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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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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특징3. 줄거리4. 등장인물
4.1. 주요 인물4.2. 조력자4.3. 염천교 거지들4.4. 깡패4.5. 친일파4.6. 주변 인물들4.7. 그 외 단역들
5. 그 밖의 이야기들
5.1. 거지들의 소굴 '염천교'의 유래5.2. 실존인물 김춘삼의 6.25 참전 여부5.3. 편성과 캐스팅 문제, 연장

[clearfix]

1. 개요



1999년 4월 5일부터 같은 해 7월 6일까지 방영된 MBC의 28부작 월화 드라마삼화프로덕션에 외주를 맡겼다. 극본은 지상학 & 변원미, 연출은 장용우 PD, 조연출은 박호경 & 주창범 PD, 촬영감독은 한대웅, 조명감독은 최성문, 동시녹음은 이경석 외 다수, 편집감독은 김현수, 편집은 황금봉, 무술감독은 정두홍, 특수효과는 장용준, 음악감독은 고병준, 미술감독은 송재희(MBC미술센터), 그래픽디자인은 김익원 등이 각각 맡았다.

일제강점기부터 5.16 군사정변까지를 시대적 배경으로 삼고 있으며 그 시절을 살았던 거지깡패들의 이야기를 소재로 하고 있다. 실존 인물인 김춘삼이 주인공이며 시대적 배경 등 역시 실제 역사적 사건을 다루고 있긴 하나 김춘삼을 비롯한 주요 인물들부터가 모티브인 실존 인물의 행적이나 관계에 대한 기록과 크게 차이가 나는 만큼 이야기 자체는 허구라고 보면 되겠다. 역사고증에서 비판이 많은 편인 야인시대가 사실과 허구를 적절하게 섞은 수준이라면 왕초는 철저하고 완벽하게 허구 뿐이다.

2. 특징

원래 제목은 "풍운의 강"이었으나, 하단에 기재된 캐스팅 난항으로 편성이 많이 미뤄지면서 제목도 '왕초'로 바뀌었다.

또한 주인공인 김춘삼을 지나치게 미화한 게 이 드라마의 특징이며 실존인물 김춘삼은 엄청난 악질 불한당이었다. 부산 중부시장에서 상인들에게 금품 갈취와 기물파손, 폭행을 심하게 해서 현상수배까지 되었던 놈이 바로 김춘삼이다. 링크는 1960년자 관련뉴스다. 해방을 전후한 시대의 깡패 중 최악의 인물이 김춘삼이었다. 적어도 다른 깡패들은 아랫사람들에게 앵벌이를 시키지 않았다. 김춘삼만 앵벌이를 시키며 불법적 아동학대를 일삼았다. 김두한이 그래도 최소한의 도리를 지키고 국회의원이 되고 나서는 깡패를 완전히 그만둔 것[1]과는 달리 김춘삼은 평생을 인간쓰레기 외길인생을 살아온 인간 말종이다.

열 살 차이가 나는 김춘삼(1928 ~ 2006)과 김두한(1918 ~ 1972)을 친구로 설정했다. 자서전에서는 김두한을 동생으로 삼았다고 나온다. 기본적으로 김춘삼의 자서전을 바탕으로 하고 있는데 김두한과 친구였다는 것 등은 모두 이 자서전에서 나온 내용이다. 사실 자서전 내용과도 많이 다르다. 예를 들어 드라마에서는 6.25전쟁에서 활약한 장면이 나오지만, 왕초라는 동명의 자서전에는 김춘삼이 한국전에서 나름 활약을 했는데 한국군에 잠입한 북한군 첩자에 의해 총살당할 뻔한 걸 지나가던 박정희가 구해준다는 내용이 있는 등 신뢰성이 낮다. 당시 박정희는 대대장급 인사였는데 일개 병졸이던 김춘삼과 콕찍어서 만나서 뭘 했다는 것은 신빙성이 없을 뿐더러 김춘삼이 박정희의 직속 부하도 아니기 때문에 더더욱 그럴 일이 없다. 아마 김춘삼이 당시 박정희가 무슨 계급으로 군복무를 하고 있었는지조차 몰랐을 가능성이 높다. 박정희는 6.25전쟁 당시 소령에서 중령 정도였다. 게다가 당시 박정희는 보직이 육군정보학교장으로 전쟁터에 나오지도 않았다.

비슷한 시기와 비슷한 소재를 다룬 다른 작품들과는 다르게 깡패 세계를 미화한다거나 액션을 과장하는 등의 장르적 연출이 덜하고, 시궁창 같은 거지들의 생활을 묘사하는 데에 중점을 뒀으며 경기도 양주군 MBC 문화동산에 7억원을 들여 1930~60년대 사이의 종로 거리를 재현한 오픈 세트장을 차릴 정도로 질적 향상에 기여했다. 그러나 1959년 이후 화신백화점 쪽으로 옮긴 우미관이 나온다거나 1930년대 남한에서 멸종된 호랑이를 그래픽으로 등장시킨다거나 고증이 영 좋지 않다.

무엇보다도 실제 인물 김춘삼이 상당히 미화되었다. 김춘삼은 원래 1959년에서 1960년경 고아원 사업[2] 및 중부시장 일대에서 조직폭력 행위로 알려진 인물이다. 1959년 합심원의 조직원들이 거리에서 헤매던 소년들을 폭행하고 강제로 끌고가려다 발각된 사건, 1960년 깡패조직에서 새롭게 떠오른 김춘삼이 지명수배되어 도주한 사건 게다가 김춘삼은 결혼도 아주 악질적으로 했다. 김춘삼이 1960년에 부산 중부시장의 일로 지명수배되어 광주로 도주했는데 이후 김춘삼은 광주에 터를 잡았다. 한참 후 조선대학교 졸업반이었던 남윤자를 납치해서 15일 동안이나 강간을 한 이후 풀어줬고 그렇게 결혼했다. 이 정도면 당대의 깡패들 중에서도 단연 최악이었다. 참고로 김춘삼이 남윤자와 강제로 결혼할 당시의 둘의 나이는 김춘삼 40살, 남윤자 25살이었다.

