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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Mkhonto we Sizwe | |
영어 명칭 | Spear of the Nation |
약칭 | MK |
한국어 명칭 | 민족의 창 |
분당 이전 | 아프리카 국민회의 |
창당일 | 2023년 9월 7일 |
이념 | 좌익대중주의 사회주의 좌익보수주의 좌익 내셔널리즘 줄루 민족주의 |
스펙트럼 | 좌익 |
대표 | 제이컵 주마 |
사무총장 | 실레 은구바네 |
상원 의석 수 | 9석 / 90석 |
하원 의석 수 | 58석 / 400석 |
웹사이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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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좌익 포퓰리즘 정당.아프리카 민족회의(ANC)에서 출당 조치된 제이컵 주마 전 대통령이 2023년에 창당하였다. 국내 언론에는 '민족의 창'이라는 번역명보다 현지어 발음을 그대로 옮겨적은 움콘토 위시즈웨 당으로 표기되고 있다.
2. 역사
2.1. 유래
본디 "민족의 창 (uMkhonto weSizwe, MK)"은 1961년 넬슨 만델라 등 아파르트헤이트에 맞서던 반정부 인사들을 중심으로 구성된 무장 투쟁 조직이었다. 이들은 본디 비폭력 투쟁을 강조한 마하트마 간디의 영향을 받아 초기에는 평화적인 방법으로 반(反) 아파르트헤이트 투쟁을 벌여왔으나, 별다른 성과를 보이기는커녕 오히려 날이 갈수록 아파르트헤이트 정권이 더욱 더 악랄해지자, 이들은 평화 투쟁을 포기하고 무장 투쟁으로 노선을 전환하였다. 당연히 백인 국민당 정권은 이들에게 굴복하지 않고 오히려 더 강경하게 대응하였으며, 관련 인물들은 로벤 섬과 같은 열악한 수용소에서 장기간 옥살이를 해야만 했다. 아이러니하게도 국제사면위원회(앰네스티)가 만델라를 양심수로 지정하는 것 또한 거부했는데, 이는 폭력 투쟁을 한 인사들은 양심수로 지정하지 않는다는 앰네스티의 방침 때문이었다.하지만 아파르트헤이트 정권을 향한 국제 사회의 압력과 비판이 거세지면서 아무리 악랄한 백인 정권이라도 어느 정도 눈치를 볼 수밖에 없었고, 민족의 창 또한 투쟁 강도를 이에 맞춰 조절하는 것은 불가피한 일이었다. 결국 프레데리크 빌럼 데 클레르크가 집권한 이후 아파르트헤이트 폐지를 위한 협상이 진행되었고, 이에 따라 민족의 창도 1993년을 끝으로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2.2. 창당
상술한 민족의 창은 아프리카 국민회의(ANC)가 주축이 된 조직이었고, 아파르트헤이트 폐지 이후인 1994년에 치러진 사상 첫 다인종 총선에서 ANC가 압승한 이후 남아공의 권력을 장악해 왔다. 허나 만델라 퇴임 이후에는 역대 지도자들이 대부분 재선에는 성공했지만 막상 최대 임기인 10년을 다 채우지 못하고 실각하는 일이 비일비재해질 정도로 말썽이었고, 개혁과 과거사 청산에 앞장섰던 만델라 시기와는 달리 부정부패 등 각종 스캔들이 수시로 터지면서 지지율이 서서히 떨어지기 시작했다. 현행 헌법 치하에서 남아공은 100% 비례대표제이며 봉쇄조항이 없기 때문에 단 1%의 지지율만 떨어져도 의석이 깎일 수밖에 없기 때문에 그만큼 더더욱 처신을 잘할 수밖에 없는데, 문제는 "ANC=무조건 승리하는 당"이라는 기록이 공식처럼 되어버리면서 이들은 오히려 더 자만하기 시작했다.그러던 와중 2009년에 당선된 제이컵 주마 대통령이 부패 스캔들로 실각하고, ANC는 대통령 겸 당대표를 시릴 라마포사로 교체하기에 이른다. 라마포사는 민심을 회복하기 위해 탈(脫) 주마 행보를 보였으나, 문제는 주마가 부패로 얼룩진 이미지가 무색하게 당 내부와 여론의 지지가 상당했고, 이는 2024년 총선을 앞두고 계파 갈등의 도화선이 되었다.
