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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0-29 18:17:58

아이오와급 전함

파일:미국 국기(1912-1959).svg 제2차 세계 대전의 미합중국 해군 군함 파일:Jack of the United States.p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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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세계 대전
미군해군 군함
구잠함(PC) <colbgcolor=white,#191919>PC급 구잠함
초계함(PG) 더뷰크급, 이리급
호위함(FF) 애슈빌급, 타코마급, 컨스티튜션급
호위구축함(DE) 에바츠급, 버클리급, 캐논급, 에드솔급, 루더로우급, 존 C. 버틀러급, 딜리급A, 클라우드 존스급A
구축함(DD) 샘슨급, 칼드웰급, 윅스급, 클렘슨급, 계획 1919 향도, 패러것급, 포터급, 머핸급, 그리들리급, 배글리급, 소머즈급, 벤험급, 심즈급, 벤슨급, 글리브스급, 플레처급, 알렌 M. 섬너급, 기어링급
잠수함(SS) O급, R급, S급, 바라쿠다급, 아르거넛급, 나왈급, 카샬롯급, 포어포이즈급, 새먼급, 사르고급, 탬버급, 가급, 마크렐급, 가토급, 발라오급, 텐치급
경순양함(CL) 오마하급, 브루클린급, 세인트루이스급, 애틀랜타급, 클리블랜드급, 파고급A, 주노급A, 프로젝트 A, 프로젝트 CL-154급, 우스터급A
중순양함(CA) 펜사콜라급, 노스햄프턴급, 포틀랜드급, 뉴올리언스급, 위치타급, 볼티모어급, 프로젝트 CA-B, 오리건시티급A, 디모인급A
대형순양함(CB) 알래스카급, 프로젝트 CA2-D, 프로젝트 CA2-F
순양전함(CC) 렉싱턴급
전함(BB) 플로리다급, 와이오밍급, 뉴욕급, 네바다급, 최대 전함, 펜실베이니아급, 뉴멕시코급, 테네시급, 콜로라도급, 사우스다코타급(1920), 노스캐롤라이나급, 프로젝트 1058, 사우스다코타급(1939), 아이오와급, 몬태나급
호위항공모함(CVE) 롱 아일랜드급, 차져급, 보그급, 생가몬급, 카사블랑카급, 커먼스먼트 베이급
경항공모함(CVL) 인디펜던스급, 사이판급A
정규항공모함(CV) 랭글리, 렉싱턴급, 레인저, 요크타운급, 와스프, 로빈(빅토리어스)UK, 에식스급, 타이콘데로가급, 미드웨이급A
수상기모함(AV) 커티스급, 탕헤르급, 바네갓급, 커리턱급, 케네스 화이팅급
병원선(AH) 릴리프, 솔러스, 컴포트급, 바운티풀, 사마리안, 레퓨지, 헤이븐급, 안타이오스
군수지원함 키어사지AB, 베스탈AR
잠수함모함(AS) 풀턴급
구축함모함(AD) 딕시급
소해함 랩윙급, 레이븐급, 오크급, 호크급, 어드미러블급
어뢰정 PT 보트
공격수송함 존 펜, 아서 미들턴급, 프레드릭 펀스턴급, 도이엔급, 윈저급, 옴스비급, 베이필드급, 섬터급, 길리엄급, 하스켈급, 폴 리비어급A, 리버티급, 빅토리급
연습항공모함 울버린급, 세이블급
지휘함 마운트 매킨리급, 애디론댁급
기타 함선 USS QUARTZ
취소선: 계획만 되거나 건조 중 취소, 윗첨자A: 전후 완공, 윗첨자UK: 영국으로부터 대여, 윗첨자AB:구난/공작함, 윗첨자AR:공작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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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27408b> 잠수함 <colbgcolor=#27408b> SS 돌핀R, 가토급M/R, 발라오급M/R, 텐치급M/R, 2대 바라쿠다급R, 탱급R, 바벨급R, 고틀란드급L
SSG 그레이백급R
SSN 노틸러스R, 시울프R, 스케이트급R, 스킵잭급R, 퍼밋급R, 스터전급R, 로스앤젤레스급, 시울프급, 버지니아급, {SSN(X)}
SSGN 오하이오급*
SSBN 조지 워싱턴급R, 이튼 앨런급R, 라파예트급R, 제임스 매디슨급R, 벤자민 프랭클린급R, 오하이오급, {컬럼비아급}
고속정(PC) 애쉬빌급R, 페가수스급R, 사이클론급R
호위함(FF) 루더로우급M/R, 존 C. 버틀러급M/R, 딜리급R, 클라우드 존스급R, 브론스타인급R, 가르시아급R, 브룩급R, 녹스급R, 올리버 해저드 페리급R, 프리덤급, 인디펜던스급, {컨스텔레이션급}
구축함 구축함(DD) 플레처급M/R, 알렌 M. 섬너급 FRAM-IIM/R, 기어링급 FRAM-I/IIM/R, 노퍽급R, 미쳐급R, 포레스트 셔먼급R, 스프루언스급R
방공구축함(DDG) 패러것급R, 찰스 F. 애덤스급R, 키드급R, 알레이 버크급, 줌왈트급, {DDG(X)}
순양함 순양함(CL, CA) 클리블랜드급R, 볼티모어급R, 파고급R, 오리건시티급R, 우스터급R, 디모인급R
방공순양함(CG) 보스턴급M/R, 갤버스턴급R, 프로비던스급R, 알바니급R, 리히급R, 벨크냅급R , 타이콘데로가급, CG(X)
핵추진 방공순양함(CGN) 롱비치급R, 베인브리지급M/R, 트럭스턴급M/R, 캘리포니아급R, 버지니아급R, 타격 순양함
전함
(BB)
테네시급R, 콜로라도급R, 노스캐롤라이나급R, 사우스다코타급R, 아이오와급M/R, 몬태나급
상륙정 LCU 1610, LCM, LCVP, LCAC
상륙함 LHA 타라와급R, 아메리카급
LPH 이오지마급R
LHD 와스프급
LPD 롤리급R, 오스틴/클리블랜드/트랜톤급R, 샌안토니오급
LSD 캐사 그랜드급R, 토마스턴급R, 앵커리지급R, 하퍼스 페리급, 위드비 아일랜드급
LST 뉴포트급R
LSV 제너럴 프랭크 S. 베송급 A
EPF 스피어헤드급
소해함 오스프리급R, 어빌리티급R, 어벤저급
군수지원함 미 해군의 퇴역 군수지원함급 목록R, 새크라멘토급R, 알골급R, 네오쇼급R, 시마론급R, 마르스급R, 헨리 J. 카이저급, 서플라이급, 루이스 & 클라크급, 존 루이스급, 왓슨급, 머시급, 세이프가드급, 나바호급
지휘함 사이판급M/R, 블루 릿지급
원정이동기지선
(ESB)
루이스 B. 풀러급
항공모함 재래식(CV) 에식스급M/R, 타이콘데로가급M/R, 미드웨이급M/R, 유나이티드 스테이츠급, 포레스탈급R, 키티호크급R
핵추진(CVN) 엔터프라이즈급R, 니미츠급, 제럴드 R. 포드급
잠수함모함
(AS)
풀턴급R, 에모리 S. 랜드급
구축함모함
(AD)
딕시급R, 사무엘 곰퍼스급R, 옐로우스톤급R
무인함 USV 시 헌터, {LUSV}
UUV 오르카 XLUUV, {후긴 AUV}
대형호위함(범선) 컨스티튜션*
※ 윗첨자R: 퇴역 함정
※ 윗첨자M: 개조/개장 함정
※ 윗첨자L: 리스한 함정
※ 윗첨자 A: 육군운용 함정
취소선: 취소된 함정
※ {중괄호}: 도입 예정 함정
*: 오하이오급은 SSGN, SSBN형 둘 다 존재한다.
*: 컨스티튜션은 문화재로 현역으로서, 당시 기준 함급은 44문 대형 호위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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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아이오와급 전함 BB-63 미주리 박물관.jpg
파일:BB-64 위스콘신.jpg
Iowa-class battleship

1. 개요2. 제원3. 동형함
3.1. BB-61 USS 아이오와(Iowa)3.2. BB-62 USS 뉴저지(New Jersey)3.3. BB-63 USS 미주리(Missouri)3.4. BB-64 USS 위스콘신(Wisconsin)3.5. 미완성된 자매함들
4. 사건 사고
4.1. 1989년 아이오와 2번 주포 폭발사고와 조사 비리
5. 특징
5.1. 화력5.2. 레이더 및 전자장비5.3. 방어력5.4. 속력
6. 이상향7. 아이오와급 전함이 건조된 배경8. 취역과 퇴역9. 개조 계획10. 퇴역11. 다양한 포탄
11.1. 핵포탄
12. 부품과 탄약의 보존13. 모형화14. 미디어15. 둘러보기16. 외부 링크

[clearfix]

1. 개요

미국 해군제2차 세계 대전 시기에 건조한 연합군 최대전함이다. 야마토급 전함만 아니었어도 아이오와급 전함들이 역사상 가장 거대한 전함이 될 수도 있었으며,[1] 실전에서도 가장 유의미한 전과를 보인 최대 크기의 전함이고 최후까지 생존했던 전함이기도 하다. 독일의 비스마르크급 전함도, 영국의 뱅가드(전함)도 만재배수량 기준으로 아이오와급보다 수천 톤 이상 가볍다. 함급의 이름과 1번함 아이오와의 이름은 미국의 아이오와 주에서 따왔다.

워싱턴 해군 군축조약런던 해군 군축조약이 붕괴되면서 조약에서 탈퇴한 일본 제국이 해전에서 우위를 잡는 것을 막기 위해 최후까지 제2차 런던 해군 군축조약에 남았던 영국과 미국 간에 맺어진 협정에 따라 16인치 주포, 45,000톤 미만의 전함을 보유할 수 있게 되면서 건조가 시작되었으며 취역과 퇴역을 반복하면서 1990년대까지 현역에 존재했던 고속전함이다. 제2차 세계 대전기에 건조된 배임에도 불구하고 꾸준한 개수를 받아 CIWS 팰렁스토마호크 미사일까지 달리게 되었다.

현재 아이오와급 전함들은 모두 박물관/기념관이 되어있다. 보통은 퇴역후 대부분 스크랩에 들어가고 일부만 해상박물관이되어 민간에 공개되는데, 아이오와급은 상업적으로 판매가 금지되어있어[2] 모든 자매함들이 남아있을수 있었다.

아이오와급의 현재 위치는 아래와 같다.

2. 제원

아이오와급 전함
Iowa-class battleship
이전급 사우스다코타급
다음급 몬태나급 (취소)
설계배수량 45,000 롱톤
경하배수량 44,579t (43,875 롱톤)
기준배수량 49,202t (48,425 롱톤)
표준배수량 48,880t
만재배수량 건조시 58,464t (57,540 롱톤)
1980년대 58,423t (57,500롱톤)
1968년 당시 뉴저지 기준 61,000t
전장 270.43m
전폭 32.97m
흘수 만재 시 11.51 → 12.5m
1968년 당시 뉴저지 기준 11.9m
기관 보일러 밥콕 * 윌콕스 수관식 8기
추진 제너럴 일렉트릭 기어 4축 프로펠러 결합식 증기 터빈 4기
출력 평상시 212,000 마력(158,000kW), 과부하시 254,000 마력
최고속력 설계시 33kn (약 61.1km/h)
뉴저지 1968년 3월 시험운항에서 35.2kn (65.2km/h)
52,000t (51,000롱톤)일 때 과부하를 걸고 35.4kn (65.6km/h)
만재배수량시 30kn (55km/h)
항속거리 15kn (27.8km/h)일 때 14,890 마일 (23,960km)
20kn (37km/h)일 때 11,700마일 (18,820km)
연료 탑재량 8,983 미터톤
연비 15kn 순항 시 약 374.9l/km
승조원 제2차 세계 대전
6.25 전쟁
2,700명
1980년 이후 1,800명
전자 장비 제2차 세계 대전 SC-2 대공/대함 레이더 (아이오와, 위스콘신 전용)
SK-2 대공 레이더
SG 대함 레이더
SR 감시 레이더
6.25 전쟁
베트남 전쟁
AN/SPS-6 대공 레이더
AN/SPS-8 고도 탐지 레이더
AN/SPS-10 대함 레이더
1980년 이후 AN/SPS-49 대공 레이더
AN/SPS-67 대함/항법 레이더
전자전 장비 제2차 세계 대전
6.25 전쟁
TDY-1 전파 방해 장치
베트남 전쟁 AN/ULQ-6 교신 기만 장치
1980년 이후 AN/SLQ-32(V) 전투체계
AN/SLQ-25 음향식 디코이
Mk.36 SRBOC 채프 발사대
무장 제2차 세계 대전
6.25 전쟁
Mark 7 16인치 50구경장 함포 3연장 3기 9문
5인치 38구경장 양용포 2연장 10기 20문
보포스 40mm 포 4연장 20기 80문
오리콘 20mm 기관포 단장 49기 49문
냉전
걸프 전쟁
Mark 7 16인치 50구경장 함포 3연장 3기 9문
5인치 38구경장 양용포 2연장 6기 12문
BGM-109 토마호크 순항 미사일 발사대 32문
RGM-84 하푼 대함 미사일 발사대 16문
팰렁스 20mm 6연장 CIWS 4문
장갑 측면 307mm (19도 경사장갑)
격벽 287mm (아이오와, 뉴저지)
368mm (미주리, 위스콘신)
주포탑 바벳 295 ~ 439mm
주포탑 241 ~ 495mm
장갑함교 439mm
갑판 비장갑구획 16 ~ 25mm
상갑판 38mm
주갑판 152mm
함재기 제2차 세계 대전 보우트 OS2U 킹피셔 or 커티스 SC 시호크 수상기 3기
6.25 전쟁 H-19 헬리콥터 3기
베트남 전쟁 UH-1 헬리콥터 3기
냉전
걸프 전쟁
RQ-2 파이오니어 UAV 5기

3. 동형함

함번 함명 기공 진수 운용 비고
BB-61 아이오와
(Iowa)
1940년 6월 27일 1942년 8월 27일 1943년 2월 22일 ~ 1949년 3월 24일 로스앤젤레스에 보존
1951년 8월 25일 ~ 1958년 2월 24일
1984년 4월 28일 ~ 1990년 10월 26일
BB-62 뉴저지
(New Jersey)
1940년 9월 16일 1942년 12월 7일 1943년 5월 23일 ~ 1948년 6월 30일 캠든에 보존
1950년 11월 21일 ~ 1957년 8월 21일
1968년 4월 6일 ~ 1969년 12월 17일
1982년 12월 28일 ~ 1991년 2월 8일
BB-63 미주리
(Missouri)
1941년 1월 6일 1944년 1월 29일 1944년 6월 11일 ~ 1955년 2월 26일 진주만에 보존
1986년 5월 10일 ~ 1992년 3월 1일
BB-64 위스콘신
(Wisconsin)
1941년 1월 25일 1943년 12월 7일 1944년 4월 16일 ~ 1948년 7월 1일 노퍽에 보존
1951년 3월 3일 ~ 1958년 3월 8일
1988년 10월 22일 ~ 1991년 9월 30일
BB-65 일리노이
(Illinois)
1942년 12월 6일 1945년 8월 11일 건조 취소 후 스크랩
BB-66
BBG-1
켄터키
(Kentucky)
1942년 3월 7일 1950년 1월 20일 1958년 10월 31일 취역 취소 후 스크랩용으로 판매

총 6척이 계획되었지만 BB-61 USS 아이오와, BB-62 USS 뉴저지, BB-63 USS 미주리, BB-64 USS 위스콘신 함까지만 건조, 실전에 투입되었다. 태평양 전쟁이 종전에 가까워지고 전함의 효용성이 줄어듬에 따라 5번함 BB-65 USS 일리노이, 6번함 BB-66 USS 켄터키 함은 건조가 중단되었다. 덤으로 일리노이와 켄터키에 쓰일 예정이었던 주기관은 둘로 쪼개져서 만재 배수량 54,000톤급 보급함인 새크라멘토급 고속 전투보급함 4척의 주기관으로 유용되었다. 배수량이 많이 나가는 군함이라 당장 넣을 수 있는 게 일리노이와 켄터키의 것밖에 없었다.
버림받은 일리노이와 켄터키

취역 당시의 모습을 기준으로 아이오와/뉴저지와 미주리/위스콘신은 함교 모양이 다르다. 아이오와와 뉴저지는 노스캐롤라이나급 전함, 사우스다코타급 전함처럼 장갑함교가 그대로 노출되어 있고 미주리와 위스콘신은 전후 함선들처럼 대형 창이 여럿 달린 함교 안에 장갑함교가 들어가 있다. 아이오와와 뉴저지도 다른 대전기 함선들처럼 전후에 개장을 거쳐 현대적인 함교를 가지게 되었기 때문에 보통 아이오와급 하면 현대적인 함교를 가진 모습을 떠올리는 사람들이 많다.

3.1. BB-61 USS 아이오와(Iowa)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BB61_USS_Iowa_BB61_broadside_USN.jpg
건조 1940년 6월 27일 진수 1942년 8월 27일 취역 1943년 2월 22일
퇴역 1990년 10월 26일 3차 퇴역 제적 2006년 3월 17일 전시 캘리포니아로스앤젤레스

3.2. BB-62 USS 뉴저지(New Jersey)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New_Jersey_Shoots.jpg[7]
건조 1940년 9월 16일 진수 1942년 12월 7일 취역 1943년 5월 23일
퇴역 1991년 2월 8일 4차 퇴역 제적 1999년 1월 4일 전시 뉴저지캠든

별명은 Black Dragon, Big J. 함 모토는 "자유의 화력 (Firepower for Freedom)."


뉴저지 취재 영상(영어)

3.3. BB-63 USS 미주리(Missouri)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Missouri_Modernized.jpg
건조 1941년 1월 6일 진수 1944년 1월 29일 취역 1944년 6월 11일
퇴역 1992년 3월 31일 2차 퇴역 제적 1995년 1월 12일 전시 하와이진주만


Big Guns - Battleship USS Missouri Shock & Awe


Battleship Missouri Memorial


3번함인 USS 미주리 함은 1942년 11월 당시 과달카날에서 "Kill JAPS! Kill JAPS! Kill more JAPS!"를 외친 제독의 기함이고, 그 한쪽 갑판은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일본 제국이 공식적으로 항복한 장소다.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Ussmissouriplaque_RCG.jpg
일본측 대표 시게미쓰 마모루[8] 외상이 항복문서에 서명한 장소

당시 전쟁에서 그다지 활약하지도 않은 미주리에서 항복식전이 열리는 데에 반대하면서 전쟁에서 활약한 무훈함에서 식전을 열자는 의견도 상당히 있었다. 이를테면 과달카날에서 활약한 USS 워싱턴 함이라든지 미 전함 중 가장 많은 작전에 참가한 USS 노스 캐롤라이나 함 등. 엔터프라이즈가 빠진 이유는 당시 카미카제 특공대에게 공격받아 상태가 영 좋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굳이 미주리가 아니라도 충분히 전적을 쌓은 배가 많은데 굳이 미주리를 채택해야 했을지는 의문. 사실 원래 전훈이나 위상은 44년초 헤일스톤 작전 부터 트러크 제도, 사이판, 티니안의 일본군 머리에 신나게 16인치 불지옥을 선사하며 레이테 만 해전, 필리핀 해 해전 깉은 1944년의 함대결전급 해전에서 맹활약했으며, 미합중국 해군 제3함대윌리엄 홀시의 기함이었던 언니 뉴저지가 맞아야 마땅했지만 당시 뉴저지 포함한 3함대 전체가 동년 12월 태풍 코브라에 박살이 나서 이 시점에선 웬만한 일본군 공격 따위보다 훨씬 심각한 피해인(...) 구축함 3척 침몰, 항모 갑판 비행기 수십대 파괴, 전함, 순양함 중파에 790명 사망이란 엄청난 피해를 입으면서 미주리가 땜빵으로 투입된 것이다.[9]

어쨌든 미주리가 최종적으로 선택되었고 다른 전함의 승조원들은 트루먼의 고향이 미주리라서 그런 것이라고 불평했다. 굳이 항복 조인식을 해군 함정에서 한 이유는 미국 해군이 주축이 된 전장이었음에도 전후 일본을 통치하기 위해 설치된 GHQ의 수장으로 육군 원수인 더글라스 맥아더가 해군 원수 체스터 니미츠 제독을 제치고 선출되는 등[10] 해군의 주목도가 떨어지는 것에 대한 불만을 무마하기 위함이었다.

파일:external/40.media.tumblr.com/tumblr_niitsiksuN1t3n5zjo1_1280.jpg

1945년 4월 11일 오키나와 전투 당시 미주리로 돌진하는 카미카제용 A6M

당시의 급박한 상황을 잘 보여주는 유명한 사진으로 USS 벙커힐과 함께 카미카제 공격의 사례를 언급할 때 자주 등장한다. 이 장면 직후 A6M은 충돌했고 항공유로 인해 화재가 발생하였으나 함 자체의 손상은 미미했고 화재도 금방 진압되었다. 참고로 이 사진은 당시 사진찍기가 취미였던 제빵사가 찍은 것이다. 카미카제 조종사는 카노야 항공기지에서 출격한 제5 겐부대의 이시노 세츠오 이등병조로 판명되었으며 이후 시신은 수습되었고 미군은 장례를 치렀다.

