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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거지가 없는 세상은 어디에도 없다.
丐幇[1]소설 《천룡팔부》, 《사조영웅전》, 《신조협려》, 《의천도룡기》의 등장단체.
천하의 모든 거지들이 소속된 방파로, 의를 행하고 협을 받들며 어려운 사람을 도와주어야 한다는 정의로운 문파이다. 총타(總陀)는 《천룡팔부》 기준으로 송나라 경서북로 서도하남부 하남현에 위치해 있다.[2]
《천룡팔부》, 《사조영웅전》, 《신조협려》에서는 무척 좋게 그려진다. 하지만 세 작품을 제외하면 그다지 대우가 좋지 않다. 듣보잡 취급이거나, 악당에게 이용당한다거나…
《의천도룡기》의 개방은 《사조영웅전》, 《신조협려》에서 그대로 이어진 조직이지만 세월이 많이 지났기 때문인지 여러가지로 차이가 많이 생겼다. 그리고 야율제 이후로 걸출한 방주가 배출되지 않아서 명성과 위세가 많이 쇠퇴했다고 한다.
가장 유명한 인물로 《천룡팔부》의 주인공 소봉, 《사조영웅전》, 《신조협려》 천하오절 중 한명인 홍칠공과 히로인 황용을 꼽을 수 있다.
2. 조직
2.1. 방주
역대 방주- 조사
서른여섯 가지의 초식을 갖춘 타구봉법을 만들었다. - 제3대 ?
무공이 조사보다 강해서 타구봉법에 현란한 변화를 가미하여 절정 무공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 제11대 ?
북고산(北固山)에서 홀로 일봉쌍장(一捧雙掌)으로 낙양오패(洛陽五覇)를 물리쳤다고 한다.[사조영웅전] - 제(?)대 왕검통
소설 《천룡팔부》에 등장하는 방주. 교봉의 선대 방주. - 제(?)대 교봉
소설 《천룡팔부》에 등장하는 방주. 《천룡팔부》의 주인공. 항룡이십팔장을 구사하던 인물이다. 훗날 소봉이 허죽에게 전수하는 과정에서 항룡십팔장으로 줄어든다. - 제(?)대 장취현
소설 《천룡팔부》에 등장하는 방주. 교봉의 후대 방주. - 제17대 ?
어리석고 유약한 인물이라 무공은 높았지만 일 처리가 공정하지 못해 정의파와 오의파의 분쟁이 끊이질 않아 개방의 명성이 크게 퇴색했다.[사조영웅전] - 제18대 홍칠공
소설 《사조영웅전》에 등장하는 방주. 황용의 스승. - 제19대 황용
소설 《사조영웅전》, 《신조협려》에 등장하는 방주. 《사조영웅전》의 주인공. 홍칠공의 제자. 황용이 정식으로 취임하기 전에 타구봉이 우연히 완안강의 손에 흘러 들어가서 양강이 후대 방주를 참칭한다. - 제20대 노유각
소설 《신조협려》에 등장하는 방주. 홍칠공의 제자. - 제21대 야율제
소설 《신조협려》에 등장하는 방주. 황용의 제자. - 제(?)대 사화룡
소설 《의천도룡기》에 등장하는 방주. - 제(?)대 사홍석
소설 《의천도룡기》에 등장하는 방주. 사화룡의 딸. 사화룡의 후대 방주.
개방의 방주는 전대 방주에 의해 지명되며, 대대로 신물인 타구봉과 타구봉법을 전수받는다. 항룡십팔장은 개방 대대로 전해져내려오기는 하지만 방주 전용 무공은 아니다.[5]
방주로 옹립될 때는 반드시 다른 거지들에게 가래침을 받는 규율이 있다. 거지는 사방에서 구걸을 하다 보면 수많은 사람에게 욕을 얻어먹으므로, 뭇 거지의 우두머리는 반드시 먼저 방내의 많은 거지들에게 욕을 당해야 한다는 깊은 뜻이 있다.
