본 중순양함 치쿠마가 갬비어 베이를 격침했다고 평가하며, 워낙 많은 일본 배들이 갬비어 베이를 향해 포격을 퍼부은 데다, 전함의 철갑탄이 호위항공모함에 명중하면 과관통이 일어나므로 일반적으로는 내장된 작약이 기폭되기 전에 바다에 빠졌다.

항공모함은 긴 공격거리를 가진 함재기를 이용해 전함을 항상 방어하는 측으로 몰아넣었고, 곧 얼마 지나지 않아 함재기를 방어하는 주역도 함재기가 되면서 함대전 공방의 중심에 섰다. 이에 따라 일본 해군의 전함 야마토나 대전 후기의 미국 전함들의 경우에는 부포탑이나 주포탑 화력을 일부 희생하고 대공 화력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진화하기도 했다. 전함의 주포탄과 동등한 위력의 폭탄을 전함의 주포가 닿을 수 없는 거리에서 함재기를 통해 날려보내는 항공모함은 전함과의 대결에서 공세적인 입장을 취하기가 더욱 유리했기 때문이었다. 마침내 2차 대전 동안 프린스 오브 웨일즈, 리펄스, 무사시, 야마토가 기동 중에 함재기 공습으로 격침되면서 전함의 무적성이 깨지고, 전함은 전함으로만 격침당한다는 통념도 무너진다.

이후 항공기 기술의 발달로 항공모함의 역할과 능력이 더욱 강화되어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8.2. 핵 만능주의

냉전기에는 핵 만능주의가 대두되었다. 핵무기는 등장하자마자 전함의 전략 무기로서의 지위를 빼앗았다. 특히 핵무기를 운용하는 공군의 득세로 어느 누구도 아닌 미합중국 해군조차 공군에 밀려 전함은 물론 항공모함도 포기할 뻔 했었다. 육군도 무관하지 않아서 2세대 전차가 출현한다.

소련의 핵개발, 그리고 수에즈 전쟁을 계기로 영국, 프랑스도 핵개발을 진행하면서 핵 전쟁이 쉽게 선택할 수 없는 선택지가 되었지만, 해군 재래식 군사력의 핵심은 여기서 설명하는 다른 이유들 때문에 항공모함의 몫이 되었다.

8.3. 집중 방호 개념의 몰락

미국의 표준형 전함, 일본의 나가토급 전함야마토급 전함, 영국의 넬슨급 전함킹 조지 5세급 전함, 프랑스의 됭케르크급 전함 같은 슈퍼 드레드노트급 전함들은 집중 방호(All or Nothing)개념이 도입되었다. 이는 함선에 집중 방호 구획이라는 것을 두어서 탄약고, 엔진, CIC를 몰아넣는 설계 사상이다. 그리고 2차 세계대전에서 실전에 투입되자, 비스마르크, 샤른호르스트, 사우스다코타를 통해 전함들이 실험에 들었는데, 집중 방호 개념이 틀린 것으로 드러나고 만다.

왜냐하면, 집중 방호는 함선 안에서도 더 귀중하고 치명적인 부분이 따로 있다는 가정으로 만들어졌지만, 배는 애초에 좁은 공간이어서 배에 우겨넣은 거의 모든 것들이 필요한 것들이었다. 특히 기술의 발전 때문에, 집중 방호로 보호받지 못하는 함교의 레이더, 레인지 파인더, 대공포도 무척 중요한 장비임이 드러났다. 심지어 언뜻 보기엔 부식/간식이나 생필품들이 안 중요한지는 몰라도 별 쓸모도 없을 것 같은 PX 조차도 부장들이 대공지휘나 제2 함교를 준비하는 공간으로 사용되었고, 승조원 침실도 병상으로 쓰였다. 그런데 이들 시설들은 집중 방호로 보호받지 않았기 때문에 피탄시 쉽게 박살나면서 동시에 유사시 지휘권을 인계받거나 인명과 함내 시설을 구할 이들이 먼저 몰살당하는 일이 벌어졌다.

이건 실전에서도 입증되었다. 순양전함 키리시마는 샤프트가 통과하는 공간, 히에이리나운은 타기실에 피격당했고 비스마르크는 키에 피격 당했는데, 이는 엔진 피격보다 당장의 피해는 덜해보이지만 엔진실 직격과 비슷한 수준으로 기동성을 잃는 결과를 낳았다. 야마토급 전함 무사시는 집중 방호의 대상이 아닌 선수부가 완전히 침수되면서 침몰했다. 사우스다코타는 가라앉진 않았지만, 상부 구조물의 전자 장비가 전부 파괴되고 나서는 실질적인 전투력을 상실하고 자력항해만 가능한 사실상 전투면에서는 무의미한 상태로 물 위에 떠있을 뿐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집중방호를 적용한 전함들은 공습으로 격침된 야마토급 전함프린스 오브 웨일즈를 제외하면 하나도 격침되지 않았으며, 격침된 전함들도 집중 방호가 상정한 포격전이 아닌 항공기 뇌격으로 격침되었다. 그러나 집중 방호를 적용하지 않고 격침된 전함들은 집중 방호에서 지킬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 요소들이 파괴되면서 전투력을 잃었다. 이를 두고 '집중 방호는 시험에 든 적이 없었으나 시험에서 탈락했다.'고도 표현한다.

집중 방호 개념이 실패한 시점에서 전함의 장갑이 더 두터워지는 것은 불가능한 상태가 되었고, 핵무기의 등장으로 그렇게 되도록 노력해야 할 이유도 사라지고 말았다. 결국 현대 해군의 함선은 피탐 거부, 피격당하기 전에 탐지하여 요격, 긴 사거리를 이용한 일방적인 공격을 추구하게 된다.

8.4. 미사일의 발전

기술의 발전으로 미사일이 빠르게 발전하였다. 전함의 주포보다도 강력한 탄두를 날려보내며, 주포의 반동을 받아내기 위한 거대한 함체가 필요없기에 소형함에서도 수월하게 운용할 수 있는 미사일이 등장함에 따라 항공모함의 발달로 시작된 전함의 몰락은 확정되었다.

대표적인 예시로 RIM-8 탈로스는 대공 미사일이지만 대함 미사일로도 유효한지 여부가 테스트되었다.예시 이 미사일은 전술핵도 탑재되어서 전함의 장갑을 무의미하게 만들었지만, 탈로스 미사일은 사실 그 이상의 존재였다.

유도 미사일은 전함의 태생적 한계였던 협차사격로부터 자유로웠으므로, 전함이 협차를 완성해놓고도 살포계 안에서의 명중탄 확률에 기댈때, 미사일은 쏘면 명중하는 무기였기 때문이다. 설령 핵이 없다 치더라도 순양함 이하를 대상으로는 압도적으로 유리한 무기체계였고, 전함의 집중 방호 구획에 대한 환상이 깨지면서 상부 구조물에 대한 타격도 위협적이라는 것을 알게 된 1950년대에는 전함에게도 위력적인 무기였다. 또한, 아무리 전함의 장갑이 강화되더라도 1970년대 들어 등장한 1톤의 탄두를 수백 킬로미터 밖에서 초음속으로 날려보내는 P-500 바잘트P-700 그라니트와 같은 괴물 대함미사일들까지 막아낼 수는 없는 노릇이었기에, 현대의 전투함들은 전함과 같이 장갑을 강화하여 얻어맞고 버티는 방식이 아니라 이지스 시스템과 같은 함대공 레이더를 활용하여 피격 자체를 거부하거나 회피하는 방향으로 진화하게 되었다.

8.5. 비용

이상의 내용으로 전함의 무적성이 깨지고 위험은 늘었지만, 유지 비용은 여전히 높았다. 특히 소수만 남은 전함을 위한 주포나 거대한 엔진같은 부위의 관련 부속을 생산하는 산업이 쇠퇴하고 신규발주도 어려워지면서 부품공급에 곤란을 겪기 시작한다.

그리고 시대의 흐름에 따라 인건비도 점점 상승하여 과거처럼 3천여명이라는 연대급 인원을 전함 1척에 투입하기도 곤란했다. 물론 개량을 통해서 승조원의 숫자를 줄이는 경우도 있었으나 그걸 감안해도 다른 군함 3척 이상을 채울 수 있는 승조원을 전함 1척에 몰아넣는 것은 여전히 어려웠다.

그래서 1960년대에 들어 전함들은 아직 내구수명이 남았음에도 불구하고 각국에서 퇴역 혹은 폐함시키게 된다.

9. 전함을 위한 변호

역사적으로 보면, 전함은 그 가격이나 함급에 비해 뚜렷한 전공을 올리지 못한 편이다. 하지만 그것을 근거로 전함을 돈만 잡아먹고 전장에선 아무것도 한 게 없는 애물단지로 취급하는 것은 당대 현실을 잘못 이해한 것이다. 무엇보다 당시에는 전함의 대체재가 없었다.

오늘날에는 레이더, 미사일, 항공모함을 포함한 항공기, 핵무기가 등장하였기에 전함이 전략적 가치와 전투능력의 우위를 완전히 상실했다. 그런데, 여기서 레이더를 제외하면 죄다 항공우주공학과 관련된 병기이다. 자기가 스스로 나는 미사일, 항공기는 말할 것도 없고, 핵무기의 투발 역시 항공기나 로켓이 있어야 한다.

그나마 수중에서 폭발하는 어뢰는 위협이 되는 병기였고, 실제로도 미 해군 잠수함 아처피시시나노[25] 어뢰로 격파한 사례도 있지만, 이건 시나노가 제대로 된 호위세력 없이 돌아다녔기 때문이다. 일반적인 전함과 그 전함이 데리고 다니는 수상전력이 있었다면 절대 낼 수 없었던 성과였다. 즉 항공세력이나 같은 전함을 제외하면 전함을 잡을 수단이 사실상 없다.

라이트 형제가 세계 최초의 동력 비행기의 이착륙에 성공한 것이 1903년의 일이다. 그 후 약 11년이 지나 제1차 세계 대전이 터진다. 항공기가 인류의 역사에 본격적으로 등장한 것은 2020년대 기준으로 약 120년밖에 안 된다.[26] 제1차 세계대전까지만 해도 전함은 모든 수상함 중에 최고의 전투력을 갖춘 범접 불가능한 전력이었다. 통상파괴전이든, 해전이든, 상대방 해군이 전함을 투입하면 이쪽도 전함을 투입하지 않는 이상 도저히 균형을 맞출 수가 없는 존재였으므로 실제 전투를 치르지 않아도 존재 자체만으로 높은 전략적 위상을 가지는 게 당연했다.

