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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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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천8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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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인사 전경 해인사 장경판전 안에 모셔진 팔만대장경
파일:대한불교조계종 상징.svg 대한불교조계종 제12교구 본사
법보종찰 가야산 해인사
海印寺 | Haein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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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B9A26A><colcolor=#fff> 위치 경상남도 합천군 가야면 가야산로 1742-17[1]
설립 802년 (애장왕 3년)
주지 혜일
방장 벽산 원각
등급 제12교구 본사
링크 파일:홈페이지 아이콘.svg | 파일:유튜브 아이콘.svg


1. 개요2. 역사3. 문화재4. 해인사를 거쳐간 스님5. 기타6. 사건사고
6.1. 전 주지 현응의 성추문 및 차기 주지스님 선출 관련 내홍6.2. 동안거 기간에 해외 원정골프6.3. 설 연휴 윷놀이 도박 의혹 제기
7. 비석
7.1. 해인사 사적비
7.1.1. 해석문
8. 산내 암자9. 창작물에서의 해인사10. 관광 관련11. 교통12.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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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경상남도 합천군 가야산에 위치한 사찰이며, 대한불교 조계종 제12교구 본사이다. 사적 제504호.

순천시송광사, 양산시통도사와 함께 한국의 3보 사찰로 꼽힌다. 3보란 불교에서 불(佛), 법(法), 승(僧)을 뜻하는데 해인사는 법보(팔만대장경), 통도사는 불보(진신사리), 송광사는 승보(수계사찰) 사찰이기 때문이다. 더하여 부산광역시범어사, 구례군화엄사 등과 함께 5대 사찰로 꼽히기도 한다.

대한민국의 국보이자 세계기록유산팔만대장경이 보관되고 있는 곳으로 유명하며 대장경을 보관하는 장경판전 역시 국보이자 세계문화유산이다. 그래서 팔만대장경을 보관 중인 곳은 사진촬영이 금지되어 있다. 유네스코 소속 관리자가 엄격하게 막고 있어 육안으로만 관람 가능하다.

해인사와 팔만대장경의 완공/제작 연도가 비슷할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분명히 다르다. 본래 강화도에 보관하던 대장경을 조선 태조 때에 옮겨오면서 장경판전이 내부에 지어졌다. 해인사라는 사찰 자체는 신라 시대에 지어졌고 팔만대장경은 고려 시대에 편찬이 됐지만, 이를 보관하는 해인사 장경판전 건물은 조선 시대에 지어졌기 때문인지 한국사능력검정시험에서 낚시 문제로 나온 적도 있다.

2. 역사

남북국시대 신라 애장왕 3년(802년) 창건되었다. 소성왕의 어머니 성목태후와 애장왕은 해인사에 2500결이나 시납을 했다. 이렇듯 해인사에 신라 왕실이 적극 후원하였다.

전설에 따르면 옛날 착하게 살던 노인이 떠돌이 강아지를 데려다가 정성껏 키웠는데, 사실 그 강아지는 용왕의 딸로 잘못을 저질러서 강아지가 되어 속죄하던 중이었다. 속죄를 마친 용왕의 딸은 용궁으로 돌아가 자신을 보살펴 준 것에 대한 보답으로 용왕에게서 도장을 노인에게 주었다. 그 도장은 원하는 것을 쓰고 도장을 찍으면 적은 것이 실현되는 도장이었다. 노인은 자신의 사리사욕을 위해 도장을 쓰지 않고, 오히려 도장을 사용해 을 세우는 비용을 댔다고 한다. 그래서 바다 해(海)와 도장 인(印)을 써서 해인사가 되었다고 한다.

