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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전함이라는 단어는 전열함 (戰列艦, ship of the line)의 동의어인 battle line ship 에서 열(列)이라는 뜻인 line을 삭제하는 식으로 준말이 만들어지면서 1790년대 후반쯤에 만들어져서 통용되기 시작했다. 그래서 전열함부터 전함이라는 명칭이 혼용되었다.그리고 전열함부터는 전함의 특징인 이동요새의 특성을 점점 보여주기 시작하기 때문에 전열함부터 전함의 역사에 넣기 충분하다.
2. 전열함
자세한 내용은 전열함 문서 참고하십시오.HMS 빅토리 |
최초로 전함의 역할을 수행가능했던 군함.
비록 목재 범선이라는 플랫폼의 확장성 한계와 전장식 대포라는 무장체계의 위력 한계로 인해 느리고 둔중하며 운용하기 어렵다는 단점이 심했으나 해전에서는 최소한 동급의 전열함을 비슷한 숫자로 대량동원해서 한꺼번에 투입하지 않으면 막아낼 수 없으며 적의 해군 기지를 해상에서 봉쇄하는 것이 가능하여 기지 타격의 새로운 길을 열어주는 등 당대의 전함 역할을 충분히 수행하였다.
철갑선이 나타난 후에는 함대의 주력 위치에서 내려오기는 했으나 철갑선이 한동안 중무장과 중장갑과 원양항해성능을 동시에 만족시키지 못해서 여러가지로 분산해서 발전하는 바람에 철갑선을 보조해주는 보조 전력으로 활동하다가 전드레드노트급 전함의 등장으로 일선에서 완전히 사라진다.
3. 철갑함
자세한 내용은 철갑선 문서 참고하십시오.정원급 철갑함 |
산업 혁명으로 기술력이 발전하고 철강을 대량으로 생산하는 것이 가능해지면서 금속제 선체와 고폭탄과 철갑유탄을 발사 가능한 함포, 증기기관을 보유한 군함이다.
기술력 발전이 급격하게 이루어지고 각각의 분야의 발전속도가 서로 다르며 해군 열강들이 신기술을 채용하여 적용하는 기준과 속도까지 달랐기에 철갑함이라는 분류에 속하기는 하지만 내부적으로는 서로 다른 다양한 군함들이 한꺼번에 묶일 정도로 분류가 복잡해지는 혼란스러운 시대였다.
기존의 목재 범선에 철갑을 두르고 증기기관을 탑재하는 것에서 시작하여 중무장과 중장갑을 갖추었지만 건현이 매우 낮아서 연안항해를 하더라도 갑판에 파도가 넘실거릴 지경이라 원양항해는 불가능한 수준인 초기형 모니터함과 부유포대 및 원양항해성은 좋으나 본질적으로는 목재 범선 프리깃에 얇은 철제 장갑을 두르고 함포만 교체한 수준인 장갑 프리깃으로 나누어져서 발전했다.
결국 양자는 서서히 통합을 시작하였고 튼튼하고 가벼운 장갑판을 대량으로 만들 정도로 강철을 대량생산하는 것이 가능해지면서 전드레드노트급 전함으로 발전한다.
4. 1890년대 ~ 1906년: 전드레드노트급 전함
자세한 내용은 전드레드노트급 전함 문서 참고하십시오.<colbgcolor=#155759><colcolor=#fff> USS 텍사스 |
철갑선은 내부 분류도 복잡기괴한 수준이며 기본적으로는 적은 배수량 안에 장갑을 두르고 무장도 장착 가능한 것은 최대한 달아놓는 바람에 말 그대로 무질서의 끝판왕을 달리는 수준의 군함이었다.
그러나 강철을 대량생산하는 것이 가능해지면서 장갑을 제대로 장착가능하면서도 무장이나 동력기관에 투자할 배수량도 확보가 가능해졌기에 중무장과 중장갑을 유지한 상태에서도 원양항해가 일단 가능할 수준에 도달한 군함을 건조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이런 이유로 인해 1890년대 들어오면 전드레드노트급 전함이라는 형식이 어느 정도는 각국에서 정형화가 되면서 대량건조하게 된다. 보통 12인치 (305mm) 급의 주포를 2연장 주포탑에 탑재하여 선체 중심선을 따라서 선수부에 1기, 선미부에 1기를 배치하여 총 4문을 장착한 후 5인치 (127mm)에서 6인치 (152mm) 구경의 부포와 3인치 (76mm) 이하의 속사포 및 기관포와 어뢰를 장착하며 장갑을 갖추고 배수량이 1만톤대 수준인 군함이 탄생하게 된다.