항공수송도 사실상 불가능했던 그 시대엔 해로가 있는 바다가 제국의 기반이었다. 제1차 세계 대전 당시 독일 제국이 벌인 무제한 잠수함 작전만 봐도 알 수 있는데, 당시 대영제국이라 불리며 세계 최강이라 자부하던 영국조차 여기에 제대로 휘말려 피똥을 쌌으며, 이에 같이 시달리던 미국치머만 전보 사건까지 겹쳐 결국 선전포고를 하게 된다. 고작 잠수함 세력이 벌이는 짓만 해도 이 정도의 여파를 불러오는데, 진짜배기 전함이 틀어막아버리면 정말로 대책이 없다. 해군 차원이 아니라 국가 차원에서 밀려버리는 상황이 된다! 따라서 한 나라가 전함 전력을 키우면 숫적으로든 질적으로든 경쟁 국가는 그 수준을 따라갈 수밖에 없고, 이것이 1차대전 이전부터 전간기까지 이어진 전함 건조 경쟁의 근본적인 이유였다.

따라서 전함이 세운 실제 전과가 적다며 가치절하하는 시선은 문제가 있다. 당대 국가들이 바보라서 거의 반 세기 가까운 기간 동안 거함거포주의에 집착해 대형 전함을 앞다투어 찍어낸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전함 이전의 최고 등급 함선이었던 전열함도 유럽의 각국에서 경쟁적으로 건조했던 것, 냉전기 미소 양국과 주요 국가들이 핵개발과 핵무장에 매진했던 것과도 동일한 논리다. '핵무기에 들어간 비용을 생각하면 역사상 두 번만 쓰였기에 수지타산 안 맞는다.'라고 무시하는 게 문제가 있듯, 전함도 가성비 떨어진다고 구박할 물건은 아니다. 세계대전기에 전함이 함부로 실전투입된 일이 적은 것도 전함 vs 전함 구도에서는 서로 신중하고, 전함 vs 전함 없음 구도에서는 굳이 두들겨 맞기 전에 미리 숙였기에 일어난 일이다. 당장 포함외교라는 방식으로 일본과 조선이 군함 한 척에 문호를 개방했다. 전함결전 자체가 열강급 국가가 존망을 건 전쟁을 각오한 다음에야 일어날 수 있는 대규모 회전이다. 즉 어찌보면 오늘날의 항공모함이나 SSBN의 전과가 적다는 것과 일맥상통하다.

거기에 더해, 최소한 제2차 세계 대전 기준으로는 항공기로도 쉽게 잡을 수 없던 존재가 바로 전함이었다. 영국은 독일의 빈약한 전함 전력을 잡기 위해 엄청난 공을 들여야 했다. 북해의 지형을 생각하면 영국의 항공기, 특히 폭격기가 쉽게 움직일 수 있었음에도 비스마르크 하나 잡겠다고 전함을 수 척 투입하는 등 현실판 버스터 콜을 했다. 말이 좋아 '전함 수 척'이지 전함에 붙은 호위함까지 감안하면 사실상 비스마르크 1척을 가라앉히겠다고 영국의 해군력을 거의 모조리 끌고 온 것이나 다름없었다.

항모가 전함을 박살내는 구도가 나온 것도 쇼미더머니급 자본력으로 항모를 수십 척씩 찍어내 수백 소티의 항공폭격을 퍼부은 미 해군의 덕이다. 게다가 그 미군조차 야마토급 전함 2번함 무사시윌리엄 홀시가 이끄는 제3함대의 항공전력을 있는 대로 퍼붓고 나서야 가라앉았고, 1번함 야마토를 상대로 항공기 110여 대의 집단공습을 두 시간 넘게 가해서 간신히 야마토를 가라앉히는 등, 전함이 결코 호락호락한 상대가 아님을 보여주었다. 말 그대로 미국이니까 가능한 물량전이지, 중견국 수준의 공군력으론 전함을 넘보기는커녕 견제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그리고 모든 전함들의 전과가 형편없지도 않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영국 해군 최고의 수훈함은 전함 HMS 워스파이트였다. 야마토를 비롯한 일본 전함들이 너무나도 개판일 뿐이다. 구축함한테 패배하고 도망간 야마토와 나가토를 보면 일본의 전함 운용이 비상식적으로 형편없음을 알 수 있다. 위에 있는 전함의 실체 문단에도 나오지만, 일본 전함들의 실적은 기이할 정도로 낮다. 이건 일본이 매우 구시대적이고 허황된 발상이었던 함대결전에 의거해 전함을 지나치게 아꼈기 때문으로, 1선급 전함은 애지중지 아껴두기만 하고 2선급 함선이나 항공모함들을 부려먹었다. 함대의 전함들 중 가장 구식이고 약했던 공고급 순양전함의 전공이 비교적 높고, 최신식에다가 가장 강한 야마토는 해상호텔이 되었던 것은 이 때문이다.

결국 간단히 정리하자면 현대의 핵무기의 위치 그 이상의 가치를 가지고 있었던 전함은 전함과의 교전이 크게 없어 쓸모가 없는 병기가 아닌,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상대 국가에게 생존의 부담을 가져다 준 엄청난 병기였다. 따라서 쓰임이 아니라 가지고 있다는 점이 중요한 무기였고, 최신 전함이 아니라도 상대 국가에 매우 큰 부담을 주어 전함의 이름값을 한 사례도 찾아볼 수 있다.[27]

그리고 핵무기가 등장한 시기에는 매우 강력한 폭탄이라고만 생각했지 방사능과 방사선에 대해서 아직도 정확하게 이해하지 않고 무지했던 시기이다. 그러니 전함과 유용성을 비교할 수 있었다. 거기에 핵 만능주의가 발생한 계기도 핵무기가 기존의 폭탄들보다 매우 강력했었기에 모든 재래식 전력무기들을 핵무기로 대체하려고 시도하기도 했지만 이후 방사능과 방사선에 대한 연구가 진행되면서 핵 만능주의가 사그라들었다.

그리고 핵무기는 현재 시점에서 외교적, 정치적, 경제적, 지형적 등의 여러 문제의 반작용이 존재하며 사용하는 것 자체가 공공의 적이라는 낙인을 찍힐 수도 있는 무기이지만 전함은 그 때 당시의 기준으로 핵무기와 비슷한 반작용이 존재하지만 공공의 적이 되는 경우는 없었다. 왜냐하면 위에서 말한 바와 같이 전함은 국가전략의 단말로써 활동했고, 귀족이나 기사와 같은 중세시대에서부터 내려온 정신이 여전히 존속하고 있던 명예와 자존심, 그리고 전함이 사람이 직접 운영하는 주체이었던 것까지 합해서 대량살상무기로써의 전략무기가 아닌 재래식 무기의 최정점으로써의 전략무기로의 가치를 두었기에 현대 기준으로 핵무기와 비교로 삼는 건 무의미하다.

동시대 전함에 비해 문제가 많다는 평가도 받는 비스마르크만 해도 최초에 탐지될 당시 영국 해군은 크게 경계하며 영국 해군의 자존심이라고 불리던 후드와 최신예 전함이던 킹 조지 5세급의 프린스 오브 웨일스를 급파했을 정도다. 당대에는 아직 비스마르크의 내실이 안좋다는 사실이 독일 내부에서나 간간히 나도는 수준이었기 때문에 영국 입장에서는 최신예 전함이 나타난 셈이므로 빠르고 강력한 대처가 필요했던 것이다.

이후 후드가 굉침당하고 이어진 비스마르크 추격전 때 영국은 호송선박을 지키던 함선과 수리받으러 가던 함선까지 모아 총 40척에 달하는 전면전에 준하는 함대와 항공병력을 쏟아 비스마르크를 잡으려 했다. 영국 전함 KGV와 로드니가 앉은뱅이 상태의 비스마르크를 일방적으로 때렸지만 무력화시키는 데 성공했을 뿐 전함의 포격만으로 격침시키지 못하고 어뢰로 마무리해야 했다. 자침이라는 주장이 있으나 이때 당시 대피가 정상적으로 이뤄지지 않아 다수의 희생자가 나왔으므로 자침이라고 보기엔 비약이 있다.

이런 사례가 아니어도 실제 전술에서 전함은 특별한 의미를 가졌다. 해군 항공대의 상징인 항공모함에서 출격한 당시의 함재기는 야간 이착륙이 어려웠기에 밤이 되면 무력화되어 운용에 지장이 있었으며, 전함이 항공모함의 밥이라곤 하나 그래도 함재기 몇 기 보내는 걸로는 간에 기별도 안 가는지라 적절한 대공력을 가진 전함을 잡기 위해선 항공모함도 다수의 함재기를 소모해야 하였다. 따라서 항공모함들 간의 전투가 끝나고 이후 야전이나 야간 추격전에 전함이 있고 없고는 크게 작용했으며 전함 야마토의 함생처럼 다수의 함재기의 공습을 기대해야 하였다. 미드웨이 해전은 항공전에서 승리했음에도 전함이 없어 후퇴했지만, 필리핀 해 해전에선 전함이 있기에 추격전을 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근본적으로 전함과 항모의 전투를 논해보자면 우선 전함은 대공 특화함이 아니다. 샤른호르스트급 전함 수준의 무장만으로도 항모를 포격전에서 압도하기에는 충분함에도 11인치 주포와 대응방어에 대공포를 더 다는 대신 14 ~ 18인치 주포와 현측 대응방어를 전함들이 추구한 건 전함은 동급 전함 같은 대함에 특화되었기 때문이다. 전함이 같은 전함 잡기도 힘든데 항공모함까지 꼭 수상전에서 잡아야 할 목적이 없었기에 양자간 대결은 원래 전함에게 불리하기도 했다.

하지만 실전상황은 가혹했고 기술의 발전으로 공습의 위협은 날로 높아졌고 전함들도 대공방어력을 추구하기 시작했으며 2차대전 중후반 이후부터의 미국 전함은 타국 전함들에 비해 대공포의 숫자나 질이 압도적으로 높아 대공능력 또한 출중했기 때문에 대함능력과 함께 대공도 특화했다고 보면 된다. 그래서 결국 전함도 항공모함의 함재기들을 상대해야 했으며 여기서 결국 밀리기 시작하게 된다. 함재기를 다 쫒아내도 항공모함은 원거리에 있으므로 후퇴하면 끝이고 전함이 이를 추적하기가 곤란했기 때문이다.

정리하자면 어디까지나 전함이 필요없게 된 것은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거함거포주의로 대표되던 해전의 헤게모니가 항공모함을 주축으로 한 해군 항공대와 초기 미사일 해군의 등장으로 이동한 것 때문이며, 그 이전에는 전함의 정치적, 실전적 유용성은 결코 낮지 않았다.

10. 살아남은 전함

일본 제국 해군의 시키시마급 전함 4번함 미카사 박물관 모습 미국 해군의 아이오와급 전함 박물관 모습

제2차 세계 대전 종전 이후 신규 건조의 문제가 아닌 대영제국의 해체와 같이 경제 자체가 흔들린 경우도 많아 뱅가드급 전함이나 리슐리외급 전함처럼 비용의 문제로 박물관함이 아닌 스크랩 절차를 밟는 경우가 다수 발생하게 되었다. 결국 현재 마지막까지 남아있던 전함들은 역사의 수많은 전함들과는 달리 보기가 어려우며 일부는 기념함으로 남아 영구 박물관으로 지정되어 보존되고 있다.

