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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3-11 23:12:07

로드 오페라하우스 화재



주의. 사건·사고 관련 내용을 설명합니다.

이 문서는 실제로 일어난 사건·사고의 자세한 내용과 설명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파일:로드 오페라하우스 화재.jpg

1. 개요2. 상세3. 사고 이후

1. 개요

Rhode Operahouse Fire

1908년 1월 13일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보이어타운의 로드 오페라 하우스에서 일어난 화재.

2. 상세

로드 오페라하우스는 1885년에 토마스 J.B 로드 박사(Thomas J.B Rhoads)가 지은 빌딩으로 1층엔 은행과 보험회사, 그리고 공구 판매점이 있었고 2층엔 오페라 하우스, 3층엔 미팅 홀이 있었다.

당시 세인트 요한 루터 교회 멤버들이 로드 오페라 하우스에서 공연을 펼칠 예정이었다. 관객석엔 약 400여명의 사람들이 모여들었고 교회 멤버 60명이 대사를 외우고 분장을 하며 공연을 준비 중이었다. 해당 공연은 스코틀랜드 메리 여왕 처형식을 다룬 연극 "스코티쉬 개혁(Scottish Reformation)"이었다. 공연과 함께 슬라이드 쇼도 준비됐는데 스테레옵티콘, 일명 '매직 랜턴' 으로 펼쳐지는 슬라이드쇼였다. 매직 랜턴은 수소산소칼슘빛을 내 영사 해주는 기기인데 영화가 나온 지 얼마 안 됐던 1900년대 초반에는 신기술이나 다름없는 물건이라 사람들이 많이 궁금해했다.

그렇게 공연이 진행되었는데 3막때 쯤 문제가 생겼다. 매직 랜턴과 연결된 산소 탱크와 수소 탱크의 튜브가 풀리면서 가스가 세어나왔다. 가스는 무대 위 피아노의 램프 불에 닿으면서 불이 붙었다. 공연 진행자들은 불을 어떻게든 꺼 보려고 했으나 불은 순식간에 커지면서 공연장 커튼에도 불이 붙었으며 관객들은 겁에 질려 달아나기 시작했다. 문제는 문이 안으로 열리는 구조라서 대피가 늦어졌다는 점이다. 사람들이 너무 달라붙어서 문을 당기기도 힘들었으며 몇몇 문은 아예 잠겨 있었는데 문 담당자가 공연에 너무 빠져든 나머지 사람들이 못 오게 막으려고 문을 잠근 뒤 공연을 구경했기 때문이다. 창문을 열고 뛰어내린 사람들도 있었다. 한 문은 사람들이 너무 몰린 나머지 부서졌고 문 앞으로 몰려들었던 사람이 쏟아져 나와 계단에서 추락사하기도 했다.

간신히 탈출한 사람들이 인근 소방서로 달려가 화재가 났다고 알렸다. 소방서에서 급히 출동했으나 너무 급하게 출동한 나머지 사고가 나고 말았다. 소방차가 나무를 들이받고 넘어지면서 소방관 몇명이 소방차에 깔려 숨졌다. 보이어타운은 그리 규모가 큰 도시가 아니라 소방차 수가 적었고 이 때문에 안 그래도 적은 소방차가 출발을 못 하게 됐다. 다른 소방차가 도착했을 땐 불길이 이미 오페라하우스를 전부 집어삼켰다. 의사도 적어 기차로 1시간 거리 마을에서 의사와 간호사가 지원와야 했다.

불은 다음날이 되어서야 간신히 꺼졌다. 불길이 너무 세서 건물 일부가 무너지기까지 했다. 시신의 상당수는 불에 너무 훼손되어 신원 파악이 힘들 정도였다.

결국 이 화재로 170명이 사망했다. 사망자 중 가장 어린 희생자는 겨우 3살이었다. 보이어 타운 인구의 10%가 이 사고로 사망해 희생자들이 운영했던 가게들이 운영을 중단해야 했고 타고 왔던 말이 오페라 하우스 밖에서 굶주리거나 장례식을 틈 타 소매치기가 나오는 등 보이어 타운의 경제에 문제가 생길 정도였다. 이 화재로 15명은 고아가 됐고 21명은 어머니를, 14명은 아버지를 잃었다. 이 사고는 보이어타운 역사상 최악의 사건으로 기록됐다.

3. 사고 이후

매직 랜턴은 산소와 수소를 사용하는 만큼 굉장히 위험했고 때문에 최소한 3개월 이상 훈련을 한 사람만 사용하도록 되어있었으나 당시 매직 랜턴을 다뤘던 해리 벡텔(Harry Bechtel)은 고작 2일만 사용했다. 이 때문에 해리에게 사고 원인이 몰렸고 해리는 자신도 피해자일 뿐 사고를 낸 사람이 아니라 주장했다. 화재 현장이 불에 너무 훼손되어 조사조차 힘들었기 때문에 그의 주장이 사실인지 아닌지는 아직도 정확하지가 않다.

시어도어 루즈벨트 대통령은 사고 소식을 접하고 애도를 표했으며 아르망 팔리에르 프랑스 대통령도 사고 소식을 접하고 애도를 표하는 편지를 보냈다.

사망자 중 107명은 페어뷰 공동묘지, 15명은 유니온 공동묘지에 묻혔다.

펜실베이니아 전역에서 희생자를 위해 18,000달러가 모였고 구호위원회에 22,075달러가 모였다.

사고 이후 극장에는 추가적으로 비상구가 설치되도록 법으로 규정됐고 관객석 양 옆에 문을 추가적으로 설치하도록 했는데 문은 반드시 바깥으로 열리도록 규정됐고 극장 무대엔 반드시 소화기가 비치되도록 규정됐다.

건물은 5년 뒤 다시 세워졌지만 오페라 하우스는 다시 들어서지 않았다. 건물에는 사고를 기리는 추모명패가 붙어 있으며 인근 공동묘지에도 희생자를 기리는 추모비가 세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