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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0-30 00:27:42

월넛그로브댐 붕괴 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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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월넛그로브댐 붕괴 사고.jpg

1. 개요2. 발단3. 설계4. 붕괴5. 여파

1. 개요


영어: Walnut Grove Dam

월넛그로브댐 붕괴 사고는 1890년 댐이 붕괴하면서 100명 이상 사망한 참사다.

2. 발단

월넛그로브댐은 미국 애리조나주 중앙의 하사얌파강을 따라 건설된 광산용 댐이다. 골드러시 시절 금광 개발을 주로 하던 베이츠 가문에서 건설했는데, 거듭된 부실 시공으로 댐이 완공되기도 전에 붕괴했다.

3. 설계

베이츠 형제는 해당 지역의 금광을 매입하고 당시 캘리포니아에서 흔하던 수압 채굴 방식으로 개발하려 했으나 강수량이 일정하지 않은 지역이라 물을 끌어오기 힘들었다. 그래서 물을 모으는 저수지 겸 댐을 건설하기로 한다.

처음에는 유명한 설계자를 초빙했으나 이름만 빌려오려고 한 듯 초기 설계도를 받자마자 해고한다. 두번째로 들어온 설계자는 댐의 높이를 올리지만 배수로의 크기를 폭 17미터, 높이 4미터로 크게 확대했다. 그러나 두번째 전문 설계자도 4개월만에 해고되고 마지막은 베이츠 형제의 조카가 담당한다. 그는 이전에 건설업 경험이 없었고 배수로를 폭 4미터 높이 2미터로 줄였다. 베이츠 형제는 건설과 관련된 사업 일체를 운영했는데, 두번째 설계자의 조수는 그의 공사업체가 다이너마이트를 댐과 가까운 곳에서 터뜨리고 배수로 출구를 1 Km 떨어진 곳에서 바로 앞으로 옮기는 등 주먹구구로 일한다고 비난했다. 댐은 완공 직전까지 계속해서 설계를 번경했으며, 최종적으로 30만 달러로 완공할 수 있었다. (2023년 기준 930만 달러 값어치)

완공된 댐은 당초 계획보다 12미터 높고 해당 유역의 강수량으로 볼 때 5년 마다 한 번씩 있는 폭우를 견딜 수 있는 것으로 여겨졌다.

4. 붕괴

1890년 2월 16일, 완공을 한 달 앞둔 월넛그로브댐과 그 상류에 폭우가 내렸다. 이는 25년마다 한 번 있는 폭우로 추산되었다. 댐 관리자는 붕괴를 직감하고 방류로를 넓히려고 애썼지만 마침내 물이 범람하면서 댐이 쓸려내려가기 시작했다. 댐 관리자는 하류에 범람을 경고하기 위하여 대장장이인 Dan Burke 를 찾아 사람들에게 경고하라고 보냈다. 댐 관리자의 실수는 알콜중독자인 대장장이에게 선금을 준 것이었다. 대장장이는 하류로 내려가지 않고 받은 돈으로 술집에 갔고, 아무도 댐이 붕괴한다는 걸 알 수 없었다.

밤 9시, 마침내 댐이 붕괴하면서 1500만 톤의 물이 협곡에 터져나왔다. 15미터 높이의 해일이 댐 밑에 있던 인부 숙소와 회사 건물을 휩쓸면서 50여명이 사망했고, 전령으로 간 줄 알았던 대장장이가 술에 취해 있는 걸 발견한 후 두번째로 보낸 전령은 하류 마을에 도착해서 사람들에게 경고하기 직전 홍수에 휩쓸려 사망했다. 하류의 정착지와 목장은 완전히 파괴되었으며 사망자수는 정확히 추산할 수 없으나 150명까지 계산한 경우도 있다.

5. 여파

동일한 이유(부실공사,부패)로 붕괴한 존스타운 사우스 파크댐 붕괴 참사가 바로 작년에 있었기에 월넛그로브댐은 뉴욕 타임즈 1면을 장식하는 등 단숨에 주목을 모았다. 존스타운 홍수 사건에서 재난을 일으킨 부유층의 자연재해 탓이라는 무책임한 태도로 격앙된 여론 덕분에 미국의 법적 기조가 영국법의 엄격 책임으로 옮겨가고 있었지만, 당시에는 고작 1년 밖에 지나지 않았기에 베이츠 형제의 회사는 설계 부실이 탄로나도 조금도 사고 책임을 지지 않았다. 당시 사회 분위기 상 피해자는 한 푼도 보상을 못 받았고 사고도 곧 잊혀졌다. 단, 회사 자체는 빚을 지고 댐을 만들고 있었기에 댐이 무너지자 금광의 권리를 팔아도 전부 갚지 못해 파산했다.

월넛그로브댐 붕괴를 계기로 댐 건설시 몇가지 안전 규정이 새로 추가되었으며, 그 중 하나는 몇년마다 찾아오는 기록적인 폭우에 대한 대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