파일:external/14544-presscdn-0-64.pagely.netdna-cdn.com/missouri_firing_in_korea.jpg

한국 전쟁에서 화력지원 중인 미주리

한국전쟁에도 참여하여 화력지원을 실시했다. 16인치 포탄의 막강한 위력이 인상적이어서 북한군이 가장 두려워했다고 한다. 백선엽 장군과 알레이 버크 제독의 일화에서도 등장한다. 당시 미주리를 비롯한 알레이 버크의 함대는 백선엽의 1군단에게 화력 지원을 해주었는데, 백선엽은 이 화력에 매우 만족해서 제임스 밴 플리트 장군에게 알레이 버크를 "본관의 포병 사령관입니다"하고 소개할 정도로 좋아했다고. 다만 알레이 버크는 임무이니까 한 것일 뿐 좀 마뜩찮아 했단다. 전함 주포탄 값도 만만찮은데다 가치가 높은 전함을 적 해안선에 접근시키기는 것도 부담되었기 때문이다. 여튼 전쟁 내내 동해상에서 신나게 포를 날려댔기 때문에 동해안을 따라가는 함경남도/함경북도 주간선 보급은 괴멸적 타격을 입었고 전쟁 내내 복구되지 못했다. 이는 평라선(함경선) 철도가 복구되면서 산굼부리 안으로 터널 파고 꾸역꾸역 들어가게 된 원인이자 북한이 찢어지는 살림에도 만포에서 혜산으로 넘어가는 북부철길을 뚫게 되는 원인이 된다.

한국전쟁이 끝난 후 몇 년간 현역으로 있다가 퇴역했다.

1984년에 레이건 행정부가 추진한 600척 함대 구상에 따라 현역으로 복귀, 1991년에는 자매함 위스콘신과 걸프 전쟁에 참전했다.

미주리는 1월 17일에 토마호크 미사일을 발사, 2월에 함포 사격을 개시했다. 임무를 수행하고 있던 미주리 쪽으로 이라크군이 대함미사일 2발을 발사했는데 한 발은 채프에 낚여서 바다로 낙하했고 또 다른 한발은 영국 해군 구축함이 발사한 미사일에 요격되었다. 미주리는 토마호크 미사일 28발을 발사했고 16인치 포탄 783발을 발사, 위스콘신은 토마호크 미사일 24발을 발사했으며 16인치 포탄 319발, 5인치 포탄 881발을 발사했다고 한다.

더불어 2차 대전과 한국전쟁 당시 수상기들이 한 역할을 무인기로 대체하여 무인기도 운용했다고 한다. 이 무인기들은 함내에서 조종하여 미주리의 눈 역할을 수행했고 이를 바탕으로 탄착관측사격을 시행했다. 그리고 위스콘신이 처음으로 무인기를 통해서 적의 항복을 받아내는 경험을 했다. 그야말로 신구의 조합이 이루어졌나 싶기도 한데 결국 종전 후 퇴역을 피할 수 없었다. 퇴역 후에는 진주만 공습 당시 격침된 USS 아리조나 기념관 맞은 편에 기념함으로 정박하여, 태평양 전쟁의 시작과 끝을 한 장소에서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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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의 미주리, 미주리 함 앞쪽의 하얀 건물은 애리조나 기념관이며 건물을 떠받친 철 구조물이 바로 펜실베이니아급 전함 2번함 USS 애리조나의 선체이다.

미주리 박물관이 위치한 곳의 도로명들은 미 해군 항모들의 이름을 따와서 지었기에 새러토가, 와스프, 갬비어베이, 바탄 등 군사무기 매니아에게 익숙한 이름들이 한가득하다.

3.4. BB-64 USS 위스콘신(Wiscons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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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조 1941년 1월 25일 진수 1943년 12월 7일 취역 1944년 4월 16일
퇴역 1991년 9월 30일 3차 퇴역 제적 2006년 3월 17일 전시 버지니아 주 노포크 해군 박물관



한국 전쟁당시 북한군에게 152mm 포[11]를 우현에 4발 맞은 적이 있는데, 그 중 한발은 40mm 포좌에 맞았지만 천만다행히도 부상자 3명 이외 별다른 피해는 없었고[12] 위스콘신은 16인치 포 9문을 일제사격해 북한군 포대를 말 그대로 가루로 만들어 버렸다.

그 후 그 옆을 지나가던 DD-761 USS Buck[13]에게 '성질머리 좀 죽여라, 죽여!'(Temper, temper)라는 조명 메세지를 받은 일화가 있다.[14]

걸프전 개전 당시 토마호크 미사일을 발사했던 함선으로 유명하다. *

3.5. 미완성된 자매함들

1940년도와 1941년도에 각각 2척씩(61/62, 63/64) 건조 들어갔고 1942년도에 2척(65/66) 건조 들어갔는데 1942년도 건조분은 항공모함으로 변경하는 검토로 작업 중지 및 군함 건조 우선순위에서 밀려있다가 5번함인 BB-65 일리노이는 1945년 1월 15일에 착공했지만 1945년 8월 11일에 건조중단, 1958년까지 22% 건조 상태로 방치됐다가 1958년 9월에 최종적으로 고철 처리되었다. 6번함 BB-66/BBG-1 켄터키는 1944년 12월 6일에 착공해서 1947년 2월 17일에 건조 중단되었다. 5번함보다 6번함이 먼저 착공하게 된 것은 조선소의 선거 여유 때문이다. 함번의 부여는 1940년 최초 발주 당시에 이미 결정되어 있었으므로 실제 두 척 모두 완공되었다면 5번함보다 6번함의 취역이 빨랐을 수도 있던 셈이다.

특히 6번함 켄터키는 5번함 일리노이보다 더 많이 만들어진 거의 선체 완성 직전에서 건조 중단되었기 때문에 1950년 BB-63 미주리가 뻘밭에 걸리는 사고를 당해 보수를 받아야 하는데 남는 건선거가 없는 불상사를 겪자 간단한 방수공사만 한 후 강제 진수, 이후 보존 처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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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조 중간엔 항공모함으로 변경하려는 시도도 있었다.

이후 대공 미사일을 대량 장착한 방공전함으로서 개조가 검토되기도 했다가[15] 1956년 동급함인 BB-64 위스콘신이 충돌사고를 일으켜 함수를 잃자 신속한 복귀를 위해 함수를 위스콘신에 이식한 후 폐함 수순을 밟아 1958년에 일리노이와 함께 고철로 처분됐다.

하지만 켄터키와 일리노이의 주기관은 반씩 쪼개져서 새크라멘토급 대형 군수지원함 4척의 주기관으로 재활용되었다. 새크라멘토급도 배수량과 크기가 전함 수준의 대형함이므로 당시에 얻을 수 있던 대형엔진이 아이오와급의 주기관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4. 사건 사고

오랜 기간 사용한 전함이기 때문에 한 번씩은 큰 사고를 겪은 일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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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레처급 구축함 USS 윌리엄 D. 포터 DD-579

1943년 11월, 테헤란 회담에 참석하기 위해 1번함 아이오와에 루즈벨트 대통령, 함대 총사령관 겸 해군참모총장 어니스트 킹 제독을 포함한 수많은 고위급 관리들을 태우고 대서양을 건너고 있었는데 플레처급 구축함 윌리엄 D. 포터어뢰 모의 발사 훈련 도중 아이오와에게 실제 어뢰 1발을 발사해버렸다. 무선 침묵 상태로 상황을 파악하지 못하던 아이오와에 윌리엄 D. 포터가 이 사고를 발광신호로 알리려고 했지만 당황한 나머지. 첫 번째는 '어뢰가 USS 아이오와 반대편으로 발사', 두 번째는 '어뢰가 전속력으로 후진 중' 이라는 전혀 알 수 없는 의미로 발신하고 말았다. 결국 다급해진 포터가 무선 침묵을 깨고 어뢰가 아이오와를 노리고 발사됐다고 실토하여 그제야 어뢰가 발사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어 회피 기동하여 어뢰를 피했고 어뢰는 전함 뒤에서 약 3,000야드(약 2.7킬로) 떨어진 곳에서 폭발하였다. 그 와중에 루즈벨트 대통령은 함을 향해 달려오는 어뢰를 보고 싶다고 경호원들에게 그쪽으로 자신의 휠체어를 옮겨달라고 했다고 한다. 자세한 내용은 문서 참고

함 자체의 사고는 아니지만 1945년 8월 25일에 월리스 리 제독[16]이 함상에서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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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 뻘밭에 걸린 미주리

1950년 1월 미주리는 버지니아 주 체서피크 만에서 지정된 수로를 따라 항해하며 음문을 녹음하는 작업을 수행하고 있었다. 그런데 수로를 표시한 부표 중 2개가 없어졌음에도 불구하고 함선에선 이를 알아채지 못했고, 함장이 함의 방향을 잘못 정하는 바람에 얕은 갯벌에 좌초하고 말았다. 인원과 주요 물자들을 하역시킨 다음 17일 동안 준설과 인양 작업을 한 끝에 간신히 빠져나올 수 있었다. 이 당시 함장은 무능한 자는 아니었지만 겨우 구축함급의 지휘 경험만 있었던 사람이라 전함 운용에 미숙할 수밖에 없었다. 함장은 당연히 이후 해임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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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수가 파손된 위스콘신

1956년 대서양에서 기동 훈련을 하던 도중 구축함 이튼과 충돌해 함수가 파손되었다. 이튼이 조함 실수로 인해 위스콘신 바로 앞을 지나게 되었고, 속도를 줄이지 못한 위스콘신이 그대로 들이받은 것, 이튼은 파손되어 예인선에 끌려가 간신히 회항하였으며 위스콘신은 자력으로 회항해 미완성된 캔터키의 함수를 잘라다 붙여서 수리하였다.

4.1. 1989년 아이오와 2번 주포 폭발사고와 조사 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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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포가 폭발하는 아이오와



1989년 4월 19일, 푸에르토리코 북동쪽 해상에서 1번함 아이오와가 주포 사격 훈련을 실시했다. 1번 포탑이 전탄발사를 완료하고, 2번 포탑이 발사 준비를 했다. 3개의 포신 중에서 좌, 우는 장전 완료를 알렸으나 가운데에서 보고가 지연되었다. 그리고 장전 지시가 내려지고 1.5분 후에 2번 주포탑 중앙 주포가 폭발했다. 이 사고로 2번 포탑 요원 47명 전원이 사망했다. 탄약고로 이어지는 문이 폭발을 막아준 덕에, 아이오와는 침몰을 모면했다. 폭발 즉시 탄약고를 침수시켰으며, 외부에서도 포탑에 물을 뿌려서 1시간 30분 후에 진화가 완료되었다. 다음날인 20일에 포탑의 물을 펌프로 모두 퍼냈으며, 2번 포탑 요원들의 시신을 수습해서 헬기를 통해 푸에르토리코로 옮긴뒤, 다시 항공기를 이용해서 미국 본토로 보냈다. 아이오와는 4월 23일에 노포크로 귀환하였으며, 24일에 조지 H. W. 부시 대통령이 참석한 자리에서 추모식을 치렀다.

같은 해 9월 7일에 미 해군 조사단이 사고의 원인을 조사하여 발표하였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병장[17] 클레이튼 하트윅(Clayton Hartwig)이 다른 승조원과 동성애 관계에 연루되어 있었으나(involved in a homosexual relationship with another crew), 사랑이 좌절되자 자살하고자 마음먹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하원, 사망자들의 가족, 그리고 대중은 해당 결론의 근거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심각한 우려를 표했다.

다음해인 1990년 5월 25일 상원 청문회 도중에 미 정부 회계 감사원(GAO)과 샌디아 국립연구소(Sandia National Laboratories)가 내놓은 두번째 조사 결과가 발표되었다. 원래 16인치 주포는 탄두와 장약이 분리되어 있고 사거리에 따라서 각기 다른 숫자의 장약 뭉치를 포의 약실로 집어넣는 방식을 쓰는데, 이 과정을 사람이 직접 유압 기계를 조종해서 수행하기 때문에 이 과정에서 실수가 벌어지면 포탄을 약실로 밀어넣는 밀대가 장약을 짜부러트려서 폭발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고의적으로 폭발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도 덧붙였다. 미 해군은 대중의 압력을 이기지 못하고 재조사를 실시한다.

그해 10월 26일, 소련이 붕괴되자 아이오와급 전함을 퇴역시키기로 논의한다. 그래서 아이오와의 2번 주포탑은 수리되지 않은채로 남게 된다.

1991년 10월 17일, 펜타곤에서 열린 기자 회견을 통해 미 해군의 두번째 조사 결과가 발표되었다. 여기서 의도적으로 폭발시켰다는 증거를 찾지는 못했으나, 폭발의 원인도 특정하지 못했다고 발표된다.

공식적인 기록은 여기까지지만, 후의 조사 결과를 따르면 장교들이 벌인 인재였다. 자세한 내용은 참조바람.

아이오와 급의 스티븐 스켈리(Stephen Skelley) 원사(MCPO)와 케네스 마이클 코스티건(Kenneth Michael Costigan) 소령(LCDR)은 아이오와급의 16인치 주포 사거리를 늘리려는 연구를 하고 있었다. 원래 이는 해군의 해상 시스템 개발 사령부(NAVSEA)의 승인이 필요했는데, 둘은 새로 부임한 무샐리 함장에게 승인이 났다고 입을 털었고, 사령부의 민간인 직원인 존 매키렌(John McEachren)은 상사에게 자신이 임의로 승인했다는 사실을 숨겼다. 어쨌든 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이를 위해서 장약을 '과급'해서 발사했는데, 1989년 1월 20일에 1번 포탑에서 6발을 발사할 때는 큰 문제가 없었다. 본인들의 주장으로는 40킬로미터를 날아가서 16인치 세계 신기록을 세웠다고 한다.

함 내에서 이 연구에 대해 알고 있는 이들은 "낡은 전함으로 무슨 짓거리냐"는 반응을 보였다. 아이오와급 전함중 초도함인 아이오와는 당연히 4척의 자매함들중에서 노후화가 제일 심각했다. 현역에 다시 복귀할 때부터 모스볼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칠해놓은 보존제가 완전히 제거되지 않는 등 불량한 후처리 상황 때문에 한번 부적합 판정을 받은 바 있었을 정도니 말 다했다.

심지어 포탑 부품 대부분이 노후화 되었음에도 신품 부품들을 공급받을 수 없자[18] 건조가 취소되어 재고로 쌓였던 낡은 부품들을 반쯤 어거지로 끼워 일단 작동은 되게 만들어 놓은 상태였기 때문이다. 게다가 당시 아이오와급 전함들은 현대와 달리 둔감장약을 사용하지도 않았기 때문에 억지로 장약을 집어넣을시 충분히 폭발사고가 발생할 확률이 있었다. 1번 주포탑에서도 더 이상 협조하지 않겠다고 나오자, 스켈리는 2번 포탑에 접근해서 다시 실험을 재개한다. 그리고 폭발사고가 났다.

게다가 실험과정도 상당히 위험했다. 비공식적으로 16인치 포탄이 40킬로미터를 날아갔다고 관측된 후에 주포 청소를 위해 주포를 점검해보니 주포 사격시 차탄 장전을 위해 포미를 열기 전에 남은 장약 찌거기와 불똥을 포신 밖으로 밀어내는 압축공기 살포기가 작동하지 않는 것을 확인한 것이다. 무리한 실험으로 포신과 포탑에 무리가 가기 시작한 것이다.

장약 선택에도 문제가 컸다. 원래 좀 더 가벼운 포탄을 날리기 위해 제작된 장약을 초중량탄 발사에 써먹으려고 실험한 것이다. 애초에 장약에 초중량탄 발사용으로 사용금지라고 적혀있기도 했고, 해당 장약은 좀 더 빠르게 발화되고 연소되므로 초중량탄에 사용하면 리슐리외급 전함인 리슐리외의 경우처럼 포탄이 장약폭발압력을 이기지 못하고 깨져서 포신 내에서 유폭할 가능성이 있던 물건이었다.

그나마 장약이 정상적인 물건도 아니고 2차대전 기간에 생산된 후 오랜 기간동안 적절치 못한 곳에 보관한데다가 장약 자체가 비단주머니에다가 화약을 넣어놓은 것이라 포장 자체가 장기간 보관에 부적합한 물건이었다. 그래서 열화상태가 진행되는 바람에 본래보다 빨리 발화되고 유폭하기 쉬워졌으며 가만있어도 유폭하기 딱 좋은 분진을 뿜어대는 위험한 물건이 된 상태였다. 이러니 1번 주포탑에서 처음 실험할 때 유폭사고 안난게 신기할 지경이었다.

참조로 링크걸린 내용을 전부 읽어보면 알겠지만, 아이오와급의 해군 장교와 부사관들, 그리고 그들의 상사 제독들은 증거를 인멸하고, 과학자들의 접근을 차단했고, 지속적으로 민간 조사자들에게 압박을 가했다.

샌디아 연구소가 주도한 2차 해군 2번째 재조사(즉 3차) 발표 때 해군참모총장 프랭크 켈소(Frank B. Kelso II)가 "해군은 250억 달러를 들여 어떠한 주장에 대한 실질적인 증거도 찾지 못했다." 라고 하며 해군이 더이상 해군 인사를 조사단에 넣지 못하게 조치했다고 했다.

이후 아이오와의 책임자들은 징계를 받았으나, 공식 기록에 남지 않는 훈계 편지로 그쳤다. 이후의 처벌은 대체로 솜방망이다.

코스티건 중령과 스켈리 원사는 시대에 뒤떨어진 열광적인 전함 덕후였고, 이 둘의 대형 사고를 끝으로 소련 붕괴 이후의 유용성에 물음표가 붙던 아이오와급이 퇴역하고 한줌도 안남은 미 해군의 전함 파벌도 완전히 사라진다. 이후 항공파 제독들의 아스널쉽 비난에 휘말려서 아이오와급 전함도 제적되기 시작한다.

국방허가법 제1011항의 2척의 아이오와급 전함을 유지하라는 내용 때문에 아이오와와 위스콘신이 유지될 예정이었으나, 상기한 사고로 뉴저지가 아이오와의 자리를 차지한다. 그렇게 뉴저지와 위스콘신은 유지하고 있었고 나머지는 모스볼 처리였으나 법은 여전히 아이오와를 유지하라는 상태였다. 미주리는 자신을 현역으로 유지하라는 법이 없고 현실적인 이유도 없던 탓에 역사적인 중요성을 이유로 제일 먼저 박물관 행이 된다. 1999년에 the Strom Thurmond National Defense Authorization Act이 제정되면서 아이오와와 위스콘신을 유지해야 했고, 퇴역한 아이오와급 전함은 상업적인 용도(즉 고철로도 팔지 못한다.)가 금지된 탓에 뉴저지가 박물관함으로 가게 된다. 이를 시작으로 모든 아이오와급이 하나하나 박물관행이 되었다.

정리하자면, 아이오와 2번 주포탑 폭발사고는 여타 사고처럼 함선이 파손되는 '사소한' 사건이 아니라 인권유린 및 해군의 비리가 엮인 큰 사건이다.

5. 특징

최후의 고속전함이고 건조 당시 미국의 기술을 총집약했기 때문에 다양한 특징을 가진다.

5.1. 화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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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오와급의 16인치 주포탑 구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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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6년 훈련중 아이오와 2번 포탑 중앙 주포에 포탄을 장전하는 모습. 위에서 언급한바와 같이 1989년 정확히 이 위치에서 폭발이 일어났다.
시험 사격을 위해 고속도로로 이동하는 16인치 주포. 그 엄청난 무게로 인해 운반 차량들이 매우 천천히 움직이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주포인 Mark 7 16인치(406mm) 50구경장 함포는 1,224.5kg의 중량을 가진 초중량탄인 Mark 8 철갑탄을 장비하여 기존 16인치 45구경장 Mark 5, Mark 6 함포보다 관통력이 높았다. 같은 Mark 8 철갑탄을 사용하는 노스캐롤라이나급의 16인치 45구경장 Mark 6와 비교했을 때 아이오와급은 50구경장을 사용했으므로 장점이 늘어났다.

1. 포구초속이 증가했으므로 포구초속에 큰 영향을 받는 현측관통력이 상승했다.
2. 포구초속이 증가했으므로 동일한 거리를 발포해도 더 낮은 각도로 사격해 동거리의 현측장갑에 대한 낙하각이 높아져 현측관통력이 상승했지만, 포구초속이 증가함으로써 동일한 거리를 사격해도 더 낮은 각도로 사격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동거리의 갑판장갑에 대한 낙하각이 낮아져 갑판관통력이 하락했다.
3. 포구초속에 비례하는 최대사정거리가 증가했다. 다만 이는 유사한 대구경 함포들과 비교하는 경우이다. 단순히 포구초속으로 사거리가 결정된다면 대체로 포구초속이 더 높은 순양함들이나 구축함들의 사거리가 더 길어야 하겠지만 중소구경 포탄들은 대구경 탄들보다 저중량이라 발사 후 대구경 포탄들보다 더욱 빠르게 속력을 소실한다.
거리 측면장갑 갑판장갑 충돌속도 충돌각도
0m 829mm 명중불가 2,500fps (762mps) 0
4,572m 747mm 17mm 2,280fps (695mps) 2.5
9,144m 664mm 43mm 2,074fps (632mps) 5.7
13,716m 585mm 71mm 1,893fps (577mps) 9.8
18,288m 509mm 99mm 1,740fps (530mps) 14.9
22,860m 441mm 131mm 1,632fps (497mps) 21.1
27,432m 380mm 169mm 1,567fps (478mps) 28.25
32,004m 329mm 215mm 1,555fps (474mps) 36.0
36,576m 280mm 286mm 1,607fps (490mps) 45.47
38,720m 241mm 357mm 1,686fps (514 mps) 53.25

주포의 관통력이 강력하므로 아이오와급의 방어력으로 대응방어는 23,600야드에서 27,400야드까지(21.6~25km) 였고, 야마토급 전함이 미국 B클래스 강철을 사용한다고 가정했을 때의 대응방어구간인 18km~32km 구간을 제외하고 18km이내로 접근하면 측면장갑을 관통하고 32km 이상 떨어지면 갑판장갑을 관통할 수 있는 관통력을 보여준다.

