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모에 미러 (일반/어두운 화면)
최근 수정 시각 : 2024-03-18 14:12:47

실버 브리지 붕괴사고



주의. 사건·사고 관련 내용을 설명합니다.

이 문서는 실제로 일어난 사건·사고의 자세한 내용과 설명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1. 개요2. 실버 브리지3. 사고 전개4. 사망자와 생존자5. 사고 이후

파일:실버 대교 붕괴1.jpg

1. 개요

The Siver Bridge Disaster

1967년 12월 15일 미국 오하이오 강의 실버 브리지가 무너진 사고.

2. 실버 브리지

파일:실버 대교.jpg
실버 브리지는 1백만 달러를 들여 1928년 5월에 건설을 시작해 1928년에 완공된 530m 길이의 대교로, 53번 국도와 연결되어 있었다. 옆에는 철교가 따로 있어 두 다리가 오하이오 강을 가로지르고 웨스트 버지니아주의 포인트 플레선트(Point Pleasant)와 오하이오주의 갈리폴리스(Galipolis)를 이어 줬다. 알루미늄으로 만들어져 은색 빛을 띄어서 이름을 실버 브리지라고 지었다. 두 개의 큰 기둥을 기반으로 지어진 트러스트교로, 다리가 그 사이에 연결된 형태였다.

다리를 디자인한 사람은 American Bridge Company의 존 에드윈 그레이너(John Edwin Greiner)였는데 원래는 만들면서 기둥과 트러스트교를 잡아줄 역할로 강철 케이블을 쓰려고 했으나 돈 문제로 아이바 체인#을 사용했는데 쉽게 생각해서 자전거 체인에서 체인 길이를 엄청 늘린 것이라고 보면 된다.[1] 만드는 데 쓰인 아이바의 두께는 2인치(5cm), 길이는 16m와 13m 짜리 2개였다. 일반적으로 아이바 체인을 쓸 때는 아이바 여러개를 겹치고 연결해야 했으나 실버 대교는 2개씩만 연결했다. 문제는 아이바 공법은 아이바 하나가 끊기면 다른 아이바들이 막아주는 형식으로 붕괴를 막았는데 2개만 연결하면 남은 1개가 다리의 무게를 버텨야 했기 때문에 매우 위험한 방식이었다는 점이다.

만들어질 당시엔 차량 자체가 그리 무겁지 않았으나 시대가 지나면서 차량도 발달했고 차량들도 그만큼 많이 무거워졌다. 다리 제작 당시 일반적인 승용차였던 포드 모델 T의 무게가 680kg, 가장 무거운 트럭이 9톤이었지만 점차 시간이 흐르면서 승용차는 평균 1.8톤으로, 트럭은 최대 27톤으로 무게가 무거워졌다. 다리가 처음 지어질 때는 도로를 나무와 아스팔트로 만들었으나 1940년대에 들어서야 철근 콘크리트로 바꾸었다. 그렇게 다리는 아슬아슬한 상태로 유지되면서 점차 무거워지는 차량들을 간신히 버텨내야 했다.

3. 사고 전개

파일:실버 대교 붕괴2.jpg

사고 당일 오후 5시 경 러시 아워 시간대라 차가 몰리는 가운데 다리가 갑자기 굉음을 내면서 아이바 하나가 끊어졌다. 3mm 정도의 작은 금이 가 있었는데 39년간 이어진 충격을 버티다가 결국 이 작은 금이 옆으로 이어졌고 이것이 원인이 되어 다리와 차량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끊어졌다. 그렇게 아이바 하나가 끊어지고 뒤이어 수많은 아이바들이 끊어지더니 철근이 휘고 결국 다리 전체가 무너졌다. 목격자 중 한 명은 "카드 탑이 무너진 것 처럼 다리가 무너졌다." 고 회상했다.

당시 위에 있던 1대의 차량은 다리가 흔들림을 느끼고 핸들을 돌려 다리를 빠져나와 극적으로 사고에 휘말리지 않았지만 차량 32대는 미처 피하지 못한 채 섭씨 6도의 차가운 겨울 강으로 떨어졌다. 신고를 받고 구조대가 출동했고 구조대는 보트를 끌고 와 강에 떠내려가던 사람들을 구조했다. 그렇게 구조된 21명은 간신히 목숨을 건졌고 이 중 9명은 중상이었으며 46명은 목숨을 잃었다. 잠수부와 바지선이 동원되어 강 밑으로 가라앉은 차량과 시신을 최대한 찾아냈으나 2명의 시신은 찾지 못했다. 이 사고는 미국 역사상 가장 많은 사람의 목숨을 앗아간 교량 사고로 기록되었다.

4. 사망자와 생존자

5. 사고 이후

사고 이후 같은 방식으로 지어진 다리들을 검사했는데 몇몇 다리는 아예 철거하고 다시 지어야 했다.

1969년에 다리가 다시 지어졌는데 다리 이름은 실버 매모리얼 브릿지가 되어 희생자를 기리고 있다. 원래 위치보다 1.6km 남쪽에 위치한 장소에 건설되었고 이 다리를 지나던 36번 국도도 시가지를 우회하는 선형으로 건설되었다.

포인트 플레선트에는 현재 사고를 기리는 추모비가 설치되어 있다.# 포인트 플레선트강 박물관에 이 다리의 모형이 전시되어 있었으나 2018년 7월에 일어난 화재사고로 휴관 중이다. 피해는 적어서 모형을 비롯한 대부분의 전시물이 온전하고 장소를 이전해서 재개관할 계획이라고 한다.

이 사고로부터 50년 후 실버 브리지 조각이 강바닥에서 발견되기도 했다.#

여담으로 사고 당시 모스맨을 목격했다는 루머가 떠돌았고 관련 괴담도 많이 떠돌았다. 모스맨 하면 함께 나오는 "모스맨이 목격된 다리가 무너졌다." 에서 말하는 다리가 무너진 사고가 바로 이 사고다. 실제로 실버 브리지가 연결해 주던 마을인 포인트 플레선트는 모스맨으로 유명한 곳으로, 해마다 모스맨 축제가 열리며 미스 모스맨을 선발하기도 한다.
[1] 차들이 지나는 대교의 케이블을 자전거 체인 두께의 줄을 쓴다는 것 자체부터 문제였다.[2] 앞서 다리에서 숨진 멜빈 캔트렐(Melvin Canterll)과는 관계 없는 인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