943년 이후 기술했다고 추정되는 《가야산해인사고적(伽倻山海印寺古籍)》를 참조한 듯한 다음과 같은 전설은 《거제현우두산현암선사중수기(巨濟縣牛頭山見庵禪寺重修記)》에 기록되어 전한다.
애장왕대의 승려 순응(順應)[2]이 766년 당나라로 건너가서 그곳에서 깨우침을 얻던 도중 보지공(寶誌公)의 제자를 만나 《답산기(踏山記)》를 얻은 뒤 보지공의 묘소에서 7일간 법(法)을 구하였는데, 그때 묘문이 열리면서 보지공이 나와 설법하고 의발(衣鉢)과 신발을 주면서 우두산(牛頭山) 서쪽 기슭에 절을 세우라고 명했다고 한다. 그 후 귀국한 순응은 가야산에 들어가 사냥꾼의 도움으로 현재 해인사 자리에 암자를 짓고 그곳에서 지냈다. 그때 애장왕의 왕후가 등창병으로 고생하고 있었는데, 어떠한 약도 효력이 없어 고승들의 도움을 받으려 사람들을 풀었다. 가야산으로 간 왕의 사신이 몸에서 빛을 발하는 순응을 발견하고 왕궁으로 청했으나, 순응은 이를 거절했다. 그러나 왕후의 병난 사연을 듣고는, 오색실을 주면서 실의 한쪽 끝을 배나무에 매고 다른 한쪽 끝을 아픈 곳에 대면 나을 것이라 하였다. 사신이 돌아가 왕에게 이를 알리고 그대로 시행했더니 배나무는 말라죽고 왕후의 병은 나았으므로,[3] 왕이 고맙게 생각하여 순응의 원에 따라 애장왕 3년(802년)에 해인사를 지을 때 인부를 동원하여 일을 도왔다."

해인사를 창건한 승려 순응이정은 옛 대가야 왕족의 후예라고 하므로 그들이 신라 왕실의 지원을 받아 옛 대가야 영역인 가야산 자락에 해인사를 창건한 것은 신라 왕실의 대가야 유민 포용책으로 해석되기도 한다.[4] 지금도 해인사 입구에는 창건 당시에 심었다는 나무가 서 있다.

해인사가 원래 대가야의 시조신인 정견모주를 제사 지내던 정견천왕사 자리에 지어졌다고 보는 학자도 있다. 순응과 이정이 대가야 왕실의 후손이기 때문에 정견천왕사 자리에 창건했다는 것이다. KBS 역사스페셜

해인사 묘길상탑기[5]에 따르면 후삼국시대의 혼란 때는 도적들이 해인사를 습격해 56명이 죽기도 했다고 한다. 고려 시대 이후에도 계속 중요한 사찰로 기능해서, 고려실록조선왕조실록을 수도 이외에 사본을 보험용으로 보관해 두는 곳이기도 했다.
해인사에 물러나 거하며 지은 시(海印寺退居有作)
제1수
海印却勝盧岳寺  해인은 여악의 절보다 낫고
伽耶還似虎溪流  가야[6]는 호계의 흐름과 같네.
遠公高迹雖難繼  원공의 높은 자취야 잇기 어렵지만
且喜終鳥志已酬  종언의 뜻[7]을 이루어 마냥 기쁘다오.
제2수
屈辱多年寄帝京  수도에 창피하게 몇 년 몸을 부쳤어도
敎門功業耻無成  교문의 공업은 부끄럽게 이룬 것이 없네.
此時行道徒勞爾  이 시대에 도를 행함은 헛수고일 뿐이니
爭似林泉樂性情  숲과 냇가에서 마음을 즐기는 것만 하겠는가.
제3수
事去幾廻興嘆息  일이 지나고 몇 번이나 탄식을 발했던가.
年來無計報君親  연래에 군친에게 보답할 길이 없었다네.
可憐少壯心如昨  가련타, 소장의 마음 어제 같은데
不覺銷磨四十春  나도 몰래 40년을 허비했네.
제4수
榮華富貴皆春夢  부귀영화가 모두 봄날의 꿈이라면
聚散存亡盡水漚  취산존망은 온통 물거품 같은 것
除却栖神安養外  안거하여 심신을 쉬는 일 이외에는
筭來何事可追求  아무리 생각해도 추구할 일이 없네.
『대각국사문집』
고려시대 대각국사 의천이 해인사에서 머물며 쓴 시가 전해진다.

