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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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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전설이 된 손현주거지 연기.

1. 개요2. 어형3. 역사
3.1. 산업화 이전
3.1.1. 서민사회의 발전과 예능인/상인의 분화3.1.2. 거지의 집단화3.1.3. 어쩔 수 없는 용인과 구제 문화
3.2. 산업화 이후
3.2.1. 공산주의3.2.2. 근래
4. 게임5. 기타6. 거지 혹은 거지였던 인물7. 별명8. 창작물에서9.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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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남에게 빌어먹고 사는 사람을 의미하는 단어이다. 조금 더 엄격하게 구분하면 일정한 소득이 없고, 거주할 곳도 없는 사람이다.[1] 더 나아가 이 없어 가난한 사람들을 지칭하기도 한다.

일을 할 의향을 가지고 먼 곳에 여행을 하며 일거리를 찾아 돈을 버는 이주 노동자(migrant worker)에 해당하는 떠돌이 일꾼(hobo)과는 다르다. 보통 거지들은 돈벌이를 위해 여행을 하지도 않고 일을 하지도 않는다.

2. 어형

太子ㅣ 것ᄫᅡᅀᅵ ᄃᆞ외야 빌머거 사니다가 마초아 믿나라해 도라오니
태자가 거지가 되어 빌어먹으며 살다가 마침내 본나라에 돌아오니
석보상절(1447)》 권24 中
거지라는 단어는 15세기 문헌에서부터 '것ᄫᅡᅀᅵ'의 형태로 나타나는 순우리말이다. 이후 이 '것ᄫᅡᅀᅵ'는 '거ᇫ와ᅀᅵ'→'거ᇫ워ᅀᅵ'→'*거ᅀᅥᅀᅵ'→'거어지'를 거쳐 지금의 '거지'가 되었다.[2] 일각에서는 '거지'가 '걸(乞)' + '-어치'가 줄어든 말이라고 주장하기도 하지만, 15세기 어형과 거리가 멀다는 점에서 설득력이 떨어진다.

발음이 서울 사투리로 변형된 '그지'라는 표현도 많이 쓰이고[3] 타 지역 사투리로는 '걸버시'도 있는데, 앞서 밝힌 어원에 따르면 이 형태가 더 고형이다.[4]

한국에서는 자주 배가 고프다는 사람들에게 "배 속에 거지가 사나?"라고 말하기도 한다. 관용적인 표현. 이 경우에 '배 속에 거렁뱅이가 있다'라고는 하지 않는다.

모든 사람이 다 이익을 보는데 자기 혼자만 빠져서 이익을 보지 못하는 사람을 이르는 '풍년거지'라는 말이 있다.

거지는 욕설로도 자주 쓰인다. '거렁뱅이'도 마찬가지. '빌어먹을', '망할' 등의 욕설과 같이 쓰이기도 한다. 또 질이 낮은 사람이나 물건을 지칭할 때 '거지 같다'라는 말을 쓰며, 천박하거나 질이 떨어지는 물건을 '거지발싸개'라고 한다. '그지'라는 말로도 변형되기도 한다.

비슷한 말로 '거렁뱅이'가 있다. 경상도에서는 이것이 변형된 '끌베이'라는 말도 있다.

가끔은 자신이 직접 구걸을 하지 않고 다른 사람들에게 구걸을 시켜 일정액을 받는 경우도 있다. 이럴 때 그 구걸을 대신하는 자를 앵벌이라고도 한다.


각설이도 비슷한 말이다. 옛날 드라마나 사극 등에서 거지 인물들이 구걸하며 부르던 노래로 자주 등장하던 각설이 타령이 있다.

한자어로는 걸인(乞人), 걸사(乞士), 개(丐), 개걸(丐乞), 걸개, 유개(流丐), 유걸 등이 있으며, 거지를 포함한 저소득층을 가리키는 포괄적인 사회 계층 용어로는 빈민이 있다.

영어로는 beggar[5]를 주로 많이 쓴다. '걸인'을 의미하는 panhandler, 매우 궁핍한 사람을 의미하는 pauper 등의 단어들도 있다. 그밖에 bum, vagrant 등의 표현이 있다.