나이가 들어 김춘삼이 쓴 자서전 거지왕 김춘삼을 토대로 만든 드라마인데, 자서전의 특성상 김춘삼 자신에 대해 미화된 내용이 안 들어가길 바랄 수도 없는 지경이었다. 그를 통해 만든 드라마도 미화되는 내용이 없을 수 없긴 했다. 실제로 김춘삼 밑에서 말단 거지로 있었던 조세형의 증언에 따르면, 김춘삼 일당은 구호성금이나 물품을 빼돌렸으며 말을 듣지 않거나 도망가려는 사람들을 무자비하게 폭행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아직도 조세형은 김춘삼을 위선적이고 잔인한 인간쓰레기나 인간오물로 평가한다. 근데 이건 조세형의 평가가 매우 정확한 것이다.

사실 자신을 상당히 미화한 자서전에서조차 썩 좋지 않은 내용들이 가득하다. 자기 입으로 잔혹한 고문을 가했던 것[3]이나 강간으로 한 여자를 얻은 것을 자랑스럽게 늘어놓는 등 자기 자신을 쓰레기로 표현하고 있다. 부하가 음식을 도둑질하다가 냉동음식에 주요 부위를 부상당하여 고자가 되었는데도 안타까워하면서도 그 음식을 자기 식구들 모두 먹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그냥 그 시대 흔했던 시정잡배이자 정치깡패 정도로 보면 될 듯. 실존인물인 왕초는 21세기였다면 SNS로 단번에 박살나기 딱 좋은 인물이다.

드라마로 본다면 상당히 잘 만든 축에 속한다. 초반부 아역들의 강렬한 연기로 시청자들을 사로잡았고 그 이후에는 낭만파 주먹들의 협객다툼과 일제에 항거하는 독립의사들의 모습도 잘 보여줬다. 이후 강제징용 당해서 귀환하고 좌우이념 대립이 극에 달한 시대를 관통하는 모습, 6.25와 이후 자유당 일대기, 마지막으로 5.16 쿠데타까지 나오는 현대사를 블록버스터처럼 잘 다룬 작품이다. 특히 무거운 주제를 코믹적으로 풀어낸 방식이 인상적이다. 6.25 전쟁신은 방영 이후 큰 찬사를 얻었고 시가전이나 고지전투는 상당히 잘 만들었다. 롱테이크 촬영과 인물들을 따라가는 촬영방식이 화제가 됐다. 이후 방영된 6.25 관련 드라마들 대부분이 왕초의 전투신을 오마주하거나 못 따라가는 수준으로 만든다.

이 작품에서 아베로 열연한 정호근의 연기는 꽤나 뛰어난데 현재의 사극연기와 비교해보면 이때 정호근의 연기는 상당히 훌륭하다. 저음과 고음을 적재적소에 배치하여서 활용하는게 압권이다. 센세이로 나온 이정용 또한 고문관 시절엔 말 한마디 없이 고문과 표정연기만으로 지켜보는 시청자들한테 소름을 끼치게 만들기도 했다.

이시우가 작/편곡한 OST 음반은 포니캐년 코리아에서 발매됐고, 한류 열풍에 힘입어 일본에서도 방영되었다. 예고편.

여담이지만 이 작품의 프로듀서는 6년 뒤 공화국 시리즈의 최신작인 제5공화국의 CP가 된 신호균 PD.

방영 당시부터 MBC 홈페이지에서 리얼 플레이어 기반으로 다시보기 서비스를 개시한 바 있고, 2010년대 이후 고화질로 유료 다시보기 서비스 중이다. 현재 웨이브에서 서비스 중인데 화질이 상당히 좋다. 베타캠으로 제대로 저장한 작품의 모범사례로 느껴질 정도.

3. 줄거리

어린 김춘삼은 재가한 모친을 찾는 여정에서 누이를 잃고[4] 홀로 남아 떠돌다가 대구 거지 패거리의 일원이 된다. 이기적이고 잔인한 왕초 발가락을 물리친 후 서울로 올라와 염천교의 거지 소굴을 접수하고 왕초가 된다.

서울에서 만난 김두한, 임형도와 친구가 된 후 염천교의 거지 왕초가 되어 청년으로 자란 춘삼은 기생이 된 첫사랑 연지를 다시 만나게 되고, 발가락의 추행에서 구해준 것을 계기로 점점 가까워지지만 연지에게 집착하는 일본군 장교를 폭행한 혐의로 강제 징용을 당하게 된다.

징용에서 구사일생으로 살아 돌아온 춘삼은 거지 부하들을 거지가 아닌 노동자로 키우기 위해 동냥 밥그릇 대신 연장을 쥐도록 한다. 발가락과 대립하고 이정재와 결투를 하기도 하는 등 염천교 움막을 힘겹게 지키며 다시 만난 연지와의 사랑을 키우던 춘삼은, 마침내 사랑의 결실을 맺어 약혼식을 하게 되는데 하필 그 날짜가 6월 25일. 거지로서 호적도 없는 부랑자 같은 삶의 회의를 느끼던 춘삼은 약혼식을 중단하고 그 자리에서 6.25 전쟁에 참전한다. [5] 민적이 없었기에 전쟁에 참전하지 않아도 됐는데 전쟁에 참여하려면 민적이 필요하므로 참전에 자원하면 없던 민적을 발급해줘서 당당하게 국민으로 인정받고 연지와 함께하려고 한 것이다.

휴전 후 부하들과 함께 공을 세우고 살아 돌아온 춘삼은 미국 문물을 흡수하며 크게 달라져가는 시대상에도 흔들리지 않고 고아들을 거두어 돌보는 사업을 하는 등 사회 사업가로 성장해 나간다.

요정의 마담이 되어 자유당에 정치 자금을 후원한 등의 혐의로 5.16 군사정변의 재판을 통해 징역을 살게 된 연지. 전국 거지들의 합동 결혼식을 주관한 후 텅 빈 움막에 쓸쓸히 돌아온 춘삼의 앞에 연지가 돌아오며 해피 엔딩으로 끝난다.