주포의 구경과 관통력은 정비례하는 것이 아니다. 주포의 구경이 증가되면 관통력 역시 급증한다고 착각하기 쉽지만, 포탄의 투영면적 증가로 인해 운동에너지가 분산되기 때문에 탄의 중량증가 혹은 포구 속도의 증가가 동반되지 않는다고 가정하면 오히려 관통력이 하락하는 현상이 일어난다. 따라서 아이오와급은 주포의 구경을 유지하면서 탄의 중량을 늘려 관통력을 향상시켰다. 그리고 그럼에도 전함들의 주포구경이 지속적으로 증가한 이유는 탄질량을 증가시키고 포구초속를 유지하기 용이하며 포탄의 파괴력을 결정하는 철갑(유)탄의 작약량을 늘리기도 용이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야마토급의 18인치가 아이오와급의 16인치보다 관통력이 높고 18인치 철갑탄의 작약량은 33.8kg이며 MK.7의 철갑탄의 작약량은 18.55kg로 화력에서 큰 격차가 생긴다.

다만 작약량의 부족을 이유로 아이오와급의 화력을 저평가하는 경우가 잦은데, 작약량이 20kg도 되지 않는 SHS탄을 주력으로 운용한 것은 다 그만한 이유가 있다. 전간기의 여러 실험으로 작약량보다 관통력이 중요하다는 것이 널리 알려졌기 때문이다.참조 본래 전함의 철갑탄은 적 주력함을 노리는 철갑탄(AP)와 부포로는 상대하기 힘든 순양함 등을 노리는 반철갑탄(SAP)로 이원화되어 있었는데 전간기의 여러 실험으로 주력함 이하의 함선에도 철갑탄이 반철갑탄보다 더욱 위력적이라는 사실이 알려진다. 반철갑탄은 작약량이 더욱 많았지만 대신 포탄의 외피가 얇아 철갑탄에 비해 생성되는 파편량은 많지만 개별 파편은 크기도 작고 가진 에너지량도 적어 관통력이 떨어지기 때문이었다. 군함 내부로 관통한 철갑탄이 무겁고 큰 파편을 만들어내야 내부 손상이 심해지고 포탄의 작렬화염이 다른 격실로도 흘러가서 연쇄유폭을 일으켜서 치명상을 줄 확률이 높아진다. 이러한 이유로 2차 대전기에 들어서자 반철갑탄은 사라지고 전함의 철갑탄은 일원화된다.

애초에 작약이 적다고 작약량에 비례해 피해량이 줄어들었다면 아이오와급에는 작약이 30kg 넘게 들어간 SHS탄을 운용할 수 있는 18인치 Mk.1 주포가 달렸을 것이다. 2차 대전기에 들어서자 미국 전함들뿐 아니라 유럽 전함들에도 작약량보다 관통력을 중시한 주포가 달리게 된다.[20]

부포는 미국 구축함의 주포이자 미국의 표준적인 양용포인 Mark 12 5인치(127mm) 38구경장 2연장 부포탑 10기를 탑재해서 총 20문을 탑재했다. 건조 당시에는 VT신관을 채용해서 대공용으로 유용하게 사용했으며, 대수상용으로도 사격통제시스템을 이용해서 부족하지 않게 써먹었다. 1980년대 개수 시에 부포탑 4기를 철거해서 부포 숫자가 12문으로 줄어들었는데, 이는 시대의 변화에 의해 부포로 대공방어가 불가능해졌고 미사일과 관련장비를 탑재할 공간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대공포의 경우에는 40mm 56구경장 보포스 대공포 80문을 4연장 포좌 형태로 장착했다. 대공포를 많이 장착한 이유는 태평양 전쟁 당시의 일본군의 카미카제 특공대 때문이었는데 이 덕에 태평양 전선에서 무모한 자살공격을 가해오는 일본군 항공기를 보다 수월하게 격추시킬 수 있었다. 대공기관포는 20mm 70구경장 오리콘 대공기관포 49문으로 M2 브라우닝 중기관총을 대신해서 장착되었다. 이는 장갑이 빈약한 일본 군용기를 상대로 활약하였으나 갈수록 대형화하는 항공기에 맞서기에는 약간 불충분하다고 판단되었다. 이들 대공포와 대공기관포는 1980년대 개수를 거치며 시대의 변화에 의해 더 이상 대공화력을 담당할 수 없었기에 모두 철거된다.

1980년대 개수를 통해 미사일과 전자장비를 갱신하였다. 순항 미사일은 BGM-109 토마호크 순항 미사일 32발, 대함 미사일은 RGM-84 하푼 대함 미사일 16발, CIWS팰렁스 20mm CIWS 4문을 장착해서 당시의 현대 군함의 기본적인 공격능력은 확보하였다. 하지만 배수량에 비해 매우 빈약하다는 이야기가 나오게 되는데 비용문제 등으로 인해 최소한의 개수인 1차 개수만 적용했기 때문이다. 종합하자면 건조 당시에는 대수상과 대공은 우수한 성능이었고 세월이 흘러서 대지상지원함이 된 상황에서도 기본적인 대수상 및 대공능력을 갖추었다.

참조

16"/50 (40.6 cm) Mark 7

워게이밍의 뉴저지함 https://www.youtube.com/watch?v=IxB9pErvVwo 소개 영상 4분 25초쯤에서 장전-사격 절차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볼 수 있다.

5.2. 레이더 및 전자장비

아이오와급 전함은 타국 전함에 비해 레이더와 전자장비, 사격통제장치가 충실한 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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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G레이더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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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G레이더의 PPI 화면 SG레이더의 화면부 및 조절부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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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PI와 A 스코프 화면 그림 PPI와 A 스코프 화면 표시 예제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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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크13 FC레이더 FC레이더 B스코프 화면 그림

대수상용으로는 SG레이더를, 대공용으로는 SK레이더를 장착했다. 대수상용 SG레이더가 탐지한 것을 PPI와 A스코프에 대략적인 광점의 크기와 움직임을 연속으로 표시하여 이걸 바탕으로 해석하여 각도, 방위, 거리 확인과 대형 함선인지 소형인지 알 수 있고, 주포탑의 Mark 38 사격제원시스템에 장착된 구형의 MK 3 Fire Control Radar보다 개량된 신형 MK 8 Fire Control Radar 및 이후의 MK 13 Fire Control Radar로 날씨와 주야간에 관계없이 레이더 화면으로 일제사격의 결과와 협차여부를 확인이 가능했다.

걸음마 단계이기는 했지만 레이더를 이용한 사격 관제기술을 전쟁 중에 계속 발전시켜나가며 실전에서 사용했다.
링크 1 링크 2 링크 3 링크 4 링크 5

혹자 중에는 광학장비보다 레이더조준이 주간전에서는 정확도가 떨어진다고 보는 사람이 있으나 사실이 아니다. 링크문서에 따르면 마크8 사격통제레이더의 Precision Sweep의 정확도는 0.1%+15야드라고 한다. 그러니까, 22000야드에서는 오차 37야드, 33000야드에서 48야드 정도이다. 야마토의 15.5미터 광학측거의의 30km에서의 오차가 대략 300미터(약 330야드)임을 생각하면 압도적으로 정확하다. 방위각 오차도 2밀에 불과하다. 또한 연막 혹은 흐린 날씨나 야간에도, 추가적인 오차가 있을지언정 악천후에도 기동한다. 그렇기에 미해군은 레이더조준을 주 시스템으로, 광학조준을 보조시스템으로 사용한 것이다.

http://www.eugeneleeslover.com/ENGINEERING/OP658_Fire_Control_Radar_Mark8.pdf

OPERATIONAL EXPERIENCE OF FAST BATTLESHIPS; WORLD WAR II, KOREA, VIETNAM
IOWA fired 40 rounds and NEW JERSEY 18 rounds at ranges of between 33,500 (30.6 km) and 39,000 yards (35.6 km). IOWA opened at 35,000yds (32 km) and ceased at 39,000yds (35.6 km). She fired 40 rounds HC in 8-gun salvos, straddling on the first salvo. NOWAKI altered course after the first salvo and the next two salvos were fired during this turn. After the third salvo landed, NOWAKI disappeared from radar and optics and the last two salvos went out in generated mode from the rangekeeper. Even so, both ships reported being able to see the splashes (but not NOWAKI) out to nearly 39,000 yards (35.6 km) on radar and visually (using optics, of course).

위의 언급에서는 Operation Hailstone을 시작해 트럭섬 공습 당시 전함 아이오와(IOWA)와 전함 뉴저지(NEW JERSEY)가 일본의 구축함 노와키를 레이더로 발견하고 레이더 조준사격을 실시한 적이 있다. 이때의 사거리는 35.6km라는 거리에서[21] 협차로 충분히 판단할 탄착점을 형성하였다라는 내용이 있다. 그런데 협차와 같은 위험한 상황에 노출된 노와키측 기록에 뉴저지가 쏜 것으로 보이는 포탄 3발이 노와키 오른쪽 300미터 거리에서 착탄하여 생긴 100미터 짜리 물기둥 말고는 협차라고 판명될 기록이 없다. 그러나 레이더 하나 없는 그 구축함이 모든 포탄을 발견해서 보고했다고 장담할 수 없다. 근거리에 포탄이 떨어졌다면 굉음이 들리겠지만 회피기동 중인 구축함이 모든 포탄을 파악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따라서 이 경우는 아이오와와 뉴저지의 기록이 노와키의 기록보다 더 신뢰할 수 있다고 볼 수 있다.

당시 아이오와 및 뉴저지가 포함된 함대가 연습순양함 카토리를 격침했던 당시 전함 아이오와는 16인치 고폭탄 46발, 5인치 고폭탄 124발을 발사했고 4번째 일제 사격이 끝난 뒤 카토리가 기울기 시작했고 그렇게 11분간 아이오와 및 순양함의 사격에 노출된 카토리는 침몰했는데 이때 아이오와 및 순양함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주포 및 부포를 쏴서 얼마나 명중탄을 내었는지 불확실하며 16인치 탄에 의한 명중은 언급되어 있지 않은 상황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당시 카토리는 공습에 손상을 입었으며, 아이오와 및 순양함과 구축함들은 13~17km까지 접근한 상황이었고, 카토리가 침몰 직전에 발사한 어뢰가 아이오와의 함미를 지나갈 정도였다고 한다. 외부링크(영문)

아이오와의 전투보고서(action and Operational Reports)에는 4번째 사격을 끝낸 이후 카토리가 기울기 시작했다는 언급이 있다. 함께 포격에 참여한 다른 순양함들의 보고서에도 맑은 날씨에 매우 가까운 거리라 육안과 레이더 양쪽 모두로 아군의 탄착관측이 매우 용이하다는 언급이 있으나, 아이오와의 명중탄에 대한 언급은 없다(보고해야 할 이유가 없으니까). 제7전함전대의 사령관 윌리스 A. 리 제독[22]은 당시 아이오와의 사격에 대해 '포격 자체는 완벽했다(8번의 사격이 모두 협차를 기록했다.)'라고 코멘트 했다. 주포명중탄이 몇 발인지는 불확실하나 일단 포격전에 참여해 격침한 것은 사실이기 때문에 카토리는 전쟁 중 아이오와의 유일한 대함 격침 전과로 기록돼있다.[23] 아이오와와 같이 전투에 참여한 뉴저지의 경우 구축함 한 척과 무장 트롤선 한 척을 격침한 전과를 가지고 있으며 아이오와처럼 다른 함선과 함께 포격에 참여하였고 이때는 주포 사용 없이 부포를 사용했고 전쟁 중 뉴저지의 유일한 대함 격침 전과였다.[24]

아이오와#1와 뉴저지#2는 1944년 1월 2일에서야 태평양 방면으로 전속되었으며, 1944년 1월 29일에 마셜 제도 공략 시 대공방어지원으로 취역 후 처음으로 훈련, 전선 배치만이 아닌 실제 작전에 참여했고 카토리와 전투할 시점에서는 작전 참여 후 20여 일이 지난 첫 대수상함 전투였는데, 적 수상함에 대한 첫 실전 포격은 그럭저럭 나쁘진 않았으나 소형함에 대한 주포탄 포격이라 명중탄을 제대로 파악할 수 없는 건 아쉬운 점이다 하겠다. 이후 여러 전역과 해전에 참전했지만, 적 수상함대와의 직접적인 전투보단 지상 포격이나 대공 방어에 주로 동원되었고, 전후 개량된 상태에서는 지상 포격만 이루어져 실전에서 실질적인 대수상함전의 명중률을 판단하기에는 자료가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뭐 대전 당시에는 적국 일본 측이 함대결전사상 때문에 전함을 구석에 처박아두느라, 그리고 전후에는 사실상 가성비가 똥망이 되어버려서 그런 거라 아이오와 탓만 하기도 그렇다.

부포의 경우 사격통제장치 Mark 37의 통제하에 VT신관의 도움을 받는 대공능력은 물론이거니와 대수상 능력에서 빠른 포탑 구동과 발사 속도를 바탕으로 스펙상 더 뛰어난 타국의 함포와 비슷한 성능을 내는 데 성공했다. 중거리 대공화기인 40mm 보포스의 경우에도 Mark 14 자이로 조준기가 장착된 Mark 51 사격통제장치와의 싱크로 기능으로 충분한 능력을 발휘했다.

1952년부터 레이더의 교체를 주기적으로 실시해서 최종적으로는 AN/SPS-49 대공 및 수색레이더, AN/SPS-67 추적레이더를 장착했다. 1980년대의 개수에서는 SWG-1 화력통제시스템을 장착하고, SWG-2, SWG-3 화력통제시스템도 추가함으로서 토마호크와 하푼을 발사할 수 있게 되었다. 이외에도 전자전 및 어뢰 대응책으로 AN/SLQ-32(V), AN/SLQ-25 닉시, Mark 36 SRBOC을 장착하고 통신실도 개량했다. 하지만 이지스 레이더가 없고, 해군 전술 데이터 시스템을 장착하지 못하는 등 현대적인 방공 능력과는 거리가 멀었고, 불충분한 개함방공과 제한적인 원거리 대공방어 능력만 보유하는 선에서 개량이 종료되었다.

5.3. 방어력

파일:external/ncc.phinf.naver.net/6-2.jpg
아이오와급 전함 사령탑 장갑의 두께를 보여주는 사진.

네바다급 전함에서 시도되어 이어온 집중방어 구조를 채택하고 있으며 기본적으로 사우스다코타급 전함의 방어체계를 준용하였고 사령탑 장갑같이 두께가 약간 는 곳도 있었다. 사우스다코타급이 달성한 대응방어력을 그대로 유지했기에 자함의 16인치 SHS 마크8 철갑탄이 아닌 16인치 마크5 철갑탄에 대한 대응방어력을 갖추었고 방어력은 실제로 취역한 미 해군 전함 중에서 공동 1위나 근소한 차로 2위라 할 수 있었다.

전함의 방어력 판정의 바로미터인 현측장갑구조는 현측장갑이 19도 경사각으로 경사장갑으로 내장된 구조다. 우선 도면상에서 De-capping plate라고 되어있는 부분은 1.5인치(38mm)의 두께를 가지며 STS장갑재로 제작되었다. 내부 주장갑의 두께는 A클래스 12.1인치(307mm), 경사도는 19도이며, 22mm STS장갑재가 추가로 결합해 있다. 내부 수선하 주장갑은 B클래스 12.1인치, 경사도 19도에 22mm STS장갑재가 추가로 결합해 있고 선저하부까지 내려가면서 1.6인치까지 점점 얇아지면서 어뢰방어구조를 겸하고 있다. 측면 장갑 방호력은 17.3인치(439mm) 수준이라고 한다.[25]

대낙각탄이나 폭탄을 방어하는 갑판장갑 구조는 3부분으로 나누어진다. 상갑판의 밤 덱(bomb deck)이라는 부분과 중갑판의 아머 덱 (armor deck), 그리고 그 아래 스플린터 덱 (splinter deck) 이라는 곳이 갑판장갑이라고 보면 된다. 우선 밤 덱은 1.5인치 STS장갑, 아머 덱은 4.75인치 B클래스 장갑에 1.25인치 STS장갑이 적층된 구조였다. 갑판은 추가적으로 특수한 티크목재로 덮혀 적절히 밀폐되어 있어 7.5인치(190mm)이상의 갑판방호력을 가진다고 한다. 참조 최하단의 스플린터 덱은 16mm STS장갑이며, 그 아래 3층갑판으로 표기된 하갑판은 최종적으로 기관실을 방어하기 위해 13mm, 16mm STS장갑을 보유하며 주포 탄약고는 25mm STS장갑이었다. 1번, 2번함 벌크헤드는 287mm이었고 3번함 부터 6번함까지는 368mm이었다.

기초적인 구조는 당시의 전함들이 채용했던 전형적인 집중방어구조와 비슷햇지만 주장갑을 경사장갑으로 유지하기 위해 현측에 De-capping plate를 추가했고, 주갑판장갑 위에 밤 덱을 두어서 당시의 전함용 철갑탄 구조인 피모철갑탄 및 통상형 폭탄의 방어를 추가했다는 점이 특이점이다. 이런 식의 장갑 구성은 철갑탄의 피모를 미리 벗겨지게 함으로써 포탄이 주장갑을 관통할 수 있는 능력을 떨어뜨렸다.

대응방어력은 16인치 45구경장 MK 6에서 AP Mark 5(포구초속 768mps, 중량 1,016kg)를 사용했을 경우 17,600야드에서 31,200야드까지(16.1 ~ 28.5km), 16인치 50구경장 MK 7에서 AP Mark 5(포구초속 823mps, 중량 1,016kg)를 사용했을 경우 21,700야드에서 32,100야드(19.8~29.3km), 16인치 45구경장 MK 6에서 사용하는 AP Mark 8(포구초속 701mps, 중량 1,225kg)에 대해서는 20,400야드에서 26,700야드(18.7~24.4km), 16인치 50구경장 MK 7에서 사용하는 AP Mark 8(포구초속 762 mps, 중량 1,225kg)에 대해는 23,600야드에서 27,400야드까지(21.6 ~ 25km)의 대응방어력을 가졌다.[26]

참고로 사우스다코타급의 대응방어력은 16인치 45구경장 MK 5에서 사용하는 AP Mark 5(포구초속 768mps, 중량 1,016kg)에 대해서는 17,700야드에서 30,900야드까지(16.2 ~ 28.3km)의 대응방어를 가지며 16인치 45구경장 MK 6에서 사용하는 AP Mark 8(포구초속 701mps, 중량 1,225kg)에 대해서는 20,500야드에서 26,400야드까지(18.7 ~ 24.1km)의 대응방어를 가지고 있었다.[27] 나가토가 사용한 철갑탄 중량 1,020kg, 포구초속 806 mps였고 넬슨은 중량 929kg, 포구초속 788 mps, 계획으로만 끝난 영국의 16인치급 전함이었던 라이온은 중량 1,080kg, 포구초속 747 mps이었다.

16인치 마크5 철갑탄에는 대응방어력을 갖추었지만 자함의 16인치 마크8 철갑탄에는 대응방어력이 부족했던 이유는 자함 함포가 너무 강했기 때문이다. 아이오와급이 사용하는 16인치 초중량탄에 대한 방어력을 제대로 확보하려면 야마토급 전함과 비등할 수준으로 장갑을 추가로 붙여야 하는데 이렇게 되면 워싱턴 해군 군축조약의 기존 배수량 제한인 기준배수량 3만 5천 톤에서 에스컬레이터 규정을 적용해서 1만 톤 올린 4만 5천 톤으론 방어와 속도를 둘 다 확보하기 힘들었다. 1940년에 나온 길이 298.7미터 속도 33노트, 16인치 9문에 16인치 SHS 대응방어력을 갖춘 BB-65-2 설계안의 기준배수량이 5만 3500톤이었다는 점을 참고.