세월에 따라 화재로 인해 총 7차례 중수하였으며 조선 후기에 마지막 중수를 마쳤다. 신기하게도 화재 때마다 장경판전은 화마를 피해 갔다. 화재가 하도 많이 일어나다 보니까 화기를 누그러뜨리기 위해 해마다 단오날이 오면 해인사 남쪽에 있는 매화산 남산제일봉 정상 및 절 경내 다섯 곳에 소금을 단지에 담아 묻는 행사를 한다. 남산제일봉이 화기의 형상이라 여기서 화기가 날아들어 해인사에 불이 자주 나기 때문에 바닷물로 불길을 잡겠다는 의미라고.

6.25 전쟁빨치산들이 기지로 삼기에 좋다는 이유로[8] 미군에 의해 폭격 대상으로 지정되었으나 김영환 장군(1921-1954)을 비롯한 파일럿들이 명령을 거부하고 상부를 설득하여 가까스로 폭격을 피했다.# 그들의 노력이 없었다면 해인사는 역사 속으로 사라질 뻔했다. 이에 해인사에서는 경내에 '고 김영환 장군 팔만대장경 수호 공적비'를 건립했고, 매년 음력 5월마다 대한민국 공군 관계자들과 함께 고 김영환 장군을 기리는 추모제를 열고 있다.

3. 문화재

해인사는 역사적·학술적인 가치를 인정 받아 절 자체가 사적이자 명승으로 지정되었으며, 해인사가 소장하고 있거나 관련된 국가지정문화재로는 국보 6점, 보물 21점이 있다.

4. 해인사를 거쳐간 스님

5. 기타

대한민국 조계종에서는 출가하여 스님이 될 사람을 모집하기 위해 홈페이지까지 만들었는데 그 홈페이지에서 처음으로 행자교육원을 소개했던 MBC 다큐멘터리를 이 해인사에서 찍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조계종 소속의 이면서 정작 조계종에서 중시하는 지눌과 관련된 교학을 승려 기초 교육 시 가르치지 않는데 이는 이곳에 계셨던 성철 스님이 "지눌은 마구니다" 라고 하면서 불교 내에 대논쟁을 일으켰기 때문이다. 특히 성철이 지눌과 관련된 것들을 가르치지 말라고 한 게 발단이 되었다. 성철 스님에 따르면 지눌은 돈오점수를 주장했는데 성철 스님은 수행이 필요하다면 이미 깨달았다고 볼 수 없다는 이유로 '돈오돈수'를 주장했다.

노무현대한민국 대통령과도 인연이 깊은 사찰인데 영부인 권양숙 여사가 독실한 불자[15] 2002년 대선을 앞두고 당시 해인사에 머무르던 조계종 법전(法傳) 종정으로부터 보살계와 '대덕화(大德花)'[16]라는 법명을 받았고 노 전 대통령도 재임 기간 동안 세 번이나 해인사를 찾았다.[17] 2005년에 해인사 대비로전(大毘盧殿)에 봉안된 비로자나불(毘盧舍那佛)이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 불상임이 확인되자 노무현 전 대통령은 휴가를 틈타 해인사에 들러 "비행기 사고 없이 잘 날아다니고 우리 제품을 잘 팔아달라"고 기도하면서 대비로전 건립에 30여억 원을 국고 지원하겠다고 즉석에서 약속했고 2007년 11월 24일 해인사 대비로전(大毘盧殿) 낙성 대법회에 영부인 권양숙 여사와 함께 참석해 축사를 하기도 했다.[18] 이런 인연 덕분에 노무현 전 대통령 사망 사건 당시 해인사에서 하안거 중이던 승려 300명이 하안거를 깨고 봉하마을의 빈소를 찾았다고... # 노무현 전 대통령이 약속했던 30억 원의 특별 국고 지원금으로 대비로전을 수리하면서 화재에 대비한 재난대비장치로 비로자나불을 모신 불단 지하에 공간을 마련해 화재 발생 시 4분여에 지하 6m로 대피시킬 수 있는 안전장치도 마련되었다고 한다.