4. 등장인물

4.1. 주요 인물


4.2. 조력자

4.3. 염천교 거지들

김춘삼: 야, 이 동냥질이라는 건 말야, 도둑질하고 똑같은 거야. 남의 호주머니에서... 하여간 양심을 훔쳐내는 거야.[39]
앵무새: 양심? 지금 양심이라 그랬어, 왕초?
김춘삼: 그래, 양심.
앵무새: 왕초, 왜 그래?
김춘삼: 뭐가?
앵무새: 염천교 거지들은 똑같이 나눠먹고 똑같이 굶는다는 소문에 수표교 애들, 염천 애들 전부 왕초 밑에 꿇고 들어왔어. 보릿고개에 시장사람들 입에 풀칠하기도 힘들 때 인왕산 쑥 캐다가 애들 떡잔치까지 해줬잖아. 그거 생각나? 하루종일 왕초랑 나랑 쫄쫄 굶으면서 말이야. 지금 그런 양심 말하는 거야? 아니면 술 처먹고 아침에 해장질한다고 혼자 국밥 처먹는 그런 양심 말하는 거야!
김춘삼: 야, 앵무새!
앵무새: 여자 만나고 다니면서 많이 변했어, 왕초.
이 때문인지 몰라도 춘삼의 애인인 연지에 대해 재수없는 여자라며 안 좋은 감정을 가지고 있다. 오랫동안 춘삼과 함께 하면서 춘삼이 안좋은 일에 연루될 때는 항상 연지가 연결되어 있음을 알고서 그렇게 생각하는 듯 싶다.
후반부에서는 이전보다 뭔가 더 우스꽝스럽게 행동하기 일쑤이고, 왕호에게 딴죽을 걸다가 욕을 먹고 얻어맞는 등의 불쌍한 개그 캐릭터로 굳어진다.
6.25 이후로는 다른 염천교 거지들도 거의 맨발급으로 취급하는 모습도 종종 보이는데 26회 말미에 이를 지켜보던 왕초가 대구 시절부터 앵무새는 최고의 거지였다고 말하면서 형을 존경할 것을 말한다. 6.25 때 김춘삼이 부상을 입은 채로 실려 와서 치료받는 동안 진통제로 받은 모르핀에 꽂혀서 한동안 약쟁이가 되어 빌빌거렸다. 기분 좋은 거 그거 좀 달라고 하자 간호장교로 앵무새를 돌보던 김남주가 혼내기도 한다.
이렇게 캐릭터가 초반과 180도 변한 이유는 6.25로 인해 당시 염천교 거지들이 뿔뿔히 흩어져 동과 서, 남과 북으로 갈라지게 됐고, 그 와중에 북한군으로 분류된 동료거지 명태(박광현)를 앵무새가 오인사살 해 버린 충격 때문이다. 북한군으로 6.25 참전중이던 명태와 마주친 김춘삼이 명태를 설득해 남한군 쪽으로 투항시킨 후 냇가에서 쉬고 있는 모습을 멀리서 목격한 염천교 식구들이 명태의 북한 군복과 총을 보고 김춘삼이 포로로 잡혔다고 오해해 멀리서 총격을 가해 사살한 것.
특히 명태는 앵무새와 김춘삼이 임형도의 가게에 취직시켜 공부까지 시켜줬기 때문에 이 둘을 부모 내지는 큰 형처럼 따르던 아이였던터라 앵무새의 충격이 더욱 컸다. 북한군의 손에서 왕초를 구해냈다며 한껏 신나게 달려가던 염천교 거지들과 앵무새가 오인사살된 명태를 깨닫고 망연자실하는 연기가 압권. 앵무새는 이때 명태를 묻은 무덤 앞에서 자신도 명태와 함께 죽겠다며 정신줄을 놓을 정도로 절망했다. 같은 민족끼리의 전쟁이 얼마나 덧없고 끔찍한지 강렬하게 보여주는 장면. 이 때의 충격과 모르핀 중독 후유증으로 인해 뇌에 문제가 생겨 초반의 두뇌회전 빠르던 모습이 크게 변한 것이다.[40]

4.4. 깡패

4.5. 친일파

4.6. 주변 인물들


4.7. 그 외 단역들

단역이지만 캐스팅이 주목할 만한 케이스.

5. 그 밖의 이야기들

5.1. 거지들의 소굴 '염천교'의 유래

드라마의 주 무대라 할 수 있는 '염천교'는 드라마의 실존인물이던 김춘삼과 그를 따르던 거지들의 소굴이다. 그리고 현재 서울 시민에게 익숙한 '염천교'는 서울역에서 서소문공원으로 올라가다 보면 경의선 철길 위에 놓여 있는 육교다. 보통 서울역 염천교를 드라마에 나오는 거지 소굴로 대중들이 기억하고 있지만, 이 염천교는 근처 청계천에 있던 옛 염천교에서 이름을 빌려온 것일 뿐 드라마에 등장하는 거지들의 소굴 염천교와는 사실 아무 관련이 없다.

진짜 거지 왕초가 살았던 곳은 청계천 지류에 있던 염천교였다. 옛 염천교는 인왕산 무악재 부근에서 시작돼 한강으로 흘러들던 무악천 위에 놓였던 다리다. 일제 때는 이 물길을 욱천(히노가와)이라 불렀는데, 1950년대에 완전히 복개돼 흔적을 찾을 수 없다.

지금은 사라졌지만 염천교가 청계천 지류에 하나 더 있었다. 1770년대 만들어진 <한양도성도>를 보면 염천교가 두 개 나온다. 조선시대 때 화약을 만드는 관청인 염초청에서 염천교란 이름을 땄는데, 이 관청이 두 군데 있었기 때문이다. 다른 다리 하나는 남산에서 시작해 청계천으로 흘러들던 묵사동천에 있었다. 더 정확히는 ‘가산’이 있었던 지금의 방산시장 근처다. 청계천을 준설한 뒤 나온 흙을 쌓아 만든 것이 가산인데 주변에 심은 꽃향기가 좋다 해서 나중에 방산동으로 불렸다.

조선시대 거지들의 소굴 역시 무악천 염천교라기보다는 청계천 일대 다리였다. 전우용 서울시립대 서울학연구소 박사는 “조선시대 때부터 청계천에 놓인 거의 모든 다리에 거지들이 살았고, 각 다리의 거지를 대표하는 대장의 이름을 ‘꼭지’라고 불렀다”고 설명했다. 그리고 꼭지들의 꼭지가 바로 ‘꼭지딴’이었는데 그가 살던 곳이 바로 가산이었다.

아무튼 염천교는 이런 역사들로 인해 거지들의 소굴이라는 대명사가 되면서 옛날 어머니들은 우는 아이를 겁주기 위해, “너, 염천교 다리 밑에서 주워왔다!” 며 거지들이 몰려 살던 염천교를 들먹이곤 했던 것이다.