해당 형태는 열강의 해군에게 어느 정도 인정받았기에 기본적인 형식이 상당기간 유지되었다. 물론 미국은 13인치 (330mm), 독일은 11인치 (280mm)를 주포로 사용했고 2급 전함은 10인치 (254mm)를 주포로 사용하긴 했으나 철갑선 시대에 비하면 사소한 수준의 변화였다.
그래서 이 시대에 들어서 기존의 철갑함(Ironclad)이 아닌 전함(Battleship)이라는 명칭이 본격적으로 등장하게 된다.
그리고 함종이 확정되면서 포함외교를 본격적으로 진행할 수 있게 되었다. 그 전에도 전열함이나 철갑선으로 포함외교를 시도하긴 했지만 뭔가 약간씩 모자란 점이 있어서 확실한 효과를 발휘할 수 없었으나 전드레드노트급 전함부터는 상대국의 최신형 1급 해안포을 장착한 해안요새도 도저히 방심할 수 없을 수준으로 군함의 수준이 올라가서 포함외교가 잘 먹히게 된 것이다.
그러나 장갑순양함이 대형화하면서 점점 전드레드노트급 전함의 위상에 도전하기 시작했으며 이에 따라 장갑순양함에 1발만 명중해도 속도를 느려지게 만들어서 전드레드노트급 전함이 추적할 수 있도록 부포가 대형화하여 최소 8인치 (203mm)에서 최대 10인치 (254mm)까지 구경이 늘어나기 시작했고 중간포로 분류되었으며 배수량도 2만톤에 도달할 수준까지 늘어나게 된다. 하지만 아직 주포를 원거리에서 명중시킬 사격통제장치와 포술이 발달하지 않았기에 한계점이 많았다.
5. 1906년 ~ 1911년: 드레드노트급 전함
자세한 내용은 드레드노트급 문서 참고하십시오.HMS Dreadnought |
이런 식으로 대형화된 후기형 장갑순양함과 전드레드노트급 전함이 서로 경쟁하면서 발전하는 도중에 큰 사건이 벌어진다.
이미 청일전쟁의 황해 해전(1894년)부터 기존에 생각해왔던 해전에서의 유효사정거리를 넘어가는 1.5km에서 교전이 발생했는데 러일전쟁의 초반전인 황해 해전(1904년)에서는 5.5km 거리에서 교전이 발생했고 후기인 쓰시마 해전에서는 12.8km에서 교전이 발생하여 함포 포격전에서의 유효사거리가 급격하게 증가하게 된다.
보통 이렇게 교전거리가 증가할 경우에는 전드레드노트급 전함이 장비한 12인치 (305mm)급 주포는 명중률이 크게 떨어져서 쓸모가 없다시피 했다. 그래서 근접해서 중간포나 부포로 타격을 입혀서 느려지게 만들고 전투력을 상실하게 만든 후에 근거리에서 주포로 마무리를 지어주는 식으로 해전이 벌어지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이런 방식의 재래식 해전에서는 전드레드노트급 전함의 장갑이 기본적으로 두꺼운데다가 기술 발전으로 하베이 강철 같은 고급 강재가 사용되기도 했기 때문에 부포 이하는 말 그대로 튕겨버리고 중간포도 일시에 다량의 포탄을 직격탄으로 맞지 않는 한 큰 타격을 주기 어렵기 때문에 상부구조물을 박살내더라도 격침은 불가능할 수준이라고 생각할 정도였다. 그래서 프로이센-오스트리아 전쟁에서 벌어진 리사 해전에서 충각이 효과를 발휘한 후 이 시기까지 전함같은 주력함에 충각이 실제 사용가능한 병기로 달려있을 지경이었다.
그러나 쓰시마 해전에서 러시아 제국의 발트함대는 전함 6척이 격침되는 굴욕적인 대패를 당했다. 이미 포술이 발전하기 시작해서 기존의 사격 시스템을 사용해도 대구경 주포를 명중하는 것을 기대할 수 있는 유효사거리가 조금씩이라도 늘어나던 상황이고 대구경 주포탄을 계속 맞기 시작하면 전드레드노트급 전함의 장갑으로는 버티기가 곤란했던 것이다. 그래서 11노트의 속도를 내는 발트함대보다 14노트의 속도를 내서 우위를 가진 일본 제국의 연합함대가 발트함대를 양면에서 협격하면서 예상괴 다르게 일본이 승리하게 된 것이다.