박물관함 중 미카사를 제외하고는 원형을 유지하고 있으나, 당연하게도 오랜 시간 관리가 부실하여 전투출격은 고사하고 자력항해도 어려운, 말 그대로의 기념물이다. 배틀쉽(영화)에서는 이런 박물관함을 실전 출격시키는 장면이 나오지만 당연히 영화적 허용.

10.1. 전드레드노트급 전함

전드레드노트급 전함은 철갑선 이후부터 드레드노트의 등장(1906년)까지 건조된 전함을 말한다.

10.2. 드레드노트급 전함

일반적인 드레드노트급 전함은 드레드노트의 등장(1906년)부터 슈퍼 드레드노트급 전함오라이언급 전함이 탄생한 후 해당 전함과 비슷하거나 그걸 능가하는 전투력을 가진 전함을 분류하는 영국식 분류이지만 미국에서는 전드레드노트급 전함 이후 14인치 주포를 장비하여 드레드노트급 보다는 전투력이 강한 뉴욕급 전함까지 드레드노트급 전함으로 분류하는 미국식 분류를 따른다.

10.3. 신전함

표준형 전함 이후에 워싱턴 해군 군축조약 종결 이후 건조된 미국의 신(新)전함을 말한다.

아이오와급 전함은 1990년대까지 현역으로 활동했었으며 특히 1980년대에는 개수를 통해서 구식 화기 일부를 제거하고 BGM-109 토마호크하푼, CIWS인 팰렁스와 현대화된 전자장비를 장착했었다. 원래는 더 개조를 하려다 비용이 어마어마하여 결국은 걸프전 이후로는 대부분 퇴역하고, 마지막으로 네임 쉽인 아이오와가 2011년에 퇴역함으로써 모든 아이오와급 전함이 박물관이 된다.

네임쉽인 BB-61 USS 아이오와는 예비함으로 분류되어 National Defense Reserve Fleet에 소속된 모스볼 상태였으나 2011년 박물관함으로 쓰기 위해 미 해군이 LA PACIFIC BATTLESHIP CENTER에 기증하면서 모든 전함은 완전히 퇴역했다.예시

11. 현대전에서의 전함

11.1. 전함의 문제들

한때는 해상전의 왕자라고 불리던 전함들이지만 현대전에서는 엄청난 유지비에 비해 그 쓸모가 극히 제한적이다. 현대에 사용된 바 있는 미국의 아이오와급 전함을 바탕으로 검증해 보자.

일단 유지비가 지나치게 많이 들어간다. 만재 배수량 58,000t짜리 거체를 소수의 인원만으로 움직일 수 있을 리 없으니 1,800명이나 탑승하는데 이것도 2차세계대전 당시 인원인 2,700명에서 크게 줄인 것이지만 모병제 국가인 미국에서는 1,800명의 급료도 전부 유지비에 포함된다. 같은 국가의 이지스 구축함 알레이버크급의 승선인원은 그 5분의 1도 안 되는 330명 정도다. 비슷한 운용인원을 가진 한국 최대의 이지스함인 세종대왕급의 1년 유지비가 약 500억 원인데 다른 것 다 빼고 승조원 인건비만으로도 이 금액을 능가한다. 간단히 월급을 200만 원으로 잡아도 연간 급료 400억 + 식비, 보급품비, 개인훈련 프로그램, 기타 후생복지비용까지 합하면 500억쯤 가뿐히 능가한다.

배가 워낙에 크다보니 엔진도 21만 2천 마력이다. 이 엄청난 엔진을 움직이려면 당연히 기름도 엄청나게 퍼먹는다. 비교하자면, 70,000t급 재래식 항공모함 USS 미드웨이가 같은 21만 2천 마력 증기터빈으로 아이오와급과 엔진과 터빈이 같은 모델이라는 것을 생각한다면 항공모함만큼 연료를 퍼먹는다는 뜻이 된다. 거기에 군함은 원래 끊임없이 유지보수를 해주어야 하는데, 아이오와급 전함은 워낙 오래된 함이라 유지, 보수의 필요성이 현대 군함들보다 훨씬 크다. 게다가 덩치가 덩치다보니 보수비용도 어마어마하다.

기술발전을 적용해도 비용이 크게 줄어들지 않는다. 원자력 엔진을 쓰면 연료비만은 적게 들겠지만, 건조비 때문에 배보다 배꼽이 더 들어간다. 미국조차 세계 최초의 원자력 항공모함인 엔터프라이즈급 항공모함을 만들어 놓고보니 건조비가 너무 비싸 일단 원자력 항공모함을 포기하고 재래식 동력을 사용하는 키티호크급 항공모함을 건조한 바 있다. 물론 신규 건조의 경우 오래된 함에서 나오는 유지비 항목의 경우는 무시할 수 있겠지만, 전함은 건조해서 완공하는 것만 따져도 지금의 대형 항공모함과 거의 엇비슷할정도의 돈이 들어간다 물론 이후의 엄청난 유지비는 덤이다.

이렇게 유지비가 많이 들어도 효율이 좋다면 운용할 필요성이 있다지만, 엄청나게 커다란 주포로 인해 적재공간이 부족했기 때문에 그 덩치에 걸맞지 않게 탑재되는 미사일이 고작 토마호크 32발과 하푼 16발에 불과하다. 만재 배수량 9000톤에 불과한 구축함 알레이버크급이 토마호크를 90발이나 탑재할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한다면 덩치 대비 정말 낮은 수치이다. 아이오와급 전함의 현대화 개수 계획 중에는 수직발사관을 설치하여 300여 발의 미사일을 탑재하려는 계획 또한 포함되어 있었지만 비용을 계산해보니 10억 달러도 넘게 든다고 하여 예산상의 문제로 시행되지 못했다.

주포의 가치도 현대전에서는 낮다. 포탄의 가격이 비교적 싸고 위력이 엄청나다는 매리트가 있으나 사거리가 40km에 지나지 않으며, 재취역할 때마다 장거리 포탄을 개발하려 하기도 했지만, 그러다 보면 아이오와급이 재퇴역하면서 개발 취소되곤 했다. 그만큼 아이오와급의 비효율적인 운영비용이 부담스러웠던 것이고, 애초에 전함 주포 정도의 위력은 함재기로 훨씬 더 멀리까지, 정확하게 투사할 수 있으며, 전투기는 각종 다양한 임무에도 투입할 수 있다. 무기체계의 운용비용은 포탄 한 발, 전투기 한 대로 비교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들을 사용하기 위한 후속 지원과 다목적성까지 감안해야 하는 것이다.

미 해병대는 지상상륙작전을 지원할 수 있는 전함을 지지해왔지만 이건 미 해병대의 예산이 미 해군과 분리되어 있기 때문이다. 현대전에서 전함이 불필요한 가장 큰 이유는 막대한 유지비 때문인데, 미 해병대의 입장에서는 내 돈나가는 게 아니니 당연히 전함이 있는 게 없는 것보다 낫다. 물론 돈을 써야 하는 미 해군의 입장은 전혀 다르지만. 만약 아이오와급이 미 해병대 소속이었다면 미 해병대의 반응도 달랐을 것이다. 미 해군과 미 해병대의 예산은 명목상으로는 미 해병대 예산을 해군예산안에 포함해 국회예산심의안에서는 미 해군 예산으로 통합되어 제출된다. 그러나, 저건 명목상이고 실제로는 예산책정과정에서부터 미 해군과 미 해병대는 소요비용조차 따로 계산하여 올리므로 사실상 미 해군과의 예산은 완전히 분리되었다고 보는 게 맞다.

장갑이 튼튼하다고는 하나 현대전에선 별 의미가 없다. 초계전이나 호위전이라면 몰라도 오늘날의 함대전엔 함포가 낄 구석이 없으며 대함 미사일은 함포보다 훨씬 정밀한 타격이 가능하다. 게다가 현대 대함 미사일들이 적당한 크기를 지닌 것은 그만큼 표적인 함선들이 작아졌기 때문이고, 미해군의 대형 항모를 노리는 소련 해군이 P-700 그라니트 같은 대형 미사일을 운용했듯이 전함이 운용된다면 가상적국은 당연히 그 장갑을 뚫고 파괴할만한 미사일을 운용하거나 앞서 말한 그라니트 같은 미사일을 다량으로 사용할 것이다. 그리고 미사일은 전함보다 훨씬 싸다. 특히나 구 소련 시절부터 이어져내려온 러시아 해군의 대 항모전단 대책은 고위력 대함 미사일의 대량 투사인데 덩치만 크고 방공력도 빈약한 전함은 그냥 두드려맞고 침몰하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현시효과도 마찬가지인데 상대방을 겁먹게 하는 현시효과라는 것 자체가 '현시효과가 실패했을 때 실제로 할 수 있는 일'에 달려있다. 미해군이 서해에 항모를 들여보냈을 때 중국이 바짝 긴장하는 것은 거기에서 중국 남동의 정치/경제적 중심지를 직접 타격할 수 있기 때문이고, 중국의 전력으로는 이를 저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상술한 것처럼 상대적으로 쉽게 격파할 수 있고 타격 가능한 범위와 화력도 제한적인 전함이라면 그 정도 정치적 위협은 느끼지 않을 것이다.

이런 점들 때문에 미국에서도 숱하게 퇴역시키자는 의견이 나왔으며 그나마 복귀시킨 레이건 정부에서조차 전력적인 측면보다는 상징적인 측면이 더 강하다. 당시 600 Ship Navy plan이라는 걸 들고 나와서 소련의 위협에 대항하자는 계획이었고 이 점 때문에 군함의 수명연장 및 퇴역한 아이오와급을 억지로 재취역시켰다. 아이오와급의 재취역에는 소련의 키로프급을 본 의회나 언론에서 키로프급의 대항마가 될 함선을 강하게 요구하여 그들을 달래기 위한 측면도 있었다. 소련의 위협이 사라진 1990년대에 이 계획은 폐지되었고, 당연히 아이오와급도 퇴역했다. 이런 점은 다른 나라에서도 마찬가지인데 대부분의 나라에서 전함의 운명은 1950년대 이전에 함령이 남아있었는데도 불구하고 퇴역시켜 버렸고, 길어야 1960년대까지 운용했을 정도다.