2012년 5월 17일엔 해인사 주지스님이 보증을 섰다가 100억 원대의 빚을 지게 되어 불상까지 압류당했다는 기사가 났다.

2014년 11월 24일, 경내 전각에서 낙서가 된 것이 발견되었다. 주요전각 17곳의 벽면에 천도교에서 사용하는 삼칠주(三七呪)를 한자로 적어두었다. 다행히도 대장경이 보관된 장경판전은 화를 면했다고 한다. 관련 기사. 최제우가 지은 삼칠주를 천도교 등 동학계 종교단체만이 아니라 증산 계통의 종교에서도 사용하는데, 증산계 종교에서는 천도교 등과 달리 주문의 선후를 바꾸어 외운다. 전각에서 발견된 낙서는 증산계 종교의 순서를 따라 썼기 때문에 범인이 그쪽 종교인이 아니겠느냐는 추측이 있었다. 나중에 언론에 보도된 바에 따르면 범인은 삼칠주를 적으면 귀신을 몰아낼 수 있다고 생각해서 했다고 한다.

2017년 10월 16일, 원당암에 있던 15세기 목조아미타불좌상 내부에서 고려 우왕 1년(1375)에 인출(印出)한 서적 '성불수구대다라니'와 고려 후기에 고려대장경으로 찍은 '대방광불화엄경' 28책이 발견되었다. 또한 목조아미타불좌상과 함께 삼존불(三尊佛)을 이루는 좌우의 관음보살입상과 지장보살입상을 X레이로 촬영한 결과 지장보살입상에서는 금속장식이 있는 족자형 사경(寫經·손으로 베껴 쓴 경전)이 발견되었고 관음보살입상에서는 종이 뭉치와 경전 사이에 병풍처럼 접었다 펼 수 있는 책인 절첩본(折帖本)이 있는 것으로 분석되었다.#

해인사에서 가야산 정상으로 가는 등산로가 있으며 해인사입구정류장으로 와서 보면 바로 건너편에는 '소리길'이라는 탐방로가 있다. 해당 탐방로로 대장경테마파크까지 차량통행의 방해 없이 이동이 가능하다.

2022년 12월 11일 SBS 예능 프로그램 미운 우리 새끼가 월드컵 특집 : 미우새 VS 해인사으로 방영이 되었다.

6. 사건사고

6.1. 전 주지 현응의 성추문 및 차기 주지스님 선출 관련 내홍

2023년 1월 해인사는 당시 주지였던 현응이 사퇴를 밝혀 차기 주지스님 선출을 놓고 내홍을 겪고 있다. 게다가 현응은 비구니에 대한 성추행 논란으로 말이 많아 2018년 PD수첩에도 나오던 적이 있었으니 불미스럽게 나간 셈이다.

2023년 1월 16일 13시경 차기 주지 스님 선출을 위한 임시회의에서 회의를 참관하겠다는 ‘해인사 정상화를 위한 비상대책위원회’ 측과 이에 반대하는 해인사 스님 및 종무원이 맞서 승려 50여 명이 대치하다 물리적 충돌까지 빚어져 해인사 종무소에서 일하는 종무원 1명이 부위에 큰 상처를 입고 쓰러져 병원으로 후송됐다.