이런 결과에 충격을 받은 열강들은 쓰시마 해전을 분석하게 되고, 존 피셔 제독이 거기서 영감을 얻어 혁신적인 전함을 설계하게 된다. 그것이 바로 드레드노트였다.
쓰시마 해전에서 일본 제국 해군은 지휘에 맞추어서 모든 포탑에서 동시에 사격하는 방식을 사용했는데, 이건 삽질이었다. 당시까지는 각 포탑에서 직접 조준해서 사격하는 방식을 사용했는데, 어차피 그럴 거면 각 포탑에서 최대한 빨리 장전해서 알아서 사격하는 것이 더 유리했다.
하지만 피셔 제독은 동일한 함포를 동일한 사격제원으로 동시에 발포하면 함포들의 포탄 탄도도 동일해지므로 동일한 탄착군을 형성한다는 사실을 알아냈고 관측장비로 목표의 위치와 방향과 속도등의 기초 데이터를 산출한 후 함교에서 전문 장교가 각 포탑으로 사격제원을 전달해 일제 사격(Salvo)하는 방식을 도입했다. 여기에 협차사격(Straddle) 개념을 도입함에 따라 명중률이 비약적으로 상승했다.
그 때문에 중간포와 부포의 존재가치는 사라지게 된다. 중간포와 부포는 주포가 원거리에서 잘 맞지 않기 때문에 존재했던 것인데, 주포의 명중률이 상승한 이상 주포에 비해 사거리도 짧고 화력도 약한 중간포는 존재가치가 없어진다. 덤으로 협차사격을 위해서 주포를 최대한 많이 장착해야 하기 때문에 여유 공간과 배수량이 대량으로 필요했다. 그래서 드레드노트급 전함들은 12인치 (305mm) 주포를 최대한 탑재한 후 어뢰정 격퇴용의 3인치 (76mm) 수준의 속사포만 장비하게 된다.
또한 기존의 증기식 3단 팽창 증기 피스톤식 엔진이 아닌 증기 터빈을 도입해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속도인 21노트를 달성했고 배수량도 1만 7천 톤을 넘기면서 방어력도 강해졌다.
이에 따라 기존의 전드레드노트급 전함들은 순식간에 무용지물로 전락했다. 얼마나 몰락이 심했는지 전드레드노트급 전함이라는 이름이 드레드노트급 전함보다 이전 방식의 전함이라는 식으로 어이가 없을 수준으로 지어질 정도였고 각국은 치열한 건함 경쟁에 돌입한다.
하지만 드레드노트급 전함의 진정한 개념은 영국에서 기밀이었으므로 각국에 빠른 속도로 널리 퍼진 것도 아니고 기술력의 격차도 컸다. 그래서 영국의 HMS 드레드노트를 대양에서 관측하거나 관함식에서 관람하거나 하는 식으로 드레드노트급 전함의 외부 모습을 본 다음에 타국도 건함 경쟁의 추격전에 돌입한다.
물론 타국에서도 중간포의 구경을 더 크게 만들어서 주포화시킨다는 개념은 이미 존재했으며 발전하고 있었다. 그래서 독일 제국의 나사우급 전함처럼 중간포 탑재 위치에 주포탑을 탑재한 전함도 등장했고 증기 터빈이라는 기술이 대영제국의 1급 기밀이라서 아직 제대로 입수하지 못한 관계로 미국의 사우스캐롤라이나급 전함처럼 3단 증기식 피스톤 엔진을 사용해서 최고속력도 전드레드노트급 전함 수준인 18.5노트밖에 되지 못한 전함도 등장했다. 여기에 더해서 기술을 입수하려고 해도 상대방 국가의 기밀을 뚫어야 하기에 이 문제는 델라웨어급 전함 1번함 델라웨어에서도 해결되지 못하고 2번함 노스다코타에 와서 겨우 해결된다.
그나마 독일이나 미국은 일단 드레드노트 수준의 화력 집중은 가능했고 주포를 12인치 (305mm)로 단일화했으며 사우스캐롤라이나급 전함처럼 주포탑을 선체 중심선에 계단식으로 선수에 2기, 선미에 2기를 장착해서 더 발전한 부분이 있으므로 협차사격이 가능하기에 드레드노트급 전함으로 분류한다.
