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차 세계 대전의 독일 해군 군함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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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사우급 전함 | |||
나사우 | 베스트팔렌 | 라인란트 | 포젠 |
1. 개요
제1차 세계 대전 당시 독일 제국 해군의 드레드노트급 전함.2. 제원[1]
나사우급 전함 Nassau-Klasse Großlinienschiff | ||
이전급 | 도이칠란트급 | |
다음급 | 헬골란트급 | |
표준배수량 | 18,873톤 | |
만재배수량 | 21,000톤 | |
전장 | 146.1m | |
전폭 | 26.9m | |
흘수 | 8.9m | |
출력 | 21,699IHP | |
최고 속력 | 20노트 (약 37km/h) | |
항속거리 | 12노트 (약 22km/h) 순항 시 15,400km | |
동력 | 기관 | 수관식 보일러 12기 |
증기 터빈 3기 | ||
추진 | 3축 프로펠러 | |
승조원 | 장교 | 40명 |
수병 | 968명 | |
무장 | 주포 | 2연장 28cm SK L/45 함포 6기 |
부포 | 2연장 15cm SK L/45 함포 6기 | |
8.8cm SK L/45 양용포 16문 | ||
어뢰 | 450mm 어뢰 발사관 6문 | |
장갑 | 측면 | 270mm |
포탑 | 280mm | |
갑판 | 80mm | |
사령탑 | 400mm |
3. 개발
영국이 'All-big-gun'에 치중해서 기존 전함들을 전부 구식으로 만들어버린 드레드노트급 전함이 등장하자 함대법으로 꾸준히 전함을 건조해서 영국 해군과 맞서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던 독일 제국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원래 알프레트 폰 티르피츠 제독의 요청대로는 6척의 전드레드노트급 전함과 6척의 장갑순양함을 건조할 계획이었지만 영국의 신형전함의 등장에 의회(Reichstag)에서 태클을 걸어 계획을 변동, 배수량 18,000톤의 전함 2척과 15,000톤의 장갑순양함 1척분량의 예산을 짰다. 또한 이 신형 전함을 위해 카이저 빌헬름 운하의 폭을 늘리는 계획과 전함을 수용할 수 있는 새로운 대형 독을 만들 계획을 위한 예산도 포함되어 있었다.티르피츠 제독은 영국이 기존의 개념을 전부 뒤집어버린 신형전함인 드레드노트급 전함과 순양전함의 등장을 보고서 불리한 영-독간의 군함비를 꺾을 수 있는 기회라고 보았다.[2] 먼저 기존의 예산안대로 2척의 신형전함[3]과 1척의 장갑순양함[4]를 건조했다. 이렇게 독일은 세계에서 두번째로 드레드노트 전함을 보유하게 되었고 이후 영국이 벨레로폰급 전함과 세인트 빈센트급 전함을 건조하자 독일은 20~25년된 구식 철갑선 작센급과 전드레드노트급 전함인 브란덴부르크급을 대체하기 위해 2척, SMS 포젠과 SMS 라인란트를 건조하게 된다.
4. 특징
나사우급 전함은 독일 최초의 드레드노트 전함으로 화력은 당시 독일에서 주력함포로 쓰이는 28cm(11인치)포 2연장 포탑 6기를 육각형으로 배치해서 측면으로 8문을 쏠 수 있게했다. 이로서 영국의 드레드노트와 비슷한 화력을 낼 수 있다고 보았다. 하지만 독일은 아직 화력이 부족하다고 보았고 이는 후계함인 헬골란트급 전함에서 12인치포 2연장 포탑 6기를 달면서 해결된다. 보일러는 당시 영국이 드레드노트에 사용한 신형 파슨스 증기 터빈 엔진이 독일에서는 아직 불완전한 면이 있었기 때문에 3단팽창 증기 엔진을 사용했다. 증기 터빈 채용에 의한 전함의 고속화는 드레드노트급 전함과 전드레드노트급 전함을 구별하는 중요한 식별점 중의 하나인데도 불구하고 독일이 이를 채용하지 못한 점은 독일의 함선 건조 기술이 영국에 비해 아직 떨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파슨스 터빈은 카이저급 전함과 몰트케급 순양전함때부터 사용되기 시작한다. 장갑은 영국 군함과의 전투를 상정해서 측면 장갑을 300mm(12인치)급으로 대응방어에 문제 없을 것으로 생각했지만 포탑은 280mm(11인치)이었기 때문에 살짝 불안했고 이 점 또한 후계함인 헬골란트급 전함에서 해결된다. 애초에 헬골란트급 전함이 나사우급의 문제점을 개선한 함급이니까.5. 활동
각 함정들의 자세한 활동내역은 나사우(1번함), 베스트팔렌(2번함), 라인란트(3번함), 포젠(4번함) 문서를 참조하십시오.제2 전투함대의 사진, 제일 앞에 보이는 것이 기함 SMS 나사우이다.