경찰은 사건 당시 영상 및 피해자, 관계자 증언 등을 통해 경위를 조사하고 있으며 상처를 입힌 해인사 관계자를 특정해 입건할 계획이다. 비대위 측은 “종무원이 다친 것은 안타깝게 생각한다”면서도 “방장 스님(해인사 최고 직위를 가진 스님)이 강압적으로 주지 후보를 추천하려고 해 이를 막으려 했던 것이다. 우리도 어쩔 수 없었다”고 해명했다. #1 #2 #3

1월 18일 대한불교조계종은 징계위를 소집해 성추문과 폭행 사건에 대한 조사를 시작했으며 현응 스님이 계율 위반 사항이 확인되면 엄중하게 조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또한 현응 스님의 사직서를 조사가 끝날 때까지 사표 처리를 보류하기로 했다. # #2 #3

이후 23년 2월 16일에 현응의 후임으로 당시 해인사 교육원장을 맡던 혜일이 후임 주지로 임명되었다.

6.2. 동안거 기간에 해외 원정골프


성추문에 이어 바깥 출입을 삼가는 겨울 수행기간[19]에 해인사 승려 두 명이 태국 치앙라이의 한 골프장으로 원정 골프까지 다녀온 것이 드러나면서 논란이 되고 있다.

또한 조계종 승려법에 따르면, 승복이 아닌 옷을 입으면 징계할 수 있다는 규정이 있는데, 이는 승복이 아닌 옷을 자주 입어서는 안된다는 것인데 주요 사찰들의 고위직 승려들이 이 규정을 지키지 않은 것도 드러났다.

참고로 이들은 2년 전에도 여름 수행기간에 골프를 쳐 비판을 받은 바 있다.

6.3. 설 연휴 윷놀이 도박 의혹 제기

2023년 해인사 정상화를 위한 비상대책위원회는 보도자료를 내고 사찰에서 스님 30여 명이 지난 1월 21일 돈이 오고 간 윷놀이 게임을 했다고 주장했다. 비대위는 "어른 스님들이 1000만원 상당의 금액을 걸고 윷놀이했다"며 윷판을 주도한 모 스님을 절에서 내쫓고, 윷판을 허락한 책임자들에 대해 즉시 조사하라고 촉구했다.

해인사는 "매년 음력 그믐이면 해오던 윷놀이는 전통이며, 금액은 찬조 수준"이라며 "최근 주지 스님 추문으로 조심하고 있는 가운데 노름은 있을 수 없다"고 해명했다.#, #

7. 비석

7.1. 해인사 사적비

1769년 세워진 비석이다.

7.1.1. 해석문

해인사(海印寺) 사적비(事跡碑)

유명조선국(有明朝鮮國) 영우합천(嶺右陜川) 해인사(海印寺) 복고(復古) 사적비명(史蹟碑銘) - 병서(幷序)

합천군(陜川郡)의 북쪽 80리(里)되는 곳에 가야산(伽倻山) 해인사(海印寺)가 있는데, 이는 신라(新羅) 애장왕(哀莊王) 때 승려(僧侶) 순응(順應)이 세운 것이다.

고려(高麗) 문종(文宗) 때에 팔만대장경(八萬大藏經) 판(板)을 그곳에 보관하였는데, 우리 혜장대왕(惠莊大王 세조)께서 무인년(세조 4, 1458년)에 판각(板閣)을 중수(重修)하고 또 그 경문(經文)을 인쇄하였으니, 그 사찰(寺刹)의 중요성은 다른 사찰과 비교할 바가 아니다.

성상(聖上)이 즉위(卽位)한 지 19년째인 계해년(영조 19, 1743년)에 섬돌 이하 수백 칸이 모두 불에 타버렸다. 그 당시의 관찰사(觀察使) 김상성(金尙星)이 재물을 내어 도와주고 계획을 세워서 복구하였다. 그 뒤로 21년이 지난 계미년(영조 39, 1763년)에 또 전처럼 불이 났다. 공의 당제(堂弟)인 김상철(金尙喆)이 당시에 또한 관찰사로 있었다. 그가 재물을 내어 도와주고 계획을 세워서 전보다 규모는 배가 되었으나 용이하게 복구하기는 마치 초가집 한 채를 짓는 것과 같이 하였다.