5.2. 실존인물 김춘삼의 6.25 참전 여부

김춘삼은 한국전쟁 당시 입대하여 전선에 참전했다고 한다. 하지만, 대한민국 국방부에 의하면 "김춘삼"이라는 인물은 "한국전쟁 납북사건자료원"의 자료에만 있다고 하는데 "한국전쟁 납북사건자료원"에 존재하는 "김춘삼"의 자료는 모두 동명이인의 것이다.# [99]

5.3. 편성과 캐스팅 문제, 연장

김상경이 맡았던 김빠 역은 당초 신현준이 낙점 되어 차인표와 함께 투탑으로 편성하려 했으나 허리디스크 때문에 중도하차하자 안재욱이 대타로 제의 받았지만 개인사정으로 거절하여 김상경이 대타로 들어갔다.

아울러 당초 99년 5월 초 첫 방영 예정이었으나 전작 청춘이 일본 드라마를 표절했다는 의혹 속에 조기종영당하게 되어 편성을 앞당긴 바 있었으며 사실을 지나치게 과장하거나 미화하여 시청자들로부터 비판을 받았지만 그럼에도 24부작으로 기획된 것을 "더 보여줄 이야기가 남아있다"는 MBC 측의 판단도 있었으나 후속작 마지막 전쟁의 캐스팅 문제 등을 고려한 것과 동시간대 SBS 은실이와 종영시기를 맞추기 위해 4편 늘린 28회로 막을 내리도록 했다.

악역들을 몰락하게 만든 5.16쿠데타를 너무 긍정적으로 묘사한 문제도 있었다.[100] 그 때문에 나중에 케이블에서 방송할 때는 이 부분을 삭제해서 방영했다.

사족으로 후속작인 <마지막 전쟁>은 여러 차례 코믹한 장면을 실었다는 혹평이 있었으며 방송위원회로부터 1999년 8월 17일과 31일 방영분에서 주의 조치를 받았고 당초 16부작으로 기획되었으나 후속작 국희의 캐스팅 문제를 고려하여 2편 늘린 18회로 막을 내렸다.