3. 역사

3.1. 산업화 이전

동아시아권에서는 특히 유교가 사회에서 자신의 직분을 다하기를 요구하면서 유랑민에 대한 회유와 통제에 나섰고, 중세 유럽에서도 떠돌아 다니는 이들은 통제된 장원 질서를 흐트릴 수 있는 유랑민으로서 경계의 대상이었다. 여기에는 뚜렷한 자기 직업을 갖고 사회에 봉사하는 것을 중요시한 유교장 칼뱅 계열 프로테스탄트 등의 사상이 큰 영향을 미친다.

10 ~ 12세기 경에는 청빈하기를 강조한 수도자들의 탁발 운동이 성행하면서 걸인들에 대한 재인식이 이루어지기도 했지만, 12세기 이후에는 청빈에 대한 인식이 '자기 할 일을 충실히 하면서 검약을 통해 청빈해지는 것'으로 전환되면서 다시 걸인들은 통제의 대상이 되었다.

일본의 경우 불교가 융숭하기는 하였으나 전통적으로 거지는 '카와라모노'(河原者) 혹은 히닌[6]사람이 아니라는 뜻이다.](非人)이라 불렸으며, 단어 그대로 사람 취급을 받지 못했다. 전근대 일본의 걸인들 중 일부는 부라쿠민의 기원이 되었다는 주장도 있을 정도.

그런데 유랑한다는 면에서는 상인과 예능인도 통제와 억압의 대상이었다. 거지들은 많은 경우에 빌어먹기 위해 간단한 공연을 선보이거나 잔재주를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았다. 한편 판소리 명창 등 조선 시대의 오락을 담당한 많은 이들 역시 떠돌아다니면서 이따금 구걸을 하였다. 많은 수행승과 이름없는 선비 역시 마찬가지. 이러한 면에서 볼 때 거지와 그렇지 않은 자의 구분은 상당히 모호한 편이었다

3.1.1. 서민사회의 발전과 예능인/상인의 분화

사회적인 생산력의 발전에 힘입어 동아시아 지역에서는 농민들이 자립력을 갖추어 나가면서 전반적인 서민 사회가 구축되고, 천민층이 급감하는 동시에 예능인들이 사회적으로 인정을 받아 나가면서[7] 거지의 이미지는 서서히 '사회의 위험 세력'으로 축소되어 간다. 한편 유럽 지역에서는 합리주의의 부정적 영향으로 소수자에 대한 핍박이 나타나기 시작하며, 이 결과 거지의 이미지는 역시 '사회의 위험 세력'으로 축소되어 나갔다.

앞서 말한 판소리 명창이나 떠돌이 수행승, 선비과 우리에게 잘 알려진 거지의 경계는 여기서 갈라진다. 예능인으로서의 거지와 사회의 불안 세력으로서의 거지의 성격은 양면적으로나마 완전히 융화될 수 있는 것은 아니었으며, 그것이 사회의 변화에 힘입어 서서히 분화되어 나갔다.

3.1.2. 거지의 집단화

아래에서 나오는 걸인에 대한 시혜는 걸인들을 유력자와 연결시켜, 결국 걸인들이 하나의 권력 유지 수단으로 이용되는 계기가 되기도 했는데 대표적인 것이 명나라, 청나라대의 무뢰였다. 이미 우리에게 익숙한 '무뢰배'라는 단어에서 알 수 있듯 이들은 폭력 조직으로서 신사층의 권력 유지 수단 중 하나로 이용되었다. 무협지에 자주 나오는 개방은 이런 무뢰집단이 자립하여 폭력단화한 경우. 더 거슬러 올라가자면 전한대의 호족들도 유랑민들을 시혜를 통해 수용하여 자신들의 무력 기반으로 이용했다.