그리고 현대전에는 전함을 우습게 취급하는 무기가 많다. 당장에 GBU-28 벙커버스터나 KEPD 350 공대지미사일을 탑재한 F-15K만 해도 전함따윈 일격에 골로 보낼 수 있고 GBU-57 MOP를 탑재한 전략폭격기는 말이 필요없다. 현대의 벙커버스터는 사거리가 전함의 대공체계보다 길어서 안정적으로 공격할 수 있다. 위력면에서도 구스타프 열차포의 철갑탄은 물론이요 톨보이나 그랜드슬램조차 우습게 넘어선다. 애초에 현대의 벙커버스터보다 위력이 훨씬 약한 톨보이와 그랜드슬램만 해도 전함의 장갑중에서 가장 튼튼한 부위를 종잇장마냥 찢어버릴 수 있는 위력을 지녔다. 그나마 2차대전 당시의 항공 폭탄은 기술력의 한계상 항공기가 목표물까지 가까이 다가가야 해서 전함의 대공체계의 사거리에 들어서게 되지만 현대의 벙커버스터는 정밀유도시스템으로 훨씬 먼 장거리에서 안전하게 발사할 수 있다. 그 유명한 야마토급 전함조차 B-2 스텔스 전략폭격기가 장거리에서 GBU-57 MOP를 발사한다면 어디에 맞든지 간에 일격필살 확정이다.

결국 현대전에 효과적인 병기라고 할 수는 없다. 정말로 전함이 효과적이라면 모든 나라에서 전함을 퇴역시켰을 리 없기 때문이다.

11.2. 전함에 대한 비판이 불거진 역사적 맥락

많은 밀덕들은 전함 덕후들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 논쟁은 의외로 1990년대 미해군 내부의 프로파간다로 촉발되었다.

제러미 마이클 보더 제독이 항공대 파벌을 견제하기 위해 다양한 계획을 진행하는데, 그중에서 아스널쉽 계획이 있었다. 아스널쉽은 간단히 말하자면, 어차피 항공모함에서 발진하는 항공기가 대함, 대지 미사일과 폭탄 셔틀이라면, 애초에 배에서 쏴날려도 차이가 없지 않냐는 이야기로 시작된 배다. 이 발상은 항공모함에서 항공기를 운용하기 시작한 시기부터 존재했던 것이므로, 딱히 이상한 발상도 아니었다. 그런 까닭에 아스널쉽은 항공모함과 마찬가지로 방공과 대잠 수단은 별도로 없었다. 덤으로 포탄에서 미사일로 시대가 바뀐 탓에, 함선에서 발사하는 미사일의 사정거리는 항공기 발사 미사일보다 길기 마련이므로, 항공기의 항속거리만큼 사거리가 더 긴 미사일을 개발한다면 파일럿을 적지로 보내는 위험을 감수하지 않는 장점까지 생긴다.

그런데, 아스널쉽이 계획대로 진행된다면, 미 해군 수상전투함에 항공모함급 함선이 등장하게 되고, 항공모함의 지위를 이용해서 권력을 누려온 항공대에게 위협이 된다.[30] 그런데, 공교롭게도 아스널쉽은 무장 구성이 전함과 비슷해 보였다. 그래서, 이에 대한 반박으로 아스널십은 전함이며, 전함은 시대착오적이고 항공모함이 현대전에 걸맞다는 프로파간다가 등장한다. 그래서 뜬금없이 40년 전의 유산인 고속전함들이 끌려나와서 두들겨 맞았다. 그렇게 해군 함선을 지켜야 할 제독들이 앞장서서 공격한 결과, 아이오와급 전함은 주 고객이던 해병대의 항변을 묵살하고 1995년에 모스볼 처리된다.

그리고 그 동안 잠수함대는 팔짱끼며 이 싸움을 구경만 하고 있었다. 왜냐하면 이미 잠수함대는 시울프급 잠수함 프로젝트를 별다른 저지없이 진행하고 있었기 때문에, 항공대를 공격해서 얻을 것도 없고, 어그로를 끌어서 좋을 이유도 없었기 때문이다. 항공대 역시 항공모함의 건조와 운영을 쥐고 흔들 수도 있는 해군핵추진프로그램을 가진 잠수함대와 굳이 척지고 싶어하지도 않았다.

다만 보더 제독이 진행한 모든 수상함 개발 계획을 항공파 제독들이 저지한 것은 아니었다. 항공파 제독들이 과거에 쓰레기통으로 던져버린 스컹크 웍스스텔스 전투함 개발 제안을 보더 제독이 다시 끄집어 내서 줌왈트급 구축함 프로젝트를 시작했는데, 이를 저지하는데는 실패한다.[31] 사실 줌왈트급 구축함은 아스널쉽을 무산시키기 위한 대안인 동시에, 항공모함의 화력을 대체하는 건 불가능한 함선이었므로, 항공대가 적극적으로 반대하는 것도 아니었다.

어쨌든 아스널쉽은 무산되었지만, 이것이 의외로 시대의 요구에 부응하지 못하는 구상도 아니었기 때문에 미군 전체가 뒷 감당을 해야 했다. 아스널쉽의 유용성은 그렇다 치더라도, 그에 대한 비판점이나 운용상 문제점도 항공모함에 고스란히 적용되기 때문에, 기존의 원자력 항공모함으로는 아스널쉽을 땜빵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파일럿들 그 자신들은 개의치 않더라도, 군사 작전에서 사람이 죽는 것과 미군 장비가 적성국 장비에 격파되는 것에 훨씬 더 민감한 시대가 돼버렸다. 게다가 아스널쉽을 중단하고 아이오와급을 퇴역시킨데다가, 해군 스스로가 내밷은 프로파간다 때문에 평범한 순양함으로는 어림도 없게 된 줌왈트 급의 개발은 난항을 겪고 있는 상황에서, 화력 지원 수단을 빼았긴 미 해병대의 항변을 더 이상 외면하기 어려웠으므로, 그 빈자리도 채워야했다.

이 와중에 위험없이 화력을 제공해야 한다는 아스널 쉽 계획 이후의 새로운 흐름을 간파한 잠수함대는 잉여가 되어 처분될 운명이던 오하이오급 잠수함을 이용한 SSGN이라는 대안을 제시했고, 미 공군은 F-117를 위시한 스텔스 라인업에 더해서 잉여가 될 뻔한 B-1B를 데뷔시키면서 어부지리를 챙기게 된다. 재밌게도, 미공군은 이 논란과 거의 같은 방식으로 무인기를 도입하게 된다. 미 공군의 전투기 파일럿들을 상대한 사람은 로버트 게이츠 장관이었는데, 결국 미 공군이 굴복하고 만다.

그리고 현대전에서의 전함이라는 뜬금없는 논의는 이때의 프로파간다에서 고착된 채로 남게 되었고, 전함이라는 함종에 불명예만 더 하게 되었다.

11.3. 함포의 단점

11.3.1. 교전 거리의 불리함

전함이 이렇게 거체가 된 것은 대구경 함포를 탑재하기 위해서이다. 그런데 함포 자체가 현대전에서 효용성이 크게 떨어지기 때문에 전함 자체의 효용성도 크게 떨어진다. 현대에는 사정거리 수백km를 넘는 대함미사일이 수두룩하고, 순항미사일의 경우 수천km를 넘는 것도 얼마든지 있는데 고작 40km의 사정거리를 갖고 있는 함포는 함대전에서 별 쓸모가 없는 것은 물론이고, 지상 포격조차 극히 효용성이 떨어진다. 다시 말해 지상 지원을 위해 포격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해안 30 ~ 40km까지 전함이 접근해 들어가야 한다는 말인데, 이 사정거리는 적의 지대함 미사일, 공대함 미사일의 사거리에 깊숙히 들어간다는 말이다. 당연한 말이지만 이렇게까지 접근한다는 건 지대함 미사일의 공격을 받을 위험이 엄청나게 높아지기 때문에 극도로 위험한 일이다. 이지스함 등의 호위로 미사일 공격을 방어한다고 해도, 30 ~ 40km의 짧은 사거리라면 요격능력도 크게 떨어진다. 또한 현대에 와서는 특수탄을 이용하면 127mm함포나 155mm함포로도 전함이 현역일 때 최대사거리보다 긴 사거리를 확보할 수 있게 되었다.

실제로 걸프전 당시 이라크군은 USS 미주리를 향해 2발의 스틱스 대함 미사일을 발사했는데, 한 발은 미주리의 채프에 낚여서 어디론가 사라졌고 나머지 한 발은 영국의 HMS 글로세터에 의해 요격당했다. 이라크는 지대함 미사일을 별로 보유하지 않은 나라라 날아온 것이 겨우 2발뿐이어서 큰 문제는 없었지만 수십 발이 동시에 날아왔다면 몇발은 분명히 맞았을 것이다. 물론 전함은 워낙에 떡장갑인데다가 아이오와급 전함은 수면 위에서의 공격이라면 대함 미사일의 공격 방식상 수십 발을 쳐맞는다 하더라도 격침 근처도 가지 않으나, 상부 구조물은 1차 대전의 해전조차도 수행할 수 없을 정도로 부서졌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조차도 이라크군이 P-700 그라니트를 보유하고 있었다면 미주리는 난파선이 됬을 가능성이 높다.

애초에 전함이 대함미사일 수십발을 맞아도 격침 근처도 안간다는 것도 하푼이나 토마호크처럼 현대의 군함에 맞추어서 체급이 낮은 미사일이지, 엔터프라이즈급 항공모함이나 니미츠급 항공모함처럼 전함보다 훨씬 큰 초대형 원자력 항모를 잡는 걸 상정하고 만든 무식한 체급의 초음속 대함미사일이 오면 미사일 자체의 체급과 비행속도에 의한 순수한 물리적인 타격만으로도 탄두가 불발한다 가정해도 아이오와급의 장갑쯤은 가볍게 아작내는 흉악한 위력이 나온다. 아이오와가 떡장갑이라곤 해도 P-700 그라니트 정도쯤 되는 대형 대함미사일은 미사일 자체의 흉악한 체급 + 750 ~ 1000kg의 고폭탄두 + 초음속에 달하는 비행속도에 의해 착탄지점에 버섯구름을 만든다는 구스타프 열차포의 800mm 고폭탄을 그냥 쌈싸먹는 흉악한 위력이 나오는 물건이라 아이오와급이나 야마토급 같은 실존 전함은 물론이거니와 몬태나급, 슈퍼 야마토급, H급 전함도 답이 없다.

게다가 전함을 잡는다고 하면 고작 저런 미사일 1발 날리고 끝나지 않고 있는 건 모조리 한꺼번에 사격할 것인데 이렇게 되면 요격능력 부족으로 순식간에 최소 몇 발의 직격탄을 맞고 격침당하기 딱 좋다. 호위함의 대공방어를 받으면서 자체적으로 함재기등을 이용한 방공전을 하며 P-700 그라니트 1발 피격 정도로는 살아남을 수 있고 10만톤에 도달하는 엄청난 배수량 덕분에 맷집도 어느 정도 있는 니미츠급 항공모함도 저런 식의 대형 대함미사일 세례는 피하려고 용을 쓰는 게 현실이다.

