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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경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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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사적 제123호
<colbgcolor=#315288><colcolor=#fff> 창경궁
昌慶宮 | Changgyeonggung
소재지 서울특별시 종로구 창경궁로 185 (와룡동)
분류 유적건조물 / 정치국방 / 궁궐·관아 / 궁궐
면적 216,774㎡
지정일자 1963년 1월 18일
건축시기 1419년[1]
링크 공식 홈페이지 | 파일:X Corp 아이콘(블랙).svg | 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svg
파일:attachment/1275461911_IMGP2287.jpg
<colbgcolor=#bf1400> 창경궁 전경 [2]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800px-Korean_art-Donggwoldo-Changdeokgung_and_Changgyeonggung-Dong-A_University-01.jpg
순조 때 그린 〈동궐도〉. 창덕궁과 창경궁의 당시 모습을 그렸다.

1. 개요2. 역사
2.1. 조선 시대2.2. 창경원(昌慶苑)
2.2.1. 고의적인 훼손
2.3. 창경궁으로의 복원 이후
3. 건축물4. 창경궁 사건 사고
4.1. 창경궁 문정전 화재 사건
5. 야간 개장6. 대중교통

[clearfix]

1. 개요

서울특별시 종로구 와룡동에 위치한 조선시대의 궁궐.[3]

조선시대에는 창덕궁과 더불어 동궐로도 불렸으며 종묘와도 연결돼 있다. 경복궁, 창덕궁의 남향 배치와 다른 동향 배치로 왕실의 별궁으로 쓰였다.

2. 역사

태종이 세종에게 양위하고 상왕으로 물러났을 때에 창덕궁 옆인 이곳에 별궁을 지어 거처로 삼았고, 이름을 수강궁(壽康宮)이라 했다. 이것이 창경궁의 시작이었다. 이후 단종수양대군에게 양위 후 이곳으로 거처를 옮겼다가 단종복위운동 실패로 쫓겨났다.

성종 15년(1484)에 할머니 자성대왕대비 윤씨, 어머니 인수왕대비 한씨, 숙모[4] 인혜왕대비 한씨를 모시기 위해 궁의 이름을 창경궁으로 바꾸고 궁을 크게 증축 확장했다. 성종 때 정전인 명정전(明政殿), 편전인 문정전(文政殿), 침전인 수녕전(壽寧殿), 그리고 환경전(歡慶殿), 경춘전(景春殿), 인양전(仁陽殿), 통명전(通明殿), 양화당(養和堂), 여휘당(麗暉堂), 사성각(思誠閣) 등이 건립되었으며 궁의 둘레는 4325척이었다.

창경궁은 임진왜란 때 방화로 모두 소실되었다.

광해군 7년(1615년) 4월에 주요 건물들을 재건해 이듬해 11월 마무리됐다. 창경궁 재건보다 7년 앞서 창덕궁이 먼저 재건되었고 정궁으로 사용되었고 창덕궁에 비해 많이 사용되지는 않았지만 조선 왕조 역사의 중요한 무대로 활용됐다.

창경궁은 인조 때와 순조 때에 큰 화재가 있었다. 이후 조선 왕조가 기울고 순종 즉위 후 급속히 변형돼 일제 강점기에 결정적으로 훼손됐다. 1909년 일제가 강제로 창경궁 내부 궁문, 담장, 전각들을 헐고, 일본식 건물을 세워 동물원과 식물원을 만드는 등 유원지로 조성했다. 권농장 자리에는 연못을 파서 춘당지라 불렀으며 정자를 짓고 궁원을 일본식으로 바꿨다. 그 뒤쪽에는 식물관을 짓고, 동쪽에는 배양당을 지었으며, 통명전 뒤 언덕에는 일본식 건물을 세워 박물관 본관으로 삼았다. 또한 일제는 남아있는 건물들도 개조하여 박물관의 진열실로 만들었다.

1911년에는 자경전터에 2층 규모의 박물관을 세우고 창경궁의 명칭을 ‘창경원’으로 바꾸어 격하시켰으며, 1915년에는 문정전 남서쪽 언덕 위에 장서각을 건립하고, 1922년에는 벚꽃을 수천 그루 심어 벚꽃숲을 만드는가 하면 1924년부터 밤 벚꽃놀이를 열었다.