하지만 일본 제국이나 프랑스 제3공화국처럼 당시의 해군 기술력이 상대적으로 낮은 경우도 존재하거나 개념 이해도가 떨어지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프랑스는 당통급 전함처럼 배수량만 늘고 중간포가 조금 더 커진 전드레드노트급 전함을 만들었고 일본은 사쓰마급 전함의 초기안처럼 어느 정도 개념은 잡았으나 실현력 불가능으로 인해 전드레드노트급 전함으로 만든 후 카와치급 전함을 건조하지만 쓰시마 해전의 영웅인 도고 헤이하치로등의 영향으로 인해 주포는 12인치 (305mm) 구경이지만 포신의 구경장이 45구경장과 50구경장으로 서로 달라서 협차사격이 불가능해지는 전함을 만들기도 했다. 이들 전함들은 준드레드노트급 전함 (semi-dreadnought battleship)으로 분류하기도 한다.
그러나 준드레드노트급 전함은 단어만 그럴싸했지 협차사격이 불가능해서 사실상 전드레드노트급 전함의 최후기형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영국에서 드레드노트가 실패할 경우를 대비해서 만든 로드 넬슨급 전함이 무용지물이 되었으며 프랑스의 경우에는 청년학파 때문에 시간과 돈을 까먹은 것도 있어서 황급하게 쿠르베급 전함을 건조했지만 당통급 전함을 6척이나 만드는 등 돈낭비와 시간낭비를 했고 긴급대응의 필요성도 높아서 기본적으로는 당통급 전함을 드레드노트급 전함으로 개조한 형태가 되고 말았다. 일본은 영일동맹으로 공고급 순양전함의 설계도와 기술 및 작업 노하우와 1번함 공고를 영국에서 제조할 때 참관 및 작업참여까지 한 끝에서야 드레드노트급 전함에 대한 개념을 제대로 잡고 후소급 전함을 건조하게 된다.
6. 1911년 ~ 1922년: 슈퍼 드레드노트급 전함
자세한 내용은 슈퍼 드레드노트급 전함 문서 참고하십시오.Orion-class battleship |
새로운 전함의 함종을 창설한 명성과는 다르게 두려울 것이 없던 (Dreadnought) 드레드노트는 순식간에 구식이 되어버렸다. 기존의 조선소와 도크에서 건조가능하도록 배수량을 제한한 결과 드레드노트는 12인치 (305mm) 2연장 주포탑 5기 중 2기는 양현에 분산해서 배치되어 있었기에 한쪽 측면으로 방향으로는 최대 8문밖에 향할 수 없었기에 모든 주포를 동원하는 것이 불가능했던 것이다. 애초에 신규 개념으로 건조한 주력함이라서 프로토타입의 성격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타국이 드레드노트급 전함의 개념을 파악하고 제대로 만들기 위해 고전하는 동안 1910년 영국은 오리온급 전함을 건조하는데, 오리온급은 13.5인치(343mm) 2연장 주포탑 5기를 모두 선체 중심선상에 배치해 압도적인 화력을 가졌다.[1] 오리온급 전함이 일제 사격시 사용하는 장약량은 드레드노트의 2배에 달했고, 이 때문에 오리온급 이후의 전함들은 슈퍼 드레드노트급 전함이라는 별도의 분류를 갖게 된다. 슈퍼 드레드노트급 전함의 분류 기준은 드레드노트급 전함보다 전투력이 높으면 된다는 등의 매우 모호한 기준이지만 일단 증기터빈의 사용과 주포탑의 선체 중심선 배치, 13.5인치 이상의 고화력 등으로 정할 수 있다.
이렇게 되자 건함 경쟁이 가속화되었다. 드레드노트급 전함은 주포 구경이 보통 12인치 (305mm) 수준으로 유지했기에 약간 비효율적이라도 숫자를 늘림으로서 대응이 가능하지만 주포 구경이 늘어나면 더 이상 1대 1로 상대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13.5인치(343mm) 주포를 가진 전함은 동급 주포를 가진 전함으로 상대해야 하고 해당 전함을 압도할 목적으로 15인치 (381mm) 주포를 가진 전함이 등장하면 당연하게도 동급 주포를 가진 전함을 새로 만들어서 상대해야 하는 것이다. 따라서 무한경쟁이 시작되었다.
