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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2-21 11:44:18

쿤밍역 칼부림 테러

주의. 사건·사고 관련 내용을 설명합니다.

사건 사고 관련 서술 규정을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파일:attachment/kunming.jpg

사건이 수습된 후 현장에 남겨진 주인 잃은 짐들. 중국 당국의 보도 통제로 인해 제대로 된 사진은 거의 언론에 공표되지 않았으나 검색하면 범행 현장이나 시신 사진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사건 사고 요약표
<colcolor=#00529c,#dcdcdc> 발생일시 2014년 3월 1일 21:00 (베이징 시간)
유형 칼부림 테러
발생 위치 윈난성 쿤밍시 쿤밍역
云南省昆明市昆明站
사상 인원 33명 사망, 143명 중경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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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범인3. 반응4. 여담5. 유사 사건

1. 개요

중국어: 2014年昆明火车站暴力恐怖袭击事件[1], 2014年昆明火车站“3·01”暴力恐怖襲擊事件/"3•01 "

중국 윈난성 쿤밍시에 위치한 쿤밍역에서 2014년 3월 1일 21시경에 일어난 테러.

이 사건의 범인들은 폭탄이나 총이 아니라 칼로 열차표를 구매하거나 구매를 위해 줄을 서서 대기하던 수십 명의 무고한 주민들을 찌르거나 베어 살상했다. 사망자는 35명(용의자 4명 포함), 부상 141명. 테러범은 8명(+1)으로 밝혀졌다. 중국 관영매체의 주장에 따르면 중국 경찰은 사건 발생 10분만에 현장에 도착해서 한 SWAT(베이징 특수무기전술부대) 사수가 경고사격 이후 테러범들이 자신에게 돌진하자 단 15초 만에 테러범들을 1명 빼고 전원 사살했다고 하는데[2] 이 주장을 액면가 그대로 믿는다면 무려 10분 만에 200명 가까운 사상자가 발생한 셈이다.

이 사건의 용의자들은 중국의 소수민족위구르족 독립단체 소속으로 밝혀졌다.

2. 범인

원래 범인은 총 8명이었는데 초기에 숫자에 대해서 혼선이 있었던 이유는 8명(남자 여섯, 여자 둘) 중 한패였던 3명이 2월 27일에 윈난 국경에서 밀입국하다가 경찰에게 이미 체포된 상태였기 때문이었다. 이 때문에 3명이 빠진 상태에서 나머지 5명이 렌트카를 타고 쿤밍역으로 이동하여 범행을 저질렀다. 2014년 3월 3일 중화인민공화국 공안부는 테러범들은 총 8명이었다고 발표함과 동시에 이 테러의 총책은 압둘라힘 쿠르단이라는 위구르인으로 위구르 독립운동 단체 소속이라고 밝혔다. 범행에 가담했던 5명 중 파티굴 토티는 저항하다가 총에 맞아 부상당한 상태로 체포되었고, 나머지 4명은(남자 셋, 여자 하나) 모두 현장에서 사살되었다. 사진을 보면 여자들은 부르카를 입고 범행에 가담했다. 이후 재판에 회부된 테러범 중 파티굴 토티를 제외한 3명의 남자는 범행 모의만 가담하고 정작 실행엔 가담하지 못했던 자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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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행에 쓰인 흉기. 범행에 사용한 칼은 40~50cm 길이 마체테와 20cm 길이 단도였다고 한다.

초기에 잡힌 3명은 처음엔 자백을 거부하였으나 총을 맞고 생포된 파티굴 토티가 자백하면서 공안부는 체포된 용의자들로부터 테러행위에 대한 자백을 받았다고 발표했으며 이들은 과격 이슬람 단체 회원으로 중국 당국에 맞서 "지하드"를 준비했다고 발표했다. 이들은 원래 윈난으로 가서 중국을 출국해 활동하려고 했으나 이것이 여의치 않자 테러를 저질렀다고 밝혔다. 심지어 테러범들은 출국 계획 실패 시 유동인구가 많은 쿤밍 기차역 혹은 버스 터미널에서 "지하드"를 일으키기로 합의하였는데 이는 기차역에서 "지하드"를 벌였다는 말이다.

한편 중국 정부는 희생자들에게 애도를 표하고 사망한 29명의 유족들에게 30만 위안(약 5천만 원)의 보상금을 지급했다. 희생자들의 유족들은 테러 사태가 커진 것은 정부의 책임이라고 항의했지만 보상금을 더 받을 가능성은 높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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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심 법정에 나온 피고인들. 동시통역용으로 보이는 헤드폰을 쓰고 법정에 출석한 것을 보면 보통화 교육을 거의 또는 전혀 받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2014년 윈난성 쿤밍시중급인민법원에서 열린 1심에서 범행을 모의한 3명은 테러 집단을 조직, 지도한 자는 최소 10년의 징역에 처한다는 중화인민공화국 형법 120조와 의도적 살인은 사형에 처한다는 형법 232조에 따라 사형을 선고받았고 나머지 1명인 여성 피고인인 "파티굴 토티"는 임신 중이었기 때문에 임신부를 사형에 처할 수 없다는 형법 49조 1항에 의거하여 사형을 면하고 무기징역이 선고되었다. 범인들은 항소했으나 2심과 3심에서도 형량은 유지되었으며 사형 선고를 받은 3명은 민간인 신분이라 2015년 3월에 범죄를 저지른 장소인 쿤밍으로 이동해서 사형버스에서 약물 주사형 방식으로 처형되었고 파티굴 토티는 무기수로 복역하고 있다.