여론의 적잖은 지지를 얻고 있던 주마는 이를 틈타 총선 출마를 통해 정계 복귀를 시도하였으나, 안 그래도 지지율 50%가 간당간당했던[1] ANC의 반대로 주마의 출마가 좌절되게 생기자, 결국 주마는 ANC를 탈당하기에 이른다. ANC에서 떠밀려 쫓겨나는 모습이 마치 경제자유전사(EFF)를 창당하며 ANC를 떠난 줄리어스 말레마의 모습과 겹쳤고, 이 때문에 당초에는 주마가 EFF에 합류할 가능성까지 점쳐지기도 했다.
하지만 주마는 EFF 합류를 거부하는 대신 신당을 창당했는데, 신당의 명칭을 "민족의 창"으로 정했다. 이 때문에 ANC 측이 법적 대응을 예고하기도 했으며, 구 "민족의 창" 원로들 또한 강력하게 반발하기도 했다.
2.3. 2024년 총선과 그 이후
2024년 총선에서 14.58%를 득표하는 돌풍을 일으키며 아파르트헤이트 철폐 이후 처음으로 아프리카 민족회의(ANC)의 과반 의석 상실을 이끌어냈다. 기대대로 줄루족 거주 비율이 높은 콰줄루나탈에서 무려 45%를 득표하는 위력을 과시한 것이 돌풍의 핵심 요소가 되었다. 다만 선거 이후 부정선거 음모론을 설파하며 6월 14일 국회 개회를 중단해달라는 소송을 제기하며 선거 결과에 불복하는 모습을 보였다. 남아공 헌법재판소는 이런 요구를 6월 13일 기각하고 원래 일정대로 다음 국회를 개회할 것을 결정했다.한편 ANC가 연정 대상을 찾는 과정에서 ANC 탈당파가 당의 중심인만큼 협상 가능성이 언급되었지만, ANC에서 시릴 라마포사 현 대통령의 퇴진은 협상 대상에서 시작부터 배제한 지라 가능성이 높지 않다고 평가받았고 결국 ANC가 민주동맹(DA), 잉카타 자유당(IFP), 애국동맹(PA)와 국민통합정부 연정을 구성하기로 하면서 야당으로 남게 되었다.
한편 국민통합정부로 인해 정치적 근거지인 콰줄루나탈에서도 주 내 1당인 민족의 창을 제외하고 ANC 주도 주 단위 연정이 구성, 잉카타 자유당에게 주총리직을 내주는 굴욕을 겪었다.
3. 성향
ANC보다 더 급진적이지만 EFF보다는 상대적으로 온건한 편이라 그냥 "좌익"으로 분류될 때가 많다. 다만 서방 언론들은 좀 더 강경하게 묘사하는 경우가 많은데, 가령 알자지라는 "사회주의 정당"이라는 평을 내렸고, 미국의 소리는 "급진좌파 정당"이라고 표현했다.주마는 부패 스캔들로 몰락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터운 지지층 덕에 정치적으로 재기한, 다른 나라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전형적인 포퓰리스트로, 이 정당 또한 포퓰리즘, 좌파 포퓰리즘 등으로 묘사되는 편이다. 그런데 이 포퓰리즘이라는 말처럼, 여론에만 의식하는 경향이 크기 때문에 마냥 "좌파"적이라고 보기에는 어려운 부분들도 한둘이 아니다. 주마 본인이 줄루족 출신인 탓에 줄루족의 이익을 대변하는 경향이 큰데, 문제는 이 것이 타 민족에 대한 반감을 종용하는 쪽으로 악용된다는 비판 또한 제기되고 있다. 여기에 반이민 성향까지 있는 것은 물론, 사회보수주의 성향도 두드러지고 있다. 어떻게 보면 포괄정당이라고 볼 수도? 이런 식의 급진좌파에 가깝지만 사회보수주의 성향이 두드러지는 부분은 SMER, 자라 바겐크네히트와도 유사한 부분.