이후 몇 대인가 별 볼일 없는 인물이 방주가 되었다고 한다.
《의천도룡기》시대에는 사화룡이 방주가 되었고, 그 딸 사홍석이 방주 자리를 물려받았다. <소오강호> 시대에서는 엑스트라급이지만 개방 방주인 해풍이 등장하며, 10대 고수안에 드는 실력자이자 무림에서 가장 세력이 큰 집단 중 하나가 개방이라 한다. 비슷한 시기인 <협객행>에서도 존재했을 것이다.
2.2. 부방주
<천룡팔부> 시대에는 마대원이 부방주로 존재했다. 사조삼부곡에서는 확실히 존재하지 않는 직위이다. 그러나 소오강호에서는 부방주로 장금오라는 인물이 등장한다. 당연히 방주 다음의 서열이다.2.3. 4대 장로
서로(西路) 동로(東路) 남로(南路) 북로(北路)가 있다. 표식으로 9개의 자루를 짊어진다.- 노유각 장로
- 간(簡) 장로
- 양(梁) 장로
- 팽 장로
- 개방의 4대 장로중 한명. 뚱뚱한 체형이다. 섭심술(攝心術)을 쓰는 인물로 곽정과 황용을 섭심술로 붙잡았다. 무공은 간 장로에 미치지 못한다. 황용이 방주로 인정을 받자 섭심술로 다시 그녀를 쓰러뜨리려다가 이혼대법에 역으로 당해버렸다. 이 때의 죄로 장로직에서 해고되고 팔대 제자로 강등되었다. 이후 개방을 배신하고 탈퇴했다.
- 진남금(개정판에서는 목염자)을 겁탈하려다가 곽정이 기르는 큰 수리에게 쪼여서 한 쪽 눈과 머리가죽을 잃었다.
- <신조협려>에서도 등장. 완전히 악당이 돼서 몽골군에 투항했다. 몽골군 복장을 하고 금륜법왕의 곁에 서서 개방을 이길 책량을 가르쳐주기도 했다. 그리고 몽골군의 진남대장군(鎭南大將軍) 벼슬을 받고, 개방을 분열시켜 북파(北派) 개방을 만들려 한다. 잠시 사냥꾼의 집에서 쉬고 있던 양과와 소용녀를 만난다. 팽 장로는 개방의 배신자 거지와 대화를 했는데 그 동안 양과는 짐짓 모르척 하면서 기회를 노리다가, 팽 장로와 손을 잡은 개방의 배신자 거지가 문 밖으로 나오자 점혈을 해서 마비시키고 눈을 덮어 눈사람으로 만들어버린다. 그리고 팽 장로는 그것을 알고 이상하게 생각했지만, 그 거지는 자신도 마음에 안 들어 하고 있었으므로 마침 잘 됐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때마침 단지흥과 구천인이 들어오자 구천인에게 섭심술로 살심을 일으켜서 눈사람으로 변한 배신자 거지를 죽이게 한다. 그러나 자신이 사람을 죽였다는 사실을 알고 상심한 구천인은 더욱 마음 속의 살기를 억제하지 못해 팽 장로도 쳐죽여버렸다. 비참한 자멸이었다.
2.4. 8대 제자
표식으로 8개의 자루를 짊어지고 있다. 아래로 내려갈수록 숫자가 하나씩 줄어들며, 등에 짊어진 자루의 수로 자신의 대수를 표시한다.총 9명이 있었는데, 여생이 자결하여 8명이 되었다. 예전에 목염자가 구해준 두 거지도 8대 제자. 무공 수준은 윤지평이나 양강과 비슷하다.
- 여생(黎生)
- 개방의 8대제자. 강동사왕(江東蛇王)이라는 별칭을 가지고 있다. 구양극에게 위협받던 정요가를 돕기 위해 구양극에게 도전했지만 무공이 딸려서 패배했을 때 마침 지나가던 곽정에게 도움을 받았다. 소요유 권법을 사용하며, 홍칠공에게 항룡십팔장 중 신룡파미의 초식만 전수받았다.