수중방어력에 대해서는 사우스다코타급 전함과 동일했다. 원래 1910년대 말의 테네시부터 노스캐롤라이나에 이르기까지 어뢰방어구획을 5개의 격실로 나누고 각각의 격실에 빈 곳과 액체(주로 중유)를 번갈아 가며 배치하는 어뢰방어구획을 채택하였다. 특징은 비교적 얇고 탄성이 높은 격벽을 채택하여 하부에서 작렬한 어뢰나 기뢰 등의 폭발력이 빈 곳과 액체, 격벽(격벽이 우그러들면서 폭발력을 흡수) 등을 차례차례 통과하면서 점차 폭발력을 흡수하도록 하였다. 기존 어뢰방어구획은 실제로 진주만 공습에서도 위력을 발휘했고, 해당 구조를 채택하고 있던 전함 캘리포니아와 웨스트버지니아의 경우 수중방어체계를 관통한 어뢰가 하나도 없을 정도였다. 그런데도 침수가 된 이유는 측면장갑과 수중방어체계 사이의 구간이 반복된 어뢰의 타격으로 인해 금이 갔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사우스다코타급 전함부터는 이 구조를 버리고 경사진 현측장갑이 그대로 함저까지 연장되어 수중탄이나 어뢰와 기뢰 방어를 겸하는 구조를 채택하였다. 구조상 경사장갑과 5중 격벽을 겸하는 것이 곤란했으며, 설계국이 실시한 1938년의 수조 실험에서는 하부까지 연장된 현측장갑이 그 자신은 우그러들지 않은 채 어뢰의 폭발력을 상부로 확산시키는 결과가 나타나, 이전의 얇고 탄성이 높은 격벽 대신 연장된 현측장갑(탄성은 낮지만 강도는 보다 높은)을 배치함으로써 안쪽의 격벽은 오히려 더 안전해질 것으로 보았다. 설계국은 이런 설계를 통해 수중방어력을 증강하는 한편, 넓은 공간도 확보하고 중량도 다소 감량할 수 있을 것으로 예측했기에 어뢰방어구획의 격실도 5개에서 4개로 감축했고 구획 자체의 폭도 5.64m에서 5.46m로 축소했다.

그러나 1939년에 이뤄진 비슷한 실험에서는 이 신형구조가 이전보다 덜 효과적이라는 결과가 나왔고 격실에 액체를 넣거나 비워둘 곳을 바꾸고 기계실 내부구획을 수정했다. 그런데 전쟁 중 기존의 어뢰방어구획을 갖춘 노스캐롤라이나가 일본군 잠수함이 쏜 잠수함용 산소어뢰 1발에 피격된 후 진주만에서 1개월 동안 수리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했다. 미국 해군 당국은 신형전함 전반의 수중방어력에 대해 전면적으로 재조사를 했으며, 여기서는 기존의 문제점인 줄어든 격실 수나 구획의 폭 외에도 현측장갑 하단부와 최종격벽간의 거리가 아래로 내려올수록 줄어든다는 점이 지적되었다.

하지만, 구조를 고치게 되면 아이오와급 전함의 속도가 줄어드는 문제가 있어서 그대로 진행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1942년도에 건조가 시작된 일리노이와 켄터키는 구조개량이 이루어져 수중방어력이 개선될 거로 예상되었지만, 어느 함선도 완성되지 못했고 속도가 줄어드는 문제가 생길 정도로 고쳤다는 언급은 없었다. 결국, 이 문제는 몬태나급 전함의 설계에서야 수정된다. 다행히도 사우스다코타급 전함과 아이오와급 전함은 실전에서 어뢰 공격을 받은 적이 있지만 피격당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5.4. 속력

순양함이나 순양전함, 고속전함을 추격섬멸하는 것이 설계목표 중 하나였으므로 과장하자면 사우스다코타급 전함보다 1만 톤 많은 배수량이 거의 모두 속력에 투자되었다고 할 정도다.

밥콕 & 윌콕 (Babcock & Wilcox) M-Type 보일러 8기는 468 °C에서 42kgf/㎠의 압력을 가지는 증기를 만들어낼 수 있고, 이를 제너럴 일렉트릭 기어 증기터빈 4기를 통해 동력으로 만들면 평상시 212,000마력(158,000kW), 과부하시 254,000마력이 가능하다고 한다. 이 출력은 21세기의 기준으로 니미츠급 항공모함 등의 슈퍼캐리어와 SS 유나이티드 스테이츠[28]를 제외한 모든 함선[29]의 출력을 능가했다고 한다.

배수량이 51,000롱톤(52,000미터톤)일 때 과부하를 걸어 최대출력으로 높이면 속력이 35.4노트까지 가능하다고 보았으며, 일선에서 퇴역하여 보관 중이던 BB-62 뉴저지를 베트남 전쟁에 투입하려고 재취역 준비에 들어갔는데, 1968년 3월에 있었던 시험운항에서 BB-62 뉴저지의 속력이 35.2노트까지 도달했다고 한다.

하지만 실제 운항에서 35노트대의 속력을 내기는 현실적으로는 힘들다고 할 수 있으며, 만재배수량 시 속력은 30노트대, 과부하를 걸면 31~32노트대였다고 한다. 저 정도면 니미츠급이 전속력으로 항진해도 무리 없이 동행하는 게 가능했다.

항속거리 측면에서는 노스캐롤라이나급(15노트, 30,220km)과 사우스다코타급(15노트, 31,484km)보다 낮아지긴 했지만 15노트(27.8km/h)일 때 14,890마일 (23,960km), 20노트 (37km/h)일 때 11,700마일 (18,820km)을 항해 가능하므로 다른 전함들을 크게 능가한다. 심지어 32노트의 속도로도 8889.6km를 항해할 수 있으므로 일단 달리기 시작하면 다른 전함으로는 쫓아오지 못하게 되며 아이오와급이 해역 방어망을 돌파하기라도 하면 항공모함을 동원하지 않는 한 대응하기가 곤란해진다.

그리고 속력이 순양함급 고속을 내는 정규항모와 거의 비슷하기 때문에 항모가 전속 항행을 할 때도 뒤처지지 않고 따라잡을 수 있었다. 이 능력은 아이오와급을 제외하면 거의 불가능한 능력으로, 비슷한 묘기를 부리고 싶으면 최대 속력이 30노트를 넘는 됭케르크급이나 샤른호르스트급이라도 데려와야 한다. 물론 아이오와급의 장갑과 무장은 저 둘에 비할 바가 아니다.

전장은 270.43m로 세계 최대의 전함인 야마토급 전함보다 약 7미터 정도 더 길다. 고속성능을 더 끌어내기 위해 후방 선체에는 트윈 스케그(Twin Skeg), 함수는 구상함수(Bulbous Bow)라는 선형을 도입했다. 하지만 긴 전장과 달리 폭은 넓지가 않다. 미국의 전함은 전쟁 중에 벌지를 추가하여 전폭이 35m대까지 늘어난 일부 구형 전함을 빼고는 전폭을 33m대로 유지했는데 파나마 운하를 통과하기 위해 전폭을 33m로 제한해야 했기 때문이다.

아이오와급은 거의 운하 가장자리에 닿을까 말까 할 정도라 파나마 운하 출입 시 별도의 안내선과 안내차량을 운하의 양측에 대동하고 기어가는 속도로 간신히 운하를 통과했다. 유일하게 페이퍼 플랜몬태나급 전함만은 파나마 운하 이용을 포기하고 취역 시 정해지는 태평양 함대나 대서양 함대 소속으로 복무할 예정이었기에 33m의 선체 폭 제한에서 벗어난 36m였다. 원래 계획했을 때에는 파나마 외 다른 지역에 신형 운하를 건축한다는 가정하에 만들어졌다.

그리고 전장이 길었지만, 파나맥스(Panamax, 파나마 운하에 통과 가능한 배) 때문에 전방 선체의 형상은 전폭의 감소가 자연스럽지 않은 병목 현상을 띄게 되었는데, 세장비가 큰 것에 비해서는 비교적 비효율적이었다.[30] 다시 말해 함수 부분의 부피가 적어 능파성이 낮았다는 이야기로, 이는 Sea worthiness를 낮추었고 속도에도 영향을 주게 된다. 이렇게 일반적이지 않은 함수 형상으로 설계된 것은 부피를 최대한 함 중앙부에 집중하여 부력을 중앙부에 몰아주기 위해서였다.[31] 이 전장 대비 폭이 좁아서 능파성 개선이 있었음에도 악천후 항해성능과 포격 시의 안정성은 저 크기 대에서 다소 떨어졌다고 한다.

그리고 이 전장 대비 폭 문제로 모델링할 당시에는 최고속력 기준으로 1400야드가 넘어가는 선회반경을 가질 것으로 예상되었으나, 만들어서 측정해보니 30노트 기준 800야드(약 740미터)정도로 동속력 기준 미국의 구축함들보다도(섬너급 제외) 선회반경이 좁다. 극단적인 비율을 가진 이 전함에 가지는 편견을 깨버리는 수치라 하겠다. 이러한 고속성능과 기동성 덕분에 아이오와급은 동등한 공방능력을 가진 사우스다코타급이 퇴역하는 와중에도 해군에 남아있을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너무 오랜 기간 사용되었고 숱한 취역과 퇴역을 반복했으며 동력기관이 대규모 개수나 교체를 받지 못했기 때문에 퇴역할 때쯤 되면 동력기관과 선체 노후화로 인해 속력 저하가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기념함이 된 현재도 가끔 자력 항해가 가능할 정도로 아직 이동능력을 완전히 상실하지는 않았다.

6. 이상향

순양전함이라는 함종을 최초로 만들어낸 피셔와 연관지어서 "피셔가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순양전함" 이라고도 농담조로 말해지기도 한다. 그도 그럴 게 피셔가 순양전함이라는 개념을 제안할 때는 전함과 동등한 화력에, 장갑순양함과 동등한 속력을 겸비한 군함을 의미하는 말이었는데, 아이오와급의 정규출력시 속도는 33노트로 웬만한 당대 중순양함과 동등하거나 약간 처지는 속도다. 게다가 화력은 미국 신전함의 표준무장인 16인치포 9문[32]이고 방어력도 타국 16인치급 주포에 대응하는 방어가 가능했으니 "순양전함의 이상향"이라고 해도 할 말이 없다. 물론 아이오와급은 23,600야드 이상 거리에서 현측으로 떨어지거나 27,400야드 이하로 갑판에 떨어지는 탄 이외에는 자함의 포탄에 대한 대응방어가 안 된다. 즉 23,600야드 이하로는 수선대 주장갑이 관통당하며 27,400야드 밖에서는 갑판이 뚫린다. 하지만 위에 언급된 결과를 가져오는 16인치 초중량탄은 미국만 사용했고, 통상적인 16인치 철갑탄에 대해서는 Immunity Zone이 있어 방어가 가능했기 때문에 엄격한 대응방어의 기준에는 못 미치지만 보통의 순양전함처럼 완전히 대응방어가 포기된 것과는 비교할 수 없다. 물론 이러한 아이오와급에게 기술계보적으로 더 어울리는 급수는 고속전함이다. 애초에 피셔 제독도 시대의 한계상 속력을 취한 대신 방어력을 포기한 것이며 피셔 제독이 궁극적으로 원한 전함은 고속전함이었다.

이렇게 공격력과 방어력이 충실하면서도 33노트라는 속도와 장대한 항속거리를 보유했다는 점 자체가 충분히 두고두고 자랑할 만한 점이다. 30노트 이상 고속 항해 시 고속성능을 내기 위해 도입된 트윈 스케그(Twin Skeg)라는 선체 형상으로 인한 것으로 보이는 이상 진동이 발생하여 포격에 심각한 지장을 주었다는 소리가 있지만, 지장이 있어 개량에 들어갔던 함선은 노스캐롤라이나급이었고 사우스다코타급은 지장을 줄 정도는 아니었으며 아이오와급에서는 추진계통 부품의 마모에 진동이 있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7. 아이오와급 전함이 건조된 배경

예전에 일본에서 나온 '30노트의 고속을 내는 공고가 직접적인 위협이 되므로 대항마로 아이오와를 만들었다.'라는 속설이 국내에서 논란이 되었었다. 이 문단은 이 논쟁에 대한 결론을 위해 만들어진 문단이다.[33]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아이오와를 기획할 때 공고뿐 아니라 적국의 신형 전함과 순양함을 '둘 다 상대'하기 위해 33노트 정규전함으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전쟁 기획국의 국장인 로버트 L. 곰리 제독은, 새 45,000톤 전함은 일본군 공고급 셋을 상대해야 하지만, 새로운 일본군 전함도 당연히 상대해야 한다고 여겼다.[34] 이 같은 발언은 아이오와급이 일본의 신전함을 상대할 만큼의 위력을 갖추어야 한다는 뜻이다. 당시 일본의 신전함(야마토급)에 대해서는 이미 16인치 포를 장비하고 조약에 얽매이지 않은 강력한 전함이라는 정보를 입수하였으므로[35] 신전함에 대항할 수 있는 능력이라면 공고나 순양함들을 한정 지어서 보기에는 힘들다.

그리고 당시 미국은 일본의 신전함인 야마토급에 대한 정보를 입수하고 있었지만 세부적인 제원에 대해서는 확신하지는 못한 상태였다. 이 신전함이 45,000 톤급에 16인치 포라는 정보도 들어왔으나 실제 미 해군 정보국(ONI)에서는 35,000 톤급 정도의 전함으로 판단했다. 심지어 한참 전쟁이 지속되던 중이던 1942년 10월까지도 35,000 톤급에 16 인치 포를 장비했다고 생각한 정도였다.출처 [36] 그러나 이 신전함은 런던 해군 군축조약에 얽매이지 않은 전함이 될 것은 틀림없다는 정보도 입수하였으므로 미국 입장에서는 이에 대한 대비를 세우지 않을 수 없었다.

아이오와급의 시안은 세 가지가 있었다. 사우스다코타의 27 노트를 유지하면서 장갑을 강화하는 첫 번째 안[37], 35 노트를 내면서 순양함킬러를 담당하는 안[38], 그리고 32.5 노트(후에 33 노트)로 낮추는 대신 순양함과 전함 둘 다 상대가능하게 하는 안.[39] 세 번째 안이 선택되면서 순양함의 속력을 따라가면서 전함을 상대할 수 있는 양용성을 가지게되었다. 다만, 18인치와 16''/50를 비교해서 선택한것으로 보아 순양함보다는 전함을 상대하는 데 방점을 두었다고 보는게 옳다. 안 써서 재고가 많이 남아있다는 점도 있지만, 2인치나 차이나는 18인치와 비교할 함포를 선택했다는 것 자체가 대 전함 전투에 좀 더 무게를 두었다는 증거이다.[40] 참고로 16인치 50구경장의 관통력은 야마토의 것과 맞먹는다. navweaps의 해당 함포 문서에서 보면 1927-28년과 38년에 연구했으나(런던 조약 에스컬레이터 조항에 만족하지 않아서, 아이오와에 아예 18인치를 달아보려는 시도도 했었다.) 최종적으로 18 인치 포를 거절한 이유가 나오는데, 그 이유로 과도한 중량과 크게 떨어지는 포신 수명, 초장거리 사격 시를 빼면 충분한 낙각이 나오지 않아 갑판장갑 관통력이 떨어지는 것을 들었다. 50 구경장은 45 구경장에 비해 같은 거리의 갑판장갑 관통력이 줄어들었지만 18 인치보단 사정이 훨씬 낫다.

그러므로 우선순위는 신전함을 위시한 전함군과 공고급, 그리고 혹시 모를 고속의 순양함이 상대라고 보는 것이 옳다. 물론 예상과 달리 (신)전함이나 순양함들과 교전할 일은 거의 없었으나 대공능력과 속력은 정규항모를 호위하기에 딱 맞았다.

이러한 사실을 반증하는 것처럼 보이는 구절이 미 해군 협회 출판사(US Naval Institute Press)에서 1985년에 출판된 U.S. Battleship ; AN ILLUSTRATED DESIGN HISTORY# 의 아이오와급 전함 항목의 항목 307p에는 이러한 구절이 있다.
(전략) that would attract Japanese cruiser-carrier attacks. For its part, the U.S. 21-knot battle force would be unable to bring these Japanese task forces to battle. Detached carriers might have a chance, but their cruiser escorts would be unable the to defeat the three Japanese Kongo-class battle cruiser, which might well be detached from the Japanese battle force as cover for the lighter unit. This actually happened in 1941. By 1939 it was also argued that fast-striking groups might be needed merely to bring the Japanese fleet to battle.*
As the story of the North Carolina show, these were not new idea. The C&R design files show a June 1936 study of a 33-knot, 35,000-ton battleship based on Scheme XVA. It appeared that 191,000SHP would be needed at a waterline length of 788feet. One triple 14-inch turret would have to be sacrificed, and the immune zone (against 14-inch fire) would shrink in total width from 11,000 to about 9,500 yards. Another 10,000 tons, and more sophisticated engines, bought a great deal: the Iowa carried nine much havier guns and was much better protected than the North Carolinas.
The new factor in 1938 was the tonnage escalator clause of the London Treaty. the gun-calibre escalator had already transformed th North Carolinas. Rumors of Japanese uper-battleships first began to circulate in November 1937. (후략)
(전략) 미국의 21노트 전함전력은 일본의 기동부대와 교전을 할 수 없을 것이다. 독립적으로 움직이는 항공모함들에게 (일본 기동부대와 교전할) 기회가 있을지도 모르지만, 순양함 호송단은 3척의 일본 공고급 순양전함을 이길 수가 없을 것이며, 공고급은 (미국의) 비교적 빈약한 부대를 상대하기 위해, 일본 전함전력에서 이탈해 움직일지도 모른다. 이는 1941년에 실제로 일어났다. 1939년에 일본군 함대를 상대하기 위해 고속타격부대가 필요하다는 논쟁이 있었다.*
노스 캐롤라이나 등장의 이야기때처럼, 이는 새로운 아이디어는 아니었다. C&R 설계파일들은 XVA 계획에서 1936년 33노트의 35,000톤급 전함 연구를 보여준다. 흘수선 788피트에 191000마력이 필요할것으로 나타났다. 14인치 3연장 주포 하나가 희생되었으며, 14인치 대응방어구간이 11000야드에서 9500야드 구간으로 쪼그라들었다. 1만톤을 더 추가하고 더 만족스러운 엔진을 통해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을 수 있었다 : 아이오와는 아홉개의 훨씬 무거운 포와 노스캐롤라이나급보다 훨씬 나은 방호력을 가지게 되었다.
(후략)
— U.S. Battleship ; AN ILLUSTRATED DESIGN HISTORY, 307p 원문

사실 여기서 주안점이 되는 건 어디까지나 '속력'이었다. 공고급은 속력이 빠른 편이라는 점을 제외하면 장갑이나 화력 등 모든 부분에서 시대에 뒤처진 낡은 선박이었기 때문에 경계할 만한 점은 속력이었다.[41] 게다가 당시 미국에서는 공고의 속력이 30노트라는 점을 모르고 있었다. 아이오와가 개발될 당시 시점에서는 미국은 공고의 속력이 26노트라고 판단하고 있었고, 출처 1940년 12월에 나온 ONI222에서 공고를 26노트라고 기록하고 있다. 이는 저 인용문의 별을 넣은 부분의 각주로서도 확인되는 내용이다.[42] 애초에 미국은 아이오와급을 저런 순양전함 수준의 물건으로 만들 생각이 전혀 없었다. 시안 중 35노트 속력의 순양함 킬러 계획이 있긴 했지만 애초에 그 시안은 위에서 보는 것처럼 32.5노트 계획에 밀렸다.[43] 두 계획의 속력이 같다는 것에서 비교한 것이지 따지고보면 아이오와는 단순히 순양함킬러만 하는 녀석이 아니니 당연히 저 계획의 직계후손이 아니다. 순양함정도나 상대 가능한 능력과 전함과 순양함 둘 다 상대 가능한 능력의 차가 가지는 의미는 다들 알 것이다.

게다가, 아이오와의 시안은 35000톤급 설계와 관련이 없다. 32.5노트 시안은 순양함킬러 설계에서 파생되었는데, 이는 38년 1월에 panamax인 상태로 무제한 배수량인 함선 연구 계획이다.[44] 또한 escalator clause가 발동하기 전에 이미 이 기획의 초기연구를 마친 상태로 35000톤급 계획이었으나 에스컬레이터 조항 발동 후 45000톤급 계획이 되었다는 설은 부정된다.[45] 무제한 계획에서 파생한 결과 35000톤은커녕 53000톤에서 깎고 깎아 45000톤으로 만들어야했다.[46]

이러한 이유로 아이오와급은 공고급이나 특정함만을 목표로 한정하여 개발되었다고 보기는 어려우며 공고급과 일본의 신전함 양쪽 모두에 대응할 목적으로 만들어졌다고 볼 수 있다. 즉, 공고급에 대응하기 위해서 만들어졌다는 주장은 틀린 말이지만 공고급은 안중에도 없었다는 말 또한 틀린 이야기. 언급된 일본의 신전함(야마토)에 대한 위협이 남아 있었으므로, 직접적으로 야마토급의 대응함이라고는 할 수 없겠지만 적어도 이 신전함을 염두에 두고 개발되었다는 증언이 있다.출처

8. 취역과 퇴역

초도함 아이오와가 1943년 2월부터 취역했으며 이후 태평양 전쟁에서 활동 후 잠시 퇴역했다가 6.25 전쟁에 다시 투입된 뒤에 완전히 퇴역했다. 하지만 미국 해병대의 강력한 요청으로 베트남 전쟁에 임시로 재취역해서 BB-62 뉴저지[47]가 전쟁 중에 주포탄 5,688발, 부포탄 14,891발을 발사했다고 한다.[48]

베트남 전쟁이 끝난 뒤에는 다시 퇴역했지만 1970년대 말에 소련이 키로프급 순양함을 취역시키면서 미 정치권에 큰 충격을 주었다. 대소 강경책을 공약하여 집권한 로널드 레이건은 소련에 대응하기 위해 미 해군 전투함정을 600척으로 증강하겠다는 '600척 함대 구상'을 발표했고, 키로프급에 1:1로 대항 가능한 함정의 취역도 요구했다. 미 해군의 입장에서 신규 함정을 건조하는 것보다는 아이오와급의 재취역 쪽이 훨씬 더 현실적으로 평가되었으며, 베트남에서 화력지원을 톡톡히 받은 해병대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으면서 1980년대에 각종 근대화 개수를 받은 아이오와급이 다시 현역에 복귀했다.