이후 전함은 다시 한 번 크게 변화하게 되는데, 집중방어 구조의 등장이 바로 그것이다. 미국이 네바다급 전함에서 처음 도입하고 영국이 넬슨급 전함에서 완성된 방어 방식은 명중해도 일단 전투력이 당장 낮아지지 않는 곳은 어설프게 중간 수준의 두께를 가진 장갑을 달아서 피탄시 관통당하는 동시에 주포탄 신관이나 작동시키게 하지 말고 그냥 장갑을 달지 말거나 순양함 주포를 막을 수준으로만 달아놓고, 중요한 부분만 장갑을 집중해서 달면 배수량 절약이 가능하므로 같은 배수량으로도 더 강한 방어력을 가질 수 있다는 발상을 기초로 했다. 이는 현명한 생각이었음이 유틀란트 해전에서 드러났고, 이후의 전함들은 이런 집중방어 구조를 사용하는 것이 일반화된다.
그리고 슈퍼 드레드노트급 전함부터는 해당 분류는 영국에서만 주로 통용되고 각국에서 전함의 분류를 독자적으로 하는 것이 더 많이 통용되게 된다. 예를 들자면 미국의 뉴욕급 전함은 14인치 (356mm) 주포를 10문 장착해서 영국식 분류로는 슈퍼 드레드노트급 전함이지만 미국의 독자적인 분류로는 드레드노트급 전함이고 이후 함급인 네바다급 전함부터 표준형 전함이라는 독자적인 분류가 도입되고 군축조약 도입 이후에는 신(新)전함이라는 후속작 분류가 나타난다.
7. 1922년 ~ 1937년: 해군의 휴일
자세한 내용은 해군조약 문서 참고하십시오.長門型戦艦, Nagato-Class Battleship |
1922년에 체결된 워싱턴 해군 군축조약으로 해군의 휴일 시대가 열렸다. 1차대전의 전쟁비용을 메꾸는 것도 만만치 않은데 슈퍼 드레드노트급 전함의 등장으로 무한 건함 경쟁이 열려버리자 각국의 재정이 감당하기 어렵게 된 것이다.
군축조약으로 인해 주력함 1척당 기준배수량 제한선 및 국가별 주력함 배수량 총합 쿼터가 도입되면서 건조 계획을 잡은 전함은 취소되고 건조 중이던 군함들이 폐함되고 극히 일부만 항공모함으로 개조되었으며 후속하는 런던 해군 군축조약으로 보조함들까지 세밀하게 제한이 걸림으로서 각국의 재정이 상당부분 정상화되었다. 일본 제국의 88함대를 보면 건함이 얼마나 국가 재정에 압박을 주었는지 알기 쉽다.
그러나 이미 구식화가 된 기존의 전함들을 사용해야 하는 해군 열강들의 불만스러움은 여전했고 퇴역하는 전함 대신 신규 건조할 수 있는 전함도 기준배수량 3만5천롱톤 안에서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기술력을 집중하여 더 가볍고 공간을 덜 차지하면서도 효율이 높은 동력기관이나 가볍고 튼튼한 장갑, 개량된 주포를 개발해서 기존 전함에도 근대화개수로 적용하고 신형 전함을 만들때도 사용하게 된다.
이런 식으로 만들어진 전함을 조약형 전함이라고 하며 아무래도 기준배수량의 한계점이 작렬했기에 공격, 방어, 주행의 3박자를 맞추기 어려웠고 설령 맞춘다고 해도 넬슨급 전함처럼 선수부에 주포탑을 집중시킨다던지 리슐리외급 전함처럼 주포탑이 4연장이지만 선수부에 2기만 있어서 피탄시 불리해지는 등의 약점을 가지게 되었다.
심지어 군축조약 시대에 나온 주포탑 배치 방식인 전방에 주포탑 2기를 탑재하고 후방에 주포탑 1기를 탑재하는 방식도 1척당 기준배수량 제한 때문에 배수량 절약을 위해 눈물을 머금고 도입한 것이며 실전에서는 전방과 후방에 주포탑 2기씩 장착한 방식보다 불리한데다가 후방 주포탑에 포탄이 명중해서 고장이라도 나면 순식간에 후방 방향으로 사격가능한 주포탑이 없어서 해전에서 크게 불리해지는 약점을 가질 정도였다.