- 철장방의 방도들이 양민을 괴롭히고 아녀자를 희롱하는 것을 보고 가만히 있지 못해 저지하다가 중상을 입혔는데, 양강이 방주로 선출된 개방 대회에 구천인이 나타나 항의했다. 양강은 의를 받들고 협을 행해야 한다는 개방의 방규도 무시하고 일단 구천인에게 잘 보이기 위해 여생에게 사죄하라고 요구했으며, 여생은 분노를 참지 못해 자결하고 만다. 개방의 의기는 세웠지만, 조금만 분을 참았다면 곽정과 황용이 문제를 해결하고 앞으로 큰 일을 했을 것이다. 아까운 인물.
- 여조흥(餘兆興)
- 여생의 사질. 여생과 함께 다닌다. 여생이 자결하자 자신도 따라서 자결했다.
2.5. 9대 장로
<의천도룡기>시대에는 9개의 자루를 짊어지는 계급이 장로가 되었다.- 장발용두(掌鉢龍頭)
- 손에 거지들이 밥을 빌어먹는 하류층임을 상징하는 깨어진 바리때를 들고 있다. 성은 옹(翁)씨. 세가닥 수염을 길게 길러서, 거지 옷차림새가 아니라면 선비처럼 보일 용모다. 나이는 50을 넘은듯 머리카락과 수염이 희끗희끗하다.
- 장봉용두(掌棒龍頭)
- 집법장로(執法長老)
- 전공장로(傳功長老)
2.6. 8대 장로
<의천도룡기>시대에는 이전의 8대 제자가 장로로 불리게 되었다.* 진우량(陣友諒)
* 실제 역사에서는 명나라 말기의 지방군벌로 홍건군에 가담했으나 주원장의 세력에 밀려 패배하고 죽었다. 의천도룡기에서는 성곤의 제자이며, 개방에 입문하여 내부에서 개방을 조종하고 있었다.
* 다른 개방 제자들과 영사도에서 사손을 공격했으나 실패하자 도망쳤다.
* 송청서와 막성곡이 싸우고 있는 틈에 뒤치기를 하여 막성곡을 살해하고 그것으로 송청서의 약점을 잡아 그를 이용해서 무당파 고수들의 식사에 독을 타서 무당파를 멸망시키려는 음모를 꾸민다. 또한 강소, 산동 일대를 지휘하는 명교의 우두머리 한산동의 아들 한림아(韓林兒)를 잡아 한산동을 제압하려는 음모도 꾸미고 있었다. 그리고 사손과 주지약이 장무기와 떨어진 틈에 혼수상태에 빠뜨리고 잡아오기도 했다.
* 성곤이 살해한 개방 방주 사화룡을 대신하여 가짜 사화룡을 만들어 방주로 만들고, 개방도 지배하려는 음모를 꾸미고 있었으나 황삼미녀에게 탄로나자 도망친다.
* 이후 역사대로 홍건군에 투신하여 활동하다가, 주원장에게 패하면서 그에게 원한을 품은 명교 오행기 신도들에게 잔인하게 살해되었다.
* 2019년 판에서도 원작과 비슷하게 흘러가나 한림아와의 이야기는 삭제되었고 송청서를 대신해 막성곡을 살해하는 등 다른 부분도 있다. 황삼미녀에게 도망친 후 등장은 없다. 마지막회에 몽골을 몰아내고 양소와 대화하는 장무기에 의해 남은 북쪽의 잔당들이라는 식으로 한 번 언급된다.
* 다른 개방 제자들과 영사도에서 사손을 공격했으나 실패하자 도망쳤다.