[1] 다만 깡패 시절의 습관은 고치지 못했다.[2] 말이 좋아 사업이지 고아들을 모아 이런저런 일에 이용해 먹는 것. 당연히 정부보조금도 착복. 이 짓을 한 군데서 한 것도 아니고 전국 십여 곳에서 하였다.[3] 이건 뭐 그당시 깡패들이 다 그렇다 치고[4] 호랑이 사냥꾼들에게 남매가 붙잡혔는데 누이는 겁탈당할 뻔 했다. 이 사냥꾼들 중 한명이 남매를 보고 집에 두고온 자식들이 생각나 이들을 몰래 풀어주지만, 곧 발각되어 풀어준 사냥꾼은 동료들에게 살해당하고 같이 도망가던 누이는 따라잡히자 춘삼이에게 도망치라고 외친후 스스로 절벽에서 투신했다.[5] 한영이 전쟁 발발 소직을 전하러 달려오기 직전에 이정재의 화환 배달을 온 발가락이 민적도 없는 거지라고 무지하게 긁어놓는다.[6] 1983년 11월 13일 생.[7] 1982년 1월 22일 생.[8] 사실 혁명재판 당시 중형을 선고받은 자들은 곽영주나 임화수처럼 사람을 여럿 죽였거나, 이정재처럼 진짜 조폭 보스, 혹은 조용수처럼 빨갱이 몰이를 받은 사람들 정도다. 그에 반해 한연지의 혐의는 고작 부정축재(그것도 대부분 박보살에게 물려받은 것)와 뇌물에 관여한 것 정도라 중형을 받을 건덕지 자체가 없었고, 그나마 혁명 재판 당시 사형 집행된 자들을 제외한 대부분이 그렇듯 감형 받았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작중에서는 이정재가 변호해 준 덕분에 형량이 줄어든 것으로 묘사되지만, 그렇지 않았다고 해도 감옥에서 오래 살진 않았을 것이다.[9] 이는 당연한게 당장 우미관에서 활동하는 우미관패 소속의 직계 조직원만도 100명도 넘어가는걸 생각하면 김두한 휘하에 수많은 부하 및 산하 조직들이 있기에 염천교만을 꼭 칩어서 돌볼 수가 없다보니 그런 것으로 보인다.[10] 다만 이 점에 있어서 두한을 좀 옹호하자면 발가락이 염천교를 제압할 당시 발가락은 그저 거지패의 우두머리였는데 그렇다보니 진짜 건달이자 종로의 두목이며 당시의 서울인 경성 건달들의 총 두목인 두한이 단순한 거지패인 발가락을 건드리기에는 명분조차도 없어서 그런 것으로 보인다.[11] 더욱이 일반인들 입장에서는 거지패든 건달패든간에 같은 싸움패이지만 당시의 건달들 입장에서는 정식 건달인 그들은 프로 파이터이고 거지패들은 아마추어 파이터이기에 아마추어들끼리의 일이다보니 프로인 본인들이 나서기가 껄끄러워서 그런 것으로 보인다.[12] 물론 작 중에서 보여지는 김두한의 성격상 발가락이 염천교 식구들을 두들겨패는 것이 선을 넘어서 누구 하나라도 병원에 입원을 했다면 바로 발가락을 비롯한 그의 조직을 초토화시켰을 것으로 보인다. 물론 발가락 본인 또한 김춘삼 덕분에 염천교 식구들과 경성 주먹의 총 두목인 김두한과의 사이가 보통이 아님을 아는지라 본인이 영천교 식구들을 패더라도 나릉대로 적당히 적정 선을 지킨 것으로 보인다.[13] 김춘삼의 적이었던 이정재는 춘삼에게 패한 후로는 비록 추후 얻어낼 게 있다는 계산이 있었기 때문이었지만, 여러모로 친구인 김두한보다 춘삼과 염천교 거지들을 훨씬 많이, 성의껏 도와주었다. 더욱이 이정재의 그 행위도 당시 이정재가 자유당 소속이었기에 가능했던 것으로 보인다.[14] 다만 이 부분도 그저 김두한만을 까내리기에는 김두한에게 억울한 면이 있는데 애초 당시의 대한민국에서 미군에게 불만을 토로하거나 혹은 그들을 제제를 할 수 있는 인물들은 기껏해야 현역 국회의원 특히나 그 중에서도 대통령이던 이승만의 자유당 소속의 의원들과 정부 각 부서의 장관들과 같은 높으신 분들 정도라서 아직 국회의원 후보였던 김두한이 미군을 상대로 뭔가 큰 액션을 취할 수는 없었기 때문에 무시를 한 것으로 보인다.[15] 더욱이 김두한은 단순한 국회의원 후보가 아니라 건달 두목 출신이고 해방 이후에는 백색 테러범으로서 진작에 미군들에게 한국의 알카포네라고 알려져 있었던 것을 생각하면 괜히 어설프게 나섰다간 김두한 본인 뿐만이 아니라 염천교 식구들까지 싸잡혀서 박살이 날 수도 있었던만큼 기회주의자라는 말을 듣더라도 당시에는 차라리 나서지 않는 것이 현명한 상황인 것도 이유 중에 하나로 보인다.[16] 뿐만아니라 당시 여당에 맞서던 야당 의원들의 삶을 생각하면 무조건 깅두한을 비난만 할 수는 없다. 특히나 염천교를 항상 없애려고 하는 경찰국장인 아베와 경찰서장이자 일정때 고문 전문가로 활약한 경찰서장이 무려 자유당 소속인 것을 생각하면 더 말을 할 것도 없다.[17] 하지만 여기 김두한이 야인시대 김두한보다 실제 김두한의 성격을 더 잘 고증했다고 한다.[18] 실질적으로 김춘삼의 돈으로 마련한 김춘삼의 땅이었으나 임형도가 땅을 팔 수 있었던 건 민적이 없어 부동산 거래를 할 수 없는 김춘삼을 대신해서 민적이 있는 임형도가 자신의 명의로 염천교를 사들였기 때문이다. 물론 자신의 명의로 사들였어도 웬만하면 건드리지 않았으나 사업이 어려워지자 우정이고 뭐고 헌신짝처럼 내던지고 땅을 팔아치운 것. 그동안 건드리지 않았던 것도 알량한 우정 때문이었을 뿐이다. 애초에 김춘삼이 아닌 자신의 명의로 땅을 사들였던 것부터가 언젠가 그 땅을 자신이 어떤 식으로든 이용해먹겠다는 흑심이 있었던 것으로 아는 이들이 있으나 김춘삼은 민적이 없었기에 임형도에게 대신 거래를 하게 해서 임형도 명의로 땅을 산건 김춘삼이 부동산 거래를 해달라고 요청해서지 임형도가 처음부터 그 땅을 탐낸 건 아니다.[19] 이렇다보니 후에 희연각의 주인이 되는 연지에게 "친구들 손에 맞아 죽기 싫으면 당장 서울을 뜨라면서"핀잔을 받기도 한다.[20] 1982년생이며, 배우 이민호와는 동명이인이다.[21] 김춘삼의 자서전에서는 발가락이 쥐똥을 무쇠 솥으로 죽인 것으로 나온다.[22] 저 유명한 주먹으로 할래 깡으로 할래. 주먹은 당연히 쌈질인데 깡이 좀 비범하다. 이름은 '기차놀이'로, 철길 위에 누워있다가 기차가 올 때 피하지 않고 더 오래 버티는 쪽이 이기는, 일종의 치킨 게임. 