8. 1937년 ~ 1946년: 최종형 전함
자세한 내용은 고속전함 문서 참고하십시오.Cuirassé de classe Richelieu |
1937년에 일본 제국과 이탈리아 왕국이 해군 군축조약을 탈퇴함으로서 해군의 휴일은 붕괴되었다. 그리고 다시 한번 건함 경쟁이 가속화되었다.
하지만 해군 열강의 각국 사정에 따라서 차이가 심했다. 영국은 어떻게든 군축조약을 유지하려고 미국과 프랑스만 모여서 제2차 런던 해군 군축조약을 체결하면서 자살에 팀킬급 악재를 일으켰고 이에 따라 영국-독일 해군조약으로 베르사유 조약의 족쇄가 풀린 나치 독일과 이미 군축조약에서 탈퇴한 일본과 이탈리아만 좋은 짓을 해주었다.
덕분에 추축국이 형식상으로는 아무런 제한사항 없이 전함을 설계하고 건조하는 동안 연합국들은 제2차 런던 해군 군축조약에서 지정한 에스컬레이터 규정을 적용해도 기준배수량 4만5천롱톤 안에서 전함을 만들어야 하기에 미국의 신(新)전함들인 노스캐롤라이나급 전함, 사우스다코타급 전함, 아이오와급 전함의 설계 변경이나 재설계를 하게 만드는 등 큰 악영향을 주었고 프랑스가 살기 위해서 리슐리외급 전함의 추가 건조를 계획하자마자 영국이 배수량 쿼터 초과로 군축조약 위반 아니냐고 태클을 걸고 여기에 프랑스가 영국이 프랑스의 적을 강화시킨다면 프랑스도 여기에 대응할 수 밖에 없다는 쌍욕급 대응을 하는 등의 어처구니 없는 사태까지 터진다. 심지어 영국도 제2차 런던 해군 군축조약의 주력함 주포 구경 제한인 14인치 (356mm)를 맞추기 위해서 14인치 주포만 신형으로 마련하는 바람에 조약이 사실상 붕괴되자마자 시간도 없고 돈도 없어서 킹 조지 5세급 전함에 14인치 주포를 채택하는 희생을 감수해야 했다.
결국 전운이 감돌면서 영국조차도 이젠 전쟁을 피할 수 없다는 분위기로 인해 해군을 증강하기 시작하면서 군축조약이 유명무실화하며 최종형 전함들이 등장한다.
제2차 세계 대전 이래 최후 세대의 전함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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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종형 전함들은 기본적으로 고속전함의 특징을 가진다. 일단 전함이 느려지게 되면 운용에 상당한 부담이 가해진다는 것은 이미 1차대전의 유틀란트 해전으로 입증된지 오래이기도 하고 순양함과 구축함의 속도가 더 빨라지면서 이미 모든 국가가 기존의 전함 속도에 불만이 많았던 것도 작용했다. 그리고 군축조약 붕괴에 대비한 각종 전함의 설계도와 건함 계획이 존재했다.
하지만 연합국은 무의미한 제2차 런던 해군 군축조약의 악영향에서 벗어나니 시간이 없던 상황이었고 영국은 재정난까지 겹쳐서 만족스러운 전함을 만들 수 없었다. 미국도 강력한 국력으로 간신히 만회에 성공한 것이지 신전함들의 출현이 느려져서 태평양 전쟁 개전 당시 전함 전력의 주력은 이미 구식화된 표준형 전함들이 담당하던 상황이었다.
물론 추축국도 상황은 좋지 않았다. 나치 독일은 10여년간의 주력함 설계와 건조의 기술단절로 인해 사실상 1차대전의 바이에른급 전함을 근대화하고 속도를 높인 수준인 비스마르크급 전함이 건조 가능한 마지막 전함이었고 이탈리아도 리토리오급 전함을 간신히 전쟁중에 건조하는 바람에 구식 전함들을 재건조 수준으로 마개조하면서 돈을 추가적으로 대량 소모하는 난리가 났다. 일본도 신규개발 및 건조비의 급상승과 재정 문제로 인해 야마토급 전함을 필요한 수준으로 충분히 건조하지 못했다. 그래서 일본과 이탈리아는 구식 군함들을 재건조 수준의 근대화개장을 해서 전쟁에 투입한다.
