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일전쟁 및 제1차 세계 대전의 러시아 해군 함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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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바보그 항 전투에서 노획된 스웨덴 해군의 전열함 함명을 이어받은 레트비잔은 당시 건함경쟁의 여파로 러시아 조선소들의 건조 한도가 차자 미국에 발주하여 건조되었다.발트 함대 소속이었다가 1902년 태평양 함대로 옮겨져 훈련에만 전념하던 러일전쟁 당시 레트비잔은 여순항 공격에서 어뢰를 맞는 등 큰 타격을 입었다. 이후 황해 해전에서 여순항에 고립된 일본군에 공격에서 곡사포 포격을 맞고 침몰되었다.
이후 인양되어 일본 해군에 히젠이란 이름으로 개칭되어 인수된 레트비잔은 1차대전 당시 영국령 콜롬비아에 지원되는 등의 활동을 하다 워싱턴 해군 군축조약으로 폐기되었다.
2. 제원
함급 | 레트비잔 |
함형 | 전드레드노트급 전함 |
이전 함급 | 포템킨 |
다음 함급 | 체자레비치 |
건조국 | 러시아 제국 |
운용국 | 러시아 제국, 일본 제국 |
기준배수량 | 12708톤 |
만재배수량 | 12912톤 |
길이 | 117.9m |
폭 | 22m |
출력 | 16000마력 |
속력 | 18노트 |
항속 거리 | 9100km(10노트 기준) |
무장 | |
주포 | 305 mm/40 (12인치) Pattern 1895 연장포 2기 |
부포 | 152 mm/45 Pattern 1892 단장포 12기 75 mm/50 Pattern 1892 단장 양용포 20문 47 mm/40 M1885 단장포 20문 37 mm/20 Hotchkiss 단장포 6문 |
어뢰 발사관 | 15인치 어뢰 발사관 6문[1] |
장갑 | |
주장갑대 | 229mm |
갑판 | 51~76mm |
포탑 | 229mm |
바벳 | 102~203mm |
함교 | 254mm |
3. 개발 배경
1890년대에 러시아는 일본해군이 차례로 12인치 화포를 가진 전함을 영국에서 구입하는 것을 보고 전력적인 대응이 필요하다가 생각했는데, 태평양 함대용으로 건조한 10인치 화포의 전함 <페레스베트>급은 화력이 부족하다고 여겼다. 이에 1898년에 러시아 해군 최초로 12인치 포를 갖추고 수에즈 운하를 통과 가능한 배수량을 가진 전노급 전함 2척을 외국에 발주하기로 했다.이것이 프랑스의 라 세느 조선소에 발주한 <체살레비치>, 그리고 미국의 클램프 조선소에 발주한 <레트비잔>이었다.4. 설계
4.1. 형태
레트비잔은 평갑판형 선체에 수선아래 충각을 가졌으며, 함수갑판 위엔 원통형의 30.5cm 연장주포탑 1기, 사령탑을 꾸린 함교와 마스트, 연돌 3개가 세워졌으며 연돌 주변은 함재정 비치소였다. 함재정은 각 현에 설치된 크레인 2기로 운용되었다.4.2. 화력
선체 후방엔 후방 마스트와 30.5cm 연장포가 1기 배치되었고 수뢰정 방어용으로 7.5cm 속사포를 함수에 1기, 선체 중앙부에 4기, 함미에 2기, 후방함교 측면에 각 1기씩 두어 각 현 10기씩 총 20기를 배치했다. 그리고 대함공격용으로는 38.1cm 수상어뢰발사관을 단장으로 함수와 함미에 각 1문씩과 현측부에 각 1기씩 하여 4기를 두었는데 38.1cm 단장 수중어뢰발사관은 주포탑 측면현측부에 각 현 1기씩 2기가 장비되었다. 예비어뢰는 17발을 함내에 탑재했었다.4.3. 장갑
4.4. 엔진
5. 운용
5.1. 러일전쟁
5.2. 일본의 운용
1917년 6월 9일에 순종이 이왕 신분으로 일본을 방문할 때 좌승하기도 했다. 부산 - 시모노세키의 부관연락선 루트를 그대로 이용했으며, 구축함 2척이 호위하는 가운데 항해했다고 한다.[1] 함수,함미 각 1기, 함측면 각 2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