당시 춘삼은 피하기는 커녕 아예 철로 밑으로 들어가버려 기차가 다 지나갈 때까지 버텨서 승리한다. 발가락은 이 날 패배한 굴욕감을 마지막까지 잊지 못했는데, 극의 후반부 춘삼과 함께 유치장에 갇혀있을 때 대체 어떻게 피하지 않고 버틸 수 있었는지 직접 물어보기까지 했다.[23] 심지어 그 패거리들도 발가락 본인을 제외하면 김춘삼은 고사하고 죄다 앵무새조차도 못 이기는 놈들 뿐이다.[24] 애초에 앵무새가 발가락 패거리에게 얻어 맞은 건 발가락도 발가락이지만 수가 너무 많아서 그런 것이니 괜한 착각은 하지말자.[25] 춘삼과 몸싸움을 벌이다 자기가 질 것 같자 살려달라고 비굴하게 패배를 시인하고 춘삼이 돌아서자 뒤에서 공격하는데 춘삼이 발가락의 공격을 막고 걷어차는데 이때 대나무 밑동에 눈을 찔렸다. 즉, 자업자득. 이후 작중에서 말하길 개눈을 박았다고 하는데 눈 색깔이 좌우가 다르다. 의안을 박은 듯. 진짜로 개눈을 박았을 리가 없다.[26] 춘삼도 이정재와 함께 체포되어 길거리에서 조리돌림 당하는 발가락을 보면서 본명을 알게 되었다. 이후 사형선고를 받고 대기하던 중 자신을 면회 온 춘삼이 본명이 심순동이었냐고 물어보자 씨익 웃으며 "우습냐?"라고 한다.[27] 사실상 염천교패의 2인자인 인물이다.[28] 당시 군사정변 주체세력들이 주로 진급에서 피해를 입던 것을 감안하면 이해할 만도 하다.[29] 본인과 다투고 담배를 피우고 있는 한영에게 럭키스트라이크나 피우면서 미군 철수를 반대하는 보수 우익이라고 비판하지만 이후에는 정치적 색체가 거의 사라진다. 서대문 경무대의 주인이라는 자유당 이기붕의 아내인 박마리아와 가까운 관계로 보이며 군사정변에 대해서도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30] 스스로 드러내지 않은 게 아니라 직접적으로 춘삼한테 사랑한다는 말만 안했을 뿐 단 둘이 있을 때 "춘삼 씨를 생각하면 내 마음이 걱정된다"며 고백아닌 고백도 했고, 그 후로도 몇 번이나 마음을 표현했으며, 염천교는 물론 주변 사람들이 다 민재가 춘삼을 좋아한다는 걸 알고 있었으며, 춘삼도 연지 때문에 그 마음을 받아주지 않았을 뿐 민재가 자신을 좋아한다는 건 알고 있었다.[31] 방영 당시의 김남주로 봐선 이상할 정도로 조연급으로 밀려났는데, 아마도 춘삼-연지 커플이 의외로 꽤 시청자들의 지지를 받은 것이 반영되었던 것으로 추정된다.[32] 인트로에서 뒤돌아서는 춘삼과 함께 걸어가는건 연지가 아니라 민재다[33] 박보살 사후에 박보살에게 물려받은 재산이 부정축재로 밝혀져서 연지가 부정축재자로 군사재판에 회부되는 것은 함정.[34] 성인역을 맡은 배우 김세준과 아역을 맡은 최상학 둘다 훗날 야인시대에 조연으로 출연하였다. 전자는 와싱톤, 후자는 번개.[35] 6.25 전쟁 입대 후부터 앵무새라고 민적 이름을 올릴 수 없어 궁여지책으로 만든 이름이다.[36] 거지라는 뜻.[37] 일본어 모라이(もらい)가 어원으로 얻은 것, 동냥한 것이라는 뜻이다.[38] 다른 거지들은 상병, 일병 계급인데 앵무새의 경우 하사, 춘삼의 경우 상사 계급으로 입대하였다. 일례로 작전 중 소대장과 거지 수색대가 의견충돌 하면서 앵무새가 병사들인 동료 거지들 편을 들자, 소대장이 "어허 안무새 하사, 당신은 간부가 돼가지고!"라며 투덜대기도 한다.사실 이게 말이 안되는 게 당시 고졸 이상은 장교로, 중졸 이하는 사병으로 끌려갔다고 한다. 부사관학교도 없었고 사실상 이등병 입대 후에 일병 하사 중사 상사진급이다. 더구나 저 당시에는 상병 병장이 없던 시절이다. 그러니 입대하자마자 상사 하사를 달 수가 없다 상병계급은 있지도 않던 때이다. 물론 공을 세워서 진급했다면 말이 된다. 애초에 거지 수색대가 뜨면 바로 전황이 역전되는 것을 넘어서 오히려 적군들을 때려잡는 실정인데 진급이 안되면 그게 더 이상한 상황이다. 훈장이야 상부에서 어찌저찌 무마를 시킨다고는 해도 공을 세운 인물을 거지라고 진급을 못 시킬수는 없을테니.....[39] 사실 이 말은 연지가 거지들을 비난하며 했던 이야기이다.[40] 그렇다보니 6.25전쟁 이후에는 앵무새보다는 주로 김빠가 염천교의 2인자로 나온다. 하긴 독립투사인만큼 애초에 싸움 실력도 왕초인 춘삼에 이은 2인자이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상황이기는 하다.[41] 본작 최고의 로맨스 가이!!![42] 물론 동생인 날파리에게 "누나는 여기니까 여자로 보이고 대접을 받겠지만 기생 옆에 가면 아무것도 안돼!!!" 라며 훈계를 듣기까지 할 정도 였다.[43] 애초에 당시의 기생들이 있던 권번은 기본적으로 빚을 진 사람들이 가는 곳 중에 하나엿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아무나 막가는 곳이 아니라 빚을 진 사람들 중에서도 외모는 물론 노래도 잘하는 여성들이 전국 팔도에서 모여서 심지어 훈련까지 하고 들어가는 곳인지라 외모를 가꾸는 것과는 거리거 먼 것을 넘어서 그럴 형편어 안되던 까마귀가 어떻게 해볼 상황이 아니었다.[44] 그렇다보니 움막 식구들이 여대생에 정신을 못 차릴때 따끔하게 혼을 내기도 한다.[45] 춘삼은 거지이기 때문에 한 여자를 사랑하는 것만으로도 고통을 받고 모욕을 당하는 날파리의 모습이 젊은 시절의 자신과 비슷하다는 걸 느끼고 전폭적으로 지원한다. 중간에 포기하면 벌밥 3일이라는 조건도 걸고.[46] 보통 때 같았음 복수심에 불 타 '아베'라고 비아냥 거리겠지만, 원수 같은 인간임에도 자신이 사랑하기로 결심한 난영의 아버지가 분명하기에 정중히 예를 갖춘 것이다. 이 장면부터 극이 끝날 때까지 날파리는 '아베'라는 호칭은 더 이상 사용하지 않고, 대신에 '난영이 아버지'라는 정중한 호칭을 계속 사용한다.[47] 6.25 전쟁 입대 후에 앵무새와 같은 사유로 궁여지책으로 만든 민적 이름.