4. 다른 정당들과의 관계
4.1. 아프리카 국민회의(ANC)
ANC와의 관계는 매우 복잡하다. 구 민족의 창이 ANC 인사들을 주도로 결성된 것이었고,[2] 이 때문에 "민족의 창"은 곧 ANC인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이러한 이유로 주마가 신당을 창당하면서 이 이름을 차용하자 ANC가 반발할 수밖에 없었다.민족의 창 창당 이후에는 ANC의 지지율을 갉아먹어 ANC의 지지율이 50%는커녕 40%조차 위태롭게 만들었다. 이 때문에 ANC는 유독 민족의 창을 더욱 더 경계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ANC가 과반 득표에 실패하면서 기존 ANC 지지층들에게 크게 욕을 먹게 되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ANC가 민족의 창을 마냥 내치는 것도 어려운데, ANC가 과반 득표 실패로 인해 원내 과반 의석 사수에 실패하면서 연정이 불가피해졌기 때문이다. 이렇게 될 경우, 그나마 가장 유력한 정당이 민족의 창일 수밖에 없다. EFF도 거론되지만 이들은 너무 급진적이고 과격하기 때문에 중도층을 날려먹을 가능성이 높으며, 그렇다고 기타 야권과 연대하기에는 여야 모두에게 독이 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4.2. 경제자유전사(EFF)
이쪽도 관계가 미묘하다. 민족의 창은 비록 EFF보다는 온건한 편이지만, ANC에서 갈라져 나왔고 흑인 민족주의, 포퓰리즘이라는 공통 분모가 있으며, 이 당의 창당과 함께 EFF의 지지율 일부도 이 쪽으로 넘어왔기 때문에 EFF와 지지층 입장에서는 신경전이 벌어질 수밖에 없다. EFF는 ANC의 지지율 하락을 틈타 본인들의 지지율 상승을 통한 반전을 꿈꾸고 있었는데 이 당의 창당으로 인해 빨간불이 켜졌기 때문이다.다만 EFF와의 관계를 굳이 설명하자면 약간 고까운 부분도 있다. 사실 주마가 ANC와의 갈등이 깊어지자 주마의 EFF 합류 설이 나돌았고, EFF 입장에서는 주마 지지층까지 흡수해서 내심 세력 확장을 통한 반등을 도모하려 했던 모양.
4.3. 민주동맹(DA)
사이가 좋은 편은 아니다. DA의 최대 견제 상대이자 심판 대상은 비록 ANC이기는 하지만, DA를 위시로 한 다당헌장은 공식적으로 ANC, EFF, 민족의 창을 심판의 대상으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 입장에서는 3당이 도긴개긴이고 ANC라는 한 뿌리를 공유하고 있기 때문에, 셋 다 심판의 대상으로 삼을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2024년 총선 이후, ANC가 단독 과반에 실패하자, DA는 그간의 입장을 조금 수정하여 ANC와도 협력할 수 있다는, 다소 전향적인 입장을 내놓았으며 결국 ANC주도의 연정에 참여했다. 여기서 ANC가 DA뿐 아니라 타 정당들과도 협력할 의사만 있다면, 민족의 창 또한 DA와 자의 반 타의 반으로 협력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1] 전술한 선거 제도로 인해 지지율 50%가 붕괴된다는 것은 과반 붕괴, 즉 단독 집권 불가의 원인이 되기 때문이다.[2] 다만 조 슬로보 등은 남아프리카 공화국 공산당 출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