보통 무리를 만들어 다니는 경우가 잦았는데, 크게는 100명 가까이 하는 거대 집단이어서 이들의 우두머리인 꼭지는 조직폭력배인 검계도 함부로 건드리지 못하는 위치였다. 영조 때 유명한 꼭지였던 달문과 검계의 간부 표철주가 호형호제하는 사이였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꼭지의 위새에 대한 일화 하나로 한 궁중에 초청까지 올 정도로 유명한 예인에게 꼭지의 생신에 와서 풍악을 연주하라는 요청에 일언지하에 거절을 하자, 꼭지가 직접 와서 "니 집에 불을 지를 수 있다."고 협박을 하자 공연을 허락했을 정도. 그리고 생신날 거지들이 즐겁게 놀면서 구걸해온 재료로 만든 음식을 예인들에게 대접했다 한다. 또한 영조가 거지들을 우대하는 령을 내리자 생신날 대궐 밖에 모여 다 함께 함성으로 생신을 축하했다고. 그밖에도 일부 세력이 큰 집단들은 지네두꺼비를 잡아 한약방에 팔거나 잔치가 있을 때 다른 세력의 거지들이 물을 흐리지 않게 한다거나 하면서 벌이를 하기도 했고 미꾸라지를 잡아 추어탕을 해먹을만큼 여유가 있는 경우도 있었는데, 이렇게 큰 규모의 거지들은 밥은 빌어도 반찬은 안 빌어먹는 것을 자랑으로 여겼다고 한다.

미약하나마 사회에서 유용한 역할을 하던 예능인들과는 달리, 거지들의 상당수가 양민들에게 폭력적인 해를 입히거나 유력자들의 권력을 지탱하는 도구가 될 수 있었다. 따라서 국가 권력의 입장에서 볼 때 통제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었으며, 국가 권력이 성장해가면서 이들은 배척의 대상이 된다.

대한민국에서는 집단화된 거지로 김춘삼이 있었다. 김춘삼은 거지조직 두목으로 부랑아들을 한데 그러모아다가 구걸을 시키고 할당량을 채워 오도록 강요했다. 이게 현재는 앵벌이 조직으로 그 흔적이 남아 있다.

3.1.3. 어쩔 수 없는 용인과 구제 문화

그러나 산업화 이전에 토지 소유가 생존과 직결되었던 시대에 토지를 차지하지 못한 계층은 거지일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자연적으로 생성되는 거지들을 용인할 수밖에 없었다. 이에 따라 전근대 시대에는 거지들에게 구제라도 해줘야겠다는 시혜적 시각이 나타난다.

이슬람교 또한 자선(자카르트)이 5개의 주요 율법(신앙 고백, 예배, 자선, 금식월, 성지순례)[8]이기 때문에, 이슬람 주요 도시에는 거부들이 자선할 때를 노리는 거지들이 존재한다고 한다. 사우디아라비아 메카같은 성지에선 그런 경우가 하도 많아서 문제가 되기도 한다고.

윤회 사상이 사람들의 사고를 지배하고 있는 힌두교불교 문화권 또한 거지에 대해 비교적 우호적이다. 선행을 통해 윤회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을 마련해 주므로 거지들이 오히려 당당하게 행세하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불교 문화지만 거지에게 가혹한 일본과 같은 예외도 있기는 하다.[9]

유대인들이 모여사는 곳에는 유대인 거지가 꼭 한명씩 있었다. 유대인에게는 일상적인 기부가 의무이기 때문에 이들은 선행의 대상으로서 없으면 안 될 존재였기 때문이다.

이러한 구제 문화가 있는 지역의 경우 이를 이용하여 "내가 당신에게 착한 짓을 하도록 동기를 부여하는데 나한테 이렇게 대접하면 안 되지" 하며 큰소리를 치는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힌두교 문화권의 거지 역시 적선을 통해 적선자가 좋은 업을 쌓는 것이므로 고맙게 여겨야 할 사람은 자신이 아닌 상대방인 것으로 본다고 한다.