일제가 창경궁과 종묘 사이를 끊어 도로계획까지 했으나(현 율곡로), 종묘가 훼손될 것을 우려한 순종이 반대해 건설이 미뤄져 순종 사망 후인 1932년에 도로가 났다. 해당 도로는 오세훈 서울특별시장이 2009년 종묘 복원 계획을 세우고 박원순 시장이 이어받아 2022년 완공을 봤다. 이것이 바로 율곡터널이다.

1981년 대한민국 정부에서 창경궁 복원 계획을 결정하면서 원형을 되찾기 시작했다. 1983년 12월 31일자로 공개 관람이 폐지되고 명칭도 창경원에서 다시 창경궁으로 회복되었으며 이듬해인 1984년 1월 수정궁의 철거를 시작으로 6월에는 동물 사육장을 폐쇄한 뒤 서울대공원으로 이관했다. 1986년 8월까지 동물원과 식물원 관련 시설과 일본식 건물을 철거하고 명정전에서 명정문 사이 좌우 회랑과 문정전을 옛 모습대로 회복시켜 1986년 8월 23일 일반에 공개했다.

1992년에는 일본식 건물인 장서각이 철거됐다.

2.1. 조선 시대

1418년 조선 제3대 임금인 태종세종에게 왕위를 양위한 후 상왕으로 거처하기 위해 지어졌다. 당시 이름은 수강궁(壽康宮)으로 만수무강과 평안을 바란다는 뜻[5]이다.

태종의 후궁들은 태종 사후인 세종 대에도 여전히 수강궁에 거처하였으며, 단종 역시 문종이 경복궁에서 죽은 이후 누이인 경혜공주의 집으로 옮기기 이전까지 잠시 수강궁에 머물렀던 적이 있다. 단종이 경혜공주의 집을 시어소로 삼아 거처할 당시 수강궁이나 경복궁으로 환어하자는 신하들의 상소에 대하여 "수강궁은 싫고 장차 경복궁으로 돌아가겠다"고 답한 적이 있는데,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다.

이후 세조 대에는 단종의 영월 유배 후 비어있었으나, 세조는 죽기 며칠 전 수강궁으로 이동해 며칠 후 사망했고, 예종도 수강궁에서 즉위했다.[6]

성종 10년(1479) 수렴청정 중단 후 자성왕대비가 스스로 인수대비와 함께 수강궁으로 이어했는데, 성종이 세조의 왕비이자 할머니인 자성왕대비, 생모이자 대비인 인수대비, 제8대 예종의 계비인 숙모 인혜대비를 모시기 위해 1483년~1484년 사이 대대적으로 궁역을 확장해, 창성하고 경사스럽다는 뜻의 '창경(昌慶)'으로 이름을 고쳐지었다. 다만 자성왕대비는 온양행궁에서 중간에 세상을 뜨는 바람에 창경궁의 완성은 보지 못했다.[7]

1592년 임진왜란이 발발하고 선조가 몽진을 떠난 후 경복궁, 창덕궁과 함께 전소되었다.[8]

광해군 7년 때 중건되었다. 조선 후기에 창덕궁이 정궁 역할을 하게 되면서 창경궁은 조선 전기에 비해 쓰임새가 대폭 커져 여러 사건이 여기에서 일어났다.

인조반정창덕궁이 불타 막대한 피해를 입었으나, 창경궁은 거의 피해를 입지 않았다. 그러나 이듬해 이괄의 난으로 창경궁 내전이 완전히 전소되는 등 큰 피해를 입었다. 하지만 난리통에도 명정전, 문정전, 여휘당, 환취정 등 일부 전각이 살아남았기에 인조 11년 인정전 하나만 남아있던 창덕궁보다 먼저 복구가 이루어지게 되었다. 이후에도 창경궁은 비교적 화재 사고가 잦았다.

제19대 숙종 때는 장희빈창경궁 통명전 앞에서 사약을 마시고 죽었다.

제21대 영조 때는 휘령전(문정전) 앞마당에서 정조의 생부 사도세자가 쌀담는 뒤주 속에 갇혀서 8일 만에 요절한 비극이 일어나기도 하였다.

제22대 정조가 1800년 6월 영춘헌에서 승하하였다.

2.2. 창경원(昌慶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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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원 등 유원지 시설은 1983년~1986년에 철거되어 서울대공원으로 이전되었다.