대체로 선왕(先王)의 보적(寶蹟)을 간직하고 있는 곳으로써 두 번의 계년(癸年 계해년과 계미년)에 두 김씨(金氏)의 도백(道伯)이 부임(赴任)한 것은 어쩌면 그 사이에 운수(運數)가 있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이는 하늘이 필시 두 공(公)을 보내어 앞뒤로 부임하게 한 것일 것이다. 여기까지 쓰고 보니 더 이상 일컬을 수가 없다.

산의 기이한 형세와 절의 빼어난 형세에 대해서는 조매계(曺梅溪 조위(曺偉))의 기록에 모두 자세하므로 이제 기록을 생략한다.
다음과 같이 명(銘)한다.

산문(山門)이 편안함을 유지하는 것은
시로 나라의 은덕(恩德)에서 연유하는 것이다.
이 짧은 비갈(碑碣)이
하늘과 함께 영원히 보존되기를 바라노라.

숭정기원후 세 번째 기축년(영조 45, 1769년) 6월 일에 세우다.

운객(雲客) 유기(有璣)는 비문(碑文)을 짓고,
신몽준(申夢駿)은 글씨를 쓰고 전액(篆額)을 하다.

왕비전하(王妃殿下)는 해와 같이 장수(長壽)하소서!
주상전하(主上殿下)는 만세(萬歲)토록 장수하소서!
세자저하(世子邸下)는 천세(千歲)토록 장수하소서!

계파(桂坡) 성능(聖能), 조무(造武) 능교(陵橋)가 돌을 채취(採取)하고 공(功)을 기록해서 기념(紀念)을 하려다가 세우지 못하고 입적(入寂)하였는데, 이제 사적비(事蹟碑)를 세우는데 사용하였다.
도감통(都監通) 조심(照審)
별통(別通) 치연(致演)
편판(片判) 건영(建榮)
편통(片通) 전익(典益)
각(刻) 품관(品官), 품헌(品軒), 영원(永元), 원성(願性)
치(冶) 김차동(金次同)
- 해석자 노효경 -

8. 산내 암자

9. 창작물에서의 해인사

홍길동전에서 홍길동에게 털리는 절로 나온다. 땡중고기를 먹는 부패한 것들이 승려로 있는 절인지라 해인사를 털고자 해도 마땅한 지략이 없어 어려워하던 형편에, 홍길동이 해인사를 털어버릴 묘책을 수립한다. 양반집 아들이 공부를 하러 절에 온다고 뻥치자, 승려들은 홍길동이 함정을 판 것도 모르고 손님맞이 준비에 난리가 났다. 결국 홍길동이 부하들을 이끌고 해인사 레이드를 하기로 한 날, 당당히 들어가 음식을 대접받는 자리에서 일부러 모래를 입 안에 넣은 다음 큰 소리로 깨물어서 소동을 일으키더니, 음식을 부정하게 만들었다고 누명을 씌운 뒤 절 안의 승려들을 모두 묶어놓고는 말끔하게 뺏들어갔다. 절을 관리하는 사람이 목격하고 경상 감영에 일러바치러 가고 당연히 경상 감사가 병사들을 이끌고 홍길동 일행을 검거하러 갔으나 실패했다. 결국 감사는 국왕에게 이 사건을 보고하게 되고 화가 폭발한 국왕에게 홍길동은 찍혀 버린다. 더 놀라운 건 홍길동의 아빠와 형도 같이 찍혔다는 사실이다. 여기서 '홍길동합천 해인사 털어먹듯'이라는 속담이 유래하였다.

눈물을 마시는 새에 등장하는 하인샤 대사원이 여기서 따온 것으로 추정된다.