이렇게 아이오와급이 취역과 퇴역을 반복한 이유는 빠른 속도와 강력한 무장 및 장갑을 갖추었기 때문에 해안요새요새포해안포 사격등의 방해를 씹어버리고 적국의 해안선을 전함의 함포로 포격해서 상륙부대를 지원하는 용도로는 매우 적합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대함 미사일을 맞더라도 강력한 장갑 덕분에 1-2발 정도로 큰 타격을 입지는 않을 것이라는 계산도 있었다. 16인치 주포를 가진 다른 미국의 전함도 모스볼 상태로 1960년대까지 보관되어 있었으나 아이오와급보다 속도가 느려서 아이오와급 대신 사용하기에는 약간 부족한 이유로 인해 결국 부활하지 못하고 스크랩되거나 기념함이 되었다.

9. 개조 계획


원래 아이오와급 전함들은 취역 당시 가장 최신의 기술을 집약한 함선이었다. 하지만 시대의 흐름에 따라 현대전에 걸맞도록 전함들을 개조하는 계획이 세워졌으며 당연하게도 이 과정에서 구식무장과 시설을 철거하고 남은 공간에 새로운 무장과 시설을 채워넣는 과정이 필요했다. 이런 과정에서 가장 큰 희생물로 낙점된 것이 16인치 함포였으며, 그 이유는 미사일이 함선의 주무장이 된 시기에 구식 주포의 39km라는 최대사거리는 너무나도 큰 핸디캡이었고, 주포탑과 바벳이 차지하는 공간과 배수량이 엄청나기 때문에 1기의 주포탑만 줄여도 개수를 위한 공간과 배수량을 많이 확보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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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굴러스 2 미사일 발사 시험을 진행하는 볼티모어급 순양함 CA-133 톨레도.

1958년엔 핵 만능주의에 맞춰서 레굴러스 2 핵 크루즈 미사일과 대잠미사일, 대공미사일만 남기고 16인치 함포를 모조리 철거하는 계획안도 만들어졌었다. 사진은 레굴러스 2의 발사 실험 모습이다. 그러나 이 개조는 완전히 적용하기엔 현재가치로 15억 달러에 이르는 엄청난 개조비용을 감당하기 어렵고, 그에 비해 수천 명의 승무원을 데리고 고작 4곳을 핵타격할 수 있는 타격능력, 무엇보다 전략원잠 조지 워싱턴급의 등장으로 인해 취소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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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엔 강습상륙함의 기능을 갖출 수 있도록 개조가 계획되었다. 후방의 3연장 주포탑 한 기가 철거되고 그곳으로 격납고를 만들고 비행갑판을 설치해서 30대의 헬리콥터를 수용하게 할 계획이었으며, 전차와 다른 차량들을 상륙시킬 수 있는 14개의 상륙정을 싣고 다닐 수 있고 1800명의 해병을 수송하려했다. 그러나 이는 당시 파나마 운하의 통행을 불가하게 하는데다[49] 차라리 구형항모를 개조하는 것이 싸게 먹히기 때문에 16인치 포의 지원사격의 장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취소되었다. 아이오와급 말고도 노스캐롤라이나급 및 사우스다코타급도 3번 포탑을 철거하고 엔진을 넣어 31노트까지 속도를 올리고 헬기 수용하는 개조안이 있었는데 이것 역시 예산이 너무 들어서 폐기 되었다.

이후 1980년대경에 다시 아이오와급이 취역하면서 개조계획이 세워진다. 아이오와급의 개조계획은 총 3단계의 계획으로 세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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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적으로 개조비용이 1982년 기준으로 한 척당 적어도 2억 달러, 장기 보존 상태에서 복귀시키는 데만도 5천만 달러가 들며 개조 비용까지 합하면 최대로 잡는다면 10억 달러도 충분히 웃돈다는 계산이 나왔다. 이 정도 돈이 들어간다면 차라리 현대식 함선을 따로 취역시키는 것이 더 나을 지경이어서, 아이오와급의 재취역 당시 미국 의회에서는 '현대식 전투함으로 떨어지지 않는다면' 이라는 전제를 붙였지만 아무래도 돈 문제 때문에 4척 모두 1단계 개조만으로 끝났고 걸프전 이후 모두 퇴역하게 된다.

10. 퇴역

개조 계획에 따른 개수로 부포가 20문에서 12문으로 줄었지만 CIWS하푼, 토마호크가 추가되었기에 전체적인 전투력은 오히려 상승했다. 사실 위의 계획에서 나온 것처럼 미 해군은 최종적으로는 함재기까지 탑재하는 항공전함을 최종 개수를 통해서 완성시키려고 했지만 1단계 개수 비용이 이미 이지스 구축함 1척과 맞먹었기에 '현대전에서 가치를 상실한 전함을 함대에 남겨둘 필요가 있는가?'하는 의문이 제기되어 2006년에 아이오와와 위스콘신이 마지막으로 퇴역했다. 뉴저지와 미주리는 이미 1995년, 1998년에 완전퇴역했다. 참고자료

다만 미국은 1995년 1월 12일에 아이오와급 4척을 모두 함적에서 삭제했음에도 불구하고 상당기간 아이오와와 위스콘신을 전열에 복귀시킬 준비를 해왔었다. 애초에 모스볼 처리할 때도 타 함선과는 다르게 공을 상당히 들였는데, 함포를 당장 쓸 수 있게 유지/보수하고 16인치 포탄을 보관, 기관 및 주요 장비의 지속적인 관리를 해줬다. 5분전투대기부대이다. 하지만 2011년에는 미국의 재정문제로 인해 장기보존을 위해 여러 국가에 박물관 처리를 빙자한 보존비 지원을 바라고 있는 눈치가 보이며, 네임쉽인 아이오와의 경우에는 앞서 언급된 손상 등의 원인으로 유사시 사용을 포기한 후 미주리처럼 해상박물관으로 만들기 위해 대한민국에도 6.25 전쟁 참전을 거론하면서 물밑에서 지원을 바라는 듯하다. 관련기사는 여기.#

결국 박물관함으로 쓰기 위해 2009년에는 위스콘신이 노포크시에 기증되고, 2011년에는 아이오와를 미해군이 LA PACIFIC BATTLESHIP CENTER에 기증하면서 모든 아이오와급 전함은 완전히 퇴역했다.[50]# 여담으로 아이오와급 전함 중 유일하게 뉴저지만 이름을 따온 주에 전시되었다. 이는 미주리 주, 아이오와 주, 위스콘신 주는 내륙에 위치해 있고 뉴저지 주가 유일하게 바다를 접한 주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말이 좋아 뉴저지지, 박물관함으로서 전함이 보존된 캠든시는 체력만 되면 델라웨어강 건너 필라델피아에 걸어갈수 있는 바로 옆동네 같은 생활권이다. 박물관함이 된 지금도 바로 강 바로 건너있는 필라델피아 미국 해양 박물관에서 관리하는 다른 박물관함, 발라오급 잠수함 USS 베큐나랑 미국-스페인 전쟁의 수훈함인 USS 올림피아도 같이 전시되어 있으니 관심있는 사람은 필히 방문해보자. 2023년 기준으로 입장료는 좀 쌘 25불이다. 미해군 뿐만 아니라 대형 전함의 시대 최후와 기술적 발전의 정점을 상징한 전함인 만큼, 꽤 많이 크다. 강건너 베큐나랑 올림피아는 애초애 잠수함, 19세기 배라서 얼마 걸리지 않지만 뉴저지는 당장 주 갑판만 4층에 단순한 본함 뿐만 아니라 승무원들 생활 구역, 전함과 근대 세계 해군의 발전사, 워싱턴 해군조약 같은 세계사적 문맥까지 자세히 설명하며 굉장히 전시 퀄리티가 높다. 하지만 뒤집어 말하면 시간 오래 걸리고 특히 당시 조금만 조심 안하고 걸으면 바로 머리박고 자빠지는 선원들의 고충도 겪을수 있으니 튼튼한 다리와 넉넉한 시간을 가지고 보자. 요즘 미국 경제가 좀 영 아니라서 박물관함 보존에 어려움을 겪는지 돈주고 아예 선원 숙소 일부를 호텔로 하룻밤 자보는 프로그램도 있긴한데, 비싼돈 주고 필라델피아 시내도 많은 가성비 좋고 안락한 호텔, 에어비앤비가 아니라 진짜 세계대전시기 선원의 비좁고 힘든 생활을 체험하고 싶은 어진간한 해양사 매니아가 아니라면 자제하자(...).

그러나 미 해병대에서는 아이오와급을 퇴역시키기를 원치 않았는데, 이유는 간단했다. 미 해병대가 상륙할 때에 아이오와급이 제격이었기 때문이다. 알레이버크급이나 타이콘데로가급에서 발사하는 토마호크는 밀집된 적 보병대나 트럭, 장갑차 따위와 같은 저가치 표적에게 쓰기에는 너무 가성비가 안 맞았고, 그렇다고 항모의 함재기들을 보내기에는 21세기의 방공기술이 만만치 않았다.[51] 전 세계에서 항모 전단 및 그 산하 항모비행단 운용에서 최강이라는 미국 해군 항공단 및 해병항공대도 중국이나 러시아 본토를 완벽히 자유자재로 드나들 만큼 군함이 나오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기존의 함정들이 함포 사격하겠답시고 상대방의 해안선을 알짱거리면 어떤 꼴이 날지를 알았기 때문에 미군은 함포 사격을 하면서도 안전할 수 있는 함선을 연구했고 그 중 제일 먼저 제식 채용되어서 유명해진 함선이 바로 AGS 155mm 함포를 탑재한 줌왈트급 구축함이다. 그러나 AGS는 포탄의 가격 문제 등의 여러 문제로 제거 예정이다.

11. 다양한 포탄

일본에서 3식탄으로 주포로 대공사격을 하려 했듯이 미국도 대공 사격용 포탄을 개발하려 한 적이 있다.[52] 물론 미국답게 최첨단 VT신관 탑재 확산탄을 이용했다. 그러나 주포로 VT신관이 담긴 포탄을 쏴서 대공사격을 하는 것은 불필요하다고 여겨져 취소되었다.

베트남전 기간에 포격 지원에 나선 뉴저지에 사용하기 위해 LRBA라는 프로그램에서 파생된 포탄을 사격 실험했다. 280mm 핵 견인포 프로그램에서 남은 수만발의 일반 포탄이 있어서 이를 재활용해서 1968~1969년 경 제작해 실험했는데, 76,670 m[53]의 거리까지 338kg[54]짜리 포탄을 1387 m/s의 속도로 날려보냈다. 다만 여기의 기록은 HARP라는 16인치 50 구경장 포신 2개를 이어붙인 포를 이용했다. 그래도 이 물건은 65인치 길이로 아이오와급의 포탄 장전 설비에 들어가서 실제 사격에도 상당한 사거리를 보일 것으로 예상되었다. 그러나 뉴저지의 퇴역으로 개발이 취소되었다. 이 외에도 사거리 185km에 탄두 무게 680kg인 로켓 보조 추진탄, 사거리 514km에 탄두 무게 240kg인 "high mass fraction rocket assisted spin stabilized projectile"이라는 이름을 가진 포탄도 개발되었다. 전자는 기존 장전 시스템에서 길이가 20인치 초과했고 후자는 14인치 초과해서 실제 사용은 불가능했다. 하지만 이쪽은 전체 길이를 67인치로 줄여도 370km 정도의 사거리는 확보 가능하다고 여겨졌다.[55]

이후 재취역을 한 이후 HE-ER Mark 148이라는 포탄이 개발된 적 있다. 1980년대에 아이오와급이 재취역하면서 개발되었는데 다시 퇴역해버리면서 1991년 취소되었다. 일종의 분리철갑탄으로, 탄자는 13인치 구경에 500kg으로 상당히 가벼웠다. 하지만 이 포탄의 의의는 바로 사거리에 있는데, 초당 1097m의 속도로 날아가서 64km를 넘기는 거리까지 공격할 수 있었다. 어찌보면 2차대전 중의 SHS와 완전히 반대되는 포탄이다. 하지만 이 포탄이 개발된 때는 이미 전함급 장갑을 두른 함선은 남지 않았기 때문에 쓸데없이 관통력을 늘린 포탄은 필요가 없었다. 구경을 11인치로 더 줄이고 로켓 추진 보조를 달아놓은 포탄을 DARPA에서 만들려 한 적도 있다. 사거리는 약 185km로 계획되었다. 숫자가 뭔가 애매한 건 미터법 환산 때문. 해리로는 정확히 100해리로 떨어진다.

이후 2003년 아이오와가 이미 퇴역한 이후 포탄 관련 연구 경험이 있는 한 물리학자가 스크램 제트를 이용한 16인치 740km 사거리 포탄도 제안했다.[56] 포탄을 쏘면 목표지점에 9 분 후에야 떨어질 정도로 초장거리 사격이 가능한 포탄이었다. 당연히 해군에선 이미 퇴역한 아이오와급을 살릴 생각은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아이오와급은 그 당시 함령이 이미 60년을 바라보고 있었으며[57] 그정도 기술을 들인 포탄만 해도 가격이 만만치 않은데 이것으로 초장거리 사격을 하기 위해서 아이오와급의 사통장치를 뜯어 고쳐야 하니 총 비용이 천문학적으로 상승하는 데다가 이 포탄에 의해 항공모함급 전략자산이 된 아이오와급 전함을 저지하려 새로운 건함 경쟁을 초래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니. 현재 5인치포와 155mm 포에 해당 기술을 적용하려 한다고 한다.[58]

위의 기술을 적용한 것으로 추정 가능한, 155mm 및 175mm 기반 극초음속 포탄의 실사격도 진행되었다. 특히 175mm 자주포의 경우는, 해당 탄종의 사격시 반동이 강할 것으로 예상 가능한 만큼 애초부터 M110의 8인치포 반동도 버티는 M107 175mm 중자주포를 가져다가 테스트용 플랫폼으로 삼아 쏴본듯 하다. 그리고 그것은 맞아떨어져서, 웬만한 8인치포 못지 않은 무시무시한 반동에 M109A6 팔라딘의 경우 포탑 후부가 일시적으로 처지고, 2S25 스프루트의 기동간 사격이 생각날 만큼 엄청나게 출렁이는 것을 아래 영상에서도 볼수있다.



Mark 144 대인포탄도 만들어졌다. 집속탄의 일종으로 M43A1 자탄 400발을 탑재한 포탄도 개발되었었다. 그리고 Mark 146이라는 666발의 M42/M46/M77 자탄을 넣은 포탄도 개발하다가 취소했다.

11.1. 핵포탄

파일:attachment/katie.jpg

아이오와급 전함들은 한때 전함이 보유할 수 있는 가장 강한 포탄을 가지고 있었다. 바로 16인치 핵 포탄 Mk.23. 보통 Katie라고 부르며, 1953년에 개발이 시작되어 1956년에 완성되어 총 50발 정도가 제작되었다. 1발당 위력은 히로시마에 투하한 원자폭탄 수준인 15~20kt 정도인데, 아이오와급의 주포가 분당 2발, 그 포신이 9개 있으므로 이론상 분당 18발의 핵포탄을 난사할 수 있겠지만 애초에 그럴 필요가 없는데다 핵포탄의 가격도 만만치 않았으므로 2번 포탑에서만 발사할 수 있도록 개조되었다.

사진의 폭발장면은 위력이 동일한 야포 포탄형 원자폭탄인 W-9의 발사실험 장면이다. W-9의 위력은 15kt. 아이오와급 전함은 16인치 포탄인 MK-23(W-23)이 사용된다. (Battleships - United States battleships,1935-1992" by William H Garxke,Jr. & Robert O Dulin,Jr., Naval Institute Press, 1995) 중량 1,900lbs, 사거리 23마일 이상.

핵포탄의 발사를 위해 개발 당시 퇴역상태인 미주리를 제외한 나머지 3척이 개장되었고, 핵포탄의 발사는 2번 포탑에서 하게 만들었으며 핵포탄 전용의 탄약고를 설치하고 약 10여발 전후를 각 함마다 저장했다. 이후 전략공군의 발전과 ICBM의 개발 등으로 MK.23은 1962년에 최종적으로 철거되었는데, 일설에 의하면 이후에도 한동안 전략예비탄으로 보관했다고 한다.

실전과 훈련을 통틀어 실탄인 Mk.23은 발사된 기록이 없고, 전용 훈련탄인 Mk.24는 1957년 2월에 푸에르토리코 근해에서 전함 위스콘신이 육상표적으로 시범사격했다는 기록이 있다. 핵포탄이 어떤 목적을 가지고 만들어졌는지는 불명확하지만 그 당시 미국 해군 전함의 임무는 육상에 대한 화력지원이므로 1차 목적은 육상목표에 대한 포격용이었을 것이다.

여담으로 이 포탄은 웬만해선 사용할 일이 없다는 점과 특수한 관리가 필요하다는 점 때문에 365일 가지고 다닌 것은 아니고, 가끔 적재하고 다닌 것으로 보이는데 전 승조원의 말에 의하면 일반 승조원들에게까지 핵포탄 적재 여부를 직접 알려주지는 않았지만[59] 핵포탄을 적재할 시 함에 평소보다 많은 관리 인원이 배정되는 등의 차이점 때문에 대충 적재 여부를 눈치 챌 수는 있었다고 한다.

또한 함대간 전투에서도 사용하려고 한 것으로 예측한다. 15kt 정도의 위력이라면 폭발지점을 기준으로 광구 반경은 약 500m, 열복사 반경은 약 3.5km이며, 오퍼레이션 크로스로드의 실험에서는 폭발 지점에서 약 900m 이내의 배들이 큰 피해를 입었다. 따라서 전함의 교전거리상 자함이 핵폭발에 피해를 입을 걱정은 그다지 없다. 또한 전함의 교전은 포탄의 살포계 안에 적함을 협차시키고 포격을 반복하여 확률적으로 명중탄이 발생하기를 기다리는 것인데, 핵포탄을 실전에서 사용한다면 포탄이 적중할 때 까지 쏠 필요도 없이 900m 안에만 떨어지면 큰 피해를 기대할 수 있으며 광구 반경인 500m 안에서 기폭할 시 한번에 완파시킬 수 있어 초탄에 적 전함, 또는 적 전열의 전함 다수를 무력화시킬 수 있을 것이므로 전술적인 가치도 크다. 다만 1956년 이후 미 해군에게 전함을 동원하여 전함 결전을 벌일 해군은 존재하지 않았다는 점이 문제. 또한 타국도 핵무기 개발에 성공하면서 아예 서로를 멸망시켜버리겠다는 각오로 전면전이 아닌 이상 이걸 실제로 사용했다간 바로 핵전쟁으로 번지기 때문에 실전에서 사용되는 일은 없었다. 그리고 현대에는 사거리도 상대적으로 짧고 전함이라는 초대형 무기체계가 필요한 핵포탄 대신 간단하게 잠수함, 함선 및 항공기 탑재 미사일로도 훨씬 긴 사거리의 핵 전력 투사가 가능해졌기 때문에 부활하는 일도 없을 것이다.

2차대전 직후 냉전기를 무대로 한 일부 대체역사물에서 종종 등장한다. 핵과 항공모함의 시대에 전함의 전략적 가치를 높이고 가상적국의 방어전력 배분을 강요할 수 있다는 점이 중시된다. 그냥 전함도 아니라 핵포탄을 탑재하여 주요 항구를 단 한 발에 불바다로 만들 수 있는 전함이 접근해오면 방어측에서는 해공군을 총동원하여 저지할 수밖에 없고, 그동안 다른 전력들이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다는 발상. 게다가 핵폭탄으로 저지한다고 해도 전함에게 항공기로 핵폭탄을 투하하려면 철저한 방공망과 최악의 경우 대공 핵포격(...)까지 각오해야 하니 쉽지 않고 초기형 대함미사일에 핵탄두를 실어봐도 사정거리와 발사체의 취약성[60]을 감안하면 큰 차이는 없다. 또한 전함은 고속으로 이동하므로 더 강력한 핵탄두를 실은 탄도탄도 유효범위 안에 맞추기 어렵다. 핵전략상으로도 다수의 값비싼 핵탄두를 핵포탄 전함 하나에 배정해야 해서 전쟁 경제에 부담을 준다. 결국 핵포탄 전함을 저지하기 위해서는 마찬가지로 남자의 로망 핵포탄 탑재 전함을 건조해야 된다는 전개로 이어진다.

12. 부품과 탄약의 보존

아이오와급 전함들이 취역과 퇴역을 반복하면서 오랜기간 운용되었는데 전함의 시대는 이미 제2차 세계 대전으로 끝나버린지라 전함과 관련된 산업들이 사라져버리거나 업종을 변경하였다. 그리고 4척밖에 없는지라 수요가 저조해서 없어진 산업을 다시 부흥시킨다던지 다시 생산라인을 깐다던지 하는 게 사실상 불가능했다.