뿐만 아니라 기뢰에 접촉해 파괴당할 가능성도 무척 크다. 아무리 떡장갑을 둘러도 배라는 특성상 전함도 배의 구조적 취약부분인 하부로 오는 공격인 어뢰나 기뢰에는 별 수 없었으므로, 위에 언급되었다시피 아이오와급은 1,800명이나 탑승할 뿐만 아니라 상징성도 큰데 이게 격침되거나 대파된다면 정치적인 여파는 어마어마할 것이다.

애초에 전함이 현역일 시절부터 정타 맞고 제대로 버티는 것은 작고 약한 항공어뢰가 고작이며 여러 발 피탄당하면 일본군 해군야마토급 전함의 실전사례에서 보듯이 타격이 점점 누적되므로 침수가 점점 크게 진행되면서 서서히 불리해지는 것은 예정된 현실이다. 일반적으로 수상함이나 잠수함이 발사하는 중어뢰는 1발의 피탄도 상당한 타격을 주며 여러 발 맞으면 생사를 오락가락한다.

그래서 이미 전함 잡으려고 2차대전 초기에 이미 TNT 1톤 수준의 폭발력을 가진 폭약을 집어넣은 기뢰는 예나 지금이나 당하면 침몰당하지 않게 용을 쓰면서 살아남기만 해도 대성공이다. 따라서 기뢰는 먼저 찾아내고 제거하는 것이 대응책이지 일단 맞으면 전함이건 뭐건 간에 어디에 명중하는 가에 관계없이 순식간에 치명타로 들어가며 사경을 해메게 된다.

물론 전함에는 벌지와 방뢰 구조가 있고 후기로 갈수록 능력이 강화하지만 이미 앞서 설명한 것과 같이 당대에도 한계점을 보인 방어력을 보유한다. 가장 방어력이 좋은 현측 중앙 하부의 두꺼운 벌지에 어뢰가 명중했다고 가정하더라도 대전기 개발된 토펙스(Torpex) 작약만 해도 TNT보다 0.5배 더 강력하므로, 기술발전으로 중량대비 더 강력해졌을 수 있는 점을 고려하면 완전히 막는 것은 불가하다. 또한 현대 어뢰는 대전기 어뢰보다 단순 탄두중량도 더 무겁기까지 하다.

거기다가 수틀리면 용골을 조져버리도록 유도성능이 강화되었기에 다른 수상함들도 그렇듯 전함에게도 어뢰는 지금까지도 가장 심각한 골칫거리다. 위력대비 피해를 감소시키더라도 치명타는 확정이기 때문이다. 용골 공격에 대응하기 위해 전함의 함저 바닥을 이중화하는 것은 기본이었으며 퇴역함을 표적함으로 쓴 실험에서 이중 바닥도 관통당하자 중요 부위에 삼중 바닥을 채용하기까지 했으나 이 정도로는 대응이 불가능하다. 현대의 대형선박들은 평저선인 경우가 많은데, 이 평저선들은 용골판이라고 하여 이중저 외판 중심선상 부근에 어느 정도 두께를 주어 용골을 대신하도록 하여, 평저가 되는 중앙 부근에는 따로 구조물로서의 용골을 두지 않고, 장갑을 두른 경우 장갑부를 제외하고 단순히 선체에서 가장 두꺼운 부분을 선저부 종방향 중심선상에 두었을 뿐인 구조를 가지고 있지만 역시 어뢰의 용골 타격에는 거기서 거기일 정도로 전혀 답이 없다.

그래서 최근엔 대어뢰 어뢰 개발이 진행되고 있으며 미국은 진척이 있었는지 니미츠급 항공모함들에 탈착식 경어뢰 발사관으로 자체뇌장을 시켜놓기까지 했다. 뇌장 수준만 보자면 평시엔 구축함 수준이지만 최대뇌장 시에는 웬만한 구축함 두척 분량의 뇌장을 할 정도.

그나마 전함이 현대 군함에 비해 유리한 점은 기본 구조가 튼튼하기 때문에 침몰하는 위치가 해저가 평탄하고 중량물이 올라가도 무너지지 않을 정도로 튼튼하며 수심이 얕다면 운이 좋을 경우 똑바로 가라앉으면서 착저상태가 되므로 나중에 인양하거나 약간의 수리를 거친 후에 고정포대로 사용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하지만 이것도 본질적으로는 항구 같이 시설이 갖추어진 곳에서 공격에 당해야 가능한 것이며 전함의 주포같이 강력한 함포는 기본적으로는 반동을 흡수해서 물로 보내는 방식으로 작동하므로 착저상태로 포격하면 함체에 타격이 가해지면서 침수가 더 심해지고 함체 구조물 자체가 붕괴되는 문제점이 있다. 그래서 강구트급 전함 마라도 일단 침수를 해결하고 물 위에 띄워서 이동 불가능한 부유포대 형식으로 부두에 계류해놓은 후에나 본격적으로 포격을 했다.

마지막으로 똑바로 착저하는 것 자체가 상당한 행운이 따른다. 진주만 공습의 네바다급 전함 오클라호마처럼 전복되거나 펜실베이니아급 전함 아리조나처럼 탄약고 대유폭이 일어나거나 하면 재활용 따위는 물건너가고 인양작업도 어려워진다. 비스마르크급 전함 티르피츠도 노르웨이 피오르 깊은 곳에 자리를 잡고 미리 해저바닥도 튼튼하고 평탄하며 수심도 얕은 위치에 정박했지만 영국이 톨보이 공격을 가하면서 해저바닥이 붕괴되고 경사가 발생하면서 티르피츠가 침몰하다가 경사면과 충돌해서 배가 뒤집어지는 바람에 그냥 거기서 고철로 전락하고 다수의 전사자가 발생하고 말았다.

그러므로 착저상태에서 고정포대로 활용한다는 것도 운수가 좋아야 하고 시설이 갖추어져야 하며 부유포대로 쓰도록 인양도 쉬워야 하므로 실전에서 이런 것을 노린다는 것 자체가 무의미한데다가 전함 함포 사정거리가 현대전에서는 매우 짧기 때문에 고정포대로 쓰기도 어려워서 사실상 전혀 의미가 없다고 보면 된다.

11.3.2. 유지 비용

물론 구경 16인치의 거대한 포탄을 지속적으로 사격할 수 있는 전함은 저렴하게 강력한 화력을 퍼부을 수 있다. 각종 전자장비와 조향장치로 가득한 미사일보다 화약만 들어있는 포탄이 싼 것은 당연하다.

걸프전 당시 아이오와급(16인치 함포)과 알레이버크급(토마호크), 니미츠급 항공모함(함재기)의 포/폭격톤수당 운용비용을 비교하기로 아이오와급이 가장 비싼 알레이버크의 거의 1/10가량 비용이라는 연구도 있다.[32]

그러나 항공모함과 구축함은 평시에도 제해권을 유지하고 해상통행을 보장하여 국익을 증진시키는 데 필수적이지만, 이러한 평시 임무에 전함은 항공모함급의 덩치와 운용인원을 요구하면서도 구축함 이하의 역할밖에 수행할 수 없다. 장거리 교전이 일상화된 현대 해상전투에서도 이지스 방공함 수준의 임무를 수행할 수 없으니 효율성을 보이는 곳은 제해권을 완전히 틀어쥔 뒤의 지상포격 뿐인데, 그럴만한 상황이 생긴다면 전함 따위 없어도 이미 이긴 전쟁이니... 결국 전시에는 필요하니 잠시 불러냈다가 평시가 되면 비효율적인 비용 소모를 막기 위해 모스볼시키는 작업의 반복이 된다.

11.3.3. 정치적 비용

전함의 주포와 같은 대구경 화포는 미사일에 비해 명중률이 매우 떨어져 몇백 ~ 몇천 m정도의 오차는 매우 흔하다. 이 말은 민간시설을 오폭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말이다. 제2차 세계대전 같은 총력전이라면 모를까, 민간시설 오폭에 매우 민감해진 현대전에서 함부로 사용한다는 것은 정치외교적 파장을 불러올 수 있다.

이 문제 때문에 태평양 전쟁 당시 미국의 전함을 사용한 지상지원포격의 경우 타라와 전투에서 기존 방식대로 했다가 포탄이 쓸데없는 구덩이만 만들고 토양에 철분을 추가해준다는 욕설을 얻어먹은 후에는 상당히 근접한 후에 목표를 조준하고 주포를 1발 쏜 후 착탄을 확인하고 다음 주포가 1발 쏴서 착탄지점을 수정하는 식으로 지상지원포격을 조정했다.

문제는 이런 방식으로 해도 정확하게 명중하는데 시간이 걸리는데 1980년대에 와서는 오랜 기간 저장된 장약이 불량품이 되어서 포탄을 밀어주는 압력이 제각각이 되었으므로 제대로 조준하고 쏴도 엉뚱한 곳에 포탄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실제로 1983년 레바논 내전당시 평화유지 활동에 참여한 USS 뉴저지가 지상포격을 지원했는데 대부분의 포탄이 10,000야드(약 9.1km) 이상 벗어났으며 이로 인해 민간인 사상자가 발생했다는 보고서가 남아있다. 시카고 트리뷴지는 당시 상황을 보고 '모두가 뉴저지 호의 함포사격을 좋아하지만 실제로 함포가 아무것도 맞히지 못했다는 점은 명백하다'는 기사를 낸 적이 있다.

11.4. 소결

다시 말해 함포의 지상지원 사격은 제해권과 제공권을 완전히 장악한 상태에, 기뢰가 없는 것이 확인되고, 적이 제대로 된 지대함 미사일 전력이 없는 군사 기술력이 뒤떨어진 상대여야 하며, 해안 방어시설이 민간 시설과 멀리 떨어진 상태에야 가능하다는 뜻이다.

그런데 이런 상황이면 사실 전쟁은 결판난 것과 다름없다. 특히 현대전은 제공권과 제해권을 완전히 장악한 시점에서 결판이 났다고 봐야 한다. 공역과 해역이 완전히 적의 손에 넘어간 상태라면 지상군은 공해 양 루트에서 쏟아지는 공세에 매우 제한적인 대응수단만을 가지고 응전해야 하고, 종국에는 일방적인 손실을 강요받게 되기 때문이다. 이미 전쟁이 승리로 가는 상황에서 굳이 유지비 많이 드는 전함을 끌고 오지 않아도 얼마든지 종전시킬 수 있다.

물론 함체가 크고 단단할수록 다양한 무장을 장비할 수 있으므로 전함의 선체에 이지스 레이더와 대공/대함/대지 미사일 다수를 장비하면 현용 이지스함 몇척급의 강력한 화력과 방공망을 보유한 최강의 함선을 만들 수는 있다. 비용이 너무 많이 들어가서 문제인 것이다.