김정한의 사하촌에 나오는 돈 많은 절이 해인사라는 설이 있다. 작가 자신은 부정했지만 조선일보 신춘문예 당선작으로 이 작품이 나오자 해인사라는 소문이 퍼지고, 작가에 대한 테러가 벌어지기도 했다. 실제로는 부산범어사가 아닌가 추정된다. 이 또한 김정한 작가는 부정했지만, 작가 자신이 살았던 동네가 범어사 아래동네인 데다(말그대로 범어사사하촌) 소설 속 묘사가 상당수 맞아떨어져 최소한 모델이 된 것으로 추측. 그래서 이 항목에 있는 테러라는 건 실제로 범어사 스님들이 몽둥이를 들고 김정한의 집으로 몰려가서 드잡이질을 한 것.

어느 전래동화에서는 해인사와 송광사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데 해인사의 가마솥은 엄청나게 크고 송광사의 변소는 엄청나게 높다고 한다. 작중 해인사 스님의 말에 의하면 예전에 그 솥에다 팥죽을 끓였는데 몇 사람들이 거기다 배를 놓고 노를 저어\ 갔다고 하는데 아직까지 안 돌아왔다고 한다.

실제로 스님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사람이 타고 노를 저어 갈 정도로 크진 않지만, 굉장히 큰 구리 가마솥이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이 가마솥은 주지가 팔아먹었다고. 가마솥을 팔아먹은 주지는 곧 다른 스님들과 신자들에게 쫓겨나 거지가 되었다고 한다.[20]

10. 관광 관련

합천군 가야면에 위치한 대장경테마파크가 있다. 대장경기록문화테마파크를 찾는 관람객에게 천년을 이어 온 대장경의 역사적, 문명적 의미를 재조명하고, 인류 공동유산으로서의 가치를 재발현하는 이해와 발견의 공간으로 대장경 조판이전부터 경전의 전래와 결집, 천년을 이어왔던 장경판전의 숨겨진 과학에 이르는 역사의 시공간적 대장정을 감상할 수 있다.

해인사가 전국적, 아니 전 세계적으로 유명해진 탓인지 해인사 주변에 각종 음식점과 숙박 시설 등이 즐비하다.[21] 호객 행위도 역시 무시무시하다.[22] 흔히 보는 산채비빔밥, 파전 같은 음식을 파는 곳은 절이 있는 관계상 기본이요, 관광 호텔, 유스호스텔들이 있다.

11. 교통

고속도로를 이용할 경우 광주대구고속도로 해인사IC가 이름대로 가장 가깝다. 다만 수도권, 충청도, 경상북도 서부의 경우 중부내륙고속도로 성주IC를 이용하는 게 훨씬 좋다.

대중교통을 이용할 경우, 대구 서부정류장[23]에서 고령시외버스정류장[24]을 거쳐 해인사 시외버스 정류장으로 가는 시외버스를 이용하는 것이 가장 편리하다[25]. 해인사에 있는 시외버스정류장에서는 식권과 비슷한 승차권을 발매하며, 당일 어느 시간에도 사용할 수 있지만, 신용카드로 구매할 수 없으며 출발지에서 왕복 승차권을 구매할 수도 없으므로, 해인사에 도착하면 즉시 현금으로 승차권을 미리 구매하는 것이 안전하다.

경전여객에서 합천터미널-해인사간 버스(808번)를 일 4회 운행하는데[26], 합천군 농어촌버스라서 교통카드 사용이 가능하며 합천군내만 다니기 때문에 전 구간 성인 1000원, 청소년/어린이 500원에 이용 가능하다[27].

2000년대 중반까지는 부산서부터미널에서 해인사로 가는 버스도 있었으며https://gall.dcinside.com/mgallery/board/view/?id=transit&no=244699[28], 2000년대 중후반부터 2018년 5월까지는 대전복합터미널에서 함양, 거창을 거쳐 해인사로 가는 버스도 있었다.