2.2.1. 고의적인 훼손

본궁이 아니라 하더라도 창경궁은 엄연한 궁궐이고, 또한 단순한 지방의 행궁이 아닌 조선의 5대 궁궐 중 하나로서 중요한 행정적 역할을 하던 곳이다. 왕조와 왕가에 있어서 궁궐이라는 것이 가지는 상징성은 크다. 궁궐이 왕가에게 가지는 의미를 모르고 유원지로 개조할 생각을 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이토공은 궁중의 숙청을 단행함과 함께 한편으로는 (중략) 왕자의 은혜를 백성들이 우러러보게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생각으로 궁전의 영조와 창경궁에 박물관, 식물원, 동물원의 신설을 진언했다(중략)”
곤도 시로스케, 이왕궁 비사에서

조선총독부가 발간한 '경성도시계획 공원표'를 보면, 일제는 창경궁 외에도 대한제국의 궁궐들을 각각 경복원, 창덕원, 덕수원으로 변경하여 대중에게 공개할 의사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도심지에서 새로운 부지를 확보하는 것보다 이렇게 하는 편이 즉각적으로 공원을 조성시킬 수 있고, 또 상징적 의미가 있는 궁궐을 유원지화시키고 대중에 공개함으로써 조선 왕조의 권위를 실추시키고 기존 질서를 부정시키는 효과가 있으며, 대외적으로도 해외에 일본이 대한제국 왕가를 융숭하게 대접하고 있다고 선전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일본은 순종을 위로한다는 명목과 위와 같은 실제 의도들로 인해 창경궁의 개조를 단행한 것으며, 순종이 강하게 반대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그러한 의도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9]

근대건축도면집에 실린 1907년 창경궁 도면을 보면, 일본은 건물 몇 개를 짓는 정도가 아니라 창경궁 전부를 공원으로 개조할 생각이었고, 왕실의 개인 정원으로 둘 생각도 없었다. 1909년 11월 창경궁에 박물관까지 완공을 하자마자 창경궁을 일반 대중에 공개해버렸고, 조선총독부는 거듭할수록 기존의 전각들을 허물고 일본식으로 개조하며 '궁궐의 유원지화'를 심화시켰으며 더욱이 순종이 명시적으로 반대한 부분들(창경궁과 종묘의 연결로 파괴 등)에 대해서도 개조를 강행하는 등 애초부터 창경궁의 개조는 순종의 의향과는 거리가 있었다.

다만 순종은 어느 정도 창경궁에 식물관과 동물원이 들어서는 것을 반대하지 않는 모습을 보이는데, 꼭두각시 황제인 순종 입장에서는 반대를 하기도 어렵거니와, 궁궐의 일반개방이 당시 일본과 한국이 열심히 모방하던 서양 왕정국가들 사이에서는 이미 일상적인 일이었다는 것도 영향을 끼쳤다. 예컨대 오스트리아 쇤브룬궁 동물원은 1779년부터 이미 일반대중에게 공개되었고, 일본도 자국 황실 관련 시설 중 일부를 공원으로 개조했다. 궁궐에 무료로 박물관과 식물원, 동물원을 지어주겠다는데 딱히 마다할 이유는 없었을 것이다. 순수한 순종 본인만의 의지가 아니었다는 점에서 훗날의 창경궁 복원을 나쁘게만 보기는 힘들지만 말이다.

2.3. 창경궁으로의 복원 이후

이후에도 창경원은 서울의 대표적인 유원지로 계속 남게 되었고, 주말이나 공휴일에 가족 단위 나들이 장소로 시민들에게 가장 각광받았던 곳이었다.

하지만 일제강점기의 잔재이므로 궁궐로 복원해야 한다는 움직임이 일었고, 이에 문화공보부서울특별시에서 창경궁 복원 계획 및 서울대공원 건설 계획을 발표했다. 창경원 시설을 모두 철거하고 그 자리에 궁궐을 복원하고, 동물원과 식물원은 과천시에 짓는 새 공원으로 이전하는 계획이었다.

1983년 12월 일반인의 출입 및 관람을 중단하고 일제가 뿌려놓은 잔재들과 일본식 건물 및 정원 등을 모두 없애고 역사 사료에 따라 당시 존재해 있었던 전각과 편전들을 복원한 끝에 1986년 다시 일반에 공개되었다. 그러나 일부 전각과 침전 등은 아쉽게도 복원하지 못한 채 소실된 것으로 처리되었다.

계획에 따라 창경원에 있던 놀이기구 시설은 모두 철거되었고, 동물원과 식물원은 서울대공원으로 이전, 각각 1984년과 1985년에 재개장했다. 그리고 유원지와 동물원, 식물원 터는 거의 대부분 산책로로 다시 바뀌었다.