일단 비용 문제를 무시하고 전함을 현대기술로 떡칠하기 시작하면 생각 이상으로 강력한 함선이 나온다. 일단 전함을 신규로 제작한다고 가정했을 때 전함의 거대한 선체에 굳이 석유 동력원을 탑재할 이유가 없다. 키로프급의 사례로 보면 알 수 있듯 그냥 원자력추진으로 가면 된다. 미국은 이미 항공모함에 원자로를 탑재한 경험이 있으므로 전함에도 원자로를 탑재하는 것은 문제도 아니다. 그리고 이제 거대한 선체에 원자력 탑재를 통해 줄어든 공간(연돌, 연료보관구역)에 팰링스와 단거리 대공미사일을 수두룩하게 박아넣으면 된다. 또한, 모든 주포탑을 유지할 이유는 없으므로 1번, 3번 포탑을 철거하고 그 자리에 VSL을 다수 넣으면 최소 알레이버크급 3척 가량의 방공망과 토마호크를 탑재할 수 있다. 이 외에도 원자력으로 넘쳐나는 전력을 바탕으로 최신 이지스 시스템과 고출력소나 각종 첨단 사통장비를 장비하면 된다. 이렇게 갖추면 고성능에 강력한 방공망을 가지고 원자력 추진으로 전세계 해양을 누비는 강력한 군함이 될 것이다.

물론 저런 수준의 투자를 하면 가격은 항공모함 1척 정도는 껌으로 넘어가는 수준의 말도 안되는 가격이 나와버린다. 이쯤되면 그 군함을 뽑을 비용으로 이지스 구축함 몇 척을 더 뽑아내는 것이 더 효율적이다.

무엇보다 이지스 시스템은 적의 공격을 맞지 않는 것이 목적이고 전함의 장갑은 맞고서도 버티는 것이 목적인지라 상반되는 목적에 자원이 투입되어 비효율적이 되리라는 문제도 있다. 그러니 장갑을 줄인다면, 이 함선은 과연 '전함'인가? 그냥 초대형 이지스 구축함일 뿐이다. 실례로 2만 8천 톤짜리 키로프급 핵추진 순양함을 전함이라고 부르기도 하지만 체구가 클 뿐 장갑 두께는 잘해야 원자로 구획 100mm 정도다.

미국의 아스널쉽도 일부 개념도에서 전함의 분류인 BB코드를 사용하기도 했으나 결국 건조되지 않았다. 애초에 전함과 같은 압도적인 방어력과 공격력을 지닌 것도 아닌 그저 미사일 컨테이너라 실제 건조되었더라도 전함과는 전혀 다른 존재였을 것이다.

12. 전함의 부활 가능성

12.1. 함포

줌왈트급 구축함은 전함이 아니지만, 장비하려 했던 AGS 155mm 함포는 비록 6인치 남짓한 구경이긴 해도 함포를 현대 해군의 주역으로 돌려놓을지 여부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졌던 무기체계였다. 그러나 초기 기획에서도 발당 7만 달러, 그러니까 1억이었다. 줌왈트 급의 도입이 축소되자, 단가는 발당 80만 달러가 되었고, 토마호크와 같은 가격대가 되어버려 사업은 엎어지고 만다. 그러나 7만 달러 일 때도 토마호크의 1/10 사거리와 1/30의 탄두 중량으로 말이 나오고 있었는데, 가격이 1/10이긴 하지만 이거 포탄 10발 쏜다고 토마호크 하나 값을 하겠느냐는 의문이 있었다.

여기서 볼 수 있듯이, 함포로 미사일을 따라 잡으려고 시도하게 되면, 그 함포는 그렇까지 저렴하지도 않으면서 덜 치명적인 무기 체계인 것이 현실이다. 줌왈트 급의 실패 이후로, 레일건이 아닌 포함을 개발하려는 시도는 다시 사그러 들었다.

12.2. 미사일

굳이 아스널쉽이나 합동화력함까지 가지 않더라도, 아이오와급 전함에 미사일을 달려는 시도도 있었던 만큼, 함포 대신 미사일을 장비한 전함에 대한 군사적 관심이 분명히 존재했다. 키로프급 핵추진 순양함을 순양전함으로 보는 이들은 이 함의 분류도 여기에 해당한다 볼 것이다.

하지만 이런 유형의 함정을 전함으로 본다고 가정하더라도, 현대 해전의 교리인 피탐 거부에 더 충실한 SSGN이 출현한 이상, 미사일 전함의 매력은 떨어진다. 굳이 SSGN까지도 아니더라도, 오늘날 거의 모든 해군 군함과 항공기가 미사일 발사 플랫폼으로 쓰일 가능성을 가지고 있는 만큼, 그게 꼭 전함일 필요가 없다는 문제도 있다.

12.3. 대구경 레일건 주포

스텔스에 적합한 모양을 갖춘[33] 함체의 여기저기에 레일건을 발사할 수 있는 포탑과 포대가 배치된 구조로 설계가 될 것이다.

실전 배치를 준비 중인 레일건 주포를 기존의 재래식 주포를 대신하여 탑재할 경우 전함이 다시 모습을 드러낼 가능성이 존재한다. 레일건은 종래의 함재기 작전반경과 미사일 사정거리에 필적하는 수백km대의 사정거리를 가지고 있으며, 마하7에 달하는 포탄의 속도는 기존의 함대 방어체계로 요격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 또한 미사일이나 전폭기의 공격이 한두 번에 그치는 데 비해 레일건 주포는 본래의 주포가 가지고 있는 지속타격능력을 그대로 보유하고 있다. 이렇게 되면 레일건 장착 전함은 전함이 애물단지가 된 가장 큰 이유인 주포의 효율성 문제를 단숨에 해결해주며, 항공모함이나 미사일과는 확연히 차별화된 무기체계가 되는 것이다.

레일건을 전함처럼 거대한 배가 아니라 적당한 크기의 배에 싣기는 어렵다. 대구경 레일건을 효율적으로 운용하기 위해서는 전함수준의 큰 배가 필요할 가능성이 높다. 대구경일수록 큰 공간을 잡아먹을 테고, 소모하는 전력 역시 넘사벽이 된다. 전함급의 함선이 되면 본래 대구경 주포를 싣고 있던 자리가 있으니 거기에 레일건을 장착하면 되고, 소모전력은 함의 대형 발전기에 연결하여 충당하면 가능하겠지만 레일건의 전력화를 생각한다면 석유를 이용한 내연기관은 전력 공급이 어려울 것이고, 적어도 원자로는 달고 있어야 할 것이다. 아니면 석유를 쓰는 대신 추가로 대용량 배터리를 몇개 탑재해서 배터리와 증기터빈 발전기를 동시에 사용하여 전기를 끌어다 쓸 수도 있을 것이다.

전력만이 문제가 아니다. 적어도 현대의 기술력으로 만들어진 대구경 레일건의 반동은 장난이 아니다. 실전에서 사용할 정도로 반동을 흡수하려면 적어도 탈구축함, 초기형 드레드노트 전함급인 만재배수량 2만톤대의 배수량이 필요할 것이다. 기왕 핵추진을 사용하려면 되도록 거대한 함선로 만드는 것이 차라리 경제적이라는 사실은 덤이다. 애당초 레일건을 구성하는 발전설비 따위 부수자재들의 기술력이 획기적으로 발전해서 이들을 소형화하지 않는 한, 레일건 탑재를 결정하는 순간부터 구축함이건 순양함이건 본래의 체급을 넘어서는 대형화는 불 보듯 뻔하다. 당장 줌왈트급 계획의 좌초로 추가 개량에 들어가는 알레이 버크급 구축함은 함급 체급의 문제로 함선 설비상 레일건 구동을 위한 전력을 감당하지 못하기에, 레일건 개량이 고려조차도 되지 못하며, 만재배수량이 만 오천톤 후반에나 들어가는 줌왈트급 정도만이 애초 계획대로 달 여건이 나온다. 당장 함선 탑재사양보다 한참 작은, 지상배치 레일건 야전포 구상부터 화기체계 따로, 발전차량 따로 최소 두 대 이상이 붙어다녀야 하기에 자주화는 꿈도 못 꾸는 판국에, 그에 더하여 고속 급탄, 고속 발사, 해상 운용을 위한 스태빌라이저등이 갖춰져야 하는 함포 체계로써의 레일건 대형화는 정말 당연한 일이다. 당장 줌왈트급에 탑재되는 AGS 함포가 왜 그렇게 커졌는지 생각해보면 답이 나온다. 구경에 상관없이 포탑 자체가 비대하게 설계될 가능성이 높다. 이 때문에 현용 구축함급은 레일건보다는 그에서 파생된 신형 탄종인 HVP(Hyper Velocity Projectile)의 적용 가능성이 더 높다.

물론 이렇게 레일건 전함으로 개수가 되어도 각종 문제점이 남아있긴 하지만, 대구경 레일건이라는 무기의 등장이 2차 세계대전 이후 사장된 전함간의 함대 포격전의 재래를 불러올 가능성이 있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레일건은 아직까지 검증되지 않은 무기체계이기 때문에 미래가 불투명하긴 하지만, 기대되는 스펙으로만 뽑혀 나온다면 전함의 부활 가능성도 충분히 점쳐볼 수 있을만한 강력한 병기다. 다만, 전함이 부활한다해도 매우 다른 형태로 부활할 것이다. 전함은 기본적으로 떡장갑으로 적함의 포탄을 막아내야되는데, 아무리 장갑을 떡칠해도 초속 2000m급 속도로 날아오는 거대한 레일건 탄자를 막아내는 건 무리에 가깝다.[34] 따라서 피탐 자체가 잘 안 되는 구조(스텔스라든지...)를 지니고 장갑을 둘러 막는다는 고전적인 개념을 버리고 피탄 시 맞은 부위를 제외한 나머지 부위에 영향이 없도록 피해를 최소화하는 방식으로 설계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예를 들자면 초속 2,000m가 넘는 발사체를 견딜 장갑이나 구조물을 만들기가 거의 불가능한 만큼 아예 장갑을 최소화해 피탄체가 선체를 뚫고만 지나가도록 해서 피해를 최소화하고 선체를 모듈화해 피탄부위만 막으면 나머지는 이상이 없도록 하는 식 등등... 어찌 보면 전열함 시절로 돌아가는 셈이다.[35]

그러나 성형작약탄을 막지 못해서 2세대 전차가 장갑을 얇게 하고 기동성에 치중한 반면에, 복합장갑을 두른 3세대 전차들은 성형작약탄을 막을 수 있기에 다시금 장갑이 두꺼워지고 무거워진 사례가 있다. 레일건 탄자를 막을 정도로 강력한 신개념 장갑이 개발된다면 과거와 같은 중장갑 중화력의 전함이 돌아올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현대 해상전은 미사일을 이용한 장거리교전이기에 장갑의 내구성은 동시교전과 탐지력의 후순위로 밀려난다.