* 송청서와 막성곡이 싸우고 있는 틈에 뒤치기를 하여 막성곡을 살해하고 그것으로 송청서의 약점을 잡아 그를 이용해서 무당파 고수들의 식사에 독을 타서 무당파를 멸망시키려는 음모를 꾸민다. 또한 강소, 산동 일대를 지휘하는 명교의 우두머리 한산동의 아들 한림아(韓林兒)를 잡아 한산동을 제압하려는 음모도 꾸미고 있었다. 그리고 사손과 주지약이 장무기와 떨어진 틈에 혼수상태에 빠뜨리고 잡아오기도 했다.
* 성곤이 살해한 개방 방주 사화룡을 대신하여 가짜 사화룡을 만들어 방주로 만들고, 개방도 지배하려는 음모를 꾸미고 있었으나 황삼미녀에게 탄로나자 도망친다.
* 이후 역사대로 홍건군에 투신하여 활동하다가, 주원장에게 패하면서 그에게 원한을 품은 명교 오행기 신도들에게 잔인하게 살해되었다.
* 2019년 판에서도 원작과 비슷하게 흘러가나 한림아와의 이야기는 삭제되었고 송청서를 대신해 막성곡을 살해하는 등 다른 부분도 있다. 황삼미녀에게 도망친 후 등장은 없다. 마지막회에 몽골을 몰아내고 양소와 대화하는 장무기에 의해 남은 북쪽의 잔당들이라는 식으로 한 번 언급된다.
- 계(季) 장로
- 정(鄭) 장로
- 비쩍 마룬 몸매에 용색이 초췌하여, 그야말로 거지같이 생겼다. 회풍불류(廻風拂柳) 초식을 사용한다. 영사도에서 진우량과 같이 사손을 공격하다가 중상을 입고 진우량과 같이 도망쳤다.
3. 방규
원래는 더러운 옷만 입고 구걸로 얻은 음식만 먹어야 한다는 규율이 있지만, 정의파와 오의파의 대립에서 보듯이 잘 지켜지지 않는다. 홍칠공이 미식을 즐기는 것도 엄격하게 따지면 방규 위반이다.[6]거지의 본분을 지키기 위해, 반드시 바닥에 앉으며 의자에 앉지 않는다.
축제 날에는 닭이나 생선, 소 양고기를 잘게 썰어서 먹다 남은 죽처럼 만들어 먹는다. 근본을 잊지 않자는 의미에서의 법규이다.
<의천도룡기> 시대에는 대체로 지켜지지 않게 된 것 같다.[7][8][9]
4. 파벌 대립
아마 천룡팔부 이후 시대부터 사조영웅전까지 정의파와 오의파 두 파벌로 나눠서 대립이 있다. 천룡팔부 시대는 정의파와 오의파 구분이 없으며, 오히려 교봉(소봉)이나 마대원, 전관청, 백세경 같은 인물들은 누가 봐도 보통 무림인의 행색 즉 정의파의 모습을 하고 있다.[10] 사실 천룡팔부의 개방은 거지 모임이라 보다 일반 무림 문파에 가깝다.[11] 역시 소봉 사후 개방이 두 파벌로 나뉘어지며 내분이 생겨난 듯 싶다.- 정의파(淨衣派) : 방회가 열릴 때는 거지 옷을 입기는 하지만 평소에는 보통 사람과 다르지 않게 산다.[12] 원래 강호의 호걸들이거나 개방의 의협심에 탄복하여 들어온 사람들, 혹은 개방 제자들과 친분이 있어 들어온 사람들로 실제로 거지는 아니다.
- 오의파(汚衣派) : 실제로 구걸을 하며 살아가고, 개방의 계율을 엄격히 준수한다. 금전과 관련된 일을 전혀 하지 않고 외부인과 함께 식사하지 않으며, 모르는 자들과 싸움도 하지 않는다.
홍칠공은 첫해에는 깨끗한 옷을 입고, 두번째 해에는 더러운 옷을 입는 식으로 두 파의 대립을 조정했다.
- 사조영웅전> 시대에는 사대 장로 중에서 정의파는 3명이고 오의파는 노유각 1명 뿐이지만, 중간과 하층 제자 중에서는 오의파가 절대 다수이다.