[48] 초기에는 말도 멀쩡하게 하고 오히려 약삭빠른 쪽에 가까운 캐릭터였다. 그러다가 회차가 진행되면서 말투나 행동에 과장이 추가되고 점차 바보 기믹의 개그 캐릭터로 굳어진다.[49] 이를 봐선 춘삼이 평정하기 전 염천교의 원래 왕초였을 가능성도 있다. 극중에서 춘삼이 접수하기 전 원래 염천교 왕초의 이름이나 이후의 행적이 전혀 언급되지 않는다.[50] 전쟁 중에 심각하고 긴장되는 교전 장면 속에서도 방귀를 뀌어 대는 장면도 꽤 나온다.[51] 6.25 전쟁 중에 매복하며 자다가 깨우니 똥마렵다고 투덜대며, 심각하게 교전 중에 갑자기 배를 부여잡고 고통스러워하자 앵무새가 총상 입은 줄 알고 걱정했으나, 알고보니 똥이 마려워서 휴지 달라고 칭얼대는 것이었다. 그렇다보니 처음에는 걱정하던 앵무새도 "그냥 제자리에서 싸라 싸 임마!"라면서 타박을 했을 정도...[52] 물론 실절적인 2인자는 앵무새이고 또 전쟁 이후에는 한영과 앵무새가 공동 2인자로 나오기는 하지만 한영은 직업 군인인지라 움막에는 자주 있지를 못하고 앵무새는 전쟁 후유증 때문에 가끔씩 헷가닥하니 평상시의 서열상 3인자인 너구리가 2인자 일을 하는 것을 보인다. 또 나름 싸움도 곧잘 하니 뭐....[53]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메뚜기가 말을 시작할 때 알아듣는다. 전쟁 중에 팔을 잃고, 잠시 말을 더듬지 않고 진지해진 모습을 보였는데 캐릭터가 밝아지며 다시 말을 더듬는다.[54] 사실 그 1화 인트로 파트가, 거의 평행 우주에 가까울 정도로 이후 본편과 충돌하는 부분이 많다.[55] 동냥이나 구걸을 하지도 않았고 당시 상황 상, 거지라기 보다는 전쟁 고아라고 봐야한다. 이 시점에서는 염천교 초기 멤버들도 군 제대 후 모두 거지 일을 그만뒀고 염천교도 거지 움막이라기 보다는 고아들의 피난처로 쓰인다.[56] 다만 이는 이정재가 자유당 소속이다보니 가능한 행위로 보인다.[57] 시대적으로 그 이후라 할 수 있는 1화의 초반 장면에서는 김춘삼의 부산 입찰을 방해하기 위해 모인 쌍칼, 이화룡과 반갑게 인사를 나눈다. 심지어 그 자리에는 현직 국회의원이며 이정재라면 치를 떠는 김춘삼의 죽마고우 김두한도 있다. 더구나 김두한은 그 자리에서 '깡 하나로 먹고 사는 거지놈이 뭘 하겠어요?'라고 말하기까지 한다. 이정재의 테러 이후 시라소니는 복수를 위해 이정재 패거리를 죄다 때려눕히기도 했고, 이화룡이나 쌍칼도 이정재에 대한 복수심에 이를 갈았었는데 이 갈등이 어떻게 해소되었는지가 전혀 나오지 않는다.[58] 다만 이는 이정재 본인의 자존심상 그렇게 한 것으로 보이는데 애초에 건달이라면 또 몰라도 거지인 춘삼과 일기토를 하고 패배한 것도 창피한 일인데 그걸 인정하지 못하고 자신의 조직을 이용해 보복한다는 말이 나오면 당연히 그동안 쌓아놓은 신뢰나 명성이 무너질테니 그냥 패배를 인정하고 해당일을 끝내는 것이 낳은 상황이기 때문이다.[59] 더욱이 만약 이정재가 구차하게 춘삼에게 진 것을 빌미로 조직을 이용해 보복을 했을 경우에는 바로 춘삼의 친구인 "김두한"과 싸움을 해야는데 김두한의 우미관패만 해도 굳이 김두한까지 갈 것도 없이 이정재나 발가락을 이길 수 있는 인물들이 몇몇 있는데다가 우미관만의 세력도 상당해 안그래도 불리한데 그 당시에도 김두한은 서울 주먹의 총 두목!!!인 인물이라 여차하면 우미관만이 아니라 아예 서울의 모든 조직들과의 전쟁을 해야하다보니 두뇌파인 이정재 입장에서는 당연히 그런 선택을 할리가 없는 상황이었다 또 사실 이정재가 아니더라도 서울 도심에서 서울에 존재하는 모든 건달 조직과 전쟁을 하는 그런 정신나간 미친 선택을 할 인물은 그 어디에도 없긴 하다.[60] 하지만 정작 이정재의 여러가지 음모들을 저지한 건 김춘삼이다. 심지어 선거 때도 이정재가 훨씬 많은 도움을 줬는데도 김춘삼은 김두한이 자기 친구라는 이유만으로 별다른 도움도 주지 않은 김두한의 편을 들었다[61] 김두한은 도움을 청하러 가니 자기 선거원이면서 선거 철에 무슨 짓이냐며 피해갈까봐 전전긍긍하며 오히려 짜증을 낸다.[62] 물론 당시 두한은 어디까지나 국회의원 후보였지 국회의원이 아니었고 또 일반 국회의원 후보인도 아니고 건달 두목 출신이라 미군에게는 "대한민국의 알카포네"라며 알려진 인물이라 미군에 관한 문제에 함부로 끼어들 수는 없어서 그런 것으로 보인다. 여차하면 본인은 물론 염천교까지 박살 날 판인이 뭐......[63] 사실 이정재는 이승만 독재 정권이 얼마 못 갈 것을 예상하고 있는 언행을 보이기도 했다. 부하와 대화를 할 때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건 권력자가 아니라 시장 바닥에서 콩나물 팔거나 품 팔이 하는 민초들"이라고 말하기도 했고, 오만방자한 모습을 보이는 아베에게 시대가 바뀌는 걸 경고하기도 했다. 쿠데타군에 체포되는 때도 아베, 센세이와 달리 제 발로 걸어나가며 순순히 체포에 응했다.[64] 거짓말을 밥먹듯이 하는 아베와 센세이 말 믿을 필요없다며, 현각이 뭐가 아쉬워서 술손님에게 돈을 바치냐고 반박한다. 그런데 실제 이런 모습은 이정재의 부하 유지광의 모습이며 실제로 이정재는 임화수와 서로의 잘못이라 욕한다.[65] 비슷한 시대를 다루는 야인시대에서는 김두한의 부하인 신영균으로 출연[66] 멍석말이는 양반이고, 벌밥이라는 이름만 밥인 오물투성이를 강제로 먹여지기도 했다. 정보 불라고. 불쌍하게도 도끼는 고등어 알러지가 있어서 벌밥 먹고 온몸에 두드러기가 났다.[67] 춘삼이 거리의 거물로 성장하면서 직속 부하인 염천교 거지들도 덩달아 급이 올라간 것에 대한 묘사라고도 볼 수 있겠다.[68] 다른 에피소드로 맨발이 늘 철모를 잃어버리는 바람에, 날파리가 화장실에서 일보던 도끼의 철모를 훔친다. 잃어버린 철모를 찾지못한 도끼는 총알이 빗발치는 현장에서 밀짚모자를 쓰고 전투에 참여한다.