이에 따라 부품과 탄약 보급 문제가 발생했는데, 5인치 부포와 같은 자잘한 무장들은 이미 있는 재고 부품을 쓰거나 기념함으로 남은 다른 군함들에게서 뜯어오거나 부품을 재생해서 쓴다던지 하는 식으로 땜빵처리를 해서 돌리고는 있었으나 이런 대체 방법도 못쓰는 것이 바로 16인치 Mk.7 주포의 포신과 16인치 함포탄이었다.

16인치 Mk.7 주포의 포신의 경우에는 아이오와급 전함만 쓰는 고유품종이고 전함의 시대가 끝남에 따라 더 이상 필요가 없어져서 대구경 함포 포신을 만드는 시설이 사라지고 기술이 잊혀져서 포신의 추가 제조가 불가능한데다가[61] 예비 포신의 숫자도 거의 없었다. 그래서 포신 수명을 늘리는 방식으로 대처하였다.

원래 주포의 수명은 철갑탄을 최강의 위력으로 쏠 때 기준으로 몇 발 쏘는 지에 관한 것이므로 고폭탄을 약하게 쏘면 포신 수명을 상대적으로 덜 갉아먹는다. 그리고 아이오와급 전함은 수상함 상대한 기록이 매우 적어서 철갑탄을 최강의 위력으로 쏠 필요도 적었고, 기존 전함보다 상대적으로 지상포격도 덜 했기 때문에 고폭탄도 덜 쏴서 포신의 손상이 매우 적었기 때문에 처음부터 포신 수명이 많이 남은 상태였다.

태평양 전쟁이 끝나고 얼마 지나지도 않은 6.25 전쟁 때는 전후의 기술발전으로 기존의 포신 수명이 290발에서 350발로 늘어났다. 베트남 전쟁때인 1967년부터 이산화 티타늄과 왁스가 주 성분인 스웨덴 첨가제라는 것을 발사용 장약 사이에 끼어넣어서 포신 내부의 동일한 손상 기준으로 철갑탄은 1발 쏠 손상정도로 4발을, 고폭탄은 1발 쏠 손상기준으로 10발을 사격가능해서 포신 수명이 더 늘었다. 1980년대에는 스웨덴 첨가제 외에도 발사용 장약 위에 폴리우레탄 재킷을 추가했는데, 이건 발화시 포신 내부에 임시적인 보호막을 만들어주므로 포신이 발사장약에서 나오는 가스로 손상되는 것을 막게 된다.

이렇게 한 결과 기존의 포신 내부 수명 감소율이 엄청나게 떨어져서 의미가 상실된다. 그래서 현재 시점에서는 금속 피로도를 기준으로 포신수명을 측정하는데 그 기준에 따를 경우 16인치 Mk.7 주포의 포신 수명은 1,500발까지 늘어나게 된다.

16인치 주포탄과 장약은 노스캐롤라이나급 전함사우스다코타급 전함도 공용하므로 전쟁중과 전쟁 끝난 직후의 재고량이 많아서 당장 단기간의 전투에는 지장이 없었다. 한참 후인 1981년에 해군탄약저장시설을 점검한 결과 16인치 주포탄은 고폭탄 15,500발, 철갑탄 3,200발, 연습탄 2,300발이 있었다.

발사용 장약의 경우에는 기존의 재고량도 있고, 조악하게 말하자면 화약뭉치를 천자루에 담아서 묶은 형태라[62] 포탄과 포신과는 달리 현대에도 제조가 가능하다. 위에 언급한 것처럼 아이오와 2번 주포탑 폭발사고의 원인중 하나로 낡고 변질된 장약을 써서 유폭사고가 발생하기도 했고, 그렇지 않은 장약이더라도 기본적으로 성능이 제멋대로가 돼서 포탄을 밀어주는 압력이 불균등해지므로 1984년에 뉴저지가 지상지원포격을 했을 때 포탄이 목표가 아닌 주변 지역에 흩뿌려지는 현상에 지대한 공헌을 했다. 이 때문에 발사용 장약은 재생산되었다.

이런 식으로 대체 방법을 사용가능한 품목은 그렇게 했고 그렇지 못하면 수명이라도 늘리는 방법을 썼으나 본질적으로는 전함용 산업들을 다시 부흥시켜야만 했다. 하지만 그게 수요의 저조와 비용의 폭증과 기술력 상실등으로 불가능했으므로 기술지원이 끊어진 낡은 함선을 굴리는게 얼마나 어려운 가에 대한 예시를 제공하면서 결국 아이오와급 전함들이 퇴역하게 되는 원인 중 하나를 만들었다.

13. 모형화

길게 쭉 빠진 선체와 각진 주포탑 등 멋진 외형과 미국 최후의 전함이라는 상징성 덕분에 많이 모형화되었다.

14. 미디어

야마토급과 비슷하게 미국 최강의 전함이라는 상징성 덕분에 대체로 강력한 모습으로 나오며 아래의 영화 배틀쉽처럼 진 전함 무쌍을 찍는 작품도 있다.
파일:BB63UNDERSEIGE.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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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스함을 요트로 보이게 하는 슈퍼 드레드노트급 전함의 압도적인 위엄과 폭풍간지, 그리고 존재감은 말 그대로 최종병기 그 자체. 고속전함 특유의 경쾌한 기동으로 적 미사일 포대의 사각으로 파고들어 한쪽 선수의 닻을 해저로 내리면서 적함의 공격을 회피[66][67]한다. 이와 동시에 함선을 급선회 시킨 후 전함의 상징적인 막강한 16인치 주포로[68] 외계인의 모선을 조준도 필요없는 근거리에서 박살내 버린다.[69] 현대 군함의 MK45 5인치 함포로 씨알도 안 먹힌 것과 대조적.
특히 외계인 모선의 공격으로 3번 포탑이 파괴되는 등의 피해를 받았음에도 전함의 우월한 맷집으로 공격을 견뎌낸다. 노병이 이에 거들어 "이 전함은 이딴 걸로 안 가라앉아!"라고 태연하게 받아치는 모습은 그야말로 폭풍간지. 원래 그렇게 얻어맞으면서 싸우라고 만든 게 전함이라는 걸 생각하면 놀랄 것도 없다. 첫 전투 때 같은 공격을 얻어 맞았던 이지스함 샘슨이 그대로 유폭이 나서 산산조각나 격침당한 것[70]을 생각하면 전함의 맷집이 얼마나 대단한지를 알 수 있다.
약간의 고증오류도 있다. 주포 사격 시, 자세히 보면 부포인 5인치 양용포도 갈겨대는 모습을 볼수 있다. 주포 사격 도중에는 5인치 부포까지는 쏠 수 있어도 포탑으로 보호받지 못하는 대공기관포는 쏠 수 없다. 16인치 주포 발사 시 생기는 풍압과 소음 때문에 그런 것. 당장 야마토급 전함 2번함 무사시에서도 주포사격 전에 경고를 하지 않아 대공포를 쏘던 사람들이 그대로 주포의 풍압을 그대로 받아 튕겨나갔다고 한다. 또한 주인공들이 주포를 사격하는 도중에 귀마개도 없이 노천 함교에 나와있는 것도 고증 오류. 대포의 끝판왕 수준인 전함 주포를 사격할 때에는 함내에 사이렌이 울리는데 이는 주포를 사격할 예정이니 주의하라는 뜻이다. 이 내용은 4번함 위스콘신 항목에 첨부된 영상의 2분 55초 부근에서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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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오와 미주리 일리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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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미국의 대형 사고 및 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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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ki style="margin:-5px 0"
발생일<colcolor=#000>사망사건명
2023년 8월 8일 ~ 8월 11일
101
2022년 6월 27일
53
2022년 5월 24일
22
2022년 1월 23일
39
2021년 6월 24일
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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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0년대 ]
||<tablewidth=100%><tablebgcolor=#ffffff,#1f2023><width=33%>발생일
<colcolor=#000>사망사건명
2019년 9월 2일
34 컨셉션호 화재
2019년 8월 3일
23
2018년 10월 6일
20 쇼하리 리무진 충돌사고
2018년 1월 9일
23 몬테시토 산사태
2017년 11월 5일
27 텍사스 제일 침례교회 총기 난사 사건
2017년 10월 1일
61 라스베이거스 총기 난사 사건
2016년 12월 2일
36 고스트 쉽 창고 화재
2016년 6월 12일
50 올랜도 나이트클럽 총기난사 사건
2015년 10월 1일
33 엘 파로호 침몰사고
2014년 3월 22일
43 오소 산사태
2012년 12월 14일
28 샌디 훅 초등학교 총기난사 사건
2010년 4월 5일
29 어퍼 빅 브랜치 탄광 폭발사고
[ 2000년대 ]
||<tablewidth=100%><tablebgcolor=#ffffff,#1f2023><width=33%>발생일
<colcolor=#000>사망사건명
2009년 2월 12일
50 콜간 항공 3407편 추락 사고
2008년 9월 12일
25 채스워스 열차 충돌 사고
2007년 4월 16일
32 버지니아 공대 총기 난사 사건
2006년 8월 27일
49 컴에어 5191편 추락 사고
2005년 12월 19일
20 초크 오션항공 101편 추락 사고
2005년 10월 2일
20 이선 앨런호 침몰 사고
2005년 9월 23일
24 텍사스 요양원 버스 화재
2005년 9월 1일
45 허리케인 카트리나 집단 안락사 사건
2005년 1월 26일
31 미 해병대 CH-53E기 추락 사고
2003년 2월 20일
100 스테이션 나이트클럽 화재 사고
2003년 2월 17일
21 E2 나이트클럽 압사 사고
2003년 1월 8일
21 에어 미드웨스트 5481편 추락 사고
2001년 11월 12일
265 아메리칸 항공 587편 추락 사고
2001년 9월 11일
2,996 9.11 테러
2000년 10월 31일
84 24 싱가포르항공 006편 이륙 사고
2000년 1월 31일
88 알래스카 항공 261편 추락 사고

