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Cherry Mine disaster'1909년 11월 13일 미국 일리노이주 체리에서 일어난 광산 화재.
2. 사고 내용
사고가 난 광산은 1905년에 세인트 폴 석탄 회사(St. Paul Coal Company)에서 연 광산으로, 시카고, 밀워키와 세인트 폴을 지나는 열차에 석탄 공급하기 위해 연 광산이다. 탄광은 열자마자 하루에 1500톤에 달하는 석탄을 생산했다. 당시만 해도 미국 최대 탄광이었고, 가스등이 아닌 전기등을 설치해 화재로 부터 안전하다고 소문났다. 광산에서 일하던 사람들은 대부분 이탈리아 출신 이민자로, 아동노동이 관대하던 시기라 아동 노동자들도 많았다.사고 당일, 광산 내에서 짐을 옮기는데 쓰던 60마리에 달하는 노새에게 먹이 주러 지푸라기 실은 카트가 안으로 들어갔다. 당시 몇주 전 부터 전기 문제 있었고, 당일엔 전기 나가 임시로 등유 램프 켜서 들고 다니거나 벽에 걸어뒀다. 그런데 한 직원이 지푸라기 카트를 등유 램프에 너무 가까이 뒀고, 지푸라기에 불이 붙었다.
불은 광산 지지용 나무 기둥들 태워가며 순식간에 커졌다. 광산 측에선 평소엔 공기를 불어넣어 산소를 공급하던 환풍구를 반대로 돌려 불을 꺼보려 했으나 하지만 이로 인해 탈출용 사다리, 계단에 불 붙어 상황 악화됐다.
200여명의 광부는 탈출에 성공했다. 이들 중 12명은 광산에 다시 돌아가 동료들을 구조했다. 6번 반복하면서 동료들 구출했는데, 하지만 7번째에 엘레베이터 조작자가 싸인을 잘못 알아듣고 늦게 올리는 바람에 전원 사망한다.
소방대가 도착했으나 회사 측에서 사람들 내려보내는 걸 반대해 일단 공기 드나들던 구멍으로 물을 뿌렸다.본격적인 구조 작업도 다음날이 되어서 일리노이 대학교의 구조 전문가 R. Y. Williams 도착한 뒤에야 시작됐다. 윌리엄은 새로 개발된 헬멧과 산소통들 들고 왔다. 구조대원들이 안에 수차례 드나들면서 사람들 구조했고, 1월 14일엔 1.2km 길이의 소방호스도 동원했다. 밀워키와 시카고에서도 구조 장비를 지원해 분당 600갤런의 물 퍼부으며 화재를 진압했다.
몇몇 생존자 그룹은 불길과 가스를 막기 위해 임시로 벽을 세우고 광산 내부에 흐르는 샘에서 나오는 물을 마셔가며 음식없이 8일 버텼다. 물이 흐르는 곳을 더 찾기 위해 광산을 파내다가 구조대와 만나 21명 모두 탈출에 성공했다. 안타깝게도 1명은 구조된 지 얼마 안되어 천식으로 사망했다.
이후 회사에서 광산 입구 및 환풍구 봉해 산소공급 막아 화재 진압했고, 3달 후 광산 다시 열어 희생자 시신 수습했다.
사고로 259명이 사망했다. 사고는 미국 탄광 역사상 3번째로 많은 목숨 앗아간 사고로 기록됐다.
3. 사고 이후
사고 이후 일리노이주에서 광산 관련 법이 개정됐다.사고 현장 인근에 희생자들 기리는 추모비가 세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