3. 반응

그야말로 난리가 났다. 환구시보에서도 '중국의 9.11테러'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로 중국 전체가 충격을 받았으며 중국 당국도 이 사건에 경악하여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하고 신장 위구르 자치구에 대한 감시를 대대적으로 강화함과 동시에 그곳에 대테러 공안부대와 인민해방군을 대규모로 배치했다. 그러나 중국의 경제 발전으로부터 소외되어 저소득층으로 전락한 위구르인들의 불만을 달래기는 역부족인 데다 점점 커져가는 극단적 민족주의와 함께 이슬람 극단주의에 물드는 인물들이 계속 늘어나 신장 위구르 자치구에서는 테러가 잇따르고 있다. 이 사건 이전에는 2009년 우루무치 유혈사태가 일어났던 바 있었고 2014년 5월 23일에서도 우루무치에서 자살폭탄 테러 사건이 일어나 31명의 사상자를 냈다.

범인들은 이 테러로 위구르족의 독립 의지를 전세계에 보여줄 수 있다고 생각했겠지만 중국의 공안기관이나 군부대가 아니라 무고한 노약자와 여자, 어린이까지 포함한 불특정 민간인을 타깃으로 삼았기 때문에 세계의 여론은 싸늘했다.[3] 특히 칼에 맞아 숨진 희생자 중에는 4살짜리 여자아이와 1살도 안 된 젖먹이까지 있었다. '정당한' 독립운동테러리즘의 경계가 확실하지 않은 면은 있더라도 민간인을 대상으로 한 테러는 오히려 역풍을 맞기 쉽다. 학교의 학생 대상으로 한 테러인 베슬란 학교 인질사건 이후 체첸 독립운동에 대한 서방을 비롯한 세계인의 시각이 싸늘해진 것을 보면 장기적으로 이 테러는 오히려 독립운동에 독이 될 것으로 전망되었다.

유엔미국, 심지어는 위구르족에 동정적이었던 튀르키예조차도 이 테러에 대해 규탄 성명을 냈다. 장성택 처형 사건 이후로 최악의 국면으로 치달았던 북한박봉주 내각총리의 명의로 3월 4일 조전을 보냈다.
박봉주 내각총리는 최근 중국의 운남성 곤명시에서 폭력테로로 인한 많은 인명피해가 발생한것과 관련하여 4일 리극강 중화인민공화국 국무원 총리에게 위문전문을 보내였다. 전문은 중국정부와 피해자유가족들에게 깊은 동정과 위문을 표시하였다. 온갖 형태의 테로와 그에 대한 어떠한 지원도 반대하는 조선의 시종일관한 립장을 재천명하면서 전문은 중국정부가 이번 폭력테로사건의 비극적후과를 하루빨리 가시고 나라의 사회정치적안정을 보장하게 되기를 바란다고 지적하였다.(끝)
조선총리 중국총리에게 위문전문 - 조선중앙통신(2014.3.4)

세계 위구르 회의 대변인도 이 사건을 저지른 테러범들과 선을 그어 민간인을 공격하는 데는 "정당한 이유가 없다"고 말하면서 중국 정부가 이 사건을 투명하게 처리하고 위구르인을 탄압할 기회로 이용하지 말 것을 촉구했다. 다만 튀르키스탄 이슬람당은 이들을 '지하디스트', '동튀르키스탄 전사'라고 지지하는 영상을 업로드해 물의를 빚었다.

중국의 위구르족의 처우, 민족 간의 갈등 문제 등이 더욱 나아지지 않는다면 이런 만행이 이 사건으로 끝나지 않고 지속적으로 반복될 수 있다는 우울한 전망도 나왔다.

대부분의 중국인들의 반응은 부정적이었지만 일부에선 “도대체 우리 정부가 신장에서 어떻게 했기에 이렇게까지 (위구르인의) 분노가 폭발할 수 있는가. 신장에서 야만적인 통치를 한 것 아닌가”라는 등 이 사건은 위구르인들뿐만 아니라 중국공산당에게도 책임이 있다는 뉘앙스의 반문을 하기도 했다.#

4. 여담

5. 유사 사건[5]



[1] 2014년 쿤밍 기차역 폭력 공포 습격 사건[2] 그 사수는 '생각하지도 않고' 테러범들을 사살했다고 한다.[3] 사실 이전부터 위구르 독립운동 조직 ETIM은 이슬람 극단주의알카에다와의 연계로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었던 만큼 중국이 테러와의 전쟁을 명분으로 소탕하면 해외에서도 뭐라 할 말이 없어진다. 게다가 2014년은 하필이면 이라크 레반트 이슬람 국가가 가장 강성한 세력을 자랑하던 때라서 이슬람 극단주의에 대한 경계심이 커지고 있었다.[4] 2023년에 한국에서도 용인과 서울, 그리고 성남 등지에서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한 흉기 테러가 연달아 발생하고 미수, 예고 사건까지 일어나면서 대한민국도 더 이상 묻지마 테러로부터 안전한 나라가 아니게 되었다.[5] 독립운동을 명분으로 무고한 외지의 민간인들을 학살한 사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