[ 1990년대 ]
||<tablewidth=100%><tablebgcolor=#ffffff,#1f2023><width=33%>발생일
<colcolor=#000>사망사건명
1999년 10월 31일
217 100 이집트 항공 990편 추락 사고
1999년 5월 9일
23 뉴올리언스 버스 사고
1998년 9월 2일
229 110 스위스에어 111편 추락 사고
1998년 8월 7일
224 케냐 미 대사관 폭탄 테러
1997년 8월 6일
228 대한항공 801편 추락 사고
1997년 3월 26일
39 헤븐즈 게이트 집단 자살 사건
1997년 1월 9일
29 컴에어 3272편 추락 사고
1996년 11월 21일
33 푸에르토리코 가스 폭발 사고
1996년 7월 17일
230 트랜스 월드 항공 800편 추락 사고
1996년 5월 11일
110 밸류젯 592편 추락 사고
1996년 4월 3일
35 미 공군 CT-43 추락 사고
1995년 12월 20일
159 아메리칸 항공 965편 추락 사고
1995년 9월 22일
24 알래스카 보잉 E-3 추락 사고
1995년 4월 19일
168 오클라호마 폭탄 테러
1994년 10월 31일
68 아메리칸 이글 4184편 추락 사고
1994년 9월 8일
132 US에어 427편 추락 사고
1994년 7월 2일
37 US에어 1016편 추락 사고
1994년 3월 23일
24 그린 램프 참사
1993년 9월 22일
47 빅 바유 캐넛 탈선 사고
1993년 2월 28일 ~ 4월 19일
86 웨이코 포위전
1992년 3월 22일
27 US에어 405편 추락 사고
1991년 10월 19일 ~ 10월 23일
25 오클랜드 대화재
1991년 10월 16일
24 루비스 카페테리아 총기난사 사건
1991년 9월 3일
25 햄릿 닭고기 가공 공장 화재
1991년 4월 5일
23 애틀랜틱 사우스웨스트 항공 2311편 추락 사고
1991년 3월 3일
25 유나이티드 항공 585편 추락 사고
1991년 2월 1일
35 로스앤젤레스 국제공항 지상충돌 사고
1990년 3월 25일
87 해피랜드 나이트클럽 화재
1990년 1월 25일
73 아비앙카 항공 052편 추락 사고
[ 1980년대 ]
||<tablewidth=100%><tablebgcolor=#ffffff,#1f2023><width=33%>발생일
<colcolor=#000>사망사건명
1989년 10월 23일
23 필립스 정유 회사 폭발 사고
1989년 9월 21일
21 알톤 버스 추락사고
1989년 7월 19일
111 유나이티드 항공 232편 착륙 사고
1989년 4월 17일
47 아이오와급 전함 주포 폭발사고
1989년 2월 8일
144 인디팬던트 에어 1851편 추락 사고
1988년 12월 21일
270 팬 아메리칸 항공 103편 폭파 사건
1988년 5월 14일
27 캐롤튼 버스 충돌 사고
1987년 12월 7일
43 퍼시픽 사우스웨스트 항공 1771편 추락 사고
1987년 11월 15일
28 컨티넨탈 항공 1713편 추락 사고
1987년 8월 16일
156 노스웨스트 항공 255편 추락 사고
1987년 5월 17일
37 USS 스타크 피격 사건
1987년 4월 23일
28 람비안스 플라자 붕괴사고
1986년 12월 31일
97 듀폰트 플라자 방화 사건
1986년 9월 5일
20 팬 아메리칸 항공 73편 납치 사건
1986년 8월 31일
82 세리토스 상공 공중 충돌 사고
1986년 6월 18일
25 그랜드 캐니언 공중충돌 사고
1986년 5월 30일
21 캘리포니아 워커 버스 사고
1985년 12월 12일
256 애로우 항공 1285편 추락 사고
1985년 9월 6일
31 Midwest Express 105편 추락 사고
1985년 8월 2일
137 델타항공 191편 추락 사고
1985년 6월 25일
21 오클라호마 폭죽공장 폭발 사고
1985년 1월 21일
70 갤럭시 항공 203편 추락 사고
1985년 1월 1일
29 이스턴 항공 980편 추락 사고
1984년 12월 19일
27 윌버그 탄광 화재 사고
1984년 9월 20일
24 1984년 베이루트 미국 대사관 폭탄 테러
1984년 7월 18일
21 샌 이시드로 맥도날드 총기난사 사건
1983년 10월 23일
307 베이루트 미군 숙소 테러
1983년 9월 1일
269 62 대한항공 007편 격추 사건
1983년 6월 2일
23 에어캐나다 797편 화재 사고
1983년 4월 18일
64 1983년 베이루트 미국 대사관 폭탄 테러
1983년 2월 10일
31 SS Marine Electric 침몰 사고
1982년 9월 11일
46 만하임 미 육군 CH-47c 추락 사고
1982년 9월 4일
25 Dorothy Mae Apartment-Hotel 방화 사건
1982년 7월 9일
153 팬 아메리칸 항공 759편 추락 사고
1982년 1월 13일
78 에어 플로리다 90편 추락 사고
1981년 7월 17일
114 하얏트 리젠시 호텔 고가 통로 붕괴 사고
1981년 1월 9일
29 뉴저지 요양병원 화재 사고
1980년 12월 4일
26 스토퍼스 인 호텔 화재
1980년 11월 21일
85 MGM 그랜드 호텔 화재
1980년 9월 12일
34 Florida Commuter Airlines 65편 추락 사고
1980년 7월 27일
23 브래들리 인 요양원 화재
1980년 6월 5일
20 아칸소 재스퍼 버스 사고
1980년 5월 9일
35 선샤인 스카이웨이 대교 붕괴사고
1980년 3월 14일
87 28 LOT 007편 추락사고
1980년 1월 28일
23 USCGC 블랙손 침몰 사고
[ 1970년대 ]
||<tablewidth=100%><tablebgcolor=#ffffff,#1f2023><width=33%>발생일
<colcolor=#000>사망사건명
1979년 11월 28일
257 22 에어 뉴질랜드 901편 추락 사고
1979년 10월 31일
73 웨스턴 항공 2605편 착륙 사고
1979년 5월 25일
273 아메리칸 항공 191편 추락 사고
1979년 4월 3일
25 스르라우한 웨이사이드 요양원 화재
1978년 11월 18일
918 인민사원 집단 자살 사건
1978년 9월 25일
144 샌디에이고 상공 공중충돌 사고
1978년 4월 27일
51 윌로우 아일랜드 참사
1978년 1월 28일
20 코트스 하우스 호텔 화재 사고
1977년 12월 13일
29 Air Indiana 216편 추락 사고
1977년 11월 6일
39 켈리 반스 댐 붕괴사고
1977년 7월 19일
40 로럴 런 댐 붕괴 사고
1977년 6월 26일
42 모리 카운티 교도소 화재 사고
1977년 5월 28일
165 비버리 힐즈 서퍼 클럽 화재
1977년 3월 27일
583 테네리페 참사
1976년 10월 24일
25 푸에르토리코인 사교 클럽 화재
1976년 10월 20일
78 MV 조지 프린스호 침몰 사고
1976년 6월 4일
46 에어 마닐라 항공 702편 추락 사고
1976년 5월 21일
29 유바 시티 버스 추락사고
1976년 4월 27일
37 아메리칸 항공 625편 추락 사고
1976년 3월 9일, 3월 11일
26 스코샤 탄광 폭발 사고
1976년 1월 30일
23 윈크레스트 요양병원 화재 사고
1976년 1월 10일
20 패스파인더 호텔 폭발 사고
1975년 11월 10일
29 에드먼드 피츠제럴드호 침몰 사고
1975년 6월 24일
113 이스턴 항공 66편 추락 사고
1974년 12월 1일
92 트랜스 월드 항공 514편 추락 사고
1974년 9월 11일
72 이스턴 항공 212편 추락 사고
1974년 9월 8일
88 트랜스 월드 항공 841편 폭파 사건
1974년 6월 30일
24 걸리버즈 나이트클럽 방화 사건
1974년 4월 22일
107 팬 아메리칸 항공 812편 추락 사고
1974년 4월 4일
72 서던 에어웨이즈 242편 추락 사고
1974년 3월 3일
346 25 터키항공 981편 추락 사고
1973년 12월 17일
34 1973년 로마 공항 습격·납치 사건
1973년 8월 28일
24 휴에바 미 공군 C-141 추락 사고
1973년 7월 31일
88 델타 항공 723편 추락 사고
1973년 7월 23일
38 오자 에어 809편 추락 사고
1973년 7월 22일
78 팬 아메리칸 항공 816편 추락 사고
1973년 6월 24일
32 업스테어 라운지 방화 사건
1973년 3월 22일
32 MV Norse Variant 침몰 사고
1973년 2월 10일
40 스태튼 아일랜드 가스 폭발 사고
1972년 12월 29일
101 이스턴 항공 401편 추락사고
1972년 12월 8일
45 유나이티드 항공 553편 추락사고
1972년 10월 30일
45 1972년 시카고 열차 추돌사고
1972년 9월 24일
22 새크라멘토 캐나디어 세이버 추락 사고
1972년 6월 9일
238 Canyon Lake 댐 붕괴 사고
1972년 5월 2일
91 선샤인 광산 화재
1972년 2월 26일
125 버팔로 댐 붕괴 사고
1971년 9월 14일
111 알래스카 항공 1866편 추락 사고
1971년 9월 9일 ~ 9월 13일
43 애티카 교도소 폭동
1971년 8월 18일
37 페그니츠 미 육군 CH-47 추락 사고
1971년 6월 7일
28 Allegheny Airlines 485편 추락 사고
1971년 6월 6일
50 휴즈 에어웨스트 706편 공중충돌 사고
1971년 2월 3일
29 티오콜 화학공장 폭발 사고
1970년 12월 30일
39 Hurricane Creek 탄광 폭발 사고
1970년 12월 20일
29 파이어니어 호텔 화재
1970년 11월 27일
79 미 공군 C-123K기 추락 사고
1970년 10월 2일
31 위치타 주립대학교 미식축구팀 비행기 추락사고
1970년 11월 14일
75 서던 에어웨이즈 932편 추락 사고
1970년 5월 2일
23 ALM 항공 980편 사고
1970년 3월 20일
20 오자크 호텔 화재 사고
1970년 1월 10일
21 하머 하우스 요양원 화재
}}}
[ 1960년대 ]
||<tablewidth=100%><tablebgcolor=#ffffff,#1f2023><width=33%>발생일
<colcolor=#000>사망사건명
1969년 9월 9일
83 앨러게네이 항공 853편 공중충돌 사고
1969년 6월 3일
74 USS Frank E. Evans 충돌 사고
1969년 2월 18일
35 허손 네바다 항공 708편 추락 사고
1969년 1월 18일
38 유나이티드 항공 266편 추락 사고
1969년 1월 14일
28 USS 엔터프라이즈 화재 사고
1968년 12월 27일
28 노스 센트럴 항공 458편 추락 사고
1968년 12월 24일
20 앨러게네이 항공 736편 추락 사고
1968년 12월 12일
51 팬 아메리칸 항공 217편 추락 사고
1968년 12월 2일
39 Wien Consolidated 항공 55편 추락 사고
1968년 11월 20일
78 파밍턴 광산 참사
1968년 10월 25일
32 노스이스트 항공 946편 추락 사고
1968년 8월 14일
21 로스엔젤레스 항공 417편 추락 사고
1968년 5월 27일
99 USS 스콜피언 침몰 사고
1968년 5월 22일
23 로스엔젤레스 항공 841편 추락 사고
1968년 5월 3일
85 브래니프 항공 352편 추락 사고
1968년 4월 6일
41 리치몬드 가스 폭발사고
1967년 12월 15일
46 실버 브리지 붕괴사고
1967년 11월 20일
70 트랜스 월드 항공 128편 추락 사고
1967년 7월 29일
134 USS 포레스탈 화재 사건
1967년 7월 19일
82 피드몬트 항공 22편 공중충돌 사고
1967년 6월 23일
34 Mohawk 항공 40편 추락 사고
1967년 6월 8일
34 USS Liberty 피격 사건
1967년 3월 9일
26 트랜스 월드 항공 553편 공중충돌 사고
1967년 3월 5일
38 레이크 센트럴 항공 527편 추락 사고
1967년 2월 7일
25 데일즈 펜트하우스 레스토랑 화재 사고
1967년 1월 16일
37 플로리다 교도소 화재
1966년 10월 26일
44 USS 오리스카니 화재 사건
1966년 8월 6일
42 브래니프 항공 250편 추락 사고
1966년 6월 16일, 6월 28일
37 MV 알바 케이프호 충돌 및 화재 사고
1966년 4월 22일
83 American Flyers 항공 280/D 추락 사고
1965년 11월 11일
43 유나이티드 항공 227편 추락 사고
1965년 11월 8일
58 아메리칸 항공 383편 추락 사고
1965년 8월 24일
59 미 해병대 KC-130F 추락 사고
1965년 8월 16일
30 유나이티드 항공 389편 추락 사고
1965년 8월 9일
53 시어시 미사일 기지 화재 사고
1965년 2월 8일
84 이스턴 항공 663편 추락 사고
1965년 1월 16일
30 위치타 미 공군 KC-135기 추락 사고
1964년 12월 18일
20 맥그로우 요양원 화재
1964년 11월 23일
50 트랜스 월드 항공 800편 이륙 사고
1964년 11월 15일
29 본자나 항공 114편 추락 사고
1964년 7월 9일
39 유나이티드 항공 823편 추락 사고
1964년 5월 11일
79 마닐라 미 공군 C-135B기 추락 사고
1964년 5월 7일
44 퍼시픽 항공 773편 추락 사고
1964년 3월 1일
85 파라다이스 항공 901A편 추락 사고
1964년 2월 25일
58 이스턴 항공 304편 추락 사고
1963년 12월 29일
22 루즈벨트 호텔 화재 사고
1963년 12월 8일
81 팬 아메리칸 항공 214편 추락 사고
1963년 11월 23일
63 골든 에이지 양로원 화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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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3년 11월 19일
26 아틀란틱 시티 요양원 화재
1963년 11월 18일
25 서프사이드 호텔 화재 사고
1963년 10월 31일
81 인디애나 주립 박람회 회관 가스 폭발 사고
1963년 9월 17일
32 추알라 버스 충돌사고
1963년 6월 3일
101 노스웨스트 오리엔트 항공 293편 추락 사고
1963년 5월 18일
27 사우스 캐롤라이나 버스 추락 사고
1963년 4월 10일
129 USS 스레셔 침몰 사고
1963년 2월 12일
43 노스웨스트 항공 705편 추락 사고
1962년 11월 30일
25 이스턴 항공 512편 추락 사고
1962년 10월 3일
23 뉴욕 텔레폰 컴퍼니 빌딩 폭발 사고
1962년 7월 22일
27 Canadian Pacific 항공 301편 추락 사고
1962년 6월 3일
130 121 에어 프랑스 007편 추락사고
1962년 5월 22일
45 컨티넨탈 항공 11편 폭파 사건
1962년 3월 16일
107 플라잉 타이거 라인 739편 실종 사건
1962년 3월 1일
95 아메리칸 항공 1편 추락 사고
1961년 12월 14일
20 콜로라도 에반스 스쿨버스 충돌 사고
1961년 11월 8일
77 임페리얼 항공 201/8편 추락 사고
1961년 9월 17일
37 노스웨스트 오리엔트 항공 706편 추락 사고
1961년 9월 1일
78 트랜스 월드 항공 529편 추락 사고
1961년 6월 15일
73 34 사베나 548편 사고
1961년 1월 15일
28 텍사스 레이더 기지 붕괴 사고
1961년 1월 6일
20 토마스 호텔 화재
1960년 12월 17일
52 뮌헨 미 공군 C-131 추락 사고
1960년 12월 16일
134 뉴욕 공중충돌 사고
1960년 10월 29일
22 캘리포니아 폴리테크닉 주립대학교 미식축구팀 비행기 추락 사고
1960년 10월 4일
62 이스턴 항공 375편 추락 사고
1960년 9월 19일
80 World Airways 830편 충돌 사고
1960년 3월 17일
63 노스웨스트 오리엔트 항공 710편 추락 사고
1960년 2월 25일
61 리우데자네이루 미 해군수송기 공중충돌 사고
1960년 1월 18일
50 캐피털 항공 20편 추락 사고
[ 1950년대 ]
||<tablewidth=100%><tablebgcolor=#ffffff,#1f2023><width=33%>발생일
<colcolor=#000>사망사건명
1959년 12월 1일
25 Allegheny 항공 371편 추락 사고
1959년 11월 16일
42 내셔널 항공 967편 실종 사고
1959년 10월 30일
26 피드몬트 항공 349편 추락 사고
1959년 9월 29일
34 브래니프 항공 542편 공중분해 사고
1959년 6월 28일
23 조지아 유조열차 탈선 사고
1959년 5월 12일
31 캐피털 항공 75편 추락 사고
1959년 3월 5일
21 아칸소 흑인학교 화재 사고
1959년 2월 3일
65 아메리칸 항공 320편 추락 사고
1958년 12월 1일
97 천사들의 모후 학교 화재
1958년 11월 18일
33 SS Carl D. Bradley 침몰 사고
1958년 9월 15일
48 뉴어크 만 열차 탈선 사고
1958년 8월 15일
25 노스이스트 항공 258편 추락 사고
1958년 4월 21일
49 유나이티드 항공 736편 공중충돌 사고
1958년 4월 6일
47 캐피털 항공 67편 추락 사고
1958년 3월 19일
24 뉴욕 속옷공장 화재 사고
1958년 3월 7일
26 오키나와 미 해병대 C-119C 추락 사고
1958년 2월 28일
27 켄터키 버스 추락 사고
1957년 11월 8일
44 팬 아메리칸 항공 7편 추락 사고
1957년 2월 17일
72 워렌턴 요양병원 화재 사고
1957년 3월 22일
67 미 공군 C-97기 실종 사건
1957년 2월 1일
20 노스이스트 항공 823편 추락 사고
1956년 10월 10일
59 미 해군 R6D-1기 실종 사고
1956년 9월 5일
20 로빈슨 열차 충돌 사고
1956년 6월 30일
127 그랜드 캐니언 공중충돌 사고
1956년 4월 1일
22 트랜스 월드 항공 400편 추락 사고
1956년 1월 22일
30 로스엔젤레스 열차 탈선 사고
1955년 11월 1일
44 유나이티드 항공 629편 폭파 사건
1955년 10월 6일
66 유나이티드 항공 409편 추락 사고
1955년 8월 11일
66 알텐슈타이그 미 공군기 공중충돌 사고
1955년 8월 4일
30 아메리칸 항공 476편 추락 사고
1955년 2월 12일
29 바턴 호텔 화재 사고
1955년 3월 22일
66 하와이 R6D-1기 추락 사고
1954년 5월 26일
103 USS Bennington 폭발 사고
1954년 2월 1일
35 홋카이도 미 해병대 C-46D 추락 사고
1953년 9월 16일
28 아메리칸 항공 723편 추락 사고
1953년 7월 17일
43 USMC R4Q NROTC 추락 사고
1953년 6월 18일
129 타치카와 미 공군 수송기 추락 사고
1953년 4월 17일
35 시카고 하버 공업 빌딩 화재
1953년 3월 27일
21 오하이오 열차 추돌 사고
1953년 3월 27일
33 라르고 요양원 화재
1953년 2월 14일
46 내셔널 항공 470편 추락 사고
1952년 12월 20일
87 워싱턴 C-124기 추락 사고
1952년 11월 22일
52 알래스카 C-124기 추락 사고
1952년 11월 16일
25 강릉 공항 미 공군 C-46D 추락 사고
1952년 10월 16일
44 양평 미 공군 C-119C 추락 사고
1952년 8월 4일
29 웨이코 버스 정면 충돌사고
1952년 4월 29일
50 팬 아메리칸 항공 202편 추락 사고
1952년 4월 26일
176 USS Hobson 침몰 사고
1952년 4월 11일
52 팬 아메리칸 항공 526A편 추락 사고
1952년 2월 11일
33 내셔널 항공 101편 추락 사고
1952년 1월 22일
23 아메리칸 항공 6780편 추락 사고
1951년 12월 29일
26 컨티넨탈 차터스 항공 44-2편 추락 사고
1951년 12월 21일
119 오리엔트 탄광 폭발 사고
1951년 12월 16일
58 마이애미 항공 C-46기 추락 사고
1951년 9월 1일
45 펠리컨호 침몰 사고
1951년 8월 24일
50 유나이티드 항공 615편 추락 사고
1951년 6월 30일
50 유나이티드 항공 610편 추락 사고
1951년 4월 25일
43 Cubana de Aviacion 항공 493편 공중충돌 사고
1951년 3월 23일
53 미 공군수송기 실종 사건
1951년 2월 6일
85 우드브리지 열차 탈선 사고
1950년 11월 22일
78 큐 가든스역 열차 충돌사고
1950년 9월 26일
23 아시야 미 해병대 C-54D 추락 사고
1950년 8월 31일
55 트랜스 월드 항공 903편 추락 사고
1950년 8월 25일
23 USS Benevlonce 침몰 사고
1950년 7월 26일
25 오시마 인근 미 공군 C-47D 추락 사고
1950년 6월 30일
23 부산 미 공군 C-54G 추락 사고
1950년 6월 23일
58 노스웨스트 오리엔트 항공 2501편 실종 사고
1950년 5월 25일
34 1950년 시카고 노면전차 충돌사고
1950년 4월 21일
35 카타가와현 미군 C-54기 추락 사고
1950년 2월 17일
32 뉴욕 열차 충돌 사고
1950년 1월 26일
32 미 공군 C-54D기 실종 사건
1950년 1월 7일
41 대번포트 요양원 화재
[ 1940년대 ]
||<tablewidth=100%><tablebgcolor=#ffffff,#1f2023><width=33%>발생일
<colcolor=#000>사망사건명
1949년 11월 29일
28 아메리칸 항공 157편 추락 사고
1949년 11월 1일
55 알렉산드리아 상공 공중 충돌 사고
1949년 7월 12일
35 스탠다드 에어 항공 897R편 추락 사고
1949년 6월 7일
53 스트라토 프레이트 커티스 C-46A 추락 사고
1949년 4월 4일
74 성 안토니오 병원 화재
1948년 12월 28일
32 에어본 운송 DC-3 실종 사고
1948년 10월 27일 ~ 10월 31일
26 도노라 스모그 사건
1948년 8월 29일
37 노스웨스트 항공 421편 추락 사고
1948년 6월 17일
43 유나이티드 항공 624편 추락 사고
1948년 3월 12일
30 노스웨스트 항공 4422편 추락 사고
1948년 1월 28일
32 로스 가토스 DC-3 추락 사고
1947년 11월 28일
20 알프스 미 공군 C-47B 추락 사고
1947년 10월 23일
52 유나이티드 항공 608편 추락 사고
1947년 7월 24일
27 올드 밴 8번 탄광 폭발 사고
1947년 6월 13일
50 펜실베니아 센트럴 항공 410편 추락 사고
1947년 5월 30일
53 이스턴 항공 605편 추락 사고
1947년 5월 29일
43 유나이티드 항공 521편 추락 사고
1947년 4월 16일
581 텍사스 시티 폭발 사고
1947년 3월 25일
111 센트레일리아 탄광 참사
1946년 12월 7일
119 와인코프 호텔 화재사고
1946년 7월 19일
25 마운트 톰 B-17 추락 사고
1946년 6월 5일
61 라 살레 호텔 화재
1946년 4월 25일
45 네퍼빌 철도 참사
1945년 12월 24일
21 나일가 요양병원 화재
1945년 11월 1일
26 가게나우 미 육군 C-47 추락 사고
1945년 8월 9일
34 노스 다코다 미시간 열차 충돌 사고
1945년 8월 9일
372 USS 마운트 후드 폭발 사고
1944년 12월 31일
50 배글리 열차 추돌 사고
1944년 10월 20일
131 클리블랜드 가스 폭발 사고
1944년 8월 23일
61 프레클톤 항공 참사
1944년 8월 4일
47 스톡턴 열차 충돌 사고
1944년 7월 17일
320 시카고 항구 참사
1944년 7월 6일
167 하트퍼드 서커스 화재
1944년 5월 21일
163 웨스트 로치 참사
1944년 2월 10일
24 아메리칸 항공 2편 추락 사고
1944년 1월 6일
115 USS 세인트 어거스틴 침몰 사고
1944년 1월 3일
138 USS 터너 침몰 사고
1943년 12월 18일
34 USS 로그데이 침몰 사고
1943년 12월 16일
74 레너트 열차 충돌 사고
1943년 9월 7일
55 걸프 호텔 화재
1943년 9월 6일
79 프랭크 포드 정션 열차 탈선 사고
1943년 8월 30일
29 라카와나 열차 추돌 사고
1943년 7월 28일
20 아메리칸 항공 63편 사고
1943년 6월 12일
42 USS R-12 침몰 사고
1943년 2월 27일
75 스미스 탄광 폭발 사고
1943년 1월 31일
32 레이크 포레스트 요양원 화재
1942년 11월 28일
492 코코넛 그로브 나이트클럽 화재
1942년 6월 5일
46 졸리엣 탄약 창고 폭발 사고
#!wikibstyle="margin: 0px -10px;"
1942년 2월 18일
203 USS 폴룩스, USS 스럭스톤 침몰 사고
1942년 1월 24일
48 USS S-26 침몰 사고
1941년 6월 19일
33 USS O-9 침몰 사고
1940년 9월 12일
52 허큘리스 화약 공장 폭발 사고
1940년 8월 31일
25 로베츠빌 DC-3 추락 사고
1940년 7월 31일
43 두들버그 참사
1940년 7월 15일
63 손만 탄광 폭발 사고
1940년 4월 23일
209 리듬 클럽 화재
1940년 4월 19일
31 리틀 폴스 열차 탈선 사고

[ 1930년대 ]
||<tablewidth=100%><tablebgcolor=#ffffff,#1f2023><width=33%>발생일
<colcolor=#000>사망사건명
1939년 10월 12일
24 샌프란시스코 열차 탈선 사고
1939년 5월 12일
26 USS 세일피쉬 침몰 사고
1938년 6월 19일
23 조던 고등학교 버스 건널목 사고
1938년 6월 19일
47 커스터 강 열차 탈선 사고
1938년 6월 19일
45 레드 자켓 광산 폭발 사고
1938년 5월 16일
34 터미널 호텔 화재
1937년 5월 6일
36 힌덴부르크 참사
1937년 3월 18일
295+ 뉴 런던 학교 폭발 사고
1936년 1월 12일
34 SS 아이오와호 침몰 사고
1934년 12월 11일
34 켄 호텔 화재
1934년 9월 8일
137 모로 캐슬호 화재
1934년 7월 22일
21 뉴욕 오싱 버스 사고
1934년 3월 24일
22 린치버그 빌딩 화재
1933년 4월 3일
73 USS 아크론 추락사고
1933년 10월 3일 ~ 10월 4일
29 그리피스 공원 화재
1932년 9월 9일
72 옵저베이션호 폭발사고
1932년 12월 24일
54 모웨아쿠아 탄광 폭발사고
1931년 7월 25일
31 리틀 시스터즈 보육원 화재
1930년 11월 5일
82 밀필드 탄광 참사
1930년 4월 21일
322 오하이오 교도소 화재
[ 1920년대 ]
||<tablewidth=100%><tablebgcolor=#ffffff,#1f2023><width=33%>발생일
<colcolor=#000>사망사건명
1929년 10월 22일
52 SS 밀워키 침몰 사고
1929년 9월 9일
25 SS 안다스테 침몰 사고
1929년 8월 29일
77 SS 산 후안 침몰 사고
1929년 4월 21일
123 클리블랜드 클리닉 화재
1928년 11월 10일
111 SS 베스트리스 침몰 사고
1928년 11월 8일
20 프레블 박스 토 회사 폭발사고
1929년 8월 20일
22 스터디 클럽 화재
1928년 5월 19일
195 매터 광산 참사
1928년 4월 13일
38 웨스트 플레인스 댄스홀 폭발 사고
1928년 3월 12일
431+ 세인트 프란시스 댐 붕괴 사고
1927년 12월 17일
40 USS S-4 침몰 사고
1927년 11월 14일
28 피츠버그 가스 폭발사고
1927년 5월 18일
45 배스 학교 폭파 사건
1927년 11월 14일
26 SS 파푸스 침몰 사고
1925년 7월 4일
33 USS S-51 침몰 사고
1925년 7월 4일
44 픽 윅 클럽 붕괴 사고
1925년 6월 16일
47 록포트 열차 탈선사고
1925년 5월 27일
53 글렌 광산 참사
1925년 5월 17일
77 클리블랜드 학교 화재
1924년 12월 24일
36 밥스 학교 화재
1924년 9월 21일
26 SS 클리프톤 침몰 사고
1924년 6월 12일
48 USS 미시시피 주포 폭발 사고
1924년 5월 31일
24 호프 학교 화재
1924년 4월 28일
119 벤우드 광산 참사
1924년 3월 8일
172 캐슬 게이트 광산 참사
1924년 3월 8일
20 닉슨 니트로 공장 폭발사고
1924년 2월 5일
41 밀포드 광산 폭발 사고
1923년 9월 27일
30 겐록 열차 탈선 사고
1923년 9월 8일
23 혼다 포인트 참사
1923년 2월 8일
123 도슨 광산 폭발 사고
1923년 1월 3일
35 앨렌 대교 붕괴 사고
1922년 8월 27일
47 아르고넛 광산 폭발사고
1922년 2월 21일
34 로마 비행선 추락사고
1922년 2월 21일
29 슈피리어 시티 침몰 사고
1922년 1월 28일
98 니커보커 극장 붕괴사고
1920년 9월 16일
40 월스트리트 폭탄 테러
[ 1910년대 ]
||<tablewidth=100%><tablebgcolor=#ffffff,#1f2023><width=33%>발생일
<colcolor=#000>사망사건명
1919년 12월 20일
23 오나와 열차 탈선 사고
1919년 12월 18일
35 J.A 챈슬러 침몰 사고
1919년 6월 5일
92 발티모어 탄광 폭발 사고
1919년 1월 15일
21 보스턴 당밀 홍수 사건
1919년 11월 11일
101 맬본 스트리트 탈선사고
1918년 10월 12일
453 클로켓 화재
1918년 10월 4일
100 T.A 길레스피 회사 공장 폭발사고
1918년 7월 9일
101 1918년 내슈빌 열차 충돌사고
1918년 7월 5일
87 콜럼비아호 침몰 사고
1918년 6월 22일
86 해먼드 서커스 열차 충돌사고
1918년 6월 2일
52 스플릿 락 폭발사고
1918년 2월 26일
30 USS 체로키 침몰 사고
1917년 12월 20일
49 셰퍼드빌 열차 탈선사고
1917년 6월 8일
168 스페큘레이터 광산 참사
1917년 4월 27일
121 해스팅 광산 폭발 사고
1917년 4월 10일
139 에디스톤 광산 폭발 사고
1916년 8월 3일
24 배런 댐 붕괴 사고
1916년 11월 7일
46 서머 스트리트 다리 참사
1916년 8월 29일
43 USS 테네시 침몰 사고
1916년 5월 8일
2p SS S.R. 커비 침몰사고
1915년 10월 28일
21 세인트 존스 학교 화재
1916년 10월 20일
25 제임스 B. 콜게이트 침몰 사고
1915년 9월 27일
50 아드모레 폭발 사고
1915년 7월 24일
848 이스트랜드호 참사
1915년 5월 7일
1198 128 루시타니아호 침몰 사건
1915년 3월 25일
112 레이랜드 광산 참사
1915년 3월 2일
21 USS F-4 침몰 사고
1914년 9월 18일
60 프랜시스 H. 레짓 침몰사고
1914년 4월 28일
180 에클스 광산 참사
1914년 1월 30일
41 SS 먼로 침몰 사고
1913년 12월 24일
73 이탈리안홀 참사
1913년 12월 4일
28 아르카디아 호텔 화재
1913년 11월 10일
25 SS 헨리 B. 스미스 침몰 사고
1913년 10월 22일
263 도슨 광산 폭발 사고
1913년 7월 22일
31 브링햄턴 공장 화재
1913년 5월 24일
39 롱비치 피어 오디토리움 붕괴 사고
1913년 3월 7일
33 알룸 샤인 폭발 사고
1913년 2월 28일
25 듀이 호텔 화재
1913년 1월 10일
26 제임스 T. 스테이플 침몰 사고
1912년 7월 4일
39 코닝 열차 탈선 사고
1912년 4월 14일 ~ 4월 15일
1514 238 타이타닉호 침몰 사고
1911년 12월 9일
84 크로스 마운틴 광산 참사
1911년 9월 30일
78 오스틴 댐 붕괴 사고
1911년 8월 26일
21 캐논스버그 오페라 하우스 압사 사고
1911년 4월 9일
128 배너 광산 참사
1911년 3월 25일
146 트라이앵글 의류공장 화재사고
1910년 12월 22일
24 시카고 가축 판매소 화재
1910년 10월 7일
42 보데트 화재
1910년 10월 1일
21 로스 앤젤레스 타임즈 폭탄 테러
1910년 9월 8일
29 페레 마켓 18 침몰 사고
1910년 10월 5일
84 팔로스 광산 폭발사고
1910년 3월 21일
52 그린 마운틴 열차 탈선사고
1910년 3월 1일
96 웰링턴 눈사태
1910년 2월 6일
31 USS 니나 침몰 사고