이미 매체에서는 함선에 탑재된 레일건을 간간이 찾아볼 수 있으며, 세간에 가장 잘 알려진 것으로는 트랜스포머: 패자의 역습에서 레일건 강철미사일 을 장착한 알레이버크급 구축함이 데바스테이터를 날려버리는 장면이 있다. 굳이 레일건이 아니더라도 파동포 같이 고위력의 주포를 장착한 전함은 매체에서 상당히 많이 나온다.

13. 전함의 배수량별 목록

13.1. 여러 전함

전드레드노트급 전함으로 분류되는 전함은 ☆ 표기.

14. 분류

15. 친척

16. 관련 문서

17. 창작물에서의 전함

물론 창작물에서 진짜 전함이 등장하기도 하지만, 전함을 물 위가 아닌 다른 곳에 옮겨 놓기도 한다.

17.1. 영상매체

파일:external/images.mmorpg.com/89f43771-f7fd-44c4-963f-2df3372c0308.jpg
EVE 온라인의 칼다리 배틀쉽 로크급 전함

대체로 우주 배경 전투 위주 SF에서 주력으로 나온다. 세계관에 따라 전함이라는 명칭이 없는 것도 많다.(ex: 배틀스타 갤럭티카) 원래 컨셉은 실제 해군사의 전함을 그대로 우주로 올려놓은 듯한 컨셉이지만 보통 다음 같은 이유로 야라레메카 취급을 받는다.
1 주인공급 캐릭터가 전함의 함장인 일은 그다지 없다.[39]
2 이상하게 전함 vs 소형 우주전투기(혹은 거대로봇)의 상황에서는 전함이 지게 되어있다. 실제 해군사의 전함을 그대로 우주로 올려놓은 것이라고 생각하면 나름대로 설득력은 있는데, 전함의 몰락사 중에서 큰 축을 차지한 게 항공모함이기 때문.[40][41]
3 크고 아름다운 전함이 터지는 장면은 상대의 강함을 부각시킨다.
4 전함이 강력하게 묘사되는 세계관이라 해도 그 정도는 가뿐히 씹을 수 있는 맵병기가 등장한다.
5 애초에 소모품 취급한다. (예 : 은하영웅전설,나이트런-3,4,5번 해당)

17.2. 게임

한편 게임에서는 전함이 강력하게 묘사되는 편이다. 거함거포에서 나오는 뽕 때문인듯하다.
파일:external/www.backwardscompatible.co.uk/2757765_orig.jpg

17.3. 영화

전함이 주역인 대표적인 영화로 배틀쉽이 있다. 영화 제목 자체가 '전함'이다.