12. 관련 문서



[1] 치인리 10[2] 최치원이 지은 전기(지금은 남아 있지 않다)에 따르면 옛 대가야 왕족의 후손이라고 한다.[3] 왕비의 등창에서부터 작은 벌레들이 기어나와 실을 타고 배나무로 기어가고 있더라고...[4] 해인사가 있는 가야산 자체가 대가야의 국조모인 정견모주가 산신이 되었다는 산이며, 최치원의 석리정전(이정에 대한 전기)를 인용한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의하면 해인사 경내에 정견천왕사라는 정견모주를 모시는 사당이 있었다고 한다. 대체로 오늘날 해인사 경내에 있는 대웅전 밑 국사단이란 작은 전각이 바로 이 정견모주를 모시던 사당으로 추정된다. 즉 해인사가 있던 곳은 원래부터 정견모주를 모시던 사당이 있던 곳이고 대가야에 불교가 전래되면서 이곳에 정견모주의 사당을 사찰로 개조했을 가능성이 있다. 그 사찰이 발전한게 해인사로 추정된다. 신라왕실이 해인사에 후원을 한것도 이런 맥락이라 볼수 있을 것이다.[5] 후삼국시대의 발단기였던 진성여왕 9년(895년) 전란으로 희생된 사람들의 명복을 빌기 위해 해인사 경내에 세운 묘길상탑(대한민국의 보물 제1242호) 안에 있던 글.[6] 시냇물 이름이다.[7] 세상 밖에 은거하여 생을 마치려는 뜻을 뜻한다.[8] 종교시설이라 보호대상이기도 하고 해인사 경내 면적만 해도 56,459㎡로 어마어마하게 넓어서 정규군 사령부 하나쯤은 들어오고도 남을 면적이다. 실제로 임진왜란사명대사가 이끌던 승병부대의 사령부가 해인사에 있었다고 한다.[9] 2020년 10월 21일, 보물 제999호에서 국보로 승격[10] 2012년 11월 22일,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44호에서 보물 제1777호로 승격, 2022년 10월 26일, 보물 제1777호에서 국보로 승격[11] 2022년 10월 26일, 보물 제1779호에서 국보로 승격[12] 해인사의 일주문.[13] 영규, 휴정, 유정[14] 순응조사(順應祖師), 희랑대사(希限大師), 이정조사(利貞祖師)[15] 노무현 자신은 특별히 종교를 가진 사람은 아니었다. 다만 매년 부처님오신날 때 가장 큰 연등(사람이 들어가 웅크려도 될 크기다)이 대웅전 앞에 두 개 달려 있었는데 하나는 이재용삼성전자 회장의 명의고, 다른 하나는 노무현 대통령/권양숙 영부인 부부 명의로 되어 있었다.[16] 육영수 여사와 같은 법명이다.[17] 이는 현직 대통령으로서는 최다 방문으로 꼽힌다.[18] #[19] 동안거라고 불리는데, 승려들이 겨울 동안 바깥 출입을 삼가고 수행에 힘쓰는 시기를 말한다.[20] 절에서 공양을 할 때는 항상 대량급식을 해야 하다 보니 가마솥이 무진장 큰 경우가 많다. 이 중 실존하는 가마솥으로 유명한 절은 충남 개태사가 있다.[21] 김종국(고향이 멀지 않다고)의 친척들이 운영하는 곳도 있다. 한두 곳이 아닌 듯.[22] 원래 관광 명소가 다 그렇긴 하지만 여기는 그 규모가 다르다.[23] 1일 14회(06:40부터 20:00까지 40분~1시간 20분(80분) 간격), 1시간 30분 소요[24] 약 30~40분 소요[25] 참고로 고령~해인사 구간은 국도와 지방도로 운행한다. 시외버스 대구서부-해인사 참조.[26] 2015년 6월 9일까지는 진주, 합천에서 해인사로 가는 시외버스였다[29].[27] 이전에는 성인 기준으로 전 구간 5,100원이였다.[28] 현재 부산에서 해인사로 가려면 시외버스 부산서부-거창 이용후 고령에서 해인사행 버스로 갈아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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