문화재청은 1단계(2015년 ~ 2021년)및 2단계(장기 계획)에 걸쳐 창경궁을 원형 복원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기사 덕수궁과 경복궁 또한 동시에 정비되고 있는 만큼 예산 부담이 가장 큰 걸림돌이 될 것으로 보인다. 2022년에는 창경궁과 종묘 사이의 지상 보행길 복원이 마무리되어 율곡로는 지하 터널로 이어지고 지상에는 담장과 보행길이 함께 조성었다.기사

2019년 1월 1일부로 덕수궁과 마찬가지로 상시 야간개장으로 관람 가능하다.

3. 건축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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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창경궁 사건 사고

4.1. 창경궁 문정전 화재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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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야간 개장

<rowcolor=#fff> 시기 일시 관람 인원
2010년 가을 11월 9일 ~ 12일4일 69,753명
2011년 5월 18일 ~ 22일5일 - 72,101명
가을 10월 5일 ~ 9일5일 -
2012년 5월 16일 ~ 20일5일 116,298명 224,581명
가을 10월 3일 ~ 7일5일 108,283명
2013년 5월 22일 ~ 5월 26일5일 182,513명
가을 10월 16일 ~ 28일12일 [10] 1,500명 / 일[11]
2014년 겨울 2월 12일 ~ 2월 17일 6일
7월 30일 ~ 8월 11일 13일
여름 - -
가을 - -
2015년 겨울 - -
- -
여름 - -
가을 - -

인터넷 예매를 통해 한정적인 기간에만 야간 관람을 할 수 있었으나, 위에서 작성한 대로 2019년부터는 항상 야간 개방으로 변경됨에 따라 한정된 인원의 야간 관람과 예매 열풍도 하나의 추억으로 남게 됐다.

6. 대중교통

수도권 전철의 경우 4호선 혜화역이 가장 가까이 위치해 있다.

[1] 국가유산청에서는 수강궁 영건을 창경궁 창건으로 보고 있다.#[2] 서울대학교병원 위치에서 바라본 전경이다. 창경궁의 전경으로 자주 등장하는 구도인데 창경궁 전체의 모습을 담으면서 동시에 고궁과 현대 서울 시가지의 모습을 동시에 담을 수 있기 때문이다.[3] 조선 초 본디 이름은 수강궁으로 불렸으며 일제강점기 및 해방 후 40여 년 동안 '창경원(昌慶苑)'이라는 이름으로 불렸으나 1986년 궁궐 복원에 따라 창경궁으로 환원되었다.[4] 예종의 계비[5] 그런데 정작 태종은 이 이름에 대해 불만을 표시했다. 자세한 건 태종 항목 참고.[6] 이후 예종이 경복궁으로 이어하면서 어머니인 자성대비도 같이 갔다. 조카인 성종은 경복궁 즉위 직후 창덕궁으로 이어했으며, 이 때 자성왕대비, 인수대비 및 인혜대비 역시 함께 했다.[7] 공교롭게도 창경궁의 대대적인 보수 및 확장은 폐비 윤씨가 사사된 1482년 말부터 논의되어 다음 해부터 진행되기 시작하였는데, 지금도 그렇거니와 당대에는 더욱 크게 느껴졌을 두 사건 사이에 인과관계가 있었을지는 생각해볼 만하다. 뿐만 아니라 대왕대비인 정희왕후와 왕대비인 소혜왕후가 수강궁으로 이어하였다는 기록이 성종 10년 5월 29일의 기사로, 중궁을 폐출한다는 교서가 내려졌다는 기록이 같은 해 6월 2일의 기사로 각 실록에 기록되어 있다.[8] 흔히 임진왜란의 혼란 도중 모든 궁궐이 소실된 것으로 알려지나, 선조 때와 인조 때의 실록기록에는 창경궁의 건물 중 "양화당"과 자그마한 별당만 남았다라는 기록도 보인다.[9] 공교롭게도 일본 정부는 도쿠가와 가문의 사찰인 간에이지가 보신 전쟁 와중에 불타고 남은 자리에 우에노 공원을 조성하였던 바 있다.[10] 10월 22일 제외, 매주 화요일은 휴궁일[11] 2013년 가을부터 일일 입장객 수 제한을 두었으며, 그에 따라 입장객 수 보도 자료를 배포하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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