제1차 세계 대전이 발발했지만 독일은 현존함대전략을 선택하여 순양전함으로 이루어진 제1 정찰함대를 이용해서 영국함대에 서서히 피해를 주겠다는 작전에 나섰기 때문에 전쟁 초기에 나사우급 전함이 크게 활약할 기회는 없었다.
1916년, 러시아 제국을 압박하기 위해 나사우급 전함 4척은 헬골란트급 전함 4척, SMS 폰 데어 탄, SMS 몰트케, SMS 자이들리츠로 순양전함 3척과 함께 러시아 발트 함대의 중요한 요충지인 리가항으로 출격했다. 리가 만에는 기뢰가 많았고 독일은 소해작업 중에 기뢰정들이 침몰하는 피해를 입었다. 이 와중에 러시아의 전드레드노트 보로디노급 전함 슬라바와의 교전을 벌여서 항구로 쫓아냈다.
다시 빌헬름스하펜으로 돌아와서 기회를 기다리던 중, 제1 정찰함대를 미끼로 삼아서 영국 순양전함 함대를 괴멸시킨다는 계획으로 먼저 히퍼 제독이 출항한 뒤 대양함대 사령관인 셰어 제독이 출항하면서 유틀란트 해전의 막이 오른다.[5] 나사우급들은 전부 출항했고 해전 후반의 야간전에서 추격하는 영국 구축함과 순양함(...)들에게 포격을 가했다. 영국 구축함 HMS 스핏파이어가 나사우에게 포격을 맞아 대파[6], 귀항하게 되고 HMS 블랙 프린스는 격침시킨다. 다만 4번함 포젠이 전투중 혼란속에 독일 순양함 SMS 엘빙을 들이박아서 엘빙이 무력화 되고 엘빙은 수리가 어려워져서 영국군에서 나포를 방지하기 위해 자침한다. 귀항중 3번함 라인란트가 영국군 잠수함에게 어뢰를 맞았다.
유틀란트 해전 이후 독일 해군은 사실상 거의 활동을 하지 않지만 러시아 혁명으로 러시아 제국이 무너지고 브레스트-리토프스크 조약을 맺은 이후 독일은 신생 핀란드를 지원했다. 당시 핀란드는 핀란드 내전 중이었고 당연히 독일은 핀란드 백군을 지지했다. 이때 백군을 돕기 위해 나사우급 2번함 베스트팔렌과 3번함 라인란트가 파견되었다. 1918년 4월, 라인란트가 좌초되었고 6,000톤 수준의 무장과 장갑, 석탄을 버리고 겨우 탈출했지만 독일은 라인란트를 수리할 여력을 회복하지 못한 채 곧 종전을 맞이한다.
6. 최후
독일 대양함대의 주력함이었던 순양전함들과 카이저급 전함, 쾨니히급 전함, 바이에른급 전함들이 스캐퍼플로로 이동했지만 베르사유 조약에 따라 상대적으로 구형이었던 나사우급과 헬골란트급은 보유를 인정받았다. 하지만 독일 대양함대가 자침하자 분노한 영국이 이 2선급 드레드노트도 남기지 않고 스크랩할 것으로 방침을 바꿔 나사우급은 1920~24년 사이에 전부 폐기 처리된다.7. 동형함 목록
함명 | 기공 | 진수 | 취역 | 스크랩 |
나사우 (Nassau) | 1907년 7월 22일 | 1908년 3월 7일 | 1909년 10월 1일 | 1920년 ?월 ?일 |
베스트팔렌 (Westfalen) | 1907년 8월 12일 | 1908년 7월 1일 | 1909년 11월 16일 | 1924년 ?월 ?일 |
라인란트 (Rheinland) | 1907년 6월 1일 | 1908년 9월 26일 | 1910년 4월 30일 | 1921년 ?월 ?일 |
포젠 (Posen) | 1907년 6월 11일 | 1908년 12월 12일 | 1910년 5월 31일 | 1922년 ?월 ?일 |
8. 미디어 출연
- 네이비필드에서 독일의 PC방 전용 함선으로 등장한다.
- Naval Creed:Warships에서 1티어 전함으로 등장한다.
9. 관련 문서
[1] 나사우 기준[2] 당시 영국이 세상에서 가장 많은 전드레드노트급 전함을 보유하고 있어서 독일은 무슨 수를 써도 이 비율을 바꿀 수가 없으니 아예 신형 전함 건조 비율에서 우위를 보겠다는 계획이었다. 실제 영국에서도 드레드노트의 등장으로 자국이 보유하고 있는 기존 함선의 가치를 상실할 것을 걱정했다.[3] SMS 나사우와 SMS 베스트팔렌[4] SMS 블뤼허[5] 다만 셰어 제독은 제2 전투함대 사령관을 역임한 적이 있었기 때문에 과거 자신이 지휘했던 (유틀란트 해전 기준) 구식전함들의 사기를 올려주기 위해 함대에 전드레드노트 전함을 배속하여 18노트로 함대 속도를 맞추는 바람에 전장에 늦게 도달하는 원인이 된다.[6] 나사우의 포각이 충분치 못해 직격은 피했지만 포 압력으로 함교가 박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