[69] 군사재판 최후변론에서 도끼가 훈장 받은 걸로 봐달라고 칭얼대며 말이 길어지자, 재판장이 간단하게 말하라고 짜증을 내기도 한다.[70] 비슷한 시대를 다루는 야인시대에서도 쌍칼로 나온다. 단, 퇴장한 이후에는 다시는 안 나온다는 점에서 이쪽과는 다르다.[71] 같은 배우가 같은 실존 인물을 두 번이나 연기했지만 사실 동명이인이고 각 배역의 캐릭터성이나 비중은 크게 다르다. 왕초에서는 좀 찌질하게 나오는데, 김두환에게 깨지고 떠나기로 했으면서도 은근 슬쩍 종로에 비비며 살고 있고, 이후에도 건달들 대부 노릇 하면서 지낸다.[72] 야인시대에서는 조열승 역을 맡았다.[73] 아침에 국밥 집에서 밥 먹다가 갑자기 각목으로 쳐맞았는데 그걸 뚫고 이기면 그건 그거대로 연출이 지나치게 판타지적인 거다.[74] 참고로 이 세계관에서도 이런 시라소니와 대등하게 싸울 수 있는 사람은 기껏해야 서울 건달의 총 두목인 김두한과 상하이 암흑가의 거물인 상하이박 두 명 밖에는 없다.[75] 야인시대에서는 아오마스로 출연한다.[76] 소대장은 자기가 잘 아는 분이라며 능력있는 양반이라고 소개하기도 했다. 하지만 실상은 아베와 염천교 거지들의 악연을 모르고 중간에서 염천교 거지들의 입장을 대변해 주다가 아베에게 욕만 거하게 먹었으며, 나중에 5.16 정변으로 군검찰관으로서 피고로 올라선 그를 심판하며 복수하게 된다.[77] 전임 대대장이 작전중이 전사하여 대대가 완전히 와해 직전이었기 때문이다.[78] 아무리 뭐 같아도 전쟁중에 아베는 아이러니하게도 이들의 직속상관이었는데, 염천교 거지들의 전쟁중 혁혁한 전공에도 불구하고 아베는 거지들의 돌출 행동을 빌미삼아 휴전 후 직속상관의 추천이 필요한 염천교 거지들의 국가유공자 등록을 아예 못하게 만들어 버린다.[79] 위 상황 말고도 6.25 동안 연출에는 상당히 문제가 많은데 맨발,도끼,춘삼은 철모도 제대로 안쓰고 전투를 하질 않나, 명태가 죽었을때 추모한답시고 8발자리 M1개런드를 몇십발이 넘게 재장전도 없이 쏴대지를 않나, 시가전에서 엄폐도 없이 앞으로 달려나가고 탱크를 잡을때 우회도 하지 않고 정면으로 돌진하질 않나 여러모로 고증이나 연출이 안드로메다로 가는걸 볼수 있다. 하긴 애초에 수많은 전사자가 나온 전쟁에서 왕초와 거지부대 전원이 대부분 사지에서만 활약했는데도 부상자 1명 외엔 전원 무사히 돌아온다는 거 자체가 말이 안된다.[80] 참고로 정호근씨는 이후 국희에서도 민간 대부업을 합법화하려는 자유당 정권의 경제관료로 등장한다.[81] 오죽하면 그와 한 패인 이정재 조차도 김춘삼이 대체 뭐길래 그렇게까지 못살게 구냐며 한 마디 하기도 할 정도다.[82] 비슷한 시대를 다룬 야인시대에서 김관철로 나왔으며 불멸의 이순신과 징비록에서 가토 기요마사로 나왔다[83] 김춘삼의 저서전에서는 무쇠 솥에 맞아 살해당한다. 쥐똥이 앵벌이를 하고 조금씩 돈을 모은 것은 예전 왕초도 아는 것으로 나온다.[84] 쥐똥이 살해당하는 상황에서 김춘삼은 자신을 구하려고 절벽에 떨어져 죽은 누나를 오버랩하며 발가락에게 도전하게 된다.[85] 다만 북한에게는 거지나 깡패따위는 없으며 왕초는 남조선놈들에게 속은 것이고 북한은 인민의 천국이라며 찬양, 고무하는 모습이 나온다.[86] 마침 춘삼은 두 손으로 총을 잡고 목에 걸치고 있었다. 멀리서 보면 포로 이송하는 장면.[87] 최초 대본에는 맨발이 죽고 윤태영이 하차할 예정이었으나, 당시 맨발이 이 드라마의 비중이 굉장히 높아지며 네티즌들의 반발이 심해지며 대본이 변경되었다. 이 드라마 종영 후 윤태영과 박광현은 시트콤 점프에도 같이 출연하게 된다.[88] 아이러니하게도 무풍지대에서는 이정재 부하이자 사돈인 유지광으로 나온다. 야인시대에서는 공산당 일원 금강으로 나왔다.[89] 참고로 이 세계관에서 이런 상하이박과 대등하거나 혹은 상하이박보다 강한 인물이라고 해봐야 세계관 최강자인 시라소니와 서울 건달들의 총 두목인 김두한밖에는 없는 세계관 최강자 중에 한 명이다.[90] 시대가 겹치는 작품인 야인시대에서 똑같이 지팡이술이 특기인 와싱톤이 싸움을 잘하긴 커녕 같은 우미관패의 최약체들인 아구, 갈치, 병수를 제외하면 가장 약할 정도인 것, 그리고 이러하다보니 개코, 번개, 삼수 등의 후배들한테도 선배대접을 그다지 못받는 것과는 상반된다.[91] 휴전 후에 군생활 포기하려고 했는데, 열심히 공부해서 군법무관 시험에 합격해 군 생활을 계속 할 수 있었고, 5.16 정변 전에 한영과 함께 박정희 세력으로 들어가서 혁명검찰부 검찰관으로 출세한다.[92] 그래도 재판 휴정 중에 특별히 피고인인 연지를 자신의 법무관실에서 춘삼과 면회하게 해 주는 등의 배려를 해 주었다.[93] 하지만 실제로 군검찰관의 힘은 막강하다 법정에 세우긴했어도 결국 구형을 내리는건 검사이기때문이다.[94] 실제로 밀양 박씨 문중에 해동공파라는 파벌은 없다. 소대장 캐릭터 자체가 어리버리하고 약간 부족한 느낌의 캐릭터다 보니 실제 밀양 박씨 문중에서의 항의를 피하기 위하여 극중에서 가상으로 설정한 듯.[95] 그때문인지 주연, 조연, 아역, 엑스트라를 포함하여 거의 유일하게 어색한 연기를 보여준다.[96] 송일국과는 7년 후 주몽에서 숙적 관계로 나온다. 김승수가 대소, 송일국이 주몽.[97] 다만 불령선인의 기준 자체가 일본인, 특히 일제의 군경을 상대로 위해를 가하기만 해도 불령선인으로 간주되었기에, 독립운동가는 아니엇을수도 있다.[98] 이후에 드라마 야인시대 김두한 역할을 하고 싶어했으나 본인의 모친인 김을동이 말렸다고 한다. 김을동은 야인시대 제작진에게 김두한의 조모역을 제의 받기도 했지만, 역시 거절했다.[99] 인터넷을 떠도는 거의 모든 자료에 이렇게 설명되어 있으나 실제 김춘삼은 2006년 타계 후 국립대전현충원 사병1묘역 138-24747에 안장되었다.[100] 정치 깡패들에게 시달렸던 당시 사람들 입장에선 사이다로 여겨졌을 만 하다. 심지어 장준하 선생조차도 초기에는 쿠데타를 지지했을 정도.