17~18세기 스페인의 경우에도 거지들이 대성당 주변에 빼곡히 모여서 성당을 드나드는 사람들한테 당당하게 구걸을 했고, 스페인 사람들도 그런 거지들을 나쁘게 안 보고 성당 주변이나 도시 안에 그대로 머무르도록 용인해주었다.[10] 심지어 중남미의 스페인 식민지 도시들에도 거지들이 수두룩했는데, 가끔 화산이나 태풍 및 지진 같은 재앙이 일어나면 "이건 '너희들 중에서 가장 굶주린 사람한테 먹을 것을 주지 않는 자들은 결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라는 성경의 말씀을 우리가 어긴 탓에, 하느님이 천벌을 내린 것이다!"라고 여겨서 거지가 들고 있는 구걸통에 앞다투러 돈을 기부하는 일이 잦았다.

3.2. 산업화 이후

산업혁명으로 토지보다 노동력이 중요한 시대가 도래하면서, 이제 거지는 '토지를 확보하지 못한 떠돌이 농민'이 아니라 '공장이 있는데도 일을 하지 않는 사람'이 되어 더욱 배척받게 되었다.

산업사회에 접어들어 이런 떠돌이 예능인, 직업군이 이상한 것으로 치부되고 사회체계가 발전함에 따라 사람이 본격적으로 사회의 일부로 예속되는 현상이 발생했다. 이 과정에서 '그 정체성을 명확히 갖추고 정체성을 수호할 만한 집단을 제대로 이루지 못한 많은 직업 혹은 인종'들이 핍박받았는데 이러한 핍박과정에서 거의 모든 거지들은 소멸했다고 볼 수 있다. 특히 유대인과 함께 '떠돌이 집시'에 대한 사회적 압박이 폭발한 홀로코스트 이후로, 이러한 현상에 대한 재조명은 더욱 활발해지고 있다.

한국의 경우에도 산업화 이전에는 거지가 많았다. 그러나 지금은 복지시설이나 정신이상자들을 치료하는 기관에 바로 입원시키는 일이 많고, 산업화에 따라 많은 거지들이 원하지 않는 직업을 가지게 되는 경우도 있다. 516 도로같은 위험한 토목공사 등에 끌려가 노동에 동원되었다가 사망하는 일도 많았다고 한다.

근대 서구 사회에서는 중세 시절 당시의 ‘신성한 가난’이라는 종교적 이념을 벗어던진 후 빈민들에 대해 가혹한 태도를 취했다. 17세기 네덜란드에서는 빈민과 유랑민들을 구금하여 노역을 시키는 라습하위스(rasphuis)라는 기관이 만들어졌는데, 이곳에서는 재소자들에게 브라질나무(brazilwood)를 대패로 깎는 일을 시켰다. 선명한 붉은색 염료의 재료가 되는 이 나무는 재질이 너무 단단해서 대패질이 극심한 중노동이므로 누구도 하지 않으려 했다. 결국 빈민들에게 이 일이 돌아갔다. 이곳에서는 하루 종일 대패질을 하도록 시킨 다음 저녁에 결과물의 양을 재서 기준량을 채운 사람에게는 식사를 주고 그렇지 못한 사람에게는 식사량을 줄이든지 아예 굶겼다. 붉은 먼지가 몸에 붙어 마치 온몸에서 피가 나오는 듯한 모습을 한 채 재소자들은 오직 저녁 한 끼 얻어먹기 위해 하루 종일 중노동을 해야 했다. 심지어 이런 기관에서도 교정이 안 되는 빈민은 물이 차오르는 지하 감옥으로 보냈다. 이곳에 갇힌 사람은 간단한 펌프 하나를 주어서, 익사하지 않으려면 끊임없이 펌프질을 해야 했다. 잠시 눈을 붙였다가도 다시 일어나 펌프를 움직여야 한다. 게을러서 가난하게 되었으니 노동의 소중함을 교육시킨다는 것이 이 감옥의 명분이었다. 근대 초입에 빈민은 성인은커녕 구금과 강제노동을 강요당하는 일종의 범죄자 취급을 당했다. 이윤 추구를 정당화한 스콜라 철학… 초기 자본주의 문을 열다