[ 1900년대 ]
||<tablewidth=100%><tablebgcolor=#ffffff,#1f2023><width=33%>발생일
<colcolor=#000>사망사건명
1909년 12월 8일
30 ~ 38 마르케트 & 베세머 No.2호 침몰 사고
1909년 11월 13일
259 체리 광산 참사
1908년 12월 1일
24 D.M 클렘슨호 침몰 사고
1908년 3월 28일
59 1908년 한나 광산 폭발 사고
1908년 3월 4일
173 콜린우드 학교 화재
1908년 1월 13일
170 로드 오페라하우스 화재
1907년 12월 19일
239 다르 광산 참사
1907년 12월 9일
362 모농가 광산 참사
1907년 12월 1일
35 나오미 광산 참사
1907년 10월 11일
22 키프러스호 침몰 사고
1907년 9월 15일
26 카난 열차 탈선 사고
1907년 7월 21일
88 콜럼비아호 침몰 사고
1907년 2월 15일
20 우드론 열차 사고
1905년 12월 30일
602 이로쿼이 극장 화재 사고
1905년 7월 15일
66 USS 베닝턴 보일러 폭발 사고
1905년 6월 21일
21 20세기 리미티드 열차 탈선 사고
1905년 3월 20일
58 글로버 신발 공장 참사
1905년 3월 18일
24 1905년 레드 애쉬 광산 폭발 사고
1904년 9월 24일
56+ 뉴마켓 열차 사고
1904년 8월 7일
97 에덴 열차 탈선 사고
1904년 6월 15일
965+ 제너럴 슬로컴호 화재
1904년 4월 13일
36 USS 미주리호 주포 폭발 사고
1904년 1월 25일
181 해윅 광산 참사
1903년 12월 26일
21 이스트 파리스 열차 탈선 사고
1903년 12월 23일
64 코넬스빌 열차 탈선 사고
1903년 8월 6일
26 듀랑 서커스 열차 추돌사고
1903년 7월 29일
22 미국 탄약공장 폭발 사고
1903년 6월 30일
169 1903년 한나 광산 폭발 사고
1902년 9월 19일
115 샤일로 침례교회 압사 사고
1902년 9월 8 ~ 12일
65 야콜트 산불
1902년 7월 10일
112 롤링 광산 폭발 사고
1901년 9월 15일
24 허드슨호 침몰 사고
1901년 8월 15일
40 아일랜더호 침몰 사고
1901년 2월 22일
128 시티 오브 리오 데 자네이루호 침몰 사고
1900년 11월 29일
21 1900 빅 게임 참사
1900년 7월 4일
44 타코마 노면전차 참사
1900년 6월 30일
326+ 호보컨 부두 화재
1900년 6월 23일
35 ~ 37 캠프 크릭 열차 탈선 사고
1900년 5월 1일
200+ 스코필드 광산 참사
1900년 3월 6일
46 1900년 레드 애쉬 광산 폭발 사고
[ 1890년대 ]
||<tablewidth=100%><tablebgcolor=#ffffff,#1f2023><width=33%>발생일
<colcolor=#000>사망사건명
1894년 9월 1일
418 힝클리 대화재
1890년 2월 16일
100+ 월넛그로브댐 붕괴 사고
[ 1880년대 ]
||<tablewidth=100%><tablebgcolor=#ffffff,#1f2023><width=33%>발생일
<colcolor=#000>사망사건명
1889년 5월 31일
2208 존스타운 홍수

[ 1870년대 이전 ]
||<tablewidth=100%><tablebgcolor=#ffffff,#1f2023><width=33%>발생일
<colcolor=#000>사망사건명
1876년 12월 29일
92+ 애슈터뷸라 철도 참사
1876년 12월 5일
278 브루클린 극장 화재
1871년 7월 30일
125 1871년 스태튼섬 참사
1871년 10월 8일 ~ 10일
300+ 시카고 대화재
1871년 10월 8일
1700+ 페시티고 대화재
1865년 4월 27일
1700+ 술타나호 침몰 사고
1860년 9월 7일
300+ 레이디 엘진 호 침몰 사고
1860년 1월 10일
88 펨버튼 공장 붕괴사고
||

16. 외부 링크

Pacific Battleship Center, official museum site, USS Iowa
Battleship New Jersey museum
Battleship Missouri Memorial
Nauticus, Norfolk, VA, USS Wisconsin


[1] 공통점은 양측 해군에게 받는 기대가 컸던 군함이였다는 것이고, 차이점이라고 하면 야마토는 자살 임무에 투입되어서 미군에게 두들겨 맞다 결국 별 성과 없이 허무하게 어뢰에 뇌격당해 오키나와 인근에서 침몰당하고 동일 함급마저도 전부 미군에 의해 침몰당했지만, 아이오와급 전함은 화려한 성과를 이루고 적국의 항복을 받아냈으며, 현재에도 살아남아 박물관이 되어 편안한 여생을 누리고 있다.[2] 고철로 매각하는것도 안된다. 아마 냉전 중 재취역으로 인해 핵탄두 운용능력을 부여했기 때문인듯 하다.[3] 차를타고 조금만 가면 RMS 퀸 메리폭스트로트급 잠수함이 있으니 같이 들르는것을 추천한다.[4] 강건너편 필라델피아에 올림피아 순양함과 베쿠나함이 있고 조금만 더 내려가면 SS 유나이티드 스테이츠가 있다(내부는 못들어감) 또 필라델피아 네이비 야드에 가면 모스볼처리된 군함들과 스크랩 예정인 존 F. 케네디함이 있으니 함께 보고가는것을 추천한다.[5] 근처에 USS 유타USS 보우핀, 그유명한 USS 애리조나, 항공박물관과 79번 격납고등등 볼거리가 넘친다[6] 주변에 해군기지가 즐비해있어서 현역 군함들을 감상하기 좋다.[7] 1986년 12월, USS New Jersey BB-62 firing all her 16"/50 (406mm) main guns, 뉴저지의 함교는 건조시에는 아이오와 초기형의 개방형 함교를 가지고 취역 후 43년 10월 둥근 형상의 함교로 개장을 받았고, 1945년 오버홀에서 1951년 5월 18일 한국전쟁중의 뉴저지[8] 상하이에서 행사 참여 중 윤봉길 의사의 의거로 한쪽 다리에 장애를 가지게 되었다.[9] 다만 태풍 코브라로 인해 3함대가 개박살났지만 그래도 당대 최신형 전함의 위용이 어디가는건 아니라 뉴저지는 비교적 멀쩡했다. 태풍으로 인해 뉴저지가 재껴지고 미주리가 대신 선택됐다는 건 뉴저지 박물관함 보존회의 일방적인 주장일 수도 있다.[10] 항복 조인식에서도 연합군 대표 서명은 맥아더 장군이 했지만 그 대신인지 니미츠 제독 또한 미합중국군 대표로 서명했다.[11] 155mm로 오기된 사료들이 많은데, 당시 북한군의 운용 화포를 생각해보면 152mm였음이 거의 확실하다, ML-20으로 추정된다.[12] 전함의 주 함포탑과 선체의 집중방호구역은 대응방어를 목표로 하여 중장갑을 유지하지만 그 외의 선체나 부포탑, 대공포좌 등은 최소한의 장갑만 남겨놓는다. 특히 당시 40mm 대공포좌는 전면에서 날아오는 기총소사 정도만 막을 수준의 방탄판만 둘러놓은 형태라 152mm 포탄에 해당 부위를 얻어맞고 사망자가 안 생긴건 그야말로 행운인 셈.[13] 알렌 M. 섬너급 구축함[14] 원어 표현 그대로 살린다면 "그놈의 성질머리하고는.." 정도가 될 수 있겠다.[15] 위키피디아 항목 참조.[16] 과달카날 해전을 승리로 이끌었으며 레이더를 이용한 전함 포술에 대단히 뛰어났다.[17] GM2 계급. 미군/계급의 미 해군 기준으로는 E-5이다.[18] 왜냐하면 당시 미해군의 주력 함포 자리가 이미 Mk.45 5인치 함포로 넘어갔기 때문이다. 당연히 몇년뒤 퇴역한다는 얘기가 공공연연하게 나오고 전세계에 겨우 27문 밖에 없는 Mk.7 16인치 함포를 위해 새로 생산라인을 깔고 부품을 공급해줄 방산업체는 단 한 곳도 없었다.[19] 당시 인사참모부장(Chief of Naval Personnel)이었다.[20] 다만 전함이 등장하는 게임들은 보통 포탄 파편에까지 물리법칙을 구현하지는 않기에 아이오와급은 화력에서 다소 약세를 보이며, 이러한 게임들은 실제보다 작은 맵에서 전투하는 일이 잦아 관통력으로도 차별화하기 힘들다.[21] 만약 명중탄이 나왔다면 해상 포격전의 역사상 최장거리 명중탄 기록이 될 뻔 했다.[22] 위에도 잠깐 언급되지만, 당시 미 해군의 포격전, 그중에서도 특히 레이더 조준 사격의 제1인자였다. 1942년 11월의 과달카날 해전 당시 노스캐롤라이나급 전함 워싱턴을 주력으로 한 TF64를 지휘, 일본 해군의 공고급 순양전함 기리시마를 야간 포격전 끝에 용궁으로 보낸 당사자이기도 하다.[23] First firing of weapons in combat in attack on Japanese naval base at Truk in Caroline Islands. In action off Truk, the USS IOWA sank light cruiser Katori.[24] the task force accounted for two Japanese light cruisers, four destroyers, three auxiliary cruisers, two submarine tenders, two submarine chasers, an armed trawler, a plane ferry, and 23 other auxiliaries, not including small craft. New Jersey destroyed a trawler and, with other ships, sank destroyer Maikaze, as well as firing on an enemy plane which attacked her formation.[25] Battleships: United States Battleships, 1935-1992, 140쪽.[26] Iowa Class Battleships: Their Design, Weapons and Equipment, 128쪽, Battleships: United States Battleships, 1935-1992, 147쪽.[27] Battleships: United States Battleships, 1935-1992, 89쪽.[28] 미국의 대서양 정기 여객선. 유사시 군 수송선으로 사용할 목적으로 여객선에 걸맞지 않은 엄청나게 강력한 주기관을 탑재했다. 248,000마력(180,000kW), 과부하시 298,000마력.[29] 엄밀히는 SS 유나이티드 스테이츠는 군함이 아니지만, 유사시 고속으로 육군 병력을 수송하는 임무를 띠고 있었다. 자세한 것은 해당 항목 참고. 이런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고 민간선박은 대형선박이 고속을 필요로 하는 경우가 적은 데다 운용비용에 민감해서 초대형 선박이라도 오히려 항공모함보다 출력이 작은 편이다. 그나마 장거리 제트 여객기 출현 이전에야 여객선은 속도가 중요하던 때도 있긴 했지만, 이후로는 전멸.[30] 야마토급 전함도 비슷하지만, 야마토급은 폭이 넓고 변곡점의 위치도 다르다는 차이가 있다.[31] 참고 : N. Friedman, "US Battleships : An illustrated design history",Naval Institute Press 1985 p.311[32] 사실 아이오와급의 주포는 노스캐롤라이나급이나 사우스다코타급의 주포와 다르다. 아이오와급은 16인치 50구경장 Mk.7으로 무장했으나 노스캐롤라이나급과 사우스다코타급은 16인치 45구경장 Mk.6로 무장했다. Mk.7이 포신이 더 길어 사거리나 관통성능이 보다 우수했으나 Mk.6의 포탄이 낙하시 낙각은 더 컸다. 이 때문에 갑판장갑 관통능력은 Mk.6에 비해 살짝 뒤쳐졌다.[33] 당시 논쟁의 양상은 상당히 지저분하게 흘러갔는데 양쪽의 감정이 격해져서 상대의 주장을 곡해한다거나 곰리 제독에 대한 인신공격까지 나오는 양상이었다. 당시 아이오와급은 공고급은 안중에도 없었다는 주장과 공고급을 염두에 두었다는 주장과 공고급에만 대응하기 위해서 만들었다는 주장이 뒤섞여서 논쟁이 벌어진 것도 이러한 양상에 한몫했던 것으로 보인다.[34] Admiral Rober L. Ghormley, the director of War Plan, argued that although three 45,000-ton battleship might match three Japanese Kongos, the new Japanese battleships might well also have to matched.[35] 일본이 건조한 신형 전함이 18인치급이라는 사실을 미국이 알게 된 것은 1944년 2월 공중정찰에서 이 함선이 촬영된 이후이다.[36] 1944년 2월, 공중 정찰을 통해 야마토를 직접 포착한 뒤에야 18인치급으로 추정할 수 있었고 얼마 뒤 포로 심문을 통해 이 신형 전함의 주포가 46cm짜리라는 사실을 확인했다.[37] U.S. Battleship ; AN ILLUSTRATED DESIGN HISTORY 309p, the first approach was to add another triple 16in/45 on a lengthened South Dakota hull, the extra tonnage being absorbed in extra hull structure, in extending the armored box, add in adding power(to maintain 27 knots) ~~ all protected aganist 16-inch shellfire : one with nine rather than twelve 16-inch guns[38] There was also the cruiser-killer (줄임) She would be armed with twelve 16-inch guns, as well as the usual secondary battery of 5-inch guns, and to be capable of 35 knots. (줄임) Unlike full battleships, she was to be protected aganist 8-inch shellfire between 10000 and 30000 yards. (줄임) the others (with nine or twelve guns)[39] the others (with nine or twelve guns) having speed reduced to 32.5knots.(with nine or twelve guns) The fast ship would have to be justified as a combination cruiser-killer and true battleship.[40] Although they were havier, for their size, than the more modern 16in/45 adpoted for the 35000ton battleships, they were considered ballastically superior even to a proposed 18 inch gun[41] 일본에서도 이를 알고 있었기 때문에 공고급은 함대결전사상에는 포함되지 않았으므로 아낄 필요 없이 여기저기에 투입되었다.[42] 출처 : U.S. Battleships An illustrated Design History 307p[43] 동 서적 309페이지[44] On 17 January 1938 Captain A.J. chantry, head of the design division, asked his group to study a ship unlimited in displacement, although able to pass through the panama canal.[45] Early in 1938 preliminary Design began work on the first at the request of Admiral Thomas C. Hart, chairman of the general board. (줄임) Studies made at the end of Febraury, however (이하)[46] These were still very large ships. For example, the new scheme B, nine 16-inch and 32.5 knots, would displace nearby 53000tons.[47] 이때 수영장이 탑재되기도 하였다고 한다. ##[48] 아이오와의 주포는 350발까지 포신이 견딜 수 있다. 따라서 새 주포를 장착한 상태에서 주포탄을 3150발 정도까지만 쏠 수 있다. 단 5번함 일리노이와 6번함 켄터키를 건조하려고 만들어둔 포신과 일부 예비 포신 정도는 있긴했다. 전후에 진행된 실험에 위의 포신이 사용되긴 했지만, 거기 쓰고도 남는 포가 있었을 수 있다. 전함이란게 워낙 달고다니는 포가 많다보니 중도에 취소된 두 척 분량에서 몇 개 빼다써도 한 척 포신교체할 정도는 남을 수 있기 때문이다.[49] 구파나마 운하 폭 제한 33 m고, 아이오와급은 그보다 조금 작다.[50] 이때 아이오와를 복원해야했는데 2011년까지 다른자매함들은 박물관함이 되어있었던 반면에 아이오와만 모스볼 처리가 되어있었다. 복원도중에 철거된 하푼과 CIWS들을 다시 장착했는데 하푼발사관은 몰라도 CIWS는 거의 모조품이란게 티가난다. #[51] 이렇게 써 있기는 하지만 전함 포탄도 마냥 저렴한 물건은 아니고, 포의 유지보수 비용도 만만치 않다. 다만 미사일보다는 싸다는 이야기.[52] 기존의 일반 고폭탄도 시한 신관을 맞추면 당연히 대공사격을 할 수는 있지만 말 그대로 할 수는 있다 수준이지 적기의 격추를 기대하면 안된다.[53] 76.67km[54] 208kg이라는 자료도 존재한다.[55] https://www.defenseindustrydaily.com/files/2007-05_JFSC_Thesis_NFS_and_DDG-1000.pdf 53p[56] 현재 미 해군에서 개발중인 레일건보다도 더 멀리 날아간다. 만일 이 포탄이 실전 배치되었을 경우 관측 자산만 있다면 전함이 항공모함을 상대할 수 있게 되었을 것이다.[57] 주력 이지스함인 타이콘데로가급도 30년 정도만 굴리고 퇴역한다.[58] https://www.defenseindustrydaily.com/files/2007-05_JFSC_Thesis_NFS_and_DDG-1000.pdf 55p[59] 아무래도 전략무기인 만큼 탑재 여부 자체가 기밀이라 유출을 방지하기 위함인 듯 하다.[60] 핵탑재 대함미사일을 장비한 폭격기나 구축함, 순양함 등이 적 전함의 호위전력을 뚫기 어렵다.[61] 현재도 강선을 파주는 절삭기 헤드가 남아있으나 그마저도 전시중이다. 또 강관을 넣어 가열하는 공법 등 주포 만들때 쓰던 금속 가공공법은 아직 쓰이고 있다.[62] 장약 주머니 방식을 의미한다.[63] 1983년 당시 개장받은 모습이다. 후갑판에 있는 것도 수상기가 아닌 헬리콥터.[64] 테러리스트가 CIA요원이었던 시절 북한에서 탈취한 잠수함이라고 언급한다.[65] 5인치 양용포에 탑재되어 있던 조명탄을 사격해 잠수함의 위치를 파악, 16인치 첫발 사격으로 거리를 측정, 3발째에 직격시켜 잠수함이 잠항하기 전에 완전히 가루로 만들어 버린다.[66] 실제 군함에서 사용 가능하긴 한 회피 기동법이다. 마치 드리프트를 하듯이 이동 방향을 급히 돌릴 수 있는 것이 특징. 단, 저속인 상황에서만 가능한데 닻에 달린 쇠사슬이 인장력을 못 버티거나 주위 장갑이 충격을 못 버티기 때문이다. 실제 아이오와급 전함이었다면, 앵커 드리프트를 할 때 쇠사슬이 끊어지면서 앵커 모터가 박살나고 주위의 장갑이 모두 뜯겨 나갔을 것이다. 다만 닻을 버리고 다시 전진할 때 스크류가 다시 돌아가는 모습을 보면 함을 감속하면서 닻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 이런 경우 전속전진 상태에서 내린 것보다는 함의 피해가 덜할 것이다.[67] 실제 영화에서 해당장면에 나오는 음악은 배틀쉽OST 17번트랙 “Somebody’s Gonna Kiss The Donky”이다. 정확히는 닻이 내려가는 동안은 17번 트랙, 닻이 다 내려가고 함선이 멈춰 포탄이 빚나가는 순간은 효과음만, 드리프트를 하면서 조준완료 후 신나게 쏴재끼는 장면은 18번트랙 “Super Battle” 이라는 곡이 사용됐다.해당장면. 함선이 드리프트를 하는 장면에 이니셜D의 Deja Vu를 입힌 영상이 유튜브에 존재하긴 하나, 드리프트 장면을 보고 이니셜D를 떠올린 누군가가 만든 영상인듯 하다.(해당영상) 자세히 들어보면 전체적인 분위기와 굉장히 안어울린다.[68] 노병분들께서 M2 브라우닝 중기관총도 시원하게 갈겨주신다. 생긴 걸 보면 오리콘 20mm 단장기관포로 보인다.[69] 정확한 거리는 나오지 않지만 적함과의 거리가 150~200m밖에 되지 않는다는 발언이 나온다. 약 40km 이상에 달하는 사거리에 비하면 그야말로 초 근접거리다.[70] CIWS로 나름 선방 했으나, 결국 기동불능에 빠졌고 이후 벌집 피격을 받아 완파당한다.[71] 실제로 미 해군에서 제작되었던 주포이다. 전함에 탑재되거나 하지는 못했지만.[72] 1편에서 세이브를 담당했던 메이 링이 한 노제독의 눈에 들어서 미주리의 함장이 되었다.[73] 게임중 영상을 보면 헤이븐 트루퍼까지 난입해서 미 해병대와 미 해군 병사들이 고전하는 장면을 볼수 있다.[74] 다만 키로프 외의 소련 함대가 주포 사거리 안에 순순히 들어가줄 리가 없을 뿐더러, 그 전에 키로프에서 발사한 P-700에 한두발이라도 얻어맞고 레이더 등의 외부 사격통제장치가 죄다 맛이라도 가면 뉴저지는 주포탑은 멀쩡하지만 협차도 제대로 못 내는 눈 뜬 장님 신세로 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