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Ashtabula Bridge Disaster1876년 12월 29일 미국 오하이오주 애슈터뷸라에서 일어난 열차 탈선사고.
2. 사고 내용
이리발 시카고행 퍼시픽 익스프레스 #5 열차는 사고 3시간 전, 뉴욕 주 버팔로를 지났다. 눈이 너무 쎄 기관차 2대를 달고 움직여야 했다. 그럼에도 시속 16km 정도의 속도로 밖에 달리지 못했다.오후 7시 30분, 열차가 애슈터뷸라를 지날 때, 다리에서 끊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첫번째 기관차는 간신히 지나갔으나, 두번째 기관차가 지날 때 다리가 완전히 무너졌다. 기차는 21m 아래로 추락했다. 사고 당시 소리는 800m 밖에서도 들릴 정도였다.
추락한 열차에서 램프가 깨지며 화재가 일어났다. 아직 빠져나오지 못한 사람들은 화재로 사망했다. 생존자들은 기차에서 빠져나와 얼어붙은 강 위를 건너 간신히 살아남았다.
애슈터뷸라에서 소방대원이 출동했으나 날씨가 너무 추워 소방차가 작동하지 않아 물을 제대로 뿌리지 못했다. 호스로 물을 뿌리지 않고, 강에서 양동이로 물을 떠다 뿌렸다. 애슈터뷸라는 하도 작은 마을이라 병원이 없어 부상자들은 근처 호텔이나 주민들의 집에서 치료를 받다가 병원에 이송됐다. 사고를 틈타 희생자들의 유품을 훔치는 도둑도 나타났다.
오후 10시, 클리블랜드에서 구조대원과 의사들이 탑승한 열차가 사고 현장으로 출동했다. 하지만 눈이 너무 와서 출동하는데 지장이 있었다. 도중 내려서 눈을 치우고 다시 출발하기를 계속 반복했다.
사고로 최소 92명이 사망했다. 상당수의 사람이 추락 당시 사고로 사망했다. 사망자 중에는 유명한 찬송가 작곡가 필립 폴 블리스#도 있었다. 화재가 너무 심해 열차 잔해가 녹았고, 시신들 상당수의 신원을 파악할수가 없고, 화재로 아예 백골이 된 사례도 많아 사망자 수는 아직까지도 부정확하다. 사고는 19세기 미국에서 가장 많은 목숨을 앗아간 철도 사고로 기록됐다.
3. 사고 원인
사고 원인 조사를 책임지던 찰스 콜린스는 살해된채로 발견됐다. 진범은 찾지 못했다. 그나마 다행히 사고 원인은 밝힐수 있었다.사고 원인은 애슈터뷸라의 철교를 전부 금속으로 바꾸는 과정에서 부실공사가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1865년, 레이크 쇼어 & 서던 미시간 철도회사는 오하이오 주 북동쪽 애슈터뷸라 강의 철교들을 나무에서 금속으로 바꾸는 작업을 해야했다. 당시 회장이었던 아마사 스톤(Amasa Stone)은 매부 윌리엄 하우(William Howe)가 운영하던 회사 하우 브릿지(Howe Bridge)에서 특허권을 구입해, 기존에 목재로 만들던 나무 디자인 그대로 철제로 바꾸었다. 교체하는데는 당시 기준 약 75,000달러가 들었다.
바뀐 다리는 전부 철제로 된 트러스 형태였다. 하지만 이러한 형태의 다리는 열차가 건너가기엔 부적합한 형태였다. 트러스를 지탱하는 앵글 블럭이 너무 적고 작은데다, 철교를 만드는 과정에서 공기가 많이 들어가 구멍이 생겼고, 세월이 흐르면서 열차의 무게와 날씨에 따른 열팽창을 이기지 못해 구멍이 균열로 커지면서 무너진 것으로 드러났다.
또한 열차엔 1869년 5월 4일에 통과된 법에 따라 사용되어야 하는 자체소화 가능한 스토브가 없어 사고가 화재로 이어졌다.
4. 사고 이후
사고 이후 애슈터뷸라에는 대형 병원이 들어섰다. 병원은 현재도 에슈터뷸라 카운티 메디컬 센터(Ashtabula County Medical Center)라는 이름으로 운영중이다.애슈터뷸라에는 희생자를 기리는 공동 무덤과 추모비가 세워졌다.#
애슈터뷸라 공공 도서관에선 당시 사고 잔해와 희생자들의 유품 등을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