3.2.1. 공산주의

공산주의 체제와 같은 계획경제 체계에서는 국가가 모든 인원을 책임지고 먹고 살게 계획하므로 원칙적으로는 거지가 없어야 한다. 그러나 말이 이렇다 뿐이지 사실 일부 공산국가에도 있었고 지금도 있다. 공산주의 국가에서는 직업을 갖게 되면 자동적으로 사회복지 시스템에 등록이 되는 방식이다. 다시 말해, 직업없이 사는 사람에게는 사회복지 서비스가 제공되지 않고 의료, 보험, 주거등의 혜택에서 이탈하게 된다. 소련과 중국을 비롯한 공산국가에서 사회복지 시스템에 등록이 되지 않은 사람들도 적지만 엄연히 존재했다. 소련 해체 후의 러시아와 중국은 자본주의 맛을 보면서 빈부격차가 심해져 거지가 더 늘어났다. 시진핑의 국정과제 1호가 함께 잘사는 중국이니까 말 다했다.

웃기는 상황이긴 한데 중국의 록 가수 최건이 80년대 중반, 본격적으로 록 밴드를 구성하고 활동할 요량으로 베이징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를 탈퇴했을 때 록밴드가 제대로 된 직업으로 인정받지 못해서 무직으로 분류되는 바람에 이러한 서비스에서 제외된 바 있다. 뜻하지 않게 거지 취급을 받은 것(...)[11].

3.2.2. 근래

실업자 문제가 대두되자 거지가 다시금 '노력했지만 기회를 잡지 못한 소외 계층'으로 바뀌어가고 있다. 이들에 대한 사회적 구제 정책도 많이 펼쳐지고 있는 편이다.

한편으로는 지하철 앵벌이조직폭력배와의 연관성 등의 새로운 문제가 나타나면서 거지에 대해 마냥 돕자는 시각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거주지도 직업도 다 있으면서 조직폭력배의 비호를 받고 그들의 용돈벌이를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러한 사람들은 위의 개요에서 서술한 거지의 정의에 따르면 거지라고 부르기 어렵다.

아르바이트 같은 직업을 얻어서 받는 최저시급보다 거지들이 하는 구걸질이 더 돈을 많이 받는다는 우스갯소리도 있다.[12] 실제로 40초에 한 명씩 100원씩만 던져줘도 최저시급보다 높아지기는 한다. 구걸로만 12억을 번 거지의 사례도 있다! 그런 식으로 최저시급보다도 많이 구걸할 수 있는 사람에게 기초수급을 주어야 하는지 논란이 될 수 있다. 종점의 기적과 같이 장애인인 척 속여서 구걸을 하는 경우도 있어 비판의 여지가 있다. 물론 상당수의 복지국가에서는 이런 거지들이나 기타 부정수급자들을 칼같이 잡아내거나, 정부에서 알선하는 일자리에서 근무하는 조건 하에서만 수급지원을 하는 조건부 수급자로 지정해서, 이런 일을 최대한 방지하고자한다.

4. 게임

온라인 게임에서도 많이 목격된다. 특히 "저기 템 좀 남는 것들 주세요...""초보자인데 물약 사게 골드 좀 주세요..."는 어지간한 게임에선 다 보이는 구걸.

한편 진짜로 게임에 거지라는 직업을 구현한 경우도 있다. 대표적인 예는 울티마 온라인의 구걸(Begging) 스킬.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것은 아니고, NPC에게 사용하는 스킬이다. 최대 10gp를 던져준다. 배울 수 있는 스킬 숫자가 제한되는데 비해 돈을 버는 효율은 그다지 높은 편이 아니므로 굳이 배우는 사람은 없었다. 올리기가 쉬운 편도 아니었고. 때문에 이 스킬을 100까지 찍어 Grand Master Beggar 칭호를 딴 사람은 두고 두고 이야깃거리가 되었다. 또한 에버퀘스트에서도 구걸 스킬이 있었는데, 이쪽도 별로 의미 없는 잉여 스킬이었지만 탱커를 하는 워리어들이 많이 익혔다. 구걸 스킬이 소량의 어그로를 생성하는 부가 효과가 있었기 때문이다.

5. 기타

6. 거지 혹은 거지였던 인물

7. 별명

8. 창작물에서

창작물에 등장하는 거지는 비참한 상황임에도 자존심이 쎄고 당당하고 유식한 표현을 쓰는 경우가 많다.