이렇게 만들어진 최종형 전함들은 기존의 구식 전함들과 같이 전쟁에 참여한다. 그러나 제2차 세계 대전중에 전함같은 주력함과 주력함간의 포격전은 흔하지 않았다.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라서 대서양에서는 비스마르크 추격전이 있었으며, 지중해에서는 캐터펄트 작전이나칼라브리아 해전처럼 전함간의 포격전도 상당히 있던 편이었고 태평양에서는 전쟁 초반의 제2차 과달카날 해전 및 전쟁 말기의 역사상 마지막 함대함 포격전인 레이테 만 해전 중 수리가오 해협 해전도 있긴 했으나 당초에 기대했던 주력함들간의 대규모 포격전은 없었다.
하지만 진주만 공습으로 해군의 주력은 이미 항공모함으로 넘어가 버렸고, 전함이 항공엄호가 없이 독자적으로 움직이면 말레이 해전같이 항공기에게 전함이 격침당하는 참사가 벌어지기에 전함들은 항공모함 호위, 상륙 작전의 포격 지원, 대공방어, 호송선단 호위등의 일을 하면서 결국 함대결전을 하지 못하거나 주역이 되지 못하면서 전쟁을 마무리한다.
9. 1946년 ~ 2011년: 전함의 황혼
자세한 내용은 아이오와급 전함 문서 참고하십시오.Iowa-class battleship |
2차대전의 전훈으로 인해 전함의 공격과 방어 분야의 문제점이 나타났다. 명중률 향상과 대공방어를 위해서 사격통제장치가 발전하고 레이더가 도입되며 각종 전자장비를 탑재해야 하는데 이런 것들이 모조리 중요구획 밖에 있는 상부구조물 같은 곳에 있고 안테나처럼 장갑을 붙일 수 없거나 돌출부에 위치하여 장갑을 붙여봤자 무게중심 상승이나 일어나고 피탄당하면 통째로 뜯겨져 날아가면서 소용이 없는 데 이런 장비들이 파손되면 전투력이 급감하니 집중방어 개념이 붕괴되었다.
덤으로 군함에서 필요없는 부분은 없기 때문에 비장갑구획의 파손도 대규모 사상자의 발생이나 부력의 손실이나 연료 유출등의 일이 벌어지므로 시간이 지날수록 군함의 생존에 악영향을 주었다. 이미 그 전에도 예상되는 적의 공격력이 너무 강해서 전투력을 유지하는 수준의 방어력이라는 수정된 개념으로 방어력 개념이 바뀌었는데 그것조차 완전히 무너진 것이다.
전함의 주포도 잘 해봐야 40km 수준의 사정거리를 가지므로 항공모함에서 발진하는 함재기보다 한참 유효사거리가 떨어지는데다가 전함과 항공모함이 전투할 경우 대공방어능력이 높은 최신예 전함이더라도 전함은 항공모함에 접근도 못해보고 계속 함재기를 상대하며 대공방어만 하다가 조금씩 타격을 입고 만신창이가 되면서 침몰하므로 답이 없었다. 항공모함의 함재기 공격력도 계속 상승하여 중순양함 이하는 그냥 잡을 수 있고 대형순양함 이상의 상대라도 대규모로 공격하거나 하면 결국 잡을 수 있게 되었으니 이미 예견된 상황이나 다름이 없었다.
이렇게 전함이 해전에서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분야는 사라져가는데 전함에 들어가는 비용과 인력은 여전히 막대하였다. 여기에 더해서 핵무기와 대함 미사일이 등장하여 중장갑의 군함도 상대가 가능했기 때문에 2차대전의 군비를 갚아야 하는 각국에서는 전함의 건함 계획을 취소하고 기존의 전함들을 대규모로 퇴역시키면서 전함의 황혼이 다가왔다. 뱅가드가 그런 식으로 함령이 14년도 지나지 않았는데 퇴역하였다.
이런 와중에도 모스볼같은 방식을 통해서 1960년대까지는 퇴역한 전함을 보존하고 있었으나 더 이상 전함을 사용한 대규모의 해전이 벌어지지 않을 것으로 예측해서 결국 스크랩 처리하였으며 유일하게 아이오와급 전함만 고속성능이 있고 주포도 16인치라서 육상포격 지원용으로 퇴역과 재취역을 반복하면서 6.25 전쟁, 베트남 전쟁, 걸프 전쟁까지 참전하다가 2011년에 최종적으로 퇴역하고 4척 모두 기념함이 되면서 전함의 시대가 마무리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