17.4. 2차 창작물



[1] 중문에서의 전함은 군함 종류 전반을 말하는 것이고, 본 문서에서 정의하는 프리 드레드노트급~슈퍼 드레드노트급의 전함은 전열함이라고 부른다.[2] 근대적인 전함의 개념이 정착되기 전까지의 옛 문헌에서 '전함'은 군함과 동의어로 쓰였다. 지금도 전함을 이런 의미로 사용하는 경우가 있는데, 엄밀히 말해서 틀린 건 아니다. 국어사전에 실린 전함의 뜻에는 군함 전반을 통칭하는 의미도 분명히 있기 때문이다. 다만 본 문서에서 다루는 근대 해군의 함종 중 하나인 전함과 혼동을 줄 수 있기 때문에 특히 밀리터리 및 전문성 높은 역사 관련 문헌에서는 구별이 필요한 것은 사실이며, 이런 책에서는 전함을 군함 전반을 통칭하는 의미로 사용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게다가 상술한 중국어의 경우는 전함 = 군함이며 본 문서의 좁은 의미로서의 전함이 아니다.[3] 중순양함은 장갑순양함의 코드를 이어받았다.(Cruiser Armored) 경순양함은 Cruiser Light로 새로운 코드를 받은 것. 경순양함의 전신인 방호순양함은 그냥 C로 썼다. 1920년 이전에 모두 퇴역했기 때문에 2글자 코드를 받을 일이 없었던 것. CC(Cruiser Cruiser)는 순양전함의 코드다. 이 원래의 의미로서 미 해군에서 정식으로 쓰였던 것은 렉싱턴급 순양전함이 유일하며, 완성되지 못하고 항공모함으로 전환되었으므로 실전 사용례는 없다. 그 이후로는 기함용 순양함(Cruiser Command)의 의미로 잠깐 쓰이다가 그 이후로는 쓰인 적이 없다.[4] 이후에 등장하는 슈퍼 드레드노트급 전함에서는 점점 대형화되는 구축함 등의 적 소함정을 공격하기 위해 속사포의 구경이 5 - 6인치 정도 구경으로 확대되었고 대공방어도 중요해지면서 대구경 대공포도 달기 시작하다가 양자를 통합한 양용포로 이어진다.[5] 훈독 시 「도」로 읽힌다.[6] 군함이 청수, 탄약, 식량 등 전투수행에 필요한 모든 물자를 한계치까지 실었을 때의 중량.[7] 그나마 이것도 파나마 운하를 통과하기 위해 제한된 것이다.[8] 관련한 사례로는 플레처급 구축함 USS William D. Porter 의 침몰이 있다. 위 구축함은 오키나와 전투 당시 2문의 5인치 양용포를 통해 화력 지원을 하거나, 대잠 및 대공 임무를 수행하는 한편 기뢰부설함을 호위하는 등 지상군을 지원하는 역할을 하고 있었다. 해당 임무에 종사하던 4월 초에서 5월 초까지의 기간 동안 8,500여발의 5인치 포탄을 해안에 쏟아부은 구축함은, 레이더 피켓 임무를 새로이 할당 받았는데, 이는 규슈나 오키나와 인근의 비행장에서 발진하는 일본군 항공기에 의한 공습에 지속적으로 시달리던 미해군에게는 불가피한 결정이었다. 침몰 당일인 1945년 6월 10일까지도 구축함은 해당 임무에 종사중이었는데, 일본군의 공습을 아군에게 경고하고, 요격기들을 적절히 유도하는 동시에, 스스로도 대공사격에 나선 구축함은 임무 기간 동안 7대에 달하는 일본군 항공기를 격추시킨다.[9] 여느 때와 다를 바 없던 1945년 6월 10일 아침, 구닥다리 발 폭격기 한 대가 돌연 구축함 바로 위의 구름을 해치고 나타나더니, 그대로 구축함을 향해 수직으로 낙하하기 시작한다. 미리 예견되지도 않은 공습을 당할 차였으나, 레이더 피켓 일만 벌써 한달을 넘게 해왔고, 포격지원에 종사하면서도 대공임무를 겸하던 시기까지 고려하면 두달이 넘는 기간동안의 경험으로 숙련될대로 숙련된 구축함의 대공포수들은 이 불의의 일격마저도 저지 해내고 만다. 그러나 안도할 겨를도 없이 마치 어뢰가 폭발하는 듯한 폭음이 함 전체를 찢었고, 2천톤이 넘는 구축함이 통째로 위로 들렸다가 다시금 수면에 내던져진다. 격추되어 바다에 떨어진 발 폭격기의 무장이 구축함의 용골 바로 아래에서 기폭된 것이다. 이에 구축함은 침수에 더불어 함선 구조상의 중대한 피해를 입게되고, 손상 통제 시도가 무색하게도 구축함은 시시각각 운명을 달리해가기 시작한다. 애초에 이와같은 피해는 해상에서 자체적으로 극복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고, 아무리 손상통제(damage control)에 능통한 미해군에게도 그러한 사실은 변함이 없었다. 곧이어 퇴함명령이 떨어졌고, 결국 승무원이 퇴함한 뒤 얼마 지나지 않은 최초의 폭발로부터 수시간이 지난 시점, 구축함은 오키나와 제도 앞바다에 가라앉는다. 항복 조인식으로 부터 고작 두달여 기간만을 남겨둔 때였던 만큼 한층 더 비극적인 사건으로 다가왔지만, 오키나와의 지상군이 겪은 참극에 비하면 오히려 더 나은 최후일지도 모른다. 오키나와 전투 참조.[10] 이와 관련한 한가지 흥미로운 사실이 있다. 전함은 최중요 전력이지만 동시에 다수의 대구경 대공포와 대공기관포로 무장한 방공 요새였기에 해당 사항이 없지만, 항공모함은 주변이 어두운 경우 대공화력을 투사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는 항공모함이 전함과 동등 이상의 가치를 지니는 전략 병기임에도 함선 자체의 방어력은 비행갑판에 의해 제한되고, 대공화력 또한 같은 이유로 전함에 크게 못 미친다는 유리대포와도 같은 특성을 지녔기 때문이다. 따라서 야간전 시 예광탄 및 발포 화염으로 항공모함임이 드러나 표적이 되는 일을 막기 위해 방공임무를 주위의 호위함에게 전임했다고 한다.[11] 호위 구축함은 구축함보다 더 외곽에서 레이더 피켓 역을 하는 경우도 있었던 만큼 상술한 포진은 어디까지나 하나의 예시이며, 원형진의 구성은 함선 조합이나 처한 상황 등에 따라 유동적으로 바뀔 수 있다.[12] 일본군 조종사들이 이를 알고 이용하기도 했다. 출처 Battle 360:enterprise[13] 코닝 타워(conning Tower)라고 부른다. 참고로, 일본 자료나 서브 컬쳐에서는 주로 장갑 함교, 제3함교라고 칭하고, 함교(Bridge)를 항해 함교나 제2함교, 사격지휘소(GFCS)를 제1함교라고 부른다.[14] 출처: Battle 360[15] 미국 전함은 행정구역 명에서 따왔는데, 이지스함과 항공모함은 역대 대통령들이나 유명한 군인들 이름에서 따오는 편이다.[16] 미국 함선 치고는 이례적으로 렉싱턴급 순양전함 2번함인 컨스텔레이션에서 이름을 따왔다고 볼 수 있는데, 역사적으로 보면 18세기 ~ 19세기 범선이나 냉전기 항공모함에도 쓰였던 이름이라 그냥 돌려쓰기로 봐야 할 듯하다.[17] 다만 공고급 3번함부터는 중순양함 이름에서 따오는 추세라 좀 애매하긴 하다. 이후 취역하고 있는 일본 이지스함들도 모두 타카오급 중순양함묘코급 중순양함에서 이름을 따오고 있기에 앞으로도 어떻게 될 지 미지수. 일본도 슬슬 재무장을 노리며 유사 항공모함을 건조하는 추세라 이지스함 이름은 옛날 중순양함에서 따오고 항공모함급은 돼야 옛날 전함 이름이 붙을 것으로 추정된다.[18] 1번함 이즈모의 이름 자체는 전함과는 다른 함종인 이즈모급 장갑순양함에서 따왔고 2번함인 카가도 2차대전기 항공모함 이름에서 따온 거긴 하지만 어찌됐든 둘 다 오기칠도에 포함된 봉국 이름들이고, 특히 항공모함 카가는 원래 전함으로 만들어질 예정이었던 함선이다. 명명 방식은 옛날 전함과 똑같다는 것. 그리고 카가 외에 2번함 이름 후보로 꼽혔던 게 야마시로였는데 이건 후소급 전함에서 따온 거니까 빼도박도 못할 전함 이름이다.[19] 덕분이라고 해야 할지, 함포 구경 = 데미지인 오늘날의 함선 게임들에서는 평가가 박하다.[20] 벽람항로에서는 이글 유니온(미국)의 장비로 나오지만, 이 장비는 영국(로열 네이비)에서 개발되었다.[21] 이는 과거 동로마 제국이 남이탈리아의 지배권을 잃기 전까지 베네치아 공화국이 동로마에 감히 반항하지 못했던 이유와 일치한다.[22] 마지막은 사실 해방함이다.[23] 3번함 시나노는 건조 중간에 전함에서 항공모함으로 개조됨.[24] 2차 대전기 추축군과 연합군을 통틀어 중순양함의 혹사가 가장 심했던 게 일본군인데, 전쟁 도중에는 중순양함을 1척도 건조하지 않았고 그나마 신형인 모가미급 중순양함이나 토네급 중순양함은 삽질이 상당해서 모든 부담이 구식 중순양함에게 쏠렸다. 특히 아오바는 2차 대전의 모든 중순양함 중에서 가장 심하게 혹사당했다.[25] 실제로는 야마토급 전함 3번함으로 계획되었고, 하부가 완성된 상태에서 항공모함으로 개장되었다. 베이스 자체가 세계 최대의 전함 야마토급이었기 때문에 갑판 아래의 방어력은 결코 일반적인 전함에게 뒤지지 않았다.[26] 특히 기술과 지식 성숙도는 전함보다 밀리는 편이다. 120년 밖에 안 된 비행기에 비해 고대시대에서 최초로 배를 만들고 바다를 항해하여 축적된 시간은 절대 이길 수 없는 것이다. 좀 더 간단히 이해하는 방법으로는 비행기가 인간이라고 한다면 배는 엘프라고 보면 쉽다. 심지어 배는 인력만 있으면 군함은 아니더라도 쪽배정도는 만들 수 있지만 비행기의 경우는 행글라이더조차 기본적인 지식과 기술을 갖추지 못하면 제대로 날 수 없으며 설령 날 수 있어도 쪽배쪽은 바다의 환경에 대해서 어떻게든 대응할 수 있지만 행글라이더쪽은 바람에 전적으로 의존하기 때문에 대응할 수 있는 방법이 마땅히 없다. 거기에 행글라이더는 이륙만 아니라 착륙도 제대로 지식과 기술을 가지지 못하면 자살행이나 다름 없다.[27] 국가에게 생존의 부담을 가져다 준다는 의미는 식민제국이 식민지를 통해서 전략자원과 인적자원 등을 포함한 대부분의 것을 의존했던 당대의 상황을 기준으로 말하는 것이다. 거기에 식민제국과 식민지 사이의 해로가 끊기는 것은 곧 식민제국에서 식민지로 옮겨간 자국민과 그 군사력 또한 연결이 끊기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전함의 건조경쟁이 왜 과열되었는가는 그 당대의 환경과 인식의 관점에서 보고 이해해야 한다.[28] 실제로 비스마르크가 큰 피해를 입고 움직일 수 없는 상태로 구축함 4척이 달려들었는데도 비스마르크에게 피해는커녕 달려든 구축함들이 되려 피해를 입었다.[29] 덧붙여서 레닌그라드 지상에는 소비에츠키 소유즈급 전함을 건조하던 도중 시험을 위해 만든 16인치 단장포 1문이 마침 레닌그라드의 "르제프스키 시험장(혹은 르제프스콤 시험장)"에 전쟁 내내 멀쩡히 살아있었다. 시험용 화포라서 포탄과 부품 조달 문제로 실전 포격은 못했으나 지금도 존재하고 있으며 이 시험장은 현재 박물관으로 사용 중이다. 주소는 Ryabovskoye Shosse, 130, St Petersburg, Leningradskaya oblast', 러시아 195043이며 좌표는 59.9927021, 30.5275641 지점이다.[30] 이 전함 떡밥과는 다른 문제이지만, 항공대 파벌은 자신들을 견제하는 마이클 보더 제독을 몰아내기 위해 온갖 치졸한 방법을 동원했다. 결국 사소한 꼬투리가 잡히자 항공대 파벌은 보더 제독을 파렴치한 범죄자로 몰고 갔고, 보더 제독은 압박을 견디다 못해 자살하고 말았다. 제러미 마이클 보더 문서 참조.[31] 하지만, 스컹크 웍스의 모회사인 록히드 마틴 사는 스텔스와 이지스 시스템의 주 개발사였음에도 불구하고, 줌왈트급 개발 사업을 수주하는데는 실패한다.[32] 2000년 해군전력 8월호[33] F-117 항목을 보거나 B-2 폭격기의 모양을 보면 알겠지만 각진 설계는 스텔스와는 무관하다. F-117의 설계 당시엔 컴퓨터의 성능이 부족하였기 때문에 각진 설계를 해서 스텔스는 각져야 한다는 편견이 생겼을 뿐. 다만, 함포 같은 돌출물이 여기저기 툭툭 튀어나와 있으면 당연히 스텔스 설계에 애로사항이 꽃피므로 이들을 수납하는 구조가 되리라는 것은 생각할 수 있다.[34] 아이오와급 전함조차도 동급함이 쏘는 초중량탄은 막기가 힘들다 . 다만 이 경우는 아이오와급의 주포에 사용되는 초중량탄의 위력이 너무 강력해서 그런거지 아이오와급의 방어력이 떨어진다는 건 아니다.[35] 혹은 CIWS를 레일건에 연동해서 레일건이 레일건으로 요격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다만 상대 전함의 위치를 알아야 하고 그걸 요격할 수 있는 상태여야 한다. 기습 당하는 경우는 100%로 요격불가이니.[36] 근대화 대개장(추진체계 변경(석탄 → 석유), 대공장비 증설, 갑판 내 불필요 장비 및 배치 재설계, 함교 디자인 변경, 전투수행능력 관련 전투지휘체계 재정의, 연돌 위치 변경 등 다양한 부분에서 새로 건조한 함급 수준으로 개선) 후 함급 재취역[37] State of Slovenes, Croats and Serbs. 유고슬라비아 왕국 설립 직전인 1918년, 짧은 시간 동안 존속했던 임시정부.[38] 이것은 상비배수량 1만 톤 이하에서 2 ~ 4문의 중포를 얹고 어느 정도 대응방어가 가능한 방어력을 가진 전투함을 지칭한다. 청년학파가 기세를 올리고 있던 19세기 후반기의 프랑스에서 다수 건조되었으며, 스웨덴을 비롯한 유럽의 군소국가들이 다수 장비하기도 하였다. 이 함종들은 주포의 구경이 다양한 편인데 태국 해군의 톤부리급 해방함처럼 8인치 주포를 장비한 것에서부터 핀란드 해군의 배이내뫼이넨급 해방함처럼 10인치 (254mm) 주포를 장비하거나 스웨덴 해군의 스베리게급 해방함처럼 11인치 (283mm) 주포를 장비한 함, 심지어는 19세기에 나온 프랑스의 해방전함들 일부가 장비한 16인치 포를 장비한 급도 있었다.[39] 예외로 마크로스7맥시밀리언 지너스가 함장이라 대활약한다. 무한항로의 주인공 유리도 함장이며, 스타크래프트 시리즈의 주연 중 하나인 맷 호너도 함장이다.[40] 그러나 이것이 꼭 우주군에서도 맞아떨어지라는 법은 없다는 점이 문제다. 해군 역사에서 전함의 몰락은 항공모함의 등장으로 인한 함포의 효용성 저하라는 문제가 있기 때문에 이뤄졌지만 우주군의 경우 대부분의 SF물에서는 전함의 함포광학 병기다. 광학 병기는 말 그대로 빛을 무기로 쓰기 때문에 발사에서 착탄까지의 시간이 순식간이며 출력에 따라 사거리는 전투기의 항속거리를 가볍게 넘길 수도 있다. 정보가 전달되는 최고 속력은 광속이므로 외부 관찰자는 자신을 향해 레이저가 발사되고 있다는 사실을 레이저에 맞기 전까지는 알 수 없어 회피하는 것도 힘들다. 은하영웅전설, 스타트렉이 이러한 전제를 깔고 있는데, 전투기는 어디까지나 보조전력이고 주는 전함의 광선포다. 또한 우주 공간의 특성상 출력만 충분하면 전함도 전투기와 비슷한 속력을 낼 수 있다는 점 때문에 우주전투기 자체를 등장시키지 않는 작품도 존재한다.[41] 만약 게임이라면 항공모함의 스펙을 전함보다 딸리게 만들 수도 있는데, 스타크래프트의 경우 대표적인 항공모함인 우주모함은 대표적인 전함인 전투순양함과 싸우면 압살당한다. 이는 우주모함의 함재기 출격 사거리가 밸런스를 위해 포병보다도 낮게 설정되어 있고 함재기의 단발 피해량이 전투순양함의 장갑을 뚫지 못하기 때문이다.[42] 마지막 테크는 ‘타이탄’이라는 거대 함선이다. 강력한 타이탄급 무장을 가지고 있고 아군 함대에 버프, 혹은 적대 함대에 디버프를 걸어주는 좋은 함선이지만 건조에 재약을 받는다는 이유로 타이탄은 양산이 불가능하며 주로 버프 셔틀으로 굴려진다.[43] 이 점은 한번 뽑아놓은 유닛은 국고가 바닥나거나 전투에서 패배하기 전까지는 절대로 자연도태되지 않는 문명 시리즈의 특성과도 맞물려 있을 것이다. 실제 전쟁사라면 장비 노후 등등의 문제 때문에 문명에서처럼 고대에 뽑아둔 정찰병이 산업시대까지 남아있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44] 그런데 1위는 야마토(2차대전식 대공포를 24개 탑재했다.) 사실상 1,2위이다.[45] 다만 햄프셔는 오히려 근접전에서 약하다.[46] 드레드노트급, 슈퍼캐리어, 타이탄[47] 2편 빅 셰이의 경우 함수를 밀어야 전개가 가능한 거대한 유탄 주포를 장비 했고. 해상 보스는 각 선수 사이에 거대한 미니건을 달아놨다.[48] 안그래도 함선들의 대공포가 현실에 비해서 강력한 편인데 수많은 부포와 대공포를 달고 있으며 장갑과 포도 더 강력한 대전기 전함이 나오면 격침하기가 정말 힘들어진다. 특히 대공포를 수십~수백개씩 달고 127mm VT탄을 우수수 쏴대는 미국이라면 격침 가능성이 동급의 전함 말곤 없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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