한편 특별한 지식이나 능력, 아이템 등을 보유하는 '지나가던'의 속성을 가진 경우도 많은 편.

9. 관련 문서


[1] 단순히 돈이 없는 사람이라면 부채가 자산보다 많은 수많은 사람들을 거지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2] 출처: 표준국어대사전[3] 서울 사투리에서는 가 중설 중고모음으로 변형되는 특징이 있다. 다른 예시로 표준어의 더럽다, 정말이 드럽다, 증말에 가깝게 발음된다. 다만 로 체감하기 쉽고 그렇게 많이 옮기지만 따지자면 좀 다른 발음이다.[4] 일반적으로 방언형이 더 고형이고, 음 추가보다는 음 탈락이 더 쉬우므로 음이 더 긴 어형이 고형으로서 방언에 남아있는 것은 자연스러운 양상이다.[5] 구걸(beg)하는 사람(-er)의 변형[6] 아닐 비, 사람 인. 즉[7] 판소리는 처음에는 서민 예술이었지만 서서히 양반층을 상연의 대상으로 확대해 나가기 시작했으며, 흥선대원군 때에는 경회루가 완공되자 이를 축하하기 위해 신재효 등 명창을 초청하기까지 했다. 여기에는 흥선 대원군 본인의 취향도 반영되었다고 한다. 즉 이 시점에서 소리꾼들은 걸인과는 상당히 이미지가 분화된 상태였다.[8] 이를 '이슬람의 다섯 기둥'이라고 한다. 단 이는 순니파에만 해당하는 것이며 시아파는 이를 규정하지 않는다.[9] 일본 무사 집안의 경우는 집의 대문 앞에 중이나 거지가 와서 동냥을 하면, 활로 쏴 죽여버리라는 가훈이 있을 정도였다(...) 이런 전통 때문인지 일본에서 거지나 노숙자들은 결코 구걸을 하지 않으며, 대신 스스로 쓰레기통을 뒤져서 먹을 것을 구하거나 고물이나 폐지를 주워팔거나 일용직 노동이라도 하는 등 돈벌이를 해야 한다.[10] 물론 스페인 정부의 장관들은 이런 행태에 대해서 "나라 안에 거지들이 너무나 많고, 백성들이 그런 거지들을 용인해 주니까 사회 기강이 엉망진창이 된다! 그러니 거지들은 모조리 쫓아내거나 강제로 붙잡아가서 일을 시켜야 한다!"라고 못마땅하게 여겼다. 하지만 스페인 백성들의 절대 다수가 가난한 사람한테 자비를 베푸는 것을 최고의 미덕으로 여기는 독실한 가톨릭 교도였기 때문에 스페인의 거지들은 결코 줄어들지 않았다(...)[11] 이런 경우는 공산주의 국가에서는 꽤나 흔한 편이라서, 정부로부터 제대로 된 직업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록 가수나 팝 가수들은 울며 겨자먹기로 투잡을 뛰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소련의 록밴드인 키노의 리더인 빅토르 초이가 그 예인데, 가수로 활동하고 있지않을 때는 보일러공으로 일하면서 생계유지를 했다.[12] 셜록 홈즈 소설 입술 삐뚤어진 사나이의 주인공이 거지 노릇을 하여 큰 돈을 벌어 신사 행세를 한다.[13] 이 표현의 어원은, 시장통에서 고전소설을 읽어주던 이야기꾼이 화제를 돌릴 때 쓰던 "각설, 이때~"라는 상투어를 유래로 한다.[14] 팀명에 붙은 기업명 '키움'은 모기업이 아닌 현재 네이밍 스폰서다.[15] 하지만 양의지는 2023 시즌을 앞두고 다시 베어스로 컴백했다.[16] 당연히 실제 거지는 아니고 짤 때문에 그런 거다.[17] 아예 거지신으로 불린다. 지못미.[18] 얘기 진행도중에 구렁이를 막대기로 살해하고 제비다리를 고쳐놓은후에 받은 박씨를 통해 거지에서 탈출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