- <신조협려> 시대에는 정의파의 팽 장로가 배신자로 지목된 것도 있고, 나머지 장로들도 죽거나 앓아누워 오의파가 완전히 득세하게 되었다.
- <의천도룡기> 시대에는 사화룡이 실종된 후, 정의파와 오의파의 대립이 격화되어 분열이 심화되었다고 한다.[13]
[1] 윳팽은 'koi3 bong1'이다. 간체자는 '丐帮'이고, 한어병음으로는 'Gàibāng'이다.[2] 西都河南府 河南縣. 현대 기준으로는 '중국 허난성 뤄양시'[사조영웅전] 소설 《사조영웅전》에 나오는 설명.[사조영웅전] [5] 홍칠공은 기분이 좋으면 개방 제자들에게 한 초씩 전수해주곤 했다.[6] 물론 기본적으로 홍칠공 본인이 미식을 좋아해서 그런 것도 있지만 정의파와 오의파의 대립에서 중립을 지킨다는 의미도 있을 지도 모른다, 아마도.[7] 왜 이런 걸 가지고 논란을 벌이는가 싶겠지만 사실 개방은 사조시리즈 통틀어 가장 거대하고 또, 정파를 대표하는 방파이기도 해서 당연히 거지가 아닌 외부 인사들도 개방에 협조하거나 아예 가담하는 일도 많았다.(곽정이 이렇게 개방에 협조하는 대표적인 인사다.) 그런데 이 사람들은 개방의 협의에 반해서 가입한 것이지(양양성을 지키는 곽정을 돕기 위해 개방 사람들이 다수 참가한 것으로 보인다. 당장 곽정과 황용 또한 홍칠공의 제자에 개방 방주이기도 하고. 제3차 영웅대연도 곽정, 황용 부부가 주최했는데 이들과 개방의 관계 및 영웅대연의 내용이 새로운 개방 방주를 뽑는 것이라는 점 등을 보면 사실상 개방에서 주최한 거나 마찬가지다.) 거지가 되기 위해서는 아니므로 생활 자체는 이전처럼 유지하려고 했다. 그런데 또 이렇게 되면 개방의 거지만 가입한다는 정체성이 사라지게 된다. 원래 개방은 협객들의 단체이기도 하지만 거지들의 상조단체로서 출발했던 단체였기 때문. 그러므로 개방의 세력을 넓히고 문호를 개방하자는 쪽이 정의파, 개방의 본질을 지키자는 쪽이 오의파이다. 사실 둘 다 어느 정도 개방의 성격을 대변하는 파벌이므로 누가 반드시 옳다고 말할 수는 없는 셈이다.[8] 굳이 따지자면 외부 출신인 황용과 야율제가 정의파, 홍칠공과 노유각이 오의파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이들은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공정하게 방을 이끌었던 뛰어난 인물들이라 의미없는 말이긴 하지만.[9] 이때부터 이미 개방은 곽정과 여문덕처럼 원의 침공에 대항하는 장수들을 돕기 위해서 외부의 조력을 많이 필요로 했기 때문에 문호를 열 수 밖에 없었고 그 때문에 정체성이 많이 옅어졌고 규율도 많이 느슨해진 것으로 추측된다.[10] 사실 이들은 외부에서 들어온 파벌이기도 하다. 교봉만 해도 원래 소림사에서 무술을 배웠고.[11] 아무래도 이 시절은 정의파가 헤게모니를 잡고 있었던 듯하다.[12] 심지어 부자라서 비단옷을 입고 사는 사람도 있다고.[13] 이미 송나라 자체가 망했기 때문에 과거처럼 외세에 대항하기 위해 외부 인물들을 받아들이는 것 자체는 줄어든 듯. 그래서인지 헤게모니 자체는 오의파가 잡고 있으나(장로 전원이 오의파로 추측) 대신 방주 사화룡 및 사홍석은 정의파인 것으로 추측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